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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이어 10개월 만에 다시 사상 초유의 동시다발 테러로 대규모 희생자를 낸 프랑스 파리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야간 통행금지가 실시됐다. 내무장관은 각 지자체가 필요하면 통금을 실시할 수 있다고 밝혀 확대를 시사했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에는 조기가 걸렸고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은 문을 닫아걸었다. 국회의사당 앞에는 무장군인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어 텅 빈 파리는 준(準)전시상태나 다름없었다. ‘13일의 금요일’이었던 13일 밤부터 14일 새벽까지 3시간여에 걸쳐 일어난 파리 시내 축구장 공연장 식당 등 6곳에서 동시에 발생한 총기난사 테러로 129명이 사망하고 352명이 부상했다. 부상자 중 100여 명은 위중한 상태여서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각국 지도자들은 이번 사건을 2001년 미국의 심장부를 겨냥한 9·11테러가 일어난 지 14년 만에 유럽의 심장부를 겨냥한 ‘유럽판 9·11테러’로 규정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3차 세계대전의 한 부분’이라고 했다. 이번 테러를 “수니파 무장조직 IS(이슬람국가) 소행”이라고 밝힌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테러리스트에게 톨레랑스(관용)는 없다. IS와의 전쟁’에 직면했다”고 선포했다. 마뉘엘 발스 총리는 15일 TV에 출연해 “프랑스와 유럽,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이번 테러의 주범을 찾아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S는 최근 러시아 여객기 폭파사건을 비롯해 지난 보름 동안 아프리카, 아시아(중동), 유럽 3개 대륙에서 대규모 테러를 일으켜 전대미문의 ‘범(汎)대륙 연쇄 테러’를 자행했다. 파리 테러 직후 지지자들은 ‘다음 공격 대상은 로마, 런던, 워싱턴’이라는 글을 올렸다.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등의 주요 도시에 대한 경계가 한층 강화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테러범을 끝까지 법정에 세울 것”이라고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긴급안보회의를 소집해 시리아에 지상군을 파병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정부의 조사 결과 이번 테러는 난민을 가장하고 두 달여 전 파리로 들어온 IS 테러리스트와 프랑스 내 자생적 테러리스트의 첫 합작으로 밝혀지고 있어 유럽 국가들의 난민봉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은 14일부터 국경통제를 강화했다. 한국 정부는 15일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수도권에 여행경보 2단계에 해당한 ‘여행 자제’ 경보를 발령했다. 외교부는 이날 “파리 테러로 인한 한국인 교민이나 여행객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한편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자들은 16일 정상회의에서 테러와 관련한 별도의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7일로 예정된 국회 정보위는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현재 계류 중인 테러 관련 법률안에 대한 조속한 심의를 촉구할 것으로 전해졌다.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13일의 금요일’ 밤 파리의 동시다발 테러에서 15명의 희생자를 낸 파리 10구의 식당 ‘프티 캉보주’와 ‘카리용 카페’ 앞. 참사 발생한 다음 날인 14일 아침에 찾아가 본 현장은 아직도 도로에까지 피가 흥건히 고여 있을 정도로 끔찍했다. 현장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불과 2.5km 떨어진, 파리의 ‘힙스터족’(대중적인 유행을 좇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를 즐기는 부류)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명소. 카페 정문은 ‘폴리스 라인’으로 봉쇄돼 있었고, 유리창에는 어지러이 난사된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카페 앞 도로의 횡단보도 위에까지 부상자들이 남긴 붉은색 발자국들이 어지러이 남아 있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이 그대로 전해졌다. ‘카리용 카페’ 정문 앞에 장미꽃을 놓고, 촛불을 켜며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던 앙토니 마차스 씨(27)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휴대전화에 카페 앞 테라스에 널브러져 있는 젊은이 10여 명의 시신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 주며 “내 친구도 여기에 있다”고 울먹였다. 여기서 걸어서 15분(1.2km)가량 떨어진,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바타클랑 극장 주변도 철통같은 경찰의 봉쇄가 이뤄지고 있었다. 3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이다 자폭한 테러범들과 민간인 희생자들의 시신이 훼손돼 감식 작업이 한창 이뤄지고 있었다. 대량 학살극이 벌어진 공연장은 천막으로 완전히 둘러싸 입구와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돼 있었다.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경찰의 엄격한 검문검색을 통과하고도 경찰의 인솔하에 3, 4명씩 짝을 지어야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시민들은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꽃다발을 들고 와 출입이 통제된 공연장 대신 주변 건물 앞에 놓았다. 꽃다발과 촛불 사이에는 시민들이 써 놓은 메시지들도 놓여 있었다. ‘더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자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글이 적힌 종이들이 눈에 띄었다. 바닥에 꿇어앉아 흐느끼거나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14일 낮 바타클랑 극장 인근 거리에는 독일 출신의 음악가 다비드 마르텔로 씨가 자전거로 바퀴가 달린 검은색 피아노를 끌고 와 존 레넌의 명곡 ‘이매진’을 연주했다. 그는 “죽이지도 않고 죽을 일도 없고 종교도 없고. 모든 이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상상해 봐요”라는 가사로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14일 아침 파리에는 비까지 내린 데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이날부터 사흘간을 애도 기간으로 선포하면서 엘리제궁에도 조기가 내걸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침묵 속으로 들어간 듯 우울하고 무거웠다. 정부가 경찰력에 더해 1500여 명의 병력을 시내에 긴급 투입하면서 곳곳에 총을 든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원 의사당에는 몇 m 간격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길거리를 지나는 시민뿐 아니라 자동차까지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평소 보기 어렵던 군용 트럭도 의사당 앞에 세워져 ‘전시 상황’이라는 것이 실감나게 했다. 거리는 텅 비었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잘 찾아볼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테러가 다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가 파리 시민들은 모두 외출을 자제할 것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도 문을 걸어 잠갔다. 이날 예정된 모든 집회와 행사는 취소됐고, 학교와 박물관, 도서관, 쇼핑센터 등도 대부분 문을 닫았다. 파리를 포함한 수도권인 알드 프랑스의 교육청은 일제히 이날 관내 전 학교에 휴교를 공고하고 일선 학교는 학생들에게 e메일로 통지했다. 지하철 운행도 곳곳에서 중단됐다. 베르나르 카즈뇌브 프랑스 내무장관은 14일 대국민 연설에서 “19일까지 프랑스 내 모든 시위를 금지할 것”이라며 “각 지자체도 필요하다면 통행금지령을 내리라”고 권고했다. 이날 파리 시민들과 교민, 여행객들은 하루 종일 전화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걱정했다. 다음 주 파리에는 샹젤리제 거리의 크리스마스트리 조명 점등식이 열릴 예정으로 본격적인 연말 시즌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몰려들 시기였다. 에펠탑 부근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 김희연 씨(37·여)는 “원래 2주 계획으로 관광을 왔는데 에펠탑 조명도 꺼지고, 박물관도 문을 닫아 서둘러 파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최악의 테러가 벌어진 프랑스 파리는 깊은 충격에 빠져 있다. 올해 프랑스 문단의 화두는 ‘유럽과 이슬람’이었다. 수니파 과격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 배후설이 나오는 가운데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 등 잇달아 터진 IS의 위협 때문이다. 