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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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14~2025-12-14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伊 작곡가 토스티와 레스피기가 SNS에서 만난다면

    몇 해 전 동아음악콩쿠르 성악부문 경연을 듣다가, 과제곡으로 나온 프란체스코 파올로 토스티(1846∼1916)의 가곡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리(Non t‘amo piu)’와 오토리노 레스피기(1879∼1936)의 ‘안개(Nebbie)’의 전주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우울한 단음계 화음이 반복되는 점이 닮아서, 전주가 나오면 ‘이번엔 토스티일까 레스피기일까’ 하곤 했습니다. 물론 노래가 진행되면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토스티와 레스피기는 이탈리아인이고 한 세대의 나이 차이가 납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냈을까요? 두 사람의 관계를 오늘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상에 대입해서 상상해 보았습니다. 토스티는 작곡가 푸치니의 오페라 ‘마농 레스코’ 대본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푸치니가 하녀의 음독자살로 스캔들에 휩싸이자 토스티는 자신의 거처를 푸치니의 임시 피난처로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푸치니는 지휘자 토스카니니와 친구이면서 으르렁대는 사이였습니다. 토스카니니는 푸치니의 대표작인 ‘라보엠’ ‘투란도트’의 초연을 지휘했지만 푸치니가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질타하곤 했습니다. 이탈리아에 파시스트 정부가 들어서자 파시스트를 혐오했던 토스카니니는 곤경에 처했습니다. 그가 파시스트 시위대에 둘러싸였을 때 레스피기는 ‘그는 애국자’라며 토스카니니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레스피기가 파시스트는 아니었지만 무솔리니가 그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토스티-푸치니-토스카니니-레스피기로 이어지는 일종의 ‘관계망’이 형성됩니다. 그 시절에 SNS가 존재했다면 어땠을까요? 댓글을 통해 “어, 토스티샘과 레스피기샘은 어떻게 아세요?” “푸치니 자네를 통해서 알게 됐지.” “푸치니샘과 레스피기샘은요?” “둘 다 토스카니니 친구라서.” 뭐 이런 대화가 오가진 않았을까요. 물론 상상입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는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이 이탈리아 음악으로 꾸미는 콘서트 ‘부오나 세라(저녁 인사)’를 12일 엽니다. ‘안개’를 비롯한 레스피기 작품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리’를 비롯한 토스티 작품 등을 연주합니다. 바리톤 방광식, 테너 강무림 씨 등이 특별 출연합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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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쑥쑥 커라, 클래식 한국 빛낼 꿈나무들… 제2회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제2회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시상식이 서울 동작구 중앙대 중앙문화예술관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7일 열렸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중앙대와 채널A가 후원한 이번 콩쿠르는 초등, 중등, 고등부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부문으로 치러졌다. 144명이 참가해 예선을 거친 50명이 6, 7일 열린 본선에 올랐고 30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중등부 피아노 1위를 차지한 허솔 양(예원학교 3학년)은 “올해 다른 콩쿠르에서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약간 침체된 기분이었는데, 누구나 부러워하는 동아의 이름으로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8일 오후 6시 이후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홈페이지()에서 심사위원별 채점표를 확인할 수 있다. 심사평은 14일 게재되며 본선 연주 동영상은 7월 중 유료 서비스한다. 다음은 수상자 명단. ◇고등부 ▽피아노 △1위 정지원(서울예고 2년) △2위 임지민(선화예고 3년) △3위 정윤서(홈스쿨링) ▽바이올린 △1위 없음 △2위 최나영(서울예고 2년) △3위 없음 ▽첼로 △1위 없음 △2위 김재은(서울예고 2년) 이정아(서울예고 1년) △3위 없음 ▽플루트 △1위 없음 △2위 강경민(계원예고 2년) △3위 민예찬(홈스쿨링) ◇중등부 ▽피아노 △1위 허솔(예원학교 3년) △2위 손민영(예원학교 2년) 김성현(홈스쿨링) △3위 없음 ▽바이올린 △1위 김수연(예원학교 3년) △2위 조현서(예원학교 3년) △3위 김에셀(홈스쿨링) ▽첼로 △1위 배지연(예원학교 3년) △2위 조예원(예원학교 3년) △3위 없음 ▽플루트 △1위 김고은(예원학교 2년) △2위 김태현(선화예중 2년) △3위 유지민(예원학교 3년) ◇초등부 ▽피아노 △1위 서석현(구지초 3년) △2위 김경령(선일초 6년) △3위 박찬형(송명초 5년) ▽바이올린 △1위 남빈(신중초 6년) △2위 표주영(잠원초 5년) △3위 김서현(신중초 4년) ▽첼로 △1위 김태연(숭의초 6년) △2위 권지우(우촌초 4년) 홍채현(삼육초 6년) △3위 없음 ▽플루트 △1위 없음 △2위 김나빈(삼육초 6년) △3위 김채린(경기초 6년)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 2018-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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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명랑한 피아노 선율… 라벨이 전쟁에 희생된 벗들을 추모하는 법

    100년 전 유럽 평원은 피와 신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의 격랑 속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사진)은 1915년 40세에 자원입대해 운전병으로 활약했습니다. 애초에는 군용기 조종사로 지원했지만, 심장에서 문제가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라벨은 전쟁을 무사히 넘겼지만, 전장에 나간 수많은 벗들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채 끝나지 않은 1917년, 라벨은 6개 악장으로 구성된 피아노 모음곡 ‘쿠프랭의 무덤’을 작곡했습니다. 각 악장은 전쟁에 희생된 지인들에게 헌정했습니다. 자신도 조국을 위해 헌신했는데도 프랑스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이런 방식으로 기린 것입니다.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곡이 되었지만 모음곡 ‘쿠프랭의 무덤’에는 어둡기보다는 밝고 온화하며 때로는 명랑한 분위기가 감돕니다. 17,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스타일의 건반음악 양식을 오마주했기 때문입니다. 제목에 나오는 ‘쿠프랭’도 올해 탄생 350주년을 맞는 프랑스 작곡가 이름입니다. 지난해 이 코너에서 소개한 바 있죠. ‘무덤’이라는 단어에서 으스스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쿠프랭 시대에 ‘무덤(tombeau)’이란 말은 ‘기념물’ ‘기념음악’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제목의 원래 뜻은 ‘쿠프랭을 기리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라벨은 이 밝은 피아노 모음곡으로 프랑스의 아름다운 음악문화를 찬미하면서,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친구들에게 경의를 표한 것입니다. 라벨은 이후 전쟁에서 오른손을 잃은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을 쓰기도 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적’이었던 오스트리아인이지만, 라벨의 인류애는 내 편 네 편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내일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령들을 기리는 현충일입니다. 각자가 이를 기념하는 방법은 다르겠으나, 소중한 우리의 문화자산을 돌아보거나 감상하는 것도 현충일을 의미 있게 보내는 한 가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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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

