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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과 이슬람국가(IS)의 박해를 피해 유럽으로 향하던 시리아 난민 어린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19일 터키에서 그리스로 건너가려던 난민선이 레스보스 섬 북쪽에서 가라앉아 5세 시리아 소녀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리스 해안 경비대는 레스보스 섬을 출발했다가 난파한 이 난민선에서 10여 명을 구출했으나 숨진 소녀 외에 14명가량이 아직 실종 상태라고 전했다. 전날 발생한 난민 보트 전복사고로 숨진 4세 여아의 시신도 터키 서부 이즈미르 주(州)의 에게 해 해안으로 떠밀려왔다. 유럽으로 가려다 지중해와 에게 해에서 숨진 중동 아프리카 출신 난민은 올해 들어서만 2600여 명에 이른다.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등 난민 주요 이동 경로에 있는 국가들이 국경을 폐쇄하자 유일하게 국경이 열린 오스트리아로 난민이 몰려드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13일부터 세르비아에서 모두 2만 명의 난민이 들어온 크로아티아도 국경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슬로베니아도 난민에게 최루가스를 발사하는 등 강경 대응하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18, 19일 난민들을 버스 수십 대에 태워 헝가리로 돌려보냈다. 이에 헝가리 정부는 “헝가리 주권을 훼손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헝가리 정부도 이 난민들을 다시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로 데려가 걸어서 국경을 넘게 했다고 BBC는 전했다. 오스트리아 경찰은 19일 하루 동안 헝가리 등지에서 넘어온 난민이 1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의 요하나 미클라이트너 내무장관은 “이웃 국가들이 유럽연합(EU) 규범을 준수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이처럼 난민 문제가 회원국 간 갈등 요소로 부각되자 EU는 23일 난민 위기 논의를 위한 특별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했다. 하루 전 열리는 EU 내무장관 회의에선 난민 12만 명을 추가로 수용하는 분배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독일의 토마스 데메지에르 내무장관은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EU에 들어오는 난민 규모에 상한을 두고, 허용치를 초과할 경우 출신국으로 난민들을 송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의회정치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국회의원들이 가을 정기국회 때만 반짝 일하는 척하는 ‘한국식 국정감사’ 제도는 없다. 그 대신 다양한 위원회와 소위원회가 회기 중 끊임없이 개최하는 감독청문회(oversight hearing)를 통해 거의 매일 국정감사가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처럼 특정 사안을 파고드는 조사청문회(investigative hearing)와 달리 감독청문회는 행정부 활동의 효율성, 경제성, 합리성 등을 점검하고 동시에 이를 촉진하기 위해 실시된다. 이달 16일 연방 상원의 경우 하루 종일 7개의 청문회가 열렸다. 오전 10시 건강교육노동연금위원회는 환자들이 병원의 진료기록에 보다 잘 접근할 방안을 논의하는 청문회를 열었다. 오후 2시 반 외교위원회는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IS)’를 퇴치하기 위한 행정부의 정책을 점검하는 청문회가 열렸다. 상하원 외교위원회가 여는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이나 인권 관련 청문회, 대(對)아시아 및 중국 관련 정책에 대한 청문회도 연중 단골로 열리는 감독청문회라고 할 수 있다. 의원들은 청문회에 나온 장관 등 고위 당국자들을 상대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공무원의 권력 남용과 예산 낭비 등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안에 대해 의회의 자체 수사기관인 회계감사원(GAO)을 가동해 조사 및 수사에 나선다. 직원 3400명에 예산이 5억6000만 달러에 이르는 GAO는 의회의 연방수사국(FBI)으로 불린다. 일본 역시 국정감사가 없다. 의회 다수당이 국정을 장악하는 의원내각제 특성 때문이다. 의회 다수당 의원들이 직접 국정을 이끌다 보니 국정감사 제도도 없다. 국정에 문제가 생겨 집권당의 구심력이 떨어지면 의회를 해산하고 선거를 통해 심판받는 게 보통이다. 일본 의회는 그 대신 한국 국회와 마찬가지로 개별 사안에 대한 국정조사권은 갖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해 2012년 7월 일본 국회가 내놓은 640쪽의 보고서는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10명의 위원과 관련 전문 인력이 1167명을 인터뷰한 결과다. 프랑스에서는 의회의 국정감사나 조사권에 대한 별도의 규정은 없지만 의회의 행정부 감시 및 통제를 의회의 핵심 기능 및 권한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처럼 일률적인 국정조사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이슈가 있을 때마다 ‘조사위원회’가 구성된다. 조사위는 야당이나 소수당의 대표가 회기 중 한 차례에 한해 본회의에 구성을 제안할 수 있다. 조사위는 증인의 출석 및 증언, 자료 제출에 대한 강제권을 행사한다. 영국 의회의 특별위원회도 국정 감독 업무를 맡고 있다. 특별위는 증인의 소환 및 증거자료의 제출 요구 등을 할 수 있으며 청문회를 개최할 수도 있다. 독일 헌법에는 의회의 국정조사권이나 국정감사권에 대한 포괄적 규정을 담은 조항이 없다. 그러나 연방하원 의원 4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의회 내에 조사위원회가 설치될 수 있다. 본회의는 이 요구를 지체 없이 의결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 조사위는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공개청문회와 자료 제출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또 불출석한 증인에 대해 강제구인이 가능하고, 자료 제출 거부에 대해서는 법관의 심사를 거쳐 압수수색을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워싱턴=신석호 kyle@donga.com / 도쿄=배극인 /파리=전승훈 특파원}
헝가리 경찰이 세르비아와 접한 국경에서 입국을 허용하라고 시위를 벌이던 난민들과 충돌해 수십 명이 부상당하는 등 ‘발칸 루트’가 혼란에 빠졌다. 16일 오후 헝가리와 세르비아를 잇는 뢰스케 국경검문소에서 난민들은 “문을 열라”며 시위를 벌이고 헝가리 경찰에 물병과 돌을 던졌다. 경찰이 난민들에게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난민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헝가리 경찰은 철조망을 자르거나 훼손한 난민 60명을 체포했으며,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난민들이 최루가스를 마셔 세르비아 구급차가 출동하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헝가리는 기관총을 장착한 군용차 험비 여러 대를 국경에 배치했고, 충돌을 빚은 뢰스케 국경검문소를 30일 동안 잠정 폐쇄했다. 이라크 난민 아미르 하산은 AP통신에 “우리는 전쟁과 폭력에서 도망쳤고, 유럽에서 이런 무자비함과 비인간적인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6일 기자회견에서 헝가리 경찰과 난민 충돌 사태에 대해 “충격적이며 용납해선 안 될 일”이라며 난민 인권을 존중할 것을 헝가리 당국에 거듭 촉구했다. 난민 상당수는 전날부터 헝가리를 지나 독일로 가는 길이 막히자 세르비아 북서부와 접경한 크로아티아로 경로를 바꿨다. 한편 헝가리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가 여성 카메라 기자가 고의로 발을 거는 바람에 아들을 안고 넘어져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던 시리아 난민 오사마 압둘 모흐센과 두 아들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새 삶을 찾게 됐다. 스페인 국립 축구코치트레이닝센터는 모흐센이 시리아 1부 팀인 축구클럽 알 포투와의 전 감독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에게 스페인에서 일을 시작해볼 것을 제안했다고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가 보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저도 여기서 좀 그려도 될까요?” 1992년 4월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 관광객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10여 명의 ‘거리의 화가’들 앞에 한국에서 막 건너 온 30대 화가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거리의 화가들에게도 엄연히 자신만의 구역이 있는 법. 중국 천안문 사태로 구속됐다가 파리로 망명왔던 화가 왕두도 당시 이 곳에서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온 청년의 수줍은 표정과 눈빛이 너무나 예뻐서 내 옆에서 그리게 해달라는 요청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왕두(王度·58)와 프랑스 한국현대미술작가협회인 ‘소나무회’ 대표인 한홍수 화백(56). 파리 거리의 가난한 이방인 화가였던 두 사람이 23년 만에 재회했다. 유네스코 창설 70주년 기념 특별전시회에 초대받아 ‘제3의 현실’이란 주제로 18일까지 2인전을 열게 된 것이다. 15일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왕두는 “10년 넘게 파리의 광장과 거리는 우리의 ‘사무실’이었다며 ”우리를 ‘에펠탑 학파’로 불러달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을 던졌다. ●가난한 거리의 화가, 예술가의 꿈 1989년 6월 중국 천안문 사태가 터졌을 때 왕두는 반체제 시위에 참가한 혐의로 당국에 의해 긴급체포됐다. 그는 광저우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중국의 기성체제에 도전하는 전시회와 사회문제를 비판하는 강연회를 수차례 개최해 당국의 감시를 받아온 요주의 인물이었다. 결국 9개월 동안 감옥에 갇힌 왕두를 구하기 위해 국제 인권단체와 미술가들이 움직였다. 그는 결국 광저우에서 만난 프랑스 여기자와의 위장결혼을 통해 극적으로 파리로 망명하는 데 성공했다. 1989년 당시 한 화백은 서울 이화여대 앞에서 미술학원 원장을 하고 있었다. 3년 전에 시작한 학원은 번창했다. 33만원의 월 강습료를 내는 수강생만 30명이 넘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이를 가르치고, 돈을 벌고, 안정된 삶을 살게 될 수록 마음 속 한구석이 허전했다. 