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신광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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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광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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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06-26~2025-07-26
칼럼100%
  •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올 3월 미국 미니애폴리스 공항 입국장에 군복 차림의 남성 10여 명이 휠체어를 타고 들어섰다. 군복 어깨 부분에 우크라이나군을 상징하는 삼지창 표시가 있었는데, 길게 늘어뜨린 팔소매 안이 텅 비어 있었다. 허벅지까지 말아 올린 바짓단 아래로는 둥글게 봉합된 무릎이 드러나 있었다. 이들은 헤르손, 바흐무트, 마리우폴 등 죽음의 격전지에서 팔다리를 잃은 우크라이나 군인들이었다.그중 한 명인 필로넨코(22)의 사연이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전해졌다. 그는 지난해 부상당한 전우를 옮기던 중 지뢰를 밟아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군 입대 전 오른쪽 다리에 새겼던 ‘신(God)’이란 문신은 전쟁터에 남겨졌다. 함께 입국한 다른 군인들 역시 포격을 당하거나, 지뢰를 밟거나, 부상병을 부축하다가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았다. 이들은 미국 비영리단체의 지원으로 미네소타주 재활센터에서 첨단 의수와 의족을 맞춘 뒤 생애 첫걸음을 떼는 아기처럼 걷는 법을 배운다.미 메릴랜드 재활센터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절단 장애’ 미군들로 가득했던 이곳에 우크라이나 군인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퇴역 미군들이 기증한 의족들은 이들 신규 입소자들의 다리가 되고 있다. 정찰 임무 중 포탄에 맞아 두 다리를 잃은 페둔(24)은 그렇게 지원받은 의족을 우크라이나 국기 색인 노랑과 파랑으로 칠했다.미국에는 이들을 공항에서 픽업해 재활센터로 데려다주거나 자신의 집 방 한 칸을 내어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적지 않다. 한 자원봉사자는 NYT에 “미국에 도착할 땐 영혼이 부서진 듯 보였던 이들이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면 새로 태어난 듯 다른 사람이 된다”고 했다. 지난해 2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사망한 우크라이나 군인은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수십만 명의 부상자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민간인 부상자까지 합하면 규모는 훨씬 커진다. 이들 중 해외에서 재활 기회를 얻는 건 소수에 불과하다. 전쟁이 나면 재활 수요가 폭증하지만 재활 인프라는 취약해진다. 병원이 공격을 받게 돼 병상은 줄고, 의료 인력은 흩어진다. 약품이나 보조기구도 귀해진다. 전력난까지 겹친다. 지금 우크라이나가 정확히 이런 상황이다. 팔다리를 잃거나 영구 척추손상 등 장애를 입은 군인과 시민들이 응급수술만 받고 집으로 돌려보내진다.30대 여성 나탈리야는 지난해 4월 딸과 기차역에서 피란 열차를 기다리다가 러시아의 포격을 받았다. 잠시 기절했다가 눈을 떴을 때 11세 딸의 두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자신의 한쪽 다리도 사라져 있었다. 그날 기차역에선 50명이 숨지고 두 모녀처럼 1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대피소에서 잠시 물을 구하러 나왔다가 포탄에 다리를 잃은 16세 소녀, 아파트 잔해 속에서 팔 없이 구조된 임신부 등 수많은 민간인이 장애를 갖게 됐다. 이제 우크라이나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장애인 인프라가 절실해지고 있다.향후 우크라이나 재건의 핵심은 인적자원의 복구다. 다르게 말하면 무너진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유럽연합(EU)이 회원국 재활병원에 우크라이나 중상자 2000여 명을 나눠 수용한 것도 이런 취지가 반영된 것이다. 일본도 매년 10~20명의 부상병을 받기로 했다. 첨단 의료와 기술을 갖춘 우리 역시 재활 지원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최근 우크라이나에서 찍힌 사진 한 장이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전장에서 두 팔과 두 눈을 잃은 남편을, 부인이 따뜻하게 끌어안은 사진이다. 이 20대 부부는 눈과 팔의 빈자리를 채워줄 기술과 재활기관을 애타게 찾고 있다. 1년 반이 되어가는 전쟁은 언젠가 끝날 테지만 장애인으로 다시 삶을 시작하는 그들은 앞으로도 자신과의 전투를 치러야 한다. 잘 디자인된 보조기구들이 몸의 일부로 채워진다면 그들의 전투가 조금은 덜 외로울 것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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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cm 낮은 눈높이로 ‘無장애’를 디자인하다[장애, 테크로 채우다]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가구 디자이너 김예솔 씨(35)가 바라보는 세상은 걷는 사람들보다 50cm가 낮다. 그의 눈높이에선 걷는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올해로 스웨덴 생활 6년 차. 예솔이 다니는 공공도서관에는 도서 검색대의 높이가 제각각이다. 스웨덴인 평균 신장에 맞춘 것부터 키가 작은 사람, 어린이 등에 맞춰 다양한 높이의 검색대가 나란히 있다. 옷가게에서 쇼핑을 하다 휠체어 리프트를 발견하기도 한다. 매장 내 단 높이가 달라 두 걸음만 올라가면 되는 계단인데 말이다. 시내버스를 타면 내리는 문 앞에 휠체어 공간이 널찍하게 있다. 그곳은 유모차를 가지고 버스에 탄 부모들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스웨덴에선 마치 누군가의 상황을 미리 헤아려보고 빈틈을 채워준 것처럼 배려가 곳곳에 녹아 있어요.”철저히 ‘걷는 사람’에 맞춰진 가구들하지만 스웨덴에서도 집에 들어오면 한국과 다를 게 없다. 인테리어, 특히 가구는 철저히 걸을 수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설계돼 있다. 휠체어 이용 경력 28년 차인 예솔에게도 하루하루가 도전이다. 휠체어에 앉아 가스레인지 불을 켜면 바로 눈앞에서 불이 타오른다. 싱크대가 높아 재료 손질이나 칼질도 만만치 않다. 수도꼭지에도 손이 잘 닿지 않는다. 찌개가 잘 끓고 있는지 냄비 안을 들여다보기도 어렵다. 휠체어를 탄 채 뜨거운 요리를 거실 식탁으로 옮기려면 외줄타기를 하듯 묘기를 부려야 한다. 식탁이나 책상은 휠체어 탄 사람에겐 너무 높거나 낮을 때가 많다. 다리 사이 간격도 좁아서 사람들과 같이 테이블에 앉으려면 바퀴에서 딱 걸린다.예솔은 “장애인이어서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장애가 있으면 혼자 일상을 꾸려가기 어렵게 디자인된 환경 탓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의 가구 디자인에는 이런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다른 몸’을 가진 사람에게도 안전하고 편안한 가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예솔은 한국의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엔 KT에 입사해 온라인서비스 화면을 디자인했다. 일은 적성에 맞았지만 모니터 화면이 아닌, 현실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싶었다. 그가 4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택한 것이 바로 가구였다. 2018년 스웨덴 가구기업인 이케아(IKEA) 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길에 올랐다. 스웨덴 남서부에 있는 룬드대에서 산업디자인 석사과정을 마쳤다.예솔이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가구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게 된 일화가 있다. 그날은 스웨덴인 친구 안나(52)의 초대로 저녁식사 자리에 간 날이었다. 50년 가까이 ‘걷는 사람’으로 살아온 그는 2년 전 하반신이 마비된 후에도 집으로 친구들을 불러 요리해주는 걸 여전히 즐겼다. 그날도 안나는 평소처럼 주방과 거실을 오가며 직접 음식을 날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스타를 쟁반에 담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굴렸다. 바퀴를 밀 때마다 쟁반 위 접시가 달그락거렸다. 예솔과 친구들은 거실 식탁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안나를 바라봤다. 장애인이 도와 달라고 하기 전까진 나서지 않는 게 스웨덴식 매너였다.“안나가 왜 직접 음식을 나르려 했는지 이해가 돼요. 휠체어를 탄다고 의존적일 필요는 없잖아요.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음식을 나르는 모습이 우아해 보이지 않았어요. 안나는 친구들에게 근사하게 대접하는 게 중요한 사람인데 그러려면 안나에게 뭐가 필요할까 생각하게 됐어요.”그녀를 자유롭게 해준 가구들기자가 3월 말 스웨덴 룬드에 있는 예솔의 집에 들어섰을 때 크림색 벽면에 원목 가구들이 배치된 세련된 북유럽 인테리어가 눈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현관에 들어서자 허리 높이에 손바닥만 한 정사각형 버튼이 있었다. 휠체어에 탄 상태로 버튼을 눌러 현관문을 자동으로 여닫을 수 있게 한 것이었다. 각 방 문에는 휠체어에 앉아서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긴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방은 물론이고 욕실까지 문턱이 모두 제거돼 있었는데 턱을 제거한 곳을 벽 색깔과 같은 톤으로 마감해 눈에 잘 띄지 않았다.가구들도 자세히 살펴봐야만 미세한 차이를 드러냈다. 휠체어 타는 1인 가구로 스웨덴에서 매년 이사를 다니면서, 휠체어 타는 친구들의 불편을 보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예솔이 직접 구현해낸 가구들이었다. 우선 주방에 바퀴가 달린 원목의 푸드 트레이가 있었다. 안나와의 저녁식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바로 그 가구였다. 휠체어에 탄 채 가볍게 밀기만 하면 음식이나 무거운 물건을 옮길 수 있게 했다. 구멍 뚫린 직물로 사이드바를 만들어 휠체어에 앉아서도 안에 뭐가 놓여 있는지 잘 보였다.거실의 원형 테이블은 다리가 3개였다. 보통 4개인 테이블 다리를 3개로 줄이고, 대신 다리 사이 간격을 넓혔다. 테이블 다리 사이가 좁아 휠체어 바퀴가 걸리는 문제를 개선한 것이었다. 옷장을 열자 위쪽에 있는 옷걸이 봉에 긴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이걸 잡아당기면 옷걸이 봉이 아래로 내려와 휠체어에 앉아서도 옷을 쉽게 걸고 꺼낼 수 있었다.“이 가구들이 제겐 자유의 첫걸음이에요. 자유가 대단한 게 아니에요. 원할 때 문을 여닫을 수 있고, 옷 걸고 싶을 때 옷 걸고, 요리한 음식을 식탁에서 먹을 수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집에서 이런 걸로 고민하지 않잖아요. 휠체어 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야 해요.”