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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털처럼 빛나는 유리잔에 삼라만상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 특별전 기자간담회에서 본 작품들은 화려한 유리 세공기술의 진수를 보여줬다. 이 가운데 특히 18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프라하 전경이 있는 잔’은 제목 그대로 높이 20㎝ 짜리 유리잔에 풍경화 한 폭이 숨어있다. 유리잔 가운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프라하성과 카를교, 성당 등 프라하 시가지가 빼곡히 늘어서 있다. 자칫 깨지기 쉬운 유리를 이처럼 자유자재로 조각한 기술이 지금 봐도 놀랍다. 이번 전시회는 우리나라와 체코의 국교 수립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체코 국립박물관과 프라하 장식미술관의 유리 공예품 343점이 들어왔다. 보헤미아 지역은 유럽의 유리공예 중심지로 꼽히는데 금실과 루비 등을 넣은 화려한 장식 유리가 유명하다. 전시 작품 중 1836년에 만든 ‘요세프 융만에게 헌정한 잔’은 왕관 모양으로 새겨진 뚜껑과 바닥이 안팎으로 깎인 유리 단면을 타고 빛이 여러 방향으로 반사를 일으키는 장관을 연출한다. 융만(1773~1847)은 체코어 사전을 발간해 합스부르크 가문 치하의 체코에 민족 부흥운동을 일으킨 학자다. 성당에 들어가는 휘황찬란한 스테인드글라스도 선보인다. 성모 마리아와 세례 요한을 새긴 스테인드글라스는 15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다. 전시회는 4월 26일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없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가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논란을 빚고 있는 ‘증도가자(證道歌字)’에 대해 12일 국가지정문화재 등록 여부에 대한 심의를 연다고 8일 밝혔다. 증도가자는 고려 고종 26년(1239년)에 찍은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보물 758호)’를 인쇄한 금속활자를 뜻한다. 증도가자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자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경북대 산학협력단에 조사를 의뢰한 바 있다. 8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경북대 산학협력단은 109개 활자 중 62개를 증도가자로 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내용이 사실로 최종 확인되면 증도가자가 직지심체요절(1377년)보다 최소 138년 이상 앞서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로 공인받는 것이다. 그러나 활자 자체에 대한 연도 측정 자료가 없어 진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학협력단은 국립지질자원연구원의 탄소연대 분석 결과 활자 15개에 묻은 먹이 서기 1033∼115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활자 역시 고려시대 것이라는 직접 증거가 될 수는 없지만, 정황상 활자도 그 무렵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경북대 산학협력단의 연구책임자인 남권희 교수가 5년 전 증도가자를 최초 공개하면서 진품을 주장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이번 연구의 객관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서는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연구용역을 맡길 때 이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위원회 심의가 열려도 진품 여부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란은 여전할 것 같다”며 “그러나 정부기관이 나서 구체적으로 사실을 확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sukim@donga.com}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서봉총 금관 훼손을) 찾아냈다는 말은 평소에는 건드리지도 않고 방치했다는 얘기 아닌가.”(아이디 bjh9****) “일제가 잘못했지만 대한민국 문화재 관리 수준도 상당히 엉망이다.”(아이디 cafe****) 신라 왕릉인 ‘서봉총(瑞鳳塚)’ 금관이 일제강점기에 심하게 훼손됐다는 소식을 6일 접한 누리꾼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동아일보의 이날 1면 기사를 실은 한 포털사이트 웹페이지에는 1200여 개의 댓글이 일제히 달렸다. 대부분의 글은 일제의 문화재 유린에 대한 성토였지만 국립중앙박물관 등 우리 문화재 당국에 대한 준엄한 비판도 상당수 올라왔다. 문화재계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를 먼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추정한 금관의 훼손 시기(1934∼1939년)를 감안할 때 무려 80년(광복 이후로도 70년) 동안이나 훼손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조선총독부가 남긴 1920, 1930년대 서봉총 금관 촬영 사진은 화질이 양호해 육안으로도 원형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비전문가도 일제강점기에 찍은 사진을 현재와 비교하면 금방 찾아낼 수 있는 문제를 광복 후 70년 동안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중앙박물관의 서봉총 유물 조사보고서가 1926년 발굴 이후 89년 만에 나온 첫 발굴보고서라는 점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일제강점기 서봉총 발굴을 이끈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가 수집한 각종 유물 자료가 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내내 보관돼 있었는데도 중앙박물관은 지금껏 제대로 된 조사보고서를 한번도 내지 않았다. 실제로 동아일보 취재 결과 중앙박물관은 보고서 작성에 앞서 조선총독부 박물관이 작성한 옛 자료들을 뒤져보는 과정에서 1926년 서봉총 발굴 직후 유물 배치도를 촬영한 유리 건판을 우연히 발견했다. 유물 배치도를 보면 피장자가 어떤 유물을 몸에 지닌 채 묻혔는지를 알 수 있어 성별을 파악할 수 있다. 중앙박물관은 이처럼 중요한 자료를 70년 동안 자료실에 방치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그동안 피장자의 성별을 놓고 여성일 것이라는 ‘추정’만 내놓을 수 있었다. 성별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서봉총을 비롯한 장엄한 신라 왕릉들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 이름조차 모른다. 