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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산이었다. 턱밑까지 올라온 비명을 차마 내지르지 못했다. “소리를 질러야 호흡이 수월하다”고 간호사가 말했지만 이를 더 꽉 깨물었다. 출산의 고통보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다는 부끄러움이 더 컸다. 그렇게 꼬박 24시간을 버텼다. 2011년 3월 정수진 씨(38)는 자연분만으로 아정 양(8)을 낳았다. 엄마가 됐지만 세상은 그를 ‘미혼모’라고 불렀다. 출생신고서상 딸은 혼외자로 구분됐다. 주변에선 ‘능력도 안 되면서 왜 아이를 낳았느냐’는 핀잔이 이어졌다. 엄마는 강하다지만 이런 차별과 편견 속에서 아이를 키우려면 ‘투사’가 돼야 했다. 그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건 아이를 책임진 내가 아니라 아이를 외면한 사람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결혼은 선택’이라고 말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지만 정 씨처럼 미혼 가족이나 동거 가족이 겪는 차별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10여 년을 함께 살아도 동거 가족은 서로의 수술동의서에 서명조차 할 수 없다. 해외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결혼과 혈연, 입양으로만 법적 가족을 인정받는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로드맵’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이 존중받는 포용사회’를 새로운 목표로 내세웠다. 가족 형태를 떠나 모든 아이를 정부가 동등하게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출생신고 시 혼외자 구별 폐지를 추진하고 있지만 ‘포용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뗀 수준이다.》 정수진 씨(38·여)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1개월가량 지나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태동을 느끼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지만 현실은 막막했다. 당시 그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업 실패로 생긴 빚을 갚고 생활비를 빼면 남는 게 얼마 되지 않았다. 임신 8개월 무렵 정 씨가 임신한 사실을 안 편의점 사장은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어떻게 임신을 했냐. 너 같은 사람은 신뢰할 수가 없다”고 훈계했다. 그는 일을 그만둬야 했다. 출산 후 월세 35만 원짜리 원룸에서 혼자 몸조리를 했다. 2.4kg. 정 씨의 딸은 출생 당시 또래보다 작았다. ‘임신 사실을 숨기려 배를 복대로 꽉 싸맸기 때문은 아닐까.’ 정 씨는 아직도 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왜 아비 없는 자식을 낳아서…” 모아둔 돈은 금세 바닥이 났다. ‘능력이 안 되는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 안 된다’는 말들이 자신을 향한 손가락질처럼 여겨졌다. 현실이 정말 그렇다면 딸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랐다. 정 씨는 생후 15일 된 딸을 입양 기관에 맡겼다. “며칠 내내 우는 저를 보고 동네 친한 언니가 ‘부모님께 사실대로 얘기하고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더군요.” 그 언니도 두 자녀를 키우는 미혼모였다. 사흘 만에 다시 입양 기관을 찾았지만 아이를 데려가려면 연락조차 안 되는 생부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아이를 며칠간 맡아준 비용도 내야 했다. 정 씨는 가족과 지인에게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열흘 만에 다시 딸을 품에 안았다. “아이 아빠가 없는데….” 정 씨의 말에 동주민센터 직원은 출생신고서 부의 인적사항란에 엑스(×)표를 그었다. 혼외자라는 표시다. 이런 관행이 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제도가 바뀌긴 했다. 공무원 대신 부모가 출생신고서에 직접 혼외자를 기입하도록 한 것이다. 며칠 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려고 다시 들른 동주민센터에서 담당 사회복지사는 정 씨를 앞에 두고 “왜 아비 없는 자식을 나랏돈으로 키우려고 하느냐”고 말했다.○ 배려 없는 사회, 상처받는 이들 사람들이 무심코 뱉은 말들은 대못이 돼 정 씨 모녀의 가슴에 박혔다. 어느 날 딸이 어린이집에서 “넌 아빠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정 씨가 어린이집 원장에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원장은 도리어 “어차피 크면 겪을 일인데 이런 것도 예상하지 못했느냐”고 핀잔을 줬다. 학교에선 엄마랑 아빠가 ‘결혼’을 해야 아이가 생기고 가족이 된다고 가르쳤다. 평소 ‘우리 가족은 사정이 있어 아빠랑 같이 살지 못할 뿐’이라는 엄마의 말에 순응하던 딸은 이 수업을 듣고 처음으로 “왜 엄마는 결혼을 안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정 씨는 2014년부터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상담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딸은 자신처럼 차별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상담하며 만난 미혼모 대다수는 자신처럼 일과 양육을 홀로 감당하며 경제적 어려움과 돌봄 공백의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미혼 가족을 위해 추가로 지원하는 건 월 최대 20만 원인 ‘한부모 가족 양육 지원금’ 정도다. 정 씨는 “미혼모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면 ‘무책임하게 즐기다가 아이 낳은 사람한테 왜 나랏돈을 주냐’는 비난이 뒤따른다”며 “국회의원들도 이런 여론을 의식해 미혼모를 지원하는 법 개정에 난색을 표한다”고 말했다.○ 인생 동반자도 법 앞에선 ‘남’인 현실 박정민(가명·38) 씨는 2006년 동갑내기 여자친구와 결혼 대신 동거를 택했다. 양가 부모와의 관계 등 원치 않는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결혼 제도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박 씨는 “이혼 후 새 가정을 꾸린 부모를 보며 결혼이 꼭 행복의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2년간 동고동락한 박 씨 커플은 법적으로 여전히 ‘남남’이다.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어 월세로 집을 구했다. 건강보험료 부양가족 등록도, 연말정산 소득공제 시 인적공제도 할 수 없다. 동거 커플은 응급실에 실려 가도 법적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해 서로 수술동의서를 쓸 수 없다. 박 씨는 “파트너가 간단한 외과 수술을 받는데도 부산에 사는 부모님이 올라와 수술동의서를 써야 했다”고 씁쓸해했다. 이들이 아이를 낳아도 법적으론 ‘한부모 자녀’가 된다. 최근 고령화로 이혼이나 사별 뒤 ‘황혼 동거’를 택하는 노인들도 늘고 있다. 권정수 씨(81)와 김복남 씨(71·여)는 매일 아침 두 손을 꼭 잡고 울산노인복지관을 찾는다. 두 사람이 12년 전 처음 만나 사랑을 키운 곳이다. 생일 등 기념일에는 양쪽 여섯 자녀와 손주들까지 모여 대가족을 이룬다. 권 씨는 “이 사람을 만난 덕에 나이 여든에도 옷맵시를 신경 쓰는 멋쟁이가 됐다”고 했다. 김 씨는 “배울 게 많은 스승, 친구 같은 애인”이라며 권 씨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두 사람의 동거를 바라보는 시선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김 씨는 “돈을 바라고 만나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수군거림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내며 관계가 더 단단해졌다고 했다. 자녀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권 씨는 사별하거나 이혼한 친구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권한다. 재혼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혼인 관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면 얼마든지 동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갈 길 먼 포용사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56.4%가 ‘남녀가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고 답했다. ‘결혼해야 한다’는 답변(48.1%)을 처음으로 앞지른 것이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결혼에 대한 인식과 가족 개념이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끌어안는 노력은 더디기만 하다. 