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영

유재영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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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부터 정치, 사건, 검찰, 법원 담당 취재를 해오다 2014년부터 스포츠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스포츠에서도 영웅과 야인의 시대를 취재하겠습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스포츠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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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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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기 감독 불성실 경기” 역대최다 벌금 1000만원

    프로농구에서 불성실한 경기 운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KGC 김승기 감독(사진)이 1경기 출전 정지와 제재금 1000만 원의 중징계를 받았다. 한국농구연맹(KBL)은 14일 재정위원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KGC 구단에 대해서도 경고 조치를 내렸다. 발단은 11일 안양에서 열린 KGC와 LG의 경기에서였다. KGC가 78-85로 뒤진 상황에서 경기가 1분 39초 남았을 때 LG 이원대가 소유한 공을 가로채려던 KGC 이재도에게 파울이 선언되자 김 감독이 판정에 불만을 나타내는 동작을 취하며 주전 선수들을 백업 선수들로 교체했다. 이전부터 몇 차례 판정 시비를 일으켰던 심판의 ‘콜’이어서 감정 절제가 더 안 됐다. LG의 자유투 2개 성공으로 9점 뒤지긴 했어도 KGC가 승부를 포기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정상적인 공격을 진행시키지 않고 그대로 경기를 끝마치게 해 팬들의 원성을 샀다. KGC는 78-89로 패했다. 더구나 안방경기여서 팬들의 실망감은 더 컸다. KBL이 불성실한 경기 운영을 이유로 해당 감독에게 출전 정지 징계를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슷한 사유로 징계가 내려진 것은 앞서 두 차례 있었다. 전창진 KCC 감독은 KT 감독 시절인 2012년 10월 KCC전에서 단 한 번도 작전 타임을 부르지 않고 팀의 패배를 지켜봤다. KBL은 경기를 포기한 듯한 인상을 준 전 감독에게 제재금 500만 원을 부과했다. 추일승 오리온 감독도 2017년 3월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플레이오프를 대비해 주축 선수를 대거 기용하지 않았다가 제재금 500만 원의 징계를 받았다. 김 감독은 경기 후 심판 대기실 앞에서 부적절한 언행으로 항의한 점까지 고려돼 징계 수위가 높아졌다고 KBL은 설명했다. 제재금 1000만 원은 2008∼2009시즌 플레이오프 때 최희암 당시 전자랜드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받은 제재금과 같은 역대 KBL 최고 액수다. KBL의 한 관계자는 “위기인 프로농구를 모두 살려 보자고 할 때 팬들을 외면하는 사태가 벌어져 유감이다. 일벌백계 차원에서 중징계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경솔했다.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자숙하겠다. 팬들과 농구인들에게 백배사죄 드린다”고 말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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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관왕 최민정 ‘바깥에서 치고나가기’ 살아났다

