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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장교와 한국 대기업 상속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연인으로 연기했던 1982년생 동갑내기 배우 현빈(39)과 손예진(39)이 교제를 인정했다. 1일 현빈의 소속사 VAST엔터테인먼트는 “두 사람은 작품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됐고, 드라마 종영 이후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연인으로 발전하게 됐다. 앞으로 두 사람의 만남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고 응원해주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같은 날 손예진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예쁘게 잘 가꿔가 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사랑의 불시착 방영이 끝난 뒤인 지난해 3월부터 연인으로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그동안 세 차례 열애설에 휩싸였으나 매번 부인했다. 2018년 9월 영화 ‘협상’에 함께 출연한 직후 두 사람이 연애를 한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2019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마트에서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된 사진이 등장하고, 지난해 1월 두 사람이 교제한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친한 동료 사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1일 인터넷 연예매체 디스패치가 현빈의 자동차에 손예진이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진을 올리며 열애설을 보도한 뒤 교제를 인정했다. 사랑의 불시착은 한국에서 최고 시청률 21.7%를 기록했다. 일본 넷플릭스 1위를 기록하고,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이 드라마를 봤다는 얘기가 알려지면서 ‘겨울연가’ 이후 가장 주목받는 한류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주요 일간지도 두 배우의 교제 소식을 빠르게 전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에 대한 영문 사이트를 개설했다고 1일 밝혔다. 이 사이트에는 직지에 대한 정보와 사진, 관련 영상 등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또 반크가 직지를 세계에 알리는 이유와 프랑스로부터 직지를 회수하기 위해 진행하는 글로벌 청원 활동 등이 들어 있다. 직지는 1377년 충북 청주 흥덕사지에서 인쇄됐다.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독일의 구텐베르크 성서는 1455년 제작됐다. 직지가 78년 더 빠르다. 이런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외국 교과서나 학술서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 구텐베르크 성서라고 쓰인 경우가 많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미래에 3층짜리 상점에 들어가 쇼핑을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아마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친절한 로봇 점원 덕에 편안하게 물건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1층의 가전 코너에는 물건을 만드는 3차원(3D) 프린터, 2층 식료품 코너에는 세포를 조합해 고기로 만든 인공육, 3층 잡화 코너엔 하늘을 나는 자율주행차가 있을지도 모른다. 특별판매 코너에서 외계인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도 상상해볼 만하다. 화학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자 SF 소설가로 활동하는 저자가 그리는 미래 상점은 이런 모습이다. 저자는 2023∼2050년이라는 근미래를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 “소설을 쓸 때는 이야기가 재미있고 감동적이도록 생각을 짜내기 마련”이지만 “이 책을 쓸 때는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 일인지에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처럼 현실감이 높다. 공학박사인 저자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의뢰로 쓴 글을 모아 놓았기 때문에 신뢰성 역시 보장할 만하다. 과학 서적이지만 복잡하고 난해한 단어는 많지 않다. 어깨에 힘을 빼고 친절하게 쓴 덕에 쉽게 읽히는 게 장점이다. 산책을 하다 우연히 색다른 가게를 발견해 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읽어보자. 책장을 덮을 때면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 집약된 물리학, 화학, 전자공학의 최첨단 기술 원리를 이해할 것이다. 어쩌면 최신 기기를 사지 않고는 못 견디는 얼리어답터가 될지도 모른다. ‘아이쇼핑’이 이렇게 무섭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요즘 대학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은 절반 이상이 웹소설을 씁니다. 2000년 이후 태어난 학생들은 문학의 첫 경험이 웹소설이에요.” 소설가 이기호(48)는 국내 최초로 고교생 웹소설 공모전을 진행한 이유를 묻자 이같이 답했다. 이기호는 1999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단한 뒤 이효석문학상, 김승옥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받으며 순문학계의 정석을 밟아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최근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학과장으로서 웹소설 공모전을 연 건 시대의 흐름 때문이다. 그의 자전적 소설 ‘원주통신’에서 주인공은 세계문학전집으로 문학을 접한다. 반면 요즘 학생들은 웹소설을 읽으며 문학소년·소녀가 된다. “웹소설을 쓰다 흥미가 생겨 대학에서도 문학을 전공하게 됐다”는 한 문예창작학과 학생의 말처럼 대학엔 웹소설 작가 지망생이 넘쳐난다. 작품성은 어떨까. 이번 공모전에서 최고상인 장원을 받은 ‘편집자 권한 대행’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오늘날 젊은 세대가 처한 사회적 상황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암시를 제공했다” “간결하고도 흡인력 있는 문장에 기초했다”고 호평했다. 전통적인 신춘문예 심사평을 보는 듯하다. 지난해 5000억 원까지 커진 시장규모는 차치하고라도 “웹소설과 순문학 간에 칸막이를 치거나 등급을 나누는 건 이제 필요 없다”는 이기호의 말에서 웹소설의 높아진 위상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등단 작가가 작품을 발표하는 문예지 소설이나 출판 편집자의 퇴고를 거치는 단행본에 비해 웹소설의 전반적인 질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매일 연재를 하다 보니 작품성보단 분량을 채우기 급급하다”는 한 웹소설 작가의 푸념처럼 누구에게나 허락된 공간은 자칫 문학의 저질화를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장르적 다양성을 위해선 웹소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 드라마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로맨스 판타지의 원조는 웹소설이다. 이제는 찾기 힘들어진 무협소설도 웹소설에선 여전히 강세다. 미스터리, SF도 웹소설 작가들이 무궁무진하다. 누적 조회수 1억 회를 넘긴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을 영화 ‘신과 함께’의 제작사인 리얼라이즈픽쳐스가 영화화하기로 한 것처럼 2차 저작물로의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손원평의 ‘아몬드’, 정세랑의 ‘보건교사 안은영’,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 올해 출판시장에서 소설 판매를 이끈 여성 작가 4인의 작품은 순문학이 아니다. 어쩌면 장르성이 짙은 웹소설은 꺼져가는 소설에 대한 관심을 되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요즘은 서점이 아니라 웹소설 플랫폼을 기웃거린다”는 한 영화 관계자의 말을 주목할 때다. 이호재 문화부 기자 hoho@donga.com}

