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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16일 ‘2021년 동아 황금대상’ 수상자 8명을 선정했다. 지역별로 공헌도가 높은 우수 독자센터 사장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수상자는 송은임(서울 원효), 이성수(서울 잠원), 이형걸(인천 간석), 최광비(경기 하남), 최재윤(경북 포항), 이승곤(울산 남울산), 김건호(강원 신원주), 서대진(광주 봉선) 독자센터 사장이다. 스포츠동아는 올해 스포츠동아 대상 수상자로 김정률(서울 길동명일), 김석환(경기 원미도당), 서명길(부산 전포부전), 홍성욱(충남 천안북부) 독자센터 사장을 선정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해역에서 고려청자 등 유물 200여 점이 나왔다. 아직 선체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닻, 노 등이 확인돼 물건을 실은 옛 선박이 침몰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전북 군산 앞바다의 선유도와 무녀도 사이에서 고려청자 125점, 분청사기 9점, 백자 49점 등이 발견됐다고 14일 밝혔다. 연구소는 지난해 말 해당 수역에 문화재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올 1, 5, 6월 세 차례에 걸쳐 해저면 탐사를 실시했다. 출수된 도자기들의 양식을 조사한 결과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해당하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들로 분석됐다. 목재 유물을 대상으로 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연구소는 정황상 인근 해역에 옛 난파선이 묻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청자 중 그릇과 접시 81점이 서로 포개져 선박에 싣는 형태로 확인됐고, 배에서 사용하는 목재 닻과 노, 닻돌 등이 함께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1123년 고려에 온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선유도에 고려에 온 외국 사신이 묵었던 군산정(群山亭)이 있었다. 선유도는 고려시대에 한반도와 중국을 오가는 선박의 중간 기착지였다. 연구소는 “내년에 정밀 발굴에 들어가 선체를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나라는 형체요 역사는 정신이라. 정신이 보존돼 멸망치 아니하면 형상은 자연히 다시 살아남을지라.” 상하이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박은식(1859∼1925)이 고종이 즉위한 1863년부터 경술국치 직후인 1911년까지 한국 근대사를 다룬 ‘한국통사(韓國痛史·사진)’ 서문 일부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나라를 되찾는 길이라고 믿었던 그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하던 1915년 한문본으로 이 책을 냈다. 초판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1917년 미국 하와이에서 발행된 이 책의 한글본이 100여 년이 지나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 동아시아도서관에서 발견됐다. 14일 발간된 ‘워싱턴대학의 한국 책들’(유유)은 워싱턴대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사서로 20여 년을 일한 저자 이효경 씨(50)가 도서관 소장 한국 자료 중 1900∼1945년 출간된 책 44권을 소개한 책이다. 동아시아도서관은 북미 지역 14개 한국학 도서관 중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약 20만 종) 다음으로 많은 한국 자료를 소장(약 15만 종)하고 있다. 44권 중 5권은 출판의 자유를 박탈한 1910년대 일제의 무단통치를 피해 미국에서 발행된 책이다. 36권은 한국에서, 3권은 일본에서 각각 발행됐다. 이 씨는 “오랜 기간 도서관 서고에서 누군가 찾아 주기만을 묵묵히 기다린 책들이 드디어 독자를 만나게 됐다”고 전했다. 도서관은 독립운동가였지만 친일파로 돌아선 윤치호(1866∼1945)의 ‘우순소리’도 소장하고 있다. 제목이 우스운 이야기라는 뜻인 이 책은 윤치호가 71편의 우화를 재창작해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았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는 우화를 전하며 “백성을 죽여 가며 재산을 한 번에 빼앗다가 필경 재물과 백성과 나라를 다 잃어버린 사람도 적지 않다”며 국민을 수탈하는 일제와 매국노를 비판했다. 이 책은 1908년 국내에 출간됐다 금서 처분을 받았고, 1910년 하와이에서 재출간됐다. 이 씨는 “일제 무단통치기 해외에서 출간된 책들은 일제의 눈을 피해 우리 문화의 명맥을 잇고자 안간힘을 쓴 증거”라며 “광복 이후에 나온 책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해역에서 고려청자 등 유물 200여 점이 나왔다. 아직 선체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닻, 노 등이 확인돼 물건을 실은 옛 선박이 침몰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전북 군산 앞바다의 선유도와 무녀도 사이에서 고려청자 125점, 분청사기 9점, 백자 49점 등이 발견됐다고 14일 밝혔다. 연구소는 지난해 말 해당 수역에 문화재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올 1, 5, 6월 세 차례에 걸쳐 해저면 탐사를 실시했다. 출수된 도자기들의 양식을 조사한 결과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해당하는 다양한 시기의 유물들로 분석됐다. 목재 유물을 대상으로 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연구소는 정황상 인근 해역에 옛 난파선이 묻혀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청자 중 그릇과 접시 81점이 서로 포개져 선박에 싣는 형태로 확인됐고, 배에서 사용하는 목재 닻과 노, 닻돌 등이 함께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1123년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선유도에 고려에 온 외국사신이 묵었던 군산정(群山亭)이 있었다. 선유도는 고려시대에 한반도와 중국을 오가는 선박의 중간 기착지였다. 연구소는 “내년에 정밀발굴에 들어가 선체를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미래가 궁금할 때 점집을 찾는 이들이 있다. 실패의 두려움, 미래의 불확실성을 미신에라도 기대어 해소하려는 시도다. 원하는 답이 아니더라도 잠시나마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고들 한다. 종교학자인 저자는 일제강점기 신문기사와 경찰·재판 기록을 들춰 당시 대중 사이에 퍼져 있던 미신의 실태를 살펴본다. 절망적인 식민 지배기 사람들이 의지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극단의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 본성이 미신을 만든다고 말한다. 1935년 7월 광주에서는 가뭄이 한 달 넘게 이어지자 마을 여성들이 무등산 정상에 올라가 단체로 소변을 보는 독특한 ‘기우제’를 지냈다. 대개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는 산 정상을 방뇨로 더럽히면 오염물을 씻어내기 위한 신성한 힘이 작동해 비가 내릴 거라고 믿은 것. 미신은 절망의 감정과 결합돼 더 강해졌다. 당시 치료법이 없던 나병은 ‘걸리면 끝’이라는 공포감을 안겨줬다. 이에 인육을 먹으면 나병이 낫는다는 미신이 퍼졌다. 실제로 1930년 3월 10일 전남 나주군에서 한 여자가 나병을 앓는 남편을 위해 자신의 왼쪽 허벅지살 450g을 잘라 구워 먹인 사실이 신문에 보도됐다. 