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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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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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20~202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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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살배기 아일란의 죽음, 유럽의 ‘난민 장벽’을 허물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아침마다 저를 깨워 주고, 놀아 달라고 했는데 이젠 모든 꿈이 사라졌고, 살아갈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2일(현지 시간) 터키 휴양지 보드룸의 해변에서 모래에 얼굴을 파묻은 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 그의 비극적인 죽음에 전 세계가 슬픔과 분노에 빠진 가운데 아버지 압둘라 쿠르디 씨(40)는 3일 터키의 한 병원에서 아이의 시신을 기다리며 울부짖었다. 그의 가족은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족 민병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시리아 북부 소도시 코바니 출신이다. 이들은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 건너 그리스 코스 섬으로 항해하던 중 거센 파도에 배가 뒤집히면서 변을 당했다.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려 했으나 거부당한 후 배를 탄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인 그만 유일하게 살아남고 나머지 가족은 모두 숨졌다. 아일란이 발견된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엄마(35)와 형 갈립(5)의 시신도 발견됐다. 쿠르디 씨는 악몽과 같았던 그날을 회상하며 괴로워했다. 그의 가족은 2일 터키 해안에서 다른 난민 12명과 함께 고무보트(5인승)에 올랐다. 배가 출항하고 잠시 후 큰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쿠르디 씨는 배를 알선해 준 밀수업자에게 “이래도 괜찮은 거냐”고 물었지만, 그는 “안심하라”고 답했다. 그러나 상황이 악화되자 밀수업자는 혼자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 터키 해안으로 돌아갔다. 배에 탄 나머지 난민들은 결국 배가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전복되면서 대부분 익사했다. 쿠르디 씨는 “물에 빠진 뒤 아내와 아이들을 손으로 잡으려 했으나 결국 놓쳤고, 모두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며 악몽의 순간을 떠올렸다. 3일 언론 인터뷰에서 “두 아들과 아내의 시신을 고향에 묻어 주고, 나도 죽을 때까지 무덤 곁에 머물고 싶다”며 귀향 의사를 밝혔던 쿠르디 씨는 4일 고향 땅을 다시 밟았다. AP통신은 쿠르디 씨가 두 아들과 아내의 시신을 실은 자동차를 타고 4일 터키 국경을 넘어 시리아 코바니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쿠르디 씨는 이날 두 아들과 아내의 시신을 매장했다.○ 전 세계 애도 물결, 각국 난민 정책 수정 이제 겨우 세 살밖에 안 된 아일란의 참극에 전 세계 누리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애도의 그림과 메시지를 올리며 애도하고 있다. 그중에는 아이의 시신에서 날개를 단 영혼이 하늘에서 손을 내미는 엄마에게 안기는 그림,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는 물고기와 대조적으로 서류 작성에 바쁜 경찰관의 냉정한 모습을 그린 그림도 있었다. 아일란의 이름을 따 개설된 모금 펀드에 하루 만에 수천만 원이 걷히는가 하면, 난민 수용에 가장 완강한 태도를 보인 영국에선 난민 수용을 합당한 수준으로 늘릴 것을 촉구하는 탄원서에 시민 22만5000명이 서명했다. 시민들은 서명을 하면서 ‘난민을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를 손에 들고 사진을 찍어 트위터를 통해 공유했다. 사진 한 장이 몰고 온 유럽인들의 인식 변화는 유럽 각국의 난민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래도 난민을 받지 않으려 하느냐’는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정치인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3일 유럽연합(EU)의 중심국인 독일과 프랑스는 EU 회원국에 16만 명의 난민을 의무적으로 분산 수용한다는 원칙에 전격 합의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기존 4만 명의 4배에 이르는 난민을 끌어안을 것을 제안했고,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난민을 수용하는 영구적이고 의무적인 제도가 필요하다”며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이와 관련해 EU 소식통은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16만 명 규모의 난민 분산 수용안을 제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4일 성명에서 ‘대규모 이주 프로그램’을 가동해 EU 회원국들이 20만 명 규모의 난민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난민 지원을 위해 200만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난민 수용 확대에 강하게 버티던 영국도 난민 정책을 급선회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3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한 수천 명의 난민들을 받을 방침을 밝혔다고 전했다. 아일랜드 정부도 4일 1800명의 난민을 받아들일 방침을 밝혔다고 BBC가 보도했다. 한편 외신들은 해변에서 익사한 아이의 사진 한 장이 난민 수용 문제 논의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다면서 1972년 6월 베트남전쟁 당시 네이팜탄 폭격으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알몸으로 거리를 내달리는 소녀 킴푹 사진의 충격에 비견할 만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당시 이 사진은 어떤 기사보다 생생하게 베트남전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려 반전(反戰)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는 “아일란의 사진은 초유의 난민 사태로 갈팡질팡하는 유럽과 이를 지켜만 보던 지구촌에 ‘더는 난민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일종의 분기점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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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랑드 “집권초 부가세 인상 철회 후회”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사진)이 집권 초기 ‘부가가치세(TVA)’ 인상 계획을 백지화하고 부유세를 신설했던 자신의 세금 정책에 대한 실수를 인정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곧 발간될 예정인 책 ‘인턴기간은 끝났다(Le Stage est fini)’에서 “집권 초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세제 정책에 대해 너무 멀리 가지 않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그는 특히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균형예산을 위해 도입했던 TVA 인상(19.6%→21.2%)을 취소했던 것은 실수였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이 책은 프랑수아즈 프레소 르몽드 기자가 올랑드 대통령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쓴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올랑드 대통령은 책에서 “대통령에 취임하는 사람마다 첫 예산 편성에서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며 “나는 전임자가 준비했던 부가세 인상 계획을 백지화함으로써 110억 유로의 국고재정 확충 손실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연간 100만 유로(약 15억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고소득자에게 75%의 부유세를 물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로 인해 올랑드의 부유세는 도입 2년 만에 전면 백지화됐다. 그러나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책임협약’ 등의 ‘친(親)기업 구조개혁’에 대해선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그는 “내가 시작한 개혁들이 전부 좌파적 개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랑드 대통령은 “프랑스는 개혁에 대한 말은 어느 나라보다도 많이 하지만, 어느 나라보다도 개혁을 적게 하는 나라”라고 꼬집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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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 2000년 된 고대유적 또 폭파

