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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젊었을 적부터 70년 살아온 집인데 호밋자루 하나 안 남기고 다 타부렀어. 정부 지원이 없으믄 이 동네는 더는 뭐 살아갈 길이 없어. 먹고 살 길이 없는데 자식들 있는데로 가든가 대구로 나가든가 해야지. 다 떠나야지.”31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상논실마을에서 만난 산불 이재민 최윤기 씨(65)는 집과 농작지 1500평이 모두 불에 탔다고 했다. 21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25일 영양까지 번지면서 이 마을 주택 22채 중 15채가 전소됐다. 최 씨는 “어르신들도 자식 사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될 상황”이라며 “마을 자체가 사라지게 생겼다”고 씁쓸해했다.● 집도 밭도 타버린 이재민들 “먹고 살 게 없으니 떠나”남부 산불의 큰 불은 꺼졌지만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 중 일부는 지역을 떠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집도 밭도 사라졌는데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여기서 뭘 해서 먹고 살겠나”고 되물었다. 상논실마을에서 만난 한 이재민은 “남아 있는 게 몸밖에 없다. 대피할 때 가져나온 차와 몸이 전부”라고 말했다.30일 취재팀이 경북 의성 단촌면 병방리에서 만난 주민 김규환 씨(68)는 2억3000만 원을 들여 4500평에 달하는 고추, 마늘 농사를 지었지만 이번 산불로 전소됐다. 그는 “정부 대책은 시간이 오래 걸려 다른 도심으로 옮겨갈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에서 만난 마을 이장은 “피해를 입은 150여 가구 중 10가구 정도는 대도시로 옮겨가시지 싶다. 아무리 정이 든 동네라고 하더라도 집 없이 살 수가 있냐”고 말했다. 김해춘 안동시 고곡리 이장은 “집을 새로 지어도 있던 자리보다 여건이 좋은 대도심에서 시작하는 게 낫다는 어르신들이 계시다”고 말했다. ● 도시에 온 귀농인들, 다시 도시로지역에 연고가 없이 정착했던 귀농인들은 다시 도심으로 옮겨가려는 경우가 노인들보다 많았다. 3년 전 경북 청송군 후평리에 귀농해 사과 농사를 짓다 이번에 모두 잃은 류영우 씨(59)는 “희망찼던 귀농의 꿈이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변했다”며 “단 하루라도 더 이곳에 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과거 잠시 살았던 인천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김형동 경상북도 귀촌귀농연합회장은 “피해 지역에 사는 귀농귀촌인 약 100명 중 30명 정도가 귀도(도시로 돌아감) 의사를 밝힌 상황”이라며 “산불이 비켜간 김천 등에서도 ‘겁이 나서 방을 내놓고 다시 서울로 가려 한다’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앞으로 반복되는 재난마다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인구 유출이 가속화 될거란 우려도 나온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이번 산불 피해가 컸던 경북 의성, 안동, 영양, 청송, 영덕은 인구 유출로 인해 지역 소멸 위험이 큰 ‘고위험 지역’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 “일자리-주거 지원 늘려야”경북 의성군 단천면 두계리에 사는 박모 씨(66)도 “시골 마을에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우리 60대들은 마을을 지키겠지만, 더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집을 잃은 경우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여건이 안 되는 이주민들은 “돈이 없어서 옮길 수도, 이주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시내는 집세도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상논실마을의 한 이재민은 “나이 60넘어 지금 다른 지역에 가서 뭘 해 먹고 살겠나”라며 “대책이 없다”고 막막해했다.전문가들도 산불 피해가 지역 인구 유출과 인구 소멸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이재민들이 언제까지나 임시 대피소나 학교에서 지낼 순 없다”며 “생계를 도모할 수 있도록 일자리와 주거 지원 등을 늘려 재정착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31일 국가트라우마센터에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하고 대형산불로 재난을 경험한 국민을 대상으로 심리지원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영덕=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영양=조승연 기자 cho@donga.com의성=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작년 10월 우리 영감 먼저 가버리고, 인제는 집이고 뭐고 싹 다 타삣다. 먼저 간 영감 사진 하나도 몬 챙기고 나왔다. 한 장도 없어. 싹 다 타버리고 없심더. 집도 없구 영감도 없는 내는 이제 우째 살지 모르겠심더.” 30일 오후 경북 안동시 임하면 고곡리에서 만난 김연희 씨(65)는 울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김 씨의 집은 마을 어귀에 있었다. 불과 나흘 전만 해도 사별한 남편의 추억이 곳곳에 가득했던 그의 집은 27일 밤 마을을 덮친 화마에 잿더미가 됐다. 그날 이 마을에서만 50채의 집이 불탔다. 김 씨의 집이 있던 자리엔 검게 변해버린 벽돌과 기와가 나뒹굴었다. 김 씨는 작년 10월에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과수원을 일구며 살아왔다. 남편과 함께 가꾸던 나무들이었다. 이번 화재로 절반은 다 타버렸고 나머지 절반도 불길이 스쳐 꽃이 필 수 없게 됐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 농사에 서툰 김 씨를 위해 남긴 ‘농사 노트’도 불탔다. 남편의 묘도 잿더미가 됐다. ● 터전 잃은 주민들 “언제 복구될지도 깜깜” 경북, 경남 일대를 휩쓴 산불은 이날 주불이 모두 잡혔지만 이미 집과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살 곳도 갈 곳도 없다”며 울기만 했다. 안동시 임하면 나천리는 주택 15채가 전소됐고, 주민 김옥남 씨(68)의 집과 농장 사과나무가 모두 타버렸다. 산불 당시 김 씨는 마을회관에 머물고 있었던 탓에 대피하라는 연락을 못 받았다. 대피가 늦어지면서 과수원과 농기계가 모두 전소됐다. 김 씨는 “남편은 ‘죽고 싶다’는 말만 하고 딸은 걱정하며 아버지를 다독이고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풍광으로 ‘한국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경북 영덕군 석리 바닷가 마을도 화마를 피해 가지 못했다. 내륙 산을 태우던 불이 해안까지 번졌고, 뒷산과 가까이 있는 집들은 불에 타서 지붕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바닷가 가까이 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모습이 따개비 같다고 해 이름 붙여진 ‘따개비 마을’ 민가들도 대부분 불에 타 형체를 알 수 없었다. 