피장자의 이름이 적힌 명문이 없다면 유물이나 유구를 정밀하게 분석해서 고고학적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 말로만 ‘문화 강국’을 외치지 말고 주변에 널려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부터 기울일 필요가 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933년 6월 중국 상하이에서 이육사는 루쉰(魯迅·1881∼1936)을 우연히 만난다. 중국 난징의 조선혁명군사간부학교를 졸업하고 국내로 잠입하기 직전 비장한 각오로 상하이를 찾은 이육사였다. 루쉰에 대한 책을 쓰기도 한 이육사는 깊은 감흥을 느낀 게 분명하다. 그는 ‘루쉰 추도문’이라는 글에서 “나의 손을 다시 한번 잡아줄 때 루쉰은 매우 익숙하고 친절한 친구였다”고 적었다. 현실을 개혁하려던 지식인 루쉰과 일제에 맞서 싸운 이육사가 하나의 점으로 연결된 순간이었다. 실제로 문학을 대하는 이육사의 태도는 루쉰의 그것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이육사는 자신의 책에서 “루쉰에 있어 예술은 정치의 노예가 아닐 뿐만 아니라 적어도 예술이 정치의 선구자”라고 적었다. 문학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한 두 사람의 예술관은 서로 뜻이 통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와 세계대전, 냉전을 거치면서 한동안 잊혀졌던 20세기 초반 한중 지식인들의 교류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비록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상태였지만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온 한중 양국의 지적 교류는 끈끈했다. 재밌는 건 양국의 미묘한 애증관계가 당시에도 목격됐다는 것이다. 베이징대 교수 출신으로 1926년 경성제국대 중문과에 초빙된 웨이젠궁(魏建功) 교수는 “중한 인민이 감정적으로 미워하는 것과 이상으로서 정신적으로 우호적인 것은 공영공존 동아주의(東亞主義)의 표면과 이면이다”라고 말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커다란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는 양국이 동북공정 등 역사문제로 삐걱대는 현실과 겹친다. 저자는 이육사가 1926년부터 1년간 다닌 중국 베이징의 ‘중국대학’ 캠퍼스를 현지에서 고증하는 등 현장감을 살렸다. 또 졸업생 인터뷰를 곁들여 이육사가 어떻게 중국 현대문학에 빠져들었는지도 다뤘다. 영화 ‘색, 계’로 유명한 중국 작가 장아이링(張愛玲·1920∼1995)이 조선 최고 무용수 최승희와 만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신라 왕릉인 ‘서봉총(瑞鳳塚)’에서 출토된 금관이 일제강점기에 심하게 훼손된 사실이 드러났다.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신라 금관이 훼손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처음이다. 이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조선총독부가 파헤친 신라 왕릉의 재발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1926년 경북 경주시에서 발견된 서봉총은 조선총독부의 초청으로 발굴 현장을 찾은 스웨덴 황태자가 봉황이 달린 금관 발굴 작업에 참여해 스웨덴을 뜻하는 ‘서전(瑞典)’의 ‘서(瑞)’자와 봉황의 ‘봉(鳳)’자를 따서 명명됐다. 서봉총 금관(보물 제339호)은 ‘양대(梁帶·머리에 쓸 수 있도록 테두리 안쪽에 십자로 붙여 놓은 금띠)’와 봉황 장식을 모두 갖춘 유일한 신라 금관이라는 점에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일제강점기 자료 조사 사업으로 최근 발간한 ‘경주 서봉총Ⅰ’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서봉총 금관의 양대가 테두리(臺輪·대륜)에서 떨어져 나간 뒤 원래 위치가 아닌 엉뚱한 곳에 붙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함께 금관 테두리에 달려 있던 곡옥(曲玉) 6개 중 4개가 떨어져 나간 것도 조사됐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촬영한 사진과 금관의 부위별 실측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 “1935년 일본인이 금관 외부반출… 평양 기생 씌워주다 망가뜨린듯” ▼금관 발굴 직후인 1926년과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1934년에 각각 촬영한 유리 건판 사진을 살펴보면 금관 한가운데 있는 ‘맞가지 세움 장식(出자 형태로 생긴 금장식) 왼쪽 아래에 ‘금못’으로 양대를 고정한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또 테두리의 곡옥은 6개가 온전하게 달려있었다. 그러나 현재 곡옥은 2개만 남아 있고, 곡옥이 있던 자리에는 금못이 아닌 ‘금사(金絲·금실)’로 양대가 연결돼 있다. 곡옥이 떨어져 나간 구멍에 양대를 연결해 놓은 것이다. 중앙박물관은 보고서에서 “총독부 박물관이 서봉총 유물을 정식으로 등록한 1939년 12월 자료에 따르면 금관에서 떨어진 곡옥들이 별도 유물 목록에 기재돼 있다”며 “양대를 원래와 다른 위치에 고정하고 곡옥이 대륜에서 떨어진 시점은 1934년과 1939년 사이”라고 결론 내렸다. 양대의 훼손으로 현재의 금관을 머리에 쓰면 기형적인 모양이 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원래대로 양대를 복원하면 금관을 착용할 때 꼭대기에 있는 봉황 장식이 정확히 정수리 위에 놓인다. 박진일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당시 신라 금관 장인들이 정수리가 머리의 정중앙이 아닌 후위에 있다는 해부학 지식을 바탕으로 양대의 위치를 잡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신라인의 금속공예 작업이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누가, 어떻게 금관을 훼손했을까. 서봉총 금관은 1926년 출토된 뒤 경성(서울)의 총독부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됐다가 9년이 지난 1935년 9월 평양박물관 특별전에 대여 형태로 딱 한 번 반출된 적이 있다. 당시 평양박물관장으로 서봉총 발굴을 주도했던 일본인 고고학자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가 특별전 직후 기생에게 서봉총 금관을 씌우고 사진을 찍어 논란이 됐다. 전무후무한 문화재 유린은 9개월 뒤 부산일보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동아일보도 비슷한 시기 ‘평양기생 차릉파의 수난 이야기’라는 부제로 이 사건을 다뤘다. 고이즈미가 금관의 양대와 곡옥을 망가뜨렸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평양 사건의 시기는 박물관 조사팀이 추정한 금관 훼손 시기(1934∼1939년)에 포함된다. 