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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가 의사이면서도 인공지능(AI) 등 공학 지식까지 갖춘 의사과학자 양성에 나섰다. KAIST는 공학과 의학 두 영역에 대한 지식을 갖춘 의사과학자를 육성하기 위해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과기의전원)을 설립하겠다고 12일 밝혔다. KAIST는 의사 자격이 없는 일반 학생을 모집해 4년간 의무석사 과정과 추가 4년의 박사 과정을 거치게 할 계획이다. 의무석사 과정에선 기초임상, 공학 등을 배우고, 박사 과정에서는 깊이 있는 과학 및 공학 과정을 습득하게끔 한다. 포스텍도 2021년 말 공학 기반의 의사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연구중심 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한국에서 임상의가 아닌 과학자의 길을 걷는 의사는 전체의 1% 미만이다. 하지만 실제 과기의전원을 설립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18년째 유지되고 있는 의대 정원이 늘어나야 한다. 의료계의 반발도 변수다. 의료계는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선 의전원 설립보다 보건의료 환경을 개선해 의사가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KAIST가 정말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 싶으면 이미 활동 중인 의사들이 과학자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육성 정책에 힘을 보태는 게 낫다”고 말했다.“AI-데이터 활용할 ‘의사과학자’ 양성” “결국 진료의사 될 것” KAIST “2026년 과기의전원 설립”포스텍도 ‘연구 의전원’ 설립 계획복지부 “KAIST와 협의 한 적 없다”의대 신설보단 정원 확대에 무게 “의사는 앞으로 병원 진료뿐 아니라 병원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공하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결국 ‘의사과학자’가 필요합니다.” KAIST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과기의전원)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12일 의사과학자의 필요성을 이같이 설명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이용한 병 진단, 치료제 개발이 일상화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선 의사이면서 과학자인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 AI 공부한 의사 키우려는 KAIST, 포스텍 2021년 이광형 총장 취임 이후 과기의전원 설립 의지를 지속적으로 드러냈던 KAIST는 앞서 2004년부터 의과학대학원을 설립해 184명의 의사과학자를 길러냈다.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이들을 신입생으로 맞아 공학 지식을 가르쳤다. 이미 의사였기에 생명과학 분야에서 성과를 냈지만 공학 분야에선 성과가 약했다. 과기의전원은 의사 자격이 없는 일반 학생을 모집해 8년간 의학과 과학을 모두 가르친다는 계획이다. 김 교수는 “(임상 중심의) 의대 교육을 마친 이들이 공대 박사 과정을 밟기는 쉽지 않다. (교육 과정에서) 공학 지식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공부를 가르치는 첫 단계부터 공학적 마인드를 갖게 하겠다는 것이다. 2026년부터 신입생을 맞는다는 게 KAIST의 목표다. 포스텍도 2021년 말 난치병, 인공장기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기 위한 공학 기반의 의사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연구 중심 의학전문대학원’ 설립 계획을 밝혔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자체 의전원 설립은 아니지만 울산대 의대와 협력해 상호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의학과 과학 지식을 모두 갖추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의사과학자 등 융복합 인재 양성은 윤석열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윤 대통령은 2월 대전 KAIST 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KAIST 의사과학자 양성을 적극 지원하겠다”며 힘을 실어준 바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6월 바이오 특화 AI대학원 신설, 의과대 내 의료 AI 정규 과정을 개설해 융합인재를 양성하고, 세계적 수준의 의사과학자를 키우겠다는 지원책을 내놨다. ● 의료계 “의대 신설보단 연구환경 개선을” KAIST 등이 추진하는 과기의전원을 설립하려면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적이다. 현재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18년간 3058명을 유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KAIST의 과기의전원 설립 계획에 대해 “협의된 바 없다”고 밝혔다. 현재 고교 2학년생이 대학에 입학하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부는 의대를 새로 만들기보단 기존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안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에선 의사과학자를 육성할 별도의 의대를 신설하기보다는 의사가 보건의료 분야를 계속 연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에 따르면 2021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27조4005억 원 가운데 병원에 투입된 금액은 1499억 원(0.5%)에 그쳤다. 보건의료 투자가 열악한 상황에선 공학을 전공한 의사도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 분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박은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의사과학자를 키운다는 취지 자체는 좋지만, 졸업 후에도 연구를 지속하도록 할 방편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정부가 원룸이나 빌라 등 다가구주택에 전입할 때 동·호수 신고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북 전주시의 한 빌라에서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남자아이와 함께 발견된 숨진 40대 여성 A 씨가 복지 사각지대 집중 발굴조사 대상에 포함되고도 복지 공무원이 동·호수를 몰라 돌아 나온 사실이 알려지자 제도 보완에 나선 것이다. 12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복지 사각지대 대책 점검회의’를 열고 “다가구주택의 동·호수 정보 등 상세 주소의 미비로 위기가구 상담을 못 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복지부에 따르면 A 씨는 건강보험료와 가스요금 등을 내지 않아 7월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집중 발굴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지난달 24일 A 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인 빌라를 방문했지만 전입신고 서류에 호수가 적혀 있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 그후 집배원이 A 씨의 집을 한 차례 더 방문하기로 했지만, 이달 8일 숨진 채 발견됐다. 복지부는 5월 사회보장급여법 시행령을 고쳐 위기가구의 동·호수 정보를 지자체에 제공할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관련 시스템이 아직 구축되지 않은 데다 시스템이 갖춰지더라도 주민등록법상 다가구주택에 전입할 땐 동·호수를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가 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행정안전부 등과 협의해 다가구주택 거주자에게 동·호수 기재 의무를 부여하도록 주민등록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편 A 씨 곁에서 발견된 남자아이는 생후 18개월 정도 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주시는 현재 치료 중인 아이가 의료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사회복지전산관리번호를 부여했고, 전북대병원은 아이 병원비를 지원하기로 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전주=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현세대가 나이 들어 국민연금을 받기 위해 다음 세대가 부담해야 할 부담이 올해 기준으로 1825조 원에 달한다는 추산이 나왔다. 정부와 국회가 국민연금 개혁을 미루는 사이 가입자 1명당 8200만 원의 ‘빚’을 떠안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됐다는 뜻이다.12일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등이 13일 공동 주최하는 ‘연금개혁 어떻게해야 성공하나’ 세미나에서 국민연금 ‘암묵적 부채(미적립 부채)’ 추계를 공개한다. 미적립 부채는 국민연금 가입자가 사망 시까지 수급할 연금 급여에서 앞으로 납부할 보험료와 현재 적립돼있는 기금액을 뺀 금액을 뜻한다.전 교수는 국민연금의 미적립 부채는 올해 1825조 원에서 2050년 6106조 원으로 증가하고, 2090년엔 4경4385조 원에 도달한다고 예상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적립 부채의 비율은 올해 80.1%에서 2050년 109.1%로, 2090년에는 299.3%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올 6월 기준 983조 원에 이르는 기금이 적립돼있지만, 나중에 나눠줄 것까지 계산하면 연기금이 이미 적자 상태나 다름없다는 의미다.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율(내는 돈)은 9%, 소득대체율(받는 돈) 40%다. 