화가로서 자신의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하고 있던 것. 결혼해서 자녀까지 있는 30대 중반의 가장이었던 그는 모든 익숙하고 안정된 삶을 버리고 파리로 떠났다. 파리에 도착한 한 화백은 문자 그대로 ‘길바닥 위’에서 다시 시작했다.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은 예술가들이 당국의 공식적인 허가를 받고 초상화를 그려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가난한 이민자 화가에게까지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노트르담 성당 앞 광장이나 에펠탑 앞 등 가능한 곳이면 어디든 화구를 펼쳐놓았다. 때때로 경찰의 단속에 벌금을 물어야 했지만, 약 10년 동안 거리에서 생계를 해결하며 예술가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거리의 화가의 수입은 쏠쏠했다. 여름휴가철 등 3개월만 일해도 1년을 먹고 살 수 있었다. 당시 프랑스 최저임금 근로자의 한달 소득이 4000프랑(약 82만원)이었는데, 관광객이 몰려드는 날에는 하루에 4000프랑을 벌기도 했다. 두 사람은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여름철 3개월만 일하고 나머지 9개월 동안에는 자신의 작업에 몰두했다. 한 화백은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비로소 자신을 얽매어왔던 체면과 관습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는 또한 초상화 화가를 단순히 생계를 위한 작업이 아니라 전세계인들의 다양한 인체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탐구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는 신체의 일부분을 마치 풍경화처럼 투명하고도 몽환적으로 표현해내는 독특한 인물화 화법으로 프랑스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날 유네스코에 전시된 그의 작품인 ‘기원의 뒷면’은 가장 에로틱(性)하면서도, 성(聖)스러운 인간의 몸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구도(求道)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었다. 개막식에 참석한 유네스코 직원과 관람객들은 ”수없이 바라봐도 새로운 느낌이 나는 작품“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한 화백은 또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국 현대화가들의 모임인 ‘소나무회’를 이끌며 국제적인 예술교류 작업을 주도해왔다. 소나무회는 1992년 파리 교외의 이씨레물리노시(市)가 한국인 화가들에게 작업실로 제공했던 군수공장 터에서 태동했다. 이 공장에는 한국 화가 뿐 아니라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중국, 베트남 작가 등 50여 명이 상주하며 서로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는 전시회를 시도해왔다. 한 화백이 기억하는 ‘거리의 화가’ 왕두에 대한 에피소드 2가지. 에펠탑 앞에서 그림을 그릴 때 경찰이 단속을 해도 왕두는 좀처럼 도망가지 않고 태연하게 그림을 그렸다. 경찰이 당신들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자, 왕두는 ”아티스트“라고 당당히 대답했다. 경찰이 이에 ”당신이 아티스트면 파리는 예술가로 가득 찼다“며 비웃었다. 그러나 왕두가 ”그거 잘됐군, 파리가 경찰로 가득찬 것보다 훨 낫네!“라고 응수하자 경찰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떠나갔다고 한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동료 화가들은 생 미셸 광장 인근의 맥줏집에서 밤새 술을 마셨다. 술값이 몇 천 프랑이 나올 정도였다. 당시 중국 출신 화가들은 술자리에 잘 어울리지 못했다. 초상화 한 점의 가격 200프랑이 당시 중국에서는 황소 한 마리 값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두는 한국 화가들이 두 번 정도 술을 사면, 자기가 꼭 한 번씩 샀다. 그는 ”무척 큰 돈이었지만, 홍수에게 자존심에서 질 순 없었다“며 웃었다. ●세계적 화가로 뜬 이후…, 노블레스 오블레주 왕두는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21명의 중국의 현대미술작가로 초청되면서 세계 미술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됐다. 1989년 중국 공산당의 억압적 체제에 항거했던 천안문 사태가 오히려 중국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이다. ‘후(後) 89예술’로 불리는 왕두, 황용핑, 차이궤창, 쉬방, 천단칭 등의 작가들이 유럽과 미국으로 망명해 해외에 알려지면서 중국 현대미술의 1세대 작가로 떠올랐다. 서구의 미술계는 ‘죽(竹)의 장막’을 뚫고 나타난 중국 작가들의 정치적 팝과 냉소적 현실주의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특히 왕두는 신문 잡지 등 미디어에 나타난 이미지를 3차원 조각품으로 표현해내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담긴 조각품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이번 유네스코 전시회에서도 작품 하나당 600kg에 이르는 대규모 청동조각품 3점을 선보였다. 영어, 아랍어, 러시아어로 된 종이신문이 구겨져 길에 버려진 모습을 조각작품으로 재현했다. 왕두의 작품은 파리, 뉴욕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의 한 장면을 조각으로 표현한 왕두의 ‘키스’는 프랑스 퐁피두센터에 소장돼 있다. 지난달에는 광주 아시아문화예술의전당이 7m 높이의 ‘빅토리’라는 왕두의 작품을 설치하기도 했다. 왕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중국 본토에서도 대규모 전시회를 열어 중국 정부와 빚었던 정치적 갈등도 해소했다. 이번 유네스코가 창립 70주년 기념특별전에 왕두와 한 화백을 초청한 것은 중국과 한국, 프랑스와 유럽의 국경을 초월하는 두 사람의 ‘열린 예술성’에 주목한 것이다. 세계시장에서 각광받는 중국의 현대미술은 중국의 이미지를 날 것으로 드러내 배타적인 ‘중화(中華)주의’를 느끼게 할 때도 많다. 그러나 왕두의 작품은 보다 유럽적인 보편성을 갖고 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대사회를 비판하는 글로벌한 감각을 추구한다. 20년 넘게 프랑스 작가로 활동해 온 왕두는 ”나는 중국인도 아니고, 프랑스인도 아니며, 그냥 왕두“라고 스스로 정체성을 밝혀왔다. 왕두는 2000년대 이후 세계적인 조각가로 명성을 날리면서 더 이상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됐다. 무명 작가에서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면 자신의 올챙이적 시절의 ‘흑(黑)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가능한 피하는게 인지상정이다. 또한 ‘사촌이 땅이 사면 배가 아프다’는 한국의 속담처럼 성공한 사람에 대해서는 박수를 쳐주기 보다는 시기하고 헐뜯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왕두는 스케일이 달랐다. 그는 20여년 전부터 거리에서 함께 그림을 그렸던 옛 동료들을 잊지 않고 챙기면서 예술적인 작업을 함께 해왔다. 파리 교외의 알포르빌에 있는 대형 공장을 개조한 왕두의 아뜰리에에는 중국과 유럽출신 젊은 작가들이 5~6명이 늘 숙식을 함께 한다. 왕두는 자신의 작업을 돕는 예술가 지망생들에게 학비, 장학금까지 지원해준다. 왕두의 화실은 중국출신 신진작가들의 장학 기숙학원이자 예술가들의 국제적인 교류의 장이었다. 이는 해외로 진출한 중국인 네트워크의 특징이기도 하다. 먼저 자리잡은 교민들이 후발주자가 자립할 때까지 지원하며 지역의 상권을 장악하는 중국인들의 연대의식은 유명하다. 예술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재불 중국화가들의 경우 양페이밍(嚴培明) 디종국립예술학교 교수를 중심으로 화랑, 평론가, 기획자로 구성된 신진작가의 국제적인 활동을 도와주는 네트워크 잘 구축돼 있다. 왕두는 한 화백과도 ”일회적인 전시에 그치지 않고 중국, 한국, 유럽에서 순회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화백이 수년 전 소나무회의 회장을 맡게 된 이유도 중국 예술가들의 국제적활동을 지원하는 네트워크에서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 화백은 지난달 소나무회 작가들과 밤새 통음(痛飮)을 하며 이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들은 세계 미술시장에서 중국 자본의 영향력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돈보다는 우선 남의 성공에 대해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도록 우리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을 했다. 한 화백은 ”소나무회를 국제적인 네트워크로 키워 성공한 사람들은 후발주자를 이끌어주는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실천하는 모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영국판 이석기?’ 영국의 신임 노동당수로 선출된 ‘강성좌파’ 제러미 코빈(66·사진)이 제2차 세계대전 기념행사에서 영국 국가 제창을 거부했다. 코빈 당수는 15일 영국 런던 세인트폴 성당에서 열린 영국 본토 항공전 75주년 기념식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등 참석자들이 영국 국가 ‘신이여, 여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Queen)’를 부르는 동안 침묵을 지켰다. 영국 본토 항공전 기념식은 1940년 영국이 독일과 벌였던 치열한 공중전 희생자를 추도하는 행사다. 참석자 대다수는 “불충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외손자인 니컬러스 솜스 보수당 의원은 “국가를 부르지 않는 것은 여왕과 참전용사들에 대한 무례 행위”라고 비판했다. 사이먼 댄적 노동당 의원은 “코빈 당수는 더 이상 평의원이 아니다”라며 “국가 제창 거부는 노동당이 국민들에게 매우 불경한 당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코빈의 대변인은 “국가 제창 때 침묵 속에서 존경심을 표현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올해 초 내란선동 혐의로 징역 9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도 2012년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라며 애국가의 의미 자체를 거부하고 제창도 하지 않아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 각국이 난민 확대 수용을 선뜻 합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난민들의 서유럽행 길목에 있는 헝가리가 난민의 전면 차단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15일(현지 시간) 최근 의회가 개정한 이민법이 이날 0시부터 시행되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난민 유입을 차단했다. 