예솔은 휠체어 이용자들도 쓰기 편한 가구를 만들기 위해 스웨덴인 목수인 페더 칼슨과 힘을 합쳤다. 페더는 예솔의 룬드대 재학 시절 목공예 실습 강사였다. 예솔이 디자인을 그려서 넘기면 페더가 시제품으로 만들었다. 예솔은 시제품을 써보며 설계를 보완했고, 어느 정도 완성품이 나오면 휠체어를 타는 지인들에게 보내 피드백을 받았다.두 사람은 2021년 ‘릴라 엘리펀트(작은 코끼리)’라는 가구회사를 차려 제작을 시작했다. 1년 사이에 5점의 가구가 세상에 나왔고, 푸드 트레이 ‘클룸픽(Klumpig)’은 한국에도 진출해 판매되고 있다. 페더는 “저 역시 장애인의 삶을 잘 몰랐는데 예솔과 작업하면서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됐다”고 했다.‘장애 초래하는 환경’ 바꾸는 디자인의 힘예솔은 스웨덴에서 틈틈이 가구 디자인을 하면서 직장 생활도 병행하고 있다. 전 세계 주요 여행지의 숙소나 박물관, 각국의 대형마트, 백화점 등의 장애인 접근성 정보를 제공해주는 정보기술(IT) 플랫폼 회사에 다닌다. 휠체어용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시각장애인용 점자나 청각장애인용 보조 장치가 구비돼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을 디자인하는 게 예솔의 업무다.회사 이름은 ‘장애인들 세상을 발견하다(Handicap people discovers the world)’란 말을 줄인 ‘핸디스커버’다. 이 회사 창업자 세바스티앵에겐 근육병으로 다섯 살 때부터 휠체어를 타온 아들이 있다. 그는 고향인 프랑스를 비롯해 여러 나라로 가족여행을 갈 때마다 휠체어 바퀴로 넘어설 수 없는 장벽에 수없이 부딪혔다. 장애인 시설이 없으면, 없다고 알려만 줘도 헛걸음을 줄여 큰 도움이 될 텐데 그런 서비스가 없었다.세바스티앵(사진)은 고령화 등으로 신체 기능에 제약이 생긴 인구가 늘고 있고, 장애를 갖게 된 후에도 여행과 쇼핑을 즐기며 삶의 질을 유지하려는 수요가 많아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경제력을 갖춘 은퇴자들이 많고, 장애인들은 만족스러운 서비스에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려는 성향이 강해 시장성이 있습니다. 기업들도 유럽연합(EU) 정책에 따라 장애인 시설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이를 알리고 싶어 해 양쪽의 필요가 맞아떨어지는 거죠.”장애 후에도 삶이 우아하도록3월 말 스웨덴 룬드는 연일 비가 내렸다. 기자는 룬드대 안 카페에서 인터뷰를 위해 예솔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창문 너머로 예솔이 비를 맞으며 캠퍼스를 가로질러 오는 게 보였다. 휠체어 앞에 동력장치를 결합해 마치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것처럼 보였다. 카페로 들어온 예솔은 오토바이 앞부분처럼 생긴 동력장치를 분리해 구석에 ‘주차’했다. 그러곤 빗방울이 맺힌 바람막이 잠바를 탈탈 털어 휠체어 의자에 건 뒤 기자와 마주 앉았다.―스웨덴에 살아보니 어떤가.“한국과 비교하자면 장애인이 살기에 스웨덴은 제도가 좋고, 한국은 사람이 좋다. 스웨덴은 돌봄 시스템이 탄탄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장애인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도 도움을 청하지 않는 한 먼저 손 내밀지 않는다. 장애인이 도움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면 실례가 될 수도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제도에 빈틈이 많지만 그 틈을 사람들이 메운다. 한국에선 휠체어를 타고 가다 문제가 생기면 꼭 누군가가 도움을 준다.”―왜 가구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나.“휠체어를 타다 보면 세상이 내 얼굴에 대고 ‘너는 여기 들어오지 마’라면서 밀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배타적인 환경을 만드는 첫 장벽이 가구인 것 같다. 가구는 신체가 환경과 맞닿는 첫 지점이니까. 집에 있는 가구마저 장애인에게 차별적인 경우가 많다. 일부 장애인용 의료기구가 있긴 하지만 입원할 때만 일시적으로 쓴다. 퇴원 이후 집에서 보내게 될 여생을 위한 디자인이 필요하다.”―가구도 상품인데 많이 팔려야 하지 않나.“물론이다. 휠체어 장애인에게 최적의 디자인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력적인 디자인을 하고 싶다. 스웨덴에서 유모차를 가지고 시내버스에 탄 부모들이 휠체어용 공간을 애용하듯 장애인을 우선 고려한 디자인은 보편적으로도 유용할 수 있다. 요즘 스마트폰 화면 배경을 검은색으로 설정하는 다크모드도 마찬가지다. 원래 시각장애인들이 휴대전화를 볼 수 있도록 도입한 기능인데 간호사들이 많이 쓴다. 야간에 입원 환자들 점검할 때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을 다크모드로 하면 환자들이 덜 방해받기 때문이다.” (예솔이 만든 푸드 트레이 ‘클룸픽(Klumpig)’을 제작·판매하는 ‘아이엠히어’ 정혜원 대표는 “구매 고객들 중 상당수가 40, 50대 비장애 여성들이다. 본인들이 써보시고 부모님께 드리려고 재구매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어떤 가구를 지향하나.“아름답고 우아한 가구를 만들고 싶다. 삶의 어느 순간 장애를 갖게 되더라도 만족스러운 환경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저 역시 그랬고, 장애를 갖게 되면 그동안 추구했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좌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디자인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사고를 당할 수 있고, 여성들은 출산을 한다. 삶의 일정 기간은 몸이 불편한 상태로 살아간다. 장애가 장애로 느껴지지 않게 해주는 가구는 많은 사람에게 필요할 수 있다.”―디자이너란 어떤 사람인가.“디자이너가 세상을 보는 눈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 디자인이다. 그래서 평소 타인의 삶을 섬세하게 관찰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그들의 눈이 되어줄 수 있다.”내 몸의 소중한 일부, 휠체어기자는 예솔의 집으로 옮겨 사진 촬영을 하며 조심스럽게 제안을 하나 했다. 평소에 휠체어에서 내려와 쉴 때는 어떻게 하는지 찍고 싶다고 하자 예솔은 거실의 그네 의자에 옮겨 앉았다. 촬영을 시작하려는데 예솔이 말했다.“저기 휠체어 좀요.”기자가 무심코 카메라 앵글 밖으로 옮겨놨던 휠체어를 갖다 달라는 말이었다. 예솔은 휠체어를 자기 옆으로 끌어당기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사진기자는 휠체어의 검은색이 주변 크림색 배경에 비해 너무 색감이 강해 잠시 빼놓고 찍어보자고 했다. 하지만 예솔은 휠체어가 사진에 함께 담겼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기자는 다음 날 예솔과 인터뷰를 하며 휠체어가 사진에 담기길 원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물었다.“저는 척수염이 찾아온 일곱 살 때부터 28년간 휠체어를 타온 사람이에요. 제 몸의 자연스러운 일부죠. 특별히 어떤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촬영을 하는데 휠체어가 옆에 없어서 순간 가까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날 인터뷰에서 예솔은 “장애라는 것을 안타깝게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는 저의 장애를 진솔하게 대하고 싶다”고 했다. “누구나 자신의 민낯을 마주보는 게 힘들지만 용기 내서 직시하고 나면 그때부턴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끌어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젠 몸에 있는 하나의 점처럼 느껴져요.”가구로 스웨덴 뒤흔들다예솔은 4월 말 기다리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가 만든 가구들이 룬드시가 속한 스웨덴 스코네주(州) 주관 ‘2023 디자인 어워드’ 대상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 예솔은 스웨덴의 디자인 공모전에 여러 번 도전했지만 낙방을 거듭했다. 마침내 디자인 선진국 북유럽에서 진가를 인정받은 것이다. 주최 측은 “어떤 신체 조건을 갖고 있든 충만한 일상을 보낼 가치가 있다는 접근법은 스웨덴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통념을 뒤흔들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가구 디자인을 계속하려면 아직은 지속적인 펀딩이 필요해요. 그래서 공모전 때마다 계속 냈는데 이번엔 진짜 될 거라고 생각했던 곳에서도 번번이 떨어졌어요. ‘이 작업을 세상이 과연 알아봐 줄까’ 하는 자기 의심이 들 때도 많았죠. 제가 너무 실망하니까 페더가 그러더군요. ‘우리가 의자 하면 딱 떠오르는 디자이너, 조명 하면 생각나는 그 디자이너… 그 스타 디자이너들이 알려지기까지는 평생이 걸렸다’고요. 제가 너무 빨리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을 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예솔은 4월 16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열린 ‘걸즈온휠즈’라는 토크콘서트에 참석했다. 휠체어를 타는 2030세대 여성들이 모여 각자의 일과 일상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초등학생부터 3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이 탄 휠체어 50여 대가 무대 앞을 가득 메웠다. 행사 초대를 받고 스웨덴에서 날아온 예솔이 무대에 올랐다. 휠체어들 사이로 한 20대 여성이 자신의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쓰다듬으며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예솔은 유심히 바라봤다. 예솔은 그 여성의 귓가에 펼쳐놓듯이 자기소개를 시작했다.“여러분, 제 소개를 해볼게요. 지금 저는 휠체어를 타고 있어요. 짙은 회색의 수동 휠체어예요. 제 머리는 검은색에 단발머리이고, 위아래로 베이지색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었습니다. 오늘 좀 밝은 느낌을 내보고 싶어서요. 자 그럼, 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동아일보는 장애의 빈틈을 기술과 디자인으로 채우며 다시 일어선 ‘다른 몸의 직업인’ 5명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로봇팔을 한 사이클 선수, 시력을 잃어가는 작곡가, 손을 못 쓰는 치과의사, 휠체어를 타는 ‘걷는 로봇’ 연구원과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가구 디자이너…. 부서진 몸으로 다시 일어선 이들은 말합니다.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고.<특별취재팀>▽기획·취재:룬드(스웨덴)=신광영 neo@donga.com 홍정수 이채완 기자▽사진:룬드(스웨덴)=송은석 기자▽디자인:김수진 기자※아래 주소에서 [장애, 테크로 채우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김예솔 디자이너 유튜브 계정룬드(스웨덴)=신광영 기자 neo@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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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 대신 로봇팔로 라이딩 “세상에 한발짝 더”[장애, 테크로 채우다]

