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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발생한 구급차 폭탄 테러로 1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프간에서는 지난해 5월 카불의 외교가 테러 이후 최악의 사고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28일 AP,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발생한 구급차 자폭 테러로 최소 103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부상자도 235명에 달했다. 아프간 내무부 대변인은 “구급차를 몰던 테러범이 잠후리아트 종합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고 경찰에 말해 첫 번째 검문소를 통과한 뒤 두 번째 검문소에서 폭탄을 터뜨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폭탄이 터진 곳은 잠후리아트 병원 인근의 번화한 쇼핑가여서 민간인 피해가 컸다. 이 지역은 아프간 평화협상을 담당하는 고위평화위원회 사무실, 내무부 건물, 유럽연합(EU) 사무실, 각국 대사관과도 가까운 곳이다. 카불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한국 교민의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강력한 폭발로 이 일대는 완전히 파괴됐다. 카불 시내 대부분의 지역에서 폭발음이 들렸고 검은 연기가 수십 m 높이로 치솟았을 정도. 잠후리아트 병원의 창문도 대부분 산산조각이 났다.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둔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은 테러 발생 직후 자신들이 이번 테러의 배후라고 자처하고 나섰다. 아프간 내무부는 탈레반 연계 무장단체인 ‘하까니 네트워크’가 이번 공격을 감행했으며, 현장에서 용의자 4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테러는 구호활동에 쓰이는 구급차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 아프간 지부는 “용납할 수 없고,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공격”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무고한 시민 수십 명을 숨지게 하고 수백 명을 다치게 한 카불의 비열한 차량 폭탄 테러를 규탄한다”며 “이제 모든 국가가 탈레반과 그들을 지원하는 테러 기반 시설에 대해 단호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5월 31일 카불 외교 밀집지역 차량 자폭테러 때는 150명이 숨지고 600여 명이 다쳤다. 이달 20일 카불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는 침입한 탈레반 무장대원 6명이 17시간 동안 총격 테러를 벌여 외국인 14명을 포함해 22명이 사망했다. 최근 잇따른 테러 공격에 아프간 정부가 보안을 강화했지만 테러를 막지 못하면서 아프간 시민들의 혼란과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자유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 난민들에게 지중해가 점점 더 ‘죽음의 바다’가 되어가고 있다. 2016년 이후 지중해 난민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난민들은 더 험난한 항로로 몰리고 있다. 이에 따라 지중해를 건너다 사망하는 난민의 비율은 점점 더 높아지는 추세다. 14일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일까지 지중해를 통해 유럽에 도착한 난민은 1467명이지만, 지중해에서 숨진 난민도 192명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월 1∼10일) 지중해에서 숨진 난민은 12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도착한 난민은 총 17만1635명. 2016년(36만3504명)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지역별로는 유럽행 주요 관문으로 여겨졌던 이탈리아와 그리스로 도착하는 난민의 수가 4년 만에 최저치로 급감했다. 시리아-터키-그리스로 이어지는 ‘발칸 루트’가 2016년 완전히 봉쇄된 데 이어 ‘리비아-이탈리아 루트’에 대한 단속도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들의 위험 부담은 더 커졌다. 지난해 지중해를 건너다 사망한 난민은 3116명으로 2016년(5143명)보다 줄었지만, 전체 난민 대비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사망률은 1.4%에서 1.8%로 높아졌다. 단속을 피하려는 난민들이 더 위험한 항로로 몰렸기 때문이다. 지중해 밀항 루트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해 키프로스에 도착한 난민은 1067명으로 2016년(345명)의 약 3배로 늘었다. 특히 모로코 등 서부 마그레브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스페인 땅을 밟은 난민들은 2만1663명으로 2009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스페인에 도착한 난민 대부분은 모로코 출신으로 나타났다. 중동에서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 거점이 무너지면서 고국으로 돌아온 모로코 출신 IS 전사들이 ‘스페인 루트’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침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이집트에 와서 수많은 문을 들락거렸지만 디지털 도어록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 집 대문도 열쇠로 여닫는다. 이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아 불안했는데 ‘머피의 법칙’처럼 일이 터지고 말았다. 문이 닫히면 안에서 자동으로 잠기는데 집 안에 열쇠를 두고 나온 것이다! 근처 열쇠수리공을 수소문해 2시간여를 기다렸다. 밤 11시가 돼서야 2인조 열쇠수리공이 도착했다. ‘부자지간’인 이 둘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뚝딱뚝딱 문을 해체하더니 새 열쇠구멍을 달았다. 더 놀라웠던 건 조수 역할을 맡고 있는 아들의 나이가 여덟 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손톱에 검정 기름때를 잔뜩 묻힌 채 묵묵히 아빠를 돕는 꼬마가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짠했다. 이집트에서는 부모와 함께 일하는 어린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과일 봉지를 들고 맨발로 길거리에 나와 호객하는 아이들, 작은 손에 커다란 공구를 들고 자동차 정비소에서 타이어 펑크를 때우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집트의 흔한 풍경 중 하나다. 절대빈곤율(가처분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가구의 비율)이 30%에 달하는 이집트에서 아이들은 양육 대상인 동시에, 중요한 생계 수단이다. 과거 우리나라가 그랬듯 연금 등 사회복지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이집트의 부모들은 여러 명의 자식이 자신의 노후를 책임져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집트 통계청(CAPMAS)에 따르면 2017년 6월 기준 이집트 인구 9330만 명으로 1980년(4410만 명)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현재 이집트 인구의 40.7%(3800만 명)가 18세 미만이다.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의 수)은 4명(이집트 통계청 발표 기준). 이집트가 지금의 합계출산율을 유지할 경우 2030년 인구는 1억2800만 명에 이른다. 아부 바크르 엘겐디 통계청장은 이집트의 인구 증가 속도를 “재앙적”이라는 단어로 표현했고,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 역시 “테러리즘만큼이나 중대한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경제 성장이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빈곤이 심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집트 정부는 “둘이면 충분하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산아제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인구 폭증은 아프리카 전체의 문제다. 유엔 세계인구전망에 따르면 현재 54개국 12억5000만 명인 아프리카 인구는 2050년 두 배로 늘어 세계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게 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이지리아(1억9000만 명)는 2050년 인구가 4억 명까지 늘어나 중국, 인도에 이어 3위의 인구 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발간한 ‘월드팩트북’을 보면 2017년 합계출산율(추정치) 상위 30위는 아프가니스탄(10위·5.12명)과 동티모르(16위·4.79명)를 제외하면 모두 아프리카 국가가 차지하고 있다. 합계출산율 5.71명으로 7위인 우간다에 사는 여성 매리엄 나바탄지 씨는 12세에 결혼해 40명 이상의 자녀를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한국에선 극심한 저출산이 문제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 추정치는 1.26명으로 224개국 가운데 219위다. 합계출산율이 1.3명 미만이면 초저출산 국가로 분류되는데 2002년 이후 16년 동안 초저출산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저출산은 아프리카와 전혀 다른 차원의 먹고사는 문제에서 비롯됐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결혼을 미루고, 교육비와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부부는 출산을 꺼린다. ‘경력 단절’과 ‘육아 독박’을 강요하는 차별적인 사회 분위기도 워킹맘의 출산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저출산 추세는 한 번 고착화하면 되돌리기 힘든 악순환에 빠진다. 저출산 시대에 태어난 세대가 성장하면 출산 가능 연령대 인구가 줄고 결과적으로 출생아 수가 줄어든다. 