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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난치성 질환의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다. 신약과 첨단 의료장비가 개발된 덕분이기도 하지만 수술 현장을 지키는 외과 의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외과적 수술은 치료의 기본이자 완결이다. 하지만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기피 과’로 인식되면서 지원자가 줄고 있다. 동아일보는 고려대의료원과 함께 모든 역경 속에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외과 의사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싣는다.》 지난달 초순의 한 늦은 밤, 70대 초반의 남성 A 씨가 고려대 구로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A 씨는 평소 우울증과 불안증을 앓고 있었다. 그는 술을 먹은 상태에서 자해했다. 병원에 왔을 때는 장기 일부가 배 밖으로 나와 있었고 심장은 정지된 상태였다. 신속한 처치가 필요했다. 조준민 응급중환자외상외과 교수를 비롯해 의료진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몸 밖으로 나온 장기를 씻은 후 집어넣었다. 동시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떨어진 혈압을 끌어올렸다. 이어 의료진 10여 명이 수술에 돌입했다. 수술은 2시간여 만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A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후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다. 덕분에 불안감이나 우울감이 많이 사라졌다. 며칠 전, 조 교수는 외래 진료차 병원을 방문한 A 씨와 우연히 만났다. A 씨는 “감사하다”고 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조 교수는 자신이 응급중환자외상외과 의사라는 사실이 뿌듯했다. ●24시간 비상 근무하는 의사들 긴박한 응급 상황은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중증외상 환자를 연중무휴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 서울의 경우 고려대 구로병원과 안암병원, 서울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 4곳이 중증외상최종치료센터로 지정돼 운영 중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중증외상최종치료센터는 외과 파트, 정형외과 파트, 신경외과 파트 등 14명의 교수로 구성돼 있다. 간호사와 수술보조 인력을 합치면 30명으로 늘어난다. 조 교수가 센터장을 맡고 있다. 환자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시급한 치료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당장 수술에 돌입할 수 있도록 외과 파트 교수 1명 이상이 24시간 대기한다. 외과 파트는 응급중환자외상외과, 외과, 흉부외과의 교수들로 구성돼 있다. 모든 교수가 한 달에 10일 정도는 24시간 당직을 서야 한다. 이렇게 하고도 손이 부족하면 집에서 잠을 자다가도 뛰쳐나온다. 이처럼 중증외상 분야는 팀워크가 무척 중요하다.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다. 센터의 최고 연장자인 오종건 정형외과 교수는 “고려대 구로병원 중증외상최종치료센터의 가장 큰 강점이 바로 팀워크”라고 했다. 오 교수는 이어 “실제로 외과 팀과 정형외과 팀의 협력이 잘 되지 않아 센터 문을 닫은 병원도 있다”고 말했다. ●중증외상, 종합적 접근 필요 70대 후반의 남성 B 씨는 얼마 전 자전거를 타던 중 레미콘 차량과 충돌했다. 넘어지면서 레미콘 차량에 깔렸다. 이 사고로 양쪽 다리뼈가 크게 부러졌다. 게다가 피를 너무 많이 흘리는 바람에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구급대원이 도착했을 때 B 씨의 심장은 멎어 있었다. 구급대원이 급히 심폐소생술을 시행했고, 가늘게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려대 구로병원에 도착할 무렵 다시 심장이 멎었다. 중증외상 의료진은 치료 계획을 얼른 짰다. 다리뼈 수술도 필요했지만 우선 심장부터 살려야 했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다시 심장이 멎지 않게 하려면 안정적으로 혈액을 공급해야 한다. 적혈구, 혈소판, 혈장을 각각 9L씩 번갈아 수혈했다. 심장이 제대로 돌아가고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자 혈압도 올라갔다. 비로소 다리뼈 수술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되자 정형외과 교수가 투입돼 수술을 시행했다. 수술을 끝낸 B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50대 C 씨는 공사장에서 추락했다. 약간의 뇌출혈, 가슴 골절, 기흉, 다리 골절이 확인됐다. 부러진 다리뼈는 몸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 경우에도 치료 계획이 필요하다. 뇌출혈은 심하지 않아 수술을 미루기로 했다. 게다가 호흡이 불안한 상황에서 뇌수술을 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일단 가슴에 관을 삽입해 호흡부터 안정시켰다. 이어 몸 밖으로 튀어나온 다리뼈 수술을 했다. 그러면서 뇌의 상태를 관찰했다. 뇌출혈은 멈췄다. 수술하지 않은 채로 15일을 기다렸다. 그동안 C 씨의 의식이 돌아왔다. C 씨는 무사히 퇴원했다. 중증외상 환자의 경우 이처럼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조 교수는 “중증외상 치료를 제대로 하려면 수술 외에도 치료 우선순위를 정하고 체계적으로 협진하는 등의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이런 시스템을 일찍 도입한 덕분에 중증외상 환자들의 사망률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중증외상 70%는 정형외과 수술 동반 중증외상 환자 중에는 특히 골절 사고가 많다. 이 때문에 심정지나 심각한 출혈과 같은 문제가 있다면 그것부터 해결한 뒤 환자의 70% 정도는 정형외과적 수술을 거친다. 다만 심각한 상황이라면 곧바로 수술을 시행할 수도 있다. 50대 초반의 남성 D 씨는 자동차 사고를 당해 고려대 안산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고관절(엉덩관절)과 무릎뼈 골절이 확인됐다. 출혈이 심하지 않아 곧바로 수술을 시행해도 무방했다. 서동훈 정형외과 교수(진료부원장)가 집도했고, 수술은 3시간 반만에 끝났다. D 씨는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좋아졌다. 심각한 골절 사고는 노인들에서 많이 발생한다. 서 교수는 “고관절(엉덩관절) 골절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97%가 노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간혹 20대에서도 골절 사고로 병원을 찾는다. 현역 군인 E 씨는 훈련 도중에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대퇴골경부골절로 응급실로 실려 왔다. E 씨 수술 또한 서 교수가 집도했다. 수술 자체는 20여 분만에 끝났다. 하지만 바로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2년 정도 지난 후 괴사가 진행될 수도 있었다. 이 경우 나중에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신속한 처치 덕분에 위기를 피한 것이다. ●중증외상 정부 지원 늘려야 중증외상 분야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필수의료 영역이다. 하지만 늘 인력난에 허덕인다. 업무 강도가 세고, 고난도 수술이 많은 데다, 늘 대기하기 때문에 젊은 의사들이 피한다. 대우도 넉넉하지 않다. 의료행위에 대한 가격을 뜻하는 의료 수가가 다른 진료과와 큰 차이가 없다. 미국의 수술 수가와 비교하면 2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중증외상 분야의 의사들은 “생사의 기로에 있던 환자가 퇴원한 다음에 외래 진료에서 감사하다고 인사할 때 얻는 보람만으로는 중증외상 분야를 유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보건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실 중증외상외과를 지원해도 교육받을 만한 인프라도 부족하다. 그나마 고려대 구로병원이 운영하는 중증외상전문의수련센터가 도움이 되고 있다. 센터는 보건복지부가 2014년 전국 처음으로 지정했다. 현재 이런 센터는 고려대 구로병원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5곳이 운영되고 있다. 서울에는 고려대 구로병원이 유일하다. 오종건 정형외과 교수가 센터장을 맡고 있다. 센터가 지금까지 배출한 중증외상 전문의는 약 10명이다. 오 교수는 “중증외상 분야는 환자를 살리면 살릴수록 병원 적자는 커지는 구조다. 인력과 장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막대한 돈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충북에 사는 김용덕 씨(50)는 35세이던 2008년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다. 배 속에 묵직한 돌덩이가 들어앉은 것처럼 답답해졌다. 이런저런 스트레스 때문이라 생각했다. 속을 뻥 뚫어준다고 광고하는 약을 사 먹고, 열심히 자전거도 탔다. 체했나 싶어 손가락도 따 봤다. 한의원에서 침도 맞았다. 하지만 증세는 개선되지 않았다. 김 씨는 인근 대학병원을 찾았다. 확장성심근병증 진단이 떨어졌다. 의사는 혈관확장제와 이뇨제를 처방했다. 김 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병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2010년에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겼고, 심장 혈관을 확장하기 위한 스텐트 시술까지 받았다. 별 효과가 없었다. 심장 이식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김 씨는 고민 끝에 2011년 삼성서울병원으로 갔다. 상황이 더 악화할 경우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에게 수술을 받고 싶어서였다.●소화불량 증세 후 심근병증 진단김 씨가 진단받은 확장성심근병증은 심부전의 일종이다. 심부전은 심장에 문제가 생겨 각 조직으로 제대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는 병이다. 심장 근육에 문제가 생겼다면 심근병증(심근증)으로 진단한다. 확장성심근병증은 그중에서도 심장이 늘어나면서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흉통, 호흡곤란, 실신 등의 급성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심장의 펌프 기능이 약해졌기에 발목 부종도 생기고 피로감도 심해진다. 김 씨는 소화불량과 급체 증세를 느꼈다. 조 교수는 “이 또한 흔한 증세 중 하나”라고 했다. 소화를 잘해내려면 장에 많은 혈액이 공급돼야 한다. 하지만 심장 기능이 떨어지면 이게 제대로 되지 않는다. 소화불량이나 급체, 더부룩한 증세가 나타나는 게 이 때문이다. 조 교수는 “다만 이 증세만으로 심부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도 약물치료를 계속했다. 지금은 퇴임한 전은석 박표원 순환기내과 교수들이 담당했다. 다행히 이후 7년 동안 증세는 더 악화하지 않았다. 김 씨는 “약이 내 몸에 잘 맞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약물치료만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고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발병 11년 만에 심장 말기 상황 맞아 2019년부터 몸이 급격히 나빠졌다. 평상시에는 괜찮다가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2019년에만 6회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달려갔고, 입원도 1회 했다. 2020년에도 2회 입원했다. 서울까지 올라오지 못할 정도로 긴박할 때는 인근 응급실로 직행했다. 김 씨는 약물치료가 한계에 왔음을 직감했다. 조 교수 또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심장 말기 상황이 됐다는 신호”라고 했다. 조 교수는 심장 이식이 궁극적인 해법이라고 판단했다. 심장 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심장이 멈추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제세동기를 삽입했다. 이것은 컴퓨터 역할을 하는 장치다. 심정지 상태가 되면 자동으로 작동한다. 조 교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응급 처치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후로도 심장 기능은 더 악화했다. 숨이 차고 배 위쪽이 불편한 증세가 수시로 나타났다. 2021년 들어서도 7월과 8월에 잇달아 응급실로 달려와야 했다. 심장 이식만 무한정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조 교수는 인공심장(LVAD) 삽입 수술을 하기로 했다. 사실 인공심장 삽입 수술은 복잡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인공심장의 1대당 가격이 1억 원을 넘기 때문이다. 워낙 고가인 터라 이 수술이 꼭 필요한지, 정말로 시급한지 등을 인정받아야 건강보험 재정에서 95%를 지원한다. 8월 말 수술 허가가 떨어졌다. 수술은 잘 끝났다. 더불어 김 씨의 심장 이식 대기 순위도 올라갔다. 보통 인공심장을 삽입하면 앞으로는 더 시도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인정돼 이식 대기 순위가 올라간다. 현재 국내에서는 매년 170여 건의 심장 이식을 시행한다. 장기 이식 적합성, 면역 문제, 시급성 등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결정한다.●인공심장 수술 후 14개월 만에 심장 이식인공심장 삽입 수술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병원에서 뇌사자가 발생했다. 그의 심장이 김 씨에게 적합한 것으로 판정났다. 삼성서울병원 장기 적출팀이 심장을 공수하러 간 사이에 조 교수는 이식 수술을 준비했다. 장기가 도착하면 곧바로 이식하기 위해 김 씨의 가슴을 열고 기다렸다. 돌발 상황이 생겼다. 기증자의 심장이 갑자기 정지한 것이다. 조 교수는 다시 김 씨의 가슴을 닫아야 했다. 조 교수는 “의사 생활 하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라 무척 당황했다”고 말했다. 마취에서 깨어난 김 씨도 실망한 눈치였다. 그래도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식이 불발된 게 다행이었다. 건강하지 않은 기증자의 심장을 그대로 이식했을 경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결실로 이어졌다. 인공심장을 달고 14개월이 지났을 무렵, 마침내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무사히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김 씨는 새 심장을 얻었다. 회복 과정은 힘겨웠다. 초기에는 심한 섬망 증세가 나타났다. 김 씨는 “칼을 들고 누군가와 싸우는 환각을 많이 봤다”고 했다. 의료진은 김 씨를 꽁꽁 묶어야 했다. 그대로 두면 주변 사람은 물론이고 김 씨 자신까지 다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조 교수는 “심장 이식 수술 후에 섬망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이 꽤 많다. 이는 두려움의 표출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된다”고 말했다. 이게 마지막 고비였다. 김 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으로 돌아왔고, 마침내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심장병 진단을 받고 15년 만에 완치한 것이다. 면역억제제를 쓰느라 손발에 힘이 빠지고 떨리는 부작용이 있지만 대체로 건강하다. 면역억제제 용량도 점점 줄이고 있어 이 부작용도 곧 사라질 거라고 조 교수는 말했다.●가족의 헌신-의료진 신뢰가 투병 비결김 씨는 “아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아내 황옥주 씨(48)는 섬망 증세를 보이는 남편이 걱정돼 지하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에서 잠을 자며 병 수발을 했다. 김 씨는 의료진의 헌신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 씨는 “인공심장 삽입 수술을 받았을 무렵부터 의료진이나 주변 환자들 모두가 가족처럼 여겨졌다”고 말했다. 같은 병을 가진 다른 환자들과의 소통도 큰 희망이 됐다. 조 교수는 심장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500여 명인데,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요즘 김 씨는 제2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자전거를 다시 타고 있다. 다만 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 1회 주행거리는 종전의 200km에서 30∼50km로 줄였다. 주행속도와 시간도 종전보다는 많이 줄어 3∼4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도 점차 속도가 붙고 있다고 한다. 이와 별도로 김 씨는 퇴원하기 전에 30개 정도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이 중 자전거 타기와 여행, 맛집에서 낮술 먹기 등 일부는 이미 이행했다. 아직 △넉넉히 책 읽기 △찻집에서 쌍화차 마시면서 수다 떨기는 시도하지 못했단다. 조 교수는 “김 씨의 이런 점을 다른 환자들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긍정적 태도가 병을 떨치는 데 무척 중요하다는 것. 반대로 우울하거나 두려움이 강하면 결과도 좋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조 교수는 환자들에게 “수술이 끝나고 퇴원하면 무엇을 하며 삶을 즐길 것이냐를 생각하시라”고 권한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충북에 사는 김용덕 씨(50)는 35세이던 2008년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다. 뱃속에 묵직한 돌덩이가 들어앉은 것처럼 답답해졌다. 이런저런 스트레스 때문이라 생각했다. 속을 뻥 뚫어준다고 광고하는 약을 사 먹고, 열심히 자전거도 탔다. 체했나 싶어 손가락도 따 봤다. 한의원에서 침도 맞았다. 하지만 증세는 개선되지 않았다. 김 씨는 인근 대학병원을 찾았다. 확장성심근병증 진단이 떨어졌다. 의사는 혈관확장제와 이뇨제를 처방했다. 김 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 병의 심각성을 미처 알지 못했다.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2010년에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겼고, 심장 혈관을 확장하기 위한 스텐트 시술까지 받았다. 별 효과가 없었다. 심장 이식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김 씨는 고민 끝에 2011년 삼성서울병원으로 갔다. 상황이 더 악화할 경우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에게 수술을 받고 싶어서였다. ●소화불량 증세 후 심근병증 진단 김 씨가 진단받은 확장성심근병증은 심부전의 일종이다. 심부전은 심장에 문제가 생겨 각 조직으로 제대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는 병이다. 심장 근육에 문제가 생겼다면 심근병증(심근증)으로 진단한다. 확장성심근병증은 그중에서도 심장이 늘어나면서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흉통, 호흡곤란, 실신 등의 급성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심장의 펌프 기능이 약해졌기에 발목부종도 생기고 피로감도 심해진다. 김 씨는 소화불량과 급체 증세를 느꼈다. 조 교수는 “이 또한 흔한 증세 중 하나”라고 했다. 소화를 잘 해내려면 장에 많은 혈액이 공급돼야 한다. 하지만 심장 기능이 떨어지면 이게 제대로 되지 않는다. 소화불량이나 급체, 더부룩한 증세가 나타나는 게 이 때문이다. 조 교수는 “다만 이 증세만으로 심부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정밀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도 약물치료를 계속했다. 지금은 퇴임한 전은석·박표원 순환기내과 교수들이 담당했다. 다행히 이후 7년 동안 증세는 더 악화하지 않았다. 김 씨는 “약이 내 몸에 잘 맞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약물치료만으로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 않고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발병 11년 만에 심장 말기 상황 맞아 2019년부터 몸이 급격히 나빠졌다. 평상시에는 괜찮다가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2019년에만 6회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달려갔고, 입원도 1회 했다. 2020년에도 2회 입원했다. 서울까지 올라오지 못할 정도로 긴박할 때는 인근 응급실로 직행했다. 김 씨는 약물치료가 한계에 왔음을 직감했다. 조 교수 또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심장 말기 상황이 됐다는 신호”라고 했다. 조 교수는 심장 이식이 궁극적인 해법이라고 판단했다. 심장 이식 대기자에 명단을 올렸다. 이어 심장이 멈추는 비상상황에 대비해 제세동기를 삽입했다. 이것은 컴퓨터 역할을 하는 장치다. 심정지 상태가 되면 자동으로 작동한다. 조 교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응급 처치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후로도 심장 기능은 더 악화했다. 숨이 차고 배 위쪽이 불편한 증세가 수시로 나타났다. 2021년 들어서도 7월과 8월에 잇달아 응급실로 달려와야 했다. 심장 이식만 무한정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조 교수는 인공심장(LVAD) 삽입 수술을 하기로 했다. 사실 인공심장 삽입 수술은 복잡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인공심장의 1대당 가격이 1억 원을 넘기 때문이다. 워낙 고가인 터라 이 수술이 꼭 필요한지, 정말로 시급한지 등을 인정받아야 건강보험 재정에서 95%를 지원한다. 8월 말 수술 허가가 떨어졌다. 수술은 잘 끝났다. 더불어 김 씨의 심장 이식 대기 순위도 올라갔다. 보통 인공심장을 삽입하면 앞으로는 더 시도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 인정돼 이식 대기 순위가 올라간다. 현재 국내에서는 매년 170여 건의 심장 이식을 시행한다. 장기 이식 적합성, 면역 문제, 시급성 등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인공심장 수술 후 14개월 만에 심장 이식 인공심장 삽입 수술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병원에서 뇌사자가 발생했다. 그의 심장이 김 씨에게 적합한 것으로 판정났다. 삼성서울병원 장기 적출팀이 심장을 공수하러 간 사이에 조 교수는 이식 수술을 준비했다. 장기가 도착하면 곧바로 이식하기 위해 김 씨의 가슴을 열고 기다렸다. 돌발 상황이 생겼다. 기증자의 심장이 갑자기 정지한 것이다. 조 교수는 다시 김 씨의 가슴을 닫아야 했다. 조 교수는 “의사 생활하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라 무척 당황했다”고 말했다. 마취에서 깨어난 김 씨도 실망한 눈치였다. 그래도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식이 불발된 게 다행이었다. 건강하지 않은 기증자의 심장을 그대로 이식했을 경우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기 때문. 