    급진 수니파 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고대 유적지 팔미라의 유명 신전을 또 폭파했다. 시리아 문화재 보호단체인 팔미라코디네이션은 8월 30일 트위터 계정을 통해 “IS가 2000년 전에 지어진 팔미라의 가장 중요한 문화유적인 벨 신전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한 팔미라 주민은 AP통신에 “IS가 엄청난 폭발물로 신전을 완전히 파괴했다”며 “벽돌과 돌기둥이 무너져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다른 목격자는 신전 벽 일부만 남았다고 전했다. 서기 32년경 셈족에 의해 지어진 이 신전은 팔미라의 수호신인 벨(bel)에게 바쳐진 것으로 팔미라 유적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었다. 그리스-로마 시대 양식과 고대 중동의 건축 기술이 어우러진 석재 구조물로 돌기둥과 안뜰, 욕조, 제단, 연회실 등으로 이뤄진 대규모 건축물이다. IS는 일주일 전인 지난달 23일에도 서기 17년에 세워진 팔미라의 바알샤민 신전 곳곳에 폭발물을 설치해 폭파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했다. 유네스코는 “IS의 시리아 유적지 파괴는 용서할 수 없는 전쟁범죄”라고 비난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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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3년7개월… 엘리자베스 2세, 최장 영국王으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89·사진)이 곧 역대 영국 군주 가운데 최장수 통치 기록을 깬다. BBC 등 영국 언론들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일 오후 5시 반이 되면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 기간인 2만3226일 16시간 30분을 넘어서게 된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은 1837년 6월부터 1901년 1월 별세할 때까지 63년 넘게 영국을 다스려 현재까지 최장수 통치 군주로 기록돼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2년 2월 6일 아버지인 조지 6세 국왕이 세상을 뜨자 케냐 방문 도중 영국으로 돌아와 25세의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여왕은 필립 공과의 사이에서 찰스 왕세자와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까지 모두 4명의 자녀를 두었다. 여왕은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다이애나 비가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버킹엄 궁에 조기(弔旗)를 달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여왕은 재임 63년 동안 제2차 세계대전 복구, 영국령 식민지 40여 개국 독립, 북아일랜드 유혈사태를 겪으며 현대사의 산증인이 됐다. 여왕이 최장수 통치 군주가 되는 동안 왕위 계승 1순위인 장남 찰스 왕세자는 영국 은퇴 연령보다 많은 66세가 됐다. 그 사이 증손자녀인 조지 왕자와 샬럿 공주까지 태어났다. 여왕은 총 116개국을 방문하며 왕성한 대외활동도 펼쳤다. 캐나다에 24회, 호주에 16회, 뉴질랜드에 10회 방문했으며 1999년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방한하기도 했다. 버킹엄 궁 측은 “여왕은 9일 최장수 통치 군주가 되는 순간에도 평소처럼 조용히 보내길 원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당일 곳곳에서 기념행사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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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작은 책, 큰 울림… 환경 관련 첫 교황회칙 佛서 돌풍

    프란치스코 교황이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2013년 말 펴낸 교황의 사도적 권고인 ‘복음의 기쁨(Evangeli Gaudium)’이 지구적 베스트셀러에 오른 데 이어, 올해 6월 18일 출판된 교황의 환경에 관한 회칙인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사진)’까지 출판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출간 두 달 만에 프랑스 전역에서 10만 부 판매를 가볍게 넘어섰다. 더구나 교황청이 인터넷을 통해 전문을 무료로 공개했는데도 서점가에서 구입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더욱 특이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황의 회칙은 주교들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세계 가톨릭교회와 10억 명의 가톨릭 신자에게 전파되는 사목 교서다. 181쪽 분량의 이번 회칙은 환경 문제를 다룬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교황 회칙이라는 점에서 발표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회칙은 모두 6장 246항에 걸쳐 오늘날 지구와 인간이 겪고 있는 환경 문제를 성찰하고 회개와 행동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또한 이번 환경 회칙은 신이 창조한 자연환경과 인간과의 관계 회복에 대한 종교적 성찰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 교회의 사회적 참여,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상업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등 그동안 교황이 강조해 온 사회적 메시지를 집대성한 문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6개의 출판사가 교황의 새 회칙을 동시 출간했다. 교황청 공식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하면 누구나 출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3.9∼4.9유로(약 5322∼6687원)에 팔리고 있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회칙이 빵집에서 파는 바게트처럼 팔리고 있다”며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소설 ‘다빈치코드’의 성공에 대한 교황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번 교황의 환경 회칙은 12월 파리에서 개최되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1)를 앞두고 프랑스에서 큰 조명을 받고 있다. 프랑스 최대 종교전문 서점인 ‘라 프로퀴르’에 따르면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사서 연구모임을 하기 위해 단체 구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르피가로가 보도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기후변화 특사인 니콜라 윌로는 “유엔회의를 앞두고 발표된 교황의 회칙은 지구적 환경 시스템 위기의 원인을 성찰하게 하고, 각국 정치인의 실천행동에 영감을 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데 ‘뜻밖의 공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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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칼럼/전승훈]한-佛 수교 130년, 우리에게 프랑스는?

