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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만 해봐. 낙태죄로 고소할 거야.” 박모 씨(25)의 협박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겁에 질린 김모 씨(24·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자리를 떴다. 두 사람은 한때 캠퍼스 커플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올해 초 두 사람 사이에 예상치 못한 아이가 생겼다. 김 씨는 “낙태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절반씩 비용을 부담해 낙태 수술을 받았다. 이때만 해도 김 씨는 박 씨의 협박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이별했다. ‘전 남친’이 된 박 씨는 김 씨의 낙태 사실을 학교 친구들에게 말했다. 참다못한 김 씨는 지난달 박 씨를 찾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며 울먹였다. 그러자 박 씨는 “나야말로 낙태죄로 고소할 것”이라고 맞섰다. 결국 김 씨는 학기 중 휴학했다.○ 낙태 판결문에 담긴 천태만상 2012년 8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렸다. 본보는 헌재 결정 후 이달까지 5년간 전국 법원에서 이뤄진 낙태 관련 판결 80건을 모두 입수해 분석했다. 낙태죄는 낙태를 한 여성 본인(자기낙태죄), 수술 등의 방법으로 낙태를 도운 의료진(업무상 촉탁 낙태죄), 낙태에 대한 명시적 동의 의사를 밝힌 남성(낙태 방조) 등을 처벌한다. 낙태는 강간에 의한 임신인 것으로 수사기관에서 확인되거나 부모가 유전적 장애가 있는 때 등 예외적 경우에만 허용된다. 판결문에는 남자친구 또는 남편의 신고로 법의 심판대에 선 여성이 다수 등장했다. 이혼 소송이나 양육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거나 이별을 요구하는 여자친구를 붙잡으려는 남성들에게 낙태죄가 악용되고 있었다. 지난해 낙태죄로 4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최모 씨(29·여). 그는 남편(32)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이혼을 결심한 뒤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위자료 액수를 두고 최 씨와 갈등을 빚던 남편은 최 씨와 낙태 수술을 해준 산부인과 의사를 경찰에 고소했다. 법원 관계자는 “낙태 사실은 당사자인 여성과 수술한 의사, 상대 남성 등 극소수만 알고 있어 셋 중 한 명이 고소하지 않는 한 드러나기 힘들다. 그래서 고소인은 대부분 상대 남성 또는 남성 측 가족”이라고 말했다. 낙태 사실이 발각되면 여성과 의사는 처벌을 받지만 남성은 수술에 동의했다는 명시적 증거가 없으면 처벌을 면한다. 여성들 사이에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남자에게 낙태 사실 알리지 말라’는 게 암묵적인 요령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상대 남성의 동의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수술을 거부하는 산부인과 의사가 많다. 법원도 같은 낙태 여성이라도 남성 측 동의를 받으면 선고유예 처분을 하지만 동의 없이 한 경우 벌금형으로 더 무겁게 처벌한다. 남성 동의를 받지 않거나 병원 기록에 남지 않게 수술을 받으려는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고위험 고비용’의 수술대를 찾는다. ‘낙태 브로커’를 통해 음성적으로 병원을 소개받아야 한다. 수술비뿐 아니라 100만 원 안팎의 추가 비용이 든다. 낙태 브로커로 일했던 대학생 김모 씨(28)는 “인터넷에 ‘낙태 가능 병원 상담 문의’ 등의 글을 올리면 연락이 쏟아진다. 산부인과에 무작위로 전화를 돌려 예약해 주는 대가로 건당 10만∼30만 원씩 받았다”고 털어놨다.○ ‘식물형법’이 된 낙태죄 5년간 80건의 낙태 판결에서 실형이 선고된 사례는 단 1건이다. 낙태 시술을 받던 여성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집행유예 형을 받은 조산사가 20대 여성을 또다시 낙태한 혐의로 2012년 부산고법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사례가 유일하다. 나머지 피고인은 선고유예(51.3%)와 집행유예(36.3%) 등의 처분을 받았다.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간 약 17만 건의 낙태수술이 이뤄진다. 기소는 연간 10여 건에 불과하다. 사실상 낙태죄가 사문화돼 ‘식물형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피고인 80명 중 56명(70%)은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이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하루 평균 낙태수술 건수는 3000여 건으로 추정된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현실에 대한 판사의 고민이 엿보인다. 대전의 한 산부인과에서 일하는 의사 3명은 2008년부터 3년간 각각 60명, 120명, 140명의 여성에게 낙태수술을 해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이들 의사 모두에 대해 선고유예 처분을 내렸다. 재판부는 “낙태가 사실상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할 때 의사들에게만 무거운 책임을 묻기 어렵고 낙태를 한 임부들에게 각자 납득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29년 경력의 산부인과 의사 성모 씨(55)는 “낙태하러 온 여성들은 아는 사람 눈에 띄지 않으려고 대부분 거주지에서 1, 2시간 정도 떨어진 병원으로 찾아온다. 여성들이 애절하게 눈물을 흘리며 낙태를 부탁하면 불법이라고 그대로 돌려보내기 어려워 괴롭다”고 말했다. 정현미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두고 낙태죄를 손보지 않는다면 여성과 산부인과 의사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내모는 셈이다.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입법 취지에서 벗어나 어른들이 서로의 약점을 공격하는 수단이 됐다”고 지적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예윤·최지선 기자}

시인 박진성(39)은 지난해 10월 그 사건 이후 1년 넘게 ‘성범죄자’로 살고 있다. 성범죄가 아니라고 판명 났지만 소용이 없다. 박 씨의 강간 등의 혐의를 수사한 경찰과 검찰은 9월 “근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허위사실로 박 씨를 고소한 A 씨(27·여)는 죄질이 나쁘지만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졌다. A 씨에 이어 박 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던 한 20대 여성은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8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법적으로 억울함을 벗었지만 박 씨는 “차라리 징역살이가 낫다”고 했다. 사건 전에는 웃으며 안부를 건네던 이웃들은 그의 집 앞에서 피켓을 들었다. ‘무서워서 못살겠다’ ‘더러운 놈’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박 씨가 18년간 알고 지내온 주민들이었다. 박 씨 부모의 삶도 달라졌다. 친척들의 연락이 끊겼고 경조사에 초대받지 못했다. 지인들은 “방송에서 얼굴과 실명을 공개할 정도면 네 아들 성범죄자가 확실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18일 트위터에 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미성년자인 저는 지난해 저보다 스무 살 많은 시인에게 성희롱을 당했습니다. 박진성 시인임을 밝힙니다.” 이틀 뒤 또 다른 글이 올라왔다. “나는 27세 여름 강간을 당했다. 이름은 박진성이며 직업은 시인입니다.” 익명의 트위터 게시물은 무차별 확산됐다. 문단 내 성폭력 논란이 일었다. ‘박진성 시인 미성년자 상습 성추행’이란 제목의 기사가 이어졌다. 박 씨는 기자로부터 단 한 통의 전화도 받지 못했지만 기사에는 실명과 사진이 노출됐다. 기사는 피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채워졌다. ‘죽어라’ ‘역겹다’ 등의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트위터에 글이 올라온 지 36시간 만에 촉망받던 한 시인은 성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9월 서울의 240번 버스 운전사가 단 몇 시간 만에 아이 찾는 엄마를 저버린 몹쓸 인간으로 낙인찍힌 것과 비슷했다. 박 씨는 23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사회적 생명이 끊겼다”고 말했다. A 씨의 첫 폭로가 나온 지 일주일 만에 출판사는 박 씨의 시집 출판을 중단했다. 시집, 산문집 등 책 4권이 출간될 예정이었지만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박 씨로부터 온라인으로 시 쓰기 교육을 받던 수강생 10여 명도 모두 떠났다. 