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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대/아름다운 모습으로/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청와대 경호처 부장 정학(유준상 이건명 최재웅 강태을)이 산 한가운데 서 있다가 ‘거리에서’를 부르며 천천히 걸어 내려온다. 산은 서서히 낮아지고 정학이 무대 한가운데로 내려오면 무대 배경은 전봇대와 가로수 영상이 비치는 거리로 변한다. 검은색 대형 천을 아래위 두 조각으로 찢어낸 듯 만든 산이 무대를 꽉 채워 스크린이 된 것이다. 고 김광석이 부른 노래를 엮어 장유정 씨가 극본을 쓰고 연출한 창작 뮤지컬 ‘그날들’은 무대가 88번 전환된다. 창작 뮤지컬의 경우 무대 전환이 보통 20∼30번인데 ‘그날들’은 3, 4배 더 바뀌는 셈이다. 무대디자이너 박동우 씨는 “극본을 본 순간 영화 시나리오 같았다”고 말했다. ‘그날들’은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대통령의 딸과 경호원이 함께 실종되는 사건과 정학의 파트너 무영(김승대 오종혁 지창욱 규현)이 20년 전 경호를 맡은 여성과 사라진 사건이 교차된다. 지난해 초연돼 현재 재공연되고 있다. ‘이등병의 편지’ ‘변해가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서정성 짙은 노래는 강하고 남성적인 느낌으로 편곡됐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무대는 작품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연주회장이 경호훈련장으로 바뀌고, 청와대 내 비밀 자택이 나오는가 싶더니 어느덧 책이 빽빽이 꽂힌 도서관이 펼쳐진다. 사건의 핵심 장소인 산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져 수많은 무대 전환이 가능하게 한 일등 공신. 산을 조형물로 만드는 것도 검토했지만 이동시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천으로 만들었다. 벨루어 소재로 만든 폭 12m, 높이 8m 산은 아래위 두 조각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곧바로 나타나고 사라져 ‘산→경호원 샤워실→산’ 등의 변화가 수월해졌다. 산 아래 조각 일부에는 천 뒤에 합판을 대 조형물처럼 단단한 느낌을 준다. 벚꽃, 악보 등 영상을 비출 때는 굵은 실로 만든 커튼을 산 앞에 드리워 하얀색 스크린이 되게 했다. 박 씨는 “산의 가로로 갈라진 공간은 경호 시범을 보일 때는 푸른색, 쫓기던 경호원 무영이 홀로 서 있을 때는 붉은색 조명으로 채워 냉철함과 긴박감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1월 18일까지 서울 대학로뮤지컬센터 대극장, 6만6000∼11만 원. 1544-1555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가수 서태지(사진)의 노래가 대형 창작 뮤지컬로 태어난다. 가요를 엮어 만드는 이른바 ‘주크박스’ 뮤지컬로 서태지는 뮤지컬 대본과 편곡 작업의 감수를 맡는 방식으로 작품에 참여할 계획이다. 서태지컴퍼니의 자회사인 ‘스포트라이트’는 서태지의 노래를 토대로 한 창작 뮤지컬 ‘페스트’를 내년 하반기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고 10일 밝혔다. 스포트라이트는 음반 제작, 공연 기획 등을 해왔다. 뮤지컬 ‘페스트’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서태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2011년부터 준비한 만큼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뮤지컬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 서태지가 작곡한 ‘너에게’ ‘발해를 꿈꾸며’ ‘컴백홈’ 등 초창기 음악은 물론이고 ‘테이크 6’ ‘틱탁’ 등 솔로 앨범 수록곡 등 주요 히트곡 대부분이 등장한다. 카뮈의 ‘페스트’는 알제리의 해안 도시 오랑에 갑작스럽게 질병이 퍼지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 뮤지컬 ‘페스트’는 오랑의 자유로운 풍경 등 공간적 배경은 그대로 가져오지만, 시대적 배경은 현재의 이야기로 바꿀 예정이다. 스포트라이트 송경옥 책임 프로듀서는 “우리 삶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 공감을 이끌어내는 한편 공존의 의미를 짚어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연 배우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할 예정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이번 뮤지컬을 위해 서태지와 음악저작권 계약을 체결했다. 서태지의 히트곡은 그동안 공연기획자들 사이에서 주크박스 뮤지컬로 만들어보고 싶은 노래 중 하나로 꼽혀왔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만들어진 특정 가수의 주크박스 뮤지컬로는 고(故) 김광석이 부른 노래를 엮어 만든 ‘그날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디셈버’와 고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로 만든 ‘광화문 연가’, 7080 히트가요를 엮어 만든 ‘젊음의 행진’ 등이 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자유가 돌아오는 날 제 희곡을 세상에 내놓겠습니다.” ‘레미제라블’을 쓴 대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가 자유로운 세상에서 공연되길 희망했던 연극 ‘1000프랑의 보상’(사진)이 국내 관객을 만난다. 프랑스 툴루즈 국립극장 오리지널팀이 25, 26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다. 연출은 연극, 오페라 연출가로 유명한 로랑 펠리가 맡았다. 이 작품은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완성한 지 4년 후인 1866년 망명지인 건지 섬에서 집필했다.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저지른 범죄로 범법자가 된 글라피외가 자신을 도와준 가족이 가난으로 궁지에 몰리자 이를 돕는 내용이다. 4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사회적 불의와 부의 불평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휴머니즘과 풍자적 유머를 담고 있다. 위고가 희곡을 완성했다는 소식에 프랑스 여러 극단은 앞다퉈 공연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위고는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극단 대표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검열이 존재하는 프랑스 현실을 비판하며 온전한 자유가 보장되는 날에 작품을 출판하고 공연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이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인 1934년에 출판됐고, 1961년 처음 공연됐다. 국내에 선보이는 연극은 툴루즈 국립극장이 2010년 초연한 작품으로 눈 내리는 파리를 몽환적으로 연출했다. 빛과 그림자를 사용해 흑백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등 로랑 펠리는 현대적인 감각의 무대를 선보였다. 2011년 ‘프랑스 비평가상’ 연출가상과 무대미술상을 받았다. 26일 공연 뒤 연출가와 관객의 대화가 마련돼 있다. 