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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의 절정기이자 1년 중 가장 더운 시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계절에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휴가지에 가져갈 만한 음반을 추천한다면?” “무더위를 식혀줄 만한 음악이 있다면?”입니다. 두 질문의 결은 조금 다르지만, 두 질문에 대해 제가 가장 많이 내놓는 답은 “슈베르트의 즉흥곡집 작품 90의 네 곡을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슈베르트는 피아노 독주곡인 즉흥곡집을 두 곡 썼습니다. 작품 90과 작품 142 중에서 특히 90에 실린 네 곡은 제게 ‘물’과 관련한 상념을 떠오르게 합니다. 네 곡 중 두 번째 곡은 숲 속의 개울을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연상하게 합니다. 세 번째 곡도 ‘흐름’을 느끼게 하지만 두 번째 곡보다 더 깊고 유장하며 무겁습니다. 넓은 강 위의 보트에 올라타 유유히 흐르는 강의 흐름을 조망하는 느낌이랄까요. 네 번째 곡은 가장 높은 음역에서 멜로디가 진행되며 청량하고도 자그마한, 동화적인 인상을 줍니다. 마치 빗물이 숲으로 떨어져 나무 잎사귀에 닿아 굴러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한 곡씩 설명하다 보니 첫 번째 곡을 빠뜨렸네요. 이 곡에도 ‘물’이 주는 인상을 적용해 보자면, 크고 작은 부피로 담겨 있거나 고여 있는 물들을 차례로 보는 듯한 상상을 줍니다. 물잔에, 처마 앞의 절구에, 그리고 연못에 가만히 담겨 흔들리는 물. 슈베르트가 이 네 곡에 대해 특별한 제목이나 설명을 붙인 것은 없습니다. 앞에 쓴 ‘물’의 상상들은 어디까지나 제 머리에서 일어난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청신한 네 곡이 더위를 식혀줄 수 있는 좋은 재료들이라는 점은 틀림없습니다. 바람이 솔솔 부는 대청마루에 앉아, 또는 산바람이 불어오는 능선에서 이어폰을 끼고, 또는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 침대 옆에 오디오를 켜고, 이 또랑또랑 구르는 피아노 선율들을 듣다 보면 무더위도 얼마간 달아날 듯합니다. 여름에 야외에서 라이브 피아노 연주로 이 곡집을 들을 기회가 있다면 참 좋겠는데 말이죠.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타오르는 태양의 끝없는 열기 아래/사람도 가축도 축 늘어졌다/소나무마저 바싹 말라 간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집 ‘사계’ 중 ‘여름’에 붙은 소네트(짧은 시)입니다. 요즘 날씨를 묘사한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저께까지 제가 있었던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발디가 살았던 베네치아의 대운하도 강렬한 햇살에 하얗게 빛났고, 관광객들은 바닷바람으로 부족해 연신 손부채질을 해댔습니다. 비발디의 작업환경은 다른 작곡가와 크게 달랐습니다. 그는 신부(神父)였고 베네치아의 보육원 ‘피에타’에서 일했습니다. 당시에도 관광지로 이름났던 베네치아에는 부모를 알 수 없는 아기가 바구니에 담겨 운하에 둥둥 떠내려 오는 일이 많았고, 베네치아 정부는 이런 아이들 중 여자아이들을 피에타에서 연주가로 키웠습니다. 이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비발디가 맡았죠. 이 피에타의 합주단과 합창단은 관광상품으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비발디의 작품 중에 유독 독주자의 기교를 한껏 발휘하는 협주곡과 독창자가 빛나는 교회용 합창곡이 많았던 것은, 개개인이 부각되는 무대를 가짐으로써 이 ‘버림받았던’ 여성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키려는 배려 때문이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비발디 신부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비발디가 세상을 떠난 날도 더운 여름이었습니다. 타는 이탈리아의 하늘 아래서는 아니었습니다. 만년에 그는 유럽 각지에서 오페라를 공연해 성공하려는 의욕을 가졌습니다. 그러던 중 오스트리아 황제 겸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6세가 그를 빈으로 초청했습니다. 빈으로 향하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황제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빈에 도착한 그에게 고관들은 “돌아가신 선왕의 일이라서 난 모르겠는데…”라며 손을 내저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도 준비하지 못한 그는 고열에 시달리다가 1741년 7월 28일 6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그의 ‘사계’ 전곡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풍요한 느낌의 ‘가을’ 세 개 악장까지 들으면 무더위도 조금은 가신 듯 느껴질 것 같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다행히 달밤이로군요. 아가씨 잠깐, 내가 누구고 뭘 하는 사람인지 들어 줄래요?”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 1막. 시인 로돌포 역 아마디 라가의 노래처럼 둥실 밝은 달이 빛났다. 무대조명이 아닌 실제 달이 예쁘게 무대와 그 뒤편 호수를 비추고 있었다. 16일 밤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서부 마사추콜리 호숫가에 면한 ‘토레델라고 푸치니’ 마을. 호숫가에 설치한 무대를 배경으로 열리는 ‘푸치니 페스티벌’ 개막 이틀째 밤이었다. 푸치니는 1924년 후두암으로 투병 중 리브레토 작가 포르차노에게 “나중에 야외에서 내 오페라가 공연되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죽고 6년 뒤 포르차노의 주도로 푸치니가 생애 대부분을 살며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등 걸작 오페라를 쏟아냈던 호숫가에서 ‘라보엠’ 공연이 열렸고, 1949년부터는 매년 열리는 야외 오페라 축제가 되었다. 매년 7, 8월 푸치니 작품 네 작품씩을 돌아가며 공연한다. 전설적인 테너 마리오 델 모나코는 여기에서 오페라 ‘외투’로 은퇴 공연을 했고, 바리톤 티토 고비는 이곳에서 연출가로 데뷔했다. ‘스리 테너’의 일원이었던 플라시도 도밍고는 이곳에서 종종 지휘봉을 든다. 호숫가의 무대 반대편에 설치된 객석 4000석은 공연 시작 전에 뒤편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가득 메워졌다. 길거리의 포스터 한 장까지 사실적으로 1840년대 파리를 재현한 무대는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몰입감을 선사했다. 파비오 마스트란젤로가 지휘한 이날 무대에서 가장 기대를 모은 인물은 여주인공 미미 역의 소프라노 피오렌차 체돌린스였다. 밀라노 라스칼라를 비롯한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푸치니의 히로인 거의 모두를 노래하고 있는 주인공이다. 윤곽이 뚜렷한 이목구비와 큰 키, 약간 낮게 위치한 공명점은 가녀린 미미의 이미지와 맞지 않았지만 그는 낙차 큰 강약 대비와 자유로운 음색 전환으로 호소력 있는 미미를 전달했다. 1막을 마무리하는 높은 C음에서 순간적으로 소리가 꺾여 객석에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상대역인 시인 로돌포 역의 테너 아마디 라가는 맑은 음색과 순진한 이미지로 어필했지만 표현의 세공은 부족했다. 