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재

이호재 기자

동아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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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틈틈이 소설을 쓰며 스토리텔링에 천착한다. 숨소리까지 살아 숨쉬는 생생한 내러티브 기사가 넷플릭스 영상보다 가치 있는 컨텐츠라 믿는다.

hoho@donga.com

취재분야

2025-11-18~2025-12-18
문화 일반51%
인사일반20%
문학/출판10%
기획7%
무용3%
사고3%
칼럼3%
기타3%
  • [책의 향기]가벼운듯 진지하네, 젊은 작가들의 유쾌한 시선

    철학자가 쓴 책은 어쩐지 무겁게 느껴진다. 책을 펼치면 저자가 ‘엄근진’(엄격·근엄·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무지한 독자들을 혼낼 것만 같다.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에 대한 고뇌를 털어놓는 소설가, 휘황한 철학이론을 펼치며 지성의 위대함을 예찬하는 철학자의 글을 읽기보다 유튜브나 가볍게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쯤 두 신간이 눈에 들어왔다. 겉으로는 가벼워 보일지 모르지만 속은 결코 가볍지 않은 책들이다. 그리고 발칙하다. 공상과학(SF) 소설가 심너울은 작가란 신비한 존재라는 편견을 깨는 에세이를 내놓았다. 그는 자신이 쓰는 원고를 ‘헛소리’로 정의하고, 매일 쓰는 소설을 억지로 쥐어짠 것이라고 말한다. 백지를 볼 때마다 마감 압박에 시달리다 에세이를 기어코 완성한 건 출판사에서 추석 선물로 보낸 굴비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해외로 도망칠 수 없어 원고를 썼다고 자조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책상 생활자’로 부르는 대목에서는 젊은 작가 특유의 발랄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책 곳곳에 젊은 작가로서의 깊은 고민도 묻어 있다. 심너울은 2019년부터 대명사 ‘그’ 뒤에 ‘계집 녀(女)’를 붙인 ‘그녀’를 작품에 쓰지 않고 있는데 젠더 감수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말한다. 문학이라는 철저히 주관적인 영역에 온라인 별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지만, 소비자를 위한 정보라 불가피하다고 털어놓는다. 유머 안에 숨겨진 작가의 진지한 시선을 느낄 때 그가 단순히 웃기는 작가가 아님을 깨닫는다. 철학과 인문학 강연자로 활동하는 현상필은 신간에서 몸매 관리를 중시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철학자는 산책이나 명상을 즐기며 지적인 토론만 즐길 것 같지만 실제 고대 그리스에선 육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 플라톤(기원전 427년∼기원전 347년)은 레슬링 경기에서 두 번이나 우승할 정도로 유명한 레슬러였다. 플라톤은 그리스어로 ‘넓다’는 뜻인데 그의 어깨가 넓어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는 “올바르게 가려는 자는 젊을 때 아름다운 몸을 향해 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운동을 중시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기원전 399년)는 세 차례의 군사 원정에 참여한 군인 출신이다. 고대 그리스의 체육관인 김나시온에서 매일 운동하며 몸을 단련했다. 당시 젊은이들이 바글거리는 힙한 공간이던 김나시온에서 핫한 철학 담론들이 논의됐을 것이라는 저자의 견해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 같다. 저자는 대학 시절 헬스트레이너로 활동했고, 지금도 매일 헬스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몸 공부의 중요성을 깨달았단다. 몸이 빈약한 제자에게 운동을 하라고 나무랐다는 소크라테스의 잔소리를 읽으니 오늘은 헬스장에 가야 할 것 같다. “몸이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족(失足)한다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몸 상태가 나쁘기 때문에 기억상실과 낙심, 까탈스러움, 광기가 종종 많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해 올바른 지식마저 몰아내기도 하지.”(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회상록’ 중)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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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층간소음 해결 골든타임은 6개월… 불편 알릴 땐 메모로”

    지난해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인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민원은 총 4만2250건. 2012년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가 출범한 뒤 2019년까지 이어진 연평균 민원 건수(2만508건)의 두 배가 넘는다. 최근엔 이휘재, 안상태 등 방송인들이 층간소음을 일으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층간소음은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대체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건축학 박사로, 층간소음을 주제로 논문을 쓴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47·사진)은 25일 펴내는 교양서 ‘당신은 아파트에 살면 안 된다’(황소북스)에서 자신이 상담한 다양한 층간소음 사건을 소개한다. 임신 후 휴직을 하고 집에서 태교에 전념하던 30대 여성 A 씨는 윗집에서 들려오는 원인 모를 ‘쿵’ 소리 때문에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윗집에 항의해야 한다는 A 씨와 유별나게 굴지 말고 참고 살자는 남편은 매일 부부 싸움을 했다. 결국 A 씨는 스트레스 때문에 유산했다.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극단적인 사례는 아니지만 복수극도 종종 벌어진다. 7층에 사는 40대 여성 B 씨는 꼬박 2년 동안 자신에게 층간소음의 고통을 준 8층 집에 복수하기 위해 9층으로 이사했다. “얼마나 통쾌한지 모르겠다”고 자랑하는 B 씨를 보며 차 소장은 씁쓸한 마음에 휩싸였다. 차 소장은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항상 B 씨 같은 복수를 꿈꾼다”며 “하지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흉기로 이웃을 찌르는 잔인한 범죄가 일어나는 것도 보복 심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아파트, 연립주택 등 공동주택 거주 비율이 높고, 도시 밀집도가 높다. 코로나19로 집에 오랜 시간 머물게 됨에 따라 다른 집의 소음으로 괴로워할 확률이 높은 것. 차 소장은 윗집은 통행이 잦은 곳에 두께 5cm 이상의 층간소음 매트를 깔고, 폭신한 소재의 슬리퍼를 착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랫집은 층간소음 스트레스를 윗집에 알릴 때 직접 바로 찾아가기보단 메모지를 윗집 현관문에 붙이며 고충을 전달하는 게 좋다. 차 소장은 “아랫집은 윗집에 무조건 소음을 내지 말라고 강요하고, 윗집은 아랫집을 무조건 예민한 사람이 사는 곳으로 치부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소음이 크냐 작냐를 두고 싸울 것이 아니라 아랫집이 소음으로 힘들면 두 집이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차 소장은 층간소음 문제 해결의 골든타임을 6개월이라고 강조한다. 이 기간 내에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각종 범죄 등 불상사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 1년이 지나면 아파트 관리사무소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를 통해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차 소장은 “오래된 아파트보다 가구 간 소음이 적지만 이웃 간에 서로 잘 모르는 신축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층간소음에 대해 불만이 더 많다”며 “아파트 관리사무소도 경비원에게 층간소음 당사자들을 원만히 협의시키는 방식을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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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만에 소설 펴낸 황시운 작가 “생을 포기하고 싶을때 내 이야기가 도움되길”