또 유럽으로 밀려오는 중동 출신 난민들의 물결은 문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2022년 프랑스가 이슬람 정부를 선출한다는 논쟁적 예언을 담은 미셸 우엘베크의 ‘복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3일 프랑스 문단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은 동서양의 문화적 교류에 관한 탐구소설을 쓴 마티아스 에나르(43)의 ‘부솔(Boussole·나침반·사진)’이 수상했다. 작가의 아홉 번째 소설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음악 연구가인 프란츠 리터. 불면증에 시달리는 그가 밤에 잠에서 깨어 응답 없는 프랑스 여인에 대한 사랑을 포함해 유럽과 중동 간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에 대한 생각을 탐험하는 지적인 소설이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의 ‘천일야화’처럼 오스트리아에서 중세의 이슬람 계몽시대, 시리아의 IS에 의한 처형까지 시대를 뛰어넘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 구조다. 1972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에나르는 파리 동양어전문대(INALCO)에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를 전공했다. 이후 이란과 레바논 등지에서 살다가 현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거주하고 있다. 에나르는 시리아 터키 등지로 수없이 다닌 중동지역 여행을 문학의 소재로 삼아 왔다. 2003년 데뷔작 ‘완벽한 조준’에서 리비아 내전의 저격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2008년작 ‘지대(Zone)’는 주인공이 500쪽에 이르는 한 문장의 독백으로 유럽의 잔인함에 대해 말하는 소설로 수많은 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수상 소식을 들은 뒤 ‘라 바카라!’(축복)라고 외쳤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 상은 2010년 사망한 알제리의 존경받는 역사가 셰이크 아브데라만과 레바논의 수호성인 성 조지의 축복 때문”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공쿠르상은 해마다 파리 오페라가(街)에 있는 유서 깊은 드루앙 레스토랑에서 10명의 심사위원이 양고기 스튜로 점심을 먹은 뒤 최종 후보작 4편에 대해 투표로 결정한다. 지난달 튀니지의 수도에 있는 국립 바르도 박물관에서 발표된 후보작 4편은 모두 유럽과 이슬람의 관계에 대한 작품이었다. 바르도 박물관은 3월에 이슬람 지하디스트의 테러 공격으로 22명이 희생된 곳이다. 최종 후보작에 올랐던 프랑스 출신 튀니지 소설가 에디 카두르의 ‘원칙들’은 1920년대 북아프리카의 프랑스 제국주의를 다룬 소설이고, 토비 나단의 ‘당신과 닮은 이 나라’는 유대인으로 이집트 카이로에 살았던 어린시절을 되돌아보며 이방인에 대한 관용을 잃어버린 현실을 꼬집는다. 또 나탈리 아줄레의 ‘티튜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도 로마시대 팔레스타인 여왕의 캐릭터를 통해 현대 중동의 정세를 은유한 소설이다. 알제리 작가 부알렘 상살의 ‘2084’는 조지 오웰의 ‘1984’를 빗대 이슬람 칼리프 국가의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다뤘다. 상살은 2010년 공쿠르상 수상자인 ‘복종’의 작가 우엘베크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받았지만 최종 4인 후보에 들지는 못했다. 공쿠르상은 1903년 첫 회 수상부터 지금까지 상금은 10유로(약 1만2000원)에 불과하지만 수상작은 하루 사이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영광을 얻는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꽃 파는 아가씨들의 그늘 아래’,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 시몬 보부아르의 ‘레 망다랭’,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 대표적 수상작이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위대한 유럽인이 떠났다.” 10일(현지 시간)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가 96세 나이로 독일 함부르크 자택에서 타계했다는 소식에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는 외국 정상 중 가장 먼저 성명을 발표했다. 슈미트 전 총리가 재임 시절 프랑스와 정례 경제협력 채널을 가동하면서 오일쇼크에 따른 경제위기를 유럽 통합의 발판으로 삼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통독 전 동독에서 줄곧 성장했지만 서독 함부르크 태생이기도 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날 TV 생중계로 발표한 추모 연설에서 고인과의 개인적 추억을 언급하기도 했다. 메르켈 총리는 “고인이 함부르크 시정부에서 경찰 담당으로 있던 1962년 이 지역에 기상 재난이 닥쳤는데 라디오를 통해 당시 인기가 높았던 ‘슈미트’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다”며 “지금의 G20(주요 20개국)의 맹아였다고 할 수 있는 프랑스와의 경제협력협의체 가동, 적군파 테러 억제, 소련 위협에 맞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한 양면전략 등 슈미트의 판단력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고인은 하나의 ‘정치 기관 자체’”라고 했다. 냉전시대 서독의 부흥을 이끌면서 ‘최고의 현자(賢者)’로 불리며 독일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전직 총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그의 타계 소식에 독일은 물론이고 유럽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추모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세계적 비전을 가졌던 독일의 글로벌 총리’(영국 가디언), ‘독일과 프랑스, 유럽의 과거사 화해 협력의 예술가’(프랑스 르몽드), ‘냉전시대 좌파 테러리즘에 맞섰던 합리적인 중도 리더’(월스트리트저널)….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유럽은 정치적 용기로써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던 특별한 인물을 잃었다”고 베르너 파이만 오스트리아 총리는 “평화와 통합의 유럽을 설계한 중요한 정치인이 눈을 감았다”고 슬픔을 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고인은 후임자인 헬무트 콜 전 총리가 독일 통일이라는 과업을 마무리할 수 있게 기반을 제공한 사람”이라고 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슈미트를 ‘세기의 조종사(Pilot of Century)’로 평가했다.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 출신의 고인은 1974년 빌리 브란트 총리가 보좌관의 간첩 행위 파동으로 물러난 후 총리로 선출된 이후 1982년까지 8년간 냉전시대 서독의 최고지도자로서 독일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전임자인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을 동독에서 구소련 및 동유럽으로 확대 발전시킨 ‘데탕트 외교’로 독일 통일의 초석을 마련했고, 프랑스의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대통령과 정례 경제협력틀을 마련해 유로화 체제의 기틀을 닦았다. 1977년 적군파 테러 광풍이 몰아쳤을 때에는 적군파에 피랍된 한스마르틴 슐라이어 독일산업연맹(BDI) 회장이 희생되는 불상사 속에서도 승객들을 구해내 ‘슈미트 리더십’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또 구소련의 SS20 중거리 핵미사일의 배치로 안보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소련과 협상하되, 실패 시 독일 중심으로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한다는 양면 전략을 구사해 나토의 중심을 잡았다. 정치계를 떠난 뒤에는 주간지 디 차이트의 공동발행인으로 변신해 저널리스트 겸 저술가로서 국내외 이슈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해왔다. “정상회담은 최선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것” 등 ‘촌철살인의 어록’으로 사랑받았다. 고인은 2005년 독일의 정치인, 문화인, 예술인, 체육인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서 96%의 지지를 받아 ‘최고의 현자’로 선정됐다. ‘애연가’로 유명해 담배와 관련한 일화도 많다. 총리 재직 시 흡연이 허용된 TV 인터뷰에서는 1시간여 방송 동안 담배 10개비를 해치워 화제가 됐으며, 90세가 넘어서도 줄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노익장’으로 인식되기도 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영국 기상청은 올 들어 9월까지 지구 기온이 1850∼1900년의 평균온도보다 1.02도 높았다고 9일(현지 시간) 밝혔다. 2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1800년대 말에 비해 평균기온이 1도 이상 오른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영국 기상청은 “지구 온난화가 대재앙의 관문까지 딱 절반에 이른 것”이라고 했다. 