박 씨는 “가까이 지내던 문인들도 저를 전염병 환자 대하듯 꺼렸다”고 토로했다. “시가 저의 전부인데, 사람들이 더 이상 제 글을 읽지 않고 책을 낼 수 없게 돼 저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는 5월 정신과 상담 결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 약을 한 번에 털어 넣어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 박 씨는 “숨은 붙어 있지만 내 목숨은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고 했다. 박 씨와 비슷한 처지에 몰렸던 부산 동아대 손모 교수(당시 34세)는 지난해 6월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달 전 교내에 붙은 ‘거짓 대자보’가 발단이었다. 교수 중 누군가가 여제자의 속옷과 엉덩이를 더듬는 사건이 있었는데 피해자도 아닌 한 여학생이 손 교수를 가해자로 지목한 것이다. 몇 달 뒤 ‘진범’이 드러나 파면됐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학생은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진실은 드러났지만 손 교수는 더 이상 세상에 없다. 박 씨도 성범죄 혐의를 벗었지만 그의 시집은 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다. 출판사의 ‘출고정지’ 처분은 사건 이후 그대로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양동건어물시장이 위치한 광주 양동시장은 ‘호남 최대 전통시장’으로 불리지만 재래시장인 탓에 젊은층 고객은 거의 찾지 않았다. 점점 심화되는 시장 고령화 현상을 탈피하기 위해 양동 7개 시장 상인회와 광주 서구 등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축제를 만들었다. ‘양동시장맥주축제―양동칠맥파티’다. 지난해 11월 양동건어물시장을 포함한 양동 7개 시장에서 각종 먹거리를 안주로 내놓고 맥주를 무제한 공급했다. 양동건어물시장의 쥐포 황태, 양동시장의 견과류 과일안주 탕수육, 닭전길시장의 닭날개 새우튀김 골뱅이무침 마른안주, 수산시장의 생선전 어묵 닭발, 복개시장의 소시지 어묵 등 다양한 먹거리를 선보였다. 축제에 참여한 고객들을 위해 맥주 빨리 마시기 대회, 맥주 블라인드 테스트, 보이는 라디오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함께 진행했다. 맥주 무제한 팔찌를 1만 원에 구입하면 맥주뿐 아니라 각종 안주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 수익금 일부는 기부돼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돕는 후원금으로 쓰였다. 청년층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마련된 이 축제는 대성공을 거뒀다. 광주뿐 아니라 서울, 전북 전주,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 3만5000명이 모여들었다. 대부분 20, 30대 젊은층이었다. 양동건어물시장 상인회 이명근 회장은 “1만 cc짜리 맥주가 220통이나 소비됐다”며 “축제 기획 의도대로 젊은층이 주 고객이었고 인터넷 커뮤니티나 블로그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다”고 말했다. ‘양동칠맥파티’는 매년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절차상 문제로 올해는 열지 못했다. 올해부터 지자체가 지정하는 ‘지역선도사업’으로 선정돼 내년부터는 정기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광주에는 ‘남도 최고’라 불리는 시장이 있다. 광주 서구에 위치한 양동시장이다. 양동시장은 7개 시장이 모인 ‘통합시장’이다. 양동건어물시장을 비롯해 양동닭전길시장, 양동수산시장, 양동산업용품시장 등이 모여 수산물, 닭, 건어물 등을 각각 전문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특화 거리’를 조성해 2017년 전국우수시장박람회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수상한 시장이 있다. ‘양동건어물시장’이다. 지난해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에서 시행하는 ‘골목형 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된 양동건어물시장은 현대화에 박차를 가해 지금은 ‘지역 명물’을 넘어 ‘전국 명물’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 ‘브랜드 특화’ 성공한 양동건어물시장…‘건물생심’ 브랜드에 문어 캐릭터까지 10일 찾은 양동건어물시장 입구엔 보라색 문어 캐릭터의 대형 조형물이 놓인 포토존이 마련돼 있었다. 십(十)자로 갈린 시장 골목 바닥엔 ‘대박나길’ ‘행복하길’이라는 문구가 노란색 페인트로 쓰여 있어 친근함을 더했다. 각종 건어물을 판매하는 65개 점포의 간판은 같은 디자인으로 통일성 있게 정비돼 있었다. 매대에 놓은 건어물들은 브랜드 로고가 찍힌 비닐 포장으로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이 시장 상인회의 ‘브랜드 특화 사업’ 일환으로 1년 만에 바뀐 것들이다. 양동건어물시장 상인회 이명근 회장은 “재래시장 물건은 저렴하고 질이 좋은데 포장 재질이 낡고 보기에 좋지 않아 외면받는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 자체 브랜드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양동건어물시장의 자체 브랜드명은 ‘건물생심’이다. 물건을 보면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뜻의 한자성어 견물생심(見物生心)에서 따왔다. 이 회장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우리 시장의 상품들을 보면 구매욕이 생겼으면 한다는 바람을 담아 ‘건물생심’ ‘누구나 탐내는 건어물’이라는 브랜드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상인회는 ‘건물생심’이라는 이름으로 상표 등록도 마쳤다. 문어 모양 캐릭터도 ‘브랜드 특화 사업’의 일환이다. 포장지뿐 아니라 시장 입구, 쉼터 등에 시장을 상징하는 문어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이 회장은 “보통 재래시장에 대한 고정관념인 ‘촌스러움’을 탈피하기 위해 세련된 느낌의 문어 캐릭터를 개발했다”며 “고객이나 관광객들이 문어 조형물이 설치된 포토존에서 사진을 많이 찍곤 한다”고 말했다. 고객 편의 확보를 위해 2015년부터는 자체 배송 서비스도 시행하고 있다. 광주 내 배송 주문을 한 고객을 대상으로 ‘당일 배송’을 해주고 있다. 구입 금액이 1만 원 이상이면 ‘무료 배송’을 해주고 1만 원 미만에는 배송비 3000원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보통 주5일 배송을 원칙으로 하고 한 달에 140∼150건 정도 배송 문의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배송 문의를 받는 콜센터도 마련해 직원을 고용하는 등 고용창출 효과도 있다고 한다. 온라인 시대에 발맞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블로그 등 인터넷 커뮤니티도 운영하고 있다. 2013년 정부 지원을 받아 상인들이 컴퓨터 및 스마트폰 이용 교육을 받았다. 65개 모든 점포가 각각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상인회가 주최가 되어 페이스북 등 SNS도 운영하고 있다. 이 회장은 “젊은 고객들에게도 어필하기 위해 SNS로 소통하려고 애쓴다”며 “명절이 되면 선물용으로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의 사진과 가격 정보 등을 올려 온라인 배송 문의도 받는다”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몇몇 상인은 ‘건어물 조리 레시피’를 만들어 인터넷으로 공유하기도 한다. 멸치 볶는 법, 육수 내는 법, 자반 무쳐 먹는 법, 문어 달이는 법 등 레시피도 다양하다. ○ 65년 전통의 전통시장…‘건어물 경매 허브’로 이름나 양동건어물시장이 위치한 양동시장의 역사는 6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동천(川) 인근에 상인들이 건어물, 옷, 채소, 수산물 등 물건을 들고 와 사고팔았다. 1986년 정식으로 양동시장 상인회 등록을 한 뒤 점포 형태의 시장이 생겨났다. 시장이 위치한 광주엔 바다가 없지만 이곳은 ‘건어물 경매 허브(hub)’로 이름나 있다. 해남, 목포, 삼천포, 남해안, 여수 등 남도 인근 바다에서 공수한 건어물을 경매하는 상인들이 집결하는 곳이라서다. 여름철에는 멸치, 미역, 새우가 유명하고 10월부터는 김, 자반이 주로 생산된다. 