내각회의를 통해 비상사태를 결정한 헝가리 정부는 군부대를 국경에 파견해 통제하고 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비상사태 선포로 불법 입국자가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집은 영장 없이도 수색이 가능하고, 평소 경찰이 맡던 국경 수비에는 군대가 투입된다. 헝가리 정부는 새 이민법 시행 직후인 이날 오전 국경 철조망을 훼손하거나 무단 통과한 60명을 체포해 사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헝가리 의회는 이달 4일 불법 이민자 규모가 수용 한도를 초과하면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도록 이민법을 개정했다. 불법 국경 통과땐 징역 3년형, 철조망을 훼손하면 5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헝가리는 이날 또 세르비아에서 난민 신청을 하지 않은 이민자들은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세르비아에서 난민 신청을 하지 않고 헝가리에서 신청한다면 모두 거절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르비아 정부는 헝가리가 돌려보낸 난민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유럽연합 국경관리기관인 프론텍스에 따르면 8월에 유럽에 입국한 난민은 15만6000명으로 지난달 10만7500명에 이어 다시 최고 기록이 경신됐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의 한국어 작품 해설 서비스가 대한항공의 후원으로 제작돼 14일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이날 오후 1시 반 파리 오르세 미술관 5층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사진), 기 코즈발 오르세 미술관장을 비롯한 주요 재계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어 작품 안내 서비스 기념행사가 열렸다. 지난해 10월 대한항공은 오르세 미술관과 후원 협약을 맺고 오르세 미술관의 멀티미디어 가이드에서 기존 9개 언어에 한국어를 추가했다. 1986년 12월 설립돼 인상파 작품을 전시하는 오르세 미술관은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센터와 함께 파리의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이번 서비스로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 고흐의 ‘자화상’,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을 한국어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대한항공의 한국어 안내 서비스 후원은 2008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2009년 러시아 예르미타시 박물관, 영국 대영 박물관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조 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대한항공이 파리에 여객노선을 개설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에 한국어 서비스를 제공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 기념물은 고통을 겪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영국과 케냐가 미래로 나아가려면 현재를 직시하고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크리스천 터너 케냐 주재 영국대사) 12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우후루 공원에는 과거 영국 식민지배에 항거한 케냐인들에게 가한 폭력, 고문, 가혹행위를 반성하는 동상과 기념비가 설치됐다. 제작과 설치에 든 비용 9만 파운드(약 1억6500만 원)는 영국 정부가 전액 부담했다. 영국은 식민통치 60년 만에 고문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배상금도 지급한 데 이어 양국의 화해를 상징하는 기념물까지 조성한 것이다. 케냐인들은 1952년 주요 부족인 키쿠유족을 중심으로 영국 식민지배에 항거하는 ‘마우마우’ 무장봉기를 시작했다. 마우마우는 당시 케냐 독립운동을 이끈 단체의 이름이다. 영국 식민통치 당국은 1952∼1960년 비상사태를 선포한 후 봉기 가담자들을 체포해 물고문, 생매장, 성폭행 등 가혹행위를 하며 무자비하게 제압했다. 이 기간 영국인 사망자는 32명에 그쳤으나 케냐인은 1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케냐 국가인권위원회(KHRC)는 9만 명이 처형되거나 고문당했고, 16만 명이 체포돼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2013년 6월 윌리엄 헤이그 전 영국 외교장관이 “영국 정부는 식민통치 당국이 케냐인을 상대로 저지른 고문과 가혹행위를 인정한다. 이에 대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밝히며 피해자 5228명에게 총 1990만 파운드(약 364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조형물을 설치하기로 약속했다. 이날 행사에는 수천 명의 마우마우 독립투사가 참석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아미나 모하메드 케냐 외교장관은 “조형물이 화해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쿠아 무투아 케냐 국가인권위원장은 “식민통치는 인권에 대한 범죄였지만 영국의 사과는 받아들여졌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이번 조형물 건립은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가혹행위에 대해 사과하는 식민통치국의 사례로 꼽힌다.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지만 유럽 각국은 최근 식민통치에 대한 배상과 사과에 나서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13년 9월 인도네시아 점령 통치 시기인 1945∼1949년에 저지른 대규모 학살에 대해 사과하고 유족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했다. 2008년에는 이탈리아가 1911년부터 30년간 리비아를 식민 지배한 것에 대한 보상 명목으로 리비아에 25년간 50억 달러(약 5조8000억 원)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영국 노동당을 이끌 차기 당수에 반(反)긴축을 표방한 ‘강성좌파’ 제러미 코빈 의원(66·사진)이 선출됐다. 노동당은 차기 총수 투표 결과 코빈 후보가 1차 투표에서 과반인 59.5%를 얻어 다른 세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됐다고 12일 발표했다. 코빈 신임 당수는 중도세력을 끌어안기 위해 제3의 길을 표방했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신(新)노동당’ 노선에 반대해 온 강성좌파다. 영국 가디언지는 “아웃사이더가 당수에 올랐다”고 표현했다. 노동당 지지자들은 집권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복지 삭감과 재정 긴축에 반대하며 ‘서민, 사회적 약자의 위기’를 강조한 코빈에게 열광했다. 코빈 의원은 영국 런던 폴리테크닉을 중퇴한 후 옛 전국재단사노조연맹(NUTGW)과 전국공무원노조(NUPE) 등 노조단체에서 일하던 중 1974년에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철도 국유화를 주창해 왔으며, 최근엔 전기·가스 메이저 업체의 국유화도 제안했다. 또한 최근의 난민 사태에 대해 “그들은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이라며 난민 수용 확대를 요구할 것임을 시사했다. 비타협적 전통 좌파노선을 내세운 코빈의 돌풍에 노동당 내부에서는 당혹감과 분열에 빠져들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코빈이 당선되면 노동당이 절멸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레이철 리브스, 에마 레이놀즈, 이벳 쿠퍼 등 노동당 예비내각을 맡고 있는 10여 명의 의원은 코빈 체제에서 예비내각 불참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코빈은 “덜 논쟁적인 리더십을 지향하겠다”고 말했다. 코빈은 “보수당 정부의 긴축 프로그램, 복지 개혁안, 노동법 개정안 등에 대해 할 일이 많다”고 밝혀 우선 이들 분야에 집중할 것임을 시사했다. 코빈 의원의 당선으로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4·버몬트)의 돌풍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2일 “영국에서 코빈 의원이 노동당 당수에 오른 것처럼, 미국에서는 샌더스 의원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따돌리고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연합(EU) 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 조약’ 가입국인 덴마크가 스웨덴 등 북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 행렬을 막기 위해 독일을 오가는 열차와 고속도로를 폐쇄하는 무리수를 뒀다가 취소했다. 비난 여론 때문인데, 덴마크 경찰은 폐쇄 조치 하루 뒤인 10일 난민들의 북유럽행을 막지 않겠다고 물러섰다. 이에 앞서 덴마크 경찰은 9일 수도 코펜하겐에서 남서쪽으로 135km 떨어진 뢰드뷔하운 항구에서 난민 350명이 탄 열차 2대의 운행을 금지했다. 난민들은 경찰의 하차 요구를 거부하며 스웨덴으로 이동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일부는 열차에서 버텼고 일부는 열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치기도 했다. 경찰은 이후 덴마크∼독일 철도 운행을 모두 중단시켰다. 옌스 헨리크 호이비에르 덴마크 경찰총장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덴마크에) 망명하기를 원치 않는 난민들을 붙들지 않기로 했다”며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밝혔다. 경찰의 발표 이후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경찰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6일 이후 최소 3200명의 난민이 덴마크에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덴마크에서는 올 7월 총선에서 중도 우파 자유당이 승리해 이민자 혜택 축소에 나섰다. 덴마크는 난민들이 EU 국가 중 처음 입국한 나라에 망명을 신청해야 하며 다른 나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더블린 조약’을 근거로 9일 이들의 스웨덴행을 막아 비난 여론을 자초했다. 