    파리 에펠탑은 ‘조명 쇼’로 유명하다. 외교적 행사가 있을 때 중국을 상징할 때는 붉은색 조명으로, 유럽연합(EU)을 상징할 때는 푸른색으로 바뀐다. 9월 18일에는 태극기 문양의 흰색 붉은색 파란색 조명으로 수놓아질 예정이다. 이날은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 ‘한불 상호교류의 해’ 개막일이다. 이날 밤 에펠탑 맞은편 국립샤요극장에서는 유네스코 등재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 전곡이 연주된다. 파리와 서울은 직선거리 8976km, 비행기로는 11시간이 걸릴 정도로 떨어져 있지만 역사 속 인연이 깊다. 200년 전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 가톨릭이 전해지면서 교류가 시작됐고, 독도가 ‘리앙쿠르 바위섬’이라는 프랑스 이름으로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도 1847년 독도를 처음 본 프랑스 선원들이 서양 지도에 표시하면서부터였다. 1886년(고종 23년) 6월 4일 프랑스 전권대사로 온 중국 주재 프랑스대사 코고르당이 조선 정부와 교섭한 끝에 한-프랑스 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프랑스는 한국의 독립운동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왔다. 1919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한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租界·조약에 의해 한 나라가 영토 일부에 외국인 거주와 영업을 허가한 땅)는 한국 독립운동의 산실이었고, 임시정부의 첫 외교독립운동이 전개된 곳도 파리 베르사유 궁에서 열린 강화회의였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파리 9구 샤토됭가 38번지. 현재 1층에 편의점이 들어서 있는 이 건물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위원부(1919∼1921)’라는 현판이 한글과 프랑스어로 또렷이 새겨져 있다. 1919년 3월 임정 외무총장으로 파리에 도착한 김규식 선생이 파리 강화회의에서 대한민국 주권 승인 등 20개 항목의 공문서를 제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1921년 7월까지 독립운동을 국제 이슈화하는 활동을 했다. 이 활동들은 관련 기사가 유럽의 181개 신문에 517건이나 게재될 정도로 큰 성과를 거뒀다. 파리위원부의 독립청원운동 노력은 1945년 3월 4일 드골 임시정부가 중국 충칭(重慶)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공식 승인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을 처음으로 발굴, 공개했던 고 박병선 박사도 생전에 “일제강점기 때 외국 영사관 중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프랑스 영사관이 파리 본부로 수천 쪽 보고서를 보냈는데 독립운동 사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광복 후 헌법 제정 때 영국식 의원내각제보다 대통령제 중심인 프랑스식 모델에 커다란 관심을 가져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전과 고속철도(TGV)도 프랑스에서 수입했다. 프랑스와 한국은 현재 각각 세계 6위와 12위의 경제 대국이다. 요즘 프랑스에서는 한국 영화, 케이팝, 한식 열풍에 이어 한국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이 대략 2000명이 넘고,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 제3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때부터 유럽은 한국 독립외교의 중심지였다.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맞아 외교와 경제교류를 위한 교육 시스템이 영미권에만 치우치지 않고 좀 더 다양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 최근 프랑스가 항공우주,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최첨단 기술을 접목해 온 창조경제 국가로 조명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와의 접점이 많으리라 생각된다.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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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35시간 근무제 없애자” 佛 좌파 경제장관의 반란

    글로벌 투자은행원 출신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장관(37·사진)이 프랑스 좌파의 상징적인 정책인 ‘주(週) 35시간 근무제’ 철폐를 들고 나와 프랑스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마크롱 장관은 27일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 모임에서 주 35시간 근무제 철폐를 언급하며 “오래전에 좌파는 기업에 반대하거나, 기업 없이도 정치를 할 수 있으며, 국민이 적게 일하면 더 잘살 수 있다고 믿었다”면서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5년 동안 좌파의 핵심 정책이었던 ‘주 35시간 근무제’는 프랑스 정치인들에게는 일종의 건드려서는 안 될 ‘터부(금기)’이기에 여기에 도전하는 그의 발언에 후폭풍이 크다. ‘주 35시간 근무제’란 2000년 좌우 동거정부 시절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조금 덜 일하면 모두가 일할 수 있다”라는 구호 아래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도입한 법안이다. 법정 주당 근무시간을 기존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이며 초과 근무시간에 대해선 시급의 25∼50%를 지급하거나 유급 대체휴가를 주는 것이다. 이 법안이 도입된 후 프랑스 노동자들은 기존 5주의 유급 정기휴가에 더해 평균 3주일을 더 쉬었다. 하지만 프랑스 안에서조차 이 제도가 오히려 일자리 확대를 막고,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경직된 법안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기업들은 임금을 깎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이 줄어들자 각종 변형 근로제를 도입한 편법 운영에서부터 자동화시설을 도입해 인건비 절감을 시도했고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도 늘었다. 노동자를 위하겠다는 정책이 오히려 일자리를 없애는 정책으로 변질된 것이다. 실업률도 법안이 발효된 직후인 2001년부터 악화됐다. 당시 9%대였던 프랑스 실업률은 현재 10.2%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주 35시간 근무제’는 현실적으로도 적용되지 않는 사문화된 법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 프랑스 노동자들은 실제로 주당 39.5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이는 유로존 평균인 주당 40.9시간보다 조금 적을 뿐이다. 프랑스의 경우 주 35시간 근무는 생산직 노동자에게만 해당될 뿐 사무직이나 간부 사원들은 주당 근무시간을 따지지 않고 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프랑스 노동자들은 실제로 더 많이 일하고, 시간당 생산성이 다른 유로존 평균보다 약 13%나 높다”며 “현실에 맞지 않는 ‘주 35시간 근무제’가 프랑스가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는 곳이며, 외국인들에게 투자를 기피하게 하는 잘못된 이미지를 던져주고 있다”고 했다. 마크롱 장관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시간을 법으로 정하지 말고 기업 내부에서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새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 결과도 주 35시간 근무제 폐지를 지지하는 찬성 여론이 75%에 달해 지지 여론도 높다. 하지만 집권 사회당 내부에서는 마크롱 장관을 향해 “역대 사회당 정부에서 가장 우파적인 장관”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사회당 장 조레스 의원은 “마크롱 장관은 프랑스 좌파의 역사를 모욕하고 있다”고 비난했으며 크리스티앙 폴 하원의원도 “(우파) 니콜라 사르코지(전 프랑스 대통령)가 (좌파) 내각에 있는 줄은 몰랐다”고 비꼬았다. 한편 마크롱 장관은 예전에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지금은 폐지된 ‘부유세’를 도입하려 할 때도 “우리는 백만장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필요하다”며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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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국보훈의 불꽃’도 못세우는 한국