    화려한 부활이었다. 오른손에 3개, 왼손에 2개 모두 5개의 금메달을 들어 보인 ‘쇼트트랙 여제’ 최민정(22·성남시청)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최민정이 11일부터 13일까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5개 종목 우승을 휩쓸며 전관왕에 등극했다. 500m, 1000m, 1500m, 3000m 슈퍼파이널, 3000m 계주에서 모두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섰다. 남자 에이스 황대헌(21·한국체대)은 금메달 4개를 목에 걸었다. 황대헌은 개인전 3종목과 계주(5000m) 석권에 3000m 슈퍼파이널에서만 7위를 했다. 유럽과 중국, 캐나다의 일부 간판급 선수들이 불참하긴 했지만 최민정과 황대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인기’를 과시했다. 올해 신설된 이 대회는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비유럽 국가 선수들이 출전했다. 대학교 학업에 따른 훈련 부족 등으로 컨디션 회복에 어려움을 겪으며 올 시즌 부진을 겪었던 최민정은 학기를 마친 뒤 ‘아웃코스 추월의 도사’답게 전 종목에 걸쳐 막판 뒤집기의 진가를 오랜만에 발휘했다. 박세우 전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현 전북도청)은 “최민정의 아웃코스 추월이 무서운 것은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이다. 아웃코스 추월은 체력 소모가 엄청 심하다. 일반 선수들은 한 바퀴 반 정도 아웃코스로 나가다가 추월을 못 하면 그냥 경기를 망치게 되는데 최민정은 다르다”고 치켜세웠다. 박 전 감독은 “최민정의 아웃코스 추월을 보면 그냥 멀리서 도는 게 아니라 상대 선수에게 밀착해 돈다. 거리 손실을 줄이면서 추월하는 것”이라며 “그만큼 ‘페널티’가 나올 확률이 높은, 일반 선수들에게는 힘든 고급 기술”이라고 덧붙였다. 원조 ‘여제’ 전이경 전 싱가포르 대표팀 코치도 “여자 선수들이 정상 코스에서 한 바퀴 랩타임 최고 스피드가 8초6∼7 수준인데 이웃코스로 추월하려면 8초4∼5 정도가 나와야 한다. 이를 최민정은 이겨냈는데 지금 ‘톱클래스’ 선수들의 절대 스피드가 빨라진 만큼 최민정도 ‘전매특허’의 속도를 더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취약 종목인 남자 500m에서 세계 최강의 면모를 과시 중인 황대헌은 ‘번개 스타트’가 갈수록 위력을 더하고 있다. 네 바퀴 반만 도는 최단거리 종목인 500m는 첫 반 바퀴 스타트에서 앞 순위를 차지하면 거의 최종 순위로 굳어진다. 그는 첫 반 바퀴 스타트 6초대 중후반 랩타임으로 지난 2년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다. 황대헌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스타트 때 앞으로 튀어나가는 순발력을 키우기 위해 상체를 크게 키웠다. 한국 쇼트트랙의 레전드인 김기훈 울산대 교수는 “황대헌은 종목별로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기량을 끌어올린 것 같다. 굉장히 발달된 상체를 보면 단거리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새해를 힘차게 열어젖힌 최민정과 황대헌은 다음 달 7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리는 월드컵 5차 대회에 나선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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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슛 800개 던지니 본고장 선수들도 끄덕”

    2016년 7월 17세 이하 스페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주장을 맡아 한국 남자 농구 사상 첫 국제농구연맹(FIBA) 주관 대회 8강 견인. 그해 9월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스페인 리그에 진출해 유럽 무대 경험…. 한때 세계 농구가 ‘뜨는 별’로 주목했고 한국 남자 농구의 대들보가 될 것으로 평가받던 특급 유망주 양재민(21·200cm)은 지금 ‘꽃길’을 마다하고 농구의 본고장 미국으로 건너가 고군분투하고 있다. 2018년 연세대에 입학한 양재민은 ‘미국 농구를 밑바닥부터 경험하려면 지금밖에 없다’는 생각에 한 학기 만에 팀을 나와 미국으로 향했지만 여건이 맞지 않아 받아줄 대학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15달러를 내고 참가한 농구 캠프에서 만난 강사의 추천으로 캔자스에 있는 니오쇼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했다. 우리로 치면 2년제 전문대. 전미대학체육협회(NCAA)보다 주목받지 못하는 전미전문대학체육협회(NJCAA) 리그에서 뛰다 보니 어느덧 국내에서는 잊혀진 선수가 됐다. ○ 훨씬 강한 선수들… 부딪쳐 나를 깼다 “전문대 리그라 만만하게 봤는데 아니더라고요. 우리 팀 20명이 모두 NCAA 1부 대학 편입이 목표라 경쟁이 엄청 심해요. 1학년 때는 가드들이 패스도 안 줬어요. 국내에 있을 때는 내가 제일 잘한다는 생각에 우쭐했는데….” 결국 실력, 열정, 노력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하루 800개의 슛 연습을 거르지 않았다. 외곽 득점력을 키워 여러 포지션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렸다. 영어가 서툴러 대화가 어려웠던 감독에게는 하고 싶은 말을 메모지에 써서 확실하게 의사를 전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2학년이 되면서 입지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양재민은 “감독님이 잘 봐 준 덕분인지 팀에서 유일하게 모든 경기에 선발로 나가고 있다. 가드들도 패스를 잘해 준다. 가드들이 ‘하프코트를 넘으면 무조건 재민이를 봐라’고 얘기한다”며 만족해했다. 힘든 경쟁을 자극제로 받아들이는 방법도 배웠다. 그는 “센 선수들한테 많이 깨졌다. 너무 깨지니 내가 정말 발전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럽기도 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얻어가는 건 확실히 있었다. 자신보다 더 큰 상대를 등진 채 공격을 시도하는 일대일 포스트업은 ‘자신 있다’고 표현할 정도가 됐다. “할수록 머리싸움에 능해지더라고요. 포스트업을 하면 아시아 출신을 낮게 보는 선수들은 막으려고 기를 쓰죠. 그럴 때 ‘페이크’를 몇 번 하면 100% 속아요. 그리고 슛을 넣으면 희열을 느끼죠.”○ “미국서 농구할 수 있는 새 길 열고 싶어” 지난해 11월에 시작한 NJCAA 리그는 2월이면 끝난다. 5월에 졸업하는 양재민은 NCAA 1부 학교 편입이 당장의 목표다. 아직 정식 제안은 받지 못했지만 관심 있는 몇몇 학교가 팀 감독에게 양재민에 대해 물었다고 들었다. 지난 세 학기 성적도 평균 3.7(4.0만점)로 최상위급이고, 영어도 불편 없이 구사한다. 조건은 다 갖춘 셈이다. “고생을 겪으며 한국 농구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이 더 강해졌다고 할까요. 주위를 보면 중국, 대만, 일본 선수들은 많아요. 이미 미국에서 농구할 수 있는 길을 앞선 세대가 뚫어놓은 덕분이죠. 선진 농구를 배우려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미국에서 길을 잘 닦아놔야겠다는 결심이 서더라고요. 미국프로농구(NBA) 진출이라는 거창한 목표는 나중이고 일단 아무도 가지 않은 새 길을 열고 싶습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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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 ‘8연속 올림픽’ 뒤엔 미친 존재감 ‘마당쇠’