한편 유럽 난민 사태의 발원지인 시리아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서방의 시리아 공습 계획도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는 8일부터 시리아의 수니파 무장집단 이슬람국가(IS)의 근거지인 락까에 대한 정찰비행에 나섰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9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다음 주 의회에서 시리아 공습 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토니 애벗 호주 총리도 이날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IS 공습 대상 지역을 이라크에서 시리아로 넓히기로 했다. 영국 정부도 공습 재개를 위해 의회의 비준을 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비호해온 러시아도 시리아 내전에 본격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사태가 꼬이고 있다. 9일 AFP통신은 “최근 러시아 수륙 양용 상륙함 두 척이 시리아 타르투스 항에 도착했으며, 시리아 공항에 러시아 해병대를 태운 병력 수송차와 수송기 10여 대가 있는 것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군사 개입에 반대하며 견제에 나섰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9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러시아의 군사 개입은 4년 이상 지속돼 온 시리아 내전에 따른 폭력과 유혈 사태를 더욱 확대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한국의 내·외국인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가운데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노동시장이 외국인에 대한 배타성이 강하고, 불평등이 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OECD가 9일 발표한 ‘2015 고용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내국인 근로자의 임금은 외국인의 1.55배 수준으로 조사 대상 22개국 중 가장 높았다. 한국 다음으로는 이탈리아(1.32배), 스페인(1.31배) 순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처우가 좋지 않았다. 반면 호주(0.93배), 슬로바키아(1.03배), 캐나다(1.04배)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임금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OECD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내국인 근로자가 외국인보다 15.1%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는 외국인 임금 격차의 72%는 ‘기술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기술에는 업무 능력, 언어 능력 등이 포함된다. 한국에는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고, 특유의 단일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겹쳐 외국인 근로자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것으로 지적된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노동통계연구실장은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 생산직 근로자들이기 때문에 이들과 내국인의 평균 임금을 비교하면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며 “유럽 등 다른 OECD 국가들은 저임금 생산직부터 고임금 전문직까지 다양한 직종의 인력들이 자국에 들어와서 일한다”고 말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단순 업무에 종사하는 저학력 외국인들이 국내에 월등히 많은 이유는 국내 노동시장에서 미스매치가 이뤄지기 때문”이라며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오려면 고소득 전문직을 데려와야 국내 이민정책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이 겪고 있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위기가 지구촌 안보 문제로 급부상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시리아 난민 발생에 책임이 있는 수니파 이슬람 무장집단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을 적극 검토하고 나섰고, 미국도 시리아 난민 문제를 안보 문제로 보고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7일 의회 연설에서 시리아를 공습해 IS에 가담한 영국인 조직원 2명을 살해한 사실을 공개했다. 지난달 21일 시리아 락까에서 이동 중인 카디프 출신의 레야드 칸(21)과 애버딘 출신의 루훌 아민(26)을 겨냥해 영국 공군 드론이 정밀 공습을 했다는 것. 캐머런 총리는 또 다른 영국인 조직원 주나이드 후사인(21)도 지난달 24일 미군이 락까에서 벌인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영국군이 전시(戰時)가 아닌 상황에서 외국에 있는 자국민을 공격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이번 공습은 정부가 의회 승인 없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진행했을 정도로 급박하게 이뤄졌다. 야당이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나서자 캐머런 총리는 ‘자위권’에 의한 공습으로 법무장관의 승인을 거쳤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들이 어떤 테러를 모의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칸이 지난달 15일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대일(對日) 전승기념일 행사에서 여왕을 암살하려 했다고 전했다. 당시 기념행사에는 여왕은 물론이고 캐머런 총리와 찰스 왕세자 부부도 참석했다. 일간 가디언은 “5월 8일 유럽 전승기념일과 6월 27일 국군의 날 행사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정부도 시리아 내 IS 근거지에 대한 본격적인 공습 계획을 밝혔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7일 기자회견에서 “8일부터 시리아에서 IS 공습을 위한 정찰 비행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올랑드 대통령은 “테러리즘과 전쟁이 난민들의 엑소더스를 부른 원인”이라며 “IS에 대한 공습이 필요해졌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의회는 15일 시리아 IS에 대한 공습 허가를 놓고 표결할 예정이다. 프랑스는 미국 주도 다국적군의 IS 공습에 가장 먼저 동참을 선언해 최근 1년간 이라크 북부의 IS 근거지에 217차례의 공습을 가했다. 그러나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지위를 강화시킬 것을 우려해 시리아 내 IS 근거지에 대한 공습은 하지 않았다. 그동안 유럽 난민 위기를 관망해 온 미국 정부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피터 부가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7일 e메일 성명에서 “미국은 글로벌 난민 위기에 대응해 난민 재정착 문제를 포함한 다양한 범위의 대책을 활발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언론들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시리아 난민 사태를 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동 난민의 대량 유입은 유럽 동맹국의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정보 당국은 특히 IS 조직원들이 난민들 사이에 섞여 유럽 등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갈 가능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에 군사 지원을 확대하려 한다고 보고 강경 대응에 나섰다. 그리스는 러시아 군 수송기의 영공 통과를 허용하지 말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이를 받아들일지 고심하고 있다고 AFP통신이 7일 보도했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8일 2011년 이후 5년째 내전 중인 시리아는 전쟁 전 인구 2300만 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피란민 신세가 됐고, 이 중 400만 명은 국경을 넘어 터키, 레바논, 요르단 등으로 떠났다고 보도했다. IS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이라크에서도 260만 명이 IS를 피해 난민 신세가 됐다. 중동 출신 난민이 최근 급증하면서 중동에서 그리스로 입국한 난민이 올해 현재까지 23만9000명으로, 전년도 4만5000명에 비해 5배 이상으로 늘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터키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으로 유럽 내 난민들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마침내 5일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에 있던 난민 1만 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시리아 난민 1만5000여 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1월 이후 아프리카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은 20여만 명에 달한다. 그들은 왜 목숨 걸고 조국을 떠나는 것일까.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 그리스 코스 섬과 함께 유럽행 난민 위기의 3대 핵심 지역으로 꼽히는 프랑스 북부 칼레 항 난민촌에서 자유를 향해 목숨을 건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았다. 5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북부 칼레 항. 곧 영국으로 떠날 페리호 출발을 앞두고 항구 입구 도로에는 늘어선 대형 트럭과 승용차 사이로 곤봉을 손에 쥔 프랑스 경찰들이 50m 간격으로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숲 속에서 7, 8명이 몰려 나와 경찰들과 험악한 말싸움을 벌이는 사이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동시다발로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무전기를 들고 있던 경찰들이 삽시간에 달려 나가 곤봉으로 쫓아냈다. 