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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회의에서 17시간 동안 밤샘 마라톤협상을 끝내고 돌아온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를 바라보는 그리스 국민의 시선은 차가웠다. 며칠 전 국민투표에서 보낸 환호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축제 분위기에 젖었던 그리스 국민은 허탈감과 함께 치프라스 총리에게 분노의 감정까지 느끼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아테네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집권당이자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깃발을 불태우는 과격 시위까지 벌어졌다. 그리스 양대 노총인 공공노조연맹(ADEDY)은 15일 24시간 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치프라스 총리 취임 이후 파업이 벌어지는 것은 처음이다. 파업이 예정된 15일은 그리스가 860억 유로(약 107조 원) 규모에 달하는 3차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시한이다. 정년을 67세로 늘리는 연금제도 개혁과 부가가치세(VAT) 인상 법안, 노동관계, 민영화 등 4대 부문에서 합의된 개혁안을 모두 의회에서 통과시켜야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집권당 내 이탈 표가 예상되지만 개혁안이 의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은 없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개혁안 통과 이후에도 그리스의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최종적으로 860억 유로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받기까지 일정이 숨 가쁘게 돌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16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를 늘릴지 말지를 결정한다. ELA 한도가 증액돼야 그리스 은행들이 다시 문을 열 수 있다. 하루 뒤인 17일에는 유로존 국가들인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오스트리아, 에스토니아, 슬로바키아 의회에서 합의안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 그리스는 70억 유로 규모의 ‘브리지론’ 지원 협상에서도 더욱 가혹한 조건을 요구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는 20일 ECB에 35억 유로를 갚아야 하는데, 그리스가 이를 상환하지 못하면 ECB는 그리스 은행권의 생명 줄인 ELA를 중단할 수 있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은 “그리스의 브리지론의 법률적·재정적 문제가 복잡하다”며 “3차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약 4주가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반발이 커지면 치프라스 총리가 실각할 가능성도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내다봤다. FT도 개혁안이 통과된다 해도 치프라스 총리가 얼마나 오래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씨티그룹은 “협상안의 강력한 조건을 봤을 때 그렉시트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정한 경제 회복과 재정 적자 축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위험이 커져 유로존 잔류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벼랑 끝에 몰린 그리스가 ‘3차 구제금융’을 지원받기 위해 채권단의 거의 모든 긴축 요구를 받아들이며 사실상 ‘백기 투항’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은 13일 오전 9시(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그리스가 추가 개혁안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와 구제금융 협상을 개시하는 방안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전날 오후 4시부터 시작해 장장 17시간에 이르는 밤샘 마라톤 회의 끝에 ‘그리스 살리기’로 뜻을 모은 것이다. 이로써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뜻하는 ‘그렉시트(Grexit)’ 위기는 일단 모면했다. 국민투표(이달 5일)를 강행하며 채권단에 맞섰던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독일의 ‘한시적 그렉시트’ 압박에 결국 국민투표에 부친 긴축 요구안보다 더 가혹해진 채권단의 긴축 요구를 받아들였다. 치프라스 총리는 ‘금지선’으로 설정한 연금과 부가가치세 조정, 노동관계, 민영화, 국방비 예산 삭감 등에서 굴복에 가까운 타협을 했다. 일각에서는 ‘재정 주권을 포기한 결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또 500억 유로 규모의 국유재산으로 독립 펀드를 설립해 부채를 상환하라는 독일의 요구도 받아들였다. ESM은 그리스가 강도 높은 개혁안을 수용한다는 조건으로 3년간 최대 860억 유로(약 108조 원)를 지원할 방침이다. 유로존 정상들은 ESM 협상을 마무리할 때까지 필요한 유동성을 지원하는 ‘브리지론’으로 120억 유로를 별도 제공하기로 했다. 그리스가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15일까지 채권단이 요구한 7개 분야의 개혁 법안에 대한 입법 절차를 마쳐야 한다. 그리스가 요구한 채무 탕감(헤어컷)은 거부됐지만 채권단은 상환 기간 유예와 만기 연장 등 채무 경감(debt relief) 원칙에는 합의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12일 오후 4시(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에 모인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이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에 합의하기까지에는 꼬박 17시간이 걸렸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협상은 유럽연합(EU) 역사에서 최고 긴장이 조성된 외교전쟁이었다”고 보도했다. ○ 사실상 경제주권 포기한 그리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은 그리스 구제금융 타결 소식을 전하면서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EU에 사실상 항복을 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민투표로 확인된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도산 위기에 처한 은행을 살리고 유로존에 계속 남기 위해 항복문서에 사인을 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그리스가 스스로 ‘재정적 구속복(폭력적인 사람의 행동을 제압하기 위해 입히는 옷)’을 입었다”고 평가(WP)할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유로존 정상들이 3차 구제금융을 제공하겠다는 전제조건으로 내놓은 개혁안은 경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있다. 연금 개혁은 물론이고 부가가치세도 인상하며 국방비도 줄이고 국유자산을 민영화하는 등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정부가 ‘금지선’으로 설정한 7개 분야가 총망라되었다. 여기에 그리스 의회가 4개 개혁법안을 15일까지, 2개 법안은 22일까지 입법을 끝내지 않으면 협상은 다시는 없다는 것도 못 박았다. 채권단은 또 올 1월 말 집권한 시리자 정부가 지금까지 도입한 법안 가운데 인도주의적 법안을 제외한 반긴축법안을 재검토해 수정하라는 주문도 했다. 시장 규제 완화로 일요일 영업과 세일 기간, 약국 면허, 우유, 제과점 등의 부문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안을 이행하라고도 요구했다. 이와 아울러 송전공사 민영화, EU 모범 규준에 맞도록 단체교섭권 현대화, 대량해고 등의 일정을 채권단과 합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로존 정상들은 또 그리스의 부채를 만기 연장 등으로 ‘경감(relief)’하는 것만 제안했고 치프라스 총리가 희망했던 ‘탕감(헤어컷)’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협상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타결되지 않았던 최대 쟁점은 그리스가 국유자산을 매각해 조성하는 500억 유로 규모의 펀드 문제였다. 독일은 이 자산을 독일재건은행(KfW) 산하 룩셈부르크 펀드로 이관해 부채를 상환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그리스 내부에서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크레타 섬 같은 관광지를 팔라는 굴욕적인 요구”라는 반발이 나왔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요구가 지나치다”며 거들었다. 치프라스 총리는 결국 500억 유로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되 250억 유로는 은행의 자본 확충에, 125억 유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 감소에, 나머지 125억 유로는 성장과 투자에 활용하도록 한 수정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최대 250억 유로는 성장을 위한 투자에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이 펀드를 외국에 이관하라고 주문했지만 프랑스의 적극적인 중재로 펀드를 그리스 내에 설립하고 EU 채권단의 감시 아래 그리스 정부가 운용하는 것으로 절충점을 찾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합의에 대해 “유로존 정상과 재무장관들이 그리스 좌파 정부를 상대로 채권단의 요구에 ‘거의 전적으로 굴복(a near-total surrender)’하도록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익명의 그리스 정부 관계자는 “(채권단이 겨눈) 총이 (그리스인들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는 상태에서의 협상이었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EU의 한 관리도 “그리스에 대한 개혁안 리스트는 가혹한 정신적 ‘물고문’ 수준”이라고 했다고 영국의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남은 일정도 험난 우선 채권단이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15일까지 그리스 의회가 개혁 입법 처리를 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있다. 그리스 내부는 이미 분열이 감지된다. 시리자 내 강경파인 ‘좌파연대’는 11일 3차 구제금융 협상 개시를 위한 개혁안에 대한 표결에서 17명이 지지를 거부해 치프라스 총리에 반기를 들었다. 이에 따라 치프라스 총리는 11일 표결에서 지지를 거부한 장관 2명을 교체하고 표결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리자 내 강경파 40여 명이 반대표를 던지더라도 보수우파, 중도좌파 야당은 찬성할 것으로 예상돼 법안은 무난히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또 그리스의 개혁입법이 통과된 후 유로존 일부 회원국별로 의회 승인이 있어야 구제금융 협상이 개시될 수 있다. 19개국 중 의회 승인이 필요한 국가는 독일 에스토니아 핀란드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스페인 등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협상 타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구제금융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강조했다. 