    31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세종문화회관 개관 40주년 기념공연으로 소프라노 조수미와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의 듀오 콘서트가 열립니다. 그런데 첫 네 곡의 목록이 흥미롭습니다. 처음에 두 사람이 구노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이중창 ‘고귀한 천사들’을 부르고, 이어 조수미가 오베르의 오페라 ‘마농 레스코’에 나오는 ‘웃음의 노래’와 벨리니의 ‘캐퓰릿가와 몬터규가’ 아리아 ‘아, 몇 번인가’를 부릅니다. 그러고 나서 알라냐가 찬도나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줄리에타, 나요’를 노래합니다. ‘마농 레스코’에 대해서는 지난달 이 코너에서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같은 원작을 작곡가 마스네와 푸치니가 각각 오페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었죠. 그러고 보니 프랑스 작곡가 오베르가 쓴 ‘마농 레스코’도 있었군요. 그런데 이날 연주하는 구노, 벨리니, 찬도나이 곡들도 ‘오페라로 여러 번 모습을 바꾼 인기 드라마’의 위력을 보여줍니다. 바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1591년 즈음 초연한 이 연극사의 걸작은 여러 차례 오페라로 각색되어 음악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제목으로 구노와 찬도나이 외에 벤다, 칭가렐리 등의 작품이 있고, ‘캐퓰릿가와 몬터규가’ ‘베로나의 연인들’ 등 다른 제목을 단 작품까지 합치면 초연 직후 잊혀진 무명 작품들을 포함해 최소 30차례 이상 오페라로 각색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의 무대가 된 이탈리아 북부의 베로나는 오늘날 전 세계 청춘들이 모여드는 사랑의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도시의 모양이 아디제강과 옛 해자(垓字)의 자취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내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곳의 1세기 로마 유적에서는 1913년부터 야외 오페라 축제가 열려 세계 음악 팬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8월 1일부터 9일 동안 사랑의 도시 베로나와 프랑스 남부 오랑주의 로마 반원형 극장에서 두 편의 야외 오페라를 감상하는 여행을 갖습니다. 베로나에서는 베르디 ‘아이다’를, 오랑주에서는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를 봅니다. 함께하실 분?  유윤종 기자 www.tourdonga.comgustav@donga.com}

    • 201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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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최고 ‘야외 오페라’ 열리는 프랑스로 go!

    습하고 답답한 8월은 잊어버리자. 프랑스 남부의 푸른 리비에라 해안이 손짓한다. 고대 로마 극장에서 열리는 유럽 최고의 야외 오페라 두 편이 우리를 기다린다. 화가 세잔과 고흐의 정원, 동화나라 모나코, 중세 교황의 거처 아비뇽…. 음악과 미술과 영화가 조화를 이루는 환상 여행에 동아일보 음악 전문기자와 20년 경력의 유럽 전문 투어 컨덕터가 동행한다. 8월 1일∼8월 9일 아흐레의 일정으로 열리는 ‘이탈리아 베로나, 프랑스 오랑주 오페라 축제 여행’이다. 여정은 8월 1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파리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룻밤을 푹 쉰 뒤 다음날엔 화가 고흐가 마지막을 보냈던 화가들의 요람 오베르 쉬르 와즈와 세잔의 그림 속 정원이 있는 지베르니를 둘러본다. 파리로 돌아와 19세기 오페라 명장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오페라의 유령’의 무대 가르니에 극장 등 프랑스가 자랑하는 음악 명소들을 탐방한 뒤 유람선을 타고 여름 저녁 세느강의 강바람에 취해본다. 3일에는 TGV를 타고 몽펠리에를 거쳐 고흐가 만년의 창작혼을 불태운 아를로 향한다. 다음날 5일에는 프랑스 남부를 대표하는 휴양도시 액상프로방스의 번화한 시가를 돌아본 뒤 ‘영화의 도시’ 칸을 거쳐 앙티브에서 피카소 미술관을 돌아보고 모모의 노래가 들릴 것 같은 니스에서 여름 지중해 휴양지의 들뜬 분위기를 만끽한 뒤 느긋한 저녁 식사를 즐긴다. 6일, 지중해의 동화마을 같은 작은 나라이자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국모(國母)로 자취를 남긴 모나코공국을 돌아본다. 오후에는 이탈리아 명가요의 산실인 산레모 가요제의 고장 산레모를 본 뒤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본고장이자 푸치니 ‘라보엠’이 초연된 토리노의 왕궁과 로마 유적지를 감상한다. 8일, ‘줄리엣의 집’을 비롯한 베로나 곳곳을 구경하고 아쉬운 마음을 남긴 채 가까운 베네치아 공항으로 향한다. 한편 동아일보는 잘즈부르크 여름 음악축제 테마여행을 마련해 오페라와 콘서트를 관람한다. 도밍고, 페트렌코, 유자왕을 만날 수 있다. 8월 23일 출발.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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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어린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주페의 서곡들

