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윤

김기윤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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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특파원

pep@donga.com

취재분야

2026-01-10~2026-02-09
문학/출판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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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나우두 유니폼 100벌 모으다 보니… 스포츠 패션의 세계 보였다”[덕후의 비밀노트]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브라질 출신의 21세 축구선수 호나우두는 한 소년의 마음을 마구 헤집어 놨다. 그의 드리블, 슛, 발놀림 하나하나가 황홀했다. 그때부터였다. 부모님을 졸라 한두 벌씩 사 모으던 그의 유니폼은 100여 벌. 프로 데뷔 시즌부터 그의 은퇴 시즌 유니폼까지 모조리 수집한 이 호나우두 덕후는 축구 유니폼의 매력을 알리는 전도사가 됐다. 처음에는 재미 삼아 친구들과 모은 유니폼 사진을 찍어 올리던 최호근 오버더피치 대표(31)는 ‘덕후력’을 발휘해 현재 국내외 유명 구단 및 스포츠업체와 협업하는 성공한 덕후다. 시각디자인 전공자로서 직접 유니폼을 디자인하고 제작도 한다. 숨은 역사, 가치, 문화를 전하는 웹 매거진도 발행한다. 최근 국내에선 처음으로 백화점에 유니폼 매장을 냈다. 마이너 장르인 스포츠 패션을 기성 스트리트 패션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24일 서울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에서 만난 그는 “지금도 호나우두를 한 번이라도 보는 게 인생 소원”이라고 했다.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유니폼을 수집했나.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다. 해외 중계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스포츠 뉴스로 호나우두 선수를 봤고 무작정 부모님께 유니폼을 사달라고 했다.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내버려두셨던 어머니 덕분이다. 서른이 넘어서도 수집하다 보니 한때 300벌이 넘었다.” ―가장 비싼 수집품은…. “호나우두가 브라질에서 프로에 데뷔한 구단인 크루제이루 유니폼이 100만 원이 넘는다. 2002년 출시한 그의 시그니처 축구화 제품을 몇 년 전 250만 원에 구매했다. 출시할 때는 25만 원이었는데….” ―스포츠 유니폼의 매력은…. “옷마다 담긴 역사, 이야기가 제각각 달라 매력적이다. 1990년대 유니폼은 제 유년기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다. 와인 음반 책 우표 옷 등 다른 수집품처럼 전 세계서 매년 수천 벌씩 새로운 게 쏟아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수집품의 가치가 오르는 것도 매력이다. 유니폼별 역사가 궁금하면 저희 웹 매거진을 보면 된다.(웃음)” ―좋은 유니폼 선택 및 관리법은…. “해외 직구의 경우 구매 전 사진을 통해 가품 여부, 상태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믿을 만한 판매자나 매장을 통해 사야 한다. 일상복이자 수집품인 특성상 밝은 색 유니폼은 변색의 우려가 있어 착용 후 물로만 살짝 헹구면 좋다. 난방이 잘되는 곳에선 종종 유니폼 부착물이 녹아내리기 때문에 습기가 적고 찬 곳에 보관하길 추천한다. 옷이 낡더라도 와인처럼 빈티지스러운 멋이 있다.” ―수집을 시작하고 문화를 소개하며 가장 뿌듯했던 기억은…. “가끔 홍익대 거리에 여러 사람이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걸 보면 그래도 제가 1%는 기여하지 않았나 싶다. 한때 TV 경연 프로그램에서 래퍼들이 입는 유니폼을 협찬하고 폭발적 반응을 얻은 것도 기억난다. 우리가 타인의 취향에 인색한 편이라 이 문화를 바꿔보고 싶다. 저는 미대 입시 시험장에도 유니폼을 입고 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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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든 살 박정자,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여든 살까지 이 공연을 하고 싶다.” 박정자(79)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18년 전 그가 처음 무대에 오르며 호기롭게 던진 이 약속을 그는 현실로 만들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이 된 배우 박정자가 5월 1일 개막하는 연극 ‘해롤드와 모드’에서 80세 노인 모드 역할로 관객과 만난다. 그가 ‘해롤드와 모드’에 출연하는 건 이번이 일곱 번째다. 22일 서울 중구의 한 문화공간에서 열린 연극 ‘해롤드와 모드’ 기자간담회에서 박정자는 “오래전부터 ‘80’을 핑계로 공연한다고 상상만 해왔는데 벌써 이 자리에 와버렸다”고 했다. 이어 “지금쯤 꽤 성숙한 배우가 되어 있을 줄 알았지만 여전히 저는 미성숙하다. 그래도 배우는 성자처럼 너무 지혜롭고 성숙하면 안 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박정자의 상대역인 해롤드를 연기하는 임준혁 오승훈을 비롯해 연출을 맡은 윤석화, 프로듀서인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가 참석했다. 1987년 김혜자 김주승 주연으로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이후 박정자의 ‘시그니처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2003년 그는 ‘19 그리고 80’(‘해롤드와 모드’의 당시 제목)에 출연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뒤이어 2004, 2006, 2008(뮤지컬), 2012, 2015년까지 무대에 섰다. 2015년 공연부터 원제 ‘해롤드와 모드’로 제목이 변경됐다. 그가 한 역할로 자리를 지키는 동안 상대역으로 이종혁 김영민 윤태웅 강하늘 등 스타들이 거쳐갔다. 원작은 미국에서 1971년 소설과 동명의 영화로 출간 및 제작됐으며, 1973년 연극으로 탄생했다. 박정자가 “그 장면쯤 가면 슬쩍 긴장이 된다”고 털어놓을 만큼 작품 속 키스신은 초연 때부터 화제였다. 틀에 얽매이길 싫어하며 ‘자살 쇼’를 벌이는 19세 소년이 유쾌한 80세 할머니와 사랑에 빠지는 줄거리는 지금도 파격적이다. 이 유별난 사랑 이야기는 상처받은 영혼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는다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박정자는 “해롤드를 매번 무척이나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으면 연기가 안 된다”며 “단순한 포옹과 키스가 아니라 모드와 해롤드의 마음이 가장 순수하게 만나는 찰나”라고 했다. 윤석화는 “전문 연출가는 아니지만 박정자라는 거목과 묘목 같은 여러 후배들과 함께라면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이어 “연극 외 이물질이 없는 작품으로 만들겠다. 소외당한 청춘과 극의 본질에 더 다가서려 노력하겠다”고 했다. 간담회 중 박정자는 이 작품의 ‘마지막’을 넌지시 언급했다. 그는 “주변에서 90까지 하라는 농담도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이 나이 먹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더 이상 욕심은 없다. 아주 사뿐하고 가볍게 내려오고 싶다”는 바람이다. 임준혁 오승훈은 “충실하게 해롤드를 연기하는 게 선배의 마지막에 누가 되지 않는 길”이라고 했다. 박명성 프로듀서는 “박정자 선생님이 건강을 잘 관리하신 덕분에 연극을 올릴 수 있다”며 “대배우들이 만들어 가는 작품은 큰 귀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모드는 극 중 이런 대사를 외친다. “어쩌면 이렇게 달라졌을까.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60여 년간 무대만 바라보고 달려온 박정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일지 모른다. 5월 1∼23일 서울 강남구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 전석 6만5000원. 14세 이상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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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과 미술 사이… 분장한 배우 그림, 갤러리서 한바탕 놀다