그리스 은행 영업은 유럽중앙은행(ECB)의 긴급유동성지원(ELA) 확대가 이뤄진 후 일주일 내에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가 은행 영업을 재개하더라도 ‘뱅크런’(예금 대량인출사태) 발생에 대한 우려로 예금 인출 제한 등 자본통제는 몇 개월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그리스가 제출한 개혁안을 둘러싸고 유럽이 분열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타결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12일 그리스 구제금융 개혁안을 최종 결정할 예정이었던 EU 정상회의를 취소하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만 모여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투스크 의장은 오후 4시(한국 시간 오후 11시) 유로존 정상회의 시작에 앞서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유로존 정상회의를 결론이 날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유로존 정상회의에 앞서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이 그리스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마련한 개혁안 합의문 초안이 언론에 유출돼 협상 타결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졌다. 로이터통신은 12일 자체 입수한 초안을 공개하면서 채권단은 그리스에 추가 긴축을 요구했고 유클리드 차칼로토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이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초안에 따르면 그리스와 채권단은 기초재정수지(국채 이자 제외한 재정수지)를 2018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준으로 달성하기로 합의했다. 채권단은 또 이 초안에서 과감한 연금 개혁과 국유자산 민영화 강화, 소비세 인상,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주문했다. EU의 한 관계자는 AP통신에 “오늘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는 논의되지 않을 것”이라며 “그리스 구제금융에 대한 ‘플랜A’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리스가 15일까지 국회에서 개혁법안을 추가로 통과시키면 유로그룹이 3차 구제금융 협상 개시를 중재하는 시나리오가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유로존 정상회의 직전 기자회견에서 “합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유럽이 분열되기를 바라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며 “협상의 모든 당사자가 이를 원한다면 오늘 밤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전날 심야까지 9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했으나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당초 그리스가 9일 제출했던 개혁안에 대해 EU 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채권단의 전문가들은 “구제금융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11, 12일 열린 유로그룹 회의에서는 독일과 북유럽, 프랑스와 남유럽 국가 등 두 쪽으로 분열돼 그리스 해법을 놓고 격돌했다. 특히 독일과 핀란드 등 일부 채권 국가는 “그리스 정부 개혁안이 너무 미흡하고, 너무 늦었다”며 ‘그렉시트’마저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이날 독일이 ‘그리스에 최소 5년 동안 한시적으로 유로존에서 탈퇴하고 채무를 재조정하는 해법을 제안했다’는 재무부 보고서가 언론에 유출되자 큰 파문이 일었다. 이 문서는 그리스에 500억 유로(약 62조8000억 원) 규모의 국유 자산을 팔아서 빚을 줄이는 방안과 채무 경감을 하려면 최소 5년간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방안 중 택일하라는 내용이다.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그리스의 새로운 제안은 진지하고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프랑스는 그리스의 개혁안 작성을 지원하기 위한 ‘구원투수팀’을 보내는 등 유로존에 남기려고 총력을 기울인 데 대해 독일은 날카롭게 반응했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뒤늦게 프랑스 재무부의 그리스 지원 사실을 접하고 엘리제궁에 ‘분노의 전화’를 했다고 보도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의 그리스에 대한 창피 주기는 이제 충분하다”며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독일에 그리스와의 협상을 타결해 위기를 끝내자고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그리스 사태 해결의 ‘청신호’가 켜졌다. 9일(현지 시간)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5일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 협상안’보다 더욱 혹독한 개혁안을 마련해 채권단에 보냈다. 채권국 일부가 ‘진지하고 신뢰할 만한 제안’(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상당히 현실적인 개혁안’ 등의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어 채권국들이 그리스 정부가 원하는 ‘채무 경감’ 카드로 호응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A4용지 13쪽 분량의 그리스 정부 개혁안은 연금 삭감과 부가가치세(VAT) 체계 개편, 국방비 감축 등을 통해 향후 2년간 재정지출을 130억 유로(약 16조2500억 원)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재정 절감 규모는 지난달 그리스 정부가 채권단과 큰 틀에서 합의한 개혁안(79억 유로)보다 51억 유로(약 6조3750억 원)나 늘어난 것이다. 그리스 정부는 당장 이달부터 복잡한 부가가치세 체계를 간소화하고 세금을 올려 세수를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연금 제도도 대폭 개선해 ‘저소득 연금수급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2019년 말까지 없앨 방침이다. 이에 따른 내년 연금 지출 절약 규모만 GDP의 1%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치프라스 정부가 채권단의 2대 핵심 요구 사항인 세금 인상과 연금 삭감을 사실상 모두 수용함으로써 ‘일종의 백기 투항’이란 평가마저 나온다. 일부 전문가는 “치프라스 총리가 이런 혹독한 개혁안을 내놓을 거였으면 왜 국민투표라는 모험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마저 보였다. 이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NYT), 영국 가디언 등 서방 언론은 “치프라스 총리가 자신의 개혁안에 대한 반대급부로 채무 경감을 받고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는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NYT는 특히 “치프라스 총리가 항복(capitulate)한 것처럼 보이지만 치프라스 총리는 향후 3년간 지속되는 3차 구제금융으로 535억 유로(약 66조8750억 원)를 지원받으려 한다”며 “아울러 채권단과 채권국으로 하여금 그리스가 지고 있는 막대한 빚에 대한 재조정을 논의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BBC도 3차 구제금융 지원과 채무 재조정을 고려하면 치프라스 총리가 일방적으로 항복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치프라스 총리의 이런 판단엔 올랑드 대통령의 막후 설득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국민투표 부결 직후 치프라스 총리에게 전화해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기를 원한다면 과감한 개혁안을 채권단에 제시해야만 한다.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한편 그리스의 개혁안은 10일 그리스 의회 표결을 거쳐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등의 현실성 평가를 받을 예정이다. 11일에는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에 제출되고 12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최종 논의될 예정이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그리스가 자국의 운명을 가를 구제금융 협상안을 9일 밤 12시(한국 시간 10일 오전 6시)까지 제출한다. 유럽연합(EU) 정상회의는 12일 그리스가 내놓은 자구 노력 개혁 방안을 평가한 후 그리스에 대한 지원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협상안에는 3년간의 구제금융을 지원해 달라는 조건으로 연금 및 세제 개혁 등 재정 건전화 방안과 채무 조정안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9일 그리스 언론에 따르면 협상안에는 그리스가 앞으로 2년 동안 재정수지를 120억 유로(약 15조1000억 원) 개선하는 조치가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리스가 지난달 22일 채권단에 제출한 개혁안의 조치들로 개선되는 재정수지 폭인 80억 유로보다 40억 유로 많은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협상안 타결 기대감으로 9일 유럽 증시는 2% 넘는 상승세를 보이며 출발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그리스의 부채 탕감(헤어컷)과 만기 연장 여부다. 채권단의 일원인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은 물론이고 유로존 채권단 내부에서조차 그리스 부채를 줄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9일 “그리스가 현실적인 제안을 내놓는다면 채권단 역시 그리스 채무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낮출 현실적인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부채 경감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전날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와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도 채무 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발칸 국가를 순방 중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9일 “전통적 헤어컷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며 채무탕감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스 정부는 유동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은행 영업을 중단하고 현금지급기(ATM)의 인출 한도를 60유로로 제한한 자본 통제 조치를 13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8일 그리스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금액 한도를 다시 동결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이 이뤄지면 대형 은행들은 폐쇄와 인수합병(M&A)의 회오리바람에 휩싸일 것으로 전망된다. 