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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북한으로 돌아간 11일, 청와대 수뇌부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한 고위급 인사는 “너무 힘들다”를 반복했다. 김정은의 친서로 남북 해빙 무드가 완연해졌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만든 ‘평창 모멘텀’의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추진했던 북-미 대화가 성사 직전 무산됐기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 참모들은 김여정이 돌아간 뒤 주변에 “남북 대화가 결국은 북-미 대화와 같이 가야 하고, 거기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새해 벽두부터 평창 올림픽 개막까지 40여 일 동안 한미, 그리고 북한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 북-미 대화 중재 나선 文 시작은 지난달 4일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통화였다. 양국 정상은 키리졸브 훈련 등 평창 올림픽 기간에 하려던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데 합의했다.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카드를 확보한 문 대통령은 평창을 무대로 한 ‘큰 그림’을 극비리에 그리기 시작했다. 한미 연합훈련 연기에 북한은 지난달 9일 남북 고위급회담을 위해 판문점으로 나왔고, 평창 올림픽 참여 의사를 밝혔다. 다음 날 한미 정상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평창에 파견할 미 고위급 대표단장으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미 대표가 결정되자 청와대는 북한 설득에 나섰다. “펜스 부통령의 격에 맞는 최고위급 인사가 와야 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전달한 것. 지난달 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측 고위급 대표단장으로 북한 2인자인 최룡해 당 부위원장이 방남하느냐는 질문에 “최룡해면 높은 인사가 오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이미 김여정 또는 북한 헌법상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방남을 요청했던 것이다. ○ “청와대, 10일 오후”까지 합의했는데… 문 대통령은 2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미 대화를 본격적으로 타진했다. “김여정의 방남 가능성이 크다”는 청와대의 설명에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들과 회의를 거쳐 대화 추진을 결정했다. 백악관은 청와대에 “펜스 부통령이 가니 (대화를) 잘해보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펜스 부통령이 방한 직전 “무슨 일이 있을지 보자”고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케이 사인’에 북한은 4일 김영남, 7일 김여정의 방남 사실을 잇달아 공개했다. 미국과 북한의 대표가 결정되면서 북-미 대화 실무 논의도 급물살을 탔다. 3국은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한국 관료 없이 펜스 부통령과 김여정이 만난다”고까지 합의했다. 문 대통령의 구상이 완성 직전까지 다다른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 사실을 아는 건 청와대 내에서도 극소수였던 것 같다”고 전했다.○ ‘대북 압박’ 강조한 펜스에 北, 최종 거부 하지만 북-미 대화는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8일 방한한 펜스 부통령은 탈북자들을 만나고 천안함을 둘러보는 등 대북 압박 행보를 이어갔다. 한 외교 소식통은 “백악관은 북-미 대화에서 강경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던 것 같다. 펜스 부통령의 행보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9일 개막식에서 뒷줄에 앉은 김여정 김영남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에 북한은 10일 조선중앙통신 등을 통해 “조용히 사라지는 게 좋을 것”이라며 펜스 부통령을 맹비난했다. 이와 관련해 미 워싱턴포스트는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회담에 응하겠다던 북한이 2시간 전 돌연 일정을 취소했다”고 21일 보도했다. 북한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문 대통령과의 회동 및 오찬에서 취소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급해진 문 대통령은 10일 오후 예정에 없던 강릉행을 결정했다. 펜스 부통령과 쇼트트랙 경기를 보며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한 설득에 나선 것.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탐색적 대화라도 해볼 것을 권했고, 관전이 끝나고 귀국길에 오른 펜스 부통령은 “북한이 원하면 대화에 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 시도와 무산 등에 대해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확인해줄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도 “지금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는 북-미 대화의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놓고 있다”며 “청와대는 이번 과정을 일본, 중국에도 비교적 소상히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문병기 기자}
백악관이 21일 전격적으로 평창 올림픽 기간의 북-미 대화 무산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제 관심은 성사 직전까지 갔던 북-미 대화가 무산된 진짜 이유에 쏠리고 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는 “북한과 미국이 원하는 대화 주제가 완전히 달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측은 워싱턴포스트에 “북한은 펜스 부통령이 북한 인권과 관련된 언급을 자제하고 미국은 대북 압박과 관여를 해제하기를 원했다”고 밝혔다.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은 북-미 대화를 통해 제재 완화 논의를 기대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8일 방한한 펜스 부통령은 예정됐던 10일 오후 청와대 회동 전까지 북한이 민감해하는 북한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내세웠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김정은 입장에선 지금 만나봐야 미국의 쓴소리를 듣고 이미지만 구길 거라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여정이 나선 상황에서 펜스 부통령의 강경 행보가 북한의 결정적 철회 사유 중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김일성 직계인 김여정이 미국 대통령도 아닌 부통령으로부터 면박 당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두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화가 무산된 뒤 청와대에서는 “평화의 무대인 올림픽에서 펜스 부통령이 꼭 북한을 자극하는 행보를 해야 했나”라는 불만이 여러 차례 감지되기도 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일단 우리부터 확실히 잡아둬야 향후 북-미 협상에서 유리하다는 게 북한의 일관된 인식”이라며 “김정은은 우리의 북-미 협상 지렛대 역할에 아직 의문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한상준 기자}
청와대가 20일 한국 세탁기 등에 대한 미국의 ‘세이프가드 조치’에 대해 한미 간에 진행 중인 양자 협의가 결렬되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청와대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결연하고 당당한 대응’ 지시가 전반적인 한미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반박하며 우선 미국을 대화로 설득하겠다고 강조했다. 