    이것은 연극인가, 미술인가. 분장(扮裝)을 마치고 한바탕 무대를 놀던 배우들이 전시관에 그림으로 섰다. 공연 중 한 장면을 촬영해 빼다박은 듯, 조명 각도마다 달라지는 배우의 빛깔을 담아냈다. 무대 위 배우들의 숨결을 머금은 그림들이 생명력을 뿜어낸다. 분장을 회화(繪畵)로 변신시킨 주인공은 분장 디자이너 이동민(59). 한국 연극계에서 그를 빼고는 분장을 논하기 어렵다. 1986년부터 지금껏 35년간 오로지 분장 디자이너로 활약한 그가 26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혜화아트센터에서 ‘이동민 분장畵 전시회’를 연다. 분장화를 주제로 한 전시는 국내 처음이다.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만난 그는 “화가로서는 이번 전시회가 데뷔 무대나 마찬가지다. 분장화라는 낯선 길을 열어가는, 조심스럽고 긴 여정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연극을 중심으로 영화, 뮤지컬, 오페라까지 평생 300여 작품의 분장을 도맡았던 그는 이번 전시에서 연극 세 편 속 분장화 22점을 추렸다. 우선 제52회 동아연극상 대상을 수상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의 모든 인물을 그린 16점, 연극 ‘봄날’의 배우를 그린 3점이 전시된다. ‘조씨고아…’는 조씨 가문이 멸족되는 재앙 속에서 마지막 핏줄을 살리려는 노력과 복수를 그렸다. ‘봄날’은 권력, 재물 등 모든 걸 가지려는 아버지와 착취당하는 아들들을 그린 작품으로, 1984년 초연 때부터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오현경(85)의 대표작이다. “작품이 잘 나와야 분장도 잘 산다”는 이 씨의 지론에 따라 분장의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을 골랐다. 아직 공연을 올리지 않은 연극 ‘오셀로’ 속 인물에 그의 독자적 해석을 입힌 3점도 그렸다. 이른바 ‘콘셉트 분장화’다. 그는 “모든 배우에게 초상권 허락을 받긴 했는데…. 분장하고 다르게 제 그림까지 썩 좋아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그는 “제 손을 거친 뒤 무대에 오른 배우들을 떠올리거나 공연 사진을 보면서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 반면 콘셉트 분장화의 배우들은 얼굴 근육, 감정을 최소한으로 그렸다”고 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선 굵은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은 대체로 그의 그림에서 진한 색감과 강한 명암 대비로 표현됐다. 평생 배우의 입체적 얼굴을 도화지 삼아 숨결을 불어넣던 그가 평면적 그림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뭘까. “분장의 해석은 결국 연출자의 큰 구도에 맞춰야 하는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오직 분장의 관점에서 그림을 표현해 보고 싶었죠. 연극과 미술이 만나는 제3의 지대에서 새 장르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18년부터 구상한 전시는 큰 진통을 겪었다. 틈틈이 스승들을 찾아다니고 화실에서 공부하며 차곡차곡 그림을 그려뒀는데 지난해 이사 과정에서 19점을 도난당했다. 때문에 전시회에는 새로 그린 그림이 더 많다. “다시 그리면서 표현이 좋아졌다”지만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다. 원로 연출가인 이원경(1916∼2010)의 딸로 어려서부터 극장과 분장실에서 자란 그는 “연출을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는 척하며 평생 분장에만 심취했다. 일본 유학도 다녀왔다. 딱히 왜 빠져들었는지 스스로도 이유를 찾기 힘들다. 그의 고집에 아버지도 나중엔 내버려뒀다고 한다. 분장실은 걷기 시작할 때부터 매일 찾던 생활 터전이었던 셈이다. 누가 분장이 뭐냐 물으면 그는 “텍스트 속 인물을 해석하고 배우를 캔버스 삼아 육화(肉化)하는 작업”이라고 답한다. 이번 전시는 인물을 육화하던 그의 손이 빚은 새로운 극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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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 이렇게 누워 모든 활동을 거부하다”

    외줄타기 하듯 위태롭게 출퇴근만 반복하던 마흔네 살의 남성 현서. 가장의 무게가 짓누르는 일상, 고단한 직장생활에 지쳐버린 그는 누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극을 관통하는 주제를 첫 대사부터 쏟아낸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이기려면 누군가가 패해야 한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뒤처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매 순간 수많은 사진을 찍고….” 이어 “그래서 나는 여기 이렇게 누워서 모든 사회적 활동을 거부한다”고 선언한다. 현서 역의 김명기 배우(41)는 이윽고 진짜 무대 한복판에 대(大)자로 누워버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몸은 무대 아래로 뿌리를 내리듯 꼼짝달싹 않는다. 누워야 하는 당위를 설명하는 첫 3분을 빼고 공연 시간 100분 내내 누워서 허공을 바라보고 연기한다. 뒤통수가 눌려 납작해질 정도다. 가끔 옆으로 돌아누우려 몸을 꿈틀댈 뿐. 독특한 형식의 연극 ‘X의 비극’은 경쟁 사회에서 쓰러지는 자와 버티는 자의 이야기를 그린 국립극단 신작이다. ‘X’는 인터넷이 생겨나 풍요 속에 20대를 보낸 뒤 외환위기, 닷컴버블 등 풍파를 겪고 어느덧 중년이 된 X세대를 뜻한다. 동시에 미지수 ‘X’를 상징한다. X의 자리에는 현재를 사는 누구든 대입할 수 있다. 작품은 뻗어버린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주변인을 냉소적으로 조망한다. 극의 매력은 비극이 정점에 달하려는 순간 인물들이 역설적으로 희극적 대사를 뱉는 것. “정자와 난자가 만날 빌미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며 현서가 자신을 저주스러운 세상에 태어나게 만든 어머니를 질책하면, 어머니는 “지금 눕지 말고 정자일 때부터 드러눕지 그랬냐”고 응수하는 식이다. 회색빛의 건조한 무대는 시종일관 딱딱한 우리 현실을 드러낸다. 이유진 작가의 글에 윤혜진이 연출을 맡았다. 출근하자마자 눕고 싶고, 누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게 우리네 소망. 그런데 몇 달씩 누군가 누워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희극과 비극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극은 점차 비극으로 물들어간다. 처음엔 “회사에서 누워 있으라고 시켰냐, 일종의 재택근무냐”며 대수롭지 않아하던 현서의 아내도 이내 생계의 위협에 직면한다. 현서의 친구 우섭과 외도를 시작하더니 그에게 아들 교육비를 부탁한다. 주인공의 고3 아들과 어머니도 마치 식물이 된 듯한 현서의 모습에 고뇌하긴 마찬가지. 한 가정이 금세 무너져 내린다. 이 상황을 누워서 목도한 현서는 “그래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며 영혼이 빠져나간 듯 읊조린다. 2005년 데뷔한 김명기는 배우 인생 16년 만에 현서 역으로 단독 주연을 꿰찼다. 극단 마방진의 1기 단원으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스카팽’ 등을 거쳤다. 최근 국립극단에서 만난 그는 “인간관계, 가정, 직장 스트레스에서 오는 ‘번아웃’은 X세대 끝자락에 걸친 저를 포함해 모두 공감할 이야기”라고 했다. 극의 형식에 대해 “몸이 가려워도 긁지 못하고 무대 바닥의 한기(寒氣)를 견디는 게 힘겹다”면서도 “몸을 고정한 채 대사와 표정만으로 뻗어내는 ‘눕는 연기’의 묘한 희열이 있다”고 했다. 다만 “대사가 없을 때 밀려오는 졸음을 참는 정신력도 필수”라며 웃었다. 살지도 죽지도 못해 눕기를 택한 현서에 대해 김명기는 “삶에는 다 비극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린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과연 현서는 몸을 일으킬 수 있을까. 4월 4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소극장 판, 전석 3만 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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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전’ 개관 30주년… 대학로 소극장 문화의 산 역사

    배울 ‘학(學)’에 밭 ‘전(田)’. 대학로에서 밭농사를 시작한지 올해로 어언 30년. 시간이 지나면 텃밭도 자리를 잡고 땅도 비옥해지건만, 유독 이 농사는 험하고 거친 길을 걸었다. 매번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도 아니고, 농사에 힘쓴 이들이 부농(富農)이 되지도 않았다. 척박한 한국 공연계를 닮았다. 남들이 “돈 안 되는 일”이라며 외면할 때도 이 텃밭은 꿋꿋하게 한국 문화예술계에 든든한 토양이 되었다. 1991년 3월 1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터를 잡은 학전(學田) 소극장이 15일로 개관 30주년을 맞는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번듯한 30주년 기념행사는 준비하지 못했다. 하지만 늘 묵묵하게 제 역할을 해왔듯 학전은 13일부터 다음 달 25일까지 어린이 뮤지컬 ‘진구는 게임 중’을 무대에 올렸다. 독일 그립스 극단의 ‘Flimmer Billy’를 학전 대표인 김민기 연출가가 직접 번안한 작품이다. 과거 서울대 문리대가 대학로에 있던 시절, 학내 식당에서 이름을 따온 학전은 ‘아침이슬’을 작곡한 김민기 대표가 설립했다. 학전이 들어선 1990년대 초는 아이돌 가수들의 댄스 음악이 대중음악을 주도하면서 통기타를 들고 노래하던 이들이 설 곳을 잃고 방황하던 때였다. 학전은 이들을 위한 라이브 무대를 제공해왔다. 학전을 중심으로 형성된 소극장 문화는 이후 홍대로 번져 오늘날 인디밴드 공연문화의 밑거름이 됐다. 학전과의 인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고(故) 김광석이다. 이곳에서 1000회 공연을 열었고, 1991∼1995년엔 매년 라이브 콘서트도 했다. 2008년 그를 추모하는 ‘김광석 노래비’가 학전에 세워졌다. 매년 학전에선 김광석 노래 부르기 대회도 열린다. 이 밖에 들국화 안치환 노영심 이소라 장필순 동물원 여행스케치 유리상자 윤도현 성시경 장기하도 학전에서 노래했다. 국내 뮤지컬과 연극 역사에서도 학전을 빼놓을 수 없다. 1994년 선보인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독일 원작을 김 대표가 번안한 작품이다. 소외계층과 근현대사의 아픔을 그린 작품은 원작자로부터 “원작을 뛰어넘는 각색”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2008년 11월 4000회 공연까지 배우 설경구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가 거쳤으며 2018, 2019년 특별공연도 학전에서 열렸다. 뮤지컬 ‘개똥이’ ‘의형제’ ‘모스키토’도 학전의 주요 레퍼토리다. 학전은 어린이극 최후의 보루로도 통한다. 입시교육과 TV, 뉴미디어만으로 아이들의 정서적 성장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김 대표의 철학이 반영됐다. “제가 힘들다고 그것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는 집념으로 지금껏 어린이 공연을 지켰다. 개관 당시 김 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여기는 조그만 곳이기 때문에 논바닥 농사가 아니다. 못자리 농사다. 못자리 농사는 애들을 촘촘하게 키우지만, 추수는 큰 바닥으로 가서 거두게 될 것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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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보이는 한국이 1등’ 毒이 된 찬사 “한바탕 굿판서 ‘브레이킹’ 해버릴게”