스티븐 벨처 센터장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재앙의 관문으로 여겨지는 지구 온도는 2도 상승인데 올해 1도가 올랐다는 것은 절반에 다다랐다는 의미”라며 “우리는 지금 무서운 속도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 진입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 환경단체들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기준 2도 이상 오를 경우 대대적인 기후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1도씩 오를 때마다 알프스의 만년설과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기후변화에 의한 자연재해와 생태계 파괴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만약 지구 평균 기온이 2도 이상 상승하면 여름철 폭염으로 유럽에서만 수만 명이 사망하고 세계 각종 생물의 3분의 1이 멸종위기에 내몰릴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날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 농도도 지난해 평균 397.7ppm으로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밝혔다. 1990년부터 2014년 사이 온실가스 양은 36% 증가했다. 특히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화 지수가 21배나 높고, 기후에 미치는 영향도 300배나 큰 메탄의 농도가 사상 최고치인 1833ppm을 기록했다. 한편 세계 각국 대표는 30일부터 12월 11일까지 프랑스 파리에 모여 온실가스 방출 규제 방안을 논의하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COP21)에 참가한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하얗고 기다란 손, 흩날리는 머리카락, 끝없는 고뇌와 순수를 담은 표정….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시절의 젊은 쇼팽이 살아온 듯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21)이 쇼팽의 녹턴과 스케르초, 24개의 전주곡을 특유의 투명한 음색과 폭발적인 에너지로 마무리하자 3층 객석까지 가득채운 파리의 청중들은 일제히 기립해서 박수를 쳤다. “브라보!” 7일 밤(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인근 클래식 콘서트장 ‘살 갸보’(Salle Gaveau)에서는 세계적 권위의 폴란드 국제쇼팽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조성진의 연주가 있었다. 2시간 공연에 3곡의 앙코르까지 더 하자 자정이 다 돼 가는 시간이 되었지만 관객들은 그의 얼굴을 보겠다고 로비에서 떠날 줄 몰랐다. 음악적 자존심이 높고 평가에 냉정하기로 유명한 파리 청중들도 조성진이 로비에 나타나자 일제히 스마트 폰을 치켜들고 몰려들었다. 여성 팬들 중에는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원정 온 팬들까지 있어 아이돌 ‘한류 스타’는 저리가라는 분위기였다. 집에 가려고 공연장 계단을 내려오던 조 씨는 많은 팬들에 당황해하는 모습이었다. 셔츠와 코트의 평상복 차림의 그는 공연 때 카리스마로 무대를 휘어잡던 스타 연주자가 아니라 아직 소년티가 남아있는 앳된 모습의 대학생처럼 보였다. 이튿날인 8일 오후 루브르박물관 피라미드가 보이는 카페 마를리(Cafe Marly)에서 그를 만났다. 자리에 앉자마자 옆 좌석의 프랑스 손님들이 알아보고 “피아니스트 아니냐?” “어제 공연을 봤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는 쑥쓰러운 듯 수줍게 웃으며 웨이터에게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가히 ‘조성진 신드롬’이다. 인기를 실감하나. “며칠 전 영국 버밍엄, 런던 공연에서도 많은 팬들이 로비에서 기다려서 많이 놀랐다. 당혹스럽긴 하지만 ‘클래식 붐’이 일어난다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콩쿠르에 출전한 것도 더 많은 연주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었지 유명해지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인기란 언젠가는 사그러드는 것이다. 곧 잠잠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첫마디에서 그의 어린 시절을 소개한 친구들이 ‘애늙은이’라고 했다는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얼굴은 미소년인데 한마디 한마디가 산전수전 다 겪은 대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쇼팽콩쿠르 우승할 때 소감이 어땠나. “처음엔 잘 믿기지 않았고 다음엔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같은 역대 우승자들 명성에 내가 누가 돼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처럼 오랫동안 연주하고 기억되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 그는 지난달 20일 쇼팽 콩쿠르 이후 살인적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내년 2월까지 폴란드, 영국, 파리, 네덜란드, 상하이, 베이징, 도쿄, 서울 등 전 세계에서 20회가 넘는 독주회와 협연이 예정돼 있으며 내년에만 총 60회 연주회가 기다리고 있다. “하루에 2시간 밖에 못자는 날이 많다”는 그의 얼굴을 보니 피곤함이 스쳤다. 기분도 풀어줄 겸 옛날 이야기를 물었다. -피아노를 배우게 된 계기는. “10살 때 동네학원에서 시작해 11살에 처음으로 교수님에게 레슨을 받았으니 좀 늦은 편이었다. 그해(2005년) 쇼팽콩쿠르를 처음 보았는데 라파우 블레하츠, 임동혁, 임동민 형제가 연주하는 장면을 보고 ‘아, 나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친은 건설회사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모친도 전업 주부로 알고 있다. ‘부모가 최고의 스펙’(웃음)이라는 요즘 시대에 부모가 음악인이 아니었는데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에 다들 놀라고 있다. “부모님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묵묵히 밀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어릴 적부터 콩쿠르에 많이 나갔는데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니 ‘나가지 말라’고 말리셨을 정도였다. 국내든 해외 콩쿠르든 선생님이 추천해주시면 스스로 결정해 나갔다. 파리 유학생활 동안 엄마가 요리와 집안일을 도와주신 것이 가장 고맙다. 나 때문에 기러기 생활을 하시는 아빠랑은 화상통화를 자주한다. 아빠도 어릴 적부터 늘 내게 ‘연습 좀 그만하고 함께 나가 놀자’고 하셨을 정도였다(웃음). 유학을 결심한 것도 혼자 내린 결정이었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CNSM)에 입학 원서를 보낼 때에도 누구 추천을 받은 게 아니라 직접 인터넷을 검색해 이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유학을 결심한 후 하루 4시간씩 학원에서 공부해 석달 만에 불어능력시험(DELF)에서 대학입학이 가능한 자격증(B1)을 땄을 때 너무 기뻤다”고 했다. 한편 기자는 7일 밤 파리 공연장에서 그의 모친을 만날 수 있었다. 팬들에 둘러싸인 아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서 행여 자신에게 이목이 쏠릴까 조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기자가 다가가 “소감을 말해 달라” 하자 “죄송합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요즘은 다들 미국이나 독일로 유학을 가던데.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3위를 하고 유럽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파리에 놀러왔다가 문화적으로 축복받은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유학 온 후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에 한번 가면 3~4시간씩 있곤 했다. 처음에는 고흐, 모네같은 인상파 그림을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바로크, 르네상스 미술도 좋아한다. 유럽여행도 많이 다녔다. 이탈리아 피렌체가 특히 인상 깊었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연주가들의 공연도 1년에 80개 씩 보며 즐겼다.” 조성진은 쇼팽콩쿠르를 앞둔 올해 새해 첫날 파리 페르라쉐즈 묘지에 있는 쇼팽 무덤을 찾았다고 한다. 추운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온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시간이 나는 대로 쇼팽의 생가, 쇼팽이 피아노를 연주했던 살롱 등 파리에 남아있는 그의 흔적을 더듬으며 악보 너머의 쇼팽을 직접 느끼려 했다”고 말했다. -이번 결선에서 유일하게 ‘1점’을 준 심사위원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결과가 안 좋았다면 당연히 화가 났을 것이다(웃음). 모두가 자신만의 의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심사결과는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콩쿠르 우승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더 이상 쇼팽콩쿠르는 안 나가도 된다는 사실이 정말 즐겁다.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웃음). 