    음악의 수도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와 있습니다. 내일은 아드리아해 동쪽의 아름다운 달마티아 해안을 가진 나라 크로아티아로 갑니다. 잘츠부르크 5월 성령강림절 음악축제를 참관하는 여정입니다. 크로아티아가 풍요한 고전음악의 유산을 가진 나라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빈 고전파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은 크로아티아인이 많이 사는 빈 변두리에서 자랐기 때문에 작품 속에 크로아티아 민속 선율을 많이 집어넣었다고 알려져 있죠. 고전음악 및 크로아티아와 관계된 이름을 또 하나 든다면 19세기 말 오페레타(이해하기 쉬운 내용과 쉬운 음악으로 구성한 가벼운 오페라의 일종)의 거장으로 불렸던 프란츠 폰 주페(1819∼1895·사진)가 있습니다. 그는 크로아티아인이 아니라 이탈리아계 아버지와 독일계 어머니 사이의 아들이었지만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에서 태어났습니다. 19세기에 오스트리아는 오늘날의 오스트리아 공화국과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남부, 우크라이나 서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등을 영유한 대제국이었기 때문에 곳곳에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언어를 쓰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음악극을 썼지만 오늘날 그의 오페레타가 상연되는 일은 오스트리아와 독일 남부를 제외하면 드뭅니다. 하지만 그가 오페레타 서두에 연주되도록 만든 수많은 서곡들은 지금도 널리 사랑받고 있죠. ‘시인과 농부’ 서두의 트럼펫 솔로는 우리나라의 한약 TV 광고에 쓰여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고, 활발한 리듬의 ‘경기병’ 서곡도 대중적인 관현악 콘서트에서 빠지지 않는 곡입니다. 그 밖에 ‘아름다운 갈라테아’나 ‘보카치오’ 서곡 등 수많은 서곡들이 있습니다. 다가오는 21일은 주페가 세상을 떠난 지 123년 되는 날이로군요. 저는 가정의 달인 5월에 특히 어린이들이 그의 서곡들을 들어보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리듬감이 강하고 활력 있어 아이들은 들으면서 십중팔구 팔을 휘저으며 신나합니다. 저도 어릴 때 그랬으니까요. 주페의 신나는 서곡들을 들으면 오케스트라의 수많은 악기와 그 음색의 배합이 주는 아름다운 효과들에 일찍 친숙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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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하이네 작사, 슈만 작곡… 독일판 ‘갑돌이와 갑순이’

    가요 ‘갑돌이와 갑순이’를 모르는 분은 없겠죠? 한동네에서 서로 사랑하던 두 남녀가 그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다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나서 아쉬움과 슬픔을 간직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이죠. 1960년대 큰 인기를 끈 이 노래는 원곡이 1939년 음반으로 나온 ‘온돌야화’라고 합니다. 당시 노래 속 주인공은 ‘갑돌이와 갑순이’가 아니라 ‘박돌이와 갑순이’였다고 하네요. 그런데 독일판 ‘갑돌이와 갑순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하이네의 시에 슈만이 곡을 붙인 가곡집 ‘시인의 사랑’ 가운데 열한 번째 곡인 ‘한 총각이 한 처녀를 사랑했네’입니다. ‘갑돌이와 갑순이’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한 총각이 한 처녀를 사랑했네/처녀는 다른 남자를 택했네/그런데 그 다른 남자는 또 다른 처녀를 사랑해서/결혼해 버렸다네/첫 번째 처녀는 화가 나서/길에서 마주친 사람 중 가장 나은 사람과 결혼했다네/총각은 성이 났다네.’ ‘갑돌이와 갑순이’보다는 복잡하죠? A남은 B녀를 사랑하는데 B녀는 C남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C남은 D녀와 결혼했고, B녀는 화가 나서 E남과 결혼했으니 당연히 A남이 화가 났습니다. ‘갑돌이와 갑순이’는 서로 몰래 사랑하고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넷이지만, 하이네의 스토리는 ‘애정 화살표’가 마구 다른 사람으로 튑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이 결혼해서 속상한 남녀가 있는 점은 같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시와 가곡으로 탄생했을까요? 가사를 쓴 하이네는 사촌 아말리에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아말리에는 하이네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남자를 사랑했는데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아말리에도 화가 나서 결혼을 했지만 그 상대방은 아말리에 자신에게도 낯선 남자였습니다. 하이네는 이 속상한 얘기를 시로 썼던 것입니다. 5월에는 이 노래가 들어 있는 슈만 ‘시인의 사랑’이 유독 자주 연주됩니다. ‘시인의 사랑’ 첫 곡이 ‘아름다운 오월에’라는 곡이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 미혼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아름다운 오월에 고백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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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소치 달군 아르메니아 선율… ‘칼춤’ 같은 하차투랸의 삶

    4년 전 러시아 소치에서 겨울올림픽이 열렸습니다. 개막식에서는 차이콥스키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풍요한 음악문화와 발레를 기반으로 한 아이스댄싱이 유감없이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한껏 리드미컬한 선율 하나가 귀를 붙들었습니다. 아람 하차투랸(1903∼1978·사진)의 발레 ‘가야네’에 나오는 ‘칼춤’이었습니다. “음? 이상한데?” 무엇이 이상했느냐 하면, 하차투랸은 러시아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는 옛 소련 시대에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와 함께 소련을 대표하는 3대 작곡가로 불렸습니다. 54세에 소련 작곡가 동맹 총비서가 되었고, 사망할 때까지 그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인이었던 프로코피예프나 쇼스타코비치와 달리 캅카스 지방의 아르메니아 사람이었습니다. 옆 나라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아르메니아인 지역에서 자라난 그는 열여덟 살 때 모스크바로 가서 러시아 음악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음악은 거의 모두 아르메니아의 민속 선율과 리듬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발레 ‘가야네’와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발레 ‘스파르타쿠스’, 바이올린협주곡 등 그의 대표곡 모두 러시아 음악과 분명히 다른 캅카스의 색채가 느껴집니다. 그의 생애가 러시아인 ‘동무’들과 부침을 함께하기는 했습니다. 1948년 소련 공산당이 그와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를 싸잡아 ‘형식주의 작곡가’로 비판했고, 이들을 향한 싸늘한 시선은 1953년 스탈린이 죽고 난 뒤에야 풀렸습니다. 이 사실도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두 러시아 작곡가는 분명 당국의 요구에 앞서 자신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다 제재를 받은 면이 있지만, 하차투랸은 늘 ‘인민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음악을 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와 관계가 소원합니다. 끊임없이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한 시도를 펼치고 있죠. 소치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했던 하차투랸의 ‘칼춤’을 들으며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합니다. ‘노동자 농민의 나라’를 표방한 소련의 대표 작곡가였던 하차투랸은 40년 전 노동절인 1978년 5월 1일 세상을 떠났고, 아르메니아 수도인 예레반 근교에 묻혔습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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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과 놀자!]점토로 동작 만들어 한 컷씩 ‘찰칵’… “좌충우돌 꿈을 그려요”

