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구독 237

추천

북한 관련 사이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http://nambukstory.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zsh75@donga.com

취재분야

2025-11-18~2025-12-18
남북한 관계67%
칼럼23%
사회일반7%
경제일반3%
  • 스페인 카를로스 국왕 전격 퇴위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76)이 2일 급작스러운 퇴위를 발표했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이날 “카를로스 국왕이 퇴위 의사와 함께 왕위 계승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뜻을 알려왔다”고 전했다. 후계자는 국왕의 아들인 펠리페 왕세자(45)이다. 펠리페 왕세자는 지난해 말 여론조사에서 66%의 지지도를 얻어 무난히 왕위를 승계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민주화에 지대한 역할을 한 카를로스 국왕은 2007년 스페인 한 방송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스페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1위’로 선정되는 등 재임 39년 가까이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인기가 급격히 식었다. 스페인이 경제위기에 빠져 있던 2012년 아프리카 보츠와나에 코끼리 사냥 여행을 갔던 사실이 드러나 공개 사과문을 발표했다. 지난해엔 카를로스 가문이 스위스에 비밀 계좌를 보유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올 1월에는 막내딸 크리스티나 공주 부부가 600만 유로(약 90억 원)의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 때문에 그의 청렴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2012년 11월 왼쪽 엉덩이에 이식한 인공관절 부위에 감염이 생긴 뒤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건강 이상설에도 시달렸다. 그럼에도 그가 독재자였던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사망한 뒤 스페인 민주화의 기틀을 다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1931년 스페인에 공화제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리스로 망명한 알폰소 13세 국왕의 손자로 태어났다. 왕정 체제가 스페인의 이상적인 정치 형태라 생각한 프랑코 총통은 1969년 카를로스 국왕을 자신의 합법적 후계자로 공표했다. 1975년 11월 프랑코 총통 사망 이틀 뒤 국가 권력을 넘겨받은 카를로스 국왕은 즉위식에서 프랑코 독재체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스페인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인들은 이 발표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그는 비밀경찰을 해제하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했으며 1976년 양원제 채택, 1977년 총선거 실시, 1978년 상징적 입헌군주제 도입 등 급진적 개혁조치를 잇따라 밀고 나갔다. 정치범들을 석방하고 정당 활동도 보장했다. 그의 급진적 자유 민주주의 개혁에 반발한 극우 우익세력은 1981년 2월 쿠데타를 일으켜 내각 각료와 의원 350여 명을 인질로 잡고 군부 독재로의 복귀를 요구했다. 이때 그는 “나를 먼저 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한 뒤 전투복 차림으로 TV 앞에 나가 “무력으로 민주화 과정을 방해하는 자들의 어떤 형태의 행동도 용납할 수 없다”며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결국 쿠데타는 18시간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1982년 유럽이 요구하는 지도자상으로 인정받아 샤를마뉴 대제상을, 1995년엔 유네스코 평화상을 수상했다. 카를로스 국왕은 2007년 11월 칠레에서 열린 이베로아메리카 정상회의 폐회식에서 자국을 비난하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향해 “입 닥쳐”라고 소리쳐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발언은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전화벨 소리가 되기도 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6-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北당국 “몰래 ‘정도전’ 보면 엄벌”

    북한 당국이 한국 역사드라마 ‘정도전’의 불법 유통을 철저히 차단하라는 지시를 지난달 전국 체제 보위기관들에 전달했다고 북한소식통이 27일 밝혔다. 북한의 한국 드라마 단속은 늘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번처럼 특정 드라마의 제목을 거론하며 통제와 처벌을 강화하라고 지시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보위부와 보위사령부 등 체제 보위기관들에 정도전 단속 지시를 하달하면서 이 드라마가 역사를 매우 심하게 왜곡하고 있다는 이유를 제시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하지만 실제 단속 이유는 정도전이 북한에서 매우 금기시하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드라마 정도전은 이성계와 함께 왕(王) 씨의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이(李) 씨 왕조를 건국한 조선시대 개국공신 정도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신하들이 왕을 몰아내는 과정을 담고 있어 ‘백두혈통론’을 내세우며 3대 세습을 정당화하는 김정은 체제에 매우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드라마 속 이성계 묘사가 북한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와 정면으로 어긋난다는 것도 통제의 배경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이성계가 권력에 눈이 멀어 고구려 영토를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린 만고의 역적이라고 가르쳐왔다. 게다가 북한 역사교과서에선 정도전의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반면 정몽주는 고려의 충신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북한소식통은 “이번처럼 제목을 거론하며 불법 시청자 엄벌 지시가 하달된 것은 2000년대 중반에 한 번 있었다. 중국의 50부작 드라마 ‘황제의 딸’이었다”고 말했다. 이 드라마에는 난봉꾼인 황제와 권력 및 사랑을 차지하려고 싸우는 왕후와 첩, 자식들의 음모와 배신 등 궁중암투가 상세하게 나온다. 북한 주민들은 당시 이 드라마를 몰래 보면서 “우리(김정일 집안)도 저런 일이 벌어지겠지”라는 말을 나눴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역사물에서 왕 또는 왕가를 다루는 것을 금기시한다. 주민들이 사실상 왕조체제인 북한의 현실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임꺽정이나 홍길동처럼 지배계층의 수탈이나 출신성분에 항거하는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를 만들었지만 1990년대 이후 간부들의 수탈에 대한 주민 불만이 고조되자 이런 소재도 금기시됐다. 결국 북한에서 역사물로 다룰 수 있는 소재는 2010년 제작된 드라마 ‘계월향’처럼 왜적에게 맞서 싸우는 내용뿐인 셈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도 외부 드라마를 몰래 보며 눈이 높아진 북한 주민의 외면으로 조기 종영됐다. 북한에서 드라마 방영이 가능한 전국채널은 조선중앙TV가 유일하다. 한편 최근에는 북한에 스마트패드, 노트텔, USB 등 다양한 영상 재생기기와 저장매체가 유통되면서 보위부가 단속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영상물은 밀수꾼을 통해 북한에 유입되곤 한다. 최근에는 북한 상인들이 중국의 거래 상대에게 특정 드라마를 요구하거나 북한 인권단체들이 몰래 살포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5-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평양아파트를 붕괴시킨 건 ‘부패’다