    “그날 사이클 트랙에 들어서는데 컨디션이 최고였어요. ‘이래도 나를 국대(국가대표)로 안 뽑아?’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죠. 신기록을 낼 거 같아서 경기 전에 주최 측에도 얘기해놨어요. 원래 뒤에서 출발한 선수가 앞 선수를 따라잡으면 시합이 도중에 끝나는데 제가 앞 선수 따라잡더라도 흐름을 끊지 말아달라고요.”지난해 10월 전국체전 사이클 경기가 열린 강원 양양 벨로드롬에 장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이번 경기는 추월 승부가 아니고 기록경기입니다. 심판진은 경기 중단 없이 끝까지 진행해주세요.’장애인 사이클 국가대표 상비군인 나형윤 선수(39)는 이날 자신감에 부풀어있었다. 출발선에 선 형윤은 한바퀴가 333m인 달걀형 트랙을 찬찬히 살폈다. 승부를 겨룰 다른 선수는 반 바퀴 앞인 맞은편에서 출발대기 중이었다. 이 트랙을 12바퀴(총 4km) 도는 경기였다. 형윤은 몇 주 전 비공식 4km 경기에서 기존 신기록을 훌쩍 넘겼다. 국가대표 선발전인 이번 체전에서 그때처럼만 달려준다면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다.형윤은 출발선 옆 관중석으로 고개를 돌려 두 사람과 눈을 맞췄다. 딸 하나린(8)과 부인 박미선(39) 씨였다. 하나린은 ‘하늘에서 내려온 아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딸아이는 이날 아침에도 평소처럼 형윤에게 ‘로봇팔’을 건네며 “아빠, 오늘도 일등 해”라고 말했다. 두 팔이 없는 형윤은 딸이 로봇팔이라고 부르는 전자의수를 착용하고 사이클을 탄다. 팔뚝 절단 부위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의수의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할 수 있다.“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린, 아빠 팔 좀 갖다 줘’ 이렇게 말하곤 해요. 경기 있는 날 아침엔 드라이기나 손 선풍기로 의수를 꼼꼼히 말려요. 의수와 피부 접촉면에 땀이 차면 오작동이 날 수 있어서요.”국가대표 선발전 그날출발 신호가 울리자 형윤은 ‘댄싱’을 시작했다. 안장에서 엉덩이를 뗀 채 사이클을 좌우로 흔들며 매섭게 치고 나갔다. 사이클 선수들은 속도를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해 핸들 손잡이를 몸 쪽으로 잡아당기며 춤을 추듯 좌우로 무게중심을 옮긴다. 이 때 페달을 힘껏 구르면서 동시에 핸들을 강하게 잡아당길수록 속도가 빨리 붙는다. 형윤에겐 전자의수가 빠지지 않도록 힘 조절을 잘 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 때만 해도 경기는 순조로운 듯 했다.댄싱으로 반 바퀴쯤 달려 속도가 붙자 형윤은 안장에 앉아 몸을 웅크렸다. 사이클 바퀴에서 나는 ‘쐐’ ‘쐐’ 소리가 고요해진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이제 형윤은 핸들 손잡이에서 손을 떼서 핸들 가운데 세로로 뻗어있는 티티바(TT바·Time Trial Bar)로 옮겨 잡을 타이밍이었다. 티티바를 잡아야 몸이 공처럼 모아져 공기 저항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왼손부터 티티바로 옮겨 잡으려고 하는데 핸들을 쥔 손이 펴지지가 않는 거예요. 손이 그 상태로 잠겨버린 거죠. 댄싱할 때 팔을 살살 당긴다고 당겼는데 힘이 들어갔는지 의수가 살짝 들려서 배터리 접촉 불량이 된 거 같더라고요. 급한 마음에 배터리가 단자와 잘 맞붙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오른팔을 핸들에서 떼서 왼팔을 막 때렸어요. 근데 왼손이 움직이기는커녕, 오른손마저 충격 때문에 오류가 나서 손이 벌려진 채로 말을 듣지 않더라고요.”응원석에 있던 미선은 비틀비틀 트랙을 달리는 남편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봤다. 승부욕이 강한 형윤에게 미선은 “욕심 내지 말고 다치지 말자”는 말을 자주 해왔다. 미선에게 남편의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를 들려왔다.“손이 망가졌어! 손이 안돼!”형윤은 오른손이 공중에 들린 채로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사력을 다해 페달을 구르고 있었다. 사이클 전용 경기장인 밸로드롬은 트랙 양끝에 있는 반원 모양 곡선주로의 경사가 40도 정도로 가파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선수들이 트랙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다. 한 손으로 핸들을 잡은 형윤은 파도 꼭대기에 선 서퍼처럼 아슬아슬하게 곡선주로를 달렸다. 몸이 부서지고 난 뒤 형윤이 두 팔을 잃던 날 저녁은 강풍이 불었다. 그가 강원도 최전방인 22사단 GOP 부대 중사로 근무하던 2006년 11월이었다. 강풍에 고압선이 끊어져 북쪽을 비추는 철책 경계등이 모두 꺼져버렸다. 야간에 북한군의 동태를 살피기 어렵게 된 비상사태였다. 상급부대에서 전기 기술자를 급파했다. 그 기술자는 바람이 계속 불어 위험하다며 복구 작업을 포기했다.그러자 부대장은 형윤에게 작업을 청했다. 형윤은 부대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봇대에 올랐다. 하지만 몇 시간 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땐 고압전기가 양팔과 겨드랑이, 허벅지 등을 관통해 몸 곳곳이 터져나간 상태였다. 8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두 팔은 절단해야 했다. 이듬해 전역할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다.형윤은 중고교 동창이자 동갑인 미선이 처음 문병을 왔던 날 짓궂게 인사를 건넸다. “야 이 기집애야, 오빠가 다쳤는데 이제야 오냐.” 미선은 응수했다. “여자 동창들 중에 나 혼자 왔거든. 고마운 줄이나 알아.”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5년간의 연애 후 2014년 결혼했다. 결혼식 날 형윤은 실리콘으로 된 의수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었다. 결혼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을 지켜봐온 하객들은 저마다 눈물을 쏟았지만 신랑 신부는 예식 내내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이듬해 딸이 태어날 때만해도 형윤은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팔을 잃은 청년 장애인이 생계를 위해 마련한 나름의 대안이었지만 결국 처분했다. “아이에게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아빠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복지시설에 취업했어요.” 형윤은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태권도와 철인3종을 하는 장애인들을 알게 됐고 그들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했다. 금세 소질을 보인 형윤은 철인3종 가운데 하나인 사이클 선수가 됐다. 그는 “제가 (사이클을) 잘은 못 타도, 할 수 있는 거라서 도전하게 됐다”고 했다.전자 의수를 착용하면 자전거를 타는 게 가능했다. 브레이크는 안장 바로 밑 프레임에 옮겨 달아 허벅지를 오므리면 잡을 수 있게 개조했다. 또 고개만 숙이면 물을 마실 있도록 긴 투명 빨대를 물통에서 핸들 앞까지 연결했다. 포스코1%나눔재단 등에서 지원받은 보조기구들도 ‘빈틈’을 메워줬다. 형윤은 마음이 답답한 날이면 친구들과 집이 있는 가평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다녀오기도 했다. 자전거는 장애를 갖게 된 뒤 움츠려드는 형윤이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해준 친구였다.장애인 사이클은 장애 정도에 따라 5등급으로 나뉘고 1등급에 가까울수록 중증인데 형윤은 4등급으로 분류됐다. 등급에 따라 가중치를 적용하기 때문에 경증인 선수가 중증 선수보다 순위가 높으려면 기록이 월등히 좋아야 한다. 형윤은 지난 4년 간 한 단계씩 올라서며 국가대표 상비군이 됐다.장애인이 운동선수를 직업으로 유지하려면 국가대표가 돼야 한다는 게 형윤의 생각이었다. 그래야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고 거기서 포인트를 쌓아야 패럴림픽에도 나가며 후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부서지고 난 뒤 비로소 시작한 사이클은 그에게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될 수 있게 해줬다.멘탈이 터지고 딸의 목소리만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인 스피드로 승부하는 사이클 트랙 경기에선 몸을 최대한 낮춰 공기저항을 줄여야 한다. 한손으로 핸들을 잡고 달리던 형윤은 균형을 잡으려 몸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페달을 굴러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이번 경기를 통해 국가대표가 되고자 했던 형윤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정말 중요한 순간에 오작동이 와버리니까 멘탈이 터져버렸어요. 코치는 ‘그냥 달려!’ 이러는데 저는 그냥 멘탈이 나가버리더라고요.”관중석에 있던 8살 딸이 미선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 오늘 왜 그래?”“아빠가 손이 고장 나서 넘어질지도 몰라. 하나린이 아빠 잘 타라고 응원해줄래.”네 살 때부터 아빠 경기를 따라다녔던 딸은 형윤이 질주할 때면 자그마한 몸으로 경기장이 떠나가도록 응원했다. 꼬마의 우렁찬 목소리에 다른 관중들도 박수를 치며 추임새를 넣는 일이 많았다.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수줍음을 느끼게 됐는지 응원소리가 작아졌지만 이날만큼은 예전처럼 온 힘을 다했다. ‘쐐~’ ‘쐐~’ 소리만 나던 경기장에 여리지만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빠 아빠!”, “아빠 파이팅!”, “아빠 이겨라!” 시합을 계속해야 할지, 포기할지 정신이 혼미했던 형윤은 이 소리를 바로 알아챘다. “딱 그 소리밖에 안 들렸어요. 아이가 꼬맹이 때처럼 목이 터져라 외치는….” 형윤은 다시 세차게 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오래 달리지는 못했다. 딸아이의 눈앞에서 상대 선수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다. 이기는 건 당연하고 신기록을 목표로 시합에 나섰던 형윤은 추월 패를 당해 트랙에서 내려왔다. 의기소침해진 그는 경기 후 양양 앞바다에서 돌 틈에 숨은 꽃게를 같이 잡자는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고배를 마신 형윤은 “그래도 로봇팔이 있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의수는 제 몸의 일부인데 어떻게 원망하겠어요. 더 철저히 대비하지 못한 제 잘못이죠.”결혼 전에 형윤은 의수를 밖으로 내놓고 반팔 차림으로 외출하곤 했지만 딸이 태어난 뒤부턴 여름에도 밖에 나갈 땐 긴팔을 입는다. 의수를 낀 아빠 때문에 아이가 불편한 시선을 받을까봐 걱정되기 때문이다.형윤은 딸의 학교 친구들이 집에 놀러와 나누던 대화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한 친구가 “애들이 교실에서 ‘하나린 아빠는 장애인’이라면서 웃고 떠든 적이 있다”고 하자 딸이 “나 그 때 교실에 없었는데…”라며 말을 흘렸다. 그러자 친구는 “너 그때 교실에 있었잖아”라며 천진하게 말했다. 형윤은 딸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말없이 바라봤다.딸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친구들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빠 장애인인데 그게 뭐가 어때서. 우리 아빠, 나라 지키다가 다친 거야. 장애인이 창피한 거 아냐.”몇 주 뒤 미선은 딸 담임교사와 면담하며 이 일화를 꺼냈다. 교사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다”고 미선을 안심시켰다. “하나린이 반 아이들에게 ‘우리 아빠 팔은 로봇팔이야. 군대에서 다쳐가지고 국가유공자이고 사이클 선수야’라고 자랑하듯 얘기하더라고요.”엄마는 똥손, 아빠는 금손미선이 출산 이후 혼자 외출을 해본 건 딸이 태어난 지 952일만이었다. ‘독박육아’를 각오하긴 했지만 팔이 자유롭지 않은 남편의 빈자리는 컸다.“처음으로 혼자 외출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할 정도로 독박육아를 했어요. 제가 육체적으로 힘들었다면 신랑은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거예요. 눈앞의 아기를 얼마나 안아보고 싶었겠어요. 다른 아빠들처럼 기저귀 갈고, 목욕시키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싶었을 거예요. 다행히 아이가 몸을 가눌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신랑이 기저귀를 갈았어요. 사회복지사로 일할 때 어르신들 기저귀 갈아드리는 일을 한 적이 있어서 맨손으로 곧잘 하더라고요.”딸을 맘껏 안아주기 어려운 형윤은 배낭처럼 메는 캐리어에 아이를 태우고 틈만 나면 나들이를 다녔다. “신랑은 몇 시간이고 아이를 어깨에 메고 산에 가고 바다도 가고 전국을 다녔어요. 물고기도 같이 잡고, 스키도 같이 타고, 부루마블 게임도 하고…. 요즘은 신랑이 아침에 누룽지 끓여서 아이 밥 먹이고 등교까지 시켜서 저는 많이 편해졌어요. 다른 어떤 아빠들보다 아이와 많은 걸 함께 해요. 하나린은 아빠의 장애를 느낄 겨를이 없을 거예요.”형윤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의 그림 친구이기도 하다. 의수에 연필을 끼워 쓱쓱 그려낸다. “신랑이 옛날에 학교 다닐 때부터 판화 같은 걸 엄청 잘 했었거든요. 나비 한 마리를 그려도 저는 유치원생처럼 그리는데 신랑은 호랑나비도 거의 똑같이 그려줘요. 그래서 하나린이 저한테 만날 그러죠. 엄마는 똥손이고 아빠는 금손이야.”금메달도 메우지 못한 빈자리형윤은 지난해 4월 네델란드에서 열린 세계 상이군인 체육대회인 ‘인빅터스 게임’에 출전해 남자 사이클 부문(개인독주 로드바이크1)에서 우승했다. 세계 각국 상이군인 출신 선수들이 모이는 이 대회에선 메달 수여식이 독특했다. 금·은·동 메달리스트가 높이 차가 없는 연단에 나란히 서고, 자녀나 배우자 등 가족이 선수에게 메달을 걸어줬다. 한 여자선수에겐 남자친구가 메달을 걸어준 뒤 무릎을 꿇고 청혼하기도 했다. 형윤은 딸아이 또래의 여자아이가 휠체어에 탄 아버지에게 메달을 걸어주며 목을 끌어안는 장면을 가만히 바라봤다.“가족들 동행은 지원이 안 된다고 해서 저 혼자 오긴 했는데 딸과 아내가 함께 왔더라면 좋았겠다 싶었어요. 한국에선 상이군인이라고 자부심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여기 선수들과 가족들은 정말 자랑스러워하더라고요. 제가 딸에게 아빠가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다쳤다고 얘길 해주긴 했지만 아이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를 수 있잖아요. 금메달 딴 거 많이들 축하해주셔서 감사하긴 한데 사실 남들 평가가 중요한 건 아니에요. 내 가족이, 내 딸이….”형윤은 말을 잠시 멈추고 촉촉하게 붉어진 눈동자를 깜박였다. 기자와 인터뷰할 때마다 개구쟁이 같은 눈빛으로 거침없이 말하던 평소와는 다른 눈동자였다.그는 인빅터스 대회에 함께 출전한 동료 선수들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군 간부가 공무 중 부상으로 장애를 얻으면 상이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제대 후 15년이 지났지만 형윤은 늦게나마 상이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 국방부에 문의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장애 발생 5년 내에 연금을 신청해야 한다는 규정 탓에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5년 시효’가 지났더라도 장애가 악화된 경우 신청이 가능했지만 형윤은 이미 가장 중증인 장애1급으로 전역해 해당될 수 없었다.“제 권리에 무지했다는 것에 자책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전역 당시 상이연금에 대한 안내가 전혀 없었고, 5년 내 신청해야 한다고 하는데 23살에 양팔을 절단하고 어떻게 살지 막막하던 시기여서 다른 건 신경 쓸 여력이 없었어요.”“아빠 가슴에 왜 내가 있어?”올해 첫 전국 대회가 열린 5월 6일 전남 영암국제자동차경주장 선수 대기실은 ‘쐐’ 소리로 가득했다. 경기 시작 30분을 앞두고 몸 풀기가 한창이었다. 사이클 뒷바퀴를 거치대에 올려놓고 페달을 구르는 형윤의 허벅지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형윤은 핸들 위에 깔아놓은 흰 수건 위에 맨 팔뚝을 기댄 채 페달을 굴렀다.조금 뒤 사이클에서 내려온 그는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아냈다. 이제 출발선으로 이동할 차례였다. 형윤은 젖은 훈련복을 벗고 맨 팔뚝으로 유니폼 상의를 꺼내들었다. 옷 아래쪽을 입으로 물고 능숙하게 한 팔 씩 소매에 집어넣는데 그의 가슴팍에 주먹만한 문신이 살짝 비쳤다. 딸의 앳된 얼굴이 왼쪽 가슴에 새겨져있었다.“아빠 가슴에 왜 내가 있어?”라고 아이가 물을 때면 형윤은 “하나린이랑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고 싶어서”라고 말해준다.유니폼 지퍼를 올린 그는 사이클 옆에 놓아둔 때 묻은 로봇 팔을 한 짝씩 꼈다. 이어 오른손으로 왼손을 한 번 툭, 왼손으로 오른손을 한 번 툭 쳤다. 그래야 두 팔에 전원이 켜진다. 형윤은 안장에 몸을 실으며 이제 한 몸이 된 두 손으로 사이클 핸들을 굳게 쥐었다. 그러곤 탁 트인 트랙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동아일보는 장애의 빈틈을 기술과 디자인으로 채우며 다시 일어선 ‘다른 몸의 직업인’ 5명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로봇팔을 한 사이클 선수, 시력을 잃어가는 작곡가, 손을 못 쓰는 치과의사, 휠체어를 타는 ‘걷는 로봇’ 연구원과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가구 디자이너…. 부서진 몸으로 다시 일어선 이들은 말합니다.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고.<특별취재팀>▽기획·취재: 신광영 neo@donga.com 홍정수 이채완 기자▽사진: 송은석 기자▽디자인: 김수진 기자※아래 주소에서 [장애, 테크로 채우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 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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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로 장애를 극복한 5人… 삶은 이렇게 다시[장애, 테크로 채우다]

