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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급작스러운 처형 소식은 북한 주민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주민들이 감수해야 할 진짜 ‘공포의 행군’은 이제부터 시작일 것으로 보인다. 내년 2월 16일 ‘광명성절(김정일 생일)’까지 주민들의 충성심을 유도하기 위한 각종 행사가 추운 날씨 속에 줄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 추모식은 시작일 뿐 북한은 17일인 김정일 사망 2주기를 맞아 애도 기간에 돌입한 상태다. 애도 기간은 24일경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애도 기간은 사실상 ‘비상계엄’ 기간과 같다. 모든 이동이 통제되고, 주민의 일거수일투족이 노동당과 보위부에 보고된다. 애도 기간엔 각종 추모 행사가 이어지며 집단 음주가무는 물론이고 사적으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금지된다. 이 때문에 북한에선 애도기간과 생일이 겹친 사람은 동정의 대상이 된다. 애도 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다른 행사들이 연말까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24일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할머니 김정숙의 생일이자 김정일 최고사령관 추대일이다. 북한은 해마다 이날을 맞아 한 달 전부터 작업단위별로 예술 공연을 준비해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김정일 사망 이후부터 애도 기간과 겹치면서 공연은 사라졌다. 이어 27일은 북한의 헌법절. 2년 전 12월 30일 김정은이 최고사령관에 취임하면서 북한 연말 달력에 최고사령관 취임기념일이란 새로운 행사가 하나 더 추가됐다. 북한은 주요 일정을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는 계기로 삼아 각종 행사를 열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주민들은 직장별로 김정은에 대한 충성 결의모임, 김정은에게 충성편지 쓰기, 장성택 처형 소감 발표 등 행사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김정일 사망일에는 김일성과 김정일 동상에 헌화하기, 추도식, 김정일 혁명사상 학습 등의 행사가 벌어진다.○ 본격적 사상학습 및 숙청은 내년 초에? 12월이 각종 기념일을 계기로 한 행사 기간이라면 1월은 학습과 총화의 기간이다. 일단 김정일 사망일을 맞아 잠시 숨을 고른 ‘장성택 일당 숙청 바람’도 새해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특정 정치적 사건에 대해선 고구마 줄기 캐듯 숙청을 진행해 왔다. 한 사람을 신문해 관련자가 나오면 그를 소환해 신문하는 방식이다. 1990년대 말 2만5000여 명을 숙청한 ‘심화조’ 사건 때에는 3년 넘게 숙청이 이어졌다. 지금 숙청 명단에 없다고 절대 안심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심화조 사건 때 숙청 인원이 많았던 것은 많은 간부들이 경쟁자를 날려 보낼 수 있는 기회로 삼아 밀고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비슷한 현상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장성택 계열과 관련이 없는 간부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1월 8일은 김정은의 생일이다. 북한이 이날을 공식적인 기념일로 만들어 발표할지 주목된다. 이런 기류에서 주민들의 삶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 북한 주민들은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못하고 김정은 신년사 암기에 매달렸다. 당시 한 북한 주민은 “과거엔 신년사나 공동사설이 나오면 일반 주민은 맥락만 학습하면 됐는데, 신년사를 전체 암송하라고 내리먹인(지시한) 일은 처음이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올해보다 더 혹독한 사상 학습이 강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올해 신년사 학습이 마무리 단계이던 1월 말부터 준전시상태를 선포해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까지 계속 야간훈련, 비상대피훈련과 소개훈련을 지속했다. 내년에도 이에 못지않은 긴장 조성 카드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국태 사망도 충격적 김국태 노동당 검열위원장(89)의 사망 소식도 북한 주민들에겐 적잖은 충격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 소식통은 “장성택 처형 소식이 전해진 지 불과 하루 만에 김국태가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이 발표되면서 주민들이 연이어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북한은 김국태의 사인을 급성심부전과 호흡부전이라고 발표했다. 북한이 고위 간부들의 사망 소식을 발표할 때 통상 ‘오랜 기간의 지병’이라고 얼버무리던 관례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 소식통은 “장성택 처형으로 충격을 받아 김국태가 숨을 못 쉬고 사망했다는 설이 북한 주민들의 공포감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국태의 사망은 현재 공포에 눌려 숨쉬기조차 힘든 북한의 심리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숙청으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얻은 것은 권력의 공고화만이 아니다. 후계자 내정 때부터 지금까지 김정은의 권력 장악 과정은 ‘자금의 장악’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성택 숙청을 통해 북한의 모든 자금과 이권은 김정은을 중심으로 돌게 됐다. 1990년대 중반 북한 경제 붕괴를 계기로 시작된 ‘쩐(錢)의 춘추전국시대’는 2013년 김정은의 천하통일로 막을 내리게 된 셈이다.○ 심복 내세워 빼앗은 자금줄 2008년 여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던 김정일은 깨어나자마자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군부 장악부터 맡겼다. 당시 북한에는 김정일의 자금인 ‘당 자금’과 노동당 작전부, 군부로 대변되는 3개의 큰 자금원이 존재했다. 김정은은 이 가운데 작전부 자금줄을 챙기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해외 공작을 위해 수많은 해외 기지를 두고 있던 작전부는 마약과 위조지폐, 무기 밀매로 막대한 불법 외화를 벌어들였다. 1억6000만 달러(약 1682억 원)어치의 마약이 적발돼 2006년 호주에서 억류된 ‘봉수호’ 사건도 작전부가 벌인 일이었다. 김정은은 노동당 작전부와 조사부(35실), 군 정찰국을 통합해 정찰총국을 만드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정찰총국장에 심복인 김영철 상장을 임명했다. 자연히 작전부 자금은 김정은의 손에 들어왔고 실세였던 오극렬 전 작전부장은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됐다. 2011년 김정일 사망으로 중앙당 38호, 39호실 등 전통적인 김정일 비자금은 자연스럽게 김정은에게 승계됐다. 김정은의 두 번째 칼날은 군부로 향했다. 2012년 4월 최룡해를 군 총정치국장으로 임명한 뒤 군부의 모든 자금줄을 내놓으라고 지시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선군정치를 내세운 김정일은 군부가 스스로 외화를 벌어 군을 유지하는 것을 용인했다. 이후 군부는 셀 수 없이 많은 ‘기지’라는 이름의 외화벌이 회사를 차려 수산물과 광물자원 등을 외국에 수출해 돈을 벌었다. 군단급 수산기지에는 50여 척의 선박이 소속돼 있을 정도였다. 최룡해는 총정치국 산하에 있는 모든 회사를 김정은에게 바쳐 솔선수범을 보였다.○ 숙청으로 챙긴 장성택의 자금줄 같은 기간 김정은의 후견인이던 장성택도 권력을 이용해 각종 이권을 빠르게 장악했다. 수도 건설을 책임진 장성택은 자금 마련 명목으로 건설자재 회사, 광물자원 회사 등에 심복을 심었다. 수출과 수입 시세 조작만으로도 얼마든지 큰돈을 빼돌릴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장성택 라인은 북한의 석유사업도 손에 넣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북한에서 석유 수입은 막대한 차익을 거둘 수 있는 사업. 처형된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이 석유사업 책임자였다. 그는 장성택의 핵심 비자금 관리인이기도 했다. 장성택은 이집트 통신회사 오라스콤을 끌어들여 매년 수억 달러의 수익이 창출되는 휴대전화 사업도 손에 넣었다. 