이미상 석리 이장은 “민박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집이 다 타버려 돈을 벌 방법이 없다”며 “공사장 노가다(막일)라도 하려고 했는데 손목 수술을 받아 몸 쓰기도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이어 “석리의 바다 풍경이 ‘대한민국 제일’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았는데 화재로 망가진 마을을 보니 마음이 무너진다”고 말했다.취재팀이 이날 경북 의성군, 안동시, 영덕군 등 3곳 대피소에서 만난 이재민들은 차가운 바닥에서 쪽잠을 자고 옷가지 등 생필품이 부족해 불편을 겪고 있었다. 이재민 대부분 고령층이라 건강 악화도 우려됐다. 의성군 단천면 주민 권원수 씨(71)는 “대피소는 소등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드나든다”며 “이재민 대다수가 노인이고, 노인들은 밤새 앓는다. 그 고통스러워하는 소리에 밤새 잠을 이루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화장실에서 겨우 간단한 세수를 할 뿐 샤워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안동시 일직면 우원리 주민 원두리 씨(86)는 원래 걸음이 불편해 주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가 쓰던 보행보조기는 이번에 불탔다. 원 씨는 “허리도 못 쓰고 다리도 부어서 걷지를 못한다. 이동할 때 구르마(보행보조기)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엔 없어서 이동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집 없이 2년씩 지내기도… “생계 자립 지원 필요” 산불 이재민들은 길게는 수개월, 수년을 거처 없이 지내는 경우도 많다. 2022년 3월 4일 경북 울진에서 시작돼 강원 삼척까지 번졌던 초대형 산불로 집을 잃었던 주민 181가구 가운데 30가구는 지난해 초까지 임시 컨테이너에 살았다. 피해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다. 경북도에 따르면 화재·산불 등으로 집이 타버린 경우 받는 주거비 지원금은 최대 3600만 원 수준이다. 홍수는 6600만∼1억2000만 원까지 지원된다. 홍수는 자연재해지만 산불은 인재(人災)라는 이유에서다. 고령층이 많은 지역의 경우 산불이 지역 소멸을 가속화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경북도는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문현철 한국재난관리학회 부회장(호남대 교수)은 “산불 같은 경우 주거지는 물론 텃밭, 축사 등 생계 수단을 전부 앗아간다”며 “단기적으로는 지자체가 소유한 연수원, 임대주택 등을 총동원해 이들의 거주 문제를 해결하고, 장기적으로는 생계 수단을 상실한 이재민들에게 일자리 등을 지원해 자립이 가능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산불 피해자를 지원하고 이재민의 일상을 보호하기 위해 중앙합동지원센터 운영을 시작했다. 경북도와 경남도는 피해 주민들에게 1인당 30만 원씩 지원하겠다고 밝혔다.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영덕=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의성=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이재민이라고 가만 앉아 있을 수 있나예.” 30일 오전 경남 산청군 단성중학교에서 만난 강정숙 씨(60)가 식판에 밥을 한가득 푸며 말했다. 강 씨는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을 위해 오전 5시 반부터 오후 10시까지 급식 봉사를 하고 있다. 강 씨도 이번 화재로 집과 과수원에 피해를 입었다. 강 씨와 함께한 자원봉사자들도 대부분 강 씨와 같은 이재민이었다. 강 씨는 “1998년 지리산 수해 때 자원봉사자들 도움을 받았다”며 “그분들 헌신을 보고 나도 기회가 될 때마다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영남권을 휩쓴 역대 최악의 산불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한 가운데, 이재민이 직접 자원봉사에 나서고 다른 지역에서도 복구 지원에 동참하는 등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경북 안동시 임하면 추목리 이장 정경윤 씨(60)는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마을 곳곳을 누비며 빵과 생수 등 생필품을 나눠주고 행정복지센터에서 피해 접수를 받았다. 정 씨와 그의 어머니 집도 화마로 무너져 오갈 데 없는 이재민 신세다. 정 씨는 “내 집이 불에 다 탔다고 망연자실해 가만히 있을 순 없다”며 “이렇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른 주민들에게도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다”고 했다. 이재민들이 머물고 있는 대피소에는 급식, 세탁, 의료 지원 등을 위해 찾아온 자원봉사자들이 가득했다. 생업을 접고 자원봉사 중인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산청군 시천면 신천리 동당마을에서 만난 박호규 산청군 읍면체육회연합회장(65)은 “여기 온 사람들 다 수십, 수백만 원 손해를 각오하고 온 것”이라며 “이웃이 어려운데 생업이 대수인가요”라고 했다. 산불 소식을 듣고 멀리서 찾아온 자원봉사자도 있다. 경북 의성군 안평면에서 자원봉사 중인 박모 씨(54)는 “고향에 남은 친구가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구에서 찾아왔다”고 했다. 의성체육관 대피소 앞에서는 구세군과 대한불교조계종이 함께 무료 급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안솔베 구세군 원당영문교회 담임사관은 “재난 앞에 종교의 차이가 어디 있냐”고 했다. 경북 영덕군 강구면의 한 카페는 이재민을 비롯해 산불진화대원과 공무원, 경찰 관계자 등에게 커피를 무료로 제공했다. 광주시와 경기 안양시 등은 산불 지역에 기부금을 전달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구호단체를 통한 산불 피해 지역 기부금은 현재까지 약 554억 원이다.의성=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산청=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괴물 산불’이 29일 진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경북과 경남의 대형산불 11개 중 10개는 주불 진화가 완료됐다. 이번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30명으로 늘어났다. 정부는 수습·복구 및 이재민 지원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중앙재난대책본부에 따르면 울산·경북·경남 등에서 발생한 11개 대형산불 가운데 10개는 주불 진화가 완료된 상태다. 21일 시작된 경남 산청·하동 산불만 아직 꺼지지 않았다. 진화율은 이날 오전 7시 기준 96%다. 산림당국은 이른 아침부터 진화 작업에 헬기 총 55대 등을 투입해 주불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북 5개 시군(의성·안동·영덕·영양·청송) 주불 진화는 전날 오후 5시를 기해 끝이 났다. 현재는 잔불 진화 체계로 변경됐다. 이번 산불로 인한 인명피해는 이날 낮 12시 기준 70명으로 집계됐다. 경북에서 치료를 받던 중상자 1명이 숨지면서 사망자는 30명으로 늘었다. 