    평양 중심부에는 모든 건물의 신축이 금지돼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상하수도망 같은 도시 하부구조가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평양건설대 교수에게서 들은 바로는 중구역의 경우 아예 상하수도망 도면이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평양 중심부 상하수도망은 일제강점기에 건설한 것인데, 광복과 전쟁을 거치며 도면이 사라졌다. 6·25전쟁 때 평양은 미군의 집중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북한은 40만 명이 살던 평양에 42만 발의 폭탄이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전후의 평양 사진에 남아있는 건물은 일제강점기의 화신백화점 단 하나뿐이었는데 그것이 현재의 평양 제1백화점이다. 전쟁이 끝난 뒤 북한의 최우선 목표는 집을 빨리 짓는 것이라 상하수도망을 새로 설계할 여유가 없었다. 또 당시만 해도 기존의 상하수도망도 쓸 만했다. 북한이 자랑하는 속도전의 원조는 전후 평양 건설에서 비롯됐다. 1958년 평양에선 14분마다 살림집 1채씩이 건설됐다. 이를 두고 북한은 ‘평양속도’ ‘평양시간’이라고 내세웠다. 그리고 조립식 공법으로 7000채분의 자재로 2만 채를 건설했다는 자랑도 빼놓지 않는다. 이렇게 급히 건설했어도 그때 지은 아파트가 붕괴된 적이 없었다. 1992년 통일거리 건설장에서 고층아파트가 붕괴돼 내부 미장을 하던 군인 1개 대대 500여 명이 몰살된 것을 비롯해 크고 작은 건물 붕괴가 있었지만 적어도 1950년대 지은 아파트는 무너지지 않았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금 건설하는 아파트의 안전기준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다. 한국 언론들은 이달 13일 발생한 평양 23층 아파트 붕괴 원인이 ‘속도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핵심 원인은 아니다. 진짜 원인은 부패에 있다. 북한 간부들은 아파트 건설을 아주 좋아한다. 떨어지는 돈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남쪽 사람들은 북한 아파트가 국가 자재로 건설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은 중요 건설장에 공급할 시멘트와 철강이 태부족이다. 중요 건설장은 스키장 유원지 기념관 민속공원같이 김정은이 지으라고 지시한 곳을 말한다. 평양의 대다수 아파트는 힘 있는 기관들이 건설허가를 따서 짓는다. 건설되면 일부는 자기들이 갖고 나머지는 건설비를 뽑기 위해 판다. 모든 자재는 건설기관들이 자체로 구입한다. 대개 중국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달러로 거래된다. 이 수입권도 수도건설총국이나 2경제(군수 부문) 같은 극히 일부 기관이 독점하고 있다. 아파트를 지으려면 비용과 뇌물이 많이 든다. 건설비를 줄이려면 불량 자재를, 그것도 적게 쓰는 수밖에 없다.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지어 파는 기관이 가장 장사를 잘하는 셈이다. 한때 부실 아파트의 대명사로 꼽히던 1970년의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 같은 일이 40여 년이 지난 지금 평양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석회석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전력난 때문에 시멘트 생산량이 적고 질도 형편없다. 북한에선 시멘트 강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마르카’를 쓰는데 180마르카 이상을 고강도 시멘트로 분류한다. 북한산은 보통 120마르카 내외다. 이런 시멘트는 아파트 건설에 쓸 수가 없는데도 북한 내부에서 잘 팔린다고 한다. 같은 아파트를 지어도 도심이면 비싸게 팔린다. 제일 비싼 곳은 중구역인데 100m² 정도의 아파트는 3만∼4만 달러, 160m²는 7만∼8만 달러에 팔린다. 평양 도심의 건물 신축 금지 규정은 사실상 오래전에 권력과 돈 앞에 무용지물이 됐다. 평양 중심부는 지금 온통 공사판이다. 창전거리처럼 아예 일정한 구획 전체를 허물고 새로 건설한 곳은 상하수도망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도심에 틈만 있으면 비비고 올라가는 아파트들이다. 이런 아파트는 설계도도 없는 상하수도망에 대충 연결된다. 모르는 사람은 평양의 외관만 보고 “못 사는데 건물들은 괜찮네” 하고 감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로 감탄을 받아야 하는 ‘평양의 기적’은 땅 밑에서 겨우 기능을 하는 80년 넘은 된 녹슨 좁은 배관들이다. 평양은 주택난이 심각해 구매 수요는 충분하다. 1990년대 초반 약 200만 명이던 평양 인구는 20년 뒤엔 350만 명까지 늘어났다. 여기에 거주신고 없이 몰래 평양에 사는 일명 ‘미거주자’도 70만 명 이상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당국은 평양 인구를 줄이려고 일부 지역을 황해도에 편입시키는 식의 대책도 내놓았지만 실패했다. 북한에선 평양에 살아야 그나마 사람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돈 좀 번 사람들은 돈보따리를 싸들고 올라와 뇌물을 뿌리며 평양 거주권을 따기 위해 필사적이다. 반면 1990년대 이후 경제난이 겹치면서 평양에선 신규 주택이 거의 건설되지 못했다. 주택난이 심했다. 인구가 두 배나 늘어난 지금은 창고와 지하실 옥상에도 자리가 없다. 이번에 붕괴된 아파트에 완공도 되기 전에 사람들이 들어가 살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평양에서는 2000년대 후반부터 다시 주택 건설 붐이 일고 있다. 평양의 아파트 가격은 1990년대 이후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매년 상승세다. 집을 지었다 하면 팔리니 질이 문제가 될 리 없다. 몇 년 전 북한 아파트 공사현장을 몰래 촬영해온 동영상을 보고 기겁을 했다. 건설 중인 아파트 창문 위치가 층별로 오락가락이다. 그런데도 다 짓고 보면 그럴듯하니 희한하다. 나중에 한국 기업들이 북한에 마음대로 진출할 때가 오면 나도 평양에 파견될 가능성이 있다. 가서 살려면 집부터 사야 한다. 하지만 평양의 부실 공사판을 보면 도저히 도심에서 살 자신이 없다. 이번 아파트 붕괴를 보고 확실히 결심했다. “나중에 평양에 돌아가면 교외에 내 손으로 집을 직접 지어야지.”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5-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태국 국왕 “군부 쿠데타 승인”

    태국 쿠데타가 26일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의 승인을 받았다. 쁘라윳 짠오차 육군참모총장은 이날 쿠데타 선언 이후 첫 기자회견을 열어 군사정부인 국가평화질서회의(NCPO)의 의장인 자신의 지위를 푸미폰 국왕이 공식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시위대의 대치가 반년 이상 지속돼 군이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 가장 중요한 일은 국가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군부는 5인 이상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 계엄령을 위반한 사람들은 군사재판에 넘기겠다고 경고했다. 군부에 감금됐던 정치인에 대한 처리도 빨라지고 있다. 26일 오전 수텝 트악수반 전 총리 및 4명의 반정부 시위대 지도자들은 시위 당시 기소된 반란 혐의를 조사받기 위해 법무부로 이송됐다. 전날 밤 석방된 잉락 친나왓 전 총리는 군인들의 감시 아래 가택연금 상태에 놓였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5-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글로벌 Hot 피플]태국 쁘라윳 육군참모총장