행정부 산하 보위부와 보안서의 알짜 이권사업도 장 씨의 손에 넘어갔다. 이런 방식으로 장성택은 수십억 달러를 주무를 수 있는 건설, 통신, 광업, 해외자금 유치, 대중(對中) 교역 등 각종 이권사업을 손에 넣었다. 사업 명목은 당 자금이나 경제건설 자금 충당이었지만 실제 돈을 주무르는 사람들은 장성택의 심복들이었다. 장성택 숙청으로 그가 키워 온 이권사업도 일거에 김정은 수중에 들어가게 됐다. 북한이 발표한 장성택의 죄목에는 “장성택 일당은 교묘한 방법으로 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주요한 몫을 담당한 부문과 단위들을 걷어쥐고 내각을 비롯한 경제 지도기관들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국가재정 관리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라는 내용도 있다. 이번 숙청의 중요한 이유가 장성택 라인이 차지한 이권 때문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이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죄상을 나열하면서 사용한 ‘양봉음위(陽奉陰違)’라는 말은 남한에서는 생소하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귀에 익은 말이다. 동상이몽(同床異夢)과 함께 주로 학교에서 ‘김일성에게 도전했던 반당반혁명종파분자(反黨反革命宗派分子)들의 말로(末路)’를 학습하면서 배우는 말이다. “한 이불 속에서 다른 꿈을 꾼다”는 동상이몽과 “겉으로는 복종하는 척하면서 속으론 딴마음을 품는다”는 양봉음위 모두 중학교 6년 과정은 물론이고 대학 4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의무적으로 배우는 ‘혁명 역사’ 교과서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과거 반당반혁명종파 사건의 대표적 사례는 1968년 당시 북한의 2인자였던 박금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담당부위원장과 김도만 선전담당부위원장 등 갑산파(甲山派) 숙청이다. 1969년 김창봉 민족보위상 등 빨치산파 군부 인물들을 숙청할 때는 ‘반당반혁명종파분자’라는 죄명 외에도 ‘군벌주의자’라는 낙인도 함께 찍었다. 1956년 이른바 ‘8월 종파사건’으로 숙청된 소련파와 연안파의 죄상도 반당반혁명종파분자였다. 김정은의 장성택 숙청 과정은 방식과 죄명 나열에 있어서 김일성에게서 전수돼 60년간 이어져 내려온 북한의 전통적 반대파 숙청 방식의 판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당반혁명종파분자’라는 죄명이 김정일 통치 시대엔 거의 사용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김정은이 외형만 할아버지 김일성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숙청방식까지도 김일성 시대를 따라 배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당반혁명종파분자 ::북한에서 노동당이 허용하지 않는 개인적 파벌을 형성해 당과 혁명을 반대했다는 사람에게 붙이는 죄명. 반당분자, 반혁명분자 등으로 구분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함께 묶어 반당반혁명종파분자라고 쓴다. 북한에서 당은 곧 수령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런 낙인이 찍히면 ‘역적’으로 간주돼 본인 숙청뿐 아니라 일가가 멸족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숙청 발표는 북한에 다가올 핏빛 연말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장 부위원장이 중앙당에 입성해 40년간 다져온 인맥을 고려할 때 숙청 규모는 사상 최대인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내부에서는 장 부위원장의 숙청을 김경희가 주도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극악한 역적으로 규정 장 부위원장의 죄명인 ‘반당반혁명종파분자’는 북한 체제에서 ‘역적’ ‘역모’에 해당하는 것으로 친족은 8촌까지 멸족하는 최고의 중범죄다. 장 부위원장에 대해 ‘반국가적 반인민적 범죄행위’ ‘부화타락’ ‘부정부패’ 등 각종 엄중한 사유들도 추가로 나열됐다. 북한이 특정 인물을 이 정도로 매도하고, 체포 장면까지 공개한 전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장 부위원장은 정치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역적 중의 극악한 역적’으로 매도돼 사라진 것이다. 북한 발표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장성택 일당’이란 단어가 7차례, ‘장성택과 그 추종자’들이란 단어가 각각 2차례 등장한 점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장성택 라인을 모두 숙청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장 부위원장이 최고의 ‘역적’으로 규정된 이상 그의 라인은 역적을 추종한 무리로 매도돼 대부분 숙청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장 부위원장은 김일성 일가 외에 북한에서 자기 라인을 유지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허용됐던 유일한 인물이다. 김정일도 이를 어느 정도 용인했다. 측근 그룹은 2004년 장 부위원장이 2년간 실각했을 때 함께 좌천됐지만 이후 복귀한 장 부위원장은 이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명실상부한 2인자가 된 장 부위원장의 자기 사람 챙기기는 더욱 노골화됐다. 최근 급부상한 북한의 50, 60대 신진 간부그룹의 상당수가 장 부위원장 라인으로 분류된다. 대표적 인물은 이영수 노동당 근로단체부위원장,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 최부일 인민보안부위원장, 노두철 내각 부총리, 이종무 체육상, 오금철 인민군 부총참모장 등이다.○ 숙청 범위 최소 수만 명 될 듯 북한에서 특정 인물을 숙청할 때는 일가친척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연관된 인물들이 모두 숙청 리스트에 오른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한국으로 망명했을 때 황 전 비서와 연루돼 숙청된 인물은 200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학자로 살아온 황 전 비서와 권력의 중심부에서 의도적으로 측근을 챙겼던 장 부위원장의 위상을 비교해 본다면 이번 숙청 대상자는 2만 명이 넘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의 숙청 방식은 피라미드식으로 이뤄진다. 이번 경우 장 부위원장과 가까웠거나 그의 라인으로 승진한 인물을 숙청한 뒤 다시 그 사람과 가까웠던 사람을 조사해 또 숙청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아래로 내려가면서 숙청작업을 벌이면 대상자 범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더구나 북한은 반당반혁명종파 사건의 경우 일가족까지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거나 깊은 산골로 추방하기 때문에 숙청 대상자는 셀 수 없이 늘어날 수 있다.○ 장성택의 아내 김경희 어떻게 되나? 장 부위원장에게 씌워진 죄명으로 볼 때 아내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도 원칙적으론 숙청 대상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김경희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이자 김씨 혈통의 어른이어서 함부로 숙청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장 부위원장과 이혼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김경희가 장 부위원장 숙청 과정에서 조카의 손을 들어줬을 가능성이 높아 이번 기회를 통해 오히려 김경희의 위상이 높아질 수도 있다. 김경희는 1972년 장 부위원장과 결혼했지만 정상적인 결혼생활은 6년 정도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1978년 장 부위원장이 젊은 여성들과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김경희는 오빠인 김정일에게 부탁해 남편을 제철소 노동자로 혁명화 교육을 보낸 뒤 2년간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둘의 부부 관계는 사실상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북한은 과거 숙청을 벌일 때에도 여성에게는 비교적 관대했다. 남편이 정치범으로 몰려 수용소에 끌려가도 아내를 이혼시켜 친정으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기도 했다. 