원작 희곡은 최근 출판사 열화당에서 책으로도 펴냈다. 1만∼11만 원. 031-783-8042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문화가 있는 날’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관심만큼이나 문화계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달로 문화가 있는 날이 시작된 지 10개월을 맞았지만 참여 단체들은 여전히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공립 단체 및 시설에 집중돼 있다. 9월 기준으로 1474개 참여 단체 중 민간단체의 수는 569개로 38% 수준에 그쳤다. 문화계 전문가들은 민간단체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주로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을 기획하는 빈체로 송재영 부장은 “클래식 공연은 단 하루만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할인 폭이 큰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 참여하면 손익분기점을 못 맞출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 차원에서 참여하는 기획사에 세제혜택이나 보조금 지원 등의 ‘당근’을 마련해 주지 않는 이상 참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문화계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45%가 문화가 있는 날 활성화를 위해 ‘참여 단체에 대한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할인액과 거의 같은 금액을 정부가 지원하는 ‘매칭 그랜트’ 방식의 보조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화가 있는 날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응답자의 35%가 ‘홍보 확대’를 문화가 있는 날 활성화의 주요 방안으로 꼽았다. 실제 15일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이 문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문체부가 8월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문화가 있는 날 인지도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들어본 적도 없다’는 응답이 63.7%에 달했다. 뮤지컬 ‘위키드’ ‘오페라의 유령’ 등을 제작한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는 “홍보 캠페인이 동반되지 않은 정책이다 보니 문화가 있는 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상당하다”며 “이 정책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홍보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전문가들은 문화가 있는 날 활성화 방안으로 현재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로 고정돼 있는 문화가 있는 날의 탄력 운영, 관람객에게 연말정산 등 세제혜택 제공, 문화가 있는 날 행사와 청소년 문화 체험학습 연계 등의 의견을 내놨다. 김정은 kimje@donga.com·손효림 기자}

《 10월은 ‘문화의 달’. 셋째 주 토요일인 18일은 ‘문화의 날’이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정해 미술관, 공연장, 박물관 등의 관람료를 할인해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가 있는 날’에 영화 ‘넛잡’, 뮤지컬 ‘김종욱 찾기’ 등을 관람하며 문화의 날 알리기에 나섰다. ‘문화 융성’을 국정 4대 기조 가운데 하나로 내건 현 정부의 주요 문화 정책인 문화가 있는 날의 성과와 나아갈 길을 진단한다. 》#1.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반신’의 9월 24일 공연표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일본의 유명 연출가 노다 히데키가 연출한 이 공연은 작품성도 있지만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표를 40% 할인해줬기 때문이다. 한태숙 연출가의 연극 ‘유리동물원’도 마찬가지였다. 8월 27일 표(40% 할인)가 순식간에 매진되는 등 명동예술극장은 문화가 있는 날이 되면 관객들로 붐빈다. #2. 인터파크에서 월별 뮤지컬 티켓 예매 순위 1∼10위를 차지하는 작품(15일 현재) 가운데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하는 작품은 단 한 개에 불과하다.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황태자 루돌프’가 유일한데 선착순 100명에 한해 관람료를 50% 할인해주고 있다. 1월부터 시행된 문화가 있는 날이 차츰 성과를 내고 있지만 문화계 전반으로 활발하게 확산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참여 프로그램 수는 늘고 있지만 정작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부담 줄자 관객 반색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한 프로그램 수는 올해 1월 883개에서 빠르게 늘어나 9월 1474개로 집계됐다. 국공립 문화단체는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9월의 경우 전체 1474개 프로그램 가운데 905개가 국공립, 569개가 민간단체의 프로그램이었다. 장르별로는 전시가 438개로 가장 많았고, 인문학강좌를 개설하거나 책을 추가로 대출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도서관(418개), 영화(275개), 공연(175개) 순이었다. 동아일보가 문화계의 분야별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문화가 있는 날 효과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느리지만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의견이 8명으로 가장 많았다. 효과가 상당하다는 의견도 7명이었다. 눈에 띄는 효과를 낸 대표적인 장르는 영화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영화관에서는 문화가 있는 날에 오후 6시부터 8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5000원에 관람할 수 있다. 평일 영화표 값이 8000∼9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큰 폭으로 할인해 주는 것. 신기범 CGV 영업지원팀장은 “1∼8월 문화가 있는 날 좌석 점유율은 다른 수요일의 두 배에 가까워 관객이 늘어난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무용단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정오의 춤’ ‘국악콘서트 잔치’ 등 기존 작품을 무료로 공연한 결과 좌석 점유율이 평균 103.9%로 나타났다. 