이제 쇼팽이 아닌 다른 작품도 칠 수 있다는 사실도 너무 신난다. 유명 연주자의 콘서트에 가서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람이 안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더 많은 레퍼토리를 공부하고 싶다. ” -피아노를 치지 않을 때는 뭘 하나. “미술과 문학, 요리가 취미이다. 카뮈 ‘이방인’은 원서로 읽었다. 파리 빵집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케이크를 먹는 것도 좋아한다.” -당신에게 피아노란. “성격상 수줍음이 많은데 무대에 오르면 마음이 편해진다.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게 연주보다 더 떨린다. 무대에 서는 일은 내게 ‘휴가’나 다름없다. 연주회 전에 연습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로워진다. 그게 내 진짜 모습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무대에 오르기 전 과정이 너무 힘겨워 무대에서 서는 게 오히려 휴식이라는 그의 말에 그가 이룬 성취 뒤에 흘린 땀과 눈물이 얼마나 많았을지 가슴이 짠해졌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일어난 러시아 여객기 추락 사고를 전후해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항공기 테러와 관련해 교신을 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 NBC방송은 6일 “미 정보당국이 시나이 반도에 근거지를 둔 IS 이집트 지부(시나 윌라얏)와 시리아 락까의 IS 지도부가 여객기 추락을 축하하고 구체적인 (테러) 방법이 나오는 교신 내용을 포착했다”고 전했다. 미국 온라인 매체 데일리비스트도 IS 이집트 지부가 ‘시나이 반도에서 무엇인가 큰 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보낸 메시지를 미 정보당국이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BBC방송도 “영국 정보당국이 시나이 반도의 무장조직(IS 이집트 지부) 사이에 오간 교신을 도청했으며, 러시아 여객기를 추락시킨 원인을 폭탄 테러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여객기가 이륙한 샤름엘셰이크 공항 내부 관계자는 8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보안 담당 경찰관들이 마약과 무기로 가득 찬 가방들을 발견하고도 10유로(약 1만2000원)가량 뒷돈을 받고 수차례 통과시켜줬다”고 했다. 또 다른 공항 관계자는 “공항 검색대의 판독기가 고장 나 윗선에 보고했지만 기계를 교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여객기 추락으로 국제사회에 공포감이 확산된 것만으로도 IS는 이미 승리했다”고 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이 디젤에 이어 휘발유 차량으로 번지게 됐다. 폴크스바겐은 3일 성명을 내고 “차량에 대한 추가 배출가스 자체점검 결과 80만여 대의 차량에서 기준치 이상의 이산화탄소(CO2)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일부 휘발유 차량도 포함돼 있다”라고 발표했다. 그동안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은 디젤 차량만 해당됐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휘발유 차량에서도 확인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차량은 폴크스바겐을 비롯해 자회사 브랜드 스코다, 아우디, 시트 차량의 1400cc, 1600cc, 2000cc 엔진 모델로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이 실제 배출량보다 낮게 설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폴크스바겐 측은 새로운 결함 발견으로 회사가 입게 될 경제적 손실이 대략 20억 유로(약 2조49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티아스 뮐러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에서 “초기부터 이번 상황을 철저하고 마무리짓겠다고 다짐했다”면서 “고통스런 과정이지만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전날 폴크스바겐이 3000cc급 고급 브랜드인 2014¤2016년형 3투아렉, 포르셰, 아우디 모델에서도 배출가스 검사 결과 조작을 위한 장치를 부착했다고 발표해 시장에 충격을 던져준 바 있다. 독일 자동차협회(KBA)가 3일 발표한 10월 국내 신차 판매 대수(승용차 기준)에 따르면 폴크스바겐 브랜드는 지난해 동월 대비 0.7% 감소한 6만 1500대로 집계됐다. 전체 신차 판매가 1.1% 증가한 27만 8400대로 5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플러스 성장을 한 것과 비교하면 폴크스바겐 브랜드는 시장 평균을 밑돈 셈이다. 폴크스바겐은 세계 2위의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도 판매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AFP통신에 따르면 GM과 포드 등 폴크스바겐의 경쟁업체들은 지난달 두자릿수 성장을 달성하면서 2001년 이후 최고의 10월 실적을 냈지만 폴크스바겐은 3만387대를 판매, 전년 동기 대비 0.2% 증가하는데 그쳤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메카를 바라보는 방향의 좁은 묘지 구덩이에 아프간, 이라크, 시리아에선 난민들을 묻고 있습니다. 여기엔 올해 여름 바다에서 건져낸 시리아 출신 엄마와 아기가 함께 매장돼 있고, 저기엔 이름 모를 한 젊은 여인이 묻혀 있어요.”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성 판텔레이몬’ 묘지의 관리인인 크리스토스 마브라키디스 씨는 1일 “해변에 떠내려 오는 난민 시체가 너무 많다”며 “에게 해 주변 섬 묘지에는 더이상 사람이 묻힐 공간이 남아 있지 않다”고 로이터통신에 하소연했다. 레스보스 섬 스피로스 갈리노스 시장은 “섬 안의 영안실에 쌓여가는 난민들의 시신은 심각한 인도주의적 문제”라며 “국제사회가 해결책을 찾아 달라”고 호소했다. 터키 해안에서 4.4km 떨어져 있는 그리스 레스보스 섬은 유럽으로 가는 중동 난민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며 기상이 악화하자 난민을 태운 고무보트가 전복되는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곳을 순찰하고 있는 그리스 해안경비대는 전날 난민선 전복 사고가 3건이 일어나 어린이 10명을 포함해 19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섬 주민들은 “어부들이 바다에서 난민 생존자는 구출하지만 시신은 처리하기 어려워 바다 한가운데에 도로 던져 넣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증언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일 “지난달에만 21만8000명이 넘는 이주자들이 지중해를 건너 올 들어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규모는 지난해 한 해 동안 지중해를 건넌 21만9000명과 비슷하다. 난민들은 올해 탈출 과정에서 3000명 이상이 숨졌다. 유럽연합(EU)이 각국에 재할당하기로 약속한 16만 명의 난민 규모도 10월 한 달 유럽에 도착한 난민 수의 4분의 3 수준에 불과하다. 북유럽의 스웨덴에서도 밀려드는 난민을 감당하지 못해 테마파크까지 개방하기로 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2일 스웨덴 남부의 테마파크 ‘하이 채퍼랠’이 관람용 집을 단장해 난민 400~500명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곳 공동대표인 에밀 엘란드손 씨는 “집 내부가 손상될 것을 우려해 이민청의 요청을 5차례나 거부했지만 천막에서 열악한 생활을 하는 난민들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밝혔다. 난민들은 테마파크가 겨울철에 폐장했다가 내년 5월 재개장할 때까지 머무르게 된다. 지난달에는 스웨덴 최북단 릭스그란센의 스키 리조트가 600여 명의 난민을 수용하기도 했다.이설 기자snow@donga.com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테러와 난민 사태가 유럽의 정치 지형도를 크게 바꾸고 있는 가운데 터키 총선에서도 다시 한 번 ‘안정’과 ‘안보’를 외친 집권 보수당이 압승을 거뒀다. 1일 터키에서 5개월 만에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49.37%를 얻어 의회 총 550석 중 절반이 넘는 316석을 확보했다. AKP는 올 6월 총선 때보다 득표율이 9%나 뛰어오르며 단독 정부를 수립하게 됐다. 이어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이 25.4%,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민족주의행동당(MHP) 11.9%, 친쿠르드 성향의 인민민주당(HDP) 10.6%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사진)이 이끄는 집권 AKP는 권위주의 통치와 잇단 부패 사건으로 6월 총선에서 13년 만에 처음으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연립 내각도 구성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5개월 만에 조기 총선을 치르는 도박을 감행해 단독정부 복귀에 성공했다. 터키 총선 결과는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세력 확대, 쿠르드노동자당(PKK) 유혈 사태, 유럽 난민 사태가 보수층 표를 결집시킨 것으로 외신은 분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총선 기간 중 펼친 IS, 쿠르드 분리주의자, 외국인, 난민, 미국, 유럽연합(EU) 등에 대한 다각적인 공포 전략이 안정을 바라는 유권자들에게 통했다”고 분석했다. AKP가 과도정부를 이끈 지난 5개월 동안 쿠르드족 반군인 PKK가 휴전 선언 2년여 만에 무장 항쟁을 재개해 군인과 경찰관 150여 명, PKK 조직원 2000여 명이 사망하는 극심한 안보 불안이 이어졌다. 