자녀의 경우 수용소에는 아들만 함께 끌고 갔고, 결혼한 형제 중 여자 형제는 출가외인으로 간주해 연대 처벌을 하지는 않았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태국의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8일 제1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의원직을 총사퇴했다. 아피싯 웨차치와 민주당 대표는 “무책임한 잉락 친나왓 총리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당 소속 하원 의원 108명 전원이 즉각 사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잉락 총리는 이날 TV 연설을 통해 “시위의 장기화로 초래된 정치 위기를 해소하자”며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앞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수텝 트악수반 전 부총리는 7일 이틀 후인 9일을 ‘최후 결전의 날’로 선포했다. 그는 “9일 오전 열릴 시위에 시민이 많이 모이지 않으면 더는 시위를 벌이지 않겠다”고 7일 밝혔다. 수배 중인 트악수반 전 부총리는 “잉락 정부를 무너뜨리지 못하면 나를 비롯한 시위대 지도부가 정부 전복 혐의에 대해 조사받기 위해 자수하겠다”고 덧붙였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12년 만에 첫 결실을 봤다. 159개 WTO 회원국이 무역 원활화 등 일부 분야에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1995년 WTO 출범 후 처음으로 범세계적인 무역협정이 타결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일(현지 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9차 WTO 각료회의’에서 무역 원활화, 농업 일부 분야 제도 개선, 개발도상국 우대 등 3개 분야로 구성된 ‘발리 패키지’가 타결됐다고 밝혔다. 발리 패키지는 2001년 협상이 시작된 DDA가 12년이 지나도록 회원국 간 이견으로 합의에 실패하자 타결 가능성이 높은 의제만을 골라 구성한 협정이다. WTO 159개 회원국이 모두 모여 협정 타결을 본 것은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 발효로 WTO가 출범한 이후 처음이다. 발리 패키지를 통해 회원국들은 통관 절차를 개선해 비관세 교역장벽을 낮추도록 하는 내용의 ‘WTO 무역 원활화’ 협정에 합의했다. 무역 원활화 협정은 2015년 7월 31일까지 WTO 회원국의 동의 절차를 받게 되며 회원국 3분의 2 이상이 수락하면 해당 회원국에 한해 협정이 발효된다. 국제상업회의소(ICC)와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 따르면 무역 원활화 협정으로 세계적으로 1조 달러 이상의 수출 증가와 2000만 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서는 이 협정으로 무역 비용이 10% 감소하면 장기적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8.74%, 수출은 11.3% 늘어날 것으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내다봤다. 농업 분야에서는 정부가 허용한 일정 물량의 농산물에만 낮은 관세를 매기고 초과 물량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저율할당관세(TRQ)를 개발도상국에 더 유리하게 개선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3년 연속 TRQ 소진율이 65% 미만일 때는 TRQ 적용 방식을 선착순 방식으로 바꾸도록 했으나 한국을 포함한 개도국은 이 의무를 면제받게 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협정이 발효되면 통관 절차가 크게 개선돼 한국 기업의 수출입 여건도 개선될 것”이라며 “최종 협정문에 한국에 유리한 조항이 다수 포함돼 전체적으로 잘된 협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번 협상 타결을 계기로 WTO를 통한 다자간 무역협정에 대한 신뢰도 어느 정도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각국은 무역 장벽을 낮추기 위한 DDA 협상이 계속 결렬되자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다자 간 FTA에 집중해 왔다. 문병기 weappon@donga.com·주성하 기자}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이 소말리아와 같은 무정부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연합(AU)은 7일 중앙아프리카공화국 파병군의 규모를 현재 2500명에서 6000여 명 규모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프랑스도 현재 1200여 명의 자국군이 배치된 중앙아프리카에 400여 명을 추가로 파병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군과 AU 평화유지군의 목표는 이 나라의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모든 세력의 무장을 해제하는 것.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3월 이슬람계 반군이 수도 방기를 점령하고 프랑수아 보지제 전 대통령을 축출한 이래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이런 혼란으로 인해 이슬람 무장조직과 기독교계 무장조직 사이에 서로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 벌어져 5일과 6일 이틀 동안에만 300명 이상이 숨졌다. 평균 기대수명이 48세에 불과하고, 전체 인구 500만 명 중 외과의사는 불과 7명밖에 없는 세계 최빈국 중앙아프리카에서는 ‘인종 청소’에 비견되는 대학살이 이슬람 반군에 의해 자행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돼 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할머니, 앓지 말고 건강하여 노동당 시대에 장수하십시오.” 지난해 9월 4일 평양 창전거리 종로동 1반 1현관 3층 1호를 찾은 김정은은 이 집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당부했다. 그는 이날 평양의 랜드마크로 우뚝 선 창전거리를 찾아 평양기계대학 교원 심동수의 가정을 방문했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이 ‘방석을 연세 많은 할머니에게 양보했고, 집 안 구석구석 살피며 물은 잘 나오는지,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는지 자상하게 요해했다’고 전했다. 다음 날 한국 언론은 이 집 싱크대에서 컵을 닦는 이설주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어떻든 김정은이 “장수하라” 당부하고 떠난 지 불과 몇 달 뒤 할머니는 사망했다. 다름 아니라 난방이 안 되는 집에서 영하의 추위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새로 건설된 창전거리는 평양에서도 매우 인기가 좋은 거주지역이다. 전기 사정이 열악한 겨울에도 보통 오전 5시부터 7시 사이, 오후 6시부터 11시 사이엔 불이 들어온다. 주택은 정전돼도 외부 장식등은 꺼지는 법이 없이 번쩍거린다. 수돗물도 하루 두세 번은 나온다. 문제는 난방이다. 작년 겨울에도 창전거리 아파트 입주자들은 추위로 크게 혼이 났다. 난방이 안 들어오기는 평양 대다수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아파트들은 심지어 난방관이 다 삭아 버렸다. 그래서 많은 집들은 집에 ‘무동력 난방장치’를 설치했다. 이는 부엌이나 베란다에 부뚜막을 쌓고 석탄으로 덥힌 물을 배관을 통해 방으로 보내는 ‘가정식 온수난방장치’이다. 이마저도 설치에 80∼100달러 정도, 석탄값도 한 해 40달러나 들어 중산층 이하는 설치할 엄두도 못 낸다. 또 연탄가스 중독 사망자가 적잖아 추워도 참는 집이 적지 않다. 창전거리 아파트 문제는 당에서 배려로 하사한 집이라며 개조를 못하게 한 때문이다. 돈이 있어도 무동력장치나 구들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김정은이 방문한 집은 혁명사적 주택이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나마 평양의 물 사정은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당시 평양에 살았던 나는 아파트에선 추운 것보단 물이 없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체험했다. 추위는 방에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몇겹 이불 속에서 더운 물통을 안고 자면 괜찮다. 지금도 평양의 대표적 대규모 단지인 광복거리의 대다수 집은 그렇게 산다. 