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112

추천

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책의 향기]바흐의 발자취 순례… 소년∼장년시절 모습 생생

    독일 바로크 음악의 완성자로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사진)도 넓은 세상을 주유하며 살지는 않았다. 대부분 옛 동독 중부에서 남부에 속하는 지역에서 교회에 속한 음악가로 비교적 소박한 삶을 살았다. 영국을 오가며 국제인으로 살았던 헨델과 대조된다. 이 책은 그가 출생한 아이제나흐에서 묻힌 라이프치히까지, 베토벤이 ‘시냇물(Bach)이라기보다 바다(Meer)다’라고 평가한 대(大)바흐의 궤적을 좇은 여행서다. 바흐의 작품세계를 정밀하게 설명하거나 그의 정신세계에 새로운 빛을 비추는 데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차근차근 저자의 순례를 따라가다 보면 시대의 특징에 비춰진 대작곡가의 진솔한 면모를 만나게 된다.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 지속된 아른슈타트 교회 오르가니스트 시절의 모습은 의외를 넘어 코믹하다. 파곳 연주가의 실력을 힐난하다 주먹다짐에 이르고, 코랄 전주곡이 길다는 교회 관리들과 갈등을 빚다 몇 소절만 치고 끝내 회중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그의 삐딱한 면모는 탄생 300주년을 맞아 이 도시에 세워진 조형물에 남았다. 주인공인 바흐 말고도 페이지를 수놓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그를 경모하고 후원한 레오폴트 대공을 비롯해 바흐 시대의 인물들이 있고, 언뜻 무뚝뚝해 보이지만 순례자를 알아보고 안내를 자청하는 현지인들의 순수함이 있다. 저자의 바흐 입문 시절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던 음반점 주인의 추억, 그동안 만난 음반 고수들의 일화도 책갈피 넘기는 손길을 즐겁게 만든다. 순례길에서 마주치는 리스트와 괴테 등 거장들도 책의 무게감을 더한다. 책의 제목에는 불만이 남는다. 바흐의 음악 세계는 기하학적이기까지 한 논리적인 완결미가 돋보인다. 정서적인 측면을 찾아본다면 개인적이기보다는 교회적이고 영적인 면에서 두드러진다. 바흐가 아내와 사별할 무렵 쓴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1번 1악장에서 착안한 제목이지만, 그의 전 궤적을 돌아보는 책의 제목으로는 아무래도 적합하지 않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4-10-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말러-슈트라우스에 영감을 준 ‘절반의 음악가’ 니체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음악과 철학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사진)만큼 음악과 밀접한 관계였던 철학자는 없다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그는 음악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았고, 스스로 음악을 썼으며, 또한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니체와 바그너 사이 애증의 관계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니체는 ‘음악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서문에서 ‘바그너는 나의 길을 앞서 나간 고상한 투사’라고 찬양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 비극에서 질서와 도취의 조화를 발견했는데 바그너가 그 길을 열어주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훗날 니체는 바그너를 혐오하고 비판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매혹돼 “이 작품은 독일의 우울한 분위기를 단번에 날려버리고 강건한 태양의 지중해 분위기 속으로 데려다준다”고 찬양했습니다. 바그너의 음악을 음습한 것, 우울한 것, 건강하지 못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니체는 10대 때 음악에 심취해 작곡에 몰두했습니다. 9세에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고, 피아노곡과 가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관람한 뒤에는 여기서 영감을 받은 자작곡 ‘만프레드 명상곡’을 지휘자 한스 폰 뷜로에게 보냈지만 뷜로의 평은 끔찍했습니다. 이후 니체는 작곡의 뜻을 접고 철학에 전념하기로 결정합니다. 니체의 정신적 궤적은 이후의 작곡가들에게 이어졌습니다. 말러는 교향곡 3번 4악장에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가져온 가사를 이용했습니다. 이후 말러는 니체의 사상에 대해 얼마간 거리를 두게 되지만, 니체는 그의 전 생애를 통틀어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음악사에 미친 니체의 가장 커다란 영향으로는 말러의 벗이기도 했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96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슈트라우스는 이 곡을 통해 철학보다는 서사와 문학에 가까운 니체의 도전적, 영웅적 정신을 치밀한 음의 시로 형상화했습니다. 3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임헌정 지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슈트라우스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연주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10-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슈베르트의 같은 교향곡, 음반마다 번호 왜 다를까

    슈베르트(사진)의 교향곡 C장조 ‘더 그레이트’의 새로운 음반이 있는지 찾아봅니다. 9번 교향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떤 음반에는 교향곡 8번 또는 7번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곡보다 앞서는 ‘미완성 교향곡’도 8번 또는 7번으로 서로 다르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슈베르트는 생전에 교향곡을 모두 여섯 곡 발표했습니다. 그가 죽고 10년 만인 1838년, 작곡가 슈만이 슈베르트의 ‘새로운’ C장조 악보를 처음 발견했습니다. 이 곡은 슈베르트의 일곱 번째 교향곡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865년, 슈베르트의 교향곡 또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두 악장만 완성된, ‘미완성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작품이죠. 쓰인 순서로 보자면 C장조 교향곡보다 앞선 작품이었지만 ‘7번’이 이미 있었으므로 ‘8번’ 교향곡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 뒤 새로운 논란거리가 떠올랐습니다. 슈베르트에게는 스케치 상태로 남아있는 E장조 교향곡도 있었습니다. 이 곡에 몇 번을 부여할 것인지가 문제였습니다. “쓴 순서에 따라 스케치뿐인 E장조 교향곡을 7번, B단조 ‘미완성’ 교향곡을 8번, C장조 교향곡을 9번으로 부른다”는 합의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C장조 교향곡에 대해 처음 받은 번호인 7번을 고집하는 음악학자와 음반사, 오케스트라가 있습니다. 음악학자 도이치가 정리한 목록에 따라 이 곡을 8번으로 부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미완성 교향곡’ 역시 7번 또는 8번으로 표기가 엇갈립니다. 비슷한 혼선이 체코의 드보르자크에게도 있습니다. 드보르자크의 작품은 출판사들이 임의의 순서로 출판했고 여러 작품을 누락시켰습니다. 이 때문에 20세기 중반까지도 각각 1, 2, 3, 4, 5번으로 불렸던 교향곡들이 오늘날엔 음악학자들의 합의에 따라 6, 7, 5, 8, 9번으로 불립니다. 유명한 ‘신세계에서’ 교향곡도 ‘5번’에서 ‘9번’으로 번호를 바꾸었습니다. 서울시향은 24일 토마스 체에트마이어 지휘로 슈베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인 ‘더 그레이트’를 연주합니다. 밝고 즐거운 곡이지만 이 곡이 겪은 오랜 망각과 혼선을 상기해보면 예전과는 다르게 들릴 듯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10-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커피와 함께 유럽에 전해진 ‘터키 행진곡’