이 회장은 “날마다 기사분들이 전국의 해안 지방에서 건어물을 가지고 이곳 양동시장에 모인다”며 “이 때문에 싱싱하고 질 좋은 건어물이 공급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어물 특화 거리’로 유명해지자 상인회는 직접 건조시설을 만들어 건어물을 생산하는 방안도 고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건어물 생산의 중요한 방식인 ‘건조’가 기후나 날씨의 영향을 받는 데다 건조장이 마땅치 않아서 생산하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은 “질 좋은 건어물을 취급하는 산지에 직접 가서 위탁 판매하는 형태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양동건어물시장의 또 다른 자랑은 상인들끼리의 끈끈한 우정이다. 127명으로 구성된 상인회는 1년에 두 번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해 상인들이 모여 연탄 나르기 등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2년에 한 번 전국 각지의 선진 시장을 탐방하는 등 시장 활성화와 발전을 위해 남다른 노력도 하고 있다. 그 결과 ‘견학 가던’ 시장에서 ‘견학 오는’ 시장이 됐다. 올 초 충북 음성의 무국시장, 전남 여수 서시장 등에서 100여 명의 상인이 이곳 양동건어물시장으로 견학을 오기도 했다.광주=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노부부가 남편은 강에서 숨진 채 발견되고, 아내는 그 주변에서 실종됐다. 경찰은 딸과 신흥종교단체 교주를 용의자로 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기 가평경찰서는 19일 이모 씨(43)와 신흥종교단체 교주 임모 씨(63)에 대해 각각 존속 유기 및 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와 임 씨는 11일 오후 7시 20분과 9시 40분 이 씨의 아버지(83)와 어머니 전모 씨(77)를 경기 가평 자택에서 각각 차에 태워 데리고 나갔다. 이 사실은 노부부 집 주차장 폐쇄회로(CC)TV에서 확인됐다. 이튿날 오후 3시경 강원 춘천시 남산면 북한강가에서 아버지 이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익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또 아내 전 씨는 실종돼 19일 현재까지 생사가 불분명하다. 경찰 조사에서 딸 이 씨는 “(두 사람이) ‘좋은 데 데려다 달라’고 해서 두 사람을 같은 장소에 내려줬다”고 진술한 뒤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앞서 15일 딸 이 씨는 경찰이 아버지 이 씨의 사망 소식을 알리자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나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만 할 뿐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딸 이 씨는 실종신고도 하지 않았다. 이 씨 부부는 미국에서 약 30년간 살다가 2014년 딸 이 씨 및 둘째 아들과 함께 귀국했다. 조현병을 앓고 있는 둘째 아들도 현재 실종 상태다. 노부부가 살던 가평 자택은 건평 214m² 빌라로 임 씨의 종교단체 회원들도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딸 이 씨와 교주 임 씨가 노부부를 물에 빠뜨려 숨지게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이 사건과 임 씨 종교단체의 연관성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유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의 체육교육학과 학생이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서울대 역사상 최초다. 19일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4∼17일 진행된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선거운동본부 ‘파랑’의 신재용 씨(23·사범대 체육교육학과 13학번·사진)와 박성호 씨(23·자유전공학부 13학번)가 각각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으로 뽑혔다. 신 씨는 청소년 유도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각종 국제대회와 전국체전 등에서 10차례 우승을 거머쥔 ‘유도 신동’이었다. 중학생 때 선수생활을 시작한 신 씨는 전북 익산 원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국가대표 후보 선수로 선발됐다. 2012년에는 체코에서 열린 국제청소년유도대회와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유소년·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대학 1학년 때는 전국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 금메달과 체코국제청소년유도대회(U20) 은메달을 차지했다. 신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국대회 1등, 국가대표 후보, 서울대 합격과는 또 달리 인생의 큰 관문을 넘은 느낌이다. 겨울방학 전에 시흥캠퍼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총학생회장 선거는 ‘파랑’ 선본이 단독 출마해 찬반투표로 진행됐다. 투표율 52.67%(전체 1만6675명 중 8782명 투표)를 기록한 가운데 찬성 80.20%(7043표), 반대 14.74%(1295표), 기권 3.85%(338표), 무효 1.21%(106표)였다. 신 씨는 선거 과정에서 기숙사 신청자 수용률 100% 실현, 교환학생 학점 인정기준 합리화, 시흥캠퍼스 설립 문제의 원만한 해결, 예비군 대체출석 제도적 보장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경북 포항시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15일 진원지로부터 약 26km 떨어진 경주시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이 긴급 대피한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학생들은 지난해 9월 12일 발생한 경주 지진의 공포를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일부 학생은 눈물을 흘렸다. 군데군데 교사들이 배치돼 놀란 아이들을 다독였다. 아이들이 무사한지 살펴보기 위해 황급히 학교를 찾는 부모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승용차 대신 택시와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학교 주변엔 주차된 차량이 몇 대 안 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데리러 온 윤모 씨(49·여) “작년 지진 때 다들 차를 가지고 와 학교 주변이 완전히 꽉 막혔다. 그때 느꼈던 답답함 때문인지 오늘은 다들 차 없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유치원 앞 공터에 고깔 모양의 노란색 방재 모자를 쓴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9월 지진 이후 유치원에서 구비한 지진 대비용 물품이었다. 아이들은 방재 모자를 평소 등받이로 쓰다가 이날 진동을 느끼자마자 곧바로 고깔처럼 뒤집어썼다. 학부모 정모 씨(38·여)는 “지난 한 해 동안 학교와 유치원에서 정기적으로 지진 대피 훈련을 해서 이번에는 크게 혼란스럽진 않았다”며 “재난 알림 문자메시지도 금방 왔고 주민센터 사이렌도 일찍 울렸다”고 말했다. 일부 경주 시민은 지난해 지진 이후 준비해뒀던 생존배낭을 다시 꾸려 현관문 앞 등 손에 쉽게 닿는 곳에 비치했다. 회사원 우모 씨(44)는 “한동안 큰 여진이 없어 생존배낭을 장롱 속에 넣어뒀는데 오늘 다시 배낭을 쌌다”며 “날씨가 추워져 두꺼운 옷과 담요를 배낭에 많이 넣었다”고 말했다. 지인들끼리 만든 지진 대비 관련 단체 카카오톡방도 이날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렸다. 주부 윤 씨는 “엄마들끼리 만든 카톡방에서는 대피 방법뿐 아니라 불안함을 다스리기 위한 심호흡법도 공유했다”며 “건물이 흔들리면 높은 가구나 액자가 ‘흉기’가 될 수 있다고 해 액자를 떼고 긴 책장은 옆으로 뉘여 놨다”고 말했다. 이날 포항 지진으로 경주의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많은 경주 시민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아파트 1층에 사는 회사원 박모 씨(43)는 “포항 지진이 남의 동네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며 “지난해 지진 이후 1층으로 이사를 했는데 높은 층에 살았다면 불안해서 집에 못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큰 지진이 한 번 나면 계속 여진이 몰려온다는 것을 겪어봤기 때문에 당분간 마음을 놓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경주=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4·19 이후 풍전등화 같은 조국을 구한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는 혁명가이자 봉건질서를 타파한 개혁가였습니다. 하면 된다는 신념 하나로 안보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헌신했습니다.”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은 14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앞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이렇게 자신의 아버지를 말했다. 