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욱

이기욱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구독 56

추천

박물관에 익숙해질 때쯤 다시 경찰서로 돌아왔습니다. 유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71wook@donga.com

취재분야

2025-11-18~2025-12-18
미국/북미30%
국제일반22%
국제정세15%
인사일반10%
유럽/EU7%
아시아5%
일본5%
국제정치2%
러시아2%
중국2%
  • 백제 폄하 논란 ‘일본서기’에 무령왕 탄생 비밀 풀 열쇠가?

    일본서기(書紀)에 따르면 461년 4월 백제 개로왕은 동생 곤지에게 일본에 갈 것을 명했다. 이에 곤지는 형의 임신한 부인을 주면 가겠노라고 답한다. 개로왕은 이를 허락하며 자신의 부인이 해산하면 즉시 본국으로 돌려보낼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일본 열도에서 태어난 아이는 훗날 백제 25대왕 무령왕이 됐다. 한때 국내 학계는 곤지의 이 같은 비상식적 요구를 전하는 일본서기 기록을 백제 폄하를 위한 조작이라고 봤다. 특히 일본서기는 5세기 이전 사건들의 발생연도를 실제보다 약 120년 앞당겨 기록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료 속 진실은 무엇일까. 올해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아 관련 전시와 신간이 잇따르고 있다. 이 중 정재윤 공주대 교수(사학)가 최근 펴낸 신간 ‘무령왕, 신화에서 역사로’(푸른역사)는 일본서기를 중심으로 무령왕의 탄생을 추적하고 있다. 일본서기는 무령왕이 개로왕 혹은 곤지의 아들이라는 기록을 담고 있다. 반면 삼국사기는 무령왕을 동성왕의 둘째 아들로 본다. 이에 대해 국내 고대사학계는 무령왕이 개로왕 혹은 곤지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1971년 무령왕릉 발굴을 계기로 무령왕의 나이가 확인됐는데, 이에 따르면 동성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를 당시인 479년에 무령왕은 이미 18세였기 때문이다. 무령왕이 동성왕의 아들이라는 삼국사기 기록이 잘못된 게 밝혀진 것. 정 교수는 신간에서 일본서기의 백제신찬 기록에 근거해 무령왕을 곤지의 아들로 보고 있다. 이한상 대전대 교수는 “무령왕의 친부로 보이는 곤지는 왕위 계승을 하지 못했다.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 대외적으로는 자신을 개로왕의 아들로 내세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간은 무령왕의 뿌리와 더불어 그의 탄생지도 추적한다. 일본서기는 ‘각라(各羅)의 바다 가운데 주도(主嶋)가 있는데, 왕이 태어난 섬이라 백제인들이 주도라고 부른다’는 백제신찬 내용을 전하고 있다. 무령왕이 현재의 일본 규슈 사가현 가카라시마(加唐島)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국내 학계 다수설도 이곳을 무령왕 탄생지로 본다. 이 섬에는 무령왕이 태어난 동굴로 전해지는 오비야무라(オビヤ浦)가 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각라의 바다(海)를 일본서기 편찬자가 섬으로 오인했다”며 다수설에 의문을 제기했다. 각라는 섬이 띠처럼 둘러진 모양을 뜻하는 말로, 섬이 많은 후쿠오카현 이토시마((멱,사)島) 지역이 무령왕 탄생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그의 주장. 이토시마는 1889년 일본 행정구역 개편 전까지 무령왕 이름인 사마와 유사한 시마(志摩)로 불렸다. 경남 김해에서 쓰시마섬, 이키(壹岐)섬을 거쳐 후쿠오카로 향한 곤지의 항로도 감안했다. 일본서기를 신간의 중심 사료로 사용하고 있는 데 대해 정 교수는 “무령왕 탄생 기록을 전하는 사서는 일본서기뿐이다. 백제가 멸망한 지 얼마 안 된 720년에 완성된 일본서기는 당시 모습을 비교적 생생히 담고 있다”며 “일부 기록이 왜곡된 사실을 유념하면서 적확한 정보를 취하면 백제의 본모습에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0-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3주년 맞은 ‘유퀴즈’… 다시 길거리로? “모든 국민이 한 번씩 출연하는 그날까지”