통상 약 30년간 보험료를 내고 20년간 연금을 수령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보험료율을 최소 15%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게 많은 재정학자의 예측이다. 최근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는 보험료율을 12~18%로 올리면서 소득대체율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개혁안을 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 교수 추계에선 소득대체율을 50%로 상향할 경우 연금 재정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GDP 대비 미적립 부채의 비율이 올해 109.1%로 오르고, 2050년 132.2%, 2090년 428.8% 수준으로 오른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암묵적 부채가 존재한다는 것은 연금 가입자들에게 약속한 연금 급여지출액의 재원을 연금 가입자들로부터 징수할 수 있는 연금보험료 수입과 연금기금으로 충당하지 못한다는 뜻”이라며 “다음 세대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연금 재정을 안정화하는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우울증 진료를 받은 초등생(만 6∼11세)이 5년 새 1.9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중고교생(만 6∼17세)은 822명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으로 고립돼 생활한 기간이 길었던 영향으로 보인다.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원이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건강보험 진료를 받은 만 6∼17세는 2018년 2만3347명에서 2022년 3만7386명으로 60.1% 증가했다. 그중 증가 비율이 가장 높았던 연령대는 초등학생에 해당하는 만 6∼11세였다. 1849명에서 3541명으로, 무려 1.9배로 증가했다. 만 12∼14세 우울증 환자는 5893명에서 9257명으로, 만 15∼17세는 1만5605명에서 2만4588명으로 각각 늘었다. 교육부가 김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초중고교생 자살자는 2018년 144명에서 2022년 193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이 기간에 자살한 초등학생은 3명에서 11명으로 늘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자살한 초중고교생 822명의 추정 자살 원인은 미상(246건)을 제외하면 학업·진로 문제가 16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정신건강의학과적 문제(161건)와 대인관계 문제(134건)가 뒤를 이었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도 19건이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장기간 학교가 폐쇄되면서 학생들이 교우 관계에서 사회적 지지를 얻기 힘들었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한국이 2020년 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학교를 폐쇄한 기간은 79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멕시코(81주) 다음으로 길었다. 이해우 서울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장은 “정신건강 회복을 위한 심리 상담 지원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8년째 꾸준히 나눔을 실천해온 홍민지 씨(32)는 최근 매달 2만 원을 더 기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엔 기부증에 적힌 이름이 ‘홍민지’가 아니었다. 그 대신 홍 씨의 ‘보물 1호’인 열 살짜리 반려견 ‘모찌’의 이름과 사진이 당당하게 실렸다. 홍 씨가 참여한 기부 프로그램은 반려동물이 기부의 주체가 되는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김병준)의 ‘착한펫’이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이름으로 사랑 나눠요”6일 사랑의열매는 서울 중구 사랑의열매회관에서 ‘착한펫’ 1호 가입식을 열고 프로그램을 정식으로 개시했다. ‘착한펫’은 반려동물 이름으로 월 2만 원 이상 정기기부를 실천하면 개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햄스터, 도마뱀 등 종에 상관없이 어떤 동물이든 그 명의로 ‘착한펫 회원증’을 발급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성금은 취약계층과 반려동물 지원에 사용된다. 반려인 1500만 명 시대를 맞아 성숙한 반려 문화 확산 추세에 맞춰 기획됐다. 프로그램을 개시하기 전부터 전국에서 문의가 몰렸고, 사랑의열매 17개 시도지회별로 ‘1호 기부자’가 탄생했다. 홍 씨와 그의 반려견 모찌는 부산 1호 ‘착한펫’ 기부자다. 홍 씨는 오랜 세월 기부 활동을 해온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기부 문화에 대해 알게 됐다. 모찌를 키운 뒤로는 반려동물에 관한 관심과 애정이 깊어졌다고 한다. 홍 씨가 2016년 11월 직접 나눔을 실천한 첫 대상도 유기동물 보호소였다. 최근엔 세계 고양이의 날(8월 8일)을 맞아 국내 한 고양이 보호소에도 소액을 후원했다. 홍 씨는 “아프고 상처 입은 사람과 반려동물이 모두 소외되지 않고 긍정적인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랑의열매 중앙회 1호 ‘착한펫’ 기부자는 개그맨 심진화, 김원효 씨 부부와 반려견 ‘태풍이’다. 심 씨 부부는 2020년 태풍이 불던 날 구조된 유기견을 입양해 태풍처럼 강하고 튼튼하게 살라며 ‘태풍이’라 이름 짓고 함께 생활하고 있다. 심 씨는 “태풍이를 키운 후로 마음 한구석에 (동물권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됐는데, 한 발짝 떼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인테리어 블로거 이유미 씨와 반려견 ‘순무’, 최원섭 대한무용협회 충북지부 사무차장과 반려견 ‘초코’ 등도 각각 인천·충북 1호로 각각 이름을 올렸다. 행사에선 ‘반려동물 매개 취약계층 지원 사업’ 양해각서(MOU) 체결식도 함께 진행됐다. 사랑의열매는 대한수의사회와 한국애견연맹, 동물권행동 카라와 함께 ‘착한펫’ 프로그램 정착 홍보와 반려동물 및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 사업을 수행할 계획이다.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부회장은 “‘착한펫’을 통해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과 기부 문화가 점차 확대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성금은 유기견 훈련, 취약계층 취업 등에 활용‘착한펫’ 성금은 취약계층과 반려동물을 위한 지원 사업에 쓰일 예정이다. 유기동물 발생 예방과 치유동물 훈련을 위한 지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버려지는 반려동물은 하루 약 250마리로 추산되지만, 그중 극히 일부만 입양된다. 유기동물이 전문 훈련 과정을 밟을 경우 우울증 등을 앓는 취약계층과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치유동물로 활동할 수 있는 만큼, ‘착한펫’ 성금도 여기에 집중할 방침이다. 치유동물 활동을 마친 뒤에는 새로운 보호자에게 입양될 수 있도록 돕는다. 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사람에게 반려동물과 함께 찾아가 말벗이 돼주는 봉사활동도 지원한다. 사랑의열매는 2021년 부산 서구 부민노인복지관을 통해 실시했던 ‘생스(Thanks)! 투.개(犬).더’ 사업을 모범 사례로 고려하고 있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홀몸노인들이 반려동물을 매개로 만나 정서적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혹시 모를 지역 주민과의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 배변봉투 사용법 등 펫티켓(펫+에티켓·반려동물을 기를 때 지켜야 할 공공예절)을 안내하고, 반려동물 건강 관리법도 알려줬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홀몸노인 10명에게 나타난 변화는 놀라웠다. 한 70대 여성 노인은 남편과 사별한 후 집에 도둑이 들까 봐 대형견 한 마리를 입양한 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끊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다른 홀몸노인과 자주 만나 대화하며 바깥 활동이 대폭 늘어났다. 다른 참가 노인은 프로그램 참여 이후 복지관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우울증 위험 점수가 절반으로 낮아졌다. 송지은 사회복지사는 “홀몸노인이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집 밖으로 나서서 소외감을 극복할 계기가 필요한데, 반려동물이 그 역할에 제격이었다”고 말했다. ‘착한펫’ 성금은 취약계층이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관련 산업에 취업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에도 쓰인다. 반려동물을 사랑하지만 경제 형편상 양육비나 치료비를 대기 어려운 경우에도 성금을 지원할 방침이다. 황인식 사랑의열매 사무총장은 “‘착한펫’은 반려동물이 우리에게 주는 무한한 사랑과 행복을 이웃과 나눌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사랑의열매는 도움이 필요한 반려동물과 취약계층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착한펫 참여 문의는 사랑의열매 홈페이지나 나눔콜센터에서 가능하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가 오염수를 바다로 방류하기 시작한 지난달 24일 이후 국내에 수입된 일본산 활어 249t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안전성을 평가하기엔 아직 이른 시기인 만큼, 향후 수년간 정밀 감시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6일 식품의약품안전처 ‘수입식품방사능안전정보’ 사이트에 수록된 검사 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 이달 5일까지 13일간 방사능 검사가 완료된 일본산 수산물은 총 324t이다. 이들은 모두 방사능(세슘, 요오드)가 검출 한계에 해당하는 kg당 0.2Bq(베크렐)도 나오지 않아 ‘적합’으로 판정됐다.