그는 “대만 장개석(장제스)은 39년, 세종대왕은 32년간 집권하며 경제발전을 이뤄내고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고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박 전 이사장을 비롯해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 박준홍 자유민주실천연합 총재, 신동욱 공화당 총재 등과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 800여 명(경찰 추산)이 참석했다. 행사에 오지 않은 아들 박지만 EG 회장은 이날 오전 9시경 묘소를 찾아 10분간 참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맏딸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구치소에서 이날을 맞았다. 조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이 이룩한 한강의 기적을 빼놓고는 대한민국을 논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파괴하는 문재인식 좌파독재 정책을 몰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국민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죄가 없다는 걸 안다. 살인적인 구속 연장, 악질적 인신 감금 사실을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은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광장에서 ‘박정희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 태극기 집회’를 열고 ‘박근혜 무죄 석방’을 주장했다. 이날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도 ‘탄생 100돌 숭모제’와 역사자료관 기공식이 열렸다. 행사에는 김관용 경북도지사, 남유진 구미시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과 전국에서 온 시민 1000여 명이 자리했다. 남 시장은 기념사에서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미국 하버드대 윌리엄 오버홀트 박사는 ‘한국 보수진영은 박정희 업적만큼 김대중 업적이 크다는 걸 인정하고, 진보진영 또한 김대중의 민주화가 박정희 성과 덕을 봤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이를 깊이 새겨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 화해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가 끝난 후 구미참여연대 등 6개 시민사회단체 회원 20여 명이 ‘박정희 역사자료관 건립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숭모제 참석자들과 말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이들을 향해 “북괴로 꺼져라” “빨갱이들이 행패 부린다”라며 험한 말을 했다. 경찰은 병력 400여 명을 동원해 이들 사이를 가로막아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행사 후 참석자 100여 명은 생가 주변 도로를 행진하며 “문재인 타도” “박근혜 석방”을 외쳤다.이지훈 easyhoon@donga.com / 구미=이권효 기자}
오랜 전통이 있어 자양전통시장 사람들의 추억도 길다. 리어카 상인으로 시작해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자양전통시장을 지키는 터줏대감이 있다. 채소 가게를 운영하는 김정성 씨(73)다. “39세 때 친구와 하던 사업이 망했어. 리어카 놓고 파라솔 치고 장사했지. 닭장사도 하고 생선, 과일도 팔고 슈퍼도 했어. 그러다가 채소한 지는 30년이 넘었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김 씨의 세 자녀는 시장에서 나고 자랐다. 채소를 팔아 두 명의 딸과 막내아들 모두 대학원까지 졸업시켰다. 자녀 이야기가 나오자 김 씨는 해사하게 웃어보였다. “우리 둘째 딸이 시인이야, 시인. 올 초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둘째 딸 김기영이가 당선됐어. 여기 시장 아니었으면 (세 자녀 키우는 건) 가당치도 않았지.” 오랜 기간 시장을 지킨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터를 잡은 딸도 있었다. 낡았지만 늘 사람들로 북적였던 이곳을 이은자 씨(39·여)는 “어릴 땐 놀이터였는데 지금은 고향이라고 부르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자양전통시장에서 반찬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자양동에서 태어나 근처에서 초등학교과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졸업한 ‘자양동 토박이’다. 이 씨의 어머니는 약 40년 전부터 이곳에서 채소를 팔았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번 돈으로 딸 셋을 키웠다고 했다. 이 씨를 포함한 세 자매는 모두 자양동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어렸을 때부터 늘 시장 주변을 오가며 자랐다”며 “학교 끝나면 시장으로 와서 같이 물건도 치우고 엄마 돕는 게 일상이었다”고 말했다. 결혼 후 다른 지역에서 살다 4년 전 이 씨는 두 자녀와 함께 자양동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하는 채소 가게 옆에 이 씨는 반찬 가게를 차렸다. 어머니를 따라 자양동에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그의 자녀인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4학년 아이는 이 씨처럼 이곳 자양전통시장에서 먹고 뛰놀며 지낸다. “아무래도 시장엔 어린아이가 귀하다 보니 귀여움을 독자치하고 있죠. 어쩌다 보니 3대가 이곳 시장에서 살고 있네요.” 자양동에서 나고 자라진 않았지만 자양동을 토박이보다 더 사랑하는 상인도 있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자양동주민센터에 매년 500만 원씩 기부하는 ‘소문난 만두집’의 장춘조 씨(59)다. 3일 오후에 찾은 장 씨의 5평 남짓한 가게에는 기름 냄새가 풍겼다. 찹쌀도넛, 꽈배기, 찐빵, 만두, 튀김 등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로 가판대는 가득했다. 11월 초라 낮이어도 쌀쌀했지만 장 씨는 기름때 묻은 반팔 반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밤낮 돈을 벌지만 스스로에겐 인색하다는 장 씨는 옷 한 벌 안 사 입는다고 했다. “자양동 와서 먹고살 만해졌으니 돌려드리자는 거지요. 지금은 여기 살기도 하고. 허허.” 2014년 12월 장 씨의 기부 인생은 시작됐다. 첫해인 2014년엔 490만 원, 2015년엔 502만 원 그리고 지난해엔 512만 원을 냈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장 씨는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는 “경상도 고성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살았는데 동네에서 제일 못살았다”며 “쌀이 없어 고구마나 나무줄기 삶아 먹던 기억 때문에 늘 트라우마에 시달렸는데 그걸 치유해보고자 시작한 기부”라고 말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로 살다 이젠 도움을 줄 수 있어 장 씨는 기쁘다고 했다. “그래도 집사람 아니었으면 가능하지도 않았어요. 500만 원이 어디 작은 돈인가요. 흔쾌히 허락해 주니 좋은 일하며 사는 것이지요.” 매년 수백만 원을 기부하는 그도 처음부터 일이 잘 풀린 건 아니었다. 2002년 5월 이곳 자양전통시장에 오기 전 장 씨 부부는 방황을 거듭했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서 도넛 가게를 하다가 아내의 무릎에 물이 차 큰 수술을 하게 된 것. 장 씨는 급하게 일자리를 구하고 아내는 보험설계사로 일했다. 부부가 맞벌이로 고군분투해도 호주머니에 모이는 돈은 없었다. 부부는 “힘들어도 다시 시작해보자”며 시장에 도넛 가게를 열었다. 지금은 시장 명물이 됐다. 아들(27)도 장 씨에게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맏딸 결혼까지 시켰다며 장 씨는 좋아했다. “여기 시장 아니었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행복이지요. 평생 여기에서 도넛 튀기며 동네 사람들 돕고 살겠습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동네 골목엔 리어카와 노상 점포가 줄지어 있었다. 물건을 팔던 상인도, 사는 손님도 모두 한동네서 얼굴 맞대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학교가 끝난 아이들은 점포와 점포 사이를 뛰놀다 부모가 있는 시장으로 달려와 일손을 돕곤 했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시장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광진구 자양1∼4동에 걸쳐 숨쉬는 자양전통시장이다. 지금은 이곳에서 귀금속 가게를 하는 박상철 자양전통시장 조합장(57)은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시절 시장이 생겨났다고 했다. 