지난해 한국의 출생아 수는 사상 처음 40만 명 밑으로 떨어져 30만 명대 중반에 머물 것으로 추산된다. 2002년 이후 태어난 초저출산 세대가 20대가 되기 전에 합계출산율이 크게 반등하지 않으면 초저출산 국가에서 탈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6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간담회를 주재하면서 “지금이 심각한 인구 위기 상황을 해결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한 것도 이 같은 상황 인식 때문이다. 출산은 인류의 축복이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에 부딪혀 지구촌 어느 나라는 너무 많이 낳아서 걱정이고, 어느 나라는 거의 낳지 않아서 걱정이다. 이보다 슬픈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달 13일은 특별한 날이다. 이날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킹파크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알힐랄과 알이티하드의 프로축구 경기에 처음으로 특별한 손님이 초대되기 때문이다. 사우디 여성들은 이날부터 사우디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포츠인 프로축구를 경기장에 방문해 직접 즐길 수 있게 됐다. 사우디 왕실이 지난해 10월 여성의 스포츠 경기 관람을 허용하는 칙령을 내린 뒤 처음으로 정책이 시행된 것이다. 올해 사우디에서 이런 큰 변화가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 2018년은 사우디 변화의 원년고령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82)은 조만간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33·사진)에게 왕위를 계승할 예정이다. 1932년 건국 이래 현재 7대 국왕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지켜왔던 ‘형제 계승’이라는 왕위 계승의 법칙이 처음으로 ‘부자 세습’으로 바뀐다. 권력 이양의 규칙이 바뀌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시점에 사우디의 젊은 피 무함마드 왕세자는 기존의 정치·사회·경제를 파격적으로 뒤흔드는 개혁 정책을 들고 나왔다. 보수적인 수니파 왕정 국가의 큰형님 격인 사우디에서 그동안 금기시됐던 것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당장 1분기(1∼3월) 중 일반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관광비자가 발급된다. 매년 성지 메카를 순례하기 위해 1000만 명에 달하는 무슬림이 사우디를 찾고 있지만 정작 일반 관광객들은 까다로운 비자 발급 조건 때문에 애를 먹어 왔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무함마드 왕세자가 2020년까지 홍해의 50개 섬을 개발해 대규모 관광특구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관광비자 도입이 가시화됐다. 심지어 비키니 수영복과 음주까지 허용하겠다고 선언했다. 3월부터는 상업 영화관이 문을 연다. 사우디에서는 1980년대 초반 이슬람 부흥 운동이 일어나면서 모든 영화관이 폐쇄됐다. 약 35년 만에 영화관이 다시 문을 여는 것이다. 그동안 매년 25만 명 이상의 사우디 국민이 영화를 보기 위해 아랍에미리트(UAE)나 바레인 등으로 출국해야 했다. 21세의 청년이 생애 최초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바레인까지 500km를 여행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을 정도. 사우디 여성들의 숙원이었던 운전도 허용된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 운전이 금지된 국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살만 국왕이 여성 운전을 전격적으로 허용하는 칙령을 내리면서 운전면허증을 소지한 30세 이상 여성은 올해 6월 24일부터 운전대를 잡고 도로를 질주할 수 있게 됐다. 2015년 12월 사우디 여성의 참정권이 허용되고 오랫동안 여성 인권을 억압해 오던 악습마저 폐지되면서 변화의 물결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 사우디 ‘비전 2030’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올해 시행될 일련의 정책들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2016년 4월 발표한 ‘사우디 비전 2030’ 계획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비전 2030은 △활기찬 사회 △번영하는 경제 △진취적인 국가 등 3대 영역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개혁 계획이다. 저유가 기조와 에너지신산업으로의 변화 속에서 석유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탈피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사우디의 고민을 담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비전 2030의 발표 배경을 대외적으로는 국제유가 하락에 대응하고 적성국인 이란의 부상을 견제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심각한 실업 문제를 해소하고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우디는 석유 부문이 2015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41.8%, 재정수입의 87.5%를 차지한다. 하지만 2014년 중반 이후 저유가 추세가 이어지면서 정부 재정적자가 심화하고 외환보유액이 급감했다. 이와 맞물려 핵합의 타결 이후 2016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풀린 이란이 부상하면서 역내 정치·경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이란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위협은 사우디 내부에 잠재된 불만이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12년 27.4%였던 사우디 청년층(15∼24세) 실업률은 지난해 32.6%로 치솟았다. 사우디 인구의 3분의 2가 30세 이하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실업 문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정권 교체의 열망으로 이어진 것을 지켜본 사우디로서는 실업 문제 해결이 당면한 가장 큰 과제다. 최근 이란도 실업 문제 등 정부의 경제 실정을 규탄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 사태로 홍역을 앓았다. ○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핵심 무함마드 왕세자는 비전 2030 계획을 통해 일자리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2015년 기준 11.6%인 전체 실업률을 2030년 7.0%로 낮출 것을 공약했다. 또한 현재 높은 실업률의 원인을 여성의 낮은 경제 참여율 때문으로 보고, 여성 노동참여율을 현 22%에서 3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사우디 당국이 여성의 운전을 허용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사우디 여성의 학업과 경제활동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을 제거한 것이다. KOTRA에 따르면 2017년 6월 기준 사우디 여성 인구는 약 1000만 명으로 이 중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한 30∼54세 잠재 운전자는 319만 명. 사우디 당국은 이들 중 일부가 경제활동인구가 돼 일자리를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동차 판매시장과 금융시장이 활성화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그동안 여성을 운송해왔던 외국인 운전자 채용이 줄면 월평균 1105달러에 달하는 개별 가구의 고용비용이 줄어 가처분소득이 늘어난다. 운전기사와 부양가족에게 제공되던 복지 혜택을 절감할 수 있게 돼 세수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우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사회의 개혁·개방 분위기와 맞물려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과의 체제 경쟁을 통해 중동 전반에서의 여성 인권 제고에도 기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이란에서는 ‘사우디도 변하는데 우린 뭐 하고 있나’라는 불만이 나온다. 왕위 계승을 앞두고 사우디에서 시행되는 개혁 조치가 정치적 이벤트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이란 등 인근 국가에 파급되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지난해 12월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을 비롯해 이슬람 율법을 위반한 이들을 체포하지 않는 대신, 계도하기로 했다. 이는 최근 사우디가 여성 인권을 강화하는 조치를 잇달아 발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올해 사우디에서 시행되는 정책▽ 여성 운동경기 관람 허용. 1월 13일 프로축구 알힐랄과 알이티하드 경기부터 시행▽ 1분기(1∼3월) 일반 관광비자 도입▽ 3월 상업 영화관 영업 허가서 발급▽ 6월 24일부터 여성 운전 허용▽ 하반기(7∼12월) 국영석유업체, 아람코 기업공개(IPO)}