또 유물이 손상되기 쉬운 외부 반출이 평양 특별전 외엔 없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중앙박물관 관계자는 “누군가 억지로 금관을 쓰다가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며 “훼손 시점은 정황상 고이즈미가 주최한 평양 특별전 때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앙박물관은 문화재위원회 승인을 거쳐 서봉총 금관의 원형 복원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올 4월 서봉총 유물 전시회를 열면서 훼손 전후의 금관 사진을 나란히 게시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서봉총의 주인이 여자라는 사실을 확증하는 사진 자료도 함께 발견됐다. 1926년 서봉총 발굴 직후 유물 배치도를 촬영한 유리 건판을 찾아낸 것이다. 지금까지는 발굴 당시 일본 학자들이 유물 배치도를 그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 유물 배치도에 따르면 서봉총의 피장자는 여성의 상징인 태환이식(太環耳飾·금귀고리)을 달고 있다. 남성의 경우엔 대도(大刀)를 차고 있다. 박진일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학계에서는 정황만으로 여성일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이번에 확실한 증거가 나온 셈”이라며 “고이즈미가 서봉총 조사 자료를 가지고 평양박물관장으로 부임한 사실을 미뤄 볼 때 유물 배치도 원본은 현재 평양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국내에서 가장 길이가 긴 장수하늘소 표본이 공개됐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길이가 11.4cm에 이르는 장수하늘소 등 곤충 표본자료 2000점을 곤충연구가인 홍승표 씨(56)가 국가에 기증하기로 했다”고 4일 밝혔다. 홍 씨의 장수하늘소 표본은 성충과 애벌레 등 총 9점으로 구성돼 있다. 장수하늘소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968년 이전에 채집된 것이다. 장수하늘소는 표본이 희귀해 유전정보에 대한 기본 자료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딱정벌레목(目) 하늘솟과(科)에 속하는 장수하늘소는 중남미에 유사한 종이 분포해 과거 아시아와 중남미 대륙이 육지로 이어졌음을 알려주는 증거로 꼽힌다. 이 밖에 홍 씨는 세계에서 가장 큰 딱정벌레로 알려진 ‘타이탄하늘소’와 2012년 이후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홍길앞잡이’ 같은 희귀 곤충 표본도 함께 기증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산 앞에 ‘납매(蠟梅)’가 있는 줄 이제야 알았으니/푸른 바위 곁에서 몇 년을 살았을까./시를 지어 보내주니 한 마음으로 감상해 기쁘지만/온종일 그리움이 떠나지 않는구려.’ 마치 밀랍처럼 생긴 노란색 꽃잎의 매화나무 ‘납매’를 감상하고 지은 이 한시는 퇴계(退溪) 이황(1501∼1570)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누군가가 퇴계에게 보내준 납매에 대한 시를 읽고 깊은 감상에 빠졌다가 이를 다시 보고 싶은 그리움에 사무쳤다는 내용이다. 시 뒤에는 후기로 발문이 적혀 있는데 퇴계가 동생의 남산 집에서 납매를 우연히 발견하고 색과 향에 취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퇴계는 발문에서 “화보(花譜)를 보니 ‘납매는 원래 매화과에 속한 꽃이 아닌데 매화와 같은 시기에 피고 향기가 비슷하며 모양이 벌집과 매우 닮았기 때문에 납매라고 한다”고 썼다. 단순히 감상에만 그치지 않고 식물도감을 인용해 납매의 생태적 특성까지 밝히고 있다. 퇴계의 공식 문집에도 나와 있지 않은 이 시는 한국고전번역원(원장 이명학)의 한문번역 서비스를 통해 우연히 발견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A 씨가 “퇴계가 쓴 글 같은데 무슨 뜻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며 번역을 의뢰한 것. 노성두 고전번역원 연구원은 “필체로 보아 퇴계가 친필로 쓴 작품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전번역원에 따르면 최근 번역서비스 이용 건수가 7년 만에 1만 건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 산하 공공기관인 고전번역원은 한문 독해력이 취약한 국민들을 위해 집마다 전해 내려오는 족보나 한시, 편지 등에 대한 한글번역 서비스를 2008년부터 제공하고 있다. 갈수록 한자를 이해하는 고령인구가 줄면서 2011년까지 연평균 1000건이던 번역건수는 최근 1600건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무료로 제공하는 대국민 서비스인 데다 전담 인력이 두 명밖에 되지 않다 보니 업무 부담이 적지 않다. 밀려드는 번역 요청을 감당하기 위해 너무 긴 장문은 받지 않는다. 또 공공기관 특성상 필적 감정 같은 법적 분쟁에 휘말릴 여지가 있는 문건도 피하는 편이다. 특히 의뢰자가 오·탈자를 보내 번역에 애를 먹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조선 중종 때 문신인 지지당(知止堂) 송흠(1459∼1547)의 한시와 관련해 의뢰인이 e메일에 두 개의 오자를 넣는 바람에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갈 뻔하기도 했다. 노 연구원은 “국립중앙도서관 데이터베이스에서 지지당집(知止堂集) 원본을 확인해 겨우 오자를 바로잡았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자아가 강함. 배일(排日) 사상을 갖고 각종 회합에 참석해 불온한 연설을 함. 잡지에도 불온한 투고를 함.’ 근촌 백관수(芹村 白寬洙·1889∼?) 선생에 대해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사찰문건 중 일부다. 2·8독립선언과 물산장려운동, 신간회 등에 참여한 근촌을 껄끄럽게 여긴 총독부의 인식이 엿보인다. 전현직 중견 언론인 모임인 서울언론인클럽(회장 강승훈)은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근촌 백관수의 생애와 업적 조명’이란 제목의 학술 심포지엄을 열었다.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심포지엄에는 200여 명의 방청객이 몰려 준비한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주제발표에 나선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2·8독립선언에 대해 “젊은 엘리트들이 적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독립운동을 벌여 국제 여론을 움직이려고 한 것은 획기적인 발상”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30세로 재일 유학생 가운데 연장자였던 근촌은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400여 명의 학생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등 거사를 주도했다. 2·8독립선언서 초안이 국내로 전달돼 3·1운동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적지 않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근촌은 9개월 동안 징역을 살았다. 