    지난달 27일 헝가리의 국립 세체니 도서관에서 모차르트가 쓴 피아노소나타 11번 악보가 발견됐습니다. ‘터키 행진곡’이라는 제목으로 친숙한 작품입니다. 대작곡가들의 자필 악보가 해묵은 종이 뭉치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입니다만, 또 다른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왜 ‘터키’ 행진곡일까요? 모차르트뿐 아니라 슈베르트와 베토벤도 터키 행진곡을 썼습니다. 모두 이 반복되는 리듬 패턴이 특징입니다. 터키가 무대인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탈출’도 이 리듬으로 화려하게 막을 내립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슈베르트, 베토벤, 모차르트 모두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활동한 음악가들입니다. 이유가 있을 듯합니다. 1683년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군대가 빈 바로 앞까지 진격했습니다. 두 달간의 공방 끝에 오스트리아군은 가까스로 터키군을 몰아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터키 문화가 유럽인에게 전해졌습니다. 우선, 터키군은 오스트리아인들이 본 적 없는 ‘콩’이 들어 있는 자루를 곳곳에 버려두고 떠났습니다. 동방 무역의 경험이 있던 한 상인이 이 콩을 볶아 음료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이것이 유럽에 커피가 전해진 첫 경로입니다. 한편 두 달간의 대치 동안 오스트리아 군인들은 터키 군대 음악에도 주목했고, 큰북과 트라이앵글, 심벌즈가 곁들여진 흥겨운 리듬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음악가 출신의 군인들은 터키 군대가 물러간 뒤 터키의 음악을 재현해 보고자 시도했습니다. 이들이 연주한 터키풍 음악은 다음 세기에도 살아남아 빈의 고전 낭만주의 대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터키인들이 빈의 ‘터키 행진곡’을 듣고 터키음악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터키를 비롯한 이슬람권 여러 지역이 단음계의 7음(솔)을 반음 올리는 특징을 갖고 있고, 여기 흥겨운 리듬이 동반되어야 강한 ‘이슬람 느낌’이 들게 되죠. 개그를 곁들인 콘서트로 알려진 피아니스트 주형기와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세이 이구데스만은 종종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을 터키식 음계로 바꿔 연주하고, 유튜브에도 영상을 올렸습니다. 독자들도 찾아서 들어보시면 흥미를 느끼실 듯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10-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차이콥스키 ‘10월’이 유난히 쓸쓸한 까닭은?

    ‘정원이 슬퍼한다/꽃잎 속으로 비가 차갑게 스며든다/고요히 그 마지막을 향해/여름은 몸을 떤다(…)’ 헤르만 헤세의 시에,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곡을 붙인 ‘9월’을 듣고 있습니다. 가곡집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중 두 번째 곡입니다. 슈트라우스가 숨을 거둔 것은 이 곡을 쓴 1949년의 9월 8일이었습니다. 어떤 예감이 반영된 가사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월요일 전국에 내린 비를 기점으로 올가을도 그 속도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이달도 새로운 달과 임무를 교대하는군요. 이번엔 차이콥스키 ‘사계절’을 꺼내봅니다. 열두 곡으로 된 이 작품은 달마다 표제가 붙어있는 피아노곡집입니다. 10월의 제목은 ‘가을의 노래’입니다. ‘가을, 초라한 정원으로 모든 것들이 떨어져 내린다/노란 잎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레프 톨스토이의 사촌인 서정시인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시에 곡을 붙였습니다. 단 한 달 차이인데 느낌이 크게 다르죠? 헤세가 묘사한 독일의 9월은 여름이 겨우 그 마지막을 알리고 있지만 톨스토이가 그려낸 러시아의 10월은 노란 낙엽으로 가득합니다. 우리의 11월 느낌입니다. 북쪽 나라인 러시아에 추위가 유독 빨리 오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러시아가 공산혁명 이후에야 서방과 같은 그레고리력을 쓰게 된 것도 이유입니다. 차이콥스키 시절에 사용된 율리우스력은 그레고리력보다 13일 늦습니다. 지금의 10월 14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0월이 왔다’고 했던 거죠. 톨스토이와 차이콥스키가 그려낸 가을이 유독 쓸쓸한 것을 이해할 만 하죠? 이제 올해도 단 세 달이 남았군요. 쓸쓸해하고 외로워하기만 할 게 아니라 이 해의 결실을 풍요롭게 수확할 준비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요. 헤세보다 두 살 위로 종종 함께 입에 오르내리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가을날’에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라고 했던가요. 부연하자면 ‘가을날’은 생존 작곡가인 폴란드의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가 2005년 발표한 교향곡 8번 일부의 가사로 쓰였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9-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가장 어려운 피아노曲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세상에서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피아노곡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이라며?” 음악기자가 된 직후 자주 들은 얘기입니다. 실존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이 주인공인 음악영화 ‘샤인’ 때문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아버지가 ‘세상 최고의 곡’으로 뇌리에 각인시킨 작품이자 ‘가장 기교적으로 어려운 작품’인 이 곡을 성공적으로 연주하지만 신경쇠약에 빠지고 맙니다. 영화가 묘사한 대로 이 작품은 ‘가장 어려운 피아노곡’일까요. 모든 음악작품은 나름대로 어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기교적인 부분만 얘기해도 건반을 넓게 짚는 데 어려움이 큰 피아니스트가 있을 것이고, 빠른 연타를 치기 힘든 연주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만큼 ‘가장 어려운 곡’을 규정하기는 어렵겠죠. 그렇지만 이 작품이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을 공황상태에 빠뜨린 것은 사실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당대 유명 피아니스트인 요제프 호프만에게 이 곡을 헌정했지만, 정작 호프만은 “이 곡은 내게 맞지 않아”라며 한 번도 대중 앞에서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이 곡을 자주 연주한 게리 그래프먼도 “내가 이 협주곡을 어릴 때 접하지 않았다면 연주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곡을 익힐 때는 어려서 겁이 없었죠”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왜 그토록 치기 어렵게 썼을까요. 라흐마니노프가 곡을 만든 1909년은 영웅주의적 낭만주의 연주가에 대한 숭배가 절정을 이룬 시기였습니다. 라흐마니노프 자신이 ‘일세를 풍미’한 피아노 대가였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한 손으로 ‘도’에서 다음 옥타브 ‘솔’까지 무려 12도를 짚어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곡의 매력이 물론 ‘어렵다’는 데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곡 전체가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 차 있으며, 온갖 어려운 기교가 출현하는 마지막 악장의 클라이맥스는 금관의 포르테와 함께 하늘로 몸이 둥실 뜨는 것 같은 환상을 제공합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양 팔을 펼치고 있는 영화 ‘샤인’ 포스터의 이미지와도 잘 맞는 듯합니다. 이 가슴이 시원해지는 곡은 요즘처럼 하늘이 높을 때 더욱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오늘, 23일은 1909년 라흐마니노프가 악보를 완성한 이 곡의 ‘생일’입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9-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모차르트도 즐겨쓴 ‘알베르티 베이스’

