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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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1~202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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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反유대주의 공포… 유럽서 짐싸는 유대인들

    지난달 프랑스 파리 테러 때 유대교 식품점이 공격당한 데 이어 14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소행으로 보이는 유대교 회당 총격 사건까지 일어나자 유럽 내 유대인들이 ‘반(反)유대주의’ 공포에 떨고 있다. 이스라엘로 가기 위해 짐을 싸는 유럽 유대인들의 ‘엑소더스(대탈출)’ 현상까지 나오고 있다. 덴마크에는 7000여 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덴마크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나치의 홀로코스트 때에도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냈으며 전후에도 유대인이 살기에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평가를 받던 곳이다. 그러나 이번 테러로 안전지대가 아님이 증명됐다. 유대인의 이스라엘 이민을 주관하는 유대기구(Jewish Agency)의 이갈 팔모르 대변인은 “유럽 대륙 전역에서 유대인 공동체의 학교, 시너고그(예배당), 식료품점 등에 대한 혐오 범죄와 폭력 위협이 점점 커져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15일 열릴 예정이던 유대인 단체 행사는 안전에 대한 우려로 취소됐다. 프랑스에서도 이날 동북부 알자스 지방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대인 묘 수백 기가 훼손된 사실이 확인돼 당국이 ‘유대인 혐오 범죄’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착수했다. 메나헴 마르골린 유럽유대인협회(EJA) 사무총장은 유럽연합(EU) 지도자들에게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유대인 시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며 반유대주의를 막는 조치를 강화해 달라고 촉구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5일 “유대인들이 유럽 땅에서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또 피살되고 말았다”며 “이스라엘은 ‘유대인 여러분의 집’이다. 형제들을 언제든지 환영할 것”이라며 유럽 유대인들을 향해 이스라엘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그는 이날 내각회의에서 프랑스, 벨기에, 우크라이나 등 유럽에서 유입되는 이민자들을 흡수할 수 있도록 1억8000만 셰켈(약 510억 원)의 예산을 배정하도록 지시했다. 지난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이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것을 뜻하는 ‘알리야’를 통해 돌아온 사람은 총 2만6500명에 이르렀다. 2013년보다 32%나 증가한 것으로 10년 만의 최대치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7000명의 유대인이 이스라엘로 떠나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더불어 유대인들의 이스라엘 이민을 주관하는 유대기구가 프랑스 전역에서 개최한 이민박람회에는 8000여 명의 유대인이 몰렸다. 유대기구는 올해도 약 1만5000명이 프랑스를 떠날 것으로 전망했다. 프랑스의 유대인 인구는 50만 명 정도. 대부분 부유층인 이들의 엑소더스는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더욱 큰 부담을 안겨 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덴마크 경찰은 코펜하겐 총격 테러의 용의자는 22세 중동 출신 이민자 덴마크인이라고 밝혔다. 오마르 엘후세인이란 이름의 용의자는 폭력과 무기 소지 전과자로 약 2주 전에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용의자가 1차 총격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동소총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덴마크 보안 당국 관계자는 “용의자가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와 연계됐는지는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또 총격 사건의 조력 용의자 2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두 남성은 총격 용의자의 범행을 지원하고 방조한 혐의”라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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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덴마크판 ‘샤를리 테러’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도심 주택가, 기차역, 유대교 회당에서 토요일이던 14일 오후부터 15일 일요일 새벽까지 테러로 추정되는 총격이 일어나 시민 2명과 용의자로 추정되는 1명이 숨졌다. BBC는 코펜하겐 시내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총격이 세 차례 일어나 용의자를 포함한 남성 3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했다고 15일 보도했다. 첫 번째 총격은 14일 오후 3시 반경 코펜하겐 시내 주택가에 있는 크루퇸덴 카페에서 발생했다. 당시 카페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돼 온 스웨덴 출신 예술가 라르스 빌크스 씨(69)와 대학교수 시민운동가 언론인 등 50여 명이 참석해 샤를리 에브도 희생자 추모 행사를 겸한 토론회를 할 계획이었다. 두 번째 총격은 약 9시간 반 뒤인 15일 오전 1시경 카페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유대교 회당 인근에서 발생해 유대인 1명이 죽고 경찰 2명이 다쳤다. 세 번째 총격은 4시간 뒤 회당에서 3, 4km 떨어진 뇌레브로 기차역 인근이었다. 코펜하겐 경찰은 이날 기차역 인근에서 경찰에게 총을 쏜 남성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이 남성은 카페 총기 난사에 관여한 인물로 알려졌다. 경찰은 “감시영상을 분석한 결과 세 번의 총격사건의 용의자가 모두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며 “공범이 있는지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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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를리 희생자’ 위한 추모 토론회 도중 무차별 총탄세례

    밸런타인데이이자 토요일인 14일 오후 3시경. 덴마크 코펜하겐의 관광 명소인 인어공주 동상에서 2∼3km 떨어진 크루퇸덴 문화센터 카페 안에서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예술, 신성모독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토론회가 열리고 있었다. 프랑수아 지므레 덴마크 주재 프랑스 대사가 파리 테러(지난달 7일)를 상기시키며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고자 오늘 행사에 참석해준 여러분께 감사하다”며 인사말을 마치고 다음 연사에게 마이크를 막 넘겨주려던 순간 갑자기 ‘다다다다’ 하는 총성과 함께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들었다. 참석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렸다.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지므레 대사는 프랑스 일간 르몽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유리창이 깨지면서 밖에서 자동소총이 40∼50발 연속으로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며 “총격은 20초간 계속됐는데 이 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만약 범인이 실내로 난입했다면 피해는 훨씬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페는 유리로 돼 있어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다. 행사에 참여했던 폴란드 예술가 아그니에슈카 콜레크 씨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통화에서 “범인이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2005년 스웨덴 언론에 처음으로 무함마드 만평을 게재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오랜 테러 표적이었던 스웨덴 예술가 라르스 빌크스 씨(69)가 토론자에 끼어 있었다. 총성이 터지자 덴마크 경찰은 빌크스 씨를 포함한 주요 인사들을 카페 옆방으로 피신시켰다. 경찰과 괴한 간의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지면서 카페 밖에 서 있던 55세 남성이 총에 맞아 숨졌다. 또 빌크스 씨의 경호 임무를 맡았던 덴마크 정보기관(PET) 소속 경찰 3명이 어깨와 다리 등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이들은 다행히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경찰이 응사를 시작하고 난 몇 분 뒤 범인은 폴크스바겐 폴로 차량을 타고 도주했다. 토론 참석자들은 이 같은 총격이 끝나자 행사를 재개한 뒤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덴마크 경찰은 사건 초기 범인을 2명으로 추정했다가 1명으로 수정했으며 트위터를 통해 용의자 사진을 배포했다. 25∼30세 아랍인으로 보이는 용의자는 키 185cm가량의 건장한 체격에 90∼100cm 길이의 검은색 기관총 또는 자동소총을 들고 복면, 모자, 털조끼를 착용했으며 검은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이 용의자는 카페 총격 후 9시간 반가량 지난 이튿날 15일 오전 1시 무렵 2차 총격테러를 했다. 이번에는 카페에서 걸어서 30분 정도인 코펜하겐 시내 노레포르트 역 인근 시너고그(유대교 회당)였다. 이 과정에서 회당 밖을 지키던 유대인 남성 1명이 숨지고 경찰 2명이 부상했다. 현지 유대인 단체인 북유럽유대인안전협회(NJSC)는 총격 당시 회당 안에서 유대교 성인식(바르 미츠바)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회당 출입 통제를 담당하던 유대인 단 우잔 씨(37)가 희생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시 4시간 뒤인 15일 오전 5시 1차 총격이 있었던 카페에서 멀지 않은 도심 다문화 지역 뇌레브로 기차역에서 용의자가 사살됐다. 덴마크 경찰은 “뇌레브로 역에서 검문을 하던 중 한 남성을 불러 세우자 그가 경찰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해 경찰도 총격을 가해 사살했다”고 말했다. 덴마크 정보당국은 용의자가 “아랍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코펜하겐 출신”이라며 “시리아나 이라크 출국 흔적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밝혔다. 따라서 자생적 테러리스트인 ‘외로운 늑대(lone wolf)’일 수도 있지만 이슬람국가(IS) 훈련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와 테러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15일 덴마크 출신 친이슬람 청년 100여 명이 IS에서 훈련을 받고 귀국해 덴마크가 테러 위험에 노출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자칫 시민 17명의 생명을 앗아간 파리 테러처럼 큰 희생으로 이어졌을 개연성이 있었지만 덴마크 당국의 테러 예방 조치가 큰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랫동안 테러리스트들의 표적이 되어 온 빌크스 씨가 참석한 행사에 위험이 따를 것으로 예상한 덴마크 당국이 이날 행사장에 공항 수준의 검색을 거쳐 참석자들을 입장시켰으며 출입문도 봉쇄해 테러범이 실내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고 CNN 등은 전했다. 한편 덴마크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IS 공습에 전투기까지 파견하는 등 북유럽 국가 중 가장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또 일간지 윌란포스텐 등 이슬람권을 자극하는 언론도 다수 존재한다. 2005년에도 이 신문이 무함마드가 머리에 폭탄 모양의 터번을 두른 모습을 묘사한 만평을 싣기도 했다. 헬레 토르닝슈미트 덴마크 총리는 성명에서 “정치적 테러 행위라는 점이 명백하다”며 “덴마크는 폭력 앞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덴마크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애도를 표시하고 내무장관을 코펜하겐에 급파해 지난달 파리 테러와의 연관성 등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이유종 기자}