현행법은 가족의 개념을 혼인과 혈연, 입양으로 맺어진 관계로만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동거 가족은 통계조차 없다. 2017년 기준 약 23만 가구인 비친족가구 중 일부가 동거 가구일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학계에서는 동거 가족을 약 20만 가구 정도로 보고 있다. 같은 해 기준 국내 미혼모는 2만2065명, 미혼부는 8424명이다. 입양을 보낸 미혼부모는 뺀 수치다.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고 차별을 막으려는 노력은 전통적인 가족 해체를 부추긴다는 일각의 우려 때문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사실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논의를 시작조차 못 했다. 이 법을 개정하더라도 출생신고 시 혼외자를 구별하는 등 차별을 없애려면 민법이나 가족관계등록법 등도 바뀌어야 한다. “결혼하지 않으면 미숙한 가정으로 보지만 이미 각 가정마다 함께 사는 구성원이 다 다르잖아요. 우리도 그런 다양한 가족 중 하나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아정 양을 홀로 키우며 ‘투사’가 된 정수진 씨의 소박한 바람이다. 김호경 kimhk@donga.com·박성민 기자}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내년부터 노인과 중증장애인 가구는 생계급여 대상 선정 시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3일 경사노위 산하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에서는 노인 및 중증장애인 가구의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을 내년부터 폐지하고, 그 외 빈곤층은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부양의무자란 기초생활수급자를 부양할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부모나 배우자, 자녀, 사위, 며느리 등을 가리킨다. 부양의무자의 재산과 소득이 일정 기준 이상이면 부양의무자가 실제로 돌보든, 돌보지 않든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 정부는 실제 돌보지 않는 부양의무자의 재산 때문에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93만 명(2015년 기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발표된 권고안은 노사 대표와 공익위원이 합의한 것으로 정부는 참여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와의 예산 협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보건복지부는 부양의무자 제도가 완전히 폐지되면 연간 4조 원의 재정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장지연 사회안전망개선위원장은 “노사는 세금을 내는 가장 중요한 주체”라며 “이들이 뜻을 모은 만큼 정부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실행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유성열 ryu@donga.com·김호경 기자}

난산이었다. 턱밑까지 올라온 비명을 차마 내지르지 못했다. “소리를 질러야 호흡이 수월하다”고 간호사가 말했지만 이를 더 꽉 깨물었다. 출산의 고통보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다는 부끄러움이 더 컸다. 그렇게 꼬박 24시간을 버텼다. 2011년 3월 정수진 씨(38)는 자연분만으로 딸 아정 양(8)을 낳았다. 엄마가 됐지만 세상은 그를 ‘미혼모’라고 불렀다. 출생신고서상 딸은 혼외자로 구분됐다. 주변에선 ‘능력도 안 되면서 왜 아이를 낳았느냐’는 핀잔이 이어졌다. 엄마는 강하다지만 이런 차별과 편견 속에서 아이를 키우려면 ‘투사’가 돼야 했다. 그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건 아이를 책임진 내가 아니라 아이를 외면한 사람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결혼은 선택’이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지만 정 씨처럼 미혼 가족이나 동거 가족이 겪는 차별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십수 년을 함께 살아도 동거 가족은 서로의 수술동의서에 서명조차 할 수 없다. 해외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결혼과 혈연, 입양으로만 법적 가족을 인정받는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로드맵’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이 존중받는 포용사회’를 새로운 목표로 내세웠다. 가족 형태를 떠나 모든 아이들을 정부가 동등하게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출생신고 시 혼외자 구별 폐지를 추진하고 있지만 ‘포용사회’로 나아가는 첫 걸음을 뗀 수준이다. 정수진 씨(38·여)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1개월가량 지나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태동을 느끼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지만 현실은 막막했다. 당시 그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업 실패로 생긴 빚을 갚고 생활비를 빼면 남는 게 얼마 되지 않았다. 임신 8개월 무렵 정 씨가 임신한 사실을 안 편의점 사장은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어떻게 임신을 했냐. 너 같은 사람은 신뢰할 수가 없다”고 훈계했다. 그는 일을 그만둬야 했다. 출산 후 월세 35만 원짜리 원룸에서 혼자 몸조리를 했다. 2.4kg. 정 씨의 딸은 출생 당시 또래보다 작았다. ‘임신 사실을 숨기려 배를 복대로 꽉 싸맸기 때문은 아닐까.’ 정 씨는 아직도 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왜 애비 없는 자식을 낳아서…” 모아둔 돈은 금세 바닥이 났다. ‘능력이 안 되는 부모는 아이를 키우면 안 된다’는 말들이 자신을 향한 손가락질처럼 여겨졌다. 현실이 정말 그렇다면 딸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길 바랐다. 정 씨는 생후 15일된 딸을 입양 기관에 맡겼다. “며칠 내내 우는 저를 보고 동네 친한 언니가 ‘부모님께 사실대로 얘기하고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더군요.” 그 언니도 두 자녀를 키우는 미혼모였다. 사흘 만에 다시 입양 기관을 찾았지만 아이를 데려가려면 연락조차 안 되는 생부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아이를 며칠간 맡아준 비용도 내야 했다. 정 씨는 가족과 지인에게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열흘 만에 다시 딸을 품에 안았다. “아이 아빠가 없는데….” 정 씨의 말에 동주민센터 직원은 출생신고서 부의 인적사항 란에 엑스표를 그었다. 혼외자라는 표시다. 이런 관행이 차별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제도가 바뀌긴 했다. 공무원 대신 부모가 출생신고서에 직접 혼외자를 기입하도록 한 것이다. 며칠 뒤 기초생활수급자를 신청하려고 다시 들른 동주민센터에서 담당 사회복지사는 정 씨를 앞에 두고 “왜 애비 없는 자식을 나랏돈으로 키우려고 하느냐”고 말했다.● 배려 없는 사회, 상처받는 이들 사람들이 무심코 뱉은 말들은 대못이 돼 정 씨 모녀의 가슴에 박혔다. 어느 날 딸이 어린이집에서 “넌 아빠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정 씨가 어린이집 원장에게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원장은 도리어 “어차피 크면 겪을 일인데 이런 것도 예상하지 못했느냐”고 핀잔을 줬다. 학교에선 엄마랑 아빠가 ‘결혼’을 해야 아이가 생기고 가족이 된다고 가르쳤다. 평소 ‘우리 가족은 사정이 있어 아빠랑 같이 살지 못할 뿐’이라는 엄마의 말에 순응하던 딸은 이 수업을 듣고 처음으로 “왜 엄마는 결혼을 안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정 씨는 2014년부터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상담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딸은 자신처럼 차별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상담하며 만난 미혼모 대다수는 자신처럼 일과 양육을 홀로 감당하며 경제적 어려움과 돌봄 공백의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미혼 가족을 위해 추가로 지원하는 건 월 최대 20만 원인 ‘한부모 가족 양육 지원금’ 정도다. 