    프랑스 파리에서 가장 화려한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개선문에는 매일 오후 6시 반이면 정복 차림의 노병(老兵)과 수많은 시민이 모여든다. 개선문 밑에 안치돼 있는 무명용사를 기리는 ‘꺼지지 않는 불꽃’(사진)에 새롭게 점화하고,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붉은색, 푸른색, 흰색의 꽃을 헌화하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다. 유럽의 각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광장에는 늘 전쟁과 관련한 기념물이 조성돼 있다. 현충탑 같이 큰 것으로부터 시작해 벽이나 바닥에 설치된 작은 기념판까지 다양하다. 영국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5만4000개의 전쟁기념물이 영국 내에 세워져 있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파리의 개선문이다.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명소인 개선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상 ‘전쟁기념관’임을 알 수 있다. 개선문 내벽에는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정복전쟁 시대에 활약했던 660명의 프랑스 장군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외벽에는 수많은 역사적 전투 장면이 부조로 조각돼 있다. 개선문 바닥에는 2004년 5월 프랑스군의 6·25전쟁 참전을 기념하는 동판도 설치됐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뒤 부인인 재클린 여사는 남편이 묻힌 미국 버지니아 알링턴 국립묘지에도 파리 개선문처럼 ‘꺼지지 않는 불꽃’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캐나다 오타와 국회의사당 광장, 이탈리아 로마 베네치아 광장,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도 무명용사를 기리는 영원한 불꽃이 설치돼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무명 용사 무덤’도 영국을 방문한 각국 수반들이 화환을 바치는 명소다. 영국은 1920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 격전지 중 하나였던 벨기에에서 발굴한 영국군 무명용사를 왕실 성당 웨스트민스터 정문 바닥에 안치했다. 한국에서도 충무공 동상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꺼지지 않는 호국보훈의 불꽃’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수없이 제기됐으나 여론 합의가 안 됐다는 이유로 번번이 무산됐다. 나라를 위해 꽃다운 젊음과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희생을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늘 기억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은 국가의 품격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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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란치스코 교황, 佛 베스트셀러 작가에…두달만에 10만부 판매

    프란치스코 교황이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2013년 말 펴낸 교황의 사도적 권고인 ‘복음의 기쁨’(Evangeli Gaudium)이 지구적 베스트셀러에 오른데 이어, 올해 6월18일 출판된 교황의 환경에 관한 회칙인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까지 출판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출간 두 달 만에 프랑스 전역에서 10만 부 판매를 가볍게 넘어섰다. 더구나 교황청이 인터넷을 통해 전문을 무료로 공개했는데도 서점가에서 구입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더욱 특이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황의 회칙은 주교들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세계 가톨릭교회와 10억 가톨릭 신자에게 전파되는 사목 교서다. 181쪽 분량의 이번 회칙은 환경문제를 다룬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교황 회칙이라는 점에서 발표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회칙은 모두 6장 246항에 걸쳐 오늘날 지구와 인간이 겪고 있는 환경문제를 성찰하고 회개와 행동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또한 이번 환경회칙은 신이 창조한 자연환경과 인간과의 관계회복에 대한 종교적 성찰 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의, 교회의 사회적 참여,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상업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등 그동안 교황이 강조해 온 대 사회적 메시지를 집대성한 문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6개의 출판사가 교황의 새 회칙을 동시 출판했다. 교황청 공식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맺으면 누구나 출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3.9~4.9유로(5322~6687원)에 팔리고 있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회칙이 빵집에서 파는 바게트처럼 팔리고 있다”며 “댄 브라운의 베스트셀러 소설 ‘다빈치코드’의 성공에 대한 교황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번 교황의 환경회칙은 12월 파리에서 개최되는 유엔기후협약 당사국총회(COP 21)를 앞두고 프랑스에서 큰 조명을 받고 있다. 프랑스 최대 종교전문 서점인 ‘라 프로퀴르’에 따르면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사서 연구모임을 하기 위해 단체구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르피가로가 보도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기후변화 특사인 니콜라 윌로는 “유엔회의를 앞두고 발표된 교황의 회칙은 지구적 환경 시스템 위기의 원인을 성찰하게 하고, 각국 정치인들의 실천행동에 영감을 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데 ‘뜻밖의 공헌’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프랑수아 콜로시모 ‘세르프’ 출판사 회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나 회칙이 잇달아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교황의 개인적 인기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며 “교황의 독자는 이미 가톨릭의 범주를 넘어섰고 교황은 영적지도자를 넘어 정치적 지도자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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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없는 난민 행렬… 해법없는 유럽

    유럽의 난민 유입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사태를 겪고 있다. EU 국경관리기관인 프론텍스는 7월 한 달간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유럽으로 불법 입국한 난민이 10만7500명에 달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올 들어 7월까지 유럽으로 입국한 난민들은 총 34만 명으로 지난해의 28만 명을 이미 넘어섰다. 국가별로는 그리스로 들어온 난민이 16만 명으로 가장 많고, 지중해를 통해 이탈리아로도 10만 명 이상이 밀려왔다. 지중해상에서 난민선이 뒤집어져 목숨을 잃은 난민도 올해 2100명을 넘어섰다. EU가 지중해에서의 난민선 단속 강화에 나서자 최근에는 터키에서 에게 해를 건너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세르비아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독일, 영국, 프랑스와 북유럽 국가로 가려는 ‘에게 해-발칸’ 경로를 택한 난민들이 폭증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마케도니아로 수천 명의 난민이 경찰과의 대치 끝에 들어갔으며, 이들 중 2000명이 세르비아를 거쳐 ‘솅겐 조약 국경’인 헝가리로 몰려가고 있다. 영국도 프랑스와의 국경인 프랑스 북부지방 칼레에서 영국으로 들어오려는 난민들 밀입국 시도가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칼레에서는 수단,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아프가니스탄 등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등지에서 온 난민 3000여 명이 ‘정글’이라고 불리는 난민촌에 모여 살고 있다. 난민들은 영불 해저터널인 유로터널이나 칼레 항의 페리에 몰래 숨어서 영국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다. 