박 조합장은 “지금이야 길이 잘 나 있지만 예전엔 논길이어서 1동에서 2동으로 가는 데만 반나절이 걸렸다”고 말했다. 자양전통시장이 본격적으로 시장의 모습을 갖춘 건 1972년이다. 자양동 골목 사이에 노점, 리어카를 두고 물건을 팔던 상인들이 정식 점포를 갖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약 30년간 자양전통시장은 말 그대로 ‘재래시장’이었다. 촌스럽긴 해도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시장을 찾는 발걸음은 점차 줄었다. 2009년 무렵 근방에 대형마트들이 입점하면서 쇠락하기 시작한 것. 위기를 느낀 상인들은 힘을 합쳐 ‘장보기 좋은 시장’으로의 탈바꿈을 시도했다. 규모는 작지만 대형마트나 편의점보다 더 편리한 시장을 위한 변화들이 시작된 것이다. 먼저 시장을 일곱 구역으로 나누어 방문객들이 찾기 쉽게 하고 대형마트처럼 각종 나물, 채소, 과일 등을 소량 단위 묶음으로 포장해 판매했다. 아이와 함께 방문하는 주부와 시장 상인이자 손님인 자양동 주민을 위해 2014년엔 고객쉼터도 만들었다. 쉼터에는 시장 물건 배송을 책임지는 공동물류센터와 하자가 있는 물건을 교환해주는 곳도 있다. 대형마트와 비슷한 서비스를 훨씬 더 정겹고 자연스럽게 해야 소비자들을 끌어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여기에 대형마트에는 없는 서비스도 추가했다. 동네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이다. 워낙 한동네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시장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 조합장은 “주변 대형마트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우리 동네 대표 시장”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자양전통시장은 ‘전통시장계의 다윗’으로 불리기도 한다. ‘골리앗’ 같은 대형마트에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시장 상인들의 고군분투로 ‘재래시장 현대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하는 ‘골목형 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됐다. 지원금 5억2000만 원으로 자양전통시장은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골목형 시장 육성사업은 도심이나 주택단지에 위치한 시장을 대상으로 고유한 개성과 특색을 발굴해 주민친화형 특화시장으로 육성하는 정부 사업이다. 2015년 첫선을 보인 이 사업은 2년간 총 141개 시장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총 200개의 시장을 육성하는 게 목표다. ‘다윗’에서 그치지 않고 ‘골리앗’이 되기 위해 자양전통시장은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시장 내 점포를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포털 사이트에 소개했다. 깔끔함,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한 규격과 디자인의 특화간판도 개발했다. 편의점 같은 역할도 하겠다는 의지로 소비자 수요에 맞춘 자체 브랜드 상품도 개발했다. 골목시장을 들르는 고객 중에는 인근 아차산을 찾는 등산객이 많았는데, 이들을 위해 도시락을 만든 것이다. 자양전통시장의 맛(味)있는 도시락이라는 의미를 담은 ‘자미락’이 바로 그것이다. 자미락은 당일 조리, 당일 판매가 원칙이다. 소금, 설탕 함유량을 줄여 ‘건강한 도시락’으로 불린다. 메뉴는 돈가스, 제육볶음, 소불고기, 오삼불고기 등 다양하며 3인분 이상은 배달도 가능하다. 박 조합장은 “시장에서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재료로 도시락을 구성하고 있어 편의점 도시락보다 훨씬 신선하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자양전통시장의 차기 목표는 ‘핵심 점포’ 육성이다. 핵심 점포란 시장을 대표하는 메뉴를 만들어 파는 가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핵심 점포가 알려지면 전통시장 주 고객층이 아닌 20, 30대 젊은층도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다. 박 조합장은 “속초시장 하면 닭강정이 떠오르듯 우리 시장도 ‘핵심 점포’를 육성하는 게 다음의 목표”라며 “대표 메뉴를 개발하고 홍보에도 더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보좌진의 월급을 빼돌려 정치자금으로 쓰고 불법 후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군현 자유한국당 의원(65·경남 통영-고성·사진)이 1심에서 의원직 상실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심형섭)는 3일 이 의원의 정치자금 불법수수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또 회계보고 누락에 대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의원에게 추징금 2억6100만 원을 부과하고 사회봉사 200시간을 명령했다.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국회의원은 징역형이나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잃는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경찰이 KB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찬반을 묻는 노동조합의 온라인 설문조사에 회사 측이 개입한 의혹과 관련해 3일 KB금융그룹을 압수수색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KB금융그룹 본점의 HR(human resources) 본부장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앞서 KB금융노동조합협의회(KB노조)는 올 9월 초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62)의 연임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노조의 온라인 설문조사에 사측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설문조사 마지막 날 사측 일부 인사가 조직적으로 중복투표를 실시해 찬성률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9월 13일 KB노조는 업무방해 및 부당노동행위 등의 혐의로 윤 회장을 경찰에 고발했다. 현재 KB노조는 국민은행 본점 앞에서 노숙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KB금융은 “설문조사에 개입한 적 없다. 노사 공동 조사를 노조에 요구해 문제점 발견되면 지위고하 막론하고 엄중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고발인인 노조 측 인사를 불러 조사했고 조만간 사측 인사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역사 교과서 국정화 여론 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1일 학부모단체인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공학연) 등 5곳을 압수수색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김종오)는 이날 오전 공학연 사무실을 비롯해 이경자 상임대표와 이희범 사무총장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공학연은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성에 앞장섰던 보수 성향의 학부모단체다. 앞서 검찰은 20일 교육부와 한 인쇄업체를 압수수색하고 양모 성균관대 교수 등을 소환 조사했다. 최근 부총리 직속 역사교과서 국정화진상조사위원회는 2015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당시 청와대와 국정원 등이 의견수렴 과정에 조직적으로 개입해 여론을 조작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양 교수와 김모 전 교육부 학교정책실장, 좋은학교 만들기 학부모모임 등 3곳을 수사의뢰했다. 공학연은 교육부 수사 의뢰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검찰은 관련자 혐의 확인을 위한 증거 수집 때문에 압수수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금융감독원 채용비리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1일 이병삼 전 금감원 부원장보(55)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김종오)에 따르면 이 전 부원장보는 2016년 상반기 민원처리 전문직원 채용 과정에 개입해 부적격자를 선발한 혐의(업무방해, 직권남용 등)를 받고 있다. 이 전 부원장보는 세평(世評) 조회 절차를 임의로 추가 또는 생략해 금감원 출신 지원자를 우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영장 실질심사는 3일 오전 10시 30분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다. 