기다림은 결실로 이어졌다. 인공심장을 달고 14개월이 지났을 무렵, 마침내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무사히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김 씨는 새 심장을 얻었다. 회복 과정은 힘겨웠다. 초기에는 심한 섬망 증세가 나타났다. 김 씨는 “칼을 들고 누군가와 싸우는 환각을 많이 봤다”고 했다. 의료진은 김 씨를 꽁꽁 묶어야 했다. 그대로 두면 주변 사람은 물론 김 씨 자신까지 다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조 교수는 “심장 이식 수술 후에 섬망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이 꽤 많다. 이는 두려움의 표출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된다”고 말했다. 이게 마지막 고비였다. 김 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으로 돌아왔고, 마침내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심장병 진단을 받고 15년 만에 완치한 것이다. 면역억제제를 쓰느라 손발에 힘이 빠지고 떨리는 부작용이 있지만 대체로 건강하다. 면역억제제 용량도 점점 줄이고 있어. 이 부작용도 곧 사라질 거라고 조 교수는 말했다. ●가족의 헌신-의료진 신뢰가 투병 비결 김 씨는 “아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아내 황옥주 씨(48)는 섬망 증세를 보이는 남편이 걱정돼 지하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에서 잠을 자며 병 뒷바라지를 했다. 김 씨는 의료진의 헌신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김 씨는 “인공심장 삽입 수술을 받았을 무렵부터 의료진이나 환자들 모두가 가족처럼 여겨졌다”고 말했다. 또 같은 병을 가진 다른 환자들과의 소통도 큰 희망이 됐다. 조 교수는 심장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500여 명인데,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다. 요즘 김 씨는 제2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다. 예전부터 좋아했던 자전거를 다시 타고 있다. 다만 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아 1회 주행거리는 종전의 200㎞까지 30~50㎞로 줄였다. 주행시간도 종전보다는 많이 줄어 3~4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도 점차 속도가 붙고 있다고 한다. 이와 별도로 김 씨는 퇴원하기 전에 30개 정도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이 중 자전거 타기와 여행, 맛집에서 낮술 먹기 등 일부는 이미 이행했다. 아직 △넉넉히 책 읽기 △찻집에서 쌍화차 마시면서 수다 떨기는 시도하지 못했단다. 조 교수는 “김 씨의 이런 점을 다른 환자들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긍정적 태도가 병을 떨치는데 무척 중요하다는 것. 반대로 우울하거나 두려움이 강하면 결과도 좋지 않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조 교수 또한 환자들에게 “수술이 끝나고 퇴원하면 무엇을 하며 삶을 즐길 것이냐를 생각하시라”고 권한다. 김용덕 씨 심장이식까지의 투병일지2008년 -소화불량과 급체 증세 나타나 충북의 A 대학병원 방문 -확장성심근병증 진단. 약물치료 시작2010년 -서울의 B대학병원으로 전원. 스텐트 시술받아 -약물치료는 계속 받음2011년 -삼성서울병원으로 전원. 약물치료 재개 -이후 7년 동안 증세가 크게 악화하지 않음.2019년 -심장병 증세 악화. 6회 응급실행, 1회 입원2020년 -2회 입원. 심장 말기 상황. 심장 이식 대기 명단 올림 -비상상황 대비해 제세동기 삽입2021년 -인공심장(LVAD) 삽입 수술 시행2022년 -첫 번째 심장 이식은 기증자의 심장 정지로 실패 -11월, 두 번째 심장 이식에 성공. 15년 만의 완치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나이가 들면 근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일일까. 단순한 노화 현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다. 명백한 질병이다.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 근력,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 근감소증에 해당된다. 2016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처음 질병으로 인정했다. 국내에서는 2021년 질병 코드가 부여됐다. 근감소증은 고혈압, 당뇨 등 만성 질환이나 척추 협착증과 같은 퇴행성 질환의 영향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60세 이후 국내 근감소증 유병률은 남자 21.6%, 여자 30.7%다. 약 3명 중 1명꼴로 근감소증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김성환 중앙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노인 근감소증 환자가 주변에 있다면 특히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노인일수록 걷기가 힘들 만큼 일상생활이 어렵고, 낙상 골절도 자주 발생하며,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사망률이 높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근감소증-근력 상태 자가진단하기 근감소증은 노인만의 질병이 아니다. 국내 40,50대에서 근감소증 유병률은 남자 13.0%, 여자 21.7%다. 남자는 열 명 중 한 명 이상, 여자는 열 명 중 2명 이상이 근감소증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근감소증 자가진단을 해 보자. 김 교수는 △1초당 1m의 속도로 연이어 6m 이상 걸을 수 있는지 △12초 동안 의자에서 앉았다 일어나기를 5회 반복할 수 있는지 △(악력기가 있다면) 남자 28㎏, 여자 18㎏의 손아귀 힘을 낼 수 있는지를 측정하라고 했다. 기준치를 넘기지 못하면 근감소증이 거의 확실하다. 이 세 가지 검사에서 합격점을 받았다고 해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 김 교수는 추가로 두 가지 검사를 더 제시했다. △벽에 등을 대고 무릎을 굽힌 채 10초 이상 스쾃 자세 취하기 △벽에 손을 짚고 선 채로 발뒤꿈치를 들고 10초 이상 버티기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근감소증이 우려된다. 이 검사를 자신의 근력 상태를 확인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간단한 다섯 가지 운동 동작으로 판단할 수 있다. △벽에 등대고 20회 이상 스쾃 △서서 발뒤꿈치 들기 10초씩 20~30회 △30초 이상 플랭크 자세 유지하기 △20회 이상 팔굽혀펴기 △30회 이상 윗몸일으키기 중에서 어느 한 동작이라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근육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근육이 건강하다면 가능한 운동 범위는 어느 정도일까. 김 교수는 “팔굽혀펴기 30회, 윗몸일으키기 50회, 플랭크 1분 이상을 할 수 있다면 근육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근감소증 우려되면 운동강도 높여야 걷기는 건강 증진에 가장 좋은 운동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근감소증이 우려되는 사람에게는 별 효과를 보지 못할 수 있다. 산책하는 수준의 운동 강도로는 근육이 커질 수 없기 때문이다. 빨리 걸으면 도움이 될까. 김 교수는 “그 경우에도 근육에 부하가 걸리지 않기 때문에 근력을 키우는 데는 큰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걷기를 택하겠다면 계단 오르기가 좋다. 하지만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동행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계단 오르기 원리를 이용한 운동 기구인 스테퍼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일주일에 4일 이상 15~20분씩 스테퍼 위를 걸어주면 근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 물속에서 걷는 아쿠아로빅도 괜찮다. 이 경우 30분 이상 연속적으로 운동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자전거 타기를 권했다. 야외에서 자전거를 탄다면 야트막한 오르막을 반드시 올라야 한다. 이런 식으로 1주일에 4일 이상 20~30분씩 자전거를 타면 근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 다만 근감소증이 심한 노인들은 야외 자전거가 위험할 수 있어 실내 자전거로 대체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페달이 빡빡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도를 높여야 한다. 스쾃 또한 근력을 키우기에 좋다. 벽에 등을 대고 하더라도 노인이나 근감소증 환자들은 5회도 어려울 수 있다. 이를 서서히 10회까지 늘리도록 한다. 스쾃이 어렵다면 누워서 한 발 들기를 해도 좋다. 다리를 들고 10초 버티는 동작을 10회까지 하면 된다. 일주일에 4,5일은 해 주는 게 좋다. 이와 함께 서서 발뒤꿈치 드는 운동도 병행한다. 김 교수는 “6개월 정도면 근감소증이 꽤 개선된다. 반면 이 정도의 강도도 유지하지 못하면 관절도 굳고 근감소증도 악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근력 운동, 3회 세트가 효과적 근감소증을 예방하려면 충분히 근력 운동을 해 줘야 한다. 다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김 교수는 처음에는 헬스클럽에서 전문 트레이너에게 근력 운동법을 체계적으로 배울 것을 권했다. 특히 장비 사용법은 제대로 알아둬야 한다. 여러 장비에 골고루 손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필요한 장비를 골라 집중적으로 하는 게 좋다. 어떤 장비든 10~15회를 하고 나면 더 들지 못할 정도의 무게로 운동해야 한다. 이 무게로 10~15회를 한 뒤 쉬었다가 반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3세트를 채우는 게 가장 좋다. 김 교수는 “무턱대고 많이 하는 것도 좋지 않다. 휴식 시간에 근육에 영양이 공급되며 노폐물이 빠지기 때문에 중간에 반드시 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고무밴드를 활용할 수도 있다. 의자 다리와 발목에 밴드를 묶은 뒤 발을 들어 올리면 종아리 근육 강화에 좋다. 문고리에 밴드를 걸거나 발끝으로 밟은 뒤 팔로 잡아당기거나 끌어올리면 어깨 근육을 강화할 수 있다. 이 경우 팔을 지나치게 들어 올리면 어깨 관절이 손상될 수 있다. 지면과 수평이 되는 정도까지만 들어올리자. 자전거 타기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하는 방법이다. 일주일에 4일 이상 20~30분을 타면 좋다. 다만 운동 강도에 특히 신경써야 한다. 20분 동안 자전거를 탔을 때 허벅지가 뻐근한 느낌이 들 정도의 강도가 좋다. 김 교수는 “긴 시간을 낮은 속도로 타면 근지구력이 좋아지겠지만 근력이 약한 상태라면 먼저 근력을 올리고, 이후에 근지구력을 올리는 방향으로 운동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강한 강도로 20분씩 자전거를 타다가 점차 시간을 늘리라는 뜻이다. ● 단백질, 충분하게 섭취해야 근력 강화 근력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대체로 단백질 섭취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또한 근력 약화의 주된 원인 중 한다. 체내에 흡수된 단백질이 인체의 근육 조직을 만드는 단백질(근육 단백질)을 합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많이 먹어야 근육도 커진다는 뜻이다. 효과적으로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 김 교수는 “한 끼에 몰아서 먹기보다는 세 끼에 나눠 먹는 게 좋다”고 했다. 똑같은 양이라도 여러 번 나눠 먹을 때 근육 단백질이 더 많이 합성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끼니마다 25~30g의 단백질을 섭취할 것을 권했다. 보통 우유 800~1000mL, 콩 250~300g, 육류 100~200g 내외에 각각 25~30g의 단백질이 들어있다. 김 교수는 “닭가슴살 한 조각만이라도 꾸준히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음식섭취가 어렵다면 단백질 보충제, 그중에서도 아미노산 보충제라도 먹을 것을 김 교수는 권했다. 여러 임상시험 결과 일반 단백질 보충제보다 단백질의 구성 성분인 아미노산 보충제를 먹었을 때 근육 단백질 합성도 더 촉진되고 근감소증 개선 효과가 더 컸다는 것. 보충제는 운동을 병행할 때 근감소증 개선 효과가 더 크다. 또한 운동하고 난 직후에 먹는 게 좋다. 이와 함께 근육 합성에 방해가 되는 담배와 술은 멀리 해야 한다. 김 교수는 담배는 당장 끊고 술은 절주할 것을 권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경기 구리에서 축산업을 하는 정영필 씨(61)는 50대가 될 때까지만 해도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 무엇을 먹든 잘 소화해 냈고, 아침마다 화장실에도 꼬박꼬박 갔다.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2012년 하반기에 갑자기 소화불량 증세가 나타났다. 먹는 것도 시원찮았다. 체중도 3개월 사이에 7kg이 빠졌다. 큰 병에 걸린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그해 7월, 평생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동네병원 의사는 위암이라고 했다. 정 씨는 “하늘이 노랗게 변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정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 16cm 초대형 위암 3기 말 진단급히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겼다. 검사 결과 위암 3기 말, 혹은 4기로 추정됐다. 종양의 크기는 16cm로, 의료진마저 깜짝 놀랄 정도로 컸다. 암 덩어리는 위장의 70% 정도를 덮었으며 주변 장기인 간, 췌장, 횡격막, 식도까지 침범한 상태였다. 그나마 전이가 되지 않은 점은 다행이었다. 다만 왼쪽 콩팥 위쪽의 부신에서 암의 전이가 의심됐다. 추가로 양전자단층촬영(PET)-CT 검사를 진행했고, 전이가 없음을 확인했다. 정 씨는 최종적으로 진행성 위암 3기 말로 진단됐다. 항암치료를 먼저 진행해 종양을 줄인 후 수술할 것이냐, 곧바로 수술을 시행할 것이냐를 놓고 의료진 사이에 토론이 벌어졌다. 김범수 위장관외과 교수는 수술이 옳다 여겼다. 암 덩어리가 크지만 흩어져 있지 않아 뿌리째 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항암치료를 먼저 하면 종양이 여러 덩이로 쪼개질 수도 있고, 그때는 통째로 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수술이 100% 성공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었다. 절제해야 할 장기들이 너무 많았다. 수술 시간도 꽤 길어질 것이고, 환자의 체력이 수술을 견뎌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수술 후 장기 절제 합병증 우려도 컸다. 그래도 수술이 최선이었다. 김 교수는 정 씨에게 수술 과정과 모든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정 씨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극도로 어려운 수술인데도 해 준다는 게 오히려 감사했다”고 말했다. ● 수술 후 1년 만에 암 전이2012년 8월, 정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위암의 경우 대체로 복강경 수술을 많이 한다. 하지만 정 씨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다. 종양이 워낙 큰 데다 주변 장기까지 침투해 있었기에 직접 배를 열어야 했다. 수술은 김 교수가 집도했다. 위는 통째로 들어냈다. 간, 췌장, 비장, 왼쪽 부신, 식도의 일부까지 절제했다. 이런 수술의 경우 보통 7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실력파로 소문이 나 있는 김 교수도 3시간 정도 걸렸다. 김 교수는 “지금껏 했던 모든 수술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정 씨는 약 40일 동안 입원했다. 회복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퇴원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난 10월 말, 정 씨는 항암치료에 돌입했다. 류민희 종양내과 교수가 담당했다. 류 교수는 1년 일정으로 항암치료를 한 뒤 이후 3개월마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통해 경과를 확인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약 5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정 씨는 6차 항암치료를 끝냈다. 결과를 보기 위해 2013년 4월 CT 검사를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제거한 부신 부위, 대동맥과 왼쪽 콩팥 사이에서 혹이 발견된 것이다. 혹의 크기는 7mm 정도. 너무 작아서 아직 암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경과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7월에 다시 CT 검사를 했다. 혹은 21mm로 커져 있었다. 류 교수는 위장이 아닌 다른 장기가 있던 부위에 암이 발생했기에 전이된 것으로 판단했다. 진행성 위암에서 전이성 위암으로 병명이 바뀐 것. 다행히 전이된 다른 부위는 없었다. 전이성 위암의 경우 다시 배를 여는 수술을 하지는 않는다. 영상장비를 통해 암의 재발과 전이를 확인하면 방사선-항암치료를 하는 게 표준 치료법이다. 암과의 두 번째 싸움이 시작됐다.● 수술 5년 만에 암 완전히 사라져먼저 집중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5주 동안 주말 이틀을 빼고 매일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그 결과 종양은 절반 크기로 작아졌다. 다른 부위로 추가 전이된 것 같지도 않았다. 류 교수는 암이 어느 정도 조절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추가 조치 없이 경과를 관찰하기로 했다. 다행히 3개월, 6개월이 지나도 종양은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 4월 검사에서 종양이 다시 약간 커진 게 확인됐다. 종양이 다시 자라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은 현실이 돼 버렸다. 5월 다시 검사해 보니 또 커졌다. 류 교수는 항암제 내성 등을 우려해 다른 항암제로 바꿔 이틀씩 2주 간격으로 12주 동안 항암치료를 했다. 이후 종양은 성장을 멈췄다. 2014년 12월, 류 교수는 다시 항암제를 바꿨다. 종전 치료제보다 효과가 좋은 면역항암제였다. 이 면역항암제를 2주 주기로 장기간 투여했다. 그로부터 2년 6개월이 지난 2017년 7월, CT 검사에서 암 덩어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류 교수는 완치를 확신했다. 하지만 혹시 암이 남아 있을지 몰라 항암치료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2020년 3월, 류 교수는 항암치료를 끝냈다. 미세한 암도 보이지 않고 전이 확률도 낮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아직 완치는 아니다. 완치 판정은 항암치료를 끝내고 5년이 지나는 2025년 3월 내린다. 정 씨는 3개월, 6개월 주기로 검사를 하고 있다.● 강한 투병 의지가 완치 원동력정 씨는 11년째 암과 싸우고 있다. 여러 장기를 절제하는 힘겨운 수술을 이겨냈다. 암이 다시 생겨났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집중 방사선치료는 물론 6년 넘게 항암치료를 견뎌냈다. 그 결과 완치를 앞두고 있다. 성공적인 투병은 정 씨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1년 동안 정 씨는 치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의료진을 전폭적으로 믿었다. 김 교수와 류 교수도 “정 씨의 투병 의지가 상당히 강했기에 좋은 결과를 본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정 씨는 11년 전까지만 해도 운동과 담을 쌓았었다. 암 수술이 끝나고 난 후부터는 매일 한 시간씩 걸었다. 이 걷기 운동은 정 씨의 건강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환자들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힘들어한다. 정 씨는 이를 이겨내기 위해 식사를 반드시 챙겨 먹었다. 정 씨는 “뭐든지 먹으려고 했는데, 그 때문인지 치료가 수월했다”며 웃었다. 위장이 없으니 음식을 먹기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 숟가락을 넘기는 것도 힘들었다. 위장을 절제한 대부분의 환자는 3개월 동안 미음을 먹다가 이후 반 그릇으로 늘리며, 1년 후에야 3분의 2그릇까지 늘린다. 정 씨는 이 용량도 일찍 늘렸다. 지금은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물론 오랜 치료의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간간이 구역질 증세가 나타난다. 손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기도 한다. 모두 항암제 부작용이다. 정 씨는 이 또한 웃어넘긴다. 게다가 수술 후에 사용하는 항암제의 용량이 비교적 적은 편이라 부작용이 덜한 편이다. 김 교수는 “정 씨는 성공적인 케이스”라면서도 “더 좋은 방법은 미리 대처하는 것”이라고 했다. 건강검진을 빠뜨리지 말라는 뜻이다. 김 교수는 “조기 진단만 되면 수술이 수월하기에 암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2년에 한 번은 위내시경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류 교수는 과학적 치료를 믿을 것을 환자들에게 당부했다.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요법 혹은 민간요법을 따르는 환자들이 간혹 있는데,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 정 씨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정 씨는 “의사를 믿고 따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게 치료에 더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경기 구리에서 축산업을 하는 정영필 씨(61)는 50대가 될 때까지만 해도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 무엇을 먹든 잘 소화해 냈고, 아침마다 화장실에도 꼬박꼬박 갔다.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2012년 하반기에 갑자기 소화불량 증세가 나타났다. 먹는 것도 시원찮았다. 체중도 3개월 사이에 7㎏이 빠졌다. 큰 병에 걸린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그해 7월, 평생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동네병원 의사는 위암이라고 했다. 정 씨는 ”하늘이 노랗게 변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정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16㎝ 초대형 위암 3기 말 진단 급히 서울아산병원으로 옮겼다. 검사 결과 위암 3기 말, 혹은 4기로 추정됐다. 암의 크기는 16㎝로, 의료진마저 깜짝 놀랄 정도로 컸다. 암 덩어리는 위장의 70% 정도를 덮었으며 주변 장기인 간, 췌장, 횡격막, 식도까지 침범한 상태였다. 그나마 전이가 되지 않은 점은 다행이었다. 다만 왼쪽 콩팥 위쪽의 부신에서 암의 전이가 의심됐다. 