전기요금을 내지 못하겠다며 왕궁에서 집단 농성을 벌인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11명이 체포돼 구치소에 수감됐다. 6일 사우디 국영방송 알아라비야에 따르면 셰이크 사우드 알 모젭 사우디 법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11명의 왕자가 4일 수도 리야드의 까스르 알호큼 궁전에 모여 왕족에 대한 전기 및 수도요금 지원을 중단한 왕의 명령에 항의했다”고 밝혔다. 사우디 당국은 왕자들의 요구가 불법이며 그들에게 ‘궁전에서 떠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왕자들은 농성을 풀지 않았고 결국 리야드의 알하이르 구치소에 수감됐다. 모젭 장관은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도 사우디의 법 위에 있지 않다”며 “법을 어기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검찰은 수감된 왕자들을 조사해 기소할 방침이다. 사우디 당국의 이런 움직임은 ‘고통 분담’ 차원의 재정 개혁과 무관치 않다. 사우디는 올해 들어 석유제품에 대한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고 5% 세율의 부가가치세를 도입했으며, 살만 국왕은 여론의 악화에 대비해 왕족이 누렸던 보조금 등 특권을 줄이는 조치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이란 정부가 엿새 째 계속되는 반정부 시위와 소요 사태와 관련해 외부세력 개입설을 주장했다. 그럼에도 미국은 연일 이란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며 이란의 인권 탄압과 관련한 신규 제재까지 시사하고 나섰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정부 고위 인사들은 1일 ‘폭도’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과격 시위의 배후에 선동 세력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날 로하니 대통령도 “외국에서 지령받은 소수의 폭도가 평화로운 저항을 납치하려고 했다”면서 “단합된 이란은 이들 폭도에 단호하게 맞설 것”이라고 말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폭력을 선동하는 배후로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를 거론하기도 했다. 마수드 자자예리 이란군 참모차장은 “미국 고위 관료들이 일부 제국주의적 언론과 동조해 이란 내 폭도를 지지한다”며 “이란에 분란을 일으키려는 새로운 음모”라고 비판했다. 이란 정보부는 1일 “최근 민생고 시위를 도발하는 데 연루된 특정 조직을 검거했다”면서도 이 조직의 정체나 구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로 최소 20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국영방송(IRIB)는 이란 경찰 대변인을 인용해 “이란 반정부 시위로 경찰관 1명이 사냥총에 맞아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이란 사태에 ‘폭풍 트윗’을 날리며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신규 제재 카드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 트위터를 통해 “이란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끔찍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모든 면에서 실패하고 있다. 훌륭한 이란 국민들은 수년 동안 억압 받았고 식량과 자유에 굶주려 있다”며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날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도널트 트럼프가 대통령이고 내가 부통령인 한 미국은 잔혹한 정권에 맞서 싸우던 이란 국민의 영웅적 저항을 무시하고 방관했던 과거의 부끄러운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맞장구쳤다. 2009년 이란 반정부 시위 당시 개입에 소극적이었던 오바마 정부와는 다른 접근법을 취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위 정부 관료를 인용해 미국 정부가 이란 혁명수비대를 겨냥한 신규 제재에 나설 수 있다고 1일 보도했다. 앤드류 픽 미 국무부 이라크·이란 담당 부차관보는 미국의소리(VOA)와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이란 시위대에 폭력을 가한 이들과 기관에 책임을 묻기 위해 제재를 포함한 다양한 옵션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과 미국의 공방전에 주변 국가들도 합세하는 모양새다. 러시아 외무부는 1일 이란 반정부 시위 사태에 대해 “이란의 내부 문제”라며 “정세를 불안정하게 하는 외부 개입이 허용돼선 안 된다”며 미국의 행보를 비판했다. 반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 국민이 자유와 정의를 향한 그들의 숭고한 투쟁이 성공하길 바란다”며 “이스라엘이 시위에 개입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웃기는 거짓말”이라고 말했다.카이로=박민우특파원 minwoo@donga.com}
미국이 2009년 이후 8년 만에 최대 규모로 번진 이란 반정부 시위 사태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뜻을 밝혔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이란에서 자유와 인권이 승리하길 소망한다”며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공식 성명을 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연일 트위터를 통해 이란 정권에 원투 펀치를 날렸다. 이란 정부는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온라인 메신저 접속을 차단하는 강수를 뒀지만 시위 발생 닷새째인 1일까지 사망자가 10여 명으로 늘어나는 등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헤일리 대사는 지난해 12월 31일 ‘이란 국민의 평화적 저항에 대한 성명’을 통해 “오랫동안 억눌렸던 이란 국민이 이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며 “이란 정권이 국민에 의해 시험대에 섰다”고 이란 정권을 정조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 트윗에서 “위대한 이란인들은 오랫동안 억압당했으며 자유와 생계에 목마르다”며 “변화할 시간이 됐다!”고 시위대에 힘을 실어줬다. 예상을 뛰어넘는 빠른 시위 확산에 놀란 이란 정부는 31일 오후 텔레그램과 인스타그램의 접속을 차단했다. 이란 내 텔레그램 사용자는 전체 인구의 절반인 약 4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란은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차단하면서도 텔레그램과 인스타그램은 허용해 왔지만 텔레그램이 시위대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활용되자 전격적인 차단에 나선 것이다. 시위대와 군경이 곳곳에서 충돌하면서 사망자는 계속 늘고 있다. 이란 국영방송은 1일 무장한 시위대가 전날 경찰서와 군부대를 점거하려고 했으나 군경이 이를 저지했다며 이 과정에서 시위대 1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충돌이 일어난 구체적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방송은 지난해 12월 30일 로레스탄주 도루드에서 발생한 시위에서 2명이 숨진 것을 포함하면 사망자가 최소 12명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31일 밤 공개된 내각회의 발언을 통해 “이란 국민은 비판하고 저항할 권리가 있다”며 관련 기관에 “시민들이 합법적으로 비판하고 항의할 여지를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로하니 대통령이 입장을 밝힌 건 시위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한기재 기자}
이란 수도 테헤란과 주요 도시 곳곳에서 광범위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해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 당초에는 강경 보수파가 민생고를 해결하지 못한 중도개혁적인 현 정부를 규탄하기 위해 ‘관제 데모’를 조직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제난을 겪는 서민들과 당국의 통제에 불만을 품은 청년들이 합세하면서 분노는 이슬람 통치 체제 전반으로 확대됐다. 2009년 대규모 시위 이후 최대 규모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강경 진압을 비판하는 트윗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이란 제2의 도시 마슈하드에서 시작된 반정부 집회는 31일 현재 수도 테헤란은 물론이고 주요 도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시민들의 집단행동이 철저히 통제되는 이란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린 것은 이례적이다. 2009년 대규모 시위는 강경 보수파였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대선에 성공하자 진보적인 성향의 대학생들이 부정선거라며 거세게 반발하면서 일어났고 8개월간 이어졌다. 당초 마슈하드에서의 시위는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한 강경 보수파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로하니 정권이 최대 업적으로 꼽는 ‘핵합의안(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등 개혁·개방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다. 마슈하드는 지난해 5월 대선에서 로하니 대통령과 경쟁한 보수파 정치인 에브라힘 라이시의 고향으로 이슬람 색채가 짙은 종교 도시다. 하지만 이번 반정부 시위는 지난해 11월 최악의 지진이 발생한 북서부 케르만샤를 비롯해 중부 이스파한, 서부 하마단, 남부 아바즈, 북부 카즈빈과 라슈트 등 주요 거점 도시는 물론이고 작은 마을까지 확대됐다.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현 정부에 반대하는 보수층뿐만 아니라 물가 상승과 실업으로 신음하는 서민 노동자 계층, 자유를 갈구하는 진보적인 청년층이 대거 시위에 동참했다. 거리에서는 이슬람 통치 체제 전반을 뒤집으려는 개혁적인 구호가 터져 나왔다. 시위대는 이란 1인자인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사진이 인쇄된 현수막을 끌어내리며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우리는 이슬람 공화국을 원치 않는다” “개혁파와 강경파 모두 끝났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란 정부는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테헤란대에서 100여 명의 학생들이 가두시위를 벌이려 하자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이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라슈트, 하마단, 케르만샤, 카즈빈 등지에서는 경찰이 시위대 해산을 위해 물대포를 사용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이란 중부 로레스탄주의 하비볼라 코자스테푸르 부지사는 “30일 저녁 적대적 세력의 선동으로 불법 시위가 벌어졌고 충돌 과정에서 시민 2명이 숨졌다”고 말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경제 회생을 최우선 과제로 올해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현재 이란의 실업률은 정부 공식 통계로도 12%에 달하고 물가상승률도 10% 안팎으로 높다. 