망국에 이어 전염병까지 확산된 20세기 초 미신은 조직화된 종교 형태로 확대됐다. 1900년경 만들어진 백백교가 대표적인 사례. 백백교는 동학사상과 조선시대 민간 예언서 정감록을 버무린 사이비 종교였다. 백백교 교주와 간부들은 세상은 망하지만 신도들은 살아남을 거라고 현혹한 뒤 재산을 빼앗고 성폭행을 일삼았다. 이들은 범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신도 346명을 살해했다. 이 같은 미신들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미신이 조선인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 총독부가 미신 퇴치에 나섰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많은 믿음을 지우고 탄생한 세계인지 알기 바란다”고 썼다. 전근대 시대의 유물로 간주돼 온 미신을 통해 일제강점기 사회상을 복원한 저자의 시도가 신선하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피아니스트 이혁(21·사진)이 프랑스 파리에서 7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제17회 아니마토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혁의 매니지먼트사 에투알클래식은 이혁이 아니마토 콩쿠르 우승과 마주르카 특별상을 차지했다고 10일 밝혔다. 아니마토 콩쿠르는 프랑스 예술법인 아니마토협회가 저명한 피아니스트와 교육자에게 추천받은 10대 후반~20대 중반의 주요 피아노 대회 입상자들을 모아 독주회 방식으로 개최한다. 이를 통해 촉망받는 신인 연주자들을 프랑스 음악계에 소개해왔다. 이 씨는 우승 상금 3만 유로(약 4000만 원)와 마주르카 특별상금 2000유로(약 270만 원)를 받는다. 프랑스 주요 공연장 기획공연에도 초청된다. 과제곡이 쇼팽 곡만으로 지정된 이번 콩쿠르에서 이혁은 환상곡 Op.49를 연주해 우승했다. 이혁은 곡에 대해 독자적인 해석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11명이 준결승에 올랐고 6명이 결승에 진출했다. 이혁은 올해 10월 열린 제18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결승에 오르기도 했다. 아니마토 콩쿠르의 역대 한국인 수상자로는 김태형, 정한빈이 있다. 올해 쇼팽 콩쿠르 우승자 브루스 류를 비롯해 데니스 마추예프, 올가 케른, 알렉산더 코브린 등 세계 주요 콩쿠르 우승자들도 이 대회에서 수상했다. 이혁은 한국에서 이양숙 선화음악영재아카데미 원장, 신수정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를 사사했다. 2014년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현재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블라디미르 옵친니코프 교수에게 지도받고 있다. 2012년 모스크바 쇼팽 청소년 콩쿠르, 2016년 폴란드 파데레프스키 콩쿠르에서 각각 우승했고, 2018년 일본 하마마쓰 콩쿠르 3위에 입상했다. 이혁은 내년 3월 1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솔로 리사이틀을 열 예정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과서로 서구에 성경이 있다면 동양에는 사서(四書)가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맹자의 꿈’(21세기북스)을 펴낸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56·유학대학장·사진)는 “한자가 가득한 사서를 쉽게 전달하고자 시작한 저술이 벌써 10년이 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신 교수는 2011년 출간돼 20만 부가 팔린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1세기북스)을 시작으로 중용, 대학 등 동양고전을 알기 쉽게 풀어쓴 책들을 지난 10년간 내놓았다. 동양고전을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신간으로 ‘내 인생의 사서’ 시리즈를 완간한 그를 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맹자’는 중국 전국시대를 살아간 맹자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예부터 동아시아의 ‘제왕학 교과서’로 꼽힌다. 신 교수는 7편의 맹자에서 77개의 표제어를 뽑아 그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정리했다. 신 교수가 꼽은 맹자 사상의 핵심은 인의(仁義). 전쟁 같은 폭력적 방식이 아니라 인심을 베풀고 상식이 통하는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 부국강병을 추구한 양(梁)나라 혜왕을 만난 맹자는 “마구간에 살찐 말이 있지만 백성들은 먹지 못해 굶주린다. 이는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라고 일침한다.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정치가 아니라 백성이 낸 세금으로 일군 성과를 함께 즐기는 이른바 여민해락(與民偕樂)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는 많은 이에게 조언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에 맹자는 “잘 자라는 생물도 하루만 햇볕을 쪼이고 열흘 동안 추우면 잘 자라지 못한다(일포십한·一暴十寒)”고 토로한다. 좋은 조언을 해도 이후 신하들이 반대하면 소용이 없다는 얘기였다. 맹자는 모름지기 지도자는 “주변에 끌려가지 않고 자기가 세운 주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왕학의 고전을 다룬 이번 신간이 마침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기에 나와 더 눈길을 끈다. 맹자를 연구하는 전문학자가 생각하는 올바른 지도자상은 무얼까. 신 교수는 “자신의 비전만 제시할 게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여민해락으로 나아가는 길인지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가 빼어난 지도자”라고 했다. 그는 “이번 시리즈를 마치며 동양철학자로서 책임을 다한 것 같아 홀가분하다”면서도 “사서가 끝났으니 오경(五經)은 어떻게 해야 할지 또 다른 숙제를 안게 됐다”고 덧붙였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사람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과서로 서구에 성경이 있다면, 동양에선 사서(四書)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자가 가득한 사서를 쉽게 전달하고자 시작했던 게 10년이 됐습니다.” 2011년 출간돼 20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1세기북스)을 시작으로 10년 간 사서에 해당하는 논어와 중용, 대학 등 고전 명저들을 쉽게 풀어 소개해 온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56·유학대학 학장)가 최근 ‘맹자의 꿈’(21세기북스)을 출간했다. 이번 책으로 ‘내 인생의 사서’ 시리즈를 완간한 신 교수를 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유학대학장실에서 만났다. ‘맹자’는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제왕학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다. 기원전 403년부터 200여 년간 각지의 제후들이 패권을 차지하고자 전쟁한 전국시대를 살았던 맹자(기원전 372~기원전 289)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줄 지도자를 찾아다녔다. 지도자들과 나눈 대화와 맹자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 바로 ‘맹자’다. 