    • 20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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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칼럼/전승훈]프랑스의 세속주의와 톨레랑스

    “종교는 집이나 사원에서만 믿어라. 자신의 신앙을 왜 공공장소에서 표현하느냐.” “그럼 기독교 신자들도 로마시대처럼 카타콤베(지하묘지)에서 숨어서 예배를 봐야 하는가. 모든 종교 행위가 은밀하게 치러지는 비밀의식이어야 하는가.”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이후 프랑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논쟁이다. 프랑스 정부는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는 행위에 대해 ‘프랑스 공화국’의 정체성을 깨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반면 이슬람 신자들은 ‘신성모독의 권리’까지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프랑스인들을 문화적 식민주의라고 공격한다. 한국에서는 지하철에서 “예수 믿으세요!”를 외치는 개신교 전도사, 길거리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절을 하는 불교 승려를 쉽게 볼 수 있다. 종교적 심성이 열정적이면서 타 종교에 대한 포용력도 큰 한국인의 눈으로 볼 때 프랑스의 이러한 논쟁은 다소 낯설다. 테러 사건 직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의 종을 울렸을 때 샤를리 에브도 직원들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이 잡지는 이슬람은 물론이고 가톨릭까지 모든 종교권력을 비판하고 조롱해 왔기 때문이다. 숨진 스테판 샤르보니에 전 편집장은 “나는 이슬람 혐오주의자가 아니라 무신론자”라고 밝힌 바 있다. 프랑스의 ‘종교적 세속주의(La¨icit´e)’의 원칙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혁명의 주역인 시민 부르주아지 세력은 왕과 귀족뿐 아니라 종교권력과의 치열한 싸움 끝에 공화국을 세웠다. 또한 종교개혁 당시 신구교 간 유혈충돌,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기억은 정치와 종교를 철저히 분리하는 계기가 됐다. 이 때문에 가톨릭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는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40%로 유럽 제일의 ‘반(反)종교’의 나라가 됐다. 프랑스에서 ‘선(禪) 불교’가 인기인 이유가 불교가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나 ‘명상법’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이슬람 이민자들이 급증하자 프랑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슬람은 종교와 생활을 분리할 수 없어 곳곳에서 마찰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급기야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2011년 공공장소에서 모든 종교적 상징물을 추방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공립학교에서는 무슬림 소녀의 스카프, 유대인 소년들이 머리에 쓰는 키파(모자)도 금지됐다. 최근에는 관청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구유 장식도 불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세속주의란 다른 문화와 종교를 인정해온 ‘톨레랑스(관용)’의 전통에 기초한 공화국의 원칙인데, 모든 종교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과 혼동되면서 이슬람과의 갈등을 불러왔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식 소수 공동체 활성화보다는 공화국의 전체적 가치를 내세우는 프랑스에 대해 “계몽(啓蒙) 근본주의” “종교의 자유가 아니라 ‘종교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는 나라”(뉴욕타임스)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파리 연쇄 테러 사건 이후 프랑스는 공화국의 새로운 ‘정체성과 가치’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다. 대한민국도 세계화 시대를 맞아 동남아 이주 노동자와 국제결혼 커플이 크게 늘어나고, 탈북 난민들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이제 우리도 이념과 종교, 인종을 넘어 대한민국을 통합할 수 있는 정체성과 가치가 무엇일까 하는 논쟁을 시작해야 할 때다.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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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에서 더 빛난 佛… 마녀사냥도 국론분열도 없었다

    ‘파리는 샤를리다!’ ‘샤를리 에브도, 파리의 명예시민’ 11일 오후. 프랑스 파리 시청 건물 벽에는 여전히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형 검은색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시청 앞에 설치된 흰색 얼음판에서는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지난달 7일)이 일어난 지 한 달여가 지난 파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난달 7∼9일 프랑스는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시련을 겪었다. 시사 풍자 만화잡지 샤를리 에브도와 유대인 식품점 인질 사건 등 이슬람 극단주의 연쇄 테러로 17명의 시민과 경찰이 희생됐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은 테러에 엄정하게 대처하면서도, 사회적 동요와 불안감을 부추기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일상 복원력’의 저력을 보여 주고 있다. 150만 명의 파리 시민과 세계 34개국 정상이 함께 행진을 벌였던 레퓌블리크 광장, 바스티유 광장 주변의 노천카페에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도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고, 겨울 세일을 끝내고 봄 신상품으로 단장한 가게의 점원들도 미소로 손님을 맞았다. 에펠탑 앞에서 소총을 들고 경계하는 군인들이 부쩍 늘어났다는 점만 빼 놓으면 한 달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스페인 여행객 알리시아 카잘스 씨(52·여)는 “파리 여행을 계획해놓고 약간 걱정됐는데 안전 조치가 강화된 모습을 보니 오히려 더 안심이 된다”며 “하기야 테러를 당했다고 파리를 여행지에서 제외하기엔 너무 아쉽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인터내셔널비즈니스타임스에 따르면 프랑스 여행업계는 테러 공격에도 불구하고 1월에 파리를 찾은 여행객 수가 거의 줄지 않았다고 한다. 국가적 재난 사태에서도 프랑스인들이 ‘일상’을 지속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테러 사건 발생 직후 TF1과 프랑스2 TV 등 최대 민영·공영 방송사들은 코미디, 노래자랑, 연애 리얼리티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그대로 내보냈다. 파리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 중인 최재헌 씨(24)는 “한국에서는 재난이 닥치면 모든 일상이 올스톱된 채 국가 전체가 우울증에 빠지고 스스로 자학하는 경우가 많은데, 프랑스인들은 단결을 보여 주면서도 일상을 지속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대형 사건이 터지면 으레 있을 법한 정부 책임론이 별로 없다는 것도 특이하다. 외국 언론들이 프랑스 정보 당국과 경찰이 안이했던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했을 뿐 오히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마뉘엘 발스 총리,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 등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지지율은 10∼20%씩 크게 상승했다. 한-프랑스 문화예술 교류 단체 ‘에코드라코레’를 운영하는 한국인 이미아 씨(47·여)는 “국가적 재난 속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를 비난할 뿐 초점을 흐릴 수 있는 엉뚱한 ‘마녀사냥식’의 희생양 찾기는 찾아볼 수 없어 나도 놀랐다”며 “모두 평정심을 찾아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테러범들에게 하는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파리 시민들이 테러를 잊은 것은 결코 아니다.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이 있는 테러 현장은 지난 한 달 동안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들이 마치 무덤처럼 둥그렇게 쌓였다. 추모 열기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11일 ‘나는 샤를리다’라는 추모의 메시지를 적은 연필 모양의 기다란 나무 막대를 가지고 아이와 함께 온 쥘리앙 씨(42)는 “샤를리 에브도 사건의 교훈을 기억하기 위해 테러 현장은 꼭 보존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인 유학생 메간 노르가드 씨(20·패션 마케팅 전공)는 “늘 이 앞을 지날 때면 뉴욕에서 9·11테러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그라운드 제로’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민자 통합을 위한 학교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인터넷을 통한 이슬람극단주의 테러 선동 방지 대책을 실시하는 등 조용하지만 강력한 대책을 펴 나가고 있다. 11일 파리 5구에 있는 프랑스 최대의 이슬람사원 ‘그랑드 모스케’에서는 기도를 올리는 이슬람 신자들뿐 아니라 카페에서 민트차를 마시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모스크에서 만난 이맘(이슬람 지도자) 타하르 마흐디 씨는 “샤를리 에브도가 우리를 연필로 공격했기 때문에 우리도 연필로 대응해야 한다”며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총알로 대응하는 것은 이슬람이 아니라 마피아”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국제관계연구소(IFRI)의 정치학자 도미니크 무아지는 “프랑스의 일상 복원력은 수많은 혁명을 통해 계몽주의적인 공화국의 가치를 발전시켜 온 전통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런던의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의 이코노미스트 길 모어 씨는 “테러 공격 이후 프랑스가 보여 준 단결은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 쇠퇴론’으로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던 ‘집단적 의기소침’을 치유할 수 있는 전기충격과 같은 효과”라고 말했다. 전승훈·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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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숙인들에 샤워장 선물한 교황