압돌레자 라마니 파즐리 내무장관은 31일 “불법 시위에 엄정하게 대처하겠다”면서도 “정부와 의회, 사법부는 단언컨대 국민의 문제를 풀기 위해 그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겠다”며 급히 사태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0일 자신의 트위터에 “탄압하는 정권은 영원히 지속할 수 없고, 이란 국민이 하나의 선택에 직면할 날이 올 것”이라며 전날에 이어 이란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나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카림 사자드푸르 선임연구원은 “이란 정권에 대한 (트럼프의) 의견은 유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경 진압의 구실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지난해 8월 세계유소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렸던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카롤리네 마헤르(32)를 만났다. 그녀는 태권도 선수 출신 최초의 이집트 국회의원이다. 이집트에서 가장 성공한 운동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선수 시절 38개국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130개 메달과 트로피를 쓸어 담았다. 2013년에는 아랍-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태권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마헤르는 2015년 말 총선 때 국회에 입성했다.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은 본인이 직접 지명하는 28명의 국회의원 중 한 명으로 마헤르를 선택했다. 마헤르는 “태권도가 자신을 국회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고된 훈련과 경쟁을 통해 인생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대표팀 훈련에 참가하면서 낮에는 푸조 인사관리(HR) 매니저로 사회생활을 병행했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을 쪼개 자선단체 헬름(Helm)의 HR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1000명이 넘는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구해주기도 했다. 선출직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마헤르는 열정이 넘쳤다. 여성의 권리가 미약한 이슬람국가에서 멋진 돌려차기로 ‘유리천장’을 깨고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근 라이베리아 대통령으로 당선된 전설적인 축구 스타 조지 웨아(52)를 보면서 마헤르가 떠올랐다. 마헤르가 웨아의 모습을 보고 더 큰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웨아 역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성공을 이뤄냈다.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 최악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축구에 모든 걸 걸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 리그로 진출해 이탈리아 AC밀란 등 명문 구단에서 활약하며 20세기 최고의 아프리카 축구선수가 됐다. 2005년 라이베리아 정치권에 입문한 웨아는 12년 만에 대권을 낚아챘다. 스포츠 스타가 정치판에서 유망한 이유는 △인지도 △순수성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웨아는 정계에 진출한 시점에 이미 ‘국민 영웅’으로 전국구 인지도를 갖고 있었다. 또한 스포츠 스타가 이룬 성취는 대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대중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과 달리 스포츠에서는 정정당당한 승부가 이뤄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때 묻은 정치인들과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약점도 있다. 정치 엘리트들은 이들의 ‘정치적 미숙함’을 지적한다. 머리보다는 몸을 쓰는 데 익숙한 이들에게 국가경영의 대계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웨아는 2005년 민주변혁회의(CDC)를 창당해 대권에 도전했지만 라이베리아의 민주화와 여권 신장을 위해 평생을 바친 ‘철의 여인’ 엘런 존슨설리프 현 대통령(80)에게 패했다. 존슨설리프 대통령은 미국 하버드대 출신 경제전문가이기도 해서 “‘프리미어리그’가 ‘아이비리그’와의 대결에서 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웨아는 또 한 번의 대권 도전을 통해 스포츠 스타가 갖춘 세 번째 자질을 보여줬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끊임없는 도전정신이다. 뼈아픈 대선 패배를 맛본 이듬해 웨아는 40세의 나이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2011년에는 플로리다 더브라이대에서 경영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2년 뒤 행정학 석사까지 마쳤다. 그는 2014년 라이베리아 몽세라도주 상원의원으로 선출돼 처음으로 정치적 승리를 경험했다. 웨아는 이번 대선 전에 “온갖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축구 스타 중 한 명이 됐다”며 당선을 확신했다. 스포츠 스타 출신 정치인은 많지만 대통령에 오른 건 웨아가 처음이다. 필리핀의 복싱 영웅 매니 파키아오(40)도 2022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07년 정계에 입문한 파키아오는 그해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그는 2009년 정당을 창당해 이듬해 자신의 고향 산토 토마스 사랑가니주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2016년에는 상원의원이 됐다. 여전히 선수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파키아오는 과거 자신이 은퇴할 무렵 대선에 출마하는 꿈을 키우고 있다고 인터뷰했다. 그는 올해 40세가 돼 필리핀 대통령 출마 자격(40세 이상·국내 거주 10년 이상)을 갖췄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73)은 공개 석상에서 “대통령이 될 인물”이라며 파키아오를 수차례 치켜세웠다. 훌륭한 자질을 갖춘 스포츠 스타라면 대권까지 성취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정치적 업적을 남기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대중이 순진한 ‘팬심’으로 응원만 해서는 뒷감당이 어려워질 수 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전설적인 축구 스타 조지 웨아(51)가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웨아는 1944년 라이베리아 건국 이후 73년 만에 역사적인 민주적 정권 교체의 주인공이 됐다. 라이베리아 국가선거관리위원회(NEC)는 26일 치러진 대선 결선 투표 결과 웨아 후보가 신임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28일 공식 발표했다. 개표가 98.1% 진행된 28일 오후 4시 기준 웨아 후보는 61.5%를 득표했다. 집권 통합당 후보인 조지프 보아카이 부통령(72)은 38.5%에 그쳤다. 스포츠 스타 출신 정치인은 많았다. 복싱 사상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한 복싱 영웅 매니 파키아오는 필리핀의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디빌더 출신으로 할리우드 액션 스타였던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냈다. 그러나 대통령까지 오른 건 웨아가 처음이다. 라이베리아 대중은 웨아의 성공 스토리를 동경했고, 정치에 대한 그의 진정성에 감동했다. 웨아는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 최악의 빈민가로 꼽히는 클래라타운에서 태어났다. 배고픔과 싸우며 축구 선수 생활을 하던 그는 당시 프랑스 리그앙 AS 모나코 감독이던 아르센 벵거의 눈에 띄어 유럽 무대로 진출할 수 있었다. 웨아는 파리 생제르맹(PSG), AC 밀란, 첼시, 맨체스터시티 등 유럽 명문 구단에서 활약했다. 특히 AC 밀란으로 이적한 1995년 그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였다. 그해 그는 아프리카 선수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웨아는 ‘흑표범’ ‘검은 다이아몬드’로 불리며 그라운드를 누볐다. 웨아는 2003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그는 2005년 대선에서 엘런 존슨설리프 현 대통령과 대결해 뼈아픈 패배를 맛봤다. 엘리트층은 미국 하버드대 출신인 존슨설리프 후보와 달리 변변한 고등학교 졸업장조차 없다며 웨아를 조롱했다. 지난해 4월 두 번째 대권 도전을 선언한 웨아는 달랐다. 그는 2006년 40세의 나이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고, 2011년에는 미국 플로리다주의 더브라이대에서 경영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로부터 2년 후에는 행정학 석사를 땄고, 2014년 라이베리아 몬트세라도의 상원의원으로 선출됐다. 웨아는 대선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빈곤의 희생자였다”며 빈곤 퇴치와 교육권 강화, 일자리 창출 등을 공약했다. 승리가 확정되자 그는 트위터를 통해 “모든 국민의 감정을 깊이 느끼고 있다”며 “나의 막중한 임무의 중요성과 책임감을 알고 있다. 변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액자 모양을 본뜬 대형 전망대(사진)가 개관한다. 27일 두바이 공보청에 따르면 도심의 자빌 공원에 가로 93m, 세로 150m 규모의 직사각형 액자 모양 전망대가 완공돼 내년 1월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전망대에는 ‘두바이 프레임(두바이 액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두바이 프레임은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도록 유리로 된 패널을 외벽에 두르고 금색의 아랍식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됐다. 