    무혈 쿠데타로 22일부터 태국의 실권을 거머쥔 쁘라윳 짠오차 태국 육군참모총장(60·사진)이 태국판 ‘선군정치’를 벌이고 있다. 24일 군부는 상원을 해산하고 입법권을 군부로 넘겼다. 하원도 지난해 12월 해산된 상태다. 쁘라윳 참모총장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자신이 총리대행 업무를 수행한다고 선언한 뒤 내각 업무도 부하들에게 분담시켰다. 육군사령관에겐 국방부 내무부 정보통신부를, 공군사령관에겐 재무부 상공부 산업부 노동부를, 해군사령관에겐 환경부 교육부 보건부 과학부 관광부를 맡겼다. 병력 25만 명을 지휘하는 쁘라윳 참모총장은 이제 어느 선출직 총리보다 더 큰 권한을 손에 쥐고 태국 국민 6774만 명을 통치하는 최고의 실세로 떠올랐다. 쁘라윳 참모총장의 쿠데타는 태국에선 합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1914년 제정된 비상사태법은 “군부는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독자적으로 계엄령을 내릴 수 있다”고 규정했다. 쁘라윳 참모총장은 100년 전에 만들어진 이 법을 근거로 군이 정국 혼란을 정리할 권한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태국에선 1932년 이래 19차례 쿠데타가 일어났다. 대략 4년마다 한 번꼴이다. 그러나 군 수장도 쿠데타의 정당성을 국왕에게서 승인 받지 못하면 반역자가 돼 해임된 뒤 재판을 받아야 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태국만의 독특한 정치 시스템이다. 이번 쿠데타는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승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왕립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쁘라윳 참모총장은 왕비 근위병 부대에서 군 생활을 시작한 대표적 왕당파다. 2002년까지도 그는 동부지역을 관할하는 육군 2사단 부사단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육군 내 강력한 인맥인 ‘동부 호랑이’ 파벌의 일원으로 승승장구했다. 2008년 육군참모차장에 올랐고 국왕의 명예부관직도 겸했다. 그는 2010년 5월 친탁신 진영의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했다. 당시 사망자 92명, 부상자 1700여 명이 발생했다. 그 공로로 그는 같은 해 같은 파벌 출신인 전임자의 뒤를 이어 참모총장이 됐다. 이런 전력에도 불구하고 쁘라윳 참모총장은 잉락 정권 시절에도 자리를 지켰다. 올해 60세인 쁘라윳 참모총장은 9월이면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계엄령을 선포한 20일 그는 각 정파 대표를 모아놓고 “사태 수습을 후임자에게 넘기고 싶지 않으니 타협하라”고 요구했다. 타협이 이뤄지지 않자 잉락 친나왓 전 총리와 반정부 시위대 리더인 수텝 트악수반 전 부총리를 포함해 100여 명의 정치인을 23일 소환한 뒤 최대 일주일간 구금한다고 발표했다. 휴대전화도 다 몰수했다. 몰수한 이유는 “평온을 유지한 상태로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정치인들이 타협할 때까지 내가 이 자리에 있겠다”고 엄포도 놓았다. 쁘라윳 참모총장의 거친 리더십에 대다수 태국 국민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극도로 혼란한 태국 정국에서 해결사로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서방은 태국의 쿠데타를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한목소리로 비난하지만 태국 국민은 쁘라윳이 퇴직 전 마지막으로 애국심을 불태우고 있으며 사태를 해결하면 물러날 것으로 믿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5-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베이 해킹… 비밀번호 변경 요청

    사용자가 1억2800만 명에 이르는 거대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이베이가 해킹 피해로 고객들에게 비밀번호를 바꾸라고 요청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이베이는 21일 자사의 데이터베이스가 올해 2월 말부터 3월 초 사이 해킹 피해를 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유출된 것으로 의심되는 개인 정보에는 이름, 비밀번호, e메일 주소,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베이는 신용카드 번호 등 고객의 금융 거래 정보는 별도로 저장돼 암호화돼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또 해킹에 따른 정보 유출 의혹이 발생한 이후 이로 인한 금융 피해 사실은 아직 접수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베이는 데이터베이스의 자료가 해킹됐을 수 있다는 정보를 2주 전 인지하고 경찰 및 보안전문가들과 진상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베이는 자회사인 전자결제 서비스업체 페이팔의 데이터베이스는 별도로 보관돼 있어 해커가 침입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베이는 2001년 한국 인터넷 경매사이트인 옥션을 인수했다. 한국인 가입자 정보도 함께 유출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국 옥션 측은 21일 “미국에 본사를 둔 이베이와는 서버가 다르기 때문에 이번 사태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버가 달라 고객 정보도 따로 관리된다고 옥션 측은 주장했다. 이에 앞서 옥션은 2008년 2월 가입자 절반에 육박하는 1081만 명의 정보가 유출된 바 있다. 누가 이베이를 해킹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2월 미국 지니넷 등 외신들은 영국 이베이와 페이팔 웹사이트가 시리아전자군(SEA)에 의해 해킹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영국 이베이와 페이팔 회원들은 수시간 동안 자국 이베이 웹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했다. SEA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국제적 해킹그룹으로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정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한편 이베이의 해킹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주식시장에서 이베이의 주가는 21일 오전 9시 50분 현재 1.5% 이상 떨어진 채 거래됐다.주성하 zsh75@donga.com·김용석 기자}

    • 2014-05-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스라엘軍 조준사격’ 동영상 파문

    비무장 팔레스타인 10대 소년 2명이 이스라엘군의 조준사격으로 사망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지난달 말 미국의 중재로 8개월 동안 진행되던 이-팔 평화협상이 중단된 뒤 치열한 비난 공방을 벌이던 양국 관계에 어떤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국제인권단체인 ‘국제아동보호(DCI)’가 21일 유튜브에 올린 2분 분량의 동영상에는 배낭을 멘 한 팔레스타인 소년이 상점 앞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1시간 13분 뒤 같은 곳에서 또 다른 소년이 갑자기 쓰러진다. 두 소년 모두 비무장 상태였다.이것은 15일 이스라엘 건국일을 맞아 팔레스타인 각지에서 벌어진 시위 도중 이스라엘군 총격으로 숨진 소년들의 모습을 담은 인근 건물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편집한 것이라고 DCI는 밝혔다. DCI 팔레스타인 지부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이스라엘군이 조준사격을 했음을 보여 준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인권단체도 “군이 정당한 이유 없이 200m 거리에서 총을 쏜 사실을 입증해 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편집된 동영상은 시위 당시의 폭력적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군은 실탄이 아닌 최루탄과 고무탄만 사용했다”고 주장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5-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인도 새 엔진 ‘모디노믹스’… 개발독재 스타일?