    ‘클레이 애니메이션’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만화영화’라고도 하는 애니메이션은 요즘엔 대부분 컴퓨터로 그림 작업을 하죠. 예전에는 주인공들의 움직임에 맞춰 한 장 한 장을 모두 손으로 그렸어요. 그런데 이것들과 다른 애니메이션의 세계가 있습니다. 섬세하게 빚은 점토 모형에 조금씩 모습을 바꾸고, 이를 한 장씩 찍어 연결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이죠.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전시관에서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대명사인 아드만스튜디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아드만 애니메이션: 월레스&그로밋과 친구들’ 전시가 열리고 있어요. ‘월레스와 그로밋’ ‘치킨런’ 등 이 회사가 제작한 클레이 애니메이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점토 인형, 촬영 세트, 미리 그려본 스케치 등을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 전시와 함께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흥미로운 세계를 만나볼까요?○ 그림으로 시작해 점토에 숨 불어넣기 클레이 애니메이션 제작도 처음은 다른 애니메이션과 똑같아요. 상상한 내용을 연필이나 붓으로 종이에 그려보는 것이죠. 그려본 그림들을 놓고 제작자들이 토론하면서 캐릭터의 크기, 비율, 표정, 분위기 등을 바꿔 나갑니다. 그 뒤 영화 속 이야기가 펼쳐질 배경과 캐릭터를 제작하죠. 아드만스튜디오는 주인공들의 움직임을 표현할 점토를 직접 만들어요. ‘아드 믹스’라고 부르는데, 아주 유연하기 때문에 보통의 점토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동작과 표정을 나타낼 수 있어요. 배경 위에 설치된 점토 주인공들을 직접 손으로 만져 아주 조금씩 동작과 표정을 변화시키고, 그때마다 사진 한 장씩을 촬영하는데 이 한 장 한 장을 연결하면 움직이는 동영상이 됩니다. 손작업으로 주인공이나 물체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에, 제작자 의 땀과 정성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죠. 이렇게 한 장씩의 정지된 사진을 연결하기 때문에 ‘스톱모션(정지동작) 애니메이션’이라고도 부릅니다.○ 태엽카메라에서 클레이 애니 대명사로 아드만스튜디오의 탄생을 알아보기 위해 52년 전인 1966년, 영국 남서부 작은 마을인 ‘월튼 온 템스’로 가보겠습니다. 이 마을에 사는 두 소년, 피터 로드와 데이비드 스프록스턴은 친구였어요. 둘은 디즈니 등의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있었고, 마침 스프록스턴의 아버지는 사진가였죠. 두 소년은 스프록스턴 아버지의 태엽식 동영상 카메라를 빌려 그들만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 일하던 스프록스턴의 아버지가 이를 보고 영화 제작용 필름을 구해다 주었고, 두 친구들은 ‘아드만’이라는 슈퍼 히어로를 상상해낸 후 이를 주인공으로 짧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어요. 놀랍게도 BBC가 이 애니메이션을 사들였습니다. 자신을 얻게 된 두 사람은 1972년 ‘아드만 애니메이션’이라는 회사 이름을 등록합니다. 1989년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동물원 인터뷰’는 이듬해 가장 권위 있는 영화상 중 하나로 꼽히는 오스카상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어요. 이를 계기로 전 세계가 아드만의 이름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2년 ‘월레스와 그로밋-화려한 외출’, ‘월레스와 그로밋-전자바지 소동’이라는 두 걸작이 탄생했어요. 발명이 취미인 별난 아저씨 월레스, 그리고 그의 똑똑한 애견 그로밋이 우주선도 만들고, 저절로 걸어가는 자동바지도 만들면서 벌어지는 온갖 소동을 그려냈죠. 전 세계 가족 관객의 시선을 끌어모은 이 작품 이후 2000년에는 첫 장편 애니메이션 ‘치킨런’이 탄생했어요. 닭장에 갇힌 닭들의 목숨을 건 탈출기를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이었죠. 이후 ‘월레스와 그로밋-거대토끼의 저주’ ‘플러쉬’ 같은 걸작 장편들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평소 보고 싶던 캐릭터와 만나세요 아드만의 제작자들은 조명의 마술사로 불린답니다. 숨 막히게 긴장되는 장면에서 그림자 하나가 어둠 속에 숨은 얼굴 위를 지나간다거나, 빛을 변화시켜 한 장면 안에서 계절의 변화까지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도 ‘숀더쉽’ 세트에서 낮이 밤으로 바뀌는 조명의 마술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드만스튜디오의 영화에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생활용품들도 많이 등장해요. 이 축소 모형들은 모양뿐 아니라 빛을 반사하는 정도나 매끄러움까지 정확하게 표현해 영화의 아름다움과 재미를 더해줍니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아트숍에서는 주인공들의 캐릭터 인형과 여러 흥미로운 소품을 구입할 수 있죠. 참, 어린이날 이틀 전인 5월 3일(목)에는 아드만스튜디오의 최신작인 ‘얼리맨’이 국내 개봉됩니다. 아주 먼 옛날, 석기 마을의 주인공들과 청동기 왕국의 침략자들이 부딪치면서 일어나는 한판 승부를 그렸죠. 이번 전시를 보고 ‘얼리맨’을 관람하면 그 재미와 감동이 훨씬 커질 거예요!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아드만 애니메이션 월레스&그로밋과 친구들 전시: ∼7월 12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검색: 아드만 애니메이션}

    • 2018-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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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투란도트’ 속 대중, 지금과는 다르다고?