    “부(富)의 불평등이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입니다. 가난을 가져오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7일 현대사회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가 심하다는 것을 또다시 강조했다. 교황은 이날 이탈리아 정부가 주최한 ‘밀라노 엑스포 아이디어’라는 회의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부의 불평등과 경제적 소외 속에서 경제가 죽어가고 있다”며 양극화 해결을 촉구했다. “우리는 이 지구를 유지하는 사람들일 뿐이지 주인은 아니다”라고 강조한 교황은 “노인들이 길거리에서 얼어 죽고 있다. 이는 결국 강자들이 약자 위에 서는 경쟁의 결과”라면서 “전 세계 기아와 불평등을 극복하려면 시장에 부여하는 절대적 자율, 금융 투기 등을 포기하고 부의 불평등을 만드는 근원적인 구조를 없애겠다는 결심을 먼저 해야 한다”고 세계 지도층에 당부했다. 교황은 2013년 3월 취임 이후 줄곧 전 세계적으로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양극화된 사회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을 촉구해 왔다. 지난달 16일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해서도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진실된 태도와 조치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지적은 취임 직후 발표한 84쪽 분량의 권고문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서부터 시작됐다. 교황은 이 권고문에서 “극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절대 다수와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며 “시장과 금융 투기에 완벽한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데올로기가 결국 자기들만의 법과 규칙을 중시하는 독재 체제를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 한편 교황청은 6일 교회가 불평등 해소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교황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환으로 로마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 돌기둥 사이에 노숙인을 위한 샤워장과 무료 이발소를 설치했다. 이곳에는 수건과 갈아입을 속옷, 비누, 치약, 면도기 등의 위생용품이 준비됐다. 지난해 10월 바티칸 사회복지 책임자인 콘라트 크라예프스키 주교가 50대 노숙인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자기 몸에서 냄새가 난다”며 사양했다는 사연을 들은 교황이 노숙인을 위한 샤워장 설치를 지시했다고 이탈리아 안사통신이 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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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글레시아스, 스페인 정치권 37세 반항아 “포데모스”로 국민 사로잡아

    올해 37세의 ‘말총머리’ 좌파 정치인이 스페인 정치권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스페인의 신생 좌파 정당 ‘포데모스’의 당수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사진)가 그 주인공이다. 기성 정치권에 환멸을 느낀 스페인 유권자들은 ‘긴축 반대’를 소리 높여 외치는 ‘옴 파탈’(위험하고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남성) 정치인에게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가 이끄는 포데모스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집권 국민당과 제1야당인 사회노동당을 제치고 지지율 27%로 1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올해 5월 지방선거와 12월 총선에서 승리가 예상되고 있다. 이글레시아스의 트레이드마크는 뒤로 질끈 묶은 말총머리와 턱수염, 그리고 빨간색 넥타이. 그의 외모는 어떤 말보다도 선명한 정치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장 양복을 입고 앞뒤 머리를 짧게 자른 ‘라 카스타’(엘리트)로 불리는 스페인 주류 정치권에 도전하겠다는 ‘반항’의 상징이다. 캐나다 출신 가수 레너드 코언의 노래 ‘우리는 먼저 맨해튼을 친다. 다음에 (미국을 추종하는) 베를린을 접수한다’가 울려 퍼지는 그의 집회는 마치 록스타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그는 이윤을 내는 기업의 노동자 해고 금지, 최저임금 인상, 부유세 신설, 기업 법인세 인상, 에너지 기업과 병원, 교육부문의 국유화 등의 공약을 내걸어 긴축과 생활고에 지친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이글레시아스는 2011년 5월 긴축정책과 불평등 격차가 커지는 데 대한 대중적인 항의 운동인 ‘분노하라’ 시위를 이끌면서 스페인 정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급상승한 인기를 기반으로 시위 지도부에 참여한 교수들과 함께 지난해 1월 ‘포데모스’를 창당해 분노한 대중을 정치세력화했다. ‘포데모스’는 “우리는 할 수 있다(We Can!)”는 뜻의 스페인어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008년 대선 구호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포데모스는 창당 4개월 만인 지난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8%의 득표율로 일약 제3당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31일 이글레시아스가 주도한 마드리드 긴축 반대 시위에는 3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글레시아스는 “이제는 스페인이 변화할 때”라며 “내가 총선에서 승리하면 (유럽 채권국들을 향해) 1조 유로(약 1240조 원)에 달하는 부채 상환 조건을 바꿔 부담을 낮추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지난달 그리스 총선 때 아테네로 직접 날아가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로 불리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당수 알렉시스 치프라스(40)의 손을 잡아 주며 유럽 좌파 연대를 과시했다. 교수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력도 특이하다. 1978년 역사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스페인 노조연맹(CCOO)의 변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좌파 성향이던 부모는 아들 이름을 19세기 ‘스페인 사회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스페인 명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의 정치학과 교수로 활동하며 2002년 이후 학술잡지에 3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고, TV토론 프로그램에서 해박한 지식과 달변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치 성향은 14세 중학생 시절부터 스페인 공산당에서 청년 당원으로 활동하고 ‘반(反)세계화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뼛속 깊은’ 좌파다.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교장관은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유럽 급진 좌파의 부상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주창해 온 혹독한 긴축 정책이 낳은 예기치 않은 괴물”이라고 지적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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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은 어디로? ‘뼛속까지 좌파’ 37세 ‘옴므파탈’ 정치인 돌풍