    휴일,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데 피아노 소리가 들립니다. 낯익은 멜로디는 ‘아기공룡 둘리’. 왼손의 ‘도솔미솔…’ 하는 음형이 탱글탱글합니다. 아마도 피아노를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초등학생이거나 유치원생이 치고 있겠죠. 화음을 ‘도솔미솔’ ‘레솔파솔’ 식으로 쪼개서 왼손 음형을 만드는 수법을 음악사전에서는 ‘알베르티 베이스’라고 합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도메니코 알베르티(1710∼1740)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그러나 알베르티 이전에도 이런 음형을 사용한 악보는 많습니다. 그가 이 수법의 발명자는 아니라는 거죠. 피아노를 배우는 어린이들은 보통 이탈리아 작곡가 무치오 클레멘티나 덴마크 작곡가 프리드리히 쿨라우의 소나티네(작은 소나타)를 통해 알베르티 베이스와 친숙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 동요나 해외 동요에 알베르티 베이스를 붙인 악보도 쉽게 볼 수 있죠. 그렇지만 음악을 ‘치기’보다 ‘듣기’ 좋아하는 팬들에게 알베르티 베이스 하면 누구보다도 모차르트입니다. ‘도미솔 시도레도…’ 선율로 진행되는 그의 피아노 소나타 16번 첫 부분은 알베르티 베이스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가장 사랑받는 21번 C장조 소나타에도 유명한 알베르티 베이스 주제가 나옵니다. ‘솔미레도 솔미레도 라파미레레…’ 하는 1악장 두 번째 주제입니다. 1990년대 가요에도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1번, 그 음악을 내 귓가에 속삭여 주며, 아침햇살 눈부심에 나를 깨워줄 그런 연인이 내게 있으면’ 하는 가사가 있었지만, 그런 화창하고도 달콤한 느낌이 그야말로 눈부시게 느껴지도록 하는 선율이죠. 23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가 지휘하는 스위스 이탈리안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카롤리네 되르게가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1번을 연주합니다. 같은 날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도 피아니스트 강우성이 협연하는 서울바로크합주단이 이 곡을 무대에 올립니다. 청량한 왼손의 알베르티 베이스를 느끼며, 아름다운 음악작품도 오랜 시대에 걸쳐 축적된 여러 기법의 산물이란 점을 함께 느껴보았으면 좋겠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9-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숙적’ 푸치니-말러가 아꼈던 후배 작곡가

    세상 어디나 그렇듯 음악가들의 사회에도 매끄럽지 못한 사이들이 있었습니다. 19∼20세기 전환기 세계 오페라계를 대표했던 이탈리아의 자코모 푸치니와 이 시대 빈 국립오페라 감독으로 재직했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도 그랬습니다. 두 사람이 언성을 높여 싸우거나 고소전을 펼친 일은 없습니다. 말러는 함부르크 오페라극장 감독 시절 푸치니의 첫 오페라인 ‘빌리’를 지휘했습니다. 그러나 말러는 이후 푸치니에 대해 “화성학도 모르는 자가 관현악법을 쓴다”고 비웃었습니다. 푸치니가 말러를 공격한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푸치니와 자주 다투면서도 평생 돕는 관계였던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말러와 사이가 나빴습니다. 말러는 빈 국립오페라 감독을 사임한 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지휘자로 초청되었는데, 2년 뒤 토스카니니에게 밀려나면서 뉴욕필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토스카니니는 말러의 음악에 혐오를 표시했으며, 당연히 지휘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푸치니의 대리전을 펼쳤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러와 푸치니가 공통적으로 사랑했던 후배 작곡가가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인인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입니다. 말러는 코른골트가 열두 살 때 쓴 칸타타를 듣고 매료돼 음악계 곳곳에 그를 소개하고 후원했습니다. 푸치니도 그를 높이 평가하고 후원했으며 자기 작품이 받을 반응에 대해 코른골트와 의논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코른골트는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 후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 영화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지휘자 존 모체리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인이 말러의 음악을 가깝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말러의 음악적 스타일이 코른골트에게 전해졌고 영화를 통해 사람들과 친해졌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말러와 푸치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준재 코른골트. 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에 나오는 ‘마리에타의 노래’와 ‘피에로의 춤 노래’를 오늘(2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 영국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라 베네데티가 연주합니다. 1월에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스베틀린 루세브 악장이 서울시향과 코른골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바도 있으니 올해는 코른골트가 자주 서울 무대에 오른 해로 기록되겠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9-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슈베르트 미완성교향곡에 동요 ‘옹달샘’ 선율이…