준비한 좌석이 모두 매진돼 추가로 좌석을 마련했을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40∼50%를 할인한 뮤지컬 ‘시카고’ ‘고스트’를 비롯해 연극 ‘엄마를 부탁해’ ‘가을소나타’도 모두 매진됐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난타’와 ‘뮤직쇼 웨딩’은 평소에 비해 한국인 관객이 10% 정도 늘었다. 1만 원인 관람료를 5000원으로 할인해주는 삼성미술관 리움 역시 관람객 수가 다른 평일의 1.2배로 증가했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 확보해야 하지만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하는 프로그램 중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작품은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인터파크에서 요즘 티켓 예매 순위 1∼5위에 오른 ‘레베카’ ‘지킬 앤 하이드’ ‘조로’ ‘마리 앙투아네트’ ‘헤드윅’은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하지 않았다. ‘프라이드’ ‘슬픈 연극’ 등 인기가 많은 연극 역시 마찬가지다. 매달 한 편 이상 공연을 관람하는 최보라 씨(31)는 “문화가 있는 날에 할인을 많이 해준다고 해서 반가웠는데 막상 보고 싶은 작품은 해당 사항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결국 문화가 있는 날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관객들이 찾는 콘텐츠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획사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문화계의 지적이다. 설문 응답자 20명 가운데 11명은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하기 힘든 이유로 기획사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윤택 연출가는 “정부 차원의 문화정책이면서도 민간 분야의 제작사나 공연장에 아무런 혜택이 없는 것은 문제”라며 “문화가 있는 날이 제대로 꽃피우려면 정부가 의지를 갖고 좋은 콘텐츠를 갖고 있는 제작사의 참여를 유도하고 실질적인 지원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손효림 aryssong@donga.com·김정은 기자}

“연극 ‘나는 너다’는 제게 선물 같은 작품이에요. 연기에 대한 회의감에 허우적거릴 때 연기에 다시 눈뜨게 해 준 작품이거든요.” 11월 막을 올리는 연극 ‘나는 너다’에 세 번째 출연하는 송일국(43·사진)의 눈이 반짝였다. 윤석화가 연출한 ‘나는 너다’는 아버지로서의 안중근 의사와 변절자로 손가락질 받았던 아들 안준생의 굴곡진 삶을 조명한 작품이다. 그는 2010년 초연돼 올해 세 번째로 공연되는 이 작품에서 안중근과 안준생, 1인 2역을 맡았다.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14일 만난 그는 이미 안중근 의사로 분장해 있었다. 제작발표회가 열리는 이날 작품의 의미를 잘 알리고 싶다며 안 의사 복장을 한 것이다.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인 그는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통해 영웅의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그림자를 지켜봤기에 준생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이 각별한 이유는 또 있다. “이 작품 공연 전 매일 배우와 스태프들이 무사히 공연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기도 마지막에는 아이가 생기게 해달라고 빌었고요. 두 번째 공연이 끝나고 거짓말처럼 아이가 생겼어요. 그것도 셋이나요!(웃음)” 그의 세 아들 대한, 민국, 만세는 그렇게 태어났다. 육아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과 해보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는 그는 아버지로서의 안 의사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고 말했다. “준생이 ‘왜, 무엇 때문에 그랬느냐’고 절규하며 물어요. 안 의사가 ‘너를 위해서’라고 답해요. 자식을 낳아보니 이 말이 뭔지 가슴에 와 닿더라고요. 저 역시 조상들이 잘 살아주신 축복을 받고 있고요.” 그는 ‘나는 너다’의 배우들과 함께 다음 주 중국으로 항일 유적지를 답사하러 떠난다. 항일 유적지 답사는 그가 매년 하는 일이다. 11월 6일에는 그가 출연한 저예산 영화 ‘현기증’이 개봉한다. “배우의 길은 어디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역이든 다 해보고 싶어요. 연기에 대한 갈망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데 그걸 채우려면 갈 길이 멀거든요.(웃음)” 11월 27일∼12월 31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5만∼10만 원. 1544-1555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산장 창문 너머로 잔잔한 물결이 이는 황금연못이 보인다. 이곳은 다정한 노부부 노만(이순재 신구)과 에셀(나문희 성병숙)이 여름을 지내는 공간이다. 에셀이 어릴 적 갖고 놀던 인형을 비롯해 평생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별장이다. 캐서린 햅번과 헨리 폰다, 제인 폰다가 출연한 동명 영화로 잘 알려진 연극 ‘황금연못’은 황금연못 옆 산장에서 벌어지는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따뜻하게 그렸다. 은퇴한 대학교수 노만은 딸 첼시와 냉랭한 관계다. 첼시는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아버지로부터 어릴 적 받았던 상처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완고한 성격의 노만이 첼시가 데려온 남자친구 빌과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면서 부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스르르 녹아내린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은 노만 가족의 일상을 지켜보는 황금연못이다. 연극에서는 연못 이미지를 가로 10m, 세로 8m 크기의 대형 천에 출력해 설치했다. 무대 양쪽에 6m 높이로 제작된 느티나무는 실제 가지에 모형 잎을 달아 숲이 주는 풍성함을 살렸다. 김혜지 무대디자이너는 “관객이 황금연못의 느낌을 공유하는 게 필요해 창 뒤로 연못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이순재는 “영화에서 본 황금연못과 비슷하다”고 반겼다. 노만에게 황금연못은 삶의 또 다른 이름이다. 딸기를 따러 나갔다 수없이 지나 다녔던 옛길이 갑자기 기억나지 않자 노만은 황금연못을 다시 못 볼 것 같아 두려움에 휩싸인다. 황금연못을 또 본다는 것은 생이 이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름이 끝나고 노만과 에셀은 내년에도 황금연못을 볼 수 있길 고대한다. “당신이랑 낚시질도 하고, 난 또 쿠키도 만들고…. 인생은 그렇게 계속될 거예요, 그렇죠?”(에셀) “그러면 좋지만 죽고 사는 건 아무도 몰라.”(노만) “그래요, 하느님밖에는.”(에셀) 마지막 장면에서 황금연못을 향해 “안녕”이라고 거듭 외치며 산장을 떠나는 노부부의 뒷모습은 생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감으로 짙은 여운을 남긴다. 11월 23일까지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비발디파크홀. 4만∼6만5000원, 02-766-6506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박은석 배우님 나오는 회차 티켓을 구할 수 없을까요? 유보석도 좋아요. 정가에 살게요.” 