로이터통신은 8일 EU 관계자의 말을 빌려 “그리스 4대 대형 은행인 내셔널뱅크오브그리스, 유로뱅크, 피레우스뱅크, 알파뱅크가 최종적으로 2개로 통폐합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의 대형 은행들이 정치적, 경제적인 대혼란으로 타격을 받아 더 버티지 못할 것으로 분석했다. 금융 불안이 고조되면서 그리스 국민 사이에서는 명품이 현금보다 더 가치 있는 자산으로 평가받는 등 소비심리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8일 보도했다. 변호사 소피아 마르코울라키스 씨(48)는 요즘 생애 첫 ‘샤넬 백’ 구매를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샤넬 백은 그동안 사치품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 그는 “환금성이 높은 명품 가방을 자산 보호 차원에서 조만간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수입에 의존하는 의약품 공급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산 대체 의약품이 없는 인슐린을 정기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당뇨 환자 로지프 페디카리스 씨(72)는 “하루 종일 여러 약국을 전전했지만 인슐린을 구할 수가 없다”며 “앞으로 어떻게 내 병을 관리하라는 말이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WP는 “2013년 자본 통제를 겪었던 키프로스 사태가 우리에게도 곧 닥칠 것이라는 그리스인들의 위기감이 이 같은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상적인 구제 협상안에 합의해도 은행권의 파산과 자산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불안감이 그리스인들을 엄습하고 있다”고 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김정안 기자}
《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은 7일(현지 시간) “12일 열리는 유럽연합(EU) 28개국 정상회의에서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28개 EU 회원국이 모두 모여 그리스 사태를 논의하는 회의는 전례 없는 일로, 이 자리에서 정상들은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 협상 재개 여부에 대한 중대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 ▼ “채권단 긴축실험 실패” 큰소리 친 치프라스 ▼유럽의회 연설… 좌파 의원들 환호그리스, 유로기구에 자금지원 요청“이르면 내주부터 연금-세제 개혁”유럽 정상들이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 일정에 대해 최후통첩을 보냈지만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8일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 연설에서 “구제금융은 그리스를 긴축정책의 실험실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성공하지 못했다”며 채권단을 비판했다. 그러자 야유와 박수가 동시에 쏟아졌다. 독일 출신 만프레트 베버 의원은 “다른 유럽 국가 지도자들을 모욕하지 마라”고 비판했고, ‘노(No)’라는 문구가 들어간 피켓을 든 좌파 계열 유럽 의원들은 환호를 보냈다. 그리스는 이날에도 유로안정화기구(ESM)에 3년간 돈을 더 빌려달라고 손을 또 내밀었다. 그러면서 “이르면 다음 주부터 연금 및 세제 개혁을 단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추가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1단계 조치다. 그리스와 유로그룹 재무장관들은 12일 유럽연합(EU) 재무장관회의 전까지 그리스가 제출한 자구안을 놓고 치열한 협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이슈는 그리스가 구제금융 과정에서 진 막대한 채무 탕감이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채무 탕감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히는 등 강경 기류가 여전히 감지된다. 이에 따라 그리스 정부는 채무 탕감을 고집하지 않고 채권 만기 연장 등 채무 재조정과 연금생활자들의 연대수당 삭감을 미루는 방향으로 협상안을 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리스가 제출한 자구안을 유럽 정상들이 받아들일지 여부다. 아직까지는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을 막자는 주장과 그리스에 대해 강도 높은 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독일은 부채 탕감의 역사적 교훈을 잊고 있다”며 독일의 양보를 촉구했다. 한편 2010년 이후 프랑스는 그리스에 빌려준 돈의 대부분을 회수한 반면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금액을 대폭 늘린 것으로 드러났다. 만약 그리스 파산이 닥치면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직격탄을 맞지만 프랑스는 손실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미국외교협회(CFR) 벤 스테일 국제경제 이사 등은 최근 블로그를 통해 이를 공개했다. 그리스 채무 재조정에 대해 각국의 이해가 엇갈리는 이유 중 하나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허진석 기자 }

그리스 정부가 새로운 구제금융 협상안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됐던 7일(현지 시간)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무장관 회의에 새로운 안을 제출하지 않고 하루 뒤인 8일 제출하겠다는 지연 전술로 다시 유럽연합(EU)의 의표를 찔렀다. 그리스 국민투표 이후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 회의에 유클리드 차칼로토스 신임 그리스 재무장관은 문서 형태의 제안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이날 오후 열린 유로존 긴급정상회의에서 그에 관한 연설을 펼쳤지만 구체적 제안은 8일 서류 형태로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CNN 등 주요 외신들은 “그리스의 연기(delay) 전략으로 풀이된다”며 “그리스 사태를 지켜보는 유럽권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앞서 치프라스 총리는 30%의 채무탕감(헤어컷)과 만기 20년 연장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르고스 스타타키스 그리스 경제장관은 이와 관련해 전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치프라스 총리가 유로존 정상회의에 전달할 새 제안에는 채무 탕감 방안이 담길 것”이라며 “직접 또는 간접으로 30%의 채무 탕감을 요청하는 방안은 우리 제안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밝힌 바 있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 치프라스 총리의 새 협상안이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거부된 채권단의 제안과 거의 같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리스 정부는 채무 탕감을 관철하기 위해 채권단이 요구하는 긴축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6일 프랑스 파리 엘리제 궁에서 회담을 하고 “우리는 대화에 열려 있다”며 협상을 통한 해결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협상 재개 여부는 치프라스 총리가 얼마나 구체적이고 정밀한 제안을 내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7일 유로존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기 직전 채권단이 거부하는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을 사임시키고, 차칼로토스 전 외교차관을 새 재무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유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 독일의 강경 노선, 유럽 분열시켜 그리스는 당장 10일 20억 유로의 단기 국채 상환 만기를 맞고, 20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에 35억 유로를 상환해야 한다. 그러나 독일이 그리스에 대해 지나치게 강경한 노선을 견지하면서 사태 악화를 막으려는 다른 유럽 채권국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7일 “독일이 유럽 국가들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날 유로존 정상회의와 앞서 열린 유로그룹 회의에서도 독일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북유럽 국가들이 그리스의 새 협상안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면서 회의가 난항을 겪었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회의 전 “그리스 국민의 삶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그리스에서 지급 불능 사태가 임박했다”고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반면 이탈리아 마테오 렌치 총리는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그리스 사태의 결정적인 해법이 나올 가능성을 보여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유럽의회 연설에서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막아야 한다”며 “EU 내에서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몰아내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내 경험에 비추어 그것은 잘못된 해결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핵심 쟁점은 그리스의 채무 탕감 문제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그리스 정부의 총부채 규모는 3173억 유로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177%에 이른다. 이에 따라 그리스가 요구하는 채무 탕감 규모인 총채무의 30%는 951억 유로가량 된다. 이는 IMF가 최근 보고서에서 예로 제시한 부채 탕감 규모 530억 유로(약 66조 원)의 2배에 가깝다.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는 “그리스에 채무 탕감을 해 준다면 단일 통화동맹인 유로존은 산산조각 날 것”이라고 불가론을 폈다. 미셸 사팽 프랑스 재무장관은 이날 유럽1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부채의 지속 가능성을 논의하는 것은 금기가 아니다”며 채무 재조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6일 그리스의 2대 채권국인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과 긴급 전화 통화를 하고 “그리스가 계속 유로존에 머문 상태에서 재정 개혁을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 은행 자본 통제 10일까지 연장 당초 7일부터 정상화될 예정이던 그리스의 은행 영업은 자금 부족으로 현실화되지 못했다. ECB가 6일 통화정책위원회에서 그리스가 요청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 증액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그리스 정부의 자본 통제 조치는 10일까지 연장될 수 있다는 보도(로이터통신)가 나온다. 