극사실적으로 정성을 들인 무대에 비해 무대 진행은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 콜리네가 계단을 구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두 연인이 사랑을 싹틔우는 상징인 ‘꺼진 촛불’ 장면에선 촛불이 꺼지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는 1막 초반 크고 작은 삐걱거림을 내보였지만 두 연인이 만나기 직전 제 컨디션을 되찾았다. 4막, 죽은 미미를 애도하는 전 관현악의 절절한 화음이 잦아들고, 고요한 호반은 갈채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다음 날인 17일 밤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인 베로나의 로마시대 야외경기장에서 11년 만에 베로나 오페라 축제의 상징과도 같은 베르디 ‘아이다’가 공연됐다. 대구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겸 푸치니 고향 루카의 질리오 극장 음악감독도 맡고 있는 줄리안 코바체프가 지휘봉을 들어 특히 한국인 관객들의 많은 환호를 받았다.토레델라고(이탈리아)=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이탈리아 북부를 여행하면서 오페라의 거장 주세페 베르디(1813∼1901)와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자취를 구석구석 누비고 있습니다. 베르디는 당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던 악보 출판사이자 오페라 기획사였던 ‘카사 리코르디’와 계약을 맺고 있었고, 나이가 들어가는 베르디가 신작 발표 수를 줄여가자 애가 탄 카사 리코르디는 그의 뒤를 잇는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는 데 발 벗고 나섰습니다. 1883년 우수한 성적으로 밀라노 음악원을 졸업한 푸치니는 딱 맞는 후보로 보였습니다. 이렇다 할 성과가 없어도 카사 리코르디는 눈 딱 감고 푸치니를 후원했으며, 10년 뒤엔 결국 푸치니의 세 번째 오페라 ‘마농 레스코’가 히트를 거뒀고 이후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이란 초대형 연타가 터졌습니다. 사장 줄리오 리코르디의 안목과 인내가 결실을 거둔 것입니다. 그렇지만 베르디의 뒤를 이을 이탈리아 오페라 대표 거장 후보로 푸치니가 일찌감치 ‘단독 추대’ 된 것은 아닙니다. 카사 리코르디의 라이벌인 손초뇨사가 밀었던 마스카니가 있었고, ‘팔리아치’로 성공을 거둔 레온카발로가 있었으며, ‘안드레아 셰니에’의 조르다노, ‘아를의 여인’과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로 성공을 거둔 프란체스코 칠레아(1866∼1950) 등 라이벌이 줄줄이 있었습니다. 이들 중 조르다노에겐 ‘격정파’, 칠레아에겐 ‘서정파’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조르다노 오페라의 주인공들은 시인이자 혁명가였던 셰니에처럼 격정으로 가득 찬 인물이 대부분이며, 칠레아의 오페라엔 ‘아를의 여인’ 남자 주인공 페데리코처럼 마음 약한, 시쳇말로 ‘유리 멘털’ 주인공이 많기 때문입니다. 페데리코는 마을 사람들이 약혼자를 놓고 떠벌리는 험담에 가슴앓이를 하다 결국 자살합니다. 23일은 칠레아의 탄생 150주년 기념일입니다. 마음 약했던 그의 오페라 주인공들처럼 칠레아도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며 웬만한 일은 양보하는 심성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배짱만 넘치는 사람보다는 마음 약한 사람이 많은 세상이 살기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보며, 그가 작곡한 ‘아를의 여인’ 중 아리아 ‘페데리코의 탄식’ 음반을 집어 들어 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밤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한낮의 뙤약볕과 온몸을 죄어드는 열기도, 밤이 되어 서늘한 바람이 불면 얼마간 잊을 수 있죠. 낮에 미뤄두었던 산책도 저녁 바람을 맞으며 나가게 됩니다. 모기가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참 좋겠는데요. 이런 계절을 위해 아껴두었던 ‘밤 음악’들을 꺼내듭니다. 모차르트는 여러 악장으로 된 ‘세레나데’를 여러 곡 작곡했습니다. 본디 세레나데라면 ‘저녁 노래’를 뜻하며, 이탈리아에서 연인의 창 앞에서 기타를 들고 부르던 사랑 노래이기도 합니다. ‘창밖’에 기원을 둔 장르인 만큼, 바로크 작곡가들은 북(타악기)과 나팔(금관악기)이 어울린 야외용 저녁 연주음악 세레나데를 발전시켰고 이 음악들은 대개 활활 타는 밝은 횃불 아래서 연주됐습니다. 이를 이은 모차르트의 세레나데들도 호젓한 저녁의 느낌과 함께 어딘가 터무니없이 밝고 강렬한 느낌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장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작은 밤 음악) K.525입니다. 작품 이름에는 ‘세레나데’라는 표현이 없지만, 독일어로 풀어쓴 제목에 이미 ‘세레나데’라는 점이 표현된 셈이죠. 이 곡을 즐겨 듣는 분이라면 역시 모차르트의 곡인 세레나데 6번 ‘세레나타 노투르나’(밤의 세레나데) K.239도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말러의 교향곡 7번 ‘밤의 노래’도 이런 세레나데의 전통에서 나온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차르트 시대에서 한 세기도 더 지나서 쓰였고, 80분에 이르는 엄청난 길이의 곡이지만 호젓한 밤의 느낌에 이어 마지막 악장에선 터무니없이 강렬한 느낌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함께 연상되는 점이 많습니다. 교향곡으로서는 특이하게 기타와 만돌린이 등장하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세레나데 전통이 시작된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사랑받는 ‘남국의 악기들’이기도 합니다. 14일 경기 부천시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는 박영민이 지휘하는 부천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말러의 교향곡 7번 ‘밤의 노래’ 교향곡을 연주합니다. 공연의 감흥을 안고 공연장 근처 밝은 불빛 아래서 누군가와 ‘치맥’이라도 함께하면 좋을 듯합니다. 모기가 물지 않기를 바라면서요.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비(雨)의 계절이 마침내 돌아왔군요. 서양음악에서 비를 묘사하거나 제목으로 삼은 작품은 의외로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쇼팽의 전주곡 15번 ‘빗방울’입니다만, 이 제목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니라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라고 합니다. 쇼팽이 의도한 제목도 아니죠. 이 곡 외에 드뷔시가 베를렌의 시에 곡을 붙인 ‘내 마음에 비가 내린다’ 같은 가곡들도 있습니다만, 널리 사랑받는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대신 빗방울을 바라보며 제가 먼저 떠올리는 음악작품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비의 노래’입니다. 3악장 시작 부분의 선율이 그의 가곡 ‘비의 노래’에서 따온 것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만, 음울한 3악장뿐 아니라 소박하고 온화한 1악장 선율도 ‘비’의 느낌을 짙게 전해 줍니다. 빗방울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창문을 타고 흐르는 듯한 나직한 피아노의 화음 위로 바이올린 독주가 가만히 말을 걸듯 또렷한 주제를 시작합니다. 이 곡은 요즘 다시 인기라는 LP 음반으로 들어도 기분이 그만일 듯하군요. 