    2011년 5월 17일 저녁 강원 원주시 토지문화관 창작실에 머물던 황시운 작가(45·여)는 동료들과 산책에 나섰다. 산책길은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신이 난 그는 깔깔대며 웃었다. 그가 첫 장편소설 ‘컴백홈’(창비)을 출간한 다음 날이었다. 이제 작가로서 제대로 된 밥벌이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돌다리를 건너던 황 작가는 그만 발을 헛디뎠다. 그러곤 수 미터 아래로 추락했다.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지난달 25일 소설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교유서가)을 펴낸 그는 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추락한 뒤 병원에 실려 갔을 때는 내가 다쳤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사고 직후 응급차로 서울로 이송된 뒤 병원에서 3차례 대수술을 했지만 최고의 순간 찾아온 최악의 비극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 그는 “6개월에 걸쳐 치료와 재활에 힘썼지만 흉추가 부러져 신경이 망가진 사실을 바꿀 순 없었다.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고 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황시운은 2007년 신춘문예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학원 강사로 일하며 문학을 독학한 지 7년 만이었다. 신인 작가에게 현실은 가혹했다. 수차례 계간지에 작품을 기고하다 공모전에 도전했다. 그 결과가 2010년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컴백홈이었다. 이를 통해 작가로서의 자립을 꿈꿨다. 하지만 그는 불의의 사고로 지체장애 1급이 됐다. 휠체어 타는 법을 배우고 바뀐 일상에 적응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하루 종일 멍하니 보내는 날이 많았다. 2년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2013년 그는 다시 소설을 써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통증 탓에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일 자체가 어려웠다. 소설을 쓰다 포기한 것도 여러 번이지만 그때마다 가족이 힘이 됐다. 소설을 써냈지만 책을 다시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지 못했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책을 내는 건 종이 낭비가 아닐까’ ‘소설을 제대로 쓴 걸까’. 지난해 출판사 연락을 먼저 받고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등단 후 첫 책을 내기까지 3년 동안 출판 제의를 거절당한 트라우마 때문에 먼저 출간할 생각조차 못 한 거죠. 이제는 그 기억이 자격지심이자 피해의식이라는 걸 알아요.” 그의 경험은 소설에 녹아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의 인생처럼 삶의 파도에 휩쓸려 좌절하곤 한다. 단편소설 ‘매듭’에서 주인공은 결혼 석 달 만에 닥쳐온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남편을 돌보고, ‘어떤 이별’의 주인공은 이웃에 사는 정신지체 청년에게 아이를 잃는다. 그는 사고 경험을 담은 에세이를 쓰고 있다. “어느 한 시절의 제가 그랬듯 생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좌절한 누군가에게 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쓰고 또 쓸 준비가 돼 있어요. 다른 이들보다 느릴지언정 멈추지는 않을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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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행복에 취한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의 삶을 파괴한다”

    지난해 1월 소설가 정유정(55·여)은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쪽 바이칼 호수 앞에 섰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3박 4일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했다. 몸이 벌벌 떨리고 눈썹에 고드름이 맺힐 정도로 추운 영하 40도 날씨에 호수는 꽝꽝 언 상태. 그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며 상상했다. 이 호수의 바닥만큼 어두운 마음을 지닌 이가 오직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완전한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타인의 불행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처참한 비극이 찾아올까. 장편소설 ‘완전한 행복’(은행나무) 출간을 하루 앞둔 7일, 정유정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설 주인공 유나가 남편과 이혼한 뒤 러시아 여행을 떠나는 장면을 쓰기 위해 한 달간 러시아를 돌아다녔다”며 “바이칼 호수에 와서야 춥고 황폐한 유나의 내면을 파고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나가 저지르는 악행을 디테일하게 묘사하려고 프로파일러, 약리학과 교수 등 다양한 전문가의 조언을 받았다. 그는 “철저한 취재를 통해 소설의 사실성을 높이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 소설은 정 작가가 2019년 5월 장편소설 ‘진이, 지니’(은행나무)를 펴낸 후 2년 1개월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뼛속까지 나르시시스트인 유나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악을 저지르는 이야기를 담았다. 자기애의 늪에 빠진 유나가 저지르는 일들은 독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유나로 인해 비극에 처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읽다 보면 가슴이 아린다. 작가는 집필 과정에서 ‘고유정 사건’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고유정은 2019년 5월 제주도 펜션에서 전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심리 전문가들은 고유정을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강한 인물로 본다. 그는 “고유정 사건은 소설 속 사건과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하나의 ‘문학적 질문’을 내게 던져주었다”며 “왜 이런 나르시시스트들이 만들어지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정유정은 현재 한국사회를 행복에 대한 강박증과 자기애가 넘치는 사회로 정의한다. 자신은 항상 행복해야 하며, 삶에 고통과 불행이 섞여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상당수 부모는 어린 자녀들에게 “너는 남보다 특별한 아이”라고 주입한다. 장편소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 이른바 ‘악의 3부작’에서 타고난 사이코패스를 파고든 정유정이 신작에서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다룬 이유다. 그는 “개인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점에서 고유성을 존중받아야 하지만 자신만 생각하면 나르시시스트가 된다. 위험한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르시시스트가 다른 이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려고 주인공 유나가 아닌 가족의 시점을 빌려 이야기를 전개했다. 주변 사람들의 삶이 철저히 파괴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행위를 ‘행복 추구’로 정당화하는 나르시시스트의 주장을 반박하고 싶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지닌 이들은 직장이나 학교 등 어디에서도 만날 수 있어요. 저를 포함해 누구도 어떤 선을 넘어가면 유나처럼 철저히 파멸할 수 있죠. 행복에 대한 욕망을 주제로 삼은 이 작품을 시작으로 앞으로 ‘욕망 3부작’을 쓸 계획입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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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집사의 인간 세상 다르게 보기, 다 내 덕분이라오 냐옹∼”