추가로 PET CT(양전자방출단층) 검사를 진행했고, 전이가 없음을 확인했다. 정 씨는 최종적으로 진행성 위암 3기 말로 진단됐다. 항암치료를 먼저 진행해 종양을 줄인 후 수술할 것이냐, 곧바로 수술을 시행할 것이냐를 놓고 의료진 사이에 토론이 벌어졌다. 김범수 위장관외과 교수는 수술이 옳다 여겼다. 암 덩어리가 크지만 흩어져 있지 않아 뿌리째 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항암치료를 먼저 하면 암이 여러 덩이로 쪼개질 수도 있고, 그때는 통째로 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수술이 100% 성공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었다. 절제해야 할 장기들이 너무 많았다. 수술 시간도 꽤 길어질 것이고, 환자의 체력이 수술을 견뎌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수술 후 장기 절제 합병증 우려도 컸다. 그래도 수술이 최선이었다. 김 교수는 정 씨에게 수술 과정과 모든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정 씨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극도로 어려운 수술인데도 해 준다는 게 오히려 감사했다”고 말했다. ●수술 후 1년 만에 암 전이 2012년 8월, 정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위암의 경우 대체로 복강경 수술을 많이 한다. 하지만 정 씨는 조금 다른 상황이었다. 암이 워낙 큰 데다 주변 장기까지 침투해 있었기에 직접 배를 열어야 했다. 수술은 김 교수가 집도했다. 위는 통째로 들어냈다. 간, 췌장, 비장, 왼쪽 부신, 식도의 일부까지 절제했다. 이런 수술의 경우 보통 7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실력파로 소문이 나 있는 김 교수도 3시간 정도 걸렸다. 김 교수는 “지금껏 했던 모든 수술 중 세 번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정 씨는 약 40일 동안 입원했다. 회복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퇴원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난 10월 말, 정 씨는 항암치료에 돌입했다. 류민희 종양내과 교수가 담당했다. 류 교수는 1년 일정으로 항암치료를 한 뒤 이후 3개월마다 컴퓨터단층(CT)검사를 통해 경과를 확인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약 5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정 씨는 6차 항암치료를 끝냈다. 결과를 보기 위해 2013년 4월 CT 검사를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제거한 부신 부위, 대동맥과 왼쪽 콩팥 사이에서 혹이 발견된 것이다. 혹의 크기는 7㎜ 정도. 너무 작아서 아직 암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경과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7월에 다시 CT 검사를 했다. 혹은 21㎜로 커져 있었다. 류 교수는 위장이 아닌 다른 장기가 있던 부위에 암이 발생했기에 전이된 것으로 판단했다. 진행성 위암에서 전이성 위암으로 병명이 바뀐 것. 다행히 전이된 다른 부위는 없었다. 전이성 위암의 경우 다시 배를 여는 수술을 하지는 않는다. 영상 장비를 통해 암의 재발과 전이를 확인하면 방사선-항암치료를 하는 게 표준 치료법이다. 암과의 두 번째 싸움이 시작됐다. ●수술 5년 만에 암 완전히 사라져 먼저 집중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5주 동안 주말 이틀을 빼고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 결과 암은 절반 크기로 작아졌다. 다른 부위로 추가 전이된 것 같지도 않았다. 류 교수는 암이 어느 정도 조절되는 것으로 판단했다. 추가 조치 없이 경과를 관찰하기로 했다. 다행히 3개월, 6개월이 지나도 암은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 4월 검사에서 암이 다시 약간 커진 게 확인됐다. 암이 다시 자라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은 현실이 돼 버렸다. 5월 다시 검사해 보니 암은 또 커졌다. 류 교수는 항암제 내성 등을 우려해 다른 항암제로 바꿔 이틀씩 2주 간격으로 12주 동안 항암치료를 했다. 이후 암은 성장을 멈췄다. 2014년 12월, 류 교수는 다시 항암제를 바꿨다. 종전 치료제보다 효과가 좋은 면역항암제였다. 이 면역항암제를 2주 주기로 장기간 투여했다. 그로부터 2년 6개월이 지난 2017년 7월, CT 검사에서 암 덩어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류 교수는 완치를 확신했다. 하지만 혹시 암이 남아있을지 몰라 항암치료를 중단하지는 않았다. 2020년 3월, 류 교수는 항암치료를 끝냈다. 미세한 암도 보이지 않고 전이 확률도 낮다는 판단에서다. 물론 아직 완치는 아니다. 완치 판정은 항암치료를 끝내고 5년이 지나는 2025년 3월 내린다. 정 씨는 3개월, 6개월 주기로 검사를 하고 있다. ●강한 투병 의지가 완치 원동력 정 씨는 11년째 암과 싸우고 있다. 여러 장기를 절제하는 힘겨운 수술을 이겨냈다. 암이 다시 생겨났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집중 방사선치료는 물론 6년 넘게 항암치료를 견뎌냈다. 그 결과 완치를 앞두고 있다. 성공적인 투병은 정 씨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1년 동안 정 씨는 치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의료진을 전폭적으로 믿었다. 김 교수와 류 교수도 “정 씨의 투병 의지가 상당히 강했기에 좋은 결과를 본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정 씨는 11년 전까지만 해도 운동과 담을 쌓았었다. 암 수술이 끝나고 난 후부터는 매일 한 시간씩 걸었다. 이 걷기 운동은 정 씨의 건강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환자들이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힘들어한다. 정 씨는 이를 이겨내기 위해 식사를 반드시 챙겨 먹었다. 정 씨는 “뭐든지 먹으려고 했는데, 그 때문인지 치료가 수월했다”며 웃었다. 위장이 없으니 음식을 먹기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 숟가락을 넘기는 것도 힘들었다. 위장을 절제한 대부분 환자는 3개월 동안 미음을 먹다가 이후 반 그릇으로 늘리며, 1년 후에야 3분의 2그릇까지 늘린다. 정 씨는 이 용량도 일찍 늘렸다. 지금은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물론 오랜 치료의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간간이 구역질 증세가 나타난다. 손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기도 한다. 모두 항암제 부작용이다. 정 씨는 이 또한 웃어넘긴다. 게다가 수술 후에 사용하는 항암제의 용량이 비교적 적은 편이라 부작용이 덜한 편이다. 김 교수는 “정 씨는 성공적인 케이스”라면서도 “더 좋은 방법은 미리 대처하는 것”이라고 했다. 건강검진을 빠뜨리지 말라는 뜻이다. 김 교수는 “조기 진단만 되면 수술이 수월하기에 암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2년에 한 번은 위내시경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류 교수는 과학적 치료를 믿을 것을 환자들에게 당부했다.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요법 혹은 민간요법을 따르는 환자들이 간혹 있는데,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다는 것. 정 씨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정 씨는 “의사를 믿고 따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게 치료에 더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영필 씨의 투병일지2012년 -7월, 소화불량-체중감소 증세, 동네 병원 건강검진에서 위암 발견 -8월, 서울아산병원 전원 후 진행성 위암 3기 말 판정. -8월 말, 위 전체, 간 췌장 비장 부신 식도 부분 절제 수술 시행. -10월 말, 항암치료 시작2013년 -4월, 6차 항암치료 후 부신 부위에 7㎜ 크기 혹 발견 -7월, 암 재발 확인, 전이성 위암으로 전환. -7~8월, 집중 방사선 치료 진행. 종양 절반으로 축소.2014년 -4월. 종양이 다시 커지기 시작함. -5~11월, 2주 간격으로 12회 항암치료. 종양 성장 멈춤. -12월, 면역항암제로 전환, 2주 주기로 치료. 2017년 -7월, CT 검사에서 종양 완전히 소멸 확인. 2020년 -3월, 항암치료 종료. 현재까지 추적 관찰 중.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40대 초반의 A 씨는 올 3월 딸과 함께 쉼터에 입소했다. 남편은 10여 년 동안 A 씨를 폭행했다. 보다 못 한 딸이 A 씨에게 도망가라고 했지만 혼자 그럴 수는 없었다. A 씨는 용기를 내 112에 직접 전화를 걸어 남편을 신고했다. 이후 1366을 통해 딸과 함께 해당 쉼터에 입소했다. A 씨는 자신의 몸에 남은 폭력의 흔적보다 아빠의 폭력을 수차례 목격했던 딸의 트라우마가 더 걱정이다. A 씨의 딸은 성인 남자만 봐도 숨는 버릇이 생겼다. 이런 사례가 적잖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여성 자녀의 65.5%가 폭력 현장을 목격한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동은 우울하거나 공격성을 띠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어려워할 수 있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동은 대부분 피해 여성과 함께 보호시설에 입소한다. 하지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심리치료 등의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은 2016년부터 가정폭력 피해아동 가정을 대상으로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약 17억 원을 투입해 1419명의 피해자를 도왔다. 올해에는 2억 원을 투입해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와 함께 66개 쉼터에 입소한 가정폭력 피해아동 가정을 지원하고 있다. 곽혜전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상임대표는 “NGO의 지원으로 피해자의 자녀들에게 미술치료나 놀이치료 등을 진행하는 등 트라우마 치료를 돕고 있다”고 밝혔다. 김순이 월드비전 국내사업본부장은 “가정폭력 노출 아동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에는 ‘가정폭력 피해아동 가정 자립지원 사업 성과연구 및 정책 포럼’도 열었다. 이 포럼의 영향은 컸다. 여가부 주도로 1366 여성긴급전화를 아동학대 신고의무기관에 포함시키기 위한 법률 개정 움직임이 감지됐다. 경찰청은 가정폭력 신고 현장에서 아동학대 피해에 적극 대응하라고 강조하는 지침을 시도 경찰위원회에 내렸다. 하지만 가정폭력 피해아동에 대한 지원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이를테면 가정폭력 피해 아동에 대한 심리치료가 최대 10회로 제한돼 있어 더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은 “가정폭력 노출 아동에 대한 지원 확대를 위해 여가부 예산 확대 및 관계 부처 협력 강화를 요구하는 등 그 아이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올 3월 서울 성동구는 만 39세 이하의 탈모증 환자에게 치료비로 연간 20만 원까지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시작으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달아 ‘청년 탈모’ 치료비 지원 사업을 내놓고 있다. 탈모증 치료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미용 치료’로 분류돼 있어서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다. 난치병 지원을 더 늘려야 할 마당에 미용 치료비를 지원하는 건 ‘혈세 낭비’라는 것이다. 논란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탈모증 환자의 고통은 작지 않다. 우울증에 대인 기피증까지 유발한다. 치료해야 할 질병이란 점은 확실하다. 현재 국내 탈모 환자는 수백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35만 명만이 지난해 탈모증 치료를 받았다. 대부분이 경제적 부담, 혹은 다른 이유로 인해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셈이다. 권오상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탈모증은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며 일찍 치료할수록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탈모증, 20대 초반부터 시작 탈모는 크게 △자가면역질환인 원형탈모증 △남성호르몬(안드로겐)이 원인인 남성형탈모증과 여성형탈모증으로 나눈다. 원형탈모증은 면역력이 가장 강한 20대와 30대에서 주로 발생한다. 동그랗게 모발이 빠진다. 머리에 주로 생기지만 눈썹, 수염에도 발생한다.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할 수 있다. 100명 중 2명꼴로 평생 한 번은 겪는 질환이다. 뚜렷한 약이 없었는데 최근 치료 효과를 높인 글로벌 신약이 개발돼 국내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보통 ‘탈모’라고 하면 남성형탈모증과 여성형탈모증이다. 전체 탈모증 환자의 80~90%가 이 유형이다. 남자는 먼저 앞머리가 M자 모양으로 빠진다. 이어 정수리 부위가 빠지고, 두 탈모 부위가 만나 대머리 형태가 된다. 여자는 이마 부위가 아닌 정수리 부위 모발이 가늘어지면서 빠지는 경우가 많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대사 과정에서 발생한 DHT라는 호르몬이 탈모증을 유발한다. 서양에서는 50대가 될 때까지 남자의 50%, 여자의 25%가 이 탈모증을 겪는다. 한국은 남자가 25%, 여자가 12% 정도로, 서양의 절반 정도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50대 이후 탈모증이 늘어나면서 서양과 비슷해진다. 70대가 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체 인구의 70%가 탈모증을 겪는다. 탈모증은 우성 유전 질환이다. 부모 중 한쪽만 탈모증이 있어도 자식에게 탈모증이 일어날 수 있다. 부모가 모두 탈모증이라면 자식의 탈모증이 더 이른 시기에 시작되거나 진행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탈모는 사춘기가 시작되고 10년 정도 지난 시점에 발생한다. 최근 사춘기가 빨라지면서 탈모의 시작 속도도 앞당겨졌다.●채소와 단백질 섭취, 탈모 막는다 탈모를 예방하려면 채소를 많이 먹는 게 좋다. 안토시아닌을 비롯해 채소에 들어있는 항산화 성분이 탈모를 막는 역할을 한다. 브로콜리, 콩, 깨, 토마토, 카레 등이 이런 음식에 해당한다. 다만 당도가 높은 과일은 식후 혈당을 급격하게 높여 탈모를 유발할 수 있으니 적당히 먹도록 한다. 기름진 고지방 식품은 줄여야 한다. 과잉 섭취한 포화지방은 머리카락의 뿌리를 감싸고 있는 모낭에 들러붙는다. 이로 인해 모낭의 기능이 약해지고 탈모증이 일어난다. 탄수화물도 줄이는 게 좋다. 탄수화물이 과하면 간에서 지방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최근 젊은 사람들 사이에 유행인 ‘맛있는 빵집 순례’가 탈모증에는 부정적일 수 있다”고 했다. 탄수화물과 포화지방인 버터를 한꺼번에 많이 먹기 때문. 지나치게 채식 위주로 식단을 짜는 것도 좋지 않다. 머리카락은 케라틴이라는 단백질로 구성됐다. 단백질 섭취가 적으면 모발의 품질이 나빠질 수 있다. 음식을 충분히 먹지 않고 다이어트를 할 때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권 교수는 “채식주의자들 중에 탈모가 많은 게 단백질 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운동 부족과 과체중이 탈모를 유발할 수도 있다. 과식을 피하고 적절한 운동을 해야 한다. 두피 관리도 필요하다. 30대까지만 해도 피지도 왕성하게 분비되기 때문에 매일 2회 정도 머리를 감는다. 하지만 피부가 건조해지는 40대 이후에는 일주일에 4회꼴로 머리를 감고, 두피 보습제를 쓰는 게 탈모 예방에 도움을 준다. 다만 미세먼지가 많은 날에는 외출한 후에 반드시 머리를 감는다. 두피를 가볍게 두들기거나 마사지로 자극을 주는 것도 탈모 예방 효과가 있다. 이때 손톱으로 두피를 긁어서는 안 된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들기거나 끝이 뭉툭한 빗을 이용해 전체적으로 빗질해주는 게 좋다. ●탈모 초기 증세 잘 살펴야 탈모가 시작됐다면 이른 대처가 필요하다. 우선 초기 증세를 잘 살펴야 한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지고 색이 옅어졌다면 탈모증의 초기 증세일 가능성이 있다. 보통 탈모가 시작되면 모낭은 작아지고 피지선이 커진다. 따라서 피지가 더 많이 분비되고, 머리카락에는 더 많은 기름기가 느껴진다. 뻣뻣하던 머리카락이 최근 부드러워져 빗질이 쉬워졌다면 이 또한 탈모의 초기 증세일 수 있다. 거울을 보면서 머리 형태를 관찰하자. 남성형탈모증의 대표적 초기 증세인 M자형 탈모를 파악할 수 있다. 앞머리와 정수리, 뒷머리의 사진을 찍어놓고 모발의 굵기와 밀도도 비교하자. 앞머리와 정수리의 모발이 뒷머리의 모발보다 가늘고 밀도가 낮다면 탈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머리를 감을 때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다고 해서 탈모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매일 50~100개의 머리카락이 빠진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잠을 제대로 못 자면 더 많은 머리카락이 빠진다. 다만 이런 상태가 오래 이어진다면 탈모증으로 연결될 수 있다.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릴 때도 비슷하다. 바닥에 머리카락이 쌓였다고 해서 탈모는 아니다. 뜨거운 열에 머리카락이 부러진 것이다. ●잘 치료하면 6개월 후 모발 15% 증가 사람의 모발은 자라다가(성장기), 쉬기를(휴지기) 반복한다. 휴지기를 거친 머리카락은 모낭에서 빠져나가며, 그 자리에서 다시 모발이 자라난다. 정상적이라면 모발의 90%는 성장기, 나머지 10%는 휴지기에 있다. 휴지기일 때 모낭의 1% 정도에서 머리카락이 빠진다. 대체로 하루 50~100개다. 탈모가 진행되면 휴지기 비율이 20~30%로 늘어나면서 하루 최대 300개 정도의 머리카락이 빠진다. 탈모 치료제로는 먹는 약과 바르는 약, 두 종류가 있다. 미녹시딜 성분의 바르는 약은 모낭 주변 혈관을 넓히고 모낭을 직접 자극한다. 이를 통해 휴지기에서 성장기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먹는 약은 탈모를 유발하는 호르몬(DHT)을 만드는 효소를 억제하는 원리다. 대체로 탈모증이 심하지 않은 초기에는 바르는 약을 쓴다. 탈모가 더 진행되면 먹는 약을 추가로 사용한다. 여자는 바르는 약 위주로 쓰다가 임신 가능성이 없는 중년 이후에는 먹는 약을 추가할 때가 많다. 음식이나 두피 마사지만으로는 치료 효과가 없다. 이런 방법은 보조 요법으로 제한해야 하며 의사의 처방에 맞춰 제때 약을 먹거나 발라야 한다. 치료가 잘 되면 머리카락은 한 달에 1㎝ 정도 자란다. 피부를 뚫고 머리카락이 나오기까지는 2개월 정도 소요된다. 6개월 동안 꾸준히 약을 사용하면 환자의 90%에서 효과를 본다. 이 경우 머리카락 수가 최대 20%, 평균 15% 정도 늘어난다. 증세가 좋아졌다고 판단해 약을 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 경우 탈모가 다시 진행된다. 임의로 약을 끊어서는 안 된다. 의사와 상담한 뒤 용량을 조절하는 게 현명하다. 권 교수는 “탈모 치료는 자신의 머리 위에 정원을 가꾸는 것과 같다. 꽃이 좀 자랐다고 물을 안 주면 말라버리지 않는가. 평생 관리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탈모 예방을 위한 생활 수칙1. 담배 연기는 탈모를 유발한다. 금연하자.2. 과체중이면 탈모가 심해질 수 있다. 체중 유지 필요!3. 당뇨, 고지혈증, 신장 질환도 탈모를 심화시킨다. 대사질환을 조절하자.4. 유산소 운동을 많이 하면 탈모 예방에 도움이 된다.5. 수면장애는 탈모를 촉진시킨다. 수면 패턴을 일정하게 유지하자.6. 모발과 두피를 늘 청결하게 관리하자.※ 자료 : 권오상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A 씨는 50대로 접어든 후부터 방귀 뀌는 횟수가 늘었다. 사무실에서는 눈치를 보느라 덜한 편인데, 집에만 있으면 거푸 방귀를 뀐다. 방귀 소리도 꽤 크다. 간혹 독한 냄새가 날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거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또 다른 50대 남성 B 씨도 방귀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다. 방귀를 뀌는 횟수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그 대신 냄새가 더 독해졌다. 친구들의 타박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장에 큰 병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두 사람은 병에 걸린 것일까. 한윤대 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에게 물었다. 한 교수는 “방귀는 대체로 질병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라면서도 “대장 질환의 전조 증세일 수는 있으니 동반 증세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A 씨는 질병이 아니지만 B 씨는 질병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 입을 자주 벌려도 방귀 많이 생겨방귀가 생기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음식 소화 과정에서 장에서 만들어진 가스가 항문으로 배출되는 것이다. 소화 효소로 잘 분해되지 않는 음식일수록 장내 미생물의 발효 작용이 활발해져 더 많은 가스가 발생한다. 보통 ‘포드맵(FODMAP)’이라고 부르는 당류 식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포드맵은 발효당, 올리고당, 이당류, 단당류, 당알코올 등 식품의 영문 앞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다. 방귀가 지나치게 잦다면 가스를 덜 발생시키는 저(低)포드맵 식품을 먹는 것도 좋다. 바나나, 딸기, 오렌지, 토마토, 고구마, 감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유와 치즈는 고(高)포드맵 식품에 해당한다. 다만 유당을 제거한 우유나 고형 치즈는 저 포드맵 식품으로 분류한다. 일반적으로 탄산음료는 가스를 많이 담고 있지만 방귀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트림을 통해 입으로 가스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둘째, 입으로 마신 공기가 대장을 거쳐 방귀로 배출된다. 코로 숨을 쉰다면 공기는 기도를 통해 폐로 가기 때문에 방귀를 유발하지 않는다. 따라서 평소에 △말을 많이 하거나 △많이 웃거나 △껌을 많이 씹거나 △허겁지겁 음식을 먹을수록 몸 안에 가스가 더 차고, 방귀도 자주 나올 확률이 높다. 수면무호흡증이 있거나 코골이가 심하거나 비염이 심하다면 잠을 잘 때 입으로 호흡을 하게 된다. 이 경우에도 공기를 더 많이 들이마시게 되므로 방귀를 자주 뀔 수 있다. ● 방귀, 대장질환 전조 증세일 수도A 씨처럼 중년 이후에 방귀가 잦아졌다는 사람이 많다.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이가 들면 음식을 이동시키는 대장의 연동 기능이 떨어진다. 장 안으로 들어온 음식이 한 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만큼 미생물의 발효 작용도 활발해진다. 그 결과 가스가 더 많이 발생하고, 방귀를 자주 뀌게 되는 것이다. 방귀 소리가 크고 냄새가 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육류 단백질, 콩이나 청국장 같은 음식을 먹으면 방귀 냄새가 심하다. 