정치 불안으로 터키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경제도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지난달 10일 수도 앙카라에서 벌어진 자살폭탄 테러로 쿠르드족 평화시위대 102명이 숨진 사상 최악의 유혈 사태가 결정적이었다. 터키 정부는 테러 용의자로 IS뿐만 아니라 반정부 쿠르드 무장조직을 지목하면서 현 정권에 가장 껄끄러운 양대 세력을 ‘국가의 적’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또 올여름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으로 인한 공포감도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뉴욕타임스는 선거에서 압승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유럽 난민 사태, 미국의 IS 공습에서 좀 더 많은 주도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달 18일 터키를 방문해 “난민을 통제해 준다면 터키에 최소 30만 유로의 난민구호 자금을 지원하고, EU 가입 협상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또 지난 12년 동안 총리와 대통령직을 번갈아 맡으며 막강 파워를 행사해온 에르도안 대통령은 총리 중심제에서 완전한 대통령제로 전환하는 헌법 개정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을 받아들이던 유럽 각국이 국경통제에 본격 나서 유럽통합과 난민정책이 중요한 갈림길에 들어섰다. 31일 오스트리아 정부는 독일로 넘어가는 국경에 신설된 5곳의 검문소 통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날 오전 국경 난민 1000 명가량이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의 베크샤이트와 짐바흐암 지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이 곳 검문소에서는 본격통제를 앞두고 전날 난민 5500여명이 몰려들었다. 독일·오스트리아 양국은 바이에른 주 남동부 베크샤이트, 노이하우스암인, 짐바흐암인, 프라이라싱, 라우펜으로 진입하는 곳에 검문소를 두고 난민 이동을 제한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국경 지역에는 난민 1000여 명이 텐트를 치고 겨울을 날 채비를 차렸다. 오스트리아는 앞서 28일에는 슬로베니아 국경에 열흘 안에 철조망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유럽연합 26개국이 비자나 입국심사 없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셍겐조약 회원국 간에 설치되는 첫 장벽이다. 헝가리도 지난 9월 솅겐조약 비(非)회원국인 세르비아와의 국경에 150㎞에 이르는 철조망을 설치했다. 불가리아는 지난 4월 터키 국경에 철조망을 설치했다. 현재 헝가리와 세르비아 사이의 국경에서 낀 난민 수백 명이 두 나라 모두의 입국 거부로 발이 묶인 채 오도 가도 못하는 막막한 처지가 됐다. 지난 한달간 헝가리 정부가 추방 명령을 내린 불법입국 난민은 모두 696명. 헝가리 정부는 난민들을 출발지인 세르비아로 추방 명령을 내렸지만, 세르비아 정부가 이 중 72명을 제외한 나머지 600여 명의 재입국을 거부해 이들이 국경 사이에서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유럽 국가들이 점점 높이 쌓는 장벽을 뚫기 위한 난민들의 노력도 처절하다. 31일 불가리아의 터키 접경지역인 카피탄 안드리보 국경검문소에서 어린이 58명 등 난민 130여명이이 탄 냉동트럭이 적발됐다. 경찰은 이들의 불법 밀입국을 주선한 트럭운전사를 체포했으며 사망자는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 8월27일에는 오스트리아 동부 파른도르프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 주차된 냉동트럭에서 난민 71명이 질식한 채 발견되는 끔찍한 참사가 벌어졌다. 한편 독일은 내년에 난민 대응 비용으로만 많게는 160억 유로(20조 원)를 써야 할 것이라는 추산이 나왔다. 독일도시연합은 내년에 난민신청자가 적어도 50만 명에서 많게는 120만 명에 이를 것이라며 연방정부가 이미 지원하기로 결정한 예산보다 최다 55억 유로가 더 늘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난민 예산 수요가 늘자 균형예산 목표에 매달려온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균형예산을 더는 고집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리소르지멘토(Il Risorgimento)’. 19세기 이탈리아 반도에서 불길처럼 퍼져 나갔던 통일운동을 말한다. 시칠리아 왕국, 사르데냐 왕국, 나폴리 왕국, 로마 교황령과 밀라노 베네치아 등 수많은 도시국가로 분열돼 있던 이탈리아는 1861년에서야 통일될 수 있었다. 이렇듯 문화와 역사가 다른 국가들이 통합된 이탈리아는 통일왕국 건설 당시부터 지방분권과 중앙집권에 대한 오랜 논쟁이 있었다. 지금도 이탈리아는 부유한 북부와 가난한 남부 사이에 경제 격차가 심하다. 우익 정당인 ‘북부동맹’은 부유한 롬바르디아 지역의 독립을 주장한다. 이탈리아의 중앙집권적 체제에 대한 반감은 국가 파시스트당을 창설해 1922년부터 1943년까지 21년간 총리를 지냈던 베니토 무솔리니의 처형 후 극대화됐다. 무솔리니는 독일의 히틀러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으로 체포돼 총살당했다. 전후 이탈리아 정치권은 다시는 독재자가 출현할 수 없도록 상하 양원의 동의 없이는 법률도, 예산안도, 총리 임명도 통과될 수 없게 만드는 정치 시스템을 고안해냈다. 특히 헌법 개정안은 상하 양원을 각각 두 번씩 통과한 후 국민투표까지 거쳐야 하는 3중, 4중의 견제장치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나친 견제장치는 전후 69년 동안 총 63번의 정권교체가 벌어질 정도로 정국 불안을 심화시켰다. 이탈리아 정치권은 상원과 하원, 중앙과 지방정부, 좌파와 우파, 집권연정 내 다수당과 소수당이 서로 대립하고 싸우면서 사분오열돼 갔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각국에서 창의적이고 신속한 경제개혁 정책을 펼쳤지만 이탈리아는 고비용 저효율의 복잡한 의회 권력에 발목을 잡혀 번번이 개혁에 실패했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지배할 수도, 개혁할 수도 없는 나라’라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이 때문에 지난해 2월 취임한 마테오 렌치 총리(40)는 제2의 이탈리아 통일운동인 ‘리소르지멘토’의 기수를 표방하고 나섰다. 그는 올해 세 가지의 굵직한 정치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모두 복잡하게 분열된 이탈리아 정치 시스템을 단순화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법안이다. 집권당의 안정적 과반 의석 확보를 위해 선거법을 개혁해 40% 이상을 득표한 정당은 55%의 의석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해주고, 중앙과 지방정부의 권한을 명확히 구분해 국가적 인프라 건설의 경우 중앙정부에 배타적 권한을 집중시켰다. 특히 상원의원 수를 70%나 줄이는 개헌안 통과는 백미였다. 렌치 총리는 자신의 일련의 정치개혁안을 ‘이탈리쿰(Italicum)’이라고 명명했다. 지난 10년 동안 높은 실업률과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이탈리아를 긴 잠에서 깨우는 정치개혁안이란 의미에서 이름을 붙였는데 병든 소녀가 구원받는다는 성서 속 ‘탈리타쿰’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한국 정치권의 고비용 저효율은 이탈리아 국회에 버금갈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 노동자 평균임금 대비 국회의원 연봉은 이탈리아가 4.95배, 한국이 4.19배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이제 이탈리아 국회는 상원이 스스로의 밥그릇을 내놓는 개혁안을 통과시켰는데도 한국 국회는 오히려 의원 수를 늘릴 궁리를 하고 여야가 내년 총선을 위한 선거구 획정에도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렌치 총리는 “지금 이탈리아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정치인 수를 줄이고 정책을 늘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부터 뼈를 깎는 구조개혁에 솔선수범하지 못한다면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노동개혁, 복지개혁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 오늘날 유럽이 주는 교훈이다.전승훈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우리는 ‘누드 식품’(nude food)을 팝니다.”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 구역에서는 독일 최초로 ‘포장지 없는 슈퍼마켓’이 등장했다. 이 상점에서는 400가지의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판다. 그런데 과일, 야채, 곡물뿐 아니라 요구르트, 로션, 샴푸 같은 액체까지 모두 담는 플라스틱 용기나 포장지가 없다. 손님들은 각자 가져온 빈 병이나 장바구니 같은 곳에 물건을 넣어 간다. 이 슈퍼마켓 주인인 밀레나 글림보스키 씨(25·여)는 “독일인들이 1인당 연간 250kg의 쓰레기를 만들어낸다고 한다”며 “치즈나 야채부터 과일까지 모두 플라스틱 포장지로 싸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플라스틱 포장지 1kg을 만들 때, 6kg의 탄소산화물이 발생한다. 