    ‘하얀 털과 검은 털이 적당히 섞인 일명 젖소무늬 고양이. … 일단 나는 지나친 완벽주의자야. 몇 시간씩 털을 고를 정도로 청결 강박증도 있어.’ 베스트셀러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0)의 신작 ‘문명’(열린책들)에 묘사된 세상을 구하는 고양이 바스테트는 그의 반려묘 도미노와 똑 닮았다. ‘사랑스러운 공주님’이라면서도 ‘날카로운 발톱과 식탐과 신경질, 무엇보다 병적인 자기애’로 표현한 부분에서는 도미노에 대한 작가의 애증이 느껴진다. 작가는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도미노가 소설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도미노는 어떤 고양이고, 작가는 왜 도미노에게 매료됐을까. 동아일보는 베르베르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도미노와의 가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작가가 도미노의 생각을 대신 옮겼다. 소설에서 인간에게 반말을 하는 바스테트처럼 도미노도 그렇게 답해 왔다. ―도미노! 베르베르를 어떻게 만났나요. “원래 다른 작가랑 함께 살다 그를 만나게 됐어. 베르베르는 처음에는 내가 수컷인지 암컷인지도 모르더라고 참. 흰 털과 검은 털이 섞인 외모를 보고 도미노가 연상돼 나를 그렇게 불렀다더군(옛날 도미노는 흰색과 검은색 막대기로 구성). 그가 한국 독자들을 만나러 갈 때면 이웃의 바네사 비통과 함께 지내지.” ―베르베르는 왜 당신에게 빠진 걸까요. “난 항상 재미와 기쁨을 찾아다니지. 모든 사람이 내 미모에 감탄하기를 원하고 나 스스로를 유명 배우처럼 여기기도 해. 고양이 집사들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할 거야. 난 베르베르와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해. 그가 바빠서 날 보지 않으면 발코니 난간에 올라가서 위험천만한 자세로 앉아있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면 그제야 날 쳐다보더군. 아마도 베르베르는 이런 내 성격을 좋아하는 것 같아.” ―베르베르가 당신을 ‘문명’의 모티브로 삼은 이유가 뭘까요. “그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미래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하기 위해서야. 인간이라는 시스템을 이해하려면 그것 밖으로 나와야 해. 인간들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지. 그래서 그는 고양이의 눈을 택한 거야. 고양이라는 종은 여러 측면에서 인간보다 똑똑한 동물이거든.” ―베르베르가 고양이나 쥐 같은 동물을 의인화하는 이유도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그는 자기 눈에 비친 인간 세상이 만족스럽지 않았어. 그래서 자신이 동물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상상을 수시로 했다지. 여덟 살 때 벼룩이 된 자기 모습을 상상하면서 단편소설을 썼는데 주변에서 다들 재미있다고 칭찬해 줬다더군. 그는 동물을 이용하면 우회적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철학이나 정치를 논하려면 진지함을 피할 수 없는데 동물의 입을 빌리면 그렇지 않잖아.” ―소설이 인간 문명의 몰락을 그리다 보니 최근 팬데믹 상황이 연상되는데 베르베르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코로나19가 등장했을 때 베르베르는 이 사태가 장기화될 거라고 예상했지. 초기에 전문가들이 상반된 견해를 내놓는 바람에 사람들이 무척 혼란스러워했어. 결국 과학 전반에 대한 불신이 초래됐잖아. 돌이켜보면 과학자들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사태가 악화됐다는 게 그의 생각이야.” ―베르베르는 요즘 무얼 하나요. “그는 16세 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4시간 30분씩 글을 써왔어. 규칙적인 리듬이야말로 예술가의 창의성이 발휘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라고 생각한다대. 지금도 매일 템플 기사단(중세 십자군 전쟁 당시 3대 기사단 중 하나)과 꿀벌이 나오는 신작 소설을 쓰고 있어. 바쁘지만 틈틈이 나랑 놀아줘서 기특하다고 생각해.”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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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기 방역 성과낸 한국-대만, 위급함 못느껴 백신접종 지연 초래”

    “치명적인 질병이 세계 보건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2017년 6월 국제정치 전문가 파리드 자카리아(57·사진)는 자신이 진행하는 미국 CNN 간판 프로그램 ‘파리드 자카리아 GPS’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이로부터 3년도 지나지 않아 그의 경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현실화됐다. 자카리아는 올 4월 출간된 ‘팬데믹 다음 세상을 위한 텐 레슨’(민음사)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국가 간 협력을 강조했다. 다자주의를 확대하고, 공공서비스를 확대해 코로나19로 심화된 세계적인 양극화 현상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 그가 지켜본 한국의 코로나 대응은 어땠을까. 자카리아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은 생물학적 위협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고 재빨리 대응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내가 이 책을 집필 중이던 지난해 8월 한국의 코로나 확산세는 대단히 낮았다. 다른 나라에 별로 뒤지지 않는 방역 성과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초기 방역 성과가 양호했던 요인으로 사회적 통제를 받아들이는 문화를 꼽았다. 그는 “동아시아의 비교적 엄격한 문화가 방역 성공을 가져왔다. 반면 상대적으로 느슨한 서구 세계가 기대에 못 미친 까닭도 문화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정부의 방역 정책이 훌륭해도 일반 시민들이 이를 신뢰하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20세기 후반 한국의 점진적 민주화와 경제근대화 등의 국가 역량도 방역에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은 반도 국가이지만 (북한에 가로막혀) 사실상 섬이나 다를 바 없다. 대만, 호주, 뉴질랜드처럼 육상 국경선이 없는 섬나라는 방역 성과가 상당히 좋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백신 접종률은 미국, 영국 등에 비해 낮은 편이다. 그는 “한국처럼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대체로 승리했던 나라에서 정부나 국민이 위급함을 제대로 못 느꼈다. 이로 인해 백신 접종 지연이라는 결과가 초래됐으니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미국 등 팬데믹 초기 방역에 실패한 국가들이 백신 접종에 사활을 건 반면, 한국 등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그는 “한국은 글로벌 백신 개발에서 중심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혼자 힘으로 아등바등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해법은 무얼까. 그는 한국이 신속한 백신 확보와 더불어 접종 독려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조그마한 동네 약국, 대형 경기장, 지하철역 등에서까지 광범위하게 백신을 접종하는 미국 사례를 들었다. 그는 “미국에서는 종교 지도자들도 신도들에게 백신 접종을 독려했다”며 “정상적인 삶의 회복을 약속하는 것이야말로 백신 접종을 위한 강력한 인센티브”라고 강조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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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닌텐도 CEO의 순수한 행복찾기[이호재의 띠지 풀고 책 수다]