반면 회와 같은 수산물의 경우 방귀 냄새가 독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방귀는 대체로 질병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방귀를 참는 게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장 안에 많은 양의 가스가 차 있으면 장기적으로 장의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스를 오래 참다 보면 괄약근의 기능까지 약해질 수 있다. 이 경우 괄약근의 노화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방귀를 뀔 때 변이 조금씩 나오는 변실금이 생길 수 있다. 한 교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방귀를 참지 말고 어떻게든 해소하는 게 건강에 좋다”고 말했다. 때로 방귀는 대장 질환에 걸렸다는 징후가 된다. 우선 냄새를 따져봐야 한다. 만약 고기를 많이 먹지도 않았고, 다른 음식 섭취량도 그리 많지 않은데 방귀에서 고약한 냄새가 자주 난다면 대장암이나 염증성 장 질환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내시경 검사 등을 통해 정확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방귀가 나오지 않는 것도 건강 이상 신호일 수 있다. 배 속에 가스가 차고 더부룩한데 방귀가 안 나오고, 배변 횟수도 주 1회 정도로 떨어졌으며, 배가 심하게 불러온다면 ‘구불결장 염전증’을 의심할 수 있다. 이 병은 장의 연동 기능이 극도로 떨어졌을 때 발생한다. 소화가 안 된 음식이 이동하지 못하고 S자 모양의 결장에 쌓이는 바람에 그 부위가 주머니처럼 축 늘어지는 것이다. 여성은 40대와 50대에서, 남성은 60대와 70대에서 발생하는 편이다. ● 대변 상태 수시로 체크해야대변은 장 건강의 가장 중요한 지표다. 한 교수는 “방귀와 마찬가지로 대변 또한 냄새와 횟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2, 3일에 한 번꼴로 배변하거나 냄새가 나도 질병과의 연관 관계가 낮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대신 △변의 색깔 △형태 △잔변감 등 세 가지를 반드시 살필 것을 주문했다. 검거나 빨간 혈변이 자주 나온다면 대장암을 의심할 수 있다. 혈변이라고 하면 빨간 변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출혈 부위가 항문의 깊은 안쪽이라면 혈변은 검은색을 띤다. 변이 가늘어지거나 툭툭 끊어질 때, 혹은 토끼 똥처럼 작은 덩어리 모양일 때도 대장암을 의심할 수 있다. 다만 변비가 있을 때도 장의 운동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변이 나올 수 있다. 한 교수는 “변비가 없는데도 이런 형태의 변이 1주일 이상 계속 나온다면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배변 후에도 찜찜한 느낌이 남아 있는 잔변감도 대장암의 징후일 수 있다. 암 덩어리가 커지면 변을 배출할 통로가 일부 막힌다. 때로는 배변 활동 자체가 힘겨워질 수도 있다. 암 덩어리가 클수록 잔변감도 커진다. 한 교수는 용변을 본 후 대변 상태를 반드시 확인할 것을 주문했다. “병원에 가지 않고서도 장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속 안 좋을 때 간헐적 단식 시도해볼 만새로운 업무를 맡거나 해외여행만 가면 변비 증세가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의학적으로 보면, 대장과 뇌 신경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교수는 “낯설거나 힘든 상황이 되면 뇌가 스트레스를 받고, 그 여파로 대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자폐 증세가 있을 때 대변을 잘 보지 못하는 사례도 있는데, 이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시험, 업무 미팅 등 중요한 일이 임박하면 극심한 복통이 시작되는 사람들이 있다. 배를 움켜쥐다 급기야 화장실로 달려간다. 과민성장증후군인데, 스트레스 상황을 뇌가 인식했기 때문에 장에 영향을 미친 사례다. 만약 평소에 장을 편안하게 해 주면 어떨까. 한 교수는 “뇌가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고, 그 결과 장도 편안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최근 유산균을 비롯한 장내 미생물을 늘리는 건강식품이 많이 출시됐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사람에 따라 효과는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는 유산균 식품을 먹으면 장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속이 좋지 않을 때는 간헐적 단식을 하면 장 기능이 좋아질 수 있다. 한 교수는 “단식 기간에는 먹은 음식이 없으니 장이 충분히 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저녁 식사까지만 하고 다음 날까지 14시간 동안을 금식할 것을 권했다. 다만 간헐적 단식은 하루 혹은 이틀로만 끝낼 것을 당부했다. 한 교수는 “그 이후로도 속이 좋지 않다면 장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의사를 찾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튼튼한 장을 만들려면 이 밖에도 △지방을 줄이고 영양 균형이 잡힌 식사를 하고 △반드시 운동하되 과하지 않도록 하며 △절주하고 금연하며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A 씨는 50대로 접어든 후부터 방귀 뀌는 횟수가 늘었다. 사무실에서는 눈치를 보느라 그런지 덜 한편인데, 집에만 있으면 거푸 방귀를 뀐다. 방귀 소리도 꽤 크다. 간혹 독한 냄새가 날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거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또 다른 50대 남성 B 씨도 방귀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다. 방귀를 뀌는 횟수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그 대신 냄새가 더 독해졌다. 친구들의 타박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장에 큰 병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두 사람은 병에 걸린 것일까. 한윤대 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에게 물었다. 한 교수는 “방귀는 대체로 질병이 아닌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라면서도 “대장 질환의 전조 증세일 수는 있으니 동반 증세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A 씨는 질병이 아니지만 B 씨는 질병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입을 자주 벌려도 방귀 많이 생겨 방귀가 생기는 경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음식 소화 과정에서 장에서 만들어진 가스가 항문으로 배출되는 것이다. 소화 효소로 잘 분해되지 않는 음식일수록 장내 미생물의 발효 작용이 활발해져 더 많은 가스가 발생한다. 보통 ‘포드맵(FODMAP)’이라고 부르는 당류 식품이 여기에 해당한다. 포드맵은 발효당, 올리고당, 이당류, 단당류, 당알코올 등 식품의 영문 앞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다. 방귀가 지나치게 잦다면 가스를 덜 발생시키는 저(低) 포드맵 식품을 먹는 것도 좋다. 바나나, 딸기, 오렌지, 토마토, 고구마, 감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우유와 치즈는 고(高) 포드맵 식품에 해당한다. 다만 유당을 제거한 우유나 고형 치즈는 저 포드맵 식품으로 분류한다. 일반적으로 탄산음료는 가스를 많이 담고 있지만 방귀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트림을 통해 입으로 다시 가스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둘째, 입으로 마신 공기가 대장을 거쳐 방귀로 배출된다. 코로 숨을 쉰다면 공기는 기도를 통해 폐로 가기 때문에 방귀를 유발하지 않는다. 따라서 평소에 △말을 많이 하거나 △많이 웃거나 △껌을 많이 씹거나 △허겁지겁 음식을 먹을수록 몸 안에 가스가 더 차고, 방귀도 자주 나올 확률이 높다. 수면무호흡증이 있거나 코골이가 심하거나 비염이 심하다면 잠을 잘 때 입으로 호흡을 하게 된다. 이 경우에도 가스를 더 많이 들이마시게 되므로 방귀를 자주 뀔 수 있다. ●방귀, 대장질환 전조 증세일수도 A 씨처럼 중년 이후에 방귀가 잦아졌다는 사람이 많다.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이가 들면 음식을 이동시키는 대장의 연동 기능이 떨어진다. 장 안으로 들어온 음식이 한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만큼 미생물의 발효 작용도 활발해진다. 그 결과 가스가 더 많이 발생하고, 방귀를 자주 뀌게 되는 것이다. 방귀 소리가 크고 냄새가 난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육류 단백질, 콩이나 청국장 같은 음식을 먹으면 방귀 냄새가 심하다. 반면 회와 같은 수산물의 경우 방귀 냄새가 독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방귀는 대체로 질병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방귀를 참는 게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장 안에 많은 양의 가스가 차 있으면 장기적으로 장의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스를 오래 참다 보면 괄약근의 기능까지 약해질 수 있다. 이 경우 괄약근의 노화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방귀를 뀔 때 변이 조금씩 나오는 변실금이 생길 수 있다. 한 교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방귀를 참지 말고 어떻게든 해소하는 게 건강에 좋다”고 말했다. 때로 방귀는 대장 질환에 걸렸다는 징후가 된다. 우선 냄새를 따져봐야 한다. 만약 고기를 많이 먹지도 않았고, 다른 음식 섭취량도 그리 많지 않은데 방귀에서 고약한 냄새가 자주 난다면 대장암이나 염증성 장 질환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내시경 검사 등을 통해 정확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방귀가 나오지 않는 것도 건강 이상 신호일 수 있다. 배 속에 가스가 차고 더부룩한데 방귀가 안 나오고, 배변 횟수도 주 1회 정도로 떨어졌으며, 배가 심하게 불러온다면 ‘구불결장 염전증’을 의심할 수 있다. 이 병은 장의 연동 기능이 극도로 떨어졌을 때 발생한다. 소화가 안 된 음식이 이동하지 못하고 S자 모양의 결장에 쌓이는 바람에 그 부위가 주머니처럼 축 늘어지는 것이다. 여성은 40대와 50대에서, 남성은 60대와 70대에서 발생하는 편이다. ●대변 상태 수시로 체크해야 대변은 장 건강의 가장 중요한 지표다. 한 교수는 “방귀와 마찬가지로 대변 또한 냄새와 횟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2,3일에 한 번꼴로 배변하거나 냄새가 나도 질병과의 연관 관계가 낮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대신 △변의 색깔 △형태 △잔변감 등 세 가지를 반드시 살필 것을 주문했다. 검거나 빨간 혈변이 자주 나온다면 대장암을 의심할 수 있다. 혈변이라고 하면 빨간 변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출혈 부위가 항문의 깊은 안쪽이라면 혈변은 검은색을 띤다. 변이 가늘어지거나 툭툭 끊어질 때, 혹은 토끼 똥처럼 작은 덩어리 모양일 때도 대장암을 의심할 수 있다. 다만 변비가 있을 때도 장의 운동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변이 나올 수 있다. 한 교수는 “변비가 없는데도 이런 형태의 변이 1주일 이상 계속 나온다면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을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배변 후에도 찜찜한 느낌이 남아있는 잔변감도 대장암의 징후일 수 있다. 암 덩어리가 커지면 변을 배출할 통로가 일부 막힌다. 때로는 배변 활동 자체가 힘겨워질 수도 있다. 암 덩어리가 클수록 잔변감도 커진다. 한 교수는 용변을 본 후 대변 상태를 반드시 확인할 것을 주문했다. “병원에 가지 않고서도 장의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튼튼한 장을 만들기 위한 생활 수칙1. 지방 함량을 줄이고, 육류를 먹되 지나치게 많이 먹지 않는다.2. 식사는 천천히 한다. 과식이나 폭식은 피한다. 3. 매일 1.5~2L의 물을 충분히 먹는다.4. 장 활동을 돕기 위해 유산균을 추가로 먹는다. 5. 반드시 운동한다. 단, 과도한 운동은 피한다. 7. 절주하고 금연한다.8. 스트레스를 적절히 관리한다.※자료 : 한윤대 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 속 안 좋을 때 간헐적 단식 시도해 볼만 새로운 업무를 맡거나 해외여행만 가면 변비 증세가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의학적으로 보면, 대장과 뇌 신경이 연결돼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교수는 “낯설거나 힘든 상황이 되면 뇌가 스트레스를 받고, 그 여파로 대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자폐 증세가 있을 때 대변을 잘 보지 못하는 사례도 있는데, 이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시험, 업무 미팅 등 중요한 일이 임박하면 극심한 복통이 시작되는 사람들이 있다. 배를 움켜쥐다 급기야 화장실로 달려간다. 과민성장증후군인데, 스트레스 상황을 뇌가 인식했기 때문에 장에 영향을 미친 사례다. 만약 평소에 장을 편안하게 해 주면 어떨까. 한 교수는 “뇌가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고, 그 결과 장도 편안해진다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최근 유산균을 비롯한 장내 미생물을 늘리는 건강식품이 많이 출시됐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사람에 따라 효과는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는 유산균 식품을 먹으면 장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속이 좋지 않을 때는 간헐적 단식을 하면 장 기능이 좋아질 수 있다. 한 교수는 “단식기간에는 먹은 음식이 없으니 장이 충분히 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교수는 저녁 식사까지만 하고 다음 날까지 14시간 동안을 금식할 것을 권했다. 다만 간헐적 단식은 하루 혹은 이틀로만 끝낼 것을 당부했다. 한 교수는 “그 이후로도 속이 좋지 않다면 장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의사를 찾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튼튼한 장을 만들려면 이밖에도 △지방을 줄이고 영양 균형이 잡힌 식사를 하고 △반드시 운동하되 과하지 않도록 하며 △절주하고 금연하며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2013년 9월 박창현 씨(30)는 군에 입대했다. 탄약 다루는 업무를 맡았는데 썩 내키지는 않았다. 의기소침해지더니 우울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던 중 다른 부대로 파견 갈 일이 생겼다. 군대 홍보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 박 씨가 좋아하는 분야였다. 돌파구가 생긴 느낌이었다. 덕분에 우울감도 사라졌다. 3개월 후 부대에 복귀한 후 문제가 생겼다. 예민해졌고 짜증이 늘었다. 혈압도 높아졌다. 감정 통제가 쉽지 않아 부대원들과 자주 다퉜다. 군 병원은 박 씨에게 조울증 진단을 내렸다. 박 씨는 40일 동안 군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박 씨는 퇴원한 후 별다른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부대원들과도 원만하게 지냈다. 덕분에 2015년 9월 무사히 전역했다. 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일까. ●“조증일 때 입원 치료 필요”전역하고 한 달이 지나자 군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떨어졌다. 박 씨는 이상 증세가 없으니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약이 떨어지면 다시 병원에 가라는 의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2016년 3월 조울증이 재발했다. 횡설수설했다. 환청이 들렸다. 익숙한 풍경이 슬라이드처럼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환시 증세도 드물게 나타났다. 박 씨는 가족의 손에 이끌려 한양대병원을 찾았다.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입원 치료를 권했다. 결국 박 씨는 조울증으로 두 번째 입원했다. 조울증은 기분이 들뜨다가 우울해지며 가라앉았다가 흥분하는 양극성 기분장애다. 국내 유병률이 인구의 1.0∼2.5% 정도다. 50만∼130만 명이 평생에 걸쳐 한 번 정도는 발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짐은 물론 뇌의 구조적 변화로 인지기능 장애까지 생길 수 있어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울증일 때는 축축 처지는 게 특징이다. 박 씨 또한 군 생활 초기에는 식사도 잘 못 하고 말수도 적었으며 무기력했다. 다만 우울증 강도가 약할 때는 병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조증일 때 주변 사람과 불화를 일으키거나 지나치게 흥분하는 식의 문제 행동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조증이 심한 환자라면 입원 치료를 많이 한다. 하지만 박 씨가 그랬듯이 환자 대부분은 자신이 조금 예민한 정도라고만 생각한다. 노 교수는 “들뜨거나 의욕이 넘치는 환자도 많지만 그보다는 예민하고, 짜증을 많이 내며, 주변 사람들과 자주 충돌하는 환자가 더 많다”고 말했다.●“약 끊으면 1년 내 재발 많아” 조울증은 발병하면 일단 첫 1년 동안은 약물을 투입하면서 환자 상태를 살핀다. 결과가 좋다면 투입 약물의 개수나 용량을 줄인다. 일반적으로 약을 완전히 끊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재발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박 씨 재발 사례는 조울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진단했다. 스스로 증세가 개선됐다고 판단한 뒤 약을 먹지 않으며, 그 결과 1년 이내에 재발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환청이 가장 흔하고 환시, 환각 증세까지 나타날 수 있다. 재발하면 완전히 2, 3일 만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물론 당사자는 증세가 악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가족이나 친구가 지적하면 다툼으로 번진다. 스스로 병원에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박 씨도 그랬다. 박 씨의 부모가 목적지를 속이고는 승용차를 몰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노 교수는 “이 또한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했다. 자발적으로 치료하지 않기에 대부분은 병원 응급실을 거쳐 입원한다는 것이다. 박 씨는 의료진에게 폭력적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 교수에 따르면 적잖은 환자들이 의료진에게 화를 내거나 위협적으로 행동한다. 특히 조증 환자들은 치료 과정에서도 대화의 맥락을 잡지 못하거나 산만하며 집중도가 떨어진다. 노 교수는 “환자 대부분은 목소리 톤이 높고, 하나를 묻는데 대여섯 개를 대답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돌이켜보면 나 또한 의료진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빙빙 겉돌거나 검사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입원 치료를 하면서 이런 점들을 고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된 폐쇄 병동에 주로 입원한다. 박 씨가 입원한 곳 또한 폐쇄 병동이다. ●적응 훈련 마치고 35일 만에 퇴원폐쇄 병동에서는 조울증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까. 노 교수는 박 씨에게 항정신병약물, 항불안제, 기분안정제를 투입했다. 이런 약물 치료와 함께 지속적으로 상담하면서 행동 변화를 관찰했다. 환자들은 대체로 처음에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상태가 호전된 후에야 과거의 자신이 보인다. 박 씨 또한 “입원 치료를 하고 증세가 개선되니 나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었다”며 “그제야 내가 심했었고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입원 후 박 씨의 정서는 안정적으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노 교수는 박 씨에게 병원 내부에서 의료진과 동반해 산책할 것을 처방했다. 외부 자극에 대한 일종의 ‘적응 훈련’인 셈이다. 다음 과정은 병원 밖으로 산책 나가는 ‘외출’이다. 환청도 사라지고 조증 증세도 거의 없어지자 박 씨는 이 과정을 건너뛰고 귀가한 뒤 하루 후에 돌아오는 ‘외박’ 과정으로 이행했다. 노 교수는 “약을 잘 먹고 있으며, 기분 상태가 안정적이고, 나중에도 외래 진료를 빠뜨리지 않을지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평가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 박 씨는 35일 만에 퇴원했다. 박 씨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박 씨는 “퇴원할 무렵 정말로 내가 좋아졌다는 생각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감정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평생 관리하면 일상생활 지장 없어퇴원은 일상생활에 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반드시 완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 교수는 “이 병은 평생 다스려야 한다. 중단하는 순간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퇴원한 후로도 한 달 동안은 매주 노 교수를 만났다. 이후 진료 간격을 2주, 4주, 6주로 서서히 늘려 나갔다. 현재는 치료 방침에서 최대 기간으로 정한 2개월마다 진료를 받는다. 노 교수는 “7년째 꾸준히 치료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말했다. 조울증이 생기는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입시, 연애, 군 복무 등 여러 분야에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같은 위기가 닥치면 재발의 위기를 맞닥뜨리게 된다. 박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프리랜서 PD 생활을 잠시 했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난관이 그를 힘들게 했다. 강박증, 불안증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방치하지 않았다. 노 교수를 찾아가 상담을 자처했다. 비상약을 처방받아놓고 증세가 심해지면 먹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위기를 극복하고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박 씨는 올해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동시에 대학 실습조교 업무도 맡았다. 물론 동료들과도 잘 지낸다. 