두 개의 타워는 100m²의 고공 다리로 연결돼 이곳에서 두바이 시내 전체를 관망할 수 있다. 두바이 포르셰 디자인 타워, 두바이 르네상스 타워 등을 설계한 건축가 페르난도 도니스의 작품이다. 두바이 프레임은 두바이를 대표하는 세계 최고(最高) 건물 부르즈 칼리파를 마주 보고 있다. 공보청은 부르즈 칼리파 방향으로 두바이의 미래상을, 구시가지를 향하는 반대 방향으로는 도시의 과거와 전통을 함께 관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망대 1층에는 작은 어촌에서 대도시로 변모한 두바이의 변화상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 마련됐다. 두바이 정부는 공사비 1억6000만 디르함(약 464억 원)이 투입된 전망대에 연간 200만 명이 찾을 것으로 기대했다. 입장료는 어른이 50디르함, 어린이는 30디르함이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저는 한때 힘든 경쟁 속에 살았고,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조지프 보아카이 부통령(72)이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전설적인 축구 스트라이커 조지 웨아(51)가 라이베리아 대선 결선 투표에서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26일 결선 투표가 끝난 라이베리아는 1944년 이래 처음으로 민주적인 정권 교체를 기다리고 있다. 웨아 후보가 이 역사적인 순간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분석이 다수다. 19세기 미국에서 해방된 노예들이 세운 라이베리아는 그간 쿠데타와 독재 정권, 내전 등으로 민주적으로 권력이 이양된 적이 한 번도 없다. 라이베리아 선거관리위원회는 29일 결선 투표 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민주변혁회의(CDC) 소속 웨아 후보는 앞서 10월 10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 38.4%를 득표해 28.2%에 머문 보아카이 후보를 제치고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득표율이 반을 넘지 않아 결선 투표를 치렀지만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높지 않다. 웨아 후보는 라이베리아 젊은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인구 410만 명의 라이베리아는 유권자의 5분의 1이 18∼22세로 청년 지지층의 입김이 세다.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에서의 웨아 후보 인기도 높다. 몬로비아 최악의 빈민가 출신인 그는 빈곤 속에서 자라나 20세기 최고의 아프리카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웨아는 명장 아르센 벵거 감독(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에게 발탁돼 아프리카 리그에서 프랑스 AS모나코로 이적한 뒤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모나코에 도착한 그는 당장 쓸 돈이 없어 벵거 감독에게 500프랑을 용돈으로 받아 쓰기도 했다. 웨아는 “인종 차별이 절정에 달했을 때 벵거 감독은 사랑으로 나를 대했다”며 “그가 없었다면 나는 유럽에서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벵거 감독도 자신이 발탁한 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선수로 아직까지 웨아를 꼽고 있다. 웨아는 AS모나코를 비롯해 AC밀란, 첼시, 맨체스터시티 등 유럽 최고의 팀들에서 뛰었다. 특히 AC밀란으로 이적한 1995년에는 경이적인 활약을 보이며 ‘블랙 다이아몬드’로 불렸다. 그해 그는 아프리카인으로는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했고, 국제축구연맹(FIFA)의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웨아는 2003년 축구선수를 은퇴한 뒤 고국 라이베리아의 정치판에 투신했다. 2005년 대선에도 출마했지만 집권 통합당(UP)의 엘런 존슨설리프 현 대통령에게 15만 표 차로 낙선했다. 웨아 후보는 2005년 당시의 패배를 “가치 있는 학습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당시 많은 이들이 그의 미숙한 정치 경험과 학력을 문제 삼았다. 그 후 웨아 후보는 대권을 위한 수업에 착실히 임했다. 2006년 40세의 나이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고, 2011년에는 미국 플로리다주의 더브라이대에서 경영학 학사를 받았다. 2년 후에는 행정학 석사 학위까지 땄다. 웨아는 2014년 라이베리아 몽세라도주의 상원의원으로 선출됐다. 웨아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투명성 등의 가치를 내세우며 빈곤 퇴치와 교육권 강화를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빈곤의 희생자였다”고 말하는 그는 라이베리아의 빈곤층에 미래의 비전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집권 후 150일 이내에 5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 이후 대사관 이전 행렬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미 과테말라가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밝힌 뒤 이스라엘 외교차관은 “최소 10개국과 대사관 이전을 위해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치피 호토벨리 이스라엘 외교차관은 25일 현지 라디오 방송에서 “우리는 대사관 이전을 논의하기 위해 유럽 국가를 포함해 최소 10개국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언은 지미 모랄레스 과테말라 대통령이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직후 나온 것이다. 과테말라는 21일 열린 유엔 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에 반대하는 ‘예루살렘 결의안’ 채택에 반대했다. 당사국인 미국과 이스라엘을 포함해 과테말라, 온두라스, 마셜제도, 미크로네시아, 나우루, 팔라우, 토고 등 9개국이 반대표를 던졌다. 대부분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는 중미 국가와 태평양 섬나라들이다. 찬성 128표로 결의안이 채택되자 미국은 유엔 예산 2억8500만 달러(약 3078억 원)를 대폭 삭감했다. 미국은 유엔 분담금의 약 22%를 부담하고 있다. 호토벨리 차관은 대사관 이전을 고려하고 있는 국가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스라엘 일간 예루살렘포스트 등은 이스라엘과 강력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온두라스가 과테말라 다음으로 대사관 이전을 결정할 것으로 내다봤다. 필리핀, 루마니아, 남수단 등도 대사관 이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무장단체 ‘하마스’는 향후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충돌할 경우 이란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이세형 기자}
성탄절을 앞두고 이집트 카이로의 기독교 소수종파 콥트교회가 과격한 무슬림 수백 명에게 습격을 당했다. 지난주 파키스탄의 한 교회에서 이슬람국가(IS)의 폭탄 테러로 수십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뒤 크리스마스 테러 공포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24일 이집트 일간 알마스리알욤에 따르면 22일 과격파 무슬림 수백 명이 카이로 남부 기자 지역 아미르 타드로스 교회를 급습했다. 이날 금요예배를 마친 무슬림들은 콥트교인들이 모인 이 교회를 포위하고 적대적인 구호를 외치며 교회의 철거를 요구했다. 이들은 교회 안으로 들어가 기물을 부수고 콥트교도를 폭행했다.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부상자들이 발생해 병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아미르 타드로스 교회는 정부로부터 종교시설로 승인받지 못했지만 약 15년 동안 콥트교도들의 예배장소였다. 교구는 관련 법안이 완화된 지난해부터 교회 건물에 대한 허가를 받으려 했다. 그러나 지방 당국은 이슬람 보수 세력의 격렬한 반대로 허가를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집트 전체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는 콥트교도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표적이 돼 왔다. 지난해 12월 25일에는 카이로의 콥트교회에서 IS의 폭탄 테러가 발생해 25명이 숨졌다. 올해도 4월 콥트교회 연쇄 폭탄 테러로 45명이 목숨을 잃었고, 5월에는 콥트교도가 탄 버스가 무차별 총격을 당해 29명이 사망했다. 모두 IS의 소행이었다. 최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세계 각국이 테러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특히 성탄절을 8일 앞둔 17일 파키스탄의 한 교회에서 IS의 폭탄 테러로 9명이 사망한 뒤 공포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21일 호주 멜버른에서는 32세 아프가니스탄 이민자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몰고 인도로 돌진해 한국인 3명을 포함해 19명이 다쳤다.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관광지에서 차량 테러 공격을 기도한 혐의로 IS를 추종하는 전직 해병대원이 체포됐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이집트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열흘 전 아내와 함께 방문한 카이로의 최대 쇼핑몰인 카이로페스티벌시티에서 흘러나온 익숙한 캐럴 소리에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집 근처를 거닐 때도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장식과 트리를 파는 상점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히잡을 쓰고 쇼핑을 하던 무슬림 여성들도 흥겨운 크리스마스의 연말 분위기에 취한 모습이었다. 