    “모든 국민이 한 번씩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되는 게 목표예요.” 최근 방송 3주년을 맞은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유퀴즈)의 공동 연출자 김민석 PD(35)와 박근형 PD(31)는 팬데믹 이전의 길거리 인터뷰가 그립다며 이렇게 말했다. 각각 KBS ‘1박2일’과 tvN ‘코미디 빅리그’ 조연출 출신인 김 PD와 박 PD를 15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유퀴즈는 당초 MC 유재석과 조세호가 길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을 즉석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다 방역수칙 준수를 위해 지난해 3월부터 세트장 인터뷰로 바뀌었다. 초반의 형식은 일반 시민들의 평범한 삶 속에 녹아 있는 감동을 짚어내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사전 섭외가 없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자연스레 유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PD는 “사람 관찰을 좋아해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해 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며 “시민들이 MC를 반기고 MC들이 편안하게 응대하면서 이뤄지는 대화를 시청자들이 좋게 봐준 것 같다”고 말했다. 세트장 촬영으로 바뀐 후에는 방탄소년단, 아이유 등 유명 연예인은 물론 다양한 주제에 부합하는 인물들이 출연해 4∼6%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출연자 섭외 후 촬영까지 한 달 넘게 출연자 배경 조사와 사전 인터뷰를 진행해 출연진의 내면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박 PD는 “비연예인은 작가들이 촬영 전까지 끊임없이 출연자와 교감한다. 연예인 출연자의 경우 이들의 필모그래피를 모두 공부한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촬영팀(다큐팀)의 역할도 크다. 이들은 출연자가 MC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살아가는 현장을 찾아가 이를 세세히 담는다. 김 PD는 “본촬영에서 부족한 부분을 추가로 담아 깊이와 다채로움을 더하려는 의도에서 다큐팀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청자를 의도적으로 웃기거나 울리기보다 출연자를 있는 그대로 담고자 고민한다”며 “출연자가 긴장해 눈을 껌뻑껌뻑하거나 물을 자주 마시는 모습도 모두 담는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현재의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예전 길거리 인터뷰 형식에 대한 미련을 거두지 않았다. 박 PD는 “어르신들이 갑자기 다가와 MC들에게 말을 거는 돌발 상황이 더해준 생동감이 그립다”고 했다. 김 PD도 “우연한 만남이 주는 행복감은 거리에서만 느낄 수 있다”며 “상황이 좋아지면 거리 촬영을 생각하겠지만 지금 형식을 좋아하는 분도 있기에 절충점을 찾겠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0-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3주년 맞이한 ‘유퀴즈’…“전 국민이 한 번씩 출연하는 프로그램 되고파”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유퀴즈)이 최근 3주년을 맞이했다. 유퀴즈는 유재석(49)과 조세호(39) 두 명의 MC가 시민들을 인터뷰해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전달한다. 평범한 이야기 속 감동을 주는 요소를 콕 집어 전해준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 아이유 등 유명인도 출연하는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이 됐다. 유퀴즈는 ‘1박2일’ 조연출이었던 김민석 PD(35)와 ‘코미디빅리그’ 조연출 출신 박근형 PD(31)가 공동으로 연출한다. 두 사람을 15일 화상으로 만났다. 2018년 8월 방송을 시작한 유퀴즈는 두 MC가 휴대용 책상과 의자를 들고 다니며 길거리를 세트장 삼아 그곳에서 만난 시민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전 섭외 작업이 전혀 없음에도 시민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꺼냈다. 박 PD는 “사람 관찰을 좋아해 길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며 “시민들이 MC들을 반기고, MC들이 편안하게 응대하면서 이뤄지는 대화를 시청자들께서 좋게 봐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출연진의 내면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것도 유퀴즈가 가진 매력이다. 팬데믹으로 길거리 촬영이 어려워진 지난해 3월부터 세트장 안에서 특정인물 4, 5명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포맷이 변경한 게 효과를 발휘했다. 출연자를 선정할 수 있게 되면서 유퀴즈가 전달하는 이야기는 더욱 깊어졌다. 섭외 이후 촬영이 이뤄지는 한 달여의 기간동안 출연자 배경 조사와 사전 인터뷰가 추가됐기 때문. 박 PD는 “비연예인이면 작가들이 촬영 전까지 끊임없이 출연자와 교감하고, 연예인은 그들의 필모그래피를 전부 공부한다”고 말했다. 특히 출연자의 내면을 자세히 보여주는 데에는 시즌2부터 합류한 다큐멘터리 촬영팀(다큐팀)의 역할이 있었다. 다큐팀은 ‘다큐 3일’을 제작한 경험을 바탕으로 출연자가 MC들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담고, 그들이 살아가는 현장에 찾아가 그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촬영한다. 김 PD는 “본 촬영에서 부족한 부분을 담아 깊이와 다채로움을 가져가려는 의도에서 다큐팀을 도입했다”며 “이 과정이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는 한 출연자의 말을 들으며 프로그램의 의미를 느꼈다”고 전했다. 연예인, 비연예인 상관없이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시청자들이 그것에 공감한 결과 유퀴즈는 3년이 넘는 시간을 이어올 수 있었다. 김 PD는 “시청자를 의도적으로 웃기거나 울리기보다 출연자를 있는 그대로 담고자 고민한다”며 “출연자가 긴장해서 눈을 껌뻑껌뻑하거나 물을 자주 먹는 모습 등도 담는다”고 말했다. 제작진도 3년간 매회 여러 출연자의 인생을 간접경험하며 변화를 겪었다. 김 PD는 “KBS 생생정보통의 ‘이피디가 간다’ 코너에서 카메라 감독, 리포터 역할을 혼자 다 하는 이지윤 PD를 인터뷰하며 나는 저만큼 열정을 다 하고 있나 반성했다”고 말했다. 박 PD는 눈물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들에게 감정을 이입하면서 감정이 풍부해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장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던 포맷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박 PD는 “어르신들이 갑자기 다가와 MC들에게 말을 거는 돌발 상황도 있지만 그것이 프로그램에 더해줬던 생동감이 그립다”고 말했다. 김 PD도 “현장에서 이뤄지는 우연한 만남과 그에 따른 행복감은 거리에서만 느낄 수 있다”며 “상황이 좋아지면 거리 촬영을 생각해보겠지만, 지금의 포맷을 좋아해주시는 분도 있기 때문에 절충점을 찾겠다”고 전했다. “장수 예능이 나오기 쉽지 않은 만큼 한 주 한 주 최선을 다할게요.”(김 PD) “재석이 형, 세호 형이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님처럼 됐으면 좋겠어요. 전 국민이 한 번씩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 목표에요.”(박 PD)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0-19
    • 좋아요
    • 코멘트
  • [책의 향기]우리는 문학을 읽으며 어른이 된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선생님한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며 교과서 밑에 숨긴 소설책을 몰래 읽어본 적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대학 입시 경쟁과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잠시라도 잊고자 했던 몸부림이었다.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자신이 열일곱 살에 읽었던 책 25권을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읽어보며 그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심리학과 철학 등의 관점에서 전달한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주인공 제제는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온갖 말썽을 부리며 풀다가 뽀르뚜가 아저씨를 만나 치유받고, 어른이 돼 다른 아이들을 돕는다. 개인적 치유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보며 저자는 한 걸음씩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열린 마음이 보물이라고 전한다. 왕자와 사랑에 빠진 ‘인어공주’는 왕자를 칼로 찔러야만 본인이 살 수 있음에도 물거품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 온갖 사랑의 산전수전을 겪은 뒤 이를 다시 본 저자는 인어공주의 선택에서 고통을 감수하는 인간의 용기를 찾아낸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소크라테스를 보며 저자는 자신의 쓸모를 고민하게 하는 이 질문이 결국 생각이 한 곳에 고여 썩어가는 걸 방지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저자는 문학을 통해 타인의 삶을 인지할 때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전한다. 타인의 이야기가 주는 깨달음이 나다움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읽었던 책들에 다시금 눈길이 간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0-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벼슬 버린 조선 문장가, 억만년 이어갈 나라 꿈꾸다