    작곡가 프리드리히 질허(1789∼1860·사진)의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로렐라이’로 유명한 분이죠. 오늘(26일)은 그가 1860년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그는 독일인의 삶 속에 매우 친근합니다. 독일 전역에서 불려지는 민요들을 조사해 악보집으로 편찬했기 때문입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으로 시작하는 ‘옹달샘’도 잘 아시죠? 이 노래도 질허가 1836년 처음 악보에 담았습니다. ‘누가 와서 먹나요’의 ‘솔시레파미레도’라는 친근한 멜로디는 처음 듣는 순간 쉽게 잊히지 않는 마력을 갖고 있습니다. 독일어 제목은 ‘저 아래 들판은(Drunten im Unterland)’입니다. “저 아래 들판(저지대)은 좋은 곳이야. 높은(고지대) 언덕에는 자두가, 아래 들판에는 포도가 자라지만 나는 들판이 좋다네.” 재미있는 일은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 2악장의 주선율에도 ‘솔시레파미레도’ 음형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일곱 개나 되는 음표가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은 우연으로 보기엔 공교롭습니다. 어느 선율이 먼저 나왔을까요? 미완성교향곡은 1822년 작곡되었으니 사람들이 이 선율의 일부를 따서 합창으로 부르다가 질허가 악보로 만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다지 간단치 않습니다. 미완성 교향곡은 서랍 속에서 잠들어 있다가 1865년에야 발견되었거든요. 그렇다면 반대로, 사람들이 부르는 합창을 듣고 슈베르트가 영감을 받은 것일까요? 질허의 악보가 나온 뒤 8년 만인 1844년, 독일 민요조사가인 루트비히 에르크는 “독일 전역에서 이 노래를 안다”고 언급했습니다. 독일 통일 이전인 당시에는 오스트리아도 독일의 일부로 취급되던 때였습니다. 당시의 통신 출판환경으로 볼 때, 1844년 독일 전역에서 아는 노래라면 20여 년 전인 미완성 교향곡 작곡 당시에도 슈베르트가 이 노래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 슈베르트가 민요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담아 이 선율을 교향곡에 넣은 것일까요? 슈베르트도 저세상으로 가고 200년 가까이 흐른 오늘, 결론을 내리기는 힘듭니다. 다만 추정과 상상을 해보는 재미가 있을 뿐입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8-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랴도프가 속필가였다면…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없었을것

    어디든 일을 쉽게 빨리 하는 사람과 마냥 질질 끄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작업 속도와 결과물의 품질은 별개 문제죠. 일을 빨리 하면서도 잘하면 가장 좋겠습니다만…. 음악사상의 ‘속필가’로는 흔히 모차르트와 로시니를 꼽습니다. 반면 마냥 여유를 부린 스타일로는 푸치니를 들곤 하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작업을 미루다가 ‘이런 대본으로는 작곡 못하겠어’라며 남 탓을 하는 탓에 악보출판업자 겸 공연기획자였던 줄리오 리코르디가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작곡가의 느린 작업이 음악사의 방향을 바꾼 일도 있습니다. 1908년, ‘러시아 발레단’ 대표로 당대의 명흥행사였던 세르게이 댜길레프는 러시아 민화를 소재로 한 발레 ‘불새’ 작곡을 작곡가 아나톨리 랴도프(1855∼1914·사진)에게 의뢰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랴도프가 워낙 작업을 질질 끄는 스타일이라 조바심을 내고 있었죠. 그러던 차에 우연히 26세의 젊은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불꽃’을 듣고 한순간에 매료되었습니다. 댜길레프는 바로 계획을 바꿔 ‘불새’의 작곡을 스트라빈스키에게 맡겼습니다. 당시 랴도프에게 공식적으로 작곡 의뢰를 한 단계는 아니었다는 반론도 있지만, 스트라빈스키가 없었다면 작업은 랴도프에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만약 랴도프가 속필가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스트라빈스키는 출세작이자 그의 ‘3대 발레’ 첫 작품인 ‘불새’ 작곡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고, ‘페트루슈카’ ‘봄의 제전’으로 이어지는 후속 작업도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타고난 재능으로 어떻게든 후세에 이름을 알렸겠지만, 그 위상은 오늘날 아는 것과 달랐을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스트라빈스키가 랴도프의 느리면서 꼼꼼한 작업 스타일을 높게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랴도프가 ‘엄청난 정확성과 세부에 대한 섬세함’을 갖고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이달 28일은 랴도프의 서거 100주년 기념일이지만 고향인 러시아 밖에서는 그가 생전 남겼던 성과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듯합니다. 랴도프의 ‘기억할 만한 느긋함’을 회상해 보자는 뜻에서 한 번 적어보았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8-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파리넬리 스승 포르포라가 카톡했었다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하다 보면 뜻밖의 사람들끼리 알고 지내는 데 놀랄 때가 많습니다. ‘어, 저 사람은 업무상 아는 분인데 내 고등학교 동창과 어떻게 친하지?’라는 식입니다. 여섯 단계만 거치면 모든 인류가 아는 사이라는 ‘링크’ 이론도 있지만, 세상이 새삼 좁게 느껴지곤 합니다. 음악가들의 생애를 살펴보아도 여러 대가의 일화와 관련해 톡톡 튀어나오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아마데우스’로 유명한 살리에리도 오래전부터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위인전에 명(名)음악교사로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었습니다. 니콜라 포르포라(1686∼1768·사진)도 그런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영화 ‘파리넬리’를 본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주인공 파리넬리의 스승으로 나오니까요. 그는 명성악교사이자 오페라 작곡가였습니다. 영화가 묘사하듯 그와 헨델의 라이벌 관계는 유명했습니다. 런던의 사교계가 헨델 오페라의 맹위에 대항하기 위해 그를 초청하기도 했죠. 파리넬리가 스승 포르포라 앞에서 헨델의 아리아를 부르는 영화 장면은 허구이지만, 포르포라는 헨델과도 잘 알고 지냈음이 분명합니다. 그의 삶에는 또 한 사람의 큰 인물이 등장합니다. ‘교향곡과 현악사중주의 아버지’인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입니다. 하이든은 10대에 포르포라의 비서로 채용됩니다. 훗날 하이든은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딱 잘라 말하면서도 “포르포라 덕에 작곡과 이탈리아어를 아주 잘 배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한 사람이 또 있습니다. 포르포라는 1725년부터 베네치아에 머물며 성악교사로 활동했는데 보육원 겸 음악학교인 ‘피에타’에서도 가르쳤습니다. ‘붉은 머리 신부’ 비발디가 피에타 음악활동의 책임을 맡고 있던 시기입니다. 연약하고 온화했다는 비발디와 ‘좋은 사람 아닌’ 포르포라가 서로 잘 지냈는지 궁금해집니다. 만약 포르포라의 시대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카카오톡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포르포라와 헨델, 하이든, 비발디, 파리넬리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때로 ‘뒷담화’도 하지 않았을까요. 포르포라의 328번째 생일(8월 17일)을 기다리며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