    자코모 푸치니(사진)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1926년 초연)에서 작곡가와 대본작가들은 예전에 없던 배역을 창조했습니다. ‘군중(Popolo)’입니다. 물론 거의 모든 오페라에 합창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산적들’ ‘뱃사람들’ 등 장면에 맞춰 다양한 역할을 맡을 뿐이지, ‘군중’이라는 한 가지 역할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투란도트’ 속의 ‘군중’은 어떤 캐릭터일까요. 그들은 지배자들에게 핍박과 고통을 받습니다. 명령 한마디로 잠을 박탈당하며 죽음의 위협까지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이에게 꿈을 투사하고 성원을 보냅니다. 투란도트 공주의 수수께끼 풀기에 도전한 남자 주인공 칼라프를 응원할 때 그렇습니다. 그러다가도, 공통의 희생제물을 찾으면 한순간에 지배자 편에 서서 함께 박해자가 됩니다. 한마디로 이 ‘군중’은, 쉽게 변하며 쉽게 조종당하는 존재입니다. 왜 이렇게 그려졌을까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중’ 또는 ‘대중’은 냉전 중인 양 체제에서 공통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달랐습니다. 파시스트들과 나치는 민중이 가진 힘에 주목하고 그들의 조직화에 큰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민중이 쉽게 조작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정치철학은 소수 엘리트의 과두정(oligarchy)이었습니다. 스페인의 사상가 호세 오르테가이가세트도 1930년 발표한 ‘대중의 반란(La rebeli´on de las masas)’에서 수동적이며 비인격적인 대중이 사회적으로 힘을 얻는 데 경계심을 표현합니다. 즉, ‘투란도트’에 묘사된 대중은 그 시대에 인식된 전형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대중’이란 관념은 이보다 훨씬 긍정적인 가치를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투란도트’와 오르테가이가세트가 경고한, ‘쉽게 조종당하며, 억압에 동참하는 대중’은 사라진 것일까요? 서울시오페라단은 26∼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푸치니 ‘투란도트’를 공연합니다. 투란도트 역에 소프라노 이화영 김라희, 류 역에 소프라노 서선영 신은혜, 칼라프 역에 테너 한윤석 박지응이 출연합니다.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8-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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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기타와 닮았지만 첼로처럼 켜는 악기 ‘아르페지오네’

    “나는 기타를 열심히 연습해서 잘 치게 됐지. 그런데 바이올린이나 첼로처럼 ‘긁는’ 악기도 연주해보고 싶은데.” 이런 상상, 해보신 분 있겠죠?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첼로처럼 켜는 악기로 기타를 개조하는 겁니다. 물론 손을 보아야 하겠죠. 기타는 여섯 줄이 같은 높이로 달려 있지만, 켜는 악기로 만들려면 한 줄을 켜는 동안 다른 줄을 건드리지 않도록 왼손을 짚는 지판(指板)이 둥근 원호 모양이 돼야 합니다. 그리고 기타보다 허리가 홀쭉해야 활을 사용하기 쉽겠죠. 묘한 발상 같지만 전혀 엉뚱하지는 않습니다.만돌린의 경우 각 현의 음높이가 바이올린과 똑같아 두 악기 모두 잘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기타의 쌍둥이 격인 켜는 악기를 만들어보기로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실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1823년 오스트리아 빈의 악기 장인 요한 게오르크 슈타우퍼가 이런 악기를 만들어 ‘아르페지오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들어보셨을 겁니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이 악기를 위해 만든 곡입니다. 문제는, 이 악기가 인기를 끌지 못하고 곧 자취를 감춰버렸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주로 첼로로 연주합니다. 그런데 아르페지오네는 첼로보다 소리가 높았습니다. 그래서 이 곡을 비올라로 연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올라로 연주할 때는 원곡의 낮은 음을 올려서 연주해야 합니다. 게다가 첼로와 비올라는 네 줄, 아르페지오네는 여섯 줄이기 때문에 원곡 악보대로 연주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아 편곡은 불가피합니다. 문헌으로 남은 아르페지오네를 복원해 연주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어차피 본래의 악기가 사라졌다시피 했기 때문에 이 소나타는 관악기용으로도 즐겨 바꾸어 연주됩니다. 클라리넷, 플루트, 심지어 튜바를 닮은 ‘유포니움’으로 연주하기도 합니다. 지난 일요일(1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오른 첼리스트 지안 왕과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듀오 콘서트에서는 가장 친숙한 형태인 첼로와 피아노 협연으로 이 작품이 연주됐습니다. 이 콘서트는 17일 대전 예술의전당 아트홀, 18일 경남 진주시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이어집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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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요즘 딱 듣기 좋은 헨델의 ‘나무 그늘 아래’

    나무들이 아름다워지는 4월입니다. 지난주 목요일인 5일이 식목일이었죠. 2006년 공휴일에서 빠진 뒤로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잊혀진 날이 된 듯합니다. 마침 4월 초가 건조해지기 십상이어서 산에 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산불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도 합니다만, 나무를 사랑하고 자연을 살리는 마음만은 계속됐으면 싶습니다.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노래도 있습니다. 헨델(사진)의 오페라 ‘세르세’에 나오는 ‘푸른 나무 그늘 아래(Ombra mai fu)’가 그런 노래죠. 페르시아왕 세르세(크세르크세스)가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 쉬다가 ‘나무 그늘이 이렇게 달콤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고 찬미하는 아리아입니다. 이 노래가 나오는 ‘세르세’는 1738년 4월 15일 런던에서 초연한 뒤 250년이나 잊혀졌던 오페라입니다. 1979년에야 처음 전곡 녹음이 이뤄질 정도로 오페라는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유독 나무 사랑의 마음을 담은 노래 ‘푸른 나무 그늘 아래’만은 19세기에 재발견돼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노래 가사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탓에 ‘헨델의 라르고’라는 어중간한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했죠. 이 노래는 오페라 ‘세르세’ 전곡이 재발견되기 전 우리나라 중고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습니다. 1906년 캐나다 발명가 레지널드 페슨든(1866∼1932)이 세계 최초의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전파를 탄’ 노래도 이 노래였다고 합니다. 다가오는 일요일인 15일은 마침 오페라 ‘세르세’가 세상에 나온 지 280년 되는 날이군요. 학생 때 가창 시험에서 이 노래를 불러본 분도 많을 듯합니다. 우연인지 이 노래의 ‘주인공’인 플라타너스는 전국 초중고교 교정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하죠. 저도 일요일에는 학창 시절 생각을 하며 이 노래를 들어보겠습니다. 누구의 노래로 들어볼까요. 지난해 11월 55세의 아까운 나이에 뇌암으로 세상을 떠난 러시아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의 음반을 플레이어에 올려놓고 싶습니다. 그늘에서 만족스럽게 쉬었던 오페라 주인공 세르세 왕처럼, 그도 다른 세상에서 편히 쉬고 있을까요.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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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마스네와 푸치니의 같은 듯 다른 ‘마농’