이 중 249t은 활가리비(105t)와 활참돔(101t), 활잿방어(17t) 등 활어였다. 수산물 업계에 따르면 활어는 통상 어획부터 선적, 반입, 방사능 검사까지 짧게는 3일, 길게는 5일이 소요된다. 적합으로 판정된 수산물 중에는 오염수 방류 이후 잡힌 것도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국내 모든 수입 식품 및 유통 수산물 검사에서도 방사능이 검출된 사례는 없었다.다만 전문가들은 이 결과를 ‘오염수가 수산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봤다. 식약처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등 8개 현에서 잡힌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어, 현재 국내에 수입되는 수산물은 홋카이도 등 다른 해역에서 잡힌 것이기 때문이다. 조양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해류 흐름을 보면 홋카이도 등 해역에 오염수가 도달하기까지 1년 넘게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라며 “최소 수년간 밀착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식약처는 일본산을 포함한 모든 수입산 수산물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하고 있다. 검사 기준치는 kg당 100Bq로, 미국의 1200Bq이나 유럽연합(EU)의 1250Bq보다 10배 이상 엄격하다. 세슘이 미량이라도 검출되면 수입업체에 삼중수소 등 추가 핵종(核種) 검사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현 세대가 국민연금 수령액을 지금보다 올리면 다음 세대는 번 돈의 30% 이상을 떼이는 ‘보험료 폭탄’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개편안으로 국민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다음 세대의 부담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받는 돈’ 높이면 월급 33∼37%를 보험료로 내야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재정계산위)는 1일 공청회에서 현행 9%인 보험료율(내는 돈)을 12∼18%로 올리면서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현행 40%로 유지하는 개혁 밑그림을 공개했다. 이를 두고 노동자 단체 등은 “더 내고 받는 돈은 그대로인 ‘연금 개악’”이라고 비판했다. 소득대체율도 함께 높이면 어떻게 될까? 3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재정계산위 내부 자료에 따르면 재정계산위원들은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45%나 50%로 높이는 방안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그 결과, 소득대체율을 올릴 경우 기금 소진 시점은 2055년에서 2054년으로 1년 앞당겨진다. 기금 소진 전까지는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소진 후엔 ‘그해 걷어 그해 주는’ 부과식으로 바뀌면서 청장년층의 부담이 급증했다. 소득대체율 40% 유지 시 올해 20세인 청년이 90세(평균 기대수명)가 되는 2093년에는 보험료율이 29.7%로 예측됐다. 올해 20세 청년이 2093년에도 연금을 받으려면 다음 세대가 월급의 3분의 1을 매달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소득대체율을 45%나 50%로 올리면 보험료율이 각각 33.3%, 37.0%로 크게 치솟았다. 2093년은 이번 재정계산위의 재정 목표 시점이다. 재정계산위는 현재 청년층도 먼 미래까지 안전하게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 재정계산위원은 “보험료율을 올리더라도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어떤 변수를 조합해도 다음 세대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복지 장관 “국민 수용성 고려해 정부안 제출”따라서 소득대체율을 기계적으로 올리는 것보다 저소득층에 대한 보험료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더 오래 낼수록 받는 돈도 늘어나는데, 저소득층일수록 법정 가입기간(40년)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전체 가입자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현재 25%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소득대체율을 일괄적으로 올리면 그 혜택은 정규직 일자리를 가진 중산층 이상에게 집중된다. 복지부는 10월 국회에 제출할 최종 정부안에 소득대체율 인상안을 포함시킬지 고심하고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2일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안에서) 논리적 합리성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게 국민의 수용성”이라고 말했다. 장기 재정에 악영향이 있어도 당장 국민 동의를 얻기 위해서라면 소득대체율 인상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경우 장기 재정은 오히려 악화할 수 있어 찬반 갈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개혁의 ‘골든타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는 가입자가 2225만4964명으로 1년 전보다 7만여 명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국민연금 수급자는 43만여 명 늘었다. 가입자 감소는 과거 외환위기 직후나 코로나19 유행 등 일시적으로 발생했지만, 앞으론 인구 구조 변화로 인해 대세에 접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연금연구원은 ‘국민연금 중기재정전망(2023∼2027년)’ 보고서에서 가입자가 지난해 고점을 찍은 뒤 올해부터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한때 30여 곳까지 늘었던 국내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잇달아 사업을 접거나 축소하고 있다. 1일부터 본격 시행되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대상 환자 범위를 ‘재진’ 중심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정부 규제와 기존 업계의 반발로 혁신 서비스가 무산된 ‘타다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비대면 진료 플랫폼 1위 업체인 ‘닥터나우’에 따르면 이 회사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계도기간(6∼8월) 종료에 맞춰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축소했다. 서류로 재진임을 증명해야만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대신 24시간 실시간 무료 의료상담, 대면 진료 병원 예약 등 다른 서비스를 확대해 헬스케어 기업으로의 사업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나만의닥터’는 비대면 진료를 중단하고 건강관리 콘텐츠와 대면 진료 예약 서비스를 하기로 했다. 메듭, 썰즈, 파닥 등 7곳은 계도 기간에 이미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중단했다. 이 플랫폼들이 잇달아 비대면 진료를 축소하거나 중단하게 된 것은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재진을 중심으로 하고, 약 배송은 금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초진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의료기관 접근성이 낮은 섬·벽지에 사는 환자 등에 한해서만 가능하도록 했다. 이 경우 이용자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앞서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 유행하던 2020년 12월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한시적으로 초진과 재진 구분 없이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했다. 약 배송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가 낮아지면서 비대면 진료를 시행할 법적 근거가 사라지자 ‘재진 중심, 약 배송 금지’ 등의 내용을 담아 비대면 진료를 시범사업으로 전환했다. 보건복지부는 법적 근거가 없는 만큼 비대면 진료는 제한적인 범위에서 시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의료법과 대법원 판례 등을 고려할 때 시범사업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하는 건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약 배송의 경우 의약계에서 의약품 오남용 등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대다수의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체가 시범사업 지침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환자의 안전성과 편의성을 동시에 고려해 시범사업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 플랫폼 스타트업들은 그동안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환자 상당수가 초진이었던 만큼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원격산업의료협의회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요청 건수는 5월 일평균 5000여 건이었지만 6월 4100건, 7월 3600건, 8월 3500건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비대면 진료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범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비대면 진료를 금지하는 것에 가깝다”며 “타다 사태 때와 다를 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현재 외진 산이나 산골에서만 가능한 비대면 초진을 병·의원이 먼 수도권 ‘숨은 벽지’까지 확대한다. 