홍장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정부는 철강 제품 및 변압기에 대한 미국의 반(反)덤핑·상계 관세 조치에 대해 지난주 WTO 분쟁 해결 절차를 개시했다”며 “세탁기, 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는 WTO 협정에 따라 양자 협의 중이며 협의가 결렬되면 WTO 제소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 수석은 또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 파트너와 통상 문제에 대해서는 국익 확보란 관점에서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응하겠다”며 “필요하면 WTO 협정을 비롯한 국제 통상 규범에 입각한 대응 조치를 과감히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홍 수석은 WTO 제소 검토에 대해 “외교·안보적인 시각에서 (한미 갈등으로) 확대 해석하거나 상대방 국가에 대한 비우호적인 조치로 간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미 사이에 관계 균열, 일종의 틈새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건 지나치게 많이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부부 사이에도 종종 갈등이 생기고 논쟁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미국의 무역 제재에는 ‘발끈’하면서도 지난해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대해선 WTO 제소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홍 수석은 “(중국의 보복이) 우리 투자 기업, 관광 등 특정 품목에 대한 조치 행위인데 (제소를 위한) 근거를 찾기 어려웠던 기술적 애로 때문에 제소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또 청와대는 이날 전북 군산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는 등 지원 대책 마련에 나섰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군산은 고용위기지역 지정 요건을 충족하지는 않지만 상황의 심각성 등을 고려해 관련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산업통상자원부가 이날 군산을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하면서 군산 지역 기업, 소상공인에 대한 자금 보조와 퇴직자 지원이 가능하게 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조선업 문제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이번 일에 대해선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을 마련할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위원장 정해구)가 19일 홈페이지를 열고 정부 형태,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국회의원 소환제 등 민감한 쟁점에 대한 여론 수렴에 나섰다. 다음 달 13일 문 대통령에게 개헌안을 보고하기 위해 본격적인 개헌 속도전에 나선 것이다. 국회의 개헌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개헌 논의의 주도권은 청와대가 쥐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위는 이날 홈페이지를 통해 ‘주목받는 안건’ 22개를 공개했다. 가장 민감한 쟁점인 정부 형태를 비롯해 대통령 특별사면권 통제, 국회의원 선거 비례성 강화, 사법부 인사체계 개선 등 큰 파장을 부를 수 있는 이슈들이 대거 포함됐다. 앞서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개헌안을) 발의한다면 최소한의 개헌으로 좁힐 필요가 있다”고 밝혔지만, 특위는 찬반이 엇갈리는 첨예한 사안들까지 정면으로 다루겠다고 나섰다. 특위는 “22개의 안건은 위원들의 토론을 통해 선정했다. 실제 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에 이 안건들을 담을지 여부는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밝혔다. 여권 관계자는 “국회가 세부적인 쟁점 논의까지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특위가 제안한 22개의 안건에 대한 논쟁이 커지면 자연히 국회는 개헌 논의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22개의 안건을 보면 특위가 문 대통령에게 보고할 개헌안의 윤곽이 보인다. 새 기본권 신설, 자치입법권·자치재정권 도입 등 문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기본권, 자치분권 강화와 관련한 내용이 대거 포함됐다. 또 국회의 예산 심의권은 한층 강해지지만 반대급부로 국회의원 소환제, 국민발안제가 도입된다면 시민들의 국회 제어가 한층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대선 결선투표제와 국회의원 선거 비례성 강화가 도입되면 대선, 총선에 직접적 영향을 미쳐 정치지형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 또 대법원장의 인사권 축소를 담은 사법부 인사체계 개선,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영장청구권을 완화하는 내용은 사법부 전면 개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특위는 또 대한민국 수도 규정을 헌법에 명시할지 여부도 쟁점 안건으로 제시했다. 자연히 의견 수렴이 끝나는 다음 달 5일까지 온라인 논쟁은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특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로그인한 방문자는 누구든 각 안건에 대해 찬반과 함께 댓글로 의견을 게시할 수 있도록 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처럼 문 대통령 열성 지지자 일부가 대대적인 온라인 세몰이에 나설 경우의 여론 편중 현상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당장 홈페이지 개설 첫날 정부 형태 투표의 경우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대한 찬성 비율이 약 95%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대통령 4년 중임제는 문 대통령이 선호하는 정부 형태다. 또 촛불시위가 헌법 전문에 포함될지도 관심사다. 정해구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촛불시위는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며 “촛불시위는 헌법을 통해 미래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관건은 특위가 정한 개헌안 완성 시점인 다음 달 12일까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 위원장도 7일 첫 기자간담회에서 “현실적으로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특위는 속도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위는 다음 달 초까지 권역별 토론회,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오프라인 여론조사 등을 실시하고 전체회의를 통해 개헌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특위 관계자는 “설 연휴에도 모든 분과가 회의를 갖고 개헌안 요강 마련 작업을 벌였다”며 “민감한 쟁점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본 뒤 조문화 작업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강원 평창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기자들과 만나 남북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에 대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답한 게 외신에선 어떻게 보도됐을까. AP통신, USA투데이 등 미 주류 언론은 ‘우물에서 숭늉’을 직역하는 대신 “it’s too early”라는 다소 밋밋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것(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은 너무 이르다”라는 의미다. 미 언론은 외국 속담을 그대로 영역하거나 영어 속담으로 바꿔 전하지 않는 편이다. CNN은 “Moon puts brakes on hopes for quick talks”(신속한 대화 움직임에 브레이크를 걸다)라고 표현했다. 미국에선 이와 비슷한 뜻으로 ‘Don’t count chickens before they are hatched’(병아리가 부화도 되기 전에 세지 마라)가 대표적인 속담이다. ‘우물에서 숭늉’이란 표현을 살린 매체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looking for scorched-rice water at a stone well”(누룽지 탄 물을 돌우물에서 찾는다)이라고 직역했다. 싱가포르 영자지인 ‘스트레이트타임스’는 “looking for hot water beside the well”(우물에서 뜨거운 물을 찾다)이라고 전했다.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는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고 너무 급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은 대부분 “너무 서두른다” “너무 성급하다”는 식으로 전했다.한상준 alwaysj@donga.com·정미경 전문기자}