    우리 누구든 삶의 일정기간은 장애와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꼭 사고나 질병을 겪지 않더라도 급속한 고령화로 어느 정도의 장애는 언젠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장애를 갖게 됐다고 해서 그동안 누려온 삶을, 또는 앞으로 추구하려는 삶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장애를 초래하는 환경을 바꾼다면 꽤 괜찮은 삶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동아일보는 장애의 빈틈을 기술과 디자인으로 채우며 다시 일어선 ‘다른 몸의 직업인’ 5명의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로봇팔을 한 사이클 선수, 시력을 잃어가는 작곡가, 손을 못 쓰는 치과의사, 휠체어를 타는 ‘걷는 로봇’ 연구원과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가구 디자이너…. 취재팀은 올 1월부터 6개월에 걸쳐 이들의 조금 특별한 일상에 동행했습니다. 부서진 몸으로 다시 일어선 이들은 말합니다. 삶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고.7월 24일 특별기획 [장애, 테크로 채우다] 첫 회가 시작됩니다.[장애, 테크로 채우다] 티저 영상 보기(https://youtu.be/qCMY9GIN5a4)신광영기자 neo@donga.com}

    • 202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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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커버그의 스레드, 흥행공신은 머스크”… 트위터 인수뒤 탈퇴 확산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가 5일 선보인 새로운 소셜미디어 ‘스레드(Threads)’가 출시 사흘 반 만인 9일 오전 8시 현재(현지 시간) 가입자가 95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벌써 트위터 이용자 수 2억3780만 명(지난해 7월 기준)의 40%를 확보할 만큼 추격세가 빠르다. 업계에서는 ‘트위터 킬러’라는 평가가 나온다. 저커버그는 이날 자신의 스레드 계정을 통해 “가입자 증가세가 우리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했다.● 스레드 성공의 ‘일등공신’ 머스크올 1월 스레드가 개발될 때부터 트위터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와 저커버그 간 한판 승부가 벌어질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텍스트 길이가 280자(한국은 140자)로 제한되는 트위터와 유사하게 스레드도 한 게시물당 500자까지 작성할 수 있는 단문 소셜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좋아요’ ‘공유’ 등의 기능도 트위터와 흡사하다. 스레드가 탄생하고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일등공신’은 역설적이게도 트위터 소유주 머스크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CNN 등에 따르면 스레드는 애초부터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후 불만을 느껴 트위터를 떠난 이용자들을 흡수하기 위해 탄생했다. 머스크가 이용자 1인당 게시물 열람 횟수를 제한하는 등 트위터를 유료화하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 과거 차단됐던 극우 인사들의 계정을 풀어주면서 대규모 이용자들과 광고주들이 트위터를 떠났다. 기술적 문제도 빈번해져 접속 장애 같은 오류도 많아졌다. 머스크는 또 지난해 10월 트위터를 인수한 뒤 8000명이던 직원을 대량 해고해 1500명 수준으로 줄였다. 해고자 중 일부가 메타로 옮겨가며 ‘기술의 씨앗’이 된 셈이다. 트위터는 6일 “메타가 트위터 전 직원들을 채용해 스레드 개발에 참여시켰고, 이 직원들은 여전히 트위터 영업 비밀이나 기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며 소송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트위터 안팎에선 메타를 비판할수록 스레드에 대한 시장의 주목도가 높아져 역설적으로 가입자 수만 늘려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머스크 vs 저커버그 신경전 격화머스크는 스레드 출시를 앞두고 주짓수를 하는 저커버그에게 미국 라스베이거스 UFC 경기장에서 ‘옥타곤 결투’를 신청했다. 그러나 양측 간 온라인 설전은 되레 스레드 출시를 홍보해주는 ‘역효과’를 냈다. 머스크는 스레드 출시 직후 트위터를 통해 “스레드는 (메타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뺀 것에 불과하다” “저커버그는 인스타그램 이용자를 스레드 가입자로 둔갑시켰다”며 날을 세웠다. 저커버그 역시 스레드 출시 다음 날인 6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11년 만에 게시물을 올렸다. 똑같은 복장을 한 두 스파이더맨이 마주 보고 서로를 손가락으로 겨냥하는 그림이었다. 외신은 “넌 뭐야”라고 정체를 따지는 밈(meme·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글이나 그림)이라고 전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머스크가 저커버그를 다시 멋지게 보이도록 하고 있다”고 8일 보도했다. 메타는 최근 자사의 대표적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거짓 정보의 온상으로 악용되고 있고 개인정보를 상업화하고 있으며, 청소년들에게 수면장애나 우울증을 유발하는 등 악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하지만 스레드의 성공적 출시로 모처럼 긍정적인 여론이 커지고 있어 이 같은 비판이 희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스레드 가입자 수가 폭증할 경우 당국의 규제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스레드는 유럽연합(EU)에선 거대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남용 등을 막는 ‘디지털 시장법’의 문턱에 걸려 출시가 보류된 상태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 202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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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신광영]지중해 난민선의 소금 눈물

    난민을 실은 밀입국선이 섬에 도착하면 의사인 피에르토 바르톨로(67)는 갑판에 오른다. 살아서 온 사람을 검진하고, 시신으로 도착한 이들은 검시하는 게 그의 일이다. 일터는 이탈리아 최남단의 휴양지 람페두사섬이다. 그가 나고 자란 이곳은 북아프리카 앞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대표적인 환승지다. 바르톨로가 검진하는 난민들의 몸에는 그들이 배에 오르기 전 어떤 지옥들을 경유했는지가 새겨져 있다. 칼로 베인 흉터나 담뱃불로 지진 자국은 어딘가에서 붙잡혀 고문을 받은 흔적이다. 배에서 거친 수술 자국이 목격되기도 한다. 수백만 원의 승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한쪽 신장을 팔아야 했던 사람들이다. 성폭행에 대비해 승선 전 독한 피임주사를 맞는 10대 여성들도 있다. 조기 폐경 등 치명적 부작용을 그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바르톨로는 아이를 데리고 탄 여성들의 엉덩이와 다리에서 심각한 화상을 자주 본다. ‘고무보트 병’이라고 불리는 화학적 화상이다. 인신 밀수업자들은 배가 이탈리아 해안에 가까워지면 단속을 피해 허름한 고무보트에 난민들을 옮겨 태운다. 남자들은 도넛 모양의 테두리에 걸터앉지만 여성들은 아이를 품에 안고 바닥에 앉는다. 숱한 파도를 지나며 기름통에서 새어나온 휘발유가 짠물과 섞여 살인적인 혼합물이 된다. 그게 여성들의 옷을 적시고 살갗을 파고든다. 바르톨로는 몇 년 전 봤던 젊은 시리아 부부의 넋 나간 눈동자를 기억한다. 부부는 배가 뒤집혀 800여 명이 모두 바다에 빠진 날 구조돼 온 사람들이었다. 남편은 바다로 뛰어들기 전 생후 9개월 된 아기를 가슴팍 옷 안에 집어넣었다. 물에선 배영 자세로 몸을 뒤집어 한 손에 아내를, 다른 한 손에 세 살배기 아들을 잡았다. 그 자세로 등헤엄을 치며 구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남자는 녹초가 되어 갔다. 물살도 거세졌다. 탈진하면 네 가족 모두 물에 잠길 상황이었다. 남자가 아들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아들은 천천히 멀어져 갔다고 했다. 그러고 몇 분 뒤 구조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바르톨로에게 “저는 평생 저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와 함께 난민들의 최대 경유지인 그리스 해안에서도 그런 비극이 자주 벌어진다. 13일 그리스 연안을 지나던 밀입국선에는 약 750명이 타고 있었다. 길이 25m의 갑판에 빼곡히 탄 사람들은 큰 파도가 치면 언제든 쏟아질듯 위태로워 보였다. 몇 시간 뒤 이 배가 침몰해 최소 600명이 숨지던 때 인근에는 그리스 해안경비대 구조선이 있었다. 경비대는 침몰 18시간 전에 이 배를 발견하고도 항해 상황을 지켜만 봤다. 경비대는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선원들이 ‘우리는 이탈리아로 간다’며 거절했다”고 했다. 하지만 영국 BBC와 가디언이 전한 생존자 진술과 무전 내용,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항로 추적 결과는 다른 정황을 보여준다. 당시 배는 침몰 전 7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엔진도 고장난 상태였다. 그러다 갑자기 배가 격렬하게 흔들렸고 순식간에 우측으로 기울어 침몰했다. 이 때문에 해안경비대가 침몰에 대비해 안전조치를 취하거나 구조에 적극 나서야 했는데 방관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이번 사건은 난민 밀입국선을 대하는 유럽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난민을 수용할 의사도 여력도 없다 보니 전략적으로 구조를 지연시키며 배가 자국 영해 밖으로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밀어내기’를 하는 것이다. 유럽이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2010년 아랍의 봄, 2016년 시리아 내전 등을 거치며 난민선이 급증하자 유럽은 침몰 위험이 높은 지중해 한복판에서 물러섰다. 그 전에는 ‘국경없는의사회’ 등 난민단체 구조선과도 정보를 공유하며 힘을 합쳤지만 지금은 민간 구조 자체를 불법화했다. 그 대신 난민선이 떠나온 리비아, 튀니지 당국에 배의 위치를 알려 강제송환 시키는 방식으로 난민 관리와 책임을 외주화하고 있다. 그 결과 난민들은 어떻게든 ‘지옥’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죽음의 항해에 몸을 던진다. 사람에겐 안전한 곳에서 살 권리, 더 나은 삶을 찾을 권리가 있지만 난민 신청이 모두 수용되긴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바다에서 목숨이 위태로울 때 적절한 구조를 받는 것은 국제법이 규정한 기본권이다.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생명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톨로가 부두에서 만난 난민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하얬다고 한다. 며칠간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소금기가 들러붙은 탓이다. 이들은 마침내 섬에 닿으면 살았다는 안도감에, 또는 항해 중 잃어버린 가족들이 떠올라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얼굴을 타고 내려오며 하얗게 서린 소금을 녹인다. 바르톨로는 25년의 ‘난민 주치의’ 경험을 책으로 썼는데 그 책 이름이 ‘소금 눈물’이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 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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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의 ‘구조 지연’ 전략에…죽음의 바다 떠도는 난민선