    한국 축구는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8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세계에서 유일한 기록이다.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했던 서울 올림픽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곱 번은 본선 진출 티켓이 걸린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피 말리는 승부를 벌인 끝에 얻어낸 결과다. 항상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비장의 카드를 내밀어 성공했던 경우가 꽤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왕성한 활동으로 상대의 주력 선수를 묶은 ‘마당쇠’ 같은 선수들이 그 주인공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는 노정윤과 김병수(강원 감독)가 중원에서 전천후 역할을 했다. 상대 공격수를 일대일로 방어하면서 비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노렸다. 궂은일을 하면서도 노정윤은 바레인과의 첫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뜨렸고, 김병수도 지면 무조건 탈락이었던 일본전에서 후반 종료 직전 결승골을 넣고 팀을 구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는 최성용(전 수원 코치)이 당시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의 ‘히든카드’였다. 좌우 풀백을 소화하면서도 빠른 발과 쉬지 않는 움직임으로 상대 공격의 시작인 ‘게임메이커’들을 꽁꽁 묶었다.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인 일본전(2-1 승)에서 일본 전력의 반이라고 했던 마에조노 마사키요를 원천봉쇄한 것은 지금도 회자되는 활약이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박진섭(광주 감독)이 해박한 전술 이해를 바탕으로 공수를 넘나들며 팀을 올림픽으로 이끌었다. 이후에도 김동진, 오장은, 강민수(울산), 한국영(강원), 문창진(인천) 등이 마당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을 겸해서 열리는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는 맹성웅(안양), 원두재(울산) 등이 그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맹성웅은 ‘김학범호의 소금’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맹성웅은 “어떤 상황도 대비할 수 있도록 이미지 트레이닝을 계속하고 있다. 상대 역습을 1차적으로 저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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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흥민 이적료 1032억… 유럽리그 랭킹 54위