칼레 항은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 땅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곳. 지난달 28일과 29일 난민 2000여 명이 영국으로 가는 해저터널인 유로터널을 지나는 열차를 타기 위해 기습 진입을 시도하면서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곳이다. 여기서 열차를 타면 35분 만에 영국에 닿을 수 있다.○ ‘정글’로 불리는 난민촌 항구 인근 숲 속에 위치한 난민촌으로 들어선 순간 ‘과연 이곳이 유럽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검은색 비닐로 둘러싼 판자촌 오두막, 구멍 난 수도 파이프에서 새어 나오는 물로 빨래하는 여인…. 거리엔 플라스틱 병들이 나뒹굴고, 쓰레기와 오물이 섞인 악취가 코를 찔렀다. 난민들은 3000∼4000명이 살고 있는 이 캠프를 ‘정글’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키 작은 관목과 덤불이 숲을 이룬 곳에 텐트들이 어지럽게 섞여 있으니 그야말로 정글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난민촌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간이 공중화장실, 수도 시설, 음료수를 파는 상점과 식당, 카페, 학교, 모스크, 교회까지 있었다. 난민들 중에는 부상 때문에 악수를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많았다. 열차나 트럭 위에 올라타다가 손이 부러지거나 심하게 다쳤지만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처지다. 세 살배기 아일란의 죽음이 알려진 직후여서 우선 시리아 난민들부터 만나 보았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시리아 사람들은 150여 명.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탈출했다는 카웨이 씨(21)는 “나도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려고 밀수꾼에게 1200달러를 주고 고무보트를 탔는데 배가 높은 파도에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터져 나오던 여성과 아이들의 비명을 잊을 수가 없다”며 “아일란의 소식을 듣고 내 아이가 죽은 것 같아 펑펑 울었다”고 했다. 다마스쿠스대 2학년이라는 그는 군에 징집되는 것을 피해 탈출했다고 했다. 카웨이 씨는 “내가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남을 죽여야만 하는 현실이 죽기보다 싫었다”고 했다.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여권을 구했다는 그는 레바논, 터키,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헝가리를 거쳐서 이곳까지 오는 데 총 1만 유로(약 1330만 원) 가까이 들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청년 사피 씨(25)도 참혹한 조국의 현실을 피해 도망 나온 경우다. 3년간 미군 통역원으로 일했다는 그는 어느 날 탈레반이 마을에 들어와 미군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차례로 끌고 갔는데 아버지도 그 과정에서 총살당했다고 한다. 사피 씨는 “지배자가 바뀌면 적과 아군이 바뀌어 서로 죽이고 있다”며 “영국 버밍엄 공장에서 일하는 사촌형이 있는데 나도 영어를 할 수 있으니 꼭 영국에 정착해 새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목숨 걸고 열차로 뛰어드는 사람들 난민촌에는 매일 오후 5시 프랑스 구호단체들이 제공하는 급식을 받기 위해 늘어선 사람들로 긴 줄이 생긴다. 그리고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탈출이 시작된다. 경로는 다양하다. 우선 유로터널을 통과하는 영국행 화물열차에 몸을 실으려는 사람들이다. 난민촌에서 빠져나와 이들이 유로터널 선로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다. 경찰 눈에 띄지 않게 되도록 짙은 색 옷을 입고 약 12km를 걸은 뒤 선로 인근 도로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가슴 높이 덤불 숲 사이를 15분간 헤쳐 가면 선로 앞 5∼6m 높이 철조망을 만날 수 있다. 이 철조망을 넘어야 선로까지 접근할 수 있다. 이들은 새벽까지 화물열차 밑에 숨어 있다가 출발 직전 빠져나와 달리기 시작하는 기차 안으로 뛰어든다. 매일 밤 이런 시도를 하는 사람이 600명가량 된다고 한다. 또 다른 방법은 도버 해협을 오가는 페리(차량을 싣고 가는 배)에 실리는 트럭에 올라타는 것이다. 이 방법은 국제 밀수꾼들에게 1인당 1200유로(약 160만 원) 정도는 쥐여 주어야 한다. 트럭들 중에도 냉장 트럭은 경찰의 X선 검사로도 내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더 비싸다. 이곳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있다. 1월부터 6월까지 난민 10명이 고속도로에서 트럭에 치여 죽었고 지난해 10월에는 시리아인 두 명이 해변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에리트레아에서 왔다는 마이사 씨(30·여)는 “내 친구는 유로터널 인근 고속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었다. 당시 경찰이 분사한 최루액을 눈에 맞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경찰이 친구를 죽음으로 몰았다”며 울먹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이달 1일 유로터널에서는 150여 명의 난민이 한꺼번에 선로에 뛰어드는 바람에 열차가 멈춰 열차 안 승객들이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에어컨도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밤새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 후 프랑스 국영철도(SNCF) 측은 숲 속에 숨어 있다가 열차로 뛰어드는 난민을 더 쉽게 적발하기 위해 선로 주변 37ha에 자라고 있는 무성한 관목 숲을 쳐 냈다. 선로 주변에 높은 철제 울타리를 설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별 소용은 없다. 밤마다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커터로 절단해 구멍을 만들기 때문이다. 칼레 항에도 500여 명의 경찰이 배치돼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경찰관 클로드 베리 씨(46)는 “며칠 전 밤에 수백 명이 여기저기서 동시에 몰려드는 바람에 제지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경우 열차 선로로 뛰어들어 운행을 방해하면 최대 6개월간 구류를 살거나, 3750유로의 벌금을 내야 하지만 지금은 난민들을 붙잡더라도 수십 km 밖 벌판에 ‘버리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올 상반기에만 1만8000명이 체포됐지만 거의 난민촌으로 다시 돌아왔다. 영국 경찰 당국은 칼레의 난민 10명 중 7명이 유로터널을 4개월 안에 통과해 영국으로 건너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칼레=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터기 해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으로 유럽 난민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뜨겁다. 마침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5일 헝가리에 있던 난민 1만 명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시리아 난민 1만5000여 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올 1월 이후 아프리카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지중해를 건너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은 20여 만 명에 달한다.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 그리스 코스 섬과 함께 유럽행 난민위기의 3대 핵심지역으로 꼽히는 프랑스 북부 칼레 항 난민촌을 현장 취재했다. 5일 오후 프랑스 북부의 칼레 항.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가는 페리호 출발시간을 앞두고 도로에는 항구로 들어가려는 대형트럭과 승용차가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 형광색 조끼를 입고 곤봉을 손에 진 경찰들이 50미터 간격으로 도로를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다. 도로 주변 숲 속에 숨어서 트럭 위에 올라타려는 난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숲 속에서 7~8명의 난민들이 몰려 나와 경찰에게 손짓하며 험악한 말을 주고받던 사이, 갑자기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도로를 달라기 시작했다. 무전기를 들고 있던 경찰이 달려 나가 곤봉으로 위협하며 트럭에 접근하는 난민들을 쫓아냈다. 한 경찰관은 “유로터널 단지 안에서 매일 24시간 동안 화물차 뒤 칸에서 1000명의 난민들을 떼내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칼레 항은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 땅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곳. 유로터널을 지난 열차는 해저터널을 35분 만에 통과할 수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사하라 사막을 넘고, 지중해를 건너 수천 km를 이미 목숨을 걸고 건너온 난민들에게 최종 결승점을 앞두고 불과 33.7km의 바다는 별다른 장애물이 될 수 없는 듯했다. 시리아의 세살짜리 난민소년 쿠르디의 죽음으로 국제사회가 외면해온 난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부쩍 늘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5일 헝가리에 있던 난민 1만 명을 받아들인데 이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이날 시리아 난민 1만5000여 명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칼레 난민촌도 희망으로 부풀기 시작했다. 쿠르디의 죽음 이후 칼레의 난민촌에도 영국과 프랑스의 시민들이 옷, 신발, 가구, 텐트, 화장지 등 생필품을 갖고 찾아오는 자원봉사자의 손길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영국은 ‘취약자 재배치’(VPR) 프로그램을 통해 시리아 국경 부근 유엔난민캠프에서 직접 시리아 난민들을 데려오겠다고 했을 뿐 독일처럼 이미 유럽에 건너온 난민들에게 문호를 열 계획은 없다. 