    금 간 방 안 벽에 손가락 하나 끼워 넣기 힘든 작은 틈이 있다. 틈새로 손가락을 들이밀자 갑자기 몸 전체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넓은 들판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한 시간여를 걸었을까, 앞에 큰 시냇가가 나타난다. 작은 거룻배에 올라타 사공이 이끄는 데로 가자 대저택이 나온다. 저택 뒤로는 깎아지른 절벽과 폭포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앞에 늘어선 1000여 호의 민가 사이로 강이 흐른다. 저택 서쪽에 호수와 누각이 있고 동쪽에는 시냇물을 따라 꽃과 버들이 심어져 있다. 풍수명당에 자리 잡은 별세계다. 조선 후기 문장가 홍길주(1786∼1841)가 1829년에 쓴 ‘숙수념(孰遂念)’의 한 장면이다. 박무영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신간 ‘누가 이 생각을 이루어주랴’(태학사)에서 중국 사마천과 겨룰 만하다는 당대 평가를 받은 홍길주의 숙수념을 한글로 처음 완역했다. 홍길주는 명문가 풍산 홍씨 후손으로 22세에 과거에 합격했다. 하지만 순조 때 외척으로 득세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에 회의를 느껴 벼슬을 버렸다. 그는 숙수념에서 자신이 꿈꾼 이상적 마을 공동체를 그렸다. 시장이 돼 가상의 도시를 짓는 ‘심시티’ 게임의 조선판인 셈이다. 그는 자신의 호를 딴 주인공 ‘항해자’를 저택 주인으로 등장시켜 자신의 이상향을 설명하고 있다. 홍길주는 이상향을 세세하게 설계했다. 저택 안 사당을 시작으로 안채와 바깥채, 서재를 차례로 묘사한다. 건물을 지은 내력을 적은 상량문(上樑文)에 ‘성인이 나라를 다스릴 땐 집안 다스림부터 시작하셨고, 군자가 집을 지을 때는 반드시 내외분별을 먼저 하네’라는 문구를 넣었다. 집안이 바로 서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통해 외척세력이 국정을 좌우하는 현실을 은유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저택 밖에는 주민을 위한 병원과 구휼소가 있다. 병원 건물기(建物記)에는 의사를 많이 뽑고 질병을 연구하는 환경을 만들어 모든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어 “이런 방법으로 천하와 국가를 운영한다면 어찌 억만 년만 지속되겠는가”라고 써 병든 백성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조정을 비판한다. 홍길주는 자신의 이상향에서 능력에 따라 인재를 쓰는 관직제도를 구상했다. 그는 ‘문벌에 상관없이 능력과 인품이 탁월한 자가 있으면 특채한다’ ‘선대의 음덕만으로 관직에 보임된 경우 9품에 제수하고 중상 이상의 고과를 기록하지 못하면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한다’는 규칙을 제정했다. 세도가 자제가 요직을 차지해 과거제가 유명무실해진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또 ‘제사음식은 반드시 간단하게 해야 한다’ ‘갓은 불편하니 복건으로 사당에 들어가도 된다’ 등의 규율을 통해 당대의 허례허식을 경계했다. 하지만 조선판 심시티는 결국 가상의 세계에 불과했다. 홍길주는 책에서 “숙수념은 내 생각일 뿐 실제가 없다”고 한탄했다. 박 교수는 “홍길주의 포부가 담긴 숙수념은 조선 후기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지식인의 슬픔과 자의식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0-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daebak’ 등 26개 한국어, 올해 옥스퍼드 사전 등재… 45년치보다 많아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 한국에서 유래된 영어 표제어 26개가 지난달 새로 등재됐다. 1884년 출간돼 11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영어권에서 사용돼 온 단어 60만여 개를 수록하고 있는 OED는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사전이다. 우리말이 처음 등재된 것은 1976년. ‘김치(kimchi)’ ‘막걸리(makkoli)’ 등이 실렸다. 이를 비롯해 45년 동안 총 20개의 단어가 실렸는데, 올해 무려 26개의 단어가 한꺼번에 등재됐다. 이런 이례적인 일은 왜 일어난 것일까? 이유는 역시 ‘한국 문화의 힘’이다. 올해 이례적으로 많은 한국 단어가 등재 목록으로 선정되자 OED는 한국인 자문위원을 구해 등재를 진행했다. 5월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의 요청을 받아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사진)는 “이번 등재 단어 수는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영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올해 등재된 ‘치맥(chimaek)’ ‘먹방(mukbang)’ ‘언니(unni)’ ‘오빠(oppa)’ 등의 단어는 한국의 문화 현상을 잘 보여준다. 이들 단어는 한국 콘텐츠에 실려 세계로 전파됐다. 치맥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 퍼졌고, 먹방은 유튜브를 통해 국경 너머의 시청자들을 모았다. 국내 팬들이 주로 K팝 스타를 부르는 호칭인 언니, 오빠의 등재는 K팝의 위력을 보여준다. 신 교수는 “등재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영국 OED 편집자도 한국 콘텐츠를 자주 접하면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하더라”며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을 그대로 등재했다는 것은 한국 문화가 그것을 수용하는 이들의 문화보다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OED 등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문화의 전파 정도에 있는 건 아니다. 해당 단어가 신문이나 책 등의 문헌, 그리고 대중이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됐는지가 최우선적 기준이다. 그에 따라 OED는 새로운 표제어를 등재하기에 앞서 철저한 사전 조사를 진행한다. 다른 사전과 달리 한번 등재한 단어를 절대 삭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등재 단어 중 문헌에 가장 늦게 등장한 먹방도 이미 해외에서 2013년부터 사용한 단어”라고 설명했다. ‘콩글리시(Konglish)’ ‘PC방(PC bang)’ ‘skinship(스킨십)’ 등 국내에서 영어와 결합해 만들어진 신조어가 영어 원조국의 사전에 등재됐다는 점도 특이하다. 신 교수는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문화를 가진 나라로서 언어를 대하는 우리의 관점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어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줄임말이나 합성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단어들이 오히려 한국적인 정서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언어는 문화와 함께 간다”며 “오징어게임의 ‘달고나’를 해외에서 그대로 받아들이듯이 우리도 외래어를 거부하기보다는 우리 나름대로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만들어 쓰는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0-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옥스퍼드사전에 우리말 올해 26개 등재…45년치보다 많은 이유는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에 한국에서 유래된 영어 표제어 26개가 지난달 새로 등재됐다. 1884년 출간돼 11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영어권에서 사용돼온 단어 60만 여개를 수록하고 있는 OED는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사전이다. 우리 말이 처음 등재된 것은 1976년. ‘김치(kimchi)’ ‘막걸리(makkoli)’ 등이 실렸다. 이를 비롯해 45년 동안 총 20개의 단어가 실렸는데, 올해 무려 26개의 단어가 한꺼번에 등재됐다. 이런 이례적인 일은 왜 일어난 것일까? 이유는 역시 ‘한국 문화의 힘’이다. 올해 이례적으로 많은 한국 단어가 등재 목록으로 선정되자 OED는 한국인 자문위원을 구해 등재를 진행했다. 5월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 요청을 받아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번 등재 단어 수는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영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올해 등재된 ‘치맥(chimaek)’ ‘먹방(mukbang)’ ‘언니(unni)’ ‘오빠(oppa)’ 등 단어는 한국의 문화 현상을 잘 보여준다. 이들 단어에는 한국 콘텐츠에 실려 세계로 전파됐다. 치맥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 퍼졌고, 먹방은 유튜브를 통해 국경을 뛰어넘는 시청자들을 모았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필리핀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와 예능의 영어 자막을 제작하고, 이 자막이 영국과 미국 등으로 흘러들며 한국 콘텐츠가 영어권 국가에 알려졌다. 국내 팬들이 주로 K팝 스타를 부르는 호칭인 언니, 오빠의 등재는 K팝의 위력을 보여준다. 신 교수는 “등재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영국 OED 편집자도 한국 콘텐츠를 자주 접하면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하더라”며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을 고유어로 등재했다는 것은 한국 문화가 그것을 수용하는 이들의 문화보다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OED 등재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문화의 전파 정도에 있는 건 아니다. 해당 단어가 신문이나 책 등의 문헌, 그리고 대중이 이용하는 SNS 등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됐는지가 최우선적 기준이다. 그에 따라 OED는 새로운 표제어를 등재하기 앞서 철저한 사전 조사를 진행한다. 다른 사전과 달리 한 번 등재한 단어를 절대 삭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등재 단어 중 문헌에 가장 늦게 등장한 먹방도 이미 해외에서 2013년부터 사용된 단어”라고 설명했다. ‘콩글리시(Konglish)’ ‘PC방(PC bang)’ ‘skinship(스킨십)’ 등 국내에서 영어와 결합해 만들어진 신조어가 영어 원조국의 사전에 등재됐다는 점도 특이하다. 신 교수는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문화를 가진 나라로서 언어를 대하는 우리의 관점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글의 우수성을 해치는 줄임말이나 합성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단어들이 오히려 한국적인 정서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언어는 문화와 함께 간다”며 “오징어게임의 ‘달고나’를 해외에서 그대로 받아들이듯이 우리도 외래어를 거부하기보다는 우리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전파하는 것이 우리 문화를 알리는 길이다”고 전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0-13
    • 좋아요
    • 코멘트
  • “평양성 빗장 열어 당나라에 협력”… 고구려 비운의 역사 생생