    올해 37세의 ‘말총머리’ 좌파 정치인이 스페인 정치권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스페인의 신생 좌파정당 ‘포데모스’의 당수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가 그 주인공이다. 기성정치권에 환멸을 느낀 스페인 유권자들은 ‘긴축 반대’를 소리 높여 외치는 ‘옴므 파탈’(위험하고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남성) 정치인에게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가 이끄는 포데모스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집권 국민당과 제1야당인 사회노동당을 제치고 지지율 27%로 1위를 차지했다. 이에 따라 올해 5월 지방선거와 12월 총선에서 승리가 예상되고 있다. 이글레시아스의 트레이드 마크는 뒤로 질끈 묶은 말총머리와 턱수염, 그리고 빨간색 넥타이. 그의 외모는 어떤 말보다도 선명한 정치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장 양복을 입고 앞 뒷머리를 짧게 자른 ‘라 카스타’(엘리트)로 불리는 스페인 주류 정치권에 도전하겠다는 ‘반항’의 상징이다. 캐나다 출신 가수 레너드 코헨의 노래 ‘우리는 먼저 맨해튼을 친다. 다음에 (미국을 추종하는) 베를린을 접수한다’가 울려 퍼지는 그의 집회는 마치 록스타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지지자들 수천 명이 추운 날씨에도 집회장 밖에서 소리치며 열광할 정도다. ‘포데모스’는 “우리는 할 수 있다(We Can!)”는 뜻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008년 대선 구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지난달 31일 포데모스 주도 하에 마드리드에서 열린 반긴축시위에는 3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글레시아스는 “이제는 스페인이 변화할 때”라며 총선에서 승리하면 1조 유로(약 1240조 원) 규모의 스페인 부채를 재조정하겠다고 공언했다. 요시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은 최근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유럽 급진좌파의 부상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주창해 온 혹독한 긴축정책이 낳은 예기치 않은 괴물”이라고 지적했다. 이글레시아스는 지난달 그리스의 총선 당시 아테네를 찾아가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로 불리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당수 알렉시스 치프라스(40)와 손을 잡고 유럽 좌파의 연대를 과시했다. 그는 이윤을 내는 기업의 노동자 해고금지, 최저임금 인상, 부유세 신설, 기업 법인세 인상, 에너지 기업과 병원, 교육부문의 국유화 등의 공약을 내걸어 긴축과 생활고에 지친 대중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이글레시아스는 1978년 역사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스페인 노조연맹(CCOO)의 변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부모님이 19세기의 ‘스페인 사회주의의 아버지’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14살 중학생 시절부터 스페인공산당에서 청년 당원으로 활동하고 ‘반(反) 세계화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뼛속 깊은’ 좌파 정치인이다. 그는 2008년 콤플루텐세대학에서 ‘국경이 사라진 시대의 집단행동’이라는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스위스의 유럽대학원(EGS)에서 영화에 대한 정치적 분석 연구로 커뮤니케이션학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스페인 명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학의 정치학과 교수로 활동하며 2002년 이후 학술잡지에 3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고, TV토론 프로그램에서 해박한 지식과 달변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글레시아스는 2011년 5월 긴축정책과 불평등 격차가 커지는 데 대한 대중적인 항의운동인 ‘분노하라’ 시위를 이끌었다. 그는 시위 지도부에 참여한 교수들과 함께 지난해 1월 ‘포데모스’를 창당해 분노한 대중들을 정치세력화 했다. 포데모스는 창당 4개월만인 지난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8%의 득표율로 일약 제3당으로 떠올랐다. 포데모스의 부상은 스페인에서 1975년 프랑코 독재가 몰락 한 이후로 40년 동안 지속돼 온 보수당인 국민당(PP)과 중도좌파 사회당이 지배해 온 양당 체제의 붕괴를 뜻한다. 스페인 유권자들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라며 뒷짐 진 기성 정치권의 무능과 부패에 진저리를 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글레시아스는 “다수 대중이 정치권력을 갖지 않으면, 그들이 당신의 권리도, 지갑도 훔쳐갈 것”이라며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구호로 유권자들을 파고들고 있다. 이글레시아스가 이끄는 포데모스의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복지확대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마련 방안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해고금지 정책에 대해서는 스페인 기업들의 경쟁력이 하락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포데모스가 시리자의 전술을 흉내 내는 것은 ‘양날의 칼’”이라고 지적했다. 신생 그리스 정부가 그리스를 경제 회복으로 이끈다면 포데모스에게도 좋은 미래가 있겠지만, 급진좌파 노선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급속히 빠져나가고 유로존 퇴출로 이어진다면 포데모스의 미래도 어두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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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집트, 호주기자 400일만에 석방

    이슬람 세력을 지원했다는 혐의 등으로 이집트 교도소에서 1년 넘게 구금됐던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TV의 호주 출신 기자가 1일 전격 석방됐다. BBC 방송 등에 따르면 구금 400일 만에 석방된 알자지라 소속 피터 그레스터 기자(50)는 이날 이집트 토라 교도소를 떠나 키프로스행 비행기 편으로 출국했다. 그는 비행기를 갈아탄 뒤 고국인 호주에 도착해 가족과 상봉할 예정이다. 그러나 같은 혐의로 함께 복역 중이던 캐나다-이집트 이중 국적의 무함마드 파흐미(전 CNN 기자)와 이집트인 바헤르 무함마드 등 알자지라 기자 2명은 여전히 구금 중이다. 알자지라는 성명에서 “남은 기자들이 다시 자유를 얻을 때까지 쉬지 않고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레스터 기자는 BBC, 로이터 등에서 일하며 분쟁지역 보도를 해 온 인물로 지난해 12월 ‘호주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워클리 언론상’을 받기도 했다. 그레스터 등 알자지라 기자 3명은 2013년 12월 카이로의 한 호텔에서 체포돼 징역 7∼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레스터 기자는 유죄 판결을 받기 전 공개한 편지에서 거짓 보도를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는 사실에 크게 괴로워했다고 BBC는 전했다. 그는 이 편지에서 “20년간 특파원으로 해외에서 일하면서 나는 안전하게 일하는 방법을 알지만 그 경계선 언저리에 안주하지 않았다”며 “이집트에서는 ‘새로운 기준’ 때문에 일상적인 취재활동이 갑자기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현재 이집트의 정치적 상황을 관련 당사자에 대한 언급 없이 어떻게 정확하고 공정하게 보도할 수 있겠는가”라고 개탄했다. 전 세계 언론단체들은 그레스터 기자 구명운동을 벌여 왔다.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버티던 이집트 정부가 그레스터 기자를 전격 석방한 것은 알자지라를 소유한 카타르 왕실과 이집트 정부 간 관계 개선이 영향을 미쳤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카타르는 이집트 군부와 갈등을 빚었던 무슬림형제단 정부를 지원해 반발을 샀다. 카타르는 지난달 22일 알자지라의 이집트 지사를 폐쇄하며 이집트에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 호주 정부도 자국민 기자 석방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레스터 기자가 이집트 대통령령에 따라 호주로 강제 추방되자 토니 애벗 호주 총리는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밝혔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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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랑드 리더십 믿을 만해” 파리테러후 지지율 급등

    프랑스 5공화국 대통령 중 최악의 바닥 지지율로 고전하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사진)의 지지율이 ‘파리 테러’(지난달 7일) 이후 수직상승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발표된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 지지율이 무려 40%로 나왔다. 테러 이전 평균 지지율 19%보다 2배 이상으로 늘어난 수치다. 다른 여론조사기관인 ODOXA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대통령의 지지율은 31%로 테러 전 21%보다 10%포인트나 올랐다. 그의 드라마틱한 지지율 변화는 국가적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정치지도자에게 위기가 기회일 수 있음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테러사건에서 보여준 ‘신속한 행보’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던 국민을 안심시켜 줬다는 것이다. 올랑드 대통령은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발생하자 1시간 만에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는 아직 희생자들의 시신이 유혈이 낭자한 채 수습되지 않은 상태였고, 도주한 범인들이 어디서 다시 총격을 난사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위험한 상황에 국가지도자가 신속하게 현장으로 뛰어들자 국민은 박수를 보냈다. 강력한 공권력을 동원해 테러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모습도 국민 안전과 국가 안보를 최우선시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테러 직후 사상 최초로 경찰특공대(RAID)와 대테러 헌병특수부대(GIGN)를 동시에 투입하고 경찰병력도 8만 명 이상 동원하는 초강수를 띄워 테러 발생 사흘 만에 인질범들을 사살했다. 유대인 상점 인질극도 경찰 진압 작전 전 숨진 인질 외에 추가적인 인명 피해 없이 진압됐다. 테러 발생 사흘 만에 전 세계 국가정상 45명을 파리로 모이게 한 추진력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여기에 더해 국가 위기상황이 터지자 정적들을 포함한 다양한 정치세력을 엘리제궁으로 불러들여 ‘단합(Union Nationale)’을 호소한 ‘정치력’도 돋보였다. 영국 더타임스는 “올랑드 대통령이 테러 사태 이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강력한 리더십은 기존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정치적 아우라’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게 했다”고 평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르자 총리 지지율도 급상승했다. 사회당에서 가장 우파적인 성향의 마뉘엘 발스 총리 지지율이 55∼60%대에 이르는 것. 친기업 정책과 노동시장 유연화 등 실용주의 정책을 펴오고 있는 그는 테러 사건 직후인 지난달 13일 의회에서 테러에 대한 강력한 안보대책을 밝힌 연설로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같은 달 20일에는 이민자를 통합하기 위한 정책을 밝혀 국민 통합을 주문했다. 반면 제1야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최근 TV에서 마뉘엘 발스 총리 견제에 나섰다가 지지율이 4%나 떨어지는 역풍을 맞았다. 그는 현 정부의 테러 대책이 미흡하다며 “지하드(이슬람 성전)에 참여하기 위해 이라크와 시리아로 떠난 프랑스인들의 국적을 박탈하는 등 좀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여론조사에서는 효율적인 테러대응 조치에 사르코지(47%)보다 발스 총리(57%)가 더 믿음직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극우파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사건으로 지지율이 크게 올라갈 것으로 예상됐으나 오히려 4%가 하락했다. 지난달 11일 ‘공화국 행진’ 때 공식 초청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참가를 거부한 것이 잘못됐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르펜은 대신 FN이 장악하고 있는 지중해 연안의 소도시 보케르에서 별도의 추모행사를 열어 통합과 거리가 먼 인물로 비쳤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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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뜨는 정치지도자들]“전방위 국가개조” 외치는 렌치