중·경상자는 40명이다. 행정안전부는 경북과 경남에서 운영하던 산불 피해 현장지원반을 기존 2개에서 7개반으로 확대 편성해 이재민 지원에 집중할 방침이다. 또 임시주거시설 운영과 대피주민에 대한 구호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재난구호사업비 2억3000만 원을 추가 지원한다. 공공요금 감면과 긴급대출 지원 등 재정 지원 가능한 수단을 최대한 동원한다는 계획이다. 구호단체를 통해 모금된 기부금 약 554억 원은 이재민의 생계를 위한 자금으로 활용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추가 대형산불 예방에 역량을 결집하기로 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중대본 회의에서 “산불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대형산불에 대한 정부의 대응체계와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며 “국민께서도 당분간 건조한 기간이 이어지는 만큼 산불 예방을 위한 필수 안전수칙을 반드시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미얀마를 강타한 강진이 발생한 지 하루 만인 29일(현지시간)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희생자 수색 작업이 본격화되면 최종 인명피해 규모는 1만 명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왔다. BBC 등에 따르면 미얀마 군사정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최소 1002명이 사망했고 2376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지진 첫날인 전날 미얀마 군부는 144명이 사망하고 732명이 다쳤다고 발표했으나 하루 만에 사망자 수가 7배 가까이 늘어난 것. 종전 집계(사망 694명)보다도 사망자 수가 300명 이상 급증한 수치다. 지진은 전날 낮 12시 50분경 미얀마 중부의 제2도시 만달레이 인근에서 발생했다. 규모 7.7의 강진이 일어난 지 약 12분 만에 규모 6.4의 여진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10여 차례의 여진이 이어지며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만 명을 넘을 가능성을 71%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10만 명 이상이 사망할 확률은 36%에 달할 것으로 봤다. 이번 지진은 진앙지에서 1000㎞가량 떨어진 태국 방콕에서도 강한 진동이 감지됐다. 특히 방콕에서 건설 중이던 33층 높이 빌딩이 무너지면서 최소 8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쳤다. 또 무너진 건물 등에 70여 명이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29일 “지금부터는 불길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뒷불 감시에 집중해야 한다”며 “산불 피해를 입은 분들의 상처가 빨리 치유될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다해야 하겠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한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산불 대응과 관련한 중앙안전재난본부 회의를 주재해 “이번 산불피해는 역대 최대 규모를 보였던 지난 2000년 동해 산불을 모든 면에서 넘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에 경북과 경남 등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한 피해 영향구역은 약 4만8238㏊다. 기존 역대 최대 피해로 기록됐던 2000년 동해 산불(2만3794ha)의 2배가 넘는 규모다.한 권한대행은 “이미 7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임시대피소에 계신 이재민 7000여 명은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시다”며 위로를 전했다. 이어 “인명피해 이외에 시설 피해도 막심하다”며 “전소된 주택만도 3000채에 이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는 이재민들이 일상을 회복할 때까지 모든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한 권한대행은 “현재도 긴급구호, 의료·법률 등 지원이 필요한 사항을 원스톱으로 하기 위해 ‘중앙합동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재민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또 “주말에 기온이 크게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각 지자체에서는 시설난방에 각별히 신경써 주시고 이불 등 보온물품도 충분히 지원해달라”고 당부했다.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등 관계기관에는 “화마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을 위해 단기적으로는 임시주거시설을 최대한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임대주택 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주거지원 방안을 적극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또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기관과 지자체 등에는 “농기구 임차 등 주민분들이 농사를 짓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다각적으로 지원해달라”고 했다. 한 권한대행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특히 급변하는 기후에 따른 대형 산불에 대비해 정부의 대응체계가 충분히 갖춰져 있는지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림청을 중심으로 행정안전부, 소방청 등 모든 유관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부족했던 점을 보완해 재발방지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미얀마 중부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을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28일(현지시간) 최종 업데이트한 보고서를 통해 미얀마 중부의 제2도시 만달레이 인근에서 발생한 규모 7.7의 강진으로 사망자 수가 1만 명을 넘을 가능성을 71%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10만 명 이상이 사망할 확률은 36%에 달할 것으로 봤다. 반면 100∼1000명일 확률은 6%라고 전했다. 미얀마 군사정부가 발표한 예비 집계에 따르면 강진으로 현재까지 최소 144명이 사망하고 732명이 다쳤다. 