급성기 환자가 대면진료 후 비대면 재진을 받을 수 있는 기간도 현행 한 달에서 향후 두 달 안팎으로 늘어난다. 30일 보건복지부는 전날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대한의사협회,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 등 유관 단체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자문단’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비대면 진료는 원칙적으로 의사와 한 번 이상 얼굴을 마주하고 진찰받은 이후에만 허용한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의원 접근성이 낮은 섬·벽지에 사는 환자에 한해서만 초진이 가능하다. 비대면 진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할 당시 감염병 예방법에 따라 한시적으로 초진과 재진 구분 없이 전면 허용했지만, 6월 1일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되면서 허용 범위를 좁힌 시범사업으로 전환했다. 복지부는 섬과 벽지 일부로 제한된 비대면 초진 허용 지역이 너무 좁다는 의견을 감안해 이를 확대할 방침이다. 또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만성기 질환이 아닌 급성기 질환의 경우 비대면 재진의 허용 기간을 늘리기로 했다. 현재는 대면 진료 후 30일 이내에만 재진을 허용하는데, 이 기간이 너무 짧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다만 만성질환의 대면 진료 후 재진 허용 기간은 현행 1년보다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면 진료 간격이 너무 길면 환자의 상태 변화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계도 기간이 31일 종료됨에 따라 9월부턴 마약류 오남용 등 지침 위반 사례를 제재할 계획이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31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이 현행 2급에서 인플루엔자(독감)와 같은 4급으로 낮아진다. 2020년 1월 20일 첫 확진자 발생 이후부터 매일 확진자를 집계해 온 확진자 전수 집계도 3년 7개월여 만에 중단된다. 동네 의원에서 검사받을 때 자비 부담도 늘어난다. 달라지는 점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동네 의원 검사비가 늘어난다는데…. “고열이나 기침 등 코로나19 의심 증상으로 동네 의원에서 신속항원검사(RAT)를 받을 때 현재는 진찰료 5100원만 내면 됐다. 앞으론 진찰료를 포함한 검사비를 2만∼5만 원 내야 한다. 비급여 항목이기 때문에 의료기관마다 비용이 다르다. 다만 만 60세 이상과 기저질환자 등 고위험군의 RAT 부담은 1만 원 수준이다.” ―병원 입원 전 PCR 검사도 돈을 내야 하나. “아니다. 병원 입원이 예정된 환자나 상주 보호자는 지금처럼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무료 PCR 검사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지금처럼 양성이 나온 자가검사키트를 들고 가도 더 이상 무료 검사를 받을 수 없다. PCR 검사가 꼭 필요하면 병원에서 받아야 하는데, 본인 부담이 현행 2만3000원에서 6만 원으로 오른다.” ―치료비 부담도 커지나. “팍스로비드와 라게브리오 등 코로나19 먹는 치료제는 계속 무상으로 지원한다.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완전한 일상 회복’ 이전까지다. 코로나19 중환자의 인공호흡기 등 치료비 일부에 대한 정부 지원은 올해 말까지 유지한다.” ―먹는 치료제는 어디서든 처방받을 수 있나. “별도로 지정된 먹는 치료제 처방 병·의원에서만 받을 수 있다. 기존에 호흡기환자진료센터로 지정된 병·의원 1만2000여 곳이 그대로 처방 기관으로 지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대표 홈페이지(ncov.kdca.go.kr)에서 가까운 병·의원을 찾을 수 있다.” ―백신도 유료화되나. “전 국민 무료 접종을 유지한다. 질병관리청은 현재 유행하는 오미크론 변이의 세부 계통 ‘XBB’를 겨냥한 신형 백신을 들여와 10월 중 접종을 시작할 계획이다. 신형 백신은 현재 증가하는 ‘EG.5’(일명 ‘에리스’) 등 XBB의 하위 변이에 대해서도 중증화 및 사망 예방 효과가 확인된 만큼, 방역 당국은 만 65세 이상 등 고위험군에 접종을 권고할 방침이다.” ―확진자를 세지 않아도 재유행에 제때 대비할 수 있을까.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수 집계를 중단할 뿐 전국 527개 병원에서 양성자 비율을 파악하고 하수를 분석해 전체 유행 규모를 추정하는 표본 감시는 계속한다. 오히려 하수 감시는 아파도 검사받지 않는 ‘숨은 감염자’의 규모까지 추정할 수 있는 방식이다. 영국 등 선진국이 이미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확진 가정에 대한 현금 지원은 끊기나. “현금 지원은 더 이상 없다.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 대한 생활지원비(최고 15만 원)와 종사자 수 30인 미만 기업에 지급했던 유급 휴가비(최고 22만5000원) 지원 제도는 종료된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정부가 응급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표류’를 막기 위해 내년에 2086억 원을 투입한다. 올해보다 599억 원이 늘었다. 보건복지부는 29일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에서 “응급환자의 전원(轉院·병원을 옮김)을 돕는 ‘광역응급의료상황실’을 4개 만드는 데 100억 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상황실은 응급환자가 생겼을 때 수술 일손에 여유가 있는 병원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는 중앙응급의료상황실 1곳이 전국을 책임지는 구조라서 업무 부담이 컸다. 응급환자 정보를 의료진끼리 정확하고 빠르게 공유하는 플랫폼인 응급전원협진망에도 5억 원을 투자한다. 중증 응급환자를 제대로 치료하는 병원을 보상하는 ‘전달체계 개편 시범 사업’과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여러 병원이 순번을 짜서 번갈아 가며 당직을 서는 ‘순환당직제’ 등을 포함한 응급의료 지원 발전 프로그램 예산은 306억 원에서 546억 원으로 늘어난다. 소아응급 분야도 강화된다. 아이가 아플 때 언제든 전화로 상담할 수 있는 ‘24시간 소아상담센터’를 5곳 신설하고, 야간 및 휴일에도 진료하는 달빛어린이병원 46곳에 각 2억 원을 지원하는 등 관련 예산을 54억 원에서 215억 원으로 증액한다. 자·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응급환자 대응을 위해 시군구 위기개입팀을 확대하는 등 정신응급 관련 예산도 778억 원에서 827억 원으로 올린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은 “붕괴 직전이었던 응급의료 분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복지부의 2024년도 예산은 총 122조4538억 원으로 2023년도 예산(109조1830억 원) 대비 13조2708억 원(12.2%) 늘었다. 단일 예산으로 가장 큰 게 기초연금이다. 1인당 월 지급액이 1만1000원 오르면서 내년엔 20조2015억 원이 투입된다. 2018년도 기준 9조1229억 원이었던 소요 예산이 6년 새 2배 이상으로 올랐다. 저출산 분야에서는 부모급여 예산이 올해 1조6215억 원에서 내년 2조8887억 원으로 올라간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소장 이태룡)는 22일 서울 영등포구 광복회관에서 광복 제78주년 기념 연당(硏堂) 이갑성(李甲成) 지사 추모 학술회의를 열었다. 독립운동사연구소에 따르면 연당은 1919년 종교 지도자를 민족대표로 통합하고 학생들을 규합해 3·1운동의 산파 역할을 해 서대문감옥에 투옥됐다. 출옥한 뒤 1922년 11월 이승훈, 한용운 등과 조선민립대학기성회를 조직했다.이후 일제 압박에 상하이로 망명했고 제중약국을 경영하며 독립운동을 지속하다가 귀국한 뒤에는 흥업구락부 사건 등으로 수년간 고초를 겪었다. 광복 이후에는 입법의원을 거쳐 1950년 5월 제2대 민의원에 당선됐고 1965년부터 광복회 초대회장으로 활동한 후 1981년 별세했다.이태룡 소장은 이번 학술회의에서 재판과정에서의 신문조서, 공판진술서를 분석하고 연당의 제적등본을 당시 경남·전남 유력인사의 것과 비교 분석한 자료를 선보였다. 이정은 박사는 연당의 3·1운동 이후 국내외에서 활동한 행적 가운데 상하이에서의 활동상을 분석했다. 허동현 박사는 광복 이후 연당의 정치 참여와 광복회 설립 과정의 이른바 ‘밀정설’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다뤘다.독립운동사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연당의 공적을 기리는 추모의 장을 마련함과 아울러 각종 의혹을 검증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한의사도 의료기기인 ‘뇌파계’(뇌파 측정 기기)를 사용해 치매와 파킨슨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한의사들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가능해진 데 이어 뇌파 측정 기기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8일 한의사 A 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한의사 면허자격 정지 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 제기 10년 만에 내려진 결론이다. A 씨는 2010년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했고, 같은 해 11월 한 언론사가 관련 내용을 담은 기사를 보도했다. 