    “21세기는 인도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인도 13억 인구가 새로운 지도자로 선택한 나렌드라 모디 차기 총리(64)는 17일 수도 뉴델리에 입성하며 이렇게 외쳤다. 그가 탄 차를 따르며 환호한 지지자 행렬은 몇 km에 이를 정도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8일 “모디는 1947년 당선된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 이후 67년 만에 인도 국민이 자기 의지로 뽑은 총리”라고 평가했다. 모디를 내세운 제1야당 인도국민당(BJP)과 BJP가 이끄는 국민민주연합(NDA)은 전체 하원의석 543석 중 압도적 다수인 337석을 차지했다. 반면 인도 정가를 좌지우지했던 네루 간디 가문은 이번 총선에서 완패했다. 집권여당연합은 네루 총리의 증손자이자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아들인 라훌 간디를 후보로 내세우고도 59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모디는 인도의 박정희? 유럽 인구보다 더 많은 8억1400만 명의 인도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선택했다. 외신들은 강한 경제개혁과 비타협적 안보관을 가진 모디를 ‘인도의 대처’ ‘인도의 아베’ 로 비유한다. FT는 인도 정치평론가들을 인용해 “모디는 권위주의적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전망했다. 이번 총선에서 인도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위를 바탕으로 경제를 발전시킨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전후의 한국의 지도자, 대만과 중국의 지도자’와 같은 리더십을 택했다는 것이다. 모디는 2001년부터 고향인 구자라트 주 총리를 지내며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입지전적 인물이다. 구자라트 주는 과감한 기업 친화적 정책과 해외 대기업 유치, 대대적인 사회기반시설 투자에 힘입어 ‘인도에서 유일하게 24시간 전기가 끊기지 않는 주’로 변신했다. 인도 유권자들은 모디에게 국가를 구자라트 주처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인도 유권자들의 경제발전 열망은 지금까지 인도를 지배했던 카스트제도와 종교의 영향력이라는 단단한 벽을 무너뜨렸다. 지금까지 인도 총선은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와 14%인 무슬림이 대립해왔다. 종교에 따른 정당 지지가 뚜렷했고 카스트 신분에 따른 지지 정당 쏠림 현상도 강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선 유권자들이 한목소리로 경제를 외쳤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가 총선 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57%가 경제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종교나 신분 정체성에 따라 투표하겠다는 대답은 3%에 그쳤다. 이런 의식 변화가 소년 시절 기차역에서 홍차를 팔고 청년 시절엔 노점상을 했던 경력 때문에 ‘거지 후보’로 불렸던 모디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이어졌다. 모디는 이런 열망을 충분히 활용했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내건 그의 선거 공약은 1992년 미국 대선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구호를 내걸고 승리했던 것과 흡사했다. 모디는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인도에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17세에 결혼 생활을 잠깐 했을 뿐 홑몸이며 자식도 없고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 일중독자로 알려졌다. ○ 인도 새 리더십에 각국 손익계산 인도의 정권 교체를 가장 반기는 나라는 일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17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모디는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두 사람 모두 중국에 반감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보도했다. 모디와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해온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6일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 메시지를 전달하고 미국 방문을 요청하는 등 화해의 손짓을 보냈다. 미국은 2002년 구자라트 주에서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 유혈 충돌이 발생했을 때 모디 당선자가 힌두교 편에 서서 사태를 방관했다는 이유로 2005년 그의 입국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중국도 16일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인도 새 정부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을 비롯한 각국 기업들은 ‘모디노믹스’로 불리는 모디의 친기업 정책이 도시 건설과 고속도로 공항 항만 등 핵심 인프라 투자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인도 진출 기회를 점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5-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단독]최룡해 ‘솔직한 변명’에 좌천?

    최룡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지난달 말 갑작스럽게 북한군 총정치국장직에서 해임된 것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군의 실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가 진노를 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북한 권력층 동향에 밝은 대북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최룡해는 지난달 말 김정은이 포병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싸움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질책하자 “이대로 10년만 가면 군이 전쟁을 할 수 없게 된다”고 직언했다. 최룡해는 이 자리에서 북한군의 전투장비가 노후화됐고 연료가 없어 훈련을 하지 못한다면서 식량이 부족해 탈영병이 속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어 최룡해는 “군인들 사이에 전쟁을 해도 승산이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이에 김정은은 “그것을 해결하라고 당신을 총정치국장 시킨 것 아니냐”며 화를 내면서 “당장 그만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8일 김정은이 이틀 전 제681군부대 산하 포병 구분대를 방문해 “싸움 준비가 잘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이곳 지휘관들의 마음은 싸움마당을 떠나 있는 것 같다”고 질책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구분대는 170mm 자주포를 운용하는 북한군 핵심 포병부대다. 이 통신은 또 김정은이 “지금 일부 지휘관이 군인들을 다른 사업에 동원시키며 훈련을 뒷자리에 놓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군인생활 개선을 위해 부업도 하고 부강조국 건설에서도 한몫해야 하지만 항상 싸움준비를 첫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포병들의 준비태세를 김정은이 질책하자 현장에서 군인들이 부업(농사)과 건설에 과도하게 동원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음을 암시해주는 대목이다. 이 소식통은 “최룡해는 전에도 김정은에게 군의 열악한 실태를 설명하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김정은에게도 대책이 없긴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소식통은 황병서 신인 군 총정치국장과 관련해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우는 과정에 (김정은의 생모로 그동안 고영희로 알려져 온) 고용희의 절대적 신임을 받아 승진한 인물”이라며 “현재 노동당 조직부 1부부장도 겸직하고 있어 엄청난 권력을 틀어쥐었다”고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5-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왕자와 거지’ 대결 승자는?

    유권자 8억1400만 명이 참가하는 지구 최대의 민주주의 축제인 인도 총선이 12일 마침내 5주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인도 중앙선관위는 12일 비하르, 우타르프라데시, 웨스트벵골 주에서 마지막 9단계 투표가 끝났다고 발표했다. 인도 선관위는 이번 선거 투표율은 역대 최고인 66%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총선 직전에 인디라 간디 총리가 암살됐던 1984년 총선 때 달성한 역대 최고 투표율 64%를 넘어선 것이다. 하원의원 543명을 뽑는 이번 총선 결과는 16일 발표된다. 전문가들은 인도 힌두교 민족주의 야당인 인도국민당(BJP)의 승리가 유력하다고 예상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구자라트 주 주지사가 이끄는 BJP는 이번 총선에서 경제성장을 공약으로 내걸고 라훌 간디 부총재가 총리 후보로 나선 집권 여당인 국민회의당(INC)을 강하게 압박했다. 노점상 출신인 모디 후보는 총리를 3명이나 배출한 정치 명문 네루·간디 집안 출신인 간디 후보와 극명하게 비교된다. 이 때문에 이번 총선은 ‘왕자와 거지’의 대결로 불린다.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인도인 중 63%가 10년간 집권해 온 INC보다 BJP를 더 좋아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5-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사회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북한 막말’