급기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24일 베를린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들은 “시간이 얼마 없다. EU 회원국들은 난민 위기의 부담을 공정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정부는 이날 시리아 출신 망명 신청자들에게 처음 도착했던 국가와 상관없이 독일에 머물기를 원할 경우 모두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EU 지역에 들어온 난민의 경우 처음 발을 들여놓은 국가에 망명 신청을 해야 한다고 규정한 더블린 규약에 반(反)하는 파격적인 결정이다. 그동안 더블린 규약은 이탈리아, 그리스, 헝가리 등 EU 외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들에만 부담을 지우고 독일 영국 등 국경이 맞닿아 있지 않은 다른 국가들에는 난민 입국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돼 왔다. EU 집행위원회는 이탈리아와 그리스 캠프에 있는 난민 4만 명을 EU 회원국이 골고루 나누어 수용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독일은 가장 많은 1만500명 수용을 받아들였으며 프랑스는 6750명을 수용하는 방안에 동의했다. 그러나 영국, 헝가리,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스페인, 그리고 발트 연안 국가들은 할당된 난민을 수용하는 데 난색을 표명했다.:: 솅겐 조약(Schengen Agreement) ::1995년 발효된 유럽연합(EU) 회원국 간 국경 개방 조약. 회원국 중 영국 등을 제외하고 총 26개국이 가입해 있다. 가입국 국민은 검문검색을 받지 않고 국경을 오갈 수 있으며 여권 없이 자국 신분증만으로도 항공기에 탑승할 수 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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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러 타깃된 유럽열차… ‘담장없는 국경’ 도마에

    21일 프랑스와 벨기에가 공동 운영하는 탈리스 고속열차에서 테러 시도가 있은 후 유럽 테러 대응 공조체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3일 보도했다. 특히 엄격한 보안심사가 이뤄지는 공항과 달리 감시가 느슨한 철도 체계의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간인이 주로 사용하고 보안이 취약한 철도는 테러리스트들로부터 대표적인 ‘소프트 타깃(쉬운 공격 목표)’으로 꼽힌다. 이번 테러를 시도한 모로코인 아유브 엘 카자니(26)도 프랑스와 스페인 당국으로부터 잠재적 위험인물로 지목받아 왔다. 하지만 유력 테러 용의자인 그가 커터 칼, 소총, 권총, 탄창 9개 등 무려 200명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지닌 채 아무런 제재 없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프랑스 파리행 고속철에 탑승했다는 점이 충격을 안겼다. 현재 유럽에서 제대로 된 이용자 및 수하물 검사 체계를 갖춘 철도는 스페인의 일부 고속철과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유로스타뿐이다. 나머지는 감시 카메라, 사복 경찰, 폭탄 탐지견 등 최소안의 보안 체계도 갖추지 못했다. 유럽 각국이 특히 불안에 떠는 이유는 이번 테러를 포함해 21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대형 테러가 모두 철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각각 200명과 57명의 사망자를 낸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 테러, 2005년 영국 런던 테러 모두 도심 한복판의 지하철역에서 발생했다. 현재 유럽에서는 매일 4000만 명의 승객이 10만 대의 각종 기차를 탄다. 3000개의 기차역을 보유한 프랑스에서만 매일 각각 300만 명과 100만 명이 교외철도와 고속철을 이용한다. 장샤를 브리자르 프랑스 테러분석센터장은 “카자니가 기차를 선택한 이유도 보안이 허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안보 전문가 베르트랑 모네 씨도 “매일 수백만 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유럽 철도 체계는 사실상 테러에 무방비 상태”라며 “모든 사람이 ‘나도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디언 등은 유럽인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케 하는 국경자유통과협정(솅겐 조약)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1995년 발효된 솅겐 조약에는 영국을 제외한 유럽연합(EU) 회원국 대다수,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총 26개국이 가입해 있다. 조약 가입국 국민은 검문검색을 받지 않고 가입국을 오갈 수 있으며 여권 없이 자국 신분증만으로도 항공기 등에 탑승할 수 있다. 솅겐 조약 수정 요구도 커지고 있다.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는 테러 직후 “유럽이 국제열차 내 검문검색 및 수하물 검색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4일 크리스티안 위건드 EU 집행위 대변인은 “조약을 변경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탈리스 고속열차 테러범을 제압한 3명의 미국인 스펜서 스톤(23), 앨릭스 스칼라토스(22), 앤서니 새들러 씨(23)와 영국인 크리스 노먼 씨(62)에게 최고 권위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파리=전승훈 특파원}

    • 201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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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佛고속철 총기테러 막은 ‘맨주먹의 영웅들’

    21일 오후 5시 50분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탈리스 고속열차 9364호. 미국 공군 소속 의료요원 스펜서 스톤 씨(23)와 대학생 앤서니 새들러 씨(22·새크라멘토 주립대 4학년)는 중학교 동창인 미국 오리건 주 방위군 소속 앨릭스 스칼라토스 씨(22)가 최근 9개월간의 아프가니스탄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휴가 여행 중이었다. 열차가 벨기에에서 프랑스 국경을 넘을 즈음 12번째 칸의 열차 통로에 있는 화장실에 가려던 프랑스인 남성 승객이 AK-47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을 어깨에 메고 화장실을 나오던 무장괴한과 마주쳤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남성은 곧바로 무장괴한에게 몸을 날렸다. 총을 빼앗기 위해서였다. 몸싸움 과정에서 여러 발의 총소리가 나면서 유리창이 깨치며 객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때 발사된 총 한 발은 불행히도 승객 한 명의 목을 관통했다. 이 순간 스톤 씨와 스칼라토스 씨는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그를 붙잡아(Go get him)”라고 외치며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스톤 씨가 10여 m를 뛰어가 무장괴한을 쓰러뜨린 뒤 목을 잡고 헤드록을 걸었다. 범인은 키 190cm, 몸무게 100kg이 넘는 거대한 덩치에 유도 유단자인 스톤 씨에게 깔렸지만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격렬하게 저항했다. 스톤 씨는 머리와 목에 상처를 입었고 엄지손가락이 거의 잘려 나갈 정도로 다치면서도 침착하게 범인을 제압했다. 스칼라토스 씨는 괴한이 떨어뜨린 총을 빼앗아 던지고 머리를 가격했으며, 새들러 씨는 영국인 승객 크리스 노먼 씨(62·컨설턴트)와 함께 넥타이로 괴한의 팔을 묶었다. 진압 과정에서 총 4명이 다쳤지만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총 554명의 승객이 탑승한 고속열차에서 자칫 ‘제2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 참사’가 일어날 뻔했던 상황을 맨손으로 막아낸 3명의 미국인 청년, 영국인 승객, 프랑스인 승객이 영웅으로 떠올랐다고 CNN이 보도했다. 프랑스 검찰 테러전담반의 수사 결과 무장괴한은 모로코 출신의 26세 남성으로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서 테러 훈련을 받은 아유브 엘 카자니(사진)로 밝혀졌다. 카자니는 21일 오후 벨기에 브뤼셀에서 고속열차 맨 뒤 칸에 올라탄 것으로 밝혀졌다. 탑승 당시 그는 AK-47 자동소총 1정, 독일제 루거 반자동 권총 1정, 탄창 9통을 지니고 있었다. 최소 200명을 살상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카자니는 체포된 뒤 경찰 조사에서 “나는 테러범이 아니라 승객들의 돈을 털려 했던 단순 강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카자니는 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로 두 차례 여행을 떠났다가 불과 석 달 전에 유럽으로 돌아와 범행을 준비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카자니는 올 1월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일어난 다음 날 벨기에 동부 베르비에에서 테러 공격을 시도하다가 사살된 이슬람 극단주의자 2명과도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그는 이미 스페인 당국에 의해 DNA 정보가 등록돼 있었고, 프랑스에서도 테러 용의자 리스트에 올려 1년 이상 주시해 온 인물이었다. 