노 교수는 “조울증은 약을 먹으면서 관리만 하면 평생 큰 탈 없이 잘 살 수 있는 병”이라며 “문제는 정신 질환이라는 편견 때문에 약 복용을 중단하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배우자에게도 자신의 투병 사실을 숨기는 환자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박 씨는 주변에 자신의 병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굳이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 주변 사람들이 내 병을 알면 더 이해해주는 측면도 있다”며 웃었다. 노 교수 또한 “스스로 병을 인정하고 적극 투병하는 것, 주변 사람들이 적극 지지하는 것이 이 병을 이기는 큰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박 씨야말로 조울증의 가장 모범적인 투병 사례이며 앞으로도 잘 이겨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양극성 장애 자가진단최근에 다음과 같은 증세가 같은 시기에 나타났고, 이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면 양극성 장애일 가능성이 있다. 13개 문항 중 7개 이상이 해당된다면 의사와 상담하는 게 좋다.①기분이 너무 좋거나 들떠 다른 사람들이 평소의 당신 모습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②지나치게 흥분해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싸우거나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③평소보다 더욱 자신감에 찬 적이 있다.④평소보다 잠을 덜 잤거나 잠잘 필요를 느끼지 않은 적이 있다.⑤평소보다 말이 더 많았거나 말이 매우 빨라졌던 적이 있다.⑥생각이 머릿속을 빨리 돌아가는 것처럼 느꼈거나 마음을 차분하게 하지 못한 적이 있다.⑦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로 쉽게 방해받아 일에 집중하기 어렵거나 중단한 적이 있다.⑧평소보다 더 에너지가 넘쳐흘렀다.⑨평소보다 더 활동적이거나 더 많은 일을 했다.⑩평소보다 사교적이거나 늦은 밤에 친구에게 전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했다.⑪평소보다 더욱 성행위에 관심이 갔다.⑫남들이 생각하기에 지나치거나 바보 같거나 위험해 보이는 행동을 한 적이 있다.⑬돈 쓰는 문제로 자신이나 가족을 곤경에 빠뜨린 적이 있다. 자료: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2013년 9월 박창현 씨(30)는 군에 입대했다. 탄약 다루는 업무를 맡았는데 썩 내키지는 않았다. 의기소침해지더니 우울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던 중 다른 부대로 파견 갈 일이 생겼다. 군대 홍보 영상을 만드는 일을 했다. 박 씨가 좋아하는 분야였다. 돌파구가 생긴 느낌이었다. 덕분에 우울감도 사라졌다. 3개월 후 부대에 복귀한 후 문제가 생겼다. 예민해졌고 짜증이 늘었다. 혈압도 높아졌다. 감정 통제가 쉽지 않아 부대원들과 자주 다퉜다. 군 병원은 박 씨에게 조울증 진단을 내렸다. 박 씨는 40일 동안 군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박 씨는 퇴원한 후 별다른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부대원들과도 원만하게 지냈다. 덕분에 2015년 9월 무사히 전역했다. 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일까. ●“조증일 때 입원 치료 필요” 전역하고 한 달이 지나자 군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 떨어졌다. 박 씨는 이상 증세가 없으니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약이 떨어지면 다시 병원에 가라는 의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2016년 3월 조울증이 재발했다. 횡설수설했다. 환청이 들렸다. 익숙한 풍경이 슬라이드처럼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환시 증세도 드물게 나타났다. 박 씨는 가족의 손에 이끌려 한양대병원을 찾았다.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입원 치료를 권했다. 결국 박 씨는 조울증으로 두 번째 입원했다. 조울증은 기분이 들뜨다가 우울해지며 가라앉았다가 흥분하는 양극성 기분장애다. 국내 유병률이 인구의 1.0~2.5% 정도다. 50만~130만 명이 평생에 걸쳐 한 번 정도는 발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짐은 물론 뇌의 구조적 변화로 인지기능 장애까지 생길 수 있어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우울증일 때는 축축 처지는 게 특징이다. 박 씨 또한 군 생활 초기에는 식사도 잘 못하고 말수도 적었으며 무기력했다. 다만 우울증 강도가 약할 때는 병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조증일 때 주변 사람과 불화를 일으키거나 지나치게 흥분하는 식의 문제 행동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조증이 심한 환자라면 입원 치료를 많이 한다. 하지만 박 씨가 그랬듯이 환자 대부분은 자신이 조금 예민한 정도라고만 생각한다. 노 교수는 “들뜨거나 의욕이 넘치는 환자도 많지만 그보다는 예민하고, 짜증을 많이 내며, 주변 사람들과 자주 충돌하는 환자가 더 많다”고 말했다. ●“약 끊으면 1년 내 재발 많아” 조울증은 발병하면 일단 첫 1년 동안은 약물을 투입하면서 환자 상태를 살핀다. 결과가 좋다면 투입 약물의 개수나 용량을 줄인다. 일반적으로 약을 완전히 끊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재발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노 교수는 “박 씨 재발 사례는 조울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진단했다. 스스로 증세가 개선됐다고 판단한 뒤 약을 먹지 않으며, 그 결과 1년 이내에 재발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환청이 가장 흔하고 환시, 환각 증세까지 나타날 수 있다. 재발하면 완전히 2,3일 만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물론 당사자는 증세가 악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가족이나 친구가 지적하면 다툼으로 번진다. 스스로 병원에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박 씨도 그랬다. 박 씨의 부모가 목적지를 속이고는 승용차를 몰고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노 교수는 “이 또한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했다. 자발적으로 치료하지 않기에 대부분은 병원 응급실을 거쳐 입원한다는 것이다. 박 씨는 의료진에게 폭력적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 교수에 따르면 적잖은 환자들이 의료진에게 화를 내거나 위협적으로 행동한다. 특히 조증 환자들은 치료 과정에서도 대화의 맥락을 잡지 못하거나 산만하며 집중도가 떨어진다. 노 교수는 “환자 대부분은 목소리 톤이 높고, 하나를 묻는데 대여섯 개를 대답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돌이켜보면 나 또한 의료진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빙빙 겉돌거나 검사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입원 치료를 하면서 이런 점들을 고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된 폐쇄 병동에 주로 입원한다. 박 씨가 입원한 곳 또한 폐쇄 병동이다. ●적응 훈련 마치고 35일 만에 퇴원 폐쇄 병동에서는 조울증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까. 노 교수는 박 씨에게 항정신병약물, 항불안제, 기분안정제를 투입했다. 이런 약물 치료와 함께 지속적으로 상담하면서 행동 변화를 관찰했다. 환자들은 대체로 처음에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상태가 호전된 후에야 과거의 자신이 보인다. 박 씨 또한 “입원 치료를 하고 증세가 개선되니 나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었다”며 “그제야 내가 심했었고 문제가 많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입원 후 박 씨의 정서는 안정적으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노 교수는 박 씨에게 병원 내부에서 의료진과 동반해 산책할 것을 처방했다. 외부 자극에 대한 일종의 ‘적응 훈련’인 셈이다. 다음 과정은 병원 밖으로 산책 나가는 ‘외출’이다. 환청도 사라지고 조증 증세도 거의 없어지자 박 씨는 이 과정을 건너뛰고 귀가한 뒤 하루 후에 돌아오는 ‘외박’ 과정으로 이행했다. 노 교수는 “약을 잘 먹고 있으며, 기분 상태가 안정적이고, 나중에도 외래 진료를 빠뜨리지 않을지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평가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 박 씨는 35일 만에 퇴원했다. 박 씨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박 씨는 “퇴원할 무렵 정말로 내가 좋아졌다는 생각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감정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평생 관리하면 일상 생활 지장 없어 퇴원은 일상 생활에 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반드시 완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 교수는 “이 병은 평생 다스려야 한다. 중단하는 순간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퇴원한 후로도 한 달 동안은 매주 노 교수를 만났다. 이후 진료 간격을 2주, 4주, 6주로 서서히 늘려나갔다. 현재는 치료 방침에서 최대 기간으로 정한 2개월마다 진료를 받는다. 노 교수는 “7년째 꾸준히 치료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말했다. 조울증이 생기는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입시, 연애, 군 복무 등 여러 분야에서 생기는 스트레스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같은 위기가 닥치면 재발의 위기를 맞닥뜨리게 된다. 박 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프리랜서 PD 생활을 잠시 했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난관이 그를 힘들게 했다. 강박증, 불안증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방치하지 않았다. 노 교수를 찾아가 상담을 자처했다. 비상약을 처방 받아놓고 증세가 심해지면 먹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위기를 극복하고 일상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박 씨는 올해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동시에 대학 실습 조교 업무도 맡았다. 물론 동료들과도 잘 지낸다. 노 교수는 “조울증은 약을 먹으면서 관리만 하면 평생 큰 탈 없이 잘 살 수 있는 병”이라며 “문제는 정신 질환이라는 편견 때문에 약 복용을 중단하는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배우자에게도 자신의 투병 사실을 숨기는 환자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박 씨는 주변에 자신의 병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굳이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 주변 사람들이 내 병을 알면 더 이해해주는 측면도 있다”며 웃었다. 노 교수 또한 “스스로 병을 인정하고 적극 투병하는 것, 주변 사람들이 적극 지지하는 것이 이 병을 이기는 큰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박 씨야말로 조울증의 가장 모범적인 투병 사례이며 앞으로도 잘 이겨낼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양극성 장애 자가진단최근에 다음과 같은 증세가 같은 시기에 나타났고, 이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면 양극성 장애일 가능성이 있다. 13개 문항 중 7개 이상이 해당된다면 의사와 상담하는 게 좋다.1. 기분이 너무 좋거나 들떠 다른 사람들이 평소의 당신 모습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다.2. 지나치게 흥분해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싸우거나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3. 평소보다 더욱 자신감에 찬 적이 있다.4. 평소보다 잠을 덜 잤거나 잠잘 필요를 느끼지 않은 적이 있다.5. 평소보다 말이 더 많았거나 말이 매우 빨라졌던 적이 있다.6. 생각이 머리속을 빨리 돌아가는 것처럼 느꼈거나 마음을 차분하게 하지 못한 적이 있다.7.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로 쉽게 방해받아 일에 집중하기 어렵거나 중단한 적이 있다.8. 평소보다 더 에너지가 넘쳐흘렀다.9. 평소보다 더 활동적이거나 더 많은 일을 했다.10. 평소보다 사교적이거나 늦은 밤에 친구에게 전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했다.11. 평소보다 더욱 성행위에 관심이 갔다.12. 남들이 생각하기에 지나치거나 바보 같거나 위험해 보이는 행동을 한 적이 있다.13. 돈 쓰는 문제로 자신이나 가족을 곤경에 빠뜨린 적이 있다.※자료 :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주말만 되면 늦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다. 평일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겠다는 의도일 텐데 의학적으로는 좋지 않다. 심리적으로 덜 피곤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수면 리듬은 더 흐트러지게 된다. 최승홍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48)는 정반대다. 휴일에는 오전 5시에 일어난다. 평일 출근 시간보다 2시간 가까이 이른 시간이다. 주중 내내 기다려 왔던 테니스를 하기 위해서다. 그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 이틀 동안에 두세 시간씩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테니스를 즐긴다. 날씨는 상관이 없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실내 테니스장으로 간다. 요즘처럼 따뜻한 봄날에는 야외 코트에서 테니스를 한다. 최 교수는 “테니스가 없는 생활은 정말로 지루할 것 같다”고 했다.●“테니스, 몰입감과 성취감 최고” 의대 입학 후 새로운 취미를 갖고 싶었다. 여러 가지를 염두에 뒀다. 일단 멋있고 재미있는 것이어야 했다. 평생 의사 생활을 해야 하니 약한 체력을 보강하는 데도 도움이 돼야 했다. 축구, 농구, 배구는 너무 익숙했다. ‘낯선’ 것을 물색했다. 테니스에 시선이 꽂혔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한두 시간 동안 헉헉대며 코트를 뛰어다니면서 땀을 흘리다 보면 성취감이 느껴졌다. 운동 중에는 오롯이 테니스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공부 스트레스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동아리에 유독 테니스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이겨보겠다는 승부욕 때문에 테니스를 더 열심히 했다. 교수가 된 후로도 주중에 한두 번, 주말에 두 번 정도 테니스를 즐겼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5일 동안 테니스를 했다. 하지만 업무량이 많아지고 바이오 기업 창업을 하면서 여유 시간이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평일 테니스를 거의 하지 못한다. 주말 이틀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이유다. 테니스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계기가 됐다. 최 교수는 “테니스로 이어진 인연이 꽤 많다. 바이오 기업을 공동 창업한 서울대 공대 교수도 ‘테니스 친구’다”라고 했다. 덕분에 비즈니스 미팅이 끝나면 함께 테니스장으로 간단다. 최 교수는 의대 교수들 사이에는 ‘꽤 잘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아마추어 대회에서 입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최 교수는 자신이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열심히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성과를 얻는다는 말은 운동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정말로 테니스에 많은 정성과 시간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테니스 못하는 평일엔 기초 체력 운동테니스를 하다 보니 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다. 테니스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기초 체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반드시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추가로 한다. 이 또한 대학생 때부터 꾸준히 해왔다. 처음에는 대학로 일대를 열심히 달렸다.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로 근력 운동을 했다. 교수가 될 무렵부터는 병원 내 헬스클럽을 이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헬스클럽이 문을 닫자 연구실에 운동 장비를 들여놓았다. 요즘에는 주로 점심 시간이나 일과가 끝난 오후 9시 이후에 연구실에서 기초 체력 운동을 한다. 보통은 일주일에 4일은 채우는 편이다. 만약 주말 이틀 동안 테니스를 하지 못했다면 기초 체력 운동 횟수를 5회로 늘린다. 다만 근육을 비롯해 몸이 쉴 수 있도록 일주일 중에 하루는 반드시 운동하지 않고 쉰다. 순서를 정해 운동한다. 먼저 팔굽혀펴기를 20개씩 3∼5세트 한다. 이어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다만 동작을 조금 작게 한다. 상체를 약간 올린 상태에서 다리만 들어 올렸다 내리는 식이다. 이 또한 20개씩 3∼5세트를 한다. 다음은 턱걸이. 과도하게 하다가 어깨가 다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최 교수는 고무 밴드를 이용한다. 고무 밴드에 발을 걸고 10개씩 3세트 턱걸이를 한다. 맨 마지막으로 ‘일립티컬 머신’이란 장비를 활용해 운동한다. 이 장비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40분 동안 이 장비를 이용해 빨리 걷기를 한다. 이 모든 운동을 끝내는 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최 교수는 “우람한 근육을 키우는 것보다는 체력과 지구력, 유연성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두고 짠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운동 중단하니 곧바로 건강 위기”오랜 시간 테니스와 기초 체력 운동으로 건강을 다졌다. 덕분에 혈압, 혈당 등 모든 건강 지표가 정상이다. 하지만 최 교수에게도 ‘건강 위기’가 닥친 적이 있었다. 그는 20대 후반에 결혼했다. 이듬해에 첫째, 그 다음 해에 둘째를 낳았다. 아내는 육아 문제로 상당히 힘들어했다. 그런 상황에서 혼자 테니스를 즐길 수는 없었다. 테니스 라켓을 10년 동안 놓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기초 체력 운동을 이어갔다. 곧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 교수 발령을 앞두고 스트레스가 컸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술을 마셨다. 운동은 거의 하지 못했다. 그 결과 70kg대 초반이었던 체중은 80kg에 육박했다. 혈압도 급상승해 고혈압 직전 단계까지 갔다. 아무리 오래 운동했고, 열심히 했다고 해도 중단하는 순간 건강이 악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건강 관리에 돌입했다. 다시 기초 체력 운동을 시작했다. 얼마 후에는 테니스 라켓도 다시 잡았다. 체중은 73kg으로 떨어졌고, 혈압도 정상으로 회복됐다. 40대 이후로는 먹는 것에도 신경을 쓴다. 식사량은 많지 않다. 아침은 시리얼과 우유로 때운다. 설탕이 많이 들어있지 않은 저당 시리얼을 먹는다. 점심은 주로 닭가슴살과 사과를 함께 먹는다. 나머지 한 끼 식사 때는 밥을 먹는다. 그때도 밥을 많이 먹지는 않는다. 의도적으로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냉면을 비롯한 면 음식도 거의 먹지 않는다. 식사량이 적기 때문에 배가 고플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식사량을 늘리지는 않는다. 일단 식사량이 늘어나면 다시 줄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음식을 적게 먹으면 저혈당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에 약간의 간식을 먹는 편이다. 주로 삶은 달걀, 소시지, 에너지바 등을 번갈아 먹는다. 혹은 단백질 보충제를 꿀과 함께 먹기도 한다. ●세계 테니스장 ‘도장 깨기’ 도전2017년 최 교수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를 방문했다. 서울대병원이 2014년부터 위탁 운영하는 UAE 왕립 셰이크칼리파전문병원(SKSH)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공식 일정이 끝났을 무렵 누군가 테니스를 제안했다. 덕분에 처음으로 해외에서 테니스를 즐길 수 있었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 도시에서 테니스 한 게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막연한 생각이 그의 버킷리스트가 됐다. 이른바 ‘세계 테니스장 도장 깨기’다. 그 후로 최 교수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테니스 라켓을 챙겼다. 출발하기 전에 미리 현지 호텔 주변의 테니스장을 물색했다. e메일을 보내 예약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 테니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현지 파트너를 구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사전에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우리 돈 10만 원 정도로 선수급의 현지인과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8개국 12개 도시에서 테니스를 즐겼다. 최소한 50개 도시의 테니스장은 밟아 보고 싶단다. 최 교수는 “테니스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라며 웃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주말만 되면 늦잠을 자는 사람들이 많다. 평일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겠다는 의도일 텐데 의학적으로는 좋지 않다. 심리적으로 덜 피곤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수면 리듬은 더 흐트러지게 된다. 최승홍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48)는 정반대다. 휴일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난다. 평일 출근 시간보다 2시간 가까이 이른 시간이다. 주중 내내 기다려왔던 테니스를 하기 위해서다. 그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 이틀 동안에 두세 시간씩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테니스를 즐긴다. 