    요즘 초등학생 조카가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에 푹 빠져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툭 하면 학교가 쉬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어울려 놀기도 쉽지 않아서다. 조카는 나를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 게임기를 먼저 산 나에게 어떻게 적을 무찌르고 퍼즐을 풀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다. 게임을 하다 보면 우리는 친구처럼 가까워진다. 이 책은 일본의 대표적인 게임업체 닌텐도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이와타 사토루(巖田聰)의 생전 인터뷰와 주변인들의 회고를 담았다. 이와타는 2002년 닌텐도 사장에 취임한 후 게임기 닌텐도DS와 위(Wii)를 만들며 한때 기울었던 닌텐도를 일으켜 세운 인물. 2015년 56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닌텐도 스위치 개발을 주도하며 살아 있는 신화로 불렸다. 이와타의 경영 철학은 ‘어른도 아이도’였다. 게임기는 가족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기기가 돼야 한다는 것. 물론 이를 위해선 누가 해도 즐거울 만큼 재미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게임을 만드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애니메이션을 어른들은 유치하다고 하고, 영화제에서 수상한 전쟁영화를 누군가는 잔인하다고 깎아내린다. 게임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흥미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닌텐도 게임은 나이나 성별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 조카와 내가 닌텐도 스위치에 빠진 것처럼. 비결은 뭘까. 이와타는 직원들과 면담할 때 반드시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라고 물었다. 신입직원을 뽑을 땐 “지금까지 해온 일 중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항상 싱글벙글 웃으며 행복에 대해 토론했다. 자신이 즐거웠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동료가 행복했던 순간을 질문한다. 이와타는 평생 인간이 순수하게 행복해할 때를 찾아다녔다. 사람들이 어떤 순간에 제일 즐거워할까를 고민한 결과가 닌텐도 게임에 반영된 게 아닐까. 지금도 닌텐도 사용자들은 어드벤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을 하면서 일상의 고통을 치유받는다. 광활한 대지를 유랑하며 떠도는 롤플레잉 게임 ‘젤다의 전설―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를 통해 자유를 만끽한다. 어른과 아이가 원한 행복을 게임이 집어낸 것이다.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했던 이와타의 모습은 책에 담긴 동료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모두가 해피(happy)하기를 실현하고 싶었던 거지요. 자신이 행복한 것, 동료가 해피한 것, 고객이 해피한 것. 그는 해피라고 말할 때 양손을 쫙 폈어요. 해피라고 하면서요. 이런 건 잊을 수가 없네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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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과거에 살고 있는 그가 말을 걸어왔다

    2019년 크리스마스이브. 중년 남성 윤호연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건 이는 자신을 윤호연의 부인인 선우정의 전 남자친구라고 소개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죽으면 윤호연도 죽을 것이라는 협박을 덧붙이면서 지금 당장 만나자고 한다. 호기심을 느낀 윤호연은 전화를 건 이를 만나러 약속 장소로 향한다. 1999년 12월의 어느 날. 청년 도윤호는 잠에서 깬다. 꿈에서 누군가와 술을 마신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술을 마신 대상이 중년이라는 것 외엔 확실하지가 않다. 도윤호는 전 여자친구인 선우정을 떠올린다. 언뜻 보면 이 소설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다. 2019년에 윤호연과 도윤호는 술을 마셨는데, 20년 전인 1999년에 도윤호는 꿈에서 윤호연과 함께 술을 마셨다고 생각하기 때문. 공상과학(SF)소설에서 주로 쓰이는 과거나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는 ‘타임 리프’ 장치도 없는데 두 사람은 어떻게 연결된 것일까. 허무맹랑하게 이어지는 소설은 서서히 도윤호와 윤호연의 교집합을 드러낸다. 과거와 현재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소설의 주제 의식을 작가는 조금씩 꺼내든다. 이 작품은 형식에 방점을 뒀다. 서사 중심인 소설보다는 읽기 어렵지만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숨겨둔 생각을 음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가는 무한을 나타내는 기호인 ‘∞’를 이 작품의 모티프로 삼고 있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성직자인 존 월리스(1616∼1703)가 처음 사용한 무한의 의미를 시간 개념으로 확장한 것. 시작과 끝이 없이 돌고 도는 무한의 모양처럼 과거와 미래가 연결될 수 있다고 상상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하자. 두 개의 원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이야기를. 너와 나와 그의 이야기를. 너와 너의 이야기를. 1999년 서울에서 2019년 서울까지. 무한한 빛을 발하는 밤하늘 아래.”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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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아버지의 영원한 조수” 한국 산의 아름다움 남기다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 경남 함양군과 하동군의 경계에 있는 지리산 벽소령(碧宵嶺) 부근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이 찍힌 건 1959년 8월. 한여름인데도 나무들이 발가벗은 채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원래는 사람의 손길이나 자연 재해를 겪지 않은 원시림인데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6·25전쟁 후 월북하지 못하고 남한에 남아있던 지리산 지역 공비를 토벌하기 위해 남측 군경이 1950∼1956년 실시한 지리산공비토벌작전 중 의도적으로 낸 산불 때문이다. 이 사진엔 한국 산의 슬픔이 녹아 있다. 지난달 20일 고(故) 김근원(1922∼2000)의 사진집 ‘산의 기억’(열화당)이 출간됐다. 김근원은 1950∼1980년대 한국 산의 모습을 찍은 1세대 산악사진가다. 책엔 김근원이 필름으로 찍었고 디지털로 복원된 흑백 사진 수백 장이 담겨 있다. 김근원의 아들 김상훈 씨(68)가 아버지와 연이 있는 산악인들과 대화한 뒤 아버지의 시각에서 사진을 찍은 상황에 대해 쓴 글도 담겨 있다. 78세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목소리를 21년 만에 아들이 되살린 셈이다. 김 씨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버지의 사진집을 뒤늦게라도 펴낸 건 한국 산의 아름다움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했다. 김 씨의 말대로 김근원이 찍은 사진엔 사람의 손이 별로 닿지 않은 시기 한국 산 본연의 모습이 담겨 있다. 1958년 설악산 십이선녀탕을 찍은 사진엔 인공구조물이 전혀 없다. 둥글고 미끄러운 계곡을 산악인들이 조심조심 걸어가는 모습이 아찔하다. 김 씨는 “해외 유명 산들과 달리 한국의 산은 세월이 만든 살결이 살아 있다”며 “아버지의 사진을 보다 보면 한국 산에 드러눕고, 만지고 싶어진다”고 했다. 당시 산과 어울려 살던 사람들의 모습도 사진에 담겨 있다. 김근원은 1958년 설악산 울산바위 부근에서 한 스님이 흔들바위를 밀고 있는 모습을 찍었다. 스님이 자신보다 10배는 큰 흔들바위를 미는 부질없는 행위를 통해 수련을 하는 것만 같다. 스키장이 흔치 않던 1950, 60년대 설악산 대관령 부근에서 스키를 타는 이들이 즐거워하는 사진도 있다. 1969년 설악산 눈사태로 등반대원 10명이 세상을 뜬 십동지 조난 사고의 현장을 담은 아픈 기록도 있다. 김 씨는 “아버지의 사진을 되살린 건 내가 아버지의 영원한 조수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씨는 어린 시절 산에 빠져 집안 형편을 신경 쓰지 않았던 아버지를 미워했지만 한편으론 산에 푹 빠진 아버지를 동경해 같은 사진가의 길을 걸었다는 것. 그는 “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경쟁하듯 각자 사진을 공부했다”며 “아버지를 자주 따라다니지 않았지만 서로를 의식한 라이벌 관계였다”고 했다. 김 씨는 “아버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사진을 찍었을까 생각하고, 아버지의 생각을 대필한 과정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왜 그리 산을 사랑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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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블루’에… 우울증 신간 봇물