또 다른 대규모 단지인 통일거리는 다행히 동평양화력에서 온수를 보내줘 10∼15도는 보장된다. 고난의 행군 때에는 물을 긷기 위해 오전 4시부터 1층에 내려가 길게 줄을 서야 했다. 물을 담은 양동이 두 개를 들고, 흘린 물로 빙판이 된 계단을 20층쯤 오르면 쓰러질 정도다. 이렇게 고난을 헤치며 구한 물로 밥은 어쩔 수 없이 지어야 한다. 컵에 담은 물을 수건으로 적셔 얼굴을 닦는 것이 세수였다. 청소는 어림도 없거니와 물걸레로 닦아도 바로 언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는 생리상의 ‘큰 것’을 해결하는 일이다. 수세식 변기는 있어도 물이 없다. 그렇다고 배를 그러쥐고 몇십 층을 달려 내려갈 수도 없고. 그래서 종이에 ‘변’을 받았다가 밤에 슬그머니 버리는 집들이 많았다. 몇십 층 높이에서 버리는 바람에 가로등도 없는 밤거리를 걸어가다 오물 벼락을 맞는 사람들도 있어 이런 경우 “번개 맞았다”고 했다. 밖에다 버리지 말라고 아무리 감시를 해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선 소용없었다. 2000년대 초반 나라 사정이 좀 나아지자 당국은 양수장 단독 전력선 공사와 수도관 보수를 우선적으로 했다. 지금은 저층은 일주일에 한두 번, 고층은 보름에 한 번 정도라도 수돗물 공급이 되니 많이 좋아진 것이다. 평양 아파트는 물과 엘리베이터 문제 때문에 대개 저층은 잘사는 집, 고층은 가난한 집이 산다. 특히 고층에 사는 노인들은 엘리베이터가 다니지 않으면 하루 종일 나가지도 못하고 집 안에서 떨어야 한다. 돈을 좀 벌면 웃돈을 주고 위에서 아래로 ‘신분 이동’을 하려 애쓴다. 하지만 요새 평양에는 전혀 딴 세상에서 사는 아파트들이 늘고 있다. 노동당 재정경리부가 직접 담당한 이른바 ‘선물아파트’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보통강구역 전승기념탑 옆의 30층 아파트이다. 항일 투사 유가족, 퇴직한 고위간부들이 산다. 1999년 스페인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마라톤 우승을 하고 “결승 지점에서 장군님이 어서 오라 불러주는 모습이 떠올라 끝까지 힘을 냈다”는 한마디로 단숨에 선군시대의 귀감으로 떠올라 인생 반전을 이뤄낸 정성옥도 이 아파트에 산다. 그밖에 중구역 동안동의 30층 예술인아파트, 대성구역 용흥동의 35층 은하수아파트와 그 맞은편에 36층과 44층짜리 김일성대 교원아파트도 지난해 이후 건설된 선물아파트다. 이 아파트들은 정전이 거의 없고 전기난방을 사용하며 엘리베이터가 항시 가동된다. 10월 말 김정은이 방문한 김일성대 교원아파트는 240m²의 면적에 방만 8개이며 가구까지 국가에서 마련해 주었다. 한국 기준으로도 고급 아파트다. 건설을 맡은 공병국 1여단 여단장이 “너무 많은 돈과 품이 들어 이런 집은 앞으로 더 짓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국은 인근 주민들의 거센 불만을 의식해 선물아파트엔 밤에 창가림을 치라는 지시까지 했다. 김정일 시대의 ‘선물정치’는 김정은 시대 들어 고가의 아파트로 계승 발전했다. 평양은 분명 특혜 받는 도시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 평양은 새로운 계층으로 다시 나뉘고 있다. 선물이란 이름으로 한정된 자원을 독점한 소수와 이를 빼앗긴 다수로. 어느 때보다 매서운 한파가 예고된 올겨울엔 빼앗긴 고통이 더욱 뼈저릴 것이다.(※추신-기사에 언급됐다는 이유만으로 심동수 가족이 억울한 화를 당할까 걱정하는 것이 북한에 대한 남쪽의 ‘상식’이다. 하지만 탈북자도 돌아오면 용서해 준다는 노동당이 설마 그렇게 옹졸할까 싶어 믿어보기로 했다. 그 가족은 정말 얼어 죽은 죄밖에 없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국의 미사일방어(MD)망을 뚫는 러시아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20여 기가 내년에 전략미사일군에 배치된다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7일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전략미사일군 발전문제 회의에 참석해 “올해 2개 미사일 연대가 새로운 이동식 미사일 시스템을 공급받았으며 내년에는 22기의 ICBM이 전략미사일군에 추가로 배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BBC방송이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새 ICBM은 어떤 MD망도 뚫을 수 있는 첨단 무기라고 설명했으나 미사일의 종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군사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ICBM이 2010년부터 러시아군에 실전 배치되고 있는 신형 ‘RS-24(야르스)’ 미사일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미사일은 단일 탄두를 탑재한 토폴 미사일과 달리 개별 조종이 가능한 4개의 핵탄두가 한꺼번에 탑재돼 요격이 힘들며 최대 1만1000km를 비행해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다. 핵탄두 하나의 위력은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 위력(15kt)의 10∼20배에 해당하는 150∼300kt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보유한 핵미사일의 4분의 3 이상은 옛 소련 시절에 생산돼 유효 사용 기한을 넘겼다. 푸틴 대통령은 “핵전력 강화가 국가의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이날 회의에서 강조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파나마 당국이 불법 무기 적재 혐의로 4개월간 억류해 온 북한 화물선 청천강호와 선원 대다수를 석방한다고 27일 발표했다가 다시 선박만 풀어주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담당 검사는 이날 선장과 일등항해사 등 무기 밀매 혐의가 있는 3명을 제외한 나머지 선원 32명은 적재 화물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곧 석방하겠다고 발표했었다.}

스웨덴 속옷회사 ‘비에른 보리’가 누리꾼과의 약속대로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로 알려진 북한의 수도 평양에 속옷 450벌을 배포했다. 하지만 예고했던 공중 투하 방법이 아닌 직접 속옷을 들고 북한으로 들어가 평양의 호텔 등 여기저기에 몰래 뿌리는 방법으로 배포했다. 19일 비에른 보리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회사 대표는 속옷을 배포하기 위해 직접 관광비자로 평양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관광객으로 위장해 들어간 그는 도착 즉시 안내원을 따라 관광 일정을 소화하면서 몰래 속옷을 뿌리느라 고생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속옷은 주로 호텔 로비와 복도, 침대 위에 놓고 왔으며 양각도 국제호텔의 룸에서 아래로 속옷을 던지기도 했다. 이 대표는 북한에 들어갈 때 신분을 속이고 들어갔다. 그 때문에 홈페이지에 소개된 그의 여권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져 있다. 이번 이벤트는 비에른 보리가 ‘거대한 유혹의 폭탄’이라는 이름으로 ‘사랑과 유혹의 대량무기’가 가장 필요한 도시를 고르겠다며 자사의 섹시한 속옷을 하늘에서 투하하기에 가장 적합한 도시를 뽑기 위해 지난달 인터넷 투표를 실시한 결과 평양이 최종 선정된 것에 따른 것이다. 이 회사의 계획이 알려지자 11만 명이 넘는 한국 누리꾼들이 이 회사 웹사이트에 몰려가 평양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기상천외한 후보지 선정에 비에른 보리 측은 난색을 표명했고 누리꾼들은 과연 약속이 지켜질지에 관심을 쏟았다. 회사 측은 결국 나름대로의 색다른 방법으로 약속을 지키고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대표는 홈페이지에서 10일간의 평양 체류 기간을 마치고 떠나는 날 매일 5곳 이상의 박물관 등을 들르느라 피곤한 시간을 보냈다며 하지만 기회가 있으면 다시 평양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본보기를 만들고 따라 배우게 하는 것은 북한의 고전적 선전선동 방식이다. 북한군도 예외가 아니다. 김일성 시대에는 경기 파주시 진동면 맞은편 해발 200여 m의 ‘대덕산 초소’가 본보기가 됐다. 1963년 2월 이곳을 찾은 김일성은 한 명이 백 명을 당하라는 뜻으로 ‘일당백’이란 구호를 제시했다. ‘일당백’은 지금까지도 북한군의 훈련구호다. 김정일 시대에는 평양고사포병부대 122여단 산하의 대공포 중대가 ‘다박솔 초소’란 이름으로 시대의 상징이 됐다. 다박솔은 초소 주변에 작은 소나무가 우거졌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인데 이 소나무들은 김정일 시찰 몇 달 전 주변 군인들이 총동원돼 심은 것이다. 