    1989년 6월 김일성이 양강도 삼지연군 포태종합농장을 시찰했을 때 일이다. 김일성이 “올해 농사가 참 잘됐다”고 칭찬하자 관리위원장이 무심결에 이렇게 말했다. “수령님, 다 하늘의 덕입니다.” 김일성은 물론이고 수행 간부들의 얼굴이 곧바로 굳어졌다. 김일성이 떠나자마자 관리위원장은 해임됐다. 고산지대에선 하늘이 농사를 좌우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허나 김일성 앞에선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 주체농법의 덕입니다”라고 대답했어야 했다. 김일성도 어딜 가나 들었던 모범답안을 기대했을 터인데, 평생을 백두산 아래 두메산골에서 산 이 관리위원장은 너무 고지식했다. “결승 지점에서 장군님이 어서 오라 불러주는 모습이 떠올라 끝까지 힘을 냈다.” 1999년 스페인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의 우승 소감은 북한에서 지금도 ‘아부의 교본’처럼 전해지고 있다. 덕분에 정성옥은 스포츠 선수 최초의 공화국 영웅이 됐고 평양의 호화주택과 벤츠 S500 등 최고의 물질적 보상도 챙겼다. 이처럼 북한은 통치자의 귀에 드는 말을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운명도 바뀐다. 북한 당국이 남한을 향해 쏟아내는 막말 퍼레이드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미국과 남쪽을 향해선 어떤 욕을 해도 처벌받을 일이 없다. 오히려 통치자의 귀에 솔깃한 대남 비방 욕설을 써서 “아주 시원하게 잘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김정은에게 만족을 드린 사람’으로 평가돼 평생이 보장된다. 그러니 대남 발표를 담당한 사람들이 하루 종일 남쪽을 향해 어떤 신종 욕설을 개발해 퍼부을까 머리를 싸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권력자를 칭송하는 것도 아부요, 권력자가 싫어하는 대상에 저주와 욕설을 퍼붓는 것도 아부라는 점에서 아부와 욕설은 뿌리가 같다고도 할 수 있다. 아첨을 싫어하는 권력자는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최근 북한이 남한을 향해 쏟아내는 막말을 보면 ‘저 정도는 해줘야 김정은에게 먹히는구나’ 싶어 김정은의 심경이 어떤지, 그가 말하고 싶은 것 혹은 듣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막말이 저 정도면 김정은 주변에서 아부하는 말은 얼마나 더 쎌까. 아이러니한 일은 북한 사회에서 살았던 탈북자들이 남한에 와서 아부를 잘 못해 직장 생활에 적응을 잘 못한다는 점이다. 탈북자들은 회사 상사나 동료들에게 너무 직설적으로 말해 대인관계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탈북자들을 향해 남북한의 민주주의를 비교하면서 “대한민국은 대통령을 마구 욕해도 멀쩡하니 이런 사회로 자유를 찾아 너무 잘 왔다”고 소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 역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어른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대통령을 호칭도 없이 이름만 부르며 마음대로 욕하는 것이 놀라웠다. 이름만 부르면 차라리 다행이다. 인터넷에선 ‘×박이’ ‘×그네’라고 대통령을 향해 심한 욕설로 도배를 해도 멀쩡한 곳이 남한이다. 그런데 남한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체득한 게 있다. 남쪽에서 하는 표현의 자유는 먼 곳의 권력을 향해서 무제한으로 허용되며 내 밥줄이 달린 곳에선 아주 제한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북에선 김정일 부자를 향해 “당신 독재자야”라고 말하면 당장 목이 잘리지만, 남에선 대통령 욕을 하는 것은 괜찮지만 사장 앞에서 욕을 하면 밥줄이 잘린다. 북한은 의무고용이 헌법에 명시돼 있어 해고가 없다. 월급과 배급은 법적으론 국가에서 보장해준다. 내 밥줄을 보장하는 것은 상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상사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상사에게 상욕을 해대며 멱살 잡고 싸워도 다음 날 해고 통지서가 날아오진 않는다. 정치권력을 향해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 자유와 일터에서 상사를 비판하는 자유…. 둘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문제라 엄밀히 말해서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모두 제약됐을 때 불편함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밥줄을 국가가 틀어쥔 북한은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을 완전히 차단했지만 사적 영역에 대한 비판에서는 관대한 편이다. 여기에 북한 사람들은 집에선 몰라도 공개석상에서 김정은을 욕하지 못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진 않는다. 어려서부터 김 부자(父子)를 신처럼 여기도록 세뇌됐기 때문이다. 남과 북을 체험한 나에게 둘 중 하나만 택하라 한다면 정말 어려울 것 같다. 솔직히 일터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는 자유를 더 갖고 싶다. 대통령에게보다는 할 말이 훨씬 더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북한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권력을 비판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북한의 억압적 체제가 생생한 사례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임이 분명하다. 북한의 막말이 해마다 점점 더 심해지듯이 한국의 일부 누리꾼 속에선 권력을 향한 막말 수위가 도를 넘는다. 아마 세계적 수준이 아닐까 싶다. 사적 영역에서 발언의 민주화는 바닥인데, 공권력을 향한 저주는 세계 상위권이니,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국가에 대고 푸는 건 아닐까. 작금의 모습을 북한에 보여주면서 한국은 민주주의적 비판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자랑하자니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북한에서 상상하던 민주주의 사회는 분명 이런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5-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슬람권도 나이지리아 소녀납치 규탄

