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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천광암 논설주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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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8~2026-02-07
칼럼100%
  • [천광암 칼럼]바이든 때린 시진핑, 시진핑 띄운 文 대통령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열린 보아오포럼 기조연설에서 미국을 향한 불만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대국은 대국답게 행동해야 한다”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보스처럼 군다” 등 직설적이고 날 선 언어였다. 이날 포럼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영상을 통해 축사를 했다. 문 대통령의 축사는 시 주석이 미국을 작심하고 비판하는 자리에서 이뤄졌다는 점, 지금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한 달가량 앞두고 백신 지원 등 민감한 이슈를 조율해야 하는 시기라는 점만으로도 적절치 않았다. 이 포럼의 부제가 ‘글로벌 거버넌스와 일대일로 협력의 강화’였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과연 축사를 해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 ‘일대일로’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광대한 지역에 중국 주도로 철도 도로 통신망 등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명목은 인프라 개발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패권을 확장하려는 시도다. 미국으로선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프로젝트다. 한 달 전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일대일로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한 터다. 문 대통령이 ‘신냉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민감한 미중 관계를 다루면서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되는 대목은 또 있다. 문 대통령은 “신기술 분야에서 아시아 국가 간 협력이 강화된다면 미래 선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 최근 신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보자면 한국이 중국 편에 선 듯한 인상을 받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의 최근 행보는 문 대통령의 발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스가 총리는 16일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5G와 차세대 모바일 네트워크 분야 협력을 위해 45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합의했다. 또 반도체 등 민감한 공급사슬에 대해 상호협력을 약속했다. 모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의 미중 경제 관계는 ‘디커플링(Decoupling)’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쉽게 말하면 커플처럼 함께 돌아가던 미중 경제가 남남처럼 따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디커플링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이뤄져 있다. 첫째, 공급사슬(Supply Chain)의 분리다. 중국이 전 세계 제조업의 공급사슬을 잠식하다시피 했는데 반도체와 차세대 통신 등 몇몇 분야는 중국과 분리된 공급사슬을 미국 주도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군사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큰 첨단기술에 대해서는 중국으로의 유입을 철저하게 막겠다는 것이다. 둘째, 공급사슬의 원활한 작동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미국 기업들과 첨단 분야 해외 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적극 장려한다는 것이다. 이날 시 주석 연설의 진짜 의도는 미국 주도의 ‘디커플링’을 공격하는 데 있었다. 시 주석은 디커플링이 경제법칙과 시장원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디커플링은 상당 부분 중국이 자초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2015년 발표한 ‘제조 2025’ 청사진도 원인 중 하나다. 기존 제조업에 대한 독식으로 모자라 반도체 통신 인공지능 등 첨단 산업분야도 중국의 ‘붉은’ 공급사슬로 옭아매겠다는 것이 이 계획의 골자였다. 추진하는 과정 또한 중국 정부가 민간 기업에 천문학적인 보조금과 저리의 융자금을 지원하는 등 불공정으로 얼룩졌다. 중국 내 외국투자기업에 대한 기술 이전 강요, 중국 시장에 대한 장벽 세우기, 지식재산권 도용 등의 ‘반칙’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을 방치할 경우 경제와 안보를 모두 위협할 것이라는 인식은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정부와 의회가 모두 공유하고 있다. 디커플링은 한번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 질서의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미국의 디커플링은 우리 정부와 기업이 서둘러 적응하지 않으면 생존의 문제와 맞닥뜨릴 수 있는 변화다. 특히 한국 수출의 18%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은 미중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다. 한국은 메모리 분야에서는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주요 장비와 소재도 미국과 일본 등으로부터의 수입에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 미국 일본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의 지나친 친중 행보가 가뜩이나 갈 길 바쁜 한국 반도체 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

    • 202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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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광암 칼럼]20대의 문재인 정권 4년 경험치

    세대와 정치적 성향 간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앤드루 겔먼과 예어 기차가 미국 백인들의 투표 행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세운 이론이다. 이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평생 간직하는 정치성향의 가장 큰 부분은 14∼24세 때 겪은 정치적 사건과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이번 4·7 보선의 최대 이변으로는 20대 남자(만 18세 이상 포함)가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에게 몰표를 던진 것이 꼽힌다. 하지만 이들의 분노 투표는 선거 과정에서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20대의 “역사적 경험치”를 거론하면서 설훈 민주당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의 20대 비하 발언들도 줄줄이 소환됐다. 친여 성향의 한 시인은 “돌대가리”라는 막말까지 쏟아내며 성난 표심에 기름을 부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겠지만 그래도 72.5(오세훈) 대 22.2(박영선)의 격차는 충격이 너무 컸던 모양이다. 강경론이 판치는 친문 커뮤니티에서도 20대 남자와의 소통 부족에 대한 진지한 자성론이 나온다. 이대로 가다가는 1년 뒤 대통령 선거가 위험하다는 계산 때문일 것이다. 20대 남자들의 분노 투표에 대한 원인 분석과 응급처방 아이디어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에는 문재인 정부의 페미니즘적 젠더 정책이 20대 남자의 표심이 떠나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 해석의 뿌리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2018년 말 한국갤럽은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가장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집단이 20대 남자, 가장 긍정적으로 보는 집단이 20대 여자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유 이사장은 당시 “젠더 이슈”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욕망이 욕망을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옳은 것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20대 남녀 간의 지지율 격차는 문 대통령이 여성 장관 할당제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고 그로 인해 불이익을 본다고 생각하는 20대 남자의 지지율이 떨어진다면 그냥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보선 이후 갑론을박이 한창인 친문 커뮤니티 일각에서는 심지어 20대 남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페미니즘 정책을 ‘손절’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온다. 이번 보선은 민주당 소속 서울·부산시장의 성폭력으로 인해 치러진 선거다. 이들의 성추행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민주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박원순 재평가론 등을 띄우며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추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 유 이사장이 말한 페미니즘이 애초부터 여당 안에 있기나 했는지 의문이다. 20대 남자 대 20대 여자. 매사 이런 식으로 편을 갈라 보면 정작 중요한 본질을 놓치게 된다. 2018년 말 한국갤럽 조사에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 대한 20대 여성의 지지율은 겨우 1%였다. 그런데 이번 서울시장 보선에서는 40.9%가 오세훈 후보에게 표를 줬다. 야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여당이 잘못해서다. 이번 4·7 보선에서 나타난 20대 남녀의 표심은 문 정권의 지난 4년 경험치, 즉 무능 위선 내로남불의 결과물이다. 정권의 무능에 20대는 미래를 빼앗겼다. 현 정권은 어설픈 소득주도성장론을 앞세워 알바 일자리의 씨를 말렸고, 25전 25패의 부동산대책으로 평생 넘을 수 없는 집값 장벽을 세웠다. 직장이 있는 30대는 ‘영끌’이라도 해보지만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취업난에 처해 있는 20대는 한 세대 전체가 ‘벼락거지’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국 김의겸 김상조 박주민 등 문 정권 인사들의 끝없는 위선과 내로남불 행진은 20대가 중시하는 가치인 공정(公正)에 가장 반하는 것이다. 더구나 군 복무를 한 20대 남자들은 보편적인 인권을 중시한다는 진보정권이 북한 인권에는 말 한마디 못 하는 이중성과 모순에 대해 생각하면서 긴긴 초병(哨兵)의 밤을 보냈을 터다. 여당에 대한 평가에서 남녀의 차이가 있었다면 이런 것들이 요인이 됐을 수 있다. 20대 남녀의 표차를 놓고 세대 내 갈등에서 원인을 찾아서는 안 된다. 취업이나 주거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면 세대 내의 견해 차이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 말한 겔먼 등의 분석을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다면, 20대의 문 정권 4년 경험치는 이들의 투표 DNA 안에 깊숙이 각인돼 앞으로 두고두고 영향을 끼칠 것이다. 20대는 최소한 앞으로 60년은 투표장을 찾을 세대다. 여권이 어느 세대보다 20대를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

    • 202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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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광암 칼럼]보유세 수탈과 징수 사이

