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애란

한애란 기자

동아일보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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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거나 유익하거나. 읽을 만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21년차 기자입니다.

haru@donga.com

취재분야

2024-04-19~2024-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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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신용도 높고 부채비율 낮아” 깐깐한 日투자자 마음 열었다[딥다이브]

    한국 정부가 지난주 일본에서 처음 발행한 사무라이 본드(엔화 표시 채권)가 큰 인기를 끈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높은 국가 신용등급과 낮은 정부부채 비율이 보수적인 일본 투자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기획재정부가 700억 엔(약 6318억 원) 규모의 엔화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발행한 건 7일. 25년 전 외환위기 당시 국내 거주자를 대상으로 엔화 외평채를 발행한 적은 있지만, 해외 발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상 한국 정부의 사무라이 본드 시장 데뷔전이었다. 기재부와 주간사회사에 따르면 결과는 흥행 성공이었다. 글로벌 투자자와 일본 대형 투자기관은 물론이고 현지의 소규모 지방은행들까지 대거 주문을 냈다. 일본 지방 투자자들은 낯선 자산에 투자하길 꺼리는 보수적 성향이라 투자업계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이번 거래 주간사회사 중 한 곳인 일본 투자회사 관계자 A 씨는 “예전엔 상상도 못 했던 금액으로 지방 투자자들이 참여했다”고 놀라워했다. 이번 외평채 금리가 올해 일본에서 발행된 모든 사무라이 본드 중 최저 수준(3년물 0.475%)이란 점에서 더 의외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외평채가 일본에서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높은 신용도다. 한국 국가신용등급은 AA(S&P 기준)로 A+인 일본보다 두 단계나 높다. 주로 일본 국채와 지방채에 투자해 온 일본 지방 금융회사들이 ‘일본 국채만큼 안전한 무위험 자산’이란 점에서 한국 외평채에 주목했다. 한국 정부의 건전 재정정책 기조도 투자자들을 안심시킨 요인이었다. A 씨는 “한국의 정부부채 비율이 일본보다 매우 낮은데도 한국 정부가 건전재정 기조로 가고 있다는 점이 일본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다”고 전했다. 한국의 정부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8.7%, 일본은 263.9%다. 기재부 역시 좋은 타이밍에 성공적으로 엔화 외평채를 발행했다고 자평한다. 초저금리 발행으로 조달비용을 아낀 데다 마침 엔화 가치가 바닥권이기 때문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이번 외평채 발행으로 조달한 700억 엔은 모두 환전 없이 엔화로 계속 운용된다. 따라서 외화보유액 중 엔화 자산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만약 엔화 가치가 앞으로 오른다면 달러로 환산한 외화보유액 가치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만기 시점에 엔화 가치가 급등한다 해도 손해 볼 일은 없다. 기재부 관계자는 “빌려온 엔화를 원화로 환전해 운용한다면 나중에 엔화로 갚을 때 환차손이 생길 수 있지만, 엔화로 운용하기 때문에 환차손 걱정은 없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이번 외평채가 향후 국내 기업이 발행할 사무라이 본드의 ‘금리 기준점’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외평채가 매우 낮은 금리로 발행됐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국내 기업의 발행금리도 떨어뜨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무라이 본드를 발행한 국내 기업은 많지 않은 편이지만, 최근엔 대한항공(6월)과 한국투자증권(7월)이 있었다. 일본 투자회사 관계자 A 씨는 “만약 대한항공이 지금 채권을 발행한다면 6월보다 금리를 적어도 10bp(=0.1%포인트) 정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제로금리와 엔저를 기회로 삼아 사무라이 본드 발행을 크게 늘리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들어 사무라이 본드 발행액은 8452억 엔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가까이 증가했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가 4월에 1600억 엔, 프랑스 금융회사 BPCE가 7월 1977억 엔어치를 발행한 게 대표적이다. 8일 한때 달러당 148엔까지 근접했던 엔화 가치는 이번 주 다시 146엔대로 소폭 상승했다(환율은 하락). 9일 “마이너스 금리 해제(기준금리 인상)도 선택지”라는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의 매파적 발언이 나온 영향이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본은행이 긴축으로 방향을 잡은 만큼 내년엔 완만한 엔화 강세를 예상한다”고 말했다.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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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건스탠리 “테슬라 목표주가 400달러”…나스닥 1.14%↑[딥다이브]

    주가가 10% 급등한 테슬라가 뉴욕증시 상승세를 이끌었습니다. 11일(현지시간)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상승 마감했는데요. 다우지수는 0.25%, S&P500 0.67%, 나스닥지수는 1.14% 올랐습니다.이날 테슬라 주가(273.58달러)를 10.09% 끌어올린 건 모건스탠리 보고서였습니다. 유명 자동차 애널리스트 아담 조나스는 이 보고서에서 테슬라 목표주가를 250달러에서 400달러로 60%나 상향하고, 투자의견을 ‘비중 확대’로 바꿨죠. 테슬라가 도입하고 있는 슈퍼컴퓨터 ‘도조(Dojo)’가 테슬라 평가가치에 약 5000억 달러(약 664조원)를 더할 수 있다는 걸 그 이유로 꼽았는데요. 2021년 테슬라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세서를 공개하고, 이를 토대로 완전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슈퍼컴퓨터를 제작한다고 밝혔죠. 그리고 실제 지난달부터 이 자체 슈퍼컴퓨터 ‘도조’의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조나스 애널리스트는 테슬라가 자체 개발한 칩이 “엔비디아 칩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더 효율적”이라며 칭찬했는데요. 그는 “투자자들은 테슬라가 자동차회사인지, 기술회사인지 오랫동안 논쟁을 벌여왔다”면서 “우리는 둘 다라고 생각하지만 가장 큰 가치 동인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수익”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회사로서의 테슬라의 가치에 이제 주목하란 겁니다. 이번 주는 전 세계 투자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경제지표가 나올 예정입니다.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보고서가 13일 나올 텐데요. 일단 에너지 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14개월 만에 가장 큰 월별 상승이 예상됩니다. 시장에선 8월 CPI 결과가 ‘통화 긴축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는 신호를 줄까 봐 긴장하고 있는데요. 당장 9월 19~20일 열릴 FOMC 회의에서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거라는 점은 기정사실화되고 있긴 하죠. 선물시장에서는 올해 11월 또는 12월에 연준이 금리를 한 번 더 올릴 확률을 40%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12일 애플이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본사에서 여는 ‘원더러스트(Wonderlust)’ 행사 역시 투자자들의 관심거리입니다. 이 자리에서 아이폰15를 공개할 예정이죠. USB-C타입 충전 포트를 쓰는 아이폰이 처음 공개되는 건데요. 무엇보다 과연 가격이 이전 모델보다 얼마나 뛸지에 관심이 쏠립니다. 지난주 중국의 ‘공무원 아이폰 금지령’ 여파로 급락했던 아이폰 주가는 행사를 하루 앞둔 11일엔 0.7% 상승세를 기록했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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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산 호랑이를 키운 독일 자동차 산업의 위기[딥다이브]

    독일 경제의 침몰이 글로벌 경제의 큰 이슈입니다. 다시 한번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가 됐다는 평가까지 나오죠. 그 배경엔 여러 요인이 있지만(에너지·인구구조·IT취약 등), 상당 부분은 이 산업의 부진에 기인합니다. 독일 산업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자동차 산업이죠.독일 언론이 “전자제품과 사진 산업에 이어 독일의 또 다른 전통 산업(자동차)이 사라질 위기”라며 (다소 과장해서) 걱정할 정도인데요. 왜 지금 독일 자동차 산업이 위기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간단합니다. 전기차 전환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자동차 생산 기술을 가진 독일은 어쩌다가 전기차에선 뒤처지게 된 걸까요. 판단 착오일까요, 능력 부족일까요, 아니면 둘 다일까요. 독일 자동차 산업의 위기론을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독일이 키운 중국산 호랑이폭스바겐, 메르세데스 벤츠, BMW 같은 독일 자동차 기업들은 그동안 중국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폭스바겐의 지난해 전체 판매량 중 40%를 중국이 차지할 정도니까요(벤츠는 36.8%, BMW는 33%). 10년 전(폭스바겐 31%, 벤츠 18%, BMW 14%)과 비교하면 중국 의존도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그룹의 올라 칼레니우스 회장은 중국이 없는 독일 경제는 “완전한 환상”이라고 말한 바 있죠.문제는 그 중국 시장에서 독일차 지위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는 겁니다. 2019년 23.6%였던 독일차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9.1%로 줄어들었죠. BYD(비야디) 같은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를 앞세워서 빠르게 치고 올라왔기 때문인데요. 중국에서 많이 팔린 전기차 모델 톱 10에 독일차는 아예 없습니다(외국 브랜드는 테슬라뿐).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독일차는 고작 5%를 차지하는 후발주자입니다.이 대목에서 뼈아픈 부분은 중국에 자동차 제조 기술을 전수해준 게 바로 독일 기업이란 점입니다. 그동안 외국 자동차 기업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중국 기업과 합작회사를 설립해야 했죠(합작투자 의무는 지난해 1월에야 폐지됨). 중국 정부는 기술 이전과 부품의 현지 조달도 요구했습니다.폭스바겐(1984년 합작사 설립)을 필두로 독일차 기업은 중국에 합작사를 설립하고 진출했습니다. 초기 단계였던 중국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과감하게 뛰어들었죠. 그 덕분에 독일차는 중국시장 성장의 수혜를 톡톡히 누렸는데요. 수십 년이 지난 이젠, 그 합작투자가 부메랑이 돼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엄청난 양의 지식 이전이 이뤄진 겁니다. 그 결과 “중국 제조업체 차량은 기술과 품질 측면에서 비난의 여지가 전혀 없다”는 독일 언론의 평가까지 나오는데요.독일 기업도 이를 알고 있습니다. BMW 대변인은 언론에 이렇게 말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선 합작회사 설립이 의무였습니다. 특정 핵심 부품 개발도 마찬가지였고요. 물론 개발과 생산 노하우는 중국으로 흘러갔습니다.”결과적으로는 전략적 실수였지만 이를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익명의 메르세데스 벤츠 관계자는 언론에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중국으로의) 지식 이전은 어리석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독일 제조업체들은 스스로 무덤을 팠습니다.”소프트웨어 개발은 산으로 가고독일 자동차는 하드웨어적으로 훌륭합니다. 뛰어난 주행성능과 제동 능력, 그리고 내구성까지 갖췄죠. 그런데 전기차 시대엔 ‘좋은 차’의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전기차는 기계적으로 아주 단순하거든요. 내연기관차는 움직이는 부품이 2000개인데, 테슬라 모델S는 18개뿐이죠. 전기차에서 기계적 정교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배터리 성능, 그리고 소프트웨어 기술력입니다.배터리 기술에 있어서 독일은 가진 게 없습니다. 이 부분은 중국(그리고 한국)과는 아예 상대가 되지 않으니 일단 넘어가고요.그나마 애썼던 게 소프트웨어입니다. 폭스바겐 그룹은 기존 전기차 플랫폼(MEB)을 대체할 차세대 플랫폼(SSP)를 개발 중이죠. 기존 소프트웨어는 ‘재앙’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여러 문제점(교통 감지 시스템 결함으로 인한 급제동, 디스플레이 오류)을 노출시켰는데요. 새 소프트웨어 개발로 이를 돌파해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까지 구현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를 이용한 새 전기차인 아우디 ‘아르테미스’를 2025년, 폭스바겐 ‘트리니티’를 2026년 출시한다고도 밝혔죠. 특히 트리니티 프로젝트는 폭스바겐 그룹을 구할 ‘게임체인저’가 될 거란 기대를 받기도 했는데요.그런데 웬걸. 이 프로젝트가 최소 2년 이상 지연될 거란 사실이 지난해 말 알려졌습니다. 소프트웨어 자회사 카리아드(Cariad)가 그동안 예산만 초과 지출하고 개발은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카리아드는 폭스바겐 그룹 내 흩어져있던 개발인력와 테슬라·IBM 출신 외부 인력까지 6000명을 한데 모아 2020년 설립한 회사입니다. ‘2025년까지 차량 소프트웨어의 60%를 직접 개발한다(현재는 약 10%)’는 야심찬 목표로 출범했는데요.모아놓은 개발자들은 시너지를 내긴커녕 문화적 충돌만 일으켰습니다. ‘카리아드 문제 중 10%만 기술적 문제이고 90%는 문화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는데요. 결국 올해 5월 카리아드 CEO를 포함한 경영진 3명이 해고당합니다.기계 중심의 독일 자동차 회사가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는 건 무리인 걸까요. 액센추어의 자동차사업부 책임자 악셀 슈미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드웨어 관점에서 그들(독일차 제조사)이 훌륭한 자동차를 만든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120년 된 자동차 브랜드가 소프트웨어에 필요한 복잡성과 품질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따라잡자, 차이나 스피드“지붕이 불타고 있다.”폭스바겐 브랜드 CEO인 토마스 셰퍼가 지난 7월 관리자 2000명과 진행한 내부 회의에서 한 발언입니다. 이후 독일 언론이 ‘자동차 산업 위기론’을 전할 때 꼭 넣는 단골 인용 문구가 됐는데요. 아주 급박한 위기 상황이란 경고입니다.셰퍼 CEO가 그 회의에서 주문한 건 두가지입니다. 비용을 대폭 절감하고(향후 3년 동안 112억 달러 지출 절약), 더 빠르고 유연해져라(“우리 구조와 프로세스는 너무 복잡하고 느리며 유연성이 없다”).전기차를 싸게 만드는 건 중국의 특장점이죠. 최근 UBS가 중국 제조업체 BYD(비야디)의 2022년형 씰(Seal)을 직접 분해해서 그 분석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냈는데요. 차량 부품의 75%가 BYD 자체 제작이었다고 하죠. 그 결과 BYD 씰이 테슬라 모델3과 비교해 15%, 폭스바겐 ID3 대비 30%의 비용 우위를 가지는 걸로 나타났습니다.비용뿐 아니라 속도 면에서도 중국 기업은 압도적인데요. 맥킨지에 따르면 중국에서 전기차 새 모델을 개발해 출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유럽(4년)의 절반인 2년에 불과합니다. 중국 브랜드가 매년 70여 종의 신형 전기차 모델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이죠.더 싸게, 더 빠르게. 중국이 만들어 놓은 이 기준을 따라가지 못하면 전기차 대중화 시대에 도태될 거란 위기의식이 커집니다. 폭스바겐 그룹의 올리버 블룸 CEO는 최근 열린 뮌헨 IAA에서 “중국은 우리에게 피트니스 센터가 되었다”고 표현했죠. 중국 전기차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차이나 스피드’에 맞춰야 한다는 뜻입니다. 고급 차량을 정교하게 만들어 비싸게 파는 데 익숙했던 독일차 기업엔 상당히 도전적 과제가 아닐 수 없죠.물론 중국 전기차가 실제 독일차의 안방인 유럽까지 휩쓸게 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겁니다.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 점유율은 8% 수준인데요.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독일인의 63%는 여전히 ‘중국 전기차 브랜드 구매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응답했습니다. 여전히 심리적 저항이 꽤 크죠.어떻게든 전기차로의 전환 속도를 늦춰서, 정면승부를 미루려는 업계의 움직임도 나타납니다. 올리버 집세 BMW CEO는 EU의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라는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인물인데요. 그는 이번 IAA에서도 이 계획을 고수한다면 “(BMW 같은 프리미엄이 아닌) 기본 자동차 시장 부문은 사라지거나 유럽 제조업체에 의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독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기후 정책 같은 비실용적인 정책에 대한 대중의 환멸이 커진 것과도 맥락이 통하죠. 독일에서만 200만 명 이상의 고용을 책임지는 자동차 산업의 미래가 달린 문제라서 그의 경고가 예사롭지 않게 들리긴 합니다. By.딥다이브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렇게 완전히 판이 뒤바뀔 때 전통 기업이 발빠르게 갈아타서 그 지위를 유지하기란 역시나 참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자동차 업계의 전통의 강자, 독일 자동차 산업이 위기론에 휩싸였습니다. 전기차로의 전환에서 한참 뒤지면서 중국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유럽 진출까지 본격화하면서 걱정은 더 커집니다.-‘합작 투자의 부메랑’을 맞은 셈입니다. 중국에 자동차 개발, 제조 기술을 전수해 준 당사자가 바로 독일 자동차 기업이기 때문이죠.-소프트웨어 분야의 약점도 노출됐습니다. 큰소리친 것과 달리 폭스바겐의 차세대 플랫폼 개발이 크게 지연되면서, 테슬라나 중국 브랜드와의 소프트웨어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됐습니다.-고급차를 비싸게 파는 데 익숙한 독일차 업계는 더 싸게, 더 빠르게 전기차를 만들 수 있을까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코앞으로 다가온 전기차 대중화 시대. 독일 기업이 부랴부랴 속도를 올리고는 있지만 결과는 예측불가입니다.*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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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플 시총, 이틀 만에 253조원 증발했다[딥다이브]