영국과 프랑스 당국은 기대에 부푼 난민들이 유로터널 입구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해올 것에 대비해 오히려 항구주변의 철제 담장을 더 높이 쌓고, 경비인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점점 요새화되는 칼레의 경찰과 이를 뚫으려는 난민들의 ‘쫓고 쫓기는’ 싸움도 한층 격렬해지고 있었다. ● 인도주의 위기 속 난민들의 희망가 칼레항으로 향하는 도로 옆 숲 속에 들어선 난민촌에 들어선 순간 “과연 이곳이 유럽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색 비닐로 둘러싼 판자촌 오두막, 구멍 난 수도 파이프에서 새어나오는 물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 거리엔 플라스틱 병들이 나뒹굴고, 쓰레기와 오물이 섞인 악취가 코를 찔렀다. 난민들은 3000~4000명이 살고 있는 이 캠프를 ‘정글’이라고 부른다. 키 작은 관목과 덤불 숲으로 이뤄진 숲이지만 어지러운 텐트와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정글 같은 분위기가 나타났다. 그러나 난민촌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 보니 간이 공중화장실, 수도에 이어 음료수를 파는 상점과 식당, 카페, 학교, 모스크, 교회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난민촌에서 만난 난민들 중에는 악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취재를 위해 악수를 청하면 손을 피하고 대신 팔뚝이나 어깨를 내미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열차나 트럭 위에 올라타다가 손이 부러지거나 심하게 다쳤지만 병원에 갈 수도 없는 처지다. 칼레에는 약 150여 명의 시리아 난민들은 소년 쿠르디의 죽음에 대해 분노와 슬픔, 기대감이 섞인 반응을 보였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탈출해 온 카웨이 씨(21)는 “나도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려고 밀수꾼에게 1200달러를 주고 고무보트를 탔는데 배가 높은 파도에 오르락내리락 할 때 터져 나오던 여성과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며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난민 1만 명을 받아들였다는데, 영국도 칼레에 있는 3000명의 난민들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초 다마스쿠스 대학 2학년에 재학 도중 군대에 징집되는 것을 피해 시리아를 탈출했다. 그는 “내가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남을 죽여야만 한다는 현실이 너무 두려웠다”고 말했다. 시리아 공무원에게 뇌물을 바치고 여권을 구했던 그는 레바논, 터키, 그리스,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헝가리를 거쳐서 칼레까지 오는 데 총 1만 유로 가까이 들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청년 사피 씨(25) 3년간 미군 통역원으로 일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탈레반이 마을에 들어와 미군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끌고 갔다. 그의 아버지는 총살을 당한 이후로 그는 고향을 떠났다. 그는 탈레반을 위해 일하든, 정부군을 위해 일하든 지배자가 바뀌면서 서로 죽이기 때문에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버밍험에 내 사촌형이 있는데, 옷 공장에서 한시간에 7파운드를 번다고 들었다”며 “나도 제2외국어가 영어인 만큼 꼭 영국에 정착해 새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난민촌에는 새로운 경제활동도 이뤄지고 있었다. 아프리카 수단 다르푸르에서 자동차 정비 일을 했던 난민인 아흐메드 씨(42)는 최근 난민촌에서 버려진 자전거 부품들을 주워 모아서 중고자전거를 수리해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영국행을 시도하는 난민들이 밤마다 12km 떨어진 유로터널 입구까지 가려고 자전거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만일 자전거를 타고 간 난민이 영국행에 성공하면 자전거를 버리고 간다. 이 자전거를 다시 주워와서 되파는 것은 무척 좋은 사업”이라고 자랑했다. 칼레에 몰려든 난민들은 영국에는 영어가 통하고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기대 때문에 영국행에 목숨을 걸고 있다. 또 영국은 난민 신청자에게 1인당 1주일에 약 42파운드(약 7만6000원)의 지원금을 주는 것도 난민들에겐 매력적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 게바르 씨(23)은 “올해 초 영국에 가는데 성공했었는데 내게 비자도, 일자리도, 지원금도 주지 않았고 이탈리아로 추방만 당했다”고 말했다. ● 해가 저물면 2000번 씩 열차로 뛰어드는 난민들 정글에는 오후 5시에는 매일 한차례씩 프랑스의 구호단체들이 제공하는 급식을 받기 위해 긴 줄이 생긴다. 그리고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난민들은 정글을 떠나 영국행 밀입국을 시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유로터널을 지나는 화물열차에 올라타기 위해 철조망을 넘어야 하는 지점은 난민촌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이다. 이들은 대부분 운동화를 신고, 경찰의 눈에 띄지 않게 짙은 색깔의 재킷을 입는다. 유로터널 입구는 난민촌에서 걸어서 약 2시간이 걸리는 A16 고속도로 근처의 로터리이다. 삼엄한 경찰의 감시를 뚫고 도로 가드레일을 뛰어넘고, 가슴 높이의 덤불 숲 사이를 15분간 뛰어간 뒤, 5~6m 높이의 철조망을 넘어야 유로터널에 선로 도착한다. 이곳에서 난민들은 영국행 열차로 이송되는 화물트럭의 밑바닥에 숨어든다. 난민들은 새벽까지 1인당 3,4번씩 기차위로 점프한다. 유로터널을 통과하는 열차에 난민들이 불법으로 올라타려는 시도는 매일 밤 평균 2000번 이상이다. 또 다른 난민들은 도버해협을 오가는 페리(차량을 싣고 가는 배)에 실리는 트럭 위에 올라타기를 시도한다. 트럭을 통한 밀입국은 대부분 국제 밀수꾼들에게 1인당 1200유로 가량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냉장 트럭은 경찰의 X레이 검사에도 내부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더 비싼 돈을 주어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시리아 출신 난민 카웨이 씨는 “내겐 돈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1200유로를 낼 여유가 있다”며 “내가 가진 유일한 선택은 성공할 때까지 울타리를 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 해변에서 쿠르디의 죽음처럼 칼레항에서도 매일 밤 비극적인 사건이 이어진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난민 10명이 고속도로에서 트럭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0월에는 두 명의 시리아인인 마우아즈 알발키와 샤디 카타프가 잠수복을 입은 채 칼레 해변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조사결과 이들은 칼레에 있는 스포츠용품 판매점에서 잠수복을 구입한 뒤 이들은 헤엄쳐서 도버해협을 건너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에리트레아에서 온 마이사 씨(30·여)는 “내 친구는 유로터널 인근 고속도로에서 차에 치어 죽었다”며 “당시 그녀는 경찰이 분사한 최루액을 눈에 맞고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는 상태였다”며 경찰이 친구를 죽음으로 몰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칼레의 ‘정글’은 서유럽 최대의 난민캠프 중의 하나이면서도 시설은 최악의 수준이다. 난민촌에서는 폭력과 화재 사건이 끊이지 않고, 위생상태도 심각하다. 의료 자원봉사자인 앙드레 보쉬 씨(27)는 “칼레의 난민촌은 글로벌 기준으로 볼 때 난민캠프라고 볼 수 없는 최악의 수준”이라며 “아프리카 수단이나 시리아 국경 인근의 난민캠프가 여기보다 훨씬 인간적”이라고 말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1일 내년 초까지 칼레에 1500명의 이민자를 수용할 수 있는 공식 난민캠프를 세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반(反)이민을 내건 프랑스의 극우정당 FN 측은 칼레에 난민촌이 세워진다면 국제적인 난민을 결집시키는 실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가톨릭 구호’ 단체의 자원봉사자인 뱅상 드 코닉은 “독일은 단 이틀 만에 2000명의 난민을 위한 숙소를 조직해내고 있는데, 프랑스는 1500명 규모의 난민캠프 짓는데 왜 4개월 씩이나 걸리는가?”하고 반문했다. ● 점점 높아지는 담장,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지난 1일 영국과 프랑스의 해협을 오가는 유로스타 열차가 칼레 역 부근의 터널에서 밤새 발이 묶였다. 150명의 난민들이 한꺼번에 선로에 뛰어들어 열차를 정지시켰기 때문이다. 이날 6대의 기차가 출발역으로 돌아가거나 선로에 멈춰 섰다. 승객들은 어둠 속에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에어컨도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밤새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날 이후 프랑스 국영철도(SNCF) 측은 유로터널 칼레역 선로 주변 37헥타르 지역에 자라고 있는 무성한 관목 숲을 잘라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숲 속에 숨어 있다가 선로로 뛰어드는 난민들을 경찰이 좀더 쉽게 적발해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유로터널 측은 칼레역 근처 7.5마일의 선로 주변에 높은 철제 울타리를 설치하는 작업도 벌이고 있다. 현재의 낮은 장벽은 어린이조차도 쉽게 뛰어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로터널 측은 올해 1월 이후로 약 3만7000여건의 불법으로 도버해협을 건너려는 난민들의 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보안조치 강화에도 난민들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아무리 높은 철제 울타리라고 하더라도 밤마다 수백 명의 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커터로 절단해 구멍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현재 칼레항에는 500명의 경찰관이 배치돼 있다. 