    나이지리아 테러단체 ‘보코하람’의 잇따른 테러가 세계적인 이슈로 부각되는 가운데 이슬람 사회에서도 규탄의 목소리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무함마드 목타르 고마 이집트 종교장관은 7일 “보코하람의 행동은 오직 테러일 뿐 이슬람과는 관계가 없으며 특히 소녀들의 납치는 그렇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집트 카이로에 소재한 수니파 이슬람의 가장 권위 있는 교육기관인 알아자르대의 셰이크 아흐메드 엘 타예브 총장은 보코하람의 납치는 “이슬람의 관용의 원칙과 완전히 어긋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포스트는 7일 “보코하람은 소녀들을 납치해 팔아넘기기 위해 부당하게 이슬람의 교시를 들먹이고 있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지난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파키스탄의 말랄라 유사프자이 양(17)은 7일 영국 BBC를 통해 집단 납치된 나이지리아 여학생들 구출에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2012년 학교에 가던 중 탈레반의 총에 맞아 중태에 빠졌던 일을 언급한 뒤 “내 고향에서 벌어진 일과 똑같은 일이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다”며 피랍 여학생들에게 “우리가 함께 있으니 절대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서방세계에서도 나이지리아 소녀 276명 피랍사건이 세계적 여성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7일 트위터에 ‘우리 소녀들을 돌려줘(#BringBackOurGirls)’라고 적은 종이를 들고 찍은 사진과 함께 “실종된 나이지리아 소녀들과 가족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글을 올렸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미 상원의 여성 의원 20명 등도 피랍 여학생들의 무사귀환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보코하람이 5일 나이지리아 북동부 카메룬 국경 인근의 감보르 느갈라 마을을 습격해 30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세계는 다시금 경악하고 있다. 이들은 사람들로 붐비던 시장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산 채로 사람들을 불태워 죽였다. 보코하람의 만행이 극에 달하자 서방 국가들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나이지리아에 10명 규모의 대테러 전문 합동팀을 파견한 미국은 아부자 대사관을 경비하는 50명의 미군 병력도 대테러 작전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 역시 대테러 전문팀을 파견하겠다는 의사를 전했고 나이지리아를 방문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도 자국의 인공위성을 활용해 여중생 구출에 협력하겠다고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5-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우크라이나, 슬라뱐스크 탈환 작전 시작… 사상자 속출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5일 친(親)러시아 성향의 분리주의 민병대가 장악한 동부도시 슬라뱐스크를 되찾기 위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시작하면서 유혈 사태가 확대되고 있다. BBC방송은 정부군이 이날 친러 민병대와 교전 끝에 슬라뱐스크 외곽의 TV 송전탑을 탈환했다고 보도했다. 헬기와 장갑차 등을 총동원한 정부군 공세에 밀린 친러 민병대는 시내 중심부로 후퇴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이 전했다. 친러 무장세력의 동부 거점도시인 슬라뱐스크를 둘러싼 치열한 교전으로 양측 모두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이날 슬라뱐스크 지역에서 정부군 장교 4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부상했다고 발표했다. 내무부는 웹사이트에 공개한 성명에서 친러 민병대가 정부군을 공격할 당시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활용했으며 인근 건물들에 불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정부군 특수부대 소속 장교 1명은 부상자들이 탑승한 미니버스를 호송하던 중 민병대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러시아 뉴스전문 TV채널 ‘러시아투데이(RT)’는 이날 정부군이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검문소를 습격해 친러 민병대원 20여 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정부군은 3일 슬라뱐스크 인근 도시 크라마토르스크에 집중 공세를 펼쳐 탈환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군과 친러 무장세력 양측에서 10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슬라뱐스크 인근 도시 콘스탄티노프카와 남부 도시 마리우폴에서도 진압작전이 벌어졌다. 2일에는 우크라이나 남부의 흑해 연안 항구도시 오데사에서 정부 지지자들과 친러 성향의 분리주의 시위대가 충돌하면서 친러 시위대가 점거한 건물에 불이 나 46명이 숨지고 200여 명이 부상했다. 이 화재는 ‘프라비 섹토르’(극우민족주의 단체) 회원들이 중심이 된 정부 지지자들이 이날 친러 시위대가 몰려 있던 쿨리코보 폴례 광장의 노조 건물에 화염병을 던지면서 발생했다. 러시아어를 쓰는 인구가 30∼40%나 되는 오데사는 남부지역 분리주의 세력의 근거지다. 대규모 참사에 격분한 친러 시위대는 4일 오데사 경찰본부에 몰려가 항의시위를 벌였다. 친러 시위대는 건물을 포위한 채 출입문을 강제로 열고 창문을 부수며 체포된 동료 시위대원의 석방을 요구했다. 군중들은 “러시아”를 외치면서 청사에 게양된 우크라이나 국기를 끌어내리기도 했다. 경찰은 결국 2일 체포한 친러 시위대 67명을 전격 석방했다. 이러한 유혈사태 속에서도 동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하리코프 등 3개 주는 11일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강행하기로 해 우크라이나 사태가 내전으로 번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주성하 기자}

    • 2014-05-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北송환 외화벌이 인력, 상당수 中일터로 복귀 못해

    지난해 12월 장성택 숙청 이후 북한으로 송환됐던 중국 내 북한 외화벌이 인력의 상당수가 지금까지도 복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소식통은 지난달 28일 “3월 9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끝난 뒤 아직까지 별다른 복귀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의 외화 수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북한이 중국에 파견한 인력을 활용해 벌어들이는 외화 수입은 한 해 2억∼3억 달러(약 2064억∼3096억 원)로 추정된다. 북한의 외화벌이 인력은 주로 중국의 임가공 업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본국에 송환된 북한 노동자들이 다시 중국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는 데에는 북한 정부의 조치 외에도 중국 정부의 비자 발급 제한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중국 당국이 북한 주민들에 대한 취업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있다. 특히 2월부터는 단순 노무자의 단기 취업비자 발급이 원칙적으로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이 자국 노동시장을 보호하는 한편 도발 행위를 계속하는 북한에 압박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취업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5-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北 “中에 나선부두 빌려준적 없다”… 50년 사용권 전면 부인

    지난해 12월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경제에 심상찮은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외부 교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중(對中) 무역이 크게 줄어든 데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특구 조성 사업도 지지부진하다. 중국 해관(海關·세관)에 따르면 올해 2월과 3월 북-중 교역량은 지난해 대비 각각 14%, 13% 감소했다. 특히 대중 수입이 21%씩 감소했다. 이러한 수입 감소는 원유 수입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둥(丹東) 등지의 대북 무역상들은 일반 물품의 수요도 크게 줄었다고 전한다. 한 무역상은 “올 들어 북한 측에서 요구하는 물품 주문이 급감해 다들 개점휴업 상태”라고 전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장성택 처형 이후 무역 라인이 개편되는 과정에서 몸을 사리는 측면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 대북 사업가는 “수년간 거래하던 북한 회사 사장이 장성택 사건 이후 처형됐다”며 “밀린 결제 대금을 받을 데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거래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북한 경제를 관장했던 장성택이 갑작스럽게 사라지면서 북한이 의욕적으로 발표한 14개 특구는 아직까지 진척 상황이 없다. 다롄(大連)의 한 대북 사업가는 “장성택은 특구를 종합적으로 기획하고 끌고 갈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그가 없는 상황에서 이를 조율할 세력이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해 3차 핵실험 이후 강화된 대북 제재도 북한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북한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자 최대 후원국인 중국도 북한을 다각도로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외부에 알려진 제재 외에도 북한으로 가는 자국민의 현금 소지량까지 제한하고 있다. 나진-선봉(나선) 경제특구의 금삼각주은행 직원은 홍콩 펑황(鳳凰)위성TV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해관이 중국인의 북한 입국 때 현금을 2만 위안(약 330만 원)까지만 갖고 갈 수 있게 규정했다. 북한 은행과의 외화결산을 불허하는 데다 현금마저 제한하다 보니 중국인 투자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놨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북한의 재정과 통치자금이 말라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매년 4월 15일 김일성 생일을 전후해 북-중 접경 지역에선 북으로 들여보낼 화물이 폭증해 트럭을 구하기 어려웠지만 올해는 빈 차가 많았다. 선양(瀋陽)의 한 대북 소식통은 “함경도 일대에서는 공무원 월급이 7개월째 안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은 최근 심각한 연료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북한의 석유가 고갈되다시피 해 당국이 최근 오토바이 (주행) 단속령을 내렸다.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북한에서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중국산 오토바이가 많이 보급됐고 오토바이 소유주들은 장마당에서 암거래를 통해 석유를 구매해왔다. 북한이 2012년부터 추진해온 이익잉여 처분 등 경제개선 조치도 아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펑황TV에 따르면 중국은 나선 경제특구에 고효율농업시범구를 조성해 여기서 나온 작물 중 정부 귀속분을 뺀 나머지를 처분하고 있다. 사오중우(邵忠武) 시범구 서기는 “북한이 중국 측 인원과 농업 설비의 유출입을 제한하는 등 시범구 외 기타 농업지역에 새로운 기술 보급을 차단하고 있다”고 말했다.베이징·단둥=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 주성하 기자}