날씨는 상관이 없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실내 테니스장으로 간다. 요즘처럼 따뜻한 봄날에는 야외 코트에서 테니스를 한다. 최 교수는 “테니스가 없는 생활은 정말로 지루할 것 같다”라고 했다.●“테니스, 몰입감과 성취감 최고” 의대 입학 후 새로운 취미를 갖고 싶었다. 여러 가지를 염두에 뒀다. 일단 멋있고 재미있는 것이어야 했다. 평생 의사 생활을 해야 하니 약한 체력을 보강하는 데도 도움이 돼야 했다. 축구, 농구, 배구는 너무 익숙했다. ‘낯선’ 것을 물색했다. 테니스에 시선이 꽂혔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한두 시간 동안 헉헉대며 코트를 뛰어다니며 땀을 흘리다 보면 성취감이 느껴졌다. 운동 중에는 오롯이 테니스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공부 스트레스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동아리에 유독 테니스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이겨보겠다는 승부 욕 때문에 테니스를 더 열심히 했다. 교수가 된 후로도 주중에 한두 번, 주말에 두 번 정도 테니스를 즐겼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5일 동안 테니스를 했다. 하지만 업무량이 많아지고 바이오 기업 창업을 하면서 여유 시간이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평일 테니스를 거의 하지 못한다. 주말 이틀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이유다. 테니스는 많은 사람을 만나는 계기가 됐다. 최 교수는 “테니스로 이어진 인연이 꽤 많다. 바이오 기업을 공동 창업한 서울대 공대 교수도 ‘테니스 친구’다”라고 했다. 덕분에 비즈니스 미팅이 끝나면 함께 테니스장으로 간단다. 최 교수는 의대 교수들 사이에는 ‘꽤 잘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아마추어 대회에서 입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최 교수는 자신이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열심히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성과를 얻는다는 말은 운동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정말로 테니스에 많은 정성과 시간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테니스 못하는 평일엔 기초 체력 운동 테니스를 하다 보니 체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다. 테니스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기초 체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반드시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추가로 한다. 이 또한 대학생 때부터 꾸준히 해왔다. 처음에는 대학로 일대를 열심히 달렸다. 팔굽혀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로 근력 운동을 했다. 교수가 될 무렵부터는 병원 내 헬스클럽을 이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헬스클럽이 문을 닫자 연구실에 운동 장비를 들여다 놓았다. 요즘에는 주로 점심시간이나 일과가 끝난 오후 9시 이후에 연구실에서 기초 체력 운동을 한다. 보통은 일주일에 4일은 채우는 편이다. 만약 주말 이틀 동안 테니스를 하지 못했다면 기초 체력 운동 횟수를 5회로 늘린다. 다만 근육을 비롯해 몸이 쉴 수 있도록 일주일 중에 하루는 반드시 운동하지 않고 쉰다. 순서를 정해 운동한다. 먼저 팔굽혀펴기를 20개씩 3~5세트 한다. 이어 윗몸 일으키기를 한다. 다만 동작을 조금 작게 한다. 상체를 약간 올린 상태에서 다리만 들어 올렸다 내리는 식이다. 이 또한 20개씩 3~5세트를 한다. 다음은 턱걸이. 과도하게 하다가 어깨가 다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최 교수는 고무 밴드를 이용한다. 고무 밴드에 발을 걸고 10개씩 3세트 턱걸이를 한다. 맨 마지막으로 ‘일립티컬 머신’이란 장비를 활용해 운동한다. 이 장비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40분 동안 이 장비를 이용해 빨리 걷기를 한다. 이 모든 운동을 끝내는 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최 교수는 “우람한 근육을 키우는 것보다는 체력과 지구력, 유연성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두고 짠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운동 중단하니 곧바로 건강 위기” 오랜 시간 테니스와 기초 체력 운동으로 건강을 다졌다. 덕분에 혈압, 혈당 등 모든 건강 지표가 정상이다. 하지만 최 교수에게도 ‘건강 위기’가 닥친 적이 있었다. 그는 20대 후반에 결혼했다. 이듬해에 첫째, 그다음 해에 둘째를 낳았다. 아내는 육아 문제로 상당히 힘들어했다. 그런 상황에서 혼자 테니스를 즐길 수는 없었다. 테니스 라켓을 10년 동안 놓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기초 체력 운동을 이어갔다. 곧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 교수 발령을 앞두고 스트레스가 컸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술을 마셨다. 운동은 거의 하지 못했다. 그 결과 70㎏대 초반이었던 체중은 80㎏에 육박했다. 혈압도 급상승해 고혈압 바로 직전 단계까지 갔다. 아무리 오래 운동했고, 열심히 했다고 해도 중단하는 순간 건강이 악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건강 관리에 돌입했다. 다시 기초 체력 운동을 시작했다. 얼마 후에는 테니스 라켓도 다시 잡았다. 체중은 73㎏으로 떨어졌고, 혈압도 정상으로 회복됐다. 40대 이후로는 먹는 것에도 신경을 쓴다. 식사량은 많지 않다. 아침에는 시리얼과 우유로 때운다. 다만 설탕이 많이 들어있지 않은 저당 시리얼을 먹는다. 점심은 주로 닭가슴살과 사과를 함께 먹는다. 나머지 한 끼 식사 때는 밥을 먹는다. 다만 밥을 많이 먹지는 않는다. 의도적으로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기 위해서다. 냉면을 비롯한 면 음식도 거의 먹지 않는다. 식사량이 적기 때문에 배가 고플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식사량을 늘리지는 않는다. 일단 식사량이 늘어나면 다시 줄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음식을 적게 먹으면 저혈당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에 약간의 간식을 먹는 편이다. 주로 삶은 달걀, 소시지, 에너지바 등을 번갈아 먹는다. 혹은 단백질 보충제를 꿀과 함께 먹기도 한다. ●세계 테니스장 ‘도장 깨기’ 도전 2017년 최 교수는 두바이를 방문했다. 서울대병원이 2014년부터 위탁 운영하는 아랍에미리트(UAE) 왕립쉐이크칼리파전문병원(SKSH)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공식 일정이 끝났을 무렵 누군가 테니스를 제안했다. 덕분에 처음으로 해외에서 테니스를 즐길 수 있었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 도시에서 테니스 한 게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막연한 생각이 그의 버킷리스트가 됐다. 이른바 ‘세계 테니스장 도장 깨기’다. 그 후로 최 교수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테니스 라켓을 챙겼다. 출발하기 전에 미리 현지 호텔 주변의 테니스장을 물색했다. e메일을 보내 예약 가능 여부를 타진했다. 테니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현지 파트너를 구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사전에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우리 돈 10만 원 정도로 선수급 수준의 현지인과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8개국 12개 도시에서 테니스를 즐겼다. 최소한 50개 도시의 테니스장은 밟아보고 싶단다. 최 교수는 “테니스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60대 중반 여성 A씨는 21년 전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피곤하고 숨이 찼다.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피부에 붉은 반점 같은 것이 늘어났다. 모세혈관이 터지면서 생긴 ‘자반 출혈’이었다. 급성 백혈병의 대표적 증세 중 하나다. A씨는 가톨릭대 의대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장인 김희제 혈액내과 교수를 찾았다. 김 교수는 A씨 형제에게서 조혈모세포를 추출해 A씨에게 이식했다. A씨는 이후 재발이나 합병증을 경험하지 않았다. 20년 이상 조혈모세포 이식 ‘성공’ 상태를 유지하는 가장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B씨(47)는 지난해 5월 다발골수종 2기 진단을 받았다. B씨도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먼저 항암 치료를 한 뒤 12월 말에 미리 추출해 뒀던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이식했다. 결과가 좋아 올 1월 퇴원했다. 그는 회복 과정이 순조로워 상태를 관찰하는 ‘유지 요법’을 시행 중이다. B씨는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이 국내 최초로 1만 번째 조혈모세포를 이식한 환자다. 김 혈액병원장은 “처음 조혈모세포를 이식한 후 40년 만에 달성한 기록으로 이식 의학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성과를 달성했다”고 자평했다. 김 원장에게 조혈모세포 이식 역사와 향후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혈액질환 치료에 조혈모세포 이식 조혈모세포(HSC)는 혈액 세포를 만드는 줄기세포다. 성인의 골수에 주로 있으며, 많지는 않지만 말초혈액에서도 발견된다. 탯줄 혈액인 제대혈에도 들어있다. 이 조혈모세포가 손상되면 백혈병, 다발골수종 등의 혈액암을 비롯해 여러 중증 혈액 질환이 발생한다. 이때의 치료법이 바로 병든 조혈모세포를 제거하고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것이다.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 통계에 따르면 조혈모세포 이식을 가장 많이 하는 혈액 질환은 급성 백혈병이다. 이어 다발골수종, 재생불량빈혈, 골수형성이상증후군, 비호지킨림프종, 골수증식종양 등의 순이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자가이식과 동종이식으로 나뉜다. 자가이식은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냉동 보관했다가 항암 치료를 끝낸 후 해동해 주입하는 방식이다. 동종이식은 가족이나 타인에게서 조혈모세포를 받는 방식이다. 대체로 자가이식보다 동종이식의 난도가 높다. 김 원장에 따르면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에서도 한두 병원을 빼면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 비중은 45~50% 정도다. 이른바 국내 ‘빅5’ 병원 평균치도 43% 정도다.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은 이 비중이 74%에 이른다. 급성 백혈병, 골수형성이상증후군, 재생불량빈혈 등은 동종이식을 표준 치료로 삼는다.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은 조혈모세포에 비정상적인 세포군이 만들어지면서 혈구가 줄어드는 병이다. 재생불량성빈혈은 골수 기능이 떨어지면서 발생한다. 급성 백혈병 또한 골수에서부터 병이 시작된다. 세 질병 모두 조혈모세포가 병의 근원이기에 자가이식의 효과가 높지 않은 것이다. 다발골수종, 림프종 등은 처음부터 골수에서 병이 시작된 게 아니다. 따라서 골수가 크게 손상되기 전이라면 항암치료의 보조 요법으로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 치료를 많이 한다. ●40년 전 급성 백혈병 환자에 첫 시행 조혈모세포 이식이 표준치료로 자리 잡은 현재 전국 이식 건수의 25% 정도를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비중은 40%를 넘었다. 다른 대학병원을 거쳐 온 환자들도 많아 ‘혈액암의 4차 병원’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였다. 국내 조혈모세포 이식 역사는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춘추·김동집 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가 급성 백혈병 환자에게 처음 시행했다. 두 교수는 환자의 가족에게서 채취한 조혈모세포를 이식했다. 처음부터 난도가 높은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에 성공한 셈이다. 2년 후에는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에도 성공했다. 당시만 해도 조혈모세포 이식 인프라는 열악했다. 우선 진단 자체가 어려웠다. 조혈모세포 공여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연구비가 없어 김춘추 교수가 전셋집을 뺀 돈으로 동물실험을 한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조혈모세포 이식에 성공한 후로도 이 치료법이 빠른 속도로 확산하지는 않았다. 환자들 사이에서는 조혈모세포를 뽑으면 허리가 아프다는 등의 편견이 퍼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모든 이식 건수를 합쳐도 100건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때도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은 새로운 치료에 도전했다. △가족이 아닌 타인 간 조혈모세포 이식(1995년) △제대혈 이식(1996년) △비골수제거 조혈모세포 이식(1998년) △혈연 간 조직형 불일치 조혈모세포 이식(2001년) 등 국내 첫 기록을 쏟아냈다. 이런 성과 덕분에 2000년대로 접어들 무렵 국내 조혈모세포 이식 건수는 연간 300건으로 뛰었다. 2002년에는 세계 최초로 만성 골수성 백혈병과 간경화를 동시에 갖고 있는 환자에게 조혈모세포를 이식한 후 간을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2012년에는 신장과 조혈모세포를 동시에 이식하기도 했다. ●아시아 최대, 미국에도 안 뒤처져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은 국내 최대 규모다. 7개 전문센터로 운영된다. 35명의 교수가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단일 의료기관이 40년 만에 조혈모세포 이식 1만 건을 달성한 것은 해외에서도 드문 사례다. 실제로 테시마 타카노리(豊嶋崇徳) 일본 조혈모세포이식학회 회장(홋카이도 대학 교수)은 이달 초 김 병원장에게 e메일을 보내 “일본 10개 병원이 시행한 이식 건수를 단일 기관이 달성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축하했다. 일본의 경우 조혈모세포 이식이 가능한 의료기관은 300여 곳이지만 대체로 규모는 작은 편이다. 유럽에서는 조혈모세포 이식술이 국내나 일본처럼 빈번하게 이뤄지지 않아 직간접 비교는 어렵다. 세계 최대 규모 병원들이 몰려 있는 미국과 비교하면 어떨까. 김 원장에 따르면 MD앤더슨, 하버드대학병원 등 5, 6곳만이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보다 이식 건수가 많거나 비슷하다. 다만 난도가 높은 동종이식의 비중만 따로 집계할 경우 이런 병원들도 65% 정도로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74%)보다 낮다. 김 원장은 “규모나 질적인 면 모두에서 글로벌 병원과 대등하기까지는 그동안 연구와 치료에 모든 것을 바친 의료인 덕분”이라고 말했다. ●재발 낮추고 합병증 극복이 과제 조혈모세포 이식이 가장 많이 시행되는 질환인 급성 백혈병의 경우 세계 평균 생존율은 24~35%다. 김 원장에 따르면 서울성모병원 혈액병원의 생존율은 45% 정도다.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김 원장은 “절반 이상의 환자가 완치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급성 백혈병 조혈모세포 이식의 경우 넘어야 할 장애물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가 30% 이상인 재발률이다. 김 원장은 “과거 재발률은 50%였다. 기술이 진보하면서 많이 낮추긴 했지만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단점은 동종 이식의 가장 큰 부작용인 이식편대숙주병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식받은 환자의 30% 정도에서 발생하는데, 공여자의 세포가 환자의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병이다. 폐, 간, 뇌, 피부 등 어디에서든 나타날 수 있다. 재발과는 다르지만 삶의 질을 크게 약화시킨다. 김 원장은 “면역억제제의 용량을 조절하거나 공여자의 세포를 일부 약화시켜 투입하는 등의 노력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희망적이라고 했다. 우선 이와 관련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 다른 치료법인 세포면역항암 치료제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김 원장은 “혈액암이 불치병이 아니라 완치병이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뇌에 생긴 암은 뇌암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양성과 악성을 가리지 않고 뇌종양이라고 한다. 물론 악성 종양이 훨씬 위험하다. 다만 뇌에서 발생한 악성 종양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사례는 드물다. 뇌혈관 구조가 다른 장기의 혈관 구조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장기에 생긴 양성 종양에 비하면 양성 뇌종양은 훨씬 위험하다. 양성 종양이 뇌 안의 작은 신경이라도 손상시킬 경우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양성 뇌종양이라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게 옳다. 뇌종양은 병기 구분 방식도 다르다. 다른 암의 경우 크기나 전이 여부를 감안해 1∼4기로 나눈다. 반면 뇌종양은 양성일 때 1, 2등급으로, 악성일 때 3, 4등급으로 분류한다. 양성 종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뇌수막종이 가장 흔하다. 뇌수막종은 뇌와 척수를 보호하는 막에 생긴 종양이다. 일찍 발견하고 제대로 조치를 취하면 거의 대부분 완치로 이어진다. 다만 어느 부위에 발생했느냐에 따라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장규순 씨(53)가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 ●“백신 이상 증세, 뇌종양이 원인”장 씨는 강원 원주시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 자영업을 하면서 충분히 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나름대로 건강관리를 꾸준히 했다. 저녁에 미용실 문을 닫고 난 후 동네 하천을 따라 1만 보 정도를 걸었다. 국가건강검진 결과도 대체로 좋았다. 혈압과 혈당 수치도 모두 정상이었다. 40대 중반을 넘긴 2018년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내과에서는 위염이라고 했다. 두 달 동안 약을 먹었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1년 가까이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여전히 체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엔 목이 아파왔다. 정형외과에 갔다. 목 디스크일지도 몰라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다. 정상이었다. 통증 주사를 맞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러다 변비 증세까지 생겼다. 대장암 검사 결과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처럼 3년 동안 병원을 전전했지만 원인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동안 무기력, 피로, 불면증, 통증은 더 심해졌다. 팔이 아파 손님 머리를 만지는 것조차 힘들었다. 특히 손발이 저리고 등이 시려왔다. 차마 미용실을 관둘 수는 없어 휴일을 이틀로 늘렸다. 2021년 10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백신 접종 후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졌다.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가 극심한 두통이 나타났다. 장 씨는 “목부터 배꼽까지 감각이 없었다. 뇌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며 당시 상태를 떠올렸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응급실로 직행했다. 백신 부작용일 것이라 생각했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지난 3년 동안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신경과 질환일 것 같다고 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했다. 의사는 깜짝 놀라며 “심각하다. 얼핏 보기에 종양이 뇌신경 거의 대부분을 막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는 당장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8시간의 고난도 수술로 완치서울아산병원 진료를 이틀 앞둔 2022년 1월의 새벽, 장 씨는 침대에서 일어나다 다시 쓰러졌다. 의식은 있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지역 의료원의 응급실을 거쳐 곧바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장 씨는 뇌와 목뼈(경추)가 연결된 부위, 즉 뇌간에서 뇌수막종이 자라고 있었다. 진료를 맡은 홍창기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양성 종양이었지만 뇌간의 80%가 막혀 있었다. 그대로 두면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수술을 서둘러야 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뇌수막종 수술 자체는 아주 어렵지 않다. 다만 장 씨의 경우는 고난도의 수술이 예상됐다. 음식을 먹고, 말을 하고, 호흡을 하는 등 생존과 관련된 신경과 여러 혈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부위였기 때문이다. 수술 도중에 이 신경을 훼손하면 영구적인 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수술은 신중하게 진행됐다. 먼저 귀 뒤쪽으로 10㎝ 정도를 절개했다. 근육 조직을 하나씩 들어내고, 노출된 뼈에 구멍을 냈다. 수술 도구가 들어가고 종양을 꺼낼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작업에만 6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종양을 제거하고 끄집어내는 데는 2시간이 걸렸다. 장 씨는 수술이 끝나고 3일 만에 걸었고, 1주일 만에 퇴원했다. 손발 저림, 통증, 불면증 같은 증세는 약해지다가 퇴원할 무렵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장 씨는 “얼굴에 손을 대봤는데 따뜻하더라. 몇 년 만에 느껴 보는 온기였다. 기적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라고 말했다. 뇌수막종 수술 후에는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미세 종양을 없애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 씨는 수술하고 3개월 후 시행한 뇌 MRI 검사에서 종양이 완전히 제거됐음이 확인됐다. 