    국제축구연맹(FIFA)이 손흥민(28·토트넘)을 올해에도 1000억 원대 가치가 있는 선수로 평가했다. FIFA 산하 국제스포츠연구소(CIES)는 8일 발표한 ‘2020년 유럽 5대 리그 선수들의 예상 이적료’ 보고서에서 손흥민의 몸값을 7850만 유로(약 1032억 원)로 평가했다. 손흥민을 소속 구단의 동의 없이 데려가려면 연봉을 제외하고 이 정도 금액을 토트넘에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지난해 초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토트넘을 결승에 진출시키며 9330만 유로(약 1219억 원)를 기록했을 때보다는 떨어졌다. 그래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독일 분데스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 프랑스 리그앙 선수를 통틀어 54번째이고, EPL 선수로는 25위다. CIES는 5000만 유로 이상의 이적료를 받을 만한 선수들만 추렸는데 아시아 선수로는 손흥민이 유일하다. 2015년 이적료 3000만 유로(약 392억 원)에 독일 레버쿠젠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한 손흥민의 몸값은 2017년 4480만 유로(약 523억 원)로 뛰었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낸 직후에는 1억230만 유로(약 1337억 원)까지 솟구치며 정점을 찍었다. 한편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는 지난해에 이어 최고 몸값을 기록했다. EPL을 대표하는 공격수인 라힘 스털링(맨체스터시티)과 무함마드 살라흐(리버풀)가 그 뒤를 이었다. 살라흐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세네갈 특급 사디오 마네(리버풀)가 5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2월 23일 첼시전에서의 퇴장으로 3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고 6일 축구협회(FA)컵 미들즈브러와의 경기에 복귀한 손흥민은 12일 안방에서 이번 시즌 패배를 모르는 리그 단독 선두인 리버풀(19승 1무)을 상대로 자존심 회복을 노린다. 토트넘은 최근 3경기에서 1승 1무 1패로 부진했다. 손흥민은 부상으로 이탈한 해리 케인을 대신해 최전방 공격수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손흥민은 “우리는 케인을 제외하고도 공격수로 뛸 수 있는 선수가 많다. 어떤 상황에서든 싸우고 경쟁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0-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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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대통령, 독자적 남북관계 개선 의지… 비핵화 언급은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신년사에서 밝힌 2020년 대북 정책의 핵심은 북-미 대화만 지켜보는 관전자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은 물론이고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도쿄 올림픽 남북 단일팀, 접경지대 협력 등 남북 협력 제안을 쏟아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구상이 실현되려면 북한의 도발 위기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동시에 극복해야 한다. 여기에 정치권에서는 “북한의 반응에 따라 문 대통령의 대북 유화정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4월 총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운신 폭 넓히겠다”던 文, 5대 남북 협력 제안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4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 등에 대해 논의하며 대북제재 완화 움직임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2일 신년 인사회에서 “남북 관계에 있어 더 운신의 폭을 넓히겠다”고 한 문 대통령은 이날 구체적인 남북 협력 아이템도 제시했다. 이는 문 대통령이 2019년을 성과 없이 흘려보냈다고 본 데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년간 남북 협력에서 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며 “북-미 대화가 성공하면 남북 협력의 문이 더 빠르게, 더 활짝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이런 기대와 달리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한반도는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은 다양한 남북 협력을 통해 올해 남북 관계 개선과 북-미 대화 진전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북한 관광 활성화에도 큰 뒷받침” “국제적인 지지” “남북이 도약하는 절호의 기회” 등의 표현을 써가며 김 위원장의 화답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나는 거듭 만나고 끊임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 공조에 대해선 “미국과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완성을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자적 남북 관계 개선 추진으로 인한 한미 간 불협화음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일본에 대해선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며 처음으로 신년사에서 미-일-중-러 4강 국가를 모두 열거했다. ○ 비핵화-北 도발-국제사회 설득 등은 언급 無 문 대통령은 계속된 북한의 긴장 고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북한이 동창리에서 중대한 실험을 했다고 과시하고, 김 위원장이 새 전략무기까지 공언했지만 문 대통령은 “무력의 과시와 위협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만 했다. 이날 신년사에서 ‘평화’를 17번, ‘남북’을 14번 언급한 것과 달리 북-미 대화의 궁극적 목표인 ‘비핵화’는 한 차례도 말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는 북핵과 비핵화에 대해 6번, 지난해에는 1번 언급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을 추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하노이 노딜’ 이후 번번이 한국을 향해 비난을 쏟아내며 대화의 문을 닫은 북한이 문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남북 관계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거듭 강조하고 있는 스포츠 교류 분야에서도 북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2, 3월에 열리는 서울 동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와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엔트리 제출과 참가 신청 마감은 각각 26, 17일까지다. 한 외교 소식통은 “문 대통령의 제안에 북한이 화답하면 그때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선(先)제안 후(後)설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는 제안에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 문 대통령의 입지가 더 좁아질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도 “청와대가 미국을 설득하려 나선다 해도 국제사회 전체가 반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독자적인 남북 교류 확대에는 악화된 북한에 대한 여론도 부담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6일 발표한 대북 정책 방향 관련 여론조사에서 ‘강경책’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36.1%로 ‘현행 기조 유지’(28.1%), ‘유화책’(25.3%)보다 높았다.한상준 alwaysj@donga.com·한기재·유재영 기자}