    • 2014-05-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집트 법원, 무르시 지지자 683명에 사형 판결

    이집트 법원이 지난해 7월 군부에 의해 축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의 지지자 683명에게 28일 무더기 사형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지난달 24일에도 또 다른 무르시 지지자 529명에게 사형 판결을 내려 한 달 남짓한 기간에 무려 1212명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이집트 남부 민야 지방법원이 28일 사형을 선고한 683명 대다수의 죄는 민야 지역에서 경찰관과 경찰시설을 겨냥해 항의시위를 벌였고 이 와중에 경찰관 1명이 살해됐다는 것이 전부다. 이들은 지난해 8월 14일 군인과 경찰이 카이로 라바 광장에서 무르시 지지자를 무력 진압해 수백 명이 숨지자 거리시위를 벌였다. 이날 사형 선고를 받은 피고인 중에는 무르시의 지지 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바디에 의장도 포함돼 있다. 이날 재판부는 지난달 사형 판결을 내렸던 529명에겐 특별한 설명도 없이 판결을 번복해 37명만 사형을 확정하고 나머지는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이집트 현지에선 이번 판결이 내달 치러질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군부가 사법부를 통해 무슬림형제단과 무르시 지지자들에게 대선을 방해하면 강력한 처벌을 내리겠다는 경고를 내린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4-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팔레스타인 양대 정파 “5주내 통합정부 수립”

    팔레스타인 양대 정파인 파타와 하마스가 5주 안에 통합정부를 수립하기로 23일 전격 합의했다.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간주하는 이스라엘은 이에 반발해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 논의를 취소했다. 29일로 시한이 종료되는 중동평화협상은 결렬 위기를 맞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마일 하니야 총리는 이날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대표단과의 합동 기자회견에서 “분열의 시대는 끝났다. 마무드 아바스를 수반으로 하는 통합 과도정부를 5주 안에 구성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이끄는 파타는 PLO의 최대 정파다. 현재 파타는 요르단 강 서안지구를,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각각 통치하고 있다. 두 정파는 2006년 단일정부를 구성했지만 노선을 둘러싸고 계속 갈등을 빚다 2007년 6월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파타 보안군을 내쫓으면서 갈라섰다. 이후 단일정부 수립 합의가 여러 차례 나왔으나 실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5주’라는 시한을 정해 양측이 합의대로 이행할지 주목된다. 미국의 중재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평화협상을 벌여 온 이스라엘은 즉각 반발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20여 년간 이스라엘인을 상대로 폭탄 테러와 총격을 자행했다는 이유로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보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성명을 통해 “PLO가 평화가 아니라 하마스를 택했다”고 비난했다. 또 이스라엘은 23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평화협상 논의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이스라엘 전투기는 이날 오후 가자지구 북부를 폭격해 최소 8명이 부상했다. 이는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탄이 이스라엘 남부에 떨어진 데 따른 보복 공격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4-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평화회담 실패땐… ‘팔’ 주민 250만명, 이스라엘에 떠맡길수도”

    “평화회담이 실패하면 팔레스타인 정부를 해체해 주민 250만 명에 대한 책임을 이스라엘에 떠넘길 수도 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22일 폭탄선언을 했다. 이스라엘과의 평화회담 시한(29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협상 결렬에 대비해 이스라엘을 비난한 것이다. 아바스 수반은 이날 자신을 방문한 이스라엘 기자들에게 “이스라엘 정부는 서안정부를 무력하게 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나는 이스라엘이 와서 팔레스타인 정부 권한을 대행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주도로 지난해 8월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회담은 29일로 9개월 시한이 끝날 예정이다. 하지만 양측 간에 합의된 것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지금도 회담을 연장할 것이냐를 두고 논쟁할 뿐 중요 이슈를 다루지 못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측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발발 이전의 팔레스타인 영토를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 반면 이스라엘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양측이 회담 시한 연장에 합의하지 못하면 그동안 동분서주해온 케리 장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지난 1년 동안 케리 장관은 무려 10차례나 중동을 방문하는 등 평화회담에 상당한 공을 들여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는 이달 들어 오히려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아바스 수반이 1일 15개 유엔기구와 조약에 가입 신청서를 내자 이스라엘이 반발했다. 이스라엘은 평화협상 기간에 국제기구 가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팔레스타인이 어겼다면서 서안지구 정착주택 700채 추가 건설로 맞대응했다. 이스라엘은 또 지난해 7월 약속했던 팔레스타인 죄수 104명 석방 계획을 철회해 마지막 단계인 4차로 석방될 예정이던 26명은 풀려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팔레스타인의 양대 정파인 파타와 하마스가 22일부터 가자지구에서 통합 논의를 시작했다. 양측은 2007년 6월 하마스가 아바스 수반이 이끄는 파타 자치정부의 보안군을 가자지구에서 내몬 뒤로 갈등을 빚어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4-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2004년 용천역 폭발, 2014년 진도여객선 침몰… 남북이 드러낸 민낯