연극 ‘프라이드’ 제작사인 ‘연극열전’에는 요즘 이런 문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박은석(30)이 등장하는 공연이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프라이드’는 남성 동성애자의 사랑을1958년과 2014년을 넘나들며 다룬 작품이다. ‘대학로의 아이돌’로 불리는 그는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올리버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매진이 이어지면서 11월 2일 막을 내릴 예정이던 ‘프라이드’ 공연은 일주일 연장됐다. 연극계에서 탄탄한 연기력에 매력적인 외모까지 갖춘 ‘훈남’들이 팬을 몰고 다니고 있다. 연극은 소극장 공연이 많아 좋아하는 배우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 세련미에 귀여움까지 ‘히스토리 보이즈’ ‘모범생들’ ‘이기동 체육관’ 등 남성미를 발산하기 쉬운 작품들은 훈남 배우들이 팬들에게 또렷이 각인되는 일종의 등용문이 됐다. 박은석을 비롯해 윤나무(29)와 홍우진(34)이 대표적이다. 박은석은 ‘히스토리 보이즈’에서 자신감 넘치는 남학생 데이킨 역을 맡았다. 키 180cm에 손바닥만 한 귀여운 얼굴이 매력으로 꼽힌다. 회사원 최승연 씨는 이 작품에서 박은석을 보자마자 팬이 됐다. 최 씨는 “서구적인 신체 비율, 세련된 분위기에 매료됐다”며 “미국에서 오래 살았는데도 무대에서 전혀 티 나지 않을 정도로 한국말을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도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현재 공연 중인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에서 아들 역을 맡은 윤나무는 ‘찌질남’으로 완벽히 변신했다. 오뚝하고 긴 콧날, 갸름한 얼굴선을 지닌 그는 어딘지 모르게 상처를 가진 듯한 분위기로 여성의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는 평이다. 역시 ‘우리 노래방…’에서 노래방 주인을 연기하는 홍우진은 동네 오빠처럼 친근하고 편안한 이미지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야성미에 두근두근 훈남 중 터프한 스타일로는 박해수(33)와 박훈(33)이 꼽힌다. 10일 개막하는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 역을 맡은 박해수는 온몸으로 동물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는다. 회사원 정혜영 씨는 “‘됴화만발’을 보고 박해수의 강렬한 눈빛에 완전히 꽂혔다.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마스크를 지닌 ‘상남자’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중극장 이상의 무대를 꽉 채울 수 있는 선 굵은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분석이다. 박훈은 올해 상반기 화제를 모은 연극 ‘유도소년’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반항적이면서도 순박한 이미지를 지닌 박훈은 흐트러진 도복 사이로 드러난 다부진 몸매로 여심을 설레게 했다. 팬들은 현재 박훈이 출연하는 뮤지컬 ‘완전보험주식회사’ 연습실로 호텔 출장 뷔페를 보내기도 하고, 공연마다 앞좌석을 꽉꽉 채우고 있다. 연극계에서는 훈남 배우들의 파워로 관객층이 확대되는 것을 반기는 분위기다. 특정 배우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가 다른 배우나 작품으로 관심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안혁원 프로듀서는 “여성 마니아층이 차츰 늘면서 작품들이 부흥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극계가 동성애 코드나 남성성을 부각하는 내용 등 여성 관객의 취향에 맞는 작품으로 편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자신들을 ‘기막힌 행운아’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시각장애로 빛을 잃었지만 무대에 서는 꿈을 이뤘기 때문이란다. 관현맹인전통예술단원들의 이야기다. 이 예술단은 조선시대 재능이 뛰어난 시각장애인에게 궁중 잔치 등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했던 ‘관현맹인제도’를 본떠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든 것으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고 있다. 2일 서울 관악구 복지관 연습실에는 가야금, 대금 등의 반주에 맞춰 소리꾼 이현아 씨(26)의 청아한 음색이 울려 퍼졌다.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정가(正歌·전통 가곡과 시조를 노래로 부르는 것)를 전공한 이 씨는 지난해 ‘온 나라 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예술단 단원 7명은 모두 쟁쟁한 실력을 갖췄지만 오랜 기간 꿈을 접어야 했다. 거문고를 전공한 김수희 씨(43)는 악보를 보지 못해 일반 예술단 오디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 단원을 지낸 타악기 연주자 이진용 씨(42)와 정철 씨(41)도 10년간 무대에 서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점자 악보 교정 일 등을 했다. 정 씨는 “사물놀이 연주를 들을 때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만 맴돌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의 창단 이후 이들은 국내외에서 연간 100여 회나 되는 공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5월에는 미국 카네기홀에서 단독 공연을 했다. 무대에 대한 간절함이 깃든 이들의 연주는 진지하고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술단의 변종혁 예술감독은 “자만하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내는 단원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예술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손잡고 예술나무포털(www.artistree.or.kr)을 통해 11월 15일까지 기획 모금을 벌이고 있다. 소록도를 포함해 문화소외지역을 찾아가 나눔 공연을 열기 위해서다. 대금 연주자 문종석 씨(23)는 “무대에 설 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다”며 “공연을 즐기기 어려운 분들과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출중한 실력을 가졌지만 장애로 인해 무대에 설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이들에게 기회의 문이 좀 더 넓어지길 기원하며 연습실을 나섰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가슴을 두드리는 플라멩코와 집시 댄스, 그리고 화려한 검술. 공연 중인 라이선스 뮤지컬 ‘조로’가 그렇다. 이 작품은 2008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후 2011년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올해 작품은 왕용범 연출이 캐릭터만 그대로 가져와 새롭게 재창작했다. 죽을 뻔했던 평범한 청년 디에고가 집시 여인과 신부의 도움을 받아 조로로 변신해 백성을 착취하는 라몬 대령에게 맞서는 이야기다. 