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주

손효주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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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효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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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랜만에 나온 ‘착한 영화’… 지친 삶 위로하다

    공부깨나 한다는 소리를 듣던 한지우(김동휘)는 명문 자율형사립고에 입학한 뒤로 기를 펴지 못한다. 대치동 사교육을 통해 고3 수학까지 학습하고 입학한 아이들과의 경쟁은 버겁기만 하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지우에게 대치동 사교육이란 다른 세계 이야기. ‘수학포기자(수포자)’에 이어 학습 부진아가 된 지우에게 담임선생님은 일반 고등학교로의 전학을 종용한다. 그런 지우가 신분을 숨긴 채 학교 경비로 일하고 있는 탈북자 출신 천재 수학자 리학성(최민식)을 만난다. 다음달 9일 개봉하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학창시절 수많은 이들을 절망케 한 수학을 소재로 다룬다. “수학을 가르쳐 달라”는 지우의 읍소에도 곁을 주지 않던 무뚝뚝한 학성은 지우의 사연을 안 뒤 마음을 연다. 영화 속 이야기는 ‘굿 윌 헌팅’ ‘뷰티풀 마인드’를 떠올리게 한다. 최민식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굿 윌 헌팅’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 학원 드라마도 학원에 국한되지 않고 세상이 표현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며 “그런 걸 늘 하고 싶었는데 이 영화를 만났다”고 말했다. 영화의 소재는 수학이지만 수학은 그저 거들뿐이다. “수학을 잘하려면 문제가 안 풀릴 때 ‘너 참 어렵구나. 내일 다시 풀어봐야지’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학성의 말은 인생의 고비에서 좌절하지 않기 위한 답이기도 하다. 학성은 지우에게 수학을 가르쳐 주는 것을 넘어 잘 살아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진짜 어른’이자 참스승이다. 두 사람이 수학수업을 하는 과학관 지하 공간은 동화 같은 분위기를 낸다. 곳곳에 배치된 탁상용 스탠드는 은은한 주황빛을 뿜으며 공간을 아늑한 기운으로 채운다.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공간을 연출하기 위한 빛 활용이 돋보인다. 지우 역을 맡은 배우 김동휘는 올해 스물일곱이지만 인근 고등학교 학생을 데려온 듯 자연스럽게 역할을 소화해낸다. 서울말을 쓰려 노력하는 탈북자 말투를 포함해 세밀한 포인트까지 짚어낸 최민식의 연기 관록은 단편적인 악인 묘사 등 영화의 아쉬운 점을 상쇄한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등장한 이 ‘착한 영화’는 결과와 정답만 중시하는 세상을 사느라 지친 이들을 열심히 위로한다. 그 덕분에 다소 뻔하고 기시감 강한 설정은 관대하게 넘기게 된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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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답 대신 용기 가르치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공부 깨나 한다는 소리를 듣던 한지우(김동휘)는 명문 자율형사립고에 입학한 뒤로 기를 펴지 못한다. 대치동 사교육을 통해 고3 수학까지 모두 배운 뒤 입학한 아이들과 경쟁한다는 건 버겁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지우에게 대치동 사교육은 다른 세계 이야기. ‘수학포기자(수포자)’에 부진아가 된 지우에게 담임은 일반고로의 전학을 종용한다. 그런 지우가 신분을 숨긴 채 학교 경비로 일하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 리학성(최민식)을 만난다. 9일 개봉하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학창시절 수많은 이들을 절망케 했던 수학을 소재로 다룬다. “수학을 가르쳐달라”는 지우의 읍소에도 곁을 주지 않던 무뚝뚝한 학성은 지우의 사연을 안 뒤 마음을 연다. 영화 속 이야기는 ‘굿 윌 헌팅’ ‘뷰티풀 마인드’ 등 여러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최민식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굿 윌 헌팅’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 학원 드라마도 학원에 국한되지 않고 세상이 표현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라며 “그런 걸 늘 하고 싶었는데 이 영화를 만났다”라고 했다. 영화의 소재는 수학이지만 수학은 거들뿐이다. “수학을 잘하려면 문제가 안 풀릴 때 ‘너 참 어렵구나 내일 다시 풀어봐야지’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학성의 말은 인생의 고비에서 좌절하지 않기 위한 답이기도 하다. 학성은 지우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는 것을 넘어 잘 살아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진짜 어른’이자 참스승이다. 두 사람이 수학 수업을 하는 과학관 지하 공간은 동화 같은 분위기를 낸다. 곳곳에 배치한 탁상용 스탠드가 내는 은은한 주황빛은 공간을 따스하고 아늑한 기운으로 채운다.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함께 성장하는 공간을 연출하기 위한 빛 활용이 돋보인다. 김동휘는 올해 27세. 그러나 인근 고등학교 학생을 데려온 듯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서울말을 쓰려 노력하는 탈북자 말투 등 세밀한 포인트까지 짚어낸 최민식의 연기 관록은 단편적인 악인 묘사 등 영화의 아쉬운 점을 상쇄한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등장한 이 ‘착한 영화’는 결과와 정답만 중시하는 세상을 사느라 지친 이들을 열심히 위로한다. 그 덕분에 다소 뻔하고 기시감 강한 설정은 관대하게 넘기게 된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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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년범죄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 됐으면”

    “소년범죄라는 예민한 소재를 다루는 힘이 상당했다. 재미를 넘어 영상매체의 순기능을 지닌 작품이어서 배우로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작업했다.” 배우 김혜수는 25일 전 세계에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을 소개하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22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그는 “소년범죄에 대해 의미 있는 고민을 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작품에 임했다”고 말했다. ‘소년심판’은 한 지방법원에 판사 3인이 합의를 거쳐 형을 선고하는 가상의 합의부인 ‘소년형사합의부’가 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소년범죄와 소년범 이야기를 다룬다. 김혜수는 소년범에게 어떤 자비도 베풀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소년범 혐오자’ 심은석 판사 역을 맡았다. 그를 비롯해 이정은 이성민 김무열이 소년범을 대하는 신념이 각기 다른 4인 4색 판사 역할을 맡았다. 이성민은 자신이 맡은 강원중 부장판사 역에 대해 “소년사건에 있어 피해자와 가해자 입장이나 처분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사회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극중 판사들은 강력범죄를 포함해 여러 소년범죄를 두고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며 첨예하게 대립한다. 한편으로 이 같은 대립은 판결의 균형을 맞추는 힘이 된다. ‘소년심판’ 대본을 쓴 김민석 작가는 “피해자 입장에만, 반대로 가해자 입장에만 몰입한 건 아닌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하며 글을 썼다”고 했다. 홍종찬 감독 역시 “한쪽만 대변하거나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실제 소년범 재판을 여러 번 방청하고 소년부 판사들을 만나는 등 판사와 소년범의 세계에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소년범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차태주 판사 역의 김무열은 “(소년범 재판 방청 당시) 재판정 내부 공기가 굉장히 무거웠다. 그런 무거움이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김혜수는 “판사들 이야기를 듣고 소년범죄 사례를 접한 뒤, 소년범죄에 대한 내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알게 됐다”며 “그동안은 소년범죄에 대해 감정적으로 접근했다면, 이번엔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본 느낌이었다”고 했다. 강원중 부장판사에 이어 합의부에 부임한 나근희 부장판사 역을 맡은 이정은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시대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굉장히 반가웠다”며 “(작품을 계기로 소년범죄 문제가) 공론화되면 좀 더 좋은 제안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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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트맨이 완벽해지는 여정 기대하세요”