“우리 속담으로 하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강원 평창 메인프레스센터(MPC)를 방문한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제안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보다 북핵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북-미 대화가 우선되어야 하며 그전까지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속도조절론’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북-미 대화 나서야 정상회담 가능” 메시지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할 생각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마음이 급한 것 같다”며 속담을 꺼내들었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부터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받은 지 일주일 만에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대한 구체적인 태도를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 속담을 인용한 것은 김여정의 평양 초청 제안에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8일 “일각에서는 6월, 8월 등 정상회담의 구체적 시기까지 거론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은 신중하다. 북-미 대화 진전 없이는 어떤 후속 조치도 생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시에 문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는 김여정이 평양으로 돌아간 뒤 일주일 동안 미국과 다양한 채널로 소통한 결과 어떤 형태로든 북-미 접촉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17일(현지 시간) “(국무장관으로서) 나의 일은 우리가 채널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을 북한이 반드시 알도록 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나에게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기를 귀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이 아무리 워싱턴에서 대북 온건파라 하더라도 이는 ‘코피 작전’이 거론되던 최근 워싱턴 기류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맞춰 방한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싸늘한 대북 스탠스에 우려하던 청와대는 틸러슨 장관의 발언을 주목하고 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도 미국에 돌아가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며 “북한과 미국이 한 번에 마주 앉기는 어렵지만 서서히 접촉과 대화로 돌아서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열병식 이어 김정일 생일에도 ‘로키’ 이 때문에 정부에선 북-미가 곧 ‘탐색적 대화’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미는 김정은의 도발이 이어지던 지난해 말에도 비공식 채널을 유지해 왔다”고 전했다. 정부 안팎에선 북-미 간 접촉이 시작된다면 시점은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이 끝나고 한미 연합 군사훈련(4월) 시작 전인 3월 초·중순이, 장소는 유엔본부를 중심으로 한 뉴욕 채널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다. 김정은 역시 ‘로키(low key)’ 행보를 이어가며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고 있는 형국이다. 김정일 생일 하루 전인 15일 열린 ‘김정일 생일 76돌 중앙보고대회’에 김정은은 지난해와 달리 불참했고 최룡해 당 부위원장이 대회를 주도했다. 평창 개회식 전날인 8일 건군절 열병식에 새 전략무기를 선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미국을 의식해 수위 조절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전에는 김정일 생일 전후 도발을 이어간 것과는 달리 잠잠한 것도 눈에 띈다. 지난해엔 2월 12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북극성-2형을 발사했고 2016년 2월 16일엔 장거리미사일 광명성호를 발사하며 미사일 전력을 과시했다. 우리 군 역시 최근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김정은 체제 비판보다는 평창 올림픽, 김여정 방남 소식 등을 주로 소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확성기는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전략 심리전 수단이다.한상준 alwaysj@donga.com·신진우·황인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을 마련하는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다음 달 13일 문 대통령에게 개헌안을 보고한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은 다음 달 20일 안으로 대통령 개헌안을 발의할 가능성이 커졌다. 정해구 헌법자문특위원장은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19일부터 온라인 의견 수렴으로 국민 의견을 듣고, 다음 달 초 4대 권역에서 국민참여형 토론회를 개최할 것”이라며 “다음 달 12일 전체회의를 열어 개헌안을 확정하고 문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참여형 토론회는 4개 권역에서 시민 200명을 대상으로 열린다. 이와 별도로 19∼39세 청년 180명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을 열어 헌법 조문을 마련하는 절차도 갖는다. 정 위원장은 “개정 헌법은 미래 세대가 살아갈 시기의 헌법이기 때문에 젊은층의 의견을 많이 포함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위원장은 헌법자문특위 위원 32명의 명단도 공개했다. 부위원장에는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가 임명됐다. 개헌의 핵심인 권력구조를 다루는 정부형태 분과에는 김 부위원장, 정태호 경희대 교수, 김인회 인하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최형익 한신대 교수, 이소영 대구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서복경 서강대 책임연구원 등 8명이 임명됐다. 특위 구성과 관련해 정 위원장은 “지방에 계신 전문가들을 상당히 많이 넣었다”고 밝혔다. 개헌을 통한 자치 분권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조치다. 또 녹색당 공동위원장을 지낸 하 부위원장,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의장 출신인 송효원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등 진보 성향 인사들과 정연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회장,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최은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등 시민단체 출신들이 대거 포함됐다. 정 위원장은 “위원 구성에 당적이나 (과거에) 어떤 의견을 개진했는지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개헌안에 행정수도 관련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서는 “정부 형태는 선거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같이 해야 하는데, (선거제도 개편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김여정이 평양으로 돌아간 후 정부 여당은 답방을 위한 대북특사 파견 시기와 인물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북 초청장을 보내면서 형성된 ‘평창 모멘텀’이 끊기기 전에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파견 시기로는 25일 평창 겨울올림픽 폐회식을 마친 뒤 다음 달 8일 패럴림픽 개회 전까지인 ‘2말 3초’ 가능성이 나온다. 올림픽에 대표단을 보낸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형식이라 부담이 적고 4월 1일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 재개까지도 여유가 있다.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림픽 분위기를 살려 나가는 차원에서 특사 파견은 빠를수록 좋다”고 주장했다. 물론 미국이 급속한 남북관계 진전을 불편해하는 상황을 감안해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특사 후보군으로는 우선 청와대 2인자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거론된다. 임 실장은 지난해 아랍에미리트(UAE)에 문 대통령의 특사로 다녀온 경험이 있다. 이번 특사는 김여정 특사에 대한 답방 형식인 만큼 문 대통령의 의중을 잘 읽고 정치적 무게가 실린 대통령비서실장이 적합하다는 평가가 많다. 상황에 따라 전권을 갖고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과거 학생운동권 경력 때문에 본인이 대북 현안 전면에 나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말도 있다. 문 대통령의 의중을 알면서도 대북 업무 경험이 풍부한 서훈 국가정보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카드도 거론된다.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북측 대표단과의 오찬에서 문 대통령은 서 원장과 조 장관을 소개하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북을 자주 방문했던 분들”이라며 신뢰감을 내비쳤다. 서 원장 카드는 역대 대북 특사들이 정보기관 수장이었다는 점에서 거론된다. 1,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북 특사는 모두 국정원장이었다. 