신 교수는 책에서 7편의 ‘맹자’ 각 편에서 11개씩 총 77개의 표제어를 뽑아 맹자 사상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맹자 사상의 핵심은 인의(仁義)다. 전쟁과 같은 억압적 방식이 아니라 인심을 베풀고 상식이 통하는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국강병을 추구했던 양(梁)나라 혜왕을 만난 맹자는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지만 백성들은 먹지 못해 굶주린다. 이는 짐승을 몰아다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셈이다’라고 일침한다.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백성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이 지도자냐고 따졌던 것. 맹자는 백성의 고혈을 짜는 정치가 아니라 백성이 낸 세금으로 일군 성과를 백성과 함께 즐기는(與民偕樂·여민해락)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지도자가 펼쳐야 할 정책에 대해 조언과 상담을 아끼지 않았던 맹자였지만, 그 성과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맹자는 이에 ‘잘 자라는 생물도 하루 햇볕 쪼이고 열흘 추우면 잘 자라지 못한다’(一暴十寒·일포십한)고 결론짓는다. 지도자를 식물에 비유해 자신이 하루 조언을 하더라도 그 이후에 신하들이 가당치 않는 말이라고 한다면 그 조언은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 이에 맹자는 주변 상황이나 남의 의견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관을 세우고 그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先立其大·선립기대)고 말한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제왕학을 다룬 신간이 출간됐다. 신 교수가 생각하는 올바른 지도자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비전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여민해락으로 나아가는 길인지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사람이 빼어난 지도자”라고 말했다. 지도자는 자신의 주관에 따라 왜 그 비전이 실현가능한지 소통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을 쉽게 전달하는 그의 여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 교수는 “이번 시리즈를 마치며 동양철학자로서 책임을 다한 것 같아 홀가분하다”면서도 “사서가 끝났으니 오경(五經)은 어떻게 해야 할지 또 다른 숙제를 안게 됐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15주년에 인터뷰를 또 할 수 있다면, 그땐 서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남북 관계가 개선돼 프로그램 제목이 ‘이제 만나러 왔어요’가 됐으면 좋겠어요.”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의 MC 남희석(50)은 방송 10주년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남 씨는 첫 방송인 2011년 12월 4일부터 쭉 자리를 지킨 터줏대감. 일요일 오후 11시에 방송되는 이만갑은 종합편성채널의 최장수 예능이자 탈북민과 함께하는 방송의 원조다. 서울 마포구 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DDMC)에서 6일 남 씨와 김군래 PD(45), 장주연 작가(46)를 만났다. 이만갑은 출연한 탈북민의 이야기를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려왔다. 지금까지 600여 명의 탈북민이 출연했다. 탈북민에게 직접 북한 이야기를 듣고, 전문가의 관점에서 남북 관계를 분석해 재미와 감동, 교훈을 두루 갖춘 프로그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만갑은 올해 7월 25일 전국 3.2%(닐슨코리아)의 시청률을 올리는 등 2% 안팎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해외 여러 언론사들이 북한 관련 보도를 할 때 이만갑의 내용을 분석해 반영하거나 출연진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만갑의 장수 비결을 묻는 질문에 김 PD는 “10년간 자리를 지켜온 남 MC와 장 작가 덕분”이라고 답했다. 남 씨는 방송 후에도 친오빠처럼 탈북민 출연진의 개인적인 고민을 들어주고 필요할 경우 때론 따끔하게 말하기도 한다. 장 작가는 방송 초창기부터 발품을 팔아 탈북민을 섭외하며 그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 가족처럼 탈북민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에 탈북민도 믿고 출연한다는 것. 남 씨는 “난 대한민국에서 여동생이 제일 많은 사람일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10년간 이어온 프로그램은 제작진에게 성장의 기회가 됐다. 장 작가는 기억에 남는 회차로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꼽았다. 당시 일부 출연진이 하노이를 찾았다. 신은하 씨(34)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차가 지나가자 “저희 고향 좀 가게 해주세요”라고 외쳤다. 장 작가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며 “그때 탈북민의 진심을 전하는 방송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만갑은 올해 6월 13일 방송부터 형식을 바꿨다. 기존에는 탈북민의 북한 생활 이야기와 남한 적응기 등을 주로 다뤘는데 이제는 북한의 대남공작,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 북한 관련 역사적 사건들을 조명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탈북민이 특정 사건에 대한 북한 내 분위기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게 되자 일부 시청자들은 기존 형식이 그립다는 의견을 표하기도 했다. 개편과 함께 프로그램을 맡게 된 김 PD는 “10년을 앞둔 프로그램을 맡아 부담감이 컸다”면서도 “이만갑이 지금까지 탈북민과 함께 울고 웃었다면, 이제는 남북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 작가는 “여전히 탈북민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이만갑의 변하지 않는 정체성”이라고 강조했다. “탈북민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고,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잘 적응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남 씨) “어느 시점에서는 또 개편될 수 있겠죠. 언제든 이만갑은 항상 탈북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김 PD) “이런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껴요. 앞으로도 따뜻한 시선으로 탈북민의 이야기를 전할게요.”(장 작가)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지옥’부터 ‘Dr. 브레인’ ‘유미의 세포들’ ‘D.P.’에 이르기까지 웹툰 원작의 국내 드라마들이 세계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웹툰과 웹소설이 글로벌 콘텐츠 시장을 공략할 원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이들의 인기 비결을 알아봤다. 》K콘텐츠의 힘 ‘K웹툰’프랑스, 인도, 일본, 말레이시아, 멕시코, 필리핀, 폴란드, 태국, 베트남, 대만…. 