김수일 전 금감원 부원장 등 다른 금감원 고위간부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지난해 5급 신입직원 채용 과정도 수사 대상이다. 김 전 부원장 등은 채용 청탁을 받은 뒤 임의로 채용 기준을 바꾸고 계획보다 인원을 늘려 부적격자를 선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한국수출입은행 간부 A 씨가 지난해 금감원 신입 공채에 지원한 아들의 필기시험 합격을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에게 청탁했고, 김 회장은 금감원 이모 총무국장에게 청탁한 정황을 파악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5일 김 회장 자택과 사무실, A 씨 사무실 등 8곳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증거를 분석하고 있다. 경찰청은 올해 말까지 공공기관 채용 비리 특별단속에 나섰다. 경찰은 비리 유형을 △금품수수 △의사결정 부당개입 △정보 유출과 문서 위·변조 △업무방해 등으로 분류했다. 경찰은 채용 비리 과정에서 금품을 받은 사람을 구속 수사하고 상급자까지 철저히 추적하겠다고 밝혔다. 단속 대상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공직 유관단체 등 공공기관 1100여 개다. 공공성이 강한 학교와 학교법인, 기업체 단속도 병행한다. 금융당국도 금융공공기관 전수 조사에 착수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말까지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7개 금융공공기관의 채용 절차 전반을 점검한다. 연말까지 5개 유관단체(한국거래소 한국증권금융 등)도 점검하기로 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이날 ‘금융권 채용문화 개선회의’를 열고 “금융공공기관에서 채용 비리가 발생하면 관련자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묻고 기관 예산 편성, 경영평가 등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자발적 신고를 독려하기 위해 금융위 안에 ‘금융공공기관 채용비리 신고센터’를 설치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비리 제보가 접수되면 ‘과거 5년간’의 기간에 구애받지 않고 조사할 방침이다.이지훈 easyhoon@donga.com·조동주·강유현 기자}

초동 수사 부실로 물의를 빚은 ‘어금니 아빠’ 살인사건 이후 일선 경찰관 사이에선 실종수사전담팀에 ‘끌려가지’ 않으려는 눈치작전이 한창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실종 수사를 강화한다며 현재 서울 8개 경찰서에 있는 실종수사팀을 나머지 23개 경찰서로 확대하기로 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과 함께 실종 수사를 맡는 여성청소년과 형사 일부를 떼어내 실종수사팀을 만든다는 게 경찰의 대책이다. 추가 인력과 예산은 없다. ‘돌려 막기’ 조치다. 일선서 여청과 형사는 “지금도 부서 인력이 부족한데 일부에게 실종 사건을 전담시킨다고 해도 일반 사건이 터지면 다 동원될 수밖에 없다. 실종담당 형사는 업무만 늘어날 게 뻔하다”고 말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전체 실종 신고 가운데 범죄와 관련된 것으로 확인된 비율은 0.03% 수준이다. 실종담당 경찰은 10000건 중 3건에 대비해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 된다. 역으로 10000건 중 997건은 별일 아니라는 생각에 안일해지는 게 현실이다. 한 경찰관은 “범인을 잡으면 포상을 받지만 실종자는 찾아도 당연시된다. 십중팔구 돌아올 텐데 공들여 찾으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찰에 실종 수사는 ‘폭탄 돌리기’ 같다. 실종 신고를 부실하게 처리해 형사사건 피해로 이어지고 그 결과 징계를 받으면 “운이 나빠 걸렸다”는 생각이 앞선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그대로 둔 채 실종전담팀을 확충한다고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인력과 예산도 없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식이라면 여론의 소나기를 잠시 피하려는 미봉책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은 실종전담팀이 부족하거나 매뉴얼이 부실해서 생긴 참극이 아니다. 경찰이 피해 여중생의 실종 신고를 ‘코드1’으로 분류하고도 출동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최종 행적을 확인하지 않아서다. 이미 있는 인력과 매뉴얼을 활용하지 않은 결과일 뿐이다. 잘 갖춰진 시스템이 있는데도 왜 경찰이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경찰은 2012년 오원춘 사건을 계기로 112신고체계를 확 뜯어고쳤다. 112상황실이 전문성을 중시하는 조직이 되면서 능력 있는 경찰이 대거 포진했다. 실종 수사에 당장 인력과 예산을 늘리기는 어렵다. 오원춘 사건 때처럼 전문성을 가진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게 할 대책이 필요하다.이지훈·사회부 easyhoon@donga.com}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 피해자 김모 양(14)의 실종 신고를 접수한 서울 중랑경찰서는 당시 ‘출동하겠다’고 상부에 보고는 했지만 이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긴급성을 요하는 ‘코드1’으로 분류된 사건인데도 신고한 김 양 어머니에게 김 양의 최종 행적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그때 김 양은 이영학 자택 안방에서 수면제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실은 25일 이영학 사건 부실 수사 책임을 물어 조희련 중랑서장을 문책성 전보 조치하고 최민호 중랑서 여성청소년과장 등 8명에 대한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중랑서 여성청소년수사팀은 지난달 30일 오후 11시 20분경 김 양 어머니가 112 신고를 해 출동 지시가 내려졌지만 무전으로 ‘알겠다’고만 답하고 사무실에 계속 앉아 있었다. 중랑서 망우지구대 순찰팀장 등 3명은 김 양 어머니가 딸의 최종 행적을 말했는데도 사실상 무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종수사팀은 사건 접수 당시 5명이 근무했고 다른 긴급 현안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팀은 이날 4건의 실종 신고를 받았지만 단 한 번도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다. 김 양 어머니가 신고한 지 2시간 반 뒤 김모 씨(54·여) 가족이 실종신고를 했지만 역시 수수방관했다. 김 씨는 약 11시간 뒤 강동구 천호대교 남단에서 투신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서울의 실종 수사 담당 경찰 A 씨는 “실종신고 10건 중 7건은 현장에 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종 신고자의 90%가 24시간 안에 귀가하는 모습을 수년간 반복적으로 봤기 때문에 ‘실종=단순 가출’이라는 사고가 굳어졌다는 얘기다. 다른 경찰 B 씨는 “미성년자나 여성이 실종됐다는 신고는 상황 판단을 하지 않고 일제히 ‘코드1’으로 분류하다 보니 ‘출동하겠다’고 답하고는 잘 나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실종 사건이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전담하는 여청수사팀 업무로 분류된 시스템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서울 관내 31개 경찰서 중 실종수사전담팀을 둔 곳은 8개 서뿐이다. 일선 여청수사팀 경찰 C 씨는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기도 빠듯한데 언제 귀가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일일이 수색하는 게 우선순위는 아닐 수밖에 없다”며 “실종신고는 24시간 동안 기다려 보고 그때도 귀가하지 않으면 수사를 시작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영학 모친의 사실혼 관계인 배모 씨(59)는 이날 강원 영월군 자택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배 씨는 이날 며느리이자 이영학 아내 최모 씨(32)를 수년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배 씨 옷 주머니에서는 A4 용지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 형사들께 부탁드리는데 누명을 벗겨 달라. 지금까지 도와주신 분들께 죄송하고 형님한테 미안하다’고 적은 자필 유서가 발견됐다. 이영학을 도와 김 양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딸 이모 양(14)은 이날 사체 유기 혐의 등으로 서울북부지검에 의해 구속영장이 재청구됐다.