그 덕분에 방사선 치료 없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요즘에는 6개월마다 추적 관찰 중이다. 수술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건망증이 생겼고, 행동도 다소 느려졌다. 그래도 1년 정도가 지나자 이런 증세는 상당히 개선됐다. 홍 교수는 “장 씨처럼 긍정 마인드가 강할수록 후유증도 적고, 회복도 빠르다”고 말했다. ●뇌수막종 증세 복합적으로 나타나장 씨는 무려 3년 동안 뇌수막종에 따른 증세로 큰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뇌수막종일 거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홍 교수는 “장 씨처럼 여러 증세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바람에 뇌수막종을 일찍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대체로 두통이 심하면 ‘뇌에 종양이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꼭 그렇지는 않다. 두통과 함께 구토나 메스꺼운 증세가 나타난다면 뇌종양보다는 뇌출혈이 원인일 경우가 더 많다. 뇌종양이 생겼다면 마비나 저림과 같은 신경학적 증세가 더 많이 나타난다. 장 씨도 양쪽 손발이 심하게 저렸다. 다만 실제로는 왼쪽이나 오른쪽 중 한쪽에서만 이런 증세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 홍 교수는 “장 씨는 뇌간의 중앙부에 종양이 생겼는데, 이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대체로는 한쪽으로 치우쳐 종양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증세도 한쪽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비, 저림 외에도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시야가 좁아지기도 한다. 갑자기 청력이 떨어진 것처럼 소리가 잘 안 들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도 대체로 한쪽 눈과 귀에서만 증세가 나타난다. 이와 함께 예전보다 더 자주 사레가 들린다면 이 또한 뇌종양의 원인일 수 있다. 장 씨는 소화불량, 무기력증 등 온갖 증세를 다 겪었다. 이것도 뇌종양에 따른 증세일까? 홍 교수는 “소화불량은 뇌종양과 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장 씨의 경우 소화불량 증세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바람에 장 씨 본인이나 의사도 뇌수막종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고, 그 결과 발견이 늦어졌을 거라고 추정했다. 장 씨는 불면증도 심하게 앓았다. 불면증도 뇌수막종과는 무관한 것 같다고 홍 교수는 판단했다. 악성 종양의 경우 불면증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양성 종양일 때는 그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뇌수막종 부위 따라 치료법 달라뇌수막종이 발생하는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이 생기는 경향이 있지만 꼭 나이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30대의 젊은층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통계적으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2배 정도 많이 발생한다. 어느 위치에 발생하느냐에 따라 치료 난이도가 결정된다. 뇌의 표면에 발생할 경우 수술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때로는 수술하지 않고 관찰만 할 수도 있다. 종양이 작다면 방사선 치료(감마나이프)로만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장 씨처럼 뇌 안쪽 깊숙한 곳에 종양이 생겼을 경우 대처법은 달라진다. 장 씨의 뇌수막종 크기는 2.1㎝였다. 홍 교수는 “이 정도면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그대로 뒀을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령 목을 뒤로 잘못 젖혔다가 사지마비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장 씨처럼 종양이 계속 자라고 있다면 즉각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홍 교수는 “이런 경우 방치한다면 종양이 껌딱지처럼 뇌간에 착 달라붙어 버린다. 그때는 아주 작은 상처만 나도 신경이 다칠 수 있고, 더 심각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호흡 중추를 다치게 하면 평생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한다. 주변 동맥을 손상시키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물론 일찍 종양을 발견하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1∼2년마다 주기적으로 뇌 검사를 해야 한다. 홍 교수는 “뇌 MRI 검사만으로 대부분 판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뇌에 생긴 암은 뇌암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양성과 악성을 가리지 않고 뇌종양이라고 한다. 물론 악성 종양이 훨씬 위험하다. 다만 뇌에서 발생한 악성 종양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는 사례는 드물다. 뇌혈관 구조가 다른 장기의 혈관 구조와 다르기 때문이다.다른 장기에 생긴 양성 종양에 비하면 양성 뇌종양은 훨씬 위험하다. 양성 종양이 뇌 안의 작은 신경이라도 손상시킬 경우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양성 뇌종양이라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게 옳다. 뇌종양은 병기 구분 방식도 다르다. 다른 암의 경우 크기나 전이 여부를 감안해 1~4기로 나눈다. 반면 뇌종양은 양성일 때 1, 2등급으로, 악성일 때 3, 4등급으로 분류한다. 양성 종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뇌수막종이 가장 흔하다. 뇌수막종은 뇌와 척수를 보호하는 막에 생긴 종양이다. 일찍 발견하고 제대로 조치를 취하면 거의 대부분 완치로 이어진다. 다만 어느 부위에 발생했느냐에 따라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장규순 씨(53)가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 ●“백신 이상 증세, 뇌종양이 원인”장 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 자영업을 하면서 충분히 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도 나름대로 건강관리를 꾸준히 했다. 저녁에 미용실 문을 닫고 난 후 동네 하천을 따라 1만 보 정도를 걸었다. 국가건강검진 결과도 대체로 좋았다. 혈압과 혈당 수치도 모두 정상이었다. 40대 중반을 넘긴 2018년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내과에서는 위염이라고 했다. 두 달 동안 약을 먹었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1년 가까이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다. 여전히 체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엔 목이 아파왔다. 정형외과에 갔다. 목 디스크일지도 몰라 컴퓨터단층(CT) 검사를 받았다. 정상이었다. 통증 주사를 맞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그러다 변비 증세까지 생겼다. 대장암 검사 결과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처럼 3년 동안 병원을 전전했지만 원인은 끝내 찾지 못했다. 그동안 무기력, 피로, 불면증, 통증은 더 심해졌다. 팔이 아파서 손님 머리를 만지는 것조차 힘들었다. 특히 손발이 저리고 등이 시려왔다. 차마 미용실을 관둘 수는 없어 휴일을 이틀로 늘렸다. 2021년 10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백신 접종 후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졌다. 새벽에 화장실에 갔다가 극심한 두통이 나타났다. 장 씨는 “목부터 배꼽까지 감각이 없었다. 뇌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며 당시 상태를 떠올렸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응급실로 직행했다. 백신 부작용일 것이라 생각했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지난 3년 동안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신경과 질환일 것 같다고 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했다. 의사는 깜짝 놀라며 “심각하다. 얼핏 보기에 종양이 뇌신경 거의 대부분을 막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는 당장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8시간의 고난도 수술로 완치서울아산병원 진료를 이틀 앞둔 2022년 1월의 새벽, 장 씨는 침대에서 일어나다 다시 쓰러졌다. 의식은 있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지역 의료원의 응급실을 거쳐 곧바로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장 씨는 뇌와 목뼈(경추)가 연결된 부위, 즉 뇌간에서 뇌수막종이 자라고 있었다. 진료를 맡은 홍창기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양성 종양이었지만 뇌간의 80%가 막혀 있었다. 그대로 두면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수술을 서둘러야 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뇌수막종 수술 자체는 아주 어렵지 않다. 다만 장 씨의 경우는 고난도의 수술이 예상됐다. 음식을 먹고, 말을 하고, 호흡을 하는 등 생존과 관련된 신경과 여러 혈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부위였기 때문이다. 수술 도중에 이 신경을 훼손하면 영구적인 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수술은 신중하게 진행됐다. 먼저 귀 뒤쪽으로 10㎝ 정도를 절개했다. 근육 조직을 하나씩 들어내고, 노출된 뼈에 구멍을 냈다. 수술 도구가 들어가고 종양을 꺼낼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작업에만 6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종양을 제거하고 끄집어내는 데는 2시간이 걸렸다. 장 씨는 수술이 끝나고 3일 만에 걸었고, 1주일 만에 퇴원했다. 손발 저림, 통증, 불면증 같은 증세는 약해지다가 퇴원할 무렵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장 씨는 “얼굴에 손을 대봤는데 따뜻하더라. 몇 년 만에 느껴보는 온기였다. 기적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라고 말했다. 뇌수막종 수술 후에는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미세 종양을 없애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장 씨는 수술하고 3개월 후 시행한 뇌 MRI 검사에서 종양이 완전히 제거됐음이 확인됐다. 덕분에 방사선 치료 없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요즘에는 6개월마다 추적 관찰 중이다. 수술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건망증이 생겼고, 행동도 다소 느려졌다. 그래도 1년 정도가 지난 후 이런 증세는 상당히 개선됐다. 홍 교수는 “장 씨처럼 긍정 마인드가 강할수록 후유증도 적고, 회복도 빠르다”고 말했다. ●뇌수막종 증세 복합적으로 나타나장 씨는 무려 3년 동안 뇌수막종에 따른 증세로 큰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뇌수막종일 거라고는 의심하지 않았다. 홍 교수는 “장 씨처럼 여러 증세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바람에 뇌수막종을 일찍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말했다. 대체로 두통이 심하면 ‘뇌에 종양이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꼭 그렇지는 않다. 두통과 함께 구토나 메스꺼운 증세가 나타난다면 뇌종양보다는 뇌출혈이 원인일 경우가 더 많다. 뇌종양이 생겼다면 마비나 저림과 같은 신경학적 증세가 더 많이 나타난다. 장 씨도 양쪽 손발이 심하게 저렸다. 다만 실제로는 왼쪽이나 오른쪽 중 한쪽에서만 이런 증세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 홍 교수는 “장 씨는 뇌간의 중앙부에 종양이 생겼는데, 이는 드문 사례에 속한다. 대체로는 한쪽으로 치우쳐 종양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증세도 한쪽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마비, 저림 외에도 사물이 겹쳐 보이는 복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시야가 좁아지기도 한다. 갑자기 청력이 떨어진 것처럼 소리가 잘 안 들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도 대체로 한쪽 눈과 귀에서만 증세가 나타난다. 이와 함께 예전보다 더 사레가 들린다면 이 또한 뇌종양의 원인일 수 있다. 장 씨는 소화불량, 무기력증 등 온갖 증세를 다 겪었다. 이 또한 뇌종양에 따른 증세일까. 홍 교수는 “소화불량은 뇌종양과 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장 씨의 경우 소화불량 증세가 가장 먼저 나타나는 바람에 장 씨 본인이나 의사도 뇌수막종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고, 그 결과 발견이 늦어졌을 거라고 추정했다. 장 씨는 불면증도 심하게 앓았다. 이 또한 뇌수막종과는 무관한 것 같다고 홍 교수는 판단했다. 악성 종양의 경우 불면증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양성 종양일 때는 그런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뇌수막종 부위 따라 치료법 달라뇌수막종이 발생하는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이 생기는 경향이 있지만 꼭 나이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에는 30대의 젊은 층에서도 종종 발생한다. 통계적으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2배 정도 많이 발생한다. 어느 위치에 발생하느냐에 따라 치료 난이도가 결정된다. 뇌의 표면에 발생할 경우 수술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때로는 수술하지 않고 관찰만 할 수도 있다. 종양이 작다면 방사선 치료(감마나이프)로만 끝낼 수도 있다. 하지만 장 씨처럼 뇌 안쪽 깊숙한 곳에 종양이 생겼을 경우 대처법은 달라진다. 장 씨의 뇌수막종 크기는 2.1㎝였다. 홍 교수는 “이 정도면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그대로 뒀을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령 목을 뒤로 잘못 젖혔다가 사지마비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장 씨처럼 종양이 계속 자라고 있다면 즉각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홍 교수는 “이런 경우 방치한다면 종양이 껌딱지처럼 뇌간에 착 달라붙어 버린다. 그 때는 아주 작은 상처만 나도 신경이 다칠 수 있고, 더 심각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호흡 중추를 다치게 하면 평생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야 한다. 주변 동맥을 손상시키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물론 일찍 종양을 발견하면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1~2년마다 주기적으로 뇌 검사를 해야 한다. 홍 교수는 “뇌 MRI 검사만으로 대부분 판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2021년 12월 임연숙 씨(65)는 난소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여겼다. 발견 당시 3기였던 데다 난소암이 워낙 치료가 어려운 암이기 때문이다. 임 씨의 수술은 난소암 분야에서 꽤 명성이 높았던 박종섭 전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집도했다. 하지만 박 전 교수는 완치 판정을 내리기 전에 정년퇴직했다. 그는 현재 바이오 기업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그의 뒤를 이어 제자인 이성종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임 씨의 진료를 맡았다. 완치 판정을 내린 의사가 이 교수다. 임 씨는 두 사람 모두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긴다고 했다. 두 사람을 함께 볼 기회가 없던 차에 마침 연락이 닿아 한자리에 모였다. 임 씨의 난소암 투병기를 들어봤다.● “암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해”2016년 12월 무렵. 임 씨는 모처럼 만에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즐거웠지만 아랫배가 불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벼운 비뇨기계 질환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난소암으로 인한 증세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이런 증세는 20일 동안 지속됐다. 소변을 보고 난 후에도 찜찜함이 남았다. 결국 동네 산부인과를 찾았다. 초음파 검사를 하던 의사의 입에서 “어이쿠”라는 소리가 나왔다. 암인 것 같다고 했다. 큰 병원을 가 보라는 소리에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임 씨는 집에 오자마자 펑펑 울었다. 이후 딸이 침착하게 의료진을 물색했다. 평판과 수술 실적 등 공개된 정보는 다 찾아봤다. 딸은 박 전 교수를 선택했다. 암이 아니길 바라며 진료실에 들어갔다.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이미 복강 전체로 암이 퍼져 있었다. 임 씨는 1년 전 건강 검진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암으로 의심되는 혹은 발견되지 않았다. 1년 만에 난소암이 3기가 될 정도로 악화된 것이다. 박 전 교수는 “난소암은 성장이 빠른 암이다. 1년 만에 암이 퍼질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3개월 만에 훌쩍 자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난소암의 경우 수술 치료가 표준이다. 하지만 환자의 건강 상태가 수술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라면 항암 치료부터 먼저 한다. 다행히 임 씨의 건강 상태는 수술을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판단됐다. 박 전 교수는 곧바로 수술에 들어가기로 했다.● 11시간 대수술 후 항암 치료수술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임 씨는 외래 진료를 받고 10일 만에 수술대에 올랐다. 박 전 교수는 “수술을 미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또한 난소암 환자 수술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병원 원칙에 따라 수술을 서둘렀다”고 말했다. 다른 외래 환자 진료를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임 씨 수술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배를 열어 보니 상황은 아주 좋지 않았다. 주변 장기와 혈관에까지 암이 깊이 침투해 있었다. 난소만 제거한다고 해서 끝나는 수술이 아니었다.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암의 뿌리를 뽑으려면 주변의 장기를 모두 들어내야 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 재발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대수술이었다. 난소, 림프절, 방광, 대장을 다 절제했다. 자궁도 절제해야 한다. 하지만 임 씨가 30대 후반에 자궁근종 제거를 위해 자궁을 이미 절제한 상태였기에 추가 조치는 하지 않아도 됐다. 혈관에 침투한 종양도 제거했다. 당시 수술실에는 박 전 교수뿐 아니라 혈관외과, 대장항문외과, 비뇨기과의 교수들이 모두 들어갔다. 한 교수가 수술을 끝내면 다른 교수가 이어 집도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수술 시간만 11시간이 소요됐다.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던 임 씨 남편 안병도 씨는 “수술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잘못되는 건 아닌가 걱정하며 마음을 졸였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보통 난소암의 경우 6회 항암 치료가 표준 치료법이다. 하지만 임 씨는 항암 치료를 추가로 3회 더 받아야 했다. 6회 치료가 끝난 후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했는데 미세하게 종양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항암 치료도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입맛이 뚝 떨어졌다. 너무 아플 때는 남편을 붙들고 다리를 잘라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다행히 네 번째 항암 치료 때부터는 어느 정도 적응을 하면서 잘 버텨냈다. 2017년 7월 말 항암 치료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 “의사 격려가 환자에겐 큰 힘 돼”암 선고를 받으면 대부분 공포에 휩싸인다. 임 씨와 남편도 그랬다. 두 사람은 서로 붙들고 펑펑 울었다. 그런 부부에게 박 전 교수는 “두 분이 오래오래 살 수 있게 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위로했다. 부부는 “그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수술하고 2년이 지났을 때 박 전 교수는 완치를 확신했다고 한다. 난소암 재발은 대부분 2년 이내에 나타나는데 임 씨는 그럴 만한 조짐이 없었다는 것이다. 임 씨는 “당시 박 전 교수가 ‘내 환자는 재발이 적다’고 말했다. 비로소 내가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론 암 재발에 대한 걱정은 완치 후인 지금도 남아있다. 6개월 혹은 1년마다 추적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는데 그때마다 잔뜩 긴장이 된다. 완치 판정을 내린 이 교수는 그런 임 씨에게 “재발 위험이 아주 낮으니 건강 관리에만 신경 쓰시라”고 조언했다. 국내외 통계를 보면 난소암의 경우 7년 동안 재발하지 않으면 재발 확률이 뚝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 임 씨는 비로소 안심이 된다. 임 씨는 “의사의 자신감만큼 환자에게 힘이 되는 격려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암 완치 이후에도 불편함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손발에 저림 증세가 간혹 나타난다. 항암 치료 부작용이다. 이 교수는 “항암 치료를 하다 보면 말초 신경이 죽을 수가 있다. 