하이라이트는 극 막바지 열차 위에서 조로와 라몬이 벌이는 결투 장면이다. 무대를 꽉 채운 길이 11m, 무게 1.5t의 열차는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증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차창 밖 풍경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배경 영상이 어우러져 열차는 실제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조명도 차례대로 껐다 켜기를 반복해 열차가 질주하는 듯 사실감을 더했다. 열차는 턴테이블 위에서 때로 360도로 회전한다. 왕 연출이 농담처럼 “관객들이 (공연장을) 나갈 때 열차만 기억하면 된다”고 했을 만큼 제작진은 열차에 심혈을 기울였다. 고증을 통해 스페인이 캘리포니아를 지배하던 18세기 당시 열차 모습과 흡사하게 만들어냈다. 열차 곳곳에 숫자 31을 새겨 넣은 것도 당시 열차에 번호를 표기했던 것을 그대로 본뜬 것. 열차는 몸체가 둥글지만 윗부분은 평평하게 만들어 배우가 딛고 설 수 있도록 했다. 서숙진 무대디자이너는 “조로와 라몬이 열차 위를 종횡무진 오가며 결투를 벌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움직이기 편하도록 중간 중간 디자인을 수정했다”고 말했다. 연통 뒤에 설치한 종은 배우의 동선에 방해가 돼 떼어냈다. 객석에서 잘 보이지 않는 기관사실 내부에도 각종 레버를 설치해 정교함을 높였다. 역동적이고 화려한 열차 장면을 완성하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서 디자이너는 “배우들은 열차 위에 한번 올라가면 땀에 절어서 내려올 정도로 강도 높게 연습했다”고 말했다. 김우형 휘성 키 양요섭 소냐 서지영 출연, 10월 26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5만∼13만 원. 02-764-7858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가슴을 두드리는 플라멩코와 집시 댄스, 그리고 화려한 검술. 공연 중인 라이선스 뮤지컬 '조로'가 그렇다. 이 작품은 2008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후 2011년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올해 작품은 왕용범 연출이 캐릭터만 그대로 가져와 새롭게 재창작했다. 죽을 뻔했던 평범한 청년 디에고가 집시 여인과 신부의 도움을 받아 조로로 변신해 백성을 착취하는 라몬 대령에 맞서는 이야기다. 하이라이트는 극 막바지 열차 위에서 조로와 라몬이 벌이는 결투 장면이다. 무대를 꽉 채운 길이 11m, 무게 1.5t의 열차는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증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차창 밖 풍경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배경 영상이 어우러지면서 열차는 실제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조명도 차례대로 껐다 켜기를 반복해 열차가 질주하는 듯 사실감을 더했다. 열차는 턴테이블 위에서 때로 360도로 회전한다. 왕 연출이 농담처럼 "관객들이 (공연장을) 나갈 때 열차만 기억하면 된다"고 했을 만큼 제작진은 열차에 심혈을 기울였다. 고증을 통해 스페인이 캘리포니아를 지배하던 18세기 당시 열차 모습과 흡사하게 만들어냈다. 열차 제일 앞에 숫자 31을 새겨 넣은 것도 당시 열차에 번호를 표기했던 것을 그대로 본뜬 것. 열차는 몸체가 둥글지만 윗부분은 평평하게 만들어 배우가 딛고 설 수 있도록 했다. 서숙진 무대디자이너는 "조로와 라몬이 열차 위를 종횡무진 오가며 결투를 벌이기 때문에 배우들이 움직이기 편하도록 중간 중간 디자인을 수정했다"고 말했다. 연기통 뒤에 설치한 종은 배우의 동선에 방해가 돼 떼어냈다. 객석에서 잘 보이지 않는 기관사실 내부에도 각종 레버 등을 설치해 정교함을 높였다. 역동적이고 화려한 열차 장면을 완성하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서 디자이너는 "배우들은 열차 위에 한 번 올라가면 땀에 절어서 내려올 정도로 강도 높게 연습했다"고 말했다. 김우형 휘성 키 양요섭 소냐 서지영 출연, 10월 26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5만~13만 원. 02-764-7858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게 매우 매력적이에요. 대본이 흥미로워요.” 덴마크 유명 극작가 에를링 옙센(58)이 쓴 연극 ‘이 세상에 머물 수 있게 해달라는 남자’ 공연이 끝난 19일 서울 세실극장 로비. 공연을 본 관객 장현명 씨(28)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로비에서 미소 짓고 있는 극작가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사인을 받았다. 이 작품의 국내 초연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옙센 씨는 첫 공연을 마친 후 열린 리셉션에서 관객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관객들은 평소 접하기 쉽지 않았던 북유럽 작품에 대해 이색적이라는 반응이었다. ‘이 세상…’은 타자기 한 대와 평온함만을 간절히 원하는 무명작가 알란이 위층에 사는 노파를 자기 어머니와 혼동해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히는 내용을 그렸다. 알란은 세상과 관계를 맺기 위해 애쓰지만 그의 관념은 현실과 비현실을 계속 오간다. 관객 김인덕 씨(35)는 “현실에서 구속받을 때 자유로운 감옥을 상상하곤 했는데 감옥에서 평온함을 느끼는 알란을 보면서 많이 공감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 공연을 본 소감이 어떠냐는 관객들의 질문에 옙센 씨는 “유머와 비애의 균형을 훌륭히 표현했고 배우들의 해석력도 뛰어나다”고 답했다. 그는 또 “덴마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내 작품을 즐겨주는 관객이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고맙다”고 했다. 덴마크 국립극장 전속 작가인 옙센 씨는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유머러스하면서도 깊이 있게 고찰하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희곡 ‘숙녀와 쓰레기’ ‘무하마드 알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안나와 중력’을 썼고, 소설 ‘아트 오브 크라잉’과 ‘테러블리 해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10월 5일까지. 3만 원. 070-7572-6484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어? 간난이다!”(김다현) “진짜 잘생겼다!”(김수용) 2003년 뮤지컬 ‘그리스’ 연습실. 여자보다 더 예쁜 외모로 ‘꽃다현’으로 불리는 김다현(34)과 1980년대 TV 드라마 ‘간난이’에서 주인공 간난이 동생 영구 역으로 인기를 누렸던 김수용(38)의 첫 만남이었다. 이 만남을 계기로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10월 9일 시작하는 창작뮤지컬 ‘보이첵’에서 나란히 주인공 보이첵 역을 맡은 두 사람을 18일 만났다. 김다현은 요즘 뮤지컬 ‘프리실라’의 버나뎃, ‘헤드윅’의 헤드윅을 맡아 물 오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콜로레도 대주교, ‘영웅’의 안중근 등을 연기한 김수용은 배역에 완벽하게 녹아드는 배우로 알려져 있다. 둘은 인터뷰 중간 서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다. “다현이는 속정이 깊은 친구예요. 