경찰관 클로드 베리 씨(46)는 “며칠 전 밤에 수백 명의 난민이 모든 방향에서 동시에 몰려들었는데 그들을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재의 법규에는 열차 선로에 뛰어들어 열차운행을 방해하는 경우에는 최대 6개월간 구류를 살거나, 3750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프랑스 경찰은 하룻밤에 수백 명씩 유로터널에 침입하는 난민들을 붙잡더라도 차에 태워 수십km 밖으로 데려가 벌판에 풀어주는 대처 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만8000명이 이렇게 체포됐지만 칼레의 ‘정글’로 다시 걸어서 돌아왔다. 영국의 경찰당국은 칼레의 난민 10명 중 7명이 유로터널을 4개월 안에 통과해 영국으로 건너오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편 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켈레티 기차역에서 노숙하던 난민 6000명가량이 오스트리아를 거쳐 독일에 도착했으며 밤새 1800명이 더 도착할 예정이다. 헝가리의 수용소를 탈출한 난민 1200명이 걸어서라도 서유럽에 가겠다며 한꺼번에 도로로 쏟아져 나오자 혼잡을 우려한 헝가리 정부가 버스편 100대를 제공한 것이다. 독일 뮌헨역에 내린 난민들은 역에 마중 나온 시민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일부 난민들은 “고맙습니다. 독일” “사랑해요. 독일”이라는 메시지를 적은 판지를 들고 벅찬 기쁨에 눈물을 터뜨렸다. 이날 헝가리 정부가 제공한 버스에 타지 못한 1000명 가량의 난민은 걸어서 175㎞ 떨어진 오스트리아 국경까지 가겠다며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세르비아와 맞닿은 헝가리 남쪽 국경에도 4일 하루에만 2000명 이상의 난민이 헝가리 진입을 시도하다 붙잡혔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유럽 난민 사태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시리아에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을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시리아는 지난 30년간 가장 많은 난민을 발생시켰던 아프가니스탄을 제치고 세계 최대 난민 발생국에 올랐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아침마다 저를 깨워 주고, 놀아 달라고 했는데 이젠 모든 꿈이 사라졌고, 살아갈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2일(현지 시간) 터키 휴양지 보드룸의 해변에서 모래에 얼굴을 파묻은 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 그의 비극적인 죽음에 전 세계가 슬픔과 분노에 빠진 가운데 아버지 압둘라 쿠르디 씨(40)는 3일 터키의 한 병원에서 아이의 시신을 기다리며 울부짖었다. 그의 가족은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족 민병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시리아 북부 소도시 코바니 출신이다. 이들은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 건너 그리스 코스 섬으로 항해하던 중 거센 파도에 배가 뒤집히면서 변을 당했다.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려 했으나 거부당한 후 배를 탄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인 그만 유일하게 살아남고 나머지 가족은 모두 숨졌다. 아일란이 발견된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엄마(35)와 형 갈립(5)의 시신도 발견됐다. 쿠르디 씨는 악몽과 같았던 그날을 회상하며 괴로워했다. 그의 가족은 2일 터키 해안에서 다른 난민 12명과 함께 고무보트(5인승)에 올랐다. 배가 출항하고 잠시 후 큰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쿠르디 씨는 배를 알선해 준 밀수업자에게 “이래도 괜찮은 거냐”고 물었지만, 그는 “안심하라”고 답했다. 그러나 상황이 악화되자 밀수업자는 혼자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 터키 해안으로 돌아갔다. 배에 탄 나머지 난민들은 결국 배가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전복되면서 대부분 익사했다. 쿠르디 씨는 “물에 빠진 뒤 아내와 아이들을 손으로 잡으려 했으나 결국 놓쳤고, 모두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며 악몽의 순간을 떠올렸다. 3일 언론 인터뷰에서 “두 아들과 아내의 시신을 고향에 묻어 주고, 나도 죽을 때까지 무덤 곁에 머물고 싶다”며 귀향 의사를 밝혔던 쿠르디 씨는 4일 고향 땅을 다시 밟았다. AP통신은 쿠르디 씨가 두 아들과 아내의 시신을 실은 자동차를 타고 4일 터키 국경을 넘어 시리아 코바니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쿠르디 씨는 이날 두 아들과 아내의 시신을 매장했다.○ 전 세계 애도 물결, 각국 난민 정책 수정 이제 겨우 세 살밖에 안 된 아일란의 참극에 전 세계 누리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애도의 그림과 메시지를 올리며 애도하고 있다. 그중에는 아이의 시신에서 날개를 단 영혼이 하늘에서 손을 내미는 엄마에게 안기는 그림,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물고기와 대조적으로 서류 작성에 바쁜 경찰관의 냉정한 모습을 그린 그림도 있었다. 아일란의 이름을 따 개설된 모금 펀드에 하루 만에 수천만 원이 걷히는가 하면, 난민 수용에 가장 완강한 태도를 보인 영국에선 난민 수용을 합당한 수준으로 늘릴 것을 촉구하는 탄원서에 시민 22만5000명이 서명했다. 시민들은 서명을 하면서 ‘난민을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손에 들고 사진을 찍어 트위터를 통해 공유했다. 사진 한 장이 몰고 온 유럽인들의 인식 변화는 유럽 각국의 난민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래도 난민을 받지 않으려 하느냐’는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정치인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3일 유럽연합(EU)의 중심국인 독일과 프랑스는 EU 회원국에 16만 명의 난민을 의무적으로 분산 수용한다는 원칙에 전격 합의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기존 4만 명의 4배에 이르는 난민을 끌어안을 것을 제안했고,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난민을 수용하는 영구적이고 의무적인 제도가 필요하다”며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이와 관련해 EU 소식통은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16만 명 규모의 난민 분산 수용안을 제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4일 성명에서 ‘대규모 이주 프로그램’을 가동해 EU 회원국들이 20만 명 규모의 난민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난민 지원을 위해 200만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난민 수용 확대에 강하게 버티던 영국도 난민 정책을 급선회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3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수천 명의 난민들을 받을 방침을 밝혔다고 전했다. 아일랜드 정부도 4일 1800명의 난민을 받아들일 방침을 밝혔다고 BBC가 보도했다. 한편 외신들은 해변에서 익사한 아이의 사진 한 장이 난민 수용 문제 논의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다면서 1972년 6월 베트남전쟁 당시 네이팜탄 폭격으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알몸으로 거리를 내달리는 소녀 킴푹 사진의 충격에 비견할 만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당시 이 사진은 어떤 기사보다 생생하게 베트남전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려 반전(反戰)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는 “아일란의 사진은 초유의 난민 사태로 갈팡질팡하는 유럽과 이를 지켜만 보던 지구촌에 ‘더는 난민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일종의 분기점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사진)이 집권 초기 ‘부가가치세(TVA)’ 인상 계획을 백지화하고 부유세를 신설했던 자신의 세금 정책에 대한 실수를 인정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곧 발간될 예정인 책 ‘인턴기간은 끝났다(Le Stage est fini)’에서 “집권 초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세제 정책에 대해 너무 멀리 가지 않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그는 특히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균형예산을 위해 도입했던 TVA 인상(19.6%→21.2%)을 취소했던 것은 실수였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이 책은 프랑수아즈 프레소 르몽드 기자가 올랑드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쓴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올랑드 대통령은 책에서 “대통령에 취임하는 사람마다 첫 예산 편성에서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며 “나는 전임자가 준비했던 부가세 인상 계획을 백지화함으로써 110억 유로의 국고재정 확충 손실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연간 100만 유로(약 15억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고소득자에게 75%의 부유세를 물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로 인해 올랑드의 부유세는 도입 2년 만에 전면 백지화됐다. 그러나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책임협약’ 등의 ‘친(親)기업 구조개혁’에 대해선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내가 시작한 개혁들이 전부 좌파적 개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는 개혁에 대한 말은 어느 나라보다도 많이 하지만, 어느 나라보다도 개혁을 적게 하는 나라”라고 꼬집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급진 수니파 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고대 유적지 팔미라의 유명 신전을 또 폭파했다. 