    이 정도면 ‘애플 쇼크’입니다. 7일(현지시간) 애플 주가는 이틀 연속 급락해 시가총액이 1897억 달러(약 253조원)나 줄었습니다. 이 영향으로 이날 나스닥지수는 0.89%, S&P500은 0.32% 하락했습니다. 다우지수는 0.17% 상승으로 마감했고요. 애플 주가는 이날 2.92% 하락했습니다. 6~7일 이틀에 걸쳐 6.4%나 빠진 겁니다. 190달러에 육박했던 주가가 177.56달러로 밀려났습니다. 6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중국 정부가 중앙부처 공무원의 아이폰 사용을 금지했다고 보도했죠. 이어 7일 블룸버그가 아이폰 사용 금지 조치가 중국 국영기업과 정부 관련 단체 직원들에게로 확대될 거라고 보도하면서 애플 주가는 급락을 면치 못했습니다. 중국은 애플의 전체 매출에서 약 19%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일 뿐 아니라, 아이폰의 글로벌 생산기지입니다.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이런 행보가 화웨이와 틱톡에 대한 미국의 유사한 금지 조치에 대응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두 나라 관계가 악화하면서 데이터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진 건데요. 동시에 국내 제조업체의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려는 경제적 동기도 작용했을 걸로 보입니다. 이번 조치는 화웨이가 5G 스마트폰 신제품 ‘메이트60프로’를 선보인 직후에 나왔습니다. 마침 애플이 신형 아이폰 발표를 다음 주로 앞둔 상황에서 악재가 터졌습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애플의 아이폰 판매가 실제로는 얼마나 위축될까요? 이와 관련해서는 전망이 제각각인데요. 번스타인 애널리스트 토니 사코나기는 “모든 공무원에 대한 금지 조치로 인해 중국 내 아이폰 판매량이 최대 5% 감소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는 “더 두려운 것은 이 금지령이 중국 시민들에게 국산 제품만 사용해야 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덧붙였죠. DA데이비슨의 톰 포르트 역시 “애플의 중국 내 판매 성장이 둔화할 수 있다”면서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반면 워드부시증권의 대니얼 아이브스는 “아이폰 금지령의 영향은 지나치게 과장됐다”고 봅니다. 향후 12개월 동안 중국에서 판매될 것으로 예상되는 약 4500만대 아이폰 중 1% 수준인 50만대 미만에 영향을 미칠 거란 의견입니다. 에버코어ISI의 아미트 다리아나니 분석가 역시 “이미 중국 공무원들은 애플 제품을 기피하고 있었을 거기 때문에 이번 조치 여파가 불확실하다”고 밝혔습니다. 애플에 대한 우려는 다른 메가캡 기술주 주가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1.74%, 마이크로소프트는 0.89% 하락했죠. 호라이즌 인베스트먼트 CIO인 스캇 라드너의 말대로 “이로 인해 (중국 정부와 관계가 좋았던) 애플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면 누구도 안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By. 딥다이브*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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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풍 직면한 해상풍력… 바람이 심상찮은 이유[딥다이브]

    바다 위에 서서 돌아가는 수십 개의 하얀 바람개비. ‘해상풍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입니다. 청량하고 웅장하면서 낭만적이기까지 한데요.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의 대표 주자, 해상풍력 업계의 기류가 심상찮습니다.유럽과 미국에서 대형 프로젝트가 잇달아 중단되더니, 급기야 세계 최대 해상풍력 개발사 오스테드까지 미국 일부 프로젝트의 ‘포기 가능성’을 운운합니다. 2050년 글로벌 탄소중립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까지. 순풍을 만난 줄 알았던 해상풍력 산업이 예상외로 난관에 부닥쳤는데요. 오늘은 역풍 만난 해상풍력을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등골 오싹한 해상풍력 뉴스들지난달 30일 덴마크 기업 오스테드(Orsted) 주가가 25% 추락했습니다. 덴마크 기업 오스테드는 세계 1위 해상풍력발전 개발업체인데요. 이날 실적 발표에서 오스테드가 미국에서 진행 중인 해상풍력 프로젝트와 관련해 총 23억 달러(약 3조원)의 손상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매즈 니퍼 CEO는 “우리 기준에 맞는 가치 창출이 보이지 않는다면 (미국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그만둘 수도 있다”라고도 말했죠. 이대로 가면 너무 돈이 안 돼서 사업을 접어야 할지 모른다는 하소연입니다.이에 “오스테드 발표가 업계 관계자 모두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덴마크 시드뱅크의 주식분석책임자 야콥 페더슨)는 분석이 나왔죠. 1위 업체의 폭탄선언에 관련 업체들 주가도 줄줄이 내리막을 탔습니다.수주한 프로젝트에서 돈을 벌지 못하게 생긴 해상풍력 개발업체는 오스테드만이 아닙니다. 스웨덴 기업 바텐폴(Vattenfall)은 지난 7월 20일 영국 북해에서 진행하던 1.4GW 규모의 프로젝트 작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죠. 계속 진행하는 것보단 지금까지 들어간 55억 스웨덴 크로나(약 6600억원)의 손실을 감수하는 게 낫다는 계산입니다. 안나 보르그 CEO는 “이 프로젝트를 계속하는 건 전혀 의미가 없다”고 말했습니다.스페인 기업 이베르드롤라(Iberdrola)는 지난달 미국 매사추세츠 해상풍력 프로젝트(1.2GW 규모) 계약을 철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위약금 48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는데도 말이죠. 입찰 시점인 2021년 9월과 달리 지금은 수익성이 너무 떨어진다고 봤기 때문입니다.곳곳에서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수익성 악화라는 암초에 걸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업계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일단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겁니다. 바로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 강풍에 휘청고금리와 고물가. 이미 1년 반 넘게 이어지고 있어 익숙한 이슈들인데요. 이게 도무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가 쌓이고 쌓여서 이제 기업을 휘청거릴 정도가 된 건데요.해상풍력은 수주에서 완공까지 7~8년이 걸리는 프로젝트입니다. 사업비도 보통 수조 원 대에 달하고요. 초기 투자비가 워낙 많이 들다 보니 금리상승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스테드는 3조원으로 예상되는 미국 프로젝트 관련 손상액 중 거의 1조원이 이자율 급등 탓이라고 밝혔죠.게다가 모든 비용이 무섭게 뛰고 있습니다. 터빈 값도, 타워 값도, 하부구조물 값도, 인건비, 자재비, 공사비까지. 바텐폴이 지난 7월 성명에서 올해 들어서면 사업비용이 40% 뛰었다고 밝혔을 정도인데요. 특히 해상풍력 개발업체들이 주로 유럽 회사라는 점도 비용급증을 부추기는 요인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 이슈가 여전하기 때문입니다.축구장만 한 블레이드의 문제그렇다고 외부 환경 탓만 할 건 아닙니다. 해상풍력 업계 스스로 공급망 차질을 자초한 부분도 있는데요. 대표적인 문제가 이겁니다. 축구장보다 더 길어진 터빈 블레이드.풍력발전기 효율성은 터빈 블레이드 길이와 관련이 큽니다. 길이가 더 길수록 한번 회전에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해내죠. 그래서 기업들은 지난 10년 동안 경쟁적으로 블레이드 길이를 키웠습니다. 스코틀랜드 기업 SSE의 최신 터빈은 블레이드가 107m에 달한다죠. 축구장 길이(가로 105m)보다 깁니다.길어진 블레이드, 높아진 효율성 덕분에 지난 10년 동안 풍력 에너지 비용은 60%나 낮아졌습니다. 업계의 경쟁이 그동안 시장을 키우는 데 도움 된 건 분명하죠.하지만 이제 그만 커져야 할 때가 된 듯합니다. 터빈이 너무 크고 무거워져서 이를 감당할 선박도, 항구도, 크레인도 크게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즉, 업계가 공급망 차질로 동동거리게 된 데는 러-우 전쟁 못지않게 너무 길어진 블레이드 탓이 큽니다.글로벌 컨설팅기업 우드맥켄지에 따르면 전 세계 해상풍력 설치용 선박 중 약 절반은 최신 터빈 모델에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를 교체하는 데는 막대한 투자비(약 130억 달러 추정) 못지않게 오랜 시간도 걸릴 거고요. 오스테드 역시 미국 프로젝트에서 큰 손실이 불가피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선박공급 지연을 꼽았습니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크기 경쟁 그만하자’는 업계 목소리가 커집니다. 아예 터빈 크기 상한선을 정하자는 논의도 있는데요. 하지만 합의에 이를진 의문입니다. “만약 GE가 더 큰 터빈을 출시하면 지멘스 가메사는 즉시 이에 대응할 거고, 그럼 베스타스도 압력을 받게 될 것”(컨설팅사 브링크만 연구 책임자 사시 바를라)이기 때문입니다.더 많은 보조금만이 살길?공사비가 치솟아서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면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업을 접든지, 아니면 수익을 늘릴 곳을 찾아야겠죠. 그래서 지금 해상풍력 업체들과 환경단체들이 힘을 합쳐 요청하고 있습니다. 해상풍력에 더 많은 보조금을 달라고요.영국에선 지난해 해상풍력 개발업체들과 맺었던 15년 고정 전기가격을 올려주자는 논의가 나옵니다. 원칙엔 어긋나지만 인플레이션 등 달라진 상황을 반영해주자는 주장인데요.영국은 해상풍력 개발단지를 입찰할 때 전기를 얼마에 사줄지 그 가격을 미리 정해 계약을 맺습니다. 지난해 입찰 된 프로젝트들은 이 가격이 MWh(메가와트시)당 37.35파운드로 낙찰됐죠. 나중에 실제 전기가 팔리는 가격이 그보다 낮게 떨어지든, 높게 오르든 발전업체는 37.35파운드를 15년 동안 받는 구조입니다.그동안은 이런 방식이 괜찮았습니다. 해상풍력을 공격적으로 늘리려는 영국 정부와 안정적 수익을 원하는 개발업체의 니즈가 서로 맞아떨어졌죠.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이유들 때문에 균열이 일어났고, 바텐폴처럼 두손 들고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2030년 해상풍력 50GW(현재는 14GW)’라는 목표를 고수하는 영국 정부 입장에선 기업들의 앓는 소리를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겁니다.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스테드가 이번에 뉴저지 프로젝트 포기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강조한 건 세금 공제 혜택을 최대로 달라는 겁니다. 미국의 IRA 법은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미국산 강철사용 같은 조건을 충족하면 30%의 세금 공제를 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에너지 관련 지역사회에 기여하느냐에 따라 10%를 추가해, 최대 40%의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죠.미국 정부의 현재 지침대로 하면 오스테드가 이를 다 받아내긴 어려울 걸로 보입니다. 이에 오스테드뿐 아니라 환경단체들까지도 IRA 지원 조건을 완화해달라고 요청하는 모양새입니다. “모든 혁신과 변혁이 잘 수행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해상풍력은 공급만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논리이죠. 참고로 바이든 정부는 2030년까지 30GW 용량의 해상풍력 발전을 설치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녹색에너지 전환은 공짜 아니다이유가 무엇이든 보조금을 더 달라는 기업의 요청은 좀 불편합니다. ‘수익성 없을 줄 알았다’며 해상풍력 자체에 대한 회의론을 펼치는 진영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이죠. 특히 미국에선 ‘도대체 왜 미국기업도 아닌 외국기업에 그렇게 지원하면서까지 친환경으로 가야 하지?’라는 정서가 꽤 있는데요.기본적으로 공화당원들이 그런 시각이 강하죠. 마이클 데스타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공급망 문제와 인플레이션은 이러한 프로젝트(해상풍력)가 지속 가능하지 않고, 이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높다는 걸 증명합니다. 우리 국가가 짊어질 부담입니다.”일부 단체는 새로운 반대 논리도 개발했습니다. 해상풍력 발전단지 건설이 고래에게 위협이 된다는 주장인데요. 최근 부쩍 뉴저지 해안에서 죽은 혹등고래가 늘었는데, 이게 풍력 발전과 관계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근거는 미약해 보입니다. 미국 동해안에서 혹등고래 사망 급증 현상이 나타난 게 프로젝트 시작 한참 전인 2016년부터이기 때문인데요(국립해양대기청은 그 원인을 ‘선박 충돌’로 판단). 그럼에도 이 반대운동은 꽤 효과적인지, 뉴저지 지역의 해상풍력 발전소 지지율이 떨어졌다고 합니다(2019년 76%→현재 54%). 이를 두고 환경단체 측은 “석유·가스 산업과 연결된 세력이 조직화한 거짓 캠페인”이라고 반박하고 있죠.친환경 바람을 타고 순항할 줄 알았던 해상풍력 시장이 흔들린다고 해서, 갑자기 해상풍력 무용론으로 돌아설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바다는 육지보다 바람이 강하고 안정적인 데다, 소음 같은 민원 발생 이슈도 적다는 게 해상풍력의 장점을 꼽히죠. 한국처럼 국토는 비좁은 데 바다는 풍부한 나라에 특히 유리하고요. 다만 해상풍력 산업이 앞에 놓인 여러 과제들이 이번 기회에 드러난 겁니다.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에 예상보다 더 많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녹색에너지로의 전환은 공짜가 아니다’라는 사실은 명확해 보입니다. By.딥다이브여기선 언급하지 않았지만 케이블 부족과 그리드 연결 지연도 해상풍력 개발의 난관으로 꼽힙니다. 이 부분은 한달 전 썼던 을 참고해주십시오. 그럼 오늘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세계 최대 해상풍력 개발사 오스테드가 ‘미국 풍력발전 프로젝트와 관련해 약 3조원의 손상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해상풍력 업계가 떨고 있습니다. 이미 수주한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던 차에 나온 폭탄선언입니다.-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의 직격탄을 맞은 게 원인입니다. 올해 들어서만 개발비용이 40% 급증했다는데요. 업계의 ‘더 큰 터빈 블레이드’ 개발 경쟁이 선박과 항구, 크레인 같은 공급망 차질을 더 부추겼다는 지적입니다.-기업들은 더 많은 보조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영국에선 전기가격 계약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하고, 미국에선 세금공제 기준을 낮춰달라고 하죠. 환경 단체들도 이에 맞장구치고 있습니다. 녹색에너지 전환으로 가는 길엔 많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줍니다.*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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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동산 부양 나선 중국 정부… 투심 살릴 수 있을까[딥다이브]

    차분한 아침입니다.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가 노동절(9월 첫 번째 월요일)을 맞아 휴장했기 때문이죠.분위기는 나쁘지 않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나온 미국 8월 고용보고서가 뜨거웠던 노동시장이 식어가고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실업률이 3.8%로 올라 지난해 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죠. 이에 따라 주식시장에선 이달 19~20일 FOMC에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거라는 믿음이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중국 증시는 이날 모처럼 활기를 띠었습니다. 상하이종합지수가 1.40%, 선전종합지수가 1.44% 올랐습니다. 홍콩 항셍지수는 더 크게 2.5% 뛰었고요. 홍콩 상장사인 비구이위안 주가가 14.6% 급등하는 등 중국 부동산 개발사 주가가 크게 오른 영향입니다.지난 주말 동안 비구이위안이 채권상환 연장에 성공해 디폴트 위험에서 일단 벗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고요. 중국 정부가 잇달아 부동산 대책들(1선 도시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기존 대출자 금리 인하 등)을 내놓으며 부동산시장에 부양에 나섰다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지난주 에서 전해드린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과 일맥상통하는데요. 그동안 중국 정부의 부양 의지를 의심했던 글로벌 투자업계도 살짝 긍정적으로 돌아섰습니다. 위스덤트리유럽의 거시경제 담당인 무빈 타히르는 FT에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 정부는 부동산 부문을 지원하기 위해 부양책을 내는 데 열중하고 있고, 만약 그렇다면 이는 시장 정서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필요한 정부개입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4일 유럽증시에서 눈에 띄는 건 바로 노보 노디스크입니다. 지난달 노보 노디스크 시가총액이 유럽에서 2위일 뿐만 아니라, 덴마크 GDP보다도 커졌다는 이야기 전해드렸는데요.() 4일엔 종가 기준으로 프랑스 LVMH를 제치고 유럽 시총 1위 기업에 올랐습니다(노보 노디스크 4280억 달러, LVMH 4190억 달러). 이게 모두 비만치료제 ‘위고비’의 힘인데요. 위고비는 미국,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에 이어 4일엔 영국에도 출시됐습니다. 영국 비만인들의 관심은 역시나 폭발적이라고 합니다. 노보 노디스크의 질주는 당분간 이어질 듯하군요. By.딥다이브*이 기사는 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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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경제, 이대로 망하나요? 궁금해서 물어보니[딥다이브]