타닥타닥 하는 잡음이 섞여도 빗소리와 어울려 오히려 느낌이 좋을 것 같고요, 부엌에서 김치전의 고소한 냄새가 살살 풍겨 온다면 더욱 좋은 느낌일 듯합니다. (음?) 브람스는 이 곡을 여름 휴가지인 오스트리아 남부 호숫가의 푀르차흐 마을에서 썼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작곡한 교향곡 2번은 호숫가의 노을과 함께한 여유로운 마음이 충만합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역시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곳에서 작곡했습니다. 9일 성시연 지휘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슐로모 민츠 협연으로 연주할 곡목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곧 휴가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겠군요. 휴가 계획들은 세우셨는지요. 요즘은 휴가 계획조차 “이번 기회에 스트레스를 몇 % 줄인 다음에 다시 심기일전하여…” 또는 “몇 군데 도시에서 몇 개 명소를 보고…” 식으로 ‘목표 지향’적으로 세우는 분이 많더군요. 그래도 휴가만큼은 모든 부담을 벗어던지고 시원하게 크고 작은 행복만을 찾아내는 기회로 삼으셨으면 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우리가 아는 명곡들은 작곡가 혼자 창작한 것입니다. 이상하지는 않지만, ‘꼭 그래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 옛 공산권에서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예술 작품을 만드는 ‘집단 창작’의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명작 또는 명곡이 있었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공동 창작한 명곡이 탄생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1868년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에 뚜렷한 획을 그은 로시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후배 작곡가인 베르디는 “작곡계 후배들이 한 악장씩 진혼 미사곡(레퀴엠)을 써서 로시니 영전에 바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제안자인 베르디 자신은 마지막 악장인 ‘리베라 메’(구하소서 주여)를 썼지만 계획에 찬동했던 다른 작곡가들이 차일피일 미루다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르디는 훗날 이탈리아 문호 만초니의 죽음을 접하고 진혼 미사곡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서 ‘베르디의 레퀴엠’으로 발표했습니다. 오늘날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의 ‘분노’를 과장해 표현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큰북 강타와 합창 소리가 바로 이 곡 중 ‘디에스 이레’(분노의 날) 악장입니다. ‘로시니를 위한 레퀴엠’은 계획만으로 끝났지만 실제 여러 사람이 함께 작곡한 곡도 있습니다. 이른바 ‘F-A-E 소나타’가 그런 예입니다. ‘F-A-E’는 계이름으로 파-라-미에 해당하는 세 음이면서, 독일어 ‘Frei aber einsam’(자유롭지만 고독하게)을 약자로 표현한 말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이 이 말을 자신의 표어로 삼았고, 작곡가 슈만이 이 세 음을 주제로 만들어 제자인 디트리히와 브람스에게 한 악장씩을 맡겼습니다. 그 결과 1악장은 디트리히가, 3악장은 브람스가, 2·4악장은 슈만이 쓴 특이한 바이올린 소나타가 완성됐습니다. 베르디 레퀴엠은 국내에서도 자주 연주됩니다. 7월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도 한국오라토리오싱어즈(지휘 최병철)가 이 곡과 최병철 곡 ‘성 김대건 안드레아 대사제 찬가’ 등을 연주합니다. 한편 오늘 28일은 ‘F-A-E 소나타’의 모티브를 제공한 요아힘의 185번째 생일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여름입니다. 서늘한 북유럽의 백야가 머리에 떠오르는 때이기도 합니다. 북유럽의 음악가라면 노르웨이의 에드바르 그리그(1843∼1907)와 핀란드의 잔 시벨리우스(1865∼1957)가 대표적이죠.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는 커다란 통창이 있는, 바다가 내다보이는 북유럽 어딘가의 창가에 앉아 갈매기들의 날갯짓을 바라보는 듯한 환상을 제공합니다.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7곡의 교향곡이나 교향시들을 들어보면 그의 음반 표지에 흔히 등장하는 푸른 호수와 침엽수림이 눈앞에 보일 듯합니다. 두 사람은 ‘북유럽’으로 묶이지만 출신 국가도 다르고 활동 시기도 한 세대나 차이가 나니 음악적 특징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 중 하나로 ‘민요’ 또는 민속 선율에 대한 태도를 들 수 있습니다. 그리그는 고국인 노르웨이의 민속 춤곡과 민요를 사랑해 그중 상당수를 자신의 작품에 집어넣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 a단조도, 민속춤인 ‘할링’ 리듬과 민속 바이올린인 하르당게르 바이올린 선율을 사용해 북유럽의 소박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와 달리 시벨리우스는 고국인 핀란드의 춤곡이나 민속 선율을 작품에 쓰지 않았습니다. 의아하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교향곡 2번 시작 부분 선율은 북유럽의 마을 사람들이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민요를 떠올리게 하며,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의 활달한 춤도 이 나라 사람들이 출 법한 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벨리우스는 ‘이 선율들은 단지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고, 음악학자들이 연구한 결과도 이와 같습니다. ‘만들어낸’ 선율과 춤곡인데도 민속적으로 들리는 것 또한 시벨리우스의 탁월한 재능 중 일부였습니다. 22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핀란드 라디오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인 한누 린투 지휘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합니다. 피아니스트 보리스 길트부르크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를 협연합니다. 24일 같은 장소에서 제임스 개피건이 지휘하는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가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를 협연합니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 등도 마련돼 있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독일 국가는 제목이 ‘독일의 노래(Deutschlandlied)’입니다. 월드컵 같은 국제행사를 통해 우리에게도 친근한 선율입니다. 찬송가 ‘시온성과 같은 교회’의 멜로디이기도 하죠. 이 선율은 하이든이 1797년 지은 ‘황제 찬가’에서 나왔습니다. 여기서의 ‘황제’란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였던 프란츠 2세를 말합니다. 이 노래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국가가 되었고,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가 공화국이 된 뒤에도 새로운 가사를 붙여 1938년 나치 독일에 합병되기 전까지 국가로 쓰였습니다. 