정 씨는 “미혼모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면 ‘무책임하게 즐기다가 아이 낳은 사람한테 왜 나랏돈을 주냐’는 비난이 뒤따른다”며 “국회의원들도 이런 여론을 의식해 미혼모를 지원하는 법 개정에 난색을 표한다”고 말했다.● 인생 동반자도 법 앞에선 ‘남’인 현실 박정민 씨(가명·38)는 2016년 동갑내기 여자친구와 결혼 대신 동거를 택했다. 양가 부모와의 관계 등 원치 않는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결혼 제도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박 씨는 “이혼 후 새 가정을 꾸린 부모를 보며 결혼이 꼭 행복의 필수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2년간 동고동락한 박 씨 커플은 법적으로 여전히 ‘남남’이다. 신혼부부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어 월세로 집을 구했다. 건강보험료 부양가족 등록도, 연말정산 소득공제 시 인적공제도 할 수 없다. 동거 커플은 응급실에 실려 가도 법적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해 서로 수술동의서를 쓸 수 없다. 박 씨는 “파트너가 간단한 외과 수술을 받는데도 부산에 사는 부모님이 올라와 수술동의서를 써야 했다”고 씁쓸해했다. 이들이 아이를 낳아도 법적으론 ‘한부모 자녀’가 된다. 최근 고령화로 이혼이나 사별 뒤 ‘황혼 동거’를 택하는 노인들도 늘고 있다. 권정수 씨(81)와 김복남 씨(71·여)는 매일 아침 두 손을 꼭 잡고 울산노인복지관을 찾는다. 두 사람이 12년 전 처음 만나 사랑을 키운 곳이다. 생일 등 기념일에는 양쪽 여섯 자녀와 손주들까지 모여 대가족을 이룬다. 권 씨는 “이 사람을 만난 덕에 나이 여든에도 옷맵시를 신경 쓰는 멋쟁이가 됐다”고 했다. 김 씨는 “배울게 많은 스승, 친구 같은 애인”이라며 권 씨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두 사람의 동거를 바라보는 시선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김 씨는 “돈을 바라고 만나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수군거림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내며 관계가 더 단단해졌다고 했다. 자녀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권 씨는 사별이나 이혼한 친구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권한다. 재혼할 수도 있었지만 굳이 혼인관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면 얼마든지 동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갈길 먼 포용사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56.4%가 ‘남녀가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수 있다’고 답했다. ‘결혼해야 한다’는 답변(48.1%)을 처음으로 앞지른 것이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결혼에 대한 인식과 가족 개념이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끌어안는 노력은 더디기만 하다. 현행법은 가족의 개념을 혼인과 혈연, 입양으로 맺어진 관계로만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동거 가족은 통계조차 없다. 2017년 기준 약 23만 가구인 비친족가구 중 일부가 동거 가구일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학계에서는 동거 가족을 약 20만 가구 정도로 보고 있다. 같은 해 기준 국내 미혼모는 2만2065명, 미혼부는 8424명이다. 입양을 보낸 미혼부모는 뺀 수치다.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고 차별을 막으려는 노력은 전통적인 가족 해체를 부추긴다는 일각의 우려 때문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사실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논의를 시작조차 못했다. 이 법을 개정하더라도 출생신고 시 혼외자를 구별하는 차별을 없애려면 민법이나 가족관계등록법 등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결혼하지 않으면 미숙한 가정으로 보지만 이미 각 가정마다 함께 사는 구성원이 다 다르잖아요. 우리도 그런 다양한 가족 중 하나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아정 양을 홀로 키우며 ‘투사’가 된 정수진 씨의 소박한 바람이다. ▼해외 선진국 가족 정책 사례 살펴보니…▼ 해외 선진국들의 가족 정책은 다양성을 최대한 인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바탕에는 ‘혼인이나 혈연으로 구성된 가족이 아니더라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깔려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 예상되는 미혼모 가정에는 직업 교육과 보육 지원 등을 강화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주력한다. 대표적인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1990년대 동거 인구가 급증하자 1999년 ‘팍스(PACs·시민연대협약)’ 제도를 도입했다. PACs는 결혼하지 않아도 가족수당과 사회보장급여, 소득세 산정 등에서 혼인 가구와 동일한 혜택을 주는 제도다. PACs 건수는 2000년 1만6589건에서 2017년 18만6614건으로 급증했다. 같은 해 결혼 건수는 22만6671건이다. 조만간 동거 커플 수가 결혼 커플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고용주는 PACs 커플에게도 결혼 커플과 똑같은 출산이나 사망과 관련한 휴가를 보장해야 한다. 유서를 남기면 PACs 커플끼리 유산도 상속할 수 있다. 정부에 동거 사실을 신고할 때도, 이별을 통보할 때도 지방법원에 서류 한 장만 보내면 된다. 영국은 2004년 동성애자 커플에게 혼인 관계와 유사한 법적 권리를 허용한 ‘시빌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이를 이성 커플로 확대했다. 결혼이나 시빌 파트너십 중 어느 쪽을 택해도 상속, 세제, 연금 등에서 차별받지 않는 것이다. 결혼 전 동거가 보편화된 스웨덴은 이보다 앞서 1988년 ‘동거법’을 제정해 동거 커플이 임신, 출산, 양육을 할 때 혼인한 부부와 같은 권리를 보장했다. 아동수당이나 출산휴가 등 복지 서비스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한 것이다. 개인 신상을 적는 관공서 등의 서류에는 기혼과 비혼 외에도 ‘동거’를 선택하는 칸이 있다. 선진국들은 미혼 가정 역시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덴마크는 미혼모에게 모성보호법, 임신보호법을 똑같이 적용해 결혼한 여성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한다. 아이 아빠가 양육을 포기하고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한 ‘히트앤드런 방지법’도 있다. 양육을 포기한 쪽은 매달 일정 금액을 양육자에게 보내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영국은 10대 미혼모가 학업을 계속 이어가길 원하면 교육 유지 수당을 지급하고, 자녀 1인당 일주일에 약 30만 원의 양육비를 제공한다. 독일 미혼모들은 부모에게 나누어 쓰도록 주어진 육아휴직 기간 14개월을 혼자 다 사용할 수 있다. 유럽 국가의 이런 노력은 출산율 제고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와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은 1997년 각각 1.7명, 1.5명 수준으로 떨어졌다가 2016년 나란히 1.9명대를 회복했다. 동거 가정, 미혼 가정, 혼외 출산 등을 전통적 가족의 ‘해체’로 여기기보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으로 보고 사회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인 결과다. 유럽뿐 아니라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배려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일본 지바(千葉)시는 사실혼 커플의 ‘파트너’ 지위를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동거 커플이 서로를 파트너로 선언하는 문서에 서명하면 ‘파트너십 증명서’를 발급하고, 이들에게 결혼 커플과 동등한 혜택을 주겠다는 의미다. 파트너 범위에는 성소수자 커플까지 포함하기로 해 눈길을 끌었다. 지바시는 이 파트너들에게도 친족끼리만 거주할 수 있는 공영주택을 제공할 계획이다. 김호경기자 kimhk@donga.com박성민기자 min@donga.com파리=동정민특파원 ditto@donga.com}