    배트맨이 돌아온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주역 로버트 패틴슨(사진)이 배트맨(브루스 웨인) 역을 맡으며 히어로의 세대교체를 알린 ‘더 배트맨’이 다음 달 1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한다. 배트맨을 원톱 히어로로 내세운 영화로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년) 이후 10년 만이다. 러닝타임은 176분으로 3시간 가까이 된다. 패틴슨은 18일 한국 기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화상 간담회에서 “한국 팬들의 배트맨 사랑을 잘 안다”며 “한국에서 최초로 개봉하게 된 만큼 다른 나라에도 분명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맷 리브스 감독과 악당 리들러 역의 폴 데이노, 캣우먼 역의 조이 크래비츠도 참석했다. ‘혹성탈출’ 시리즈의 리브스 감독이 연출한 ‘더 배트맨’은 ‘고담시’의 히어로로 산 지 2년이 된 시점의 초창기 배트맨 이야기를 다룬다. 배트맨은 시장 선거를 앞두고 의문의 살인마 리들러가 벌이는 고위층 대상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고 복수와 정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리브스 감독은 “80년이 넘은 이야기, 전설이 된 캐릭터로 새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며 “배트맨의 슈퍼 히어로 모습과 현실적인 모습을 균형 있게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이어 “캐릭터를 흑백으로 명확하게 나누지 않았다”며 “(어린 시절 부모가 살해당한 뒤)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강박 증세를 보이는 배트맨은 리들러와 거울 같은 캐릭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패틴슨 역시 “배트맨은 자기 통제를 완벽하게 하는 인물인데 이번엔 완벽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로 그려진다”며 “배트맨이 완벽해지기까지의 여정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에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진 패틴슨은 이날 ‘봉준호’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정말 대단하다. 그와 함께 일하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영화 ‘옥자’에 출연하며 봉 감독과 인연을 맺은 데이노는 “한국에서 촬영한 적이 있다. 한국은 정말 아름다웠다. 한국에서 영화를 선보일 수 있게 돼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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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상수 감독, 3년 연속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홍상수 감독이 영화 ‘소설가의 영화’로 제72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이로써 홍 감독은 베를린 영화제에서만 3년 연속 수상하는 쾌거를 거뒀다. 16일(현지 시간) 베를린 영화제 홈페이지와 외신 등에 따르면 홍 감독은 최고상인 황금곰상에 이어 두 번째 상에 해당하는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홍 감독은 지난해 제71회 베를린 영화제에선 ‘인트로덕션’으로 은곰상 각본상을, 제70회 영화제에선 ‘도망친 여자’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앞서 2017년 홍 감독 작품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출연한 배우 김민희가 은곰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을 포함하면 홍 감독 작품이 베를린 영화제에서만 네번째로 은곰상을 받은 것이 된다. 홍 감독은 이날 시상식에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 놀랐다. 나는 내가 하던 것들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라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소설가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연인 김민희를 무대 위로 부르기도 했다. 김민희는 “오늘 상영에서 관객분들이 진심으로 영화를 사랑해 주신다고 느꼈다. 감동적이었고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은 ‘드라이브 마이 카’로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및 감독상 후보에 오른 일본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가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심사위원들은 ‘소설가의 영화’를 두고 “영화에 담긴 소박함과 미스터리는 편견을 깰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고 평가했다. ‘소설가의 영화’는 홍 감독의 27번째 장편 영화로 지난해 3월 한국에서 촬영한 흑백 영화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전작인 ‘당신 얼굴 앞에서’에 출연한 배우 이혜영을 비롯해 김민희, 서영화 등이 참여했다. 소설가 준희(이혜영)가 잠적한 후배의 책방을 찾아 길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준희가 영화감독 부부와 배우(김민희)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홍 감독은 이날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저에겐 두 사람(이혜영과 김민희)이 있었고 (촬영) 준비를 하는데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을 영화로 직접 만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소설가와 영화 제작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를 밝혔다. 영화의 국내 개봉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올해 상반기 안에 개봉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날 최고상인 황금곰상은 스페인의 여성 감독인 카를라 시몬의 ‘알카라스’에, 은곰상 감독상은 ‘검의 양면(Both Sides of the Blade)’을 연출한 클레르 드니 감독(프랑스)에게 각각 돌아갔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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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비줌인/손효주]10초 건너뛰기 중독자에겐 죄가 없다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 상영 중인 한 영화관. 관객석에서 필자는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자세 고쳐 앉기를 거듭하는 등 몇 차례 안절부절못했다. 스크린에선 넷플릭스의 ‘마이네임’이 상영되고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 이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가 초청된 건 처음. 스크린 한가운데 떠오른 넷플릭스의 ‘N’은 기성 영화계를 향해 “세상은 OTT가 점령했다”라고 선포하는 듯했다. 그러나 영화와 시리즈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을 목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벅차오른 것도 잠시, 곧 초조해지고 말았다. 경찰 역할의 한소희가 차량을 운전해 경찰서로 돌아오는 장면이 문제였다. 운전 장면과 그가 경찰서 복도를 걷는 장면 등이 대사 없이 약 50초간 이어졌다. 10초, 20초…. 차오르는 시간과 함께 ‘이상한 욕구’가 턱 끝까지 차올랐으니, 그것은 마법의 버튼 ‘10초 건너뛰기’를 누르고 싶다는 욕구였다. 그렇다. ‘10초 건너뛰기’ 중독 증세다. 이런 증상을 겪는 이들은 OTT를 통한 콘텐츠 시청에 익숙한 MZ세대 사이에서 비교적 흔하다. ‘마이네임’의 50초처럼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 장면에서 건너뛰기 욕구는 정점을 찍는다. OTT는 시청 편의를 제공하고 콘텐츠 소비를 촉진할 목적 등으로 10초 건너뛰기 기능을 도입했다. 이 기능은 고속재생 기능과 상승 효과를 내며 시청 형태의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인터넷엔 8시간이 넘는 10부작 시리즈를 두 기능을 활용해 4시간 만에 주파했다는 식의 ‘속도전 무용담’이 넘친다. 이런 시청 형태가 병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단 몇 초의 지루함도 참지 못하는 증세는 강박증이 결합된 성인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와 유사하다는 것. 그러나 이를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MZ세대의 ‘행위 중독’ 탓으로만 돌려야 할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생각해 보면 필자도 이 기능에 거의 손대지 않고 본 작품들이 있다.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징어게임’이다. 몰입도를 높이는 세트와 음악, 공감 가는 스토리, 배우들의 열연까지…. 대사 없이 흘러가는 여백도 밀도 있었다.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도 그랬다. 러닝타임이 158분으로 길었지만 꼼꼼히 채운 서사와 레이디 가가, 알 파치노 등의 신들린 연기 덕에 건너뛰기를 못 누른다는 초조함을 느낄 새는 없었다. 실화가 바탕인 만큼 결말을 알고 봤음에도 아는 결말마저 궁금하게 만드는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연출력은 감탄스러웠다. 반면 건너뛰기 중독을 중증(?)으로 악화시킨 작품도 있다. 지난달 말 공개하자마자 세계 1위에 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이다. 학교와 좀비의 결합은 참신했다. 그러나 이게 전부. 참신한 소재만 싱싱하게 파닥였다. 좀비 떼 액션은 행위예술을 방불케 했지만 공간만 달리해 반복을 거듭한 탓에 어느 순간부터는 굳이 안 봐도 되는 ‘피 튀기는 여백’이 됐다. 학생 9명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사연을 늘어놓는 장면 등 ‘병렬식 사연 배틀 구조’는 드라마를 ‘신파 백화점’으로 만들어버렸다. 신파1 건너뛰기, 신파2 건너뛰기…. 마침내 12부작 마침표를 찍었을 때 밀려온 것은 ‘미션 클리어’의 성취감이었나, 피로감이었나.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꽉 찬 대사만이 ‘신기능’의 사용을 막는 건 아니다. 고전이 된 유지태 이영애 주연의 영화 ‘봄날은 간다’(2001년)는 뻔한 연애가 소재인 데다 천천히 흘러간다. 대사도 적고, 대나무 숲 같은 자연만 구도를 달리해 보여주는 장면도 많다. 그러나 남녀 주인공의 눈빛 등 섬세한 심리 묘사가 여백을 바닥부터 밀도 있게 채운다. 여백조차 몰입하게 되는 이유다. 일부 창작자들은 두 기능이 작품성을 훼손한다고 반발한다. 그러나 쓰라고 만든 기능을 창작자의 노고에 예우를 다하겠다며 쓰지 않을 이유는 없다. 사실 어떤 콘텐츠는 세계 상위권에 오르는 데 있어 만듦새보다는 참신한 소재와 더불어 신기능 덕을 봤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 같은 기능이 있어 지루한 콘텐츠도 끝까지 보는 이들이 많다. 중요한 건 시청 자율성 과잉의 시대에도 자율성을 반납하게 만드는 양질의 콘텐츠는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MZ세대는 조금의 지루함도 못 참는 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신기능의 영향으로 냉정해진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영화관에서마저 OTT 시청 습관이 불쑥 튀어나오는 세상에서 신기능 사용 욕구를 잠재울 작품을 만드는 건 온전히 창작자의 몫이다. 분산되고 결핍된 주의력을 온전한 몰입으로 바꿔줄 콘텐츠가 더 많이 나오길 바라본다.손효주 문화부 기자 hjson@donga.com}