뇌파계는 대뇌 피질에서 발생하는 전압파(뇌파)를 검출해 증폭·기록하는 의료기기로 뇌 관련 질환을 진단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2012년 복지부는 “면허 외의 의료행위를 하고 의료광고 심의 없이 기사를 게재했다”며 A 씨에게 자격정지 3개월의 처분을 내렸고, A 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에 나섰다. 1심 법원은 A 씨의 뇌파계 사용이 허가된 한방 의료행위를 벗어난 만큼 복지부의 자격 정지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과 대법원은 “뇌파계 사용에 특별한 임상 경력이 요구되지 않고 위험도 크지 않다”며 A 씨의 손을 들어 줬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해도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면서 “뇌파계 등 현대 진단기기를 적극 활용해 최상의 치료법을 찾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의료인의 당연한 책무”라며 “정부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규제를 철폐해 국민의 진료 선택권을 보장하고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뇌파 검사(EEG)를 포함한 전기생리학적 검사는 파킨슨병과 치매의 진단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게 세계신경학연맹 등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이번 판결은 의료인 면허 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국민연금 개혁을 논의하는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지금보다 더 내고(보험료율 인상), 지금과 똑같이 받는(소득대체율 유지)’ 방안을 최종보고서에 담기로 했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일명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은 내부 진통 끝에 보고서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의 연금개혁도 소득대체율은 올리지 않고 보험료율만 올리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위원회는 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지역본부에서 최종 21차 회의를 열었지만 위원 간 견해차만 확인한 채 파행으로 끝났다. 위원회는 위원장인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와 12명의 민간위원, 보건복지부 및 기획재정부 국장 등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간 위원회는 ‘내는 돈’인 보험료율(현행 9%)과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현행 40%)을 어떻게 조정할지 논의해 왔다. 연금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 재정건전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재정안정화’파 위원들은 소득대체율은 지금보다 올리지 않고 보험료율만 각각 12%, 15%, 18%로 올리는 방안을 내놨다. 반면 연금 수급자의 노후 보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노후소득보장’파는 소득대체율도 50%로 올리고, 보험료율도 13%까지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현재 65세보다 늦춰야 한다는 데에는 양측이 공감했다. 갈등을 빚은 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해서는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앞서 11일 열린 20차 회의에서는 현재 소득대체율을 유지하는 방안을 ‘다수안’, 올리는 방안을 ‘소수안’으로 보고서에 넣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노후소득보장파 위원들이 반발했다. 18일 회의에서도 격론이 오간 끝에 노후소득보장파 위원들은 “이럴 바에는 차라리 우리 의견(소득대체율 인상)을 보고서에서 다 빼라”고 요구했다. 결국 최종보고서에는 소득대체율 인상안이 빠질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는 현재 ‘만 60세 미만’인 의무 납입 연령(연금을 내는 나이)을 순차적으로 수급 개시 연령과 일치시키자는 데는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30일 공청회를 거쳐 9월 중 복지부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연금개혁안을 만들어 10월까지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온 이웃이 도우미… ‘치매안심마을’ 가보니 치매를 앓아도 병원이 아니라 내가 사는 집, 마을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식당 사장님부터 동네 의사 약사, 집배원까지 모든 이웃들이 함께 환자를 돌봐주는, 그런 마을이 있다. 》16일 오전 11시경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약국. 80대 노인 남성이 평소 먹던 약에 대해 이것저것 묻자 약사가 큰 소리로 차근차근 대답했다. 흔한 약국 풍경 같지만, 이들의 대화가 평범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환자인 윤만석 씨(83)는 치매 판정을 받은 홀몸노인이고, 이 약국은 동네 치매 환자를 특별히 보살피는 강서구 치매안심센터 지정 ‘치매안심지킴이’ 약국이기 때문이다. ● 환자 배회-실종 막는 ‘우리 동네 안심지킴이’ 윤 씨가 치매 판정을 받은 건 지난해 11월이다. 처음엔 믿지 못했다. 평생 옷가게나 복권판매점 등을 운영하면서 계산기 없이도 셈을 척척 할 정도로 머리 쓰는 일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댈 곳도 없는 듯했다. 아내는 3년 전 췌장암으로 떠나보냈고, 자녀들은 모두 먼 곳에 살았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탓에 왕래하는 이웃도 없었고 경로당에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점점 기억을 잃다가 외롭게 요양시설에 들어갈 모습이 그려졌다. 그로부터 아홉 달이 지난 지금, 윤 씨는 요양시설에 입원하거나 상태가 나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치매에 걸린 80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걸음이 기운찼다. 아내를 간병하느라 47kg까지 줄었던 몸무게도 52kg으로 회복됐다고 한다. 윤 씨는 “매일 ‘출근 도장’ 찍듯이 치매안심센터로 산책하러 나오는 게 비결”이라며 웃었다. 치매 환자인 윤 씨가 매일같이 치매안심센터를 다니고 혼자 집 근처를 산책할 수 있는 건 강서구 일대가 치매 노인의 실종이나 배회를 막을 장치로 가득한 ‘치매안심마을’이어서다. 우선 인근 약국과 상점 367곳이 치매안심지킴이로 참여 중이다. 이들은 단골 치매 환자가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면 치매 전담 관리기관인 강서구 치매안심센터에 연락하는 방식으로 치매 환자 실종을 조기에 막는 역할을 한다. 특히 약국에선 치매 환자가 약을 건너뛰거나 한꺼번에 많이 먹지 않도록 요일이 적힌 통에 약을 잘게 나눠 주는 식으로 복약 지도에 더 신경을 쓴다. 송인석 약사는 “약을 받아 간 지 얼마 안 된 환자가 또 약국에 찾아오면 미리 적어둔 보호자 연락처로 전화해서 ‘어르신이 오늘 좀 이상하다’고 알린다”고 말했다. 동네 음식점들은 무료 치매 검사 안내문을 가게에 비치했다가 손님에게 나눠 준다. 등촌동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권민아 씨(56)는 “몇 해 전 아버지가 치매로 진단됐을 때 치매안심센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라며 “손님이 음식을 주문해 놓고 깜빡하거나 할 때면 안내문을 쥐여주며 ‘꼭 검사해 보시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치매 환자가 비슷하게 생긴 건물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아스팔트에 커다랗게 현재 위치를 적어두기도 하고, 주민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두뇌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정류장 벽마다 간단한 퀴즈도 붙여 놨다. 강서우체국 집배원 130여 명도 지난해 9월부터 배회하는 치매 노인을 발견하면 경찰이나 치매안심센터에 신고하는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강서구 치매안심센터는 보건복지부 주관 ‘치매관리사업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최근 3년 연속 최우수상을 받았다. 강선옥 강서구 치매안심센터 총괄팀장은 “직원들이 발로 뛰어다니며 여러 기관을 설득한 결과”라고 말했다.● 사진관-영화관서 일하는 환자들… 주민들과 교류 치매안심마을은 치매 환자가 살던 동네에서 안전하게 돌봄을 받으면서 살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한 행정구역으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선정한다. 보건복지부 ‘제3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16∼2020년)’에 따라 2017년 일부 지자체가 시범 도입했고, 2019년부터 전국으로 확산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710곳이 운영 중이다. 치매안심마을은 초로기(初老期) 치매 환자에게 일자리를 주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40, 50대에 치매로 진단되는 초로기 치매의 경우 한창 생계를 이어가야 할 나이에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가정 경제에도 큰 타격을 입는다. 초로기 치매는 몸을 활발히 움직이고 사회생활을 지속하면 증상 악화를 상당히 늦출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인천광역치매센터의 ‘가치함께 사진관’이다. 지역 주민에게 무료로 가족사진을 찍어서 액자를 만들어 주는 이 사진관에선 특이하게도 손님 응대부터 촬영, 인화를 모두 초로기 치매 환자 10여 명이 담당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역은 사진사 출신 치매 환자 한창규 씨(65). 한 씨는 2018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혈관성 치매로 진단돼 평생 꾸려 온 사진관 문을 닫아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 치매 상담 중 “카메라를 다시 잡는 게 소원”이라는 그의 말을 귀담아들은 센터 직원들이 ‘아예 치매 환자들이 운영하는 사진관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총 188명의 지역 주민이 이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받아 갔다. 한 씨는 “사진 속 이웃들의 즐거운 표정이 눈앞에 생생하다. 내가 누군가에게 다시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경기 시흥시 치매안심센터는 공공일자리 사업을 통해 초로기 치매 환자 3명을 고용해 영화관을 운영한다. 치매 관련 영화만 틀어주는 ‘알츠시네마’다.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이지만 ‘치매 직원’들의 만족도는 높다. 