안용환 명지대 교수도 ‘2·8독립선언과 근촌 백관수’라는 발표에서 “2·8독립선언 당시 근촌은 춘원 이광수에게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게 하고 최팔용 나용균은 거사 자금을 마련하게 했으며, 송계백은 국내로 잠입시켜 고하 송진우와 인촌 김성수 선생을 만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언론인으로서 근촌의 삶도 조명됐다. 1937년 5월 동아일보 7대 사장에 취임한 근촌은 총독부의 폐간 조치에 맞섰다. 총독부는 ‘언문신문 통제안’이라는 극비 문서를 작성해 1940년 초부터 동아일보의 폐간을 강요했다. 근촌이 폐간을 거부하자 총독부는 동아일보 경리담당 직원들을 구속한 데 이어 고등계 형사들을 신문사로 보내 근촌을 연행했다. 정 교수가 소개한 당시 기록에 따르면 근촌은 편집국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손으로 동아일보 폐간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결국 총독부는 발행인 겸 편집인을 다른 사람으로 바꾸도록 압박해 폐간을 밀어붙였다. 이에 대해 종합토론에서 여영무 뉴스앤피플 대표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는 브나로드운동 등을 적극적으로 벌였는데 근촌은 민족정신을 지키려면 폐간을 막아야 한다고 확신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공과를 논의한 시도도 있었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는 ‘정치인 근촌 백관수의 정치이념’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백관수의 삶에는 분명 지사적 우국심과 고뇌가 있었다”며 “그러나 그가 경성군사후원연맹에 가담한 것은 허물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7월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는 “결전에 나서는 황군의 사기를 진작해야 한다”며 근촌을 비롯한 지식인 24명을 모아 군사후원연맹을 결성했다. 광복 이후 근촌이 단독정부 수립에 찬성한 데 대한 평가도 나왔다. 신 교수는 “1948년의 단정 수립은 한 개인의 결심으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한반도 전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성급한 단정 수립으로 분단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단정 수립으로 인한 분단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북한에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종합토론에 참여한 박실 전 의원(전 한국기자협회장)은 “북측에서는 이미 소비에트연방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기본 틀이 짜여 있었고 이미 모든 행정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근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미약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홍찬식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은 “국회도서관이 보유한 근촌 관련 자료가 9건에 불과한 반면에 중도 좌파로 분류되는 여운형에 대해선 289건이나 있었다”며 “학계의 관심이 너무 편향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일반 방청객으로 참석한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도 “우리나라 국사 교과서에는 근촌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다”며 아쉬워했다. 이날 심포지엄에 특별 초청된 황인자 새누리당 의원은 “근촌이 주도한 2·8독립선언은 일제강점기 도쿄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으로 반드시 국가기념일로 지정돼야 한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했던 지난해 7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잠시 한 줄기 찬바람이 불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의 광복 70주년과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를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제안한 직후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즉답을 피했고 청와대 대변인도 언론의 사실 확인 요청에 답변을 꺼렸다. 외교가에서는 미국과 일본을 의식해 대중 관계의 속도 조절에 나설 수밖에 없는 한국의 미묘한 처지를 보여준 장면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책(원제 ‘중국전략보고’)은 중국의 정치 엘리트를 양성하는 공산당 중앙당교 산하 국제전략연구센터가 중국의 국가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다. 중국의 부상이 국제평화에 위협 요인인지, 새로운 협력 관계가 가능한지를 놓고 중국을 비롯해 미국, 러시아, 한국 등 각국의 연구자들이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다. 미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 끼여 국가이익을 지켜내야 하는 한국으로선 중국의 국가전략을 남의 일로 치부할 순 없는 노릇이다. 2013년부터 매년 한 권씩 발간되는 중국전략보고가 중국과 동시에 출간된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그만큼 동북아시아의 주축으로서 한중 관계가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한국어판 출판을 주도한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는 “이 책은 중국이 적극적인 세계전략을 추구하면서 주변국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말했다. 6년 뒤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는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으로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했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아직 세계 80위권인 개도국이다. 선진성과 후진성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공저자 중 한 명인 먼훙화 교수는 “성숙한 대국은 국가의 이익 국경을 명확히 지정하고 비판에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며 “솔직히 중국은 아직 성숙한 대국 마인드를 갖추지 못했다”고 썼다. 