드라마 작가 ‘홍자매’(홍정은 홍미란)는 쉬지 않는다. 고전소설 춘향전을 현대식으로 각색한 ‘쾌걸 춘향’(2005년)을 시작으로 15년 동안 12개 작품을 쏟아냈다. 귀신이 머무는 호텔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호텔 델루나’(2019년)가 13%의 시청률을 기록하자 제작진과 함께 특별 포상 여행을 갈 수 있게 됐지만 “작가가 가면 현장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한다”며 고사했다. 지금도 자매가 한 지붕 아래 살며 매일 수다 떨듯 작품을 쓴다. 최근 서울 마포구 스튜디오드래곤 사무실에서 만난 홍자매는 “새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내년 상반기 촬영 시작을 목표로 캐스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작은 스튜디오드래곤이 맡는다. 코로나19 때문에 주로 세트장에서 촬영하고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해 제작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새 작품을 한 줄로 설명해 달라고 하자 언니 홍정은 작가(46)는 “천기(天氣)를 다루는 젊은 술사(術士)들의 사랑과 성장을 다룬 판타지 사극”이라고 했다. 시기적으론 약 1000년 전, 공간적으론 한반도 북부를 염두에 뒀다. 다만 실제 역사에 기반하지 않은 상상의 세계가 배경이다. “발해가 건국되기 전 고구려 유민들의 이야기가 바탕이지만 특정 시기를 짐작할 수는 없는 판타지물이에요. 역사에 없는 완전히 새로운 가상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죠.” 기존 사극의 엄숙함을 내던지고 만화적인 상상력을 실험했던 ‘쾌도 홍길동’(2008년)과 무엇이 다른지 묻자 최첨단 컴퓨터그래픽으로 동양적 술법과 액션 장면을 구현하겠다고 했다. “홍길동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해야 하는데 12년 전에는 이를 그리는 게 쉽지 않아 활극에 그쳤지만 이번엔 다를 겁니다.” ‘로코’(로맨틱 코미디)의 장인이란 평판 그대로 새 작품에도 사랑과 웃음이 진하게 묻어날 것으로 보인다. 거짓말쟁이 여자와 완벽한 남자의 만남을 그린 ‘마이걸’(2005∼2006년)이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재벌가 여성과 시골 수리공의 사랑 이야기인 ‘환상의 커플’(2006년)처럼 매력적인 사랑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최고의 사랑’(2011년)의 잘난 척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 독고진처럼 독특한 로맨스 주인공도 기대할 만하다. 로맨스를 계속 쓰는 이유를 묻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주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20, 30대 여성 시청자를 노리는 한국 드라마의 흥행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냐고 되묻자 그때까지 말수가 적던 동생 홍미란 작가(43)가 나서서 답했다. “우리가 쓰는 멜로에는 다른 작품과 달리 의리가 있어요. 남녀 주인공이 많은 일을 겪으면서 서로 믿게 되고 마음을 내주는 사이가 되는 게 다른 작품과의 차이점이에요.” 서로 첫눈에 반하거나 성적으로 호감을 갖는 서사가 아니라 고난을 거치며 의지하는 사이가 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홍정은 작가는 “서로 사랑하게 된 호텔 델루나의 여주인공 장만월과 남주인공 구찬성을 동성(同性)으로 바꾸면 우정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홍자매는 최근 들어 연달아 판타지를 선택하고 있다. 현대를 배경으로 손오공의 여정을 그린 ‘화유기’(2017∼2018년)처럼 독특한 설정의 작품을 쓰는 건 시청자들의 인식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서란다. 홍정은 작가는 “더 이상 시청자들은 재벌에게 시집가는 ‘백마 탄 왕자’의 로맨스에 감동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공간에서 벌어지는 판타지가 사랑을 그려 나가기 좋다”고 했다. 작품마다 시청률 압박에 시달리는 드라마의 세계에서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은 동거(同居) 집필 덕이다. 자매는 경기도의 한 주택에 함께 산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일어나 서로를 찾는다. 밥을 먹다가도 대사가 생각나면 함께 컴퓨터를 켜고 대본을 쓴다. ‘둘 중 누가 이 명대사를 썼냐’고 물어봐도 기억하지 못한다. “죽어도 이 대목은 못 바꾼다”고 싸워 소파 양 끝에 떨어져 앉아 있다가도 서로를 찾게 된다는 자매. 그들에게 아직 휴식기는 먼 이야기처럼 보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올해 웹툰 웹소설은 작품을 영상화한 2차 저작물로 더욱 인정받은 해였다. 몇 년 전부터 매출과 조회수가 치솟았음에도 대중문화계 비주류로 여겨졌지만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면서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드라마 제작업계에서는 “웹툰 웹소설을 보지 않으면 요즘 트렌드를 읽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는다. 작가가 드라마 제작을 제안하기 전에 드라마 제작사가 앞다투어 인기 작가와 계약하려 하고 있다.○ 넷플릭스 통해 해외 진출한 웹툰 올해 웹툰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넷플릭스다. 웹툰 원작의 드라마가 잇달아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에 퍼지고, 원작 웹툰의 인기까지 이끌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스위트홈’이다. 이 작품은 18일 넷플릭스 드라마로 공개된 직후 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 8개 국가에서 1위에 올랐다. 드라마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원작 웹툰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넷플릭스 드라마 공개 직후 네이버웹툰의 미국서비스에는 “넷플릭스 영상 보고 왔다” “원작 웹툰이 있는 줄 몰랐다. 쉬지 않고 봐야겠다”는 댓글이 달렸다. ‘경이로운 소문’ 역시 넷플릭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이 작품은 국내 방송사와 넷플릭스에 동시 공개됐다. 홍콩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지역 넷플릭스 상위권에 자리 잡으며 호평을 받자 웹툰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웹툰 원작의 영화 역시 넷플릭스로 향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극장을 찾는 이들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웹툰 작가인 홍작가의 ‘승리호’가 넷플릭스로 발길을 돌린 것이 대표적이다. 넷플릭스는 승리호의 글로벌 흥행을 위해 최대 30개 언어 자막, 5개 언어 더빙으로 190여 개국에 공개할 계획이다. 애니메이션으로 가공돼 해외에서 인정받는 경우도 늘고 있다. 웹툰 ‘신의 탑’은 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기업인 크런치롤의 투자를 받아 올해 4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고 세계 누적 조회수 45억 회를 돌파했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인 포브스는 “에피소드가 끝나자 이 이야기가 어떻게 독자들을 사로잡았는지 이해하게 됐다”고 호평했다. 웹툰 ‘기기괴괴 성형수’도 올해 9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1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한국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디즈니플러스가 가장 관심을 보이는 지적재산권(IP)이 웹툰”이라고 말했다. 원작 매출도 성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3일 발표한 ‘2020년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증가했다고 답한 업체는 60.5%, 해외 매출이 늘었다고 답한 업체는 71.9%였다. 권구민 한국콘텐츠진흥원 선임연구원은 “올해는 코로나19로 집에서 작품들을 즐기는 이들이 급증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해외 매출이 크게 늘어난 데에는 K팝 등 한국 문화가 인기를 끈 덕도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 카카오 등에 업은 웹소설 올해 웹소설은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의 손을 거쳐 웹툰, 드라마 등으로 재창작되고 있다. 웹소설 ‘하렘의 남자들’은 올해 11월 웹툰이 공개된 뒤 누적 다운로드 수 2300만 회를 넘겼다. 총 누적 조회 수 1억 회 이상을 기록한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올해 5월 웹툰이 만들어진 뒤 웹소설 매출이 16억 원이나 늘었다. 네이버웹툰 관계자는 “웹툰의 인기와 함께 원작 웹소설까지 다시 찾아보는 독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했다. 카카오페이지의 ‘사내맞선’은 웹소설과 웹툰을 합쳐 국내외 누적 조회 수가 3억2000만 회에 달한다. 이 작품을 드라마로 만드는 제작사인 ‘크로스픽쳐스’는 카카오페이지 소속이다. 한 창작물이 다양한 IP로 제작된 뒤 다시 하나의 플랫폼으로 공급되는 장점도 있다. 웹소설 업계 관계자는 “웹소설, 웹툰, 드라마를 모두 제작할 수 있는 거대 기업이 IP의 다양한 변주와 성장세를 이끌고 있다”고 했다. IT 기업이 소유한 웹툰, 웹소설 플랫폼은 국내외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의 북미 월간 이용자 수는 2016년 1월 150만 명에서 지난해 11월 1000만 명으로 늘었다. 