    ‘돌로 쌓은 성곽(평양성)을 지키는 자들로 하여금 적을 막는 빗장을 열도록 했다. 이에 당나라 군사를 막는 적이 없으니 곧바로 성을 함락했다.’ 서기 668년 9월 고구려군과 나당연합군의 평양성 전투에 참가한 이타인(李他仁·609∼675)의 묘지명(墓誌銘·죽은 이의 신분과 행적을 석판에 새긴 글) 일부다. 그는 한때 고구려 장수로 동북 변방 12주와 말갈인을 통솔하는 책주도독(柵州都督) 겸 총병마(總兵馬)였다. 그러나 삼국통일의 마지막 정점인 평양성 전투 때에는 당나라 소속으로 모국 침공의 앞잡이가 돼 있었다. 당시 당나라 이세적(594∼669)과 신라 김인문(629∼694)이 이끈 나당연합군은 평양성 외곽을 포위했다. 고구려 보장왕은 항복하려고 했지만, 실권자였던 대막리지 연남건은 최후 항전을 고수했다. 한 달여의 공방전 끝에 연남건의 책사인 승려 신성이 당과 내통해 성문을 연 직후 고구려는 멸망한다. 이때 이타인이 이세적의 지시를 받고 신성과 접촉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이 공으로 당의 종3품 관직인 우령군(右領軍) 장군에 오르게 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타인을 비롯해 7세기 이후 당나라로 망명한 고구려·백제·신라·발해 유민들의 묘지명 32점을 분석한 ‘재당 한인 묘지명 연구’를 최근 발간했다. 이 중 고구려 유민인 이타인과 고진(高震) 고모(高牟) 묘지명은 국내외 문헌에 나오지 않는 인물들이다. 저자 권덕영 부산외국어대 역사관광학과 교수는 “사서는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기록돼 후세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묘지명은 당시 사람들이 직접 기록한 것이어서 상대적으로 신뢰성이 높은 자료”라고 설명했다. 신간에 따르면 고모(640∼694)는 고구려 평양성에서 활동한 무장으로 멸망 전 당나라에 투항한다. 그의 묘지명에는 ‘적절한 때를 기다려 정성을 바치고 백낭(白囊·긴급한 문서를 담아 전달하는 자루)에 의지해 성심으로 (당에) 귀순했다’고 적혀 있다. 묘지명에 고모의 귀순 시기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평양성과 주변의 병력 배치 등을 담은 군사 기밀을 당에 넘긴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당 조정은 그를 종3품 우표도위(右豹韜衛) 장군에 임명했다. 권 교수는 “이타인이나 고모 등은 조국을 배신하고 당나라에서 호의호식했다”며 “묘지명은 거대 제국으로 도약하던 당나라가 이민족을 포용해 적재적소에 활용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구려 유민 고진(701∼773)은 고구려 보장왕의 손자다. 보장왕이 당나라에 투항한 후 그의 가문은 대대로 대장군 봉작과 식읍 1000호를 하사받았다. 고진은 당나라 동북 변방 요충지인 중국 허베이(河北)성 친황다오(秦皇島)에서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는 공을 세웠다. 이에 당 조정은 그를 정3품 대장군인 금오위(金吾衛)대장군 안동도호(安東都護)에 임명했다. 이타인의 묘지명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고구려 부흥운동도 언급돼 있다. ‘고구려가 요사한 기운을 뻗쳐 공(公·이타인)은 조서를 받들어 부여지역으로 나아가 토벌했다’는 내용이 그것. 이는 당시 고구려 멸망 후 현재 중국 지린(吉林)성 일대인 부여지역에서 고구려 부흥운동이 활발히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권 교수는 “부여지역에서의 고구려 부흥운동은 국내는 물론 당나라 문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며 “문헌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과 시대상을 보여주는 당나라 묘지명은 한국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0-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실험실서 고군분투… 과학은 경쟁과 소통으로 성장한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4일부터 이어지고 있다. 최근 노벨 과학상은 단독 연구자가 아닌 연구팀의 공동 연구 성과에 주로 돌아가고 있다. 2001년 이후 3개 노벨 과학상 수상자 162명 중 단독 연구자는 5명(약 3.1%)에 불과하다. 갈수록 연구 분야가 고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여러 과학자들이 팀을 이뤄 연구하는 ‘빅 사이언스’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인 저자는 변화하는 과학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선 과학의 실상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과학자의 관점에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연구를 펼치는 실험실이 어떤 곳이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과학의 세계를 소개한다. 과학 연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시민들도 알아야 그 성과를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대부분의 과학지식은 실험실에서 생산된다. 실험실이라고 하면 대중은 장비와 기자재, 시약 등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는 이미지만 막연하게 상상할 뿐이다. 저자는 실험실은 일반인들의 상상보다 훨씬 어수선하고 뒤죽박죽인 곳이라고 말한다. 특히 공동 연구가 이뤄지는 실험실은 고가의 장비를 경쟁적으로 사용하면서 갈등의 장이 되기 일쑤다. 장비 사용 순서를 두고 다투고, 자신의 실험 결과가 유효하다는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에 따라 다른 연구자와의 원만한 인간관계는 연구 성과에 작지 않은 영향을 주는 요소라는 게 저자의 견해다. 과학 연구의 출발점인 가설은 특정한 자연현상이 일어나는 원리를 잠정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실험 결과에 따라 수용 혹은 기각되기 마련이다. 저자는 실험에 앞서 탄탄한 가설이 중요할 수 있지만, 이것이 명료하게 정리돼야 실험을 수행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우연이나 직관 등 비과학적 요소에서 실험을 시작하고, 그 결과로 가설을 설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하고,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 넘쳐흐르는 물을 보고 부력의 원리를 알아냈다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꼼꼼하게 세운 가설이 실험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실험실은 자연현상을 인위적으로 유도하고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실험 결과 사이의 차이를 낳는다. 자연과는 다른 인위적 조건에서 실험이 수행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 실험실에서 이뤄진 연구 결과가 다른 실험실에서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 이른바 ‘재현성의 위기’도 과학계에선 종종 발생한다. 실험 결과를 논문으로 담아내기도 쉽지 않다. 과학논문은 서론, 연구 방법, 연구 결과, 고찰이라는 구조화된 형식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실제 연구는 논문 형식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과학자는 연구 과정을 논문 구조에 맞춰 재구성해야 한다. 논문에 연구 결과를 제대로 담아냈다고 해도 연구자가 유명하지 않거나 시대를 너무 앞서가면 묻힐 수 있다. 예컨대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핸스 크레브스와 피터 랫클리프의 연구논문 게재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들은 해당 논문으로 각각 1953년과 2019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크레브스는 무명의 연구자라 다른 학술지에 논문 투고를 제안받았다. 랫클리프는 논문 심사자 중 일부가 연구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하지 못했다. 과학자의 성과는 오직 논문으로 평가된다. 논문이 완성되기까지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서로 소통하며 분투한다. 그래서 저자는 과학이 성장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논문 공동저자 등재를 ‘지인 찬스’로 활용하는 일부 과학자들의 행태가 공분을 일으키는 이유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0-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日우익들 전쟁피해자 행세때 ‘반성’ 촉구한 이소가야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본국으로 돌아간 일본인들은 조선민족을 마치 ‘가해자’처럼 생각하며 미움을 가득 안고 조선을 떠난 건 아니었을까.”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조선주둔군으로 들어와 약 18년간 한반도에 머문 이소가야 스에지(1907∼1998·사진)는 자신의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그는 “조선민족에 대한 박해의 역사가 있었던 걸 일본인은 얼마나 반성할 수 있을까”라고도 했다. 패전 후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귀국길에 오른 일본인들은 일부 소련군이나 조선인에게 보복 폭력을 당했다. 이에 몇몇 일본 우익 지식인들은 원자탄 피폭과 엮어 일본을 전쟁 피해자로 규정했다. 일례로 후지오카 노부카쓰 전 도쿄대 교수 등은 지난해 12월 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위해 “일본과 독일은 연합국의 손에 끔찍한 민간인 손실을 입었는데 이는 전쟁범죄로 해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소가야는 생전에 “집단 보복을 당해도 어쩔 수 없는 역사적 잘못을 일본인들은 수도 없이 저질렀다”고 했다. 변은진 전주대 한국고전학연구소 HK교수는 최근 발표한 ‘이소가야 스에지의 저술을 통해 본 38도선 이북 지역 일본인의 식민지·귀환 경험과 기억’ 논문에서 이소가야가 일본인들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비판한 배경에 주목했다. 변 교수는 “이소가야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일본 사회의 반성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1928년 징집돼 함경남도 나남의 일본군 19사단에 배치된 이소가야는 억압적인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2년 만에 제대한다. 이후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에 취업한 그는 화학물질을 뒤집어쓰며 주야 3교대로 일하는 엄혹한 노동 환경에 처한다. 그가 좌파 항일운동가 주선규(1908∼?), 송성관(1907∼?)을 공장에서 만나 노동운동에 나서게 된 배경이다. 그는 사상범으로 1932년부터 약 9년간 옥고를 치렀다. 일본의 패전 후 그는 조선공산당 인사들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의 요청에 따라 자국민들의 본국 귀환을 도왔다. 변 교수는 “이소가야는 귀환을 도우며 일본인들이 조선인에게 잘못을 저질렀고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고 말했다. 이소가야는 이후 ‘조선종전기’ ‘우리 청춘의 조선’ 등의 저서를 통해 가해자로서 일본의 책임을 강조했다. “일본은 한국전쟁을 이용해 막대한 어부지리를 얻었다. 이런 일본의 자세는 예전의 군국주의 일본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조선종전기’)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민족 분단이라는 조선민족 최대의 불행을 짊어지지 않았을 것이다.”(‘일한병합 80년과 일본’)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0-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노벨문학상에 ‘탄자니아 난민’ 출신 구르나