그러나 카자니는 시리아에서 유럽으로 돌아온 뒤에도 아무런 제재 없이 여행을 다니며 석 달에 걸쳐 범행에 쓸 무기를 모은 것으로 드러났다. 기차역에서 금속탐지기 보안 검색도 받지 않았다. 프랑스 마뉘엘 발스 총리와 벨기에 샤를 미셸 총리는 22일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해 주요 기차역에 대한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 스톤 씨의 어머니는 미국 지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총이 아들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고 범인이 두 번이나 총을 쏘려고 시도했다”며 “(총을 맞지 않은 것은) 신의 도움”이라고 말했다. 범인 체포를 도운 노먼 씨도 “나는 영웅이 아니다”라며 “어차피 죽는다면 코너에 몰려서 총에 맞아 죽느니 저항하다가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괴한에게 달려든 이유를 설명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괴한을 진압한 승객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참사를 막아낸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24일 파리 엘리제궁으로 이들을 초청해 사의를 표하겠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성명을 내고 “몸을 아끼지 않고 괴한을 진압한 미군을 비롯해 승객들의 용기와 빠른 판단에 깊이 감사한다”고 밝혔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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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7개월 만에 사퇴…조기총선 위한 도박?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놓고 벼랑 끝 전술을 펼치며 ‘유럽에서 가장 무서운 사나이’로 불렸던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집권 7개월 만에 사퇴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20일 국영방송 ERT를 통해 생중계된 연설에서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이 승인된 만큼 이후 10월부터 진행될 국제채권단과의 채무재조정 협상을 이끌려면 총선에서의 강력한 지지를 통한 권한 부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가 그리스에 3년 동안 860억 유로(약 112조원)를 지원하는 내용의 3차 구제금융안을 최종승인해 첫 분할금이 지급되자마자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그리스는 선거를 위한 과도정부를 구성해 다음달 20일 조기총선을 치르게 될 전망이다. 그리스는 이날 첫 분할금을 받아 상환기일에 맞춰 유럽중앙은행(ECB)에 34억유로(약 4조5천억원)를 갚고 파산을 면했다. 당초 그리스에서는 치프라스 총리가 9~10월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지만 치프라스 총리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행동했다. 그리스 의회는 지난 13일 실시한 3차 구제금융 합의안 관련 표결에서 시리자 의원 149명 가운데 강경파 의원 43명(반대 32명, 기권 11명)이 반란표를 던져 연정 붕괴를 예고했었다. 치프라스 총리의 의회 장악력은 급속히 떨어졌고, 정계개편 없이는 앞으로 긴축 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시리자 내 급진파인 좌파연대를 이끈 파나기오티스 라파자니스 전 에너지부 장관은 반란표를 던진 의원들과 탈당해 총선에 도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치프라스 총리의 이번 조기총선 선언은 ‘1보 전진을 위한 반보 후퇴’라는 치밀하게 계산된 도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시리자의 지지율이 40%대로 2위인 신민주당보다 20%포인트 정도 앞서 치프라스 총리가 재집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파리9대학의 코스타스 버고풀로스 정치경제학과 교수는 “그리스 국민들에게는 치프라스와 시리자보다 나은 대안이 없다”면서 “국민들은 여전히 부패한 주류정당보다는 상대적으로 깨끗한 치프라스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 유권자들이 새 총선에서 자신을 지지해 급진좌파를 제외한 새 내각을 꾸릴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계산된 도박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치프라스 총리가 9월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당내 반발세력을 잠재우고 ‘중도적 진보’ 지도자로서 채권단이 요구한 긴축을 강력하게 밀어부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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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가 참수때까지… 보물위치 함구한 ‘팔미라 수호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시리아의 고대유적도시 팔미라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시리아의 대표적 고고학자인 칼레드 알 아사드(82·사진)가 이슬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돼 세계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아사드는 18일 팔미라의 박물관 인근 광장에서 복면을 쓴 IS 대원에게 끌려 나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참수당했다. 그의 시신은 팔미라의 고대 유적지 기둥에 매달려졌다. IS는 그의 참수된 머리를 동영상에 담아 19일 인터넷에 공개했다. 시신에 붙어 있는 팻말에는 ‘팔미라 우상들의 책임자, 해외 이교도들과 교류한 배교자’라는 붉은 아랍어 글씨가 적혀 있었다고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SOHR)가 전했다. 1934년 팔미라에서 태어난 아사드는 시리아 고고학을 개척한 대표적인 인물로, 이집트에서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한 하워드 카터와 비견된다. 다마스쿠스국립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1963년부터 2003년까지 팔미라 박물관 총책임자로 활동해왔다. 그는 국제연구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팔미라에 대한 수십 권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해왔다. 특히 그는 2003년 인간과 날개 달린 신화적 동물의 싸움을 묘사한 70m² 크기의 모자이크를 발굴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그는 은퇴 이후에도 팔미라 박물관 전문위원으로 활약했다. 올해 5월 IS가 점령하기 직전에는 팔미라 박물관의 고대 입상 수백 개를 옮기는 임무를 총지휘했다. 하지만 그는 IS에 체포됐다. IS 대원들이 유물들을 대피시킨 곳을 알려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해도 그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 양심에 반해서 행동할 수 없다”며 끝까지 저항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IS가 대피시켜 놓은 유물들을 암시장에 내다팔아 돈을 벌려고 그 행방을 찾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북동쪽으로 150마일 떨어진 팔미라는 고대 페르시아와 인도, 중국, 로마제국을 잇는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의 허브 도시였다.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19일 아사드의 비극적인 죽음을 ‘끔찍한 만행’이라 규탄하며 “고인의 위대한 업적은 극단주의자들을 넘어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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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정난 베르사유宮, 부속저택을 호텔로