카카오페이지의 전체 매출은 2016년 640억 원에서 지난해 2571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올해 ‘크리스마스 특수’는 극장이 아니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가져갈 것 같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넷플릭스, 왓챠 등이 최근 연달아 작품들을 내놓는 상황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계의 대목인 크리스마스에 극장을 찾는 관객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을 노린 OTT가 관련 콘텐츠를 내놓으며 물량 공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크리스마스에 맞춘 ‘오리지널 콘텐츠’로 승부수를 내놓고 있다. 30대 여성이 크리스마스에 맞춰 남자친구를 사귀는 우여곡절을 그린 노르웨이 작품 ‘크리스마스에 집에 가려면’ 시즌2, 부잣집 남성이 캘리포니아 농장에서 일하다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캘리포니아 크리스마스’ 등 연인들을 대상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이달 공개했다. 북극에 떨어진 한 아이와 산타클로스의 모험을 다룬 영화 ‘크리스마스 연대기: 두 번째 이야기’도 가족을 겨냥해 지난달 25일 내놓았다. 왓챠는 과거 ‘흥행 작품’들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국내 OTT 중 처음으로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를 내놓았다. 연휴마다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하던 ‘미션 임파서블’, ‘007’ ‘반지의 제왕’ 시리즈도 제공한다. 독자적으로 제작한 크리스마스 콘텐츠가 넷플릭스에 비해 부족한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넷없왓있’(넷플릭스엔 없고, 왓챠에는 있다) 코너를 만들었다. 웨이브도 24∼25일 이틀간 영화 ‘라라랜드’ ‘캐럴’ 등 크리스마스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할 계획이다. OTT의 크리스마스 독주는 극장의 부진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극장 관객 수는 전년 대비 80.7% 감소해 359만 명에 불과하다. 12월 개봉 예정이었던 공유와 박보검 주연 영화 ‘서복’, 디즈니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의 개봉이 내년으로 연기됐다. 크리스마스에 맞춰 개봉하던 로맨틱 코미디 작품도 거의 없다. 색다른 소재나 다양함을 무기로 개인의 취향을 공략하던 OTT가 여러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취향에도 투자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크리스마스를 계기로 가족과 연인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시청자 층을 더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OTT가 국내 인터넷TV(IPTV)와 제휴한 뒤에 모바일이 아닌 TV로 작품을 시청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OTT 업계 관계자는 “성적, 폭력적 수위가 낮고 전 연령층이 볼 수 있는 작품들을 틀어 온 가족이 시청하는 플랫폼이 되려는 전략을 OTT가 펼치고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저는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의 이상훈 실장의 자택 앞에 나와 있습니다. 그럼 직접 만나서 이번 업데이트에 대해 물어보겠습니다.” 올해 4월 국산 모바일 롤플레잉게임(RPG) ‘에픽세븐’의 유튜브 채널 진행자는 늦은 밤 이 게임의 개발자 집을 찾았다. 이날 게임에 새로운 미션을 추가한 업데이트가 이뤄진 뒤 유저들 사이에서 “불편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오자 생방송으로 바로 질문을 하러 간 것. 결국 진행자와 카메라가 개발자의 집 안까지 들어갔고 “빠르게 개선하겠다”는 답을 받아냈다. 생방송을 본 유저들은 “불만에 대한 반응을 빨리 전해줘 고맙다” “화를 내는 대신 게임을 하러 가야겠다”고 댓글을 달았다. 게임 업계에서 소통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만큼 게이머들은 각종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즉시 게임 회사에 불만 사항을 제기한다.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 실시간으로 오류 사항이 올라오기 때문에 게임 회사들이 커뮤니티를 체크하는 것은 기본이다. 게임 유저가 주로 10, 20대인 것을 고려해 유튜브를 소통 창구로 삼기도 한다. 에픽세븐은 2018년 8월 나온 직후 한 유저가 게임을 해킹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게임의 유료 아이템을 환불해 달라는 요청이 쏟아졌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비스를 종료해 달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지난해 7월 게임을 개발한 슈퍼크리에이티브의 김형석 강기현 공동대표가 오프라인 유저 간담회를 열고 직접 해명에 나서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에픽세븐은 유튜브 채널에 게임 전문 유튜버를 진행자로 섭외하고, 매주 개발자들이 출연해 유저들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했다. 게임 공략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도 풀어놓았다. 게임에 대한 논란은 가라앉았고 국내 다운로드 수가 500만 회를 넘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일본 등 해외에 진출할 때도 이런 소통 방식으로 매출을 빠르게 끌어올려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는 9일 ‘7000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권익훈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 본부장은 “게임은 유저들마다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다르고 트렌드에 민감해 유저의 관심을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며 “해외 유저들을 위한 글로벌 채널도 1만 명 이상이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다른 게임 회사들도 유저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넷마블은 유튜브를 통해 신작 게임 ‘세븐나이츠’ 성우들이 게임에 대해 소개하고 유저들의 질문에 답했다. 넥슨은 올해 7월 ‘바람의 나라: 연’을 내놓은 뒤 게임 내 오류 논란에 직면하자 개발자가 직접 유튜브에 출연해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11월 내놓은 ‘리니지 2M’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유저들이 요구한 사항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게임 방송 플랫폼 ‘트위치’를 통해서도 게임 회사와 유저가 만나고 있다. 공지사항을 통해 업데이트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비판을 받자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유저들의 의견이 빠르고 비중 있게 반영되는 한국 게임의 특성이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세계 시장에서 시나리오나 컴퓨터그래픽(CG) 수준이 높은 상위권 게임 간의 승부를 가르는 건 유저들을 충분하고 신속하게 만족시키는지 여부”라며 “해외 게임 회사도 국내 업체들의 소통 방식을 따라하려 한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저는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의 이상훈 실장의 자택 앞에 나와 있습니다. 그럼 직접 만나서 이번 업데이트에 대해 물어보겠습니다.” 올해 4월 국산 모바일 롤플레잉게임(RPG) ‘에픽세븐’의 유튜브 채널 진행자는 늦은 밤 이 게임의 개발자 집을 찾았다. 이날 게임에 새로운 미션을 추가한 업데이트가 이뤄진 뒤에 유저들 사이에서 “불편하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오자 생방송으로 바로 질문을 하러 간 것. 결국 진행자와 카메라가 개발자의 집 안까지 들어갔고 “빠르게 개선하겠다”는 답을 받아냈다. 생방송을 본 유저들은 “불만에 대한 반응을 빨리 해줘 고맙다”, “화를 내는 대신 게임을 하러 가야겠다”고 댓글을 달았다.● ‘소통’ 나선 게임업계최근 게임 업계에서 ‘소통’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만큼 게이머들은 각종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즉시 게임 회사에 불만 사항을 제기한다.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 실시간으로 오류 사항이 올라오기 때문에 커뮤니티를 체크하기도 한다. 게임 유저가 주로 10, 20대인 것을 고려해 소통 창구로 유튜브를 활용해 위기의 발판으로 삼기도 한다. 에픽세븐이 대표적 사례다. 이 게임은 2018년 8월 출시 직후 한 유저가 게임을 해킹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게임의 유료 아이템을 환불해달라는 요청이 쏟아졌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비스를 종료 해 달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지난해 7월 공동 대표가 직접 오프라인 유저 간담회를 열고 직접 해명에 나서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에픽세븐은 유튜브 채널에 게임 전문 유튜버를 진행자로 섭외하고, 매주 개발자들이 출연해 유저들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했다. 