서 원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과 여러 차례 접촉했다. 2007년 제2차 정상회담의 실무 주역이기도 했다. 특히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북핵에 대한 김정은의 태도 변화가 필수적인 만큼 미 중앙정보국(CIA) 등과 북핵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서 원장이 적합하다는 말이 나온다. 동시에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이 핵개발을 거의 완성한 상황에서 논의되고 있는 데다 공개적으로 회담 제안이 오가고 있는 만큼, 음지에서 일하는 정보기관 수장이 나서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조 장관은 지난달 9일 고위급 회담 수석대표로 나선 데 이어 김여정의 2박 3일 일정을 밀착 마크하면서 실무형 특사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다. 조 장관은 대표단 방남 기간 동안 집에 가지 않고 김여정이 지낸 워커힐호텔에서 2박을 했다. 김여정과는 식사를 다섯 끼나 함께했다. 그런 조 장관은 김여정을 환송하며 “제가 평양을 가든 또 재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핵 이슈를 논의해야 할 역사적 정상회담을 위한 특사로선 정치적 무게감이 다소 부족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황인찬 hic@donga.com·한상준·김상운 기자}
“일없습네다,” 10일 청와대를 방문한 북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2시간 40여 분간의 면담과 오찬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다. 서로 간의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청와대 관계자들이 불편한 점은 없는지, 식사는 괜찮았는지 등을 묻자 김여정은 “일없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고 한다. “괜찮습니다”는 뜻으로 북한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김일성의 혈육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2박 3일 동안 행보는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큰 화제였다. 김여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정부 관계자들은 대부분 “보통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내내 밝은 표정을 유지했지만 수다스럽지는 않고, 해야 할 말만 딱딱 골라서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특사라는 중압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매우 절제되고 겸손한 언행을 보였다”고 말했다. 김여정은 연이은 회동과 식사 자리에서도 고개를 숙이는 일 없이 발언자를 쳐다보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10일 강릉에서 열린 조명균 통일부 장관 주재 만찬에 참석했던 최문순 강원도지사도 김여정에 대해 “굉장히 말수가 적고 침착했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정확한 워딩을 구사하는 스타일이었다”고 전했다.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도 “대통령님”이라고 호칭하며 깍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김여정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김정은이 특사로 왜 김여정을 보냈는지 이해가 갔다”고 말했다. 단순히 혈육이라서 보낸 것이 아니라 ‘평양 초청장’이라는 중대한 임무를 전달하고 우리 측 인사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인상을 심어줄 적임자라 특사로 보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나 공식적인 식사 자리에서 당황하는 기색이 없어 스포트라이트에 익숙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그렇다고 불필요한 거만을 떨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다만 서울과 평창, 강릉을 오가는 빡빡한 일정에 후반부에는 김여정도 다소 지친 기색을 보였다고 한다.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10일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응원에 참석했던 김여정은 방남 기간 내내 자정을 넘겨 숙소인 워커힐 호텔에 도착했다. 김여정은 2박 3일 동안 총 7개의 공식 일정을 소화했고, 네 차례 경강선 KTX를 탔다. 10일 청와대 접견에서 핸드백을 떨어뜨리는 등 다소 경직됐던 김여정은 일정 막바지인 11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만찬에서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활발한 성격에 붙임성 좋은 임 실장이 재킷을 벗으며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인데, 이 자리에서는 정말 편하게 한 끼 드시고 가시라”고 말했고 김여정도 가볍게 웃으며 “감사합니다”고 답했다. 이 자리에서는 김여정도 참석자들의 농담에 비교적 크게 웃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만찬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등 최고위층과의 식사보다는 덜 부담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며 “임무였던 김정은의 친서 전달도 무사히 마쳤고, 만찬 이후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만 보면 떠난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마지막 일정으로 문 대통령의 오른쪽 옆자리에서 공연을 지켜본 김여정은 개회식, 여자 아이스하키 경기 관람 때와는 다르게 문 대통령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김여정은 공연 관람 후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문 대통령이 김영남과 악수를 할 때도 손을 놓지 않았다. 이어 김여정은 김정숙 여사에게 “늘 건강하세요. 문 대통령과 꼭 평양을 찾아오세요”라고 했다. 한편 김여정이 일정 내내 유독 몸가짐을 조심하는 장면이 포착돼 임신설도 다시 제기됐다. 만찬에 참여한 김여정이 의자에 앉을 때 양손으로 아랫배를 살짝 감싸 안으며 천천히 앉았기 때문이다. 김여정은 지난해 10월 출산설이 돌기도 했으나 아직 결혼이나 출산 여부가 파악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한상준 alwaysj@donga.com·황인찬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북을 제안하고 친서(親書)를 통해 남북 관계의 개선을 촉구했다. 청와대는 방북 요청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김정은의 제안에 대한 답신을 전달할 대북특사 파견을 검토할 방침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1일 “김 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제안으로 ‘평창 모멘텀’이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사전에 여건을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상회담 등) 만나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방북을 추진한다는 얘기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전화 통화도 추진할 방침이다. 김정은의 특사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10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접견 및 오찬을 하고 “문 대통령을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 주실 것을 요청한다”는 김정은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서 성사시키자”고 화답하면서도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의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친필 사인이 담긴 친서에는 남북 화해와 협력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여정은 11일 문 대통령과 삼지연관현악단 공연을 관람한 뒤 김정숙 여사에게 “문 대통령과 꼭 평양을 찾아오세요”라고 했다. 직전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주재 만찬에서도 건배사로 “평양에서 반가운 분들을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하는 등 이날만 공개적으로 두 차례에 걸쳐 방북을 재차 요청했다. 김정은이 이번 김여정 특사 카드로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를 완화하고 숨통을 틔우기 위해 ‘풀 베팅’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이날 김정은 전용기를 타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대표단을 환송하며 “잠시 헤어지는 거고, 제가 평양을 가든 또 재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3차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선 ‘코피 터뜨리기’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부터 설득해야 한다. 1, 2차 정상회담과는 달리 워싱턴을 타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 실전 배치를 눈앞에 둔 북한과 선제타격을 불사하는 미국을 동시에 설득해야 하는 3차 남북 정상회담은 이전과 차원이 다른 외교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 기자}