    재정난에 처한 프랑스 베르사유 궁이 유서 깊은 부속 저택을 관광객에게 개방하며 호텔사업에 나서기로 했다. 16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베르사유 궁은 궁전 본관에서 90m가량 떨어진 17세기 저택 3채를 호텔로 조성하기로 하고 이를 운영할 민간업체 사업자 공모에 나섰다. 사업자는 베르사유 궁에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60년간 호텔을 운영할 자격을 얻게 된다. 가칭 ‘호텔 오랑주리’인 이 호텔의 일부 객실에서는 루이 14세 당시 오렌지 나무를 위한 온실이었던 오랑주리 미술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숙박객들은 300년 만에 처음으로 궁전 내에서 샴페인을 마시고, 왕실 정원도 거닐 수 있다. 호텔로 개방되는 건물은 혁명 이후 장교들의 미사 장소로 쓰이다가 최근 7년간 사용되지 않고 비어 있는 상태다. 이곳을 호텔로 개조하는 데에는 185억 원가량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베르사유 궁 대변인은 “세상에 이런 호텔은 없을 것”이라며 “이곳은 프랑스 역사의 상징이자 문화적 랜드마크로, 진정한 왕실 체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르사유 궁은 최근 10년간 관광객이 2배 이상으로 늘었는데도 정부 지원금이 지난해 4740만 유로(약 622억 원)에서 올해 4050만 유로(약 531억 원)로 줄어 재정난을 겪게 됐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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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IFA엔 개혁 이끌 리더 필요” 정몽준, 파리서 회장출마 공식선언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64)이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17일 공식 선언했다. 정 명예회장은 이날 오전 10시 프랑스 파리 샹그릴라 호텔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FIFA에 상식과 투명성, 책임감을 되살릴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출사표를 냈다. 그가 내건 것은 ‘반(反)유럽’이었다. “111년 FIFA 역사에서 회장 8명이 모두 유럽인이었다. 유럽이 건강하고 분별력 있는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오늘날 FIFA가 이런 혼란에 빠져 있겠는가.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 당선되면 4년 동안 강력한 개혁 조치를 취한 뒤 단임 임기만 채우고 물러나겠다.” 또 “아시아(44억 명)와 아프리카(12억 명) 인구를 합하면 세계 인구의 80%가 넘는다”라는 말로 반유럽 쪽의 세 결집을 촉구했다. FIFA 본부는 스위스 취리히에 있지만 그가 파리를 택한 것은 파리가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인 프랑스 출신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UEFA) 회장(60)의 본거지라는 점 때문이다. 기자회견에서 유럽 기자들은 정 명예회장이 플라티니 회장에 비해 어떤 부분에 경쟁력이 있느냐고 집중적으로 물었다. 정 명예회장은 이에 대해 “그는 위대한 축구선수이다. 그와 두 차례 골프를 쳐 봤는데 스윙하는 것을 보니 축구선수 하기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 뒤 작심한 듯 맹공을 퍼부었다. “플라티니 회장은 (부패의 상징인) 제프 블라터 회장의 선거를 도우며 ‘부자지간’ 혹은 ‘사제관계’로 오래 지내왔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블라터의 부패에 대해 몰랐다’면서 블라터를 ‘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다.” FIFA 차기 회장 선거는 내년 2월 26일 취리히의 FIFA 본부에서 회원국의 투표로 치러진다. 정 명예회장과 플라티니 회장 외에도 5월 블라터 회장에 맞섰던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 브라질의 ‘하얀 펠레’ 지쿠, 무사 빌리티 라이베리아 축구협회장, 아르헨티나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 등의 출마가 예상된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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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치마 두른 佛남편, 소파 위의 韓남편

    “오늘 저녁에 뭐 해 줄까?” “냉장고에 뭐가 떨어졌어?”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프랑스 대기업 임원인 미셸 피카르 씨(48)는 점심시간이면 늘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 대형 할인점에서 자주 장을 보기 때문이다. 장 본 것들을 퇴근 후 집에 가져가 직접 요리한다. 파리 15구 생엘리자베트 초등학교 앞. 아침 등교 시간에 정문 앞에서 ‘볼 키스’를 하며 아이를 배웅하는 사람들의 70%는 아빠다. 출근길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이다. 오후 하교 시간 학교 정문 앞에는 엄마들 비율이 더 높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67%나 되는 프랑스. ‘맞벌이 부부’가 많은데도 여성 1인당 출산율은 2.01명으로 10년째 유럽 최고다.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 덕분이기도 하지만 프랑스 남편들의 적극적인 가사분담 문화가 출산율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 가정에선 가사를 철저하게 분담한다. 오히려 남성들의 가사노동 비율이 여성보다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한다. 국립통계청(INSEE)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프랑스 아빠들은 일주일에 평균 16시간, 적어도 하루 2시간 이상 요리, 설거지, 애 보기, 청소 등의 가사 노동을 한다. 프랑스 육아전문 잡지 ‘부모’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아빠들은 일상 육아 부문에서 10점 만점에 8.4점을 기록해 세계에서 육아를 가장 잘하는 아빠로 꼽혔다. 프랑스 남성들의 적극적 육아 참여는 1968년 사회운동을 계기로 전통적 가부장 권위가 무너지고 남녀평등 의식이 확산된 산물로 해석된다. 프랑스인 남편과 결혼한 재프랑스 화가 윤애영 씨는 “남편이 오후 6, 7시면 퇴근해 아이와 공원에서 놀아 주면서 친해진 동네 아줌마들과 집안일에 대한 정보를 주제로 수다를 떠는 수준이 보통 아줌마 이상”이라며 “남편 도움이 없었다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 진입을 위해선 여성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외치면서도 정작 집에 돌아가면 가사 분담엔 상대적으로 소홀한 한국 남성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들이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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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없이 밀려드는 난민… 그리스의 한숨

    그리스 에게 해의 아름다운 휴양지 섬들이 난민촌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스 해안경비대는 지난 사흘 동안 에게 해의 코스, 레스보스, 히오스, 사모스 섬 근해에서 난민 1417명을 구했다고 11일 밝혔다. 에게 해의 그리스 섬들은 터키 서부 해안에서 10km 안팎으로 가까워 소형 고무보트로도 밀입국할 수 있기 때문에 터키∼그리스 섬 노선은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지중해 노선에 버금가는 유럽행 난민 경로다. 터키 해안경비대도 7∼10일 에게 해에서 그리스로 밀입국을 시도한 불법이민자 1799명을 검거했으며 밀입국 주선업자 2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해안경비대는 이날 에게 해에서 밀입국을 시도하다 선박사고를 당한 시리아 난민 330명을 구조했다. 국가 부도 위기 상황인 그리스의 지방정부는 난민사태에 대응할 만한 여력이 없는 상태다. 특히 터키의 항구도시 보드룸에서 5km 떨어진 코스 섬은 주민이 3만 명에 불과한데 난민 7000여 명이 몰려 섬 전체가 난민촌으로 변했다. 난민촌 천막은 포화상태라 난민들은 올리브나무 밑에서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야 한다. 에게 해 60개 이상의 섬을 관할하는 요르고스 하치마르코스 지사는 “난민들은 질병 시한폭탄”이라며 “간염, 말라리아, 결핵 등이 확산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11일 코스 섬에서 경찰이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난민들을 축구장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소요가 발생하자 경찰봉으로 때리고 소화기를 분사했다고 그리스 일간 프로토테마가 보도했다. 특히 코스의 한 경찰관이 난민들에 칼을 휘두르며 위협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트위터에 공개돼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요르고스 키리치스 코스 시장은 “현재 상황이 악화하면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터키 에게 해의 주요 관광도시인 이즈미르와 보드룸 등지에서는 그리스 밀입국을 기다리는 난민들이 시내 공원은 물론이고 주요 도로에서 노숙하고 있다. 올해 들어 7개월 동안 그리스 섬에는 약 12만4000명의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내전 국가 난민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왔다.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온 난민 9만4191명을 앞지른 수치다. 이 수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50%가 급증한 것이다. 난민들은 터키에서 그리스 섬에 오기 위해 불법 수송업자에게 500달러 정도를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7일 난민 문제를 논의하는 긴급 내각회의에서 “그리스는 정부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 매우 심각한 난민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며 유럽연합(EU)의 지원을 촉구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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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규직 늘어난 伊… ‘데몰리션 맨’의 개혁, 일자리 만들다