언 땅을 파고 큰 나무를 심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작은 소나무들을 심을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은 1995년 설날 김일성 시대 매년 해오던 신년사를 하지 않고 이 초소를 찾았다. 북한은 이날을 선군정치의 시작일로 정하고 있는데, 사실 선군정치란 말은 2년 뒤부터 등장한다. 김정일 스스로도 “선군은 군사독재가 연상되기 때문에 쓰기를 망설였다”고 고백했다 한다. 김정은 시대에는 2010년 11월 연평도를 포격했던 무도(茂島)가 대덕산 초소와 다박솔 초소의 뒤를 이어 새로운 군 영도의 본보기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일당백이나 선군정치와 같은 용어가 나오진 않았지만, 머지않아 김정은이 허름한 목선을 타고 무도와 장재도를 방문했던 지난해 8월 17일이 상징적인 날로 지정될 것이 분명하다. 김정은은 올해 3월과 9월에도 이곳을 방문했다. 1년 남짓 기간에 세 번이나 찾은 것이다. 김정은은 무도 방어대에 영웅방어대라는 칭호도 내렸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우리 군은 강령군 개머리 진지에서 최초로 날아온 방사포탄이 무도에서 발사된 것으로 착각하고 이곳 해안포대에 포격을 퍼부었다. 공격을 받은 무도 해안포도 2차 포격에 참가했는데, 명중률이 보잘 것 없었던 방사포와는 달리 무도의 해안포대는 반세기 가까이 연평도와 대치해 온 ‘내공’ 덕분인지 비교적 포격이 정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투력과는 별개로 무도의 병사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었다. 김정은이 최초로 방문해 병사들과 찍은 기념사진에는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한 병사들이 적잖게 눈에 띄었다. 요즘 북한군 전방부대는 물자공급이 제일 잘 되지 않아 가난한 노동자 농민의 자녀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섬을 방문한 김정은은 한심한 실태에 화가 나 그 자리에서 현영철 총참모장을 중대장으로, 전창복 후방총국장은 중대 사관장으로 한 달 동안 근무하라고 지시했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은 체면을 봐줘서 대신 총정치국 부국장이 중대 정치지도원으로 한 달 근무했다. 우리 정보망에서 북한군 총참모장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을 때 그는 전방 해안포 중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듬해 3월까지 무도와 장재도에는 군관들을 위한 현대적 주택들이 대거 건설돼 최영림 총리가 현지시찰까지 했다. 9월엔 김정은이 직접 방문해 새로 건설된 주택과 내무반을 둘러봤다. 병사들도 작년보다 살이 많이 쪘다. 김정은의 눈에 든 무도 방위대장은 대대장급에서 최소 중장급이 맡는 보직인 총정치국 부국장으로 벼락 승진했다. 2008년 8월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깨어난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제일 먼저 넘겨준 것은 군(軍)이었다. 2009년 초부터 북한군엔 청년대장의 영군체계를 세우라는 지시가 하달됐고 김정은이 직접 군 업무를 맡았다. 다행이라면 김정은은 아버지처럼 현실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는 것 같다. 김정일 시대에는 군부대 시찰 시 영양실조 환자들과 건장한 병사들을 바꿔치기 하는 눈속임이 당연시됐다.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김정은은 며칠 시차를 두고 한 부대를 두 번 방문했다. 예고 없이 찾아간 두 번째 방문 때에는 앞선 시찰 때 건강한 병사들로 넘쳤던 내무반에 영양실조 환자들이 누워있었고, 식당에 가득했던 후방물자도 다 사라졌다. 김정일 시대처럼 여기고 김정은을 속이려던 간부들이 크게 혼이 났음은 물론이다. 식량난 탓에 최근 북한군 기강도 말이 아니다. 전방 부대의 경우 편제가 100명인 중대에서 70명만 유지하고 있어도 욕을 먹지 않는다. 없는 인원은 더러는 영양실조에 걸려 집에 치료받으러 갔고, 더러는 부대에 돈을 보내기로 하고 집에 가 있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그렇게 보내온 돈으로 군관들이 먹고살고 부대 식생활에 보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때 배후자 선호도가 상위권이던 군관들 인기도 말이 아니다. 요즘엔 군관 하겠다는 사람도 줄고, 그렇다 보니 제대도 잘 시켜주지 않는다. 김정은은 최근 1년 동안 물자 공급에 큰 관심을 돌리고 탈영 통제도 심하게 하고 있지만 밑에선 “옛날보다 더 못살게 군다”고 불만이 많다.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중대장, 정치지도원 대회도 땅바닥에 떨어진 초급 지휘관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내년부턴 군에 농장 경작지를 분양해 식량을 자급자족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화전농사에 내몰리던 군인들이 이제 전문 농사꾼이 되게 생겼다. 얼마 전 북한군 탱크부대 사관이 탈북한 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읽다 웃은 적이 있다. 다섯 쪽의 편지에는 올해 농사는 잘됐다는 둥, 내년엔 비료를 어디서 얻어야 한다는 둥 처음부터 끝까지 농사 이야기만 하다 끝났다. 하긴 군에서 하는 일이 그것밖에 없으니 농사 빼곤 할 이야기도 없었을 것이다. 남쪽에선 북한과 전쟁하면 누가 이기느냐에 관심이 크다. 하지만 북한군의 처지에서 봤을 때 그들의 현실적 주적은 한국이 아니라 굶주림이다. 이미 많은 병사들이 먹질 못해 전력에서 이탈했다. 우리가 ‘북한과 전쟁을 하면’이라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을 때 북한군은 이미 생사를 걸고 기아와의 전쟁을 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슈퍼태풍 ‘하이옌(海燕)’이 필리핀을 강타한 지 7일째. 14일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인 타클로반은 점차 평온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구호품을 실은 군용트럭이 오가고 가구당 3kg씩 쌀도 배급됐다. 한국 정부의 수송기도 이날 오후 세부에 도착했다. 외교부는 이날까지 연락이 두절된 한국인이 총 17명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 파도 덮치는 트럭 속에서 하루 버텨 타클로반에서 컴퓨터 가게 및 노래방기기 대여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 한명학 씨(66)는 태풍이 덮칠 때 노래방에 남아 있다 해일을 맞았다. 그는 8일 아침 큰 파도에 휩쓸렸지만 극적으로 15t 덤프트럭을 붙잡았고 천신만고 끝에 운전석으로 기어 들어가 하루가량을 굶은 채 버텼다. 14일 기자와 만난 한 씨는 “5분에 한 번꼴로 집채 같은 파도가 밀려와 트럭이 뒤집힐 것 같았다. 당일 밤새 불안에 떨었다”고 회상했다.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이동수단을 찾지 못한 한 씨는 12일 오후 겨우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집에 도착했다. 그의 집은 폭우로 1층이 모두 침수됐다. 특히 1층에 있던 컴퓨터들이 몽땅 물에 잠겼다. 한 씨는 “20년 동안 필리핀에서 쌓은 생계 터전을 잃었다”며 망연자실했다. 한국에 시집온 필리핀 출신 H 씨(25)는 연락 두절로 생사가 파악되지 않았다. 그는 이날 타클로반 외곽 사마르 주 산타리타 마을에서 15개월 된 아들과 함께 외교부 신속대응팀을 만났다. 대전이 시댁인 H 씨는 원래 내년 1월 귀국하려 했다. 하지만 아이가 피부병을 앓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정부의 공군 수송기로 이르면 15일 한국에 올 예정이다. ○ 국제사회 지원 가속화 국방부는 외교부 등 관련 기관과의 회의를 통해 군 수송기를 준비했다. 1차로 14일 오전 6시 식품 텐트 담요 정수제 등의 구호물자 20t을 C-130 수송기 2대에 실어 타클로반으로 보냈으나 공항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세부로 회항했다. 2차로 15일 오전 6시 C-130 수송기 3대가 해외긴급구호대 40명 및 구호물자 10t과 함께 필리핀으로 떠난다. 이미 수송기 4대를 투입한 미국은 이날 MC-130 수송기 8대, 신형 수직이착륙기 MV-22 오스프리 등을 동원했다. 특히 핵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미 함정들도 이날 피해지역에 도착했다. 미국은 이번 주말까지 구호활동을 하는 미군 병력을 현재보다 3배가량 많은 1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도 타클로반 지역 이재민 1만 가구에 위생키트 등을 전달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역시 5만 명의 이재민에게 쌀 등 구호물자를 지원했다. 