미얀마는 2021년 군사 쿠데타로 군부가 집권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집계에는 진앙지와 가까운 만달레이의 사상자 수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사상자 수치는 이보다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클 전망이다. USGS는 예상되는 경제적 손실과 관련해 100억 달러(약 14조 원)가 넘을 가능성을 68%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1000억 달러(약 147조 원)가 넘을 확률은 33%로 봤다. USGS는 사망자 수치 등이 적색 경보에 해당하는 수준이라며 “추산되는 경제적 손실은 미얀마의 국내총생산(GDP)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밝혔다.한편 이번 지진은 진앙지에서 1000㎞가량 떨어진 태국 방콕에서도 강한 진동이 감지됐다. 특히 방콕에서 건설 중이던 33층 높이 빌딩이 무너지면서 최소 8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산불피해 이재민에게 직접 만든 음식을 무료 제공했다.29일 시에 따르면 경북 안동 지역 산불 소식을 접한 백 대표는 직원을 보내 피해 상황과 이재민의 어려움을 파악했다. 이후 화재로 집을 잃고 대피소 등에 머물고 있는 이재민을 위해 식사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더본코리아는 지난해 8월 안동시와 민관협력 지역상생 협약을 체결했다.무료 급식소는 안동시 길안면에 위치한 한 중학교에 마련됐다. 더본코리아는 이재민 외에도 산불진화 작업에 투입된 군·경 및 소방인력 등에 매끼 300인분 이상의 식사를 현장에서 조리해 제공하고 있다. 산불진화 작업으로 직접 찾아오지 못하는 인력을 위해서 배달도 하고 있다. 식사는 다음주까지 제공될 예정이다. 백 대표는 전날 안동으로 달려가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현장에서 음식을 직접 조리한 뒤 배식까지 챙겼다. 백 대표는 “더본코리아와 깊은 인연을 맺은 안동시민이 산불로 피해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며 “따뜻한 밥 한 끼가 이재민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주불이 잡혔던 경북 안동과 의성에서 밤사이 연기와 불길이 잇따라 진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인근 고속도로 일부 구간은 한때 통행이 전면 차단됐으나, 현재는 통행이 재개된 상태다.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한 인명피해는 70명으로 늘었다. 29일 경북도에 따르면 의성과 안동 등에 연기와 크고 작은 잔불이 발생함에 따라 헬기 30대를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안동시는 이날 재난문자 메시지를 통해 “오전 8시 50분경 남후면 고하리 산불의 주불 진화를 완료했다”며 “현재는 잔불을 정리 중”이라고 안내했다. 이에 따라 전면 차단됐던 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서안동IC 양방향 도로는 오전 9시 10분부터 통행이 재개됐다. 앞서 산림청은 전날 오후 5시경 안동·의성을 포함한 경북 5개 시군 주불이 모두 진화돼 잔불 진화 체계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의성 신평면과 청송군, 영양군에서는 잔불 정리 등을 위해 헬기 10여 대가 투입돼 진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북도는 이와 관련해 “일부 지역에서 부분적으로 연기가 발생하고 크고 작은 잔불이 남아 있다”며 “잔불 정리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21일 시작된 경남 산청과 하동의 산불은 9일째 계속되고 있다. 야간에도 진화대 등 1036명의 인력이 진화 작업을 벌였다. 진화율은 이날 오전 7시 기준 96%다. 임상섭 산림청장은 브리핑을 통해 “주불이 남은 내원계곡은 낙엽층이 두꺼워 진화에 어려움이 많다”며 “헬기와 인력을 투입해 주불진화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했다. 이날 진화 작업에는 헬기 총 55대가 투입된다. 이번 산불로 인한 인명피해는 이날 오전 6시 기준 70명으로 늘어났다. 경북 5개 시군에서 26명이 사망하고 2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남에선 사망자 4명, 중경상 10명 등 14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울산에선 2명이 경상을 입었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경상북도 지역 주불 진화가 28일 완료됐다. 22일 경북 의성에서 최초 발화한 지 엿새 만이다.임상섭 산림청장은 이날 경북 의성에 마련된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에서 브리핑을 열어 “오후 2시 30분 영덕 지역을 시작으로 오후 5시부로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지역의 모든 주불이 진화됐다”고 밝혔다. 의성군 안평면에서 시작된 산불은 25일 인근 지역인 영덕·영양·청송·안동 등으로 확산했다. 경주와 봉화에서 발생한 산불은 초기에 진화를 마쳤다. 산림청에 따르면 경북 지역 산불영향구역은 약 4만5170ha다. 국내에서 발생한 단일 산불로는 역대 가장 큰 피해 면적이다. 임 청장은 산불 확산이 빨랐던 이유에 대해 “서풍 중심의 강하고 건조한 바람이 불었고,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27m를 기록하는 등 바람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했다. 건조한 날씨 속에 불이 옮겨붙기 쉬운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이번 산불 진화 작업에는 산림청과 경북 5개 시군, 소방청, 군·경, 기상청, 국가유산청 등이 협력했다. 군에서는 헬기와 인력을 적극 지원하는 등 하루에만 헬기 77대 이상이 동원되기도 했다. 하지만 엿새 동안 산불이 이어지며 24명의 사망자(의성 1명, 안동 4명, 청송 4명, 영양 6명, 영덕 9명)가 발생했다. 또 시설 2412개소가 피해를 봤다.주불 진화가 완료된 뒤에는 잔불 진화 체계로 변경된다. 임 청장은 “산불진화 헬기를 일부 남겨놓고 잔불 진화를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라며 “경상북도와 해당 시군 등을 중심으로 잔불 정리 등을 철저히 해달라”고 당부했다. 시군과 협의한 후에는 피해지원에 대해 살펴보겠다고도 했다. 이어 “또다른 산불 발생 위험이 있는 만큼 긴장감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의성 산불은 성묘객이 묘지 정리 도중 실수로 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에 거주하는 성묘객 A 씨(50대·남)는 불이 나자 직접 당국에 신고했다. 경찰은 A 씨를 산림보호법상 실화 혐의로 31일 입건해 조사할 예정이다. 산림보호법상 실수로라도 산불을 내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경북 영덕·영양군의 주불 진화가 28일 완료됐다.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25일 영덕, 영양으로 확산한 지 3일 만이다.산림청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영덕 지역 산불진화를 위해 헬기 26대와 차량 70대, 인력 1007명을 투입해 이날 오후 2시 30분경 주불 진화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22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인근 지역인 영덕·영양·청송·안동 등으로 확산했다. 이 가운데 주불이 잡힌 건 영덕이 처음이다.뒤이어 영양군은 “오후 4시를 기해 산불 주불을 잡은 상태”라고 전했다. 