    난민을 실은 밀입국선이 섬에 도착하면 의사인 피에르토 바르톨로(67)는 갑판에 오른다. 살아서 온 사람을 검진하고, 시신으로 도착한 이들은 검시하는 게 그의 일이다. 일터는 이탈리아 최남단의 휴양지 람페두사섬이다. 그가 나고 자란 이곳은 북아프리카 앞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대표적인 환승지다. 바르톨로가 검진하는 난민들의 몸에는 그들이 배에 오르기 전 어떤 지옥들을 경유했는지가 새겨져 있다. 칼로 베인 흉터나 담뱃불로 지진 자국은 어딘가에서 붙잡혀 고문을 받은 흔적이다. 배 부위에 거친 수술 자국이 목격되기도 한다. 수백만 원의 승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한쪽 신장을 팔아야 했던 사람들이다. 성폭행에 대비해 승선 전 독한 피임주사를 맞는 10대 여성들도 있다. 조기 폐경 등 치명적 부작용을 그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바르톨로는 아이를 데리고 탄 여성들의 엉덩이와 다리에서 심각한 화상을 자주 본다. ‘고무보트 병’이라고 불리는 화학적 화상이다. 인신 밀수업자들은 배가 이탈리아 해안에 가까워지면 단속을 피해 허름한 고무보트에 난민들을 옮겨 태운다. 남자들은 도넛 모양의 테두리에 걸터앉지만 여성들은 아이를 품에 안고 바닥에 앉는다. 숱한 파도를 지나며 기름통에서 새어나온 휘발유가 짠물과 섞여 살인적인 혼합물이 된다. 그게 여성들의 옷을 적시고 살갗을 파고든다. 바르톨로는 몇 년 전 봤던 젊은 시리아 부부의 넋 나간 눈동자를 기억한다. 부부는 배가 뒤집혀 800여 명이 모두 바다에 빠진 날 구조돼 온 사람들이었다. 남편은 바다로 뛰어들기 전 생후 9개월 된 아기를 가슴팍 옷 안에 집어넣었다. 물에선 배영 자세로 몸을 뒤집어 한 손에 아내를, 다른 한 손에 세 살배기 아들을 잡았다. 그 자세로 등헤엄을 치며 구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남자는 녹초가 되어 갔다. 물살도 거세졌다. 탈진하면 네 가족 모두 물에 잠길 상황이었다. 남자가 아들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아들은 천천히 멀어져 갔다고 했다. 그러고 몇 분 뒤 구조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바르톨로에게 “저는 평생 저를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와 함께 난민들의 최대 경유지인 그리스 해안에서도 그런 비극이 자주 벌어진다. 13일 그리스 연안을 지나던 밀입국선에는 약 750명이 타고 있었다. 길이 25m의 배에 빼곡히 탄 사람들은 큰 파도가 치면 언제든 밖으로 쏟아질듯 위태로워 보였다. 몇 시간 뒤 이 배가 침몰해 최소 600명이 숨지던 때 인근에는 그리스 해안경비대 구조선이 있었다. 경비대는 침몰 18시간 전에 이 배를 발견하고도 항해 상황을 지켜만 봤다. 경비대는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선원들이 ‘우리는 이탈리아로 간다(No help, Go Italy)’며 거절했다”고 했다. 하지만 영국 BBC와 가디언이 전한 생존자 진술과 무전 내용,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항로 추적 결과는 다른 정황을 보여준다. 당시 배는 침몰 전 7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엔진도 고장 난 상태였다. 그러다 갑자기 배가 격렬하게 흔들렸고 순식간에 우측으로 기울어 침몰했다. 이 때문에 해안경비대가 침몰에 대비해 안전조치를 취하거나 구조에 적극 나서야 했는데 방관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이번 사건은 난민 밀입국선을 대하는 유럽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난민을 수용할 의사도, 여력도 없다 보니 전략적으로 구조를 지연시키며 배가 자국 영해 밖으로 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밀어내기’를 하는 것이다. 유럽이 원래 이랬던 것은 아니다. 2010년 아랍의 봄, 2016년 시리아 내전 등을 거치며 난민선이 급증하자 유럽은 침몰 위험이 높은 지중해 한복판에서 물러섰다. 그 전에는 ‘국경없는의사회’ 등 난민단체 구조선과도 정보를 공유하며 힘을 합쳤지만 지금은 민간 구조 자체를 불법화했다. 그 대신 난민선이 떠나온 리비아, 튀니지 당국에 배의 위치를 알려 강제송환 시키는 방식으로 난민 관리와 책임을 외주화하고 있다. 그 결과 난민들은 어떻게든 ‘지옥’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죽음의 항해에 몸을 던진다. 사람에겐 안전한 곳에서 살 권리, 더 나은 삶을 찾을 권리가 있지만 난민 신청이 모두 수용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바다에서 목숨이 위태로울 때 적절한 구조를 받는 것은 국제법이 규정한 기본권이다. 쫓겨날 때 쫓겨나더라도 생명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르톨로가 부두에서 만난 난민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하얬다고 한다. 며칠간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소금기가 들러붙은 탓이다. 이들은 마침내 섬에 닿고 나면 살았다는 안도감에, 또는 항해 중 잃어버린 가족들이 떠올라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얼굴을 타고 내려오며 하얗게 서린 소금을 녹인다. 바르톨로는 25년간의 ‘난민 주치의’ 경험을 책으로 썼는데 그 책 이름이 ‘소금 눈물’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3-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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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신광영]영국이 실세 장관의 ‘과속스캔들’을 다루는 방식

    수엘라 브래버먼(43)은 속도위반을 한 검찰총장이었다. 지난해 6월 과속 통지서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그는 영국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2년 전 발탁한 인도계 여성 검찰 수장이었다. 과속으로 걸린 영국인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단체 안전운전교육을 받거나, 벌점 3점과 함께 범칙금을 내야 한다. 벌점이 12점까지 누적되면 운전이 금지된다. 브래버먼은 안전교육을 받기로 했다.석 달 뒤 브래버먼은 새로 출범한 리즈 트러스 내각의 내무장관에 임명됐다. 치안과 이민정책을 총괄하는 중책이었다. 그는 보수당 내 강경 보수의 아이콘이었다.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하고 불법 이민자를 르완다로 사실상 추방하는 새 이민정책에 앞장섰다.브래버먼은 장관에 취임하자 비서실에 안전운전교육을 강사에게 일대일로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통상 20여 명이 모이는 단체 교육에 갔다간 정체가 탄로 날 게 뻔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갓 취임한 장관의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장관이 사적인 문제 해결에 공무원을 동원하면 장관은 물론이고 해당 공무원도 처벌받는다는 윤리담당 부서의 판단을 제시했다.브래버먼은 멈추지 않았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장관 보좌관을 시켜 안전교육 담당업체에 일대일 교육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업체 측은 온라인 수강도 가능하지만 ‘집체 교육’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보좌관은 화면에 얼굴이 보이지 않게 하거나 가명이라도 쓰게 해 달라고 했지만 이 역시 거부됐다. 과속 운전자들이 서로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수치심을 느끼는 것도 경각심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과속 딱지’ 해결이 난관에 부닥친 가운데 브래버먼에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이민정책 관련 기밀을 개인 이메일로 보수당 의원에게 보낸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기밀 유출 논란이 일자 그는 트러스 내각이 44일 만에 무너지기 하루 전 장관에서 사퇴했다. 흠집이 나긴 했지만 브래버먼은 여전히 보수당 내 유력 주자였다. 뒤이어 집권한 리시 수낵 총리는 사퇴한 지 6일 된 그를 다시 내무장관에 기용했다.장관실로 돌아온 브래버먼은 넉 달 넘게 끌어온 과속 문제를 마침내 매듭지었다. 안전교육을 포기하고 ‘벌점+범칙금’을 택했다. 이때만 해도 6개월 뒤 찾아올 ‘과속 스캔들’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수낵 총리는 21일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미간을 찌푸리며 기자들에게 물었다. “G7 회담에 대한 질문은 없나요?”외교 성과를 알려야 할 이날 회견에서 영국 기자들은 온통 브래버먼 장관 거취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그날 영국에선 브래버먼이 과속 사실을 숨기려 장관 지위를 이용해 공무원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한 의혹이 폭로됐다. ‘장관이 사적 목적을 위해 공적인 지위를 이용하거나 그렇게 보일 만한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장관 윤리강령(Ministerial code) 위반이므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다.게다가 영국은 교통 법규를 어긴 고위층에게 예외를 허용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최근 찰스 3세 국왕 대관식을 집전한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캔터베리 대주교는 시속 32㎞ 구간을 40㎞로 달리다 과속으로 적발됐는데 범칙금 납부를 미루다 최근 85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수낵 총리 역시 운전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15만원 범칙금을 낸 적이 있다.한 실세 장관의 ‘과속 딱지’로 시작된 파문은 이제 어느덧 수낵 총리를 국정운영의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가 진상조사를 지시해야 할지를 두고 노동당과 보수당은 찬반으로 팽팽히 맞섰다. 국민은 당에 투표하고,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영국에선 당내 입지가 탄탄한 핵심 참모가 총리에게 등을 돌리면 정권이 흔들린 사례가 많다.수낵 본인이 당사자였다. ‘파티 게이트’로 위태롭던 존슨 내각이 무너진 것은 수낵이 재무장관직을 내던진 게 결정타였다. 트러스 내각 붕괴 땐 브래버먼의 내무장관 사퇴가 시발탄이었다. 브래버먼은 수낵의 주요 공약인 ‘불법 이민자 제한’을 밀어붙일 핵심 참모이자 당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거물이었다.수낵은 브래버먼을 내치지 못했다. 24일 총리실 홈페이지에는 그가 브래버먼 장관에게 쓴 편지가 공개됐다. “당신의 해명 등을 검토한 결과 더 이상의 조사는 필요하지 않다는 윤리고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장관 윤리강령에 위반될 정도는 아니라는 게 나의 결정”이라고 했다. 앞서 내무부도 브래버먼이 수낵에게 관련 경위를 상세히 적은, 반성문 같은 편지를 공개했다.수낵 총리의 면죄부 결정에 “나약하고 비겁하다”는 비판이 나오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논란은 잦아들고 있다. 수낵의 결정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고려한 것일 테지만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의혹 당사자가 구체적으로 해명하고 인사권자가 결정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내면 최소한 책임 소재가 분명해져 추후 정치적으로 평가하고 심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생길 때면 소모적인 정쟁 끝에 기어이 수사와 재판으로 가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문제 해결 방식이다.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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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이 실세 장관의 ‘과속 스캔들’을 다루는 방식

    수엘라 브래버먼(43)은 속도위반을 한 검찰총장이었다. 지난해 6월 과속 통지서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그는 영국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2년 전 발탁한 인도계 여성 검찰 수장이었다. 과속으로 걸린 영국인에겐 두 가지 길이 있다. 단체 안전운전교육을 받거나, 벌점 3점과 함께 범칙금을 내야 한다. 벌점이 12점까지 누적되면 운전이 금지된다. 브래버먼은 안전교육을 받기로 했다.석 달 뒤 브래버먼은 새로 출범한 리즈 트러스 내각의 내무장관에 임명됐다. 치안과 이민정책을 총괄하는 중책이었다. 그는 보수당 내 강경 보수의 아이콘이었다. 엄정한 법집행을 강조하고 불법 이민자를 르완다로 사실상 추방하는 새 이민정책에 앞장섰다.브래버먼은 장관에 취임하자 비서실에 안전운전교육을 강사에게 일대일로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통상 20여 명이 모이는 단체 교육에 갔다간 정체가 탄로 날 게 뻔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갓 취임한 장관의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장관이 사적인 문제 해결에 공무원을 동원하면 장관은 물론이고 해당 공무원도 처벌받는다는 윤리담당 부서의 판단을 제시했다.브래버먼은 멈추지 않았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장관 보좌관을 시켜 안전교육 담당업체에 일대일 교육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업체 측은 온라인 수강도 가능하지만 ‘집체 교육’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보좌관은 화면에 얼굴이 보이지 않게 하거나 가명이라도 쓰게 해 달라고 했지만 이 역시 거부됐다. 과속 운전자들이 서로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수치심을 느끼는 것도 경각심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과속 딱지’ 해결이 난관에 부닥친 가운데 브래버먼에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이민정책 관련 기밀을 개인 이메일로 보수당 의원에게 보낸 사실이 들통난 것이다. 기밀 유출 논란이 일자 그는 트러스 내각이 44일 만에 무너지기 하루 전 장관에서 사퇴했다. 흠집이 나긴 했지만 브래버먼은 여전히 보수당 내 유력 주자였다. 뒤이어 집권한 리시 수낵 총리는 사퇴한 지 6일 된 그를 다시 내무장관에 기용했다. 장관실로 돌아온 브래버먼은 넉 달 넘게 끌어온 과속 문제를 마침내 매듭지었다. 안전교육을 포기하고 ‘벌점+범칙금’을 택했다. 이때만 해도 6개월 뒤 찾아올 ‘과속 스캔들’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수낵 총리는 21일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미간을 찌푸리며 기자들에게 물었다. “G7 회담에 대한 질문은 없나요?” 외교 성과를 알려야 할 이날 회견에서 영국 기자들은 온통 브래버먼 장관 거취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그날 영국에선 브래버먼이 과속 사실을 숨기려 장관 지위를 이용해 공무원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한 의혹이 폭로됐다. ‘장관이 사적 목적을 위해 공적인 지위를 이용하거나 그렇게 보일 만한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장관 윤리강령(Ministerial code) 위반이므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었다.게다가 영국은 교통 법규를 어긴 고위층에게 예외를 허용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최근 찰스 3세 국왕 대관식을 집전한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캔터베리 대주교는 시속 32㎞ 구간을 40㎞로 달리다 과속으로 적발됐는데 범칙금 납부를 미루다 최근 85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수낵 총리 역시 운전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15만원 범칙금을 낸 적이 있다.한 실세 장관의 ‘과속 딱지’로 시작된 파문은 이제 어느덧 수낵 총리를 국정운영의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그가 진상조사를 지시해야 할지를 두고 노동당과 보수당은 찬반으로 팽팽히 맞섰다. 국민은 당에 투표하고,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되는 영국에선 당내 입지가 탄탄한 핵심 참모가 총리에게 등을 돌리면 정권이 흔들린 사례가 많다. 수낵 본인이 당사자였다. ‘파티 게이트’로 위태롭던 존슨 내각이 무너진 것은 수낵이 재무장관직을 내던진 게 결정타였다. 트러스 내각 붕괴 땐 브래버먼의 내무장관 사퇴가 시발탄이었다. 브래버먼은 수낵의 주요 공약인 ‘불법 이민자 제한’을 밀어붙일 핵심 참모이자 당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거물이었다.수낵은 브래버먼을 내치지 못했다. 24일 총리실 홈페이지에는 그가 브래버먼 장관에게 쓴 편지가 공개됐다. “당신의 해명 등을 검토한 결과 더 이상의 조사는 필요하지 않다는 윤리고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장관 윤리강령에 위반될 정도는 아니라는 게 나의 결정”이라고 했다. 앞서 내무부도 브래버먼이 수낵에게 관련 경위를 상세히 적은, 반성문 같은 편지를 공개했다.수낵 총리의 면죄부 결정에 “나약하고 비겁하다”는 비판이 나오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논란은 잦아들고 있다. 수낵의 결정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고려한 것일 테지만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의혹 당사자가 구체적으로 해명하고 인사권자가 결정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내면 최소한 책임 소재가 분명해져 추후 정치적으로 평가하고 심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생길 때면 소모적인 정쟁 끝에 기어이 수사와 재판으로 가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문제 해결 방식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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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신저 “中에 적대 지속땐 美中 군사충돌 위험… 日, 대량살상무기 이르면 3년후 자체 개발할 것”