    ‘브레이크 댄스’는 태생부터 무언가를 깨기 위해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DJ들이 힙합 음악 간주에서 즐겨 쓰던 ‘브레이크’ 비트에서 이름을 따온 이 춤은 1970년대 미국 뉴욕 슬럼가에서 생겨났다. 당대 주류였던 백인 문화의 프레임을 깨듯 거리에서 역동적 안무로 저항 정신을 표현했다. 국내서도 마찬가지다. 한때 ‘양아치의 일탈’ ‘불량 문화’로 괄시받던 브레이크 댄스는 편견을 깨고 어엿한 춤의 한 장르이자 예술로 거듭났다. 2000년대 초 한국 비보이(남성 브레이크 댄서)들은 보란 듯 세계 춤판을 제패했고 국악, 클래식, 발레 등 타 장르와도 한 무대에 섰다. 그 선두에는 2002년 전북 전주서 태동한 비보이 그룹 라스트포원(Last For One)과 수장 조성국 대표(38)가 있다. 라스트포원은 비보이 월드컵으로 불리는 독일 ‘배틀 오브 더 이어’에서 2005년 우승, 2006년 준우승을 했다. 조 대표는 또 한번 벽을 깰 ‘파격’을 준비 중이다. 서울 마포아트센터가 30일 유튜브, 네이버TV를 통해 선보일 국악M페스티벌 ‘꼬레아 리듬터치’의 ‘밤섬 부군당 도당굿 오마주’ 무대서 굿판과 어우러진 공연을 앞두고 있다. 최근 마포구 서울마포음악창작소에서 만난 그는 “브레이크 댄스는 형식적으로 정해진 게 없어 타 장르와 잘 섞인다. 틀에 갇히지 않는 즉흥성이 매력”이라고 꼽았다. 이어 “국악의 핵심 정서가 ‘한(恨)’인데 배고픈 상황에서 간절하게 춤만 춘 비보이도 한이 많다”며 웃었다. 이번 공연은 서울 밤섬 일대에 전해지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5호 ‘밤섬 부군당 도당굿’을 오마주한 작품. 조 대표와 함께 추자혜차지스, 밴드데일, 프로젝트밴드M 등 뮤지션이 현대적으로 굿을 재해석한다. 그는 “국악 리듬이 힙합보다 느려서 춤선을 더 크게 크게 뻗을 수 있다. 여유 있는 동작과 표정 연기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1부 막바지에 등장하는 그는 모든 걸 쏟아붓는 ‘강렬한 3분’을 예고했다. ‘한국 비보이가 세계 1등이라며?’ 대중 머릿속에 박힌 통념은 어찌 보면 독이 됐다. 라스트포원, 진조크루, 리버스, 갬블러 등 한국 비보이 그룹이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껏 세계서 선전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작 국내서는 관심이 사라졌고 기업, 기관의 후원도 끊겼다. 그저 ‘알아서 잘하나 보다’라는 식의 막연한 장밋빛 환상만 부추겼다. 조 대표는 “후세대가 끊기는 게 문제다. 현재 한국 정상급 비보이 평균 연령이 30대 중반인데 일본, 미국, 프랑스의 젊은 비보이가 나날이 치고 올라온다”고 했다. 3년 뒤 파리 올림픽에서 브레이크 댄스가 ‘브레이킹’이라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건 분명 호재다. 춤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영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저희를 세계 1등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메달을 못 따면 국민들이 얼마나 실망할까요. 3년 뒤면 비보이들의 나이도….”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전국의 춤 협회 등이 “철저히 준비하자”며 머리를 맞대고 있다. 1세대 힙합그룹 피플크루와 서태지와아이들을 보며 춤꾼이 된 조 대표는 ‘춤으로 먹고사는 걸 보여주겠다’는 오기로 20년 넘게 춤판을 지켰다. “한국 1등이면 세계 1등이라는 게 올림픽서도 증명되길 바란다”는 그는 마을의 태평을 기원하던 ‘도당굿’처럼 한국 비보이의 미래를 위한 굿 한바탕을 벼르고 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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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0,틱톡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시니어들 ‘유쾌한 반란’

    희끗희끗한 머리에 화사한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선 70대 부부. 점잖게 서 있던 이들은 최신 팝송이 흘러나오자 돌연 집 거실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주름진 눈가에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두 사람은 쑥스러운 듯 자연스러운, 어설픈 듯 세련된 동작을 선보인다. 영상 길이는 10초 안팎. 별다른 편집도 없다. “4명의 손자 손녀와 소통하기 위해 영상을 만든다”는 소박한 바람과 달리 노부부가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올리는 춤사위는 10일 기준 전 세계 120만 명이 즐기는 영상이 됐다. 평범한 1942년생 동갑내기 부부 이찬재 안경자 씨는 이제 ‘grandpachan’ 계정을 운영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플루언서’로 불린다. 중고교생 손자들의 권유로 지난해 1월 가수 지코의 ’아무 노래 챌린지‘에 참여한 게 시작이었다. 첫 영상이 말 그대로 ‘터지면서’ 지코가 이들에게 선물도 보냈다. 두 사람은 “숨겨진 끼를 찾았나 보다. 영상을 찍으며 가족들과 정말 많이 웃는다”고 했다. 평균 60대 이상 시니어 크리에이터들의 유쾌한 반란이 시작됐다. 유튜브 등에서 알고리즘이 시니어 크리에이터의 영상을 추천하고, 이들이 기존 플랫폼에서 맹활약하는 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1020세대의 전유물로 꼽히던 틱톡에서도 최근 시니어 크리에이터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을 일컫는 ‘액티브 시니어’라는 말에 이어 ‘오팔(OPAL)세대‘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OPAL 세대는 ‘58년 개띠’의 ‘58’과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열정적으로 산다는 뜻을 가진 ‘Old People with Active Life’에서 나온 표현이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의 ‘더뉴그레이’ 채널에는 중년 남성 6명이 등장한다. 현실에선 이들이 ‘아재’ ‘할아버지’라 불릴지 몰라도 SNS에서만큼은 핫한 그룹 ‘아저씨즈’의 멤버다. ‘아저씨 패션크루’를 표방하는 이들은 때론 음악에 맞춰 익살스러운 춤을 추고, 패션쇼 런웨이를 걷듯 멋진 옷차림도 선보인다. 두 플랫폼에서 약 24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다. 패션매거진에서 20여 년간 활약한 이광걸 씨가 틱톡에서 운영하는 ‘패션광’이라는 채널 역시 1020세대의 반응이 뜨겁다. 시니어 크리에이터가 만든 콘텐츠의 특징은 전 연령층에서 고루 사랑받는다는 것. 1020세대가 만든 영상이 주로 또래 집단에서 소비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이들은 억지스럽거나 자극적인 편집보다는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멋과 유쾌함을 추구한다. 영상을 본 이들은 “나이에 비해 멋지다”가 아니라 그냥 “멋있다” “재밌다”며 환호한다. ‘패션광’에는 1020세대 팔로어가 찾아와 “스무살에 181cm, 56kg인데 스타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댓글을 남긴다. 20대가 중장년 세대에게 최신 트렌드를 묻는 진풍경도 자주 벌어진다. 크리에이터로 뛰어드는 시니어는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 틱톡을 비롯해 유튜브, 인스타그램이 각각 ‘쇼츠(shorts)’ ‘릴즈(reels)’ 등 짧은 영상을 쉽게 편집할 수 있는 서비스를 활성화하고 있다. 팬데믹 장기화로 시니어층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 모바일 시장 분석 서비스 ‘앱 에이프’에 따르면 2017년 10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틱톡 이용자를 분석한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1020세대에 비해 4050세대의 증가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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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김기윤]‘암표방지법’ 반갑지만 뿌리 뽑으려면 후속대책 있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공연계의 어려움이 극에 달한 지난해 12월, 한 줄기 따스한 볕이 공연장을 비췄다. 공연계의 오랜 염원이던 공연법 일부 개정안, 이른바 ‘암표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해 티켓을 대량으로 쓸어 담고 이를 비싸게 되파는 온라인 암표는 고질적 병폐로 지적받아 왔지만 관련 법안은 그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공연업계로서는 불행 중 다행으로 힘이 될 만한 소식이었다. 신설된 공연법 제4조의2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공연 입장·관람·할인·교환권 등의 부정판매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정판매에 대해선 티켓 판매자나 위탁판매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자가 영리 목적으로 자신이 티켓을 구입한 가격보다 비싸게 상습적으로 팔거나 알선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정부가 나서서 오랜 병폐를 바로잡도록 하는 법안 취지는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첫발을 뗀 수준이라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크다. ‘장관의 노력’이라는 모호하고 선언적인 규정만 있을 뿐, 구체적인 처벌 규정이나 시행령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문제 해결은 전적으로 문체부의 의지에 달린 상황이다. 법안 통과 후 시행까지 6개월의 시차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불법 암표상은 교묘하게 진화하며 활개치고 있다. 지난 설 연휴를 앞두고 몇몇 연극, 뮤지컬의 티켓을 정가보다 최대 8배 비싼 가격에 판다는 게시글이 올라와 논란이 됐다. 공연업계 종사자와 공연을 좋아하는 실수요자들은 온라인 암표상들이 건강한 공연 관람 문화를 저해한다며 ‘플미충’(프리미엄 얹는 벌레라는 뜻)이라고 부를 정도다. 좌석 띄어 앉기 정책으로 사실상 가동 좌석이 반 토막난 상황이라 더욱 뼈아프다. 법안 시행을 100일 정도 앞둔 지금까지도 문체부의 ‘노력’은 딱히 안 보인다. 문체부는 2019년부터 경찰과 불법 암표상을 단속하고 ‘온라인 암표 신고’ 플랫폼을 운영해 왔지만 이 역시 현장에서는 효과를 느끼기 어려웠다. 문체부 관계자는 “의심 사례를 신고 받으면 예매처와 논의해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한다. 현행 체제 외에 아직 새로운 방안이나 논의는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공연계가 팬데믹을 딛고 일어서려면 문체부의 강한 의지와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수다. 물론 암표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공연 팬들의 노력도 당연한 미덕이다.김기윤 문화부 기자 pep@donga.com}