눈을 보면 진심이 느껴지고요.”(김수용) “수용이 형을 보면 ‘할렐루야’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그렇게 착하고 따뜻할 수가 없어요.”(김다현) 게오르크 뷔히너가 쓴 유명 희곡인 ‘보이첵’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매일 완두콩만 먹는 생체 실험에 지원한 보이첵이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된 후 광기에 사로잡혀 파멸하는 내용을 그렸다. 이 작품은 연극 무용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로 공연됐다. 뮤지컬 ‘영웅’ ‘명성황후’의 윤호진 씨가 연출을 맡았다. 순수에서 분노, 광기로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보이첵을 연기하는 건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김다현은 극중 인물 그 자체가 되기 위한 이른바 ‘메소드 연기’를 위해 하루 한 끼를 콩으로만 먹고 있다. 키 180cm인 김다현은 몸무게가 6kg 빠져 현재 64kg까지 내려갔다. “59kg대까지 빼려고요. 기력도, 면역력도 없는 상태에서 정신분열을 일으키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은 후 악에 받쳐 폭발하는 에너지를 표현하고 싶어요.”(김다현) 김수용도 숨소리마저도 보이첵이 되려고 스스로를 밀어붙이고 있다. “보이첵은 몸뚱아리 하나로 버텨야 하는 인물이잖아요. 나도 그런 상황이 되면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요. 보이첵을 들이파면서 저를 마구 ‘굴리고’ 있어요.”(김수용) 옆에서 듣던 김다현이 “형은 지금 이 상태에서 눈만 약간 흐릿하게 떠도 보이첵”이라며 웃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김다현은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이다. 얼마 전 추석을 앞두고 ‘헤드윅’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에게 손수 포장한 떡을 돌렸다. ‘단 한번도 얼굴로 밀고 나간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꽃다현’이라는 별명도 더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30대가 되니 ‘꽃다현’이 민망하더라고요. 집 커튼을 바꾸려고 동대문시장에 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꽃다현 씨 아니에요?’라고 물어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 아저씨들까지 아는 내 브랜드를 잘 키우자고 마음먹었죠. 저만의 특별함을 보여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전쟁고아 ‘영구’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김수용은 학창 시절 방송반, 성가대를 하며 끼를 다졌고 힙합 재즈댄스 등을 두루 익혔다. 즐거워서 했던 작업이 뮤지컬 배우가 된 후 진가를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 어떤 역이든 자유자재로 소화하는 김수용은 ‘배우로 참 잘 자랐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김수용은 진짜 배우’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배우란 말은 제게 훈장과 같거든요.” 10월 9일∼11월 8일 서울 LG아트센터, 4만∼8만 원, 02-2005-1004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아주 유명한 작품이지만 아직 보지 못했다면 24일에 관람 계획을 세워보는 게 어떨까.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라이어’ ‘난타’ 같은 작품을 대폭 할인된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연극 ‘라이어’는 별다른 생각 없이 실컷 웃고 싶은 사람에게 딱 맞는 작품이다. 24일 3만 원인 티켓 가격을 1만 원으로 할인해준다. 1999년 1탄 초연 이후 2탄과 3탄이 추가돼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라이어’의 오랜 생명력은 오로지 ‘웃음’ 하나에 확실히 집중하는 미덕에서 비롯됐다. 1탄은 두 명의 부인을 둔 택시 운전사가 가벼운 강도 사건에 휘말리면서 이중생활이 무너지는 이야기. 기막힌 상황이 숨 돌릴 틈 없이 마구 벌어지면서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2탄은 두 집 살림을 하던 택시 운전사의 아이들이 인터넷 채팅으로 만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3탄에는 100억 원이 든 마피아의 돈가방을 바꿔 들게 된 회사원이 등장한다. ‘라이어’ 시리즈는 서로 연결된 이야기가 아니어서 순서와 관계없이 봐도 된다. 서울 대학로 브로드웨이아트홀, 샘터파랑새극장, 강남 코엑스아트홀에서 공연한다. 1997년 초연된 ‘난타’는 힘찬 리듬이 일품인 넌버벌 퍼포먼스. 예정에 없던 결혼식 준비를 하게 된 요리사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사물놀이 리듬을 활용해 시원하게 풀어낸다. 칼, 도마 등 주방기구가 악기로 변신해 가슴이 뻥 뚫리는 소리를 만들어낸다. 4만∼7만 원인 티켓 가격을 24일에는 50% 할인해준다. 서울 명동난타극장과 충정로난타전용관에서 공연한다. 결혼식날 벌어지는 소동을 쇼로 꾸민 ‘뮤직쇼 웨딩’도 서울 홍대뮤직쇼웨딩전용극장에서 4만∼6만 원의 절반 가격에 관람할 수 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여성의 지위는 빠른 속도로 향상되고 있지만 여성이 맞닥뜨리는 문제는 한층 정교하고 복잡해졌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성공한 여성으로 불리는 이들은 늘 자신감에 차 있을까. 이들 안에는 의외로 여린 모습이 숨어 있다. 샌드버그는 자다 깨면 자신이 지금의 위치에 있어도 되는지 확신이 안 서 사기꾼이 된 것 같고, 클린턴은 2000년 상원의원 출마를 고민할 때 패배할까 봐 두려웠다. 메르켈과 라가르드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엄청난 시간을 들여 준비하는데, 이는 사실 자신감 부족 때문이라고 털어놓는다. ‘나는 오늘부터 나를 믿기로 했다’는 여성과 남성의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를 남녀 차별이나 양육 부담이 아닌 자신감이라는 요소를 통해 분석한다. 여성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 여성은 완벽히 준비돼 있다고 확신이 들지 않는 이상 나서기를 꺼린다. 교실 안에서는 여성의 이런 특성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지만 게임의 법칙이 달라지는 사회에서는 이내 당황한다. 연봉 협상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낮은 수준을 제시하고 승진을 적극 요구하지 않는다. 여성은 나서기보다는 말썽부리지 말고 묵묵히 지내야 한다는 교육을 받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남자와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진다. 여성이 맹렬하게 활동하는 시대에 무슨 소리냐고 반문하는 남성도 있겠지만 많은 여성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 조금만 생각하고 더 많이 행동하라는 현실적인 충고도 빛난다.