시리아 문화재 보호단체인 팔미라코디네이션은 8월 30일 트위터 계정을 통해 “IS가 2000년 전에 지어진 팔미라의 가장 중요한 문화유적인 벨 신전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한 팔미라 주민은 AP통신에 “IS가 엄청난 폭발물로 신전을 완전히 파괴했다”며 “벽돌과 돌기둥이 무너져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다른 목격자는 신전 벽 일부만 남았다고 전했다. 서기 32년경 셈족에 의해 지어진 이 신전은 팔미라의 수호신인 벨(bel)에게 바쳐진 것으로 팔미라 유적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그리스-로마 시대 양식과 고대 중동의 건축 기술이 어우러진 석재 구조물로 돌기둥과 안뜰, 욕조, 제단, 연회실 등으로 이뤄진 대규모 건축물이다. IS는 일주일 전인 지난달 23일에도 서기 17년에 세워진 팔미라의 바알샤민 신전 곳곳에 폭발물을 설치해 폭파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했다. 유네스코는 “IS의 시리아 유적지 파괴는 용서할 수 없는 전쟁범죄”라고 비난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89·사진)이 곧 역대 영국 군주 가운데 최장수 통치 기록을 깬다. BBC 등 영국 언론들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일 오후 5시 반이 되면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인 2만3226일 16시간 30분을 넘어서게 된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은 1837년 6월부터 1901년 1월 별세할 때까지 63년 넘게 영국을 다스려 현재까지 최장수 통치 군주로 기록돼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2년 2월 6일 아버지인 조지 6세 국왕이 세상을 뜨자 케냐 방문 도중 영국으로 돌아와 25세의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여왕은 필립 공과의 사이에서 찰스 왕세자와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까지 모두 4명의 자녀를 두었다. 여왕은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다이애나 비가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버킹엄 궁에 조기(弔旗)를 달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여왕은 재임 63년 동안 제2차 세계대전 복구, 영국령 식민지 40여 개국 독립, 북아일랜드 유혈사태를 겪으며 현대사의 산증인이 됐다. 여왕이 최장수 통치 군주가 되는 동안 왕위 계승 1순위인 장남 찰스 왕세자는 영국 은퇴 연령보다 많은 66세가 됐다. 그 사이 증손자녀인 조지 왕자와 샬럿 공주까지 태어났다. 여왕은 총 116개국을 방문하며 왕성한 대외활동도 펼쳤다. 캐나다에 24회, 호주에 16회, 뉴질랜드에 10회 방문했으며 1999년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하기도 했다. 버킹엄 궁 측은 “여왕은 9일 최장수 통치 군주가 되는 순간에도 평소처럼 조용히 보내길 원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당일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2013년 말 펴낸 교황의 사도적 권고인 ‘복음의 기쁨(Evangeli Gaudium)’이 지구적 베스트셀러에 오른 데 이어, 올해 6월 18일 출판된 교황의 환경에 관한 회칙인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사진)’까지 출판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출간 두 달 만에 프랑스 전역에서 10만 부 판매를 가볍게 넘어섰다. 더구나 교황청이 인터넷을 통해 전문을 무료로 공개했는데도 서점가에서 구입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더욱 특이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황의 회칙은 주교들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세계 가톨릭교회와 10억 명의 가톨릭 신자에게 전파되는 사목 교서다. 181쪽 분량의 이번 회칙은 환경 문제를 다룬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교황 회칙이라는 점에서 발표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회칙은 모두 6장 246항에 걸쳐 오늘날 지구와 인간이 겪고 있는 환경 문제를 성찰하고 회개와 행동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또한 이번 환경 회칙은 신이 창조한 자연환경과 인간과의 관계 회복에 대한 종교적 성찰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 교회의 사회적 참여,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상업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등 그동안 교황이 강조해 온 사회적 메시지를 집대성한 문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6개의 출판사가 교황의 새 회칙을 동시 출간했다. 교황청 공식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하면 누구나 출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3.9∼4.9유로(약 5322∼6687원)에 팔리고 있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회칙이 빵집에서 파는 바게트처럼 팔리고 있다”며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소설 ‘다빈치코드’의 성공에 대한 교황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번 교황의 환경 회칙은 12월 파리에서 개최되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1)를 앞두고 프랑스에서 큰 조명을 받고 있다. 프랑스 최대 종교전문 서점인 ‘라 프로퀴르’에 따르면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사서 연구모임을 하기 위해 단체 구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르피가로가 보도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기후변화 특사인 니콜라 윌로는 “유엔회의를 앞두고 발표된 교황의 회칙은 지구적 환경 시스템 위기의 원인을 성찰하게 하고, 각국 정치인의 실천행동에 영감을 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데 ‘뜻밖의 공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파리 에펠탑은 ‘조명 쇼’로 유명하다. 외교적 행사가 있을 때 중국을 상징할 때는 붉은색 조명으로, 유럽연합(EU)을 상징할 때는 푸른색으로 바뀐다. 9월 18일에는 태극기 문양의 흰색 붉은색 파란색 조명으로 수놓아질 예정이다. 이날은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 ‘한불 상호교류의 해’ 개막일이다. 이날 밤 에펠탑 맞은편 국립샤요극장에서는 유네스코 등재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 전곡이 연주된다. 파리와 서울은 직선거리 8976km, 비행기로는 11시간이 걸릴 정도로 떨어져 있지만 역사 속 인연이 깊다. 200년 전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가톨릭이 전해지면서 교류가 시작됐고, 독도가 ‘리앙쿠르 바위섬’이라는 프랑스 이름으로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도 1847년 독도를 처음 본 프랑스 선원들이 서양 지도에 표시하면서부터였다. 1886년(고종 23년) 6월 4일 프랑스 전권대사로 온 중국 주재 프랑스대사 코고르당이 조선 정부와 교섭한 끝에 한-프랑스 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프랑스는 한국의 독립운동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왔다.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한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조약에 의해 한 나라가 영토 일부에 외국인 거주와 영업을 허가한 땅)는 한국 독립운동의 산실이었고, 임시정부의 첫 외교독립운동이 전개된 곳도 파리 베르사유 궁에서 열린 강화회의였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파리 9구 샤토됭가 38번지. 현재 1층에 편의점이 들어서 있는 이 건물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1919∼1921)’라는 현판이 한글과 프랑스어로 또렷이 새겨져 있다. 1919년 3월 임정 외무총장으로 파리에 도착한 김규식 선생이 파리 강화회의에서 대한민국 주권 승인 등 20개 항목의 공문서를 제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1921년 7월까지 독립운동을 국제 이슈화하는 활동을 했다. 이 활동들은 관련 기사가 유럽의 181개 신문에 517건이나 게재될 정도로 큰 성과를 거뒀다. 파리위원부의 독립청원운동 노력은 1945년 3월 4일 드골 임시정부가 중국 충칭(重慶)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공식 승인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을 처음으로 발굴, 공개했던 고 박병선 박사도 생전에 “일제강점기 때 외국 영사관 중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프랑스 영사관이 파리 본부로 수천 쪽 보고서를 보냈는데 독립운동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광복 후 헌법 제정 때 영국식 의원내각제보다 대통령제 중심인 프랑스식 모델에 커다란 관심을 가져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전과 고속철도(TGV)도 프랑스에서 수입했다. 프랑스와 한국은 현재 각각 세계 6위와 12위의 경제 대국이다. 요즘 프랑스에서는 한국 영화, 케이팝, 한식 열풍에 이어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이 대략 2000명이 넘고,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 제3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때부터 유럽은 한국 독립외교의 중심지였다.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외교와 경제교류를 위한 교육 시스템이 영미권에만 치우치지 않고 좀 더 다양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 최근 프랑스가 항공우주,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최첨단 기술을 접목해 온 창조경제 국가로 조명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와의 접점이 많으리라 생각된다.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