    • 202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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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먼저 떠난 아내 위해… 춤으로 지내는 천도재 ‘영가’

    박자가 뭔지 알기 전부터 몸이 먼저 움직였고, 가락이 뭔지 알기 전부터 흥을 타기 시작했다. 1949년 동네 어귀에서 어르신이 틀어놓은 유성기의 민요에 맞춰 몸을 움직이던 아홉 살 꼬마. “뭘 하는지도 몰랐지만 잘한다니까 계속 춤만 추고 싶었다”던 그 꼬마는 무용 ‘초립동’을 시작으로 지금껏 평생 한국 춤판을 지켰다. 여든이 된 지금도 춤을 처음 배울 때처럼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무대에 오르는 명무(名舞). 월륜(月輪) 조흥동이 20, 21일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서 ‘조흥동 춤의 세계’ 공연을 펼친다. 신작 ‘영가’와 안무작 ‘남성 태평무’를 선보인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한량무’도 만날 수 있다. 그의 춤 인생 80년을 기념하는 해라 의미가 깊다. 그의 제자 무용수 30여 명이 함께한다. 최근 서울 중구 신당동에 있는 월륜 조흥동 춤 전수관에서 만난 그는 공연의 세부 사항을 적어가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대를 그려내고 있었다. 주변에선 “그 연세에 어떻게 소품, 음악, 의상을 다 보시느냐”며 걱정도 한다. 하지만 몸과 정신이 흐트러지는 순간 춤도 끝난다는 철학 때문에 손수 점검하는 건 일상이다. 그는 “아무리 좋은 쇠도 며칠 놔두면 녹이 생긴다”며 “일주일만 몸을 안 움직여도 중심이 잘 안 잡히고, 정신도 마찬가지다. 치매가 오면 춤도 끝”이라며 웃었다. 평생 예인으로 살아온 그는 살아있는 역사다. 근대 한국 무용의 거장 한성준(1874∼1942)이 만든 한량무는 제자 강선영을 거쳐 원형 그대로 조흥동에게 전수됐다. 그가 발전시킨 춤은 서울시무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됐다. 흰 도포에 갓을 쓰고 부채를 움켜쥔 무용수가 발 디딤새를 유려하게 맺고 끊는다. 선비의 기상을 마치 학(鶴)의 비상처럼 표현했다. 특히 정지 동작에서 영혼이 움직이는 듯한 묘한 매력을 갖췄다. 그는 “한량무는 젠틀맨의 춤이다. 여성의 장르로 여겨지던 전통무용에 남성성을 입힌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독무로 선보이는 ‘영가’는 느낌이 좀 다르다. 그는 “내 이야기이자 한풀이”라고 했다. 몇 해 전 아내를 떠나보낸 상실감과 인생의 허무함을 담았다. 그는 “내 육신을 통해 지내는 천도재다. 먼저 떠난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인생무상을 절규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다. 흰 도포를 입고 한삼(汗衫), 지전(紙錢)을 소품으로 한 서린 춤사위를 선보인다. 그는 “나의 인생 춤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성 태평무’는 남성 무용수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제1호 이수자로서 새롭게 안무를 짠 작품. 왕비와 여성의 춤이던 태평무에 남성적 위엄을 담았다. 주로 활달한 동작들로 구성됐다. 제자들과 함께 ‘원류한량무’ ‘신노심불노(身老心不老)’ ‘산조춤’ 등의 래퍼토리도 선보인다. 위로 누나만 넷인 그는 경기 이천 천석꾼 집안의 귀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오래만 살라”는 부모의 바람대로 하고픈 걸 하며 자랐다. 다만 무용만은 예외였다. “학원에 여학생만 30, 40명 있을 정도로 무용은 여성의 것”이었기에 집안을 설득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서울에서 중고교에 진학한 뒤에도 몰래 무용을 배웠다. 결국 들통이 난 날에는 “누님한테 호되게 맞았다”고 했다. 그는 송범 김천흥 한영숙 이매방 장홍심 등 당대 이름난 스승들은 모두 찾아다니며 춤을 배웠다. ‘조흥동’ 자체가 브랜드가 되자 국립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 등을 지냈다. 한국 무용, 특히 남성 무용의 기틀을 잡았다. 2018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긴 세월 많은 춤이 그를 거쳐 갔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게 딱 하나 있다. “몸이 추는 게 아니라 혼이 춘다고나 할까. 무아지경인 거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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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K팝의 진정한 도약 알려” 빌보드, 2020 최고 팝스타 선정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빌보드가 선정한 ‘연도별 최고의 팝스타’에서 2020년을 대표하는 스타로 꼽혔다. 아시아 가수로는 처음이다. 연도별 최고의 팝스타는 1981년부터 매년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팝스타가 한 명 또는 한 팀씩 선정됐다. 7일 빌보드는 “방탄소년단은 미국 시장에서 K팝의 진정한 도약을 알렸다”며 “이들은 영미권 슈퍼스타들과 나란히 이 명단에 오른 첫 번째 아시아 아티스트”라고 밝혔다. 이어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팝의 고전이 될 수도 있었지만 단지 언어장벽 때문에 놓쳐 버렸을 모든 음악들을 고통스럽게 상상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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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말 오페라 내달 22회 손짓