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7’은 콤플렉스를 통해 현재 한국 여성의 삶을 들여다본다. 1992년 펴낸 ‘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에서 소개됐던 착한여자 콤플렉스, 신데렐라 콤플렉스, 슈퍼우먼 콤플렉스 등은 20년이 지난 후 전략적 필요에 따라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착한 여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여성이 늘었지만 갈등 없는 생활을 위해 착한 여자처럼 위장한다는 것. 남성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건 좋은 남성을 만나기 위해 미모와 능력을 갖추려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여성 삶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시종일관 지속되는 음산한 긴장감, 거듭되는 반전, 폭발적이고도 매혹적인 선율의 노래, 관객의 눈과 귀를 세 시간 내내 빨아들이는 뮤지컬 ‘레베카’다. 200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된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는 무대 전체가 활활 타오를 것 같은 맨덜리 저택의 화재 장면이다. 지난해 국내 초연 후 이달 초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다시 막을 올렸다. 초연에 비해 이번 공연에서는 더 웅장하고 화려하게 연출한 맨덜리 저택 화재 장면이 눈길을 끈다. 맨덜리 저택의 화재는 주인공인 ‘나’와 남편 막심이 과거를 잊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만드는 주요 장치. 사별한 아내 레베카를 잊지 못해 힘든 나날을 보내던 막심과 결혼한 ‘나’는 맨덜리 저택 곳곳에 남아 있는 전처의 흔적에 짓눌린다. ‘나’에게 알 수 없이 적대적이던 집사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알고 저택에 불을 지른다. 실감나는 화재 장면을 위해 유럽 공연에서는 실제 불을 사용했다. 저택 계단의 곡선 손잡이를 타고 불이 번지고 바닥 곳곳에서도 불기둥이 치솟는다. 정승호 무대디자이너는 “유럽 공연을 영상으로 본 관객들 사이에서 국내 공연이 원작에 비해 화재 장면이 약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이번 재공연에선 강렬하고 급박한 화재 장면에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유럽 공연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재공연에서는 실제 불의 사용을 늘렸다. 저택 바닥에서 치솟는 불길이 초연 때는 한 줄이었지만 이번에는 세 줄로 늘었다. 하지만 안전과 비용 문제로 화재 장면의 규모는 당초 계획보다 축소됐다. 정 디자이너는 “바닥에서 치솟는 불기둥 높이를 80∼90cm로 하고 싶었지만 공연장 측과 논의한 결과 40∼50cm 높이로 낮췄다”고 말했다. 나무로 제작된 저택 계단에는 실제 불 대신 스모그로만 처리했다. 방염 처리를 한 목재를 사용하더라도 철판으로 된 바닥만큼 불을 견딜 수 없기 때문. 그 대신 컴퓨터그래픽(CG) 등을 이용한 영상효과를 보강해 불길이 더 맹렬하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조각상이 추락하는 영상을 추가하고 천장의 샹들리에가 떨어질 때 내는 굉음의 음향을 키워 긴박감을 높였다. 블루스퀘어 측도 안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원영돈 블루스퀘어 무대기술팀장은 “LPG통은 환기가 되는 격실에 보관하고 배관 연결부위 등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한국가스안전공사로부터 점검을 받고 있다”며 “소품도 주기적으로 방염 처리를 해 안전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실제 불을 사용하는 만큼 공연 시작 전 비상구를 안내하는 방송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원 팀장은 “모든 출입구 안쪽과 바깥쪽에 직원이 각각 배치돼 직접 안내를 하게 된다. 직원들은 한 달에 1회 이상 화재 등에 대비해 모의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영기 오만석 엄기준 옥주현 신영숙 리사 임혜영 오소연 출연, 11월 9일까지, 6만∼13만 원. 1577-6478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명명백백한 피의 복수, 그게 바로 진정한 정의야!”(박상원) “‘햄릿’은 복수를 초월하고 있어요. 그래서 ‘햄릿’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거죠.”(김소희) 11일 연극 ‘고곤의 선물’ 연습이 진행되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습실. 천재 극작가 에드워드 역의 박상원(55)에겐 자유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김소희(44)는 이성적인 아내 헬렌이 돼 무게중심을 잡고 있었다. 18일 개막을 앞두고 두 사람을 만났다. 박상원은 김태훈과 더블 캐스팅됐다. 김소희는 2012년에 이어 두 번째 무대다. ‘고곤의 선물’은 ‘에쿠우스’ ‘아마데우스’로 유명한 극작가 피터 섀퍼의 작품. 고곤은 메두사를 의미한다. 에드워드가 자살한 후 전처의 아들인 필립이 아버지의 전기를 쓰고 싶다며 헬렌을 찾아온다. 헬렌은 필립에게 전기를 완성하겠다는 다짐을 받아낸 후 극단적인 신념에 가득 찼던 에드워드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준다는 줄거리. 광기로 치달으며 끝내 자살한 에드워드의 궤적을 추리하듯 쫓아가며 복수와 화해를 논한다. 2008, 2009, 2012년 공연 모두 기립박수가 이어져 이번 무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상원은 “연기자로서 한 번은 해야 할 숙명 같은 역할”이라며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김소희는 “첫 공연보다 무뎌진 부분이 없는지 점검하고 있다. 더 깊이 들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처음 호흡을 맞추는 두 사람 사이에서는 편안한 공기가 감돌았다. “소희 씨는 정확히 연기하고, 정리돼 있는 열정을 가진 배우예요. 이성적이고 똑 부러지는 게 헬렌과 비슷해요.”(박상원) “신념을 지키는 데 있어 융통성이 없는 점은 저와 헬렌이 비슷한가 봐요. 박 선배는 편해요. 선배에게 ‘이렇게 하는 게 더 낫지 않나요’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쉽게 얘기할 수 있게 해주세요.”(김소희) 박상원은 에드워드를 표현하는 게 녹록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파괴적인 천재 에드워드를 본격적으로 분석하면서 ‘멘붕’이 됐어요. 내 연극적 상상력이 이토록 초라한 수준이었나 싶었거든요. 에드워드에게 지독한 창작의 고통이 느껴졌고, 그것이 절절히 와 닿았어요. 그걸 못 느꼈으면 멘붕을 떠나 한강에 떨어졌을 거예요.”(웃음) ‘고곤의 선물’은 난해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김소희는 “인간의 존재를 미세하고 깊이 있게 보여줌으로써 카타르시스와 충격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박상원도 “‘우리끼리 놀지 말자’고 다짐할 만큼 관객과 소통하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툭 물음표를 던지는 데서 오는 매력을 맛볼 수 있다”고 거들었다. 박상원은 이번 무대에서 생애 처음으로 전라 연기에 도전한다. “극작가이기 때문에 몸이 좋아서는 안 돼요. 