영양 진화율은 같은 날 낮 12시 기준 95%로 나타났으나, 일대에 강한 비가 내리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주불 진화가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3개 시군의 진화율은 이날 낮 12시 기준 의성 98%, 청송 91%, 안동 90% 등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일몰 전 (5개 시군의) 주불 진화가 가능하다”고 봤다.21일 경남 산청을 시작으로 경북, 울산, 충북, 전북 등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중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울산 울주군에서 발생한 산불은 6일 만인 전날 꺼졌다.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보상하려 합니다.”60대로 추정되는 한 여성 승객이 서울지하철 측에 전달한 편지 내용이다. 28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이 승객은 25일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고객안전실 직원에게 봉투를 건넨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봉투 속에는 사과 편지와 현금 20만 원이 담겨 있었다. 손으로 직접 쓴 편지에는 “지난 세월, 생활이 어려웠던 시절에 몇 번인지 숫자도 기억할 수 없어서 소액이지만 지금이라도 보상하고자 합니다”라며 “그동안 죄송했습니다”라고 적혔다. 과거 지하철 부정 승차 사실을 고백하며 뒤늦게 운임비 등을 낸 것으로 보인다.이 같은 사례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한 여성이 “40년 전 열차에 무임승차했다”며 200만 원이 담긴 봉투를 부산역 매표창구에 건네고 사라졌다. 2023년 8월에는 서울교통공사에 “잘못을 만회하고 싶다”며 현금 25만 원이 든 편지가 도착했다.부정 승차하다 적발되면 경범죄처벌법 등에 따라 해당 구간 운임과 30배의 부가금을 합산한 금액을 내야 한다. 마해근 서울교통공사 영업본부장은 “부정 승차 근절을 위해 단속을 강화하고 지속적 캠페인으로 올바른 지하철 이용 문화를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28일 회사 제품 등과 관련한 각종 논란에 대해 “경영자로서 철저히 관리하지 못한 점을 뼈저리게 반성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백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스페이스쉐어 강남역센터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해 “호실적에도 최근 원산지 표기 문제 등으로 주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깊이 사과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백 대표는 자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사과문을 두 차례 올렸으나, 공식 석상에서 주주들에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 대표는 더본코리아의 ‘빽햄’ 가격 논란을 시작으로 원산지 표기 위반 의혹 등이 불거지며 최근 주가가 하락세를 보였다. 백 대표는 “우리가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내부 시스템을 원점에서부터 재점검하고 고객과의 신뢰 회복을 위해 메뉴와 서비스의 품질도 지속해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백 대표는 “단순히 좋은 매출만 내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졌었다”며 “언론·주주들과 더 많이 소통했어야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아니라 이제는 외양간을 더 넓고 단단하게 만들겠다”고 반성했다. 그러면서 “주주들과 점주들께 죄송한 마음이다.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해 여러분의 기대에 걸맞게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8일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한 민간업자들 재판에 증인으로 소환되고도 또다시 불출석해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받았다. 해당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후 불출석한 것은 이번이 3번째다. 이 대표는 24일에도 과태료 300만 원을 부과받은 바 있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조형우)는 이날 오전 대장동 민간업자들에 대한 1심 재판을 진행했다. 하지만 증인으로 채택돼 소환된 이 대표가 출석하지 않으면서 재판은 8분 만에 종료됐다. 재판부는 “추가로 들어온 사유서도 없어 오늘은 출석할 것으로 생각했다”며 “과태료 500만 원을 결정 송달하라”고 했다. 형사소송법 151조 등에 따르면 소환장을 송달받은 증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법원은 5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이 대표는 국회 일정 등을 이유로 21일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24일에는 별도의 사유서를 제출하지 않고 불출석해 과태료 300만 원을 부과받았다. 이에 따라 이 대표가 내야 할 과태료는 나흘 사이 800만 원으로 늘어났다. 재판부는 “세 번째 출석하지 않은 것”이라며 “추이를 보고 다음 절차를 논의하겠다”고 했다. 과태료를 받고도 또다시 나오지 않으면 7일 이내 감치 또는 강제 구인이 가능하다. 이 대표는 31일과 내달 7일, 14일에도 증인으로 소환된 상태다.이 대표 측은 국회의원·당대표로서의 의정 활동 등을 이유로 증인 출석이 어렵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경북 안동 등 산불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재판이 열린 이날 오전에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이 도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추락했다. 이 사고로 탑승자 4명이 숨졌다.27일 경기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50분경 경기 화성시 향남읍 서해안고속도로 목포방면 서평택분기점 부근에서 카자흐스탄 국적의 A 씨 등 외국인 4명이 탄 벤츠 차량이 도로 우측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수 m 아래로 추락했다. 이후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에 의해 불은 약 30분 만에 꺼졌다. 차량에선 탑승자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통해 직선 구간을 달리던 차량이 가드레일 쪽으로 주행하면서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정확한 사고 경위는 조사 중이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25일 오후 8시 반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 산을 태우던 불길이 불과 15분 만에 중턱에 있는 요양원까지 내려왔다. 불길을 피해 즉시 떠나라는 대피령이 떨어졌다. 