시민들은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에 ‘반대’를 표시한 국민투표가 끝난 후 이틀이 지난 7일에도 은행 영업이 정상화되지 않자 술렁대는 분위기였다. 연금 생활자인 람브로스 씨(65)는 “은행 현금도, 슈퍼마켓의 물품도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말했다.아테네=전승훈 raphy@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그리스에서 5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긴축 반대’ 의견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그리스와 유로존의 앞날이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날 밤 채권단 협상안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유권자 약 985만 명)의 최종 개표 결과 반대가 61.3%로 찬성(38.7%)을 22.6%포인트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투표 전 여론조사에서 박빙의 승부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반대’가 ‘찬성’을 압도하자 아테네 시민 수천 명이 국회의사당 앞 신타그마 광장에 몰려나와 그리스 국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국민투표로 재신임을 받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채권단에 즉시 협상을 제안하며 “이번 협상에선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의 분석대로 30% 채무 탕감(헤어컷)과 만기 20년 연장을 의제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국민투표와 관련한 성명을 내고 그리스 국민의 뜻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양대 채권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6일 저녁 파리 엘리제 궁에서 긴급 회동을 하고 그리스 대책을 논의했다. 7일 19개 유로존 회원국의 긴급 정상회의에는 치프라스 총리도 참석할 예정이어서 새로운 구제금융 협상 재개에 대한 합의를 이뤄 낼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이 6일 전격 사임했다. 치프라스 총리가 그동안 채권단 측의 거부감이 컸던 바루파키스 장관을 사퇴시켜 협상력을 강화하려는 포석이라고 AFP통신은 전했다.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로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이날 BNP파리바는 70%, 크레디트스위스(CS) 그룹은 75%, 독일 코메르츠방크는 3분의 2의 확률로 그렉시트가 현실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가 ‘반대’로 나오자 그렉시트 우려 속에 한국 일본 호주 등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코스피는 6일 전 거래일보다 50.48포인트(2.40%) 내린 2,053.93으로 마감하며 2012년 6월 4일(―2.80%) 이후 3년여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을 나타냈다. 이날 일본(―2.08%) 홍콩(―3.18%) 등 대부분의 아시아 증시가 줄줄이 급락했다. 유럽 증시도 독일이 2.11% 하락하는 등 급락세로 출발했다.아테네=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채권단의 협상안을 거부한 반대표가 예상외의 압승을 거둔 5일 밤. 아테네 중심부 신타그마 광장의 분수대는 붉은색 조명으로 타올랐다. 마치 독립기념일 축제를 벌이듯 수천 명의 시민들이 밤새 환호하며 ‘오히(OXI·반대)’ 승리를 자축했다. 이날 오후 7시 TV출구조사 결과가 ‘반대’의 승리로 나오자 투표를 마친 시민들은 하나둘씩 광장으로 모여 들었다. 시민들은 분수대 주변에서 영화음악 ‘그리스인 조르바’에 맞춰 춤을 췄고 도로에서는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질주했다. 시민들은 자정이 넘어서도 집으로 돌아갈 줄 몰랐고 아테네 시청은 지하철 운행을 오전 2시까지 연장했다. 마치 그리스가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대부분 반대표를 던진 사람으로 “그리스의 자존심을 지켰다”며 기뻐했다. 가족과 함께 광장에 나온 조르주 사라스 씨(48)는 “오늘은 그리스가 독립한 날”이라며 “지난 5년간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이제 자유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여행사에 근무한다는 안토니오스 씨(57)도 “그리스(아테네)는 기원전 스파르타의 항복 요구에 ‘노(NO)’했으며, 2차 대전 때는 무솔리니 군대의 점령을 거부했으며, 이번에는 유럽연합(EU) 채권단의 협상안 요구에 반대하는 데 성공해 그리스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들은 ‘반대’ 투표가 유로존 이탈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화배급사에 근무한다는 에페테리야 씨(28·여)는 “한국이 아시아 국가이듯 그리스가 유럽 국가라는 점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며 “이제 총리가 당장 브뤼셀로 가서 유로존과 합의에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시리자(급진좌파연합) 당사 앞에도 개표 방송이 진행되는 도중에 지지자들이 몰려들었다. 시리자 당원인 노조간부 마뉘엘 씨(46)는 맥주 캔을 한 손에 든 채 벼랑 끝 전술을 펼친 ‘치프라스의 승리’라고 외쳤다. 그는 “유럽에서 60% 이상의 지지율로 재신임을 받은 지도자가 과연 있느냐”며 “이제 치프라스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갖춘 신(神)적인 존재가 됐다”고 자랑했다. ‘시리자 뉴스페이퍼’ 기자인 아지지스 팔로풀로스 씨(53)는 “오늘 그리스가 보여준 ‘빅 노(Big No)’는 유럽의 민주주의에는 ‘빅 예스’(Big Yes)”라며 “우리는 이제 그리스를 바꾸고, 유럽을 바꿀 것”이라고 기세를 올렸다. 국민투표 결과가 당초 박빙 승부 예상을 깨고 ‘반대’가 20%포인트 차가 나는 압승을 거둔 것에 대해 현지에서도 크게 놀라는 분위기다. 아리스티데스 하치스 아테네 국립대 교수는 “재산을 이미 해외로 빼돌린 부유층은 찬성 투표에 무관심했던 반면, 실업률이 55%가 넘는 청년세대들이 대거 결집해 반대표를 던진 것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투표 당일까지 투표소 주변에는 ‘반대’ 운동이 펼쳐졌으나, ‘찬성’ 캠페인 포스터는 찢겨 나뒹굴기 일쑤였다. 건축가로 일하다 실직한 일리사 씨(32)는 “지난 5년간 긴축정책으로 인한 고통으로 더이상 잃을 게 없기 때문에 ‘뭔가 바뀔 것’이라는 희망에 반대표를 찍었다”고 말했다. 요르고스 비트로스 아테네 경제대 명예교수는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유럽 지도자들의 ‘국민투표 반대=유로존 탈퇴’ 경고는 오히려 ‘협박’으로 받아들여져 반감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광장 주변에서는 이 여름밤의 축제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투표에서 찬성표나 무효표를 던진 사람들이었다. 무효표를 찍었다는 대학원생 스피로스 씨(25)는 “이번 투표가 치프라스 총리에게 정치적 승리를 가져다주었지만, 채권단과의 협상은 더욱 험난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치프라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보고서에서 권고한 부채 탕감을 본격 협상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혀 채권단과의 협상에 새로운 갈등을 예고했다. 부인과 함께 광장 주변 에르무 거리를 걷던 파나스코 씨(72)는 “시리자의 무책임한 선동이 그리스에 더욱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아테네=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예스(YES)’냐 ‘노(NO)’냐. 벌써 두 번째다. 지난해 9월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국민투표 취재를 갔을 때 주택가 창문 밖에 가득히 붙어 있던 붉은색, 파란색 스티커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윗집 아랫집이 투표를 앞두고 얼굴을 붉히며 말싸움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번엔 그리스다. 분위기는 스코틀랜드 때보다 더 험악하다. 마치 사생결단을 한 듯하다. 은행이 문을 닫고 현금이 없어서 하루하루 연명해 가는 사람들 눈에는 공포가 가득하다. 아테네 시내 광장에는 연일 찬성파와 반대파들이 각각 집회를 열고 세 대결을 벌이고 있다. 국회의사당 앞 신타그마 광장은 고대 그리스 당시 사람들이 몰려나와 민의(民意)를 논하던 아고라 광장이 재현된 듯하다. 하지만 평화 대신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돈다. 그리스인들은 찬성과 반대를 묻는 투표 앞에서 완벽하게 둘로 나뉘었다. 젊은층과 노년층, 부자와 가난한 자…. 처음엔 긴가민가한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막판으로 갈수록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결과를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스코틀랜드 국민투표 전날 밤에도 에든버러 시내에서는 새벽까지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스의 국민투표는 알려졌다시피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지난달 27일 협상장을 박차고 뛰쳐나가 갑자기 발표한 것이다. 유로존 탈퇴를 바라지 않는 대다수 국민들은 처음엔 채권단의 협상안에 ‘찬성하겠다’고 대답한 비율이 높았으나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자본 통제가 시작되자 ‘반대’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현재로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그리스인들의 내부 분열은 국민투표가 끝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상처로 남을 것이다. 오랜 경제위기 속에 번성하는 포퓰리즘 탓일까. 요즘 유럽의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국민투표가 때아닌 유행이다.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국민투표 실시에 함부로 동의해 줬다가 혼쭐이 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번에는 2017년까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지난해 크림 반도 주민투표를 구실로 크림자치공화국을 합병했다. 스페인의 카탈루냐 주도 분리 독립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국민투표란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중대한 정치·외교적 사안에 대해 국민들에게 직접 의사를 묻는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다. 그러나 정책을 놓고 벌이는 ‘국민투표’는 자주 지도자의 신임을 묻는 ‘신임투표’와 연계되곤 한다. 신임투표는 독재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무제한적으로 강화할 때 즐겨 써온 수법이다. 나폴레옹이 종신집정관에서 황제가 될 때, 히틀러가 총통으로 취임할 때 실시했던 국민투표가 그 예다. 치프라스 총리도 이번 투표에서 만일 승리한다면 국내는 물론이고 채권단과의 협상에서도 무소불위의 비타협적 권력을 휘두르려 할 것이다. 