중국의 국가 역량을 감안할 때 옛 소련처럼 세계 강국으로 단시간 안에 군림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대만 문제 등 중국의 핵심적인 국가이익과 직결된 동아시아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중국의 개입 강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강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동아시아에서 미중 공동통치 체제를 배제하기 어렵다. 글로벌 수준에서 미중 간 힘의 비대칭성이 유지된다고 해도 동아시아 지역 수준에서는 힘의 균형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미국과 중국의 세력균형 속에서 최대한 자율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외교 앞에 놓여 있는 셈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우경화 행보로 동북아시아에 냉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한중일 학자들이 ‘실학(實學)’으로 화해를 모색한다. 동북아시아 3국의 문화적 접점으로서 실학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언종 한국실학학회 회장(고려대 교수·사진)은 “한중일 실학 연구자들이 모여 각국의 대표 실학자 99명에 대한 평전 형식의 연구서를 올 9월 발간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동아시아 실학자들에 대한 연구서가 3개 국어로 동시에 출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회장은 “실학은 한중일이 개혁 사상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3국이 공유할 수 있는 사상적 접점으로서 의미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책 제목은 ‘한중일 실학사상가 사전(事典)’으로 한국실학학회와 중국실학연구회, 일본동아시아실학연구회의 학자 99명이 참여해 각자 한 명씩 대표 집필을 맡게 된다. 국가별로 33명의 실학자를 선정해 이들의 생몰연도와 가족 관계, 생애, 주요 저작, 핵심 사상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방식이다. 3국 연구자들은 책 출간 직후 경기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대상 실학자 수를 100명이 아닌 하필 99명으로 정한 사연이 시의성과 맞물려 흥미롭다. 요즘 동북아 정세를 반영하듯 3국 학자들 사이의 묘한 ‘밀당(밀고 당기기)’의 결과라는 것. 2년 전 도쿄에서 처음 논의가 오갈 때 유학의 본류를 자처하는 중국 학자들은 실학자 100명 가운데 자국 출신을 절반 이상 쓰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우리나라와 일본 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결국 각국이 공평하게 33명씩 나눠서 소개하고 실학의 뿌리인 공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한 명의 자리를 비워 놓기로 했다. 다산 정약용도 저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공자를 꼽았다. 한중일 3국 실학의 공통점은 체제 전환 혹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근대화를 맞아 주자 성리학의 한계를 깨닫고 개혁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다산과 성호 이익의 실학사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중국 고염무(顧炎武·1613∼1682)와 황종희(黃宗羲·1610∼1695), 왕부지(王夫之·1619∼1692)는 명말 청초의 대표 학자들로 명나라가 망한 이유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제도 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다. 다산이 따로 저작을 구해 읽었다는 일본의 17세기 유학자 이토 진사이(伊藤仁齋·1627∼1705)와 오규 소라이(荻生조徠·1666∼1728), 다자이 슌다이(太宰春臺·1680∼1747)도 주자학을 반대하고 공자 사상의 원류로 돌아가 현실을 개혁하자는 입장이었다. 한국의 대표 실학자 33인 명단에는 다산을 비롯해 연암 박지원과 서계 박세당, 초정 박제가, 이익, 농암 유수원, 풍석 서유구 등 유명 학자들은 물론 빙허각(憑虛閣) 이씨(1759∼1824)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실학자도 포함돼 있다. 이 씨는 19세기 초 ‘규합총서(閨閤叢書)’를 통해 음식 조리부터 누에치기, 옷 짓는 방법, 응급처치, 약물 제조법 등 다양한 실용 지식을 총망라했다. 이와 함께 책에 수록된 손암 원중거(1719∼1790)는 연암학파이자 조선통신사 출신으로 18세기 조선에서 일본학을 개척한 인물이다. 서파 유희(1773∼1837)는 훈민정음 연구를 집대성하는 등 국어사 분야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이 밖에 하곡 정제두(1649∼1736)는 주자성리학에 대한 대안으로 양명학을 본격적으로 탐구했다. 김 회장은 “당대 실학이 ‘통정사통(痛定思痛·지난날의 고통이나 실패를 반성하는 것)’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21세기를 맞은 동아시아 3국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여는 데 실학적 가치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독립운동가이자 동아일보 제7대 사장을 지낸 근촌(芹村) 백관수 선생(1889∼?·사진)의 사상과 업적을 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열린다. 전·현직 중진 언론인들의 모임인 서울언론인클럽(회장 강승훈)은 “2·8 독립선언 96주년을 맞아 ‘근촌 백관수의 생애와 업적 조명’ 심포지엄을 다음 달 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기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전북 고창 출신인 백 선생은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400여 명의 재일 유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등 2·8 독립선언을 주도했다. 당시 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 실행위원이던 백 선생은 거사 직후 일경에 체포돼 투옥됐다. 당시 독립선언서 초안은 국내로 전달돼 3·1운동으로 이어졌다. 이후 백 선생은 1937∼1940년 동아일보 사장을 지냈으며 1940년 일제의 동아일보 강제폐간에 맞서다가 한 달간 옥고를 치렀다. 총독부는 “동아일보가 800여 개 지국 등을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했다”며 백 선생을 구속했다. 광복 이후에는 정계에 입문해 1948년 제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법제사법위원장 및 헌법기초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 7월 6·25전쟁 중 납북됐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신복룡 건국대 석좌교수가 ‘정치인 근촌 백관수의 정치이념’을,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가 ‘언론인 근촌 백관수의 항일정신’을 주제로 각각 논문을 발표한다. 