여기서 일하는 치매 환자 A 씨는 “치매로 진단된 후 처음으로 내 손으로 돈을 버니 가족 앞에서 위신이 선다”고 말했다. 치매 환자가 지역 주민과 융화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을 만드는 곳도 있다. 대구 남구 치매안심센터는 지난해 9월 인근 대학 모델과와 협력해 ‘한복 패션쇼’를 열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치매 환자의 우울감도 개선해주고, 치매에 대한 참가 학생들의 인식도 올려줘 일석이조라고 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스트레스를 달래기 위한 프로그램도 많다. 인천 서구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환자와 가족이 함께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그림책으로 그려보는 사업으로 호응을 얻었다. 충북 제천시 치매안심센터는 안마사를 채용해 치매 환자의 가족에게 ‘힐링 마사지’를 하고 있다.● 살던 곳에서 돌봄받아야 비용도 절감 정부와 지자체가 치매안심마을 조성에 힘쓰는 이유 중 하나는 ‘비용 대비 효율’이 가장 높은 길이기 때문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추정 치매 환자는 2021년 88만 명에서 2050년 314만 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측된다. 같은 기간 치매 환자 관리에 드는 연간 의료비와 간병비 등 관리 비용도 18조7000억 원에서 121조7000억 원으로 치솟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처럼 치매 환자를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사실상 ‘격리’시키는 방식을 지속하면 국민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재정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따라서 전국 256개 시군구에 구축된 각 치매안심센터는 해당 지역의 특성에 어울리는 ‘맞춤형 전략’을 구사하려 노력하고 있다. 경북광역치매센터는 면적이 넓고 대중교통이 불편한 경북 지역 특성을 감안해 치매로 진단된 이후에도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칩거 환자’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공립 요양병원이 많은 강원 지역 치매안심센터들은 뇌중풍(뇌졸중) 등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환자들에게 지역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안내하고 있다. 증상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치매 환자가 중증으로 악화하지 않도록 막는 것도 주요 임무다. 치매 중증도를 4단계(최경도, 경도, 중등도, 중증)로 나눴을 때 최경도 환자의 한 해 관리 비용은 1542만 원이지만, 중증의 경우 3312만 원으로 2배가 넘는다. 환자가 중증으로 악화할 때까지 방치하면 당사자에게도 큰 불행이지만, 국가 의료비 측면에서도 부담이 커진다는 얘기다. 서울 강서구 치매안심센터는 초기 치매 환자 가운데 가족의 보살핌을 받기 어려운 이들을 선별해 작업치료사 등이 주 1회 방문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올해 초부터 방문 서비스를 받고 있는 김옥단 씨(87)는 “매주 (작업치료사) 선생님이 오는 날만 기다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정된 예산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다 보니, 센터 측이 대상을 최대한 늘렸는데도 올해 방문 대상은 36명이 한계였다. 김 씨의 딸 신미애 씨(56)가 작업치료사를 배웅하면서 말했다. “선생님, 저희 내년에도 계속 방문 받을 수 있을까요? 그러면 정말 좋겠는데….”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한의사도 의료기기인 ‘뇌파계’(뇌파 측정 기기)를 사용해 치매와 파킨슨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로 한의사들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가능해진 데 이어 뇌파 측정 기기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8일 한의사 A 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한의사 면허자격 정지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 제기 10년 만에 내려진 결론이다.A 씨는 2010년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했고, 같은 해 11월 한 언론사가 관련 내용을 담은 기사를 보도했다. 뇌파계는 대뇌 피질에서 발생하는 전압파(뇌파)를 검출해 증폭·기록하는 의료기기로 뇌 관련 질환을 진단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2012년 복지부는 “면허 외의 의료행위를 하고 의료광고 심의 없이 기사를 게재했다”며 A 씨에게 자격정지 3개월의 처분을 내렸고, A 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에 나섰다.1심 법원은 A 씨의 뇌파계 사용이 허가된 한방의료행위를 벗어난 만큼 복지부의 자격정지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과 대법원은 “뇌파계 사용에 특별한 임상 경력이 요구되지 않고 위험도 크지 않다”며 A 씨의 손을 들어 줬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를 사용해도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대한한의사협회는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면서 “뇌파계 등 현대 진단기기를 적극 활용해 최상의 치료법을 찾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의료인의 당연한 책무”라며 “정부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규제를 철폐해 국민의 진료 선택권을 보장하고 편의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뇌파검사(EEG)를 포함한 전기생리학적 검사는 파킨슨병과 치매의 진단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게 세계신경학연맹 등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이번 판결은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국민연금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재정계산위)가 매달 내는 직장 가입자의 평균 보험료를 최소 9만 원 올리는 개편안에 잠정 합의했다. 보험료를 올리고 연금 수령 나이를 늦추는 등의 조치를 통해 연금기금 소진 시점을 2055년에서 2093년 이후로 미룰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 17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재정계산위는 18일 제21차 회의를 열고 이런 개편안을 담은 보고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한다. 민간위원 13명과 정부위원 2명으로 구성된 재정계산위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재정 여건과 출산율 등을 따져 개편안을 제시한다. 이번이 5차 재정계산이다. 재정계산위는 지난해 11월 30일 이후 약 8개월간 ‘내는 돈’인 보험료율과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을 현행 9%와 40%에서 각각 어떻게 조정할지를 논의해 왔다. 그 결과 소득대체율은 그대로 두고 보험료율을 이르면 2025년부터 12∼18%로 인상하는 ‘재정안정화 방안’과,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서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는 ‘노후소득 보장 방안’을 도출했다. 두 가지 방안 모두 최소 3%포인트의 보험료율 인상을 전제한다. 올 4월 기준 직장 가입자의 월평균 보험료(29만2737원)에 대입하면 직장인은 매달 9만7579원(본인과 회사가 절반인 4만8789원씩 부담)을 더 내야 한다는 뜻이다. 지역 가입자는 월평균 4만2011원을 더 낸다. 복지부는 재정계산위가 내놓은 개편안에 대해 30일경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뒤 10월 말 정부안으로 재정리해 국회에 제출한다.자문위, 국민연금 3%P 더 납부 공감… 받는돈 ‘유지 vs 인상’ 격론 국민연금 보험료 조정 제안연금 보험료율 인상폭 낮추려면받는 나이 늦추거나 국고투입 필요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70년 후에도 국민연금 기금을 남기는 것이다. 이론상으론 5년 후인 2028년에 태어날 아이가 만 65세 노인이 될 때까지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설계한다. 국민들이 ‘미래 세대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대의에 동의해 보험료 인상이라는 ‘쓴 약’을 감내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현행 제도 아래서 보험료 인상만으로 2093년까지 기금을 유지하려면 당장 2025년부터 보험료율을 17.86%로 올려야 한다. 국민이 수용하기도, 국회의 동의를 얻기도 어려운 방안이다. 보험료율 인상 폭을 줄이려면 연금 받는 나이를 늦추거나 국고를 투입하는 등 여러 재정안정화 조치가 동반돼야 한다. 재정계산위가 내놓은 ‘연금 개혁 방정식’이 더욱 복잡해진 이유다.● 재정계산위 방안대로면 수십 개 개편안 나와 재정안정화 방안은 보험료율을 △12% △15% △18%로 각각 인상하는 세 가지 시나리오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연금받는 나이를 현행 65세에서 66∼68세로 늦추거나 연평균 4.5%인 기금 운용 수익률을 5.0∼5.5%로 높이는 등의 조치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구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후소득 보장 방안도 상황은 비슷하다.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서 보험료율을 13% 수준에 묶어두려면 보험료 외에 추가적인 재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건강보험 제도처럼 국민연금 재정에도 국고를 투입하거나, 주식 수익 등 자본소득에도 추가로 보험료를 매기는 보완 조치가 뒤따른다. 재정계산위가 크게 두 가지 방안을 도출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십 개의 시나리오를 제안한 셈이다. 