    “이 책 꼭 읽고 싶습니다. 재출간해 주세요.” 올 초부터 약 넉 달 동안 양희정 민음사 인문교양팀 부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전화로 이런 요청을 수십 건 받았다. 2001년 처음 출간된 ‘한낮의 우울’ 개정판이 지난달에 나오기 전까지 잠시 절판된 데 따른 것. 이 책에서 미국 작가 앤드루 솔로몬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인문학 시각을 담아 우울증을 깊이 있게 분석했다. 개정판은 1028쪽에 달하는 소위 ‘벽돌책’이지만 우울증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독자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양 부장은 “민음사 역사상 단시간에 재출간 문의가 이렇게 많이 들어온 책은 처음”이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책의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울증을 다룬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코로나 블루’ 등의 여파에 따른 것이다. 우울증 관련 책 출간도 꾸준히 늘고 있다. 2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우울증을 다룬 신간은 2016년 13종에서 지난해 67종으로 크게 늘었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자는 “주로 에세이와 교양서 분야에서 우울증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울증 책이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된 건 2018년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오른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흔)의 성공 이후다. 이 책은 10년 넘게 우울증을 겪으며 정신건강의학과를 전전한 저자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토로해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올해 들어선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남성이 쓴 에세이 ‘오늘도 살아가는 당신께’(바른북스)가 3월에 나와 주목을 받았다. 이어 10대 청소년들의 우울증 경험을 모은 에세이 ‘사춘기라 그런 게 아니라 우울해서 그런 거예요’(팜파스)도 4월에 출간돼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일반인들의 에세이를 넘어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분석이 곁들여진 신간이 속속 나오고 있다. 석정호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3월에 내놓은 ‘내 마음과 화해하기’(유어마인드)는 우울증의 원인과 증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김붕년 서울대 의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가 4월에 펴낸 ‘10대 놀라운 뇌 불안한 뇌 아픈 뇌’(코리아닷컴)는 10대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와 행동 패턴을 알기 쉽게 풀어 썼다. 김현경 코리아닷컴 편집자는 “독자들이 우울증의 현상뿐만 아니라 치료법과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전문서를 찾고 있다”며 “일반인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은 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객관적 시각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전문서의 이점”이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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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주식하다 벼랑끝에… 취미 통해 투자중독 끊으세요”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40)가 2011년 주식투자를 처음 시작할 땐 이로 인해 파국 직전까지 가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월급으로 모은 2000만 원을 어떻게 굴릴까 고민하다가 의대 선배와 고교 동창 등의 조언을 받아 우량주 위주로 샀다. 한 달 만에 약 9%의 수익을 내자 주식을 모두 팔고 갈비를 사 먹었다. 일하지 않고 번 돈이라는 생각에 갈비 맛은 더 달콤했다. 그해 말 빚까지 내 8000만 원을 주식에 넣었다. 두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이로부터 5년에 걸쳐 총 3억8000만 원을 날렸다. 월급으로 번 돈 대부분을 주식투자로 잃은 것이다. 지난달 31일 그가 운영하는 서울 구로구 연세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인터뷰를 했다. 박 원장은 담담히 자신의 실패담을 털어놓았다. “주식 생각만 하느라 업무에 소홀해 당시 다니던 병원에서 해고됐어요. 모든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극단적 시도까지 고민했죠. 인생이 망가졌어요.” 그는 지난달 20일 에세이 ‘살려주식시오’(위즈덤하우스)를 펴냈다. 최근 주식투자 성공사례를 담은 책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지만 이 책은 투자 중독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투자 중독 증상을 소개하고, 건전한 투자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그는 “주식투자로 돈을 벌면 강한 쾌감을 느낄 때 뇌에서 행복감을 주는 도파민이 분비된다”며 “도파민에 중독되면 다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주식투자가 쾌락을 찾는 도박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주식투자 중독자가 하루 2, 3명씩 병원을 찾아오는데 대부분 삶이 파탄 직전이다”고 했다. 과거에는 투자 중독자 중 중년층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젊은층이 많이 늘었다. 그를 찾아온 한 30대 남성은 결혼을 앞두고 전세금 2억 원을 주식으로 잃었다. 주위 사람들이 돈을 버는 모습을 보고 충동적으로 미국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것. 이 남성은 예비신부와 파혼 직전까지 갔다. 한 20대 취업준비생은 부모 명의 카드로 2000만 원을 대출받아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모두 날렸다. 암호화폐로 소소하게 돈을 버는 친구들을 보고 한탕을 꿈꾼 것. 박 원장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최근 젊은층이 그로 인한 박탈감을 주식이나 암호화폐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있다”며 “세상의 흐름에서 자신만 제외되고 있다는 공포를 느끼는 ‘포모증후군’의 일종이다”고 진단했다. 투자 실패 후 우울증에 빠진 그를 일상으로 돌아오게 한 건 친구와 연인이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이 박 원장의 하소연을 매일 밤 들어줬다. 여자친구는 그가 운동을 하면서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재수 한번 안 하고 의대에 들어간 후 경험한 인생의 첫 실패여서 심리적으로 더 크게 추락했다. 창피해서 정신과 상담을 꺼렸는데 주변 사람들이 나를 살렸다”고 말했다. 그는 “전문의 상담도 중요하지만 중독자에게 가장 필요한 건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응원과 일상을 되찾으려는 의지”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주식과 암호화폐 투자를 소소하게 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철저하게 공부한 후 신중하게 투자하고 있다. 그는 “주식 투자에 모든 것을 다 걸기보다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일상이 유지된다”며 “운동 등 중독성이 약한 취미를 통해 투자 중독을 끊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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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단해도 찾는 곳 없어요” 다시 공모전 나서는 신인들