한편 독일에서는 1922년부터 이 노래가 국가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만 16년 동안 독일 국가와 오스트리아 국가의 선율이 같았던 셈입니다. 독일인들은 왜 옆 나라 오스트리아의 국가 선율을 자기네 국가에 가져다 썼을까요? 역사적으로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일부였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 독일은 30여 개의 작은 나라로 이루어진 ‘지역 연맹체’였으며, 그중에서도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는 교묘한 혼인과 상속 정책을 통해 독일어권 바깥인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북부까지 장악한 대제국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방에서 일어난 신흥 강자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일으켜 승리한 뒤 나머지 독일 지역을 ‘독일 제국’으로 통일했습니다. 말하자면 1871년 독일 제국 수립 이전까지는 ‘오스트리아는 독일 바깥’이라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앞서 1848년 시민혁명 당시 독일 혁명파는 오스트리아 국가였던 이 선율에 ‘모든 것에 으뜸가는 독일’이라는 애국적인 가사를 붙여 불렀으며 누구도 이를 ‘옆 나라의 노래’라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독일이 1차 대전에서 패전해 공화국이 된 뒤 사람들은 이 예전의 혁명가를 국가로 삼았습니다.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창단 30주년 한국페스티벌앙상블 정기연주회’에서는 ‘황제 찬가’ 선율이 나오는 하이든의 현악사중주 ‘황제’가 연주됩니다. 미국 작곡가 코플랜드의 ‘현악사중주,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육중주’, 바흐 커피칸타타(최명훈 편곡)도 같은 무대에 오릅니다.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샤콘’은 바로크시대에 유행한 변주곡 형식 이름입니다. 대략 3박자 여덟 마디로 된 화성 진행을 반복하면서(기타 코드가 똑같이 되풀이된다고 생각하면 한층 이해하기 쉬울까요?) 그 위에 얹는 선율을 바꿔 나갑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에 나오는 샤콘도 유명하지만, 이탈리아 바로크시대 작곡가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1663∼1745·사진)의 샤콘도 널리 사랑받고 있습니다. 삶을 건 도전에 직면한 듯한, 비장한 악상이 큰 호소력을 갖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런데 이 비탈리의 샤콘이 실제로 그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심도 제기됩니다. 큰 이유는 ‘바로크 시대의 작곡 스타일과 다른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조바꿈이 문제가 됩니다. 후반부에 곡이 극적으로 고조되면서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처럼 조(調)가 자유롭게 바뀌는데, 한정된 규칙 아래 조가 움직이던 바로크 시대 음악 감상자들의 개념에서는 좋게 말해 ‘혁신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상한 음악’으로 들렸을 듯합니다. 게다가 이 곡이 비탈리의 것이라는 문헌적 증거도 분명치 않았습니다. 악보에 ‘토마소 비탈리노의 파트’라고 적혀 있는데, 그것이 ‘비탈리노’가 작곡한 곡이라는 뜻인지 모호할뿐더러, 그 ‘비탈리노’가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정 결과 이 악보는 비탈리 생전에 활동했던 사보가(寫譜家·악보를 깨끗하게 옮겨 적거나 정리하는 전문가) 야코프 린트너의 필적임이 확인됐습니다. 최소한 후대에 만들어져서 바로크시대 것으로 변조된 악보는 아닌 셈입니다. 비탈리는 린트너의 시대에 왕성하게 활동했으므로, 악보에 적힌 ‘비탈리노’가 그가 맞을 확률도 훨씬 높아졌습니다. 과연 비탈리는 낭만주의 시대의 기법을 미리 내다보고 실현한 선구자였을까요? 9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독주회에서는 독일 하노버 국제콩쿠르 우승자인 그가 타르티니 소나타 ‘악마의 트릴’ 등과 함께 비탈리의 샤콘을 연주합니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진보적인’ 조바꿈을 느끼면서 들어보는 것도 감상에 한층 도움이 될 듯합니다.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서울은 주말에 계속 강한 햇살이 이어졌습니다. 상쾌하고 화창하다는 기분을 약간 넘어 오히려 눈을 뜨기 부담스러울 정도의 눈부심이었죠. 이렇게 햇살이 강할 때는 기분이 오히려 약간 처연해집니다. 아마 그래서였을 겁니다. 갑자기 영화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1960년)’의 처연한 주제음악을 머리에 떠올린 것은. 그야말로 햇살 가득한 하늘을 채우는 듯한 트럼펫 솔로가 인상적인 곡입니다. 이 음악을 작곡한 니노 로타(1911∼1960)는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페데리코 펠리니나 루키노 비스콘티 같은 명장 감독들과 함께 작업했고, ‘대부(Godfather)’ 3부작이 특히 강한 인상을 남겼죠. ‘대부2’는 1974년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를 왜 쫄깃 ‘클래식’감 코너에 소개하느냐고요? 그가 이른바 ‘클래식’ 음악으로 분류되는 작품도 여럿 남겼고 이 분야에서도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교향곡도 세 곡 있고, ‘피렌체의 밀짚모자’를 비롯해 열한 곡이나 되는 오페라도 남겼습니다. 그의 트럼본 협주곡은 금관악기 트롬본이 나타낼 수 있는 기교들을 매력적으로 표현해 오늘날 세계의 금관악기 콩쿠르에서도 과제곡으로 자주 쓰입니다. 6월 2일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위대한 예술가 시리즈―안드레아스 오텐잠머 호세 가야르도’ 음악회에서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클라리네티스트인 안드레아스 오텐잠머(오텐자머)와 피아니스트 호세 가야르도가 로타의 클라리넷 소나타 D장조를 소개합니다. 로타의 영화음악처럼 마냥 달콤하거나 감상적이지는 않지만, ‘현대음악’ 하면 대뜸 느껴지는 부담감은 갖지 않아도 되는 우아한 작품입니다. 로타의 곡 외에 구스타프 말러의 가곡들도 오케스트라와 성악의 어울림이 아니라 클라리넷과 피아노라는 색다른 조합의 앙상블로 소개될 예정입니다. 지난주의 때 이른 폭염은 물러갔지만 이제 다가오는 여름을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어린 시절 어느 더운 여름 주말 밤에 본 영화 ‘라 스트라다(길)’에 나오는 여주인공 젤소미나의 구슬픈 노래도 갑자기 떠오릅니다. 이 선율 역시 로타의 솜씨였기 때문일까요.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낮 동안 달궈진 대지로부터 한껏 습기를 빨아들인 하늘은 결국 비를 뿌리고 말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로나의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 앞. 야외 오페라 ‘나부코’ 개막 예정 시간인 오후 8시 반을 단 몇 분 남겨놓은 시간이었다. 입장을 기다리던 줄도 순식간에 산산이 흩어졌다. ‘여기까지 와서 헛걸음을 하나….’ 그러나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습처럼 다가온 소나기는 그만큼이나 깔끔하게 10여 분 만에 말끔히 물러갔다. 멀어져가는 먹구름을 뒤쫓아 청신한 저녁 공기와 이탈리아 들판의 상쾌한 풀냄새가 다가왔다. 