지난달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이 1위를 차지한 36개국(지난달 23일 기준) 중 일부다. 지옥은 공개 하루 만에 전 세계 종합순위 1위에 올랐다. 지난달 28일까지 총 시청 시간만 1억1100만 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옥은 10년 이상 회자될 만큼 진심으로 예외적인 드라마”라고 극찬했다. 미국 CNN은 “올해 한국 드라마들은 끝내 준다. 지옥은 새로운 ‘오징어게임’”이라고 호평했다. ‘지옥’의 세계적인 성공 요인 중 하나는 탄탄한 원작 웹툰이다. 2019∼2020년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데, 드라마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 직접 스토리를 짰다. 드라마의 서사가 대부분 웹툰에 바탕을 두고 있어 드라마 못지않게 웹툰의 작품성도 덩달아 주목받고 있다. 웹툰을 만든 감독이 직접 연출한 만큼 웹툰의 기획의도와 주제의식이 드라마에 잘 녹아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세계적으로 유행한 웹툰 원작 드라마는 지옥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14일 공개된 드라마 ‘Dr.브레인’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를 통해 100개국 이상에 선보였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충격적 반전과 더불어 고급스러우면서도 흡인력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올 9월 티빙을 통해 공개된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해외 플랫폼사와의 콘텐츠 유통 계약을 통해 유럽, 북미, 동남아시아 등 세계 160여 개국에 방영됐다. 올 8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국내에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태국, 베트남에서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그간 축적된 웹툰, 웹소설 기반의 지식재산권(IP)이 뛰어난 드라마로 재탄생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웹툰, 웹소설이 ‘원소스 멀티유스(OSMU)’의 콘텐츠 소비 방식과 맞물려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OTT와 함께 세계로웹툰 원작의 영상 작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게 최근 일은 아니다. 2014년 웹툰 원작의 tvN 드라마 ‘미생’이 최고 시청률 8.2%를 달성하면서 국내에 웹툰 드라마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카카오TV ‘며느라기’(2020년)도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화제가 된 드라마다. 1, 2편을 합쳐 국내에서 관객 2700만 명 가까이를 동원한 영화 ‘신과 함께’(2017년)도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최근 웹툰 원작 드라마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흥행하는 배경에는 글로벌 OTT의 성장세가 자리 잡고 있다. 넷플릭스, 애플TV, 디즈니플러스 등 세계 각국에 서비스되는 OTT를 통해 작품이 동시에 공개돼 해외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희윤 네이버웹툰 IP비즈니스팀 리더는 “과거에는 웹툰 원작 영상 작품이 해외에 진출하려면 해외 제작사나 투자사와 협의하는 게 필수였지만 이제는 복수의 글로벌 OTT들이 있어 상황이 달라졌다”며 “국내에서 영상 작품을 제작한 뒤 곧바로 해외를 공략할 기회가 많아진 만큼 세계적 흥행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들의 성공은 웹툰의 세계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옥’의 원작 웹툰이 연재되고 있는 네이버웹툰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등 10개 언어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웹툰을 종이 만화책으로 만들 수 있는 판권이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등 11개국으로 팔려 나가기도 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넷플릭스 콘텐츠를 시청한 후 웹툰 등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가 전체의 42%에 달한다”며 “영상 콘텐츠의 인기는 연계된 콘텐츠 산업에까지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왜 웹툰 원작인가드라마 시장에서 웹툰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얼까. 무엇보다 웹툰의 어마어마한 성장세가 직접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교보증권이 올 2월 발간한 ‘웹툰이 곧 글로벌 흥행 IP’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210억 원에 불과했던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지난해 1조 원으로 급성장했다. 6년 만에 50배 가까이 성장한 덕에 많은 콘텐츠 창작자가 웹툰 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그만큼 탄탄한 이야기가 웹툰 시장에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한송이 카카오웹툰스튜디오 센터장은 “웹툰 플랫폼에서 소비자가 돈을 주고 웹툰을 봤다는 건 작품성과 흥행성이 보장된 작품이라는 뜻”이라며 “인기 웹툰이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면 원작 팬을 시청자로 확보할 수 있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했다. 웹툰만의 독특한 상상력이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드라마 시청자를 만족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예를 들어 ‘유미의 세포들’의 원작 웹툰은 주인공 유미의 감정을 세포들로 표현하는 참신한 발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 제작진도 이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에 도전해 호평을 받았다. 황혜정 티빙 콘텐츠사업국장은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은 3차원(3D)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 세포의 모습을 실사와 결합해 기존 드라마와 차별화했다”며 “처음 시도하는 형식에 대한 시청자 반응이 좋았던 게 성공 원인”이라고 말했다. 국내 영상 제작 기술이 최근 급속도로 발전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올 2월 공개된 웹툰 원작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처럼 만화로만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2092년 우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컴퓨터그래픽(CG) 역량을 확보했다는 것.