이는 차량을 40km 운행했을 때 배출되는 양과 맞먹는다”며 포장지 없는 상점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슈퍼마켓이 문을 연 후 독일 전역에서는 포장지를 없애는 슈퍼마켓 체인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독일의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폐기물 발생을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쓰레기 제로(0)’ 정책을 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독일의 ‘환경수도’로 불리는 인구 22만 명의 소도시 프라이부르크다. 이 도시는 원래 가정 쓰레기와 산업 폐기물 가운데 재활용이 가능한 것을 제외한 전체 약 60%에 해당하는 연간 33만 t의 쓰레기를 시 외곽에 매립해왔다. 그 결과 1986년에 쓰레기 매립지가 포화상태가 됐다. 이에 프라이부르크 시 당국은 시민들에게 분리수거를 활성화하고 쓰레기를 자원으로 돌리는 기술을 개발했다. 현재 프라이부르크의 주택 단지에는 재활용 쓰레기통이 3, 4종류가 있다. 시민들은 종이류는 녹색 수거통에, 플라스틱·금속 등의 포장용기는 노란색 봉투에 담아 배출한다. 유리병은 투명, 녹색, 갈색 유리병으로 구분해 유리병 수거함에 배출한다. 또한 음식물류, 낙엽, 화장지 등 퇴비화가 가능한 쓰레기는 갈색 수거통에 담는다. 프라이부르크 시는 현재 전체 쓰레기의 69%를 재활용하고 있다. 덕분에 프라이부르크에서 매립되는 쓰레기 양은 1970년대 5만 t에서 2011년 200t으로 줄었다. 프라이부르크 시는 폐기물을 ‘제2의 자원’으로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현재 프라이부르크에서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의 1인당 배출량은 연간 90kg이다. 이는 독일 전국 평균인 122kg보다 훨씬 적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들은 시 외곽 산업단지 내 폐기물소각장(TREA)에서 태우는데,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로 2만8000가구에 전기와 난방을 공급하고 있다. 쓰레기매립지도 에너지 공장으로 진화했다. 매립으로 생긴 50m 높이의 쓰레기 산에서 생산되는 메탄가스는 열병합발전소로 보내져 3300가구에 전기를 공급하고, 780가구에 난방을 공급한다. 또 바이오가스 발효시설과 퇴비생산 시설(BKF)에서는 폐목재, 정원에 깎은 풀 등 미생물 분해성 쓰레기들을 보낸다. 바이오가스로 만들기 위해서다. 이렇게 만든 바이오가스는 시 에너지 소비의 2%에 이른다. 연간 100만 개씩 수집되는 코르크 마개들은 장애인 노동자 단체에 보낸다. 이곳에서는 코르크 마개가 친환경 절연제로 재탄생한다. 또한 독일은 1991년부터 제품 생산회사들에 플라스틱 포장용기를 회수하고 재활용하도록 강제하는 ‘포장폐기물회수에 관한 법령’을 시행해왔다. 이 법이 적용되는 제조업체들은 공동으로 자금을 투자해 ‘듀얼 시스템 도이칠란트(DSD)’라는 비영리 회사를 만들었다. DSD에 포장재 처리 비용을 지불한 회사들은 제품 포장재에 ‘녹색 마크’를 인쇄할 수 있다. DSD가 플라스틱 포장재의 90%를 수거하여 재활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쓰레기 소각장에서의 다이옥신 발생도 크게 줄어들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13일 상원의원 수를 315석에서 100석으로 70%나 줄이는 개헌안을 통과시킨 이탈리아 정치 개혁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외신들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던지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경이적인 일’이라며 놀라고 있다. 이탈리아는 정치야말로 경제의 발목을 잡는 주범이라며 국회를 개혁하지 않고는 국가 개혁이 있을 수 없다는 목표의식 아래 의원들 스스로 수를 대폭 줄이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과연 이탈리아는 어떻게 개혁에 성공했을까. 》 상원의원 수를 315석에서 100석으로 대폭 줄이는 이탈리아 헌법 개혁안은 앞으로 하원도 통과해야 하고 국민투표 절차도 남아있다. 하지만 밥그릇을 빼앗길(?) 당사자들인 상원의원들이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관문을 넘었으며 무엇보다 국민 여론이 압도적 찬성이어서 최종 통과까지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이탈리아 정치 개혁의 내용과 배경을 살펴본다. ○ 많아도 너무 많았던 국회의원 혜택 이탈리아 국회의원은 상원 315명, 하원 630명으로 총 945명이나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수적으로 2위이고, 대우도 최고 수준이다. 의원의 한 달 수입이 우리 돈 2200만 원가량. 월급 1600만 원에 야근비 600만 원을 꼬박꼬박 매달 받아 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의원 연봉은 남유럽에 비하면 세 배 높은 수준이고 잘사는 독일과 비교해서도 두 배 높은 수준이다. 공식 세비 외에도 혜택이 넘친다. 전화요금으로 연간 400만 원을 나라 예산에서 지급받을 뿐 아니라 대중교통이 공짜고 극장 수영장 축구경기장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외국어 학습을 위해서도 총 40만 유로(약 5억1570만 원)의 예산이 배정돼 있다. 여기에 상원의원들은 명품 브랜드 나자레노가브리엘리사가 디자인한 다이어리를 지급받고 이발도 무료다. 국회에서 일하는 이발사 연봉이 우리 돈 1억8000만 원에 달한다. 이탈리아 경영자총연합회는 “국회와 지방의회에서 활동하는 정치인들을 지원하는 데에만 1년에 총 90억 유로(약 11조6032억 원)가 드는데 이는 군대를 유지하는 비용과 맞먹는다”고 국회를 맹비난하기도 했다.○ 독재적인 의회 권력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에 베니토 무솔리니와 같은 파시스트 독재자가 출현하지 않도록 모든 법률과 예산안을 통과시킬 때, 또 새 정부 총리가 취임할 때 상하 양원이 모두 승인을 해야 한다는 막강한 견제 장치를 도입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고질적인 정치 불안과 개혁 불임(不姙)을 낳는 원인이 됐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69년 동안 무려 63번의 새 정부가 들어섰고, 27명의 총리가 취임했다. 잦은 정권 교체로 개혁은 좌절됐고 장기적인 국가 발전 계획은 언감생심이었다. 2013년 총선에서는 하원에서 중도 좌파가 과반에 달하고 상원을 중도 우파가 장악하는 바람에 어떤 정당도 총리 후보를 지명하지 못해 60여 일간이나 총리직을 공석으로 비워 두는 등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엔리코 레타 총리가 대연정 내각을 구성한 뒤 겨우 취임했지만 10개월여 만에 중도 하차했다. ○ 자기 살 도려내기, 쉽지 않았다 이번에 통과된 상원 축소 개헌안은 야당은 물론이고 집권당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거셌다. 한 야당 의원은 토론 도중에 국화꽃을 던지며 “이탈리아의 민주주의가 죽어 가고 있다”고 외치기도 했다. 노회한 상원의원들은 시간을 질질 끌며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필리버스터’ 전략을 썼다. 극우 정당인 ‘북부동맹’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똑같은 내용의 법안들을 이름과 문장만 다르게 하는 방식으로 무려 8200만 개의 수정안을 제출했다. 모든 수정안을 검토한 뒤에야 투표가 이뤄지는 시스템을 이용해 수정안 ‘쓰나미’로 개혁안을 봉쇄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대목에서 개혁을 주도한 마테오 렌치 총리의 순발력이 돋보였다. “필리버스터는 정치개혁을 향한 국민의 바람을 봉쇄하는 술수”라며 법안들을 소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바로 상정한 것. 의원들에 대한 설득 작업도 집요했다. 렌치 총리는 34세의 여성인 마리아 엘레나 보스키 헌법개혁장관과 함께 315명에 달하는 상원의원을 일일이 만나 “지금 우리나라에는 더 적은 정치인과 더 많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개혁안에 반대하는 강경파는 공천에서 배제할 것”이라는 채찍도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보스키 장관은 외모를 놓고 외설적인 발언까지 해 대는 반대파의 모욕도 견뎌야 했다. 현지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는 “불가능한 미션처럼 보였던 개헌안 통과에는 우아한 매너와 미소로 최전선에서 굳세게 버텨 낸 보스키 장관의 역할이 컸다”고 보도했다. 대국민 설득 작업도 부지런히 했다. 렌치 총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개헌안이 통과되면 ‘유럽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인 이탈리아가 깨어날 것”이라고 하는 등 미디어를 통한 대국민 소통에 나섰다. 마침내 본회의 투표 당일, 100여 명의 의원이 투표를 거부하고 회의장을 나가 버렸지만 법안은 179표 찬성으로 통과됐다. ○ 개혁을 하려면 직(職)을 걸어라 취임 후 18개월 동안 노동, 공공, 사법, 은행, 교육 등 전방위 개혁 작업에 나서고 있는 렌치 총리는 노동법 교육법 선거법 개정 때마다 자신의 직을 건 신임 투표도 불사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총리직을 사임하고, 조기 총선을 하겠다는 ‘사즉생(死則生)’ 전략이다. 이번 상원 축소 개헌안도 자신이 속한 집권 민주당이 상원에서 과반수에서 10석이나 부족해 통과에 실패할 경우 사임해야 하는 위기상황이었지만 과감하게 밀어붙여 성공시켰다. 