게임 공략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개발 비하인드를 풀어놓았다. 이 덕에 논란은 가라앉고 국내 다운로드 수가 500만 회를 넘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권익훈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 본부장은 “온라인, 모바일 게임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사실상 유저들과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다”며 “게임은 유저들마다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고 트렌드에 민감해 유저의 관심을 빠르게 캐치해야 한다”고 했다. 또 “유저들이 어떤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고 어떤 이슈에 관심 있는지 빠르게 캐치하고 이를 게임에 반영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도 소통 중요” 게임 업계의 소통 방식은 해외 이용자들에게도 효과적이다. 서비스업체인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는 미국, 일본 등 해외 진출 때도 이 같은 소통 방식을 사용해 9일 ‘7000만 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권 본부장은 “유저들의 소통에 대한 요구는 국내와 해외 모두 마찬가지”라며 “글로벌 서비스를 진행함에 따라 전 세계 유저들이 빠르게 게임 업데이트 소식 및 주요 내용들을 전달 받고 싶어 한다”고 했다. “해외 유튜브 채널 오픈 이후에는 현지 시간으로 새벽 시간대 임에도 매회 1만 명 이상의 해외 유저들이 실시간으로 방송을 시청한다”고 했다. 다른 게임사들도 소통 행렬에 가담하고 있다. 넷마블은 유튜브를 통해 신작 게임 ‘세븐나이츠’ 성우들이 게임에 대해 소개하고 유저들의 질문에 답한다. 넥슨은 방탄소년단(BTS)이 게임 ‘메이플스토리’를 하는 유튜브 방송을 올려 케이팝 팬까지 끌고 오려 노력한다. 엔씨소프트는 게임이 출시될 때마다 홍보 영상을 올린다. 게임방송 플랫폼 ‘트위치’도 게임사가 유저와 접촉하는 한 방법이다. 대부분 공지사항 등을 통해 업데이트에 대한 일방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소통 방식이 비판받자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플랫폼을 통해 소통을 하는 경우다. 유저들의 의견이 빠르고 크게 반영되는 한국 게임의 특성이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세계 시장에서도 시나리오나 컴퓨터그래픽(CG) 수준이 일정 정도 보장된 상위권 게임 간의 승부를 가르는 건 유저들의 입맛을 얼마나 바로 충족 시키냐는 것”이라며 “해외 게임 회사도 국내 게임의 소통 방식을 따라하려 한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유명인을 거론하라고 하면 대부분 남성 이름이 등장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이 분야에서 성공한 여성은 쉽게 떠올리기 힘들다. 이런 상황을 불편해한 저자는 과학자와 프로그래머, 사업가를 두루 살펴보면서 초창기 IT 발전에 기여한 여성의 이름이 왜 남지 않았고, 현 업계의 중요한 자리를 남성들이 차지했는지 고찰한다. 과거 컴퓨터라는 단어는 ‘계산하고 연산을 수행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1892년 뉴욕타임스엔 ‘컴퓨터 구합니다’라는 광고가 실렸는데 사람을 채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각종 수학적 계산을 하는 일에는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을 주로 하던 여성이 채용됐다. 기계의 처리 속도를 셀 때 여성이 같은 일을 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삼아 ‘걸이어’(girl-year)로 부르고, 기계 노동 단위를 ‘킬로걸’(kilo-girl)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한 여성은 기억되지 않았다. 최초의 전자 컴퓨터 에니악의 프로그래밍을 담당한 여성 6명의 이름 대신 남성만 기록됐다.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불리는 러브레이스, 프로그램 언어 ‘코볼’의 탄생에 기여한 그레이스 호퍼, 최초의 웹잡지 ‘워드’를 만든 마리사 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저자는 이 같은 흔적을 찾아가면서 IT 업계의 많은 공신이 여성임을 상기시킨다.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 탐사 초창기 큰 몫을 담당한 미 항공우주국(NASA) 흑인 여성 과학자들이 받은 ‘천대’를 보여주는 영화 ‘히든 피겨스’(2016년)를 떠오르게 한다. 현재 IT업계에서 여성이 사라진 이유를 남성의 70% 수준인 임금 구조 때문이라고 저자는 판단한다. 육아를 위해 학업이나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게 하는 사회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여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거기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여전히 여성은 헌신하지만 기록되지 않는지도 모른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넷플릭스의 ‘화이트 스페이스’ 정책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펼쳐지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가 잇달아 화제작을 제작하기로 확정하자 한 방송사 관계자는 이같이 평가했다. 화이트 스페이스는 기존에는 다루지 않았던 장르와 주제로 그동안 만들지 않았던 작품을 제작하는 넷플릭스의 현지화 전략이다. 지난달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한국에 별도의 콘텐츠 법인을 설립한 넷플릭스가 영향력을 높여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제작사와 방송사가 하지 못했던 일을 넷플릭스가 벌이려고 한다”는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의 분석처럼 한국 콘텐츠 업계에 커다란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넷플릭스의 행보 중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막장 드라마’의 수출이다. 재벌 2세, 출생 비밀, 김치 싸대기 등 한국형 막장 코드를 섞은 드라마 ‘위기의 여자’를 제작한다고 밝힌 것이다. 막장 드라마가 그동안 한국에서 사랑받아 왔으나 해외 진출이 된 적은 드물었던 만큼 드라마 업계에서도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관계자는 “아직 대본이 완성되지 않을 정도로 초기 단계지만 벌써부터 방송계가 바싹 긴장하고 있다. 한국형 막장 드라마가 세계에 통할지 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시장을 겨냥한 작품 중엔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 한국판이 눈에 띈다. 이 작품은 범죄 전문가들이 스페인 조폐국을 점거하고 화폐를 인쇄해 도주하는 도발적인 소재를 다뤄 시즌5까지 제작 중이다. 한국에선 범죄를 소탕하는 형사물은 인기였지만 범인의 시각에서 만들어지는 인질강도극이 많지 않았다는 점을 노린 셈이다.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과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백스피릿’을 제작하기로 한 것도 그동안 심의나 논란을 걱정해 케이블 중심으로만 시도됐던 ‘주류 토크’를 공략한 행보다. 국내 콘텐츠 업계에선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 못지않게 부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았다. 2015년부터 올해까지 8000억 원을 투자하는 자본력으로 한국 시장을 점령했다는 것이다. “초반 성장세만 보고 넷플릭스의 성공을 확신하기 어렵다. 코로나19가 끝난 뒤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한 영화계 관계자의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최근 넷플릭스가 제작을 확정한 작품들을 보면 “그동안 한국 콘텐츠 업계는 왜 시도를 하지 않았냐”는 비판을 피하긴 힘들어 보인다. 이들 작품의 작가와 감독이 모두 방송계에서 활동하던 한국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한국 넷플릭스 성공의 신호탄인 ‘킹덤’ 시리즈는 김은희 작가가 오래전부터 구상했으나 “사극 좀비물은 낯설다”는 부정적 시선 때문에 투자자를 찾지 못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한국 콘텐츠 업계가 하지 않았으나, 넷플릭스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눈여겨볼 때다. 이호재 문화부 기자 hoho@donga.com}