유럽이 ‘통합’에서 ‘분리’로 가는 거대한 흐름 속에 국민투표가 유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국민투표는 지도자가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도박게임이라는 인상이 짙다. 치프라스는 국민투표를 ‘협상의 도구’로 쓰려다가 채권단으로부터 상대할 수 없는 사람으로 찍혔다. ‘유로존 탈퇴’ ‘EU 탈퇴’ ‘영연방 해체’와 같이 세계경제에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사안이 특정 국가나 지역주민의 투표라는 ‘불확실한 도박게임’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공포 그 자체다.―아테네에서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 프랑스 국립보건통제센터(INVS) 질병통제본부 호흡기 전염병 총괄책임자인 다니엘 레비브륄 박사에게 한국이 메르스 사태를 겪게 된 이유를 묻자 이런 답이 나왔다. “한국이 주변국에 비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고통을 거의 겪지 않았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사스를 잘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오히려 의료진과 시민들 사이에서 메르스 바이러스에 대한 방심을 낳은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부실한 방역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의외였다. 실제로 한국은 사스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2003년 사망자가 한 명도 없어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모범국’이란 칭호를 얻었다. ‘김치가 사스를 예방해줬다’는 설(說)이 주변국들 사이에 퍼지기도 했었다. 》○ 24시간 바이러스 정보 올라오는 ‘작전상황실’ 레비브륄 박사는 “전염병 방역시스템은 결국 경험에서 배울 수밖에 없다”며 “프랑스도 사스를 호되게 경험한 후에 전국적인 감시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선 이번 사태가 질병통제시스템을 거듭나게 하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는 바이러스 방역 시스템 면에서 선진국 중에서도 모범 국가로 꼽힌다. 아프리카와 중동지역 이민자와 관광객이 많다 보니 일찍이 각종 열대성 질병에 쉽게 노출돼 그만큼 경각심을 갖고 대응해 왔기 때문이다. 그가 일하는 국립보건통제센터는 1998년 광우병 위기 직후 창설된 곳으로 에볼라를 비롯해 메르스, 신종플루, 조류인플루엔자, 사스 등 호흡기 전염병에서부터 식품 오염에 이르기까지 각종 바이러스에 대한 경보를 내리고 추적하는 일을 총괄 지휘하는 정부기관이다. 지난주 파리 인근 생모리츠에 있는 본부를 찾았을 때 레비브륄 박사는 기자를 ‘작전상황실’로 안내했다. 1년 365일 24시간 가동된다는 방 안으로 들어서니 대형 스크린이 눈에 띄었다. 전국의 병원, 보건소, 소방서, 응급구조대로부터 올라오는 모든 감염 정보를 실시간으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곳 상황실에서는 국내는 물론이고 지구촌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바이러스에 대해 검토하는 전문가 회의가 매주 열린다. 마침 스크린에는 ‘한국의 메르스 상황에 대한 현황분석’이라는 제목의 자료가 띄워져 있었다. 레비브륄 박사는 “상황실이 가장 큰 위력을 발휘했던 것은 2013년 5월 프랑스에서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을 때였다”고 했다. 당시 북부 릴의 한 병원에서 아랍에미리트를 여행하고 돌아온 65세 남성이 확진 판정을 받자 상황실에 매일 50∼70여 명의 전문가들이 24시간 근무하며 바이러스를 추적했다. 환자와 접촉한 123명을 자가 격리시키고 이들에 대해 매일 2차례씩 체온을 측정하며 관리한 결과 확진 환자는 2명에 그쳤다. 그의 말이다. “우리도 처음부터 그런 시스템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사스와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 등 각종 경험을 토대로 2012년 11월에 호흡기 전염병에 대한 대응 매뉴얼을 만든 게 처음이었다. 정부는 이 매뉴얼을 지방 개인병원은 물론이고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의사들에게 배포했으며 행동요령을 습득하게 했다.” 그는 이어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어떻게 매뉴얼이 작동되는지 예를 들어 설명했다. “브르타뉴 지방의 한 의사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녀온 환자를 진료했는데 기침, 발열, 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보인다면 즉시 지역 보건소에 알린다. 그러면 바로 우리 본부나 지부(CIRE)에서 역학조사관이 파견되고 의심 환자의 샘플을 채취해 국립인플루엔자표준연구소로 보내 메르스 유전자 검사(PCR)를 한다. 의심 환자로 분류되면 즉시 전문 병원으로 보내 격리 조치한다. 이와 동시에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 리스트가 작성돼 경로 차단 작업이 펼쳐진다.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평소 모든 의료 종사자들이 사태 발생에 대비해 행동요령을 숙지해 즉각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병원 정보 초기에 공개해야 바이러스 확산 막아 ―사태 초기에 병원과 환자에 대한 정보공개는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나. “환자와 병원 정보를 처리하는 게 각각 다르다. 환자에 대해서는 의심이든 확진이든 개인 신상정보를 공개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사생활 침해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병원 정보는 즉각 공개돼야 한다. 확산을 통제하려면 환자든 의료진이든 일반 시민이든 메르스 환자가 지금 어느 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경우 의심 환자와 관련된 신상 정보는 법에 따라 강력한 보안이 돼 있는 중앙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자동적으로 우리 본부로 오게 돼 있다. 동시에 메일 리스트를 통해 바이러스 담당 전문가나 국립바이러스센터 소속 세균학자들에게 실시간 전달된다. 국민들은 감염자가 어느 병원에서 나왔다는 것은 알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는 이어 “이제 바이러스 대처를 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할 시점”이라고도 했다. “국경이 사라진 글로벌 시대가 되다 보니 바이러스 대유행과 같은 보건 위기도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이번에 메르스 경우를 통해서도 다시 깨달은 것이지만 바이러스가 확산된 후에야 움직이는 것은 이미 전투에서 진 것이나 다름없다. 한 전투에서 졌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다음 전투를 준비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프랑스도 사스에 잘못 대처해 비난 여론이 높았었다. 그렇다고 당시 전문가들을 모두 해임했다면 이후 닥쳐올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바이러스와의 전투에서 이기려면 정밀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준비된 나라만이 이길 수 있다.” 기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황실’뿐 아니라 ‘협력 조정실(Salle de Coordination)’과 ‘결정실(Salle de decision)’이라고 적혀 있는 방이었다. ‘협력 조정실’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50여 명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즉석 토론을 하고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곳이라고 한다. 또 ‘결정실’은 격리조치, 접촉자 관리, 병원 폐쇄, 휴교령 등을 신속하게 내리는 장소이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대부분 의사 간호사, 약사들이지만 이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 전문가 그룹은 수의사에서부터 사회학자, 기호논리학자, 통계학자, 인류학자, 미디어 전문가까지 포진해 있다. 바이러스 확산은 일반 국민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모든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고민하고 대응하는 전문가들 간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수의사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동물을 통해 전염되는 여러 병들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외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 정보를 신속히 얻기 위해 언제든 해외로 파견돼 역학조사를 할 수 있는 ‘국제감시정보 전담팀’도 상시 가동하고 있다.”○ “한국, 더이상 퍼질 가능성 낮다고 본다” 호흡기 전염병 예방 전문가인 레비브륄 박사는 1986년부터 WHO와 유니세프(UNICEF)에서 전염병 백신 개발과 예방접종 프로그램 전문가로 활동해왔다. 1997년부터 통제본부에 합류해 전염병 예방 및 교육총괄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매우 논리적이고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설명을 들을수록 프랑스가 방역 선진국이라 불리게 되기까지 많은 고민과 이를 실현할 사회적 합의가 있었으리라는 것이 느껴졌다. 화제를 ‘메르스’로 돌렸다. ―메르스는 병원을 통해서만 감염이 되나. 가정 학교, 지하철 같은 일반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감염될 확률은 어느 정도인가. “메르스 데이터도 많이 축적되어 가고 있다. 현재로서는 병원 감염 확률이 제일 높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메르스가 학교나 지하철 등에서도 확산 능력을 가진 바이러스였다면 벌써 전 세계로 퍼졌을 것이다. 이는 한국을 봐도 마찬가지다.” ―지난겨울 프랑스에서는 독감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독감과 메르스 중 어느 것이 더 위험한가. “올해 1∼2월 유행한 겨울독감으로 사상 최대인 1만1000명이 사망했다. 사망률이 19%에 이르렀고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치명적이었다. 이에 비해 메르스는 전염성 면에서 독감 바이러스보다 현저히 낮다. 우리 팀 연구 결과 메르스의 바이러스 생산력은 0.6으로 나타났다. 1보다 낮으면 대유행 병이 될 수 없다. 다른 나라의 연구팀들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특히 취약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미 다른 병을 앓고 있거나 노약자들이다. 그러나 건강한 젊은 사람도 감염되는 경우도 있고, 감염되고도 아무 증상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과연 메르스 항체를 보유했는지 혈청학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30, 40대 젊은층은 감염 확률이 낮지만 일단 감염되면 ‘슈퍼 전파자’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한국 상황은 어떻게 보나. “WHO와 프랑스 정부는 한국 여행에 대한 어떤 규제도 하지 않았다. 