입소자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라 차 없이는 대피가 불가능했다. 오후 9시경 정모 할머니(80) 등 입소자 4명과 요양원 여성 직원 2명이 탄 차가 요양원을 빠져나갈 때 주변은 이미 화마가 삼키고 있었다. 정 할머니 일행이 탄 차는 10분도 못 가 달려든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불이 도로를 달군 탓에 타이어가 녹아 먼저 터졌고 이후 차가 폭발했다. 정 할머니 등 3명이 숨졌고 나머지 탑승자 3명은 중상을 입었다. 이들보다 앞서 요양원을 출발해 인근 교회로 필사적으로 대피해 목숨을 건진 입소자들은 정 할머니 일행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산불이 방사포처럼 마을로 쏟아져” 25, 26일 이틀간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북 북동부 산불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25일 오후 6시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2리 오원인 이장(57)은 마을 뒷산에서 밀려오는 화염을 보고 경악했다. 경북 의성에서 번진 불이 안동을 거쳐 영양까지 덮쳤다. 불길은 산과 바람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불과 5분 전 “빨리 주민들을 대피시켜 달라”는 군청의 연락을 받은 오 이장은 다급하게 움직였고, 이내 주민들의 휴대전화에는 “즉시 대피하라”는 오 이장의 스마트 음성 메시지가 속속 도착했다. 한 주민은 “이장이 보낸 메시지를 받고 집을 뛰쳐나왔더니 마당에 불이 붙고 있었다”고 말했다. 50대 주민 김모 씨는 “불이 그냥 천천히 번지는 게 아니라 뉴스에서나 봤던 북한 방사포처럼 불꽃 수천 개가 미사일처럼 마을로 쏟아졌다”고 말했다. 이후 마을 전기와 통신망도 끊겼다.같은 시간 옆 마을 석보면 삼의리 권모 이장(64)도 아내 우모 씨(59)와 함께 다급하게 차에 올랐다. 마을 도로는 이미 여기저기 날리는 불씨와 검은 연기 탓에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도로 옆의 낙엽이 땔감 역할을 하며 타오르자 마치 도로는 용암이 흘러드는 것 같았다. 권 이장 부부는 인근에 사는 친척들과 연락이 두절됐다. 오후 8시경 권 이장의 동생이 형의 행방을 찾아 나섰을 때는 이미 늦었다. 권 이장의 차는 도로변 배수로에 고꾸라져 검게 탄 채 발견됐다. 차가 향하던 방향은 대피소가 아니라 삼의리 쪽이었다. 평소 권 이장과 친하게 지냈다는 오 이장은 “아마 다른 마을 주민들을 구하러 가다가 불길에 휩싸인 것으로 보인다”며 슬퍼했다.● 희생자 대부분 거동 어려운 노인이번 화마에 스러진 희생자 상당수는 거동이 어려운 노약자였다. 대부분 70, 80대로 집 안이나 마당, 도로 위 불탄 차 안에서 발견됐다. 영덕읍 매정리에서는 80대 노부부가 집 앞에서 불과 1분 거리의 내리막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불을 피해 집을 나섰지만 거동이 불편해 결국 불길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장손 이모 씨(30)는 “산불이 난 뒤 교통도 통제돼 동네가 무질서 그 자체였다”면서 “조금만 더 빨리 도착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 모두가 자책하고 있다”며 눈물을 훔쳤다. 안동시 임하면 신덕리 이덕마을에서는 지체장애인 안모 씨(75)가 집을 나서지 못하고 불길에 숨졌다. 그는 요양보호사 도움 없이는 밖에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처지였다. 연락을 받고 조카가 안 씨를 구하기 위해 황급히 찾아갔으나 이미 숨진 뒤였다. 이웃 주민은 “대피 연락을 받았어도 움직일 수가 없어 갇혀 있었을 것”이라며 “그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인접한 임하면 임하1리에서는 80대 권모 씨(85) 부부가 화재로 무너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권 씨의 시신이 먼저 발견됐고 아내 김모 씨(87)는 현장에서 찾을 수 없었다. 자녀들은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다가 굴착기를 동원해 집을 수색했다. 무너진 잔해에서 김 씨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 영덕군 축산면 대곡리에서도 80대 남성이 산불로 무너진 자택에 매몰돼 숨졌다. 청송군 파천면과 진보면에서는 각각 80대 여성과 70대 남성이 집 안과 마당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북소방본부 관계자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대피를 준비하거나 대피 중에 급속도로 번진 불길의 피해를 입으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산불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도 집 안이나 주변에서 숨진 채 뒤늦게 발견되는 희생자들이 늘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의성=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영양=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영덕=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

“마음이 참담합니다. 사찰을 지키지 못하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고운사 보장 스님) 26일 오후 1시 반경 경북 의성군 ‘고운사(孤雲寺)’. 어제까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사찰이 있던 자리는 시꺼먼 잔해와 재만 가득했다. 대웅전과 명부전은 불길을 피했으나 국가유산 보물인 ‘가운루(駕雲樓)’와 ‘연수전(延壽殿)’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가운루 건너편엔 범종만 금이 간 채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주변도 참혹했다. 나무들은 검게 타 쓰러졌고, 남은 잔불들에선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운루 자리에 허망한 표정으로 있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은 “어제 오후 4시쯤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며 불씨가 날아왔다”며 “급히 피했다가 오후 11시쯤 돌아왔는데, 손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면서 한숨지었다.피해 소식에 달려온 신도들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조한금 씨(60)는 “산불이 걱정돼 24일부터 와 있었다”며 “절에 있던 보물 옮기는 작업도 도왔는데 다 지키지 못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고운사에서 30년 동안 석축 공사를 했다는 70대 김모 씨는 “가운루가 지난해 보물로 승격돼 너무 기뻤는데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운사 앞 최치원문학관도 화마를 피해 가지 못했다. 2019년 세운 문학관 건물은 모두 불에 탔다. 다행히 지하 방화문을 닫아둬 수장고 유물들은 손상되지 않았다. 고운사가 무너지자 인근 국가유산이 있는 지역들도 초긴장 상태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26일 오후 10시 현재 병산서원에서 직선거리로 약 3㎞ 떨어진 지역까지 산불이 근접했다. 