    중국판 리먼 브러더스 사태, 피크 차이나(Peak Chin), 중국의 일본화(Japanization).요즘 중국 경제를 이야기할 때 이런 표현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중국의 고도성장 시대가 저물었다’는 건 이미 다들 알고 있던 사실이고, 어제오늘 나온 얘기도 아닌데요. 8월에 불거진 비구이위안 사태를 계기로 중국 경제 폭망론이 한층 힘을 얻고 있습니다.그런데 정말 중국 경제가 부동산 시장의 긴 침체에 갇혀 이대로 폭삭 가라앉을까요. 중국 정부는 손 놓고 보고 있는 걸까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자세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비관론에 갇히는 건 곤란하죠. 오늘은 부동산 시장을 중심으로 한 중국 경제 전망을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이 기사는 9월 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시진핑 고집 때문에 중국 망하나우선 지금 중국 부동산 시장의 상황을 간략히 살펴볼까요. 중국 최대 부동산개발회사 비구이위안(碧桂園·Country Garden)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놓였단 소식은 지난 8월 18일 전해드렸는데요( 참고). 그 비구이위안이 닥쳐온(9월 2일 예정) 채권 만기를 3년 연장하기 위한 채권단 온라인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투표기간은 9월 1일 밤까지 였는데, 2일 오전 08시 현재까지 그 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만기 연장이 된다고 해도 비구이위안의 위기가 끝난 건 아니죠. 이 기업은 상반기에 무려 489억 위안(약 9조원)이란 역대급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아파트가 너무 안 팔려서입니다. 비구이위안이 완공해야 할 집이 거의 100만 채에 달하는데요. 돈이 없어서 곳곳에서 공사가 중단된 상태입니다. 하청업체는 공사대금을, 건설 노동자들은 임금을 못 받고 있고요. 아파트를 선분양받은 사람들은 기약 없이 대출이자만 내고 있습니다. 부동산 신탁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투자금이 묶였고요(펀드 환매 중단). 부동산 생태계가 얼어붙으면서 중국의 소비도 함께 움츠러들고 있는데요. 결국 해법은 하나뿐입니다. 주택시장이 살아나야만 합니다.그래서 중국 정부가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1일 인민은행이 사실상 기준금리인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0.1%포인트 내렸죠.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는 5년 만기 금리는 동결했고요. 그랬더니 전 세계 투자자들이 뒤집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찔끔 금리인하가 말이 되느냐는 거죠. 도대체 부양 의지가 있긴 한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쏟아졌고요. 혹시 중국 정부가 일부러 방관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옵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부동산 개발업체는 구제하지 않는다는 기존 원칙을 완고하게 고수하고 있다는 눈총이죠. 결국 이 모든 사태가 ‘시진핑의 절대 권력 체제 탓’이란 결론입니다.네, 상당히 일리 있는 얘기입니다. 무엇보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뭔가 이상하다’는 기존 인식과도 잘 들어맞는데요. 그런데 분석이 ‘중국은 시진핑 때문에 끝이다’에서 끝나면 좀 곤란합니다. 그래서 이다음엔 어떻게 될까를 알아야죠. 물론 중국은 정보가 많이 막혀있어서 알 수 없는 게 많습니다. 그래도 퍼즐을 맞춰 보면 보이는 게 있겠죠. 중국 경제를 오래 들여다본 전문가 세 분과 8월 31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맞춤형 부양 대책 나온다시진핑 주석으로 대표되는 중국 정부는 워낙 고집스러워서 제대로 된 부동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을까요. 예상과 달리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꽤 바쁘게 부양책을 내놓고 있다고 말합니다.-중국 정부가 찔끔 대책만 내놔서 부동산 시장 부양의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해석과 비판이 곳곳에서 나옵니다.전종규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중국 정부의 태도는 분명히 ‘부양’입니다. 7월 24일 정치국회의에서 ‘부동산은 투기 목적이 아닌 주거 목적’이라던 문구를 삭제한 데서 알 수 있죠. 인민은행도 정책금리를 인하했고요. 비록 5년물 금리는 내리지 않아서 문제가 되긴 했지만 부양정책으로의 전환인 건 분명합니다. 이번 25일에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금리 규제를 완화해준 것도 마찬가지이고요.”성연주 신영증권 연구위원=“중국 정부가 25일 중요한 부동산 정책을 내놨습니다. 마지막 보루였던 1선 도시(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까지 다주택자 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건데요. 중국의 부동산 규제 중 가장 강력한 정책이 풀리는 겁니다.중국도 한국처럼 1선 도시 학군지 수요가 많거든요. 그런데 1선 도시에선 2주택자에 대한 대출 규제가 매우 강합니다. 여기서 ‘2주택’이라는 건 집을 두 채 갖고 있다는 뜻이 아니고요. 두 번째 구매하는 집을 뜻합니다. 즉, 지금 사는 집을 팔고 이사 가기 위해 새로 집을 사는 게 2주택인데요. 1선 또는 2선 도시에서 2주택은 대출이 잘 안 나오고 금리도 높아요. 이걸 1선 도시까지 풀어주는 겁니다. 그동안 대출 받기 어려워서 이사를 못 가던 사람들이 집을 사서 이사 갈 수 있게 되죠. 한국도 서울 강남이 주택시장을 이끌 듯이, 중국도 4개 1선 도시의 학군지 집값이 바로미터가 됩니다. 이번 정책으로 과연 1선 도시 집값이 바닥을 치고 반등할지를 지켜봐야 합니다.”김경환 하나증권 신흥국주식파트 팀장=“미국 언론에서 얘기하는 ‘바츄카포식’ 대책은 없지만, 중국 정부도 문제가 뭔지는 알고 맞춤형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동안 중국 부동산 시장의 문제가 지난해 이후 대출금리를 1.2~1.4%포인트나 내렸는데도 주택담보대출이 오히려 줄어드는 거였는데요. 그 이유가 무주택자, 그중에서도 ‘생애 첫 주택 구매자’에게만 금리 혜택을 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출 기록과 상관없이 우대금리를 주겠다’는 정책을 내놨습니다.그리고 금리가 이렇게 많이 떨어졌는데도 기존 대출자들은 대출을 상환하고 있었어요. 왜 그런지 보면 기존 대출자 금리는 은행들이 아주 조금, 0.2~0.3%포인트만 떨어뜨린 거예요. 그래서 중국 정부가 은행들에 기존 대출자 금리도 내리라고 권고했고요. 이제 9월부터 은행들이 실제 인하를 할 겁니다.중국은 9월과 10월이 주택시장 성수기예요. 6월이 졸업, 9월이 신학년 시작이기 때문인데요. 과연 9월에 대출이 실제 좀 늘어나는지, 가파르게 줄어든 주택거래가 좀 살아나는지 봐야 합니다. 일단 중국 정부가 문제가 뭔지는 알고, 정밀 타격을 하고 있고요. 그 효과는 두 달이 지난 뒤 드러나겠죠.”그래도 아직 배고픈데…중국 정부가 부동산 부양 의지를 가지고 쓸만한 대책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는 게 세 분석가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하지만 그 효과를 확인하기까진 시간이 걸리고, 시장은 여전히 불안합니다. 뭔가 더 나올 게 없을지를 물어봤습니다.-여기서 더 추가해야 할 대책은 뭐가 있을까요?전종규=“세 가지 정도입니다. 일단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더 과감하게 낮출 겁니다. 0.5%포인트에서 최대 1%포인트까지 더 내릴 거란 얘기가 나오죠. 두 번째로 구매 제한을 더 해제해 줄 겁니다. 1, 2급지의 경우엔 외지인은 주택을 구매할 수 없는데 이걸 좀 풀어줄 겁니다. 세 번째로는 주택을 살 때 보조금을 지급해줄 거란 얘기가 있습니다. 즉 앞으로도 계속 부양책은 더 나올 거고, 그 강도를 높여갈 겁니다.”성연주=“통화정책은 지금까진 대출금리 인하만 나왔는데요. 이제 예금금리 인하 얘기도 나옵니다. 그동안 중국이 대출금리를 계속 내렸지만 오히려 초과 저축만 급증했죠. 그걸 풀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급한 건 예금금리입니다.중국 은행들은 예금금리 조정에 매우 신중한 편입니다. 2015년 이후 두 번밖에 내린 적 없고요. 그래서 여전히 2%대 초반 수준인데요. 예금금리가 1%대로 내려가면 예금에 있던 돈이 투자 쪽으로 풀리지 않을까 싶습니다.”김경환=“은행들이 예금금리를 인하할 거고요. 그러면 인민은행이 9월 중 지급준비율(은행이 고객으로부터 받은 예금 중 중앙은행에 적립해야 하는 현금 비율)도 낮춰줄 겁니다. 또 지금 지방정부 부채가 문제인데요. 지금은 중앙정부가 재정정책을 써서 돈을 줘도 지방정부는 자기네 식솔들(자금 조달용 특수법인, LGFB) 빚 갚기 바빠서 인프라 투자를 못하고 있거든요. 그 부채를 좀 치워주는(특수목적채권을 발행해서 부채를 갚아주는 방식) 조치들도 9월에 있을 겁니다.”피크 차이나와 중국의 일본화중국이 연 8%대 성장률을 기록했던 그 고도성장기가 저물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이를 ‘중국은 이제 끝났다’로 보느냐, ‘중국 경제가 새로운 챕터에 진입했다’고 보느냐엔 차이가 있죠. 지금은 전자의 시각이 우세해 보이는데요. 이에 대한 의견도 물어봤습니다.-‘피크 차이나’ 또는 ‘중국의 일본화’에 대한 이야기가 요즘 특히 많은데, 어떻게 보시나요. 올해와 내년에 중국 경제가 급격히 꺾일 수도 있을까요?전종규=“사실 중국 위기론은 10년 전부터 나온 얘기입니다. 2013년 다보스포럼에서 미셸 부커 교수가 ‘회색 코뿔소’를 이야기했거든요. 중국의 부채 문제가 너무 커서 해결이 어렵다는 뜻에서 회색 코뿔소로 불렸는데요. 그 위기론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 같은 장기 저성장으로 가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중국이 1990년대 일본과 가장 다른 건 소득입니다. 일본처럼 고소득이 아니고, 아직 (1인당 GDP가) 1만2000달러밖에 되지 않아요. 따라서 소득 증가율이 여전히 높습니다. 최저임금이 연간 6%씩 올라가요. 그럼 소비도 연 6%씩 성장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구조적인 저성장으로 간다고 보기 어렵죠.물론 지금 당장의 중국 경제엔 부동산 경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원래 대부분 국가에서 주택경기가 한번 침체에 빠지면 L자형으로 꽤 오래가거든요. 제가 보기에 중국은 올해도 5%, 내년엔 4.5%대 성장을 갈 수 있을 텐데, 부동산이란 허들을 넘어야 합니다.”성연주=“중국은 인구가 감소하고 성장률도 둔화하는 추세인 건 맞습니다. 다만 올해 초 중국의 반등에 대한 기대가 워낙 컸다 보니 실망도 커지면서 ‘피크 차이나’가 다소 과도하게 해석되고 있죠. JP모건의 경우, 4월에 중국 GDP 성장률을 6.4%까지 높였는데 얼마 전엔 4.8%로 확 낮췄거든요.그런데 중국은 특수성이 있어요. 토지가 (개인이 아닌) 지방정부 소유입니다. 건설사는 그 땅을 장기임대를 한 거고요. 그래서 중국은 부동산으로 망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러려면 아예 지방정부가 망해야 한다는 뜻인데, 중국 정부가 그걸 원치 않을 테니까요.물론 어디서 또 새로운 리스크가 터질지는 사실 저도 모릅니다. 금융위기 당시 후진타오의 ‘4조 위안’ 재정지출 같은 그런 강력한 보조금 정책은 사실 이제 나오기 쉽지 않죠. 당시 부채로 인한 부작용을 이미 겪어 봤으니까요. 하지만 중국 정부가 27일 증권거래세 인하(매도 시 0.1%→0.05%)를 했는데, 이게 15년 만이거든요. 저는 ‘중국이 진짜 급하구나’라고 봤어요. 이렇게 조금씩 계속 정책을 내놓지 않을까 싶습니다.중국 정부는 비구이위안 사태를 어떻게든 막았어야 합니다. 사실 정부가 미리 움직였으면 막을 수 있었다고 보거든요. 비구이위안 사태가 없이 지금 같은 부양책이 나왔다면 그 반응이 훨씬 더 컸겠죠.”김경환=“장기적으로는 ‘피크 차이나’ 우려에 동의합니다. 수출과 부동산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엔진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는 지적엔 동의하는데요. 그런데 경험적으로 볼 때 중국의 잠재성장률이 쭉 미끄럼틀처럼 떨어지는 게 아니라, 계단식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미 팬데믹으로 한번 주저앉은 상태이죠. 2019년 이전이 (GDP 성장률) 6~7%였는데 지금은 4~5%로 내려앉았으니까요. 향후 2~3년은 지금 상태에서 횡보하는 L자형이 될 겁니다. 일단 내년까지 경기가 연착륙한 뒤 그 이후에 다시 레버리징, 즉 가계와 기업이 부채를 일으키게 될 것 같고요.중국이 그나마 유리한 건 다른 나라와 달리 팬데믹 때 자산 버블이나 인플레이션 파티는 없었다는 거예요. 3년째 증시·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부채 조정이 이미 많이 진행됐죠. 좀 지긋하게 버틸 수 있을 거고요.안타까운 건 그동안 정책의 밸런스 조절에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해 투기도 잡으면서 실수요만 촉진하려고 했는데, 그게 말이 안 되거든요. 그러니 빨리 살아나지 못했죠. 경제정책을 일사불란하게 주도할 경제 전문가가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By.딥다이브비구이위안 사태로 8월 한달 동안 중국 경제가 참 다이내믹했는데요. 과연 9월은 이 사태가 좀 정리되고 차분해질 수 있으려나요. 아니면 고조된 중국 위기론을 더 부채질하는 새로운 문제가 터져나올까요. 궁금증을 안고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중국 부동산 시장의 균열이 커지면서 중국 경제가 위기론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고집스런 시진핑 주석이 부동산 부양에 소극적인 탓이라는 분석도 힘을 얻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부동산 부양 의지는 명확하다는 게 전문가 분석입니다. 다주택자 규제 완화 같은 나름 강력한 정책도 내놨고요. 부동산 성수기인 9, 10월에 실제로 주택거래가 살아나는지, 더 강력한 대책을 속도감 있게 내놓는지가 관건입니다. -‘피크 차이나’론은 이미 10년 전부터 나왔는데요.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기가 저물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중국 경제가 과연 지금의 부동산 위기 때문에 망할 것인가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여전히 중국은 연 5% 성장하는 나라이고 ‘일본화’하기엔 아직 성장 여력이 남아있죠. 다만 경제정책을 제대로 펼치는 경제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큰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이 기사는 9월 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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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하락한 미국 증시, ‘9월 효과’ 피할 수 있을까[딥다이브]

    전달보다 소폭 오른 물가는 주식시장을 흔들지 못했습니다. 8월 31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지수는 혼조세로 마감했습니다. 다우지수 -0.48%, S&P500 -0.16%, 나스닥 +0.11%. 이날 미국 상무부는 7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를 발표했는데요. 미국 연준이 중요하게 본다고 알려진 근원 PCE 가격지수(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는 1년 전보다 4.2% 상승했습니다. 전월(4.1%)보다 오름폭이 좀 더 커진 건데요. 전월 대비로는 0.2% 상승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끈적해서 쉽사리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수치이죠. 하지만 4.2%는 예상했던 수준과 일치했기 때문에 주식시장엔 별 영향이 없었습니다. 대신 월가의 관심은 9월 연준 통화정책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줄 만한 다른 지표로 쏠리는데요. 1일 나올 노동시장 데이터가 그것입니다. 지금까지는 8월 신규고용이 17만명 증가해 7월의 18만7000명보다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데요. 뜨거웠던 고용시장이 식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확실히 나온다면 추가적인 금리인상 걱정을 좀 덜 수 있게 되겠죠.8월 한 달로 보면 3대 지수가 모두 하락 마감했습니다. 한 달 동안 다우는 2.36%, S&P500 1.77%, 나스닥 지수는 2.17% 하락했는데요. S&P500과 나스닥은 올해 2월 이후 처음, 다우지수는 5월 이후 처음으로 월간 하락을 기록한 겁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미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약한 달이 언제인지 아시나요? 월스트리트저널(WSJ) 분석에 따르면 9월입니다. 1928년 이후 S&P500 지수의 성적을 기준으로 봤을 때 9월은 평균 1.1% 하락해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했다는데요. 이런 부정적인 ‘9월 효과’의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9월엔 기업 실적 발표 같은 주가 상승의 원동력이 될 만한 좋은 이벤트가 없다는 점이 영향을 끼쳤을 거란 추측인데요. 9월쯤 되면 기업의 연말 실적을 짐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투자 등급 하향이 많아서라는 분석도 있긴 합니다. 그래서 9월을 앞둔 투자자를 위한 조언은? 부풀려진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 치솟은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 유가 상승과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까지. 앞에 놓인 경고신호들을 무시하지 말라는 결론입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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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제조업 부활에 철강수요 급증… 뜨거워진 US스틸 인수전[딥다이브]