일본은 1000명 규모의 자위대원을 파견한다. 2005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때의 925명 파견을 넘어서는 자위대 해외 긴급구호 활동 사상 최대 규모다. 일본 정부는 함정 3척과 수송기도 파견할 방침이다. 당초 1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해 ‘쥐꼬리 지원’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중국은 14일 지원 규모를 160만 달러(약 17억700만 원)로 늘린다고 밝혔다. 필리핀 외교부는 14일까지 세계 36개 국가와 기관들이 모두 8700만 달러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한편 필리핀 정부는 하이옌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13일 2300명을 넘어섰다고 공식 집계했다. 특히 타클로반 지역 방송 기자 등 최소 11명의 언론인도 숨지거나 실종됐다. 2300명은 베니그노 아키노 3세 대통령이 내놓은 최대 사망자 추정치 2500명에 근접하는 수치다. 아키노 대통령은 1만 명 이상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보도를 “과도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타클로반=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워싱턴=정미경 특파원 / 주성하 기자}

태풍 하이옌(海燕)이 휩쓸고 지나간 지 6일째인 13일 필리핀 타클로반은 폭동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물과 음식을 제공받지 못한 이재민들은 먹을 것이 있다고 판단되면 무조건 몰려들었고, 여의치 않으면 떼강도로 돌변한 듯 약탈에 나섰다. 필리핀 당국의 구호와 구조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턱없이 모자랐고, 해외에서 온 봉사단체들은 이제 겨우 타클로반에 도착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식량과 옷가지의 제공이 하루 이틀만 더 늦어진다면 곧바로 폭동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얘기다. 이를 우려했는지 알프레드 로무알데스 타클로반 시장은 “친척이 있다면 아무데라도 피난을 가라”며 주민들의 엑소더스를 촉구했다.○ 한국 민간 구호단체 현지 도착 12일 가장 피해가 심각한 타클로반에 도착한 한국 민간구호단체 기아대책의 선발대 5명은 13일 집중적으로 구호 대상지 물색 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교통수단을 확보하기 어려워 이 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기아대책은 인근 세부 섬에서 임차한 화물차를 5시간에 걸쳐 배편을 이용해 레이테 섬으로 옮긴 뒤 다시 육로로 4시간 이동해 타클로반에 도착했다. 성봉환 선교사는 “14일 화물차가 도착하면 남레이테 주까지 가서 구호활동 본대가 왔을 때 필요한 물품을 직접 실어 나를 계획”이라고 말했다. 피해 지역을 둘러본 119국제구조대 김용상 대원은 주민들이 ‘KOREA’라고 쓰인 글씨만 보고도 “도와주려고 와 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전했다. 기아대책은 14일 인근 아니봉 마을에 쌀과 설탕, 라면이 담긴 구호물품 상자 100여 개를 제공하는 구호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담요, 텐트, 위생키트, 비상식량 등을 실은 공군 C-130 수송기 두 대는 14일 오전 6시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을 출발해 오후 3시경 타클로반에 도착할 예정이다. 물자는 필리핀 사회개발부에 전달돼 이재민에게 배포된다. 또 의료진과 119구조대 등으로 구성된 긴급구호대는 15일 공군 수송기편으로 타클로반에 도착할 예정이다. 긴급구호대는 의료진 20명, 119구조단 14명, KOICA 4명, 외교부 2명 등 40명으로 구성됐다. 13일 오전 세계식량계획(WFP)이 지원한 3000여 명분의 식량이 일차로 타클로반에 도착했다. 식량 분배가 시작됐다는 소식에 생존자들이 몰려들어 수백 m의 긴 줄이 순식간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300만 달러(약 246억7000만 원)의 긴급 구호자금을 제공하고 5억 달러를 차관 형태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민들, ‘시신과의 동거’ 현지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군인이나 경찰 관계자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DOH(Department of Health·보건부)’라는 글씨가 쓰인 필리핀 정부의 공식 시신 처리 가방에 담긴 시신이 길가에 보이지만 대부분은 방치된 상태였다. 12일 비가 내렸다가 이날 햇빛이 강해지자 시신이 불룩해지는 등 부패가 빨라지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피해 지역인 공항 부근에서도 시신을 수습하는 공무원 인력을 찾기는 어려웠다. 시민들도 퉁퉁 부은 시신에서 불과 5∼10m 떨어진 곳에서 밥을 지어 먹거나 돼지고기 구운 것을 판매하는 등 ‘시신과 동거하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정류장 의자에도 포대에 싸인 시신이 쌓여 있는 등 쓰레기 더미에서 포대만 보여도 시신인가 싶어 놀랄 정도다. ○ 이재민 굶주림 6일째, 당국은 ‘약탈과의 전쟁’ 이날도 자동차는 물론이고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타클로반에서 인근 사마르 섬으로 빠져나가는 긴 행렬이 만들어졌다. 솥단지와 간단한 보따리만 싸서 걷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이 탈출하던 오전 10시경(한국 시간 오전 11시경) 레이테 섬과 사마르 섬을 잇는 다리 부근에서 무장 괴한들과 정부군 간의 총격전이 벌어져 시민 한 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신속대응팀도 현장을 지나다 긴급히 피신했다. 12일엔 굶주린 이재민 수천 명이 타클로반 아랑가랑 지구의 정부 식량창고를 습격해 약 10만 가마의 비축미를 약탈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창고 건물 벽이 무너지면서 이재민 8명이 압사했다. 타클로반 ANC TV는 13일 가장 큰 피해를 본 아부카이 마을에서 약탈에 나선 무장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던 정부군 사이에 총격전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무알데즈 타클로반 시장은 “사람이 적을수록 먹여 살릴 부담이 준다”며 주민들의 이웃지역으로의 탈출을 독려했다.○ 생존확인된 한국인은 32명 태풍 피해 당시 타클로반과 인근에 있던 한인은 총 55명으로 이날 새로 집계됐다. 언론 보도를 통해 외교부 신속대응팀이 현지에 파견된 소식을 접한 한국 거주 가족들이 타클로반 거주자들의 생존을 확인해 달라며 외교부에 신고하면서 수가 늘었다. 이 중 생존이 확인된 사람은 32명이고 여전히 연락이 두절된 사람이 2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상당수 한인이 이미 육로나 항공편으로 타클로반을 빠져나갔다. 외교부 신속대응팀은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는 23명의 주소지를 찾아가거나 지인을 통해 연락하는 방법으로 계속 생사를 확인하고 있다. 한국 공군 수송기가 타클로반에 도착하면 남아 있는 교민들을 태워 인근 세부 지역 등으로 보낼 계획이다.○ 당국, 사망 2344명-부상자 3804명 공식발표 시신 수습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태풍으로 인한 사망자 집계도 구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은 13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태풍에 따른 인명 피해가 당초에 알려진 1만 명보다 훨씬 적은 최대 2500명 선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정부는 13일 현재 태풍 하이옌으로 사망자 2344명, 실종자 79명, 부상자 3804명이 공식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확인된 시신만 집계한 숫자여서 향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태풍 하이옌에 따른 피해 규모를 최고 수준인 ‘3급 재해’로 분류했다. 이는 22만 명이 희생된 2004년 인도양 지진해일(쓰나미), 약 23만 명이 숨진 2010년 아이티 대지진과 같은 등급이다. 타클로반=허진석 jameshuh@donga.com / 주성하 기자}