    다음 달 6일부터 25일까지 제19회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쳐진다. 1999년 시작한 국내 첫 오페라축제로, 120여 개의 민간 오페라 단체가 참여하며 오페라 대중화에 기여했다. 올해는 20일 동안 총 22회의 공연을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창작오페라 세 편과 번안오페라 두 편을 배치했다. 개막작은 오예승 작곡가의 ‘김부장의 죽음’(6, 10, 15일)이다. 미국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을 각색해 대기업 부장이자 가장인 주인공의 비애를 담았다. 부장 명함을 소지한 관람객에게는 티켓을 50% 할인해주는 이색 이벤트도 한다. 작곡가 도니제티의 ‘엄마 만세’(7, 11, 16일)는 극 중 리허설부터 막이 오르기까지 펼쳐지는 출연자들의 한바탕 소동을 그렸다. 코믹 오페라를 표방하는 작품이다. 최우정 작곡가의 ‘달이 물로 걸어오듯’(8, 13, 17일)은 쉰 살을 넘긴 화물차 운전사가 연인을 위해 살인죄를 덮어쓰는 비극적 서사를 담았으며, 작곡가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9, 14, 18일)는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강도의 정략결혼 이야기를 오페라로 풀어냈다. 예술의전당이 자체 제작한 나실인 작곡가의 ‘춘향탈옥’(24, 25일)은 고전을 유쾌하게 재해석했다. 탈옥한 춘향이 천신만고 끝에 몽룡을 찾아 그를 공부시킨다는 설정이다. 공연은 전부 한국어 대사로 진행한다. 공연 시간도 평균 90분대로 잡아 관객이 쉽고 친근하게 오페라와 만날 수 있도록 했다. 출연진의 연기, 노래를 소극장에서 가까이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장수동 예술감독, 이강호 제작감독, 양진모 음악감독 등 오페라계 베테랑들이 축제를 위해 뭉쳤다. 5만∼7만 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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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끈끈한 가족의 情 열연… ‘제이컵 식구’ 배우들에 호평 쏟아져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 시골로 이민 가 농사를 짓는 한국 가족을 그린 영화 ‘미나리’에서 진짜 식구 같은 연기를 선보인 배우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윤여정 외에도 ‘제이컵 가족’을 그린 배우들이 뿜어내는 연기력과 이들의 개인사가 시너지를 일으켜 골든글로브 수상을 일궈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티븐 연(한국명 연상엽)은 자신이 연기한 제이컵과 닮았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5세였던 1988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지난해 5월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그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오니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중간에 낀 느낌이었다”며 “그래서 우리 가족끼리 훨씬 더 끈끈하게 결속했고 그런 얘기가 영화에 잘 담겨 저도 깊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은 스티븐 연의 삶을 조명했다. 미시간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우연히 1학년 때 본 학내 극단 공연이 그의 진로를 바꿨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로스쿨이나 의대 진학 대신 연기자의 길을 택한 그는 독립영화 ‘내 이름은 제리(My name is Jerry)’에서 조연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미국 AMC의 인기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 시즌1부터 7까지 영리하고 용감한 글렌 역을 비중 있게 소화해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년),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년)에 출연하며 국내 팬들에게도 눈도장을 찍었다. 한예리(모니카 역)는 미나리로 전환점을 맞았다. 배우로서 입지를 넓히고 있던 그는 이 영화로 우뚝 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과 재학 당시 영상 촬영에 필요한 무용을 지도하다 우연히 영화에 발을 들인 그는 2005년 단편영화 ‘사과’로 데뷔했다. 2008년 ‘기린과 아프리카’로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았고, 2012년 영화 ‘코리아’로 대중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2016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로 주목받았으며 그해 영화 ‘춘몽’으로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같은 해 개봉한 영화 ‘최악의 하루’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2030 여성층 팬덤을 확보한 드라마 ‘청춘시대’도 이때 선보였다. 미국 연예 매체 ‘골드 더비’는 “미나리의 성공 열쇠는 한예리”라며 그의 연기를 호평했다. 두 아역 앨런 김(데이비드 역)과 노엘 케이트 조(앤 역)도 관심을 받고 있다. 극 중 자신을 놀리는 외할머니 역의 윤여정과 팽팽하게 대립하며 유쾌한 ‘케미’를 선보인 앨런 김은 워싱턴 비평가협회 아역배우상을 수상했다. 앨런 김은 1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시상식을 시청하는 영상을 올렸고, “우리가 해냈다! 정말 행복하다! 사랑해요 미나리!”라고 소감을 썼다. 연극부 활동을 한 노엘 케이트 조의 연기 역시 호평 일색이다. 실제 남동생을 둔 그는 큰딸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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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에도 평점 9.8 “대학로 살아있네∼”

    팬데믹 와중에도 대학로의 저력을 보여주는 뮤지컬 신작이 나왔다. 공연장 방역수칙 완화를 계기로 해외 라이선스 작품 등이 쏟아지는 가운데 순수 창작 뮤지컬인 ‘쿠로이 저택엔 누가 살고 있을까?’가 입소문을 타고 작품성과 대중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각종 예매사이트 상위권을 점령한 대작들 틈바구니에서 대학로 신작 중 유일하게 선전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처음 무대에 오른 이 뮤지컬은 일제강점기 귀신들이 사는 저택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형을 잃고 방황하다 우연히 저택을 찾은 주인공 ‘해웅’이 귀신들과 대화한다는 컬트 소재를 끌어왔다. 저택의 지박령(죽은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영혼) ‘옥희’와 다른 귀신들이 주인공과 힘을 합쳐 각자의 소원을 이루는 해피엔딩이다. 큰 반전이 없는 전개로, 요소요소마다 코믹한 B급 대사와 안무를 배치했다. 사실 시놉시스만 본 관람객이라면 클리셰로 가득한 대학로 소극장 공연을 떠올릴 법하다. 하지만 작품은 상상 이상이다. 특히 감칠맛 나는 극본과 군더더기 없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이 뮤지컬의 극본은 2018년 충무아트센터의 스토리작가 데뷔 프로그램 ‘뮤지컬 하우스 블랙앤블루’에 선정됐다. 이후에도 각색 등으로 꾸준히 손을 봐서 지난해 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뽑혀 무대에 올랐다. 한국 전통설화에서 끄집어낸 귀신 이야기에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절묘하게 결합했다. 극작을 맡은 표상아 작가는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던 어린 시절의 내가 어딘가에 남아 나를 기다린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 데서 이야기가 시작됐다”고 했다. 대학로 소극장 공연부터 대극장 뮤지컬까지 다양한 작품을 소화한 김동연 연출가가 가세해 짜임새를 더했다. 무엇보다 작품 공모 단계부터 국내 공연 진흥 시스템에 의해 뒷받침된 작품이라 의미가 작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탄탄한 극본이라도 출연진의 연기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작품도 빛을 보지 못했을 터. 대학로에서 활약 중인 배우 11명이 역할에 따라 1인 2역을 맡으며 무대를 든든하게 채운다. 숨 가쁘게 무대를 휘젓는 안무를 선보이면서도 매끄럽게 넘버를 소화한다. 한국 전통음악부터 팝, 재즈풍의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는 4인조 밴드는 관객들의 귀를 즐겁게 한다.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무대 구성. 귀신들의 모습을 표현한 홀로그램 영상을 무대 상단에 쏘아 올리며 무한한 상상력을 뻗도록 자극한다. 극의 공간적 배경인 저택을 크게 벗어나지 않음에도 무대를 얼마든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선보인다. 대학로만의 맛과 세련미를 갖추고 실험성까지 더한 수작이다. 포털, 예매사이트 평점이 모든 걸 말해주진 않지만 10점 만점에 9.8점은 괜히 나온 숫자가 아니다.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플러스씨어터, 2만2000∼6만6000원, 8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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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나리 속 ‘제이컵 가족’ 누구?…배우 스티븐연 한예리 관심