    문재인 정부가 무리한 공시가격 밀어 올리기를 강행하는 명분 중의 하나는 ‘공시가 현실화율 100%’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실패한 집값 잡기에 대한 책임을 1주택자에게까지 떠안기는 징벌적 보유세를 정당화하는 근거는 더더욱 될 수 없다. 지난해 10월 27일 국토연구원이 주관한 공시가 현실화 공청회에서 발표된 ‘현실화 계획(안)’을 보면 “외국의 경우, 공시가격은 실거래가 기준으로 현실화율이 100% 수준에 근접”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덴버)은 101.3%, 캐나다(온타리오주)는 100%, 호주는 90∼100% 수준”이라고 예시했다. 또 “대만은 토지에 대한 공시지가 현실화율 90%를 목표로 2005년부터 제고하고 있다”면서 2017년 기준 현실화율이 90%를 넘었다는 자료를 덧붙였다. 정말 그럴까. 첫째, 덴버 온타리오 호주 대만 사례를 가지고 ‘외국은 이렇게 한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다. 영국은 재산세 공시가 조사를 수십 년에 한 번씩 한다. 프랑스는 주택 임대 가치의 50% 정도로 과세표준을 정한다. 미국은 주마다 제각각인데, 덴버시가 어떻게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를 제치고 미국의 대표 사례가 됐는지 모르겠다. 둘째, 대만 사례 인용은 생략이 지나쳐서 왜곡에 가깝다. 대만 정부가 올해 발표한 토지의 ‘공고지가’ 현실화율은 19.79%, ‘공고토지현치’ 현실화율은 92.21%다. 이 중 한국의 재산세(토지) 공시가에 해당하는 것은 공고지가다. 대만의 공고지가 현실화율은 10년 넘게 20% 선에서 맴돌고 있다. 계획(안)은 공고토지현치를 가지고 대만 공시지가가 90%를 넘었다고 했는데, 공고토지현치는 재산세가 아닌 양도세 산정 기준이다. 셋째, 캐나다 온타리오주(州)와 호주의 공시가 산정 및 재산세 부과 체계는 한국과 크게 다르다. 호주와 온타리오주는 치안 소방 대중교통 등 주민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예산을 먼저 결정한 뒤, 여기에 맞춰 매년 세율을 새로 정한다. 공시가는 재산세를 납세자별로 할당하기 위한 상대적 기준이다. 공시가가 재산세를 전체적으로 밀어 올리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는 지자체가 주민들로부터 거둘 수 있는 연간 재산세 총액에 상한선까지 두고 있다. 인상률 상한선은 연간 2%대 수준으로 극히 낮은 수준이다. 넷째, 온타리오주의 현실화율이 100%라는 점은 짚어볼 점이 많다. 온타리오주의 공시가 산정은 MPAC라는 기관이 맡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은 매년 조사를 해서 공시가를 갱신하지만 MPAC는 4년에 한 번씩 한다. 2012, 2016, 2020년 이런 식이다. 이 때문에 2017∼2020년 재산세 산정에는 2016년 공시가가 적용된다. 인상분은 조금씩 반영된다. 공시가가 2012년 6억 원에서 2016년 10억 원으로 올랐으면 2017년 7억 원, 2018년 8억 원, 2019년 9억 원, 2020년 10억 원이 재산세 산정 기준이 된다. 반면 공시가격이 2012년 6억 원에서 2016년 3억 원으로 떨어졌다면 감액분은 전액이 다음 해에 바로 반영된다. 즉 2017∼2020년 공시가는 3억 원이 된다. 요컨대 공시가 현실화율이 몇 %인지는 보편적인 기준도 없고 보유(재산)세제의 본질도 아니다. 재산세제에 글로벌 스탠더드가 있다면 그것은 공정성, 안정성, 예측 가능성이다. 양도세 같은 경우는 실제 거래 금액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거래가의 100%를 기준으로 해도 공정성에 시비가 붙을 소지가 적다. 이와 달리 보유세 공시가는 거래되지 않은 재산에도 가공의 가치를 매기기 때문에 시비 소지가 많다. 이처럼 태생적으로 고무줄일 수밖에 없는 잣대를 기준으로 공시가를 한 해 19%씩(공동주택)이나 폭등시키면 반발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재산세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세금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진국은 온타리오주처럼 세금 징수가 주민들의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생활을 위협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보유세 정책에서는 납세자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이래도 안 팔래”라는 식의 악의까지 느껴진다. 정부는 보유세 정책이 징수와 징벌, 징벌과 수탈 사이 어디쯤에 서 있는지 냉정하게 자문(自問)해 봐야 한다.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

    • 202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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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광암 칼럼]기는 ‘문재인보유국’ 뛰는 ‘차이잉원보유국’

    ‘국가는 크지 않아도 되지만 의지는 커야 한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의 지론이다. 4년 전쯤이라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에서 이무기로 전락한 국가 지도자의 자기 위안 정도로 치부됐을 것이다. 차이 총통이 처음 당선된 2016년과 집권 초기만 해도 대만 경제는 그만그만한 중소기업의 집합체, 중국의 하청공장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최근의 대만은 ‘용의 귀환’을 선언한 듯하다. 지난해 한국 미국 일본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와중에도 대만은 2.98% 성장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9.9%나 증가해 조만간 한국을 추월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다. 국제사회의 시선도 달라졌다. 영국의 정치·경제 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은 지난달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보고서에서 대만을 ‘아시아 민주주의의 등불’이라고 극찬했다. 프랑스의 주간지 르푸앵은 지난해 12월 ‘누가 세계를 지배할 것인가’라는 커버스토리의 표지 그래픽으로 5명의 정치지도자가 육상트랙을 도는 모습을 실었다.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이 차이 총통이었다. 대만의 약진에는 두 개의 원동력이 있다. 하나는 익히 알려진 ‘T방역’이다. 대만은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985명에 그칠 정도로 방역에 성공했다. 다른 하나는 차이노믹스다. 차이 총통은 문재인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진보정당 후보로 출마해 집권했다. 탈(脫)원전, 최저임금 인상 등을 공약으로 내건 점도 비슷하다. 그런데 어디에서 J노믹스와 차이노믹스의 길이 갈린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이 ‘민간’을 보는 관점이다. 차이 총통은 “정치 분야에서는 함께 힘을 모아 큰일을 이루기가 어렵지만, 민간 부문은 많은 사람의 참여를 끌어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에 비해 문 대통령은 ‘민간 기업=개혁 대상’이라는 운동권적 시각에 발목이 잡혀 있는 모습이다. 기업계가 여당에 여러 차례 읍소하면서 입법 재고를 요청한 상법 개정안 등 3법에 대해 문 대통령은 “기업을 건강하게 하여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며 기업계와는 극명한 시각 차이를 보인 바 있다. 민간에 대한 인식 차이가 성과 차이로 이어지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해외진출 자국 기업의 유턴 정책이다. 차이잉원 정부는 2019년 초부터 금융 세제 용수 전력 인력 지원을 묶은 패키지를 만들어, 해외에 나가 있는 대만 기업들에 유턴을 제안했다. 2년여 기간 동안 209개 기업이 제안에 응했다. 총 투자금액은 31조9139억 원, 창출되는 일자리는 6만5552개에 이른다. 한국에도 유턴을 지원하는 제도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실적은 한심하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이후 작년 5월까지 총 실적은 36건. 반면 2018년 한 해에만 한국 기업이 해외에 세운 신설법인 수는 3540개에 이른다. 유턴은 고사하고 한국을 떠나려는 탈출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차이 총통은 진보정당 지도자이면서도 신자유주의적 색채가 강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거침이 없다. ‘2언어 국가’ 정책이 대표적이다. 2030년까지 대만을 중국어와 영어가 모두 통하는 나라로 바꿔 놓겠다는 계획이다. 영어 장벽이 없어지면 글로벌 기업 유치가 쉬워지고, 대만 기업들의 글로벌 비즈니스도 활발해져 좋은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복안이 엿보인다. 경제정책의 요체는 ‘사다리’와 ‘그물(안전망)’의 조화라고 한다.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이나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튼튼한 그물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려면 ‘소기업은 중기업으로, 다시 중기업은 대기업으로’, ‘하류층은 중류층으로, 중류층은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많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차이노믹스는 균형을 잡아 왔다. 하지만 J노믹스는 세금알바 같은 ‘그물’에만 매몰돼서 성장 사다리에 별 관심이 없다. 한술 더 떠서 한국의 정부·여당은 세금폭탄으로 사다리 위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려야 직성이 풀린다. 우리 사회 내부의 성장 사다리가 하나둘씩 허물어져 내릴 때의 결과를 예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국이 1인당 소득 4만, 5만 달러대의 선진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 자체가 치워질 것이다. 이대로 가면 대만의 발뒤꿈치만 하릴없이 올려다볼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른다.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

    • 202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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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천광암]‘0’을 꿈꾸며 ‘90’을 선택할 자유