    미국 철강기업 US스틸 인수전이 본격화했다. US스틸은 미국 제조업의 번영과 쇠퇴를 모두 상징하는 122년 역사의 기업. 쇠락했던 미국 철강산업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제조업 부활’ 정책 덕분에 활기를 되찾으면서 이번 인수전이 관심을 끈다. ● 미국 제조업의 상징이 팔린다“수많은 제3자와 기밀 유지 계약을 체결하고 부분 인수와 전체 인수를 포함한 여러 제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US스틸은 29일(현지 시간) 이러한 내용의 주주 서한을 발송했다. 13일 회사 매각을 추진한다고 공개한 이후 의미 있는 입찰 제안이 여러 건 들어왔다고 밝힌 것이다. 이 회사 데이비드 버릿 최고경영자(CEO)는 “이사회와 경영진, 외부 고문은 이를 완료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1901년 설립 당시 역사상 최초로 자본금 10억 달러를 넘은 세계 최대 기업이었던 US스틸은 1, 2차 세계대전 특수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전성기를 누리며 1970년대 중반까지 번성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일본, 2000년대 중국 철강의 급부상으로 선두권에선 밀려난 지 오래다. US스틸의 지난해 조강 생산량은 1449만 t으로 세계 27위. 1위인 중국 바오우그룹(1억3184만 t)의 10분의 1 수준으로, 포스코(7위)나 현대제철(18위)에도 한참 못 미친다. US스틸은 환경친화적인 전기고로 공정 전환에서도 한발 뒤처졌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한 뒤로 수익성은 나아졌지만 경쟁력을 되찾진 못했다. 누코와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에 이어 북미시장 3위에 머문다. 결국 US스틸은 “전략적 대안”이라며 회사 매각 추진에 나섰다.● 미국 제조업 부활과 철강산업의 기회인수전은 예상외로 흥행 조짐이다. US스틸의 강력한 경쟁자이자 북미 2위 철강업체 클리블랜드 클리프스가 13일 72억5000만 달러(주당 35달러)에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직전 종가보다 43%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14일엔 미국 철강가공 업체 에스마크가 78억 달러를 제안하며 입찰에 뛰어들었다. 이어 세계 2위 철강기업 아르셀로미탈이 인수를 검토 중이란 외신 보도가 나왔다. US스틸 주가는 단숨에 30% 넘게 뛰었다. 3년 전 미국에서 철수했던 아르셀로미탈까지 재진출을 검토하는 건 최근 미국 철강산업 전망이 상당히 밝아졌기 때문이다. 그 배경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대표되는 미국 제조업의 부활이 있다. 자동차, 풍력발전소, 전력 인프라 등 미국에서 투자가 크게 늘고 있는 제조업 분야는 모두 철강을 필요로 한다. 건설 경기가 냉각됐는데도 미국의 철강 수요가 급증한 이유다. 미국의 신규 철강 주문은 지난해부터 줄곧 월 150억 달러 안팎을 기록해,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특히 수요가 급증하는 유망 분야는 전기차 관련. US스틸은 자동차 강판 생산량에서 미국 2위 기업일 뿐 아니라 2024년부터는 연 20만 t 규모의 전기강판 생산 공장을 가동한다. 전기차 모터에 꼭 필요한 전기강판은 최근 미국 시장에서 수요 대비 공급이 매우 부족한 제품이다. “미국 전기차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US스틸은)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2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했다. IRA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에 미국산 철강을 사용하면 추가적인 세제 혜택을 주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클리프스와 합병? 독점 위험은US스틸은 아직 입찰자 명단을 공개하진 않았다. 다만 일찌감치 입찰 사실을 자진 공개한 클리블랜드 클리프스는 강력한 인수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미국철강노조 역시 “US스틸을 인수할 곳은 클리블랜드 클리프스뿐”이란 지지 성명으로 힘을 보탰다. 경쟁자였던 에스마크까지 23일 입찰 포기를 선언하면서 무게추는 클리블랜드 클리프스로 더 기울었다.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의 로렌코 곤칼베스 CEO는 애국심에 호소하는 여론전을 펼친다. 그는 CNBC 인터뷰에서 “우리는 (덩치를 키워서) 한국산·일본산 철강과 경쟁해야 한다”면서 “US스틸 인수를 통해 세계 10대 철강회사 중 유일한 미국 기업을 탄생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두 회사가 합쳐지면 연간 조강 생산량은 3100만 t 수준으로, 인도 타타스틸을 제치고 세계 10위에 오른다. 문제는 독점 위험이다. 미국 2위와 3위 철강기업이 합병한다면 미국 철광석 매장량의 100%를 소유할 뿐 아니라 미국 자동차 강판 시장의 60%를 차지하게 된다. 이유진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합병이 성사된다면 미국에서 전기강판을 생산하는 유일한 업체가 될 것”이라며 “미국 내 철강재 가격이 높아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반독점 규제당국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두 회사의 결합을 가만히 두고만 보진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제조업 부활’을 내건 바이든 행정부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노조 지지를 얻기 위해 이들의 합병을 용인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J D 밴스 상원의원(공화당)과 로 카나 하원의원(민주당) 등 정치권 인사들 역시 “US스틸은 미국 기업이 인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철강산업의 부흥 조짐에 한국 산업계도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지난해 2890만 t의 철강을 수입한 세계 2위 수입국이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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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둑 때문에 기업실적 악화? 부자나라에 절도범 판치는 이유[딥다이브]

    장사를 아무리 잘해도 돈이 줄줄 샙니다. 곳곳에 물건을 훔쳐가는 도둑들이 판치고 있기 때문이죠. 어느 가난한 나라 이야기냐고요? 월마트(Walmart)와 타깃(Target), 홈디포(Home Depot) 같은 미국의 내로라하는 유통기업들의 하소연입니다.기업의 엄살 아니냐고요? 끽해야 비누 몇 개, 옷 한두 벌 슬쩍하는 좀도둑일 거라고요?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조직적으로 뻔뻔하게 매대를 왕창 쓸어가는 절도범들이 출몰하고 있죠. 오죽하면 각 주정부가 소매절도 근절을 위해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종합 대책을 내놓고, 법률 개정에 나섰을 정도라는데요. 오늘은 미국 유통업계의 큰 골칫거리로 떠오른 소매 절도 문제를 딥다이브 하겠습니다.*이 기사는 8월 2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실적 부진 원인이 도둑?미국 스포츠용품 판매업체 딕스스포팅굿즈 주가가 22일 무려 24.15% 급락했습니다. 이날 발표한 2분기 실적이 너무나 부진했기 때문인데요. 매출은 2분기에 3.6% 증가했지만 이익이 23%나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실적 감소(올해 매출총이익 약 0.5% 감소)를 언급해서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죠.그런데 실적 부진 자체보다 더 놀라운 건 그 이유였습니다. 로렌 호바트 CEO는 성명을 통해 “2분기 수익성은 재고 손실(inventory shrink)의 영향으로 인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밝혔는데요. 재고손실이란 기록 상으로는 있어야 할 재고가 사라졌단 뜻이죠. 그럼 그 이유는? 이론적으로는 여러 가지(사기, 손상, 회계 오류 등)가 있지만 딕스스포팅굿즈가 뜻하는 건 이겁니다. 도둑질.사실 물건을 대거 도둑 맞고 있단 사실을 유통기업이 직접 나서서 밝히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정확히 얼마나 도둑 맞았는지 파악 자체가 쉽지 않기도 하고요. 그 수치를 공시할 의무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를 공개하는 건 그들을 바보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컬럼비아비즈니스스쿨 마크 코헨 교수)입니다.그런데 좀 달라지고 있습니다. 절도 때문에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고 대놓고 밝히는 기업들이 늘고 있죠. 미국 유통 대기업 타깃이 대표적인데요. 지난해엔 절도로 인해 연간 4억 달러에 달하는 타격을 입었다고 밝힌 데 이어, 올해 5월엔 연간 5억 달러의 손실을 예상한다고 이미 밝혔습니다. 얼마 전 2분기 실적 발표에서는 타깃의 브라이언 코넬 CEO가 소매업체가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많은 소매 절도와 조직적인 소매 범죄에 맞서고 있다”고 말했죠.24일 2분기 실적을 발표한 노드스트롬의 에릭 노드스트롬 CEO도 비슷한 발언을 내놨습니다. “도난으로 인한 손실이 역사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힌 겁니다.홈디포 CFO인 리차드 맥파일 역시 2분기 총 마진(33%)이 1년 전보다 8%포인트 감소한 요인으로 “(도난을 포함한) 재고손실로 인한 압력”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소연했죠. “재고손실은 지난 몇분기, 길게는 지난 몇 년 동안 지속된 압력입니다. 이는 우리가 매일 다루고 있는 문제입니다.” 참고로 매장에서 가장 많이 도난 당한 물건은 타깃의 경우 비누·샴푸 같은 개인 생활용품, 홈디포는 전선·배선장치·전동공구라고 하는군요.대형 유통업체들이 줄이어 이렇게 고백할 정도이면 도둑질이 미국 유통기업의 수익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참고로 미국에서 소매점 절도가 1년에 얼마나 발생하느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전국소매연합(NRF, National Retail Federation) 추정치가 거의 유일한 전국적인 데이터인데요. 2021년 연간 소매점 도난 금액이 945억 달러(약 125조원)로 전년(908억 달러)보다 4% 증가했을 거라고 합니다.뻔뻔하고 대담해진 절도범들굳이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먹고 살기 어려워지면 좀도둑이 늘기 마련입니다. 미국의 경우엔 지금은 좀 잠잠해졌지만 한동안 물가가 무섭게 치솟았었죠. 따라서 인플레이션 때문에 소매 절도가 늘어났을 거란 해석이 나오는데요.이런 생필품 위주의 소소한(?) 도둑질 증가를 부추기는 또다른 요인도 있습니다. 바로 셀프계산대입니다. 좀도둑 경향이 있는 사람의 경우엔 사람이 아닌 컴퓨터 계산원을 만나면 자신의 도둑질을 합리화하게 된다는데요. 미국에선 셀프계산대 절도 수법을 일컫는 용어인 ‘바나나 트릭’이란 말이 있습니다. 바나나 같은 저렴한 농산물 바코드를 찍고 실제로는 무게가 비슷한 티본 스테이크를 가져간다는 겁니다.하지만 요즘 유통기업을 괴롭히는 절도는 이 정도 수준의 범죄가 아닙니다. 주범은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조직화된 소매 범죄(Organized retail crime)입니다. 훨씬 더 전문적이고 뻔뻔하고 교묘한 절도범들입니다.8월 12일 토요일 오후, 해 무려 35만 달러어치의 상품을 훔쳐 달아나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을 줬죠. 그런데 바로 그 며칠 전인 8월 8일에도 역시 LA에 있는 이브랭로랑 매장에 최소 30명의 떼강도가 난입해 30만 달러어치 이상을 훔쳐갔고요. 노드스트롬 사건 바로 다음날인 13일엔 LA 동부 나이키 매장에서 도둑들이 태연히 수천 달러어치 상품을 품에 한가득 들고 걸어나가기도 했습니다. 플래시몹처럼 여러 명이 달려들어 물건을 훔쳐가는 절도 사건이 LA를 포함한 미국 전역에서 정말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요. 오죽하면 ‘절도가 이제 새로운 전염병 수준’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지난 4월엔 워싱턴주 린우드의 한 쇼핑몰에 있는 애플 매장에서 496개의 아이패드(약 50만 달러어치)가 도난 당하기도 했습니다. 한두개 슬쩍이 아니라 유리창을 때려 부수고 선반 하나를 통째로 가져가버리는 식의 폭도들이 활개를 칩니다. 아예 물건을 운반하는 트레일러가 통째로 도난 당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전국소매연합 2022년 소매 보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런 조직화된 소매 범죄 사고는 1년 전보다 26.5% 증가했습니다.이런 범죄가 명품이나 귀금속 같은 사치품을 대상으로 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쉽게 훔칠 수 있으면서 다시 팔기가 쉬운 일상소비재가 오히려 주요 타깃이죠. 예컨대 면도날·세탁세제·의류·알레르기약 등이 표적이 됩니다.즉, 조직적인 소매범죄는 재판매가 용이한 것과 관련 있습니다. 요즘엔 개인이 손쉽게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온라인 장터 같은 ‘마켓플레이스’ 서비스가 다양하죠. 미국에선 아마존·페이스북·이베이·오퍼업 등이 이런 서비스를 운영합니다. 덕분에 좀도둑질의 수익성이 높아진 겁니다. 과거 좀도둑들은 본인이 쓸 생필품을 필요한 만큼 훔쳤다면, 이젠 횡재를 노리고 대담한 도둑질을 벌이는 나쁜 사람들이 늘고만 있습니다.소비자도 정부도 손해 막심절도범죄가 늘면 누가 손해일까요. 언뜻 물건 파는 기업만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실제론 소비자 전체는 물론 지역사회까지 손해가 막심입니다.소매점이 절도에 취약한 건 당연합니다. 영업시간엔 항상 문이 열려있고, 누구나 제지 없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그럼 도둑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품에 일일이 도난방지 태그를 붙이고, 감시카메라와 보안 시스템을 설치하고, 고가품은 유리장 안에 넣은 뒤 자물쇠로 잠가버려야겠죠. 미국의 다이소 격인 달러트리(Dollar Tree)의 릭 드레일링 CEO는 “일부 제품은 케이스에 넣어 잠가놓고, 일부 제품은 계산대 뒤로 위치를 옮기고 있다”고 설명하는데요. 이런 조치엔 당연히 상당한 투자비가 듭니다. 그럼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 가격으로 전가되겠죠.소비자들의 고객 경험도 훼손됩니다. 뉴욕의 한 슈퍼마켓에서는 세탁세제까지 잠긴 캐비닛에 넣어두었는데요. 20달러도 안 되는 세탁세제를 사기 위해 고객은 직원을 불러 잠금장치를 풀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겁니다. 미국 뷰티소매점 울타(Ulta)는 향수가 너무 많이 도난 당한다며 연말까지 전체 매장의 70%에 잠금장치가 있는 진열장을 설치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는데요. 불편할 뿐 아니라 소비자의 쇼핑 의욕마저 떨어뜨리게 됩니다. 의류회사 VF코퍼레이션의 마티 앤드류 부사장은 이렇게 고민을 이야기 합니다. “사람들이 소매점에 가는 이유는 상품을 보고 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매장은) 어떻게 제품을 보호해야 할까요?”매장에서 상품을 도난 당하면 주정부 입장에선 세금 손실이 발생합니다. 물건을 판매할 때 떼는 부가가치세를 그만큼 잃게 되는 거니까요. 주마다 세율이 다르긴 하지만 소매 절도로 인한 연간 전체 세금 손실금액이 38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이에 더해 절도 증가를 이유로 매장이 문을 닫기라도 하면 파장은 일파만파이죠. 일자리가 줄고 지역 경제에 충격을 줄 테니까요. 얼마 전 백화점 노드스트롬이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매장을 폐점한 이유 중 하나가 절도 범죄 증가 때문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인데요. 지난해 12월 월마트 더그 맥밀런 CEO는 CN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절도 증가 추세가) 시정되지 않으면 (판매)가격이 오르거나 매장이 문을 닫게 될 겁니다.”결국 조직화된 소매범죄가 늘어나는 건 소매업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행정부와 사법부, 입법부까지 모두 절도 근절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하는 이유입니다.처벌 수위 높이기, 효과는?가장 확실한 대책 중 하나는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겁니다. 미국에선 주마다 다르지만 중범죄와 경범죄를 가르는 절도 금액 기준의 평균이 1180달러입니다. 훔친 물건 금액이 이 기준선에 못 미치면 경범죄이기 때문에 검찰 기소 대상이 되지 않죠. 이 기준 금액을 낮추거나 상습범이면 훨씬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데요. 실제 뉴욕시는 지난해 발생한 2만2000건의 소매 절도 사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 사건의 30%를 327명의 상습범이 저질렀다는 통계를 발표해서 시민들을 놀라게 했습니다(심지어 이들 중 70%는 감옥 밖에 있다고도 밝힘).미국 하원과 상원엔 이미 이와 관련한 법안(조직화된 소매범죄 퇴치법)이 상정돼있습니다. 12개월 동안 총 5000달러 이상 어치를 훔치면 ‘조직화된 소매범죄’로 규정하고 엄중하게 다루는 법안입니다. 이런 범죄 저지르면 연방자금세탁법에 따라 기소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았죠.이와 별개로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에 판매자 감시 의무를 부여하는 법은 이미 국회를 통과해 지난 6월부터 발효됐습니다. 온라인 장터가 장물 판매의 통로가 되지 못하도록 감시를 강화하는 조치인데요. 중고가 아닌 새 제품(미사용 제품)을 연 200건 이상 판매하는 대량 판매자에 대해서는 플랫폼이 정보를 확인해서 공개해야만 합니다. 이에 따라 아마존과 월마트는 웹사이트에 ‘도난 의심 상품을 신고하라’는 메시지를 게시하기 시작했죠. “의심스러운 활동을 신고하는 건 플랫폼과 소비자의 몫”이라는 게 연방거래위원회(FTC) 소비자보호국의 설명입니다.물론 도둑을 잡는 것 못지 않게 애초에 도둑질 자체가 덜 일어나게 하는 게 중요하겠죠. 이는 빈곤·정신질환·약물남용 같은 사회 이슈들과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치료와 교화, 복지의 문제인데요. 해결에 이르기가 그리 쉽지 않죠. “우리는 이 문제(조직화된 소매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건 단일 소매업체가 해결할 수 없는 커뮤니티의 문제”라는 타깃의 브라이언 코넬 CEO 발언이 과장은 아닌 듯 보입니다. By.딥다이브소매 절도는 미국에서 유행하는 신종 전염병 같은 현상일까요. 아니면 기본적인 보안 투자를 게을리한 소매기업들의 앓는 소리일까요. 여전히 미국에서도 논란은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대담해지는 절도 행각이 툭하면 SNS에 영상으로 올라오면서, 더 강하고 확실한 처벌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추세이죠.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미국 소매기업들이 2분기 실적 발표에서 절도 때문에 수익성이 악화됐다는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도둑질로 인한 손실이 역대 최대라고 합니다. -소매절도가 늘어나는 요인으로 인플레이션과 셀프 계산대를 꼽기도 하는데요.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조직적인 범죄가 늘고 있단 점입니다. 여러 명이 계획적으로 저지르는 이런 범죄는 지난해에만 26% 늘었습니다.-온라인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쉽게 재판매가 가능한 게 이런 범죄가 늘어난 이유인데요. 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와 지역사회 전체에까지 손실을 끼치는 조직화된 소매범죄. 이를 근절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이 기사는 8월 2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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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월 땡큐”…뉴욕증시, 연착륙 기대감에 안도랠리[딥다이브]

    파월 의장의 신중함 덕분일까요. 다시 경제 연착륙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미국 뉴욕증시가 28일(현지시간) 상승세로 마감했습니다. 다우지수 +0.62%, S&P500 +0.63%, 나스닥 지수 +0.84%. 지난주 금요일 잭슨홀 연설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금리를 추가적으로 인상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금리인상 결정은 신중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죠. 시장에선 특히 ‘신중하게’라는 표현에 주목했는데요. 인플레이션이 다시 뛰지 않는 한 금리인상을 최대한 자제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25일에 이어 28일에도 뉴욕증시가 안도랠리를 나타냈는데요. 펜뮤추얼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즈웨이런은 WSJ에 이렇게 말합니다. “연착륙은 이제 합의된 겁니다.” 그만큼 미국 경제가 계속 호황을 누릴 거란 낙관론이 힘을 얻고 있는 거죠.이날은 뉴욕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 주가도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습니다. 바이두는 3.45%, 징둥닷컴(JD닷컴)은 2.58% 뛰었죠. 중국 정부가 15년 만에 처음으로 주식거래 인지세를 절반으로 내리는(0.1%→0.05%) 증시 부양책을 내놓은 게 호재로 작용했는데요. 이 효과로 28일 상하이종합지수가 1.13% 오르기도 했죠. 참고로 이는 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쳐, 이날 대표적인 럭셔리주인 에르메스와 LVMH가 각각 1.83%와 1.68% 상승했습니다. 이번 주는 증시에 영향을 미칠 만한 경제지표들이 대기 중입니다. 31일엔 7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9월 1일엔 비농업 부문 신규고용 데이터가 나옵니다. 일단 월가에선 고용 증가세가 8월에 주춤하면서(신규 고용 16만5000명 증가 전망) 뜨거웠던 고용시장이 식어가고 있다는 신호를 줄 것으로 내다봅니다. 이를 두고 글래스도어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다니엘 자오는 WSJ에 “고용시장이 느리지만 꾸준한 연착륙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하는데요. 8월 고용보고서가 9월 19~20일 열릴 FOMC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거란 전망에 힘을 실어주기를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29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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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루한 미국 철강산업에 빅 이벤트! US스틸 인수전[딥다이브]