    신인 작가 이소정 씨(43·여)는 지난해 등단 후에도 여러 문학 공모전을 준비하고 있다. 일간지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됐지만 어느 출판사로부터도 출판 제의를 받지 못해서다. 등단 후 작품 활동은 계간지와 온라인 문학잡지에 두 편의 단편소설을 기고한 게 전부다. 이 씨는 “널리 알려진 출판사에서 첫 책을 내는 일은 힘들다”며 “문단에서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각인시켜야 출판 기회가 온다는 조언을 들어 요즘은 장편소설 공모전에도 응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책 읽는 이들이 늘었지만 신인 작가들이 설 무대는 좁다. 출판시장에서 유명 작가 선호 현상이 여전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이서안 작가(58)는 “작은 계간지에 몇 편의 글을 기고했지만 아직 책을 내지 못했다. 장편소설 공모전 당선자가 아니면 신인이 책을 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인해 강연이나 행사가 무산된 신인 작가들은 경제적 위기를 겪기도 한다. 생활비를 벌 방도가 없어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사업에 응모하는 경우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아르코 청년예술가 지원사업’ 문학 분야 경쟁률은 지난해 3.5 대 1에서 올해 8.3 대 1로 높아졌다. 사업 대상자로 선정되면 1인당 900만 원이 지원된다. 문예위 담당자는 “올해 경쟁률이 높아진 데에는 코로나 영향도 있다. 지난해 신춘문예나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들도 창작 지원을 받기 위해 다수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새로운 공모전을 만들기보다 이미 등단한 신인 작가를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은행나무 출판사는 이달 3일부터 ‘신진작가 첫 책 지원 사업’ 공모를 시작했다. 등단 5년 이내 작가 중 한 명을 선정해 창작지원금 1000만 원을 주고 책 출간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백다흠 은행나무 편집장은 “유명 작가의 책을 내는 게 수익적으로는 유리하지만 잊혀질지 모르는 신인 작가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며 “신인 작가들이 첫 책을 내고 활동해야 작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창작에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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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류의 구원자는 고양이로소이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의 비위를 맞추다 보면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매일 밥 챙겨주고, 화장실 청소를 해줘도 고양이는 도도하기 그지없다. 가끔 다가와 애교를 떨다가도 안으려고 하면 쓱 도망가 버린다. 인간 따위 신경 쓰지 않겠다는 투다. 주인님을 모시는 집사의 인생은 고달프다. 이 소설은 인류가 고양이를 모시는 미래를 그린다. 인간들은 서로 싸우고 죽인 탓에 자신들이 세운 문명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위생 수준이 떨어지면서 세계에 전염병이 창궐한다. 쥐들은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쥐들은 인간이 실험용으로 쓴 흰쥐를 우두머리로 세우고 인간들을 공격한다. 이때 세상을 구할 영웅이 등장한다. 고양이다. 소설의 주요 배경은 프랑스 파리. 고양이들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파리 시테섬을 근거지로 삼고 쥐들과 맞서 싸운다. 살아남은 몇몇 인간들이 고양이들을 돕는다. 고양이들은 전쟁이 길어지자 자신만의 문명을 구축하기로 한다. 인간의 문명 중 그나마 쓸 만했던 문자를 사용하기로 한다. 문자가 기록을 남기고 정보를 공유하기에 훌륭한 도구라고 판단한 것. 고양이들은 과거 인간이 작성한 고양이 관련 기록을 찾으며 백과사전을 쓴다. 저자는 고양이 ‘도미노’를 키우는 집사다. 저자는 도미노를 “사랑스러운 공주님”이자 “날카로운 발톱과 식탐, 신경질, 무엇보다 병적인 자기애”가 넘치는 고양이라고 평가한다. 이 소설의 ‘주묘공(主猫公)’인 바스테트는 도미노와 쏙 빼닮았다. 바스테트는 흰 털과 검은 털이 섞여 있고 눈동자는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초록색이다. 몇 시간씩 구석구석 털을 고를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식탐과 성욕은 강한 편이다. 다른 고양이에게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전달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바스테트는 소설에서 인간들을 집사 취급하며 무시한다. 저자의 무한한 상상력은 이번 소설에서도 녹슬지 않은 듯하다. 치밀한 자료조사 덕에 설득력도 높다. 소설에 ‘고양이 백과사전’ 챕터가 곳곳에 들어갔는데 고양이에 대한 정보를 독자에게 충실히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1665년 페스트가 영국 런던을 휩쓸었는데 이는 런던에서 고양이 박멸이 대규모로 행해진 직후였다. 이 같은 정보를 통해 소설 속에서 전염병을 옮기는 쥐를 막기 위해 고양이와 인간이 힘을 모으는 이유를 독자들에게 납득시킨다. 이번 작품은 저자가 2018년 국내에서 출간한 장편소설 ‘고양이’(열린책들)의 속편이다. 전작이 인간 문명이 쇠퇴하는 과정을 고양이의 시점에서 다뤘다면 이번 작품은 고양이들이 본격적으로 자신들만의 문명을 세우는 이야기를 다뤘다. 저자가 2001년 한국에 출간한 장편소설 ‘개미’(열린책들)와 마찬가지로 지구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는 주제를 강조한다. 소설은 프랑스에서 2019년에 출간됐지만 전염병이 창궐한다는 설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정말 인간 문명은 고양이 문명만 못할까. 바스테트의 어머니 고양이가 남긴 말이 그나마 인간을 위로한다. “인간도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니 성급히 일반화하지는 말아라. 설마 그 많은 수의 인간들이 다 실망스럽기야 하겠니. 틀림없이 괜찮은 인간도 섞여 있을 거야.”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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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달 기사 소재로 시집 낸 주창윤 “우리 모두 속도의 세계에 갇혀”

    ‘머나먼 길이다 청량리역에서 안드로메다까지,/별의 여왕에게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마법의 라면을 배달하러/페가수스 별자리를 향해 일만 광년의 속도로 질주한다.’ 지난해 여름 주창윤 시인(58)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으로 음식을 자주 시켜먹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더운 날씨 탓에 식당에 가기가 꺼려져서다. 두꺼운 옷을 입고 헬멧을 쓴 채 땀에 절어 음식을 배달하는 기사를 볼 때마다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곤 상상의 나래를 폈다. 그들이 출발한 곳은 지구지만 도착지는 머나먼 우주 아닐까. 허기질 때마다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는 소비자는 영원히 배부른 존재 아닐까. 그가 18일 펴낸 시집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한국문연·사진)는 이렇게 탄생했다. 주 시인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로서는 빠른 배달을 원하면서, 배달을 시키지 않을 땐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중의 심리를 가졌다는 것. 그는 “배고플 때 음식이 빨리 오지 않으면 짜증이 나지 않나. 반면 배부를 땐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탄 기사들이 과속하는 걸 보면 화가 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모든 시는 일상을 세밀히 관찰해 썼다. 현미경처럼 한 부분을 집중해서 보면 시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여름 퀵서비스 기사가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쓴 시 ‘추석을 배달하는 퀵서비스 맨’은 건조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사거리에서 넘어진 오토바이/바퀴는 계속해서 헛돌고/쓰러진 퀵서비스 맨은 일어나지 못한다.’ 그는 “많은 이들이 도로에서 나는 사고를 한번씩 보지 않나. 이를 본 후 머릿속에 장면을 남기고 옮겨 적었다”고 했다. 그는 1986년 등단해 1998년 두 번째 시집을 낸 이후 23년간 시집을 내지 않은 채 학자로 살았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로 문화 흐름을 주로 연구했다. 그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연구하다 보니 배달 문제처럼 시대의 예민한 부분을 시로 쓰고 싶었다”고 출간 이유를 밝혔다. 일상적 언어를 즐겨 쓰는 이유에 대해 시인은 시대상을 쉽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시는 너무 어렵다. 시대를 읽어내지 못한다”며 “간결한 언어로 세상을 다루겠다는 창작 원칙에 따라 작품을 썼다”고 말했다. 현실에 대한 관찰은 종종 시적 허구로 이어진다. 주 시인은 지난해 여름 출근길 아파트 계단에서 쿠팡맨과 마주친 뒤 ‘쿠팡맨의 과로사’를 썼다. ‘7과 1/2층은 어디에 있나요?/엘리베이터를 7과 8층 사이에 세워 두고/그 틈을 자세히 보면/깊은 터널이 나오죠.’ “어쩌면 쿠팡맨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목적지를 헤매는 존재이지 않을까요. 배달기사들처럼 우리 모두 속도의 세계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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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량리역에서 안드로메다까지’…시인이 바라본 ‘배민 라이더’