    정확히 10년이 흘렀다. 2004년 4월 22일 낮 12시 10분경 평안북도 용천역에서 거대한 폭발이 연이어 일어났다. 15m 깊이 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강력한 폭발은 순식간에 16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부상자는 1300여 명. 공공건물과 가옥 8100여 동이 파손됐다. 사망자의 절반과 중상자의 상당수는 어린 학생들이었다. 역에서 약 200m 떨어진 용천소학교가 최대의 피해자였다. 무너진 학교 지붕 아래서 몸으로 학생들을 덮은 채 숨진 여교사가 발견되기도 했다. 당시 동아일보에 입사한 직후 사회부에 배속되어 경찰서 수습기자를 끝낸 지 며칠밖에 안 됐던 기자는 북한 출신이란 이유로 사건 보도의 중심에 뛰어들어 정신없이 보냈다. 그래서 더욱 기억이 생생하다. 남쪽엔 용천역 폭발이 김정일 암살 시도라고 믿는 사람들이 적잖다. 중국을 방문했던 김정일이 바로 이날 오전 4시경 귀국했고 8시간 뒤 폭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고 원인에 대해 질안비료(질산암모늄) 화차들과 유조차를 갈이(위치 재변경)하던 중 부주의로 유조차와 고압선이 접촉했고 이때 발생한 스파크가 화재를 일으켜 유조차와 비료 화차가 연쇄 폭발했다고 발표했다. 폭발 원인은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질안비료가 약간의 유류와 혼합되면 ‘초산폭약’이라는 폭발물로 변한다. 168명이 희생된 1995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정부 청사 테러, 202명이 숨진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 테러에 이런 초산폭약이 사용됐다. 그런데 훗날 기자가 파악한 화재의 원인은 전기 스파크가 아니었다. 기자는 우연한 기회에 사고 뒤 현장 수습을 했던 한 탈북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용천역 직원 중 유일한 생존자인 한 선로 감시원의 진술을 보위부 조사요원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며 기자에게 들려주었다. 이 감시원은 당시 용천역 입구 감시초소에 있다가 목숨을 건졌다. 감시원의 말에 따르면 용천역 화재 원인은 꽃제비(노숙인)들의 석유 도둑질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역 주변에는 수많은 꽃제비들이 중국을 오가는 열차를 노렸는데 비료 1kg을 훔치면 옥수수 2kg을 바꿀 수 있었고 석유는 더욱 비쌌다. 따라서 꽃제비들이 경비원 몰래 유조차에서 석유를 훔치다 누군가의 담뱃불 같은 원인으로 불이 났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석유 도둑이 꽃제비가 아닌 호송원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에선 호송원이 물자를 뽑아내 팔아먹는 일이 예사롭기 때문이다. 석유 도둑질이 대규모 인명 피해를 동반한 폭발로 이어지는 사례는 나이지리아 같은 후진국에선 흔히 볼 수 있다. 선로 감시원은 폭발이 김정일 암살시도설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김정일이 곧 지나갈 역이면 구내에 사람들이 돌아다닐 수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4월 22일 정오의 용천역은 김정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던 긴장된 모습이 아니라 여유로웠던 일상의 풍경이었다. 어떻든 그날 용천역에서는 불길이 치솟았고 역 직원들은 물론 인근 주민들까지 몰려와 화재 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몇십 분 뒤 유조차가 폭발하면서 전부 사망했다. 화재를 처음 목격한 생존자는 아무도 없었다. 폭발사고로 제일 살판이 났던 곳은 보위부였다. 사고를 혁명의 수뇌부를 노린 테러로 규정하고 공안정국을 조성했고 2002년 11월부터 시작돼 2만여 대가 보급돼 있던 휴대전화 서비스도 중단시켰다. 보위부는 도·감청 준비가 안 된 휴대전화 서비스에 불만이 크던 차였다. 북한에서는 1980년대 중반 용천역과 유사한 폭발사고가 또 있었다. 함경북도 화성에서 군수용 폭약을 실은 화차들에 화재가 발생해 폭발한 것이다. 당시 기관사는 불이 나자 역에 정차됐던 열차를 외진 곳으로 몰고 갔다. 호송병들도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끝까지 불을 끄다 산화했다. 이들의 희생으로 엄청난 폭발에도 농가 몇십 채만 무너졌다. 여기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재난 앞에서 보여준 북한 사람들의 희생정신이다. 용천역 사고 때 화염 속 유조차로 달려간 사람들, 제자를 구하기 위해 제자의 몸을 덮고 숨진 여교사, 함북 화성에서 불붙은 화차를 몰고 간 기관사들이다. 북한 사람들의 이런 행동이 총살에 대한 공포로 어쩔 수 없이 발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인식이다. 어려서부터 교육받은 희생정신과 책임감으로 체질화된 것 때문에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들이다. 북한은 점점 부패돼 뇌물과 도둑질 없이는 살 수 없는 사회가 되고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의협(義俠)은 죽지 않았다. 남쪽의 1950년대처럼 말이다. 가라앉는 배에 수백 명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먼저 도망친 선장과 선원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런 무책임한 행동이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때에도 기관사는 “곧 출발한다”고 방송하고 혼자 뺑소니쳤다. 혼자 살아남아 병실에서 젖은 돈을 말리던 세월호 선장 모습에서 냉혹한 자본의 논리에 인간성을 잡아먹힌 인간의 표본을 보았다. 통일이 되면 저런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 앞에서 돈을 흔들며 ‘선진국 국민’ 행세를 할까봐 우려스럽다. 10년 전 2004년 4월 북한 용천은 “나도 살자”는 도둑질이 참극을 만들었다. 2014년 4월 진도 해상에선 “나만 살자”는 이기주의가 비극을 키웠다. 꼭 10년을 간극으로 간접 체험한 남북의 두 인재(人災)가 서로의 민낯을 드러낸 것 같아 착잡해진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4-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우크라이나 동부 러 특수부대원 딱 걸렸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친(親)러시아 세력의 활동 현장에서 러시아 특수부대원들과 정보요원들이 정체를 숨긴 채 활약하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0일 보도했다. 러시아 특수부대의 활약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에 증거 사진을 제출하면서 공개됐다. 이 사진에는 복면을 쓰고 관공서 건물을 속속 점거했던 이른바 ‘리틀 그린맨’으로 불리는 무장대원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14일 슬라뱐스크에서 촬영한 사진에는 덩치가 크고 턱수염이 있는 남성이 견장이 없는 위장전투복을 입고 등장한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남성이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때 러시아 특수부대 견장을 왼팔에 달고 활동한 사진도 제시했다. 또 그린맨 중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이고리 이바노비치 스트렐코프’라는 남성을 러시아군 소속 정보요원으로 특정했다. 5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스트렐코프는 러시아군 총참모부 산하 정보기관인 총정보국(GRU)에서 다수의 비밀작전을 수행했으며 크림 반도에서 활동한 것으로 우크라이나 측은 보고 있다. 이 밖에도 사진 속 무장민병대의 헬멧 모양과 무늬, 복면, 장갑, 무장, 바지 등이 크림 반도에 복면을 쓰고 나타났던 러시아군과 똑같았다. 결국 우크라이나에 단 한 명의 러시아 군인도 개입하지 않았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발언이 거짓으로 드러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4-04-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