    영화 ‘미나리’에서 진짜 식구를 그린 배우들에게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윤여정 외에도 ‘제이컵 가족’을 그린 배우들이 뿜어내는 연기력과 이들의 개인사가 시너지를 일으켜 골든글로브 수상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배우 스티븐 연(제이컵 역·한국명 연상엽)은 극중 역할과 닮았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5살 때인 1988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지난해 5월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에서 그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오니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중간에 낀 느낌이었다”며 “그래서 우리 가족끼리 훨씬 더 끈끈하게 결속했고 그런 얘기가 영화에 잘 담겨 저도 깊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등 해외 언론들은 스티븐 연의 삶을 조명했다. 미국 미시건주에서 유년을 보낸 그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1학년 때 관람한 학내 극단 공연이 그의 진로를 바꿨다. 가족 반대를 무릅쓰고 로스쿨이나 의대 진학 대신 연기자의 길을 택한 그는 독립영화 ‘내 이름은 제리(My name is Jerry)’에서 조연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미국 AMC의 인기 드라마 ‘워킹 데드’에 출연해 배우로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영리하고 용감한 ‘글렌’ 역을 맡아 시즌1부터 7까지 비중 있는 역할을 소화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 이창동 감독의 ‘버닝’(2018)에 잇따라 출연하며 국내 영화 팬들에게도 눈도장을 찍었다. 배우 한예리(모니카 역)는 미나리로 전환점을 맞았다. 배우로서의 입지를 서서히 넓히고 있었던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우뚝 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과 재학 당시 영상촬영에 필요한 무용을 지도하다 우연히 영화에 발을 들인 그는 2005년 단편영화 ‘사과’로 데뷔했다. 이어 2008년 ‘기린과 아프리카’로 미쟝센 단편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했다. 2012년 영화 ‘코리아’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여러 작품에서 주연과 조연을 맡았던 그는 2016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로 주목 받았다. 그해 영화 ‘춘몽’으로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같은 해 개봉한 영화 ‘최악의 하루’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30 여성층 팬덤을 확보한 드라마 ‘청춘시대’도 이때 선보인 작품이다. 미국 영화전문 매체 ‘골드 더비’는 “미나리의 성공 열쇠는 한예리”라는 분석을 내놓으며 그의 연기력을 호평했다. 영화 속 두 아역배우 앨런 김(데이비드 역)과 노엘 케이트 조(앤 역) 역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막내아들 역의 앨런 김은 미워할 수 없는 장난꾸러기 캐릭터 그 자체였다. 극중 자신을 놀리는 할머니 역할의 윤여정과 팽팽하게 대립하며 유쾌한 케미를 선보여 워싱턴 비평가협회 아역배우상 등을 수상했다. 연극부 활동을 한 노엘 케이트 조의 연기 역시 호평 일색이다. 실제 남동생을 둔 그는 큰 딸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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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택 늘며 공유오피스 이용 증가… 난 남의 집으로 출근한다

    공유 오피스가 진화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된 데 따른 것이다. 기존 공유 오피스는 넓은 개방 공간인 라운지를 중심으로, 여러 업종의 근무자가 함께 일하는 환경이 포인트였다. 하지만 감염증 우려로 다중이 모이는 시설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공유 오피스도 개인화·소형화를 꾀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져 업무효율 저하로 인해 업무와 주거 공간의 분리를 호소하는 이가 늘고 있다. 공유 오피스 업계는 이런 수요를 잡기 위해 변화를 모색하며 총력전을 펴고 있다. 업계는 코로나19가 잦아든 후에도 당분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더 작게, 더 프라이빗하게 회사원 박재형 씨(32)는 요즘 서울 관악구 서울대입구역 집 근처 공유 오피스인 ‘집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집 근처 사무실을 표방한 이곳은 회원제로 운영되는 공유 오피스. 언뜻 보면 칸막이 좌석이 빽빽이 들어찬 독서실 같기도 하고,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나 사무실을 떠올리게 한다. 방역과 더불어 사방이 막힌 ‘집중형’부터 정반대의 ‘개방형’ 좌석 형태를 이용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박 씨는 “침대와 책상이 같은 공간에 있는 방에서 오랜 시간 일하다 보니 집중력, 효율성이 떨어졌다. 집 근처에서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업무 공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김성민 집무실 대표는 “재택근무에 대한 사회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걸 느꼈다”며 “기존 공유 사무실이 밀집한 종로 여의도 강남 등 도심으로 이동하는 대신 거주지 근처에 자리 잡은 사무공간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운영 중인 3개 지점에 이용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인천 중구의 복합문화공간 ‘서담재’는 갤러리, 세미나실로 쓰이던 공간을 최근 리모델링해 ‘공유 서재’로 바꿨다. 일자별, 시간대별로 이용자가 특정 공간을 예약해 사용할 수 있다. 5개 방으로 구성된 이곳은 크기에 따라 1∼4명이 이용할 수 있다. 혼자 쓰는 좁은 방 안에는 책상 옆에 침대가 복층으로 놓여 업무 중 잠시 쉴 수도 있다.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으로 회의를 하거나, 동영상 강의를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이애정 서담재 대표는 “코로나로 지난해는 문화공간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소형화된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집을 찾아 취향을 공유하는 ‘남의 집 프로젝트’도 있다. 남의 집 거실이나 안방으로 출근하는 개념이다. 호스트가 본인 집이나 작업실 등을 여러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장소로 내놓는 것으로, 보다 개인화한 공유 오피스다. 한옥, 빌라, 갤러리, 작업실 등 호스트가 공개하는 모든 장소가 사무실이 될 수 있다. 이용자들은 “다른 이용자들과 적정한 거리를 두고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어 좋았다”는 반응이다. 이런 공유 오피스는 서울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김성용 남의집 대표는 “팬데믹 이후 모임 자체에 대한 감염 우려는 있지만 사무 공간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이는 확연히 늘었다”고 했다. 집에서 일하지만 아직 밖으로 나갈 준비가 안 된 이들 사이에선 이른바 ‘홈피스(홈+오피스)’ 만들기가 유행하고 있다. 최근 유튜브에는 집을 사무실로 꾸미는 방법을 설명한 홈피스 영상이 인기다. 하루 종일 일하는 장면을 촬영하거나, 홈피스 물품을 세세하게 설명하는 영상이 많다. 음성 기반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에서도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대화방이 꾸준히 개설되고 있다. 해당 대화방에선 자신의 홈피스 모습을 설명하고 일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 소개된다.○ ‘위드 코로나’ 시대 공유 오피스 확대 예상 국내에 27개 지점을 보유한 공유 오피스 기업 ‘패스트파이브’도 개인화에 초점을 맞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곳도 코로나 이후 소규모 모임 혹은 개인의 이용 문의가 부쩍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 한 달 약 40건이던 개인 입주 문의는 지난달 약 330건으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개방 공간보다 독서실 형태의 칸막이형 좌석을 늘렸다. 패스트파이브 관계자는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구상 중이었는데 팬데믹을 계기로 변화가 가속화됐다. ‘개인에게 집중하자’는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유 오피스 기업 ‘스파크플러스’도 100% 지정좌석제로 운영하는 ‘프라이빗 데스크’를 도입했다. 조금 더 차분하고 조용하면서 타인과의 접촉을 줄이는 콘셉트다. 재택근무로 화상회의 관련 전용 공간도 늘렸다. 감염 우려로 인해 계약 전 현장을 둘러보는 과정마저 꺼리는 고객을 위해 사무실 공간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온택트 프리(pre) 투어’도 선보였다. 사무실 출입 시 직원을 거치지 않는 무인 시스템도 모든 지점으로 확대하고 있다. 목진건 스파크플러스 대표는 “공용 공간에서 방역을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분산 업무를 강화하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관련 수요가 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세계적 추세도 맞닿아 있다. 8개국에 걸쳐 40개 이상의 지점을 갖춘 ‘저스트코(JustCo)’는 대형 공유 오피스 기업 중 처음으로 시간제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도심과 교외 주거지에 배치한 1인용 소형 사무실 ‘스위치(Switch)’도 도입했다. 공유 오피스 조사기관 코워킹 리소시스(Coworking Resources)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공유 오피스 이용자 수는 약 193만 명에 달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드마켓은 세계 공유 오피스 시장 규모가 2019년 92억7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82억4000만 달러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향후에는 관련 시장 규모가 연평균 11.8%씩 성장해 2023년 114억200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코로나19와의 공존을 뜻하는 ‘위드 코로나’ 흐름에 맞춰 원격근무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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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든 만나 가만히 듣는다”… 인터뷰 전문 유튜브 채널의 흥행