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국내 콘텐츠 산업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제작비와 인력이 확충되고 CG 수준도 향상됐다”며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대작에 밀리지 않을 정도의 영상 수준 덕에 해외 시청자들도 한국 영상 작품에 빠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웹툰이 지닌 시의성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오늘날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이야기를 만들어내 드라마나 영화 제작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희윤 리더는 “우리가 지금 고민하거나 좋아하는 것들을 가장 잘 반영한 콘텐츠가 웹툰”이라며 “트렌드가 잘 반영돼 있어 웹툰이 영상 작품의 원작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웹툰 IP 전쟁에 웹소설도 가세 웹툰 원작의 영상 작품이 연달아 성공을 거두면서 콘텐츠 업계에서는 웹툰의 IP를 확보하려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드라마의 부가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다. 웹툰 IP 확보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드라마나 영화 제작사들. 스튜디오드래곤은 올 3월 웹툰 스튜디오 와이랩과 협력계약을 체결했다. 와이랩이 보유한 웹툰 IP를 이용할 수 있는 우선 협상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 스튜디오드래곤은 영상화에 적합한 웹툰을 발굴하기 위해 콘텐츠전략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기혁 스튜디오드래곤 사업전략담당 및 기획개발 담당은 “내년에 공개되는 웹툰 원작 드라마 ‘아일랜드’도 다양한 웹툰 IP를 발굴하려는 노력의 성과”라며 “원작 웹툰의 매력을 살리면서 영상만이 보여줄 수 있는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야 영상화에 성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웹툰 플랫폼이 자체적으로 영상화에 나서기도 한다. 네이버웹툰은 자회사인 스튜디오N을 통해 영상화에 적합한 웹툰을 고르고, 다른 영상 제작사에 이를 소개한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자체 웹툰 플랫폼인 카카오웹툰에 연재된 작품들을 카카오TV를 통해 영상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웹소설도 영상화에 적합한 IP로 주목받고 있다. 웹툰만큼 참신하고 작품성이 탄탄한 웹소설이 잇달아 발굴되고 있기 때문. 웹소설 시장 규모가 지난해 6000억 원에 달할 정도로 커질 만큼 이야기꾼들이 웹소설에 몰리고 있다. 글로만 구성된 웹소설은 그림까지 그려야 하는 웹툰보다 제작 속도가 평균 20배 정도 빠른 만큼 시의성을 갖춘 작품이 많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북미 웹소설 플랫폼 래디시를 인수한 데 이어 네이버웹툰이 세계 1위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사들이며 웹소설 IP 사냥에 나서고 있는 이유다. 올 4월 공개된 웹소설 원작 드라마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는 아마존 프라임 저팬 등 해외 OTT를 통해 세계 190개국에 소개됐다. 누적 조회수 1억5000만 회를 달성한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 역시 영상화가 진행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융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웹소설 창작 전공)는 “웹툰이 영상 작품으로 많이 만들어지면서 이미 IP를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국내 산업 기반이 갖춰진 상태”라며 “최근 웹소설이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성장하고 있어 영상화를 통한 성공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갓 만든 음식이 집까지 배달된다. 오후 9시에 택배를 주문해도 다음 날 문 앞에 물건이 와 있다. 주문할 때 도착지 주소만 제대로 적는다면 말이다. 주소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당장 택시를 타는 것도 힘들어진다. 목적지를 제대로 얘기할 수 없어서다. 택배 주문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주소는 이처럼 우리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작가이자 변호사인 저자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주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탐구했다. 주소에 얽힌 역사를 들여다보면 주소가 행정적 목적뿐 아니라 권력 작용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국가가 세금을 매기고 치안을 유지하며 범죄자를 찾아 투옥하기 위해 주소를 만든 게 대표적이다. 영국 런던에서는 중세시대부터 근처 나무의 종류나 강, 건물 이름 등에서 착안해 도로명을 지었다. 런던에 ‘처치 스트리트’나 ‘스테이션 로드’ 같은 도로 이름이 흔한 이유다. 주변 지형을 이용하다 보니 주소 속에는 자연스레 지역 역사가 녹아 있다. 1310년 영국은 공식적으로 매춘부들을 도시 성곽 밖으로 추방했다. 현재 영국 슈루즈베리 지역에는 그로프 레인(Grope Lane)이라는 이름의 거리가 있다. 그로프는 몸을 더듬는다는 뜻으로, 매매춘이 이뤄진 지역에 이런 도로명이 붙었다. 특히 도시 한복판이나 대형 시장 근처에 이런 이름의 거리가 많았다. 정부가 금지했지만 암암리에 도시 한가운데에서 매매춘이 행해진 사실을 주소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주소는 권력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13세기부터 650여 년간 오스트리아 왕실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는 18세기 프로이센, 영국, 포르투갈 등의 도전을 받았다. 당시 왕가를 이끈 마리아 테레지아(1717∼1780)는 현 폴란드 영토인 슐레지엔 땅을 숙적 프로이센으로부터 되찾고자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전장에 나갈 젊은 남성을 징집했지만 봉건지주들이 힘세고 성실한 농노들을 숨기고 그렇지 않은 이들을 내보냈기 때문이다. 이에 테레지아는 모든 가구에 번호를 매겨 거주자 명단을 작성하는 묘안을 낸다. 그 결과 110만이라는 총 가구 수와 더불어 700만 명의 전투 가능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제는 누구나 주소를 갖는 게 당연한 세상 같지만 21세기에도 주소가 없는 이들이 있다. 인도 콜카타의 오랜 빈민촌인 체틀라 주민들은 주소가 없어 은행 계좌를 못 만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계좌가 없으면 저축을 할 수 없고 대출도 못 받는다. 심지어 신원증명서조차 발급받을 수 없다. 정부의 각종 복지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주소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빈민촌을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었다. 그런데 지역 사회복지사의 ‘주소 만들어주기’ 운동을 계기로 이들도 주소를 갖게 됐다. 이후 이들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 소속감을 갖게 됐다. 주소를 통해 사회의 일원이 됐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서 시민으로서 정체성도 생긴 것이다. 동시에 세금을 납부하며 국가의 통제를 받게 됐다. 저자는 주소를 정체성의 문제와 연결짓는다. 특정 지역이 변화해온 역사가 주소에 담겼고, 그곳에 사는 이들의 성격을 규정해서다. 