세종시가 세종보(洑) 해체를 유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2일 정례브리핑에서 “세종보 해체 여부는 2, 3년 중장기 모니터링한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며 “생태 복원 같은 환경 측면뿐만 아니라 도시 관리를 위한 용수 확보와 경관 유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 시장이 정부의 4대강 보 철거 방침에 반기를 든 셈이다. 세종보 해체에 대한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성급하게 해체를 결정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올 2월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는 세종보와 죽산보 완전 해체, 공주보 부분 해체, 백제보와 승촌보 상시 개방을 제안했다. 이 시장의 유보 의견에 찬반 양 진영의 의견은 엇갈렸다. 세종환경연합은 “환경부가 환경적, 경제적인 검토를 통해 세종보 해체를 결정한 것에 찬물을 끼얹고 금강의 건강성을 회복하려는 정책에 반기를 드는 반환경적 작태”라고 비난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세종시당은 “늦었지만 세종시민들을 위한 올바른 결정이라고 본다”며 환영했다. ‘4대강 보 해체 저지 범국민연합(4대강 국민연합)’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대(對)정부 투쟁 제1차 범국민대회’를 열고 보 해체 중단을 촉구했다. 4대강 국민연합은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과 이명박 정부 시절 고위 인사, 보수 성향 종교 및 시민단체 인사들로 구성됐다. 이날 대회에 참가한 4대강 보 인근 16개 지역 농민 약 5000명은 “4대강 보 해체 결사반대한다!” “4대강 보 해체하면 농업인 다 죽는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공동대표인 이재오 전 특임장관은 “현 정부가 졸속으로 4대강 보 해체를 결정해 국론을 분열시키고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세종=이기진 doyoce@donga.com / 김호경·한성희 기자}
사찰을 관람하지 않는 등산객에게도 입장료를 걷어 ‘부당 징수’ 논란이 이어진 지리산 천은사 통행료가 29일 폐지된다. 천은사는 1987년부터 사찰 옆 도로를 지나는 모든 등산객에게 ‘문화재 관람료’ 또는 ‘공원문화유산지구 통행료’ 명목으로 1인당 1600원을 받아왔다. 당초 천은사 통행료는 국립공원 입장료와 함께 걷었지만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천은사 측은 지방도 861호선(노고단로) 입구에 직접 매표소를 만들어 통행료를 걷었다. 이 도로 용지 일부가 사찰 소유라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이 도로가 지리산 노고단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데 있다. 사찰을 들르지 않는 등산객들 입장에선 ‘부당한 징수’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에 환경부와 문화재청, 전남도, 천은사 등 8개 기관은 오랫동안 논의를 거쳐 29일 오전 11시부터 통행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환경부는 사찰 주변 탐방로를 정비해줄 계획이다. 또 전남도는 사찰이 소유한 지방도 861호선 도로 용지를 매입하고, 문화재청은 사찰의 문화재 보수와 관광 자원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여러 기관이 지속적으로 소통한 끝에 통행료 폐지라는 극적인 합의를 이뤘다”고 자평했다.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올해 A형 간염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보건당국이 예방접종 등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켜 달라고 당부하고 나섰다. A형 간염에 취약한 30, 40대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28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 1월부터 이날까지 신고된 A형 간염 환자는 총 3597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1067명)과 비교하면 2.4배에 이른다. 지난해 한 해 동안 발생한 전체 A형 간염 환자 수(2436명)보다도 1.5배 많다. 올해 환자 10명 중 7명(72.6%)은 30, 40대로 집계됐다. 이는 30, 40대의 A형 간염 항체양성률이 유독 낮기 때문이다. 2015년 질병관리본부 조사 결과 당시 20대의 A형 간염 항체양성률은 12.6%로 전체 연령 중 가장 낮았다. 30대가 31.8%로 두 번째로 낮았다. 반면 중장년층과 노년층은 어릴 적 A형 간염을 앓아 대다수가 항체를 갖고 있었다. 10대는 예방접종을 통해 대부분 항체를 갖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A형 간염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증상이 심해지기 때문에 A형 간염 면역이 없는 30, 40대가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A형 간염을 앓은 적이 없거나 면역이 없다면 6∼12개월 간격으로 2회 예방접종을 통해 예방할 수 있다. 특히 12∼23개월 소아와 성인 중 외식업에 종사하거나 감염 노출 위험이 많은 의료인, A형 간염 유행 지역 여행자 등은 고위험군에 속한다면 예방접종을 하는 게 좋다. 또 A형 간염은 바이러스로 오염된 손과 물, 음식으로 주로 전파되기 때문에 △끓인 물 마시기 △음식 익혀 먹기 △손 씻기 등 개인 위생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그럼 안심하고 마셔도 되는 건가요?” 올 2월 미국 소비자단체(PIRG)의 발표를 근거로 국내에서 번진 일명 ‘농약 맥주’ 논란이 일단락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산 맥주 10종과 수입 맥주 40종에 대한 조사 결과 논란이 된 제초제 성분이 ‘불검출’ 됐다고 27일 밝히면서다. 그런데도 여전히 수입 맥주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을 불안에 떨게 한 맥주 논란의 괴담들을 팩트체크 형식으로 정리했다.① 식약처 검사는 부정확하다? 미국 소비자단체는 올 2월 맥주 11종에서 제초제 성분인 ‘글리포세이트’가 최대 50ppb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1ppb는 kg당 0.001mg을 뜻한다. 반면 식약처는 이들 11종을 포함해 총 50종의 맥주에서 모두 제초제 성분이 ‘불검출’됐다고 결론 내렸다. 미국 소비자단체와는 다른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식약처 결과가 훨씬 정확하다. 미국 소비자단체는 제초제 성분인 글리포세이트를 직접 측정한 게 아니라 이 성분에 반응하는 항체를 측정하는 분석법을 사용했다. 글리포세이트와 유사한 화학물질에도 항체가 반응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의 정확도는 떨어진다. 반면 식약처는 글리포세이트의 질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국제 공인 방법을 사용했다. 식약처는 이번 결과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불검출 기준인 10ppb 이하를 적용했다. 최근 실험 장비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기술적으로 10ppb 이하까지 측정할 수 있는데, 과학적으로 인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극소량인 만큼 10ppb 이하면 불검출로 판단한다.② 발암물질이면 무조건 위험하다? ‘불검출 수준의 극소량이어도 발암물질이면 위험한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 있다. 발암물질이라는 용어가 주는 공포감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국제암연구소는 발암물질을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1군’ △동물 실험 결과 인체 발암성이 추정되는 ‘2A군’ △인체 발암 가능성이 있는 ‘2B군’ △발암성이 분류되지 않는 ‘3군’ △발암성이 없는 ‘4군’으로 구분한다. 발암물질에는 치명적인 유독성 물질이 있지만 일상에서 흔히 노출되거나 섭취하는 물질도 꽤 포함돼 있다. 1군에는 술과 담배, 미세먼지, 햇빛 등이 있다. 글리포세이트는 튀김과 쇠고기, 돼지고기, 뜨거운 음료와 함께 동물 실험 결과 인체 발암성이 추정되는 2A군이다. 발암물질 등급보다 중요한 건 ‘노출 방법’이다. 호흡기로 노출 시 심각한 폐 손상을 일으키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은 피부에 닿으면 별 문제가 없다. 노출방법에 따라 인체 위해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글리포세이트를 발암물질로 분류한 건 농약을 고농도로 뿌릴 때 호흡기로 들어오거나 피부에 닿을 수 있어서다. 