    일단 누구든 만나라.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구독자’와 ‘조회수’는 따라온다. 유튜브에서 인터뷰 전문 채널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언론매체가 매일 수많은 인터뷰 기사를 쏟아내는 시대, 해당 채널의 인터뷰 대상자는 조금 다르다. 유명하지 않아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람이라도 괜찮다. 원양어선 항해사부터 외국인 노동자, 학교폭력 피해 경험자, 한 시대를 풍미한 뒤 잊혀진 가수까지.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할 거리만 있다면 누구든 인터뷰 대상이 될 수 있다. ‘인터뷰 전문’을 내세운 유튜브 채널들은 주로 10분 안팎의 영상을 올린다. 구성은 극도로 단순하다. 채널 운영자이자 인터뷰 진행자인 한 명과 인터뷰이가 등장한다. 이들이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 내용이 하단 자막에 나올 뿐 별다른 영상 편집도 없다. 진행자는 그때그때 궁금한 걸 묻고 가만히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게 전부다.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누가 궁금해할까 싶은데 해당 채널에 구독자가 몰린다. 최근 2, 3년 새 만들어진 유튜브 채널 ‘까레라이스tv’ ‘직업의 모든 것’ ‘근황올림픽’ ‘잼뱅tv’의 구독자 수는 23일 기준 평균 40만 명에 달한다. 채널별 누적 조회수는 1억 회가 넘으며, 이들이 그동안 만난 인터뷰이만 평균 300명이 넘는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타인의 등장과 이들의 편집되지 않은 진솔한 발언에 조회수는 나날이 높아진다. 까레라이스tv는 ‘우리가 몰랐던 그 바닥’을 주제로 다양한 사람의 생활터전을 보여준다. 최근 원양어선 항해사가 등장해 “어선을 타고 22세에 2억 원을 모았다”며 지구 반대편 바다 위에서 경험한 일화를 털어놓자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고생만큼 대가를 받은 것”이라며 호응이 줄을 이었다. 채널 운영자는 “개인사업 시작 전 다양한 이를 만나며 아이디어를 얻고 인생 공부를 하려던 게 시초다. 인터뷰 전까지 어떤 소통과 조율 없이 현장에서 즉석으로 궁금한 걸 묻는다. 구독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말을 듣는 게 인기 요인”이라고 말했다. 직업의 모든 것, 잼뱅tv에서도 직군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이가 등장한다. 정병권 잼뱅tv 운영자는 “누구든 사정이 있다는 철학을 갖고 편견 없이 인터뷰하는 게 목표다. 다듬어지지 않은 솔직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근황올림픽은 인생에서 한 번쯤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가 잊혀진 이들을 만난다. 전직 방송인, 개그맨, 가수 등이 많다. 채널 운영자 박현택 씨는 “출연자가 후회하지 않을 인터뷰를 목표로, 방송에서 할 수 없었던 얘기를 해 재미와 감동을 노린다”고 했다. 과거엔 채널 운영자가 인터뷰 대상을 직접 발굴하고 섭외했다. 이제는 구독자가 늘면서 일부 채널의 경우 유명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인터뷰를 자청하기도 한다. 한 채널 운영자는 “상대가 누구든 수행원이나 보좌진 없이 일대일로 인터뷰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다. 대중매체에서 보기 힘든 출연자를 볼 수 있는 게 장점인 동시에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누군가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검증 부족으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채널에서 방송이 되진 않았지만 조직폭력배 등 전과자를 인터뷰한 사례가 있는 걸로 알려졌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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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벗어나 날아올라∼” 초록 마녀의 응원

    무대 밖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장 안에서든 밖에서든 불안한 마음을 지우기 힘들다. 객석에서도 마찬가지다. 바짝 당겨쓴 마스크 안으로 넘쳐 나오는 흥과 환호성을 꽉꽉 억누르고 참아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게 판타지다. 뮤지컬이 판타지를 심는 장르라면, 뮤지컬 ‘위키드’는 관객을 환상 속으로 깊고 깊게 끌어들이는 ‘딥 판타지’다. 고된 현실을 어설프게 흉내 내지 않아 더 매력적이다. 황홀한 넘버와 무대 세트로 무장한 작품은 관객을 동화 속 다른 차원의 시공간으로 완벽히 옮겨놓으며, 잠시나마 가혹한 현실을 잊게 하는 마력이 있다. 무대에 서는 배우들도 한마음이다. “판타지로 당신들을 위로하고 싶다”고. 23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뮤지컬 위키드 출연진 공동 인터뷰에서 배우들은 “공연이 이처럼 절실했던 순간은 없었다. 역경에 맞서 날아오르는 초록 마녀 엘파바처럼 긍정적 에너지와 위로를 객석에 전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인터뷰에는 극 중 마법사 역을 맡은 남경주 배우의 사회로, 초록 마녀인 엘파바 역의 옥주현 손승연, 글린다를 연기하는 정선아 나하나, 피에로 역의 서경수 진태화 배우가 참석했다. 5년 만에 국내 무대에 오른 뮤지컬 위키드는 1995년 발표한 소설 ‘위키드: 괴상한 서쪽 마녀의 삶과 시간들’을 각색한 작품이다. 익히 알려진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유쾌하게 뒤집은 내용이다. 초록색 피부를 가진 마녀 엘파바가 실은 거대 권력에 저항하던 선한 마법사였다는 설정이다. 무대 상단에 설치된 거대한 ‘타임 드래건’ 세트를 비롯해 비눗방울 기계, 날아다니는 원숭이, 화려한 조명까지 볼거리가 넘친다. 특히 엘파바, 글린다 역은 공중에 매달린 채 노래하는 장면이 많아 “말도 안 될 정도로 숨 가쁘고 힘든 작품”으로 꼽는다. 2003년 초연 이후 16개국에서 관객 6000만 명을 끌어모은 히트작이다. 2014년 국내 초연 후 7년 만에 작품을 맡은 옥주현은 “팬데믹으로 전 세계 위키드가 모두 멈춘 뒤 제일 처음 올라가는 게 한국 위키드라 자부심이 크다. 이번 관객과의 만남은 어느 때보다 닭살 돋았다”는 소회를 밝혔다. 앞서 세 시즌의 공연에 모두 출연한 정선아도 “우리가 어떻게 공연문화를 즐겨야 하는지 매일 새 역사를 쓰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남경주는 “한 칸 띄어 앉기로 객석 절반이 비어 있는데 배우들은 열연으로, 관객들은 무거운 박수로 빈 공간을 채우는 것 같아 감격스럽다”고 했다. 작품은 한없이 철없고 해맑은 동화를 전하는 듯하지만, 사실 극을 곱씹을수록 메시지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극 중 인간처럼 말을 하던 동물들은 점차 말하는 법을 잊는다. 옥주현은 “이는 진실, 올바름, 선을 추구하는 존재가 점차 사라진다는 뜻으로 저 역시 주변을 돌아보게 만들었다”고 했다. 초록 마녀가 무대 꼭대기로 솟아오르며 부르는 ‘중력을 넘어서’는 극의 핵심 넘버다. 중력은 현실을 무겁게 짓누르는 팬데믹부터 진실을 감추려는 세력까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마녀는 오늘도 노래한다. “나 중력을 벗어나 날아올라.” 5월 1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6만∼15만 원, 8세 이상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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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 고민하는 공연계, 지속가능한 예술 나눔의 시작