    • 2014-08-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슈베르트 ‘송어’ 5중주곡에 귀뚜라미 소리가…

    깊은 밤, 헤드폰을 쓰고 슈베르트 ‘송어’ 5중주곡을 CD 플레이어에 걸어놓습니다. 4악장. 가곡 ‘송어’의 주제가 흐르고 나서 다섯 연주자가 숨을 죽이는 순간, 또록또록 소리가 귀에 들어옵니다. 작지만 분명한 귀뚜라미 소리입니다. ‘……?’ 헤드폰을 벗어봅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연주회장 마이크에 잡힌 귀뚜라미 소리였습니다. 연주는 1967년 미국 말버러 음악축제에서 녹음된 것입니다. 루돌프 제르킨이 피아노를 치고 바이올리니스트 하이메 라레도, 첼리스트 레슬리 파르나스 등 명인들이 연주에 참여했습니다. 많은 여름 음악축제가 그렇듯이 말버러 음악축제도 풀밭이 있는 노천에서 연주를 감상합니다. 자연의 뛰어난 음악가인 귀뚜라미들도 아름다운 화음에 동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송어’ 5중주곡은 여름 휴가철을 맞아 듣기에 제격인 작품입니다. 1819년 여름,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산촌인 슈타이어에 휴가를 갔습니다. 지역 유지 파움가르트너의 초청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파움가르트너는 슈베르트에게 “선생님의 가곡 ‘송어’를 좋아한다”며 “저와 친구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이 멜로디로 실내악 작품을 써 달라”고 부탁했고 슈베르트는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그 여름, 맑은 개울이 흐르는 산촌에는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송어’가 울려 퍼졌을 것입니다. 마침 저도 2년 전 여름 무주에서 휴가를 보내다가 계곡 음식점에서 송어 음식점을 발견했습니다. 주문해 ‘잘 먹겠습니다’ 하고 맛을 보았습니다. 맛이 좋던데요. 휴가철에 어울리는 음악으로는 지난번 ‘말러 교향곡 1번과 닮은 부분이 있다’고 소개한, 브람스의 교향곡 2번도 소개할 만합니다. 브람스가 1877년 여름 오스트리아 남부의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휴양지 푀르차하에 머물며 쓴 이 작품에는 그곳의 아름다운 자연이 흘러넘칩니다. 천천히 붉게 물드는 저녁 하늘, 산의 청신한 공기, 유명한 ‘자장가’의 일부까지 담겨 있습니다. 집중하며 듣기보다는 볼륨을 중간 정도만 올리고서 책을 읽거나 경치를 감상하며 듣기 좋은 작품이죠. 모두들 이번 여름 행복한 휴가를 보내셨거나 보내시길 기원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8-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10년 차이 같은날 별세한 두 ‘지휘 거장’

    지휘의 역사에서 모든 시기가 특별하고 위대하지만 1970년대 초반은 ‘젊은이들의 시대’였다는 데서 각별했습니다. 케르테스 이슈트반,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앙드레 프레빈(이상 1929년생), 로린 마젤과 카를로스 클라이버(이상 1930년생),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년생), 오자와 세이지(1935년생), 주빈 메타(1936년생) 같은 30대 중반∼40대 초반의 젊은 지휘자들이 새로운 음반들을 앞다투어 쏟아놓았습니다. 당시 레코드 잡지의 지면에서 느껴지던 펄펄 뛰는 생동감이 눈에 선합니다. 이달 13일 타계한 로린 마젤을 생각하며 그 세대의 황혼을 바라봅니다. 1973년 젊은 나이에 사고로 타계한 케르테스에 이어 2004년 클라이버, 그리고 올해 아바도와 마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특히 클라이버와 마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꼭 10년 차이로 타계한 점이 공교롭습니다. 클라이버는 2004년 7월 1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은 생전 여러 가지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마젤이 여러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을 거치는 동안 클라이버는 큰 악단들을 객원지휘하며 지냈습니다. 마젤은 엄청난 분량의 레코딩을 쏟아놓았지만 클라이버가 남긴 음반은 적습니다. 그래도 유연한 프레이징(분절법)과 악기 간의 섬세한 밸런스, 천부적인 ‘음악적 반사신경’으로 품격 높은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두 사람이 공통됩니다. 특히 두 사람 모두 강철 같은 주관이 드러나는 개성 넘치는 연주를 자주 선보였습니다. 2004년 내한한 마젤에게 “당신의 연주가 주관주의적이라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때 마젤은 “지휘 자체가 주관주의적 작업이다. 작곡자가 만든 악보의 결과에 최종 책임을 지는 사람이 지휘자”라고 답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약진하는 젊은 지휘자를 여럿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스타보 두다멜(1981년생), 야니크 네제세갱(1975년생), 블라디미르 유롭스키(1972년생)를 그 대표주자로 꼽을 만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활약상에는 이들이 갓난아기였던 시절의 젊은 지휘자들만큼 ‘펄떡거리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오늘날 음반시장이 새로운 연주를 활발히 소개하지 못하고, 옛 거장의 연주를 새롭게 포장해 내놓는 데 더 열심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7-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차이콥스키 ‘비창’ - 말러교향곡 9번 줄거리, 왜 같을까