공연은 한 시간 이상 늦어져 별이 총총히 보일 때가 되어서야 시작됐다. 베르디 ‘나부코’ 서곡의 장중한 화음이 귓가에 울렸다. 지난해 6월 19일, 베로나 야외 오페라 시즌 개막공연이었다. 기원후 1세기에 건립된 2만2000여 석의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은 서곡이 끝나자 그 모습 그대로 구약시대 바빌론 왕국으로 탈바꿈했다. 오페라 ‘나부코’는 구약성경 열왕기의 바빌론 네부카드네자르 왕을 소재로 한 역사드라마다. 왕권을 탈환하기 위한 왕족들의 음모와 배신, 사랑과 증오의 파노라마가 두 밀레니엄 전의 유적 위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베로나 야외 오페라축제 관람은 2005년에 이어 10년 만, 작품 수로는 세 번째였다. 그래도 이 공간의 생생한 음향은 늘 경탄을 자아낸다. 초고난도의 기교와 오랜 등장 시간 때문에 ‘소프라노의 피를 말리는’ 배역으로 알려진 아비가엘레 공주 역 마르티나 제라핀의 고음 포르티시모뿐 아니라 나부코 왕 역 루카 살시의 내뱉는듯한 작은 독백까지 귀에 쏙쏙 들려왔다. 2008년 이후 이 극장은 관현악 반주부에만 믹싱콘솔로 ‘약간’의 음향 보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 아무런 ‘전기음향’ 없이 관람한 ‘라보엠’과 ‘아이다’에서도 음향에 아무 불만이 없었다. 3막, 바빌론으로 끌려온 유대인들이 고향을 그리는 합창 ‘가라, 내 마음이여, 황금빛 날개를 타고’의 친숙한 선율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익숙한 선율이다. 이미 자정을 넘은 시간. 나지막한 피아니시모로 마지막 화음이 마무리지어졌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브라비(Bravi).” 환호성이 1분, 그 이상… 그치지 않았다. 지휘자가 다시 지휘봉을 들었다. 저음현의 끙 하는 듯한 전주, 이 합창곡 부분 전체를 앙코르 연주하는 것이었다! 전주가 시작되었는데도 다시 커다란 환호와 갈채가 쏟아졌다. 베로나 야외 오페라축제는 1913년 테너 조반니 체나텔로가 베르디 ‘아이다’를 무대에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이 거대 공간의 음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알음알음으로 알려진 데다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 배경으로 설정한 베로나에 영국 중산층의 교양여행 ‘그랜드 투어’ 참가자들이 몰려와 이들을 위한 공연물도 필요했다. 개막공연에는 당대 최고 오페라 작곡가인 푸치니와 마스카니도 자리를 함께했고, 이내 이 축제는 베로나의 명물이 되었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이탈리아 데뷔 무대도 이곳이었고,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마리오 델 모나코 등의 큰 별들이 이 무대를 장식했다.푸치니 명작의 산실 옆에 호반 무대가 오페라는 고향과 탄생 시기가 뚜렷한 예술 장르다. 16세기 말, 르네상스 운동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북부 피렌체의 지식인 모임 ‘카메라타’에서 그리스 고전극을 부활시키자는 논의가 일어났고, 이에 따라 연극과 합창, 독창이 어우러진 ‘작품들(Opera)’이 탄생했다. 그 후 4세기가 넘도록 이탈리아는 이 장르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독일인 헨델과 오스트리아인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각광받기도 했지만 19세기에는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 푸치니, 베르디 같은 이탈리아의 별들이 잇따라 탄생해 ‘오페라 제국’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당연히 이탈리아 곳곳이 오페라 대가들의 자취와 음악사를 장식한 명문 오페라극장, 그리고 오페라의 줄거리가 된 실제 무대들로 가득하다. 베로나 오페라축제를 관람하기 사흘 앞서 토스카나 주 토레델라고의 ‘푸치니 빌라’를 찾았다. 푸치니는 작곡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져가던 26세 때 이곳에 집을 짓고 30년 동안 살면서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같은 중기의 인기작들을 완성했다. 바다에 가까운 석호(潟湖)와 어울린 풍경이 푸치니 특유의 화음과 같은 몽상적인 분위기를 선사한다. 푸치니가 살던 집은 오늘날 푸치니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호숫가에는 잘생긴 얼굴과 무심한 듯한 표정에 늘 우수를 머금고 있었던 푸치니의 동상이 오페라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푸치니 빌라에서 호수를 마주 보고 왼쪽을 바라보면 호숫가에 거대한 시설물이 보인다. 토레델라고 푸치니 페스티벌 극장이다. 푸치니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였던 마스카니의 주도로 푸치니 사후 6년이 지난 1930년 이곳에서 처음 ‘라보엠’ 공연이 열렸다.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공연은 2차대전이 끝난 뒤인 1949년부터 ‘푸치니 페스티벌’로 정착되었다. 호숫가에 무대와 3200석의 객석을 세웠다. 객석에서 정면을 응시하면 무대 너머로 아름다운 호수의 출렁임이 바라보인다. 아쉽게도 지난해 이곳을 찾았을 때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호수의 저녁 바람과 함께 한 멋진 공연 분위기를 느끼지는 못했다.명작의 무대와 대작곡가의 자취를 함께 잘 알려진 대로 이탈리아는 한반도처럼 반도국가다. 유난히 햇살이 찬란하고 특유의 풍광과 식문화가 있는 남부 지역을 살짝 포기한다면, 의외로 길지 않은 동선으로 오페라 거장들의 자취와 유명 극장, 축제를 찾는 여행을 계획할 수 있다. 푸치니 빌라가 있는 토레델라고에서 자동차로 불과 30분이면 푸치니의 고향인 루카에 도착한다. 중세시대에는 ‘루카 공국’으로 인근의 피사나 피렌체와 위상을 겨루었던 역사 깊은 고장이다. 도시를 둘러싼 육중한 성곽과 방어용 해자(垓字)의 자취가 방문자를 압도한다. 푸치니는 여기서 4대를 교회 성가대장 겸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한 명문 음악가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자라서 음악의 길을 이어받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청년기에는 말썽꾼이었다. 교회 파이프오르간의 파이프를 고물상에 팔아 담배를 사 피우기도 했다. 청년기의 온갖 별난 행동들은 그의 대표작 ‘라보엠’에도 투영되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한 골목들을 걷다보면 그동안 몰랐던 ‘장난꾸러기’ 소년 푸치니의 목소리가 들릴 듯하다. 여기서 차로 두 시간을 북상하면 푸치니의 위대한 선배 베르디가 태어난 작은 마을 론콜레와 그가 성장한 인근의 소읍 부세토에 닿는다. 소농(小農)의 아들이었던 베르디는 음악수업을 꿈꾸지 못할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후원자 바레치의 도움으로 계속해서 큰 꿈을 꿀 수 있었다. 그의 흉상이 있는 론콜레의 베르디 생가에도 늘 음악 순례객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두 대가를 비롯한 오페라 역사상의 명장이 큰 꿈을 본격적으로 펼쳐낸 무대는 아무래도 롬바르디아 주의 주도인 밀라노다. 1866년 이탈리아 통일 후 이 신생국가의 산업경제적 중심이 된 곳이다. 이 도시의 라 스칼라 극장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런던 로열 오페라 등을 넘어 세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오페라의 전당이다. 1778년 세워졌으며 21세기 대대적인 개보수 이후 2004년 재개관했다. 세계 최고 기량이 증명된 가수와 지휘자, 연출가가 아니고서는 넘볼 수 없는 무대이기도 하다. 