    아프리카 탄자니아 난민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 중인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73·사진)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7일 “식민주의에 대한 단호하고 연민어린 통찰이 수상 배경이 됐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노벨 문학상을 탄자니아 출신 작가가 받은 건 처음으로 아프리카 출신 작가로는 역대 다섯 번째다. 흑인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는 35년 만이다. 1948년 동아프리카 연안 잔지바르섬에서 태어난 구르나는 1968년 난민 자격으로 영국에 갔다. 이후 영어로 소설을 쓰면서 영국 켄트대 교수로 탈식민주의 담론을 연구했다. 동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파라다이스(Paradise)’는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에 1994년 올랐다. 장편소설 ‘바닷가에서(By the sea)’는 2001년 부커상 1차 후보에 올랐다. 한림원은 “난민의 혼란이라는 주제는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이어진다”며 “그는 모국어로 스와힐리어를 썼지만 20세에 영어를 써야 하는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영어는 그의 문학적 도구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10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단편소설을 발표했으며 이 중 국내에 번역 출간된 것은 없다. 한림원이 아프리카 출신 작가를 수상자로 선택한 건 최근 유럽과 미국 출신 작가들이 잇달아 수상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극단주의 부상에 따른 세계적 혼란상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왕은철 전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구르나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아랍계 아프리카인들의 디아스포라 경험을 다루고 있다”며 “세계 곳곳에서 이슬람문화와 다른 문화권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한림원이 아프리카 출신 무슬림 작가에게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수상자 발표 당시 자신의 집 주방에 있던 구르나는 “(노벨상 수상 소식이) 장난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1000만 크로나(약 13억5600만 원)의 상금을 받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0-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인사이드&인사이트]비대면시대 전시풍경… “해외작품, 이젠 호송관 없이 모셔와요”

    《지난달 12일 오후 6시 반 인천국제공항 화물청사.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화물기에서 랩과 비닐로 3중 포장된 화물 운송상자가 내려졌다. 현장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직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하역 과정을 지켜봤다. 이날 오전 5시 반 도착 예정이던 화물은 태풍 여파로 13시간 늦게 도착했다. 이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린 화물은 불과 나흘 뒤 개최된 ‘중국 고대 청동기 특별전’에 전시될 유물들. 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기원전 10세기 말 서주(西周) 때 제작된 소극정(小克鼎·소극 글자가 새겨진 세발솥)이다. 현존하는 중국 서주 시기 소극정은 전 세계 7점뿐으로 희귀 유물로 꼽힌다.》 그런데 팬데믹 여파로 중국 측 호송관 없이 이례적으로 유물만 국내로 들어왔다. 전시를 기획한 오세은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유물이 무사히 도착한 게 기적이라고 생각했다”며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으로 유물 운송 여부를 확인했다. 유물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이를 사진으로 찍어 중국 박물관에 보내줬다”고 말했다.○ ‘줌 화상회의’ 통해 전시유물 선정 통상 해외 전시에서는 유물 대여기관이 2인 이상의 호송관을 보내 유물을 운송하는 게 원칙이다. 호송관은 운송과정 전반을 맡아 출발 전과 해외 도착 후 유물상태를 파악한다. 전시실 설치에도 참여해 유물이 어느 자리에 어떻게 전시돼야 하는지를 조언한다. 전시가 끝나면 유물 파손여부를 확인한 후 이를 회수하는 업무도 그의 몫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입출국이 제한되면서 호송관을 해외로 파견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해외유물 전시에서 비대면 협업 시스템을 도입했다. 박물관이 중국 고대 청동기 특별전을 기획한 건 지난해 초. 이 무렵 국내에서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약 1년 동안 박물관은 휴관과 개관을 반복했다. 박물관은 1년여 동안 특별전 개최여부를 검토하다 확진자가 하루 500명 안팎으로 떨어진 올 6월에야 전시를 최종 결정했다. 문제는 중국 측 호송관 파견이었다. 중국 당국은 한중 박물관의 협조 요청에도 호송관의 출국을 불허했다. 결국 양국 박물관은 호송관 없이 유물을 옮기기로 했다. 박물관이 호송관 없는 해외 전시를 진행한 건 이뿐이 아니다. 올해 8월 끝난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특별전도 영국 런던의 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 초상화 78점을 들여왔다. 이 중 셰익스피어 초상화는 실물을 보고 그린 유일한 초상화다. 이 전시를 기획 중이던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영국에서 하루 1만 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해 현지 방문이 막힌 상태였다. 이에 따라 양측은 전시준비를 줌(Zoom) 화상으로 진행했다. 한영 박물관 큐레이터들은 지난해 4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화상회의를 열어 전시 콘셉트를 정하고 작품을 선정했다. 또 영상중계 업체를 동원해 운송은 물론 작품 설치의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영국 측에 보여줬다. 호송관을 대신해 작품상태를 확인한 국내 보존과학자를 섭외하고 작품 설치 때마다 카메라와 스크린, 컴퓨터 등 영상 중계장비를 갖추느라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다. 양수미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영상중계로 인해 작품을 한 시간에 1점밖에 설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메일로 해외 개인 소장자들 접촉 팬데믹으로 해외 전시기관에서 작품 대여가 어려워지면서 국내 미술관이 개인 소장자들을 직접 접촉한 사례도 나왔다. 서울 강남구 마이아트뮤지엄은 인기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소개돼 인기를 끈 유화 ‘황혼에 물든 날’의 작가 앨리스 달튼 브라운 회고전을 올 7월 개최했다. 이 전시는 작가가 소속된 갤러리가 팬데믹으로 파산한 데다 그의 작품을 소장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해외 전시를 거부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미술관은 앨리스 달튼 브라운의 작품을 소유한 미국 거주 개인 소장자들을 이메일과 전화로 접촉해 작품을 대여하기로 했다. 비대면 작업을 통해 개인 소장자들의 신뢰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소장자가 집을 옮겨 전화가 연결되지 않거나, 고령의 소장자들은 이메일을 읽지 않았다. 미술관은 작품 분실 혹은 훼손에 대비한 보험 가입과 더불어 작품 보존을 위해 소장자가 제시하는 조건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공문을 보내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 현지 미술품 보존업체를 동원해 소장자 자택에서 작품상태를 확인한 후 운반하기도 했다. 특히 대표작 ‘황혼에 물든 날’은 소장자가 이미 2005년 세상을 떠나 대여에 난항을 겪었다. 미술관은 미국 인명 사이트로 수소문해 소장자의 부인을 찾아 대여를 요청했다. 한국인 이민자였던 부인은 고국에서의 전시를 허락했다. 그 결과 전시된 80점 중 기관 대여 1점(미국 코넬대 미술관 소장품)을 제외한 79점을 작가와 개인 소장자들로부터 입수할 수 있었다.○ 해외전시 ‘비대면 준비’ 새 표준으로 팬데믹을 계기로 큐레이터 파견 없이 이뤄지는 해외전시는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을까. 최근 일련의 전시에서 유물 파손 등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전시 준비기간이 늘기는 했지만 호송관을 보내지 않고도 해외 유물을 들여오는 게 가능하다는 게 증명됐다. 오세은 학예연구사는 “호송관 없이 전시를 진행하다 보니 파손 위험이 있는 유물을 국내로 들여오지 못하는 한계는 있었다”며 “그래도 전시를 준비하는 새로운 방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국내외 큐레이터들이 화상회의 등을 통해 협업하며 전시를 준비한 것도 성과다. 양수미 학예연구사는 “각국이 재택근무를 하는 상황에서 카메라 너머로 상대국 큐레이터의 가족도 보며 생긴 끈끈함이 전시 준비에 도움이 됐다”며 “원격으로 전시가 가능하다는 걸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미리 마이아트뮤지엄 큐레이터는 “개인 소장자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해 어느 정도 신뢰를 형성할 수 있었다. 해외기관에서 대여하는 전시에 비해 자유로운 전시방식을 채택할 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기욱 문화부 기자 71wook@donga.com}