때로는 주소가 집값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 책 독자들은 책장을 덮는 순간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주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몹시 궁금해질 것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1974년 7월 28일 경북 경주시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心礎石·목탑을 지탱하는 중앙 기둥의 주춧돌) 아래에서 사리기(舍利器)로 추정되는 중국제 백자 항아리와 청동 거울, 금동 귀고리, 유리구슬 등 유물 3000여 점이 발견됐다. 예부터 목탑 아래는 사리를 주로 봉안한 장소였다. 신라의 왕실 거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신라사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황룡사 출토 유물을 포함해 신라 주요 사찰에서 나온 유물 530여 점을 모아 선보이는 불교사원실을 최근 공개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시대 경주는 ‘절이 별처럼 많고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었던 곳’이었다. 새로 단장한 불교사원실은 신라미술관 2층 황룡사실을 확장해 분황사, 감은사, 흥륜사 등의 출토품을 포함했다. 전시에서는 일부 유물을 대상으로 진행한 과학 조사 결과, 새로 밝혀진 사실을 공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백자항아리와 그 안에 들어 있던 하얀색 물질. 당초 학계에서는 이 물질을 승려 자장이 중국에서 들여온 골(骨)사리로 추정했다.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 아래 깊숙이 숨긴 정황상 중요한 성물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 물질은 사리가 아닌 조개껍데기로 밝혀졌다. 신광철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진단구(鎭壇具·액운을 막기 위해 땅에 묻는 예물)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사리기 안에 봉안품으로 담긴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기록에만 나오는 유물을 실제로 확인하기도 했다. 서기 872년 황룡사 9층 목탑 중수 당시를 기록한 ‘황룡사 찰주본기’에는 “금은고좌(金銀高座·금과 은으로 된 승려가 앉는 높은 좌석) 위에 사리유리병이 안치돼 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목탑 심초석 출토 유물 중 금은고좌가 무엇인지가 그동안 확실치 않았다. 박물관은 심초석 사리공(舍利孔·사리를 넣는 네모난 구멍)에서 발견된 금동 연꽃 모양 받침의 재질을 조사한 결과 받침 가운데 부분이 은, 바깥 부분이 금으로 구성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 받침이 찰주본기에 나오는 금은고좌임이 밝혀진 것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남한의 고려시대 도성(都城·도읍을 둘러싼 성곽)인 강화도성에서 치성(雉城·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공격하는 시설)이 처음 발견됐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2일 인천 강화군 강화도성 중 중성(中城) 남쪽 성벽 구간에서 길이 19m, 너비 4.5∼4.7m, 높이 1.3∼2.6m의 치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확인된 남한 내 고려 치성 중 가장 큰 규모다. 전남 진도군 용장성과 충북 충주시 호암동토성 등 고려 산성에서도 치성이 발견됐지만 길이가 10m도 되지 않는다. 강화도성의 치성 주변에서는 기와, 문확석(門確石·문을 고정시키는 돌), 주춧돌 등 건물부재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나왔다. 몽골 침략에 맞서 1232년 수도를 강화로 옮긴 고려는 1232∼1270년의 항몽 기간에 방어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강화도성을 외성(外城) 중성(中城) 내성(內城)의 3중으로 쌓았다. 이번에 발견된 치성은 성벽 축조기법과 같은 판축(板築·나무로 만든 틀에 흙을 켜켜이 다져넣는 것) 기법으로 조성됐다.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장은 “강화도성 중성은 고려 토성 중 가장 완성된 공법으로 지어졌다. 토루(土壘·흙무더기)에 나무틀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을 정도로 치성을 견고하게 쌓았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1953년 10월 13일 오전 6시. 당시 22세로 서울대 공대생이던 김연덕 씨(90)를 비롯한 한국산악회원 16명이 울릉도에서 독도로 향하는 해군 함정에 몸을 실었다. 일본에 맞서 독도 수호운동을 펼친 한국산악회의 국토구명 학술조사 활동이었다. 당시 정부는 일본과의 외교마찰 등을 우려해 군대가 아닌 민간단체의 독도 상륙을 지원했다. 출발 4시간 후 독도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상륙은 쉽지 않았다. 소형 배를 띄웠지만 거센 파도에 휩쓸려 뱃머리가 부서졌다. 파도가 잔잔해질 때를 기다리기 위해 울릉도로 뱃머리를 돌린 지 한 시간. 정체불명의 배가 산악회원들이 탄 함정을 추격해왔다. 독도를 순찰하던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었다. 우리 해군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일본 영해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자 순시선은 물러섰다. 6·25전쟁 직후 독도 측량을 위해 학술조사대를 파견한 한국산악회 기록이 최근 새로 발견됐다. 김 씨가 모교인 경기고 산악회 동문회보에 1953년 기고한 글 ‘독도행각(獨島行脚)’을 통해서다. 여기에는 그해 김 씨가 한국산악회원들과 독도 상륙에 나선 과정이 담겨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달 29일 한국산악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과거 산악회 활동이 담긴 자료들을 기증받았다. 독도행각에 따르면 산악회원들은 1차 상륙 시도가 실패하고 이틀 후인 1953년 10월 15일 오전 1시 재출항해 6시경 독도 동도 상륙에 성공했다. 이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시마네현 오치군 고케무라 다케시마(島根縣 隱地郡 五箇村 竹島)’라는 일본 행정구역이 적힌 나무 말뚝이었다. 앞서 한 해 전인 1952년 5월 일본 어선이 세운 것이었다. 산악회원들은 말뚝을 뽑아버리고 독도 측량과 탐사에 나섰다. 다음 날인 16일 오후 9시 이들은 울릉도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이들은 승선 전 한글로 ‘독도’라고 새긴 표석을 구릉지대에 세웠다. 광복 후 한일 양국 정부는 독도를 놓고 지속적으로 갈등을 벌였다. 일본 정부는 1947∼1953년 주일미군이 독도에서 폭격 연습을 벌인 것을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했다. 미일 양국 정부가 합동위원회를 구성해 독도를 폭격 연습지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자신들의 영유권을 인정했다는 것. 그러던 중 1948년 6월 8일 미 공군의 일본 오키나와 기지를 출발한 B29폭격기의 폭격 연습으로 독도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어민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미군은 특별조사단을 독도로 파견하고, 어선을 바위로 착각해 폭격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952년에는 9월에만 세 차례에 걸쳐 미 공군 폭격기가 독도 해상에 폭탄을 투하했다. 이로 인해 그달 22일 학술조사단 36명을 독도로 파견한 한국산악회가 상륙을 포기했다. 