    ‘머나먼 길이다 청량리역에서 안드로메다까지, / 별의 여왕에게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마법의 라면을 배달하러 / 페가수스 별자리를 향해 일만 광년의 속도로 질주한다.’ 지난해 여름 주창윤 시인(58)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인 ‘배달의 민족’을 통해 수많은 음식을 시켜먹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더운 날씨 때문에 식당에서 식사하기 꺼려졌기 때문이다. 두꺼운 옷을 입고 헬멧을 쓴 채 땀에 절어 음식을 배달하는 배달 기사를 만날 때마다 관찰하고 상상했다. 그들이 출발한 곳은 지구지만 도착지는 우주처럼 머나먼 우주가 아닐까. 허기질 때마다 끊임없이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는 소비자는 영원히 배부른 존재가 아닐까. 그가 18일 펴낸 시집 ‘안드로메다로 가는 배민 라이더’(한국문연)와 같은 이름의 시는 이렇게 탄생했다. 주 시인은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배달을 시킨 소비자로선 빠른 배달을 원하면서 배달을 시키지 않았을 땐 배달이 추구하는 속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복잡한 심리를 지녔다는 것. 그는 “배고플 때 배달이 오지 않으면 짜증이 나지 않나. 반면 배부를 때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탄 배달 기사들이 과속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그는 “모든 시는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해 썼다. 현미경처럼 한 부분에 집중하다보면 시가 나온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 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다 퀵서비스 기사가 넘어지는 사건을 본 경험으로 쓴 ‘사거리에서 넘어진 오토바이 / 바퀴는 계속해서 헛돌고 / 쓰러진 퀵서비스 맨은 일어나지 못한다’(‘추석을 배달하는 퀵서비스 맨’ 중)처럼 건조한 묘사가 특징이다. 그는 “많은 이들이 도로에서 나는 사고를 한번 씩 보지 않나. 사고를 본 뒤에 머리 속에 장면을 남긴 뒤 옮겨 적었다”고 했다. 그는 “일상적인 언어를 쓰는 이유는 시대상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는 “요즘 시는 너무 어렵다. 시대를 읽어내지 못한다”며 “간결한 언어를 쓰면서 세상을 다루겠다는 시 창작 방법을 미리 정해두고 작품을 썼다”고 했다. 그는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로서 문화 흐름을 연구하는 학자”라며 “새로운 트렌드를 연구하다보니 배달 문제처럼 시대의 예민한 부분을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했다. 관찰은 종종 시적 허구로 이어진다. 주 시인은 지난해 여름 출근길에 자신의 아파트 현관계단에서 쿠팡맨을 만나고선 ‘7과 1/2층은 어디에 있나요? / 엘리베이터를 7과 8층 사이에 세워 두고 / 그 틈을 자세히 보면 / 깊은 터널이 나오죠’(‘쿠팡맨의 과로사’ 중)를 썼다. 그는 “어쩌면 쿠팡맨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7과 1/2라는 목적지를 헤매는 존재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으로 썼다”며 “배달 기사들처럼 우리 모두 속도의 세계에 갇혀있는 건 아닐까”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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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계, 90년대생 저자들이 온다

    기성세대의 연구 대상이던 1990년대생들이 자신만의 관점을 담은 다양한 책을 펴내며 출판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에세이를 통해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한편 기성세대의 기득권을 정면 비판하는 책도 내놓는 식이다. 1990년대생이 쓰는 에세이는 ‘내’가 우선이다. 이달 14일 출간된 등산 에세이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동녘)을 쓴 양주연 씨는 1991년생 회사원이다. 스스로 자신의 일이 마음이 들지 않고 생각이 많아 괴로울 때마다 산으로 향하는 자신의 일상을 담았다. 이 책 편집자 박소연 씨도 1995년생. 박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취미생활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는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직업을 말할 땐 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한다. 순경 생활을 담은 에세이 ‘90년대생 경찰일기’(원앤원북스)를 15일 펴낸 늘새벽(가명) 씨는 1993년생 여성이다. 3년간의 시험 준비 끝에 2019년 경찰공무원이 됐지만 안정적인 직장이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글을 썼다. 그는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직장의 부정적인 면도 알게 됐다”며 “현직 공무원 신분으로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돼 가명을 썼지만 책을 낸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1990년생 주부 신귀선 씨가 펴낸 에세이 ‘맥시멀 라이프가 싫어서’(산지니)는 집안 정리를 통해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한다. 1990년대생 저자들의 글이 마냥 말랑한 것은 아니다. 정치·사회 관련 책에는 날 선 비판이 담겼다. 1994년생 임명묵 씨는 7일 출간한 ‘K를 생각하다’(사이드웨이)에서 1990년대생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며 기성세대의 기득권을 공격한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1990년생 강남규 씨는 3일 내놓은 ‘지금은 없는 시민’(한겨레출판)에서 여야 정치권의 이기적인 포퓰리즘 행태를 비판한다. 지난달 8일 발간된 ‘프로보커터’(서해문집)의 1992년생 저자 김내훈 씨는 김어준 진중권 등 유명 정치 평론가들이 논리보다 감성에 치우치는 행태를 지적한다. 출판계에선 이들의 신간이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혼재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자신만의 인생을 즐기려는 흐름과 더불어 청년실업이나 부동산값 폭등 등의 사회문제에 대해선 함께 연대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세대인 만큼 어떤 길이 옳은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출판시장에서도 드러나고 있다”며 “삶의 목적을 찾는 다양한 시도이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건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생 저자들이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자기 고백을 넘어 하나의 세대로서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982년생 임홍택 씨가 2018년 출간한 ‘90년생이 온다’(웨일북)와 같은 이전 세대의 분석을 거부하고 1990년대생이 스스로 자신들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1990년대생이 직장에 진출하는 등 사회 경험을 쌓으면서 객관적인 이야기를 표출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당당하게 규정하는 세대인 만큼 출판계에서 이들의 행보가 더 주목된다”고 덧붙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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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임명장은 ‘용건만 간단히’