태풍 ‘하이옌(海燕)’이 할퀴고 지나가 폐허로 변한 대재앙의 현장에 구호단체 관계자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구호작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재난 발생 4일째에 접어든 피해 지역은 방치된 시신이 부패하면서 악취가 진동하고 배고픔에 견디다 못한 이재민들이 곳곳에서 약탈에 나서 치안마저 불안해져 ‘살아남은 자’에게도 ‘죽은 자’ 못지않게 생지옥이 돼 가고 있다.○ 참혹한 재난의 현장 태풍이 지나간 지 사흘째인 11일 타클로반에는 상흔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언덕 위 야자나무는 모조리 드러누웠고 도시의 95%가 파괴된 시내의 도로 곳곳은 쓰레기에 막혔다. 납작하게 무너져내린 집 잔해 속에서 수습된 셀 수 없이 많은 시신은 천에 덮인 채 길가에 방치돼 있었다. 섭씨 30도를 넘는 기온과 높은 습도 때문에 시신이 빠르게 부패되면서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차량 몇 대가 시내를 돌면서 시신을 수습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시신이 새로 발굴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확한 사망자 집계를 내기도 어려운 실정이고 생존자들은 가족의 시신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당장 마실 물도, 먹을 것도 없는 사람들은 쓰레기더미를 뒤졌다. 11일 타클로반 공항이 열려 2, 3편의 수송기가 운항됐지만 22만여 명의 주민이 살았던 이곳의 상황에 비하면 구호품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쓰레기가 길을 막아 물자 공급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은행이나 슈퍼마켓을 약탈하는 행위가 계속되는 등 치안 상황도 최악이다. 타클로반으로 들어오던 구호품 수송 트럭이 약탈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주민들이 총기를 들고 직접 자신들이 살았던 마을의 폐허를 지키는 곳도 있다고 미국 CNN방송은 전했다. 타클로반의 병원 대부분은 전기가 끊기고 의료물자도 없어 간단한 응급조치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부상자 중 어린이가 많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현지 구호단체 관계자들은 사망자의 40% 정도가 어린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태풍이 오기 전 타클로반 주민 등 80여만 명에게 대피령을 내렸지만 학교 등 대피소도 피난처 역할을 해주지 못할 만큼 태풍이 강력해 피해가 늘었다고 외신은 전했다. 또 태풍 예고 후에도 집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집에 남았던 한 명씩의 가족 대부분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타클로반에서 구호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반면 태풍이 처음 닥친 것으로 알려진 이웃 섬 사마르 주의 인구 4만 명 도시 기우안은 피해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기우안 시내 모습은 타클로반 못지않게 폐허로 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사망자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정부는 11일 레이테 주 등 41개 주, 7251개 지역에서 필리핀 전체 인구 1억 명의 약 10%인 965만여 명이 태풍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또 태풍으로 1만3400여 채의 가옥이 무너지고 9700여 채의 가옥이 부분 파손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제사회 구조와 구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0일 성명을 통해 “태풍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필리핀 국민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며 “그렇지만 필리핀 국민의 놀라운 회복력을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바야니한(공동체 의식을 뜻하는 타갈로그어)’ 정신으로 이 비극을 극복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미군 태평양군사령부는 이날 척 헤이글 국방장관의 지시에 따라 필리핀 중남부에 해병대원과 해군 장병을 파견해 실종자 수색 및 구조작업에 본격 돌입했다고 밝혔다. 90명으로 구성된 제2해병원정여단 선발대가 KC-130J 허큘리스 수송기편으로 일본 오키나와 기지를 떠나 필리핀으로 향했으며 해군 P-3 오라이언 초계기도 필리핀 상공에 급파됐다. 일본 정부는 의사, 간호사, 약사 등 의료요원 25명을 11일 필리핀에 파견했다. 캐나다 정부는 필리핀에 500만 달러의 긴급 구호기금을 제공하고 국내 민간 구호단체가 조성하는 성금에 매칭펀드 방식으로 별도의 정부 기금을 보태기로 했다. 베트남은 피해 지역에 10만 달러의 긴급 구호기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는 4만 달러 상당을 지원하고 타클로반 등 주요 피해 지역에 병력을 파견해 유엔 구호활동을 돕겠다고 밝혔다. 유럽에서는 영국 600만 파운드(960만 달러), 독일 50만 유로(66만 달러), 노르웨이 2000만 크로네(325만 달러) 등의 구호자금 지원이 잇따르고 있다.세부=허진석 jameshuh@donga.com / 주성하 기자워싱턴=정미경 특파원}
북한 해군에서 함정 침몰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올 4월에 북한군 주력 전투함인 410t급 대형 초계정이 가라앉아 71명의 해병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아시아방송은 4일 함경북도 어대진의 해군기지에서 4월 28일 새벽 함선이 침몰해 승조원 75명 중 71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북한 소식통은 “사고가 난 정확한 날짜는 4월 12일 새벽”이라고 말했다. 낡은 북한 초계정이 파도를 견디지 못한 것이 침몰 원인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태양절을 며칠 앞두고 사고가 발생해 충격이 컸다”며 “당시는 남북 긴장 상태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점이라 북한군에서 연일 강도 높은 군사훈련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 해군 출신의 한 탈북자는 “대다수 북한 군함은 30∼40년 전에 생산돼 이미 폐기해야 할 정도로 노후돼 있으며 함포 사격을 하면 갑판 용접 부분이 벌어져 사격훈련도 못할 지경이다”고 말했다. 북한은 1990년대부터 경제난으로 신형 군함을 거의 건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네덜란드의 한 아동인권단체가 만든 10세 필리핀 소녀 아바타가 10주 만에 전 세계 각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아동 성매매를 시도한 1000여 명을 적발했다. ‘스위티’라는 이름을 단 이 캐릭터가 한 인터넷 화상 채팅방에 나타나자 10주 동안 전 세계 71개국에서 2만 명의 남성이 해당 채팅방에 접속해 채팅을 했고 이 가운데 1000여 명은 온라인섹스 등을 요구했다. 어떤 남성은 알몸인 상태로 말을 거는가 하면 돈을 줄 테니 옷을 벗어보라는 주문도 잇따랐다. 어린이 성매매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스위티를 만든 아동인권단체는 소녀 아바타에게 속아 온라인섹스를 시도한 1000여 명의 신상정보를 파악해 국제경찰기구에 넘겼다. 국적별로는 미국인 254명, 영국인 110명, 인도인 103명으로 파악됐고 한국인과 일본인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는 “전 세계 온라인상에서 활동하는 아동 성매수자는 75만 명 규모로 추산되며 이들은 웹캠을 통해 개발도상국 아이들에게 음란행위를 요구한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지금까지 3차례 맞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자궁경부암 백신인 ‘서바릭스’(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를 한 번만 맞아도 충분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AFP통신이 5일 보도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의 암역학·유전학연구실의 마보베 사파에이안 박사팀은 서바릭스를 한 번 맞은 여성과 2, 3회 맞은 여성의 항체를 비교한 결과 별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코스타리카에서 서바릭스를 한 번 맞은 78명과 2번 맞은 192명, 3번 맞은 120명의 혈액을 4년 후 채취해 항체를 측정했다. 측정 결과 백신 접종 횟수에 관계없이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의 두 가지 변종(HPV-16, HPV-18)에 대한 항체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을 한 번 맞은 그룹은 약간 적었지만 면역 효과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사파에이안 박사는 밝혔다. 자궁경부암은 여성암 중 유일하게 백신이 개발되어 있으며 한국 등 주요 선진국은 백신 접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자궁경부암 백신은 3회 접종이 권장 사항이다. 서바릭스의 경우 국내 산부인과에서 회당 15만∼20만 원이다. 처음 접종 후 1개월과 6개월 뒤 2, 3차 접종을 받아야 한다. 2, 3차 접종을 기일 내에 맞지 못하면 1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또 다른 자궁경부암 백신인 가다실(머크)은 한 번만 맞았을 때의 면역 효과가 아직 연구되지 않았다.주성하 zsh75@donga.com·이진한 기자, 의사}