한국이 이대로 격리 조치를 잘 취한다면 더이상 퍼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여행객들이 확진 환자가 발생한 병원을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한 문제는 없다고 본다.” :: 다니엘 레비브륄 박사 ::―1986년 세계보건기구 열대성 전염병 통제 프로그램 전문가―유니세프 국제아동 예방접종 프로그램 진행―개발도상국 보건부 백신개발 프로그램 참여―1997년 프랑스 국립보건통제센터 전염병예방 총괄팀장―프랑스 보건부 사스, 메르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면역기술전문 자문위원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애국심을 원한다면 반대!” “경제를 위한다면 찬성!” 5일 오전 7시(현지 시간)부터 그리스와 유로존의 운명을 결정할 국민투표가 치러졌다. 아테네 중심가 오모니아 지하철역 부근의 주민센터에 마련된 투표소 앞에서는 이날 새벽부터 붉은색 ‘반대’ 깃발과 푸른색 ‘찬성’ 깃발을 든 운동원들이 나와 박수를 치고 구호를 외치며 찬반 투표를 독려했다. 이날 선거에서 ‘반대’ 표를 행사한 람브로스 씨(45·전직 선원)는 “채권단의 협상안에 찬성해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는다면 부채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독일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경제정책을 결정할 수 있도록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원한다”고 말했다. 반면 부유층이 밀집해 있는 해변가 글리파다 지역의 투표소에서 ‘찬성’을 찍고 나왔다는 파노스 파라테오도루 씨(46·의사)는 “만일 반대표가 많아 ECB가 긴급유동성 자금을 끊는다면 월요일에 그리스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텅 비게 될 것”이라며 “협상에 실패하고 국가부도를 낸 알렉시스 치프라스 정권은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주말 그리스는 평온을 되찾은 듯 보였다. 시민들은 대부분 근교의 해변에 가서 가족끼리 수영을 즐겼다.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를 맞은 나라의 침울함은 사라진 것처럼 비쳤다. 에르무 거리 커피숍에서 만난 파멜라 랑가스 씨(35)는 “이것이 그리스 스타일(Greek Style)”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식당과 상점에서는 아직까지는 신용카드가 통용됐다. 그리스 전통 수블라키(꼬치구이) 음식점의 종업원 제냐 씨는 “지금까지는 카드도 받는데 다음 주에도 은행이 문을 닫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상의 뒤쪽에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분노, 분열이 섞인 묘한 감정이 광장과 카페 골목, 시장 구석까지 파고들고 있었다. 찬성파나 반대파를 막론하고 국민투표 이후가 더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지금은 하루 60유로만 ATM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번 주 월요일부터 ATM에 돈이 떨어지고 키프로스처럼 은행 예금도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스 은행들은 8000유로(약 1000만 원) 이상의 예금자에게 최소 30%의 손해를 부담시키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서방 언론이 보도한 이후부터 그랬다. 이날 투표 직전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그리스 유권자들이 구제금융안을 거부하면 신규 자금을 수혈받지 못해 의료 시스템이 붕괴하고, 전력 공급과 생필품 수입이 끊기는 ‘아마겟돈’ 같은 재앙이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막판 표심은 세대별, 소득별로 양극화가 심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젊은층과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노인층과 부유층에선 여전히 ‘찬성’이 우세했다. 특히 실업률이 49.7%에 이르는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 의견이 ‘노’였다. 대학 강사인 카심프라스 씨(35)는 “테러와 같은 현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를 찍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시내 그리스국립은행 앞에서 연금을 인출하기 위해 줄을 서 있던 파노스 씨(66)는 “유로존에서 이탈하면 반쪽으로 줄어든 연금마저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며 “내 생전에 나라가 이렇게 결딴난 모습을 보게 되니 정말 슬프다”고 말했다. 아테네 거리에는 독일 재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의 사진과 함께 ‘그는 5년 동안 당신의 피를 빨아왔다’라는 글귀가 들어간 포스터가 나붙었다. ‘예스’ 포스터는 뜯겨 나뒹굴거나 스프레이로 ‘노’라는 글자로 덧칠되기도 했다. 국민에게 선택을 강요한 치프라스 총리는 갈등과 반목을 부추기는 인물로 보였다. 남편과 부인, 형제와 자매, 친구와 이웃, 동료 직원들 사이에서도 ‘찬반 토론’을 하다가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잦아졌다. 대학생 파파도 풀로스 씨(20)는 “온라인에서도 ‘애국자’ ‘배신자’ ‘이성을 잃은 좌파’ 같은 험악한 말을 주고받으며 거센 찬반 논쟁을 벌인 후에는 페이스북에서 ‘친구 끊기’ 행렬이 대규모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양고기를 갈고리에 매다는 작업을 하던 정육점 주인 테세오풀리스 씨(56)는 “치프라스 정권이 취임한 후 5개월간 매상이 40%나 줄었다”고 말했다. 한편 언론사들이 투표 하루 전 마지막으로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찬성과 반대는 각각 44%와 43%, 43%와 42.5% 등 1%포인트 안팎의 차로 접전을 벌였다. ▼ 출구조사 “반대 우세” ▼오차범위내… 섣불리 예측 못해5일 치러진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반대(구제금융안 거부)가 찬성(구제금융안 수용)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 여론조사기관 GPO가 발표한 오후 6시 투표 마감 직후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대가 51.5%, 찬성이 48.5%로 나타났다. 하지만 오차범위 이내 결과여서 섣불리 예측하기 힘들다.아테네=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5일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국민투표 시행을 앞두고 그리스가 대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뉜 그리스 국민은 곳곳에서 충돌하며 일촉즉발의 긴장감까지 감돌고 있다. 3일 수도 아테네 도심에서는 추가 긴축을 요구한 채권단의 제안을 받아들이자는 ‘네(NAI·예)’ 집회와 거부하자는 ‘오히(OXI·아니요)’ 집회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네’와 ‘오히’ 집회는 물론이고 무효표를 찍어야 한다는 집회까지 열렸다. 그리스 전역의 도로에는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의 사진 위에 “5년간 그는 당신의 피를 빨았다. 이제 그에게 노(NO)라고 말하라”고 적힌 반대 진영의 포스터가 나붙었다. 여기에 “그리스에 예스(YES), 유로에 예스”라는 찬성 캠페인 포스터도 경쟁적으로 나붙었다. 이날 그리스 정부와 야당은 날카로운 신경전과 불꽃 튀는 선전전을 벌였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찬성표를 던지면 그리스에 추가적인 짐을 지우는 결과를 낳는다”며 “반대표가 많으면 많을수록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1야당 신민당 대표인 안도니스 사마라스 전 총리는 “반대표는 유로존 탈퇴를 의미한다”며 “드라크마(유로존 가입 전 화폐)로의 회귀는 그리스 경제와 국민의 희망을 짓밟는 것”이라며 맞불을 놓았다. 그리스 국민의 의견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마케도니아대 사회경제조사연구소에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43%는 채권단 제안에 반대하고, 42.5%는 찬성한다고 답했다. 그리스 일간지 에트노스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찬성이 44.8%, 반대가 43.4%였다. 그리스 3차 구제금융 협상 재개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앞두고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 부채의 탕감(헤어컷) 필요성을 인정한 보고서가 3일 보도돼 파문이 일었다. IMF가 공식 문서에서 부채 탕감을 명시한 것은 처음으로 그리스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치프라스 총리는 TV 인터뷰에서 “IMF도 그리스 부채 20%를 헤어컷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며 “국민투표에서 반대로 결정된다면 바로 브뤼셀로 갈 것이며 48시간 안에 합의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빌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은 새로운 기초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협상 과정이 오래 걸리고 험난할 것”이라고 이를 부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국민투표 후 협상이 재개돼도 채권단이 치프라스 총리와 합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나오면 치프라스 총리가 물러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 경우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기술관료 주도의 ‘임시정부’와 협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스 은행의 현금은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콘스탄틴 미칼로스 그리스 상공회의소 회장은 “그리스 은행의 현금보유액이 5억 유로(약 6225억 원)까지 줄었다”고 말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은 “그리스 정부가 하루 인출 제한을 60유로에서 20유로로 낮추는 방안에 대해 벌써부터 검토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한편 그리스 대법원이 3일 오후 늦게 그리스 국민투표의 위헌성 여부에 대한 판결을 발표할 수도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그리스 국민투표는 질문 문항이 너무 애매하고, 준비시한이 촉박해 국제적 기준에 미달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BBC는 “위헌 여부 발표에 따라 국민투표가 막판에 취소될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보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연합(EU) 구제금융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앞둔 2일(현지 시간) 그리스 정부와 채권단이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다. 이날까지 협상은 진행되지 않았지만 투표 결과가 메가톤급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어 그야말로 폭풍전야의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벼랑 끝에 몰린 그리스 은행들은 일단 급한 불을 껐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일 통화정책위원회를 열고 그리스 은행들의 ‘생명줄’인 890억 유로 규모의 긴급유동성지원(ELA)을 끊지 않기로 했다. 5일로 예정된 그리스 국민투표까지 시간을 좀 더 주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그리스의 유동성 위기가 커지면서 신용평가사들에 의한 등급 강등이 잇따르고 있다. 