    푸치니의 세 번째 오페라인 ‘마농 레스코’(1893년)는 두 번째 막에서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을 의아하게 만듭니다. 1막에서는 수녀원에 들어가려는 젊은 여인 마농을 기사 데그리외가 유혹해 함께 도망칩니다. 그런데 2막이 열리면 마농은 데그리외와 함께 있지 않고 부자 제론테의 집에 첩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별다른 설명도 없습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원작 소설에서는 마농이 데그리외와 살다가 금은보화를 앞세운 제론테의 꼬임에 빠져 말없이 데그리외를 떠나버립니다. 그런데 오페라로 만들면서 그 내용을 건너뛰어 버린 겁니다. 지나치게 과감한 생략 같지만 여기엔 이유가 있었습니다.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에 9년 앞서, 프랑스 작곡가 마스네가 1884년 ‘마농’을 파리 오페라 코미크에서 발표했습니다. 마스네는 이탈리아에서도 인기가 높은 작곡가였습니다. 베르디를 전속 작곡가로 둔 흥행사 리코르디가 마스네의 인기 때문에 수입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마스네의 ‘마농’ 역시 이탈리아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푸치니가 이 작품과 같은 소재로 세 번째 오페라를 쓰겠다고 하자 리코르디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마스네 작품의 아류로 묻혀버리게 될 거다’라며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푸치니는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마스네의 마농은 분 냄새나는 프랑스인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탈리아인 특유의 서정으로 승부하겠다.” 하지만 역시 마스네의 ‘마농’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원작을 사용하면서도 4막(마스네의 마농은 5막)의 구성은 달리 보이게 하려 애를 썼습니다. 이 때문에 줄거리 전개에서 중요한 ‘데그리외와의 동거 장면’까지 빠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마스네의 ‘마농’과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는 전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나란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국립오페라단은 5∼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마스네 ‘마농’을 공연합니다. 히로인 마농 역에 소프라노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와 손지혜, 기사 데그리외 역에 테너 이스마엘 조르디와 국윤종이 출연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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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 70대에 오페라 무대 꿈 이룬 ‘실버 만세’

    “여자 나이 마흔 셋이면 모르는 것 하나 없죠. 남자들 모두 제아무리 뽐내 봐도 소용없죠∼!”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국방송통신대 서울지역대학 대강당. 모차르트의 희극 오페라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 공연에서 데스피나 역을 맡은 박광춘 씨(65)의 나이답지 않게 풋풋하면서도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450석의 객석은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유쾌한 장면에는 웃음을 터뜨리며 공연에 빠져들었다. 이날 공연은 방송통신대 평생교육원인 ‘프라임 칼리지’ 오페라반에서 성악을 공부하는 평균 나이 63세의 ‘늦깎이 성악 연습생’들이 1년 동안 호흡을 맞춰 준비한 무대. 무대 뒤 출연진의 표정엔 처음 긴장한 빛이 역력했지만 막이 오르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여유가 느껴지는 연기와 발성을 선보였다. 공연은 오후 3시, 7시 두 차례 열렸다. 공연 총감독을 맡은 안성민 카르페오페라단 단장은 “방송통신대에 성악입문반이 개설된 뒤 2, 3년을 거치면서 수강생들이 일정 수준에 오르고 오페라에 대한 의욕도 커져 오페라반을 별도로 개설한 뒤 공연을 준비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6월 집중 연습이 시작된 뒤에는 보컬코치와 연출, 지휘, 반주자 외 파트별 코치까지 10여 명이 재능기부 형태로 지도를 맡아 완성도를 높였다. 처음엔 출연자들이 공연비용을 갹출하기로 했지만 소식을 전해들은 방송대 발전후원회(위원장 차광은 차의과대 교수)와 아시아발전재단이 공연비용을 지원했고 방송대도 사용료 없이 강당을 제공했다. 안 단장은 “젊은 남자들이 결혼하기에 앞서 여자친구들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지 떠본다는 내용의 작품이지만 참가자들의 연령대를 감안해 주인공들의 나이를 40대로 올리고 시대배경도 현대로 바꾸었다”고 말했다. 남자 주역 중 하나인 돈 알폰소 역을 맡은 황치형 씨(72)는 “젊어서 성악가가 꿈이었고 건축기술자로 지내다 은퇴한 뒤 대학 성악과에 진학할 생각도 있었는데 이제 택시기사로 일하며 시간을 내 방송통신대에서 꿈을 이루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복식호흡 덕에 건강도 덤으로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광춘 씨는 “학교 교장을 하다 은퇴했는데 인생의 새로운 막을 무대에서 펼치게 돼 가슴 벅차다”고 말했다. 안 단장은 “연습이 계속될수록 출연자들이 일상생활에도 한층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가족들도 좋아한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작곡가와 시대의 작품으로 오페라 공연을 이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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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폴란드 공화국의 총리가 된 피아니스트

    한 세기 전인 1918년 막을 내린 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 전체에 큰 비극이었지만 몇몇 유럽 민족들에는 독립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핀란드,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새롭게 자신들의 역사를 써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종주국들이 백기를 들고 항복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억압받던 민족들의 독립 운동가들이 전쟁 전부터 전 세계에 치열한 독립의 호소를 전했기에 가능했을 일입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주권을 빼앗기고 자신들의 문화를 억압당하며 살았던 이 민족들에 대해 세계인들이 아는 것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습니다. 교향시 ‘핀란디아’ 등으로 알려진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신생 핀란드 공화국의 ‘국가적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3S’ 즉 시벨리우스, 사우나, 시수(지혜가 깃든 용기)를 알면 핀란드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죠.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독일이 나눠 점령하고 있었던 폴란드의 독립은 핀란드보다 어려웠습니다. 세계인이 폴란드에 대해 가장 뚜렷이 알고 있는 건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고국’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폴란드 출신으로 쇼팽을 가장 잘 연주한 피아니스트가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1860∼1941)였습니다. 쇼팽 연주가로 얻은 명성을 그는 조국의 독립을 위한 호소에 사용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을 찾아가 폴란드의 독립 필요성을 역설했고, 감명을 받은 윌슨 대통령은 자신이 발표한 전후 ‘14개조 평화원칙’에 폴란드의 독립을 명시했습니다. 1918년 폴란드가 독립하자 파데레프스키는 단 두 달 재임한 옝제이 모라체프스키 초대 총리에 이어 신생 폴란드 공화국의 두 번째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가 생활도 길지는 않았습니다. 열 달 뒤 피아니스트로 돌아가 미국과 유럽에서 쇼팽 작품을 비롯한 폴란드 음악과 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데 다시 나섰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8일 독주회를 갖는 미국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는 소나타 3번을 비롯한 쇼팽 작품들과 소나타 E플랫단조를 비롯한 파데레프스키의 작품들을 연주합니다. 그는 1990년 제12회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에서 최고 점수로 1위 없는 2위를 수상한 바 있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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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의 선구자, 드뷔시 서거 100주년