북한의 실질적 2인자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며칠 전 북한 최초의 경제특구인 북부 나선경제무역지대(나선)를 비공개 시찰한 뒤 이런 지시를 했다. “나선은 완전히 썩어빠진 자본주의의 온상이 돼 버렸다. 봉쇄를 더욱 철저히 하라.” 그가 나타난 시점은 북한이 경제개혁을 위한 각종 정책을 연이어 내놓은 직후였다. 지난달 23일 노동신문은 전국에 14개 중앙급 경제개발구(특구)와 13개의 지방급 경제개발구를 지정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달 16일 북한은 국가경제개발총국을 국가경제개발위원회로 승격시켰다. 이 위원회는 노동당 행정부의 지시를 받는다. 10월 초에는 김정은이 참석하고 장성택이 주도하는 전국적인 경제 간부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이에 앞서 9월 말에는 새로운 시장경제 구상을 전국 경제 간부들에게 학습시키는 강연회가 평양에서 열렸다. 한국 언론들의 북한 보도도 온통 경제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 경제개혁의 사령탑을 장성택이 틀어쥐고 있다. 요즘 북한에서 장성택의 말은 김정은 지시 못지않게 힘이 있다. 한국 언론은 김정은 현지시찰 수행 횟수를 집계해 장성택이 신임에서 멀어졌다느니 가까워졌다느니 따지고, 공식서열을 매기기 좋아하지만 왕조사회인 북한의 권력서열에서 로열패밀리는 예외다. 김정은 고모인 김경희가 현지시찰에 한 번도 따라가지 않았다고 서열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서열 2위였던 이영호 북한군 총참모장은 지난해 하루아침에 숙청됐다. 장성택은 김 씨는 아니지만 김정은의 고모부로 로열패밀리의 일원이다. 특구 중심의 경제개혁을 하겠다고 선포한 직후 경제사령탑인 그가 나선에 나타난 것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북한소식통에 따르면 장성택은 동해안을 따라 새로 지정된 경제개발구역들을 둘러보며 청진을 거쳐 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내린 지시가 “문을 더 열라”가 아닌 “문을 더 닫으라”는 것은 의외였다. 앞에선 경제특구 확대를 말하고, 돌아서선 봉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북한이 처한 가장 풀기 어려운 딜레마이기도 하다.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적절하게 밟아야 하는 일을 맡을 믿을 만한 인물도 노회한 장성택을 빼고는 사실상 찾기 어렵다. 이미 나선에서는 몇 달 전부터 중앙의 지시로 철저한 봉쇄를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됐다. 나선을 에워싸고 있는 철조망은 새롭게 보강되고 출입통제도 더 엄격해졌다. 1991년 나선이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될 때 설치된 철조망은 동독에서 수입해 온 것이었다. 동서독 분단의 잔재가 북한에서 자국민 봉쇄용이란 새 용도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의 교류가 비교적 활발한 나선으로 몰래 들어가 물품을 싸게 구입하려는 주민들의 20년 넘게 이어진 시도는 철조망 곳곳에 구멍을 만들었다. 북한은 경제개혁에 착수한 뒤 첫 실질적 조치로 바로 이 구멍 뚫린 ‘보이지 않는 철조망’부터 새롭게 보강하고 있는 것이다. 장성택이 둘러본 나선의 현실은 어떨까. 비록 허울 좋은 경제특구이긴 하지만 그 덕분에 그렇지 않은 다른 지역보다는 생활수준이 확연하게 높다. 평양을 능가하거나 최소한 비슷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최근 들어 중국의 적극적인 투자로 나선의 도로와 철도 등 주요 인프라는 크게 개선됐고 전기 사정도 평양보다 낫다. 4, 5년 전엔 중국 투자자가 집을 지어 현지에서 제일 부자인 북한 세관원들에게 1만∼2만 달러에 분양하기도 했다. 거리를 오가는 승용차의 80% 이상은 중국 번호판을 단 승용차들이다. 식당에선 북한 요리는 구경할 수 없고 전부 중국 요리만 판다. 예외로 단 한 곳의 러시아 식당이 있다. 나선 장마당 입구에서 두부 한 모를 중국돈 1위안에 파는 장사꾼 할머니는 오늘날 나선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선 일부 값싼 채소를 살 때를 제외하곤 북한 화폐가 사용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거래가 위안화로 이뤄진다. 중국 경제권에 가장 깊이 빨려 들어간 것이 오늘날 나선이 잘사는 비결이기도 하다. 장성택 방문 며칠 전 나선에선 북한에서 드문 청부살인이 일어났다. 한 보안원이 2000달러를 주고 교화소 출신 전과자를 통해 내연녀의 남편을 살해한 것이다. 살해된 남편은 아내의 불륜을 눈치 채고 폭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체포된 보안원은 혼내주라고 한 것이지 죽이라고 말한 것은 아니라고 버티고 있지만 이미 이 사건은 공화국 최초의 청부살인으로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북한 화폐가 실종되고 위안화가 통용되는 곳, 돈으로 청부살인도 하는 곳이 ‘특구 1번지’ 나선이다. 장성택이 이런 현실에 화가 많이 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답을 ‘더욱 철저한 봉쇄’에서 찾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나선은 전국에서 비밀경찰망이 가장 조밀한 곳이다. 인구가 20만 명에 불과하지만 나선의 보위부는 도(道)급 보위부 편제를 갖추고 있다. 외국인이 방문하면 개인별로 감시원이 따라붙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선의 변화는 비밀경찰도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시장경제의 힘이다. 장성택이 아무리 노회하다 한들 시장경제는 그에게도 생소한 것이다. 지금쯤 평양으로 돌아온 장성택은 기자의 이 칼럼을 보고 어떻게 며칠 전 자신이 시찰하고 지시한 내용이 한국 언론에 벌써 나느냐며 “나선은 정말 썩었다”고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특구 1번지 나선의 현실은 앞으로 북한이 외자 유치를 통해 만들려는 27개 경제특구의 먼저 온 미래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앞에선 당에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하고 뒤에선 회사의 월급봉투와 보너스에 정신을 쏟는 구조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설령 주민 대다수가 보위원이라 할지라도 이 거대한 흐름을 절대 막을 수 없다. 보위원도, 당 간부도 자신들의 두뇌와 이기심까지 노동당에 맡기고 살지는 않기 때문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국 사법당국이 미국 최대 투자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중국 고위층 가족 특별채용 의혹과 관련된 조사 범위를 한국 등 아시아 다른 국가로 확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3일 미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JP모건이 아시아 각국에서 권력층 자녀들을 특채한 뒤 이들의 연줄을 활용해 해당 국가에서 거래를 성사시켰는지에 대한 조사를 중국에서 한국과 싱가포르, 인도로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JP모건은 2006년부터 ‘아들과 딸’로 명명한 비밀 프로그램을 가동시켜 중국 고위층 자제들은 면접도 거치지 않고 합격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대형 국영기업 광다(光大)그룹 탕솽닝(唐雙寧) 회장의 아들 탕샤오닝(唐小寧)을 2010년에 특채한 뒤 이듬해 광다그룹 산하 광다은행의 상장 자문사가 되는 등 중요 계약을 줄줄이 따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