    “엄마가 돌아가신 뒤, 여주인공은 새 가족으로부터 고통을 받지만 구원의 남성이 나타난다….” 아는 얘기인가요? 하지만 여기까지로는 ‘콩쥐팥쥐’인지 ‘신데렐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두 얘기가 동일한 서사(敍事)구조, 즉 줄거리를 갖고 있으니까요. 언젠가 이 코너에서 언급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같은 서사구조로 분석됩니다. 단테 ‘신곡’에 나오는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얘기도 한데 묶입니다. 여성이 참사랑을 찾았지만 제도 속에서 금지된 사랑이었고, 결국 희생을 당하게 되죠. 문학작품 속에서는 이처럼 같은 줄거리를 가진 작품이 많습니다. 그런데 음악작품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예를 들어 이런 경우입니다. 1악장, 갈피를 잡지 못하는 공허의 표현으로 시작한다. 고통과 갈등의 순간이 지나간 뒤 슬픔과 평온이 교차하는 분위기로 끝난다. 2악장, 즐거웠던 과거를 회상하는 듯하지만 그리움이 배어 있는 춤곡. 3악장, 빠르고 파괴적인 주제가 제시되어 극적으로 고조되고 끝난다. 4악장, 한숨 쉬는 듯한 하행(下行)음계 속에 끝없는 슬픔으로 빠져든다. 사라지듯이 전곡이 끝난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1893년)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 비창교향곡이로군’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말러의 교향곡 9번(1909년)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곡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같은 동기나 주제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두 곡의 줄거리는 같은 청사진을 사용한 것처럼 똑같습니다. 말러가 차이콥스키를 모방한 것일까요? 그는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을 여러 차례 지휘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곡을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습니다. 두 곡이 유사한지에 대해 언급한 기록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두 곡의 유사성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말러가 ‘비창’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줄거리 또는 서사구조만큼은 높이 평가해 자기만의 버전으로 형상화했을 수도 있겠죠.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임헌정 지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말러의 교향곡 9번을 연주합니다. ‘비창’ 교향곡을 좋아하지만 말러는 생소한 음악 팬이라면, 이 곡을 들으며 두 곡의 줄거리와 닮은 점을 음미해볼 만하겠습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7-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두 걸작 잉태시킨 보로딘 오페라 ‘이고리 공’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네요. 음악월간지의 의뢰로 리뷰를 쓰기 위해 알렉산드르 보로딘의 오페라 ‘이고리 공’을 보러 갔습니다. 어이쿠, 한 막을 생략했는데도 열두 시가 다 되어 끝났습니다. ‘러시아인들의 스케일이란 참…’, 이 오페라가 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당하고’ 나니 혀가 내둘렸습니다. 이고리 공은 12세기 러시아 제후 이고리 스뱌토슬라비치의 중앙아시아 원정기를 오페라로 만든 작품입니다. 이 작품엔 19세기 중앙아시아를 병합하고 더 남쪽을 넘보던 러시아인들의 확장의식이 담겼죠. 그래서겠지만 선율과 관현악에 중앙아시아 초원의 향기가 물씬 배어납니다. 특히 작품 속 ‘폴로베츠인의 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음악사상 다른 두 걸작을 탄생시키는 마중물이기도 했습니다. 보로딘은 이 오페라를 쓰기 위해 수많은 재료를 모아두었지만 오페라에 다 넣지 못하고 남은 재료들로 교향곡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교향곡 2번입니다. 그가 이고리 공을 끝맺지 못하고 1887년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작품을 완성하는 작업은 친구 작곡가인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맡게 되었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고리 공을 마무리하다가 자신도 남쪽 아시아 세계를 소재로 작품을 하나 쓰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천일야화’를 소재로 쓴 작품이 교향모음곡 ‘셰에라자드’(1888)입니다. 보로딘이 ‘이고리 공’을 소재로 오페라를 쓰려던 계획이 결과적으로 세 개의 우뚝한 작품 패키지를 형성하게 된 셈입니다. 스위스 로망드 교향악단이 1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갖는 내한연주에서 일본의 신예 지휘자인 야마다 가즈키 지휘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를 연주합니다. 계절감에 잘 맞는 선곡입니다. 더운 여름날 저녁이 오면, 해가 지고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는 서남아시아 초원의 환상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이럴 때 셰에라자드나 폴로베츠인의 춤, 보로딘의 교향곡 2번은 쉽게 집어 들게 되는 선택이죠. 보로딘의 관현악곡인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나 현악사중주 2번도 들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7-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마녀가 축제 여는 ‘성 요한 이브’의 축혼행진곡