안용환 명지대 교수는 ‘근촌 백관수와 2·8 독립선언’을 주제로 독립운동가로서 백 선생의 역할을 조명한다. 또 황인자 새누리당 의원이 2·8 독립선언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는 요지로 발표에 나설 예정이다. 주제발표에 이은 종합토론 시간에는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과 여영무 뉴스앤피플 대표, 박실 전 국회의원(전 한국기자협회장), 홍찬식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이 패널로 참여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조선왕조의 국가 제사시설인 서울 종로구 사직단(社稷壇) 복원이 올 상반기에 추진된다. 일제강점기에 공원이 들어서 훼손되기 직전의 원형을 찾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사직단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회복하기 위해 사직단 복원 정비계획을 마련해 올해부터 복원에 나선다”고 27일 밝혔다. 사직단은 조선시대 왕이 직접 토지와 곡식을 주관하는 신(社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현재 사직단은 제단과 계단, 담장 등만 복원돼 있으며, 제단 주변에 있던 13개 주요 전각은 1922년 공원 조성으로 사라진 상태다. 광복 이후에도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동상이 건립되는 등 사직단 본연의 기능과 무관한 시설물이 들어섰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이르면 4월부터 전각 터에 대한 발굴에 들어가 주춧돌 등 과거 흔적이 남아 있는지를 우선 살펴볼 예정이다. 김재길 문화재청 사무관은 “일제강점기 당시에 찍은 전각 사진이 있지만 올해 발굴에서 흔적이 발견되면 더 정확한 복원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12년간 164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2017년까지 동상을 이전하고 전각에 대한 기본설계를 마친 뒤 2027년에 복원 공사를 끝낼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사직단의 복원 기준 시점을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직전인 20세기 초반으로 잡았다. 숙종이 사직단을 정비한 이후부터 1911년 사직대제(社稷大祭) 폐지 이전까지에 해당하는 사직단 구조물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산 사직단 권역 내 주민센터와 종로도서관, 어린이도서관 철거는 제례공간인 안향청과 전사청 권역에 대한 복원이 끝나는 대로 추진 여부를 다시 정하기로 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이 올해 주요 사업으로 조선시대 과거시험 답안지인 ‘시권(試券)’의 한글 번역에 나선다. 이배용 한중연 원장(사진)은 27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한중연 장서각이 소장한 조선시대 관료들의 시권 300장에 대해 탈초(脫草·초서를 정자로 바꾸는 것)와 한글 번역에 들어갈 것”이라며 “번역이 끝나는 대로 연내 전시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선시대 시권은 합격자들에 한해 다시 돌려줬는데 각 가문에서 보관 중인 시권을 한중연이 수집 보관하고 있다. 이 원장은 “서계 박세당 등의 시권에는 치열한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며 “임금 등 시험관들의 질문이 어땠는지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중연 한국학대학원 아래에 한국학고등연구소를 신설하고 인문정신문화연구센터와 글로벌리더십연구센터를 산하에 두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와 관련해 일부 학부장이 사의를 밝히고 교수협의회가 지난해 12월 반대성명을 내는 등 학내 반발이 일고 있다. 교수협의회 측은 “한국학고등연구소의 기능이 대학원 내 기존 연구센터들과 중복된다. 특정인을 위한 ‘자리 만들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한국사에서 리더십을 체계적으로 조명하고 국내외 석학들과 광범위한 소통과 융합 연구를 벌이기 위해 고등연구소를 설립하려는 것”이라며 “대학원 내 기존 연구센터가 하는 역할과 다른 특별성이 있다”고 밝혔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이 올해 주요사업으로 조선시대 과거시험 답안지인 ‘시권(試券)’의 한글번역에 나선다. 이배용 한중연 원장(사진)은 27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한중연 장서각이 소장 중인 조선시대 관료들의 시권 300장에 대해 탈초(脫草·초서를 정자로 바꾸는 것)와 한글번역에 들어갈 것”이라며 “번역이 끝나는 대로 연내 전시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선시대 시권은 합격자들에 한해 다시 돌려줬는데 각 가문에서 보관 중인 시권을 한중연이 수집 보관하고 있다. 이 원장은 “서계 박세당 등의 시권에는 치열한 시대정신이 담겨있다”며 “임금 등 시험관들의 질문이 어땠는지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중연 한국학대학원 아래에 한국학고등연구소를 신설하고 인문정신문화연구센터와 글로벌리더십연구센터를 산하에 두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와 관련 일부 학부장이 사의를 밝히고 교수협의회가 지난달 반대성명을 내는 등 학내 반발이 커지고 있다. 교수협의회 측은 “한국학고등연구소의 기능이 대학원 내 기존 연구센터들과 중복된다. 특정인을 위한 ‘자리 만들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한국사에서 리더십을 체계적으로 조명하고 국내외 석학들과 광범한 소통과 융합 연구를 벌이기 위해 고등연구소를 설립하려는 것”이라며 “대학원 내 기존 연구센터가 하는 역할과 다른 특별성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조선왕조의 국가 제사시설인 서울 종로구 사직단(社稷壇) 복원이 올 상반기에 추진된다. 일제강점기 공원이 들어서 훼손되기 직전의 원형을 찾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사직단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회복하기 위해 사직단 복원 정비계획을 마련해 올해부터 복원에 나선다”고 27일 밝혔다. 사직단은 조선시대 왕이 직접 토지와 곡식을 주관하는 신(社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현재 사직단은 제단과 계단, 담장 등만 복원돼 있으며, 제단 주변에 있던 13개 주요 전각들은 1922년 공원 조성으로 사라진 상태다. 광복 이후에도 율곡 이이와 신사임당의 동상이 건립되는 등 사직단 본연의 기능과 무관한 시설물이 들어섰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이르면 4월부터 전각 터에 대한 발굴에 들어가 주춧돌 등 과거 흔적이 남아있는지를 우선 살펴볼 예정이다. 