    지금 이탈리아는 올해 갓 마흔이 되는 젊은 총리의 행보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다. 그의 이름은 마테오 렌치(40). ‘파괴자’라는 뜻의 ‘데몰리션 맨(demolition man)’이라는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린다. 중도 좌파를 표방하는 민주당 소속이면서도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국가 개조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유럽 내 역대 최연소 총리에 취임한 그는 60, 70대 ‘노(老)정객’들이 지배해온 이탈리아 정치권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럭셔리 관용차들을 인터넷 경매로 팔아치웠고, 내각의 절반을 여성에게 맡겼다. 양복 대신 셔츠와 청바지를 즐겨 입는 그는 “휴대전화 속에 국가행정의 미래를 담겠다”며 모든 민원 시스템을 휴대전화 앱으로 처리하는 행정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파괴자’라는 별명을 안긴 것은 나라 전체를 뜯어고치겠다는 동시다발 개혁안. 우선 국회의원 수를 대폭 줄였다. 렌치 총리는 지난해 8월 315명에 달하는 상원의원 수를 100명이나 줄이는 40개항의 정치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는 역사적인 일을 단행했다. 상당수 여야 의원이 거세게 반대하며 표결까지 불참하는 진통 끝에 통과시킨 개혁안이다. 법안은 앞으로 국민투표를 통해 최종 통과되어야 하지만 기존 어떤 정치인도 손대지 못했던 고질적인 국회의 비효율에 칼을 들이댔다는 점에서 여론의 지지는 높다. 렌치 총리가 또 승부수를 던진 분야는 노동 개혁. 이탈리아는 1970년대 도입된 노동법에 따라 15명 이상을 고용한 기업주는 ‘정당한 사유(just cause)’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 한번 정규직으로 취업하면 평생 고용을 보장받는 시스템이라 ‘시스테마토(Sistemato·시스템 안에서 안착한 사람)’라는 말까지 별도로 있을 정도이다. 2000년대 들어 개혁 성향의 정치인들이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무산돼 개혁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개혁과제로 꼽혔다. 이 노동 개혁이 마침내 렌치 총리 재임 중 이뤄지는 게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일고 있다. 그는 ‘더 잡 액트(The Job Act·일자리 법안)’라는 이름의 법안을 통해 기업이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도록 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대폭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법안 이름을 영어로 지은 것도 유연성과 혁신을 강조하는 미국 노동시장을 벤치마킹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노조로부터 달걀 세례까지 받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던 렌치 총리는 마침내 지난해 12월 3일 법안이 상원 문턱을 넘도록 하는 데 성공해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2015년 새해 그의 정치역정은 가시밭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 14일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89)이 고령을 이유로 사임하면서 취임 11개월 만에 최대의 정치적 시험대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탈리아의 최대 관심은 렌치 총리가 추천한 대통령이 29일로 예정된 의회에서 승인을 얻을지 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대통령이 실권 없는 의전적 성격이 강한 자리이긴 하나 지금은 유로존 재정 위기 같은 국가 위기 상황이라 대통령이 국회 해산, 새 정부 구성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점이어서 중요한 자리이다. 더구나 각종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렌치 총리 입장에서는 자신이 추천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힘을 받는 상황이다. 현재 여러 사람이 거론되고 있으나 총리가 제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통령은 상하원 모두 3분의 2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현재 총리가 이끄는 중도좌파 민주당의 의석조차 과반에 못 미친다. 설상가상으로 그리스 총선에서 급진좌파 정당인 시리자가 집권한 것도 렌치 총리에겐 악재 중의 악재다. 민주당 내 좌파 계열들이 그리스 지지를 표방하면서 공격의 화살을 총리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렌치 총리는 집권 민주당 내의 단결을 위해 이들을 껴안는 한편으로 이들이 반대하는 국가 개조도 해내야 하는 위기에 몰려 있다. 좀처럼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도 고민이다.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이탈리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 국내총생산(GDP) 경제 규모가 9% 축소됐고, 제조업 생산량도 25%나 줄었다. 실업률은 13.4%에 이르고, 청년실업률은 43.6%가 넘는다. 번번이 개혁의 발목을 잡는 정치권 때문에 개혁의 속도가 늦어지자 이탈리아 개혁을 바라보는 유로존의 시각도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 정치가 던진 마지막 ‘희망의 주사위’로 출발한 렌치 총리. 그의 정치인생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이탈리아는 새롭게 거듭나느냐, 아니면 제2의 그리스가 될 것이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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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佛 볼테르의 ‘관용론’, 250년만에 베스트셀러로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 이후로 프랑스의 서점가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프랑스 공화국의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서적들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프랑스 인터넷 전자서점 ‘아마존’ 사이트나 출판 전문 잡지인 ‘리브르 에브도(Livres Hebdo)’의 베스트셀러 톱 20위 집계에서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 희생된 유명 만화가들의 유작이 6권이나 자리를 차지했다. 수년 전에 발행된 이 책들은 갑자기 늘어난 수요에 추가 인쇄에 들어갔다. ‘샤를리 에브도 1면 만평 모음집: 1969∼1981년’은 3만5000부, 스테판 샤르보니에 편집장의 만평 에세이인 ‘샤르브의 파트와’는 2만 부, 카뷔의 ‘보프 전집’은 4만 부를 새로 찍어냈다. 지난주 발행된 샤를리 에브도 생존자 특별호는 700만 부가 발행됐고, 샤를리 에브도는 5만 명의 신규 구독자가 생겼다고 한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책을 통해 희생자들에게 연대를 표하려는 프랑스 독자들의 의지”라고 분석하고 “그러나 대중이 관심을 갖는 것은 샤를리 에브도의 ‘정신’이지 ‘만평’ 자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 증거로 1763년 출판된 볼테르의 ‘관용론(Trait´e sur la tol´erance·사진)’이 250년 만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된 기이한 현상을 들었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가인 볼테르(1694∼1778)의 ‘관용론’은 프랑스의 신구교 갈등 속에서 누명을 뒤집어쓰고 처형된 한 프로테스탄트 상인의 복권을 요구하면서 쓴 책이다.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잊혀진 고전이었는데 1월 11일 ‘공화국 행진’ 이후 판매가 급증했다. 갈리마르 출판사는 ‘분량은 144쪽, 가격은 2유로’에 불과한 이 책을 급하게 1만 부 증쇄에 들어갔다. 책에서 볼테르가 “나는 당신이 쓴 글을 혐오한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당신에게 보장해주기 위해 나는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 말은 프랑스 공화국의 원칙인 ‘톨레랑스’와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문구가 됐다. 1월 11일 세계 45개국 정상들은 레퓌블리크(공화국) 광장에서 출발해 볼테르 대로(大路)까지 3km를 걸었다. ‘공화국’과 ‘볼테르’를 상징하는 의미의 행진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시대를 상징하는 책’이 등장하곤 한다. 2002년 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당수 장마리 르펜이 급부상해 사회당 후보를 누르고 결선투표까지 진출했을 때 프랑크 파블로프의 ‘갈색 아침(matin brun)’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어떤 나라에서 ‘갈색당’이 집권해 차례로 법령을 제정해 옷도, 집도, 자동차도, 고양이도 모든 것이 갈색이 됐다는 우화다. 또한 2010년 뉴욕 월가의 ‘점령하라’ 시위 당시에는 스테판 에셀의 저서 ‘분노하라(Indignez-Vous)’가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250년 전에 출간된 볼테르의 고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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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無반성’ 아베… ‘無限반성’ 메르켈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년을 맞아 나란히 전쟁 범죄 청산의 부채를 지고 있는 독일과 일본의 행보가 극명히 엇갈리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6일 베를린에서 열린 아우슈비츠 수용소 해방 7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인도주의에 반한 범죄는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당시 행했던 끔찍한 행위들에 대해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기억하는 것이 독일인의 영구적인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의 연설은 일본의 과거사 지우기에 급급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태도와 대비된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25일 NHK방송에 출연해 올해 발표할 아베 담화에서 1995년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담화의 핵심 표현을 뺄 수도 있다고 시사한 데 대해 27일 일제히 우려를 표명했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역대 내각의 담화를 계승한다고 했으면서도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표현을 이어받는 데 부정적으로 반응한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신문도 ‘전후 70년 담화, 반성 빼고 미래를 말할 수 없다’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 / 파리=전승훈 특파원}