    어젯밤 좋은 꿈 꾸셨습니까? 오늘(24일)은 유럽에서 성경의 세례 요한을 기념하는 ‘성 요한의 날’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날 하루 전 밤(23일·성 요한 이브)부터 온갖 기이한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죠. 이날을 소재로 한 음악 작품도 몇 곡 꼽아볼 수 있습니다. 멘델스존의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자주 연주되는 음악 중 하나입니다. 결혼식을 마친 신랑 신부가 의기양양하게 걸어 나갈 때 연주되는 음악이 이 작품 속의 ‘축혼 행진곡’이죠. 셰익스피어의 극 ‘한여름 밤의 꿈’ 공연 때 효과를 돋우기 위해 쓴 음악입니다. 6월 23일 밤에서 다음 날 새벽까지, 고대 그리스를 배경으로 청춘남녀가 요정들의 작전에 따라 헤매다 사랑을 이루는 유쾌한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한편 신부가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입장할 때 쓰는 음악은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결혼 행진곡’이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 이 두 음악을 나란히 듣는 것은 어찌 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바그너는 유대인인 멘델스존의 음악을 혐오해 ‘음악에 있어서의 유대성’이라는 글을 남겼으며, 바그너를 숭모했던 히틀러도 이 글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나치는 멘델스존의 음악을 금지시킨 뒤 ‘카르미나 부라나’의 작곡가로 알려진 카를 오르프에게 ‘한여름 밤의 꿈’을 위해 새로운 음악을 쓰도록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멘델스존의 음악은 유쾌한 작품이지만, 성 요한 이브를 무대로 한 괴기스러운 음악도 있습니다. 러시아 작곡가 무소륵스키의 ‘민둥산의 하룻밤’입니다. 성 요한 이브에 악마와 마녀들이 산에 모여 펼치는 파티를 그려냅니다. 애니메이션 ‘판타지아’에서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가 등장하기 직전 나오는 음악이기도 하죠. 이 작품에서 보듯 슬라브권에서는 대체로 성 요한 이브에 악마와 마녀들의 축제가 벌어지는 것으로 여겼습니다만, 서유럽에서 악마와 마녀들의 축제는 이보다 이른 4월 30일 밤 열리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를 ‘발푸르기스의 밤’이라고 부릅니다.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의 마지막 악장과 구노 오페라 ‘파우스트’에 발푸르기스의 밤을 묘사한 장면이 나옵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6-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신세계’ 작곡 드보르자크는 철도狂

    기술문명이 발전한 현대사회에서는 과거보다 다양하고 깊은 마니아 활동이 가능합니다. 직업보다 취미에 열정을 쏟는 사람도 많죠. 마니아건, 일본어로 ‘오타쿠’라고 부르건, 관련 정보를 쉽고 깊게 얻을 수 있는 오늘날이기에 더욱 빠져들기 쉬운 것 같습니다. 대작곡가 중에서도 취미광의 선구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체코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사진)가 그 대표 격입니다. 그는 ‘철도 마니아’의 선조였습니다. 기관차 모델, 노선 정보, 시간표를 꼼꼼히 기록하며 많은 열정을 쏟았습니다. 시골 냄새 풍기는 ‘보헤미아 전원풍’ 작곡가로 알려진 그가 현대 문명의 이기에 매료된 계기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침 일찍 프라하 중앙역에 나가 역무원들을 깍듯이 ‘모시며’ 온갖 정보를 듣고 메모했다고 합니다. 그는 51세 때인 1892년 미국 뉴욕 국민음악원 원장으로 초빙됐습니다. 처음엔 뉴욕의 역무원들을 몰라 답답해했지만, 이윽고 프라하보다 기관차 종류도, 노선도 많은 미국의 기차 시스템에 매우 기뻐했다고 하죠. 음악학자들은 그의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 4악장 초반의 박진감 넘치는 현악 파트 음형이 기관차의 출발을 묘사한다고 분석합니다. 흔히 이 음형은 영화 ‘조스’의 상어 출현 장면 효과음악과 닮았다고들 하지만 제가 들어도 기차 출발과 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실 ‘신세계에서’보다는 세사르 프랑크의 교향곡 d단조 3악장에 ‘조스’와 더 닮은 음형이 나옵니다. 사족을 붙이자면, 프랑스 출신 작곡가 오네게르는 1923년 기차 출발을 묘사한 관현악곡 ‘퍼시픽 231’을 발표했습니다. 어린아이라도 ‘기차다’라고 외칠 만큼 묘사가 정밀합니다. 취미광 작곡가로는 드보르자크와 비슷한 시대 활동한 교향곡 작곡가 브루크너도 꼽을 수 있습니다. 작은 소품을 여러 개 사 모으고 진열하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에 단순한 패턴의 반복이 많은 것이 수집욕과 연관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19일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임헌정 예술감독 지휘로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를 연주합니다. 박진감 넘치는 4악장 시작 부분에서 ‘기차 출발’ 또는 ‘조스’를 느껴보면 어떨까요.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6-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천사의 눈물 똑똑 떨어지는듯