    ‘90 HRS/WK’는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를 상징하는 문구 중 하나다. 주당 90시간 근로를 뜻하는 이 말은 잡스의 야심작 매킨토시의 발표 예정일인 1984년 초를 몇 달 앞두고 등장했다. 당시 매킨토시팀은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오후 11시까지 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잡스는 매킨토시팀이 주 90시간씩 일한다는 사실을 외부에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고, 애플의 재무부서는 ‘90 HRS/WK…AND LOVING IT!(주 90시간 일하니 좋아요)’라는 문구를 넣은 회색 후드티를 제작해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는 주당 90시간을 넘어 ‘주당 100시간’ 근로가 화제로 떠올랐다. 전기차 분야에서 가장 혁신적인 선도기업으로 통하는 테슬라에서 벌어진 일이다. 테슬라는 첫 대중형 전기차인 ‘모델 3’이 생산차질을 빚으면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섰다. 창업주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테슬라의 모든 직원은 9월부터 주당 100시간씩 일한 끝에 겨우 내부 생산 목표를 맞추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본격 시행되는 내년부터 한국에서는 매킨토시의 성공담이나 테슬라의 위기탈출 스토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질 것 같다. 탄력근로 확대를 위한 연내 입법이 청와대의 노동계 눈치 보기 때문에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현행법의 테두리에서 탄력근로를 하기 위해서는 2주 안에서(노사 합의가 있을 때는 3개월) 주당 평균 52시간을 맞춰야 한다. 일감이 없을 때 덜 일하고 일감이 많을 때 더 일하는 작업방식이 2주∼3개월 단위로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매킨토시나 테슬라와 유사한 성공신화의 연출은 사치라고 치자. 4차 산업혁명과 정보기술(IT) 관련 산업, 게임 등 소프트웨어 연관 산업은 생존조차 쉽게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전 세계를 무대로 치열한 신제품 출시경쟁이 벌어지는 이 분야는 일이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것이 특징이고, 한 달이나 하루가 사활을 갈라놓기도 한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모텐 한센 교수(경영학)가 5000명을 대상으로 5년간 자료를 수집해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생산적인 근로가 가능한 최적의 시간은 주당 50∼55시간이라고 한다. 따라서 주 52시간 근로는 장시간 근로와 낮은 생산성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기업문화를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다만 생산성의 문제는 생사(生死)의 문제가 해결된 다음의 일이다. 4차 산업혁명과 IT 분야에서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의 기술기업들 사이에서는 ‘996’이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인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한다는 뜻이다. 엔지니어들의 세계에서는 오전 10시쯤 출근해서 한밤중에 들어가는 것이 상식이라고 한다. 밤낮을 잊고 눈에 핏발을 세워가며 일하는 미국이나 중국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회가 오거나 위기가 닥쳤을 때 더 평소보다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는 것이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매킨토시의 본체를 설계한 엔지니어 버렐 스미스는 매킨토시의 성공으로 두둑한 보너스를 챙기자마자 애플을 사직했다. 사직 후 그는 후드티에서 ‘9’자를 지워버리고 ‘0 HRS/WK…AND LOVING IT!(0시간 일하니 좋아요)’라는 문구만 남긴 채 입고 다녔다고 한다. 진정한 혁신은, ‘0’을 꿈꾸면서 ‘90’을 선택할 자유가 있는 곳에서만 싹튼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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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천광암]세상에 나쁜 규제는 없다

    “영국은 마차업자를 보호하려고 ‘붉은 깃발법’을 만들었는데 결국 자동차산업에서 뒤처지고 말았다.” 올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이후 붉은 깃발은 현 정부의 규제개혁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의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와 이념적 성향은 크게 다르지만 규제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는 비슷한 점이 많다. 규제를 경제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고 보는 기본 인식은 물론이고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면서 관료들을 질책하는 모습도 닮았다. 3개의 정권에 걸쳐 대통령이 나서서 진두지휘하면서 규제와 전쟁을 벌여 오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기업 현장에서는 그 성과를 전혀 체감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세기 초반 자동차 보급이 급증하면서 자동차산업의 본거지인 디트로이트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는 마차와 자동차가 뒤엉켜 마비되기 일쑤였다. 면허제도나 음주운전 규제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술에 만취한 초보 운전자들이 보행자를 덮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자동차에 대한 일반인의 반감도 컸다. 대중의 분노 앞에서 위기에 처한 자동차산업을 구해낸 것은 규제였다. 정지신호 횡단보도 일방통행 운전면허제도 등 규제 수단이 등장하면서 도로는 질서를 찾았고 자동차산업은 고속성장을 이어갔다. 규제 중에는 이처럼 유익한 것도 많다. 규제가 전봇대와 손톱 밑 가시, 붉은 깃발처럼 흉물스럽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면 규제개혁보다 손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규제는 국민건강 증진, 빈곤층 보호, 환경 보전, 회계 투명성 강화 등 그 나름의 공익적 명분을 갖고 있다는 데서 규제개혁의 어려움이 비롯된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애완견의 이상행동은 주인의 잘못된 훈육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규제 또한 문구 자체보다는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한국은 개별 규제를 등록 심사 관리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데 있어서 훌륭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현재 정부가 운영하는 규제정보 포털에는 ‘규제혁신으로 달라지는 생활, 바로바로 알려드립니다’라는 설명이 붙은 ‘규제혁신톡(Talk)’ 코너가 있다. 이 코너에는 현재 시행 예정인 사안으로 16건이 올라와 있는데 이 중 6건이 카지노 전산시설 검사의 행정절차 변경에 관한 내용이다. 이 내용이 과연 생활을 바꿔 놓을 혁신 사례로 홍보할 내용인지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해가 안 된다. 좋은 시스템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에게 진정성이 없으면 이렇게 내용 없는 건수 채우기로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기업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은 공무원 한 명 한 명이 살아있는 규제라고 한다. 법으로 조문화된 규제는 늘었다 줄었다 하지만 많을 때도 2만 건이 넘지 않는다. 이에 비해 공무원 수는 106만 명에 이른다. 현 정부가 규제개혁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내려면 이들에게 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일관되고 지속적인 메시지를 주고, 경제 살리기에 전력투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규제개혁 회의를 통해 부처별 계획이나 실적을 점검하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일이다. 문 대통령은 9일 공정거래위원회 등 6개 부처가 참여한 가운데 공정경제전략회의를 주재했다. 겉포장은 공정경제지만 실상은 대기업 때리기로 변질되기 쉬운 내용들이다. 106만 규제 본능에 “더 모질게 깨어나라”는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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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천광암]혁신은 ‘개똥’이다

    2007년 사회 초년생이던 브라이언 체스키는 샌프란시스코의 임대주택에서 친구와 함께 생활하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시절인데, 하루는 집주인이 체스키에게 집세를 대폭 올리겠다는 통지를 해왔다. 체스키는 한 달분 집세라도 벌어보자는 생각으로 콘퍼런스에 참석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자신이 사는 집 한구석과 간단한 침구,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서비스의 전부였다. 현재 기업 가치가 43조 원이 넘는 에어비앤비의 출발점은 사소한 아이디어였다. 아마존도 비슷하다. 시작은 제프 베이조스의 차고에 차려진 초라한 온라인 서점이었다. 베이조스가 주문받은 책을 우체국으로 직접 부치러 갔을 정도였다. 세계적인 혁신기업의 대명사로 통하는 곳들의 혁신이라는 것도 뜯어보면 사실 별것 아니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개똥만큼이나 흔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혁신” 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기술과 공상과학, 엄청난 연구개발 투자 등을 떠올리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그 잘못된 생각의 범주 안에는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도 포함된다. 지금까지 발표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현 정부의 혁신성장이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플랫폼 분야와, 미래자동차 드론 에너지신산업 바이오헬스 스마트공장 스마트시티 스마트팜 핀테크 등 선도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사람보다는 기술, 현재보다는 미래에 치우쳐 있다. 그러다 보니 쉽게 피부에 와 닿지 않고 공허한 말잔치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혁신적인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과잉인 세상이다. 2015년을 기준으로 한국에서만 한 해 동안 21만3694건의 특허가 출원됐다. 세계적으로는 288만8800건에 이른다. 매년 수백만 건씩 쌓이는 혁신 중 극히 일부만이 비즈니스에 활용된다. 개똥처럼 흔한 혁신을 황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은 기업가정신이라는 촉매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혁신성장과 관련한 회의가 있을 때마다 “성과가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혁신성장의 성과가 나지 않는 이유는 혁신적인 기술에 대한 정부 지원이나 투자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혁신성장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원인은 반기업 정서와 각종 규제에 짓눌려 기업가정신이 숨쉴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현 정부가 규제 완화 노력을 아주 안 한 것은 아니다. 산업자본이 인터넷은행에 출자할 수 있는 길을 넓혔고, 특정 지역 안에서 특정 산업의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 각종 규제의 적용을 일부 유예해 주는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입법 작업도 마무리했다. 벤처기업 창업자의 경영권 안정을 위한 차등의결권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그 나름대로 애는 쓰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경쟁에는 상대방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미국이나 중국은 제쳐두고 동남아시아와 비교해도 한국의 규제완화 노력은 아주 감질나는 수준이다. 혁신성장의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의 하나로 유니콘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벤처기업)의 수가 있다. 중국에서는 일주일에 2개꼴로 유니콘기업이 탄생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2015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곳도 나오지 않았다. 스포츠와 비즈니스의 세계에는 공통되는 철칙이 하나 있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보다 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일 선상에서 달리는 주자(走者)도 그럴 텐데, 하물며 후행(後行) 주자는 어떻겠는가.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이 걱정스러운 이유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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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천광암]도요타는 나쁜 기업인가?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지난 한 해 동안 세계시장에 1040만 대의 자동차를 팔아 296조 원의 매출을 올렸고 25조 원을 순이익으로 남겼다. 일본 전체 기업을 통틀어 압도적으로 돋보이는 경영실적이다. 일본 주간지 슈칸겐다이가 지난해 10월 ‘만약 도요타가 망한다면, 일본 경제에 이처럼 가혹한 일이 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기사에 따르면 자회사를 포함해 도요타자동차는 36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3만5000개가 넘는 협력업체를 포함하면 일본 노동인구의 3%에 해당하는 140만 명이 도요타 관련 일자리 덕분에 먹고산다. 만약 도요타가 망하면 직원 가족들을 포함해 500만 명의 생계가 끊기고,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4%가 허공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잡지는 추산했다. 이처럼 일본 경제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고 있고, 깐깐한 품질 관리와 효율적인 생산 관리 분야에서 ‘교과서’로 꼽히는 도요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오너 4세로 도요타자동차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의 지분은 0.15%에 불과하다. 도요다 일가의 지분을 모두 합해도 2% 안팎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도요타의 경영권이 위협받지 않는 이유는 도요타자동차, 도요타자동직기, 덴소, 아이신정기, 도와부동산 등 핵심 계열사 간 상호출자에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자동차는 자동직기의 1대 주주이고, 자동직기는 자동차의 2대 주주(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금융회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1대 주주)다. 또 자동차는 덴소의 1대 주주이고, 덴소는 자동차의 6대 주주다. 자동직기는 덴소와 아이신정기의 2대 주주이고, 덴소와 아이신정기는 각각 자동직기의 2대, 7대 주주다. 덴소는 아이신정기의 3대 주주, 아이신정기는 덴소의 7대 주주다. 이런 방식으로 도와부동산은 자동직기 덴소 아이신정기 3사와 모두 상호출자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밖에 도요타통상 도요타방직 등도 핵심 계열사들과 상호출자 또는 순환출자 관계를 맺고 있어 지분 관계가 거미줄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 있다. 도요타의 지배구조에 대해 지금까지 일본 안에서는 큰 시비가 없었다. 인위적으로 뜯어고치려는 시도도 없었다. 하지만 도요타가 만일 한국기업이었다면 사정은 크게 달랐을 것이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 기준으로 보면 도요타는 지구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기업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자산총액이 10조 원이 넘는 기업에 대해서는 계열사 간 상호출자가 전면 금지돼 있다. 순환출자(A기업이 B기업의 주주가 되고, B기업은 C기업의 주주가 되며, C기업은 A기업의 주주가 되는 방식)는 일정한 한도 안에서 허용돼 왔지만 공정위가 서슬 퍼런 경제검찰의 권력으로 자발적인 해소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의 공정위는 상호출자나 순환출자가 마치 절대악이나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런 지배구조를 갖고도 얼마든지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이 될 수 있고,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리는 데 공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도요타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 물론 우리가 시계를 거꾸로 돌려 상호출자를 다시 허용한다거나 기업들이 순환출자를 늘리도록 유도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기업의 지배구조에 유일한 모범답안이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대기업에 대해 정부의 입맛에 맞는 획일적인 지배구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강요된 공정위 장단에 대기업은 마지못해 춤추고, 실속은 엘리엇과 같은 해외투기자본이 챙기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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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와 車협상, 당장 닥칠 피해 막고 불확실한 미래이익 양보”