해외 정부와 학계에서는 글리포세이트를 식품으로 섭취할 경우 발암성이 없다고 보고 있다. ‘노출량’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정부가 정한 글리포세이트의 일일 섭취 허용량은 체중 1kg당 0.8mg이다. 체중 60kg인 남성이라면 매일 48mg씩 평생 섭취해도 인체에 아무 영향이 없다는 뜻이다. 이 정도의 글리포세이트를 섭취하려면 미국 소비자단체가 이 성분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주장하는 칭따오 맥주(50ppb)를 매일 960L(500mL 캔맥주 1920개)씩 마셔야 한다. 즉 현실적으로 인체 위해성을 걱정할 양이 아니라는 뜻이다.③ 국내 맥주회사가 로비했다? 식약처는 지난달 해외에서 ‘농약 맥주’ 논란이 번지자 수입 맥주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를 두고 수입 맥주를 견제하기 위한 국내 맥주 회사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식약처는 수입 맥주에 앞서 국산 맥주에 제초제 성분이 들어있는지 먼저 검사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농약 맥주’ 논란이 불거지기 전인 지난해 5월 이미 국내 맥주 10종을 대상으로 글리포세이트 성분 잔류 검사를 했다. 당시 분석 결과 모두 불검출이라 그 결과를 발표하지 않다가 이번에 수입 맥주 조사결과와 함께 공개했다. 맥주는 농산물이 아닌 가공식품이라 정기적으로 농약 검사를 하진 않는다. 다만 해외나 국내에서 위해성이 우려되는 상황이 생기면 그때마다 해당 농약에 대한 검사를 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지난해 5월 독일 등 해외 맥주에서 글리포세이트가 검출됐다는 정보를 접하고 국산 맥주는 어떤지 선제적으로 실패 파악을 했다”고 말했다. 김호경기자 kimhk@donga.com}

사찰을 관람하지 않는 등산객에게도 입장료를 걷어 ‘부당 징수’ 논란이 이어진 지리산 천은사 통행료가 29일 폐지된다. 천은사는 1987년부터 사찰 옆 도로를 지나는 모든 등산객에게 ‘문화재 관람료’ 또는 ‘공원문화유산지구 통행료’ 명목으로 1인당 1600원을 받아왔다. 당초 천은사 통행료는 국립공원 입장료와 함께 걷었지만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천은사 측은 지방도 861호선(노고단로) 입구에 직접 매표소를 만들어 통행료를 걷었다. 이 도로 부지 일부가 사찰 소유라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이 도로가 지리산 노고단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데 있다. 사찰을 들르지 않는 등산객들 입장에선 ‘부당한 징수’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에 환경부와 문화재청, 전남도, 천은사 등 8개 기관은 오랫동안 논의를 거쳐 29일 오전 11시부터 통행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환경부는 사찰 주변 탐방로를 정비해줄 계획이다. 또 전남도는 사찰이 소유한 지방도 861호선 도로 부지를 매입하고, 문화재청은 사찰의 문화재 보수와 관광 자원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여러 기관이 지속적으로 소통한 끝에 통행료 폐지라는 극적인 합의를 이뤘다”고 자평했다. 김호경기자 kimhk@donga.com}
1945년 일본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당한 한국인과 그 자녀들이 장애와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25일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위원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2017년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원폭피해자 지원 특별법)’에 따른 첫 실태조사다. 조사 결과 한국인 피해자 23%가 장애를 갖고 있었다. 36%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국내 70세 이상 평균 장애 비율(17.5%), 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비율(5.7%)보다 높은 수치다. 원폭에 따른 장애와 가난은 그 자녀들에게 대물림됐다. 피해자 자녀 8.6%가 장애를 갖고 있었다. 피해자 자녀의 9.5%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조사됐다.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1945년 일본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당한 한국인과 그 자녀들이 장애와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25일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위원회’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2017년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원폭피해자 지원 특별법)’에 따른 첫 실태조사다. 조사 결과 한국인 피해자 23%가 장애를 갖고 있었다. 36%는 기초생활수급자였다. 국내 70세 이상 평균 장애 비율(17.5%), 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비율(5.7%)보다 높은 수치다. 원폭에 따른 장애와 가난은 그 자녀들에게 대물림됐다. 피해자 자녀 8.6%가 장애를 갖고 있었다. 피해자 자녀의 9.5%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조사됐다. 전체 국민 중 기초생활수급자 비율(3.5%)의 약 3배 수준이다. 월평균 가구 소득은 291만 원으로 국내 가구 월평균 소득(462만 원)의 63%에 불과했다. 원폭 피해자들은 질병에도 취약했다. 피해자 남성의 전립샘암 유병률은 인구 10만 명당 9333명으로, 70세 이상 남자 전립샘암 유병률(1464명)의 6.4배였다. 복지부 관계자는 “다른 암과 희귀난치성 질환 유병률도 대체로 높았다”며 “다만 조사 대상이 적고 질병에는 소득이나 직업 등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피폭 영향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올해 추가로 피해자 자녀의 질병 유병률 등 건강 상태를 조사하기로 했다. 피해자 자녀를 정부가 지원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도 추진할 방침이다. 현행법은 원폭 피해자를 1945년 일본에서 원폭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만 규정하고 있어 그 자녀들은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됐다가 되돌아온 폐기물 등 평택항에 쌓여 있는 불법 폐기물에 대한 소각이 24일 시작됐다. 환경부와 경기도, 평택시는 이날 합동으로 평택항 불법 폐기물에 대한 행정 대집행을 실시했다. 환경부 등은 해당 폐기물을 6월 말까지 모두 소각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폐기물에 대한 예상 소각 비용은 13억 원이다. 환경부와 평택시는 이 비용을 불법 수출을 한 업체에 청구할 계획이다. 현재 평택항에는 총 4666t의 불법 폐기물이 쌓여 있다. 지난해 9월 필리핀으로 국내 폐기물을 불법 수출했던 국내 폐기물 업체가 수출하려다 적발된 것들이다. 폐기물은 △올 2월 필리핀에서 국내로 반입된 폐기물 1211t △이 업체가 다른 국가로 불법 수출하려다 적발돼 공해상에서 돌아온 폐기물 2183t △수출이 보류된 폐기물 1272t 등이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이르면 내년 초부터 낮은 도수의 돋보기안경과 모든 도수 물안경은 인터넷이나 TV홈쇼핑에서 구입할 수 있다. 그동안 모든 안경과 콘택트렌즈는 안경점에서만 살 수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일부 안경의 온라인 판매를 허용한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25일 입법예고한다고 24일 밝혔다. 온라인 판매 허용 대상은 도수 물안경과 양쪽 렌즈의 도수가 같고 비교적 도수가 낮은(+3.0디옵터 이하) 돋보기안경이다. 양쪽 렌즈 도수가 다르거나 도수가 높은 돋보기안경과 근시용 안경, 콘택트렌즈를 사려면 안경점을 방문해야 한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그동안 안경의 온라인 판매가 막혀 불편하다는 지적을 감안해 부작용 우려가 적은 일부 안경을 대상으로 온라인 판매를 허용한 것이다. 복지부는 6월 4일까지 의견을 수렴한 뒤 법 개정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다만 법이 개정되더라도 소비자가 직접 해외 인터넷 쇼핑몰에서 안경을 직구해서는 안 된다. 안경의 해외 직구는 이번 개정안(의료기사법)이 아닌 의료기기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유해물질분석과 실험실. 미국산 레몬, 중국산 말린 표고버섯, 영국산 차(茶) 등 수입 농산물이 각기 다른 검체수거 봉투에 담겨 있었다. 며칠 전 국내에 들어와 서울 시내 보세창고에 보관 중인 제품들로 잔류농약 검사를 앞둔 것들이다. 