    음악의 특징 중에는 당연한 듯하지만 살펴보면 신비로운 속성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옥타브 차이’의 속성입니다. 화음을 따질 때, 옥타브만 다른 두 소리는 ‘같은’ 음으로 간주됩니다. 예를 들어 도-미-솔 순으로 쌓인 화음의 아래 도를 한 옥타브 올려 미-솔-도로 쳐도 같은 화음입니다. 그렇지만 선율(멜로디)에서는 옥타브가 다르면 다른 소리로 간주됩니다. 예컨대, 라디오에서 나오는 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너무 높다고 중간에 한 옥타브를 내리면 ‘음치’ 소리를 면하기 힘들죠.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의 두 번째 악장을 오디오에 걸어봅니다. 나지막하면서 서글픈 듯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옵니다. 그런데 이 선율, 침착한 듯한 인상과 달리 실제로는 이어지는 음표끼리 거의 한 옥타브씩 널을 뜁니다. 악보 68번째 마디에서는 무려 19도(열여덟 음 차이)나 도약합니다. 세 옥타브 가까이 뛰는 셈이죠. 만약 이 차이가 너무 크다고 한 옥타브를 줄여놓으면 어떨까요. 전혀 다른 멜로디가 됩니다. 이 협주곡은 초여름 하늘이 흐리고 빗방울이 떨어질 때 들으면 제격입니다. 아래위로 마구 도약하는 선율을 잔잔한 음의 시로 표현해낸 것은 역시 천재 모차르트의 실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특히 위에 언급한 ‘19도 도약’은 마치 천사의 눈에 고인 눈물이 똑 떨어지듯 아름답습니다. 이 곡은 남다른 일화도 갖고 있습니다. 옛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어느 날 라디오에서 마리아 유디나(사진)가 솔로를 맡은 이 곡을 들었습니다. 깊은 감동을 받은 그는 “이 곡의 레코드를 가져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라디오에서 나온 연주는 음반이 아닌 실황연주였습니다. 결국 한밤중에 악단과 지휘자, 솔리스트인 유디나가 스튜디오에 소집되었고, 아침에 스탈린의 머리맡으로 레코드가 배달됐습니다. 스탈린은 죽을 때까지 이 음반을 사랑했지만 신심 깊은 정교회 신자였던 유디나는 최후까지 스탈린을 경멸했다고 합니다. 10일 LG아트센터에서는 피아니스트 조재혁과 정민 지휘 디토 오케스트라가 이 곡,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을 협연합니다. 모차르트의 곡 중 한층 밝은 교향곡 29번 A장조도 이날 연주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6-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푸치니가 오페라 ‘마리 앙투아네트’ 완성했다면 모차르트가 청혼하는 장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쇤브룬 궁전에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여러 황제가 이곳에서 여름을 지냈지만 그중에서도 16명의 자녀를 낳고 제국을 통치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죠. 이곳에서 저는 엉뚱하게도 옆 나라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를 떠올렸습니다. 푸치니는 일생 딱 열 차례만 오페라를 발표했습니다. 대략 4년에 한 번꼴이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오페라 프로덕션의 4분의 1을 점하는 초인기 작곡가로서는 지나칠 정도의 과작(寡作)이죠. 한 곡을 발표한 뒤에는 주로 다음 작품의 소재를 정하는 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의 매니저사인 카사 리코르디조차 골머리를 싸맬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저작권까지 사들여 놓고는 포기한 작품도 여럿이었습니다. 이렇게 포기한 작품 중에 ‘마리 앙투아네트’(사진)가 있었습니다. 대본이 완성되기 전에 포기했으니 전체의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만,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가 자애로운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함께 살다가 프랑스의 루이 16세에게 시집가서 단두대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질 예정이었겠죠. 특히 궁금한 점은, 작품이 완성됐다면 푸치니가 ‘모차르트 장면’을 어떻게 그렸을까 하는 것입니다. 1762년, 여섯 살의 신동 음악가 모차르트는 쇤브룬 궁전에서 어전(御前) 연주회를 갖습니다. 전해지기로는 이 천방지축 꼬마가 궁전에서 넘어지자 그보다 두 달 일찍 태어난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가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 순간 모차르트는 외쳤다고 합니다. “공주님, 나랑 결혼해 주시겠어요?” 푸치니라면 그 장면을 어떻게 그렸을까요. 한 세기 전의 대가 모차르트의 음악 스타일을 인용하지 않았을까요. 푸치니가 오페라로 만들려다 포기한 소재로는 ‘카사노바’ ‘어린이 십자군’,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와일드의 ‘피렌체 비극’, 하웁트만의 ‘한넬레의 승천’도 있습니다. 한넬레의 승천 장면은 푸치니가 완성한 ‘수녀 안젤리카’와 비슷할 것 같고, ‘올리버 트위스트’ 초반부의 떠들썩한 모습은 ‘투란도트’ 1막과 닮지 않았을까 싶네요. 좋아하는 작곡가의 생애를 읽는 것은 이런 상상의 재미도 줍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6-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살리에리 “내가 질투의 화신이라고?”

    오스트리아 수도이자 ‘세계 음악의 수도’로 불리는 빈에 왔습니다. 18세기 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라는 ‘빈 고전파 세 거장’을 품었던 멋진 도시죠. 그런데 세 사람이 서로 각별히 친했던 건 아닙니다. 모여서 ‘고전파 선언’ 같은 걸 했던 것도 아닙니다. 당시 빈에는 이들 외에도 높이 인정받는 음악가가 여럿 있었습니다. 한 예로 이탈리아인인 안토니오를 들 수가 있습니다. 안토니오는 하이든과 친했으며 그가 걸작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초연할 때 악단 한가운데서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안토니오는 특히 음악교사로 명성이 높았는데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가 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베토벤이 유명해진 뒤에는 그의 피아노협주곡 1, 2번 초연 무대에서 지휘를 맡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슈베르트 전기에서 ‘은혜로운’ 이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모차르트와의 관계는 약간 묘합니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종종 안토니오에 대한 ‘뒷담화’를 펼쳤습니다. 그렇지만 공적으로 두 사람은 깍듯이 존중하는 사이였습니다. 모차르트가 젊은 나이에 죽은 뒤 부인 콘스탄체는 막내아들 프란츠 크사버를 안토니오에게 보내서 음악교육을 받도록 했고 그는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역량을 인정받는 음악가로 성장했습니다. 안토니오에 대해 들어보신 일이 있습니까? 그는 바로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사진)입니다. 푸시킨이 1831년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희곡을 발표했고 영국 극작가 피터 섀퍼가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1979년 희곡 ‘아마데우스’를 발표했으며, 5년 뒤 이 희곡을 밀로시 포르만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살리에리라는 이름은 ‘천재가 될 수 없는 범재’ ‘질투에 빠진 살인자’와 동의어가 됐습니다. 증거도 없이 말이죠. 빈 거리에는 곳곳마다 모차르트의 기념물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황제 요제프 2세의 총애를 받았던 살리에리의 자취는 ‘살리에리 피자집’ 정도를 찾아볼 수 있을 뿐입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다른 세상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빈에서유윤종 gustav@donga.com}

    • 2014-05-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