하지만 관객에게 너무 보기 흉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잖아요? 그 접점을 찾아 수시로 팔굽혀펴기 등 운동을 하고 있어요.”(박상원) 아기자기하고 기획하는 걸 좋아하는 박상원은 ‘고곤의 선물’ 영문 글씨가 쓰인 검은색 후드티도 직접 디자인해 제작진에 나눠줬다. 개막일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D―7’을 벽에 붙이도록 한 것도 박상원이다. 두 사람은 그 숫자를 바라보며 “수능을 앞둔 것 같다”면서 웃었다. 18일∼10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2만∼5만 원, 02-339-1111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나는 왜 늘 주기만 하고 받지는 못하는 걸까.’ 수많은 인간관계 가운데 항상 일방적이라고 여겨지는 관계가 있는가. 19일 막을 올릴 예정인 연극 ‘반신’은 몸이 하나로 붙어 한 심장을 공유하는 샴쌍둥이를 통해 불평등하고 불완전한 인간관계를 조명한다. 일본의 유명 연출가 노다 히데키(59)가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연극 ‘빨간 도깨비’(2005년) ‘더 비(The Bee·2013년)’로 국내 관객의 주목을 받은 노다는 혁신적인 무대를 선보이는 연출가로 꼽힌다. ‘반신’은 하기오 모토의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노다는 묵직한 주제의 만화를 기발하고 발랄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샴쌍둥이인 슈라는 자신의 심장과 장기를 통해 살아가는 동생 마리아를 보며 늘 주기만 하고 양보를 강요받는 자신의 운명에 분노한다. 속상함과 미움은 차츰 마리아를 인정하는 감정으로 바뀐다. 몸이 성장하며 영양 불균형 상태가 심화돼 둘 중 하나만 살아남을 수 있는 운명에 맞닥뜨리자 슈라는 절규한다. 작품은 현실과 가상을 오가며 인간의 단면을 들춘다. 슈라의 상상 속 친구들인 요괴는 유혹, 비밀, 후회를 의미한다. 수수께끼 같은 산수법을 설파하며 정신이 나갔다 들어오는 노수학자는 인간의 이성과 몰이성을 상징한다. 노다는 “신체 표현에 강한 한국 배우들과 작업을 하며 이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을 새롭게 발견했다”며 “무대에서 펼쳐지는 뫼비우스 띠와 같은 혼란을 즐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인영 전성민 오용 이형훈 출연. 19일∼10월 5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1644-2003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조선통신사는 일본에 정치 문학 예술뿐만 아니라 한의학도 전파했습니다. 일본 의학의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죠.” 함정식 청솔한의원 원장(45)은 조선통신사를 연구하는 한의사다. 조선통신사는 에도 막부의 요청으로 1607년부터 200여 년간 12회에 걸쳐 일본으로 파견된 외교사절이다. 그는 경희대에서 의학의 역사를 강의하다 조선통신사에 눈을 떴다. 특히 2006년 조선통신사 여정을 따라가는 일본 여행에 참가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은 박물관, 기념비를 만드는 등 조선통신사를 문화 콘텐츠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조선통신사의 방문을 일본에 조공을 바치는 의미로 여기는 것에 놀라기도 했고요. 제 전공인 한의학 분야라도 제대로 알아내겠다고 마음먹었죠.” 함 원장에 따르면 1682년 7차 사행 때부터 사절단에 본격적으로 의원이 포함됐다. “조선의 침뜸 의학은 동아시아에서 매우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조선통신사가 도착하면 일본 전역에서 의원들이 몰려들어 일종의 서류면접을 통과해야만 조선 의원을 만날 수 있었어요. 조선의 일급 기밀에 속하던 인삼 재배법을 알아내려고 ‘스무고개’ 하듯 일본 의원들이 질문을 하기도 했고요.” 조선통신사로 인해 일본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일본판 ‘동의보감’을 발행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조선통신사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 자료가 별로 없어 일본 자료를 복사해서 연구하고 있어요. 필담으로 나눈 대화록을 읽다 보면 의원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아 전율이 일어요. 연구하면 할수록 조선통신사는 풍요롭고 위대한 문화유산이라는 확신이 듭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호수를 채운 것은 물이 아니라 빛이다.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되는 연극 ‘즐거운 복희’(이하 ‘복희’)의 핵심 장치인 호수는 빛의 반사를 통해 탄생했다. 펜션 분양자들이 손님을 끌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내용을 그린 ‘복희’에서는 호수를 둘러싸고 일련의 사건이 벌어진다. 펜션이 자리 잡은 곳도 호숫가이고 복희와 사랑에 빠져 배를 타고 펜션을 떠나려던 나팔수가 빠져 숨진 곳도 호수다. 장군이었던 복희 아버지의 묘를 펜션 근처에 조성해 매일 복희에게 조문할 것을 요구하던 펜션 분양자들은 나팔수가 숨지자 호수에서 나팔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까지 만들어낸다. 검게 일렁이는 호수는 인간의 욕망과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지를 담담히 비춰낸다. 이강백 극작가는 대본을 쓸 때부터 공연장으로 드라마센터를 염두에 뒀다. 객석이 무대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원형 무대여서 호수를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공연장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처음에는 물로 호수를 연출하려고 했지만 펜션 사무실을 연출할 공간도 필요했다. 그래서 빛을 반사시켜 호수를 제작하기로 했다. 손호성 무대디자이너는 “무대 바닥에 거울을 깔려고 했지만 바닥이 고르지 않은 데다 거울이 잘 깨져 궁리 끝에 가구를 윤기 나게 만드는 재료인 포마이카를 떠올렸다”고 했다. 검은색 포마이카 바닥재를 깔았다. 포마이카 바닥재는 연극 ‘헤다 가블러’(2012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도 사용돼 주인공의 뒤틀리는 심리를 반사되는 빛을 통해 그려냈다. 관건은 조명이었다. 조명을 비췄을 때 바닥의 빛이 객석이나 호수 원경을 그린 배경막에 반사되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조명의 각도를 더 가파르게 조절했다. 김창기 조명디자이너는 “일반 공연 때는 45∼60도 사이의 각도로 배우에게 조명을 비추는데 ‘복희’는 60∼70도로 비추도록 조명기 위치를 모두 바꿨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깊은 호수가 태어났다. 복희가 호숫가 나무 덱에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독백할 때 호수에는 복희의 모습이 반짝인다. 나팔수 시신의 위치를 몰라 시신을 건져내기 어렵다는 점을 합리화시키며 우산을 쓴 채 호수를 둘러보는 펜션 분양자들의 모습도 호수 표면에 어른거린다. 그들의 흰색 우산은 푸른 조명 아래 파랗게 변한다. 냉혹한 인간의 욕망을 섬뜩하게 보여주는 파란색 우산 역시 호수는 깊고 또렷하게 반사시킨다. 21일까지. 2만5000원. 02-758-2150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