    음악 하면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먼저 떠오르지만 프랑스도 음악 강국이었습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이후 주도권을 독일어권으로 넘겼을 뿐이죠.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이 프랑스의 패배로 끝나자 프랑스는 음악뿐 아니라 국가적 자존심에도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해,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의 주도로 프랑스 국민음악협회가 창설됐습니다. 존재가 희미해진 프랑스의 음악을 바로 세우자는 취지였습니다. 국민음악협회가 주목한 것은 독일 음악의 형식미였습니다. 생상스는 독일 음악 못잖은 견고한 구조를 프랑스 음악에 도입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베토벤 교향곡 5번처럼 간단한 동기(모티브)가 발전해 긴 곡을 빚어내는 교향곡 3번 ‘오르간’ 등을 썼습니다. 생상스로부터 국민음악협회를 넘겨받은 세사르 프랑크도 공통된 선율이 여러 악장을 순환하는 ‘순환형식’으로 프랑스적 형식미를 세우려 노력했습니다. 이들의 노력은 수많은 아름다운 프랑스 기악곡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프랑스 고유의 음악이 탄생됐다’고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음악협회의 위기도 독일 때문에 빚어졌습니다. ‘오늘날의 독일 음악도 연구해서 좋은 부분을 본받자’는 의견에 생상스가 반발해 협회를 떠난 것입니다. 실제로 프랑스적인 음악은 형식미와 무관하게 생겨났습니다. 한 세대 뒤의 기재(奇才)인 클로드 드뷔시(사진)가 1892년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라는 관현악곡을 발표했습니다. 형식을 중시하기는커녕 형식을 해체한 작품이었습니다. 형식뿐 아니라 기존 음악의 많은 요소를 이 곡은 해체했습니다. 프랑스 인상주의 회화에서 윤곽선이 희미하게 해체되듯이 이 곡에서는 선율이 흩어져 짧은 동기들로 떠다닙니다. 인상주의 회화에서 안료들이 중첩되어 섞이며 기존에 없던 색감을 만들어내듯, 화음도 기존의 규칙에서 벗어나 중첩되며 새로운 소리의 인상을 만들어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드뷔시의 음악을 프랑스에서 비롯된 ‘인상주의 음악’의 선구로 부릅니다. 이달 25일은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을 만들어낸 드뷔시의 서거 100주년 기념일입니다. 아름다운 봄날. 신기루처럼 어른거리는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 작품을 들어보기에도 적합한 시기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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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말러도 공감한 베토벤의 이별 정서

    지난주 서울엔 두 차례나 봄비가 내렸습니다. 이번 주 중반에도 봄비가 예고되어 있군요. 봄에 내리는 비는 ‘이별’을 떠올리게 합니다. 학창 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이수복의 시 ‘봄 비’(이 비 그치면/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와 고려시대 정지상의 한시 ‘송인’(送人·비 갠 긴 둑엔 풀빛이 짙어 가는데/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이 떠오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지상의 ‘송인’을 읊조리다 보면 구스타프 말러가 작곡한 ‘대지의 노래’도 생각납니다. 이 곡은 교향곡과 가곡집의 중간쯤에 있는 곡인데, 독일어로 번역된 한시에 곡을 붙였습니다. 마지막 악장 ‘송별’(Der Abschied) 끝부분 가사는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대지에 봄이 오면 어디에나 꽃이 피어나고 새로운 초록빛이 돋아나리라. 그리고 멀리 푸른빛이. 영원히, 영원히….’ 괜히 ‘센티멘털’해졌나요. 그런데 이 곡이 베토벤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입니다. 이 곡의 첫 악장은 계이름 ‘미-레-도’로 시작합니다. 베토벤은 악보의 이 세 음에 ‘Le-be-wohl’(레베볼·독일어로 ‘잘 지내십시오’라는 뜻)이라고 써넣었습니다. 그가 이 곡을 쓴 1809년에 나폴레옹이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침공해 왔습니다. 베토벤의 후원자 루돌프 대공도 피란을 가야 했습니다. 이별이 아쉬웠던 베토벤이 대공에게 주는 메시지를 악보에 써넣은 것입니다. 한 세기 뒤 말러는 ‘대지의 노래’에서 이 ‘미-레-도’의 동기를 활용했습니다. ‘사랑하는 대지’를 노래하는 부분에서 이 동기를 사용해 이별의 정서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는 얼마 뒤 작곡한 교향곡 9번 마지막 악장에서도 ‘미-레-도’의 ‘고별’ 동기를 강조했습니다. 이 두 곡은 말러가 심장 이상으로 오래 살 수 없을 것을 직감한 뒤 쓴 작품들이었습니다. 15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열리는 ‘양극단에서 음악을 만나다’ 콘서트에서 대전시립교향악단이 상임지휘자 제임스 저드의 지휘로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이 된 교향곡 9번을 연주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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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현대의 첫 여성 작곡가였던 佛 불랑제 자매