개헌안이 통과된 4일 후인 17일 여론조사에서 렌치 총리 지지도는 44%로 4%포인트 상승해 현재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라는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집권 민주당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한국의 아빠들은 돈 버는 기계에다 나이 들수록 기댈 곳이 없다.’ 우리나라 국민이 느끼는 삶의 질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인 것으로 조사됐다. 19일 OECD의 ‘2015 삶의 질(How’s life?)’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이 평가한 삶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80점으로 OECD 평균(6.58점)보다 낮았다. 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였다. 특히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삶의 만족도가 떨어졌다. 15∼29세 6.32점이었던 것이 50대 이상은 5.33점으로 1점 가까이 하락했다. 한국의 아빠들은 ‘일과 생활의 균형’ 부문에서 점수가 크게 떨어져 어린 자녀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크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생활에 지친 아빠들이 하루에 자녀와 같이 놀아주거나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고작 3분이고, 돌봐주는 시간도 3분에 불과했다. 엄마까지 포함해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도 하루 48분으로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짧았다. OECD 평균은 하루 151분이고, 이 중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은 47분이다. 이웃나라 일본 어린이들만 해도 아빠와 함께 놀거나 공부하는 시간이 하루 12분으로 한국보다 많다. 한국 청소년들이 15∼19세에 학교를 다니지 않으면서 취업도 않고 훈련도 받지 않는 채 방치된 비율도 9번째로 높았다. 반면 학업성취도 면에서 한국 학생들의 순위가 높았다. 15세 이상의 읽기능력은 2위, 컴퓨터 기반 문제 해결 능력은 1위였다. 한국인들은 가정에서뿐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 역시 개인이 섬처럼 고립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회 연계 지원’ 부문에서 한국은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 한국은 이 부문에서 72.37점을 기록해 OECD(88.02점) 평균에 크게 못 미쳤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50세 이상의 점수는 67.58점으로 1위인 아일랜드(96.34점)보다 무려 30점가량 낮았다. 50세 이상에서 60점대를 받은 것은 터키(67.58점)와 한국뿐이었다. 한국인의 건강 만족도 역시 OECD 평균(68.8점)보다 20점 이상 낮아 34개국 가운데 꼴찌였다. 반면 한국의 경제성장과 고용, 금융자산 등 물질적인 토대는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나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가구당 순가처분소득은 2013년 기준 2만270달러로 2009년보다 12.28% 증가해 OECD 29개국 가운데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BBC 방송기자 출신의 국제 분쟁지역 활동가인 재클린 서턴(50·사진)이 터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테러단체 소행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가디언, BBC 등 영국 언론이 19일 보도했다. 서턴은 17일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을 출발해 17일 오후 10시경(현지 시간)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이곳에서 최종 목적지인 이라크 북부 아르빌행 항공편을 놓쳤고 이후 공항 여자 화장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아르빌은 쿠르드 자치정부의 수도로 서턴이 최근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벌여온 곳이다. 터키 경찰은 초동수사를 통해 그가 자신의 신발 끈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그의 동료 등은 자살 가능성을 완강히 부인한 채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동료 언론인 레베카 쿡은 이미 터키 당국 차원이 아닌 국제적 조사를 요청한 상태다. 서턴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BBC 방송기자로 일했다. 이후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다양하게 활동했다. 영국에서 석사를 마친 뒤 호주국립대에서 아랍·이슬람학 박사 과정을 밟은 그는 영어와 아랍어 등 5개 언어에 능통하며, 손꼽히는 이슬람 분쟁 전문가다. 2003년부터 10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 언론인을 도왔고 올해 7월부터 이라크 아르빌에서 ‘전쟁과평화보도연구소(IWPR)’ 지역 책임자 직무대행으로 일해 왔다. IWPR는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 NGO다. 앞서 IWPR 이라크 지부의 전 책임자도 올해 5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사망한 바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1937년 난징(南京)대학살 당시 일본군이 중국군 포로들을 참수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들이 올해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1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최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리스트에 오른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들 가운데 일본군이 중국인 포로들을 한 명씩 무릎을 꿇게 한 뒤 검으로 목을 베는 사진, 길거리에 중국인 시신 수십 구가 널브러져 있는 사진, 일본군이 부녀자를 욕보이는 사진 등 모두 16장이 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참수된 중국군 포로들은 대체로 앳된 모습이었다. 사진들은 당시 일본군들이 직접 찍은 것으로 당시 난징의 한 사진관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던 중국인 청년 뤄진(羅瑾)이 몰래 추가로 현상해 숨겨 두고 있던 것이었다. 이 사진은 일본군의 끔찍한 죄행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1945년 일본 패망 이후 개최된 난징 전범 군사법정에서 ‘1호 자료’로 채택되기도 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대한민국 국회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안을 놓고 여야가 치열한 대립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탈리아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스스로의 권한을 대폭 내려놓는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이탈리아 상원은 13일 본회의에서 상원의 권한을 대폭 축소해 실질적으로 상원을 없애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179, 반대 16, 기권 7표라는 압도적인 찬성이었다. 개혁법안은 내년 10월에 국민투표에 넘겨진다고 이탈리아 뉴스통신인 안사가 전했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 상원의원은 315명에서 100명으로 무려 215명이 한꺼번에 줄어들고 법률 제정 권한도 없어진다. 그야말로 상원은 상징적인 지역대표 모임 정도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개헌안은 이탈리아에서 수십 년간 계속돼 온 정치적 불안정을 끝내기 위한 혁명적인 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마테오 렌치 총리(사진)가 상원 스스로 ‘정치적 자살(suicide)’을 선택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렌치 총리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정치의 오래된 역사가 끝났다. 이탈리아가 개혁의 꿈을 꿀 수 있게 됐다”고 환영했다. 그는 앞서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서도 “상원이 오늘 헌법 개정 개혁안을 3번째 독회를 하면서 승인했다”면서 “이것이 최종 승인될지 아직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이제 오랜 세월 계속됐던 정치의 계절은 끝났으며 개혁이 완성됐고, 이탈리아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가 상하원 모두에 동등한 권한을 지닌 양원제를 도입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 정권의 독재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그러나 의회는 정부의 입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은 채 상하원이 계속 서로 주고받으면서 입법을 지연시키거나 철회시켜 번번이 개혁을 좌초시켰다. 특히 개헌안에 대해서는 상하원을 각각 2번씩 통과한 후에야 국민투표를 하도록 돼 있다. 