    • 2021-10-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건희 컬렉션 ‘석보상절’ 초간본 오늘 첫 일반공개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글날을 맞아 이건희 컬렉션 기증품 중 ‘석보상절(釋譜詳節)’ 초간본 두 권(권20·21·사진)을 30일 공개한다. 학계에만 알려진 두 책이 일반에 선보이는 건 처음이다. 석보상절은 1446년(세종 28년) 세종대왕 부인 소헌 왕후 심씨의 명복을 빌고자 수양대군이 세종의 명을 받아 부처의 일대기와 설법을 한글로 번역한 책이다. 이번에 전시되는 권20·21은 세종 연간에 간행된 초간본이다. 앞서 보물로 지정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나 동국대도서관 소장본과 같은 판본으로 추정된다. 올해 7월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전시된 석보상절 권11(보물 제523-3호)은 초간본을 16세기에 목판에 다시 새겨 찍어낸 복각본이다. 권20·21은 현재 국가지정문화재가 아니다. 1434년(세종 16년)에 제작된 조선 초기 금속활자인 갑인자(甲寅字) 추정 금속활자 152점도 함께 전시된다. 조선총독부가 1931년 구입한 이 활자들은 앞서 1987년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전시된 적이 있다. 박물관은 해당 활자들이 올 6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출토된 갑인자 활자와 형태나 크기가 유사하다는 점에 근거해 갑인자로 추정하고 있다. 박물관에 따르면 갑인자로 찍어낸 근사록(近思錄)과 고 송성문 씨 기증 자치통감(資治通鑑)의 글자 크기 및 서체가 전시 활자들과 일치하는 걸로 조사됐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09-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 보물 된다

    문화재청은 원효대사(617∼686)가 머문 경북 경주 분황사의 당간지주(幢竿支柱)를 28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사찰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입구에 세우는 당간지주는 깃발을 거는 기둥인 당간(幢竿)을 고정시키는 석조물이다. 통일신라시대 초기부터 만들어졌다. 분황사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당간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귀부(龜趺·거북 모양)형 간대석(竿臺石·당간 하부에 놓는 돌단)이 확인됐다. 조영기법이나 양식에 있어 앞서 보물로 지정된 경주 망덕사지, 보문사지, 남간사지의 당간지주와 유사하다. 분황사는 서기 634년(선덕여왕 3년) 신라 왕실이 건립한 사찰로 황룡사와 연접해 있다. 엄기표 단국대 교수(고고미술사)는 “왕이 참여하는 법회가 열린 중요 사찰”이라고 말했다. 분황사 입구 남쪽과 황룡사 터 사이에 있는 당간지주는 어느 사찰의 것인지 애매한 측면이 있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황룡사 입구에 두 개의 당간지주 파편이 있으며, 통상 사찰 남쪽 입구에 당간지주를 세우는 관례를 감안해 이를 분황사의 당간지주로 봤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09-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고고자료 짜맞추고… 무리한 역사해석, 中 ‘신화속 고대국가’ 역사만들기 공정

    1999년 20년 만에 재발굴이 이뤄진 중국 허난(河南)성 신자이(新砦) 주거지 유적에서 심복관(深腹罐·몸통의 지름보다 속이 더 깊은 토기)과 세발솥 등이 출토됐다. 1979년 1차 발굴 때는 이 유적이 하나라 왕성(王城)으로 추정되는 얼리터우(二里頭) 유적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정도만 확인됐다. 재발굴을 주도한 주체는 전설상의 왕조로 여겨진 중국 하·상나라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하상주단대공정’ 연구팀. 하나라가 기원전 2070년∼기원전 1600년까지 470년간 지속됐다는 중국 전국시대 역사서 죽서기년(竹書紀年)에 따르자니 하나라 전기 왕성으로 보는 왕청강(王城崗)과 후기 왕성 얼리터우 유적 사이에 약 100년의 공백이 생겼다. 베이징대와 정저우(鄭州)시문물연구소로 구성된 연구팀은 이를 메우기 위해 신자이 유적을 다시 팠다. 결국 이들은 신자이 유적 출토품이 기원전 19세기∼기원전 18세기 중반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최근 발간한 ‘중국 애국주의와 고대사 만들기’에서 고고 자료 등을 통해 신화 속 고대국가를 실제 역사로 만들려는 중국 정부와 학계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공동 필진 중 한 명인 이유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하나라 유적임을 증명하는 동시대 문헌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 고고자료를 짜 맞췄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1996∼2000년 진행한 하상주단대공정 외에도 2001∼2015년 하나라 이전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신화를 역사적 실체로 다루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을 진행했다. 이와 함께 2002∼2006년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사로 편입했다. 이와 관련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9월 중국공산당 제23차 집체학습에서 고고학계에 중화문명의 우월성을 증명할 것을 요구했다. 이 위원은 “각종 공정들은 중원과 이외 지역들에서 각각 발생한 문명들이 서로 교류하며 형성됐음을 보여주고자 한다”며 “이는 중국이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통일된 다민족사회였다는 논리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중국학계는 토기 무늬를 근거로 무리한 역사 해석에 나서기도 했다. 한나라 사서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는 중국 민족의 시조인 염제(炎帝)와 황제(黃帝)가 판천(阪泉)에서 전쟁을 벌여 황제가 승리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한젠예(韓建業) 중국 런민대 고고학과 교수는 이를 증명할 자료로 허난성 루저우(汝州)시 옌촌에서 1978년 출토된 토기를 제시했다. 물고기를 물고 있는 새와 전쟁을 뜻하는 돌도끼가 새겨진 토기 무늬가 새를 숭배하는 황제 부족이 물고기를 숭배하는 염제 부족을 제압했음을 뜻한다고 해석한 것. 그러나 배현준 동북아역사재단 초빙연구위원은 “토기 무늬를 근거로 당시 두 부락 사이의 전쟁이 발생했음을 유추하는 건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중국학계가 하나라를 창건한 우(禹) 기록으로 간주하는 빈공수(빈公k·장인 빈공이 만든 곡식을 담는 청동기) 명문도 견강부회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우선 유물의 조성 연대가 하나라 창건 시기에서 약 1000년이나 지난 뒤인 서주(西周) 대로 나타났다. 게다가 명문에는 ‘하늘이 우에게 명하여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산을 따라 내를 준설하게 하셨네’라는 구절만 쓰여 있을 뿐 우가 하나라를 세웠다는 내용은 없다. 김인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패권적 애국주의는 자국 우월주의를 불러온다”며 “중국의 선택은 한국의 미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중국의 고대사 만들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09-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BTS “웰컴 투 숭례문” 국제 자선콘서트 문 열다