    여러 시대에 걸쳐 많은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불리한 여건을 딛고 작가나 시인, 화가로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근대 이전의 여성 작곡가는 매우 드뭅니다. 옛날에도 성악가는 물론이고 기악 연주자들 중에도 스타로 군림했던 여성은 꽤 많았기 때문에 여성 작곡가가 적었던 점은 특히 눈에 뜨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글을 쓰는 일이나 그림을 그리는 일, 악기를 연마하는 일은 홀로 고독하게 해나갈 수 있는 부분이 큽니다. 하지만 작곡은 보수적인 사회 속에서 연주자를 섭외해야 하는 등 사회적 ‘인정 투쟁’에 더 깊이 관련되어 왔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불리한 여건을 뚫고 인정을 받은 현대의 첫 세대 여성 작곡가를 들자면 프랑스의 불랑제 자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자매 가운데 동생인 릴리 불랑제(1893∼1918)는 열아홉 살에 ‘파우스트와 헬레나’로 프랑스 작곡계의 스타 산실인 ‘로마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앞서 토마, 비제, 마스네, 드뷔시, 샤르팡티에 등이 받았던 어마어마한 영예였습니다. 그러나 수상 기념 연주회에서 그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몸에 병마가 침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스물다섯 살의 아까운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여섯 살 언니인 나디아 불랑제(1887∼1979)도 일찍이 작곡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동생의 작품에 비하면 내가 쓴 것은 하찮은 것일 뿐’이라며 작곡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는 후배 양성에 전념했습니다. 현대 작곡사를 빛내는 조지 거슈윈, 에런 코플런드, 다리우스 미요, 조지 앤타일, 엘리엇 카터, 필립 글래스 등 수많은 20세기 작곡가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작곡 선생의 역할이란 각자가 개인적인 재능과 개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라며 이론서를 써달라는 부탁도 거절했습니다. 이달 15일은 동생인 릴리 불랑제가 세상을 떠난 지 딱 한 세기 되는 날입니다. 만약 릴리가 수십 년 더 살았다면 자신이 계속 작곡을 해나갔을 뿐 아니라 언니 나디아가 작곡에서 손을 놓는 일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훨씬 많은 자매의 명곡이 세상에 울려 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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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183년 만에 만나는 도니체티 오페라

    183년 동안 잠들어 있던 오페라가 세상의 빛을 봅니다. 영국 음악학자 칸디다 만티가 씨는 최근 “가에타노 도니체티(1797∼1848·사진)의 오페라 ‘니시다의 천사’ 악보 대부분을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찾았으며, 빠진 부분까지 찾아내 원형을 복원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오페라는 올해 7월 18일 영국 런던의 코번트가든 로열 오페라에서 세계 초연될 예정입니다. ‘니시다의 천사’는 이미 그 존재가 알려져 있던 작품입니다. 도니체티는 1835년 이 작품을 프랑스 파리의 르네상스 극장에서 초연할 예정이었지만 흥행사가 파산해버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후 이 곡의 악보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고, 사람들은 도니체티가 5년 뒤 발표한 오페라 ‘라 파보리트’(애첩이라는 뜻. 이탈리아어로는 ‘라 파보리타’)에 이미 작곡해 둔 ‘니시다의 천사’ 대부분을 녹여 넣었을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두 오페라 모두 권력자의 애첩을 사랑하는 남자의 고통을 다루는 비슷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니시다의 천사’를 지휘할 마크 엘더 경은 “‘니시다의 천사’ 악보 중 절반 이상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다. 이 곡은 도니체티 작품 중에서도 최고의 것이며, 매우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잠들어 있던 명곡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일은 음악사에서 드물지 않습니다. 슈베르트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교향곡 8번 ‘미완성’과 9번 ‘더 그레이트’는 각각 슈베르트가 죽은 뒤 37년, 10년이 지나 악보가 발견됐습니다. 발견된 것은 ‘더 그레이트’가 이르지만, 작곡 순서에 따라 각각 8번과 9번으로 불립니다. ‘더 그레이트’의 악보를 발견한 사람은 바로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었습니다. 이 슈만의 작품도 훗날 발견된 곡이 있습니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그가 죽고 난 뒤 81년 만인 1937년 발견됐다는 얘기를 이 코너에서 전한 적이 있습니다. 2000년대에도 비발디의 플루트 협주곡이나 엘가의 가곡 등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종종 신문 제목을 장식하지만 도니체티의 오페라 같은 대곡의 발견 소식은 드문 일입니다. 앞으로 이 작품이 전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사랑받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8-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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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피아노 교본으로 더 유명한 작곡가 체르니

    그는 베토벤의 제자이며 리스트의 스승이었습니다. 엄청난 계보의 한가운데 자리한 셈이죠. 1920년대 미국의 피아노 교육 잡지는 그를 ‘피아노 기법의 조상’이라고 소개하며 피아니스트들의 ‘계통수(family tree)’를 게재했습니다. 그를 나무기둥의 한가운데 놓고 그의 제자들과 그 제자들이 길러낸 피아니스트 37명의 사진을 실었습니다. 명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과 클라우디오 아라우, 치프러 죄르지는 그의 제자의 제자의 제자, 즉 ‘3대’ 제자였고,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였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도 3대 제자였습니다. 피아노의 조상 격 악기인 하프시코드를 부활시킨 주인공 완다 란도프스카 역시 ‘3대 제자’ 대열에 속하며,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그의 ‘4대 제자’가 됩니다. 이 사람이 작곡한 피아노곡을 연주한 사람은 많지만, 음반이나 라디오로 그의 작품을 들은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도 이 사람의 작품을 연주해본 적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짐작이 가시나요. 이 ‘피아노 기법의 조상’은 바로 카를 체르니(1791∼1857·사진)입니다. 내일(21일)은 그의 227번째 생일입니다. 체르니는 세 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일곱 살 때는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열 살 때 베토벤 앞에서 베토벤 소나타 8번 ‘비창’을 연주하자 베토벤은 감탄하며 이 소년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정기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것은 3년이었지만, 체르니는 베토벤이 서거할 때까지 스승의 집에 왕래했으며 그의 자서전 및 베토벤과 교류한 편지들은 베토벤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가장 크게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쓴 피아노 교본들이겠죠. 오늘날에는 꼭 체르니 교본을 치지 않아도 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현대 피아노 기법은 체르니 시대에 비해 크게 확장되었으며, 초급 피아니스트가 기량을 연마하는 데는 20세기 이후 나온 새로운 교재들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체르니 교본’이 가진 권위는 여전히 영향력이 큽니다. 독일의 페르디난트 바이어가 1851년 지은 입문자용 교재(이른바 ‘바이엘’)와 함께 말이죠.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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