    “중국이 (압박을 통해) 변화할 것이라거나 약화될 것으로 보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에 대한 무분별한 적대적인 태도가 지속되면 미중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100세 생일(27일)을 맞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사진)은 26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중국을 적으로 규정하고 양보를 강요한다는 면에서 대중(對中) 정책이 다르지 않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중국을 적으로 보지 않느냐’는 질문에 “중국이 가진 영향력을 볼 때 잠재적인 적국”이라면서도 “미중 리더들이 대화를 통한 해결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미소 간 긴장 완화를 위해 데탕트 정책을 주도했다. 미중 군사 충돌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는 대만 문제에 대해선 “공해상 자유의 원칙 등을 통해 해결해야지 중국을 위협하거나 시진핑 주석을 향해 (예를 들어) ‘10개 부문에 진전을 보이면 보상을 하겠다’는 식의 외교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중국에 대해 “중국 문화를 전 세계에 퍼뜨리길 원하진 않는 것 같다. 중국은 (세계가 아닌) 아시아의 지배 세력이 되길 원하고 있다”며 “일본이 이에 대응해 대량살상무기를 자체 개발할 것이며, 이런 상황까지는 짧게는 3년, 길게는 7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선 “바이든 행정부가 많은 것을 해냈다. 유럽 동맹국들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낸 것은 중요한 승리”라고 호평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시켜야 한다는 제안은 전쟁을 야기할 수 있는 엄청난 실수였던 게 맞지만 지금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종전 조건으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제외하고 점령 중인 모든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돌려줘야 한다고 했다. 한편 지난달 23일 부임한 셰펑 신임 주미 중국대사는 26일 키신저 전 장관의 자택을 방문해 100세 생일을 축하하는 중국 정부의 메시지를 전달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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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셀카 찍다 빠뜨린 폰 건지려 저수지 물 210만 L 빼

    인도 중부의 한 지자체 식품담당 공무원인 라제시 비슈와스는 이달 21일 지역 내 저수지에서 셀카를 찍다가 휴대전화를 물에 빠뜨렸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으로 알려진 그의 전화기는 인도에서 10만 루피(약 160만 원)에 거래되는 고가품이었다. 저수지 수심은 4.6m에 달했다. 비슈와스는 곧바로 잠수부들을 수소문해 저수지에 투입했다. 하지만 휴대전화를 찾는 데 실패하자 30마력짜리 디젤 펌프 2개를 동원해 저수지 물을 빼기 시작했다. 이 물 빼기 작업은 3일 동안 이어졌다. 저수지 담당 공무원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해서야 중단됐다. 영국 BBC와 현지 매체에 따르면 물 수위는 1.8m 수준으로 낮아져 있었다. 그사이 흘러가 버린 물은 약 210만 L. 약 6㎢의 농지에 관개용수를 댈 수 있는 엄청난 양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인도에서 공무원 권한 남용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야당인 인도국민당(BJP)은 “주민들이 여름 폭염에 대비하려면 저수지 급수에 의존해야 하는데 공무원이 관개용수로 사용될 수 있는 물을 빼버렸다”고 비판했다. 비슈와스는 “휴대전화에 민감한 정부 자료가 있어 되찾아야 했다. 담당 공무원에게서 물을 빼내도 된다는 구두 허가를 받았다”고 해명했지만 지역당국은 그를 정직 처분한 뒤 조사에 착수했다. 비슈와스는 휴대전화를 찾는 데는 결국 성공했다. 하지만 3일 넘게 물에 잠긴 탓에 작동은 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는 가뭄에 시달리는 지역이 많아 일부 주민들이 밧줄을 타고 우물 안으로 내려가 물을 길어야 할 정도로 고질적인 물 부족 국가다. 게다가 올 4월 일부 지역의 기온이 44도를 넘어설 정도로 때 이른 폭염도 심각한 상태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3-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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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신광영]‘일단 총을 쏴라. 누군지는 나중에 묻고’

    #. 목요일(4월 13일) 오후 9시 50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외곽에 사는 앤드루 레스터(84)는 초인종 소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날 밤 오기로 한 손님은 없었다. 부인이 요양원에 간 뒤 혼자 살아온 그에겐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의 집 현관문은 미국식 주택이 그렇듯 안쪽 문과 바깥문이 겹겹이 있는 이중 구조였다. 레스터는 안쪽 문을 열었다. 바깥문 유리창 너머로 낯선 흑인이 보였다. 레스터는 손에 쥔 리볼버 권총을 들어 올렸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몇 초간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총알은 유리창을 뚫고 나가 흑인의 이마를 스치듯 맞혔다. 레스터는 쓰러져 있는 그의 팔에 한 발을 더 쐈다. “당장 여기서 꺼져.” 몇 분 뒤 인근 주민 잭 도벨은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911에 신고했다. 911 요원은 “탈주범일 수 있으니 집에 있으라”고 했지만 창문 밖을 본 도벨은 나가볼 수밖에 없었다. 흑인 소년이 피를 흘리며 기도하듯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랠프 얄(16)이었다. 부모 심부름으로 친구 집에 놀러 간 쌍둥이 동생들을 데리러 나선 길이었다. 주소지 ‘115번 테라스(115th Terrace)’를 찾다가 한 블록 옆인 ‘115번 스트리트(115th Street)’로 가고 말았다. 유리창을 뚫고 나온 총알은 백인 노인이 사는 집 초인종을 잘못 누른 대가였다.#. 토요일(15일) 오후 9시 55분 여대생 케일린 길리스(20)는 친구 3명과 차를 타고 뉴욕주 교외의 울창한 숲길을 지나고 있었다. 고교 동창 파티에 가는 길이었다. 외진 곳이라 인터넷 신호가 불안정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은 먹통이었다. 길섶에 ‘사유지’ 간판이 있었지만 가로등이라곤 없는 밤길이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한 친구가 “길을 잘못 든 것 같다”고 했다. 그때였다. 엽총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총탄이 차 유리창을 관통했다. 운전하던 친구는 황급히 차를 돌려 가속페달을 밟았다. 911에 신고하기 위해 통신 신호가 잡히는 곳까지 8km를 내달렸다. 위치를 파악하려 멈춰 섰을 때 조수석에 있던 길리스는 피를 흘리며 숨져 있었다. 총을 쏜 60대 남성은 16만 ㎡의 거대한 사유지를 소유한 건설업자였다. 그는 경찰에 “무단침입자를 쫓아낸 것”이라고 했다.#. 화요일(18일) 0시 15분 텍사스주 오스틴의 고교 치어리더인 헤더 로스(18)는 나흘 뒤 치어리딩 대회를 앞두고 친구들과 연습을 하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슈퍼마켓 주차장에 차를 대고 음료를 사서 친구들이 탄 차를 찾아가다가 실수로 같은 차종의 다른 차에 타고 말았다. 로스는 낯선 남성이 타 있는 걸 보고는 재빨리 내려 친구들 차로 옮겨 탔다. 로스는 방금 전 잘못 탔던 차에서 20대 남성이 내려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사과를 하려고 차창을 내리는데 남자가 열린 창틈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로스가 한 발을 맞았고 옆에 있던 친구는 등과 다리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다. 미국의 총기 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일상의 흔한 실수가 연이어 총격 사건으로 번지자 미국인들도 충격에 빠졌다. ‘치어리더 사건’ 몇 시간 뒤 노스캐롤라이나에선 공놀이를 하다 다른 집 마당으로 공이 굴러가자 부모와 함께 주우러 간 6세 여아를 향해 집주인이 총을 쐈다. 부모 둘 다 중상을 입었다. 어떻게 이런 일로 사람에게 총을 쏘는 것일까. 미국에는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이란 관습법이 있다. 집은 주인의 성(城)이며, 성 안에 침입자가 있으면 무력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 이 관습법에 따르면 무력이 반드시 최후의 방어수단일 필요는 없다.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합리적인 두려움’이 들었다면 정당방위로 인정된다. 이 같은 자위권을 집뿐 아니라 차량 등 개인 소유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당신의 사유지에서 물러서지 말라)’ 법이다. ‘초인종 사건’이 발생한 미주리주 등 30여 개 주가 이 법을 두고 있다. ‘내 공간에선 쏴도 된다’는 인식이 싹틀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흑인 소년을 쐈던 레스터는 “당시 죽을 만큼 무서웠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 법의 보호를 받게 될 수도 있다. 미국의 총기 옹호론자들은 총은 총으로만 막을 수 있다는 ‘공포의 균형’을 강조한다. 하지만 누구나 총을 쏠 수 있다는 공포는 과도한 불안감을 부르고, 이는 과잉 대응으로 이어지며, 급기야 과잉 대응의 희생양이 될까 봐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초인종을 잘못 누르거나 운전 중 길을 잘못 드는 사소한 실수에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미국의 현주소는 총기로 꽁꽁 무장한 국가의 구멍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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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단 총을 쏴라 누군지는 나중에 묻고’…총기 무장국가의 구멍