《‘한국형 히어로물’이 살아나는 것인가. 악귀 사냥꾼 ‘카운터’들이 국숫집 직원으로 위장해 악귀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그린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이 13일 시청률 7.7%로 OCN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넷플릭스의 ‘오늘 한국의 톱10 콘텐츠’ 1위에도 올랐다. 누적 조회수 6400만 회를 기록한 원작 웹툰의 인기를 넘어설 기세다.》 히어로물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적들에 맞서 보통 사람들을 지키는 장르다. 미국에선 슈퍼맨, 배트맨 등 ‘슈퍼 히어로물’, 일본에선 울트라맨, 가면 라이더 등 ‘특촬물’(특수촬영물)로 발전했다. 컴퓨터그래픽(CG)이 발달하면서 만화나 소설 원작의 히어로물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경이로운 소문은 한국인의 정서를 살려 한국형 히어로물의 진화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한국형 히어로물이 한국적 소재를 녹이는 데 그쳤다면 이 작품은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인 시청자의 감정선을 건드렸다는 것. 생판 남이던 주인공들은 국숫집에서 함께 음식을 먹으며 식구(食口)가 되고, 죽은 부모를 만나기 위해 주인공이 악귀 사냥꾼 역할을 받아들이는 효(孝)의 서사가 펼쳐진다. 특별한 한 명이 아니라 조금 뛰어난 4명의 히어로가 협력해 적을 물리친다는 설정도 한국적이라는 반응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유선동 감독은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원작 웹툰을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렇게 자주 우는 울보 히어로가 있었나’였다”며 “슬픔에 빠진 사람에겐 밥 한 끼 같이하자고 손 내미는 한국인의 정서를 꾹꾹 눌러 담았다”고 했다. 한국형 히어로물의 시초는 홍길동, 임꺽정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이들 작품이 드라마, 영화로 제작됐을 때는 시대극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영웅이 평범한 시민을 구한다’는 히어로물의 특성을 따랐지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에 머물렀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형 히어로물의 무대는 ‘현재’로 옮겨왔다. 영화 ‘전우치’(2009년)는 ‘과거 업보를 현재 갚는다’는 윤회론적 세계관을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구현해 600만 명이 관람했다. 퇴마를 소재로 한 영화 ‘검은사제들’(2015년)처럼 장르적 성향을 녹이기도 했다. 최근 들어선 여성 서사가 떠오르고 있다. 드라마 ‘힘 쎈 여자 도봉순’(2017년)은 평범해 보이지만 괴력을 지닌 여자가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다. 올해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역시 절에 가서 악을 물리칠 기를 받는다는 한국적 소재에 여성 히어로를 내세웠다. 두 작품처럼 한국형 여성 히어로는 근육으로 무장한 미국형 여성 히어로 원더우먼과 달리 가냘프고 연약한 외형을 지녔다. 경이로운 소문은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해 CG를 구현하고 다양한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하는 해외 슈퍼히어로에 맞서는 방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특별히 화려한 CG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한국적 정서에 끌렸다”며 “평범한 학생이 히어로가 된다는 서민적 특성도 한국형 히어로물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적 정서와 소재를 잘 녹인 히어로물이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OTT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의 ‘킹덤’에서 나온 갓이 해외에서 화제가 된 것처럼 한국적인 것이 외국인들에게는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한국형 히어로물’이 살아나는 것인가. 악귀 사냥꾼 ‘카운터’들이 국숫집 직원으로 위장해 악귀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를 그린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이 13일 시청률 7.7%로 OCN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넷플릭스의 ‘오늘 한국의 TOP 10 콘텐츠’ 1위에도 올랐다. 누적 조회수 6400만 회를 기록한 원작 웹툰의 인기를 넘어설 기세다. 히어로물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적들에 맞서 보통 사람들을 지키는 장르다. 미국에선 슈퍼맨, 배트맨 등 ‘슈퍼 히어로물’, 일본에선 울트라맨, 가면 라이더 등 ‘특촬물’(특수촬영물)로 발전했다. 컴퓨터그래픽(CG)이 발달하면서 만화나 소설 원작의 히어로물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경이로운 소문은 한국인의 정서를 살려 한국형 히어로물의 진화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한국형 히어로물이 한국적 소재를 녹이는데 그쳤다면 이 작품은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인 시청자의 감정선을 건드렸다는 것. 생판 남이던 주인공들은 국숫집에서 함께 음식을 먹으며 식구(食口)가 되고, 죽은 부모를 만나기 위해 주인공이 악귀 사냥꾼 역할을 받아들이는 효(孝)의 서사가 펼쳐진다. 특별한 한 명이 아니라 조금 뛰어난 4명의 히어로들이 협력해 적을 물리친다는 설정도 한국적이라는 반응이다. 이 작품을 연출한 유선동 감독은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원작 웹툰을 보고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렇게 자주 우는 울보 히어로가 있었나’ 였다”며 “슬픔에 빠진 사람에겐 밥 한 끼 같이 하자고 손 내미는 한국인의 정서를 꾹꾹 눌러 담았다”고 했다. 한국형 히어로물의 시초는 홍길동, 임꺽정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이들 작품이 드라마, 영화로 제작됐을 때는 시대극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영웅이 평범한 시민을 구한다’는 히어로물의 특성을 따랐지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에 머물렀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형 히어로물의 무대는 ‘현재’로 옮겨왔다. 영화 ‘전우치’(2009년)는 ‘과거 업보를 현재 갚는다’는 윤회론적 세계관을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구현해 600만 명이 관람했다. 퇴마를 소재로 한 영화 ‘검은사제들’(2015년)처럼 장르적 성향을 녹이기도 했다. 최근 들어선 여성 서사가 떠오르고 있다. 드라마 ‘힘 쎈 여자 도봉순’(2017년)은 평범해 보이지만 괴력을 지닌 여자가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다. 올해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 역시 절에 가서 악을 물리칠 기를 받는다는 한국적 소재에 여성 히어로를 내세웠다. 두 작품처럼 한국형 여성 히어로는 근육으로 무장한 미국형 여성 히어로 원더우먼과 달리 가냘프고 연약한 외형을 지녔다. 경이로운 소문은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해 CG를 구현하고 다양한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하는 해외 슈퍼히어로에 맞서는 방법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특별히 화려한 CG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한국적 정서에 끌렸다”며 “평범한 학생이 히어로가 된다는 서민적 특성도 한국형 히어로물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적 정서와 소재를 잘 녹인 히어로물이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OTT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의 ‘킹덤’에서 나온 갓이 해외에서 화제가 된 것처럼 한국적인 것이 외국인들에게는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어두운 밤 서울의 거리를 걷는다. 출연자는 단 한 명, 가수 유희열(49)뿐이다. 자신이 어릴 적 살던 종로구 청운효자동의 익숙한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생전 처음 용산구 후암동 해방촌 거리를 걷기도 한다. 홀로 산책하고 서울의 야경만을 비추는 심심한 방송을 누가 볼까 싶지만 올해 9월 시작한 뒤 15회 만에 누적 조회수 560만 회를 넘겼다. 카카오TV의 예능 프로그램 ‘밤을 걷는 밤’ 이야기다. 출연자도, 내레이션도 없는 이 잔잔한 산책의 인기 비결은 ‘감성’이다. 카메라는 오르막길을 오르다 숨이 찬 노모(老母)의 등을 슬며시 밀어주는 딸의 모습을 멀찍이서 찍고, 유희열은 비가 쏟아질 땐 “소리가 괜찮다”고 감탄한다. 이는 ‘감성 변태’라는 별명이 붙은 유희열의 기민한 관찰력 덕이기도 하다. 배우 한지민이 출연한 한 회를 제외하곤 토크가 없지만 사람들은 유희열의 혼잣말에 귀를 기울인다. ‘연출 없음’이 가져온 효과라는 분석도 있다. 프로그램의 기획안은 “서울의 밤을 걷는다”는 단 한 줄뿐이다. 각 회마다 “오늘은 이곳을 걷는다”는 것만 정할 뿐 대본도 없다. 조명도 쓰지 않는다. 가끔 무엇인가를 비춰야 할 때면 유희열이 스마트폰의 조명을 켜는 정도다. “산책이라는 건 길을 잃어야 한다”며 샛길로 빠지기도 한다. 