극장 전면의 아케이드인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는 당대 최고 오페라 흥행회사이자 출판사인 리코르디가 위치해 푸치니와 동시대 명장들이 늘 커피 한 잔 놓고 담소하던 오페라 역사의 현장이었다.베네치아, 코모호수, 알프스까지 한 코스에 동아일보 문화사업본부는 2015년에 이어 올해에도 이탈리아 북부의 오페라 축제와 명승지, 작곡가들의 자취를 찾아가는 ‘이탈리아 여름음악축제 그란투어’를 마련했다. 7월 13일(수) 출발해 21일(목)까지 8박 9일의 일정으로 베로나 야외 오페라축제에서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베르디의 거작 ‘아이다’를 관람하고, 토레델라고 푸치니 페스티벌에서는 바로 그 일대에서 창작한 푸치니의 대표작 ‘라보엠’을 관람한다. 세계 오페라문화의 대표 공간인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는 차이콥스키의 명작발레 ‘백조의 호수’가 기다린다. 이탈리아 부호들의 휴양지로 스위스인들까지 햇살을 쫓아 찾아오는 명승지 코모 호수, 르네상스의 산실이자 오페라의 탄생지인 피렌체, 자타공인 세계 최고 여행지인 물의 도시 베네치아, 중세 도시 쟁투기의 치열한 역사를 간직한 시에나, 우뚝한 알프스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돌로미티 지역의 코르티나담페초에서도 역사와 멋이 함께 어우러진 시간을 갖는다. 푸치니의 고향 루카, 베르디의 고향 론콜레는 ‘당연히’ 찾아가는 성지 코스. tourdonga.com 02-361-1414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작곡가들도 사랑을 합니다. 사랑을 할 뿐 아니라 사랑이 작품 속에 투영되기도 합니다. 당연한 일이죠. 작곡가들의 사랑은 때로는 자기만 아는 것으로, 때로는 상대방을 포함한 두 사람만 아는 기호나 선율로 작품 속에 녹아듭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온 세상이 다 알 정도로 ‘떠들썩한’ 사랑 고백이 명곡으로 탄생합니다. 지난해 봄에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현악사중주 ‘크로이처 소나타’를 이 코너에 소개했었죠. 이번에는 그의 현악사중주 2번 ‘비밀편지’(1928년) 이야기입니다. 1917년, 63세가 된 이 작곡가는 38세 아래인 스물네 살의 유부녀 카밀라 시테슬로바와 사랑에 빠져듭니다. 불타는 정염은 타오르는 창작열로 이어집니다. 오페라 ‘꾀 많은 암여우’, 관현악곡 ‘신포니에타’ 같은 명작이 이 만년에 탄생합니다. 두 번째 현악사중주곡인 ‘비밀 편지’도 그중 하나입니다. 야나체크가 카밀라에게 쓴 무려 700통에 달하는 연애편지가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당신은 내 모든 음표 뒤에 생생하고도 사랑스럽게 존재하오. 당신 몸의 향기, 불타는 키스… 이 모든 음표가 당신에게 입 맞추고 있소.” 작곡가는 처음 이 곡에 바로크 시대 옛 악기인 ‘비올라 다모레’를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이유는? 악기 이름이 ‘사랑의 비올라’이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주변의 반대로 비올라로 바꾸었습니다. 체코어의 ‘비밀스러운’은 영어의 ‘intimate’처럼 ‘친근하다’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비밀 편지’보다는 ‘친밀한 편지’가 더 맞는 표현 같기도 합니다. 11년 동안의 불타는 사랑은 결국 노작곡가의 생명을 가져갑니다. 두 사람이 카밀라의 아이와 함께 산책을 갔다가 아이가 보이지 않자, 야나체크는 빗속을 헤매며 아이를 찾아다녔고 결국 폐렴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불타는 악상만큼이나 짜릿한 사연을 가진 현악사중주 ‘비밀편지’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브렌타노 콰르텟 콘서트에서 연주됩니다. 같은 체코 작곡가인 드보르자크의 현악사중주 11번도 이 무대에 오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세 개의 짐노페디’로 유명한 프랑스 작곡가 에리크 사티(1866∼1925)의 삶은 수많은 독특한 얘깃거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눈에 띄는 몇 가지만 꼽아 봐도 다음과 같습니다. 명문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지만 선생들이 ‘이렇게 피아노를 못 치는 쓸모없는 학생은 본 적이 없다’고 하자 자퇴했습니다. 젊어서는 안데르센 동화에 심취했고 나이 들어서는 건물 모형이나 도면을 캐비닛 하나 가득 채우는 게 취미였습니다. 악보를 840번 반복 연주하도록 표시한 작품(‘벡사시옹’)도 있습니다. 지시에 따르면 연주에 10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계속할까요. 젊어서는 몽마르트르의 카페에서 샹송을 작곡해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쏠쏠한 수입을 얻지만 나이 든 뒤에는 ‘쓸모없는 곡’이라고 이 노래들을 외면합니다. 친척이 죽으면서 적지 않은 유산을 물려준 뒤로는 최신 유행의 양복과 중절모, 우산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녀 ‘벨벳 신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주머니에는 늘 망치를 넣어 다녔습니다. ‘불의의 습격’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는 겁니다. 식습관도 독특해서 우유나 죽 등 ‘흰 음식’만 먹었다고 합니다. 그의 유일한 연애담도 독특합니다. 인물화 모델로 유명했던 여성과 하루 저녁 데이트를 한 뒤 다짜고짜 ‘결혼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거절당했죠. 재미있는 것은 이 여성의 행동입니다. 며칠 뒤 사티의 이웃으로 이사를 옵니다. 그 뒤 나름 잘 지냈던 모양입니다. 이웃이 관계를 청산하는 방법은? 이 여인은 이후 다시 이사를 가버렸고, 사티는 시름에 잠겼습니다. 이 여성이 바로 르누아르와 로트레크 등의 모델이 되었던 쉬잔 발라동입니다. 스스로도 화가로 활동했으며, 풍경화가로 이름을 날린 모리스 위트릴로가 그의 아들이었습니다. 발라동이 사티와 만났을 때 위트릴로는 이미 열 살이었으니, 하마터면 사티가 그의 양부가 될 뻔했습니다. 17일은 이 사티의 탄생 150주년 기념일입니다. 지난해 그의 서거 90주년을 맞이해 ‘배경음악’ ‘환경음악’의 시조였던 그의 역할을 소개했습니다만, 오늘은 그의 특이한 개인적 면모를 살펴보았습니다. 투명하고 명상적인 ‘짐노페디’를 들으면서 봄날을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요.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일요일인 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오늘의 내가 혼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어버이와 여러 스승, 그 밖의 수많은 분들의 은혜로 지금의 내가 있음을 상기하는 5월이기도 합니다. 대음악가들도 스승으로부터 작곡 및 연주 기술과 정신의 감화를 받으며 예술가로 완성됩니다.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지 못했던 인물이 대음악가를 키워낸 경우도 있지만, 자신도 재능을 인정받은 작곡가면서 제자의 재능을 더욱 크게 육성해낸 인물들도 있습니다. 푸치니는 밀라노 음악원에서 아밀카레 폰키엘리 교수를 만났습니다. 그의 지도교수도 바치니라는 유능한 작곡가였지만 ‘극성맘’이었던 그의 어머니가 유명 작곡가였던 폰키엘리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써서 아들을 특별히 지도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폰키엘리는 여러 유익한 충고를 푸치니에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그가 졸업한 뒤 밀라노의 유명 음악평론가들과 음악계 후원자들을 만나 푸치니를 주목하라고 귀띔합니다. 