김예윤 yeah@donga.com·이지훈 / 영월=이인모 기자}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일궈낸 것에 머무르지 말고 사회 어른으로서 국가와 사회 발전에 여생을 바칠 것입니다.” ‘제21회 노인의 날’(10월 2일)을 맞아 20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이중근 대한노인회장(부영그룹 회장·사진)은 이렇게 노인의 책무를 강조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 캐나다 칠레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 거주하는 노인회 회원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를 비롯한 정치권 인사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에서는 올해 100세를 맞은 김철용 국모례 씨를 비롯해 1423명이 청려장(靑藜杖)을 받았다. 청려장은 주민등록상 100세이거나 주민등록과는 다르지만 실제 나이가 100세로 확인된 노인에게 증정하는 장수 지팡이다. 1993년부터 노인의 날을 기념해 대통령 명의로 증정하고 있다. 올 8월 말 기준으로 100세 이상은 남자 3933명, 여자 1만3588명으로 모두 1만7521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영상메시지를 통해 △노인 기초연금 확대 △노인 일자리 지원 △치과 치료비 경감 및 치매 국가책임제 등을 약속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념사에서 “기초연금 인상,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 등을 통해 노후소득 보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대한노인회는 ‘어른다운 노인으로, 노인회는 노인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젊은 세대를 선도하며 국가사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김모 씨(35·여)는 경남의 한 섬마을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다. 지난해 그는 호신용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다. 전남 지역 섬마을에서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스마트워치는 위급상황 발생 때 긴급버튼을 누르면 112상황실에 자동으로 신고가 접수되는 장치다. 하지만 김 씨는 3개월 만에 스마트워치를 반납했다. 김 씨는 “충전이 번거롭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민감한 사생활 정보 같은 게 유출될까 걱정됐다”며 “갖고 다니기도 불편하고 파손되거나 분실하면 변상해야 돼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 후 정부가 도서벽지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를 위해 내놓은 각종 안전대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겉돌고 있다. 19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받은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보급대상자 1152명 중 177명(15%)만 스마트워치를 사용 중이다. 스마트워치를 반납한 이유 또는 착용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 106명 중 64%(68명)는 ‘사생활 침해’와 ‘개인정보 유출’을 꼽았다. 스마트워치는 발신자 위치정보가 10m 안팎으로 정확히 파악된다. 추가 정보 확인 없이도 경찰이 출동할 수 있다. 또 소지자가 긴박한 상황에 놓여 직접 말할 수 없어도 전화만 걸면 위치가 경찰 112상황실로 전달된다. 일부 교사들은 이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고 있다. 스마트워치 지급은 처음부터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초기 지급 희망자도 283명으로 전체 대상자의 24%에 그쳤다. 1년가량 지난 현재(9월 기준) 104명은 스마트워치를 반납했고 2명은 미착용 상태다. 정부는 또 지난해 분교가 있는 마을 7곳에 파출소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9월 현재까지 대상 지역 중 설치가 이뤄진 곳은 한 곳도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올해 초 스마트워치 보급을 위해 조사를 실시했는데 추가 수요가 없어 내년에도 사업을 계속할지 확실치 않다”며 “파출소 설치는 교육부에서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노 의원은 “스마트워치 보급은 생색내기 탁상행정 예산낭비의 대표 사례로 교육부는 소 잃고 외양간마저 못 고친 꼴이 됐다”며 “도서벽지 근무 기피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우리 딸 전화기가 꺼져 있어요. 여태 집에 안 들어왔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거든요.” 지난달 30일 오후 11시 15분 여중생 김모 양(14)의 어머니는 112에 딸의 ‘미귀가’를 신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양이 ‘어금니 아빠’ 이영학(35)의 집에 있을 때다. 당시 김 양은 수면제 탓에 잠들었지만 아직 살아있었다. 신고를 접수한 서울지방경찰청 112종합상황실은 처리 내역서에 ‘코드1’로 분류했다. 실종자의 생명과 신체에 위험이 닥칠 가능성이 있어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코드1을 부여한다. 이 경우 최단시간에 출동해 수색해야 한다. 112상황실에서는 해당 사안이 긴박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경찰의 조치와 움직임은 코드1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찰 매뉴얼에 따르면 실종신고 접수 후 최우선 조치는 실종자의 ‘최종 행적’ 확인이다. 실종 직전 머물렀던 장소와 함께 있었던 인물이 특정돼야 수색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기본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김 양의 어머니는 112에 신고하고 약 30분 후 서울 중랑구 망우지구대를 찾았다. 김 양 어머니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경찰관에게 딸이 마지막으로 만난 게 이모 양(이영학의 딸)이라고 말했다. 내가 ‘얘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겠다’고 말한 뒤 이 양과 직접 2분 18초 동안 통화했다”고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경찰은 김 양 최종 행적의 핵심 단서를 놓친 셈이다. 이에 경찰은 “당시 지구대 주변이 시끄러워 이 양의 이름을 들었다는 사람이 없다. 신고자가 이 양에 대해 경찰에게 말한 시간은 1일 오후 9시경”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7일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공개한 당시 지구대 폐쇄회로(CC)TV 화면을 살펴보면 경찰 해명과 거리가 있다. 김 양 어머니가 지구대에 머물렀던 약 50분 동안 크게 어수선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 양 어머니는 담당 경찰관과 구석진 곳에서 대화를 나눠 다른 민원인과 가까이 있지도 않았다. 이후에도 김 양의 최종 행적 파악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민주당 박남춘 의원에 따르면 실종자 기초 조사를 위한 프로파일링 조서에는 최종 행적을 적는 부분이 비어 있다. 발생 개요란에 ‘미귀가자는 평소 가출 경력이 없는 자로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후 귀가하지 않은 것으로, 현재 휴대전화 전원이 꺼져 있는 상태’라고 기록하고도 적극적으로 행적을 파악하지 않은 것이다. 서울 중랑경찰서 관계자는 “추석 연휴에 친구 집에서 자고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단순 가출 사건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 양의 통신기록도 확인하지 않았다. 김 양의 통화기록 확인은 사망 후 하루가 더 지난 2일에야 가족 협조로 이뤄졌다. 김 양의 최종 행적 파악이 늦어지면서 결과적으로 김 양은 부모의 실종신고 후 13시간가량 살아 있다가 이영학에게 살해됐다. 17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위원들은 경찰의 부실수사를 질타했다. 김정훈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초동 수사 부실과 인수인계 미흡, 공조체제 미비 등으로 이런 결과가 나와 송구스럽다”며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을 가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예윤 기자}