    • 201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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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상 첫 급진좌파 집권 회오리… “긴축에 지친 그리스 국민, 도박같은 선택”

    “이제 ‘트로이카’(국제통화기금,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는 ‘과거’가 됐다. 그들이 2010년부터 강요해 왔던 긴축정책은 이제 끝났다.” 25일 실시된 그리스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알렉시스 치프라스 급진좌파연합 ‘시리자’ 당수(40)가 이날 밤 아테네대 앞에서 총선 승리 연설을 하자 군중 사이에선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치프라스 당수는 “오늘 그리스는 5년간의 치욕과 고통을 끝내게 됐다”며 “구제금융 조건을 재협상하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이 모습에 일부 지지자는 눈물까지 흘렸다. 치프라스 당수의 ‘일성(一聲)’에 유럽이 꽁꽁 얼어붙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 처음으로 긴축정책 반대를 내건 정당이 집권함에 따라 유럽 경제가 또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최종 개표 결과 시리자는 149석(득표율 36.4%)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뒀다. 전체 의석 300석의 과반인 151석에 단 두 석이 부족할 뿐이다. 안도니스 사마라스 총리가 이끄는 신민당은 76석(27.8%)으로 2위에 머물렀다. 3위는 네오나치 성향의 극우 정당인 황금새벽당으로 17석(6.3%)을 득표했으며 중도 성향의 신생 정당인 포타미가 16석(6%)으로 뒤를 이었다. 치프라스는 개표 작업이 채 끝나기도 전인 26일 오후 긴축에 반대하는 우파 그리스독립당(13석)과 연정 구성에 합의했다. 이날 한때 4% 이상 폭락했던 그리스 증시는 연정 구성 합의 소식에 반등했다. 연정 구성에 성공한 치프라스는 이날 오후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을 면담한 뒤 총리 취임 선서를 했다. 사마라스 총리가 이끌었던 그리스 정부는 5년 가까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재정 상태를 흑자로 돌렸지만 민심을 잃었다. 중소기업 근로자와 실업자, 자영업자 등 서민에 대한 지원까지 대폭 줄어든 탓이다. 그리스 경제학자 루카스 추칼리스 교수는 “그리스 국민은 긴축으로 피폐해진 삶의 고통에 대부분 희망을 잃은 상태”라며 “더 나빠질 게 없다는 체념이 이번 선거에서 도박과도 같은 선택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은 시리자 압승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26일 유로화 가치는 한때 1.1098달러까지 내려갔다. 이는 2003년 9월 이후 11년여 만에 최저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유로존 19개국은 26일 재무장관 회의를 열고 그리스와의 부채 협상 대책을 논의했다. 회원국들은 이날 “그리스는 구제금융 조건 합의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브누아 쾨레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이사는 이날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ECB가 보유한 그리스 국채에 대해 채무 탕감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스페인 좌파 정당 ‘포데모스’는 “그리스가 마침내 ‘독일 사절단’(사마라스 총리의 집권 신민당을 비하한 표현)보다 나은 정부를 갖게 됐다”고 시리자의 승리를 축하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포르투갈 사회당 대표도 “긴축이 아닌 새로운 정책이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좌파전선(PG) 장뤼크 멜랑숑 대표와 영국 녹색당도 이번 선거 결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다른 한편에선 시리자의 집권이 시장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토니 바버 파이낸셜타임스(FT) 유럽 에디터는 “시리자 당수가 선거운동은 급진적으로 했지만, 통치는 실용주의자처럼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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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 총선 실시 “그렉시트는 없다” 약속에도 국가부도 공포 유로존 확산