    방탄소년단(BTS)이 26일 국제 자선 콘서트 ‘글로벌 시티즌 라이브’의 시작을 열었다. 글로벌 시티즌 라이브는 국제자선단체 ‘글로벌 시티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공평한 분배, 기후변화, 빈곤문제 등 세계적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는 취지로 개최한 대규모 자선 콘서트. 24시간 동안 유튜브로 생중계된 이 콘서트는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나이지리아 라고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등 주요 도시에서 최정상 음악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웰컴 투 서울, 코리아”를 외치며 등장한 BTS는 서울 중구 숭례문의 야간 경관을 배경으로 설치된 무대에서 사전 녹화한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공연을 선보였다. 화려한 조명이 비치는 숭례문과 한국 전통 문양이 그려진 무대는 BTS의 공연과 조화를 이루며 눈길을 끌었다. 곡 후반에는 40명의 댄서가 무대 앞으로 등장해 BTS와 함께 ‘즐겁다’ ‘춤추다’ ‘평화’를 뜻하는 국제수어를 활용한 안무를 선보였다. BTS는 숭례문 앞 대로를 누비며 펼친 ‘버터(Butter)’ 공연도 준비했다. 숭례문과 서울의 야경이 돋보이는 이 무대는 영국 BBC를 통해 별도로 공개됐다. 6만여 명의 관객이 참여한 뉴욕 센트럴파크 공연에서는 제니퍼 로페즈, 빌리 아일리시, 콜드플레이 등이 나섰다. 이날 콜드플레이는 BTS와 협업해 24일 발표한 신곡 ‘My Universe’의 무대를 진행했다. BTS는 이 곡의 한국어 가창은 물론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 BTS는 무대 뒤편의 스크린에 홀로그램으로 등장해 콜드플레이와 함께 시공간을 초월한 무대를 만들었다. 보컬 크리스 마틴은 신곡의 한국어 가사를 직접 소화했다. 15년 만에 재결합한 힙합 그룹 푸지스도 무대를 선보였다. 뉴욕 공연의 피날레는 전설적 포크 듀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폴 사이먼이 장식했다. 파리에서도 2만여 명의 관객이 모인 가운데 콘서트가 진행됐다. 엘턴 존과 에드 시런, 블랙아이드피스 등이 에펠탑을 둘러싸고 있는 샹드마르스 광장에서 공연을 선보였다. 2008년 전 세계 빈곤 퇴치를 목표로 설립된 글로벌 시티즌은 앞서 5월 제니퍼 로페즈 등 팝스타들이 출연해 백신 공유를 촉구하는 자선공연 ‘백스 라이브(Vax Live)’를 진행했다. 지난해 4월에는 롤링스톤스, 빌리 아일리시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집에서 실내복 차림으로 참여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온라인 합동 콘서트 ‘무관객 콘서트’를 열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09-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다음 세대에 물려줄 ‘절대지식’을 찾아라

    “만일 기존의 모든 과학 지식을 송두리째 와해시키는 일대 혁명이 일어나 다음 세대에 물려줄 지식이 단 한 문장밖에 남지 않는다면, 그 문장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1918∼1988)이 남긴 질문이다. 파인먼은 그 지식으로 세상의 모든 물질이 원자로 돼 있다는 ‘원자론’을 꼽았다. 인간을 포함해 세상 모든 것이 원자들의 결합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이론’은 파인먼의 질문에 대한 국내 학자 7명의 대답을 담았다. 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을 전공한 저자들이 인류 역사를 관통하면서 변하지 않는 지식이 무엇인가를 탐구했다. 이를 통해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에 대비하는 방법을 조언한다. 윤성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우주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단 하나의 이론으로 꼽는다. 원자론에 따르면 빅뱅 이후 탄생한 원자는 중력 등의 영향을 받으며 일정한 궤도를 따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데, 그중 일부가 궤도를 살짝 벗어나 다른 원자들과 충돌하며 변화가 발생한다. 우주의 팽창과 인류의 탄생은 원자들이 일탈한 산물이라는 것. 그는 우주는 지금도 변화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에게 우연히 나타난 ‘의식’을 통해 138억 년의 우주 역사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라고 전한다. 프랑스 쇼베 동굴에 3만2000년 전 인류가 남긴 들소를 쫓는 사자 벽화에서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는 이론을 찾기도 한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람이 홀로 벽화를 그릴 수 없다고 분석한다. 캄캄한 동굴에서 벽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누군가 벽을 등불로 밝혀줘야 한다. 울퉁불퉁한 동굴 벽을 평평하게 긁어내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이 작업 역시 누군가 등불을 들고 있어야 가능하다. 인간은 3만 년 전 원시시대부터 현재까지 상호의존적이었으며 이를 통해 진화해왔다고 노 교수는 전한다. 뇌를 연구하는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는 인간의 마음은 신체가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소통하면서 생겨난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인간의 뇌는 어떤 선택에 대한 반응을 감정으로 나타내며 마음을 이룬다. 예컨대 스트레스와 행복 사이의 균형을 통해 마음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과도한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뇌는 균형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김 교수는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그래야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알고 그에 맞는 대처를 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자신의 감정을 알면 타인의 감정에도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우리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감염 확산세는 줄어드는가 하면 다시 급증해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혼란의 시대에 저자들이 제시한 변하지 않는 이론을 읽으면 잠시나마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09-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현장에 있던 하급병사-여성 등이 직접 남긴 ‘조선의 속살’”

    “지략 많은 금위중군 선봉은 하지 않고 좌천봉에 올랐다” 조선 영조 4년(1728년) 소론이 일으킨 ‘이인좌의 난’ 진압 과정에 참여한 훈련도감 소속 한 마병(馬兵·말을 타고 싸우는 하급 병사)이 작성한 한글 일기 ‘난리가’의 내용이다. 금위중군은 무신 박찬신(1679∼1755)을 가리킨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박찬신은 난을 진압한 공신으로 책봉돼 토지와 녹봉을 하사받고 승진의 혜택을 누린다. 하지만 이 일기에는 산봉우리로 도망간 비겁한 지휘관으로 기록돼 있는 것. 지난달 30일 출간된 ‘조선 사람들, 자기 삶을 고백하다’(세창출판사)는 조선 중기 이후 하급 병사, 여성 등 여러 계층의 일기 11편을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담았다. 저자 정우봉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60·사진)는 양반 사대부와 같이 지배계층이 기록한 관찬사서와 달리 평민, 여성 등 상대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일기를 통해 당대를 바라봤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양반계층이 작성한 실록과 달리 난리가는 직접 참전했던 병사가 증언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진실에 가깝다”며 “역사자료도 중요하지만 현장에 있던 평민이나 여성 등이 직접 남긴 기록을 통해 역사 속에서 그들이 어떤 사건을 겪고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갔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전했다.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결점을 숨기는 것이 예의이던 시절, 이를 드러낸 소중한 기록도 있다. 문신 남이웅(1575∼1648)의 아내 조애중(1574∼1645)이 쓴 ‘병자일기’에는 “매양 간담을 베어 내는 듯 숨이 막히는 듯 답답하며, 생각하고 서러워하면서도 어찌 할 수가 없으니 내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며 이리 헤아리고 저리 헤아린다”는 글이 남아 있다. 두 아들을 일찍 여읜 어머니의 마음을 절절하게 써내려간 것. 사실만 충실하게 기록했던 사대부 남성들의 한문 일기 전통과 달리 조 씨는 한글 일기에 내면을 오롯이 담아냈다. 문신 심노숭(1762∼1837)은 ‘자저실기’에서 “기생들과 노닐 때에 좁은 골목과 개구멍도 가리지 않아 남들이 손가락질하고 비웃었다”며 자신의 지나친 정욕에 따른 괴로움을 고백한다. 정 교수는 “양반이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숨김없이 토로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공식 기록에서 누락됐던 계층의 삶이 진솔하게 드러난 일기들은 한글 산문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이 책이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보여주는 일기 자료에 대한 관심을 불러오기 바란다”고 전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09-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완벽한 삶은 없으니까, 우린 서로가 필요해