    《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통상 분야는 평시체제에서 전시체제로 바뀌었다. 자유무역시대가 가고 관리무역시대가 온 것이다.” 올해 1월 이후 9개월 동안 진행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한국 측 대표로 협상을 총괄해온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금 통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는 국지적인 파도가 아니고 광범위한 조류”라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 주력 산업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만이 변화의 격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진행된 한미 FTA 협상에서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참여하는 등 FTA와 인연이 깊은 김 본부장을 3일 만나 이번 협상 타결의 의의와 한국을 둘러싼 국제통상질서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이번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시작할 당시 미국 측의 요구사항이 상당히 많았다고 들었다. “초기에는 미국 측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바에는 차라리 한미 FTA를 깨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강하게 나갔다. 지난해 9월 4일경 미국으로부터 한미 FTA 폐기 통보가 올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했는데 협상을 시작하자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협상이라는 것은 항상 끝까지, 벼랑 끝까지 가봐야 하는 것이다.” ―협상 안건에 대해서는 어떤 전략으로 나갔나. “소규모의 실행 가능한 안건만 협상 테이블에 올렸다. 미국에서 의회 비준 절차 없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안건을 압축했다. 나중에 미국이 요청한 내용을 보니 우리의 레드라인(농축수산물 분야는 재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협상을 시작했다.” ―이번 협상의 득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크게 보면 한국과 미국 모두 3가지씩을 얻었다. 먼저 한국은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ISDS) 소송 남발을 막을 수 있게 됐고, 반덤핑 관세 계산 방법을 미국이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했으며, 철강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의 적용을 면제받았다. 미국이 얻은 것은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철폐 시기를 2021년에서 2041년으로 늦춘 것, 미국 자동차 업체가 자국 안전기준에 따라 한국에 수출할 수 있는 차량 대수를 업체당 2만5000대에서 5만 대로 늘린 것, 한국이 자동차 환경기준을 2021년 다시 만들 때 국제적인 추세를 고려하기로 한 것 등이다.” ―이번 합의로, 한국이 앞으로 픽업트럭을 개발해 미국 시장을 공략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지적도 있는데… “픽업트럭은 현재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제조와 수출을 하지 않는다. 협상에 앞서 우리 자동차 업계로부터 임박한 피해를 없애는 것과 불확실한 미래의 이익을 얻는 것 중 하나를 골라야 할 때는 전자를 선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임박한 피해라는 것은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부활한다거나 미국산 부품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이 도입되는 것 등을 말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자동차와 관련해서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문제가 남아있다. 미국은 이 조항을 근거로 국가 안보를 위해 수입 자동차에 대해 고율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의 자동차에 대한 관세 면제를 요청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실무진에 “검토해보라”고 지시해서 낙관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나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이 타결되면서 다시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대미 자동차 수출 쿼터를 각각 260만 대씩 받았다. 그렇다면 한국도 그렇게 되느냐는 건데, 우리는 한미 FTA 개정 협상으로 이미 자동차 문제는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7월 여야 원내대표들이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을 만나서 이런 뜻을 전달했고, 최근 정의선 현대자동차 총괄수석부회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미국 측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고 들었다. 이번 USMCA에는 아주 주목할 만한 조항이 한 가지 있다. 시장경제를 하지 않는 국가와는 FTA를 맺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다. 더구나 USMCA는 16년의 일몰조항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조항이 없다. (미국이) 북핵 문제, 방위비 분담금 등 안보 이슈가 한미 간에 얽혀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서명식 당시에 미국 농수산물 수출도 확대될 거라는 말을 했는데 이건 무슨 뜻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농수산물 추가 개방은 없다. 농수산물에 대해서는 협상 자체를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개정 협상이 마무리돼 양국 간 교역량이 늘어나면 농업도 늘어날 거다, 그런 수준의 언급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한 말이라고 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에서 미중 무역갈등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분야가 대두(大豆), 축산물 등 농축수산물이다.” ―김 본부장이 한미 FTA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일 때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수석 변호사로 일할 때였다. 1년에 2, 3개월 정도는 판결문 작성 때문에 새벽 4시에 출근을 했는데 어느 날 새벽 4시 반쯤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당선인이 통상 분야에 대해서만 보고를 못 받았는데, 브리핑 해줄 수 있느냐’는 거였다. 바로 서울로 와서 2시간 동안 보고했다. 동북아시아의 통상 환경은 구한말 신미양요, 병인양요가 일어났던 것과 같은 전시 상황이며, 우리가 먼저 개방과 개혁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김 본부장은 당시 외교통상부 산하 통상교섭본부의 통상교섭조정관(1급)으로 발탁됐고 1년 만에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했다. 당시만 해도 WTO 회원국 약 150개국 가운데 한국은 몽골과 함께 FTA가 전혀 없는 나라였다. 김 본부장이 동시다발적 FTA 전략을 추진하며 한국은 미국, 유럽, 중국 등과 협정을 체결하고 FTA의 허브로 거듭났다. ―한미 FTA는 2012년 3월 15일 처음으로 발효됐다. 약 6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긴 안목에서 봤을 때 한미 FTA가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가. “한미 FTA는 우리 민족에 있어서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본다. 2011년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116억 달러였다. 5년 뒤인 2016년에 233억 달러를 기록했다. 흑자뿐 아니라 한미 간 교역량 자체가 늘었다. 간접적으로는 전 세계를 상대로 우리가 교역을 하고 투자를 유치하는 데 많은 긍정적 요인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캐나다 멕시코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에 대해서도 파상적인 통상 공세를 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세상 물정 모르고 좌충우돌하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많았는데, 지금은 타고난 협상가라는 평가가 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수한 협상가이자 전략가다. 더구나 미국에는 트럼프 대통령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통상정책을 좌우하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그의 조상이 조지 워싱턴과 함께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인물로, 자부심이 대단하고 애국심도 강하다. 어렵고 까다로운 인물이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USTR 부대표로 있으면서 당시 급부상하던 일본을 상대로 관리무역을 성공시킨 노하우가 있는 인물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중 간 무역갈등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미국과 중국은 서로 오판(誤判)을 하고 있다. 그 위에 상호 전략적 불신마저 깔려 있다. 각자가 자신만이 유일한 체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전략적 불신의 원인 중 하나다. 미중 간의 무역 분쟁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  ▼ “무역갈등에 美도 中수출 막혀… 우리 고급 소비재 팔 기회” ▼ ―미국의 계산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미국은 중국에서 연간 5056억 달러어치를 수입하기 때문에 ‘실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여야를 떠나 미국에서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는 백인 중산층의 몰락에서 오는 절실함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 파도에 올라탄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상 압박을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발(發) 보호주의 물결은 국지적 파도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조류이다. 우리도 이 점을 잘 이해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무역 분쟁이 본격화하기 전 중국 측의 생각은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대미 무역흑자만 줄이면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중국은 미국의 공세가 자신들의 부상에 대한 견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 기반만을 배경으로는 중국을 견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오판을 했다.” ―중국은 수치로 봤을 때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고, 미국은 교역 규모나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교역 상대국이다. 미-중 무역갈등을 둘러싸고 산업계에서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미중 무역갈등의 여파를 쉽게 설명하면,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상품이 비싸진다는 얘기다. 글로벌 공급망을 바꾸는 데는 1년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사이 우리가 중국 대신 수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우리의 대중 무역 수출 중 70∼80%가 부품과 소재 등 중간재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면 우리나라 중간재의 대중 수출이 타격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해 대중 수출 품목을 소비재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무역갈등으로 미국이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된 고급 소비재 중 우리가 대신 중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해외 기술을 획득하기 위한 인수합병(M&A)을 하기가 어렵지 않겠나. 이 또한 우리에게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일본도 미국과 양자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친구라고 부르는 등 개인적인 호감을 보이는 데 대해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가장 큰 관심사다. 여기에 미국을 다시 끌어들이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다자(多者)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 결국 일본이 이런 미국의 뜻에 양보를 한 것이고, 미국은 양자협상을 해야 일본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보고 임하는 것이다.” CPTPP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관세 철폐와 경제통합을 목표로 한 경제체제로 일본, 호주 등 11개국이 가입돼 있다. TPP라는 이름으로 2015년 타결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탈퇴를 선언하면서 일본이 주도해 CPTPP로 이름을 바꿨다. ―CPTPP에 한국도 가입하나. “업종별, 품목별 간담회를 해서 모든 분야에서 CPTPP 가입이 미칠 영향에 대한 검토를 마쳤다. 그리고 우리가 미국이 가입하지 않은 CPTPP를 얼마의 입장료를 내고 가입할 건지 신중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를 둘러싼 통상환경이 뿌리부터 바뀌는 것 같다. “우리나라 주력 산업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신기술, 신산업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의 경우 메모리 분야는 한국이 선도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아직 점유율이 3%에 불과하다. 그런데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센서가 1000개가 넘는다. 이 센서를 다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 반도체가 필요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 퀄컴이 네덜란드 반도체 업체인 NXP를 인수하려 나서지 않았는가. 그래핀(흑연을 원료로 한 소재로 강하면서도 유연하고, 열전도성이 좋아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도 신기술 차원에서 검토해야 할 것 중 하나다. 탄소섬유도 우리 기업들이 추격할 수 있는 유망한 분야다.” ―주력 산업의 업그레이드를 강조했는데, 신기술과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특별히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첫째, 기술 인수합병(M&A)이다.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을 사거나 합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기업투자펀드가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우리 돈으로 100조 원에 상당하는 규모의 비전펀드를 조성했다. 한국도 이런 펀드를 여러 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실리콘밸리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필요한 기술을 획득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둘째, 규제 완화다. 스마트헬스를 가정해보자. 지금은 스마트워치가 시계로 분류되지만 맥박이나 혈압, 당뇨 수치 등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의료기기로 분류된다면 새로운 규제 이슈가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가 이런 분야를 선도할 수 있도록 규제를 잘 풀어나가야 한다.” 인터뷰=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정리=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201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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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천광암]공정위, 누구를 위해 기업경영권 흔드나