    • 202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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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미줄 없이 쏘아대는 액션… 톰 홀랜드 ‘연타석 홈런’ 예감

    영화 ‘언차티드’는 시작부터 상공에 뜬 수송기에서 육중한 보급물품 번들(보급물품을 쌓은 뒤 포장한 정육면체의 덩어리)이 줄줄이 투하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톰 홀랜드와 마크 월버그는 바다를 향해 마구 떨어지는 번들에 올라타거나 강타당하며 각종 공중 액션을 펼친다. 연출을 맡은 루빈 플라이셔 감독은 긴장감이 절정에 달하는 장면 중 일부를 도입부에 배치하는 과감한 편집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 황금 찾기 나선 스파이더맨 ‘언차티드’는 팬데믹 국면 이후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중 최다 관객(748만 명)이 관람한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의 톰 홀랜드가 출연해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다. 그는 액션 어드벤처물 ‘언차티드’에서 빅터 역의 마크 월버그와 함께 ‘마젤란의 황금’을 찾아나서는 네이선 역을 맡아 연타석 홈런을 노린다. 1519년 첫 세계 일주의 꿈을 안고 항해에 나선 마젤란 일행이 천문학적 가치를 지닌 황금을 세계 어딘가에 숨겨뒀다는 가상의 설정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오락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이들이 황금을 찾을 단서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같은 세계적인 관광명소는 유럽으로 여행 간 기분이 들게 만든다. 육해공을 넘나드는 액션과 보물선이 하늘에 뜨는 장면 등 어린 시절 상상을 구현해낸 장면은 감탄을 자아낸다. 한국영화 ‘올드보이’ ‘신세계’를 비롯해 ‘블러바드’ ‘호텔 아르테미스’ 등 할리우드 영화 촬영감독을 맡았던 정정훈 감독이 촬영을 맡아 다양한 공간을 실감나게 담아낸 점도 눈길을 끈다.○ 한국 먼저 찾는 할리우드 대작들 영화가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요인은 국내 개봉일이 북미 개봉일보다 이틀 빠르다는 점이다. ‘언차티드’는 2020년 12월 개봉하기로 했지만 팬데믹으로 개봉을 미뤘다가 국내에서 16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팬데믹 기간 국내에서 개봉한 할리우드 대작 중엔 ‘언차티드’처럼 세계 최대 영화시장인 북미보다 먼저 개봉하거나 세계 각국 중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개봉한 영화가 다수 있었다. 지난해 개봉한 ‘스파이더맨: 노웨이홈’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대표적이다. 배우 마동석이 출연한 ‘이터널스’ 역시 지난해 11월 북미보다 이틀 빨리 국내에서 공개했다. ‘이터널스’는 개봉 첫 주 160만 명이 넘게 관람해 ‘마동석 효과’에 더해 빠른 개봉 효과를 톡톡히 봤다. 영화 ‘더 배트맨’은 북미보다 3일 앞선 다음 달 1일 국내 개봉된다. ‘더 배트맨’ 역시 국내 개봉이 세계 첫 개봉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계에선 할리우드 대작들이 북미보다 빨리 한국시장을 찾는 이유로 한국 관객의 반응이 즉각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이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한 홍보 마케팅의 방향을 정할 바로미터가 된다는 것. 팬데믹으로 영화관을 찾는 발길이 줄면서 홍보 마케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데 한국 관객 반응을 빠르게 파악해 다른 시장의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는 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전략으로 꼽힌다. 국내 영화관 분위기가 팬데믹으로 위축돼 있긴 하지만 셧다운 같은 극약 처방은 없었던 점과 멀티플렉스 시스템이 확고히 자리 잡은 것도 한국을 먼저 찾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한국에서 큰 붐이 일어나면 아시아 전체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할리우드 대작들이 한국을 먼저 찾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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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후 외면당한 위안부 할머니, 그 모진 세월…