이집트의 한 교민은 “최근 2, 3년 전부터 12월이면 이집트에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됐다”며 즐거워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집트에서도 크리스마스는 법정 공휴일이다. 전체 인구의 90%가 무슬림이지만 이집트는 크리스마스를 ‘이드 알 밀라드(콥트교의 성탄절)’로 부르며 기념한다. 이집트 인구의 10%는 기독교인 콥트교도이기 때문이다. 콥트교도는 성탄절에 양초와 전등을 가족과 이웃, 가난한 이들에게 선물한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 요셉이 성모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켰던 불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가톨릭과 개신교와 달리 콥트교의 성탄절은 1월 7일이다. 16세기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제정해 현재 널리 통용되는 그레고리력을 따르지 않고 고대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정한 율리우스력을 따른 것이다. 율리우스력 12월 25일은 그레고리력으로 13일 뒤인 1월 7일이다. 러시아와 세르비아 등 일부 정교회 국가도 율리우스력으로 성탄절을 기념한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뒤 373년 성탄절을 12월 25일로 공식 지정했다. 하지만 실제로 아기 예수가 이날 탄생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성경에는 예수의 탄생일은커녕 탄생 연도조차 명확하지가 않다. 이 때문에 초기 기독교시대에는 여러 가설이 분분했다. 로마의 역사가 히폴리투스는 “성모 마리아에게 수태고지가 있었던 날이 3월 25일이었다. 그러므로 (9개월 후인) 12월 25일에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예루살렘 일대에서는 예수가 세례를 받은 1월 6일을 성탄절로 기념하고 있었다. 당시 예수가 한겨울에 태어났을 리가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었다. 성경에는 아기 예수가 탄생할 당시 목자들이 양을 치고 있었다고 묘사돼 있다. 보름 전 취재를 위해 찾아간 베들레헴에서는 추운 날씨에 하얀 입김이 새어 나왔다. 양떼가 뜯어먹을 만한 푸른 목초지는 찾을 수 없었다. 요셉과 성모 마리아가 인구 조사를 위해 베들레헴으로 떠나는 성경 내용을 토대로 예수가 가을에 태어났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유대인들의 추수감사절이 낀 9월이 인구 조사에 적합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집트에 아직 오지 않은 성탄절을 기다리면서 낯설게 느껴진 게 한 가지 더 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으레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를 건네곤 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인정하지 않는 무슬림에게 이런 인사는 실례다. 대부분의 이집트 친구들은 즐거운 연말연시를 보내라는 뜻으로 ‘시즌스 그리팅스(Season‘s Greetings)’나 ‘해피 홀리데이스(Happy Holidays)’라고 말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에서는 이런 모습은 이미 일상적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운동이 1980년대 이후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종교와 인종, 성 등에 대한 차별적 언어를 금지하고 가치중립적 표현을 쓰는 것이 이제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8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시민들에게 보낸 카드에 단 한 번도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연말연시에는 기독교의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유대교 명절인 하누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축제인 콴자 등 다른 종교와 문화를 대표하는 기념일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메리 크리스마스를 되살려냈다. 대선 후보 시절 “정치적 올바름이 미국을 망치고 있다”고 비난했던 그는 취임 후 백악관 크리스마스트리에 처음 불을 밝히며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고 ‘메리 크리스마스’가 적힌 공식 크리스마스카드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건넨 쿨한 인사를 미국 내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은 과연 어떻게 느꼈을까.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던진 ‘말폭탄’에 아랍 세계의 균열이 더욱 깊어졌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선언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오래된 갈등은 다시 유혈 사태로 발화했다. 아랍 국가들도 일제히 나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했지만 저마다의 속내는 다르다. 예루살렘 사태를 둘러싼 주요 국가들의 기상도를 네 글자 키워드로 분석해 봤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은 이스라엘은 좋아도 내색하지 못하고 ‘표정관리’ 상태다. 이스라엘은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해준 트럼프가 고맙지만 당장 미국대사관이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느꼈던 소외감을 어느 정도 보상받는 정도다. 환호할 이유도 없다. 팔레스타인을 자극할 경우 국제사회의 동정론이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팔레스타인의 시위에 로키(low-key·조용히)로 대응하는 이유다. 팔레스타인은 ‘복잡미묘’한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집권당 파타는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때지만 무력투쟁을 벌이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울고 싶은데 때마침 뺨을 맞은 무장정파 하마스는 존재감을 드러낼 적기라고 판단해 로켓포를 발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이 생각만큼 반응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 선언으로 전 세계 14억 무슬림을 적으로 돌렸다. 하지만 마땅히 미국에 분노를 토해내야 할 요르단과 이집트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두 나라는 미국의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난처한 상황이다. 최대 피해자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는 ‘전전긍긍’하는 표정이다. 그는 왕위 계승을 앞두고 한창 핏줄들에 대한 숙청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사우디 내부에서는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와하비즘) 세력이 미국에 강경 대응하라고 무함마드 왕세자를 거세게 압박할 것”이라며 “이스라엘 이슈가 무함마드의 왕위 계승에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의 라이벌 이란은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란을 악당 정권으로 지목하고 핵협정 폐기를 시사해 왔다. 하지만 최근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스라엘로 옮겨갔다.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악당의 출현에 ‘악당탈출’에 성공한 셈이다. 최근 러시아와 밀월관계인 터키는 미국에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은 ‘사태수습’에 나섰다. 미숙한 대통령이 대외정책에서 실수를 하더라도 국무부와 국방부는 충분히 수습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미 막후에서 아랍 지도자들을 접촉해 달래기에 나섰을 가능성이 높다. 최후의 승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유진상 히브리대 한동대글로벌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 선언을 통해 안으로는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밖으로는 이스라엘에 빚을 지웠다”며 “어디까지를 예루살렘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정의도 내리지 않아 국제사회의 비판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예수 그리스도의 고향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11km 밖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가는 길은 험난했다. 길목에서 검문소를 만났다. 커다란 톨게이트처럼 생긴 곳을 통과하려면 매표원 대신 총을 든 군인들을 지나야 했다. 거의 도착해서는 높이 8m, 두께 50cm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을 지나야 했다. 이스라엘이 2002년 8월부터 쌓기 시작한 분리장벽이었다. 어렵게 도착한 그곳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었지만 고요하고 거룩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자가 방문한 9일 토요일은 유대인들의 안식일이어서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택시 운전사는 대부분 팔레스타인 주민이었다.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유대인 운전사들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인 베들레헴에 가길 꺼린다고 했다. 택시가 검문소를 지나자 창밖 풍경이 변했다. 상점 간판들은 히브리어보다 굴곡진 아랍어로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키파(유대교 전통모자)로 정수리를 가린 정통파 유대인들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히잡을 두른 무슬림 여성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분리장벽은 이스라엘이 2000년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와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리즘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쌓아 올렸다. 