만일에 대비해 서원에 물을 계속 뿌리고 있으며, 류성룡 선생 위패 등을 옮길 준비도 하고 있다. 앞서 이날 오전 찾아간 안동하회마을은 밤새 서풍이 불어준 덕에 산불이 비켜 갔다. 하지만 멀리서 넘어온 연기가 자욱한 데다, 언제 바람 방향이 바뀔지 몰라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경북 청송의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사남고택’은 전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산불이 퍼지고 있는 안동과 의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외에도 국보 5건과 보물 50건이 밀집한 지역이다. 특히 봉정사의 국보 ‘극락전’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이다. 대웅전도 국보이며, 보물인 화엄강당과 고금당도 나무로 지어졌다. 국가유산청은 전날 사찰의 주요 유물을 긴급 이송했으며, 극락전 등엔 방염포를 씌워 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입구가 많아 화염이 빠르게 번진다. 발열과 연기량도 많아 진압하기가 특히 까다롭다. 금속이나 돌로 만든 유물도 안심할 순 없다. 2005년 강원 양양 화재 당시 보물 ‘낙산사 동종’은 쇠인데도 녹아내렸다. 인근의 국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등도 위험하다. 한 박물관 방재전문가는 “금속보다 내열성이 강한 석조조차 고열이 지속되면 터질 수 있다”며 “운 좋게 형태를 유지해도 돌의 경도가 떨어져 결국 부서진다”고 했다. 이원수 국립순천대 건축학부 교수는 “방염포가 있어도 겨우 30분가량 시간을 번다. 산불 같은 대형 화재엔 소용없다”며 “문화유산 주위에 폭 1m 이상 해자(垓子)를 파두는 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의성=조승연 기자 cho@donga.com}

25일 오후 8시 반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 산을 태우던 불길이 불과 15분 만에 중턱에 있는 요양원까지 내려왔다. ‘즉시 떠나라’는 대피령이 떨어졌다. 입소자 대부분이 거동 불편한 노인이라 걷거나 뛰어서 대피할 수 없었다. 한 명 씩 요양원 앞 차량에 모였고, 오후 9시경 정모 할머니(80) 등 입소자 4명과 요양원 여성 직원 2명을 태운 차가 요양원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주변은 이미 화마가 삼키고 있었다. 정 할머니 일행이 탄 차는 10분도 못 가 달려든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불이 도로를 달군 탓에 타이어가 녹아 먼저 터졌다. 이후 차에 불이 붙어 폭발했다. 정 할머니 등 3명이 숨졌고 나머지 탑승자 3명은 중상을 입었다. 이들보다 앞서 요양원을 출발해 인근 교회로 필사적으로 대피해 목숨을 건진 입소자들은 정 할머니 일행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 “산불이 방사포처럼 마을로 쏟아져”25, 26일 이틀간 2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북 북동부 산불 현장은 ‘아비규환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25일 오후 6시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2리 오원인 이장(57)은 마을 뒷산에서 붉게 밀려오는 화염을 보고 경악했다. 의성에서 번진 불이 안동을 거쳐 영양까지 덮쳤다. 불길은 산과 바람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불과 5분 전 “빨리 주민들을 대피시켜달라”는 군청의 연락을 받은 오 이장은 다급하게 움직였고, 이내 주민들의 휴대전화에는 “즉시 대피하라”는 오 이장의 스마트 음성 메시지가 속속 도착했다. 한 주민은 “이장이 보낸 메지를 받고 집을 뛰어나왔더니 마당에 불이 붙고 있었다”고 말했다. 화매2리 50대 주민 김모 씨는 “불이 그냥 천천히 번지는 게 아니라 뉴스에서나 봤던 북한 방사정포처럼 불꽃 수 천 개가 미사일처럼 마을로 쏟아졌다”고 말했다. 이후 마을 전기와 통신망도 끊겼다.같은 시간 옆 마을 삼의리 권모 이장(64)도 아내 우모 씨(59)와 함께 다급하게 차에 올랐다. 마을 도로는 이미 여기저기 날리는 불씨와 검은 연기 탓에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도로 옆의 낙엽이 땔감 역할을 하며 타오르자 마치 도로는 용암이 흘러드는 것 같았다. 권 이장 부부는 인근에 사는 친척들과 연락이 두절됐다. 오후 8시경 권 이장의 동생이 형님의 행방을 찾아 나섰을 때는 이미 늦었다. 권 이장의 차는 도로변 배수로에 고꾸라져 검게 탄 채 발견됐다. 차가 향하던 방향은 대피소가 아니라 삼의리 쪽이었다. 산불 연기 등으로 시야 확보가 안돼 방향을 잘못 잡은 것으로 보인다. 평소 권 이장과 친하게 지냈다는 오 이장은 “아마 다른 마을 주민들을 구하러 가다가 불길에 휩싸인 것으로 보인다”며 슬퍼했다.● 희생자 대부분 거동 어려운 노인이번 화마에 스러진 희생자 상당수는 거동이 어려운 노약자였다. 대부분 70, 80대로 집 안이나 마당, 도로에 불 탄 차 안에서 발견됐다.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에서는 80대 노부부가 집 앞 내리막길에서 숨졌다. 이들은 산불을 피해 집을 나섰지만 거동이 불편해 미처 불길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부부는 집에서 불과 도보로 1분 거리에 쓰러진 채 가족들에게 발견됐다. 장손 이모 씨(30)는 “산불이 난 뒤 교통도 통제돼 동네가 무질서 그 자체였다”며 “조금만 더 빨리 도착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 모두가 자책하고 있다”며 눈물을 훔쳤다.안동시 임하면 신덕리 이덕마을에서는 70대 여성 지적장애인이 집을 나서지 못하고 불길에 숨졌다. 그는 요양보호자 도움이 없이는 밖에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처지였다. 이웃 주민은 “대피 연락을 받았어도 움직일 수가 없어 갇혀있었을 것”이라며 “그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영덕군 축산면 대곡리에서는 80대 남성이 산불로 무너진 자택에 매몰돼 숨졌다. 청손 파천면과 진보면에서는 80대 여성과 70대 남성이 집 안과 마당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경북소방본부 관계자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대피를 준비하거나 대피중에 급속도로 번진 불길의 피해를 입으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산불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도 집안이나 주변에서 숨진 채 뒤늦게 발견되는 희생자들이 늘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의성=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영양=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영양=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영덕=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영덕=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