    #. 목요일(4월 13일) 오후 9시 50분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외곽에 사는 앤드루 레스터(84)는 초인종 소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날 밤 오기로 한 손님은 없었다. 부인이 요양원에 간 뒤 혼자 살아온 그에겐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의 집 현관문은 미국식 주택이 그렇듯 안쪽 문과 바깥문이 겹겹이 있는 이중 구조였다. 레스터는 안쪽 문을 열었다. 바깥문 유리창 너머로 낯선 흑인이 보였다. 레스터는 손에 쥔 리볼버 권총을 들어 올렸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몇 초간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총알은 유리창을 뚫고 나가 흑인의 이마를 스치듯 맞혔다. 레스터는 쓰러져 있는 그의 팔에 한 발을 더 쐈다. “당장 여기서 꺼져.” 몇 분 뒤 인근 주민 잭 도벨은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911에 신고했다. 911 요원은 “탈주범일 수 있으니 집에 있으라”고 했지만 창문 밖을 본 도벨은 나가볼 수밖에 없었다. 흑인 소년이 피를 흘리며 기도하듯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랠프 얄(16)이었다. 부모 심부름으로 친구 집에 놀러 간 쌍둥이 동생들을 데리러 나선 길이었다. 주소지 ‘115번 테라스(115th Terrace)’를 찾다가 한 블록 옆인 ‘115번 스트리트(115th Street)’로 가고 말았다. 유리창을 뚫고 나온 총알은 백인 노인이 사는 집 초인종을 잘못 누른 대가였다.#. 토요일(15일) 오후 9시 55분 여대생 케일린 길리스(20)는 친구 3명과 차를 타고 뉴욕주 교외의 울창한 숲길을 지나고 있었다. 고교 동창 파티에 가는 길이었다. 외진 곳이라 인터넷 신호가 불안정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은 먹통이었다. 길섶에 ‘사유지’ 간판이 있었지만 가로등이라곤 없는 밤길이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한 친구가 “길을 잘못 든 것 같다”고 했다. 그때였다. 엽총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총탄이 차 유리창을 관통했다. 운전하던 친구는 황급히 차를 돌려 가속페달을 밟았다. 911에 신고하기 위해 통신 신호가 잡히는 곳까지 8km를 내달렸다. 위치를 파악하려 멈춰 섰을 때 조수석에 있던 길리스는 피를 흘리며 숨져 있었다. 총을 쏜 60대 남성은 16만 ㎡의 거대한 사유지를 소유한 건설업자였다. 그는 경찰에 “무단침입자를 쫓아낸 것”이라고 했다.#. 화요일(18일) 0시 15분 텍사스주 오스틴의 고교 치어리더인 헤더 로스(18)는 나흘 뒤 치어리딩 대회를 앞두고 친구들과 연습을 하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슈퍼마켓 주차장에 차를 대고 음료를 사서 친구들이 탄 차를 찾아가다가 실수로 같은 차종의 다른 차에 타고 말았다. 로스는 낯선 남성이 타 있는 걸 보고는 재빨리 내려 친구들 차로 옮겨 탔다. 로스는 방금 전 잘못 탔던 차에서 20대 남성이 내려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사과를 하려고 차창을 내리는데 남자는 열린 창틈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로스가 한 발을 맞았고 옆에 있던 친구는 등과 다리에 맞아 치명상을 입었다. 미국의 총기 사고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일상의 흔한 실수가 연이어 총격 사건으로 번지자 미국인들도 충격에 빠졌다. ‘치어리더 사건’ 몇 시간 뒤 노스캐롤라이나에선 공놀이를 하다 다른 집 마당으로 공이 굴러가자 부모와 함께 주우러 간 6세 여아를 향해 집주인이 총을 쐈다. 부모 둘 다 중상을 입었다. 어떻게 이런 일로 사람에게 총을 쏘는 것일까. 미국에는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이란 관습법이 있다. 집은 주인의 성(城)이며, 성 안에 침입자가 있으면 무력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 이 관습법에 따르면 무력이 반드시 최후의 방어수단일 필요는 없다.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합리적인 두려움’이 들었다면 정당방위로 인정된다. 이 같은 자위권을 집뿐 아니라 차량 등 개인 소유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Stand Your Ground·당신의 사유지에서 물러서지 말라)’ 법이다. ‘초인종 사건’이 발생한 미주리주 등 30여 개 주가 이 법을 두고 있다. ‘내 공간에선 쏴도 된다’는 인식이 싹틀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흑인 소년을 쐈던 레스터는 “당시 죽을 만큼 무서웠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 법의 보호를 받게 될 수도 있다. 미국의 총기 옹호론자들은 총은 총으로만 막을 수 있다는 ‘공포의 균형’을 강조한다. 하지만 누구나 총을 쏠 수 있다는 공포는 과도한 불안감을 부르고, 이는 과잉 대응으로 이어지며, 급기야 과잉 대응의 희생양이 될까 봐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초인종을 잘못 누르거나 운전 중 길을 잘못 드는 사소한 실수에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미국의 현주소는 총기로 꽁꽁 무장한 국가의 구멍을 여실히 보여준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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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인종 잘못 눌렀다가… 백인 집주인 총에 맞은 美 흑인 소년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제가 총에 맞았어요.” 13일 밤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주택에 사는 제임스 린치(42)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어디선가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조용한 동네여서 밤에 소리가 들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누군가 땅에 쓰러진 채 이웃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온 린치는 마당과 울타리를 지나 이웃집 앞으로 향했다. 린치는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그곳엔 피투성이가 된 흑인 소년(16)이 쓰러져 있었다. 머리와 팔에 총을 맞은 상태였다. 소년의 손목에선 아직 맥박이 뛰고 있었다. 린치는 소년의 손을 잡으며 이름을 물었다. 소년은 뭔가 말하려 했으나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소년은 조금 전 부모 심부름으로 집을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부모는 소년에게 주소가 ‘115번 테라스’인 집으로 가서 열한 살 쌍둥이 동생들을 데려오라고 했다. 소년은 어둑한 골목에서 그곳을 찾다가 주소를 잘못 보고 ‘115번 스트리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잘못 누른 대가는 참혹했다. 집주인인 앤드루 레스터는 84세의 백인 남성이었다. 그는 집 앞에 있는 흑인 소년을 향해 총을 쐈다. 그의 32구경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유리문을 뚫고 소년의 머리에 맞았다. 레스터는 쓰러진 소년에게 다가가 팔에 또다시 총을 쏜 것으로 조사됐다. 린치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레스터를 곧바로 체포했다. 하지만 24시간 동안 구금됐다가 주법에 따른 ‘기소 전 구금 가능 시간’이 지나 풀려났다. 이에 주민 수백 명이 레스터 집 앞으로 몰려와 항의 시위를 하는 등 거센 비판이 일었다. 결국 경찰은 17일 중범죄 혐의로 레스터를 기소했다. 소년의 이름은 랠프 얄(사진)이다. 부모는 라이베이라 이민자이고, 학교에서 비디오 게임과 운동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한 소년이다. 얄은 심각한 뇌손상을 입긴 했지만 응급 수술을 받아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다. 경찰은 “얄이 레스터의 집 문턱을 넘지 않았고, 총격이 이뤄지기 전 어떠한 말도 오간 흔적이 없다”며 “이번 사건이 인종 관련 동기로 발생했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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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인종 잘못 눌렀을뿐인데…흑인 소년에 총 쏜 美백인 집주인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제가 총에 맞았어요.” 13일(현지 시간) 밤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주택에 사는 제임스 린치(42)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려는 순간 어디선가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조용한 동네여서 밤에 소리가 들리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누군가 땅에 쓰러진 채 이웃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온 린치는 마당과 울타리를 지나 이웃집 앞으로 향했다. 린치는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그곳엔 피투성이가 된 한 흑인 소년(16)이 쓰러져있었다. 머리와 팔에 총을 맞은 상태였다. 소년의 손목에선 아직 맥박이 뛰고 있었다. 린치는 소년의 손을 잡으며 이름을 물었다. 소년은 뭔가 말하려 했으나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소년은 조금 전 부모 심부름으로 집 밖을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부모는 소년에게 주소가 ‘115번 테라스’인 집으로 가서 11살짜리 쌍둥이 동생들을 데려 오라고 했다. 소년은 어둑한 골목에서 그 곳을 찾다가 주소를 잘못 보고 ‘115번 스트리트’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잘못 누른 대가는 참혹했다. 집주인인 앤드류 레스터는 84세의 백인 남성이었다. 그는 집 앞에 있는 흑인 소년을 향해 총을 쐈다. 그의 32구경 권총에서 발사된 총알은 유리문을 뚫고 소년의 머리에 맞았다. 레스터는 쓰러진 소년에게 다가가 팔에 또 다시 쏜 것으로 조사됐다. 린치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레스터를 곧바로 체포했다. 하지만 24시간 동안 구금됐다가 주법에 따른 ‘기소 전 구금 가능 시간’이 지나 풀려났다. 이에 주민 수백 명이 레스터 집 앞으로 몰려와 항의 시위를 하는 등 거센 비판이 일었다. 결국 경찰은 17일 중범죄 혐의로 레스터를 기소했다. 소년의 이름은 랠프 얄이다. 라이베이라 이민자 부모를 두고 있고, 학교에서 비디오 게임과 운동을 잘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얄은 심각한 뇌손상을 입긴 했지만 응급 수술을 받아 생명에 지장이 없는 상태다. 경찰은 “얄이 레스터의 집 문턱을 넘지 않았고, 총격이 이뤄지기 전 어떠한 말도 오간 흔적이 없다”며 “이번 사건이 인종 관련 동기로 발생했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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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신광영]참 다른 미국 유대인, 이스라엘 유대인

    영화 ‘블랙 스완’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내털리 포트먼(42)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3세 때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포트먼은 2018년 유대인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제네시스 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스라엘이 전 세계 유대인 중 빼어난 업적을 세운 한 명을 골라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루스 긴즈버그 대법관 등이 받았었고 상금도 100만 달러나 된다. 하지만 포트먼은 그해 4월 시상식에 불참하며 이렇게 밝혔다.“이스라엘은 정확히 70년 전 홀로코스트 난민들의 피난처로 세워졌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이는 유대인의 가치와 어긋난다. 나는 이스라엘을 아끼기 때문에 폭력, 불평등, 권력 남용에 저항하려 한다.” 당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에워싼 ‘분리장벽’ 앞에서 시위하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실탄으로 진압해 37명이 숨지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꼬집은 것이다. 포트먼의 수상 거부는 필자에겐 미국 내 유대인과 이스라엘 유대인 간 차이에 주목하게 한 사건이었다. 유대인 하면 나치 대학살의 피해자란 이미지가 강했는데 어느덧 팔레스타인은 물론, 종교적·인종적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가해자로 변해버린 이스라엘을 보며 괴리감을 느껴오던 차에 유대인들 내에서도 간극이 크다는 걸 일깨워줬다. 미국의 유대인은 약 600만 명이다. 이스라엘 내 유대인 700만 명(전체 인구 970만 명)과 맞먹는 규모다. 두 집단의 차이는 도널드 트럼프(공화당)와 조 바이든(민주당)이 맞붙은 2020년 대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 미국 내 유대인의 75%가 바이든을 지지했다. 트럼프 지지는 22%에 그쳤다. 비슷한 시기 이스라엘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스라엘 국민의 63%는 트럼프를 지지했고, 바이든 지지는 고작 19%였다. 트럼프가 2018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던 미 대사관을 팔레스타인과 분쟁 지역인 예루살렘으로 전격 이전해 이스라엘 편을 들어줬을 때도 미국 유대인들은 “국제법 위반이고, 아랍을 자극해 반유대주의 증오범죄를 부추길 것”이라며 반대했다. 2021년 5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에 이스라엘이 대대적인 보복을 해 팔레스타인 주민 3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미국에선 이스라엘의 과도한 보복을 규탄하는 여론이 거셌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본 뜬 ‘팔레스타인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운동이 확산되자 미국 내 유대인들이 대거 동참했다. 이에 이스라엘 극우파들은 “미국에 살면서 테러 위협도 안 받고, 군 복무도 안 하면서 한가한 소리를 한다”고 비아냥댔다.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유대인들은 고난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네버 어게인(Never Again)’ 정서를 공유했다. 하지만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이후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이 강력한 공감대는 완전히 다르게 발현됐다.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소수자의 정체성을 간직하며 인권 평등 같은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집단으로 진화했다면, 아랍 국가들 틈에서 영토를 확보하려 전쟁을 불사했던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민족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짙어졌다. 이스라엘에서도 1993년 팔레스타인과 상호 존재를 인정하는 ‘오슬로 협정’을 맺는 등 평화 노력이 있었지만 협정을 주도한 총리가 극우세력에 암살당하고 강평파가 집권한 이후 우경화가 이어져 왔다. 유대인들 간의 이런 차이에도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는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극우인 베냐민 네탸나후 정권이 최근 ‘사법부 무력화’ 작업을 강행하자 양국 간에도 균열이 커지고 있다. 바이든이 “매우 우려스럽다. 그들은 이 길로 계속 나아갈 수는 없다”고 하자 네타냐후는 “우리는 외국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는 주권국가”라며 맞서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이스라엘은 정부와 의회가 사실상 한 몸이어서 법안이나 정책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사법부가 견제 기능을 맡아 왔다. 초정통파 유대교의 기득권이 여전히 공고하고 아랍과의 잦은 충돌로 극우 정당이 언제든 득세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사법부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말 집권 직후부터 아랍을 도발하는 극우 행보를 펴온 네타냐후 정권이 사법부의 힘을 빼겠다는 것은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등 팔레스타인을 향한 적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자국 내 민주세력을 위축시키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요즘 이스라엘에선 5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와 ‘민주주의 수호’를 외친다. 삼권분립을 흔드는 네타냐후의 개악 시도를 어떻게든 저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유대인과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이제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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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다른 미국 유대인, 이스라엘 유대인

    영화 ‘블랙 스완’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내털리 포트먼(42)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3세 때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포트먼은 2018년 유대인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제네시스 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스라엘이 전 세계 유대인 중 빼어난 업적을 세운 한 명을 골라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루스 긴즈버그 대법관 등이 받았었고 상금도 100만 달러나 된다. 하지만 포트먼은 그해 4월 시상식에 불참하며 이렇게 밝혔다.“이스라엘은 정확히 70년 전 홀로코스트 난민들의 피난처로 세워졌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이는 유대인의 가치와 어긋난다. 나는 이스라엘을 아끼기 때문에 폭력, 불평등, 권력 남용에 저항하려 한다.” 당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에워싼 ‘분리장벽’ 앞에서 시위하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실탄으로 진압해 37명이 숨지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꼬집은 것이다. 포트먼의 수상 거부는 필자에겐 미국 내 유대인과 이스라엘 유대인 간 차이에 주목하게 한 사건이었다. 유대인 하면 나치 대학살의 피해자란 이미지가 강했는데 어느덧 팔레스타인은 물론, 종교적·인종적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가해자로 변해버린 이스라엘을 보며 괴리감을 느껴오던 차에 유대인들 내에서도 간극이 크다는 걸 일깨워줬다. 미국의 유대인은 약 600만 명이다. 이스라엘 내 유대인 700만 명(전체 인구 970만 명)과 맞먹는 규모다. 두 집단의 차이는 도널드 트럼프(공화당)와 조 바이든(민주당)이 맞붙은 2020년 대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 미국 내 유대인의 75%가 바이든을 지지했다. 트럼프 지지는 22%에 그쳤다. 비슷한 시기 이스라엘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스라엘 국민의 63%는 트럼프를 지지했고, 바이든 지지는 고작 19%였다. 트럼프가 2018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던 미 대사관을 팔레스타인과 분쟁 지역인 예루살렘으로 전격 이전해 이스라엘 편을 들어줬을 때도 미국 유대인들은 “국제법 위반이고, 아랍을 자극해 반유대주의 증오범죄를 부추길 것”이라며 반대했다. 2021년 5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에 이스라엘이 대대적인 보복을 해 팔레스타인 주민 3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미국에선 이스라엘의 과도한 보복을 규탄하는 여론이 거셌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본 뜬 ‘팔레스타인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운동이 확산되자 미국 내 유대인들이 대거 동참했다. 이에 이스라엘 극우파들은 “미국에 살면서 테러 위협도 안 받고, 군 복무도 안 하면서 한가한 소리를 한다”고 비아냥댔다.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유대인들은 고난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네버 어게인(Never Again)’ 정서를 공유했다. 하지만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이후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이 강력한 공감대는 완전히 다르게 발현됐다.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소수자의 정체성을 간직하며 인권 평등 같은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집단으로 진화했다면, 아랍 국가들 틈에서 영토를 확보하려 전쟁을 불사했던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민족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짙어졌다. 이스라엘에서도 1993년 팔레스타인과 상호 존재를 인정하는 ‘오슬로 협정’을 맺는 등 평화 노력이 있었지만 협정을 주도한 총리가 극우세력에 암살당하고 강평파가 집권한 이후 우경화가 이어져 왔다. 유대인들 간의 이런 차이에도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는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극우인 베냐민 네탸나후 정권이 최근 ‘사법부 무력화’ 작업을 강행하자 양국 간에도 균열이 커지고 있다. 바이든이 “매우 우려스럽다. 그들은 이 길로 계속 나아갈 수는 없다”고 하자 네타냐후는 “우리는 외국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는 주권국가”라며 맞서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이스라엘은 정부와 의회가 사실상 한 몸이어서 법안이나 정책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사법부가 견제 기능을 맡아 왔다. 초정통파 유대교의 기득권이 여전히 공고하고 아랍과의 잦은 충돌로 극우 정당이 언제든 득세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사법부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말 집권 직후부터 아랍을 도발하는 극우 행보를 펴온 네타냐후 정권이 사법부의 힘을 빼겠다는 것은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등 팔레스타인을 향한 적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자국 내 민주세력을 위축시키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요즘 이스라엘에선 5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와 ‘민주주의 수호’를 외친다. 삼권분립을 흔드는 네타냐후의 개악 시도를 어떻게든 저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유대인과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이제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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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숱한 시련 이겨낸 한국 역사 자체가 마라톤… 동아대회 톱3에 아테네서 온 특별메달 수여”