    ‘미국 제조업의 상징’인 122년 역사의 철강회사 US스틸(US Steel)이 회사 매각을 추진 중입니다. 역시 미국 철강기업인 176년 역사의 클리블랜드 클리프스(Cleveland-Cliffs)가 이 인수전에 뛰었다는 소식인데요.철강산업은 지루하고 뻔하다고요? 특히 미국 철강산업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별 볼 일 없어졌다고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조금 재미있어지는 중입니다. ‘미국 제조업의 부활=미국 철강산업의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죠. 재편 중인 미국 철강산업을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 *이 기사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괴물 철강회사가 팔린다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와 ‘금융왕’ 존 피어폰트 모건. US스틸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름인데요. 1901년 존 피어폰트 모건이 카네기의 철강회사 ‘카네기스틸’을 포함한 9개 철강회사를 인수해 합병시켜 만든 게 바로 US스틸입니다. 그 시절 US스틸은 정말이지 엄청났습니다. 세계 최초로 자본금 10억 달러가 넘는 기업이자(US스틸 자본금 14억 달러), 당시 세계 1위 철강 생산국이던 미국 철강산업의 3분의 2를 지배하는 회사였는데요. 1901년의 파이낸셜타임스 기사는 이렇게 경탄합니다. “미국은 큰 걸 좋아한다. 나이아가라 폭포와 켄터키 매머드 동굴, 옐로스톤에 이어 이제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기업까지 갖게 됐다.”US스틸은 ‘괴물 철강 트러스트’로 불렸죠. 너무 큰 나머지, 설립 10년 뒤인 1911년 미국 연방정부가 독점금지 소송을 걸어 US스틸을 해체하려고 시도했을 정도였는데요(하지만 정부가 패소). 1, 2차 세계대전 특수와 미국 자동차 산업의 황금기까지. 한 시대를 지배했던 기업입니다. 그리고 지난 13일 나온 소식. US스틸이 회사 매각을 추진 중입니다. 122년 역사의 기업이 어디론가 흡수될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인데요. 미국 철강기업 클리블랜드 클리프스가 US스틸을 72억5000만 달러(약 9조600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는데, 이 제안은 일단 US스틸이 거부했고요. 미국의 철강 가공 기업인 에스마크(Esmark)는 US스틸을 78억 달러에 인수하겠단 제안을 내놨다가 23일 철회했습니다. 동시에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세계 2위 철강 기업 아르셀로미탈이 US스틸 인수를 검토 중이란 보도도 나옵니다.제안된 인수금액만 봐서는 그렇게까지 엄청난 딜처럼 보이진 않을 수 있습니다. CNN은 ‘한때 미국 경제력의 상징이었던 US스틸이 이제 특가 상자(bargain bin)에 매물로 나왔다’고 표현했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US스틸은 지난해 기준 철강업계 세계 27위(생산량 1449만t)에 그칩니다. 세계 1위인 중국의 바오우그룹(1억3184만t)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죠. 포스코(7위)나 현대제철(18위)과 비교해도 한참 뒤지고요. 미국 철강산업이 주도권을 일본에 빼앗기고 쇠퇴하기 시작한 게 이미 50년 전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이 완전히 세계시장을 장악했고요. US스틸은 철강업계를 뒤흔든 구조조정 물결에서 살아남긴 했지만, 가격 경쟁력 높은 외국산 철강회사와 치열하게 싸우며 버텨야 하는데요. 그럼에도 이번 US스틸 인수전은 관심을 끕니다. 미국의 제조업 르네상스라는 흥미로운 스토리와 맞물려있기 때문이죠. 미국산 전기차엔 미국산 강철을?!초점을 잠시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줄여서 클리프스)로 옮겨볼까요. 클리프스는 US스틸로부터 인수 제안을 거절당했지만, 여전히 의지를 꺾지 않고 있는데요. 특히 미국 철강노조가 “US스틸을 인수할 회사는 클리프스밖에 없다. 클리프스 외에는 그 어디도 지지하지 않겠다”며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단체협약에 따르면 US스틸은 회사를 매각할 때 노조와 협의를 해야 하죠. US스틸이 공식적으로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도, 결국 이번 인수전이 클리프스 쪽으로 기울 거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176년 전 철광석 캐는 광업회사로 출발했던 클리프스는 연이은 인수합병을 통해 지금은 US스틸을 능가하는 북미 2위의 철강회사가 됐습니다(세계 22위). 그리고 그 성장의 중심엔 브라질 빈민가 출신의 자수성가 CEO 로렌코 곤칼베스가 있는데요. 그는 거침없고 저돌적인 캐릭터로 유명합니다(별명이 ‘철강의 일론 머스크’). 특히 2018년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비판적인 질문을 하는 애널리스트들에게 “당신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재앙이다. 부모님을 부끄럽게 한다. 자살해야 한다”고 무지막지한 폭언을 퍼부어 더 유명해졌죠(바로 1년 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에게 갑자기 “사랑한다”고 말해서 또 화제가 됨).곤칼베스가 CEO에 올랐던 2014년만 해도 클리프스는 심각한 적자 상태였는데요. 사업을 구조조정하며 재건해나가던 클리프스에 기회에 찾아온 건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산 철강 가격이 뛰기 시작합니다. 곤칼베스는 이를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위한 움직임으로 봤고요. 이후 엄청난 추진력을 발휘해 굵직한 미국 내 M&A를 잇달아 성공시키면서(2020년 AK스틸과 아르셀로미탈 미국 법인 인수) 철광석 채굴부터 자동차용 강판 제조까지 다 할 수 있는 미국 철강산업의 강자로 급부상합니다. 이러한 전략은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졌죠. 2021년 공급망 혼란과 인플레이션으로 미국 내 철강 가격이 t당 거의 2000달러까지 치솟은 겁니다(이전 10년 평균 가격은 약 600달러). 지금은 가격이 800달러대이긴 하지만 여전히 과거보다 상당히 높습니다. 미국 경제의 호황 국면이 꽤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M&A 과정에서 노조 일자리를 줄이지 않았던 곤칼베스 CEO는 지난해엔 기본급을 20%나 올려주기도 했습니다. 노조로선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죠. 야심가 곤칼베스 CEO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는데요. 자금 조달이나 독점 이슈 면에서 무리일 수 있는데도 US스틸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그는 US스틸이 거부 의사를 밝힌 뒤에도 “US스틸 인수를 통해 세계 10대 철강회사 중 유일한 미국 기업을 탄생시키겠다”며 인수제안 사실을 공개하고 여론전을 펼치고 있는데요(두 회사가 합치면 조강생산능력 3100만t으로 10위권). 글로벌 시장, 특히 미국의 자동차용 철강 시장에서 해외 업체와 경쟁하려면 덩치를 더 키워야 한다는 논리를 펼칩니다.그는 이런 식으로 미국의 애국심에 호소합니다. “우리는 한국산 철강, 일본산 철강과 경쟁합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일본 자동차 기업은 일본산 강철을, 한국 자동차 기업은 한국산 강철을 좋아합니다. 디트로이트 구성원인 자동차 회사 중 한 곳도 유럽에서 강철을 수입해왔습니다. 싸움은 훨씬 더 넓은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는 합병 이후에도 매우 작습니다.”(CNBC 인터뷰)합병하면 독점 아닌가? 사실 예전 같으면 미국 철강업계 2위 업체가 3위 기업을 인수하는 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당연히 걸릴 테니까요. 실제 두 회사가 합병한다면 미국 철광석 매장량의 100%를 소유하게 될 뿐만 아니라, 미국 내 자동차용 강판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됩니다. ‘무방향성 전기강판’이라고 전기차 모터에 꼭 필요해서 최근 미국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제품이 있는데요. 이 역시 미국에서 생산하는 유일한 업체가 될 겁니다. 아무리 봐도 합병 시 ‘국내 독점’ 위험이 커진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고객인 자동차 업계는 벌써부터 강판 가격 인상을 걱정하죠. 만약 합병이 현실로 다가온다면 “자동차 업계가 ‘자동차용 철강 공급에 경쟁이 필요하다’라며 워싱턴DC로 행진할 것”이란 얘기까지 나오는데요(미국의 자동차 업계 관계자 발언).그런데 말이죠. 어쩌면 지금은 반독점 판단에 있어서 예전과는 상황이 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일단 글로벌 철강시장 관점에서 보면 미국 1, 2위 업체라고 해도 세계 선두권 기업과는 워낙 격차가 크고요.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대표되는 ‘제조업 부활(=일자리의 부활)’ 정책을 펼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이 기본적으로 곤칼베스 CEO 논리와 일맥상통합니다. 게다가 재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노조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악시오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요즘 (미국) 연방 정부는 잠재적인 ‘괴물 철강 트러스트’를 무너뜨리는 것보다 강력한 국내 철강 제조업체를 구축하는 데 훨씬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그래서 이번 딜이 다들 독점 규제 이슈에 부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서도 동시에 “로렌코(곤칼베스 CEO는 업계에서 퍼스트네임으로 불림)는 결국 뭔가를 얻게 될 것”이란 기대 섞인 반응이 함께 나오는데요. 일단 US스틸 주가는 인수전 소식이 나온 뒤 30% 넘게 급등했습니다. 클리프스가 제시한 인수 가격(주당 35달러)에 근접했는데요. FT 칼럼은 이를 두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투자자들은 미국이 여전히 큰 것을 좋아한다고 믿고 있다.” 물론 미국 정부가 정말 그렇게 생각할지는 앞으로 두고 봐야겠습니다. By.딥다이브US스틸의 흥망성쇠를 보다 보니, 미국 산업화의 역사까지 함께 들여다 본 기분인데요. 과연 이 길고 긴 US스틸 역사의 결말은 무엇이 될지가 궁금해집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미국 산업화의 상징 US스틸이 122년 만에 매물로 나왔습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지만 이젠 중국, 인도, 일본, 한국 기업에 밀려 세계 철강업계 27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인수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곳은 미국 철강기업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입니다. ‘철강계 일론 머스크’로 불리는 곤칼베스 CEO가 “세계 10위의 미국 철강기업을 만들겠다”고 나섰습니다. 철강노조의 지지까지 이미 얻어냈습니다. -문제는 두 회사의 합병이 독점금지 규제에 걸릴 가능성이 대단히 커 보인다는 점인데요.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제조업 부활’을 외치고 있는 터라, 좀 다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이 기사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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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엔비디아도 못 구해…파월 연설 앞둔 뉴욕증시 급락[딥다이브]

    엔비디아의 기록적인 분기 실적도 증시를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24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 마감했죠. 다우지수 –1.08%, S&P500 –1.35%, 나스닥 –1.87%. 주요 지수는 장 초반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엔비디아 영향이었죠. 엔비디아는 23일 장 마감 뒤 발표한 2분기 실적에서 매출이 135억 1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00% 넘게 증가했다고 밝혔는데요. 월가의 예상치(111억5000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놀라운 실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단 0.1% 상승 마감하는 데 그쳤는데요. 미라마캐피털 설립자인 맥스 바서만은 “마치 뉴스에 팔아치우는 것과 같다”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엔비디아는 엄청난 실적을 기록했지만 시장은 이미 이를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투자자들은 연준이 찬물을 끼얹기 전에 약간의 이익을 얻고자 했을 겁니다.”이제 시장의 관심은 온통 25일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할 예정인 연설 내용에 집중됩니다. 지난해 잭슨홀미팅의 파월 의장 연설이 주식시장을 얼마나 뒤흔들어 놨는지를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다양한 전망이 나오는데요. 블룸버그 기사를 인용해 몇가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내일 잭슨홀 발표가 변동성을 촉발하는 데자뷰로 작용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호세 토레스, 인터랙티브브로커스 수석 이코노미스트)“연준이 뭐라고 말하는 우리는 그들이 금리인상 야구경기에서 대략 8회 또는 9회에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시장 가치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작은 소음이 시장을 무너뜨릴 수 있다.”(미라마캐피털 설립자 맥스 바서만)“적어도 2024년 상반기까지는 금리 인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를 표명할 가능성이 크다.”(존 베일, 닛코자산운용 수석 글로벌 전략가) 이날 발표된 경제지표는 미국 경제에 대해 엇갈린 신호를 보냈습니다. 지난주 미국 실업수당 신규 신청건수는 23만 건으로 전주 24만 건보다 감소해서 고용시장이 여전히 견고함을 보여줬는데요. 반면 7월 내구재 신규 주문은 5.2% 감소해 코로나 때인 2020년 4월 이후 가장 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제조업의 위축이 심화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주가폭락은 시장이 고금리를 더 오랫동안 견딜 수 없을 거란 투자자들의 우려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봤는데요. 모두가 주목하는 파월 의장이 연설은 한국시간으로 25일 밤 11시 5분에 예정돼있습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25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기자 haru@donga.com}

    • 20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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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덴마크의 노키아? 100년 제약사의 놀라운 도약과 걱정[딥다이브]