슈퍼마켓 앞을 걷다 뽑기가 하고 싶어지면 “지갑이 없다”며 제작진의 돈을 빌릴 정도로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여긴다. 코로나19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홀로 하는 산책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는 것. 프로그램을 제작한 문상돈 PD는 “현대인이 여가 시간에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 가장 하기 쉽고, 좋은 게 걷기라고 생각했다”며 “서울은 걸어 다니면 세세하게 많은 걸 볼 수 있는 도시”라고 했다. 편집도 스마트폰에서 보기 편하게 기존 방송 기준인 가로가 아니라 세로 화면으로 했다. 시청자들이 이어폰을 꽂고 거리를 걷는 것처럼 느끼도록 음향에도 신경을 썼다. 스마트폰은 TV와 달리 사람마다 하나씩 지니고 있어 사색에 빠질 만한 거리의 시각과 청각을 구현하는 게 중요했다. 색다른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건 플랫폼의 특성도 있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카카오M이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기존 방송계와는 차별화를 꾀했다는 것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기존 방송사들은 인력과 예산을 많이 투입하는 큰 프로젝트로 성공하려는 경향이 강해 ‘밤을 걷는 밤’처럼 조용하고 감성적인 아이템은 다루기 쉽지 않다”며 “스마트폰이라는 새 플랫폼에 맞춰 프로그램이 변화한 사례”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어두운 밤 서울의 거리를 걷는다. 출연자는 단 한 명, 가수 유희열(49) 뿐이다. 자신이 어릴 적 살던 종로구 청운효자동의 익숙한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생전 처음 용산구 후암동 해방촌 거리를 걷기도 한다. 홀로 산책하고 서울의 야경만을 비추는 심심한 방송을 누가 볼까 싶지만 올해 9월 시작한 뒤 15회 만에 누적 조회수 560만 회를 넘겼다. 카카오TV의 예능 프로그램 ‘밤을 걷는 밤’ 이야기다.● 코로나 시대 ‘홀로 걷기’가 통하다출연자도, 내레이션도 없는 이 잔잔한 산책의 인기 비결은 ‘감성’이다. 카메라는 오르막길을 오르다 숨이 찬 노모(老母)의 등을 슬며시 밀어주는 딸의 모습을 멀찍이서 찍고, 유희열은 비가 쏟아질 땐 짜증을 내기 보단 “소리가 괜찮다”고 감탄한다. 이 같은 감수성을 살리는 데엔 ‘감성 변태’라는 별명이 붙은 유희열의 기민한 관찰력 덕이기도 하다. 배우 한지민이 출연한 한 회를 제외하곤 ‘토크’가 없지만 사람들은 유희열의 혼잣말에 귀를 기울인다. ‘연출 없음’이 가져온 효과라는 분석도 있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안은 “서울의 밤을 걷는다”는 단 한 줄 뿐이다. 각 회마다 “오늘은 이곳을 걷는다”는 것만 정할 뿐 대본도 없다. 밤을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 조명을 쓰지 않는다. 가끔씩 무엇인가를 비춰야 할 때면 유희열이 스마트폰의 조명을 켜는 정도다. “산책이라는 건 길을 잃어야 한다”며 샛길로 빠지기도 한다. 슈퍼 앞을 걷다 뽑기가 하고 싶어지면 “지갑이 없다”며 제작진의 돈을 빌릴 정도로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 작품의 문상돈 PD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최대한 작위적이지 않게 촬영하기 위해 어두운 곳에선 어둡게 찍고, 밝은 곳에선 밝게 찍는다”며 “방송은 출연자의 얼굴과 표정이 잘 보여야 하고, 조명도 있어야 한다는 기존 방송의 문법을 거부했다”고 했다. 또 “대본이 없는 상황에서 터지는 순간의 장면들이 재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재미가 리얼하고 요즘 흐름에 맞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홀로 사색하는 취미인 산책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문 PD는 “현대인이 여가 시간으로 뭘 해야 할까라고 고민하다 가장 하기 쉽고, 좋은 것이 걷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서울은 걸어 다니면 확실히 보이는 게 많은 도시다. 차로 가면 차도 외에 볼 수 없는데 걸으면 세세하게 많이 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스마트폰 맞춰 세로 화면으로 편집 이 프로그램은 스마트폰에서 보기 적합하게 기존 방송 편집 기준인 가로가 아니라 세로 화면으로 편집됐다. 시청자들이 이어폰을 꼽고 거리를 걷는 것처럼 느끼도록 음향에도 세심히 신경을 썼다. 스마트폰은 TV와 달리 개인이 하나씩 지니고 있어 ‘개인화’되고 있는 만큼 홀로 조용히 사색에 빠질만한 거리의 소리 구현이 중요했다. 문 PD는 “세로 화면은 위아래로 길어서 그 거리를 직접 걷는 느낌이 있다”며 “스마트폰에서 할 수 있는 화면 기교를 시도하려 한 건 디바이스를 넘어선 콘텐츠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또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에 누군가 그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생생한 사운드를 살리고 싶었다”며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사운드 엔지니어 역을 맡았던 배우 유지태가 커다란 마이크로 음향을 담아낸 것처럼 촬영 이후에도 그 거리에 다시 가 소리를 담아왔다”고 했다. 색다른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건 플랫폼의 특성 덕이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카카오M이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기존 방송계와 차별화를 꾀했다는 것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기존 방송사들은 인력과 예산을 많이 투입하는 큰 프로젝트로 성공하려는 경향이 강해 ‘밤을 걷는 밤’처럼 조용하고 감성적인 아이템은 다루기 쉽지 않다”며 “스마트폰이라는 새롭고 거역할 수 없는 새 플랫폼에 맞춰 방송 프로그램이 변화한 사례”라고 했다.이호재기자 hoho@donga.com}

전쟁이 끝나도 위기는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이 처음 접종되며 세계가 잠시 들떠 있지만 여전히 경제는 악화일로다. 한국은행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고용이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세계적 투자자 짐 로저스는 “내년이나 후년은 내 인생에서 최악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글로벌 증시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상황마저 위험에 대한 전조로 느껴져 달갑지만은 않다. 코로나19가 지나가도 정말 더 큰 위기가 찾아올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위기를 분석한 ‘붕괴’(2019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저자는 다시 한 번 역사에서 그 해답을 가늠해 보려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 살피는 것이 어째서 할 만한 일인지를 명쾌히 보여준다”는 추천사처럼 지나간 위기를 통해 다가올 위기를 본다. 저자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부터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대공황이 끝나기까지의 ‘대격변’의 시기에 주목한다. 원서의 제목 ‘델루즈(The Deluge)’는 기독교 영어 성경의 노아의 ‘대홍수’를 말한다. “1915년 영국의 군수장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는 대홍수에 빗대어 다가올 대격변을 예견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세계는 숨 가쁘게 요동쳤다”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서술하며 책을 연다. 1차 대전이 끝난 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승리 없는 평화’라는 기치를 내세웠다. 협상국과 동맹국 어느 편도 승리하지 않도록 강요한 것이다. 대신 협상국과 동맹국이 받아들여야 할 정책은 미국에 유리한 ‘문호 개방’이었다. “새로운 질서는 신생국들의 다툼과 민족주의적 시위를 뒤로하고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독일 러시아 미국 같은 강대국 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조짐을 보였다. 그것은 미국의 새로운 힘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1920년 강력한 디플레이션 정책을 펼치면서 상황은 묘해졌다. 유동성 축소로 경제활동이 침체되면 군비경쟁이 줄고, 정치가 아닌 시장원리에 집중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경제가 활력을 잃자 전후 복구에 나선 영국과 독일 국민은 혼란에 빠졌고 이후 대공황이 덮쳤다. 이것이 2차 대전의 도화선이 됐다고 저자는 본다. “미국 정부가 더 강경한 집단안보체제(국제연맹)를 거부했음을 생각하면 시장을 기반으로 굳건히 뿌리내린 자유주의가 제국주의의 재발을 막아 줄 유일하게 의미 있는 지킴이”였는데 그게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는 바이마르공화국의 독일, 다이쇼민주주의의 일본, 이탈리아에 나치즘, 군국주의, 파시즘의 싹을 틔우는 단초가 됐다. “민주주의 국가들의 실패는 1930년대 초 전략적으로 중요한 기회의 창을 열어놓았다. 