이번 상원 축소 개헌안도 올해 3월에 하원을 통과한 데 이어 이번에 상원을 통과했지만, 앞으로 상하원에서 다시 한번 통과 과정을 거친 뒤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하지만 결과는 낙관적이다. AFP는 “렌치 총리가 가장 높은 산을 넘었고 개헌안이 무난히 통과될 것”이라며 “이탈리아는 실질적으로 양원제에서 단원제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로마 루이스대의 정치학과 로베르토 달리몬테 교수는 “렌치 총리는 ‘도저히 개혁이 불가능할 것 같은 나라’에서 개혁을 지속해 나갈 능력을 이탈리아와 유럽에 보여주었다”며 “의회에서 법안 통과에 효율성을 높이고 로비스트의 막강한 힘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탈리아가 정부의 작동구조를 단순화해 ‘유선형’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슈퍼 화요일’”이라고 평했다. 한편 이번 개혁을 주도한 렌치 총리는 올해 마흔 살로 지난해 ‘노동법 개혁’에 매진해 이탈리아 경제가 3년간의 마이너스 성장에서 빠져나오게 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올해 8월의 실업률은 2년 내 최저치인 11.9%를 기록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이탈리아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8%, 내년에는 1.3%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렌치 총리의 다음 개혁 대상으로는 사법체계와 교육시스템이 꼽히고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벨라루스에서 21년째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61)이 11일 치러진 대선에서 또 당선됐다. 이로써 그는 1994년부터 2020년까지 총 26년간 독재 정권을 유지하게 됐다. 벨라루스 선거관리위원회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83.49%를 득표했다고 발표했다. 투표율은 86.75%였다. 야권 후보들은 한 자리 지지율에 머물렀다. 고국인 벨라루스의 독재를 비판하다가 10년간 망명생활을 했던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7)는 대선 전날 “모든 선거는 루카셴코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에 독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결국 그의 예상대로 루카셴코가 집권 기간을 5년 더 연장했다. 루카셴코는 1994년 초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임기를 늘리고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며 장기 집권 기반을 마련했다. 2005년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은 루카셴코를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특히 2012년에 치러진 벨라루스 총선에서는 여당 의원들만 100% 당선돼 세계인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유럽연합(EU)은 2011년부터 벨라루스를 제재해 왔으며,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폐회식에서 루카셴코의 참석을 거부했다. 루카셴코는 또한 ‘북한식 세습 왕조’도 꿈꾸고 있다고 영국의 텔레그래프가 11일 보도했다. 루카셴코는 11일 대선 투표소에 금발의 아들 니콜라이(10)와 함께 나타났다. ‘콜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막내아들은 2008년 당시 4세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군사령관 복장을 하고 군사 퍼레이드에 참석해 왔으며, 공식 외교 방문에도 동행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과 만나기도 했다. 니콜라이는 최근에는 중국의 전승기념일 열병식에도 참석했으며, 미국에서 열린 유엔총회에도 참석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부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벨라루스의 헌법에는 최소 35세가 돼야 대통령이 될 수 있어 니콜라이가 권력을 물려받으려면 25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 앤드루 윌슨 EU 외교위원회 연구원은 “루카셴코가 종신(終身) 집권한 후 북한처럼 권력을 세습하겠다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루카셴코는 푸틴 대통령과 ‘강한 지도자’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푸틴 대통령이 2013년 시베리아 강에서 21kg짜리 월척을 낚았다고 발표하자, 루카셴코는 “나는 57kg짜리 메기를 낚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루카셴코는 올 4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가 아니다. 푸틴은 나보다 더하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한편 루카셴코는 지난해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시 러시아를 비난하는 등 서방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EU는 벨라루스에 대한 제재를 일시 중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9일 오전 10시 터키 수도 앙카라 중앙역 앞 광장에 조기 총선을 3주 앞두고 터키 정부군과 쿠르드족 반군 ‘쿠르드노동자당(PKK)’ 간의 유혈충돌 종식을 촉구하는 평화시위를 벌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본격적인 시위를 앞두고 수십 명의 젊은이들이 손을 잡고 노래하며 구호를 외치는 순간 갑자기 뒤쪽에서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시뻘건 화염이 치솟았다. 거의 동시에 가까운 곳에서 또 폭발이 일어났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는 “한 남성이 광장에 가방을 내려놓고 줄을 당기자 폭발이 일어났다”며 “10∼15초 사이에 두 차례 폭발했고 사람들이 쓰러졌다”고 AP통신에 말했다. 터키 쿠르드계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의 셀라핫틴 데미르타쉬 공동대표는 11일 추모 집회에서 사망자가 128명이며 이 중 120명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수도 앙카라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사상 최악의 이번 테러로 터키 전역이 슬픔과 충격에 휩싸였다. 테러 배후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희생자들 중 터키 정부에 쿠르드 반군과의 유혈 충돌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던 반정부 성향 단체와 HDP 지지자가 많았다는 점에서 정부와 쿠르드 반군 간의 평화를 원치 않는 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아흐메트 다우토을루 터키 총리는 이날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PKK, 극좌 성향의 ‘혁명민족해방전선’ 등 3대 테러조직을 용의자로 꼽았다. 로이터통신은 터키 보안당국이 이번 테러를 IS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IS는 터키가 서방의 IS 공습에 동참한 이후로 터키를 비난해 왔다. CNN은 이번 테러가 7월 터키 남부 수루츠에서 IS 조직원이 친쿠르드계 정당 지지자들에게 자행한 자폭테러와 유사한 IS 자폭테러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1978년 조직된 PKK는 터키 인구의 최대 20%로 추정되는 쿠르드족이 주로 거주하는 동부에 독립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로 무장항쟁을 벌여 온 단체다.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의 소너 차압타이 연구원은 “PKK가 터키와 계속해서 싸우기를 희망하는 세력의 소행으로 보인다”며 “터키와 PKK 간의 대립이 심화하면 IS가 이득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6월 터키 총선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창당한 정의개발당(AKP)이 13년 만에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11월 1일 조기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다. 반정부 언론들은 AKP 정부가 PKK의 유혈충돌을 유발해 PKK에 반대하는 터키 민족주의자들을 부추겨 표를 얻으려 한다고 비난해 왔다. 일각에서는 PKK 가운데 분리 독립을 위해 무장항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일부 강경파가 이날 ‘자작극 테러’를 저질렀을 것이라는 음모론도 나왔다. 터키 정부는 10일 앙카라 테러 희생자들을 위한 사흘간의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터키 국민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고 “미국 국민은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터키 국민과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 정부는 11일 폭탄 테러가 발생한 터키 앙카라와 이스탄불에 1단계 여행경보인 남색경보(여행 유의)를 발령했다. 여행경보 중 남색경보가 1단계로 가장 낮고, 2단계 황색경보(여행 자제), 3단계 적색경보(철수 권고), 4단계 흑색경보(여행 금지) 순이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