    “말하자면 아가씨나 머슴애나 어린애나 내 눈에 뵈기 싫어. 그렇게 사람을 안 만나고 싶다카이. … 내 얘기하면 ‘하이고, 참 애먹었다’ 이렇게 보드랍게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 위안부 피해자 고 김순악 할머니(1928∼2010)가 생전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등을 통해 남긴 영상 증언 중 일부다. 위안부 피해를 겪은 데 더해 광복 후 반겨주는 이 한 명도 없는 세상에서 산전수전을 겪어낸 김 할머니는 한때 모두에게 마음을 닫고 위악을 부렸다. 일부 사람들은 그런 할머니를 두고 ‘깡패할매’라고 부르기도 했다. 국회에서 증언을 하고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는 등 공개 활동에 나서기 전까지 할머니는 세상으로부터 ‘보드라운’ 대우를 받지 못했다. 23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보드랍게’는 김 할머니의 일생을 다룬다. 경북 경산의 산골마을에 살던 그는 열여섯 살이던 1944년 대구에 있는 실 푸는 공장에 가는 줄 알고 동네 아저씨를 따라나섰다가 위안소로 끌려간다. “(동료들끼리 옷 등을) ‘깨끗이 해야 한다. 그래야 (공장에) 빨리 팔려간다’ 이러면서 공장인 줄 알고…. (알고 보니) 나중에 멀게 만주로 멀게 어디로 어디로….” 할머니의 증언이다. 순사에게 끌려가느니 공장에 가는 게 낫다며 태어나 처음 기차를 탄 산골소녀의 모습은 흑백 애니메이션으로 묘사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댕기머리 소녀와 아득하게 깔리는 증기기관차 소리는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간 국내에선 ‘아이 캔 스피크’ ‘귀향’ ‘허스토리’ ‘눈길’ ‘김복동’ 등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영화가 여러 편 나왔다. 이들 영화는 주로 피해가 발생한 소녀 시절과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계기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투쟁에 뛰어든 이후의 시기에 초점을 맞췄다. ‘귀향’(2016년)은 14세에 위안소에 끌려간 소녀와 동료들이 겪는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김희애가 주연한 ‘허스토리’(2018년)는 1990년대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일본 정부와 싸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관부재판’ 실화를 다룬 작품. 나문희 주연의 ‘아이 캔 스피크’(2017년)는 민원왕으로 소문난 옥분이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2019년)은 여성운동가로서의 김복동 할머니에게 초점을 맞췄다. ‘보드랍게’는 광복 후부터 노년에 접어들어 피해 사실을 알리고 여성운동가로 활동하기 전까지 김 할머니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주목한다. 김 할머니가 동두천 기지촌에 들어가는 등 ‘불편한 진실’까지 그대로 보여준다. 박문칠 감독은 “할머니는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상 직업에 대한 선택권이 사실상 없었다. 위안소를 나와서도 2차, 3차 피해를 겪은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할머니가 직접 증언하는 영상과 함께 젊은 여성들이 할머니의 증언록을 읽는 영상도 담았다. 젊은 여성들은 “말하자면” 같은 할머니 특유의 말투까지 살려가며 증언록을 읽는다. 박 감독은 “현재 여성들의 시점으로 할머니의 삶을 되새겨 보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는 2020년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할머니의 증언 영상과 애니메이션, 실제 자료 영상을 다채롭게 배치하고 속도감 있게 편집해 극영화 같은 느낌을 풍긴다. 박 감독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아무도 듣지 않았던 때 그들이 어떻게 버텨냈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할머니를 깊이 이해하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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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종이와 활자로 유럽을 뒤집은, 시대를 앞서간 편집자 이야기

    마틴 루터(1483∼1546)라고 하면 종교개혁가로서의 활약상이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는 1517년 10월 31일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 논제’를 천명하며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당사자다. 그러나 이 책 저자는 그의 다른 면모에 주목한다. 시대를 앞서간 저술가이자 뛰어난 감각을 지닌 출판편집인으로서의 루터 말이다. 독일 비텐베르크는 루터가 95개 논제를 게시한 곳으로 종교개혁의 심장부였다. 그러나 1440년대에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개발한 후 60년 가까이 지난 1502년까지도 인쇄기가 단 한 대도 없던 출판계의 변방이었다. 그런 비텐베르크를 출판업 중심도시로 만든 이는 루터였다. 그는 서른이 될 때까지 책을 출판한 적이 없었지만 95개 논제로 일약 유명인사가 되자 저술과 인쇄에 관심을 기울였다. 대중에게 자신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소수 지식인의 언어였던 라틴어에서 벗어나 독일어로 저술하는 결단을 내렸다. 장황하고 복잡한 신학적 글쓰기를 버리고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을 사용하자 그의 책은 불티나게 팔렸다. 루터의 글쓰기 자체가 막강한 브랜드가 된 것. 루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브랜드 가치 제고에 나섰다. 그는 ‘미래에서 온 출판편집인’처럼 책 디자인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평생 인쇄소를 드나들며 활자체, 용지 크기, 표지 디자인 등을 직접 점검했다. 원고는 비텐베르크 내 인쇄소들에 고루 배분했다. 덕분에 비텐베르크는 1540년대에 성업 중인 인쇄소를 다섯 곳이나 두게 됐다. 자칫 복잡하고 어려울 수 있는 종교개혁 이야기와 15, 16세기 유럽 인쇄시장 상황을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썼다. 깔끔한 번역 솜씨도 돋보인다. 인쇄와 책을 주제로 루터를 조명한 만큼 종교에 관심이 없는 독자들도 읽어볼 만하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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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 찍었지만 흥행이 글쎄… 대작 한국영화 ‘개봉 빙하기’