예상대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진두지휘하는 평창 공세의 마지막은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초청이었다. 김정은의 특사이자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으로부터 ‘평양 초청장’을 받은 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며 사실상 수락 의사를 밝혔다. 다만 문 대통령이 “여건을 만들어”라는 전제를 단 것은 북한의 페이스대로 급하게 끌려가지만은 않겠다는 뜻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한 한국과 미국, 북한 3자 간의 어느 때보다 복잡한 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 거듭 “평양 오시라” 권유한 김여정 전날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만나 공개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김여정은 11일에도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재한 만찬에서 “평양에서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했던 김여정은 문 대통령 내외를 마지막으로 만나는 자리에서도 “꼭 평양을 찾아오시라”고 했다. 전날 접견과 오찬을 포함하면 2박 3일간의 방한 일정 중 최소 세 번 방북을 요청한 셈이다. “준비된 발언만 하는 편이었다”는 우리 측 관계자들의 김여정에 대한 공통된 평가를 고려하면 거듭된 초청 역시 의도된 메시지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문 대통령에게 “다시 만날 희망을 안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김씨 일가를 한국에 내려보낸 김정은이 3차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강하게 희망하고 있다는 뜻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청와대와 여권에서조차 “물밑 조율 없이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도, 수차례 정상회담 의지를 밝힌 것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전례 없이 강력한 제재에 직면한 김정은이 3차 정상회담을 통한 국면 전환을 위해 사실상 ‘다걸기’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 방남 설명자료’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북한의 의지가 매우 강하며 필요한 경우 전례 없는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文, 확답 없이 “미국과의 대화 적극 나서 달라” 방북 초청에 대해 10일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도 북-미 간 조기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김 대변인은 “미국과의 대화에 북쪽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당부했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는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 대화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을 북한에 전달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미 접촉 수준의 움직임이라도 있어야 그 다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신중한 태도는 2000,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도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어느 정도 성과가 담보돼야 할 수 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북측 인사 영접에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등 2007년 정상회담 실무진을 총출동시켰다. 초청장에 확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정상회담을 위한 긍정적 제스처를 보인 것이다. 통일부는 “기본적으로 남북관계와 비핵화 과정의 선순환을 추진하되 상황에 따라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미 대화를 견인하겠다”며 “비핵화 과정에서 일정한 진전이 이뤄지는 등 여건이 조성된다면 남북관계에서 본격적인 진전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3차 남북 정상회담 첫 고비는 4월 한미 연합훈련 북-미 대화와 함께 문 대통령의 평양행 여부를 결정할 또 다른 열쇠는 올림픽 직후인 4월부터 열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의 완전한 중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미 양국은 연합훈련을 4월 1일 시작하기로 잠정 합의한 상태다. 여기에는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북 지휘부 제거 작전이 포함된 키리졸브 훈련 일정도 있다. 정영태 북한연구소장은 “우리 측에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한미 연합훈련 중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참가 병력이나 전력을 줄이는 식으로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북 압박 기조를 이어가는 미국은 훈련 강행을 요구할 게 확실시되고 있어 한미 동맹의 균열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한상준 alwaysj@donga.com·손효주·홍정수 기자}

“반갑습니다.” 9일 오후 5시 34분, 문재인 대통령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처음으로 만났다. 현직 대통령이 북측 인사와 만난 것은 2009년 이명박 정부 이후 9년 만이다. 이날 낮 전용기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김 상임위원장은 특별 편성된 KTX를 이용해 강원 평창으로 이동했고, 평창 용평리조트에 마련된 리셉션장 포토월에 들어섰다. 포토월에 다가간 김 상임위원장은 기다리고 있던 문 대통령, 김정숙 여사와 악수를 했다. 문 대통령은 “어서 오십시오, 잘 오셨습니다”라고 말했고 김 여사도 웃으며 “김정숙입니다”라고 직접 소개했다.○ 헤드테이블에 앉은 김영남 환한 표정으로 김 상임위원장을 맞은 문 대통령과 달리 김 상임위원장은 비교적 담담한 모습이었다. 이어진 사진 촬영에서는 긴장한 듯 안경을 고쳐 쓰기도 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전 문 대통령이 주재한 리셉션에는 각국 정상급 인사 및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 상임위원장은 문 대통령 내외와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았다. 김 상임위원장은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 내외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사이에 앉았다. 예정대로라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도 같은 테이블에 앉을 예정이었지만 펜스 부통령은 만찬에 불참했다. 펜스 부통령은 잠시 리셉션장에 들렀지만 자리에 앉지 않았다. 자연히 청와대가 내심 기대했던 ‘북-미 접촉’은 이뤄지지 않았다. 김 상임위원장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등 다른 참석자들과는 악수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구테흐스 총장은 별도의 통역을 요청해 김 상임위원장과 대화를 나눴다.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음식이 아주 맛있었다”는 구테흐스 총장의 말에 김 상임위원장은 “조선 음식이 건강식이라 유럽 사람들에게 잘 맞는다”고 답했다. ○ 앞뒤로 앉은 南北 VIP 문 대통령은 개회식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도 만났다. 평창 올림픽스타디움 4층에 마련된 VIP석 정중앙인 A열 앞줄에 문 대통령 내외가 앉았고, 바로 뒷줄에 김 상임위원장과 김여정이 앉았다. A열에는 외국 정상급 인사와 배우자만 앉았는데, 김여정만 예외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VIP 좌석 결정권은 주최국인 우리 측에 있고, (김여정은) 정부 판단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입는 하얀색 롱패딩을 입은 문 대통령은 입장하며 김여정과 먼저 웃으며 악수를 했고, 이어 김 상임위원장과도 악수했다. 애국가를 부르는 동안 문 대통령 내외는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따라 불렀다. 