    ‘덴마크’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안데르센과 낙농업? 아니면 레고나 칼스버그 맥주?이젠 이 기업부터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국적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 100년 역사의 당뇨병 치료제 기업이 최근 몇 년 간 놀라운 속도로 커가면서 덴마크 증시뿐 아니라 경제까지 들었다 놨다 하고 있는데요.과연 노보 노디스크의 질주는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혹시 노보 노디스크는 ‘덴마크의 노키아’가 되는 건 아닐까요. 오늘은 너무 잘 나가서 국가 경제에 대한 걱정마저 불러일으키는 기업, 노보 노디스크를 딥다이브 합니다.*이 기사는 2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당뇨병 100년 한 우물, 그 결과시가총액 4100억 달러(약 546조원). 노보 노디스크는 올해 들어 주가가 33% 오르면서 시총 기준 유럽연합에서 두 번째로 큰 기업(1위는 LVMH)이 됐습니다. 급기야 얼마 전 노보 노디스크 시총이 약 4060억 달러인 덴마크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섰죠. 덴마크 경제에 있어 존재감이 얼마나 큰 기업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요.상상일 뿐이지만, 만약 1991년 노보 노디스크 주식에 투자했다면? 덴마크 자산운용사 포뮤플예의 주식책임자인 오토 프리드리히센에 따르면 배당금까지 포함했을 때 총수익률이 46174.32%라고 합니다. 100만원을 투자했으면 총 4억6174만원을 벌었을 거란 계산인데요. 평균적인 전 세계 주식시장(MSCI 전 세계 지수)의 같은 기간 수익률(988%)을 크게 웃돕니다.노보 노디스크가 지금 이렇게 잘 나가는 이유를 살펴보기 전에 옛날이야기 먼저 해볼까요. 1920년대 초만 해도 당뇨병 진단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당뇨병 환자는 평균 8년밖에 살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1921년 캐나다 연구원들이 인슐린을 발견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아우구스 크록 부부는 캐나다 연구진을 만나 덴마크에서 인슐린을 생산할 수 있는 허가를 따냅니다. 부부는 1923년 ‘노디스크 인슐린연구소’를 세우고 인슐린 제품 판매를 시작했죠. 1925년 덴마크에서 또 다른 당뇨병 치료제 기업 ‘노보 테라퓨티스’가 설립되면서 경쟁 구도를 형성했는데요. 치열하게 경쟁하던 두 기업이 1989년 합병하면서 노보 노디스크가 탄생합니다.노보 노디스크는 당뇨병 한 우물을 팠는데요. 유전자 재조합으로 만든 인간 인슐린 세계 최초 생산(1978년)과 세계 최초의 펜 형태 주사제 출시(1985년) 같은 제품혁신을 이어가며 당뇨병 치료제 업계 1위(현재 점유율 약 32.7%)에 오릅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순풍에 돛단 듯 성장세를 이어갑니다. 당뇨병이 ‘21세기 유행병’이라 불릴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환자가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죠. 2000년 1억 5000만명이던 전 세계 당뇨병 환자 수는 이미 5억2900만명으로 늘어났고요. 최근 미국 워싱턴대 보건계량분석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이대로 가다간 2050년엔 당뇨병 환자 수가 13억명까지 늘어날 거란 무시무시한 전망마저 나옵니다.제약사로서뿐 아니라, 주식으로서도 노보 노디스크는 독특한데요. 전 세계 경제에 위기가 닥치고 금융시장이 출렁거려도 노보 노디스크는 웬만해선 끄떡 없었습니다. 당뇨병 환자와 치료제 수요는 갈수록 늘기만 하니까요. 2008년 금융위기로 다른 기업들이 휘청거릴 때, 머스크(세계 최대 해운사)를 제치고 노보 노디스크가 덴마크 증시에서 시총 1위에 오릅니다. 이후 그 격차는 점점 벌어지기만 했죠.오죽하면 2013년 코펜하겐 증권거래소가 벤치마크 지수(OMX 코펜하겐 25) 산출법을 바꿨습니다. 노보 노디스크 시총이 지수 구성종목 전체의 절반에 육박했기 때문인데요. 시총이 아무리 커도 지수에선 20%까지만 반영하도록 상한선을 만들어 버립니다. 노보 노디스크 시총이 1000억 달러를 갓 넘어섰던 2013년 당시, 덴마크의 한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자랑스럽게 말했죠. “노르웨이에는 석유가 있고, 스웨덴에는 산업이 있으며, 핀란드에는 기초소재가 있고, 우리에게는 제약이 있다.”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노보 노디스크의 실적과 주가가 2016년 들어 모두 제동이 걸립니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 부진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인슐린 치료제 가격을 낮추라’는 심한 가격 압박에 부닥친 건데요. 사노피, 일라이릴리 같은 쟁쟁한 경쟁사들과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게 됩니다. 자연히 매출은 뚝 떨어졌고 직원 1000명을 정리해고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는데요.2016년 초 400크로네 안팎이던 주가가 그해 말 240크로네 수준으로 급락하며 덴마크 주식시장이 쑥대밭이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덴마크 개인 투자자들은 이때 외국인이 팔아치운 노보 노디스크 주식을 쓸어 담았습니다. 마치 2020년 한국 증시의 ‘동학개미운동’ 같은 움직임이었는데요. 덴마크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을 되레 매수 기회로 여긴 겁니다. ‘노보 노디스크는 일단 사면 은퇴할 때만 파는 주식’이라는 장기투자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죠.그리고 2016년~2017년 바닥에서 노보 노디스크 주식을 담은 그 덴마크 개인투자자들이 결국 옳았다는 게 증명되고 있는데요. 2020년 코로나에도 끄떡없었던 노보 노디스크 주가는 2021년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1년 초와 비교하면 200%, 2022년 초보다 거의 100% 올랐죠. 그사이 아주 강력한 새 성장동력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비만 치료제 ‘위고비’입니다.위고비와 비아그라의 닮은 점GLP-1 호르몬을 아시나요. 밥을 먹으면 장에서 생성돼,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뇌에 포만감을 느끼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하는데요. 노보 노디스크는 GLP-1과 같은 작용을 하는 신개념 당뇨병 치료제 ‘빅토자’를 2009년 내놓습니다. 그리고 이 약이 알고 보니 아주 놀라운 효과를 보인다는 게 입증됐는데요. 주사를 투여하기만 하면 살이 빠진 겁니다.노보 노디스크는 이 성분으로 만든 비만치료제 ‘삭센다’를 2015년 선보입니다. 1년 동안 매일 맞으면 약 6~8% 체중이 줄어드는 주사였죠. 삭센다는 비만치료제 시장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다만 하루 한 번씩 주사를 놔야 한다는 게 불편했죠.2021년 노보 노디스크는 2세대 GLP-1 수용체로 만든 새 비만 주사 ‘위고비’를 미국에서 출시합니다. 일주일에 1번만 맞으면 될 뿐 아니라, 평균 17~18% 체중이 줄어드는 놀라운 치료제였죠. 미국 시장의 반응은? 정말 폭발적이었는데요. 수요에 비해 물량이 너무 부족해서 2022년엔 한동안 환자 접수를 중단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위고비가 모자라다 보니 같은 성분의 당뇨병약(오젬픽)까지 불티나게 팔려나갔죠.위고비 인기에 대한 덴마크 자산운용사 BLS인베스트의 분석이 재미있는데요. 위고비가 1998년 출시돼 전 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화이자의 비아그라와 비슷하다는 겁니다. 일반적인 의약품은 뭘 처방할지가 의사에게 달려있죠. 그래서 제약사는 환자가 아닌 의사에게 제품을 홍보해야 하는데요. 위고비의 경우엔 비아그라 때 그랬던 것처럼 환자가 직접 ‘위고비를 달라’고 요구하는 제품이란 겁니다. 그만큼 환자들의 직접적인 수요가 엄청나단 뜻이죠.비만치료제의 수요 폭발로 노보 노디스크 매출은 급성장 중입니다. 얼마 전 발표한 2분기 실적에서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1년 전보다 30% 넘게 증가했죠. 여전히 위고비 공급 부족이 심각하기 때문에 그나마 덜 늘어난 게 이 정도라는데요(위고비 매출은 1년 전보다 523% 증가). 애초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율을 13~19%로 내다봤던 노보 노디스크는 전망치를 대폭 상향 조정해야 했습니다(매출액 27~33%, 영업이익 31~37% 성장 전망).위고비는 아직 미국·덴마크·노르웨이 정도에 출시했을 뿐입니다. 비만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는 중국은 진출도 안 했죠. 게다가 노보 노디스크는 비만치료제 신제품도 준비 중입니다. 위고비와 성분은 같지만 주사제가 아닌 하루 한 알씩 먹는 알약입니다. 올해 미국과 EU에 승인 신청을 해서 내년쯤 출시될 텐데요. 그래서 주가가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보 노디스크의 주요 투자자인 컴제스트의 아르노 코세라 CEO는 이렇게 말합니다. “노보 노디스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덴마크의 노키아’라는 걱정2년 전 분석자료이긴 하지만, 덴마크 개인 투자자 중 21%는 노보 노디스크 주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노보 노디스크 주가가 대중의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데요. 최근엔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이런 투자자들의 고민까지 진지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노보 노디스크 주가가 많이 올랐는데, 지금 팔면 차익의 42%를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팔기 전에 주식을 좀 더 사서 평단을 높이면 세금을 아낄 수 있나요?”(이에 대한 전문가의 답변은 ‘그렇다. 그런데 팔고 나서 다시 사고 싶을 수 있으니 주의해라.’)투자자들의 이런 고민이야 사실 행복한 고민이죠. 진짜 고민거리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너무 커진 노보 노디스크가 과거 핀란드의 노키아 같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겁니다.핸드폰 제조사 노키아를 기억하시죠. 한때 전 세계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을 주름잡았던 기업인데요. 닷컴 버블이 터질 무렵이던 2000년 노키아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시가총액 기준 유럽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었고요. 시총이 핀란드 GDP의 두 배였으니까요. 당시 노키아는 핀란드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었죠. 하지만 2007년 애플 아이폰 등장으로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침몰이 시작됐습니다. 노키아 쇼크로 핀란드 경제 전체가 휘청거렸죠. 2008년 이후 10년 동안 핀란드는 다섯차례 마이너스 성장을 겪는 등 경기침체를 겪어야 했습니다.노보 노디스크가 덴마크 경제에 있어 ‘노키아 모멘트’에 도달했다는 분석은 사실 10년 전부터 나왔습니다.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에 지나치게 성공적인 기업이 있으면 노키아처럼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막연한 걱정이었는데요.최근 위고비로 인한 노보 노디스크의 엄청난 성공은 이런 우려에 설득력을 한층 더하고 있습니다. 덴마크 시드뱅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티아스 돌러럽 슈프뢰겔은 “제약 부분의 강세가 덴마크 경제 다른 부분의 둔화를 위장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노보 노디스크로 대표되는 제약회사가 지난 1년 반 동안 덴마크 GDP 성장률을 2%포인트나 끌어올렸지만, 제약을 뺀 GDP 성장률은 –1%에 그쳤다는 거죠. 그는 자칫 노보 노디스크가 “덴마크의 노키아”가 될 위험이 있다고 보는데요. “노보 노디스크가 혁신을 계속할 수 없거나, 미국이 (인슐린의 경우처럼) 제품에 대해 엄격한 가격 통제를 시행한다면 덴마크 경제에 압력이 될 것”이란 전망입니다.실제 노보 노디스크의 성공이 이미 덴마크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덴마크 중앙은행은 기준금리(3.35%)를 유럽중앙은행(4.25%)보다 상당히 낮게 유지 중인데요. 위고비·오젬픽의 미국 판매가 급증해서 달러가 대량 유입되다 보니, 크로네 가치가 너무 강세를 띨까봐 일부러 금리를 낮게 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덴마크 통화인 크로네는 유로화에 고정돼 있어서(크로네-유로화 페그제), 가치를 유로화의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는 겁니다.물론 금리가 낮아도 덴마크 인플레이션은 안정돼있고(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3.1%),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5월 상향 조정했습니다(0.2%→0.6%). 아직까진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징후는 없죠. 그러니까 우려가 현실이 되느냐는 결국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과연 노보 노디스크가 이 성장세를 계속 이어가느냐 마느냐.물론 답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만, 비교적 희망 섞인 관측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날 노보 노디스크가 10~15년 전 연구의 결과인 것처럼, 미래의 노보 노디스크 역시 발전하는 시장과 수요를 따라갈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노보 노디스크는 그동안 바로 이 분야에서 매우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를 계속해 나가야 할 겁니다.”(덴마크 자산운용사 포뮤플예의 주식 책임자 오토 프리드리히센) By.딥다이브올해 초만 해도 덴마크 일부 주식 전문가들은 노보 노디스크의 PER이 너무 높다며 ‘주가가 40% 빠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진 놀라운 실적으로 이런 비관론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100년 역사를 가진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는 당뇨병 치료제 분야의 1위 기업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당뇨병 환자가 빠르게 늘면서 승승장구했던 노보 노디스크는 2016년부터 미국의 가격 인하 압박에 시달리며 멈칫했습니다.-이 위기를 벗어나게 한 건 신제품 비만치료제였습니다. 2021년 출시한 비만주사 ‘위고비’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노보 노디스크는 주가와 실적 모두 빠르게 점프 중입니다.-작은 나라에 있는 지나치게 성공적인 기업. 많은 이들이 ‘제 2의 노키아’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냅니다. 실제 덴마크 경제와 증시를 노보 노디스크가 좌우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진 잘못 되고 있다는 징후는 없지만, 앞으로가 궁금합니다.*이 기사는 2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기자 haru@donga.com}

    •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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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채금리 치솟아도 나스닥 날았다…엔비디아 8.5%↑[딥다이브]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16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는데도 나스닥이 날았습니다. 그만큼 기술주 실적에 대한 기대감이 큰 건데요. 21일(현지시간) 나스닥지수는 1.56% 상승 마감했고요. S&P500은 +0.69%, 다우지수는 –0.11%를 기록했습니다. 이날 주식시장은 채권금리 상승으로 압박을 받았습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4.339%로 마감했는데요. 이는 지난주 목요일 기록을 뛰어넘어, 또다시 2007년 말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겁니다.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커지면서 연준이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꽤 오래 이어갈 거란 전망이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채권금리가 높아지면 주식 투자 매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죠. 키프라이빗뱅크의 최고투자책임자 조지 마테요는 WSJ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채권금리가 주식투자와 어느 정도 경쟁을 할 만한 지점에 이미 도달한 것 같습니다.”그렇다면 채권금리 상승이 주식시장, 그중에서도 연준 통화정책에 민감한 기술주를 강타했을까요. 그게 일반적인 시나리오이지만 이날은 달랐습니다. 올해 미국 증시를 이끈 기술주들이 큰 오름세를 보였는데요.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건 23일 장 마감 후 실적을 발표할 예정인 엔비디아입니다. 이날 주가가 8.47%나 급등했죠.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65% 이상 늘어날 전망이라는데요. 엔비디아의 실적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AI 기술 관련 투자 심리가 크게 영향 받는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립니다. 이날 나스닥에선 테슬라 주가도 모처럼 7.33% 급등했는데요. 미국과 중국시장에서 차량 가격을 잇달아 인하한 탓에 주가가 6거래일 연속 하락했다가 이날 반등한 겁니다. 저가 매수가 대거 유입됐다는 분석이 나오는데요. 이날 미국 증권사 베어드는 “사이버트럭과 새로운 모델3가 시장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라며 테슬라 주가를 긍정적으로 전망한 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번 주 후반엔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이는 잭슨홀 미팅이 열리죠.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25일 경제전망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할 예정인데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지난해 잭슨홀 연설에서 파월 의장이 매파적인 발언을 내놓은 뒤 주식시장이 요동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도 파월 의장 연설에 시장의 관심이 쏠릴 텐데요. 스탠다드차타드의 외환 리서치 책임자인 스티브 잉글랜더는 FT에 “파월 의장은 다소 매파적인 중기 통화정책 기조를 제시하고,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를 약화시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습니다. By. 딥다이브*이 기사는 22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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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 새워 설계하라”던 우주 1위 부동산 회사의 위기[딥다이브]