이는 푸치니가 일찍이 인정받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폰키엘리의 대표 오페라가 ‘라 조콘다’이고, 여기 나오는 발레 장면이 유명한 ‘시간의 춤’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환타지아’에서 하마가 춤추는 장면으로 낯익은 음악입니다. ‘환타지아’라면 미키마우스가 물 긷는 장면으로 인상 깊은 폴 뒤카의 ‘마법사의 제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발레 ‘라페리’를 비롯해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을 썼던 뒤카는 파리음악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올리비에 메시앙, 모리스 뒤뤼플레 같은 뛰어난 제자들을 길러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마법사처럼 엄격하고 매몰찬 스승은 아니었죠. 그의 제자 중에는 스페인에서 유학을 온, 앞을 보지 못하는 청년도 있었습니다. 이 청년, 호아킨 로드리고를 뒤카는 엄격함과 자애로움으로 꼼꼼히 지도했고 로드리고는 ‘아랑후에스 협주곡’을 비롯해 기타를 위한 여러 사랑받는 곡들을 썼습니다.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로랑 프티지라르 지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첼리스트 양성원이 협연하는 ‘불란서의 아름다운 시절’ 콘서트가 열립니다. 지휘자 프티지라르가 작곡한 첼로협주곡 외에 ‘물 긷는 미키’로 낯익은 뒤카의 ‘마법사의 제자’ 등이 연주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오월입니다. 또다시 슈만 가곡집 ‘시인의 사랑’ 첫 곡인 ‘아름다운 오월에’가 떠오르는 계절입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오월/모든 싹들이 돋아날 때/나의 마음에도/사랑이 돋아났노라….’ 이 노래를 들을 때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가수가 독일 테너 프리츠 분더리히(1930∼1966)입니다. 그는 1965년 35세의 한창 나이로 잘츠부르크 음악축제에서 이 곡을 후베르트 기젠의 피아노 반주와 함께 불러 “놀랍다(wunderlich)는 그의 이름처럼 놀랍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어 같은 곡을 기젠과 함께 녹음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렵에 그의 행운은 끝을 맺었습니다. 1966년 9월, 그는 고향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북부 시골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집에서 파티가 벌어졌는데, 한잔해서 거나해졌는지 그만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머리를 다쳤습니다. 하이델베르크대 의과대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의식을 찾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50년이 지났습니다. 살아있다면 86세가 되겠죠. 이 ‘시인의 사랑’ 음반에서 보여준 따스하면서도 정갈하고 풍성한 음성,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에 밀착해 사소한 뉘앙스까지 전달하는 이지적인 해석을 느껴보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의 자리가 특히 아쉽게 느껴집니다. 이후 수많은 ‘시인의 사랑’ 명음반이 나왔지만 낫고 못하고를 떠나 분더리히가 노래한 ‘시인의 사랑’ 없이는 온전히 이 작품을 말할 수 없다는 데 평론가들의 생각이 대체로 일치합니다. 분더리히가 세상을 떠난 날짜는 9월 17일이지만 매년 5월이면 그가 노래하는 ‘아름다운 오월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의 서거 50주년을 맞아 미리 언급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가곡집 마지막 곡인 ‘불쾌한 옛노래’에는 ‘내 불쾌한 꿈을 하이델베르크의 술통보다 큰 관(棺)에 넣어 땅에 묻어버리자’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 코너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 내용입니다. 시인 하이네가 이 가사를 썼고, 하이델베르크대 법대에서 수학했던 슈만이 곡을 붙였는데, 이 곡의 전설적 명연주를 남긴 분더리히는 하이델베르크대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고 고향 근처인 그 부근에 묻혔습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해가 점점 길어지는군요. 저는 워낙 ‘아침형’ 일상을 살아왔지만 요즘은 눈뜨려 작정했던 시간보다 일찍 창이 밝아져 조금은 성가시기도 합니다. 낮 시간의 길이는 하지(올해는 6월 21일)를 중심으로 가장 길고 그 날짜에서 멀수록 길어지니, 요즘의 낮 길이는 한여름인 8월 말과 비슷한 셈입니다. 노르웨이나 핀란드 등 위도가 높은 나라에서는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가 곧 시작될 것입니다. “이제 겨우 봄인데 무슨 백야야?” 할 수도 있겠지만, 백야 기간은 위도에 따라 일정하지 않으며 지구본의 ‘북극권’ 표시 북쪽으로 더 북극에 가까울수록 그 기간은 길어집니다. 북극권보다 남쪽이라면 해가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백야는 나타나지 않지만, 해가 진 뒤에도 하늘이 계속 환한 채로 있다가 이내 다시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환한 여름밤’을 묘사한 음악도 있습니다. 스웨덴 작곡가 후고 알벤(1872∼1960)의 ‘스웨덴 환상곡 1번’입니다. 부제 ‘Midsommarvaka’는 ‘하지 축일 전야’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한여름의 백야제’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스웨덴의 민속 선율을 사용해 환한 밤의 즐거운 축제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북유럽 나라들은 흔히 광장에 높은 장대를 세워놓고 축제를 펼치죠.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등을 통해 낯익은 장면입니다. 알벤은 창작생활 대부분을 20세기에 보낸 만큼 간혹 ‘현대적으로 난해한’ 작품도 썼지만, 이 ‘한여름의 백야제’는 듣기에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1970년대엔 우리나라 TV에 영양제 광고 배경음악으로 쓰였으니 제목은 생소하더라도 선율만큼은 친근하게 기억하시는 독자가 많으실 겁니다. 이 알벤의 생일이 오는 일요일인 5월 첫날이고, 그의 기일은 일주일 뒤인 5월 8일입니다. 여러모로 해가 길고 환한 계절이 올수록 기억하기 좋은 작곡가입니다. 마침 동아일보가 6월 27일∼7월 7일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 총 11일 일정으로 준비한 ‘피오르와 만년설 찾아… 백야의 신비 속으로’ 여행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군요. 참여하시는 분들에게는 좋은 힐링의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음반의 시대가 가고 있다고들 말합니다. 옛 미디어인 LP(이른바 ‘블랙 레코드’)는 애호가들 사이에 다시 사랑을 받고 있지만, CD 판매는 날로 하향세이며 온라인 음원이 이를 대체하고 있죠. 그렇다고 해서 ‘손에 실물을 쥐는’ 음반의 매력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듯합니다. 음반세대인 저의 푸념일 뿐일까요. 음반이 주는 매력 중에는 앨범 커버 디자인도 작용합니다. 