    마윈(馬雲)이 2013년 알리바바를 상장시킨 곳은 사업 본거지인 중국 본토나 한 차례 상장 경험이 있는 홍콩이 아니었다. 뉴욕 증시였다. 당시 주가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했는데도 그가 굳이 뉴욕을 택한 이유는 차등의결권(일부 주식에 대해 주당 1개가 아닌 다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 때문이었다. 알리바바의 창업주이지만 지분은 7%에 불과한 마윈으로서는 다른 대주주를 제치고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할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에 상장기업의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지 않는 중국 본토나 홍콩을 버리고 뉴욕으로 갔던 것이다. 알리바바를 놓친 홍콩 증시는 30년 전통을 바꿔 올해 7월 차등의결권을 허용했고, 이 덕분에 시가총액이 100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샤오미라는 또 다른 대어(大魚)를 낚았다. 그러자 중국 정부도 마침내 백기를 들고, 지난달 27일 기술기업에 대해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기업들이 안정된 경영권의 토대 위에서 투자와 생산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오래전부터 차등의결권 등 다양한 경영권 방어수단을 허용하고 있다. 이제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마저도 이 같은 국제적인 흐름에 발을 맞추고 있는데, 유독 한국 정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아니, 나 몰라라 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28일 공청회에 내놓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보면 1, 2위 대기업들조차 엘리엇 등 해외 투기자본의 공세 앞에서 흔들리는 현실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개정안은 금융·보험사와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도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 장치를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공정위가 추진하는 의결권 제한이 추가로 더해질 경우 우리 대기업들은 경영권 방어에 천문학적인 거금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것이다. 개정안에는 심지어 공정위가 지금까지 순환출자식 지배구조의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제시해온 지주회사에 대해서조차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 문제는 둘째로 치자. 한국의 대기업들은 2003년경부터 정부의 유도에 따라 하나둘씩 지배구조 체제로 전환해 왔다. 31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 12개가 과도한 비용 등의 문제로 아직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못한 상태다. 한국경제연구원 계산에 따르면 이들 12개 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한다고 할 경우, 규제 강화로 인해 상장회사 지분 매입에 12조9000억 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고 한다. 생산적으로 투자할 경우 27만8000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돈이다. 국회는 지난달 21일 본회의를 열어 은산분리완화법(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은산분리완화법은 문재인 대통령이 핵심 지지세력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국회 통과에 힘을 실어준, 일명 ‘혁신성장의 1호 법안’이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이 법의 시행으로 창출되는 일자리는 간접효과를 포함해 중장기적으로 약 5000개라고 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혁신성장 1호 법안이 어렵게 만들어내려는 일자리의 55배를 허공에 날려버릴 수도 있는 법안인 셈이다. 지금까지 여러 정권이 규제 완화를 야심 차게 추진하고도 성과가 미흡했던 이유는 사라진 작은 규제의 빈자리를 더 크고 더 고약한 규제가 채워 왔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규제 권력을 틀어쥐고 내놓지 않으려는 관료집단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공정위가 내놓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보면, 혁신성장의 적(敵)은 세종시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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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이 있느냐 없느냐…부동산에는 6개의 계급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집이 있느냐 없느냐,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6개의 계급이 있다고 한다. 노동운동가 출신 손낙구 씨가 2008년 출간한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내놓은 이론이다. 제1계급은 다주택자, 제2계급은 자기 집에 사는 1주택자를 말한다. 제3계급은 자기 집을 세 내주고 남의 집에서 셋방살이하는 1주택자다. 제4계급은 현재 집은 없지만 잠재적인 구매력이 있는 내 집 마련 예비군들이다. 제5계급은 내 집 마련의 희망이 전혀 없이 셋방살이를 전전하는 사람들, 제6계급은 그나마 제대로 된 셋방에 살 형편도 안 돼서 지옥고(지하실 옥탑방 고시원)에 기거하는 사람들이다. 주거 문제에 대한 이해를 체계화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한 이 이론의 틀에서 보면 현 정부 부동산정책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잘 드러나 보인다. 부동산정책은 6개 계급의 이해를 조화시킬 수 있는 폭넓은 시야와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정책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다주택자 때리기에만 매몰돼서, 정책이 제2∼6계급에 미치는 풍선효과나 고통 전가(轉嫁)효과를 간과하고 있다. 집값이 오르는 책임을 다주택자에게 떠넘기는 정책은 정치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집값과 주거를 안정시키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해 8·2대책 이후 서울 주택시장에서 나타난 2번의 폭등기를 자세히 뜯어보면 오히려 의도와는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첫 번째 폭등기는 작년 11월 하순부터 올해 2월 말까지다. 정부가 다주택자를 때리고 재건축을 옥죌수록 강남의 똘똘한 한 채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상승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이 기간(약 14주) 동안 강남 4구의 아파트 값은 무려 7.6%나 올랐다. 두 번째 폭등기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용산·여의도 개발계획을 발표한 7월 10일부터 지금까지로, 강북도 ‘똘똘한 한 채’ 대열에 합류하려는 보상심리가 서울 전체 집값을 밀어 올렸다. 용산 성동 강북 마포 양천 영등포 동작 등 7개구는 서초구를 능가하는 상승률을 보였다. 편협한 다주택자 때리기 정책의 부작용이 풍선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금 부담이 무주택자인 4∼6계급에 전가되는 효과도 있다. 정부는 작년 말 도입했던 다주택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 확대 조치를 이달 초 철회하고 9·13대책에서 다주택자들의 종부세율을 크게 올렸는데 늘어난 세금 부담이 세입자들에게 떠넘겨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도 이런 전가효과의 존재를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주택자를 투기꾼과 동일시하는 현 정부가 애초에 다주택자들에게 세금 혜택을 줬을 이유가 없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잡으라는 집값은 못 잡고 전 계층에 상실감을 안기는 방향으로 꼬이게 된 원인은 서울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는 명백한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사철 등 일시적인 수요 증가 요인을 고려하면 주택 보급률이 110%는 돼야 적정 수준인데, 2015년 현재 서울의 주택 보급률은 96%에 불과하다. 더구나 전 국민의 80%가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 하는 취향을 고려하면, 아파트에 대한 수급의 괴리는 주택 보급률 수치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크다. 정부는 지난주 9·13대책을 발표하면서 서울 지역은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자인하고 21일 그린벨트 해제 등을 통한 공급 확대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아직 미지수여서 그 효과 또한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정책이 내성(耐性)만 키운다는 사실만큼은 현 정부 출범 이후 1년 4개월여 간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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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천광암]문제 많은 상속·증여세 손볼 때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 대장성(한국의 기획재정부에 해당)은 전쟁비용을 마련하는 데 혈안이 됐다. 소득세와 주세 등 기존 세금을 닥치는 대로 늘렸지만, 그래도 재원이 부족하자 이듬해인 1905년 상속세를 도입했다. 당초에는 임시로 도입한 제도였지만 러시아가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자 고정적인 세목(稅目)으로 격상시켰다. 한국에 상속세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33년이다. 조선총독부가 도입 주체였으니 군국주의 일본의 제도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시작이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상속세 제도는 일본과 흡사한 점이 많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상속세율이 높기로 세계 1위를 다툰다. 최고세율은 일본이 55%, 한국이 50%다. 하지만 한국은 대주주 경영권 승계에 대해서는 최고세율이 65%까지 치솟기 때문에 난형난제다. 흔히 상속세와 관련해서는 혈연의식이 약하고 기부문화가 뿌리를 내린 서양에서는 조세저항이 약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기 쉬운데 현실은 반대다. 영국의 경제전문 잡지 이코노미스트 2017년 11월 23일자에 따르면 영국인과 미국인들은 소득의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상속세를 공평성이 가장 결여된 세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의회가 지난해 말 상속세를 대폭 삭감하는 법안을 가결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서양에서는 상속세를 폐지하는 나라도 많다. 1970년대에는 캐나다와 호주가, 1980년대에는 뉴질랜드가, 2000년 이후에는 포르투갈 스웨덴 오스트리아 노르웨이가 상속세를 없앴다. 세계에서 유독 높은 세율과 경직된 구조를 가진 상속세는 앞으로 우리 경제에 큰 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 현장에서 과중한 상속·증여세 부담 때문에 매각이나 폐업을 고려하는 경영자가 적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가업 승계를 하면 상속세를 깎아 주는 제도를 1997년 도입해서 운영하고 있지만 더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중소기업계의 목소리다. 여당 일각에서는 가업 승계에 대한 상속세 감면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이는 가뜩이나 좋지 않은 일자리 사정을 급속히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제조업은 이 분야에서 일자리가 1만 명 감소하면 다른 산업에서 일자리 1만3700명이 연쇄적으로 줄어들게 만드는 파급효과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높은 세율과 함께 동전의 양면 관계인 상속세와 증여세의 구조도 문제다. 영국에서는 죽어서 물려주는 상속세보다 살아있을 때 물려주는 증여세의 부담이 훨씬 작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물려주는 금액이 같으면 상속세나 증여세나 큰 차이가 없다. 이 같은 구조 때문에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고령자들이 자신의 사망 시점까지 재산을 꼭꼭 끌어안고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 투자와 소비의 활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겨나게 된다. 일본에서는 치매환자들이 갖고 있는 금융자산이 지난해 기준으로 143조 엔(약 1443조 원)에 이르러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에서는 또한 고령자들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젊은 범죄자들이 경찰에서 “나는 세대 간 부의 이전에 기여하는 사람”이라고 큰소리를 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황당한 궤변이지만 부(富)가 고령 세대에서 젊은 세대로 이전되지 않는 데 대한 젊은층의 반감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예다. 우리나라는 고령화 측면에서 빠른 속도로 일본의 뒤를 쫓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상속·증여세제를 손질하지 않으면 한국도 비슷한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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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천광암]막 오른 일자리 재앙