    “이번 앨범 홍보를 위한 세계 투어(콘서트)는 하지 않겠다.” 영국의 세계적 록 밴드 콜드플레이의 리더 크리스 마틴은 2019년 말 새 앨범을 발표하며 이같이 선언했다. 공연하는 곳 어디에서든 수천억 원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이들이 이 같은 결정을 한 이유는 다름 아닌 환경 보호. 공연과 환경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싶은데 마틴은 꽤나 깊은 고민 끝에 진지한 답변을 내놨다. 이들이 타고 다니는 비행기부터 대형 공연 장비 운반, 공연 중 발생하는 쓰레기, 관객들이 먹고 마시고 이동하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 환경 보호에 반한다는 것. 그는 “환경적으로 유익한 방법을 찾기 위해 앞으로 2, 3년 정도 공백 기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이 유명인의 결단에 흡족해한 것은 물론이고 아쉬워하던 팬들도 이내 그의 결정을 지지했다. 다른 해외 아티스트도 이에 공감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친환경 공연’ 실천에 동참해 왔다. 최근 국내에서도 공연 제작 과정에서 환경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계가 초토화됐지만, 팬데믹은 지구와 환경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김광보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공연 제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공연을 준비하는 데 제약이 따를 수 있지만 연극계도 중요하게 인식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기 중 청사진과 운영 계획을 밝히는 자리였던 만큼 아직 구체적 방안이 마련된 것은 아니다. 공연계에서는 “국립 기관이 작품 주제가 아닌 제작 과정에서 환경 보호를 언급한 건 처음이다. 고무적이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김 감독은 최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그간 연출 작업을 하면서 무대 세트를 막판에 다 들어냈던 경험이 있다. 전부 탄소를 과다 배출하고 돈을 까먹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조금 먼저, 치밀하게 움직였다면 다 막을 수 있었던 일”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연습 과정 중 세트, 소품을 새로 만들고 쓰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이 같은 낭비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연계 풍토를 단번에 바꿀 수 없기에 국립극단은 작은 것부터 시도할 방침이다. 우선 소품, 세트, 장비 등을 무상으로 대여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을 구축한다. 민간 공연단체도 이를 빌릴 수 있다. 이를 위해 현재 창고에 보관 중인 소품, 의상, 장비를 점검해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 국립극단의 윤리헌장에도 환경 보호 관련 항목을 넣을 계획이다. 김 감독은 “물리적으로 이를 보관할 창고와 여력을 갖춘 국립 기관이 캠페인을 시작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했다. 그간 국내 공연계에서 ‘친환경 공연’을 만들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공쓰재’(공연 쓰레기 재활용 커뮤니티)는 “공연과 환경이 공존하며 지속 가능한 형태로 나가는 방법”을 고민하던 일부 연극인들이 2013년 만들었다. ‘당근마켓’처럼 쓰고 남은 물품을 커뮤니티에서 교환하는 식이다. 지금도 일부 물품이 교환되고 있지만, 활성화되진 않았다. 친환경 굿즈 판매는 제작사가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환경 보호 방법 중 하나다. 최근 개막한 뮤지컬 ‘위키드’는 일상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자는 취지로 ‘친환경 에디션’ 굿즈 패키지를 17일 선보였다. 종이와 면으로 만든 파우치, 손수건으로 굿즈를 제작했다. 이는 환경, 동물이 등장하는 ‘위키드’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 인식은 저조한 편이다. 지난해 7월 ‘연극in’이 공연계 관계자 5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다수는 불필요한 무대장치와 세트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응답자의 70%는 제작 과정에서 겪은 환경 문제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김 감독은 “예술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을 존중하기에 절약을 무조건 강요할 순 없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공연을 고민하는 움직임은 시대적 흐름”이라고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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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남자 백조’ 만든 매슈 본… 국내 미공개 작품들 ‘온라인 상륙’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식스팩의 상남자 백조들이 뛰노는 발레 ‘백조의 호수’ 마지막 장면. 고전을 파격적으로 재해석한 현대판 ‘백조의 호수’를 내놓으며 세계적 안무가 반열에 오른 매슈 본(61·사진)의 국내 미공개 작품들이 온라인으로 소개된다. 본은 영국 최고 권위의 공연예술상 ‘올리비에 어워드’를 아홉 차례나 받은 최다 수상자. 현대무용가 최초로 영국 왕실 기사 작위를 받은 거장이다. LG아트센터는 다음 달 5∼27일 매주 금, 토요일에 작품 4편을 네이버TV를 통해 유료로 상영한다. 관람료는 편당 1만 원.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그의 내한 공연이 무산된 터라 무용 팬들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한 영상과 서면 인터뷰로 만난 본은 “지난해 팬데믹으로 한국 관객과 만나지 못해 실망이 컸다. 3월 온라인 공연에서 ‘예기치 못한 것들’을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의 공연은 파격으로 가득하다. 25년 전 선보인 ‘백조의 호수’에서 발레복 상의를 벗어던지고 섹시한 근육을 드러낸 남성 백조들의 점프에 세계 무용계는 열광했다. 이번에 공개하는 ‘레드 슈즈’ ‘카맨’ ‘신데렐라’ ‘로미오와 줄리엣’ 등 네 편도 신선함 그 자체다. 관객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작품들로 추렸다. 가장 먼저 선보이는 ‘레드 슈즈’(3월 5일 오후 7시 30분, 20일 오후 3시)는 지난해 무산된 내한공연에서 소개될 레퍼토리였다. 1948년 동명의 발레 영화를 각색해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은 본에게 “예술로서의 발레를 처음 만나게 한 작품”이다. 위대한 무용수가 되고 싶어 하는 어린 소녀가 작곡가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그는 “무용단에 관한 이야기를 무용단이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며 “창작에 대한 열정과 예술을 위한 희생을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 전체를 움직임, 연기, 마임으로 이끌어가면서 런던, 파리, 몬테카를로 등 장소에 따른 색채와 장소를 강조해 볼거리가 풍성한 작품”이라고 했다. ‘카맨’(3월 6일 오후 3시, 19일 오후 7시 30분)은 2000년대 초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오페라 ‘카르멘’을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거칠고 원초적인 맛이 살아있는 작품으로 꼽혀 ‘댄스 스릴러’로 불린다. 그는 “일부에선 이 작품을 선정적이고 더럽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움직임을 가져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로미오와 줄리엣’(3월 12일 오후 7시 30분, 27일 오후 3시)은 2019년 영국에서 초연됐다. 수많은 버전의 안무 작품들이 있지만 ‘젊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단다. 그래서 10대 무용수들이 주인공이다. 정신병원을 연상케 하는 ‘베로나 연구소’에서 획일적 시스템에 저항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메시지를 담았다. ‘신데렐라’(3월 13일 오후 3시, 26일 오후 7시 30분)는 2017년 초연한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 대공습을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다. 본은 “흔히 상상하는 신데렐라는 버려도 좋다. 떨어지는 폭탄과 당대 사람들이 느낀 현실도피를 음악 속에 표현했다”며 “몽상가 소녀 신데렐라를 기대해 달라”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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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있는 피카츄를 만들고 싶던 연출가 선과 악을 끌어내다

    연출가 오루피나(38)의 작품에선 무대 암전이 거의 없다. 주역 배우들도 좀처럼 무대 밖으로 퇴장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쉬어가는 타이밍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혹여 잠시라도 배우가 보이지 않는다면? 무대를 조용히 빠져나온 배우는 아마도 다음 장면에서 무대 정반대편이나 세트 위로 별안간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물리적으로 이게 가능할까 싶은데, 결국 잠시 사라진 배우들이 백스테이지에서 전력 질주한 뒤 숨이 잦아들기도 전 다음 넘버를 소화하는 방법뿐이다. 출연진에게는 더없이 가혹해도, 관객 눈에는 가장 친절한 오 연출가의 지론 때문이다. 지난해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 연출상을 비롯해 7관왕을 거머쥔 ‘호프’의 오 연출가가 가혹하면서도 친절한 신작 ‘검은 사제들’로 돌아왔다.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오 연출가는 “팬데믹으로 모두가 우울증에 걸린 듯 힘든 시기, 눈에 보이지 않는 악귀가 마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같았다”며 “공포, 악귀에 대한 얘기보다도 인간의 내면을 고찰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유니플렉스에서 개막하는 ‘검은 사제들’은 동명의 영화를 각색한 작품으로 뺑소니 교통사고 이후 의문의 증상에 시달리는 ‘이영신’을 구하려는 ‘김신부’와 ‘최부제’ 이야기를 그렸다. 클래식, 팝, 포크 장르 음악을 고루 담았으며 선과 악의 경계를 오가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극의 핵심이다. 퇴마의식, 악귀 등을 다룬 오컬트 뮤지컬은 그간 국내 무대서 흔치 않았기에 관객에겐 반가운 장르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그럴듯하게 표현해내는 게 오 연출가와 모든 제작진의 큰 숙제다. 뮤지컬 ‘호프’에서 손발을 맞춘 강남 작가, 김효은 작곡가, 신은경 음악감독, 채현원 안무감독이 함께 머리를 맞댔다. “영화에선 마귀의 기운을 쥐와 바퀴벌레가 나타나는 컴퓨터그래픽(CG)으로 표현할 수 있잖아요. 저희에게는 제한적 무대 안에서 안무, 소품, 의상, 음향, 노래를 활용해 최대한 관객의 상상력을 끄집어내는 방법뿐입니다.” 언제부턴가 배우들 사이에선 오 연출가가 작품을 맡았다고 하면 퇴장 없는 ‘빡센’ 공연이라는 말이 돈다. 이번에도 배우들은 보이지 않는 악귀와 싸우며 쉼 없이 연기하고 노래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그는 “연습실에서부터 각 장면이 관객 눈에 어떻게 잘 보일지 토론하고 설득한다. 때로 배우가 먼저 ‘저는 퇴장 안 해도 괜찮다’고 할 때 정말 고맙다”고 했다. 이어 “다만 제 스타일 때문에 앞으로 작품 맡기 힘들 거라는 소문도 돈다”며 웃었다. 어렸을 때부터 “살아있는 반려 피카츄를 만들고 싶어서” 유전공학과에 진학했다는 그는 “생각보다 공대 수학이 어려워서” 공연 연출로 전공 진로를 변경했다. 2008년 뮤지컬 ‘록키호러쇼’ 연출가로 데뷔해 ‘킹 아더’ ‘그림자를 판 사나이’ 등을 맡았다. 어릴 적 소망과는 조금 다르지만, 그는 마치 피카츄처럼 현실 속에 없는 판타지를 무대 위에 매일 쓴다.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할 수 있는, 따뜻하고 단단한 판타지를 주고 싶다”고 했다. 김경수 김찬호 이건명 송용진 등 출연. 4만4000∼8만8000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2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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