악몽 같은 세력이 그 창문을 깨뜨렸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저자는 “엄청난 혼란 속에서 국가들은 단숨에 몇 세대를 전진하거나 후퇴할 것”이라는 로이드 조지의 말을 인용해 현실을 은유한다. 코로나19의 혼란 이후 인류는 전진할 것인가, 후퇴할 것인가. 질서와 평화를 세울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저자의 충고가 따갑게 들려온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영화감독 김기덕 씨(60·사진)가 11일 동유럽 라트비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숨졌다. 외교부는 김 감독이 “이날 새벽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로 병원 진료 중 사망했다”며 “라트비아 주재 대사관이 현지 병원을 통해 경위를 확인하고 한국 유족에게 연락해 장례 절차를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김 감독은 지난달 20일 라트비아에 도착해 유르말라 지역에 집을 사서 거주 허가를 신청하려 했지만 이달 5일 이후 연락이 끊겼다. 그는 세계 3대 영화제인 칸, 베니스, 베를린 본상을 모두 받은 유일한 한국 감독이다. 2018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논란에 휘말려 고소를 당한 뒤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다. 세계 3대 영화제 본상 모두 수상20일 환갑 앞두고 라트비아서 숨져11일 라트비아의 한 대학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숨진 김기덕 감독(60)의 삶은 명예와 불명예의 줄타기였다. ‘사마리아’로 한국 영화 최초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2004년), ‘아리랑’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상(2011년), ‘피에타’로 베니스 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2012년) 등 세계 3대 영화제 본상을 석권했다.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거장이 됐지만 2018년 발생한 ‘#미투’ 논란으로 도덕적 위상이 추락한 끝에 해외에서 숨을 거뒀다. 김 감독은 스스로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말할 만큼 시련과 좌절을 겪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 구로공단과 청계천 일대 작은 공장에서 일했다. 30대에 그동안 모은 돈으로 프랑스로 떠나 3년간 파리에서 미술관을 전전하고 독학으로 길거리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무명 화가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다 ‘양들의 침묵’ ‘퐁뇌프의 연인들’을 보고 영화에 빠졌다. 귀국한 뒤 1995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을 받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듬해 저예산 영화 ‘악어’로 데뷔한 뒤에도 ‘비주류’ ‘이단아’라는 소리를 들었다. 시류와 대세를 추종하기보다 예술영화의 외길을 고집했다. ‘사마리아’의 베를린 영화제 수상 이후 유럽에선 호평의 연속이었다. 영화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린 ‘아리랑’이 칸에서 수상하자 국내 영화계 주류에서도 주목받았다. ‘피에타’로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충격적이고 폭력적이며, 여성에 대한 가학적 장면을 끝까지 거칠게 끌고 가는 연출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 일쑤였다. 김 감독은 2018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장에서 여배우 A 씨로부터 자신의 뺨을 때리고 대본에 없던 베드신 연기를 요구했다며 고소를 당했다. 검찰은 김 감독을 폭행 혐의로 벌금 5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 성폭력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김 감독은 A 씨와 이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올 10월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했다. 미투 논란이 불거진 뒤 김 감독은 카자흐스탄으로 떠나 현지 영화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영화 활동을 지속했다. 지난해 모스크바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같은 해 카자흐스탄에서 촬영한 영화 ‘딘’을 칸 영화제 바이어에게만 공개하는 등 해외 활동만 간간이 이어갔다.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감독이 미투 의혹이 터지고 동유럽으로 떠난 뒤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는 연락을 모두 끊었다”며 “20일 환갑을 맞는 그를 위해 현지 영화인들이 에스토니아에서 김 감독 영화 기념 상영회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타지에서 떠났다”고 말했다. 이호재 hoho@donga.com·한기재·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정정보도문본보는 2018. 6. 3. 제목의 기사 등에서 ‘영화 뫼비우스에서 중도하차한 여배우가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하였다는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위 여배우는 김기덕이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를 바로 잡습니다.}

11일 라트비아의 한 대학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숨진 김기덕 감독(60)의 삶은 명예와 불명예의 줄타기였다. ‘사마리아’로 한국 영화 최초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2004), ‘아리랑’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상(2011), ‘피에타’로 베네치아 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2012)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했다.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거장이 됐지만 2018년 발생한 ‘#미투’ 논란으로 도덕적 위상이 추락한 끝에 해외에서 숨을 거뒀다. 김 감독은 스스로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말할 만큼 시련과 좌절을 겪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 구로공단과 청계천 일대 작은 공장에서 일했다. 30대에 그동안 모은 돈으로 프랑스로 3년간 파리에서 미술관을 전전하고 독학으로 길거리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무명 화가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다 ‘양들의 침묵’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 영화에 빠졌다. 귀국한 뒤 1995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을 받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듬해 저예산영화 ‘악어’로 데뷔한 뒤에도 ‘비주류’ ‘이단아’라는 소리를 들었다. 시류와 대세를 추종하기보다 예술영화의 외길을 고집했다. 자신이 영화가 국내 상영관에 걸리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칩거하기도 했다. ‘사마리아’의 베를린 영화제 수상 이후 유럽에선 호평의 연속이었다. 영화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린 ‘아리랑’이 칸에서 수상하자 국내 영화계 주류에서도 주목받았다. ‘피에타’로 세계적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충격적이고 폭력적이며, 여성에 대한 가학적 장면을 끝까지 거칠게 끌고 가는 연출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 일쑤였다. ‘나쁜남자’(2002) ‘섬’(2000) 등 성매매와 폭력에 무비판적으로 노출된 여성과 남성 조폭 등을 다루는 경우가 많아 여성단체의 비판을 자주 받았다. 김 감독은 2018년 영화 ‘뫼비우스’ 촬영장에서 여배우 A 씨로부터 자신의 뺨을 때리고 대본에 없던 베드신 연기를 요구했다며 고소를 당했다. 검찰은 김 감독을 폭행 혐의로 벌금 500만 원 약식 기소했다. 성폭력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김 감독은 A 씨와 이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올 10월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했다. #미투 논란이 불거진 뒤 김 감독은 카자흐스탄으로 떠나 현지 영화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영화 활동을 지속했다. 지난해 모스크바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같은 해 카자흐즈탄에서 촬영한 영화 ‘딘’을 칸 영화제 바이어에게만 공개하는 등 해외 활동만 간간이 이어갔다. 전양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감독이 미투 의혹이 터지고 동유럽으로 떠난 뒤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는 연락을 모두 끊었다”며 “20일 환갑을 맞는 그를 위해 현지 영화인들이 에스토니아에서 김 감독 영화 기념 상영회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타지에서 떠났다”고 말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으로 한국영화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기 전까지 해외에서 그 누구보다 인정받았던 감독”이라며 “한국 영화를 빛낸 감독 중 하나였다”고 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정정보도문본보는 2018. 6. 3. 제목의 기사 등에서 ‘영화 뫼비우스에서 중도하차한 여배우가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하였다는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위 여배우는 김기덕이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를 바로 잡습니다.}