    1980년대 중반 경제 관료로 입문해 슈퍼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A 씨를 최근 사석에서 만났다. 좌중의 화제가 최저임금과 일자리 문제로 향하자, A 씨는 갑자기 자신의 아내 얘기를 꺼냈다. 30년 넘게 경제 관료로 일하는 동안 그의 부인이 경제정책을 언급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들어 변화가 생겼다. A 씨가 집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아내가 슬그머니 다가와서 이런 말을 건넨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너무 올라서 경제가 큰일이라는 말을 당신한테 꼭 좀 전해 달라는 제 친구들이 많아요.” 지난해 월평균 31만 명 수준이던 취업자 증가 수가 올해 2월부터 급감하더니 7월에는 5000명 선까지 떨어졌다. 30만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구걸’ 논란 속에 작년 말부터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신세계 등 대기업을 돌며 약속받은 일자리가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4306개다. 5개 그룹이 정부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비상한 결심으로 한 달 동안 만들어낼 수 있는 일자리의 70배가 7월 한 달 동안 사라진 셈이다. 어떤 사람은 대기업들이 만들어내는 양질의 일자리와 음식점 종업원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어떻게 단순 비교할 수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절박함의 무게를 따지면 식당에서 잡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대기업의 번듯한 정규직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취업자 증가 수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 원인은 대부분 국민이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단골 식당이나 집 근처 편의점만 가 봐도 모를 수가 없다. 친숙하게 눈인사를 주고받던 ‘식당 이모님’이 언제부터인가 안 보이기 시작했고, 주인한테 물어보면 “최저임금 때문에 월급 주기 힘들어서 내보냈다”는 한숨 섞인 대답이 바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심각한 고용위기의 원인을 모르는 사람들은 청와대와 경제부처, 여당에 몸담고 있는 이들뿐이다. 진짜 몰라서 모르는 것이 아니다. 소득주도성장론에 생채기가 날까봐서 현실에 눈을 감은 채 이달은 인구구조 탓, 다음 달은 날씨 탓, 그 다음 달은 공무원시험 탓, 또 그 다음 달은 자동화 탓을 하면서 군색한 핑계 돌려 막기를 하고 있다. 당정청의 이 같은 모습은 충격적인 7월 고용동향이 발표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17일에는 김 부총리를 비롯한 장관들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모여 긴급 경제현안 간담회를 열었으나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서는 “영향이 일부 업종과 계층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좀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에는 5000만 국민 모두가 참여한다. 하나의 경제현상에도 환율과 금리 등 수백 가지 외생 변수가 작용하고, 경제주체의 심리적 동기까지 가세한다. 그래서 올바른 진단 없이, 올바른 처방이 나올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로또 복권을 사는 타이밍은 늦을수록 좋다고 한다. 길을 걷다가 죽을 확률이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높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막판에 사야 살아서 당첨금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만큼 희박하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뜻이다. 정확한 원인 진단 없이 내놓은 고용대책이 일자리를 늘려주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어쩌면 로또를 사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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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천광암]맹수, 젖소, 말… 세 가지 기업관

    영국의 위대한 지도자 윈스턴 처칠은 민간기업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즉 기업관(觀)을 3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어떤 사람들은 기업을 쏴 죽여야 하는 맹수로 간주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기업이 끊임없이 우유를 짜낼 수 있는 젖소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현명한 사람들만이 기업은 수레를 끄는 말이라는 사실을 안다.” 처칠이 활동했던 때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더 지난 지금 민간기업의 역할이나 위상은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기업은 2009년 기준으로 전 세계 인구의 81%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으며 총생산량의 94%를 창출했다. 세계 10대 기업의 총매출을 합하면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 100개의 국내총생산(GDP)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다. 기업이 경제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이처럼 크기 때문에, 경제 정책의 성과는 정부가 기업 정책을 얼마나 잘하는지에 따라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기업 정책을 잘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기업관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 정부가 경제와 민생 분야에서 낙제점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경제 정책의 첫 단추에 해당하는 기업관이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한 포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삼성이 글로벌 1위 기업이 된 것은 1∼3차 협력업체들을 쥐어짠 결과다. 삼성이 작년에 60조 원의 순이익을 냈는데 여기서 20조 원만 풀면 200만 명한테 1000만 원씩 줄 수 있다.” 처칠의 분류에 따르면 홍 원내대표의 기업관은 맹수론과 젖소론이 뒤섞인 것이다. 현명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업관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정치인의 말이라는 게 때와 장소에 따라 절반쯤 깎아서 듣기도 하고 더해서 듣기도 해야 하는 것이어서 홍 원내대표의 말에 지나치게 시비를 걸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정작 걱정스러운 대목은 현 정부가 내걸고 있는 핵심 정책들이 ‘현명하지 못한’ 기업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참여연대 출신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주도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정책들은 대기업이라는 존재를 ‘을(乙)을 착취하고 압박하는 부당한 갑(甲)’으로 상정한다. 이 틀 안에서 보면 기업, 특히 대기업은 한시도 눈을 떼선 안 되는 감시와 개혁의 대상이다. 이 맹수(대기업)를 때려잡으려면 때때로 엘리엇과 같은 해외 투기자본의 편을 들어주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국민연금이 도입하기로 한 스튜어드십 코드도 제도 자체보다는, 기저에 깔린 이런 발상과 정서가 위험한 것이다. 경제민주화 정책이 맹수론적 기업관에서 나온 것이라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젖소론적 기업관 위에 서 있다.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2년간 29%라는 인상 폭이 과하거나 말거나 정부가 인상률을 결정하면 기업은 군소리 없이 따라야 한다. ‘대기업 젖소’는 그래도 견딜 만하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아우성은 마른 젖을 쥐여짜이는 고통에서 나오는 비명이다.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경제민주화 정책이나 최저임금 파격 인상을 앞세운 소득주도 성장론처럼 잘못된 기업관에서 파생한 정책으로 경제가 살아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경제가 잘 돌아가고 민생이 윤택한 나라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세금 부담을 낮추고 규제를 풀어 기업이 마음껏 뛸 수 있게 해주는 곳들이다. 경제가 움직이는 원리는 단순하다. 말이 가면 수레도 가고, 말이 멈추면 수레도 멈춘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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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천광암]최저임금 차등화 못할 이유 없다