김 상임위원장과 김여정은 자리에서 일어선 채 지켜봤다. 91번째 순서로 남북이 공동 입장할 때 일제히 일어선 문 대통령 내외와 김여정은 손을 흔들었고, 김 상임위원장은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박수를 보냈다. 문 대통령 내외는 뒷줄로 몸을 돌려 김 상임위원장, 김여정과 다시 한번 웃으며 각각 악수를 나눴다.○ 文 “평화 시작된 올림픽으로 기록되길” 문 대통령은 이날 여러 차례 평화를 강조했다. 미국의 공개적인 우려 표출에도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여로 촉발된 남북 해빙 무드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겠다는 의지다. 문 대통령은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당시 남북 단일팀과 평창에 참여하는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거론하며 “2.7g의 작은 공이 평화의 씨앗이 되었다”며 “2.7g의 탁구공이 27년 후 170g의 (아이스하키) 퍽으로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남과 북의 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서로를 돕는 모습은 세계인의 가슴에 평화의 큰 울림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스틱을 마주하며 파이팅을 외치는 선수들의 가슴에 휴전선은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평창 올림픽이 아니었다면 한자리에 있기가 어려웠을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찾은 펜스 부통령, 아베 총리, 김 상임위원장을 가리킨 것. 문 대통령은 또 “우리의 미래 세대가 오늘을 기억하고, ‘평화가 시작된 겨울올림픽’이라고 특별하게 기록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평창 올림픽을 시작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본격적인 대화 국면을 마련하겠다는 뜻이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미 많은 문제를 다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우리의 공동 목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8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접견한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 국면이 펼쳐지고 있지만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압박을 통한 북핵의 완전한 해결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압박을 거둘 생각이 없는 백악관과, 평창 올림픽 개막 전날 열병식에서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하며 핵을 놓지 않으려는 북한 사이에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과제가 문 대통령 앞에 놓인 셈이다.○ 펜스 “미국의 결의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이날 입국한 펜스 부통령은 기존의 강경한 대북 방침을 재확인했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이 영구적으로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날까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압박을 계속할 것”이라며 “미국의 이런 결의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선수단, 응원단에 ‘백두혈통’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까지 파견하며 대대적인 평창 공세에 나서고 있지만 백악관은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백악관이 북핵에 대해 “우리는 25년간 실패한 접근을 했다”고 밝힌 것처럼 북한의 일시적 대화 제스처에 손을 내밀었다가 북핵 문제 해결에 실패한 과거 미 행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 그러면서 펜스 부통령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펜스 부통령은 “한국에 온 것은 한미 양국 간 강력하면서도 절대 깨뜨릴 수 없는 결속력을 다시 한번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를 향해 ‘대화 국면에 함몰되지 말고 우리와 함께하자’는 사인을 보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펜스 대통령이 “지난 70년 가까이 양국은 함께 인도 태평양 지역의 평화, 번영, 안보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는 미국이 밀어붙이고 있는 ‘인도 태평양 전략’에 대해 “좀 더 합의가 필요하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 文 “북한을 비핵화 대화의 장으로” 이에 문 대통령은 평창 올림픽으로 시작된 대화 국면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로서는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여 북한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은 “북한이 지금 남북 대화에 나서는 모양새나 태도가 상당히 진지한 변화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펜스 부통령을 만나기 전 한정(韓正) 중국 상무위원을 만나 북-미 대화를 언급한 문 대통령은 정작 펜스 부통령과의 회동에서는 북-미 대화를 꺼내지 않았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직접적인 북-미 대화 제의를 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미국이 모르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이 모두발언에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을 반복하면서 대북 압박에 강한 의지를 보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 본인들이 생각하는 이야기들을 했다”며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대화로 이끌어내는 것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의 의지를 다 담은 것이다. 청와대는 펜스 부통령이 추가 대북 제재의 필요성을 언급했는지 여부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이날 회동이 “평행선을 달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펜스 부통령이 만찬에서 한국말로 “건배”라고 해 만찬장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펜스 부통령은 와인으로 건배만 하고 마시지는 않았다. ○ 북-미 접촉 이뤄질까 청와대는 김여정을 위시한 북한 대표단이 9일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는 만큼 자연스럽게 펜스 부통령과의 접촉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펜스 부통령은 방한 전 방문한 일본에서 “북한과의 회담을 요청한 적은 없지만, 접촉하게 된다면 ‘북한은 반드시 핵을 포기해야 하며 그때까지 경제적 외교적 압력이 계속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겠다”며 접촉 가능성을 닫지는 않았다.한상준 alwaysj@donga.com·문병기 기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포함한 북측 고위급 대표단은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일인 9일 오후 방남해 숨 가쁜 2박 3일을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보안 등을 이유로 서울에 숙소를 잡은 탓에 서울∼평창을 오가며 ‘광폭 행보’를 펼칠 것이 예상된다. 8일 청와대와 통일부에 따르면 고위급 대표단은 9일 오후 1시 반 전용기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천해성 차관이 영접한다. 이후 우리 당국의 협조를 받아 개막식이 열리는 평창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안전 문제를 고려해 헬기 이용은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6시 평창에서 열리는 개막식 리셉션에는 북측 고위급 대표단장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만 참석한다. 김여정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등이 참석하는 리셉션에 참석하지 않는 것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리셉션은 (국가)수반만 참석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부부장으로 차관급인 김여정은 직급상 참석이 어려운 것. 개막식엔 고위급 대표단 전체가 참석할 것이 예상된다. 여기서도 김여정과 김영남이 나란히 앉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올림픽 스타디움의) VIP 박스 배치는 국가수반이 (앞줄에) 앉고 총리급 등이 뒤로 앉는다. 