‘황금상점.’ 경남 진주시의 중앙지하도상가를 찾으면 이 같은 간판이 붙어 있다. 황금처럼 빛나는 20인의 청년이 만든 문화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이곳은 여느 지하상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20인의 청년은 24세부터 39세까지 연령이 다양하다. 파는 품목도 마찬가지다. 청바지를 ‘직접 찢어주는’ 상점부터 슈링크아트(열을 가하면 줄어드는 플라스틱 용지를 활용한 수공예) 같은 생소한 공예기술을 가르쳐주는 공방도 있다. 매년 진주에서 열리는 유등축제의 대표 먹거리인 ‘유등빵’을 판매하는 청년도 있다. 황금처럼 반짝이는 청년들이 꿈을 키워가는 놀이터, 전주 지하도상가를 지난달 29일 찾았다.○ “좋아해서 시작했어요”…취미 살려 일자리 찾은 ‘성공한 덕후’ 3인 상호부터가 ‘내가 좋아하는’이다. 상점 주인은 김아람 씨(29·여)다. 김 씨는 스스로를 “성공한 덕후”라고 소개했다. 가게에서 김 씨가 파는 건 캘리그래피(Calligraphy·손으로 그린 그림문자) 새긴 제품이나 슈링크아트를 활용한 액세서리다. 김 씨는 “20대 초반부터 취미로 했던 걸 만들어 파는 것”이라며 “한 달에 네 번 정도 공방 교실을 열어 교육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의 공방을 찾는 손님의 연령대는 그 폭이 넓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도 그의 손님이다. 김 씨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방과후수업으로 공방을 찾는 경우가 꽤 많다”며 “평일은 주부, 대학생 수업 위주로 하고 주말엔 아이들 체험 교실처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 가게 맞은편에는 ‘청바지를 기호대로 찢어드립니다’라는 도발적인 문구를 내건 가게가 있다. ‘찢어진 청바지’를 좋아하는 청년은 청바지 가게 사장이 됐다. 최대수 씨(30)다. 스무 살 때부터 청바지 브랜드 상점에서 일한 최 씨는 ‘청바지 찢어주는 가게’를 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브랜드 청바지는 디자인 문제 때문에 함부로 손댈 수가 없잖아요. 리폼을 해주는 곳도 거의 없고…. 청바지를 찢어 입는 걸 좋아하다 보니 청바지를 보면서 ‘찢으면 훨씬 예쁠 텐데’ 하며 답답해했어요.” 최 씨의 가게에서 청바지를 사면 그 자리에서 원하는 대로 찢거나 염색을 해준다. 손님이 기존에 갖고 있는 청바지를 가져오면 ‘고객 체형’에 따라 찢어주기도 한다. ‘청바지 찢기’에 관한 한 최 씨만의 철학이 있다. “청바지도 잘 찢어야 해요.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찢은 청바지는 입는 사람 체형에 따라 모양이 안 예쁘거든요.” 최 씨에 따르면 무릎이나 허벅지 등 찢어진 청바지를 이용해 어느 부위를 노출하느냐에 따라 멋스러움도 달라진다. 최 씨는 “구제 느낌 나게 때를 묻히거나 페인팅을 해드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틈새시장’을 노린 최 씨의 가게는 입소문을 꽤 탔다. 최 씨는 “고객이 고객을 데리고 온다”며 웃었다. 진주뿐 아니라 창원, 김해 등 경남지역에서 직접 “청바지 찢어달라”며 찾아오는 손님도 적잖다고 한다. 취업준비생이던 여대생은 ‘취업준비 스트레스 해소’ 목적으로 향초를 만들었다. 대학에서 프랑스문화학을 배웠지만 전공엔 관심이 없었다. 하솔 씨(25·여)는 “졸업하고 진로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며 “갈피를 잡지 못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중에 취미로 시작하게 됐는데 만드는 게 너무 즐거워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시작했던 취미로 하 씨는 자격증까지 땄다. 당장 창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향초에서 시작한 하 씨의 ‘덕질’은 그 영역이 점점 넓어졌다. 향초뿐 아니라 디자인 캔들, 디퓨저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부산에는 소이캔들 숍이 되게 많아요. 그래서 제가 이걸 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있을 거란 생각은 미처 못 했죠.” 그러던 중 하 씨의 이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진주에서 청년상인 사업을 하는데 취업에 큰 뜻이 없으면 도전해보라는 것. 가족들의 격려에 하 씨는 창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하 씨는 “언젠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인데 시기가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하 씨의 다음 꿈은 ‘조향(調香)’이다. 남들이 만든 향기를 향초에 담을 뿐 아니라 직접 향기까지 만들겠다는 것이다. “제 가게의 콘셉트가 ‘빛과 향기를 파는 곳’이거든요. 초를 만들어서 ‘빛’은 완성이 됐으니 이젠 ‘향기’도 만들 예정입니다.”○ 경쟁 아닌 윈윈…청년상인 20인 “우리는 운명공동체” 진주시는 △진주 중앙지하도상가 활성화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두 가지 과제를 잡기 위해 ‘청년몰’을 조성하기로 했다. “청년이 창업해야 산다”는 슬로건 아래 각 지자체에서 불었던 ‘청년몰 조성 붐’의 일환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주시의 접근 방식은 특별했다. 지난해 10월 예비 청년상인 20명을 뽑았다. 이들을 대상으로 6, 7개월간 ‘혹독한 트레이닝’을 했다. 고객 응대 방식 교육부터 아이템 선정 피드백은 기본이었다. 서울, 부산, 전주, 수원, 강원도 등 전국의 청년몰을 견학했다. 특성화고등학교와 연계해 창업과정도 함께 연구했다. 6개월의 훈련과정을 거쳤던 청년상인 3인은 이 기간을 “황금 같은 시기”였다고 입을 모았다. 최 씨는 “교육을 6, 7개월간 같이 받다 보니 거의 가족이 됐다”며 “‘운명공동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운명공동체’이기도 한 20인의 청년상인은 매주 한 번씩 지하도상가에 위치한 회의 장소에 모인다. 요일별 매출 분석을 하며 각 매장 전략을 수립하는 데 서로 도움을 준다. 정기적으로 사회봉사활동을 진행하며 물품 공동구매, 인테리어 조언을 하는 등 ‘팀워크’가 남다르다. 김 씨는 “무슨 일이 생겨서 문을 못 열게 되거나 잠시 자리 비웠을 때도 대신 봐주고 손님에게 물건을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로 단합이 잘된다”고 말했다. 청년상인들은 각자 창업을 했지만 청년몰을 통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성장할 수 있는 것을 큰 장점으로 꼽았다.▼ 이민권 소상공인시장진흥公 이사 “상인끼리 화합 잘돼… 노년층 고객 끌 상품 개발해야” ▼“고객층을 확대하는 게 시급해 보입니다. 기존 고객인 직장인, 청년들뿐 아니라 노년층 공략이 필요해 보이네요.” 이민권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임이사(사진)는 진주 중앙지하도상가 ‘황금상점’의 청년 상인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이 상임이사는 “진주시는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인 만큼 노년층 고객 공략이 필요하다”며 “실버층이 선호하는 건강 관련 상품이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뿐만 아니라 노년층 고객의 젊은 시절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추억의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추천했다. 현재 진주 중앙지하도상가의 주 고객은 인근 직장인과 10∼30대 청년이다. 이들이 주로 찾는 저녁, 주말시간이 아닌 평일 오전, 오후 시간대를 수익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도 노년층 고객의 확보는 필요하다. ‘황금상점’에는 체험형 점포가 많은 편이다. 물건을 구입하기보다 ‘체험’을 하기 위해 상점을 찾는 고객이 많은 데 비해 공간은 협소하다. 이 상임이사는 “주말에 대기하는 고객이 많은데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예약제를 도입하거나 공동 체험 장소를 만들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줄 서는 점포의 장점이 지명도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기다리다 포기하는 고객 이탈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다. ‘운명공동체’처럼 상인끼리 화합하는 모습은 큰 장점으로 꼽았다. 몰인몰(mall in mall) 형태의 지하상가에서는 기존 상인과 새 상인이 화합하지 못하고 ‘따로따로’인 경우가 적지 않지만 황금상점은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황금상점의 청년상인 20인은 자체 개발한 ‘황금열쇠를 찾아라’ 증강현실 게임 애플리케이션으로 공동 이벤트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 상임이사는 “‘따로 또 같이’라는 슬로건으로 상호 협력해 공동이벤트를 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황금상점’이라는 브랜드를 활용해 캐릭터를 개발하는 등 새로운 마케팅도 추진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진주=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