    벼랑 끝에 간신히 발끝을 걸치고 서 있는 사람을 밀어서 떨어뜨리는 데는 많은 힘이 필요하지 않다. 손가락 하나로도 충분하다. 오랜 불경기와 씨름하면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상당수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들에게는 현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이 바로 그 손가락에 해당한다. 사용자 측이라고 해서 최저임금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못 올려주니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는 아우성이 나오는 이유는 감당 능력을 벗어난, 가파른 인상 속도와 경직된 결정 구조 때문이다. 한국의 최저임금이 얼마나 급격하게 올랐는지는 미국 일본 등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2010년 4110원에서 2018년 7530원으로 83.2% 올랐다. 내년 인상률을 감안하면 10년 만에 꼬박 2배가 되는 셈이다. 이에 비해 미국의 연방최저임금은 2009년 이후 줄곧 7.25달러로 제자리걸음을 하는 중이다. 연방최저임금보다 높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주(州)도 많지만, 연방 기준을 그대로 따르는 주도 펜실베이니아 등 22개에 이른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2010년 713엔에서 2018년 848엔으로 올랐다. 인상률이 한국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단순 환율로 계산하면 한국의 최저임금은 2018년 현재 일본의 88% 수준이지만, 구매력을 감안한 환율로는 이미 일본을 추월한 상태다. 최저임금이 아무리 가파르게 올라도 경제가 미국이나 일본만큼 좋아졌다면 문제 될 것은 없다. 현실은 정반대이기 때문에 중소상공인들 사이에서 궁여지책으로 나오는 요구가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한국처럼 최저임금 제도를 획일적, 경직적으로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은 많은 예외를 둬서 제도를 유연하게 운영한다. 일례로 소규모 신문사나 농업 분야의 경우 경영난을 감안해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 신문배달원의 경우도 예외다. 10대들의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작은 배려다. 네덜란드는 최저임금을 15, 16, 17, 18, 19, 20, 21, 22세 이상으로 나눠서 연령별로 차등 적용한다. 일본은 각 지역마다 생계비가 다른 점을 감안해 47개 광역지자체가 제각각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여기에 병행해서 특정 지역 내 특정 산업은 별도의 최저임금(특정최저임금)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현재 233개의 특정최저임금이 존재한다. 주요 선진국 중 경제구조가 우리와 가장 유사한 일본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을 보면 한국이 못 할 까닭이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4년 11월 경영난에 시달리던 음식점 업주들이 서울 여의도 한강둔치에 모여 솥단지 400여 개를 내던지며 항의시위를 벌인 일이 있다. 여기에서 싹이 보인 자영업 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가장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난제였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최저임금을 둘러싼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가장 큰 원인이 돼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취임 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자영업 문제가 현 정부에도 최대 난제 중의 하나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정부가 최저임금 차등화 문제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위원회 뒤에 숨어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서 변죽을 울리는 지원책만 내놔서는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정부가 지금이라도 진지한 대화의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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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천광암]갈림길에 선 삼성바이오

    바이오제약 산업에는 ‘이룸(Eroom)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신약을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이 9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이다. 개발비가 급증하다 보니 바이오신약의 가격은 상식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미국에서 관절염치료제 엔브렐의 1년 약값은 2000만 원, C형간염치료제 소발디의 12주 치료프로그램 약값은 9000만 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룸의 법칙이 지배하는 신약 시장은, 축적된 브랜드력이 없는 한국 기업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하지만 이 법칙이 거꾸로 한국과 같은 후발 주자에게 ‘기회의 창’을 열어주는 측면이 있다. 바이오신약이 비싸다 보니 가격이 싼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시장이 커지고, 분업화가 진행되면서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시장도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이 시장은 우수한 인력과 정밀한 공정기술이 핵심 경쟁력이어서 반도체나 화학 업종처럼 한국 기업들의 강점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분야다. 삼성은 국내 대기업 중 바이오산업의 가능성을 비교적 일찍 간파하고 과감한 투자를 해왔다. 2011년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해 CMO에 뛰어들었고, 2012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미국의 바이오젠 합작 형식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해 바이오시밀러에 진출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시험가동 중인 3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생산 규모에서 스위스의 론자 등을 제치고 세계 1위에 등극하게 된다. 삼성바이오의 미래에, 시장이 거는 기대도 크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시가총액은 지난주 종가 기준 27조1277억 원으로 삼성물산이나 삼성생명을 제치고 그룹 내 2위다. 삼성이 어렵게 개척한 바이오 사업은 현재 비즈니스 외적인 곳에서 암초를 만나 성패의 기로에 서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젠의 콜옵션(특정 조건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 행사 가능성을 이유로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한 데 대해 금융감독원이 상위기관인 금융위원회에 고의적인 분식회계라며 제재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고의라는 결론이 나면 최악의 경우 상장 폐지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금융위는 고의가 아닌 과실에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당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에 대해서는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들이 적정 의견을 냈고, 한국공인회계사회도 2016년 10월 감리를 했으나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낸 바 있다. 더구나 핵심 쟁점 중 하나였던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은, 바이오젠이 지난달 실제로 콜옵션을 행사하면서 일단락이 됐다. 그럼에도 금융위가 이례적으로 시간을 끌면서 고심하는 이유는 일부 시민단체의 압박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논란은 현 정부 들어 권력의 정점에 선 참여연대가 주도해 왔고, 일부 시민단체가 “감리위원 중에서 분식회계가 아니라고 표결하거나 상장 폐지에 준하는 징계 요구를 하지 않는 감리위원은 처벌해 달라”고 검찰에 고발장까지 내놓는 상황이다. 전방위적인 ‘재벌 때리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금융위가 느낄 압박감은 쉽게 짐작이 간다. 하지만 금융위는 자신들의 결정이 삼성뿐 아니라 한국 바이오 산업 전체의 신뢰성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고급 일자리의 보고(寶庫)이자, 반도체를 능가하는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바이오 산업이 정치 외풍에 휩쓸려 싹도 틔우지 못하고 시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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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천광암]독(毒)새우와 포이즌필(poison pill)

    이달 10일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를 찾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용기가 착륙한 곳은 파야 르바르 공군기지다. 싱가포르는 여기 외에도 공군기지를 3곳이나 갖고 있다. 공군력은 F-15SG 등 4세대 전투기 100대를 운용하는 등 동남아시아에서 단연 최강이다. 국토 면적이 서울과 비슷한 작은 나라, 싱가포르가 이처럼 공군력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싱가포르의 군사전략을 일명 독(毒)새우 전략이라고 한다. 독새우는 ‘나를 잡아먹으면 내 몸 안에 있는 맹독 때문에 너도 같이 죽는다’는 경고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한다. 싱가포르가 오늘날 눈부신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은 독새우 전략에 기초한, 튼튼한 안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가의 안보에 해당하는 것이 기업으로 치면 경영권이다. 경영권이 흔들리는 기업은 안보가 불안한 국가와 다르지 않다. 경영권이 불안하면 기업은 투자와 고용 등 일상적인 경영활동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포이즌필(poison pill)이라는 경영권 방어제도다. 포이즌필은 거대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공격이 있을 경우 이사회가 기존 주주들에게 주식을 싼값에 인수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측의 부담을 늘려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제도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보편적인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포이즌필을 도입하는 것은 우리 기업들의 숙원이다. 이 제도는 2010년 국무회의를 통과하는 등 시행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국회에서 무산된 적이 있는데, 산업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도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가 호소문을 냈다. 정부가 기업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한국 기업을 먹잇감으로 삼는 외국 투기자본의 공세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대표적인 행동주의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이 추진한 지배구조 개편을 무산시켰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보았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7000억 원대 소송을 진행 중이다. 엘리엇 같은 투기자본은 한 국가를 부도상태로 몰아넣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진 괴물이 된 지 오래다. 둘째, 외국 투기자본의 공세로부터 경영권을 지켜줄 안전판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해온 국민연금공단마저 기업의 내실 있는 발전보다는 단기적인 주주이익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 예정대로 7월부터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하면 엘리엇 같은 투기자본의 공세에 날개를 달아줄 가능성이 크다. 스스로의 손발을 묶어 행동주의펀드 등과 ‘코드 맞추기’를 하겠다는 것이 스튜어드십코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을 포함해 290개에 이르는 국내 알짜 상장사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수 기업이 경영권 위협 공포에 떨어야 하는 상황이다. 선진국에서도 광범하게 활용되는 포이즌필은 기업에 대한 특혜가 아니다. 삼키려는 물고기에게는 치명적이지만 그 밖의 다른 물고기에게는 아무 해를 끼치지 않는, 독새우의 독과 같은 존재이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 투기자본들이 가장 만만하게 보는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최소한의 방어용 독을 품을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한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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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천광암]자영업자가 울고 있다