하지만 바로 이 거대한 장벽 때문에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오랜 유대관계는 거의 무너졌다. 베들레헴을 비롯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세워진 장벽의 길이는 700km에 달한다.장벽을 지나 베들레헴으로 들어서자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팔레스타인 택시 운전사는 재빨리 차량의 창문을 닫으며 멀지 않은 곳에서 치솟는 검은 연기를 가리켰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고 타이어를 태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스라엘 군경도 일부 도로를 통제해 좁은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혔다. 짜증 섞인 경적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길게 이어진 베들레헴 장벽에 자유를 향한 갈망을 빼곡히 그려 넣었다. 최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조롱하는 벽화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벽화 속에서 키파를 쓴 채 ‘통곡의 벽’을 만지며 “내가 네 형제를 세우겠다”고 읊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는 검은색 엑스(X)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베들레헴에 사는 청년 사이프 수보흐 씨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연설한 다음 날 분노한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벽화 속 트럼프 대통령을 흉하게 훼손했다”고 말했다. 장벽의 망루를 껴안고 입을 맞추는 트럼프 대통령의 벽화도 눈에 띄었다. 팔레스타인 시위대는 장벽이 시작되는 바로 이곳을 향해 쉴 새 없이 돌팔매질을 하고 화염병을 던졌다. 이스라엘 군인들도 시위대를 향해 수백 발의 최루탄을 발사했다. 최루탄을 자동 발사하는 군용 차량이 돌진하며 하늘로 최루탄을 쏘아 올리자 새하얀 연기가 눈처럼 시위대를 덮쳤다. 베들레헴 택시 운전사 오사마 알리 씨는 “하루 종일 연기가 치솟고 있다”며 “어제 가자지구에서 2명이 사망하면서 시위가 더 격렬해졌다”고 말했다. 이날 이스라엘 군인이 쏜 고무총탄에 수십 명이 다치는 등 유혈 사태가 일어났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충돌의 ‘분수령’으로 여겨진 8일 금요 합동 예배 이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부상자는 총 234명으로 집계됐다. 예수 탄생 기념 성당 앞의 말구유광장에는 관광객보다 호객꾼이 더 많았다. 평소라면 길게 줄이 늘어섰어야 할 성당의 좁은 문 안이 휑하니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베들레헴에서 가이드 일을 하는 청년 압둘라 소베흐 씨는 “하루 평균 120∼150대의 투어 버스가 단체 관광객을 싣고 오는데 오늘은 55대밖에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장 주변의 상점들도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디저트 가게를 운영하는 이브라임 라이밀리아스 씨는 “대규모 관광 취소가 크게 늘었다”며 “관광업에 의지하는 베들레헴이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개인 여행자들과 달리 단체 관광객과 순례객들은 안전을 더 크게 우려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과라는 것이다. 라이밀리아스 씨는 “일본 정부도 베들레헴을 안전하지 않은 지역으로 분류해서 더 이상 일본인 관광객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베들레헴의 젊은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스라엘 수도=예루살렘’ 선언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 세상으로부터 더욱 고립될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팔레스타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아미르 수베흐 씨는 “밖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하지만 베들레헴처럼 유대인과 평화롭게 공존해 온 곳이 없다. 모스크와 성당이 마주 보고 있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무슬림들은 기독교 이웃들에게 인사를 건넨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TV를 장식하는 이스라엘 전역의 분쟁 장면을 멍하니 지켜보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어느 때보다 슬플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8일(현지 시간)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다마스쿠스 게이트로 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이스라엘 군경의 충돌이 가장 잦은 곳이라 들었기 때문이다. 마침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알아끄사 모스크에서 금요 합동예배가 막 끝난 참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 연설(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에 항의하며 시위에 참가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생각보다 적었다. “알꾸드스 아라비야(예루살렘은 아랍 땅)”이라고 외치는 시위대는 수십 명에 불과했다. 오히려 이스라엘 군경과 취재진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들로 구성된 시위대는 총기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경 앞에서 한없이 위태로워 보였다. 분노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다음 날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깨달았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예루살렘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도시들은 체크포인트로 불리는 군 검문소와 높은 장벽으로 가로막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 정부에서 ‘출입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붕 없는 감옥에 갇힌 신세나 다름없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거나 출입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조차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없다. 그곳에서 생계를 꾸려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위험인물로 찍히면 장사를 할 수 없게 되거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유진상 히브리대 한동대글로벌센터장은 “예루살렘에서 시위를 주도하던 20, 30대 젊은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생계 문제로 점차 온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탔다. 기자를 제외하면 모두 팔레스타인 주민들이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버스가 검문소에 멈춰 서더니 타고 있던 승객들이 줄지어 내렸다. 승객들은 대기하고 있던 군인 앞에 한 줄로 선 채로 추위에 떨며 보안검색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텔아비브의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입국심사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예루살렘을 취재하러 왔다고 하자 따로 조사를 하겠다며 대기실로 데려갔다. 죄 지은 것도 없이 초조한 마음으로 1시간 넘게 시계만 쳐다봤다. 오랜 기다림 끝에 돌아온 건 시답잖은 질문 몇 개였다. 불편과 불쾌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런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 건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하면서부터다. 이스라엘의 건국이 그들에게는 ‘나크바(파국)’였다. 당시 140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 가운데 약 80만 명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로 쫓겨나거나 요르단, 시리아, 터키 등지로 떠나야 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영토의 1300여 개 마을 중 774곳을 점령하고 531곳을 지도에서 깨끗하게 지워 버렸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1만5000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에서 해방된 지 3년 만에 벌인 일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6일 전쟁’을 통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물론이고 예루살렘의 성지(聖地) 템플마운트(성전산)까지 점령했다. 팔레스타인은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독립할 경우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1968년부터 국회의사당과 정부중앙청사, 대법원, 이스라엘 중앙은행을 예루살렘으로 줄줄이 옮겨 사실상 행정수도로 만들었다. 솔로몬 왕이 세운 성전 터에 남은 ‘통곡의 벽’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평화의 땅에 수차례 상처를 남겼다. 이스라엘 왕국의 세 번째 왕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아 태평성대를 이뤘다. 솔로몬의 지혜가 있다면 예루살렘의 주인을 판별할 수 있을까. 