김영남은 수반급이라 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등과 멀리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게다가 VIP석 뒤편에는 몸을 녹일 수 있는 별도의 라운지가 있어 음료와 다과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담소를 나눌 수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전 입장까지 감안하면 정상들은 최소 3시간 이상 VIP 박스 인근에 머물게 된다. 오다가다 서로 얼굴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과 김영남 위원장이 자연스럽게 만날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되는 개막식이 끝난 뒤 오후 10시가 넘은 늦은 시각에 대표단은 다시 서울로 향한다. 북한 대표단의 방남 하이라이트는 10일 낮 12시 청와대에서 열리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이다. 우리 대통령이 북측 인사와 청와대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은 3739일 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1월 16일 제1차 남북 총리회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김영일 북한 내각총리 일행에게 환송 오찬을 연 게 마지막이었다. 남북 간 대리 정상회담 성격의 이날 만남에서 김여정은 대북 제재 완화,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 중지 등 김정은의 의중을 전할 수도 있다. 별도의 메시지를 가져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위원장을 비롯한 이번 북측 대표단과 문 대통령의 오찬 명칭을 두고 청와대는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상회담이나 정상급회담이라고 붙이는 게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내부적으론) 지금까진 접견, 면담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북측은 문 대통령과의 오찬 이후로는 별다른 일정을 알려오지 않았다. 오찬 결과에 만족한다면 대표단은 11일 저녁 인천공항을 통해 돌아갈 때까지 더욱 활발한 대남 활동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황인찬 hic@donga.com·한상준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8일 한정(韓正)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을 만나 “남북 대화가 북-미 대화로 이어지도록 중국 정부가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남북 대화를 북-미 대화로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한 상무위원과 청와대에서 40분간 회동을 하고 “양국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공통의 이해와 접점을 찾아 나가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또 “평창 올림픽 이후에도 북한과의 대화가 지속되어 궁극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한중) 양국이 긴밀히 협력하자”고 말했다. 한 상무위원과의 회동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의 만찬 회동에 앞서 열렸다. 한 상무위원은 “한반도 정세의 열쇠는 미국과 북한이 쥐고 있다”며 “한중 양국은 미국과 북한이 직접 대화를 추진하도록 같은 목표를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삼척(三尺) 두께의 얼음이 어는 것은 하루의 추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중국 속담을 인용해 “정세가 복잡한 만큼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하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의 완전한 해제도 언급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고 운을 뗀 문 대통령은 “우리 기업들이 중국 진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성장의 온기가 우리 기업들에도 미칠 수 있도록 중국 정부가 각별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 중국 관광객들의 한국 방문 확대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의 요청에 한 상무위원은 “중국은 개별 기업의 이익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양국이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만큼 두 나라 정부가 함께 노력해 이 문제에서 진척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자”고 답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8일부터 10일까지 2박 3일간 한국에 머무르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방한 일정은 ‘북한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미국에 억류됐다가 숨진 오토 웜비어의 부친을 9일 열리는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초대한 펜스 부통령은 천안함 방문, 탈북자 간담회 등의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 백악관의 대북 강경 기조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이겠다는 의도다. 8일 오후 4시경 경기 오산공항으로 입국한 펜스 부통령은 방한 첫날은 청와대 일정으로 채웠다. 펜스 부통령은 9일 평창 개막식에 참석하기 전 탈북자들과 경기 평택 2함대사령부를 방문해 천안함을 둘러볼 예정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일시적인 남북 대화 국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압박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런 펜스 부통령의 일정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의 일정은 우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우려의 기류도 감지된다. 북한을 손님으로 초청한 상황에서 북한 인권을 전면으로 부각하는 것이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청와대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신중을 기하고 있다. 이날 열린 북한 열병식에 대해 청와대는 공식 코멘트를 내놓지 않았다. 만경봉호,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등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대상의 방남 문제도 청와대는 “통일부가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뒤로 물러나 있다. 하지만 야권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저자세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문재인 정권은 한미 갈등을 유발시키며 우리를 향해서는 위장 평화공세를 펴려는 북한의 간교한 체제 마케팅 전략에 결코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뉴욕 방문 때 동행한 공무원이 성희롱을 저질렀다가 징계를 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7일 청와대에 따르면 방문 당시 국방부에서 청와대로 파견된 A 씨는 뉴욕에서 현지에서 채용된 여성 인턴 B 씨와 대화를 나누던 중 부적절한 말을 했다. 이에 B 씨는 즉각 상부에 보고했고, 청와대는 A 씨를 곧바로 귀국 조치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A 씨는 언어적 성희롱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A 씨에게 관련 상황에 대해 조사했고, 이후 파견 공무원인 A 씨에 대해 부서 복귀 조치를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A 씨는 군 부사관 출신으로, 뉴욕 방문을 위해 일시적으로 파견된 공무원이었다”며 “문제가 불거지면서 곧바로 귀국 조치 후 강도 높은 진상 조사를 벌였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A 씨에 대해 원대복귀 조치를 취했고, 국방부는 A 씨에 대해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국방부가 징계를 내린 건 청와대는 파견기관이어서 징계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은 이 부분이 공개되어 2차 피해를 받길 원하지 않았고,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 당시 (사건을) 전후해 공식 브리핑을 하지 않은 것”이라며 “(사건 발생 이후) 사후조치가 미흡했거나 가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감춘 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는 당혹스러운 분위기도 감지된다. 사회적으로 ‘미투(#MeToo)’ 운동이 번지고 있는 상황인 데다 문 대통령이 성추행에 엄중한 대처를 지시했기 때문이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이용섭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사진)이 6월 광주시장 선거 출마를 위해 7일 사표를 냈다. 