    지난달 26일 설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한국 영화 대작 ‘해적: 도깨비 깃발’, ‘킹메이커’를 두고 얼어붙은 극장가에 온풍을 불어넣을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연휴 기간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 탓에 2일까지 ‘해적’은 88만여 명, ‘킹메이커’는 48만여 명이 관람하는 데 그쳤다. 두 대작이 오미크론 직격탄에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내면서 극장가는 더 강한 한파를 겪고 있다. 이런 분위기 탓에 3일 현재까지 이달과 다음 달 개봉을 확정한 제작비 100억 원 이상의 한국 영화 대작은 0편. ‘해적’, ‘킹메이커’ 개봉을 끝으로 대작이 실종된 것이다. 지난달 개봉하려던 ‘비상선언’은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조치로 개봉을 연기한 이후 개봉일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항공 재난 블록버스터인 ‘비상선언’은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등 초호화 배우들이 출연하는 데다 제작비만 245억 원에 달한다.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명량’(1762만 명)의 김한민 감독이 연출한 ‘한산: 용의 출현’도 지난해 여름에서 올여름으로 개봉이 연기됐지만 거리 두기 강화 등 변수가 많아 개봉을 장담하기 어렵다. ‘타짜’를 만든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과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첫 한국 영화로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아이유)이 출연한 ‘브로커’는 각각 지난해 4월과 6월 촬영을 마쳤다. 그러나 이들 영화도 올해 개봉이 예상될 뿐 구체적인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 ‘해운대’와 ‘국제시장’ 등 1000만 관객 영화를 두 편이나 만든 윤제균 감독의 ‘영웅’은 2020년에서 올해로 개봉이 연기됐지만 정확한 개봉 시기는 나오지 않았다. 역대 박스오피스 20위 안에 든 영화 중 한국 영화는 15편으로 ‘부산행’, ‘명량’, ‘신과 함께’ 시리즈 등 대작이 다수를 차지한다. 한국 영화 대작은 관객을 극장가로 이끄는 대표적 유인 콘텐츠인 것.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가족 단위로 극장을 찾게 할 한국 영화 대작 없이는 극장가 분위기가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개봉을 미루다 하나둘 풀리며 극장가를 점령하는 할리우드 대작도 한국 영화 대작이 개봉일을 두고 눈치 싸움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달과 다음 달 개봉을 확정한 영화는 ‘355’ ‘나일강의 죽음’ ‘언차티드’ ‘더 배트맨’ ‘문폴’ 등 할리우드 대작이 상당수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대작은 거액을 들여 빚어낸 만큼 영화 시장 환경이 가장 좋을 때 개봉해야 하지 않겠느냐. 울고 싶은 심정으로 묵혀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관들은 아이맥스(IMAX)관 같은 특수관을 활용하는 전략으로 관객 붙잡기에 나섰다. CGV는 아이맥스관에서 9일 ‘듄’과 ‘덩케르크’를, 4DX관에선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각각 재개봉한다. 메가박스도 9일 ‘듄’을 돌비시네마관에서 재개봉한다. CGV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5일 개봉해 팬데믹 국면에서도 740만 관객을 모은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은 지난달 2일까지 IMAX관 객석 점유율이 43.9%에 달했다. 같은 기간 일반관 점유율 24.3%를 크게 웃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객석을 50∼70%까지만 채울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IMAX관이 관객을 끄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것. 황재현 CGV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영화관에서만 할 수 있는 관람 경험을 제공해 관객들이 영화관으로 돌아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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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미크론 직격탄에 얼어붙은 극장가…한국 대작 실종 사태

    지난달 26일 설 연휴를 겨냥해 개봉한 ‘해적: 도깨비 깃발’ ‘킹메이커’ 등 한국영화 대작 2편을 두고 얼어붙은 극장가에 온풍을 불어넣을 것이란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연휴 기간 오미크론 변이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면서 ‘해적’은 2일까지 관객 88만 여 명, ‘킹메이커’는 48만 여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두 대작이 오미크론 직격탄에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내면서 극장가는 더 강한 한파를 겪고 있다. 이런 분위기 탓에 3일 현재까지 이달과 다음달 개봉을 확정한 한국영화 대작은 ‘0편’. 새해 야심 차게 도전장을 내민 ‘해적’과 ‘킹메이커’ 개봉을 끝으로 극장가에서 대작이 실종돼버린 것이다. 지난달 개봉하려던 항공 재난 블록버스터 ‘비상선언’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로 개봉을 연기한 이후 개봉일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비상선언’은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등 초호화 배우들이 출연하는데다 순제작비만 245억 원에 달해 대표적인 한국영화 대작이다.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명량(1762만 명)’의 김한민 감독의 ‘한산: 용의 출현’도 지난해 여름에서 올 여름으로 개봉이 연기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개봉이 가능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한국 거장들의 영화와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한국영화로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아이유) 등이 출연한 ‘브로커’ 등도 올해 개봉이 예상되지만 구체적인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다. ‘해운대’와 ‘국제시장’ 등 천만 관객 영화를 두 편이나 만든 윤제균 감독의 신작 ‘영웅’은 2020년에서 올해로 개봉이 연기됐지만 정확한 개봉 시기는 나오지 않았다. 관객수 기준 역대 박스오피스 2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영화 중 15편이 ‘부산행’ ‘명량’ ‘신과 함께’ 시리즈 등의 대작이 다수 포함된 한국영화였다. 한국영화 대작은 관객 발길을 극장가로 이끄는 대표적 유인 콘텐츠인 것.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한국영화 기술력이 할리우드 못지않게 높아진데다 한국영화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날법한 일이나 한국인들의 공통적인 고민을 다루며 공감과 몰입도를 끌어올린 결과물”이라며 “가족 단위로 극장을 찾게 할 한국영화 대작 없이는 극장가 분위기가 살아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개봉을 미뤄뒀다가 하나 둘 풀리며 한국 극장가를 점령하는 할리우드 대작도 한국영화 대작들이 개봉일을 택일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2, 3월 개봉을 확정한 영화는 ‘355’ ‘나일강의 죽음’ ‘문폴’ ‘언차티드’ ‘더배트맨’ 등 할리우드 대작이 상당수다. 한 영화사 관계자는 “거액을 들여 빚어낸 대작인만큼 영화 시장 환경이 가장 좋을 때 개봉해야하지 않겠느냐. 울고싶은 심정으로 묵혀두는 것”이라며 “최상의 시기를 노리고 있지만 방역수칙이 언제 바뀔지 몰라 그게 언제일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극장가가 얼어붙자 영화관들은 ‘아이맥스(IMAX)관’ 등 각 영화관이 자랑하는 특수관 활용 전략으로 관객 붙잡기에 나섰다. 영화관에 와야만 할 수 있는 관람 경험을 제공해 관객들이 영화관과의 거리두기를 끝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CGV는 아이맥스관에서 9일 ‘듄’과 ‘덩케르크’ 등 할리우드 대작을 재개봉한다. 4DX관에선 같은 날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 재개봉한다. 메가박스 역시 9일 ‘듄’을 돌비시네마관에서 재개봉한다. CGV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5일 개봉해 팬데믹 국면에서도 740만 관객을 모은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의 경우 지난달 2일까지 IMAX관 객석 점유율이 43.9%에 달했다. 같은 기간 일반관 점유율 24.3%을 크게 웃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객석을 50~70%까지만 채울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IMAX관이 관객을 끄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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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 대 몇” 가족오락관 MC 허참 별세