막장 드라마는 죽지 않았다. 올 10월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이달 1일 순간 최고 시청률 21.9%를 기록했다. 침체된 지상파 드라마에서 마(魔)의 시청률이라 불리는 20%를 돌파한 것. 출생의 비밀, 불륜, 선악 대결 등 ‘막장의 종합판’이라 할 만하지만 “욕하면서도 결국 본다”는 신화를 다시 쓰고 있다. 막장 드라마는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으로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으로 구성된다. 자극적인 소재에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설정이 오히려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눈 밑에 점을 찍으면 다른 사람이 되는 ‘아내의 유혹’(2008년)이 대표로 꼽히는데 펜트하우스의 김순옥 작가 작품이다. 올해도 사고로 일곱 살의 지능을 갖게 된 남자의 복수극을 다룬 ‘비밀의 남자’, 장기 매매라는 자극적 소재를 앞세운 ‘위험한 약속’ 등이 방영됐다. 왜 막장 드라마를 보는 걸까. 지난해 막장 드라마 관련 논문을 발표한 김봉현 동국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시청자들은 막장 드라마를 보며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색다른 설정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대리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업주부는 “엄두도 못낸 자유분방함을 느낀다” “평생 경험 못할 일을 경험하게 한다” 등 극한 상황설정을 새로운 경험으로, 직장여성은 “현실의 어려움을 잊게 해준다” “데이트처럼 설레며 기다린다” 같이 현실 도피적 대리만족으로 받아들였다는 것. 일상의 스트레스를 막장 드라마 시청으로 푼다는 말도 있다. 자극적이면서도 황당한 장면들을 보면서 어이없어하지만 이를 ‘B급 코드’로 소비한다. 지난해 49.4%의 순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하나뿐인 내편’에서 등장인물이 머리채를 잡히는 장면은 ‘짤방’(간단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온라인에 퍼졌다. 제작진은 이 같은 상황을 노이즈 마케팅처럼 시청률 견인에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중년 여성뿐만 아니라 청년들까지 막장 드라마를 주로 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함께 막장 드라마를 보며 자란 20대가 취업난, 주거난의 현실을 잠시 잊으려고 막장 드라마를 소비한다는 얘기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가벼운 오락거리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심리를 막장 드라마가 충족시키고 있다”며 “이 중독성에 적응하면 다른 드라마는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 들어 종합편성채널이 생기고 케이블TV 드라마가 활성화되면서 위기에 몰린 지상파가 작품성보다는 막장 코드라는 ‘쉬운 길’에 빠졌다는 지적도 있다. 드라마 업계 한 관계자는 “드라마로 먹고살기 위해 현실적으로 타협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막장 코드를 섞고 있다”고 말했다. 윤리 문제는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황후의 품격’(2018∼2019년)은 임신부 성폭행, 시멘트 생매장 등의 자극적 묘사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로부터 4차례 법정 제재를 받았다. ‘내 딸 금사월’(2015년)도 아내가 남편 멱살을 잡고 난간에서 위협하는 장면 등으로 방심위 징계를 받았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일반 시청자의 시선에 맞추는 것은 대중 작품의 숙명이어서 막장 드라마를 무작정 비판하는 시선은 옳지 않다”면서도 “다만 극의 개연성 문제와는 별도로 언어 사용이나 폭력성에 대한 자체적인 사전 검열은 필요한 절차”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막장 드라마는 죽지 않았다. 올 10월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이달 1일 순간 최고 시청률 21.9%를 기록했다. 침체된 지상파 드라마에서 마(魔)의 시청률이라 불리는 20%를 돌파한 것. 출생의 비밀, 불륜, 선악 대결 등 ‘막장의 종합판’이라 할만하지만 “욕하면서도 결국 본다”는 신화를 다시 쓰고 있다. 막장 드라마는 보통사람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으로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으로 구성된다. 자극적인 소재에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설정이 오히려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눈 밑에 점을 찍으면 다른 사람이 되는 ‘아내의 유혹’(2008)이 대표로 꼽히는데 펜트하우스의 김순옥 작가 작품이다. 올해도 사고로 일곱 살의 지능을 갖게 된 남자의 복수극을 다룬 ‘비밀의 남자’, 장기 매매라는 자극적 소재를 앞세운 ‘위험한 약속’ 등이 방영됐다. 왜 막장 드라마를 보는 걸까. 김봉현 동국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그 이유를 ‘자유로움’이라고 분석했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음에도 막장 드라마의 색다른 설정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대리경험을 제공한다는 것. 논문에서 전업주부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 자유분방함을 느낀다” “평생 경험하지 못할 일을 경험하게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여성들도 “현실의 어려움을 잊게 해준다” “기다림이 데이트처럼 설렘을 준다”고 했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막장 드라마 시청으로 푼다는 말도 있다. 자극적이면서도 황당한 장면들을 보면서 어이없어하지만 이를 ‘B급 코드’로 소비한다. 지난해 49.4%의 순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하나뿐인 내편’에서 등장인물이 머리채를 잡히는 장면은 ‘짤방(간단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온라인에 퍼졌다. 제작진은 이 같은 상황을 노이즈 마케팅처럼 시청률 견인에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중년 여성뿐만 아니라 청년들까지 막장 드라마를 주로 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함께 막장 드라마를 보며 자란 20대가 취업난, 주거난의 현실을 잠시 잊으려고 막장 드라마를 소비한다는 얘기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가벼운 오락거리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심리를 막장 드라마가 충족시키고 있다”며 “이 중독성에 적응하면 다른 드라마는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 들어 종합편성채널이 생기고 케이블TV 드라마가 활성화되면서 위기에 몰린 지상파가 작품성보다는 막장 코드라는 ‘쉬운 길’에 빠졌다는 지적도 있다. 드라마업계 한 관계자는 “드라마로 먹고 살기 위해 현실적으로 타협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막장 코드를 섞고 있다”고 말했다. 윤리문제는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황후의 품격’(2018~2019)은 임산부 성폭행, 시멘트 생매장 등의 자극적 묘사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로부터 4차례 법정 제재를 받았다. ‘내 딸 금사월’(2015)도 아내가 남편 멱살을 잡고 난간에서 위협하는 장면 등으로 방심위 징계를 받았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일반 시청자의 시선에 맞추는 것은 대중 작품의 숙명이어서 막장 드라마를 무작정 비판하는 시선은 옳지 않다”면서도 “다만 극의 개연성 문제와는 별도로 언어 사용이나 폭력성에 대한 자체적인 사전 검열은 필요한 절차”라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