문재인 대통령의 1호 업무지시로 발족한 일자리위원회는 출범 9개월여 만에 다시 부위원장을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 부위원장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낙후된 고향 광주의 발전과 시민들의 꿈을 이루는 일에 저의 모든 것을 바치기 위해 부위원장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차기 광주시장 여론조사에서 상위권을 유지해온 이 부위원장의 출마 가능성은 정치권에서 꾸준히 거론됐었다. 하지만 선거법상 사퇴시한인 3월 15일보다 한 달 이상 빠른 사퇴에 청와대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 참모들은 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청년일자리점검회의에서 “청년실업 문제는 국가 재난 수준인데 정부 각 부처에 (문제 해결을 위한 내) 의지가 제대로 전달됐는지 의문”이라며 대책 마련을 지시한 지 보름여 만에 이 부위원장이 사표를 낸 것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위원회 위원장을 직접 맡을 정도로 위원회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질책한 것은 일자리 로드맵을 사실상 다시 짜라는 것이었는데 정작 이 일을 주도해야 할 장관급 부위원장이 물러나면 후속 조치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고위 관계자도 “아직 후임 논의는 없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이 부위원장이 13일부터 시작되는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을 위해 사표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호남에서 광주시장 선거가 가장 치열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은 올해 초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당원 명부 불법 유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차기 광주시장 후보군으로는 민주당 내에서만 윤장현 현 시장, 강기정 전 의원, 민형배 광산구청장 등 6, 7명의 인사가 거론되고 있다. 호남 주도권을 놓고 민주당과 경쟁하고 있는 국민의당은 이 부위원장의 사퇴에 대해 “국민 일자리 만들기라는 국민의 명령은 안중에 없고 결국 본인 일자리 만들기에 다걸기(올인)했다”고 비판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지시한 대통령 자체 개헌안은 3월 중순경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개헌안 작업을 맡은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13일 국민개헌자문특별위원회(가칭)를 구성해 권력구조 개편안까지 담은 개헌안을 다음 달 문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정해구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은 7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정 위원장은 “현실적으로 국회 개헌안이 여의치 않은 것 같아서 대통령이 개헌안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책기획위 산하에 30여 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국민개헌자문특별위원회를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5일 문 대통령은 정책기획위에 “국회와 협의할 대통령의 개헌안을 준비해 달라”고 지시했다. 13일 출범하는 국민개헌특위는 총강·기본권 분과, 자치분권 분과, 정부형태 분과 등 3개 분과와 국민 의견 수렴을 위한 국민참여본부 등 4개 조직으로 구성된다. 정 위원장은 “각 분과에는 헌법 전문가 등 전문성을 갖춘 인원으로 구성하고, 국민참여본부는 세대·지역 대표성 등을 고려해 인원을 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회의원 등 여야 인사와 청와대 참모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정 위원장은 “국회에서 (개헌안을) 논의하는 중인데 여야를 위원회에 포함시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국민개헌특위는 19일 여론 수렴을 위한 홈페이지를 열고, 2월 말부터 쟁점 사항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정 위원장은 “시간이 많지 않아 온라인 중심으로 여론 수렴을 할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30여 년 만의 개헌을 위한 여론 수렴을 온라인 중심으로 하는 것에 대한 반론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국민개헌특위는 이후 조문 작업을 거쳐 3월 중순경 문 대통령에게 개헌안을 보고할 계획이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개헌의 최대 쟁점인 권력구조 개편을 다룰 정부형태 분과의 논의 내용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권력구조 개편은 여야 간극이 크기 때문에 대통령 발의안에서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자문안이니까 (권력구조 개편까지) 다 마련하고, 정부 형태를 뺄지는 문 대통령이 판단할 문제”라며 “문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이야기한 바 있어 그것을 존중하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의논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개헌특위가 개헌안 헌법 전문에 ‘촛불 민심’을 담을지도 관건이다. 정 위원장은 모두 발언에서 “촛불 시위는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고 있고, 개헌은 촛불 민심의 요구를 마지막으로 완성하는 것”이라며 “국민의 뜻과 촛불 민심이 반영된 개헌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에 촛불 민심을 넣는 것을 고려하느냐”는 질문에는 “논의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만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문에 5·18민주화운동과 촛불 혁명을 담은 자체 개정안을 공개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의 ‘개헌 드라이브’에 정책기획위가 재빠르게 구체적인 일정까지 발표하면서 개헌 논란은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청와대와 국민개헌특위는 개헌 필요성이 높다는 여론을 통해 6월 개헌 국민투표에 반대하는 야권을 자연스럽게 압박하겠다는 포석이다. 이에 따라 당장 개헌 여론 수렴이 시작되는 19일부터 개헌을 밀어붙이려는 여권과 이에 반대하는 야권의 여론전이 한층 더 달아오르게 됐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부부장검사(44·사법연수원 30기)는 6일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에 출석하면서 검찰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 “성별이 아닌 갑을, 상하, 권력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임 부부장검사는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45·33기)의 성추행 피해 폭로에 대해 “서 검사의 인터뷰가 나오자 내부적으로 다 알던 일을 마치 몰랐다는 듯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이런 일(진상 조사)을 하는 것이 부끄럽고 안타깝다”며 검찰 조직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조사단은 임 부부장검사를 상대로 2010년 법무부 감찰관실 관계자로부터 서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52·20기)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경위 등을 확인했다. 조사단은 서 검사와 임 부부장검사에 대한 조사 결과 등을 분석한 뒤 가해자로 지목된 안 전 검사장을 조만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이날 대검찰청 월례간부회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성폭력)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시대 변화나 국민적 요구에 맞춰 검찰 문제를 차근차근 개선해 나가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서 검사의 폭로로 드러난 검찰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 “검찰 최악의 위기라 생각한다”고 질타했다. 이 총리는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성적 비위 행위를 고발하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우리 사회에서도 시작됐다. 더구나 (성폭력 문제가) 검사의 상하관계에서 빚어졌다는 고발이 검찰 내부에서 시작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리는 “검찰의 명예, 아니 검찰의 존재 자체를 걸고 진실을 규명해 응분의 조치를 취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전주영 aimhigh@donga.com·한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