    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이 지겹거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가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지금까지의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는 차라리 도망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야 숨이라도 쉴 수 있을 것만 같다. 대산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한 저자는 이번 장편소설에서 완벽한 삶이 가능한지 세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탐색한다. 이들은 다른 이의 방에서 지내며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본다. 방송작가 일을 하던 윤주는 직장상사와 동료에게 모욕을 당한 뒤 일을 그만두고 친구 미정이 지내는 제주로 향한다. 미정은 인권법재단 간사로 일하다 자기 일에 대한 신념을 잃고 제주로 먼저 떠나온 상황. 윤주는 한 달간 비울 자신의 서울 영등포구 집을 렌털 사이트를 통해 홍콩 출신 시징에게 빌려준다. 시징은 영등포에 사는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서울로 향한다. 각자 목적은 제각각이지만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도망친 건 같다. 낯선 곳에서 지내며 일상의 익숙함이 사라지자, 이들은 그동안 외면해온 자신의 진심을 마주하게 된다.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완벽한 삶이란 무엇인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가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완벽한 삶의 조건으로 여겨지는 신념과 사랑을 따르다 상처받고 방황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고 썼다. 작가는 세 인물이 신념과 사랑에 상처받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담히 풀어냈다. 제주 신공항 건설,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 비정규직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도 이야기 속에 적절히 녹여냈다. 저자는 생애는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완벽할 수 없는 삶에서 좌절과 희망을 겪고,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며 차근차근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상에 지칠 때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다 보면 한 걸음 더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09-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발굴 50년 무령왕릉… 왕비의 ‘동탁은잔’ 등 5232점 처음 한자리에

    금과 은으로 겹겹이 장식된 연꽃 주위를 산봉우리와 능선이 휘감는다. 네 개의 봉우리 사이에는 봉황과 사슴이 세밀한 필선으로 새겨져 있다. 뚜껑과 결합된 그릇에는 연꽃 위로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세 마리 용이 빙 둘러싸고 있다. 1971년 충남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받침 은그릇(동탁은잔·銅托銀盞)’은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를 연상시킨다. 금동대향로도 역동적인 용틀임과 피어오르는 연꽃무늬가 절묘한 결합을 이루고 있다. 15cm 높이의 화려한 동탁은잔이 은으로 만든 뚜껑과 그릇, 청동받침으로 구성돼 있다면 금동대향로는 금동 뚜껑과 받침이 한 세트를 이룬다. 14일 개막하는 국립공주박물관의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특별전’은 백제사를 다시 쓴 무령왕릉 출토 유물 5232점 전체를 처음 선보인다. 무령왕릉은 지석(誌石)을 통해 묻힌 이의 이름과 무덤 조성연도가 확인된 유일한 삼국시대 왕릉이라는 점에서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정문 왼쪽의 기존 상설전시실(웅진백제실)을 무령왕릉 출토품으로만 리모델링하는 한편으로 오른쪽의 별도 기획전시실도 관련 전시로 꾸몄다. 한수 국립공주박물관장은 “웅진백제실이 관꾸미개 등 화려한 명품 유물로 구성됐다면 기획전시실은 발굴 과정과 이후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13일 미리 둘러본 전시에서 압권은 왕비의 머리맡에서 발견된 동탁은잔이었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는 아니지만 크기가 작다 보니 본연의 가치에 비해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유물이다. 이에 박물관은 상설전시실 도입부 전체를 동탁은잔의 단독 전시공간으로 할애했다. 동탁은잔은 용·봉황무늬 고리자루큰칼(용봉문환두대도·龍鳳文環頭大刀) 등 화려한 금속공예품과 더불어 521년 무령왕이 중국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갱위강국(更爲强國·다시 강국이 되었다)을 선포할 당시 백제 문화의 전성기를 보여준다. 동탁은잔은 고리자루큰칼, 청동거울 등과 더불어 제작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앞서 일본학계는 유물의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감안할 때 중국 양나라가 은잔을 만들어 무령왕에게 하사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부여 능산리 절터, 익산 왕궁리 유적 등에서 백제 고고자료가 꾸준히 축적됨에 따라 중국 양식을 백제가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자체 제작했다는 국내 학계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남조에서 수입된 것으로 본 무령왕릉 출토 청동거울 3점도 백제 장인들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주경미 충남대 강사는 지난해 열린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국제학술대회에 발표한 ‘무령왕릉 출토 금속공예품의 현황과 의의’ 논문에서 “무령왕의 발 부근에 부장된 신수경(청동거울)의 경우 무령왕 연간의 백제 장인들이 새로운 밀랍 주조기법으로 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중국 한나라 때 청동거울 유물 중 무령왕릉 출토품과 유사한 문양이 발견되지 않은 데다, 표면에 새겨진 일부 글자가 지워진 흔적이 발견된 게 근거다. 이번 전시에선 20세기 최대 고고 발견으로 평가되는 무령왕릉 발굴이 졸속으로 진행된 뼈아픈 역사도 조명됐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 보수공사 중 무령왕릉이 우연히 발견된 날인 1971년 7월 5일 오전 10시 30분 김영배 당시 국립박물관 공주분관장이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 보낸 보고서에는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이 담겨 있다. 이번에 전시된 보고서에서 김 분관장은 “귀중한 유적인 만큼 시급히 조사 작업을 진행치 않으면 도굴 및 파괴의 우려가 있으니 긴급 조치 바람”이라고 썼다. 이에 따라 무령왕릉 유물 수천 점은 출토 위치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채 이틀 만에 부대에 실려 옮겨졌다.“졸속발굴 아픔… 과학분석 통한 새 성과 다행” 발굴 참여 지건길 前중앙박물관장“부대에 담아 이틀 만에 발굴 끝내… 2년후 천마총 발굴때 반면교사로” “1973년 천마총을 발굴할 때 2년 전 무령왕릉에서의 졸속이 뇌리에 깊이 박혔습니다.” 13일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만난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78·사진)은 “예상치 못한 완전분(도굴되지 않은 무덤) 발견에 조사원들 모두 정신이 혼미해졌다”며 무령왕릉 발굴 상황을 돌이켰다. 꼬박 이틀 만에 수천 점의 유물 수습을 마친 무령왕릉 발굴을 반면교사로 삼아 2년 뒤 천마총 발굴 때는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1970년대 국책 발굴사업의 효시로 통하는 천마총 발굴은 약 1년에 걸쳐 진행됐다. 그는 “무령왕릉도 제대로 발굴했다면 천마총만큼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했다. 발굴보고서 등에 따르면 1971년 7월 5일 오전 10시 30분 공주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 공사 도중 우연히 무령왕릉이 발견됐다. 이어 이틀 뒤인 7일 오전 발굴에 들어가 이튿날 오후 10시부터 유물 수습이 시작됐다. 발굴단은 밤새도록 5000여 점의 유물을 부대에 퍼 담아 외부로 옮겼다. 이 작업이 모두 종료된 게 9일 오전 9시. 발굴에 착수한 지 만 이틀 만이었다. 이에 따라 일부 유물은 정확한 출토 위치를 몰라 성격을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무덤 바닥에서 대거 쓸려나온 수많은 금속 장식들이 대표적이다. 지 전 관장은 무령왕릉 발굴 당시 28세의 문화재연구실(현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속 학예연구사였다. 발굴단장이자 국립박물관장이던 삼불 김원룡 교수는 그의 서울대 고고학과 스승이기도 했다.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만 해도 하늘 같은 스승에게 ‘차근차근 조사하자’고 직언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무령왕릉 발굴 성과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수습된 유물들에 대한 과학 분석을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는 “2001년부터 유물에 대한 정밀 조사가 이뤄져 ‘신(新)보고서’ 발간으로 이어졌다. 발굴 과정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몇 해 전 경주 월성 발굴 속도전 논란과 맞물려 “학술 발굴이 차근차근 이뤄질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공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공주=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09-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