    명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5대 그룹 계열사를 다닌 K는 40대 초반에 명예퇴직을 했다. 직장에서 크게 출세할 전망이 안 보이고 명예퇴직금 3억 원을 손에 쥘 수 있어서 한 선택이었다. K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오래 일한 경력을 살려 조그만 사무실에 PC 1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작은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게 막연히 생각했던 것만큼 녹록지 않았다. 실적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이, 빈 사무실만 꾸려가다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사업을 접었다. 내 친구 K와 오랜만에 소주잔을 기울인 것은 작년 이맘때쯤이다. K는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이렇게 말했다. “반(半)백수 생활을 몇 년 해 보니, 동네의 조그만 구멍가게 주인이건 노점상이건 스스로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존경할 만한 대상인지 알겠더라.” K의 진지한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K의 말처럼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커피숍, 치킨집, 빵집이 즐비한 한국에서 자영업으로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통계를 보면 창업해서 5년을 버티는 곳은 10곳 중 3곳에 불과하다. 7곳은 5년 안에 문을 닫는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의 대부분은 임차료와 원료비로 나간다. 장사가 안 돼도 거르는 법이 없는 세금 공과금 신용카드 수수료, 한 달이 멀다 하고 오르는 대출이자까지 내고 나면 살아남기만 해도 잘한 것이다. 장사가 조금이라도 된다 싶으면 이번에는 건물주가 나타나서 “임대료 올려줄래? 짐 싸서 나갈래?”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정부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영업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정책을 줄줄이 쏟아내는 중이다. 일례로 금융권은 3월 말부터 대출 건전성 강화를 명분으로 자영업자 대출을 바짝 조이고 있다. 이것만으로 부족했던지 금융당국과 은행이 태스크포스를 꾸려 개인사업자 대출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기 위한 검토 작업을 하고 있다. 말이 좋아서 ‘점검 강화’이지, 돈 떼일 위험이 높은 자영업자들에게는 대출을 덜 해주고 이자는 더 받으려는 준비운동이다. 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자영업자 부도 확률은 3배가 높아지는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에서, 학식 있는 관료들과 금융 엘리트들이 지금 벌이고 있는 일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어떤가.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것은 둘째 치고 자영업자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가슴을 후벼 판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청와대의 황당한 현실 인식은, 560만 자영업자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인간’으로 보고 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올 초부터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지만, 누구 하나 귀 기울이는 당국자가 없다. 왜 장하성 정책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의 귀에는 자영업자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 것일까. 내 친구 K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 같다. “면면을 봐.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순탄하게 명문 대학을 졸업했고,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된 교수직에, 가진 재산도 노후 걱정 하지 않을 만큼 넉넉한 사람들이잖아. 그들은 본인들이 경제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경제란 게 책상머리에서 알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러다가 평생 모은 퇴직금을 날리지 않을까’, ‘잘못해서 가족을 굶기지 않을까’, ‘은행에 찾아가 무릎이라도 꿇으면 직원들에게 줄 월급을 마련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안 해본 사람들은 모르는 거야.”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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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천광암]당근 없는 소득주도성장의 덫

    최근 SNS에 돌아다니는 유머 중에 “핑계로 성공한 사람은 김건모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가수 김건모는 ‘핑계’라는 노래가 히트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지만, 세상만사 어느 경우에도 핑계를 대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기의 실책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같은 실패를 두 번 세 번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일자리 창출 부진이나 소득분배구조 악화의 원인을 인구구조의 탓으로 돌리려는 최근 경제 관료들의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이달 20일에는 청와대 일자리수석이 취업자 증가세가 둔화된 원인을 인구 감소세가 빠르게 진행된 탓으로 돌렸고, 24일에는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이 올해 1분기(1∼3월) 하위 20% 가구의 소득이 8% 줄어든 이유가 인구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불과 1년 사이에 인구구조에 지각변동이 온 것도 아닌데 실적이 부진한 원인을 여기에서 찾는 것은 핑계를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최근 우리나라의 고용과 분배 사정이 악화된 것은 산업구조나 체력에 맞지 않게 최저임금을 너무 가파르게 올린 것이 원인이다.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치킨집 사장과 편의점 점주 등 영세 자영업자의 비율이 유독 높은 나라다. 가파르게 오르는 임금을 감당할 수 없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종업원을 해고하거나, 아예 문을 닫는 것이 요즘 숫자로 나타나고 있는 경제현상이다. 자명한 이유를 제쳐두고 인구구조를 들먹이는 경제 관료들의 행동에는 문재인노믹스의 간판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에 흠집을 내지 않으려는 동기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외의 유사한 정책과 비교할 때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임금인상을 통해 경제성장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일본의 아베노믹스도 소득주도성장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 성과 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의 노사는 매년 봄 교섭을 통해 한 해의 임금인상률을 정하는 춘투(춘계생활투쟁) 전통이 있는데, 2014년부터 노조들은 굳이 힘들게 투쟁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노조를 대신해서 기업들에 임금을 올리도록 압박하는 이른바 ‘관제(官製) 춘투’를 해왔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 덕분에 일본은 2012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역사상 두 번째로 긴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최장(最長) 경기상승 기록까지 갈아 치울 기세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취업 걱정을 해야 하는 한국 대학생들과 달리 일본 대학생들은 사실상 ‘전원(全員) 취업시대’에 살고 있다. 아베노믹스에 비해 문재인노믹스가 성과가 미흡한 원인은 무엇일까. 두 노믹스의 성패를 가른 근본적인 차이는 정책 믹스(mix)에 있다. 아베 총리는 임금 인상을 압박하는 ‘채찍전략’과 함께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을 과감하게 줄여주는 ‘당근전략’을 함께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노믹스는 기업에 대해 당근 없는 채찍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고 기업의 연구개발에 주는 세제 혜택까지도 줄였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서인지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사정기관들이 총동원돼서 기업들의 사소한 흠집까지도 샅샅이 뒤지고 있다. 문재인노믹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우리 경제에 2차 충격을 주지 않도록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동시에 채찍 일변도의 기업 정책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미물인 나귀조차도 채찍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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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천광암]김상조-최종구 위원장의 ‘삼성 팔 비틀기’

    행정고시 출신으로 과거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A 씨는 책임 회피의 달인으로 통한다. 그는 나중에 탈이 날 소지가 있는 일은 하위기관에 절대 문서로 지시하지 않았다. 전화로 한 다음, 그 내용을 건의 형식으로 정리해서 팩스로 보내게 했다. 우리 공직사회에는 이와 비슷한 ‘면피용 꼼수’가 다양하게 존재해 왔다. 정부기관의 위력을 행사해 초법적 조치를 강요하는 창구지도나, 거수기 역할을 하는 각종 위원회 등이 대표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한 수는 규제 대상의 팔을 비틀되 겉으로는 자율이나 자발 포장을 씌우는 것이라고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주 10대 그룹 경영자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 등을 포함한 지배구조 조정을 주문했다. 그는 “결정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해야 한다”며 자율을 앞세웠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김 위원장보다 앞서 삼성전자 지분 처리 방안을 ‘자발적으로’ 마련하라고 삼성을 두 차례나 압박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는 과연 문제가 있는 것일까.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한 것은 1980년 이전이다. 취득원가는 5690억 원이었는데, 삼성전자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주식가치가 27조669억 원(2017년 말 현재 시가 기준)으로 불어났다. 실패한 투자였으면 아무 문제가 안 됐을 텐데, 역설적으로 성공한 투자여서 일각에 시빗거리를 제공했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주식을 총자산의 3%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지만 취득원가 기준으로 0.2%에 불과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시가로 치면 9.5%가 되지만 이렇게 할 이유가 없다. 3% 초과 금지 조항은 부실 계열사에 대한 대규모 자금 지원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입법 취지상 취득원가를 적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시가를 적용하면 고객 돈을 부실 계열사에 투자하는 것은 괜찮고 우량 계열사에 투자하면 안 된다는 황당한 모순이 생긴다. 금융위원회도 이런 전후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줄곧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를 적용해 왔다. 최 위원장은 지분 매각 논리 중 하나로 ‘자산 편중 리스크’를 들었다. 풀어서 말하면 삼성전자가 망하면 주주나 계약자들이 피해를 보게 되니 주식을 팔라는 이야기다.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매긴 삼성전자의 신용등급은 AA―로 일본과 중국의 국가신용등급보다 한 단계 높다. 일본 정부나 중국 정부가 파산할 가능성보다 삼성전자가 파산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초우량자산을 팔아치우고 B, C급 주식으로 다양하게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 좋은 투자라고 정말로 생각하는지 최 위원장에게 묻고 싶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에는 또 다른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20조 원이 넘는 매도 물량이 주식시장에 쏟아지면 공급 과다로 인한 주가 폭락 등 엄청난 후폭풍이 따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삼성전자 주식에 23조 원 이상 묻어둔 국민연금도 안녕하지 못할 것이다. 삼성의 자율과 자발을 강조하는 정부 당국자들의 뇌리에 ‘이런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나는 지고 싶지 않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자기책임이라면,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권한과 책임의 조화다. 자율과 자발로 포장된 ‘팔 비틀기 행정’은 시급히 사라져야 할 후진(後進) 행정의 유산이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

    • 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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