김재길 문화재청 사무관은 “일제강점기 당시에 찍은 전각 사진이 있지만 올해 발굴에서 흔적이 발견되면 더 정확한 복원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12년간 164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2017년까지 동상을 이전하고 전각에 대한 기본설계를 마친 뒤 2027년까지 본격적인 복원 공사에 들어간다. 문화재청은 사직단의 복원 기준 시점을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직전인 20세기 초반으로 잡았다. 숙종이 사직단을 정비한 이후부터 1911년 사직대제(社稷大祭) 폐지 이전까지에 해당하는 사직단 구조물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산 사직단 권역 내 주민센터와 종로도서관, 어린이도서관 철거는 제례공간인 안향청과 전사청 권역에 대한 복원이 끝나는 대로 추진여부를 다시 정하기로 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고급 삼겹살의 식재료로 각광받는 ‘제주 흑돼지’(사진)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제주축산진흥원이 기르고 있는 흑돼지 260여 마리를 천연기념물로 26일 지정 예고했다. 살아 있는 돼지가 정부의 보호를 받는 문화재가 된 것이다. 제주 흑돼지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외래종 돼지와의 교배로 순수혈통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제주축산진흥원은 1986년 인근 우도(牛島) 등에서 토종 흑돼지 5마리를 확보해 현재까지 260여 마리로 개체 수를 늘렸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들은 유전자 분석 결과 육지의 돼지와 차별화된 유전정보를 갖고 있고, 외형상으로도 상대적으로 귀가 작고 위로 뻗어 있는 등의 차이를 보인다. 신동렬 문화재청 사무관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우리나라 토종 가축으로 체계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제주 흑돼지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이익의 성호사설에 언급돼 있을 정도로 역사적 연원이 깊다. 특히 제주도는 예부터 돌담을 두른 재래식 화장실에 돼지를 함께 기르는 ‘돗통’을 집집마다 뒀다. 이와 관련해 제주에서는 돼지를 뜻하는 ‘돗’을 접두어로 하는 ‘돗수애’(돼지순대)와 ‘돔베고기’(돼지수육), ‘돗새끼회’(암퇘지 자궁 속의 새끼돼지로 만든 회) 등의 요리를 즐겼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흑돼지 260여 마리 중 일부가 죽거나 병에 걸리면 새끼 중 일부를 대신 지정해 대상 개체 수를 일정하게 유지할 계획이다. 이번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제주축산진흥원이 기르고 있는 흑돼지 260여 마리이므로 식탁에서는 여전히 다른 제주 흑돼지를 만날 수 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고급 삼겹살의 식재료로 각광받고 있는 ‘제주 흑돼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제주 축산진흥원이 기르고 있는 흑돼지 260여 마리를 천연기념물로 26일 지정 예고했다. 살아있는 돼지가 정부의 보호를 받는 문화재가 된 것이다. 제주 흑돼지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외래종 돼지와 교배로 순수혈통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제주 축산진흥원은 1986년 인근 우도(牛島) 등에서 토종 흑돼지 5마리를 확보해 현재까지 260마리로 개체 수를 늘렸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들은 유전자 분석결과 육지의 돼지와 차별화된 유전정보를 갖고 있고, 외형상으로도 상대적으로 귀가 작고 위로 뻗어있는 등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신동렬 문화재청 사무관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우리나라 토종 가축으로 체계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제주 흑돼지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이익의 성호사설에 언급돼 있을 정도로 역사적 연원이 깊다. 특히 제주도는 예부터 돌담을 두른 재래식 화장실에 돼지를 함께 기르는 ‘돗통’을 집집마다 뒀다. 이와 관련, 제주에서는 돼지를 뜻하는 ‘돗’을 접두어로 하는 ‘돗수애’(돼지순대)와 ‘돔베고기’(돼지수육), ‘돗새끼회’(암퇘지 자궁 속의 새끼돼지로 만든 회) 등의 요리를 즐겼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흑돼지 260여 마리 중 일부가 죽거나 병에 걸리면 새끼 중 일부를 대신 지정해 대상 개체 수를 일정하게 유지할 계획이다. 이번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제주 축산진흥원이 기르고 있는 흑돼지 260여 마리이므로 식탁에서는 여전히 다른 제주 흑돼지를 만날 수 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마이클 샌델은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갈등과 하위 공동체들 사이의 갈등을 무시한다.” 박정순 연세대 교수(철학)는 25일 한국윤리학회의 동계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샌델은 하위 공동체와 상위 공동체가 아무런 대립 없이 화합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믿기 어려운 ‘낙관주의적 허상’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동체적 가치와 도덕성을 내세우는 샌델 교수의 이론이 자칫 공동체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식의 ‘공동체 지상주의’로 흐르기 쉽다는 것이다. 특정 학자의 대중 학술서에 대해 비판적인 학술대회가 열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국내에서만 130만 부가 팔린 샌델 교수의 책이 미친 사회적, 학문적 파장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샌델 교수는 대표적인 ‘공동체주의’ 이론가로 자유주의적 다원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공동체적 가치에 기반을 둔 도덕성을 특히 강조해 왔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일본에서도 60만 부가 팔려 큰 화제가 됐다. 이와 관련해 박 교수는 “하버드대 교수라는 지적 브랜드와 대화형 강의의 신선함, 도덕적 딜레마를 설명하는 풍부한 사례 제시,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회적 염증, 덕을 권하는 유교 전통과의 합치 덕분”이라는 고바야시 마사야 일본 지바대 교수의 분석을 소개했다. 윤리나 정치 영역에서 종교를 분리할 수 없다고 보는 샌델 교수의 논리도 도마에 올랐다. 