    25일 실시된 그리스 조기 총선에서 긴축정책 반대와 구제금융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건 야당인 급진좌파연합 ‘그렉시트(Grexit)’와 국가부도 가능성이 현안으로 떠올라 유로존이 긴장하고 있다. 이날 오전 7시부터 전국 2만여 곳의 투표소에서는 그리스는 물론이고 유럽의 운명이 달린 한 표를 행사하려는 유권자들이 길게 줄을 섰다. 그리스의 총 유권자는 980만 명. 시리자에 한 표를 던졌다는 스타브룰라 구르두루 씨(43·여)는 “외국의 금융 권력이 우리의 아이들을 망치는 것을 더이상 두고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니콜라 코플루스 씨(78)는 “긴축정책으로 힘들었지만 나라가 망하도록 둘 수 없어 한 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투표는 이날 오후 7시(한국 시간 26일 오전 2시)에 끝났으며, 최종 개표 결과는 26일 오전 10시(한국 시간)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지에서는 시리자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24일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그리스의 구제금융 재협상과 부채 탕감을 요구하는 시리자는 33.5%로 안도니스 사마라스 총리가 이끄는 여당 신민주당(ND)을 3∼6%포인트 앞서며 지지율 1위를 고수했다. 전체 300석 중 과반 확보에 필요한 최소 득표율은 36.5% 정도로 추산된다. 시리자는 단독 과반 확보가 어려워 지지율 3위인 중도파 ‘포타미’ 등 소수정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것으로 보인다. 시리자는 마오이스트, 마르크스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사회주의자, 유러코뮈니스트, 녹색당 등의 연합으로 구성된 급진좌파그룹이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로 불리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당수(40)는 24일 마지막 유세에서 “빛이 어둠을 이겼다”면서 “시리자가 집권해 그리스 국민의 존엄성을 회복하겠다”며 좌파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긴축 철폐와 채무탕감 방침은 굽히지 않았다. 그는 세금 감면, 최저임금 인상, 가정 전기요금 인하, 연금 지급, 공공지출 원상회복 등 각종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도 약속했다. 영국 BBC는 “시리자가 집권하면 유로존에서 처음으로 ‘반(反)긴축정책’ 정부가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며 “유럽 각국에서도 포퓰리스트 정당의 대약진이 예고된다”고 전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시리자가 집권해도 그리스는 구제금융과 관련해 이제까지 언급해 온 연금 삭감, 공무원 대량 감원 등의 약속을 존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 EU, 유럽중앙은행(ECB) 등 이른바 ‘트로이카’로부터 2010년,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2400억 유로(약 292조 원)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리스의 구제금융은 올해 2월 말이 기한으로 잡혀 있어 연장 여부를 결정하지 않을 경우 신규 금융지원은 중단된다. 그러나 시리자가 집권한다 해도 당장 그렉시트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빌 머리 IMF 대변인은 “시리자도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어 그렉시트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하랄람보스 차르다니디스 그리스 국제경제관계연구소 소장은 “유로존 탈퇴보다는 ECB의 그리스 국채 매입 조건에 대한 협상이 최대 이슈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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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우디 국왕 타계… 유가 깜짝 급등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이 23일 오전 1시(현지 시간) 타계했다. 향년 91세. 사우디 왕실은 국영TV를 통해 지난해 12월 31일 폐렴으로 입원했던 압둘라 국왕이 서거했다면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세제(80)가 왕위를 이어받는다고 밝혔다. 23일 하루 종일 CNN 등 외신들은 일제히 주요 뉴스로 다뤘다. 세계 최대의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의 권력 지형 변동이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사우드 왕가의 6번째 국왕으로 2005년 81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압둘라 국왕은 국내외에 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사우디의 상징으로 인식돼왔다. 그는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아지즈 이븐사우드 초대 국왕의 부인 22명 중 7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10번째 아들이다. 재임 중 대외적으로는 강력한 친미 정책을, 대내적으로는 파격적인 개혁 정책을 폈다. 여성의 운전과 운동이 금지될 정도로 성차별이 극심한 문화에서 2013년 1월 국회에 해당하는 슈라위원회 위원 150명 중 30명을 여성으로 채웠고 여성을 차관에 임명했다. 2012년에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고 올림픽 출전도 허용했다. 하지만 즉위 직후 ‘여성에게 운전을 허용하겠다’고 한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경제 분야에서도 주식시장을 외국인 투자자에게 개방했으며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추진하는 등 개방정책을 폈다. 2011년 중동 전역에 민주화 바람이 불던 ‘아랍의 봄’ 때에는 과감한 사회복지 혜택으로 민심을 잠재웠다. 사우디 왕위는 초대 국왕의 유언에 따라 장자가 아닌 ‘형제’가 잇는다. 왕위를 이어받는 살만 왕세제는 압둘라 국왕의 이복동생으로 2011년부터 부총리 겸 국방장관을 맡아왔으며 50년 동안 수도 리야드 주지사직도 지냈다. 형의 건강이 악화하면서 최근까지 사실상 국왕 대행 역할을 했다. 살만 왕세제는 이날 국영TV 연설에서 “선왕의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또 자신의 아들을 새 국방장관에 임명하고 외교, 석유, 재무 등 일부 장관은 유임시켰다. 그러나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국내외 난제들을 해결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뉴욕타임스는 “‘이슬람국가(IS)’의 위협과 이란의 세력 확장, 인접국가 예멘 쿠데타, 유가 하락 등 중동 지역의 불안 요인이 많은 상황에서 압둘라 국왕의 사망으로 불안 요소가 또 하나 늘었다”고 보도했다. 국제 유가가 어떻게 움직일지도 관심사다. 22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는 3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시간외 거래에서 3.1%까지 치솟는 등 깜짝 요동을 쳤다. 그러나 사우디가 원유 생산량을 유지해 점유율을 확대하는 기존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돼 향후 유가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위대한 지도자를 잃게 된 사우디 국민의 슬픔을 위로한다”는 조전을 보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양국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압둘라 국왕의 확고하고 열정적인 믿음에 감사한다”며 조의를 전했다. 중국 일본 프랑스 인도 등도 성명을 내고 국왕의 타계에 조의를 표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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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플레 유로존 구하자”… ECB, 매달 600억유로 뿌린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디플레이션(통화량 축소에 물가 하락, 소비 침체)에 빠진 유럽 경제를 살리기 위해 3월부터 내년 9월까지 1조1400억 유로(약 1435조 원) 규모의 양적완화(QE)를 단행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의 중앙은행이 양적완화를 잇따라 발표했으나 ECB가 대규모 양적완화를 결정한 것은 출범 이후 처음이다. ECB는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현행 0.05%로 유지하기로 했다. ECB는 지난해 9월 기준금리를 0.15%에서 0.05%로 내린 이후 이번까지 4개월째 동결했다. 또 예금금리도 현행 ―0.20%로 유지하기로 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사진)는 이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2016년 9월까지 매달 600억 유로(약 75조5340억 원)어치의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ECB가 발표한 양적완화 규모는 경제 전문가들이 당초 예상했던 5500억 유로보다 2배 이상 많다. 이번 조치는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에 퍼지고 있는 디플레이션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스위스에서 열리고 있는 다보스포럼에 참가 중인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ECB 발표 하루 전인 21일 “드라기 총재가 원하는 만큼 양적완화를 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며 ECB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해 12월 유로존 물가상승률(―0.2%)은 5년여 만에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당초 ECB 목표치 2%를 크게 밑돈 것이다. 또 유로존의 지난해 11월 실업률은 11.5%를 기록해 경기침체가 가속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유럽 경제를 살려내는 데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유로존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양적완화 조치가 각국의 경제개혁을 오히려 늦출 것”이라며 양적완화에 반대해 왔다. 금융회사 ‘미즈호 인터내셔널’의 런던 소재 리카르도 바르비에리 에르미트 수석 유럽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양적완화 규모는 예상보다 큰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핵심은 위험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드라기 총재가 앞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 ECB가 아닌 유로존 19개국 중앙은행이 해당국의 국채를 사들여 위험 부담을 분산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각국이) 위험 부담을 공유할수록 효과도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ECB의 양적완화 발표 이전인 22일 오전 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ECB의 조치에 따라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질 것이라 예상한다”며 “올해 각국의 상반된 통화정책이 금융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다. (대응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의 말은 유로존이 대규모 양적완화를 시작하는 데 비해 미국은 지난해 양적완화를 종료한 데 이어 금리인상 등 출구전략을 준비하고 있어 글로벌 금융시장의 자금 흐름이 급변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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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 여기자 IS지원 체험기 출간… ‘지하드 2.0’ 선전술 생생

    프랑스의 탐사보도 전문 여기자 아나 에렐(가명·30) 씨가 인터넷을 통해 직접 ‘이슬람국가(IS)’의 신병 모집책과 접촉한 뒤 자신이 겪은 생생한 체험담을 책으로 펴냈다. 15일 발간된 이 책은 최근 시리아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김모 군을 비롯해 전 세계 평범한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IS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선전술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외톨이 청소년이라면 자신에게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는 IS 대원에게 마냥 빠져들 것”이라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에렐 씨가 인터넷을 통한 IS 잠입취재를 결심한 것은 지난해 4월. ‘왜 그토록 많은 프랑스 젊은이들이 IS의 유혹에 넘어가는가’를 알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먼저 페이스북에 ‘이슬람으로 막 개종한 20대 여성 멜라니’라는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 테러리스트 그룹의 사진과 비디오를 공유해 이슬람 극단주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음도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유럽 출신 IS 대원들이 ‘친구 맺기’를 요청해 왔다. 드디어 IS 신병모집 총책이라고 밝힌 프랑스 출신 IS 대원으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그는 자신을 IS 최고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의 측근이라고 소개했다. 아부 빌렐(38)이라고 실명을 밝힌 이 남자는 머리에 젤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끼고,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의 향수를 사용하는 세련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척 봐도 전형적인 ‘메트로섹슈얼’(대도시에 거주하며 외모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는 젊은 남성)이었다. 그는 ‘멜라니’에게 “지금 바로 시리아로 오면 좋은 아파트에서 살게 해주고, 보육원에서 아이를 돌보는 착한 일을 하면서도 돈도 많이 벌 수 있게 해주겠다”고 유혹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인터넷 화상 전화 ‘스카이프’를 통해 진행됐다. 에렐 씨는 히잡(머리에 쓰는 스카프)을 쓰고, 아랍어식 표현을 쓰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오던 남자는 에렐 씨가 잠시라도 화면에서 벗어나면 “어디에 있느냐”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영혼이 너무 맑아 보인다”며 달콤한 말로 끊임없이 속삭이던 남자는 어느 날 “결혼하자”고 청혼까지 했다. 에렐 씨와 신뢰관계가 형성됐다고 착각한 이 남성은 서서히 극단주의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은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이며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맞서 싸우기 위해 프랑스를 떠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리비아 등에서 게릴라 전사로 활동해 왔다고 자랑했다. 그는 “포로들을 고문하고, 참수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자신이 직접 참수한 머리를 들고 있는 사진을 에렐 씨의 스마트폰에 전송하기도 했다. “IS 신병들은 오전 아랍어 수업, 오후 사격 훈련을 하며 2주 훈련이 끝나면 어떤 전선에서도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들은 미래의 영웅”이라며 IS에 대한 홍보도 잊지 않았다. 에렐 씨는 “시리아를 이상향으로 묘사하는 홍보 비디오는 너무나 잘 만들었다. 그들의 훈련 모습 영상을 보다 보면 마치 컴퓨터게임처럼 청소년들을 빠져들게 할 만한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한 달간의 인터넷 잠입취재를 마치고 에렐 씨는 남성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위험은 그 다음부터 시작됐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수많은 살해 위협이 가해지기 시작한 것. 유튜브에는 IS가 그녀에게 사형 ‘파트와’(이슬람 율법 해석)를 내리는 동영상도 떠돌았다. 또 화상 통화하는 장면도 공개됐다. 이 장면 아래에는 “이 여자를 강간하고 돌로 쳐서 고통스럽게 죽여라”라는 아랍어 자막이 붙기도 했다. 에렐 씨는 결국 전화번호와 이름을 바꾸고,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친척들 집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17일 프랑스 ‘카날 플뤼스’ 방송에 얼굴을 가린 채 출연한 에렐 씨는 “살해 위협을 받고 있지만 IS의 실체를 증언하기 위한 내 선택에 대해선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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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유혹에 넘어갈까” 프랑스 여기자의 IS 신병모집 잠입취재기