우리 어민들이 사망한 데다 민간인들의 상륙까지 불발되자 한국 정부는 1952년 11월 10일 주한미대사관을 통해 주일미군의 독도 폭격 연습 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이듬해인 1953년 3월 19일 미일 합동위원회는 주일미군의 폭격 연습지에서 독도를 제외하기로 했다.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한국산악회의 독도 상륙 기록은 민관이 힘을 합쳐 독도를 지키려고 노력한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중요 사료”라고 평가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1974년 7월 28일 경북 경주시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心礎石·목탑을 지탱하는 중앙 기둥의 주춧돌) 아래에서 사리기(舍利器)로 추정되는 중국제 백자호(白磁壺·달 모양의 백색 항아리)와 청동거울, 금동 귀고리, 유리구슬 등 3000여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목탑은 승려 자장(590~658)이 643년 당나라 오대산에서 가져온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뒤로 13세기 고려시대 몽골 침입으로 소실되기까지 중요한 사리 봉안 장소였다. 대표적인 왕실 사찰에서 출토된 유물은 신라 연구에 새로운 활로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황룡사 출토 유물을 포함해 신라 주요 사찰에서 나온 문화재 530여 점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 불교사원실을 지난달 24일 공개했다. 삼국유사에는 ‘절이 별처럼 많고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었다’며 신라시대 경주를 그린 기록이 있다. 이번 불교사원실은 이에 맞춰 신라미술관 2층 황룡사실을 확장해 분황사, 감은사, 흥륜사 등을 아울렀다. 전시에서는 일부 유물을 대상으로 진행한 과학적 조사 결과 새로 밝혀진 사실을 공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백자호와 그 안에 들어있던 세 개의 하얀색 물질과 관련돼있다. 학계에서는 이 물질을 자장이 중국에서 들여온 부처 골(骨)사리로 추정했다.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 하부의 안전한 공간에 숨겼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성물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해당 물질은 조개껍데기로 밝혀졌다. 신광철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진단구(鎭壇具·액땜을 위해 땅에 묻는 예물)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사리기 안에 봉안품으로 담겼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기록에만 등장하던 유물을 실제로 규명하기도 했다. 872년 황룡사 9층 목탑 중수 당시를 기록한 ‘황룡사 찰주본기’에는 “금은고좌(金銀高座·금과 은으로 된 승려가 앉는 높은 좌석) 위에 사리유리병이 안치돼 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심초석 출토 유물 중 유리병이 없어 금은고좌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박물관은 심초석 사리공(舍利孔·사리를 넣는 네모난 구멍) 안에서 발견된 금동 연꽃 모양 받침을 대상으로 재질 조사를 한 결과, 받침 가운데 부분이 은, 바깥 부분이 금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인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매일 참치를 사 먹을 수 있는 시대예요. 하지만 우리는 그 생선을 어떤 바다에서 누가 어떻게 잡는지 거의 모르죠.” 최희철 씨(60)는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어업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부터 7년간 원양어선 항해사로 근무했다. 하지만 한 번 항해를 떠나면 최소 2년은 육지를 밟을 수 없는 답답함과 힘든 생활에 하선을 결정했다. 20년 넘게 닭 도매업을 하던 그는 6년 전 다시 배에 올랐다. 국제수산기구나 개별 국가의 지정을 받아 원양어선에 승선해 불법 어업을 감시하고 해양생태계 정보를 수집하는 옵서버 자격으로 바다로 돌아온 것. 최 씨가 최근 발간한 ‘동부태평양어장 가는 길’(해피북미디어)은 그가 2016년 8월부터 4개월간 동부태평양어장에서 눈다랑어를 잡는 연승어선(延繩漁船·낚싯바늘을 여러 개 매단 낚싯줄을 바다에 던져 생선을 잡는 어선) 517 남궁호에 탑승해 바라본 어업 현장을 담은 해양 체험 문학이다. 그는 지난달 2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도 30여 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선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며 “다른 직업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원양어선 선원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부태평양어장 원양어선은 최소 20개월을 바다에서 보낸다. 최 씨는 물 부족을 원양어선 생활의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 조수기로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해 물을 얻지만, 선박 노후화로 조수기 성능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먹을 물도 부족하다 보니 씻고 빨래하는 데는 바닷물을 쓴다. 빨랫감을 노끈에 묶어 바다로 던지고, 달리는 배의 힘으로 빨랫감을 바다 표면에 두드려 찌든 때를 빼는 식이다. 원양어선에 2인용 텐트 서너 개 크기의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상추, 방울토마토 등의 채소를 재배하기도 한다. 채소는 유통기한이 짧아 출항 후 한 달이면 동나기 때문이다. 배의 무게중심을 해칠 수 있어 시설물을 설치하는 게 법적으로는 금지돼 있지만 망망대해에 놓인 선원들의 생존방법이다. 최 씨가 항해사로 근무했던 30년 전과 달라진 점은 어업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일일이 손으로 낚시를 바다에 내리던 수동 방식에서 이제는 기계가 수천 개의 낚시를 한 번에 자동으로 내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또 배에 무선인터넷 시스템이 생겨 먼바다에서도 가족과 연락하고 육지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최 씨는 어업과 해양생태계의 관계도 강조했다. “어획량이 수입과 직결되다 보니 선원들은 휴일 없이 일하고 가까운 항구에 입항하지도 못해요. 배에 쌓이는 폐기물은 아무도 모르게 바다에 버려지죠. 해양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선 어획량과 무관하게 선원들의 임금을 올려주는 등 개선이 필요합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경남 창녕군의 5, 6세기 가야 고분에서 무덤 주인과 함께 순장된 개 사체들(사진)이 발견됐다. 이전에도 동물을 무덤에 매장한 사례는 나왔지만, 별도 석곽을 만들어 개를 묻은 사실이 확인된 건 처음이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경남 창녕군의 교동 63호분에서 나란히 묻힌 세 마리의 개 사체가 나왔다. 개들의 어깨높이는 약 48cm로 진돗개와 비슷하다. 개가 묻힌 석곽은 가로세로 각 1m 크기로 무덤 주인의 북서쪽 모서리에 있었다. 무덤 출입구의 바로 앞에 놓여 무령왕릉의 진묘수(鎭墓獸·무덤을 지키는 동물)를 연상시킨다. 연구소는 개들이 무덤 조성 당시 순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개 석곽이 고분과 동시에 조성된 흔적이 나온 데다, 뼈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한 개체로 온전히 발견돼서다. 