    예능 프로그램인 KBS ‘가족오락관’을 25년간 진행한 MC 허참(본명 이상용·사진) 씨가 1일 간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고인이 ‘허참’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육군에서 위문공연 전문 사회자로 활동하다가 전역한 직후인 1973년 겨울이었다. 당시 고인은 서울 종로의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에 갔다가 그룹 ‘쉐그린’의 공연이 끝난 후 행운권에 당첨돼 무대로 올라갔다. 시종일관 관객을 웃긴 그에게 쉐그린의 한 멤버가 이름을 묻자 고인은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했다. 이 멤버가 “허, 참, 자기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라고 타박하자 고인은 “아, 제 이름 허참이에요”라고 맞받았다. 이후 그는 MC ‘허참’이 됐다. 이를 계기로 쉘부르의 DJ이자 MC가 된 고인은 ‘허참쇼’로 인기를 끌었다. 쉘부르에 손님으로 온 박원웅 MBC 라디오 PD는 그를 눈여겨보다가 1974년 MBC 라디오 프로그램 ‘청춘은 즐거워’ DJ를 맡겨 방송에 데뷔시켰다. 1977년 TBC ‘쇼쇼쇼’의 MC로 말솜씨를 뽐낸 그는 1984년부터 가족오락관 MC를 맡았다. 2009년 가족오락관이 종영하기까지 그의 MC 인생은 이 프로그램에 집중돼 있었다. 매주 그가 외친 “몇 대 몇”은 유행어가 됐다. 그는 2013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방송 종영에 가슴이 먹먹했다”면서도 “앞으로 25년간 큰 역사를 남길 방송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에도 한 방송에 출연하며 마지막까지 활동을 이어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3일 오전 5시 20분.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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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우학’ 공개하자마자 넷플릭스 세계 1위

    넷플릭스의 올해 첫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지우학)’이 공개되자마자 세계 1위에 올랐다. 2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세계 190여 개국에서 동시에 공개된 ‘지우학’은 1일 현재 캐나다 프랑스 일본 등 54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며 지난달 29일부터 나흘째 1위를 지키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2위여서 조만간 1위에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지우학’은 공개 후 3일 만에 1억2479만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 지난달 24∼30일 넷플릭스 영어 드라마 부문 1위를 차지한 ‘오자크 시즌4 파트1’은 일주일 시청시간을 다 합쳐도 9634만 시간에 그쳤다. ‘지우학’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효산고등학교에 고립된 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12화에 걸쳐 다뤘다. 2009∼2011년 연재된 동명의 네이버 웹툰이 원작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 최근 상황을 대거 반영해 눈길을 끈다. 학교폭력을 비롯해 “선내에 대기하라”는 잘못된 안내 방송으로 학생들이 대거 희생당한 세월호 사건 등 각종 사회 문제를 은유한 장면도 많다. 외신의 호평도 이어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넷플릭스의 한국 좀비쇼가 당신을 강타할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매우 기발한 설정”이라고 극찬했다. 이어 코로나19 사태를 좀비 바이러스 확산 사태로 은유한 것 등 다양한 은유를 두고는 “훌륭한 솜씨”라고 평가했다.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도 “‘오징어 게임’과 마찬가지로 악몽 같은 공간적 배경을 활용해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을 주는 드라마”라고 호평했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지우학’의 세계 1위는 한국에서는 이미 익숙해진 여러 사건과 현상이 해외에서는 낯설고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진 결과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 전개가 다소 늘어지고 학내 문제를 그리는 과정에서 성폭력 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장면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는 점은 아쉬운 요소로 꼽힌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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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바이러스가 밉다고? 잘 쓰면 약된다

    “대다수의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매우 유익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저자의 이 같은 말은 화를 돋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테리오파지’로 불리는 바이러스 집단은 박테리아 병원균을 파괴하는 등 인간에게 큰 도움을 준다. 연간 30억 t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감소시키며 지구 온난화 억제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기도 한다. 저자는 미국 미네소타대 의대 명예교수이자 40년간 감염병 전문가로 활동한 전문의. 그는 박테리아, 고세균류, 곰팡이는 물론이고 학자에 따라 미생물로 치지 않는 바이러스까지 미생물로 분류한 뒤 이를 “우리의 친한 친구”라고 말한다. 인간의 장에 있는 약 40조 개로 추정되는 박테리아는 음식물 소화에 필수적이다. 친구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 그러나 미생물은 인류 최대의 적이기도 하다. 코로나19는 세계에서 550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 ‘반점투성이 괴물’로 불린 천연두는 18세기 유럽인 중 매년 4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았다. 인류를 구하기도 죽이기도 하는 ‘병 주고 약 주는’ 미생물 이야기를 의학적 과학적 지식 없이도 술술 읽힐 정도로 쉽게 풀어냈다. 위장 내 감염증을 치료하기 위해 건강한 기증자의 대변을 이식하는 ‘대변 세균요법’처럼 인간의 독창성과 미생물의 결합이 이뤄낸 놀라운 결과 및 인류를 구할 미생물의 미래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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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부세 5000만원으로 밝혀진 남편의 두 얼굴