    ‘이탈리아의 40세 개혁의 기수’로 불리는 마테오 렌치 총리(사진)가 1년간 추진해 온 노동개혁이 결실을 보고 있다. 렌치 총리는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규직 보호를 완화하는 개혁을 추진했는데 올 상반기 정규직 고용비율은 오히려 늘었다. 이탈리아 국립사회보장연구소(INPS)는 10일 “올해 상반기 새로 고용된 전체 근로자 중에서 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2%포인트 늘었다”며 “정규직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만2000여 명 늘어나고 비정규직 고용은 줄었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새로 정규직 일자리를 얻은 사람은 95만2000명이고,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근로자는 33만1000명이다. 10일 렌치 총리는 “정규직 계약 비율이 늘어났다는 통계는 일자리 법안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라며 “25세 미만의 청년 실업률이 42%에 이르고, 저임금과 불안정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계약이 대부분인 현실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탈리아 개혁의 상징으로 ‘데몰리션 맨(파괴자)’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는 렌치 총리는 지난해 2월 취임 후 정치·행정 시스템 개혁과 노동개혁에 공을 들여 왔다. 올 3월부터 시행된 ‘일자리 법안(Job Act)’이 대표적이다. 노조로부터 여러 차례 달걀 세례까지 받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지만 상하원을 끈질기게 설득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탈리아는 그동안 1970년대 도입된 노동법에 따라 15명 이상을 고용한 기업주는 ‘정당한 사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었다. 한 번 정규직으로 취업하면 평생 고용을 보장받는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비용 부담을 우려한 기업들이 정규직 고용을 꺼리고 비정규직을 주로 뽑았었다. 하지만 3월부터 시행된 ‘일자리 법안’에 따라 근로자를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하는 길이 열리게 된 것. 법원에서 불법 해고라는 판결이 나오면 해고 근로자에게 보상금을 줘야 한다는 단서가 있지만 다시 일자리로 복귀시켜야 할 의무는 없다. 대신 정부는 정규직을 고용하는 회사에 대해 다양한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를 제공해 비정규직 계약을 줄여 나가도록 했다. 제도가 시행되자 활기를 띤 것은 기업이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고급 스포츠카 업체인 람보르기니는 볼로냐 지역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기업 유인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로존 3위의 경제 대국이면서도 장기간 침체에 빠졌던 이탈리아의 경기회복세도 최근 뚜렷해졌다. 렌치 총리는 “특허 등록 건수가 5년 만에 처음으로 2.8% 증가한 것은 수년간의 침체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0.6% 증가하고, 내년에는 1.5%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자리 법안’은 이제 민간을 넘어 공공부문이나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들까지 확대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업경영자협회(CONFINDUSTRIA)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일자리 법안을 공공부문까지 도입하고, 기존의 노동자들도 적용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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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재의 철권 밑에서… 우아하게 춤추는 러”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의 독재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15년 집권 체제에서 눈부신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독재와 인권탄압이 자행되면서 정치적으로 퇴행했다는 것이다. NYT는 9일 “여름의 모스크바 거리는 현재 ‘철권(Iron Fist) 아래서 춤추는 모습’과 같다”며 “겉으로는 유럽의 수도처럼 우아한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적인 상황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러시아에서 가해지는 각종 억압을 소개했다. 대통령 직속 연방수사위원회(ICRF)는 최근 헌법에서 국제 인권 원칙을 삭제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앞서 러시아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14일 “러시아 헌법에 어긋날 경우 유럽인권재판소(ECHR)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러시아가 2000년대 중반 석유기업 ‘유코스’를 강제 수용하면서 손해를 본 주주들이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ECHR에서 얻어낸 손해배상금 19억 유로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결정이었다. 또 ‘강한 러시아 부활’을 외치는 푸틴 대통령은 교과서 장악과 검열에도 손을 뻗쳤다. 이는 독재자의 전횡으로 비친다. 러시아 교육부는 올 초부터 교과서 검열을 시행해 교과서의 절반가량을 “친정부적 내용이 없다”는 이유로 폐간했다. ‘백설공주’ 등 서구 인기 만화 캐릭터를 사용해 가르친 수학 교과서는 “애국적이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워 출판이 금지됐다. 러시아 중남부 스베르들롭스크 지방정부는 “러시아 군인을 부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며 영국 역사학자가 쓴 교재를 없애도록 각 학교에 명령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유도 친구’인 아르카디 로텐베르크가 회장으로 있는 출판사 ‘인라이튼먼트’를 적극 밀어줘 교과서 시장의 60∼70%가량을 장악하게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푸틴의 러시아는 점점 ‘이데올로기 국가’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올 5월 국제인권단체 등 비정부기구(NGO)에 재갈을 물리는 ‘바람직하지 않은 조직’에 관한 법에 서명했다. 이 법에 따라 러시아 검찰청은 지난달 28일 미국에 본부를 둔 민주주의진흥재단(NED) 러시아 지부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러시아에서 20년 넘게 교육증진 사업에 2000억 원가량의 장려금을 지원했던 미국 NGO인 ‘맥아더 재단’은 22일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모스크바 사무실을 폐쇄했다고 BBC가 전했다.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어두운 분위기가 배어 나온다. 최근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의 몇몇 교수는 자유주의 성향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러시아를 떠나는 사람도 많다. 올해 5개월 동안 러시아를 떠나 이스라엘로 이민 간 사람은 지난해보다 70% 늘었다. 러시아 고등경제대 사회학 교수인 류보프 보루스야크는 “하버드대에서 유학하는 내 아들도 돌아올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푸틴 대통령 집권 15년 동안 사회적, 경제적 변화도 크게 일어났다. 모스크바 지하철에서는 최근 근거리무선통신망인 와이파이가 개통됐으며, 시내 공원에서는 무료 탱고 강습도 열리고 있다. 우버 택시는 옛 소련 시절부터 사용했던 낡은 택시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2000년 이후 지금까지 근로자 평균 임금이 3배 올랐다. 러시아 국민은 과거에는 저녁 먹을거리를 걱정했지만 지금은 여름휴가를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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