한 아이를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우기는 두 여자에게 솔로몬 왕은 아이를 반으로 잘라 나눠 가지라는 판결을 내렸다. 진정한 모성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식을 포기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성지가 피로 물드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유대인들에게 솔로몬의 지혜를 기대할 수 있는 걸까.― 예루살렘에서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8일(현지 시간)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3대 종교의 성지인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선언’으로 대혼란에 빠져 있었다.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인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긴장감이 도시에 가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경악한 팔레스타인 시위대들은 올드시티(구시가지) 다마스쿠스 문 일대에 모여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것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 중에는 여성, 어린이, 청소년들도 섞여 있었다. 일부 시위대는 “압바스는 배신자다”, “압바스는 미국의 스파이다” 같은 구호도 외쳤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신속하고 강경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과 분노였다. 유대인들도 복잡한 감정을 쏟아냈다.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해 준 게 반갑지만,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유대인인 택시 운전사 로넨 인지 씨는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언한 건 환영할 만하지만 그가 정상이 아닌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들은 일제히 민중 봉기와 무장 투쟁을 독려하고 나섰다.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하마스의 이스마일 하니야는 7일 연설에서 “미국이 지지하는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 정책은 우리가 새로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에 불을 붙이지 않는 한 맞설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니야의 연설 후 곧이어 다수의 로켓포가 가자지구에서 발사됐다”며 “이 중 한 발이 이스라엘 영토에 떨어져 육군 탱크와 공군 비행기가 가자지구 내 ‘테러 초소 두 곳’을 목표로 대응했다”고 밝혔다. 반이스라엘 무장단체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이슬람 지하드(PIJ)’의 지도자 나페즈 아잠과 아흐마드 알바치는 “새로운 무장 투쟁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이스라엘과의 모든 안보 협력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레바논 남부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이스라엘과 지속적으로 충돌해 온 이슬람교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도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헤즈볼라는 “미국은 나누어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함으로써 모든 협상의 길을 차단해 버렸다”며 “이는 팔레스타인의 권리에 반하는 기만적이고 악의적인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헤즈볼라는 최근 수년 사이 이란의 도움으로 세력이 빠르게 성장해 이스라엘과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가 동시에 부담을 느껴온 단체다. 일각에선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모종의 합의를 한 뒤 헤즈볼라를 공격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헤즈볼라가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1995년 미국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도 대사관의 안전 등을 이유로 실행하지 않았던 미국도 긴장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표 직후 전 세계 20개 이상의 미대사관이 격렬한 반대 시위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롭 매닝 국방부 대변인은 “미 해병대는 소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곳의 대사관과 영사관 등 재외공관을 보호할 준비가 돼 있다”며 해병대 출격 가능성도 시사했다.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 오던 중동 정책이 한순간에 뒤바뀐 미국 내부도 혼란에 휩싸였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7일 “수십 년 된 미국의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아랍과 이슬람 세계 전체에 걸친 긴장을 악화시킨다”고 우려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그리고 대통령의 억만장자 친구인 토머스 배럭까지 나서서 반대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몇 달 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기로 사실상 결심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틸러슨 장관은 공식 발표 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따른 것”이라고 옹호했지만 그전까지는 제2의 벵가지 사태(2012년 리비아 미국영사관 테러로 4명이 사망한 사건)가 벌어질 수 있다며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 이후 팔레스타인 반발의 강도가 워낙 커 당분간은 긴장 고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달 중하순에 예정되어 있었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압바스 수반 간 회담이 취소 위기에 처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당인 파타의 고위 인사인 지브릴 라주브는 “펜스 부통령이 팔레스타인에 발을 들여선 안 된다”고 밝혔다.예루살렘=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이세형 기자 / 파리=동정민 특파원}

8일 오전 8시 55분(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를 출발한 에어시나이 4D54편 비행기가 1시간 반 뒤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승무원들은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 선언으로 주변국에서 반(反)이스라엘 감정이 고조돼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입국심사가 더 엄격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입국심사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예루살렘을 취재하러 왔다”는 기자의 대답을 들은 뒤 약 1시간에 걸쳐 취재 목적, 기간, 만날 사람 등을 집요하게 물은 뒤에야 입국을 허가했다. 텔아비브에서 40분 정도 달려 도착한 예루살렘의 올드시티(구시가지)에서는 긴장감이 한층 강하게 느껴졌다. 올드시티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성지가 밀집된 지역이다. 시내 다른 지역보다 팔레스타인계로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일부 팔레스타인인들은 “우리는 예루살렘인이고, 우리는 예루살렘에 산다”는 구호를 외치며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에 항의했다. 이날 오후 이슬람 성지인 알아끄사 모스크에서 금요일 합동예배를 마친 무슬림들이 다마스쿠스 문으로 대거 나오면서 구호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시위대와 이스라엘군의 충돌도 발생했다. 무슬림 시위대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은 아랍 도시”라고 외치며 이스라엘군을 향해 물병 등을 던졌다. 이스라엘군은 시위대를 밀치고, 구호를 주도하는 이들을 붙잡았다. 이스라엘 당국은 올드시티 주요 출입문과 알아끄사 모스크가 있는 템플마운트(성전산)의 출입을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하지만 격한 시위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20∼40대 젊은 남성들의 출입을 봉쇄했다. 현지 히브리대 한동대글로벌센터장인 유진상 씨는 “무슬림들이 많이 찾는 지역을 완전히 통제하면 오히려 시위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내린 조치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올드시티를 포함해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상점들은 총파업 요구에 따라 대부분 문을 닫았고 학교들도 수업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7일 팔레스타인 라말라와 헤브론, 베들레헴, 나블루스 등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는 거센 항의 시위가 이어지면서 이스라엘 경찰과 강하게 충돌했다. AFP통신은 가자지구 국경선 근처에서 팔레스타인 시위대 2명이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맞아 숨지고 250여 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전직 대통령들이 대선 기간 중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하겠다’고 밝히는 동영상과 “나는 대선 공약을 지켰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 지켰다”는 글을 올렸다.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