이 경우 손과 발이 저리고 살짝 마비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 부작용은 평생 안고 가야 한다. 임 씨는 “그래도 생명을 구한 것에 비하면 이 정도의 부작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족 간의 정은 더 끈끈해졌다. 남편 안 씨는 아내가 투병하는 동안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늘 조심했다.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있기 위해 좋아하던 골프를 6년 동안 완전히 끊었다. 자식들도 늘 엄마의 안색을 살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커졌다. 안 씨는 요즘도 매일 밤 잠자기 전 30분씩 아내의 저린 발을 주물러 준다. 박 전 교수는 “암을 극복한 후 가족 간에 정이 더 깊어지고 삶의 질도 좋아진 사례가 많다”고 했다.● 정기 검사가 최고 예방법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0년 암에 걸린 국내 여성 환자는 총 11만7334명이다. 유방암(2만4806명)이 21%를 차지하며 1위를 기록했다. 난소암 신규 환자는 2947명으로 채 3%가 되지 않는다. 발병률 순위로만 보면 10위권 밖이다. 하지만 치료가 매우 어려운 암으로 꼽힌다. 난소암 사망률은 8위다. 생존율이 낮은 이유는 암을 늦게 발견하기 때문이다. 다른 암도 비슷하지만 난소암은 초기 증세가 거의 없다. 보통은 복통이나 복부 팽만감, 소화불량, 질 출혈 등의 증세가 있지만 이마저도 암이 꽤 진행된 후 나타날 때가 많다. 사실 난소암을 1기에 발견하면 5년 생존율(완치)은 90%에 이른다. 하지만 난소암 환자 10명 중 8명꼴로 3기 혹은 4기에 암을 발견한다. 임 씨 또한 3기에 병을 발견했다. 다행히 완치됐지만 이 경우 완치율은 30∼40%로 뚝 떨어진다. 따라서 다른 어떤 암보다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6개월 혹은 1년 단위로 검사를 하는 게 좋다. 골반 초음파 혹은 ‘CA125’라는 종양표지자(암을 의심할 수 있는 지표) 검사를 한다. CA125 수치가 mL당 46U 이내라면 정상 범위이지만 과도하게 높게 나타나면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난소암의 원인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임신과 출산이 난소암 위험도를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저출산이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는 뜻이다. 비만도 난소암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지적된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봄기운이 완연해지면서 피곤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른하고 무기력하며 낮에 졸음이 쏟아진다. 때로는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른바 춘곤증이다. 춘곤증은 의학적으로는 질병이 아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피로감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이행하면서 낮이 길어지고 기온이 올라간다. 겨우내 위축돼 있던 우리 몸도 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신진대사는 더 활발해지고 에너지 소비량도 늘어난다. 그 부작용으로 피로가 쌓이는 것이다. 춘곤증에 의한 피로는 일시적이다. 우리 몸이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면 2~3주 이내에 대부분 사라진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피로감이 지속되며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피곤하다면 춘곤증이 아니다. 만성피로일 가능성이 높다. ‘병이 되는 피로’인 것이다. 만성피로는 무기력증 같은 육체적 증세부터 우울감이나 패배감 등 정신적 증세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원인 또한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해 ‘족집게 의사’라 해도 정확히 짚어내기가 쉽지 않다. 김선미 고려대 구로병원 가정의학과 교수에게 만성피로 대처법을 들어봤다. ●만성 피로, 원인 질환부터 찾아야 피로는 지속 기간에 따라 크게 세 단계로 나눈다. 1개월 미만이라면 급성 피로로 분류한다. 춘곤증을 굳이 의학적으로 분류하자면 급성 피로에 가깝다. 조금만 신경을 쓰면 이런 피로는 쉽게 극복된다. 피로가 나타나는 기간이 1개월 이상~6개월 미만이라면 지속성 피로라고 하는데, 이 경우에도 극복은 어렵지 않다. 이와 달리 만성피로는 진단과 치료 모두 어렵다. 보통 6개월 이상 극심한 피로가 지속되거나 반복되는 경우에 만성피로로 진단한다. 만성피로 환자의 70% 정도에서 질병이나 심리적 문제가 발견된다. 만성피로를 해결하려면 원인 질환부터 치료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질병이 피로를 유발한다. 돌려 말하자면 만성피로는 질병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신호다. 하지만 피로의 강도나 양상만 따져서는 어떤 질병에 걸렸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피로에 동반하는 증세를 살펴야 한다. 어떤 증세를 동반하느냐에 따라 개괄적이나마 원인 질병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간 기능이 많이 떨어졌을 때는 피로감과 함께 황달 증세가 종종 나타난다. 때로는 오른쪽 배에 통증이 생기면서 가려움증도 동반한다. 콩팥 기능에 이상이 생겼다면 붓는 증세가 동반하거나 소변이 잘 안 나올 수 있다. 갑상샘(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라면 피로하면서도 불안과 초조감이 커진다. 체중이 빠질 수도 있다. 반대로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라면 푸석한 느낌이 많이 들고 체중이 늘면서 추위를 느끼게 된다. 당뇨병이 원인이 돼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경우 물을 많이 마시며 덩달아 소변 양도 많아지는 특징이 있다. 체중이 빠질 수도 있다. 빈혈이 원인이라면 피곤하면서도 어지럼증이 생기며 두통이 나타날 수도 있다. 불면증이 원인이 된 피로는 그나마 해결책이 명확하다. 제대로 잠을 잘 수 있게 되면 피로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피로에 동반하는 증세로 의심할 수 있는 질병동반 증세의심 질환발열, 야간 발한감염질환 잠복성 종양 림프종체중 감소감염질환, 우울증, 악성종양, 갑상선질환, 섭식장애호흡 곤란심부전증, 빈혈, 만성 폐쇄성폐질환, 불안증관절통, 관절경직류마티스성 관절염, 바이러스성 질환흉통관상동맥질환, 역류성 식도질환, 불안증수면 장애불안증, 우울증, 수면무호흡증설사염증성 장질환, 흡수 장애, 과민성 장증후군두근거림부정맥, 갑상선기능항진증, 불안증●‘육체적 피로’ vs ‘정신적 피로’ 만성 피로의 원인 질환 중에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도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정신 건강 문제가 원인인 환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40대 초반 미혼 여성 A씨가 그런 사례다. A씨는 6개월 전부터 피로감이 심해졌다. 최근에는 가슴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직장을 다니기 힘들 정도까지 상태가 악화돼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심전도, 갑상샘(갑상선), 간, 콩팥, 폐 검사 등을 진행했지만 질병을 발견할 수 없었다. 김 교수가 A씨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봤다. A씨는 혼자 살고 있었다. 음식을 잘 챙겨 먹지 않았다. 운동도 거의 하지 않았다. 외출 횟수도 적었다. 우울과 불안 증세도 보였다. 김 교수는 항우울제를 처방하면서 생활 습관 개선을 권했다. 한 달 후 A씨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속에 가스가 차는 느낌이 들어 약을 거의 먹지 않았고 생활 습관도 개선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 결과 피로감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우울과 불안 증세도 그대로였다. 만성피로 치료에 실패한 셈이다. 김 교수는 정신건강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 A씨를 정신건강의학과로 보냈다. 사실 정신건강에서 비롯된 ‘정신적 만성 피로’는 신체적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만성 피로’와 양상이 조금 다르게 나타난다. 일단 육체적 피로의 경우 스트레스와 무관할 때가 많다. 또한 본인이 가장 먼저 피로를 자각한다. 증세가 나타나면 2개월 안에 알아차린다. 피로는 아침보다는 오후나 저녁에 더 심한 경향이 있다. 피로감이 심해지면 주변에서 “병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을 정도로 피곤해 보인다. 정신적 만성 피로의 경우 스트레스와 큰 관련이 있다.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생기기 쉽다는 뜻이다. 또한 피로감은 아침에 가장 심하다. 증세가 나타나고 4개월 이상 지속돼도 자각하지 못할 수 있다. 증세가 좋아졌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한다. 이 경우에도 병이 있는 것처럼 안색이 나빠진다.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보다는 주변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먼저 알아볼 때가 많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정신적 만성 피로와 육체적 만성 피로의 비교구분정신적 만성피로육체적 만성피로피로 증세를 인식하는 주체가족이나 친구환자 본인주된 결핍 내용‘욕망’과 관련됨‘능력’과 관련됨스트레스와의 관련성관련 있음관련 없음증세가 나타나는 기간4개월 이상 지속 혹은 재발2개월 미만증세가 심해지는 시간아침에 심해짐오후나 저녁에 심해짐증세 경과악화와 호전 반복비슷한 상태로 진행가족들의 상황스트레스를 많이 받음환자를 많이 지지함● 만성 피로 극복, 끈기에 달렸다 일반적으로 만성피로 환자가 병원에 가면 원인 질환부터 찾는다. 원인 질환이 발견되지 않으면 미네랄보충제나 항우울제를 먹으면서 생활 습관을 개선한다. 물론 약물 없이 생활 습관 개선만으로도 만성피로에서 탈출할 수도 있다. 단, 환자의 적극적인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50대 B씨와 C씨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50대 남성 B씨는 1년째 만성피로에 시달렸다. 새벽 1시 이전에 잠들지 못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검사 결과 질병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김 교수가 살펴보니 B씨는 체중이 90㎏으로 비만이었다. 또 평소 술을 많이 마셨다. 김 교수는 체중 감량, 절주, 수면 관리를 주문했다. B씨는 첫 달에 2㎏, 두 번째 달에 3㎏을 감량했고 술을 줄였다. 그 결과 따로 약을 먹지 않고도 피로감이 사라졌다. 50대 여성 C씨도 여러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도 6개월 이상 극심한 피로에 시달렸다. 김 교수는 C씨의 피로 또한 생활 습관에서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C씨는 1년 전부터 다이어트를 꾸준히 하고 있었다. 매일 2시간 이상 운동했고, 체중 증가를 우려해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과도한 운동과 단백질 결핍을 문제로 생각했다. 이 점을 지적하면서 운동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단백질을 넉넉히 섭취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이 점만 고쳤을 뿐인데, C씨는 한 달 만에 피로감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건강한 생활 습관이 피로 줄인다 대한가정의학회 ‘가정의학’ 교과서는 피로를 유발하는 요인으로 △스트레스 △우울과 불안 △통증 △염증 △운동 장애 △수면 장애 △대사 장애 △에너지 불균형 △빈혈 △약물 △장기 이상 △감염 △종양 △항암 치료 등을 꼽았다. 하지만 전체 만성피로 환자의 30% 정도는 이런 원인 질환을 찾지 못한다. 이 경우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진단하는데, 뾰족한 치료법은 없다. 결국 애초에 피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쉽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훌훌 떨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잠은 최대한 잘 자고, 편식하지 않으며, 규칙적으로 유산소 운동도 해야 한다. 무엇이든 과도하면 몸에 무리가 간다. 특히 C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나친 다이어트는 극심한 피로를 유발한다. 김 교수는 “운동을 심하게 하면 젖산과 같은 산화물질이 몸에 쌓일 수 있어 되레 더 피곤함을 느낄 수 있다”며 “때로 과도한 운동은 콩팥과 같은 장기를 손상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적절한 강도로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피로감이 커지는 이유는 연령대별로도 다르다. 30, 40대의 경우 과도한 업무나 스트레스가 피로의 원인일 때가 많다. 50대 후반부터 60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체력 저하가 피로의 원인일 수 있다. 또한 이 나이 때부터는 질병에도 취약해진다. 따라서 50대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 장기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26주 정도 된 때였다. 2017년 1월 초 가슴에서 티끌만 한 알갱이가 만져졌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박길숙 씨(42)는 첫째 아이를 낳고 젖몸살을 심하게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혹시 그 영향 때문에 생긴 증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알갱이는 빠른 속도로 커졌다. 3주 만에 방울토마토만 한 혹이 가슴에 들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순한 젖몸살 후유증은 아닌 것 같았다. 동네 산부인과를 찾았다. 초음파 검사를 하던 의사가 “놀라지 마시고 큰 병원에 빨리 가 보시라”고 권했다. 암인 것 같다고 했다. 갑자기 앞이 컴컴해졌다. 임신부 박 씨의 유방암 투병은 그렇게 시작됐다. ●태아 위험 시기 넘겨 항암 치료 가능 임신 29주 차 때 박 씨는 서울대병원 유방센터를 찾았다. 검사 결과 오른쪽 유방에서 2∼3㎝ 크기의 암이 발견됐다. 림프절로 전이됐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검사 과정에서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료진의 임상 경험이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한별 유방내분비외과 교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전이가 없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박 씨는 ‘림프절 전이가 없는 2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유방암을 세부적으로 따지면 여러 유형이 있다. 박 씨의 경우 두 종류의 호르몬수용체와 HER2(사람상피세포증식인자수용체 2형)가 모두 음성이었다. 이런 암을 삼중음성유방암이라고 한다. 암 세포가 빨리 자라며 독한 것이 특징이다. 항암 치료를 먼저 시행해 암 세포 크기를 줄인 후 수술하는 게 표준 치료법이다. 문제는 배 속 태아에게 미칠 영향이었다. 다행히 임신 29주라 항암 치료가 가능했다. 보통 임신 13주까지를 임신 1분기로 본다. 이 기간은 태아 기관이 형성되는 시기라 항암 치료가 어렵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항암 치료를 할 것이냐 아이를 살릴 것이냐를 놓고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 임신 14주 이후에는 항암 약물이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작아진다. 태아를 살리면서도 항암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박 씨는 곧바로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3주 걸러 한 번씩, 두 차례 병원을 찾아 반나절 동안 항암 주사를 맞았다. 그 사이에 만삭이 됐다. 3월 박 씨는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걱정과 달리 아기는 건강했다. 몸무게도 정상이었다.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항암-수술-방사선 치료 모두 이겨내암과의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산후 조리를 어느 정도 마친 후 다시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추가로 다섯 번의 항암 치료를 이겨냈다. 치료 효과는 무척 좋았다. 3㎝ 크기의 암 덩어리가 1㎝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 후 한 번 더 항암 치료를 받았다. 이 교수는 “그때 이미 완치를 확신했다. 수술에 들어가기도 전에 암 세포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암 세포가 없는 상태를 ‘완전 관해’라고 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때 이미 박 씨는 완전 관해 상태였다는 것이다. 8월 유방 부분 절제 수술을 시행했다. 유방 위쪽 2.5㎝를 절개한 뒤 암이 있던 부위를 들어냈다. 특히 미용에 신경을 써야 하는 수술이다. 이 교수는 유두 선을 따라 절개해 흉터가 잘 보이지 않도록 했다. 암의 전이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림프절 조직 일부도 떼어냈다. 병리과 조직 검사 결과 예상했던 대로 암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물론 전이도 없었다. 완전 관해가 확인된 것이다. 이어 방사선 치료를 19회 진행했다. 유방암은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받는 게 표준 치료법에 속한다. 이 교수는 “진공청소기로 완전히 쓸어낸 후 스팀청소기로 다시 확인하는 절차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후 완치 판정만 기다리면 됐다. 그러다 2022년 8월 유방초음파 검사에서 다시 혹이 발견됐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직검사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는 양성 혹이었다. 박 씨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 교수는 “삼중음성유방암의 경우 5년 후 완치되면 거의 재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추적 관찰만 하고 있다. ●“가족 생각하며 암 이겨냈다”암을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박 씨는 첫째로 가족을 꼽았다. 동네 산부인과에서 암 의심 판정을 받았던 날 박 씨는 첫째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다 넘어지기까지 했다. 박 씨는 “그때 완전히 넋이 나갔다”고 회상했다. 이후로도 한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식욕도 뚝 떨어졌다. 자신의 죽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배 속의 아기에게 미안했고, 아기가 어떻게 될까 두려웠다. 박 씨는 이 교수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항암 치료에 들어가기 전 그 짧은 기간에 체중이 5㎏이나 빠졌다. 이 교수는 “실제로 암 환자들의 두려움이 가장 큰 시기가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라고 말했다. 치료를 시작한 후에는 오히려 정신이 바짝 들었다. 아기를 위해서, 남편과 큰아이, 그리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사히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 다시 힘든 항암 치료를 할 때도 버텼다. 입맛이 없어도 한 끼를 굶지 않고 다 먹었다. 덕분에 체력도 다시 좋아졌다. 산후조리원에 있다가 항암 치료를 받으러 갈 때에도 “이겨낼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둘째, 박 씨는 이 교수와 소통했다. 박 씨는 “의료진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있었다. 이 교수의 치료 지침을 믿고 그대로 따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 또한 “박 씨가 믿고 따라줬기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씨의 적극적인 투병 자세도 치료에 큰 도움이 됐다. 이 교수는 “밝은 성격의 환자일수록 치료 효과가 실제로 좋다. 박 씨도 늘 유쾌하게 투병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암을 이겨낸 후 한동안 유방암 환자 카페에 둘째 아이 사진을 올렸다. 동병상련인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박 씨는 “내 스토리가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방암 막으려면 자가 진단부터 철저히유방암이 발생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호르몬 변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저출산, 모유 수유 감소, 서구화된 식습관, 빨라진 초경과 늦어진 폐경으로 인해 호르몬 변화가 일어나고, 유방암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유방암은 세계적으로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는 암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7, 8명 중 한 명꼴로 유방암이 발견된다. 국내의 발생 비율은 이보다 덜한 25∼30명 중 한 명꼴이지만 증가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치료 성적이 꽤 좋다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유방암 5년 생존율은 90%를 넘어선다. 검진을 통해 조기에 발견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암 검진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92%가 0∼2기였다. 덕분에 치료 결과가 좋다”고 말했다. 유방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교수는 “아쉽게도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여러 연구 결과 유방이 처음 발달하는 사춘기 때의 식습관이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인스턴트 음식이나 가공식품, 튀긴 음식을 피할 것을 당부했다. 결국 검진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2년마다 유방 촬영을 하는 게 좋다.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이 나오면 6개월 혹은 1년마다 유방 촬영과 유방 초음파 검사를 받는 게 좋다. 평소에 자가 검진을 자주 해야 한다. 아직 폐경 전이라면 월경이 끝나고 3∼4일이 지나서, 폐경 후라면 매달 하루를 정해 유방 전체와 겨드랑이를 손으로 만져 혹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이 교수는 “박 씨 또한 이런 자가 검진을 통해 암을 발견한 사례”라며 자가 검진을 적극 권장했다.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