무디스가 1일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Caa2’에서 ‘Caa3’로 한 계단 내렸다. 디폴트(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있는 등급 중 가장 낮은 단계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기(정크) 등급인 ‘CCC―’로 강등했다. 그리스 국민투표의 결과 예측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2일 유로투데이의 설문조사 결과 국민투표에서 채권단의 협상안에 ‘찬성’ 의견이 47%, ‘반대’가 43%로 근소한 차이를 보였다. 로이터통신이 월가의 ‘큰손’ 투자자 2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15명이 ‘찬성’ 결과를 예측한 반면, 이코노미스트 정보 분석팀은 투표 결과가 ‘반대’로 나올 가능성이 더 크다고 전망했다. 아일랜드의 도박업체 패디파워는 이날 85% 이상이 ‘찬성’ 결과가 나온다는 쪽에 돈을 걸었다고 밝혔다. 그리스 연정의 소수당인 독립그리스인당(ANEL) 소속 의원 3명은 2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밝혀 연정의 분열 조짐을 보였다. ANEL의 코스타스 다마볼리티스 의원은 “국민투표는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와 드라크마(유로존 가입 전 화폐) 복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라며 찬성하겠다고 밝혔다. 독일과 그리스 정부와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1일 독일 연방의회에서 집권 연정 의원들은 국제통화기금(IMF)에 부채를 갚지 못한 알렉시스 치프라스 정권에 대해 “국민을 배신한 정부”라며 격렬히 성토했다. 특히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치프라스 정권은 취임 이후 국민들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한 적이 없다”며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가 찬성이든 반대로 나오든 유로존과의 ‘신뢰’가 무너진 치프라스 정권과는 향후 어떤 협상을 기대하는 것도 어렵다”고 일갈했다. 반면 치프라스의 시리자 정당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온 ‘독일 좌파당’의 그레고어 기지 의원은 “총리의 목표는 그리스에서 좌파 정부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며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의 ‘정권 교체’를 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메르켈 총리도 단호한 어조로 “국민투표 결과가 나와야만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협상장을 뛰쳐나가 벼랑 끝 전술을 펼쳤던 치프라스 총리에 대해 메르켈의 복수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TV 연설에서 “채권단들이 그리스 유권자를 협박하고 있다”며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져줄 것을 호소했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도 2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채권단의 협상안에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나오면 장관직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채권단의 협상안에 서명하는 대신 차라리 내 팔을 자르겠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그리스가 30일 밤 12시(현지 시간·한국 시간 7월 1일 오전 6시)까지 국제통화기금(IMF)의 채무를 갚지 못하면서 사실상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를 맞았다. IMF 71년 역사상 ‘선진경제국(advanced economy)’이 채무 상환에 실패한 것은 그리스가 처음이다. 그리스 정부와 국제 채권단은 더 이상의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 1일 협상을 재개했다. 이런 가운데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국제 채권단의 요구 조건을 대부분 수용할 뜻을 밝혔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날 유럽 증시가 일제히 급등세를 보였다. 채권단의 긴축 요구에 강하게 버티던 치프라스 총리가 한발 물러섬에 따라 협상 전망이 밝아졌기 때문이다. 1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치프라스 총리가 채권단에 보낸 서한을 자체 입수해 보도했다. FT는 이 서한에 따르면 그리스 정부는 지난달 28일 공개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최종 제안을 대부분 수용할 의사를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지난달 30일 보낸 두 쪽 분량의 서한에서 향후 2년간 약 300억 유로를 지원해 달라는 내용의 ‘3차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채권단의 요구 사항을 일부 수정하는 조건으로 대부분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일부 수정 사항은 △섬 지역에만 부가가치세율(VAT)을 30% 인하해 주면 채권단의 세제개혁 요구를 전부 수용 △연금 수령 연령을 67세로 늦추는 개혁도 당장 올해 10월이 아니라 2022년까지로 도입 시점을 연기해 준다면 수용 △저소득층에 지급하는 ‘연대보조금’의 단계적 축소 기한을 2019년 12월까지 늦춰 준다면 역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치프라스 총리는 또 서한에서 “그리스 정부는 구제금융 만기 연장 및 제3차 구제금융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라면 필요한 당국자 간 합의의 일부 수정이나 부가조건 등을 통해 요구 사항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스 정부는 1일 이와 관련해 치프라스 총리가 채권단의 제안을 조건부로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면서도 총리가 채권단의 제안을 모두 수용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또 그리스 정부가 채권단에 수정안을 제안한 사실도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 정부가 5일 실시하려던 국민투표가 철회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국민투표는 채권단이 지난달 25일 제안한 협상안에 찬성과 반대를 묻는 것인데 그리스 정부 스스로 수정안 제안을 공식화함에 따라 과거 협상안인 채권단 안에 대해 국민의 뜻을 물을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치프라스 정부는 채권단이 3차 구제금융에 합의해 주면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질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거나 국민투표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하지만 치프라스 총리는 1일 TV로 생중계된 긴급 연설에서 5일 국민투표를 예정대로 실시하겠다고 천명했다. 자신이 국민투표 실시를 발표한 이후 채권단으로부터 더 나은 제안을 받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국민투표에서 반대표(채권단의 구제금융안 거부)를 던진다고 해서 유로존 내 그리스의 위상이 위태로워지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채권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이날 연방의회 연설에서 “그리스의 국민투표 이전에 협상은 없다”고 다시 한번 원칙론을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는 “어떤 구제금융이라도 IMF을 배제해선 안 된다”며 그리스의 IMF 배제 요구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유로존 각국은 5일로 예정된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를 지켜본 뒤 저마다 판단할 권리가 있다”며 “무원칙하게 타협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이날 오후 5시 반(한국 시간 2일 오전 1시 반)에 전화회의를 갖고 치프라스 총리의 새로운 제안에 대해 다시 논의했다. 앞서 미셸 사팽 프랑스 재무장관은 5일 그리스의 국민투표 전까지 그리스와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1일 오후 통화정책위원회를 열어 그리스 은행을 지원하고 있는 긴급유동성지원(ELA) 방안을 논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리스 사태에 과잉반응을 보여서는 안 된다”며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 중대한 타격을 줄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과 잇따라 통화하며 원만한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리스 사태가 더 악화돼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주기 전에 미 행정부의 개입을 확대하려는 뜻인 것으로 풀이된다. 치프라스 정부의 종잡을 수 없는 ‘벼랑끝 전술’과 ‘위험한 도박’에 EU 지도자들의 반감은 더욱 커져 가고 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그리스 정부는 거짓말을 했고, 협상 파트너들을 배신했으며, 유럽의 규범을 왜곡했다”며 “그리스 국민들은 죽음이 두렵다고 자살해선 안 된다”며 국민투표에서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을 촉구했다.파리=전승훈 raphy@donga.com / 워싱턴=신석호 특파원}