박 교수는 역사상 종교 전쟁의 참혹함을 거론하며 “샌델은 정치 영역에 종교를 개입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근시안적 편협의 소치이며 동시에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학술대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 꽃마을한방병원 콘퍼런스룸에서 열린다. 박 교수와 이한 변호사가 기조발표를, 김선욱(숭실대) 김영기(경북대) 김은희(건국대) 이양수(한양대) 이정은 교수(연세대)가 발표를 맡았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마이클 샌델은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갈등과 하위 공동체들 사이의 갈등을 무시한다.” 박정순 연세대 교수(철학)는 25일 한국윤리학회의 동계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논문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샌델 교수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샌델은 하위 공동체와 상위 공동체가 아무런 대립 없이 화합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믿기 어려운 ‘낙관주의적 허상’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동체적 가치와 도덕성을 내세우는 샌델 교수의 이론이 자칫 공동체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식의 ‘공동체 지상주의’로 흐르기 쉽다는 것이다. 특정학자의 대중 학술서에 대해 비판적인 학술대회가 열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국내에서만 130만 부가 팔린 샌델 교수의 책이 미친 사회적, 학문적 파장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샌델 교수는 대표적인 ‘공동체주의’ 이론가로 자유주의적 다원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공동체적 가치에 기반을 둔 도덕성을 특히 강조해왔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일본에서도 60만 부가 팔려 큰 화제가 됐다. 이와 관련 박 교수는 “하버드대 교수라는 지적 브랜드와 대화형 강의의 신선함, 도덕적 딜레마를 설명하는 풍부한 사례 제시,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회적 염증, 덕을 권하는 유교 전통과 합치 덕분”이라는 고바야시 마사야 지바대 교수의 분석을 소개했다. 윤리나 정치영역에서 종교를 분리할 수 없다고 보는 샌델 교수의 논리도 도마에 올랐다. 박 교수는 역사상 종교 전쟁의 참혹함을 거론하며 “샌델은 정치영역에 종교를 개입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근시안적 편협의 소치이며 동시에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학술대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 꽃마을한방병원 컨퍼런스룸에서 열린다. 박 교수와 이한 변호사가 기조발표, 김선욱(숭실대) 김영기(경북대) 김은희(건국대) 이양수(한양대) 이정은(연세대) 교수가 발표를 맡았다.김상운 기자sukim@donga.com}

서기 2세기 초반 영국 런던. 로마 동전을 가득 실은 수레를 이끌고 기마대가 강을 건넌다. 2000년이 흐른 뒤 영국인들이 ‘템스’라고 이름 붙인 바로 그 강이다. 로마 군인들이 강물 위 나무다리에 들어서기 직전 누군가 멈추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 순간 다리 한가운데가 위로 들리면서 아래로 포도주를 가득 실은 화물선 한 척이 유유히 지나간다. 신기하게도 이 다리는 1894년 지어진 런던의 관광 명물 ‘타워 브리지’와 거의 동일한 지점에 있었다. 심지어 선박이 통과할 수 있도록 다리가 위로 열리는 구조까지 같았다는 게 최근 영국 고고학자들의 연구 결과 밝혀졌다. 저자는 “고대 로마에서 런던은 상업적인 목적으로 세워졌으며 그 핵심 지역이 오늘날 영국의 금융 중심지인 ‘런던 시티’와 일치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고 썼다. 이 책은 마치 미국 드라마 ‘로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불륜을 저지르며 주술사에게 남편의 죽음을 부탁하는 유부녀와 결혼 지참금을 노리고 부유층 여성들에게 접근하는 젊은 남자들, 창녀와 하룻밤을 보내는 그리스 상인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전 로마인들의 욕망과 일상의 삶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저자는 전작인 ‘고대 로마인의 24시간’(까치)에서처럼 이번에도 팩션(faction·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 기법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고고·역사학 기록을 행간에 풀어 넣었다. 특히 책 속 인물은 무덤이나 고대문헌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들로 로마시대 문학작품을 근거로 줄거리를 재구성해 사실감을 높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로마를 출발해 영국, 프랑스, 독일, 이집트 등 로마제국의 광범한 속주를 누비며 당시 생활상을 고증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1만5000km에 달하는 이 긴 여정의 주체가 사람이 아닌 동전이라는 사실이다. 이탈리아 원제목이 ‘한 닢 동전의 제국 여행기’인 이유다. 아피아 가도로 상징되는 로마의 우수한 도로망을 쉴 새 없이 오가며 2000년 전 ‘팍스 로마나’를 일궜던 건 다름 아닌 로마의 화폐였다. 미국이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기반으로 글로벌 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요즘과 비슷한 이치다. 이 책은 곳곳에서 로마의 사회상이 21세기와 별 차이가 없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여성의 사회적 권리에서 로마는 동시대 다른 지역의 추종을 불허했다. 공화정 말기에서 제정 초기에 이르면 여성들은 남성과 똑같이 이혼할 권리가 있었고 남편의 간섭 없이 재산을 처분할 수 있었다.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는 풍자 시집에서 “마치 몽둥이로 맞아 바닥으로 떨어진 뱀처럼 여자는 술을 마시고 토한다. 이런 추태에 남편은 진저리를 치며 눈을 찌푸리면서도 분노를 삭이려고 애를 쓴다”고 적었다. 세계제국을 꿈꾼 히틀러나 나폴레옹, 스탈린과 달리 로마가 수천 년을 영속할 수 있었던 저력은 무엇일까. 저자는 로마인들이 권력과 힘의 전략을 효율적이고 균형감 있게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힘이 있다고 마구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소진되는 반면 권력은 잘 사용할 경우 빠르게 강화되며 비용도 적게 든다. 로마인들은 고대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했지만 이를 외과의사처럼 신중하게 사용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