연주를 맡은 예술가의 사진으로 음반 표지를 장식하는 경우도 많지만, 고금의 명화도 음반 커버로 사랑을 받습니다.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는 독일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 드뷔시나 라벨의 인상주의 음악에는 모네나 르누아르의 인상파 회화가 즐겨 쓰이는 식이죠.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그림도 음반 표지에 자주 등장합니다. 그는 음악 분야에서 활동한 ‘또 다른 구스타프’, 구스타프 말러와 함께 오스트리아 빈의 세기말을 꽃피운 예술가로 꼽힙니다.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였고, 말러의 부인이었던 알마가 첫 키스를 나눈 상대가 클림트였다는 속닥거림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말러의 교향곡에는 클림트의 그림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클림트의 그림과 가까운 또 한 사람의 작곡가가 있습니다. 베토벤입니다. 베토벤은 1770년에 태어났으니 활동 시기가 클림트보다 대략 한 세기나 빠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베토벤의 화음에서 클림트를 연상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클림트가 그린 대작 ‘베토벤 프리즈’ 때문입니다. 발표될 때 전시장의 세 벽면을 사용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이 작품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에서 받은 감동을 재현하기 위해 제작했고 자연히 오늘날 이 곡을 비롯한 베토벤 작품의 음반 표지에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2006년 동아음악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우승자 김지윤과 2007년 이 콩쿠르 피아노 부문 우승자 김재원, 그리고 안두현 지휘 양평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출연하는 ‘클림트, 베토벤을 만나다’ 콘서트가 열립니다. 한 천재로부터 후대의 천재로 전해진 예술혼을 엿볼 기회가 될 듯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음반의 시대가 가고 있다고들 말합니다. 옛 미디어인 LP(이른바 ‘블랙 레코드’)는 애호가들 사이에 다시 사랑을 받고 있지만, CD 판매는 날로 하향세이며 온라인 음원이 이를 대체하고 있죠. 그렇다고 해서 ‘손에 실물을 쥐는’ 음반의 매력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듯합니다. 음반세대인 저의 푸념일 뿐일까요. 음반이 주는 매력 중에는 앨범 커버 디자인도 작용합니다. 연주를 맡은 예술가의 사진으로 음반 표지를 장식하는 경우도 많지만, 고금의 명화도 음반 커버로 사랑을 받습니다.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는 독일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그림, 드뷔시나 라벨의 인상주의 음악에는 모네나 르누아르의 인상파 회화가 즐겨 쓰이는 식이죠.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그림도 음반 표지에 자주 등장합니다. 그는 음악분야에서 활동한 ‘또 다른 구스타프’, 구스타프 말러와 함께 오스트리아 빈의 세기말을 꽃피운 예술가로 꼽힙니다.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였고, 말러의 부인이었던 알마가 첫 키스를 나눈 상대가 클림트였다는 속닥거림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말러의 교향곡에는 클림트의 그림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클림트의 그림과 가까운 또 한 사람의 작곡가가 있습니다. 베토벤입니다. 베토벤은 1770년에 태어났으니 활동 시기가 클림트보다 대략 한 세기나 빠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베토벤의 화음에서 클림트를 연상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클림트가 그린 대작 ‘베토벤 프리즈’ 때문입니다. 발표될 때 전시장의 세 벽면을 사용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이 작품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에서 받은 감동을 재현하기 위해 제작했고 자연히 오늘날 이 곡을 비롯한 베토벤 작품의 음반 표지에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2006년 동아음악콩쿠르 바이올린부문 우승자 김지윤과 2007년 이 콩쿠르 피아노부문 우승자 김재원, 그리고 안두현 지휘 양평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출연하는 ‘클림트, 베토벤을 만나다’ 콘서트가 열립니다. 한 천재로부터 후대의 천재로 전해진 예술혼을 엿볼 기회가 될 듯합니다.유윤종 기자gustav@donga.com}

10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솔오페라단이 주최한 오페라 ‘투란도트’를 보았습니다. 타이틀롤인 투란도트 공주 역을 맡은 소프라노 조반나 카솔라의 소리는 압권이었습니다. 한 평론가는 ‘소리가 극장 천장을 뚫고 나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카솔라는 1998년 장이머우 감독의 연출로 중국 베이징의 쯔진청(紫禁城)에서 공연됐던 투란도트 공연에서도 같은 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놀라운 것은 카솔라의 나이입니다. 1945년 1월생. 올해 71세입니다. 일부에서는 ‘70대인 소프라노가 제대로 소리를 낼지’ 의심하는 소리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제 무대에서 그가 들려준 소리는 의문을 잠재웠습니다. 성악은 음악 장르 중에서도 가장 은퇴가 빠른 분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몸 자체가 악기라서 신체적 노화가 그대로 소리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중음악 가수와 달리 공연에서 원칙적으로 마이크나 앰프를 쓰지 않기 때문에 20세기 중반에만 해도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60대 이상 가수의 오페라 공연은 무리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신체 관리를 위한 여러 노하우가 속속 등장하면서 성악가들의 연주 가능 연령도 길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스페인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레알에서 ‘살아있는 리골레토’로 불리는 바리톤 레오 누치가 주연을 맡은 베르디의 ‘리골레토’를 보았습니다. 당시 이 코너에서 전해드렸습니다만, 73세였던 그가 부르는 리골레토도 굉장했습니다. 포탄 같은 포르테(강한 소리)가 터졌습니다. 6월에 또 한 사람의 ‘노익장’ 성악가를 만나러 영국 런던에 갑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더불어 세계 3대 테너로 꼽혔던 성악계의 전설 플라시도 도밍고입니다. 1941년생. 이제 그는 75세가 됐지만 여전히 세계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런던 코번트 가든 로열오페라 극장에서 그가 타이틀롤을 맡은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를 볼 예정입니다. 나부코는 테너보다 소리가 낮은 바리톤이지만, 도밍고는 일찍이 바리톤으로 성악계에 데뷔했던 경력을 살려 오늘날 테너뿐 아니라 바리톤 역할까지 능숙하게 소화하고 있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