    프랑스의 탐사보도 전문 여기자 안나 에렐 씨(30·가명)가 인터넷을 통해 직접 IS의 신병 모집책과 접촉한 뒤 자신이 겪은 생생한 체험담을 책으로 펴냈다. 15일 발간된 이 책은 최근 시리아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김 모군을 비롯해 전 세계 평범한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IS의 소셜네트워크서비(SNS) 선전술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외톨이 청소년이라면 자신에게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는 IS 대원에게 마냥 빠져들 것”이라고 위험성을 경고했다. 에렐이 인터넷을 통한 IS 잠입취재를 결심한 것은 지난해 4월. “왜 그토록 많은 프랑스 젊은이들이 IS의 유혹에 넘어가는가”를 알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먼저 페이스북에 ‘이슬람으로 막 개종한 20대 여성 멜라니’라는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 테러리스트 그룹의 사진과 비디오를 공유해 이슬람 극단주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음도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유럽 출신 IS 대원들이 ‘친구 맺기’를 요청해왔다. 드디어 IS 신병모집 총책이라고 밝힌 프랑스 출신 IS대원으로부터도 연락이 왔다. 그는 자신을 IS 최고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측근이라고 소개했다. 아부 빌렐(38)이라고 실명을 밝힌 이 남자는 머리에 젤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끼고,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의 향수를 사용하는 세련된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척 봐도 전형적인 ‘메트로섹슈얼’(대도시에 거주하며 외모를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는 젊은 남성)이었다. 그는 ‘멜라니’에게 “지금 바로 시리아로 오면 좋은 아파트에서 살게 해주고, 고아원에서 아이를 돌보는 착한 일을 하면서도 돈도 많이 벌 수 있게 해주겠다”고 유혹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인터넷 화상 전화 ‘스카이프’를 통해 진행됐다. 에렐은 히잡(머리에 쓰는 스카프)을 쓰고, 아랍어식 표현을 쓰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오던 남자는 에렐이 잠시라도 화면에서 벗어나면 “어디에 있느냐”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도 보냈다. “영혼이 너무 맑아 보인다”며 달콤한 말로 끊임없이 속삭이던 남자는 어느날 “결혼하자”고 청혼까지 했다. 에렐과 신뢰관계가 형성됐다고 착각한 이 남성은 서서히 극단주의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은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이며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맞서 싸우기 위해 프랑스를 떠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리비아 등에서 게릴라 전사로 활동해 왔다고 자랑했다. 그는 “포로들을 고문하고, 참수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자신이 직접 참수한 머리를 들고 있는 사진을 에렐의 스마트폰에 전송하기도 했다. “IS 신병들은 오전 아랍어 수업, 오후 사격훈련을 하며 2주 훈련이 끝나면 어떤 전선에서도 싸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들은 미래의 영웅”이라며 IS에 대한 홍보도 잊지 않았다. 에렐은 “시리아를 이상향으로 묘사하는 홍보 비디오는 너무나 잘 만들었다. 그들의 훈련모습 영상을 보다보면 마치 컴퓨터게임처럼 청소년들을 빠져들게 할만한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한 달간의 인터넷 잠입취재를 마치고 에렐은 남성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위험은 그 다음부터 시작됐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수많은 살해위협이 가해지기 시작한 것. 유튜브에는 IS가 그녀에게 사형 ‘파트와’(이슬람 율법 해석)를 내리는 동영상도 떠돌았다. 또 화상 통화하는 장면도 공개됐다. 이 장면 아래에는 “이 여자를 강간하고 돌로 쳐서 고통스럽게 죽여라”는 아랍어 자막이 붙기도 했다. 아렐은 결국 전화번호와 이름을 바꾸고,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친척들 집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17일 프랑스 ‘카날 플뤼스’ 방송에 얼굴을 가린 채 출연한 에렐은 “살해위협을 받고 있지만 IS의 실체를 증언하기 위한 내 선택에 대해선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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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슬림 분노 키운 파리 뒷골목… 테러의 온상으로

    16일 오후 1시경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교외의 소도시 ‘젠빌리에’의 모스크(이슬람 사원). 이슬람교도의 낮기도 시간이 되자 사원 앞 거리 풍경은 이곳이 프랑스인지, 북아프리카의 한 아랍 도시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머리에 흰색 터번을 쓰고 수염을 길게 기른 남성들과 검은색 니깝(얼굴 가리는 베일)을 뒤집어쓰고 눈만 내놓은 여성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젠빌리에는 ‘샤를리 에브도’ 잡지사 테러범인 셰리프 쿠아시가 약 10년간 거주하며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을 키운 곳이다. 이날 모스크 앞에는 경찰관들이 대거 배치돼 있었다. 기자가 “평소에도 이렇게 경비를 서느냐”고 묻자 경찰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뜸 “기자 신분증을 보여 달라”며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프랑스는 어떤 주의와 주장도 모두 포용하는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캄보디아 독재자 폴 포트도 프랑스에서 원시공산주의를 배웠고 마오쩌둥(毛澤東) 밑에서 중국 문화혁명을 주도한 저우언라이(周恩來)도 프랑스 유학파였다. 이처럼 타 문화에 대해 관용적인 프랑스가 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의 표적이 됐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프랑스에서 ‘방리외’(Banlieue·교외)라고 불리는 변두리 이민자 집단거주지역을 찾았다. 쿠아시 형제가 테러 직후 차량을 훔쳐 도주 행각을 벌인 지역이 바로 포르트드팡탱, 센생드니에서 샤를드골 공항까지 이어지는 ‘방리외’ 지역이다. 프랑스 경찰은 잡지사 테러 이틀 뒤인 9일 센생드니의 한 아파트를 급습해 거물급 마약 거래상을 체포했다. 그의 창고에서는 코카인 300g, 대마초 640kg, 칼라시니코프 소총 7자루, 권총, 3만 유로의 현금이 발견됐다. 프랑스 정부가 대도시 외곽 지역에 건설한 약 100만 채의 공공임대 주택은 세월이 흐르면서 가난한 이민자, 불법 체류자, 실업자들의 집단 거주지로 변했다. 이곳은 경찰은 물론이고 소방서 구급차량도 맘껏 다닐 수 없어 ‘치외법권 지역’으로 불린다. 2005년 프랑스 북부 폭동의 중심지였던 센생드니를 찾아가니 사방에서 쏟아지는 적대적인 눈길에 머리카락이 쭈뼛하게 곤두서는 것 같았다. 거리 곳곳에는 깨진 술병이 나뒹굴었고 소변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자는 센생드니의 낡은 아파트 단지 가운데 위치한 들라퐁텐 병원을 찾았다. 지난해 8월 열 살짜리 흑인 소년 제카리아의 억울한 죽음으로 프랑스 언론이 대서특필한 병원이다. 소년의 부모는 오후 11시 반경 갑작스러운 복통에 시달리는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소방서와 병원 구급대, 택시 회사에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이들은 모두 “이 시간엔 너무 위험해 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결국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걸어서 오전 3시경 병원에 도착했는데 ‘급성 맹장염’ 진단을 받은 아이는 수술이 너무 늦어져 결국 숨졌다. 들라퐁텐 병원 주차장에서 만난 구급대원은 “지난달에도 구급차가 복면을 쓴 청년들에게 공격당해 유리창이 깨지고 의료진이 휴대전화와 소지품을 털리는 사건이 두 차례나 발생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 살고 있는 무슬림 인구는 약 500만 명.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73년까지 프랑스의 경제 붐을 타고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세네갈 시리아 레바논 등 프랑스의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식민지 출신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일자리가 줄어들고 아랍계 이민자 2, 3세들이 프랑스 사회로부터 배제당하자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1995년 알제리무장이슬람그룹(GIA)의 생미셸 지하철역 테러사건, 2005년과 2007년 파리 북부 폭동사건으로 이어졌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은 외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국민들이 일으킨 자생적 테러라는 점에서 “이슬람의 실패가 아니라 프랑스 이민정책의 실패”(뉴욕타임스)라는 지적이 나온다. 존 보언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파리 외곽의 변두리는 이민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의 상징적 공간”이라며 “절망에 빠진 이민자 젊은이들이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가 선동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젠빌리에·센생드니(프랑스)=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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