    종합부동산세 세율이 오르면서 세금 폭탄을 맞지 않을까 걱정하는 아내를 남편이 다독인다. 아내 입에 과일을 넣어주며 염려 말라는 남편. 아내에게도 자녀에게도 다정하기만 하다. 얼마 후 아내는 크게 놀란다. 종부세 고지서에 5000만 원이 찍혀 있었던 것. 과세대상 물건 목록을 살펴본 아내는 기절할 지경이 된다. 남편은 아내도 모르는 집을 한 채 더 갖고 있었다. 남편이 소유한 또 다른 집 앞에서 잠복하던 아내는 봐서는 안 될 광경을 보게 된다. 문제의 집에서 낯선 여성이 나오더니 “왔어요?” 하며 자신의 남편을 반갑게 맞이한다. 남편은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채널A와 SKY가 공동 제작한 부부 토크쇼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 29일 오후 11시 채널A와 SKY에서 사건의 진실을 동시에 공개한다. 실제 부부가 출연해 갈등을 터놓는 ‘속터뷰’에서는 막내 MC 송진우와 그의 일본인 아내 미나미가 출연한다. 미나미는 “바지는 찢어져 있고 옷에 껌이 붙어 있었다”며 남편의 술버릇을 폭로한다. 이어 “○○ 같은 것도 붙어 있더라”라고 하자 최화정 홍진경 안선영 등 MC들은 “진짜 최악”이라며 질색한다. 작정하고 나온 미나미의 폭로와 이에 맞서는 송진우의 설전도 공개된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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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PI “공수처의 기자 통신조회는 언론자유 침해”

    국제언론인협회(IPI)는 한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기자 120명의 통신내역을 무더기로 조회한 것에 대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기자의 취재원 보호 권리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IPI는 ‘기자의 통신 기록에 접근하는 것은 언론 자유를 위태롭게 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25일(현지 시간) 내고 “외신을 포함해 22개 언론사 기자 120명의 통신 자료에 접근한 공수처의 관행에 대해 조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공수처가 설명도 없이 기자들의 통화 기록을 방대하게 수집했다. 이는 부패 혹은 불법 행위에 대한 정보를 가진 취재원이 기자에게 제보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공수처의 임무가 고위층 부패 척결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라고 비판했다. 스콧 그리핀 IPI 부국장은 “공수처의 무분별한 통신 자료 조회는 민주주의적 규범에 위배되는 행위”라며 “수사관은 언론인이 연관된 모든 형태의 통신 기록에 접근하기 전에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IPI는 120개국 언론인과 미디어 경영인 등이 참여한 단체로 1950년 결성된 후 언론 자유 수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도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언론 탄압 사례를 언급하며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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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좀비로 돌아온 엄마… 불효자 5형제의 ‘좌충우돌 효도기’

    노모의 장례를 치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형제들은 막걸리를 걸치며 이야기를 나눈다. “엄니만 살아계시면 내가요. 참말로 잘할 수 있어요.” 그러나 아무리 깊이 후회한들 엄마가 살아올 리 없다. 그런데 노모가 살아온다. 아들들이 재산 문제로 술상까지 뒤엎으며 몸싸움을 벌이던 깊은 밤, 엄마가 돌아왔다. 좀비가 돼서. 27일 개봉하는 영화 ‘효자’는 영화적 상상력으로 이 세상 불효자들의 소원을 실현시킨다. 엄마가 하필 좀비가 돼 돌아온다는 설정 자체가 호기심을 유발시킨다. 연극계에서 관록 있는 배우 연운경이 “어으으” 하는 소리 외엔 별다른 대사가 없는 ‘좀비 엄마’역을 맡아 열연했다. 전북의 한 시골마을에 모여 사는 다섯 형제는 배우 김뢰하 정경호 이철민 박효준 전운종이 맡아 맛깔 나게 그렸다. 다섯 형제는 “인자 효도를 시작해보자”며 좀비를 극진히 모신다. 탄탄한 연기 내공을 자랑하는 이들은 “엄니한테 인마 좀비가 뭐여 좀비가” 등의 대사를 진지한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소화해낸다. 최근 좀비물 속 좀비들이 초고속으로 뛰어다니며 살육을 일삼는 것과 달리 ‘엄마 좀비’는 느리다. 사람을 해치지도 않는다. 힘도 없고 몸도 굳은 데다 잘 걷지 못하는 건 생전 노인일 때나 좀비일 때나 다를 게 없다. 아들들은 생전 노모를 피했듯 좀비 엄마를 점점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과연 자신들이 장담했듯이 좀비로 돌아온 엄마에게 못 다한 효도를 다할 수 있을까. 이훈국 감독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효도는 우리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촌스러운 소재로 여겨지는 게 안타까웠다”라며 “대중에게 효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좀비물 형식을 빌렸다”고 말했다.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를 연출한 이 감독의 작품답게 연극의 장점을 녹인 것은 물론, 웹툰 같은 느낌과 영화의 장점을 모두 살렸다. 설 연휴 극장가를 양분할 대작 ‘해적: 도깨비 깃발’과 ‘킹메이커’ 사이에서 ‘동방예의좀비극’을 표방한 영화 ‘효자’가 이변을 일으킬 수 있을까.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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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산싸움 벌이던 밤…죽은 노모가 돌아왔다, 좀비가 되어