연구원은 검사를 위해 가장 먼저 농산물을 분쇄했다. 이를 병에 담아 정제 및 농축 과정을 거쳐 잔류허용 기준을 초과한 농약이 남아 있는지 확인한다. 잔류허용 기준은 씻지 않고 평생 먹어도 안전한 수준이다. 식품의약품약안전처 관계자는 “적합 판정을 받아야만 유통이 가능하며, 부적합 농산물은 전량 폐기되거나 수출국으로 반송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1월 모든 농산물을 상대로 ‘농약 허용물질목록관리제도(PLS)’를 시행하면서 수입농산물에 대한 잔류농약 검사가 더 깐깐해졌다. 시행 이전에는 잔류허용 기준이 없는 농약이 나와도 적합 판정을 받을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기술적으로 측정 가능한 최소 농도(kg당 0.01mg)만 초과해도 부적합 판정을 받는다. 사실상 아예 농약이 검출되지 않아야 적합 판정을 받는 것이다. PLS 기준에 맞추려면 농약 사용을 최소화해야 해 토양 오염을 막는 효과도 있다. 오염된 토양은 거기서 자란 농산물과 축산물을 거쳐 인간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PLS와 유사한 기준을 두고 있는 이유다. PLS 시행 3개월 만에 부적합 수입농산물들이 잇달아 퇴짜를 맞았다. 1월 중국산 양송이에서 살균제 ‘클로로탈로닐’이 kg당 0.04mg 검출돼 수입이 취소됐다. 이는 허용치(kg당 0.01mg)의 4배다. 2월 태국산 바질에서도 기준치의 1628배에 달하는 클로로탈로닐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3월 호주산 렌틸콩, 이달 초 중국산 생강에서도 잔류허용 기준이 없는 농약이 잇따라 검출돼 수입이 막혔다. 식약처 관계자는 “약을 처방받은 대로 먹어야 하는 것처럼 농약도 정해진 종류와 방법대로만 사용하도록 하는 게 PLS의 취지”라며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농약 오남용에 따른 생태계 위협을 줄이려면 PLS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부실한 시험 관리로 공개채용 필기시험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일자 응시생 전원을 상대로 다음 달 25일 시험을 다시 치르기로 했다. 김승택 심평원장은 23일 심평원 홈페이지에 “응시생 전원을 대상으로 재시험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심평원은 앞서 20일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심사직 5급 일반’ 신규 채용을 위한 필기시험을 치렀다. 문제는 1교시 시험 문항이 80개인데 OMR 답안지는 50문항용을 배포한 것. 시험 도중 잘못을 인지한 심평원은 응시생들에게 임시 답안지에 답을 써내도록 했다. 이어 시험이 모두 종료된 이후 임시 답안지의 답안을 정식 답안지로 옮겨 적도록 했다. 이런 조치를 두고 일부 응시생은 1, 2교시 사이에 30분간 쉬는 시간이 있었고 이때 응시생들끼리 1교시 답안을 휴대전화를 통해 공유했다며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다. 정식 답안지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임시 답안지와 다르게 답을 고쳐 쓰는 부정행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심평원은 당초 20일 필기시험 결과를 토대로 면접 대상자를 결정하려 했지만 공정성 시비를 해소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재시험을 결정했다. 구체적인 재시험 장소와 시간은 추후 공지할 계획이다. 재시험 대상은 20일 시험에 응시한 1135명 전원이다. 단, 이날 시험에 결시한 사람은 해당되지 않는다. 심평원은 “향후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진행하겠다”며 “응시생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 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했다.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인천 서구의 사랑나무어린이집이 최근 문을 닫았다. 어린이집 설립자가 아동학대 범죄를 저질러 처벌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충남 서산시 새나라어린이집 역시 같은 이유로 폐쇄 명령을 받았다. 아동학대 범죄 전력자가 운영하던 인천 연수구의 동작프로기사 바둑학원, 경북 구미시의 다평지역아동센터 등 4곳도 문을 닫았거나 닫아야 하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교육부, 여성가족부,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아동학대 범죄 전력자의 취업 및 운영 제한기관 34만649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이 기관을 운영하거나 여기에 취업한 아동학대 범죄 전력자 21명을 적발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들 중 해당 기관에 취업한 직원 15명은 해임 조치됐다. 운영자나 설립자가 범죄 전력이 있는 시설 6곳은 폐쇄 명령을 내렸다.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로 유죄 판결을 받아 형이 확정된 사람은 형이 확정된 날로부터 10년간 ‘아동 관련 기관’을 운영하거나 여기에 취업할 수 없다. 아동 관련 기관은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 학원 등 교육기관을 포함해 의료기관, 체육시설, 청소년시설,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 아동이 자주 이용하거나 아동과 접촉이 잦은 시설이다. 해임 및 폐쇄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기관 등록 및 허가를 취소하거나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번에 가장 많은 아동학대 전력자가 근무한 곳은 학원으로 총 7명이 적발됐다. 이 중 2명은 학원 원장이었고 나머지 5명은 직원이었다. 어린이집과 의료기관에서는 각각 4명, 3명이 적발됐다. 주민과 접촉이 잦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한 아동학대 전력자 2명도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 밖에 △체육시설 2명 △복지시설, 평생학습관, 수련시설 각 1명씩 적발됐다. 이들은 해당 기관을 설립하거나 이런 시설에 취업할 때 아동학대 전력이 없었으나 이후 범죄를 저질렀거나 형이 확정된 경우다. 지방자치단체가 범죄 전력을 곧바로 알 수 없다 보니 매년 한 번씩 실시하는 전수 조사 때까지 아동학대 전력자들이 아동 시설에서 일하는 공백이 발생하는 것이다. 적발된 기관 명단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개인 신상과 구체적 범죄 전력은 공개하지 않는다.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다음 달 동남아와 유럽으로 해외여행을 떠난다면 홍역 예방접종을 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40대 이상이거나 생후 5개월 이하 영아, 임신부가 아니라면 출국 전 1회 이상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는 해외 여행객이 몰릴 다음 달 어린이날(5월 5일) 연휴를 앞두고 홍역 백신 접종을 당부했다. 지난해 연간 15명이던 국내 홍역 환자는 올 들어 이달 21일까지 147명으로 급증했다. 이 중 44명은 해외를 방문했다가 홍역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방문 국가로는 베트남이 20명으로 가장 많았다.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홍역이 유행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올해 2만8362명이 홍역에 걸렸고 이 중 389명이 사망했다. 베트남과 태국에서도 올해 각각 1560명, 2020명의 홍역 환자가 발생했다. 홍역 퇴치 국가인 일본에서도 10년 만에 가장 많은 382명의 홍역 환자가 올해 나왔다. ‘홍역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백신 거부 운동이 일었던 유럽에서도 홍역이 유행하고 있다. 홍역은 한번 앓았거나 2회 예방접종을 하면 평생 걸리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취약한 연령은 20, 30대다. 대다수가 어릴 적 홍역을 앓지 않은 데다 2회 예방접종은 1994년 출생아부터 의무화됐다. 1967년 이전에 태어난 50대 이상은 어릴 적 홍역을 앓아 자연 면역을 갖고 있다. 40대의 약 93%도 면역을 갖고 있어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도 된다. 김호경기자 kimhk@donga.com}