가야고분인 경북 고령군 지산동 44호분 내 석곽에서도 말 이빨이 나왔지만 순장 여부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교동 7호분과 14호분에서는 별도 석곽 없이 개 뼈가 무덤 입구 근처에서 나왔다. 연구소는 “무령왕릉처럼 진묘수의 의미로 개들을 순장한 걸로 추정한다”며 “유전자 분석으로 견종을 밝히고 유사한 사례를 더 찾아볼 예정”이라고 밝혔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경남 창녕군의 5, 6세기 가야 고분에서 무덤 주인과 함께 순장된 개 사체들이 발견됐다. 이전에도 동물을 무덤에 매장한 사례는 나왔지만, 별도 석곽을 만들어 개를 묻은 사실이 확인된 건 처음이다.문화재청 산하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경남 창녕군의 교동 63호분에서 나란히 묻힌 세 마리의 개 사체가 나왔다. 개들의 어깨높이는 약 48㎝로 진돗개와 비슷하다. 개가 묻힌 석곽은 가로, 세로 각 1m 크기로 무덤 주인의 북서쪽 모서리에 있었다. 무덤 출입구의 바로 앞에 놓여 무령왕릉의 진묘수(鎭墓獸·무덤을 지키는 동물)를 연상시킨다.연구소는 개들이 무덤 조성 당시 순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개 석곽이 고분과 동시에 조성된 흔적이 나온 데다, 뼈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한 개체로 온전히 발견돼서다. 가야고분인 경북 고령군 지산동 44호분 내 석곽에서도 말 이빨이 나왔지만 순장 여부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교동 7호분과 14호분에서는 별도 석곽 없이 개 뼈가 무덤 입구 근처에서 나왔다.연구소는 “무령왕릉처럼 진묘수의 의미로 개들을 순장한 걸로 추정한다”며 “유전자 분석으로 견종을 밝히고 유사한 사례를 더 찾아볼 예정”이라고 밝혔다.이기욱기자 71wook@donga.com}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는 에디슨의 명언은 역설적으로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1%의 영감이 없으면 천재가 될 수 없다는 뜻과도 같다. 천재를 만드는 1%의 영감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저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그리스 아테네, 중국 항저우, 이탈리아 피렌체 등 역사상 천재를 많이 배출한 도시 7곳을 둘러봤다. 그에 따르면 천재를 탄생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요인은 각 도시 환경이 만들어낸 문화다. 이 책은 올 4월 출간돼 화제를 모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어크로스)의 저자가 2018년에 쓴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의 개정판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14명의 철학자를 만나는 여정을 기차여행을 하듯 쉽게 풀어 써 한때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번 개정판은 표지와 제목을 바꾸는 한편 초판 본문의 오역과 어색한 표현들을 바로잡았다. 표지에 각 도시의 상징물과 더불어 비행기 삽화를 넣어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살렸다. 실제로 ‘위드 코로나’ 이후 해외여행 길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이 책을 가이드 삼아 떠나는 것도 방법일 듯싶다. 이 책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인구가 10만 명이 채 되지 않았고, 다른 도시국가인 코린트나 시라쿠사보다 부유하지도 않았다. 이런 곳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시대를 초월한 천재들을 대거 배출해낼 수 있었던 건 아테네의 개방성 덕분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항구도시 아테네에는 외국 문물이 쉽게 들어왔고, 아테네인들은 이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예컨대 당시 도자기 공예를 시작한 집단은 코린트인들이었지만 아테네인들은 여기에 색을 입히고 끌어안은 연인, 놀이를 하는 아이 등 서사를 담은 그림을 그려 넣어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또 페니키아로부터 알파벳을, 바빌로니아로부터 수학을 각각 받아들였다. 이처럼 각지에서 수용한 문물들을 아테네화하는 과정은 도시에 창의성을 불어넣었다.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산드로 보티첼리 등 위대한 천재들을 여럿 낳았다. 이들이 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당시 피렌체를 지배한 메디치 가문의 막대한 부가 한몫했다. 많은 이들을 착취하는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쌓은 메디치 가문은 지옥에 떨어지는 걸 두려워했다. 마침 로마 교황청이 교회 관련 건축물이나 미술품 제작에 비용을 대면 면죄부를 주겠다고 제안해 메디치 가문은 이를 수락한다. 이들의 꾸준한 후원 덕에 예술가들은 그들의 열정을 펼칠 수 있었다. 르네상스가 꽃을 피우는 데 메디치 가문의 죄책감이 원동력이 된 셈이다. 옛 스코틀랜드 왕국 수도였던 영국 에든버러에서는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 등 천재 사상가들이 자랐다. 저자는 에든버러의 한 술집에서 지적 결투가 벌어지는 광경을 목격한다. 손님들은 국제관계, 역사, 종교 등 다방면에 걸친 주제를 놓고 맥주잔을 기울이며 열띤 토론을 펼쳤다. 토론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 현 상황에 대한 개선으로 귀결됐다. 그렇기에 다른 의견으로 논쟁이 과열돼도 인신공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실용 학문을 추구하는 스코틀랜드 특유의 문화는 경제학, 의학 등이 발전한 바탕이 됐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객이 와서 전하기를 나라가 없어졌다 하기에 미칠 듯한 심사에 눈물 흘리며 처참해지네. 발꿈치 들고 어찌 청산의 흙을 밟으랴. 문 걸어 닫고 대낮 하늘의 해를 보지 않네.’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들은 운암(雲巖) 정두흠(1832∼1910)은 이런 내용의 한시 손명사(損命詞)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운암은 조선시대 임금에게 직언하는 관직인 사간원 정언(正言)과 사헌부 지평(持平)을 지냈다. 홍순석 강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25일 ‘장흥 지역의 순국지사와 절의 정신의 발현: 정두흠의 손명사’ 논문을 발표했다. 홍 명예교수는 올 8월 운암집(사진)을 번역하면서 손명사를 발견했다. 운암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 운암의 생전 활동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9월 현장답사 때 운암이 집 뒤에 지은 정자인 망화대(望華臺)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발견했다. 이곳에는 ‘망화대’라고 적힌 돌비석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경술국치 직후 순국한 매천 황현(1855∼1910)이나 일완 홍범식(1871∼1910)과 달리 운암은 현존 기록이 부족해 아직까지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했다.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은 “운암의 사적을 조속히 정리해 독립유공자로 추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