    1395년 조선 태조(太祖)는 개국 공신인 무신 강순룡을 보국숭록대부·재령백에 임명하는 내용의 고신(告身·사진)을 내린다. 고신은 조선시대 왕이 관원에게 품계나 관직을 수여할 때 발급하던 문서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이 고위직 공무원에게 주는 임명장이다. 고신에는 임명 내용만 간단히 적혀 있다. 정수환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연구실장은 “조선시대 고신은 원나라 등 북방문화의 영향을 받아 내용이 매우 간결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334년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 순제(順帝)가 고려인 이달한을 무덕장군·고려국만호부만호에 임명하는 내용의 문서도 임명 사실만 간단히 적었다. 이 문서는 티베트 문자에 기초해 몽골말을 표기한 파스파 문자로 작성돼 있다. 당시 원나라는 고려를 부마국으로 삼아 사실상 지배하고 있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고신 관련 문헌자료를 모아 31일부터 ‘고신, 조선시대의 임명문서 읽기’ 기획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고려, 조선시대 문서들의 작성자와 서체를 분석해 고신이 정립된 과정을 보여준다. 조선 21대 왕 영조(英祖)가 조선 초기 작성된 고신을 태조가 직접 썼다고 여긴 일화 등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도 소개한다. 전시는 7월 2일까지 열리며, 감염병 예방을 위해 시간당 15명까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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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현병 이해해야 범죄 막을 수 있어”

    2016년 서울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2018년 진료하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숨진 사건, 2019년 안인득이 일으킨 경남 진주 방화·살인 사건….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범죄자가 정신질환 중 하나인 조현병을 앓았다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가 일으키는 범죄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7일 국내 첫 출간된 ‘조현병의 모든 것’(심심)을 감수한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62·사진)는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범죄를 저지른 이들 중 일부는 돌봄을 받지 못해 조현병 증세가 심해진 경우”라며 “사회 구성원들이 조현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습득하고 병 자체를 이해해야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조현병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조현병 연구의 대가인 E 풀러 토리 미국 국립군의관의과대 정신의학과 교수(84)가 1983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했다. 조현병 환자 수백 명을 상담한 사례와 최신 의학 정보를 담았다. 개정을 거듭해 2019년 7판이 나온 이 책은 조현병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 교수는 정신분열병이라고 쓰던 의학용어를 2011년 조현병으로 바꾸는 데 앞장섰다. 조현병(調絃病)은 현악기의 줄을 조율하면 좋은 소리가 나듯이 환자가 치료를 잘 받으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권 교수가 이 책의 감수를 맡은 것도 조현병 환자를 돌보는 가족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 환자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해서다. 권 교수는 “국내 조현병 환자는 약 50만 명으로 추정된다. 가족까지 고려하면 약 200만 명이 조현병과 직간접으로 관련돼 있는 셈이지만 가까운 사람도 조현병 환자를 단순히 ‘미친 사람’으로 여기거나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흔히 조현병을 희귀 질병이라고 생각하지만 발병률이 전체 인구의 1% 정도로 결코 낮지 않다. 조현병 환자는 약물 등 치료를 받으면 공격성을 제어할 수 있고, 치료를 통해 관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책에서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내용은 직접 주석을 달고, 한국의 정신건강복지법을 비판하는 등 자신의 의견을 담은 글도 썼다. 그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강제 입원을 까다롭게 한 법 때문에 현장에선 치료가 더디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필요 없는 장기 입원을 줄이겠다는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며 “빠른 치료가 필요한 환자와 가족을 돕지 못했다”고 했다. 토리 교수는 책에서 조현병에 대한 국가의 역할도 강조한다. 정부가 하루에 일정 시간 입원해 치료를 받은 뒤 당일 퇴원하는 ‘낮병원’을 적극적으로 운영해 조현병 환자를 관리하면서 사회 복귀를 도와야 한다는 것. 권 교수는 “한국은 조현병 환자를 돌보는 책임을 대부분 가족에게 미루고 있다”며 “조현병 환자를 국가가 관리하는 국가책임제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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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분노의 질주’ 코로나 뚫고 하이킥

    액션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이하 분노의 질주9·사진)가 개봉 5일째에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9일 개봉한 분노의 질주9는 23일 오전 11시 50분 기준 누적 관객 100만179명을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극장가가 얼어붙은 지난해 이후 국내에서 개봉한 외국영화 가운데 최단기간에 관객 100만 명을 모았다. 지난해 8월 개봉한 액션 영화 ‘테넷’은 개봉 12일째, 올 1월 개봉한 애니메이션 ‘소울’은 개봉 16일째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넘겼다. 한국영화의 경우 지난해 7월 개봉한 ‘반도’, 지난해 8월 개봉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개봉 4일째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2001년 시작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2019년까지 스핀오프 한 편을 포함해 총 아홉 편이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분노의 질주9는 주인공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와 연을 끊고 지냈던 형제 제이컵 토레토(존 시나)가 사이퍼(샬리즈 세런)와 연합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계획을 세우고, 이를 알게 된 도미닉과 동료들이 지상과 상공을 오가며 반격을 펼치는 이야기다. 제작사인 유니버설스튜디오는 한국 극장의 코로나19 방역 수준이 높다고 판단해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이 영화를 개봉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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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디 가가 “19세때 성폭행 당해 정신 착란”

    미국 유명 팝가수 레이디 가가(35·사진)가 19세 때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21일(현지 시간) 미국 CNN 보도 등에 따르면 가가는 정신건강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당신이 볼 수 없는 나’에 출연했다. 방송에서 그는 16년 전 한 음악 프로듀서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후 임신했다고 고백했다. 이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병원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다만 가가는 가해자의 이름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그는 “성폭행을 당한 후 처음에는 전신에 통증을 느꼈고 감각이 없어졌다. 몇 주 동안 아프기도 했다”며 “완전한 정신착란에 빠졌고 몇 년 동안 나는 이전과 같은 소녀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진짜 현실처럼 어디를 가든지 검은 구름이 따라다녔고 그 구름은 나에게 ‘쓸모없고 죽어야 한다’고 했다”며 “그때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벽에 몸을 부딪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은 그것(성폭행 피해)이 바이러스와 똑같고 아프고 나면 낫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나는 다시는 그 사람(가해자)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 20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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