경기 용인시 포곡읍 상원농장의 한 비닐하우스에선 12일 오후 호박꽃이 봉오리를 터뜨리려 하고 있었다. 호박의 꽃가루받이(수분)를 위해 풀어둔 꿀벌이 ‘윙윙’ 소리를 내며 비닐하우스 안을 날아다녔다. 농장주 이상원 씨(80)는 “처음엔 꿀벌에 많이 쏘였는데, 지금은 (꿀벌들도) 주인을 알아보는지 안 쏜다”라며 웃었다. 이 씨가 비닐하우스에 꿀벌을 들인 것은 몇 해 전이다. 그 전엔 호르몬제와 붓을 사용해 인공적으로 꽃가루받이를 시켰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농약 허용물질목록관리(PLS)’ 제도에 따라 호르몬제를 포함한 농약에 대한 관리가 엄격해지자 꿀벌을 활용한 자연 친화적인 꽃가루받이 방식을 택했다. 이 씨는 해충을 잡기 위해 농약을 쓸 때도 혹여나 PLS 제도에 어긋날까봐 농협이 무료로 배포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들여다본다. 어떤 작물에 무슨 농약을 쳐야 하는지, 농약을 몇 배로 희석해 농작물의 어느 부위에 뿌려야 하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를 어겼다가 허용치를 초과한 농약이 농산물에서 검출되면 당장 판매한 농산물을 거둬들여야 한다. 이 씨는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을 많이 쓰는 게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알려주니 공부가 된다”고 말했다.● ‘토양 환경이 곧 건강’ 농약 기준 강화 PLS는 농산물마다 써도 되는 농약의 종류와 양을 정해두고, 이 기준과 다른 농약 성분이 0.01ppm만 나와도 해당 농산물을 회수해 폐기하는 제도다. 기존엔 정해진 기준이 없는 경우 비슷한 농산물의 기준을 준용해 부합하면 통과시켰다. 예컨대 더덕에 사용하게끔 등록되지 않은 농약이 더덕에서 검출되면 그와 비슷한 뿌리채소 중 기준이 가장 낮은 도라지의 기준에 따라 판정하는 식이었다. 0.01ppm은 농산물 1㎏에 잔류 농약 0.01mg을 뜻하는 극미량이다. 쌀에 비유하면 80㎏ 짜리 25가마니 중 쌀알 1개에, 화물로 따지면 1t 트럭 100대에 실은 물품 중 1g에 해당한다. 사실상 등록되지 않은 농약은 사용 금지라고 볼 수 있다. 식약처는 2016년 12월 밤과 아몬드 등 견과류와 참깨 등 유지종실류, 바나나 등 열대과일류에 우선 PLS 제도를 적용했다. 올해 1월 이후엔 모든 농산물로 그 대상을 확대했다. 농약 사용을 이처럼 엄격히 관리하는 이유는 농약의 화학성분이 토양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막고, 궁극적으로는 먹거리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농약의 화학성분은 당장은 해충을 쫓거나 잡초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일정량 이상 쓰면 농산물에 그대로 남아 인체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등 독성으로 작용한다. 농약 성분이 토양 내 유기물을 소멸시켜 땅을 황폐하게 만들 수도 있다. 농약이 오염시킨 토양 환경은 다시 깨끗해지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린다. 2017년 8월 ‘살충제 잔류 계란’ 파동 땐 살충제를 쓴 적이 없다는 산란계 농장 2곳의 계란에서 금지물질인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DDT)이 기준치보다 많이 나왔다. 국내에서 1979년 이후 DDT 판매가 금지된 점을 감안하면 거의 40년 전에 뿌린 DDT 성분이 다 분해되지 않은 채 토양에 남아 있다가 산란계의 모이를 오염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PLS 제도는 우리 세대의 먹거리 안전뿐 아니라 미래의 환경을 고려한 제도인 셈이다.● “친환경 먹거리에 소비자도 만족” 농민들이 PLS 제도를 따르지 않았다가 허용하지 않은 잔류 농약이 검출되면 그 사실을 식약처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회수 및 판매중지 조치를 한다. 고농도 농약을 반복해서 치면 농약관리법 위반으로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거나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형사 고발까지 당할 수 있다. 용인시 포곡농협은 매주 관내 농산물 10건을 무작위로 수거해 농약 잔류검사를 벌이고 있다. 농민 김교진 씨(80)는 “지금은 무작위 검사에 걸릴까봐 다들 농약 사용 자체를 줄이는 분위기”라며 “애초에 ‘나와 내 가족이 먹을 농산물’이라고 생각해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선 농협의 농약 사용 교육을 3차까지 이수하고 현장 검사를 통과하면 농협 하나로마트 내 ‘로컬푸드매장’에 농산물을 납품할 자격을 얻는다. 12일 포곡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매장에 진열된 상추와 오이 등 농산물엔 농장주의 얼굴 사진과 휴대전화 연락처뿐 아니라 잔류농약 정밀 검사표가 일일이 부착돼 있었다. 소비자 최순경 씨(56·여)는 “농약검사가 철저히 이뤄지는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 안심하고 구입한다”며 만족해했다. 이 때문에 PLS 제도를 반기는 농민이 적지 않다. 예전엔 농약을 적절한 수준으로만 치고 싶어도 정확한 양을 몰라 무분별하게 사용했는데, PLS 제도 도입과 함께 교육이 강화된 후 농약을 사는 데 쓰는 비용 자체가 줄기도 했다. 또 로컬푸드매장에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어 농가들의 매출도 늘었다. 김미희 용인시 농업기술센터 북부농업기술상담소장은 “로컬푸드매장에 농산물을 납품하는 농민들은 도매시장에 팔 때보다 수입이 평균 1.3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조건희기자 becom@donga.com▼ 깐깐해진 수입농산물 검사 ▼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유해물질분석과 실험실. 미국산 레몬, 중국산 말린 표고버섯, 영국산 차(茶) 등 수입 농산물이 각기 다른 검체수거 봉투에 담겨 있었다. 며칠 전 국내에 들어와 서울 시내 보세창고에 보관 중인 제품들로 잔류농약 검사를 앞둔 것들이다. 연구원은 검사를 위해 가장 먼저 농산물을 분쇄했다. 이를 병에 담아 정제 및 농축 과정을 거쳐 잔류허용 기준을 초과한 농약이 남아있는지 확인한다. 잔류허용 기준은 씻지 않고 평생 먹어도 안전한 수준이다. 식품의약품약안전처 관계자는 “적합 판정을 받아야만 유통이 가능하며, 부적합 농산물은 전량 폐기되거나 수출국으로 반송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1월 모든 농산물을 상대로 ‘농약 허용물질목록 관리제도(PLS)’를 시행하면서 수입농산물에 대한 잔류농약 검사가 더 깐깐해졌다. 시행 이전에는 잔류허용 기준이 없는 농약이 나와도 적합 판정을 받을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기술적으로 측정 가능한 최소 농도(kg당 0.01mg)만 초과해도 부적합 판정을 받는다. 사실상 아예 농약이 검출되지 않아야 적합 판정을 받는 것이다. PLS 기준에 맞추려면 농약 사용을 최소화해야 해 토양 오염을 막는 효과도 있다. 오염된 토양은 거기서 자란 농산물과 축산물을 거쳐 인간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PLS와 유사한 기준을 두고 있는 이유다. PLS 시행 3개월 만에 부적합 수입농산물들이 잇달아 퇴짜를 맞았다. 1월 중국산 양송이에서 살균제 ‘클로로탈로닐’이 kg당 0.04mg 검출돼 수입이 취소됐다. 이는 허용치(kg당 0.01mg)의 4배다. 2월 태국산 바질에서도 기준치의 1628배에 달하는 클로로탈로닐이 검출돼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3월 호주산 렌틸콩, 이달 초 중국산 생강에서도 잔류허용 기준이 없는 농약이 잇따라 검출돼 수입이 막혔다. 식약처 관계자는 “약을 처방받은 대로 먹어야 하는 것처럼 농약도 정해진 종류와 방법대로만 사용하도록 하는 게 PLS의 취지”라며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농약 오남용에 따른 생태계 위협을 줄이려면 PLS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호경기자 kimhk@donga.com}
4대강 보 해체에 반대하는 범국민 서명운동이 22일 시작됐다. 정계와 종교계, 시민사회 인사들이 모인 ‘4대강 보 해체 저지 범국민연합(4대강 국민연합)’은 이날 서울역에서 ‘보 철거 반대 1000만 명 서명운동’ 출정식을 열었다. 4대강 국민연합은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과 이명박 정부 시절 고위 인사, 보수 성향 종교 및 시민단체 인사들의 모임으로, 지난달 28일 출범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전광훈 대표회장과 ‘4대강 전도사’였던 이재오 전 특임장관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4대강 국민연합은 25일 조명래 환경부 장관 등 7명을 직권 남용 및 국고 손실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하기로 했다. 4대강 자연성 회복을 명분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이미 만들어놓은 보를 해체하는 건 국가시설을 파괴해 피해를 끼치는 행위라는 게 고발 이유다. 조 장관을 뺀 나머지 6명은 고발장을 접수시킬 때 공개할 계획이다. 이 단체에는 한국당과 그 전신인 한나라당, 새누리당 출신 인사들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과 최병국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 정병국 전 바른정당 대표, 정진석 한국당 4대강특별위원장 등이 고문으로 추대됐다. 