“시골에 살아서 어릴 때부터 산불은 많이 겪었지만 이런 산불은 처음입니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굉음과 함께 불덩이가 비닐하우스와 집을 덮쳤고 겨우 몸만 빠져나와 마을회관 쪽으로 도망쳤습니다”26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2리 마을회관. 주민 황호진 씨(66)는 불에 까맣게 타버린 집을 바라보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화마에서 가까스로 살아나온 사람들은 참담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경북 의성 산불이 번진 석보면에서는 여러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연기와 화염에 뒤덮인 마을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주민들은 “평생 처음 보는 산불”이라며 당시의 참혹한 순간을 전했다.이번 산불로 전국 2만7000여 명이 대피한 가운데 경북 청송시 주민들도 가까운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청송시 파천면에 사는 김미외 씨(62)는 “창밖을 보니 약 200m되는 거리 앞산에 불길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고 있었다. 깜짝 놀라 내복 차림으로 뛰쳐나오다가 미끄러져 왼쪽 다리를 크게 다쳤다”고 말했다.25일 밤 산불은 산맥을 넘어 동해안 해안가 경북 영덕까지 번졌다. 불길을 피해 방파제로 달아난 주민들은 바다와 불길 사이에 고립됐다. 울진해양경찰서는 방파제와 해안가 등에 갇힌 104명을 구조했다. 구조에는 낚시 어선 등 민간 선박도 동원됐다. 또 다른 마을에선 주민 9명이 한 차량에 타 급히 탈출을 시도했지만 뜨거워지 도로 표면 탓에 타이어가 터지면서 차가 도로 한복판에 멈춰섰다. 이들은 불길과 연기를 피해 인근 하천에 몸을 던져 물 속에서 버티다 지나가던 경찰에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이번 화재에서 재난문자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지역에서는 화재를 알리는 재난문자가 불길이 이미 마을에 번진 뒤에야 도착한 곳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몇몇 마을에서 이장과 주민들이 동네 노인들을 일일이 찾아가 대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화매1리 이장 김모 씨는 “마을 여기 저기 불이 붙기 시작한 뒤에야 재난문자가 도착했다”고 했다. 그는 “불길을 본 뒤 마을에 대피방송을 2번 했다”며 “마을에 불이 붙은 뒤에야 면사무소에서 직원의 대피 요청과 재난문자가 도착했다”고 밝혔다. 다른 주민도 “문자가 (화재가 덮친) 뒤늦게 많이 왔다. 문자보단 뉴스로 산불 소식을 주로 접했다”고 말했다.의성군 관계자는 “(행정) 직원이 직접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올 상황이 못돼 이장을 포함한 동네 지도자, 부녀회, 젊은 사람들이 주도해 대피를 도왔다”고 설명했다. 일부 노인들은 스스로 대피했다. 석보면에서 만난 김숙자 씨(84)의 경우 화재로 갑자기 정전이 돼 TV도 꺼져 약만 챙겨 혼자 걸어나와 동네 주민 차를 빌려 타고 대피소로 이동했다. 김 이장은 “가까운 집부터 어르신 집까지 찾아다니면서 집집마다 불러내 대피소로 이동시켰다”며 “눈 앞에 다니는 차를 무조건 붙잡아 세워두고 어르신들을 태워드렸다”고 말했다.영양=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청송=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

“마음이 참담합니다. 사찰을 지키지 못하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고운사 보장 스님)26일 오후 1시 반경 경북 의성군 ‘고운사(孤雲寺)’. 어제까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사찰이 있던 자리는 시꺼먼 잔해와 재만 가득했다. 대웅전과 명부전은 불길을 피했으나 국가유산 보물인 ‘가운루(駕雲樓)’와 ‘연수전(延壽殿)’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가운루 건너편엔 범종만 금이 간 채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주변도 참혹했다. 나무들은 검게 타 쓰러졌고, 남은 잔불들에선 연기가 피어 올랐다. 가운루 자리에 허망한 표정으로 있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은 “어제 오후 4시쯤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며 불씨가 날아왔다”며 “급히 피했다가 오후 11시쯤 돌아왔는데, 손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면서 한숨지었다.피해 소식에 달려온 신도들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조한금 씨(60)는 “산불이 걱정돼 24일부터 와 있었다”며 “절에 있던 보물 옮기는 작업도 도왔는데 다 지키지 못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고운사에서 30년 동안 석축 공사를 했다는 70대 김모 씨는 “가운루가 지난해 보물로 승격돼 너무 기뻤는데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고운사 앞 최치원문학관도 화마를 피해 가지 못했다. 2019년 세운 문학관 건물은 모두 불에 탔다. 다행히 지하 방화문을 닫아둬 수장고 유물들은 손상되지 않았다.고운사가 무너지자 인근 국가유산이 있는 지역들도 초긴장 상태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26일 오후 10시 현재 병산서원에서 직선거리로 약 3㎞ 떨어진 지역까지 산불이 근접했다. 만일에 대비해 서원에 물을 계속 뿌리고 있으며, 류성룡 선생 위패 등을 옮길 준비도 하고 있다.앞서 이날 오전 찾아간 안동하회마을은 밤새 서풍이 불어준 덕에 산불이 비켜 갔다. 하지만 멀리서 넘어온 연기가 자욱한 데다, 언제 바람 방향이 바뀔지 몰라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경북 청송의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사남고택’은 전소된 것으로 확인됐다.산불이 퍼지고 있는 안동과 의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외에도 국보 5건과 보물 50건이 밀집한 지역이다. 특히 봉정사의 국보 ‘극락전’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이다. 대웅전도 국보이며, 보물인 화엄강당과 고금당도 나무로 지어졌다. 국가유산청은 전날 사찰의 주요 유물을 긴급 이송했으며, 극락전 등엔 방염포를 씌워뒀다.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입구가 많아 화염이 빠르게 번진다. 발열과 연기량도 많아 진압하기가 특히 까다롭다. 금속이나 돌로 만든 유물도 안심할 순 없다. 2005년 강원 양양 화재 당시 보물 ‘낙산사 동종’은 쇠인데도 녹아내렸다. 인근의 국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등도 위험하다. 한 박물관 방재전문가는 “금속보다 내열성이 강한 석조조차 고열이 지속되면 터질 수 있다”며 “운 좋게 형태를 유지해도 돌의 경도가 떨어져 결국 부서진다”고 했다.이원수 국립순천대 건축학부 교수는 “방염포가 있어도 겨우 30분가량 시간을 번다. 산불 같은 대형 화재엔 소용 없다”며 “문화유산 주위에 폭 1m 이상 해자(垓子)를 파두는 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의성=조승연 기자 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