다만 재정계산위 내에선 재정안정성을 고려해 소득대체율을 유지하자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득대체율 인상 필요성을 주장해온 일부 위원은 이런 방향성에 반발해 11일 열린 20차 회의에서 집단 퇴장하기도 했다. 재정계산위는 18일 마지막 회의를 열고 내부 의견 봉합에 나설 방침이다. ● 국민연금 개편안, 다시 복지부로 일각에선 국민연금 개편에 있어서 모두가 만족하는 방안이 도출되기 어려운 만큼, ‘최선’이 아닌 ‘차악’의 방안일지라도 실행에 옮기는 데 더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8년 4차 재정계산 당시엔 복지부가 재정 안정과 노후소득 보장 사이에서 한쪽을 택하지 못한 채 복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원동력을 잃었고, 개편도 결국 무산됐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복지부는 10월까지 국민연금 개편안을 제출해야 한다. 이번에도 수십 개의 시나리오를 받아 든 복지부가 단일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개혁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연금 개혁은 다시 공전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초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국민연금 개편안 도출에 실패하고 복지부로 공을 넘긴 바 있다. 만약 이번에도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포함한 개혁안이 좌절되면, 5년 후에는 더 비싼 청구서를 받게 될 게 확실시된다. 재정계산 시점으로부터 70년 후까지 기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율은 2013년 3차 재정계산 당시 12.72%였지만 2018년엔 16.02%로 올랐고, 올해 기준으로는 17.86%가 됐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파행에 대해 대대적인 감사를 앞두고 행사 준비를 총괄해 온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잼버리 사태를 둘러싼 전 정부와 현 정부 책임론을 주장하는 여야 간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 잼버리 조직위원회와 집행위원회가 출범한 2020년 7월부터 여성가족부는 장관이 조직위원장을, 전북도는 도지사가 집행위원장을 각각 맡아왔다. 14일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문제가 된 음식과 의료, 화장실 (위생), 해충 (방제) 등은 조직위의 업무”라며 “여가부가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라며 여가부에 책임을 돌렸다. 반면에 여가부는 “책임 의식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여야도 각각 ‘전 정권 책임론’과 ‘현 정권 책임론’을 주장하며 치받았다.● 여가부 ‘유체 이탈’ 브리핑 조민경 여가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김현숙) 장관은 (잼버리) 조직위원장으로서 대회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있다”면서도 “책임 의식이 부족했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여가부 책임론’에 선을 그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잼버리 관련 우려가 제기되자 “(여가부가 폐지돼도) 제가 꼭 책임지고 (전북도에) 잘 이관되도록 하겠다”고 한 김 장관의 답변이 여가부의 책임 의식 부족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질의에 대한 반박이었다. 여가부는 조직위원회 소관 예산 870억 원 가운데 상당액이 운영비고 시설비는 일부였다는 지적에 대해선 “예산 편성과 사용에 대해선 감사원 감사에서 짚어질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태풍 ‘카눈’ 북상에 따라 대원들이 조기 철수하면서 추가 소요된 예산을 묻는 질문에도 “추후 답하겠다”고 밝혔다.● 전북도지사 “파행 알려진 건 SNS 발달 때문” 김 지사는 이날 오후 전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잼버리 파행에 대해 “개최지 도지사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국민께도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어진 질의응답에선 여가부를 지목해 질타를 쏟아냈다. 김 지사는 “이번에 문제가 된 음식과 의료, 화장실 (위생), 해충 (방제) 등은 명확하게 조직위원회의 업무”라며 “(조직위원회의) 사무총장과 기획부장 등을 여가부 직원들이 맡았기 때문에 여가부 장관이 관심을 기울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이고도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예산도 여가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여가부 출신인 사무총장 지휘 아래 집행됐다”며 “권한이 아닌 부분에 대해 (전북도가) 책임지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답했다. 그는 잼버리를 지렛대 삼아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따냈다는 비판에 대해선 “허위사실”이라며 “새만금 SOC는 잼버리 유치 이전인 2014년 9월 새만금 기본계획에 이미 반영된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존 매립지 대신 공유수면(갯벌)을 잼버리 부지로 선정하고 매립공사에 농업관리기금 1846억 원을 끌어들였다는 지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김 지사는 대회 초반부터 부실 운영 문제가 불거진 원인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대원들이) 부모에게 보낸 사진이 금방 이슈화됐다”거나, 화장실 위생 문제에 대해 “영국 (잼버리) 대표단이 철수를 정당화하려고 부각했을 수 있다”고 안이하게 평가한 것도 논란이 됐다. ● 대통령실, 현 정부 책임론에 “적반하장” 정치권은 잼버리 파행을 둘러싼 ‘남 탓’ 공방을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소한 이 정부 들어 있었던 준비 부족에 대해 인정하기 바란다”며 “국정조사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잼버리 부실 사태에 대해 제대로 된 백서를 기록하고 교훈을 남기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매립도 되지 않은 새만금에 잼버리를 유치하자고 주장했던 민주당, 잼버리 준비 기간 6년 중 무려 5년을 날려 버린 문재인 정부, 일선에서 예산을 집행하며 조직위 실무를 맡았던 전북도 등 민주당의 책임이 훨씬 더 엄중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정부 책임론’을 제기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문 전 대통령이 잼버리 관련 글을 올려 현 정부를 비판했다’는 질문에 “한 신문이 오늘 사설에서 ‘적반하장이고 후안무치’라고 썼다”며 “그런 평가를 유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전날 페이스북에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며 현 정부 책임론을 제기한 바 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전주=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파행에 대해 대대적인 감사를 앞두고 행사 준비를 총괄해 온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잼버리 사태를 둘러싼 전 정부와 현 정부 책임론을 주장하는 여야 간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 잼버리 조직위원회와 집행위원회가 출범한 2020년 7월부터 여성가족부는 장관이 조직위원장을, 전북도는 도지사가 집행위원장을 각각 맡아왔다. 14일 김관영 전북도지사는“문제가 된 음식과 의료, 화장실(위생), 해충(방제) 등은 조직위의 업무”라며 “여가부가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라며 여가부에 책임을 돌렸다. 반면에 여가부는 “책임 의식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여야도 각각 ‘전 정권 책임론’과 ‘현 정권 책임론’을 주장하며 치받았다.● 여가부 ‘유체 이탈’ 브리핑 조민경 여가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김현숙) 장관은 (잼버리) 조직위원장으로서 대회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있다”면서도 “책임 의식이 부족했다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여가부 책임론’에 선을 그었다. 지난해 10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잼버리 관련 우려가 제기되자 “(여가부가 폐지돼도) 제가 꼭 책임지고 (전북도에) 잘 이관되도록 하겠다”고 한 김 장관의 답변이 여가부의 책임 의식 부족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질의에 대한 반박이었다. 여가부는 조직위원회 소관 예산 870억 원 가운데 상당액이 운영비고 시설비는 일부였다는 지적에 대해선 “예산 편성과 사용에 대해선 감사원 감사에서 짚어질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태풍 ‘카눈’ 북상에 따라 대원들이 조기 철수하면서 추가 소요된 예산을 묻는 질문에도 “추후 답하겠다”고 밝혔다.● 전북도지사 “파행 알려진 건 SNS 발달 때문” 김 지사는 이날 오후 전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잼버리 파행에 대해 “개최지 도지사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국민께도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이어진 질의응답에선 여가부를 지목해 질타를 쏟아냈다. 김 지사는 “이번에 문제가 된 음식과 의료, 화장실 (위생), 해충 (방제) 등은 명확하게 조직위원회의 업무”라며 “(조직위원회의) 사무총장과 기획부장 등을 여가부 직원들이 맡았기 때문에 여가부 장관이 관심을 기울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이고도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예산도 여가부 장관의 승인을 거쳐 여가부 출신인 사무총장 지휘 아래 집행됐다”며 “권한이 아닌 부분에 대해 (전북도가) 책임지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답했다. 