그리스가 30일 오후 6시(미국 워싱턴 시간·한국 시간 1일 오전 7시)까지 국제통화기금(IMF)에 16억 유로(약 2조 원)의 채무를 갚지 못해 사실상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가 채무 상환을 못하면 IMF에 빚진 돈을 기한 내 갚지 못한 사상 첫 번째 유로존 국가가 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 인디펜던트 등 외신이 전하는 디폴트 이후 궁금한 사항을 문답식으로 알아본다. Q. 30일까지 IMF의 빚을 못 갚으면 그리스는 디폴트라고 볼 수 있나. A. 맞다. 일각에서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회원국이 만기일에 빚을 갚지 못하는 것에 ‘연체(arrears)’라는 용어를 썼기 때문에 디폴트가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FT는 “그것은 순전히 언어적 구분일 뿐 디폴트가 맞다”고 했다. Q. 지금까지 IMF에 채무 상환을 못한 국가는 어디인가. A. 수단(1984년) 소말리아(1987년) 짐바브웨(2001년) 등 개발도상국들이 갚지 못한 적이 있다. 만약 그리스가 30일 채무 상환을 못하면 1999년 유로존 창설 이래 국가 부채를 갚지 못한 첫 번째 국가가 된다. 선진국으로서도 첫 번째 국가이다. 게다가 그리스의 채무 16억 유로는 국가가 갚지 못한 빚으로는 역대 최대다. 그리스는 2010년 이후 IMF에서 350억 유로를 빌렸고, 올해 말까지 IMF에 55억 유로를 갚아야 한다. Q. IMF에 채무 상환을 못하면 어떻게 되나. A. IMF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을 권리가 즉시 사라진다. 그리스는 유럽중앙은행(ECB)에 진 채무 35억 유로(약 4조4000억 원)도 20일에 갚아야 하는 등 줄줄이 막대한 빚을 갚아 나가야 한다. 만일 ECB가 유동성 자금 지원을 끊으면 그리스 은행은 즉각 파산 상태가 된다. Q. 채무 기한을 30일 이후로 연장할 수 있나. A. 없다. IMF는 회원국들에 빚을 갚는 기간을 재협상하지 않는다고 오랫동안 강조해왔다. 그리스는 4월부터 만기일을 연장해 달라고 했지만 IMF는 단호히 거부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도 구제금융을 한 달만 더 연장해 달라는 그리스의 요구를 6월 27일 거부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30일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최종 협상안을 놓고 막판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EU 집행위원회의 최종 제안은 알지 못한다”며 “오늘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은 만료된다”며 큰 기대를 나타내지 않았다고 BBC가 보도했다. Q. 그리스는 과연 유로존 이탈(그렉시트)을 할 것인가. A. 그렉시트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4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 분수령은 5일 국민투표에서 국민들이 채권단의 재정개혁안에 ‘찬성’해야 한다. 둘째는 치프라스 총리가 사임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 셋째는 총선에서 채권단의 합의안에 찬성하는 사람들로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 마지막 단계는 새 정부와 채권단이 재협상해서 구제금융에 합의하는 것이다. 만일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많거나 정권 교체가 이뤄지지 않는 등 4단계 중 한 단계만 삐걱거려도 재협상 가능성은 없다. 게다가 이 모든 정치 일정을 시시각각 다가오는 부채 만기에 앞서 해치워야 그렉시트를 피할 수 있다. 5일 국민투표 결과 반대가 우세하거나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지더라도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내쫓는 공식 절차는 없다. 그렇지만 ECB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자국 통화를 쓴다면 유로존 회원으로서 누리는 이익이 거의 사라진다. 그리스 정부가 고통을 줄인다며 자국 통화를 마구 찍어낸다면 이는 엄청난 물가 폭등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Q. 그리스 국민에게 가해진 예금 인출 중지는 언제쯤 해제되나. A. 국민투표 결과에 달렸다. 만약 국민 다수가 유로존과 IMF가 요구하는 긴축·개혁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는 데 찬성한다면 채권단과의 합의에 따라 몇 주 내로 돈을 빼낼 수 있다. 하지만 반대가 우세하다면 그리스 은행들이 정상화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Q. 왜 세계 금융시장은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나. A. 6월 29일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주식 가격이 급락하고, 유로화 가치는 떨어지고,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의 채권금리가 급등했지만 금융시장의 충격은 일정 범위 안에만 미쳤다. 세계은행들과 투자자들은 최근 5년간 그리스와의 자금 거래를 줄여 왔기 때문이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그리스 정부가 30일(현지 시간) 만기인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채무 16억 유로(약 2조 원)를 상환할 능력이 없다고 밝히며 사실상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이날 오후 7시 국제 채권단에 전격적으로 3차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벨기에 브뤼셀을 방문해 유럽연합(EU) 고위 관리들과 디폴트를 막기 위한 막판 협상을 벌였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성명에서 “2년 동안 유럽안정화기구(ESM)가 그리스에 필요한 재정과 채무 재조정을 위해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치프라스 총리는 또 ‘기술적 디폴트’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날 밤 12시에 종료되는 2차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단기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 제안은 신자유주의식 긴축정책을 요구해 마찰을 빚었던 국제통화기금(IMF)을 배제한 것으로 IMF가 동의할지는 확실치 않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7월 5일 그리스 국민투표 이전에 3차 구제금융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30일 기자들과 만나 “만기가 도래하는 IMF에 대한 채무 약 16억 유로를 갚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치프라스 총리도 전날 국영TV와의 인터뷰에서 “채권단이 그리스 은행들의 목을 졸라 그리스를 질식시키려 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돈을 갚기를 기대하는가”라고 밝혔다. 이로써 그리스는 서방 선진국 중 최초로 IMF의 부채를 상환하지 못한 나라가 됐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처한 그리스 정부가 대규모 인출 사태(뱅크런)를 막기 위해 시중은행의 영업을 정지시킨 29일. 그리스 아테네 시내의 시중은행 지점들에는 노인들만 줄을 섰다. 정부가 신용카드나 현금카드가 없는 연금 수급자를 위해 연금 지급 업무를 오후부터 개시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시내 주유소 곳곳에선 불안에 휩싸인 시민들이 미리 기름을 채워 두려고 몰고 나온 차량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스 정부는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날부터 내달 6일까지 무료로 운행하기로 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현금이 바닥나 발을 동동 굴렀다. 그리스에서 신혼여행 중인 발렌티나 로시 씨와 남편 클라우디오 씨는 “호텔에서 신용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을 요구해 신혼여행이 악몽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8일 “그리스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소리 없이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그리스 거리에서 27일 새벽부터 ATM 앞에 길게 늘어서 있던 줄은 이튿날 아침엔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테네 시내 중심가에 있는 ATM 스크린에는 하루 종일 ‘기술적 결함’이라는 문구만 깜빡거렸다. 그리스 정부가 자본통제 방침을 발표하자 시민들은 아직 현금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국영은행 ATM 앞으로 다시 몰려들었다. NYT는 기름과 식료품을 사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보도했다. 그리스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은행 주변 경찰 순찰을 늘렸고 방탄조끼까지 지급했다. 아테네의 한 카페에서 친구들과 토론을 벌이던 퇴직자 알레코스 니카스 씨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채권단이 제시한 협상안을 받아들이면 연금이 깎인다고 하더라. 총리가 이를 거부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했다. 반면 니카스 씨의 친구 바실리스 방겔리디스 씨는 “(유로존을 떠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라며 “음식도 연료도 없는 베네수엘라와 같은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에라토 스피로풀루스 씨는 “구제금융 협상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그리스의 관(棺)에 마지막 못을 박는 행위”라고 블룸버그통신에 밝혔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유럽연합(EU)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구제금융을 연장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리스의 미래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리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28일 NYT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내가 그리스 국민이라면 협상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이다. 채권단이 그리스에 혹독한 긴축과 개혁을 무기한으로 요구하고 있다”며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해도 지금보다 극심한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반면 유명 투자전문가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그리스가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하도록 놔둔 뒤 스스로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해법”이라고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기독민주당(CDU) 창당 70주년 연설에서 “유로화가 실패하면 유럽도 실패한다”며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파리=전승훈 특파원}
그리스 정부가 29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시중은행 영업을 중단하고 예금 인출을 막기 위한 자본 통제를 전격 선언했다. 그리스의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초읽기에 들어가자 아시아와 유럽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폭락세를 보였다. 29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29.77포인트(1.42%) 내린 2,060.49로 마감했다. 일본 증시는 올 들어 최대 폭인 2.88% 급락했고 중국 상하이 주가도 전날보다 3.34% 떨어졌다. 이날 뉴욕 증시는 개장하자마자 1%에 가까운 하락세를 보였다. 유럽 증시는 일제히 폭락했다. 영국 런던 증시, 프랑스 파리 증시, 독일 DAX30지수는 개장 초 3∼4%씩 하락했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25.3원으로 전 거래일보다 8.4원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했다. 반면 안전자산으로 취급받는 엔화는 강세를 보이면서 이날 원-엔 재정환율(오후 3시 기준)은 100엔당 919.51원으로 지난 주말보다 14.11원 올랐다. 정부는 이번 그리스 사태의 영향이 과거 유로존 재정위기 때보다는 작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만일을 대비해 정부 점검반을 가동하기로 했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리스가 구제금융이 만료되는 30일까지 채무 15억 유로를 상환하지 않는다면 규정에 따라 어떤 추가 금융 지원도 할 수 없다는 강경한 뜻을 밝혔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유재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