    19일 열리는 2023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에서 국제 엘리트 부문 우승자와 2, 3위 선수들은 트로피에 더해 그리스 아테네에서 최근 공수된 특별한 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이 중 금메달은 마라톤 기원 2500주년을 기념해 그리스육상연맹이 2010년 특별 제작한 메달이다. 주한 그리스대사관은 6·25전쟁 정전 70주년인 올해 열리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 아테네마라톤 메달을 기증하는 등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서울마라톤과 아테네마라톤은 보스턴마라톤과 함께 2019년 세계육상연맹(WA)이 선정한 세계육상 문화유산에 올랐다. 에카테리니 루파스 주한 그리스대사는 15일 서울 중구 그리스대사관에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마라톤의 정신은 인내와 끈기, 요즘 말로 하면 꺾이지 않는 마음인데 한국의 역사는 그런 마라톤 정신을 잘 보여준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 그리스가 함께할 수 있어서 뜻깊게 생각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그리스에서 온 특별 메달은 어떤 메달인가. “마라톤 역사가 시작된 지 2500주년을 기념해 만든 메달이다. 메달 앞면에 한 병사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참전했던 그리스 병사가 승전 소식을 알리기 위해 마라톤(지역명)에서 아테네까지 약 40㎞를 달려와 승리를 알린 뒤 쓰러져 숨을 거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것이 마라톤의 유래다. 메달에는 바로 그 병사의 모습을 형상화해 담았다. 2010년 제작돼 그리스육상연맹이 컬렉션용으로 간직해 왔다. 일제강점기이던 1931년 시작돼 90년 넘게 이어져온 한국의 대표적인 마라톤에 이 메달이 수여되는 것은 그리스에도 큰 의미가 있다.” ―마라톤은 스포츠의 차원을 넘어서는 행위인 것 같다. “마라톤에는 2500여 년 전 그리스 병사가 그랬듯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포기하지 않고 완수하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 서울이나 아테네, 보스턴 등 유서 깊은 국제마라톤 대회를 통해 그런 메시지가 유유히 이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역사 자체가 마라톤이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한강의 기적을 지나 지금의 최첨단 기술 강국이 되기까지 무수한 시련을 이겨내고 끈질긴 집념을 보여준 나라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제가 2021년 12월 한국에 부임했는데 한국을 알아갈수록 많이 놀라게 된다. ―한국과 그리스에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두 나라에는 공통점이 많다. 그리스도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이고, 산이 많다. 그리스 역시 오스만튀르크(현 튀르키예)로부터 오랜 세월 식민지배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3년 넘는 내전의 아픔도 겪었다. 6·25전쟁 때 그리스에서 약 5000명의 군인이 한국을 위해 참전한 것은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인식과 함께 동병상련의 마음도 있었다. 올해 한국은 정전 70주년, 그리스는 3월 25일이 202번째 독립기념일이다. 이번 서울마라톤은 양국의 우애를 다지는 중요한 무대가 될 것이다.” ―마라톤은 그런 점에서 축제이기도 한 것 같다. “마라톤은 본질적으로 많은 것들을 포용한다. 풀코스, 하프코스, 10㎞ 중 각자 상황에 맞게 달리면 된다. 선수이든 아니든, 연령과 성별,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린다. 빨리 뛰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차이를 포용하는 게 바로 마라톤이다. 그것이 아테네 민주주의가 지향했던 목표이고, 한국이 여러 난관을 이겨내며 지켜온 가치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마라톤은 두 민주주의 국가가 ‘가치의 연대’를 확인하는 장이 될 수 있다. ―한국에서 걷기나 달리기를 즐기는 편인가. “저는 한국의 가을을 사랑한다. 봄에 벚꽃도 좋지만 가을 단풍은 정말 아름답다. 서울에선 덕수궁이나 종묘, 남산을 자주 다니고 안동 하회마을의 한옥, 여수의 밤바다도 좋아한다. 외교관으로서 유럽의 수많은 도시를 다녀봤지만 서울은 빌딩숲 사이로 고풍스러운 공간을 잘 보존해놓은 것 같다. 도심을 걷다 보면 아담한 가게들도 많고 도시가 다양한 건축적 리듬을 갖도록 세심하게 설계됐다는 인상을 받는다. 서울마라톤의 코스는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어 이런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달릴 수 있는 게 큰 매력인 것 같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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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국가대표 선수들[글로벌 이슈/신광영]

    올 1월 28일 열린 호주오픈 여자 테니스 결승전 승자는 벨라루스의 아리나 사발렌카 선수(25)였다. 그의 첫 메이저대회 우승이다. 사발렌카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TV 중계방송 화면에는 그의 이름만 뜰 뿐, 이름 옆에 있어야 할 국가 표시가 없었다. ‘국기 표출 및 국가 연주 금지’는 국제테니스연맹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에게 출전을 허용하며 내건 조건이었다. 사발렌카는 결승전에 앞서 이런 인터뷰를 했다. “우리는 그냥 운동선수일 뿐이에요. (전쟁을 멈추기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하겠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우리가 왜 정치와 연관돼야 하는 거죠.” 또 다른 메이저 대회인 지난해 7월 영국 윔블던 대회에 그는 출전하지 못했다. 주최 측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며 러시아와 동맹국 벨라루스 선수의 출전을 금지했다. “우리가 윔블던 출전을 금지당한 이후 바뀐 게 있나요? 아무것도 없어요. 러시아는 여전히 전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상황이 슬픈 거예요.” 사발렌카가 호주오픈에서 우승하기 5일 전, 우크라이나 남자 피겨스케이트 선수의 비보가 전해졌다. 드미트로 샤르파르(25)가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인 바흐무트에서 러시아군과 교전 중 전사했다. 샤르파르는 우크라이나 챔피언십에서 은메달을 딴 유망주였다. 우크라이나 육상 선수 볼로디미르 안드로슈크(22)도 며칠 뒤 바흐무트에서 전사했다. 국가대표인 두 선수는 입대 의무가 없지만 자원입대를 택했다. 전쟁 이후 참전하거나 폭격 등으로 사망한 우크라이나의 국가대표급 선수와 코치는 220명에 달한다. 경기장과 체육관 수십 곳도 폭격에 무너졌다. 동갑내기인 사발렌카와 샤르파르는 세계무대에 서기 위해 각자의 훈련장에서 땀흘려 온 정상급 선수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한 사람을 출전이 금지된 선수로, 다른 한 사람을 출전이 불가능한 선수로 갈라놓았다. 내년 7월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 스포츠계는 두 개로 갈라져 있다. 당장 이번 봄부터 올림픽 예선이 치러지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러시아·벨라루스 선수들의 출전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가 “대회를 보이콧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한국과 미국 등 34개국이 우크라이나 편에 섰다. 눈에 띄는 것은 러시아의 침공을 비판해 온 유엔인권이사회(UNHCR)가 러시아·벨라루스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옹호하고 나선 점이다. “운동선수가 어느 나라 여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차별받아선 안 된다. 전쟁으로 인권이 노골적으로 무시될 때 인종·성별·국적에 따른 차별을 배격한다는 더 큰 의미의 인권 규범이 존중돼야 한다.” 선수의 재능과 땀에 대한 보상이 출신 국가에 따라 달라져선 안 된다는 논리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선수들 역시 그들의 여권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판단이 쉽지 않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복싱 금메달리스트인 우크라이나의 올렉산드르 우식은 “러시아 선수들이 따낸 메달은 피, 죽음, 눈물의 메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IOC는 이런 반발을 고려해 중립국 선수 자격으로만 출전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긴 했다. 하지만 형식적 제약에 그칠 수밖에 없다. 사발렌카 선수는 호주오픈 우승 직후 “(고국) 사람들이 나를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국기 표시가 없어도) 모두가 내가 벨라루스 선수라는 것을 안다. 그럼 된 거다”라고 했다. 우리가 그동안 여러 올림픽에서 봐왔듯 ‘ROC(러시아 올림픽위원회)’ 표식을 달고 나오는 선수들이 러시아 선수임을 누구나 알아볼 것이다. 러시아는 자국 선수들이 세계 최대 스포츠 무대에서 선보이는 활약상을 이용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전 세계를 상대로 정치 선전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을 치른 직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점령했고, 지난해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 폐회식 4일 뒤 보란 듯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의 대외 정책에서 올림픽 정신은 설 자리가 없었다. 독일 나치가 1936년 전 세계의 반대 여론에도 베를린 올림픽을 개최하며 국력을 정비해 3년 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과 다르지 않다. 파리 올림픽에 출전할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선수이기 이전에 전쟁 생존자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가해국 선수들과 마주해야 하는 아픔을 느끼게 해선 안 된다. 물론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잘못 때문에 그 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4년간 기다려온 기회를 빼앗기는 것은 여전히 안타까운 대목이다. 선수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증발시킨다는 점에서도 전쟁의 야만성은 드러난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 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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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사 우크라 용사들, 韓내복 입고 따뜻하게 갔다”

    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학과 교수는 러시아가 고국을 침공한 지난해 2월 말 이후 1년 넘게 우크라이나에 있는 가족, 지인들과 연락하며 마음 졸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촌동생의 남편, 육촌동생은 현재 최전선에서 러시아군과 싸우고 있다. 이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며칠째 답이 없으면 가슴이 내려앉는다. 쉐겔 교수는 14일 경기도의 자택 인근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우크라이나 군인들과 주민들의 ‘지난 1년’을 담담히 전해줬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연락이 닿을 때마다 보내 달라는 물건이 많다고 한다. 특히 한국산 내복과 양말이 인기가 많다. 따뜻하면서도 땀이 안 차서 좋다는 것이다. 쉐겔 교수는 “재질이 좋아서 3, 4일씩 행군해도 발이 괜찮다고 한다. 군 보급품도 있지만 땀이 잘 차서 오래 행군하면 양말이 피부랑 붙어 벗을 때 많이 아프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 번에 수십 벌씩 보내는데 육촌동생의 소대원들이 고맙다면서 내복 입은 단체사진을 보내주기도 했다. 보통 같은 동네 출신들로 부대가 꾸려지기 때문에 쉐겔 교수도 어렸을 적 봤던 동생들이었다. 그런데 며칠 뒤 이모한테서 연락이 왔다. 이모는 “소대원들이 전투에서 많이 죽었다. 그래도 네가 보내준 내복을 입고 따뜻하게 갔다”며 울었다. 전장으로 물품을 보내는 방법은 험난하다. 주변국인 폴란드나 체코로 보내면 지인이나 봉사자들이 공항에서 넘겨받아 우크라이나로 배달하는 식이다. 쉐겔 교수가 1년간 물품을 구해서 보내는 데 쓴 2000만 원에서 절반이 수화물 비용이었다. 전장이 아니더라도 우크라인들의 일상 자체가 전쟁이다. 쉐겔 교수는 “외삼촌 부부가 격전지인 헤르손 근처 농장에서 일하시는데 몇백 m 근처에서 미사일이 종종 터진다고 한다”면서 “삼촌도 처음엔 놀라다가 요즘엔 ‘오늘도 왔네’ 하며 무덤덤해졌다”고 전했다. ‘지하실로 내려가 봤자지. 집 무너지면 지하실에서 죽는 거지’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러시아는 이 고통의 역사가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통제했다. 쉐겔 교수는 “이번 전쟁도 러시아가 100년 넘게 반복해온 행동 패턴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지금 우크라이나인들은 하나의 강력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무너지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 말이다. “이번에 러시아에 굴복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두려움, 결연함, 절박감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전쟁이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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