그는 잼버리를 지렛대 삼아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따냈다는 비판에 대해선 “허위사실”이라며 “새만금 SOC는 잼버리 유치 이전인 2014년 9월 새만금 기본계획에 이미 반영된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존 매립지 대신 공유수면(갯벌)을 잼버리 부지로 선정하고 매립공사에 농업관리기금 1846억 원을 끌어들였다는 지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김 지사는 대회 초반부터 부실 운영 문제가 불거진 원인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대원들이) 부모에게 보낸 사진이 금방 이슈화됐다”고, 화장실 위생 문제에 대해선 “영국 (잼버리) 대표단이 철수를 정당화하려고 부각했을 수 있다”고 안이하게 평가한 것도 논란이 됐다. ● 대통령실 “현 정부 책임론에 ‘적반하장’” 정치권은 잼버리 파행을 둘러싼 ‘남 탓’ 공방을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소한 이 정부 들어 있었던 준비 부족에 대해 인정하기 바란다”며 “국정조사 필요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잼버리 부실 사태에 대해 제대로 된 백서를 기록하고 교훈을 남기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매립도 되지 않은 새만금에 잼버리를 유치하자고 주장했던 민주당, 잼버리 준비 기간 6년 중 무려 5년을 날려 버린 문재인 정부, 일선에서 예산을 집행하며 조직위 실무를 맡았던 전북도 등 민주당의 책임이 훨씬 더 엄중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정부 책임론’을 제기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문 전 대통령이 잼버리 관련 글을 올려 현 정부를 비판했다’는 질문에 “한 신문이 오늘 사설에서 ‘적반하장이고 후안무치’라고 썼다”며 “그런 평가를 유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전날 페이스북에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며 현 정부 책임론을 제기한 바 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전주=박영민기자 minpress@donga.com김준일기자 jikim@donga.com}

“여성가족부에 대해 과잉 지탄이 가해지고 있어서 말씀드리기 어렵다.”(2020년 7월 잼버리 조직위원회 첫 구성 당시 이정옥 전 여가부 장관) “행정안전부가 구체적인 책임을 지기는 어렵다고 본다.”(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던 기간 행안부 차관을 지낸 A 씨) 동아일보는 11일 막을 내린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의 파행 원인을 묻고 재발을 막기 위한 백서(白書)를 쓰기 위해 10∼13일 잼버리 준비와 운영에 참여한 관계기관의 전현직 책임자 11명을 인터뷰했다. 이 가운데 본인이나 소속 기관에 책임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취재팀이 인터뷰를 시도한 대상은 잼버리 조직위원회 소속 5개 기관(여가부, 행안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스카우트연맹, 더불어민주당 김윤덕 의원)을 비롯해 집행위원회를 맡은 전북도, 대통령실, 국무조정실 등 총 8개 기관이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과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는 통화가 성사되지 않았다. 수차례 전화와 문자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문체부와 행안부, 대통령실, 국무조정실은 “답하기 곤란하다”며 자세한 답변을 거부했다. 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인 김 의원은 “지금 시점에선 답하기 적절치 않다”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지만 13일 기자회견에서 “힘이 센 기관이 일선 공무원을 희생양 삼기 위한 감찰 시도로는 본질을 규명할 수 없다”며 국회 국정조사를 제안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잼버리 행사의 컨트롤타워는 (전북도가 아닌) 조직위원회였다”고 답했다. 일각에선 이처럼 아무도 책임지거나 반성하지 않는 현실이 잼버리 행사를 ‘3000억 원짜리 관재(官災)’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용모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중앙 부처와 전북도가 모두 책임 규명 과정에서도 ‘남 탓’으로 일관한다면 앞으로 잼버리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前여가장관 “과잉지탄” 前행안차관 “책임못져” 前총재 “잘못없다” 반성 없는 ‘파행 잼버리’갯벌 부지 선정 책임자들 침묵조직위 2인→5인 위원장 변경뒤 책임소재 모호… 서로 네 탓만총리 주재 회의도 2차례 그쳐잼버리 조직위원회는 여가부 장관을 중심으로 5명이 공동 위원장을 맡았다. 전북도지사는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세계스카우트연맹 역시 의사결정에 관여했다. 예산과 인력 등을 총괄한 여가부와 기반 시설을 담당한 전북도 외에도 여러 기관을 참여시킨 이유는, 폭염 등 재난안전 관리는 행정안전부가 맡는 식으로 전문성과 책임감을 발휘해 행사를 성공시키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일을 떠넘기다가 행사가 파행으로 흐르자 책임을 피하기 급급했다. 행사에 관여한 전·현직 관계자들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런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갯벌 야영장’ 선정-점검 책임자들 “난 잘못 없다” 잼버리 행사는 2015년 9월 전북 부안군 새만금을 국내 후보지로 정한 것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비판이 많다. 기존 매립지 대신 갯벌을 부지로 정하면서 매립 공사에만 3년이 소요됐고, 다른 행사 준비도 줄줄이 지연됐다. 부지 선정 당시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김윤덕 의원이 ‘새만금에 유치하자’는 의견을 처음으로 냈고, 송하진 당시 전북도지사가 이를 적극 추진해 한국스카우트연맹이 확정했다. 이와 관련해 2012년 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한국스카우트연맹을 이끈 함종한 전 총재는 “(나는) 사실 새만금을 찬성하지 않았는데 여러 사람이 밀어붙여서 결정됐다”며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생각나는 게 없다”고 말했다. 송 전 지사는 여러 차례 취재팀의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김 의원도 13일 기자회견에서 부지 선정과 관련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2017년 8월 잼버리 유치가 확정된 이후에라도 정부가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했다면 세계스카우트연맹에 부지 변경을 신청해볼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여가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장관 일정에 따르면 전임 장관 4명 중 새만금을 방문한 사람은 정영애 장관뿐이었다. 정현백 전 장관은 잼버리 파행에 대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면서도 본인이나 여가부의 책임에 대해서는 “다음에 필요할 때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진선미 정영애 전 여가부 장관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에 총리도 ‘총괄’ 역할 손 놔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도 행사 준비가 막바지에 이른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행사 개막을 불과 6개월 앞둔 올 2월까지 야영장 전기·통신 설비 진행률이 5%에 그쳤다. 샤워장과 급수대는 3월에야 설치하기 시작했다. 잼버리 행사 준비에 참여했던 한 공무원은 “여가부와 한국스카우트연맹, 전북도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당초 2인 체제(여가부 장관, 김 의원)였던 조직위는 2월 행안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가 위원장으로 추가된 5인 체제로 바뀌었다. 하지만 책임 소재는 오히려 더 불명확해졌다. 대표적인 게 폭염 대책이다. 행사 시작 후 참가자 사이에서 온열질환이 속출하면서 폭염 대책이 부실을 드러냈지만, 안전 대책을 맡은 행안부도 책임을 피하기 바빴다. 전직 행안부 차관 A 씨는 “(행안부) 자치행정과 소속 십수 명이 전국 상황을 챙겨야 한다”며 “(잼버리에 대해) 행안부가 구체적인 책임을 지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태풍 ‘카눈’이 북상하자 K팝 공연 장소를 급하게 바꾸고 아이돌 그룹을 무리하게 섭외했다는 논란에 대해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날짜를 바꾼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통령실과 국무조정실도 다양한 관계 기관의 업무를 조율하는 역할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대회를 원만하게 마무리한 후 그때 논의해도 늦지 않다”며 언급을 피했지만, 내부적으론 전북도의 책임이 크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은 모두 잼버리 행사와 관련해 ‘정부의 적극 지원’을 약속해 왔다. 잼버리 사업예산 1171억 원 중 잼버리 조직위원회가 870억 원(75%), 전북도가 265억 원(22%), 부안군이 36억 원(3%)을 집행했다. 지자체 탓만 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국무조정실은 2021년 4월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정부지원위원회’를 꾸렸지만 회의는 같은 해 11월과 올 2월 두 차례만 열렸다. 국무조정실 측은 “(파행 책임 등은) 추후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부안=박영민기자 minpress@donga.com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