    노모의 장례를 치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아들들은 막걸리를 걸치며 이야기를 나눈다. “엄니만 살아계시면 내가요. 참말로 잘할 수 있어요.” 그러나 아무리 깊이 후회한들 엄마가 살아올 리 없다. 그런데 이 영화, 죽은 엄마가 살아온다. 아들들이 재산 문제로 술상까지 뒤엎으며 몸싸움을 벌이던 깊은 밤, 돌아온다. 좀비가 돼서. 엄마가 살아온다면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효도할 수 있을까. 영화 ‘효자’는 영화적 상상력으로 이 세상 불효자들의 소원을 실현시킨다. 엄마가 하필 좀비가 돼서 돌아온다는 참신한 설정만으로도 호기심이 증폭된다. 영화를 연출한 이훈국 감독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10년 전 시나리오를 쓸 당시만 해도 서양문화인 좀비와 한국문화의 간극이 굉장히 컸다”라며 “좀비라는 소재를 가장 한국적인 느낌으로 녹여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연극계에서 관록 있는 배우 연운경이 ‘어으으’하는 소리 외엔 별다른 대사가 없는 ‘좀비 엄마’역을 소화해냈다. 전북의 한 시골마을에 모여 사는 다섯 형제 역을 맡은 이들은 김뢰하 정경호 이철민 박효준 전운종 등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신스틸러들. 이들은 “엄니한테 인마 좀비가 뭐여 좀비가” “좀비가 아니라 엄니여” 등의 대사를 진지한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소화해낸다. 탄탄한 연기 내공을 자랑하는 감초 배우들이 보여주는 억지로 웃기려하지 않는 절제된 코믹 연기는 이 영화를 봐야할 또 다른 이유다. 이들은 좀비를 엄마로 인정하고 “인자 효도를 시작해보자”며 못 다한 효도에 돌입한다. 맛있는 음식에 예쁜 옷에…. 효도 경쟁은 치열하다. 그러나 엄마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어으으” 할 뿐이다. 최근 좀비물 속 좀비들이 초고속으로 뛰어다니며 살육을 일삼는 것과 달리 ‘엄마 좀비’는 느리다. 누군가를 해치지도 않는다. 힘도 없고 몸도 굳은데다 잘 걷지 못하는 건 생전 노인일 때나 좀비일 때나 다를 게 없다. 아들들은 점점 엄마가 부담스러워진다. 이들은 과연 그들이 장담했듯이 다시 살아 돌아온 엄마에게 끝까지 효도할 수 있을까. 이 감독은 “효도는 우리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촌스럽고 식상한 소재로 여겨지는 것이 안타까웠다”라며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효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좀비물 형식을 빌렸다”라고 말했다. 좀비 엄마가 등장할 때 긴장감은 고조되고 공포감도 극대화된다. 평범한 한국 시골 마을과 ‘서양 귀신’ 좀비의 기묘한 조합과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상영시간 내내 킥킥거리게 된다. 그러다 영화 후반부 가슴이 먹먹해진다. 죽어서도 희생하는 엄마의 모습을 상징한 장면에선 울게 될지도 모른다. ‘병맛스러움’과 긴장감, 웃음과 슬픔을 모두 아우르는 이 문제적 작품은 설 연휴 직전 개봉한다. 연극 ‘죽여주는 이야기’를 연출한 이 감독 작품답게 연극의 장점은 물론 웹툰과 영화의 장점을 모두 살렸다. 설 연휴 극장가를 양분할 것으로 전망되는 대작 영화 ‘킹메이커’와 ‘해적: 도깨비 깃발’ 사이에서 ‘동방예의좀비극’을 표방한 이 작품이 이변을 일으킬 수 있을까. 27일 개봉.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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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는게 정의죠” vs “정의롭게 이겨야”…1971 대선 다룬 ‘킹메이커’ 온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전남 목포. 야당인 신민당 김운범 후보(설경구) 관계자들이 선거 전략가 서창대(이선균)의 지휘 아래 여당 선거운동원으로 위장한다. 이들은 앞서 여당 후보가 주민들에게 나눠준 와이셔츠 등을 거둬들인다. 이른바 ‘줬다 뺏기’. 여당 후보에 대한 민심은 급격히 악화된다. 김 후보 측은 거둬들인 물품에 ‘신민당’ 문구를 새긴 뒤 주민들에게 다시 나눠주며 표를 얻는다. 서창대가 짜낸 각종 전략에 “목숨을 바쳐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명연설이 더해져 김운범은 3선에 성공한다. 26일 개봉하는 영화 ‘킹메이커’는 김운범과 그의 곁에서 기상천외한 선거 전략을 펼치는 서창대의 이야기를 다룬 정치 드라마다. 김운범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을, 서창대는 ‘선거판의 여우’로 불린 전략가 고 엄창록 씨를 모델로 만든 캐릭터다. 설경구는 18일 인터뷰에서 “DJ는 누구나 아는 존경받는 인물이어서 캐릭터에 대한 부담이 굉장히 컸다”며 “극 중 이름도 원래 실명 그대로였는데, 변성현 감독에게 바꾸자고 계속 요청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의 큰 뼈대는 실화를 옮겨왔다. 당내 비주류 김운범은 서창대의 전략에 힘입어 1970년 신민당 경선에서 주류 김영호를 꺾고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 파란을 일으킨다. 실제 제7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YS와 DJ의 경선을 바탕으로 했다. 여기에 엄창록의 승리 전략과 당내 뒷이야기를 상상으로 풀어내 영화적 긴장감을 살렸다. 설경구는 1960, 70년대 당시 DJ의 연설 제스처는 물론이고 특유의 말투까지 적절히 모사해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재창조했다. 그는 “모사만 할 순 없는 노릇이어서 나와 DJ의 중간 지점에서 타협했다”고 했다. 서창대는 선거에서 김운범을 수차례 승리로 이끌지만 번번이 그와 부딪친다. 서창대는 대의를 이루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단 이겨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인물. 반면 김운범은 정도(正道)를 고집해 그와 대립한다. ‘독재 타도’란 큰 목표는 같기에 손을 잡지만 이들의 동행에는 늘 불안함이 도사린다. 김운범에게 빛을 비추는 반면 서창대는 어둠에 갇힌 것처럼 표현해 두 사람의 관계를 은유하는 등 빛과 그림자를 활용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대선 후보 경선 당일 각 후보 진영의 치열한 심리전과 심리적 우위를 보여주기 위해 삼각 계단을 배경으로 대화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등 감각적인 미장센도 눈에 띈다. 약 50, 60년 전 이야기를 다루지만 이 같은 연출력 덕분에 세련미가 넘친다. 다만 서창대의 다소 원초적인 네거티브 전략을 김운범은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그려지는 등 영화가 DJ와 진보 진영을 미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DJ의 정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 27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것과 맞물리면서 이 같은 논란은 확산될 조짐도 보인다. 그러나 감독은 영화 후반부에 청와대 ‘이 실장’(조우진)의 대사를 통해 여야가 생각하는 정의가 다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비교적 합리적인 캐릭터로 묘사되는 이 실장은 서창대를 향해 “당신의 대의가 김운범이면 나의 대의는 각하”라고 말한다. 이선균은 “영화는 선거 전쟁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영화를 보신다면 누군가를 미화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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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준호 감독 차기작은 복제인간 소재 SF영화”

    봉준호 감독(53·사진)이 차기작으로 미국 제작·배급사 워너브러더스의 공상과학(SF) 영화를 선택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19일(현지 시간)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봉준호 감독이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SF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화 제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원작은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이 올해 상반기에 출간할 예정인 소설 ‘미키7’이다. 소설은 얼음세계를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인간이 하기 어려운 위험한 일을 대신하는 복제인간의 이야기를 그렸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애슈턴은 이 책을 공식 출간하기도 전에 봉 감독에게 원고를 보냈다. 봉 감독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배우 캐스팅 등 영화 제작 절차가 일부분 시작됐다. 영화 주인공은 ‘바바리안’, ‘테넷’, ‘트와일라잇’에 출연한 영국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맡는다. 패틴슨은 올해 3월 개봉할 예정인 ‘더 배트맨’에서 배트맨을 연기해 차세대 배트맨으로 주목받고 있다. 버라이어티는 “봉 감독은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그의 과거 각색 경험 등을 놓고 볼 때 영화 내용은 소설과 다소 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화 제작에는 봉 감독의 제작사인 오프스크린과 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할리우드 제작사 플랜B도 참여한다. 플랜B는 배우 윤여정이 출연해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미나리’를 제작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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