이명박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77명은 자문위원을 맡았다. 이에 따라 4대강 보 해체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슈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2월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원회는 금강과 영산강의 보 5개 중 3개를 해체할 것을 권고했고, 최종 결정은 7월경 열릴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이뤄진다.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한동안 잠잠했던 초미세먼지 농도가 22일 수도권 등 중서부 지역에서 ‘나쁨’ 수준으로 다시 심해진다. 또 서울은 28도까지 기온이 오르면서 초여름 날씨를 보이겠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22, 23일 서울, 인천, 경기, 충남 등 4곳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를 ‘나쁨’(m³당 35μg 초과∼75μg 이하)으로 예보했다. 이들 지역의 초미세먼지가 나쁨을 기록한 건 지난달 28일 이후 약 1개월 만이다. 3월 초 일주일간 고농도 미세먼지가 한반도 전역을 뒤덮은 이래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이상으로 치솟은 날이 급격히 줄었다. 이달 들어 고농도 미세먼지가 2개 시도 이상에서 나타난 날은 7일 하루뿐이었다. 중국 대기오염은 북쪽으로 갈수록 더 심한데, 바람의 방향이 서풍에서 남서풍으로 바뀌면서 중국발 오염물질 유입량은 물론이고 대기가 정체되는 날도 줄었기 때문이다. 장임석 국립환경과학원 대기질통합예보센터장은 “이번 고농도 미세먼지 역시 일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다만 과거 5, 6월에도 고농도 미세먼지가 있었던 만큼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고 말했다. 22일 서쪽 지역을 중심으로 낮 최고기온이 28도까지 오르는 등 초여름 날씨를 보이겠다. 낮 최고기온은 서울 수원 대전 전주가 28도, 춘천 27도, 광주 26도, 대구 25도, 부산 20도 등으로 예상된다. 반면 동해안을 접한 강원, 영남 지역은 낮 최고기온이 20도 이하로 평년(1981∼2010년 평균)보다 선선하겠다. 기상청 관계자는 “일교차가 10∼18도로 크겠으니 건강관리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기상청의 ‘3개월(4∼6월) 장기 예보’에 따르면 평년보다 포근한 날씨는 다음 달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이달과 5월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가능성이 50% 이상이라고 예보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어릴 적부터 달빛이 좋았다. “또 시작이냐”는 엄마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이면 뚫어져라 달을 쳐다봤다. 달빛은 자신이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빛이었다. 햇빛은 너무 강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만들었고, 별빛은 너무 약해 보이지 않았다. 대구대 현대미술전공 2015학번인 박찬별 씨(24)는 올해 8월 졸업한다. 시각장애 2급인 그는 1996년부터 맹학교 학생과 함께 미술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우리들의 눈’이 배출한 첫 미대생이다. 졸업 후 모교(한빛맹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게 꿈이다. 미대 진학에 이어 두 번째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박 씨를 11일 만났다. 박 씨는 시각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얼굴 앞의 사물만 겨우 알아본다. “1살 전에 시력을 완전히 잃을 겁니다.” 갓 태어난 그의 눈을 살핀 의사는 예측은 다행히 빗나갔다. 미술을 시작하면서 왼쪽 눈 시력이 크게 나빠졌지만 박 씨는 여전히 오른쪽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부모님은 그를 장애가 없는 또래처럼 키웠다.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학원에서 미술, 피아노도 배웠다. “금방 싫증을 내는 편인데 미술은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시각장애인에게 미술을 지도한 경험이 없는 학교나 학원은 미술에 대한 그의 갈증을 채워줄 수 없었다. 그는 초등 3학년 때 맹학교로 전학을 간 뒤 ‘우리들의 눈’ 수업을 들으며 미술에 눈을 떴다. 수많은 미술 재료를 처음 만지고 써봤다. 일대일 지도를 받으며 미술은 보이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시각장애인이 미술을 한다는 게 말이 되니?” 학년이 오를수록 박 씨에게 ‘현실’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고교에는 아예 미술수업이 없었다. ‘현실’을 좇아 미술 대신 공부를 하고, 청각이 예민한 시각장애인이 잘 할 수 있다는 음악도 배웠지만 남들처럼 잘하지 못했다.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게 박 씨는 1년 넘게 방황했다. “넌 손재주가 좋으니 미대에 가보면 어떠니?” 방황하던 박 씨를 붙잡아준 건 그를 오랫동안 지켜봤던 과학 선생님의 이 한마디였다. 과학 선생님은 박 씨가 미대 진학을 원한다는 걸 학교에 알렸고, 학교는 ‘우리들의 눈’에 도움을 요청했다.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돕겠다고 했어요.” ‘우리들의 눈’을 설립한 엄정순 화가의 회상이다. 그렇게 박 씨는 ‘우리들의 눈’이 추진한 미대 진학 프로젝트의 1호 미대생이 됐다.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죠.” 2013년 4월 16일, 박 씨는 첫 프로젝트 수업 날을 정확히 기억했다. 일주일에 사흘, 네 시간씩 그림을 배웠다. 8시간동안 그림만 그리기도 했다. 재수끝에 2015년 대구대에 합격했다. 합격은 달콤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사물을 똑같이 그려야 하는 정물화 시간은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구도를 잡으려면 멀리서 사물을 봐야 하는데 박 씨에겐 그것 자체가 난관이었다. 고칠 부분을 알려줘도 거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예술중고교 출신도 따라오기 벅차다”는 한 교수의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엄 선생님(엄정순 화가)께서 ‘넌 특별한 길을 가고 있다’고 항상 다독여줬어요.” 잘 보지 못하는 대신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세상을 캔버스에 담았다. 밤하늘을 비추는 달빛과 가로등,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단골 소재였다. 보이는 데 얽매이지 않다보니 그의 그림은 더 자유로웠다. 같은 밤하늘도 어떤 그림에서는 칠흑처럼 어둡게 그렸고, 다른 그림에서는 푸르스름하게 칠했다. 빨간 색으로 캔버스를 꽉 채운 적도 있다. 지난해 말 졸업 작품 전시회에는 그동안 그린 그림을 모아 사람의 눈 모양으로 설치했다. 눈동자가 있는 가운데는 비워뒀다. 남들과 다르게 본다는 자신의 눈을 표현한 것이다. “남들처럼 정밀 묘사는 못 하지만 그림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제가 더 많을 거예요.” 박 씨는 “미술은 제가 홀로 설 수 있게 해준 버팀목”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얼굴을 캔버스에 닿을 듯 가까이 대고 그림을 그리다보니 얼굴과 옷에 물감에 묻을 때가 많았다. 답답하고 불편할 것 같았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처럼 학교에 예쁜 옷을 못 입고 가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평소 장애로 인한 불편한 건 거의 없다고도 했다. 사진 찍기가 취미인 그는 일상을 사진으로 찍어 남긴다. 한때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이 3만 장에 달했다. 실제 그 사진들 가운데 초점이 어긋난 사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 씨는 16일 모교를 찾아 ‘우리들의 눈’이 진행하는 미술 수업에서 후배들을 가르쳤다. “후배들도 한 번쯤 꿈꿨봤으면 좋겠어요.” 그는 후배들의 꿈을 꾸려면 무엇보다 장애를 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건 도움이 아니라 경험을 넓히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해 도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김호경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