    위태롭던 중국 경제를 뒤집어놓을 만한 초대형 폭탄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대형 부동산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입니다. 중국 부동산 업계에서 6년 연속 매출 1위(2017~2022년)로 ‘우주 최대 부동산 회사’로까지 불렸던 비구이위안이 ‘회사채 상환에 불확실성이 크다’고 선언하면서 위기가 중국 금융시장으로까지 번지고 있는데요.한때 버블이 심각했던 중국 부동산 시장은 2020년 하반기 대대적인 정부 규제 이후 급격한 침체에 빠져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죠. 비구이위안의 디폴트 위기도 그 연장선에 있는데요. 중국 부동산 시장과 경제 전반에 대한 분석과 전망은 이미 많은 언론에서 다루고 있고요. 오늘 딥다이브는 비구이위안 자체의 취약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비구이위안은 어떻게 중국 최고의 부동산 회사가 됐고,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대부분 경우처럼 성공으로 이끈 요인이 곧 실패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이 기사는 1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극단의 회전율 ‘345 모델’‘석공에서 억만장자로’. 비구이위안 창업자 양궈창(楊國強)을 설명할 때 많이 나오는 표현입니다. 17살까지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흙수저 건설노동자가 놀라운 성공 신화를 쓴 거죠.특히 1992년 비구이위안을 창업하자마자 닥쳤던 부동산 침체기를 극복해낸 스토리는 중국에서 ‘마케팅의 고전’으로 통합니다. 당시 비구이위안이 중국 광둥성 포산시에 맨 처음 지은 4000호의 고급 아파트는 고작 3채만 분양이 됐는데요. 쫄딱 망할 위기에서 그는 ‘귀족학교 유치’ 아이디어를 냅니다. 명문으로 유명한 베이징 경산학교(시진핑 딸도 다닌 학교)와 손잡고 국제학교를 설립했죠.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이 프로젝트는 대히트를 쳤습니다.이후 비구이위안은 빠르게 전국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데요. 크게 두 가지 전략을 썼습니다.①경쟁이 덜한 3선 또는 4선 도시를 공략했습니다.중국은 인구와 경제 수준에 따라 도시를 1~5선 도시로 구분하는데요. 당연히 가장 앞선 1선 도시(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의 부동산 개발 시장은 경쟁이 치열합니다. 반케(万科)나 소호차이나 같은 쟁쟁한 업체들이 1선 도시 쪽은 꽉 잡고 있죠.비구이위안은 처음부터 이런 큰 도시 대신 3선이나 4선 도시, 그것도 교외 지역을 공략합니다. 3선이라고 해도 인구가 300만~500만명이나 되다 보니 주택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었거든요. 소득 수준과 함께 소비자 눈높이가 높아지는 이들 지역에서 ‘별 다섯 개짜리 주택을 지어주겠다’는 비구이위안의 슬로건은 꽤 잘 먹혔습니다.②절정의 ‘높은 회전율’을 추구합니다.모든 사업이 그렇지만,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부동산 개발사업의 성패는 속도에 달려있습니다. 빨리 승인받고, 빨리 착공하고, 최대한 일찍 분양하고, 빨리 공사를 마무리 짓는 게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죠.비구이위안은 바로 이 점에서 놀라운 역량을 보였는데요. 이른바 ‘345’ 모델입니다. 토지 취득 후 3개월 이내에 공사를 시작해서, 4개월 뒤 자금 확보를 마치고, 5개월 뒤엔 자금을 회수해 재투자한다는 뜻인데요.아니, 그런 속도가 가능해? 중국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는데요. 양궈창 비구이위안 창업자는 이 345 모델을 상당히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토지 취득 후 3개월 안에 공사를 시작해야 하고, 5개월 안에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이 속도를 달성할 수 없지만 나, 양궈창은 할 수 있다.”중소도시 사랑의 결말 건설 승인 절차와 규제가 까다로운 1선 도시와 달리 3, 4선 도시는 승인도 더 빨리 나오고 규제도 아무래도 좀 널럴합니다. 비구이위안이 높은 회전율을 추구하기 위해 이런 중소도시를 공략했다는 해석이 나오는데요. 부동산 시장 성장기에 이 전략은 상당히 효과적으로 보였습니다. 덕분에 몸집을 매우 빠르게 키울 수 있었으니까요. 비구이위안 매출은 2015년 1000억 위안, 2017년 2000억 위안을 돌파하며 업계 1위에 올랐습니다.하지만 잡음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디자이너들에게 ‘오전에 설계 요구사항을 받으면 그날 당일 밤을 새워서 설계 도면을 완성하라’라고 지시한 게 알려지기도 했죠(나중에 회사측은 하룻밤 만에 그린 건 맞지만 공사 시행을 위한 실시설계가 아니라, 초기 단계의 계획설계라서 가능했다고 해명). 그렇게 단시간에 별 다섯 개짜리 주택을 짓는 게 가능하다고? 부실 공사하는 거 아니야?라는 의심이 일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2018년 비구이위안의 아파트 공사 현장 곳곳에서 연이어 붕괴 사고가 일어납니다. 여론이 들고 일어났는데요.이에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양궈창 당시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에 나왔습니다. 비구이위안이 그렇게 빨리 집을 지을 수 있는 건 부실 공사가 아니라 기술력 때문이라고 해명하면서도 “앞으로는 속도와 효율성을 안전과 품질에 양보하겠다”고 공언했는데요.만약 그때라도 비구이위안이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면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여전히 건설비용은 엄격히 통제했고 중소도시를 사랑했죠. 비구이위안의 지난해 매출 62%는 3선 또는 4선 도시에서 나왔고요. 개발을 위해 확보해둔 토지의 4분의 3이 이런 작은 도시지역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경쟁사보다 마진율은 낮지만 많이, 빨리 판매하는 일종의 ‘박리다매’ 전략이었죠. 사실 어디든 아파트를 짓기만 하면 무조건 팔리던 부동산 호황기에야 그래도 상관없었습니다. 문제는 2020년 하반기부터 중국 주택시장의 거품이 쫙 빠졌다는 점입니다.자연히 부동산 경기 침체기엔 인구유입으로 수요가 받쳐주는 대도시보다는 인구가 줄어들고 주택 공급이 과잉인 중소도시 주택시장이 더 타격을 입기 마련이죠. 3, 4선 도시에 사업을 집중했던 비구이위안이 급격히 어려움에 빠진 이유입니다. 집값이 떨어지자 아무도 집을 사지 않기 시작했고요. 집이 안 팔리면서 자금 회전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곳곳에서 공사가 중단된 거죠.지난 3월 새로 CEO로 취임한 양궈창의 둘째 딸 양후이옌은 “3~5년 안에 1, 2선 도시의 비중을 50%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요.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죠. 올해 1~7월 비구이위안의 주택 판매량은 1408억 위안으로, 전년보다 60%나 급감합니다. 상반기 적자 규모만 450억~550억 위안(약 8조2000억~10조원)에 달하고요.급기야 이달 초 회사채 이자 상환에 실패한 데 이어, 11일 양후이옌 CEO가 “설립 이후 가장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성명을 발표합니다. 14일엔 ‘11종 채권 거래 중단’까지 발표했는데요. 이대로라면 9월 초 돌아오는 채권 만기 때 결국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질 거란 관측이 나옵니다. 참고로 비구이위안이 중국 전역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3121개, 완공해야 할 주택은 거의 100만채에 달합니다.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중국 금융시장 상황에 대한 속보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거고요. 이쯤에서 비구이위안을 위기로 몰아넣은 또 다른 초대형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바로 말레이시아 ‘포레스트시티’입니다.유령 도시 된 숲의 도시30㎢에 달하는 4개의 인공섬을 결합해 건설하는 친환경·첨단 기술 중심의 미래형 도시.비구이위안이 말레이시아 조호주정부와 손잡고 건설 중인 포레스트시티의 홈페이지에 나오는 설명입니다. 조호바루시 외곽 싱가포르 인접 지점의 맹그로브 늪을 메워서 70만명이 사는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원대한 프로젝트인데요. 2015년 이미 착공했고, 2035년까지 프로젝트가 진행될 계획입니다. 20년 동안 총 예상 투자금은 무려 1000억 달러(134조원).착공 후 8년이 지난 현재는? 프랑스 르피가로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숲의 도시가 유령 도시가 됐다.”지금까지 만들어진 인공섬은 1개. 2개의 골프 코스와 고급호텔 2곳, 국제학교와 수족관 등이 문을 열었습니다. 주택은 2만8000세대가 완공됐고요. 하지만 거주민은 기껏해야 2000명 정도로 추정된다는데요.왜 이 모양이냐고요? 애초에 포레스트시티는 부유한 중국인들을 위한 세컨하우스로 지어졌습니다. ‘바다 전망 집을 상하이보다 훨씬 싸게 장만하세요’라는 컨셉이었는데요. 문제는 예전처럼 중국 중산층이 말레이시아에 집을 사는 데 적극적일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일단 2018년 재집권한 마하티르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가 “포레스트시티에 집을 사는 외국인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겠다“고 폭탄 선언했습니다. 사실상 중국인의 집 소유를 막겠다고 한 건데요. 이후 총리실이 입장을 바꾸긴 했지만, 오락가락 정책에 중국인들의 투자 열기가 확 식어버렸습니다. 마침 중국 시진핑 정부가 해외로의 자본유출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고요(연간 5만 달러 상한). 게다가 2020년 들어서는 코로나까지 겹치며 이동까지 막혔죠.중국인이 안 사면 말레이시아 현지인에 팔면 되지 않냐고요? 현지인은 이걸 살 이유가 없습니다. 말레이시아인 입장에선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지어진 쓸데없이 비싼 아파트이거든요(조호바루시 평균 주택 가격의 약 7배 수준). 말레이시아 뉴스트레이트타임스의 르포기사에 따르면 현지인들은 “이런 곳은 정말 숲으로 변하겠다”는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죠.비구이위안은 포레스트시티를 시진핑 주석이 2013년 처음 천명한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의 일환이라며 홍보해왔습니다. 하지만 되레 일대일로가 차질을 빚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사례로 남을 판인데요. 포레스트시티 프로젝트가 지금 비구이위안이 겪고 있는 유동성 위기에 얼마나 기여했느냐는 불분명하지만, 그룹의 자금난이 가뜩이나 우울한 포레스트시티의 미래를 더 어둡게 만들 가능성은 상당히 커보입니다. 한때 15홍콩달러가 넘었던(2018년 초) 비구이위안 주가는 18일 사상 최저인 0.76홍콩달러를 기록했습니다. By.딥다이브비구이위안은 30년 동안 성공을 이어간 데다, 비교적 모범적으로 경영해왔다(헝다처럼 문어발식 확장은 하지 않음)는 평가까지 받아왔던 기업인데요. 이번 사태로 ‘아니, 비구이위안마저!’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위기를 넘겨본 노련한 기업이라고 해도 급변하는 경제 흐름을 잘 따라가지 않으면 훅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흙수저 성공 신화의 주인공 양궈창 창업자가 이끈 비구이위안. 중국의 3, 4선 도시를 중심으로 한 ‘높은 회전율’ 전략의 효과로 중국 1위(중국에서 흔히 쓰는 표현으로는 ‘우주 1위’) 부동산 개발회사가 됐습니다.-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비구이위안이 공략해온 3, 4선 도시 주택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었습니다. 비구이위안은 급기야 채권 이자 상환에 실패하며 디폴트 위기에 봉착했습니다.-중국 부동산 기업 사상 최대 프로젝트라던 말레이시아 ‘포레스트시티’ 역시 비구이위안의 침몰을 부채질한 요인입니다. 유령도시가 된 포레스트시티가 비구이위안의 우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듯합니다.*이 기사는 1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기자 haru@donga.com}

    • 20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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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채금리 어디까지 오르나…뉴욕증시, 일제히 하락[딥다이브]

    치솟는 국채금리에 뉴욕증시가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17일(현지시간)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사흘 연속 하락을 기록했는데요. 다우지수 -0.84%, S&P500 -0.77%, 나스닥 -1.17%로 장을 마감했습니다. 이날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전날 4.258%에서 4.307%로 상승했는데요. 2007년 이후 최고 종가입니다. 30년 만기 국채 금리 역시 4.411%로 상승해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요. 이날 국채 금리 급등은 미국 경제가 상당히 강하다는 걸 보여주는 신호가 나왔기 때문인데요. 일단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23만9000건으로 예상치(24만건)를 밑돌았습니다. 여전히 고용시장이 뜨겁다는 뜻이죠. 또 월마트 분기 매출이 6.4% 증가해, 월가 예상치(4.1%)를 웃돌았는데요. 탄탄한 고용시장 덕분에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더 열고 있는 겁니다.아시다시피 경제의 좋은 신호는 종종 주식시장에선 악재로 작용하죠. 미국 경제가 강하면→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고→이에 대응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더 올릴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국채금리가 치솟았고 주식시장, 특히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시장에 큰 부담이 된 거죠. 투자자금이 수익률이 높아진 채권시장으로 쏠리는 데다, 기업의 차입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모건스탠리 글로벌투자오피스의 마이크 로웬가트는 블룸버그에 “주택착공, 소매 판매, 실업수당 청구가 모두 견실한 경제를 보여주기 때문에 연준이 9월엔 동결하더라도 이후 금리를 올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퍼시픽인베스트매니지먼트의 단기 포트폴리오 관리를 맡은 제롬 슈나이더 역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올해 말 연준이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고요. 우울한 주식시장과 달리 채권 투자자 입장에선 기회가 왔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장기채 금리가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상승했으니 말이죠. UBS글로벌웰스배니지먼트의 솔리타 마르첼리 최고투자책임자는 WSJ에 “최근의 금리 상승이 매력적인 수익률을 확보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는데요. 하지만 반대로 채권금리가 꽤 오랜 시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매매차익을 노리는 채권 투자자라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PGIM의 글로벌 채권 책임자인 로버트 팁은 FT에 “투자자들은 미국 10년물 금리가 곧 4% 미만으로 돌아갈 거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앞으로 몇 년 동안 이러한 기대가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될 것”이라고 말했죠.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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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차로 리튬이 대박? 한번 따져봅시다[딥다이브]

    ‘하얀 석유’ 또는 ‘백색 황금’. 전기차용 배터리의 핵심 광물인 리튬을 일컫는 말입니다. 전기차 시장 확대로 리튬 수요가 2040년까지 무려 40배로 증가할 거라고 하죠(국제에너지기구). 리튬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들 경쟁도 아주 치열합니다.그런데 ‘리튬 수요 급증=리튬 가격 급등’일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냐고요? 글쎄요. 가격을 결정하는 건 수요만이 아니죠. 공급이 매우 중요한데요. 오늘은 공급 측면을 중심으로 급변하는 리튬 산업을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리튬 삼각지와 자원 민족주의에너지 전환은 지정학적 변화를 가져옵니다. 석유 시대, 중동의 부상이 대표적이죠. 그리고 지금은? 전기차용 배터리의 원료로 쓰이는 금속들이 단연 주인공입니다. 니켈 덕분에 주목받게 된 인도네시아의 ‘자원 갑질’ 이야기는 이미 전해드렸는데요(편).리튬은 니켈이나 코발트와는 또 다른 차원으로 중요한 금속이죠. 정말 모든 리튬이온전지(심지어 전고체 배터리까지!)에 다 쓰이기 때문입니다. 현재로선 리튬 없이는 전기자동차에 전력을 공급할 수 없습니다.리튬은 전 세계에서 채굴되지만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은 호주, 칠레, 중국 순입니다. 하지만 아직 광산이 개발되지 않은 곳까지 합쳐 탐사된 매장량(2023년 기준 총 9800만t)으로 따지면 순위가 좀 달라지는데요. 볼리비아(2100만t)-아르헨티나(2000만t)-미국(1200만t)-칠레(1100만t) 순입니다.딱 봐도 중남미 비중이 상당히 크죠. 볼리비아·아르헨티나·칠레 3국을 ‘리튬 삼각지’라고 부를 정도인데요. 전 세계 리튬 중 53%가 여기 매장돼있습니다.지난 4월 칠레의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이 ‘리튬 국유화’를 선언하며 전 세계가 화들짝 놀랐습니다. 현재 칠레의 광활한 아타카마 염호(소금호수)에서 리튬을 생산하는 권리는 미국 기업 앨버말(Albemale)과 칠레 화학기업 SQM(소시에다드 키미카 이 미네라)이 갖고 있는데요. 보리치 대통령이 “향후 리튬은 국가 통제가 있는 공공·민간 파트너십으로만 생산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들 기업 주가가 급락했습니다. 계약기간이 아직 한참 남아있긴 하지만(앨버말 2043년, SQM 2030년 계약 만료)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진 거죠.앞서 볼리비아는 2008년에 이미 우유니 소금호수의 리튬 생산 산업을 국유화했죠. 지금은 볼리비아 국영기업 YLB(야시미엔토스 데 리티노 볼리비아노스)가 자국의 리튬산업을 통제하고 있는데요.이제 볼리비아에 이어 칠레까지 리튬 국유화라니. 결국 ‘자원 국가주의’가 본격화된 걸까요. 전 세계가 긴장했습니다. 그리고 자연히 관심은 삼각지 중 남은 하나, 아르헨티나에 쏠렸는데요.그런데 아르헨티나는 상황이 좀 달라 보입니다. 일단 이 나라는 헌법에 따라 리튬 소유권이 중앙 정부가 아닌 주정부에 있는데요. 지난 2월 24개 주 중 한 곳(라리오하주)이 민간 기업의 리튬 채굴권을 중단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23개 주정부는 리튬 산업에 대한 해외기업 투자 유치에 여전히 적극 나서고 있죠.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다 아빌라 광업부 장관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리튬에 대한 투자는 멈춘 적이 없어요. 이는 우리가 민간 투자에 개방적이라는 점,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시행되는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과 관련 있다고 봅니다.”한마디로 ‘해외기업 투자 웰컴’을 외치고 있는데요. 아르헨티나 경제가 워낙 심각한 위기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20년 만에 최악의 경제난을 겪는 아르헨티나는 물가상승률이 연 115%에 달하죠. 당장 일자리와 돈이 급한 아르헨티나 주정부로선 자기네 소금호수에서 리튬을 채굴해 가겠다는 해외 기업이 반가운 존재입니다. 리튬을 수출할 때 기업이 내야 하는 로열티도 매우 낮은 3%로 잡았죠. 참고로 칠레의 경우, 정부가 기업으로부터 받는 로열티 비율이 최고 40%에 달합니다(리튬 가격이 높아지면 비율도 오르는 구조).그 결과 아르헨티나에서는 리튬 생산 프로젝트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3년 동안 발표된 프로젝트만 38개에 달하죠. 그 결과 5년 뒤 아르헨티나 리튬 생산량은 지금의 6배로 증가할 거라는데요. 2027년이면 리튬 생산량에서 칠레를 추월할 전망입니다.리튬 삼각지 3국의 입장이 일치하지 않는 건 배터리 생태계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같은 리튬 생산국 카르텔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조금 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원 민족주의로 리튬 공급이 타이트해지면서 리튬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이 조만간 발생하진 않을 거란 뜻이죠.세계은행의 존 배프스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역사적으로 성공적인 원자재 카르텔엔 세가지 특징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잘 정의된 목표를 공유하는, 소수의 생산자가 있다는 점인데요. 이 기준에서 봤을 땐 리튬 같은 배터리 금속은 카르텔 형성이 어렵다는 의견입니다. “유리한 환경 조성을 위해 몇몇 국가가 모일 수 있지만 그것은 실패할 겁니다. 그룹의 외부에서 더 많은 생산자들이 들어올 것이기 때문입니다.”직접 리튬 추출? 제 2의 셰일 혁명일까 석유시대의 질서를 뒤흔든 건 미국의 ‘셰일 혁명’이었습니다. 2010년대 들어 미국이 발전된 추출기술을 이용해 셰일가스 생산에 나서면서 미국이 에너지 전쟁의 패권을 쥐게 된 건데요. 리튬 산업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바로 ‘직접 리튬 추출’ 기술 때문입니다.직접 리튬 추출 기술을 설명하기 전에 리튬을 어떻게 생산하는지부터 알아볼까요. 지금은 크게 두 가지 방법입니다. 하나는 호수 지하에 있는 소금물을 퍼낸 뒤 물을 증발시켜 얻어내는 겁니다. 염전에서 천일염을 얻듯이 말이죠. 칠레·볼리비아·아르헨티나처럼 광활한 소금호수가 있는 나라에서 쓰는 방법이고요. 다른 하나는 땅에서 고체 형태의 리튬 광석을 캐내는 겁니다. 호주나 중국에 이런 리튬 광산들이 많죠.그런데 두 방법 모두 환경 측면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물을 증발시켜 얻는 염수 리튬의 가장 큰 문제는 호숫물이 사라져버린다는 겁니다. 탄산리튬 1만t을 얻기 위해 200만t의 물을 증발시킨다고 하죠. 그 물로 생활하던 지역 주민들에겐 이만저만 큰일이 아닙니다. “리튬은 오늘을 위한 빵이고, 내일의 굶주림”이라는 아르헨티나 소금호수 지역 주민의 말이 과장이 아닌 거죠.광산에서 캐내는 암석 리튬은 생산과정 너무 많은 탄소를 배출해서 문제입니다. 주로 석탄 화력을 이용하기 때문인데요. 탄산리튬 1t을 만드는데 약 9.6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는 군요. 소금호수를 증발시키는 방법과 비교하면 2.5배에 달하죠.그래서 새로운 ‘직접 리튬 추출(DLE, Direct Lithium Extraction) 기술’이 주목 받습니다. 소금물에서 리튬을 얻되, 물을 증발시키지 않는 방식입니다. 호수에서 소금물을 퍼내서 탱크를 거치게 하면, 탱크 안 세라믹 구슬(이온 교환 물질)이 리튬을 흡수하고 나머지 물은 다시 호수로 돌려보내죠.기존 방식으론 막대한 양의 소금물을 공기 중으로 자연 증발시키느라 리튬을 추출하는데 12~18개월이나 걸렸는데요. 직접 리튬 추출 기술을 이용하면 2시간 만에 가능해집니다. 효율성도 높아서 같은 양의 소금물로 지금보다 2배의 리튬을 얻을 수 있다는데요. 상용화된다면 리튬 공급량이 획기적으로 빠르게 늘어날 수 있는 겁니다.물론 아직 상용화된 기술은 아닙니다. 파일럿 단계에 머물러 있죠. 하지만 이 분야에 대한 투자는 꽤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기술을 개발 중인 스타트업 기업이 여러 곳인데요. 리오틴토(호주 광산업체), BMW, GM 같은 기업은 물론, 빌 게이츠 소유의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 같은 투자사까지 이들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나섰습니다.그 중 가장 앞서가고 있는 건 미국 스타트업 ‘라일락 솔루션’의 아르헨티나 카치(Kachi) 프로젝트인데요. 내년 상업 생산을 시작해서 2025년부터는 연간 5만t의 탄산리튬을 생산하겠다는 목표입니다. 만약 계획대로 성공한다면(리튬 추출율도 예상만큼 높다면)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이 될 텐데요. 아직은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엔 좀 이르긴 합니다. 참고로 지난해에 라일락 솔루션의 직접 리튬 추출 기술이 실제로는 형편없다는 공매도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리튬 생산량이 계획대로 늘어난다면정리하자면 리튬 수요가 그야말로 폭발하고 있는 건 맞지만, 공급 측면에선 자원 민족주의와 생산기술 발전이란 변수가 있어서 중장기 리튬 가격 예측은 쉽지 않은데요. 그럼 멀리 말고 당장 1~2년 뒤는 어떨까요.지난 6월 삼성증권이 낸 보고서를 참고할 만한데요. 글로벌 리튬업체들이 발표한 계획 대로라면 내년과 내후년엔 리튬 생산량이 꽤 크게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 결과 2025년이면 리튬 수요보다 리튬 공급이 더 많아질 거라는데요. 리튬 공급과잉 현상이 2027년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아니, 그럼 리튬 가격은 오르긴커녕 떨어질 일만 남은 걸까요? 글쎄요. 백재승 삼성증권 연구원은 “증설 이후 품질 테스트 기간이 6개월~1년 정도 걸리는 데다, 증설 계획이 지연되는 경우들도 과거에 있었다”면서 좀 더 살펴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입니다. 만약 리튬 가격이 많이 떨어진다면 기업들이 굳이 설비 증설을 서두르지 않게 될 수도 있거든요. 참고로 배터리용 탄산리튬 가격은 지난해 11월 t당 60만 위안까지 치솟아서 2021년 초와 비교하면 10배나 폭등했는데요. 올해 들어서는 급락해 현재 26만 위안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By. 딥다이브리튬 가격은 리튬 생산업체뿐 아니라 배터리 관련 기업들의 실적에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지난해 워낙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던 터라, 올해 가격 급락 뒤 전망이 어떻게 될지가 궁금했는데요. 역시나 변수가 많아서 예측이 쉽진 않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칠레의 리튬 국유화 선언으로 자원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죠. 하지만 리튬 매장량 세계 2위인 아르헨티나는 경제난으로 인해 해외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 여전히 적극적입니다. 배터리 금속을 둘러싼 카르텔 형성이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옵니다. -리튬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직접 리튬 추출 기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집니다. 기존 방식보다 더 친환경적이란 장점도 있는데요. 다만 아직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리튬 수요 급증을 예상한 기업들이 빠르게 리튬 생산설비를 확충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계획대로 증설을 한다면 2025년엔 리튬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이 기사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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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PI에 안도한 뉴욕증시… 아직 승리 선언은 이르다?[딥다이브]

    예상치를 밑돈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뉴욕증시가 안도했습니다. 10일(현지시간) 3대 지수는 모두 소폭 상승했죠. 다우지수 +0.15%, S&P500 +0.02%, 나스닥 지수 +0.12%. 관심을 모았던 7월 CPI는 전년 대비 3.2% 상승했는데요. 월가 예상치(3.3%)를 하회한 겁니다. 특히 근원 물가(식료품과 에너지 제외)는 1년 전보다 4.7% 올라서, 6월(4.8%)보다 상승률이 낮아졌죠.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는 신호인데요. 이는 곧 9월 FOMC에서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거란 뜻으로 시장은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개장 초 3대 지수가 모두 1% 넘게 뛰었고요. 하지만 이내 시장을 진정시키는 연준 인사의 발언이 나오면서 상승세가 둔화했는데요.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는 이날 야후 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승리가 우리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데이터 포인트는 아닙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목표치인 2%로 단호하게 끌어내리기 위해 전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김칫국 마시긴 이르다는 뜻인데요. 사실 연준 인사들은 그동안에도 통화정책 피벗 기대감에 주식시장이 달아오르려 할 때마다 한 번씩 찬물을 끼얹곤 했죠. 블룸버그는 “연준이 차기 회의에서 금리를 올리지 않을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그들(연준 인사들)은 ‘아직 할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어조를 내기 위해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썼습니다. 아마 연준이 9월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하더라도, 제롬 파월 의장은 승리를 선언하진 않을 거라고도 내다봤죠. 섣불리 금리인상 종결을 선언하면 인플레이션이 다시 가속화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연준의 신중론과 달리 월가에선 9월은 물론 연말까지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거란 전망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입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안나 윙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7월 CPI는 연준의 목표(연 2%)와 일치하는 속도로 근원물가가 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연준이 올해 남은 기간 동안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예상했죠. 이날 눈에 띄는 종목은 디즈니입니다. 전날 분기 실적과 함께 디즈니플러스 가격 인상 계획을 발표한 뒤 주가가 4.88%나 뛰었는데요. 디즈니는 OTT 서비스인 디즈니플러스의 막대한 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해왔죠. 덕분에 스트리밍 사업부의 적자 규모가 줄어들고 있긴 한데요. 대신 2분기 전 세계 구독자 수(총 1억4610만명) 역시 1170만명이나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디즈니는 적자 개선을 위해 10월 12일부터 미국 내 구독료를 월 10.99달러(1만4000원)에서 13.99달러(1만8400원)으로 대폭 올린다고 발표했는데요(무광고 멤버십 기준). 아울러 내년부터는 넷플릭스처럼 계정 무료 공유를 단속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출혈 경쟁을 끝내고, 수익성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인데요. 3년 전 수준으로 떨어진 주가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By.딥다이브*이 기사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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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산성 떨어지는데 왜 해? 재택근무 논쟁의 진실[딥다이브]

    재택근무는 과연 사무실 근무만큼의 생산성을 낼 수 있을까요. 현재 경제학계의 뜨거운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각국에서 재택근무 관련한 연구 결과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는데요.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선 여전히 직원의 40%가 일주일에 하루 이상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이브리드 근무(사무실과 재택근무 병용)가 대세로 자리 잡았는데요. 사무실로 나오라는 기업과 집에서 일하겠다는 근로자 사이의 줄다리기도 계속되고 있죠.동시에 재택근무 확산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문제제기도 나옵니다. 오늘은 팬데믹은 끝났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이슈, 재택근무를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집에서 일하면 생산성 18% 떨어진다? “일론 머스크가 옳았다.”데이비드 앳킨 MIT 교수 연구팀이 지난달 공개한 재택근무 생산성 관련 연구 결과(제목 ‘재택근무, 근로자 분류 및 개발’)를 전하는 언론 기사의 제목입니다. “집에서 일한다는 건 개소리”라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말대로 재택근무의 생산성이 확실히 떨어진다는 게 드러났다는 거죠.실제 연구의 결론은 이겁니다. ‘재택근무 근로자의 생산성이 사무실 근무자보다 18% 낮았다.’ 5%나 10%도 아니고 18%라니. 상당한 차이인데요. 이걸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인가요, 아니면 ‘아무리 그래도 18%는 심한데?’인가요?정확한 판단을 위해선 연구 방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팀은 인도 남부 도시 첸나이에서 235명을 새로 고용해 ‘초급 데이터 입력’ 업무를 시켰습니다. 근로자들은 무작위로 ‘주 5일 출근조’ 또는 ‘완전 재택근무조’로 나뉘어, 총 8주 동안 일했죠. 연구팀은 입력된 데이터의 정확도와 속도를 기준으로 직원의 생산성을 계산했는데요. 일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재택근무조의 생산성이 확연히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후 사무실 근무조가 일을 점점 더 잘하게 되면서 그 차이는 더 벌어졌고요.사실 그동안 재택근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는 많았는데요. 흔히 ‘선택효과’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즉 원래 일을 못 하는 사람이 집에서 일하는 걸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 영향으로 재택근무 생산성이 떨어져 보이는 거란 해석인데요(달리 말하면 어디서 일하느냐보다 어떤 근로자이냐가 중요하단 뜻).이번 MIT 연구가 다른 건 재택근무할지 말지를 무작위로 정한 겁니다. 선택효과를 배제했는데도 재택근무 생산성이 떨어지더라는 걸 확인한 셈이죠(어떤 근로자냐 못지않게 어디서 일하느냐도 중요하다!).물론 연구의 한계도 분명합니다. 저숙련의 저임금 근로자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었죠. 실제 비슷한 결론(재택근무자가 사무실 근무자보다 8% 생산성이 떨어진다)을 내린 지난 5월의 다른 연구(나탈리 애마누엘 뉴욕연은 이코노미스트의 ‘원격근무를 하시나요? 원격근무의 선택, 처우 및 시장’) 역시 미국 내 콜센터가 대상이었고요.특히 눈에 띄는 건 기존에 사무실에서 일하던 근로자가 아닌 신규 채용된 초보 직원들을 가지고 실험했다는 점인데요. 연구팀 역시 “우리가 연구한 집단은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사무실 환경에서 일해 본 적이 없다. 사무실에서 일했던 기존 직장인이라면 사무실 근무 규범을 흡수했을 수 있다(생산성이 많이 떨어지진 않았을 수 있다는 뜻)”고 인정합니다.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재택근무 옹호론자이든 반대론자이든 좀 답답하실 수 있겠습니다(아니, 그래서 재택근무가 얼마나 나쁘다는 거야?). 이쯤에서 재택근무 관련 논쟁의 종합정리판 격인 워킹페이퍼를 소개합니다. 지난달 니콜라스 블룸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와 공동저자가 발표한 ‘재택근무의 진화’입니다.완전 재택이냐, 하이브리드냐 니콜라스 블룸 교수는 재택근무 연구로 유명한 경제학자입니다. 2015년 중국 여행사 씨트립의 상하이 콜센터를 대상으로 연구해 ‘재택근무(4일 재택+1일 출근)로 기업 성과가 13% 늘고 퇴직률은 50% 줄었다’는 결과를 발표해 전 세계가 주목했죠.하지만 정작 2020년 팬데믹으로 사실상 전 세계에 ‘강제 재택근무’ 시대가 도래했을 때 그는 부정적이었습니다. “코로나발 재택근무는 기업 생산성의 재앙”이라고까지 경고했는데요. 왜 블룸 교수의 말이 몇 년 새 달라졌을까요. 바로 이 점 때문인데요. 지난달 발표한 워킹페이퍼에서 그는 “연구 결과들을 볼 때 완전한 재택근무(주 5일 재택)은 5~20%까지 생산성이 떨어진다”면서 “하이브리드 근무(예-주 3일 출근, 2일 재택)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은 (사무실 근무와) 비슷하거나 약간 긍정적”이라고 말합니다. 회사를 아예 안 가는 건 곤란하고, 일주일에 2~3일이라도 가긴 가야 한다는 거죠.완전 재택근무를 하면 커뮤니케이션이 어렵고, 집중력과 창의성도 떨어진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특히 주니어 직원들에 대한 피드백과 멘토링이 줄어든다는 게 문제로 꼽히죠.재택근무자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또 다른 원인은 인간의 낮은 자제력인데요. ‘재택근무의 세 가지 적은 침대, 냉장고, 텔레비전’이란 말이 나올 정도이죠. 블룸 교수는 “학생들도 자기 관리를 위해 (집이 아닌)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합니다.반면 하이브리드 근무를 하는 경우엔 사무실 근무보다 생산성이 더 높아지거나 별 영향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있습니다. 멕시코 경제학자인 호세 마리아 바레로 ITAM 교수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하이브리드로 근무하는 직원들은 3~5% 생산성이 증가했다고 보고했죠.아, 그러면 세계적인 전문가를 믿고 완전 재택 말고 하이브리드 근무로 가는 게 기업 입장에선 답일까요? 그런데 기업이라면 이걸 고려해야 합니다. 100% 재택근무가 주는 큰 이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바로 사무실이 필요 없어져서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생산성이 설사 18%나 떨어지더라도, 사무실 임대료를 크게 아낄 수 있다면 괜찮은 선택일 수 있는 거죠. 완전 재택근무라면 임대료만이 아니라 임금도 줄일 수 있습니다. 어차피 사무실로 출근할 필요 없다면 굳이 인건비가 비싼 선진국 근로자를 고용할 필요 있나요. 달리 말하면 완전히 원격으로 근무할 수 있는 업무라면(데이터 입력이나 콜센터처럼) 기업 입장에선 차라리 해외로 이전하는 게 나을 수 있는 겁니다. 세계 34개국 중 재택근무 비율 꼴찌는주 3일만 회사로 출근하고 이틀은 집에서 일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K직장인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건만, 미국 빅테크 기업에선 이마저도 못하겠다는 직원들과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죠. 구글은 지난 6월 “주 3일 출근을 지키는지를 확인해 성과 평가에 반영한다”고 했다가 “회사가 학교냐”는 직원 반발을 샀는데요. 최근엔 본사 캠퍼스 안에 있는 호텔 숙박권을 99달러(약 13만원)에 판매한다고 했다가(구글 측은 “통근 대신 한 시간 더 잘 수 있어요”라고 홍보) “노 땡큐!”라는 시니컬한 반응만 돌아왔죠.이를 두고 “일주일에 2~3일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건 약 8%의 임금 인상과 동일한 효과”(호세 마리아 바레로 교수)라는 연구 결과가 인용됩니다. 달리 말하자면 기업 입장에선 재택근무 덕분에 임금을 덜 올려줄 수 있는 셈입니다. 반대로 사무실로 다시 출근하게 만들려면 상당한 임금 인상이 필요하고요.문제는 이렇게 출근을 하네 마네를 가지고 회사와 실랑이를 할 수 있는 근로자는 소수라는 점입니다. 아예 선택권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죠. 그래서 재택근무가 근로자 간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이어집니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학력과 나이, 그리고 무엇보다 국적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이를 블룸 교수와 공동저자들이 6월에 낸 보고서(전 세계 재택근무:2023년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전 세계 34개국 정규직 직원은 올해 4~5월을 기준으로 평균 주당 0.9일 재택근무를 실시했습니다. 재택근무 일수는 캐나다(1.7일), 영국(1.5일), 미국(1.4일)이 가장 많았고 독일이나 네덜란드, 핀란드(1일)는 평균을 살짝 웃도는 데 그쳤습니다. 그리고 꼴찌는? 바로 한국(주당 0.4일)이었죠.이렇게 나라별로 차이가 큰 이유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데요. 단순히 부자나라냐 아니냐만으로는 설명이 잘 되지 않습니다. 설득력 있는 요인 중 하나는 집 크기인데요.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직원 집 크기가 큰 나라가 아무래도 재택근무에 유리하죠. 산업 구조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데요. IT나 금융 같은 서비스 업종 비중이 높은 나라(미국)일수록 재택근무에 적합하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이 해석도 의미 있어 보이는데요. 미국을 포함한 영어권 국가 기업이 성과 측정과 평가 시스템에서 앞서 있는 게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합니다. 직원을 굳이 사무실에서 관찰하지 않고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갖춰진 거죠.인구 통계학적으로는 고졸보다는 대졸자가 재택근무 비율이 높게 나타납니다. 애초에 대면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직군(예-청소, 음식점)에 고졸자가 더 많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재택근무 확산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론 머스크는 “재택근무는 도덕적으로 잘못됐다. ‘노트북 계층’이 서비스 근로자나 공장 근로자가 누릴 수 없는 특권을 요구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말한 적 있죠.유럽노동조합연구소(ETUI)의 바우터 즈위젠 연구원 역시 “노동시장에서 이미 더 나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 즉 디지털 첨단 기업이나 대기업 근로자, 더 높은 기술을 가지고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는 근로자, 정규직 근로자가 주로 재택근무를 한다”고 지적합니다. 국가와 함께 근로자의 학력, 숙련도, 고용계약 형태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좌우하더라는 분석입니다. 따라서 “재택근무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확대할 위험이 있다”는 결론이죠(동시에 그래서 노조가 필요하다는 것도 결론).이 밖에도 재택근무가 늘어 사무실 공실과 도심 유동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경제학계에선 걱정거리이죠. 이제 미국이나 유럽뿐 아니라 일본에서조차 이에 대한 우려 섞인 기사가 나오는데요(도쿄 도심 출퇴근 인구가 20% 줄고, 직장인들이 예전처럼 야근이나 회식을 하지 않는다는 닛케이 기사).니콜라스 블룸 교수는 팬데믹으로 인해 주당 0.9일로 늘어난 재택근무가 앞으로도 줄지 않고 점점 더 늘어날 거라고 전망합니다. 10~20년 뒤엔 근무일의 30~40%, 그러니까 주 1.5~2일은 재택근무로 정착될 거라는 분석인데요. 새로운 평가시스템을 포함한 기술의 혁신이 이를 뒷받침할 거란 그의 예상이 과연 현실화할까요. 물론 재택근무 불모지 한국에선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By.딥다이브재택근무의 상징이나 다른 없는 미국의 화상회의 프로그램 기업 줌(ZOOM)마저 직원들에게 주 2일은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했다는군요. 주 5일 100% 재택근무는 이제 과거 얘기가 되려나요. 재택근무 관련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주 5일 집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사무실 근무자보다 생산성에 18%나 떨어진다는 MIT대학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 다른 미국 콜센터 관련 연구에서도 재택근무가 8% 정도 생산성을 늦춘다고 합니다.-동시에 100% 재택근무가 아닌 하이브리드근무는 생산성을 낮추지 않거나 되레 올린다는 연구 결과도 나옵니다. 커뮤니케이션이나 멘토링의 질을 낮추지 않으려면 적절한 수준의 대면 근무가 필요하다는 뜻이죠.-미국에선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기업과 재택을 유지하려는 근로자 간 갈등도 나타납니다. 하지만 근로자의 학력과 숙련도, 무엇보다 국적에 따라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좌우되곤 하죠. 일종의 노동시장 양극화 현상인데요. 그래도 대세(하이브리드근무 확산)는 정해졌으니 어떻게 잘해 나갈까를 고민해야겠습니다.*이 기사는 8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 202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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