    •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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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성곤 3점포만 6방… KGC 단독선두 축포

    프로농구 KGC가 이번 시즌 첫 단독 1위에 올랐다. KGC는 7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삼성과의 안방경기에서 문성곤(18점·사진), 박지훈(16점), 브랜든 브라운(12점), 김철욱(12점) 등 4명이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데 힘입어 삼성을 73-67로 꺾었다. 가장 먼저 20승(11패) 고지를 밟은 KGC는 이날 경기가 없는 SK(19승 11패)를 2위로 떨어뜨렸다. KGC 포워드 문성곤은 1쿼터 기선을 제압하는 3점슛 3개를 터뜨린 것을 포함해 프로 데뷔 후 개인 최다인 6개의 3점포를 터뜨리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가드 박지훈은 10개의 도움을 배달하며 야전사령관 노릇을 제대로 했다. 3쿼터까지 11점 차로 뒤졌던 삼성은 4쿼터에서 강압 수비로 체력이 떨어진 KGC의 범실을 유도하며 62-64까지 쫓아갔으나 이후 무리한 슛과 공격 범실, 자유투 실패 등으로 역전 기회를 놓쳤다. 2연패를 당한 삼성은 13승 18패로 8위에 머물렀다. 오세근과 변준형이 부상으로 이탈한 가운데서도 선두를 꿰찬 KGC는 상무 소속 가드 이재도와 슈터 전성현이 8일 제대 후 팀에 합류할 예정이라 향후 전력 운용에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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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VP 김보경, 친정 전북 ‘금의환향’

    지난해 프로축구 K리그1 우승팀 전북이 국가대표 미드필더 김보경(31·사진)을 다시 품에 안았다. 전북은 5일 “지난해 울산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K리그1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김보경을 영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6년 전북 소속으로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팀 우승에 한몫을 하고 이듬해 일본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했던 김보경은 3년 만에 전북으로 복귀했다. 원소속팀 가시와 레이솔에서 지난해 울산으로 임대됐던 김보경은 2019년 35경기에서 13득점 9도움으로 팀 공격을 이끌었다. 지난해 우승은 했지만 로페즈, 문선민에게 의존하는 단조로운 공격으로 골 결정력이 떨어져 고전했던 전북은 정확한 패스와 연계 플레이는 물론 기습적인 공격으로 득점력까지 갖춘 김보경의 영입으로 공격에 날개를 달았다. 전북은 “ACL 우승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아시아 최고의 미드필더진 구성이 필요했는데 김보경은 최적의 선수”라고 밝혔다. 전북은 가시와가 울산과의 임대 계약이 끝난 김보경에 대해 잔여 계약을 포기하자 발 빠르게 접촉해 영입을 성사시켰다. 김보경은 “전북에 돌아와 기쁘다. 팬들의 성원과 열정을 잊지 못한다”며 “아시아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영광을 팬들과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고 복귀 소감을 밝혔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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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텔 빌려 국내 식재료 음식 24시간 제공

    2020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단이 올림픽 기간 선수촌 인근에서 24시간 국내 식자재로 만든 급식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대한체육회는 2일 “지난해 말 일본 지바현에 위치한 ‘헨나호텔 마이하마’(사진)와 임대 계약을 마치고 이곳을 선수단 급식지원센터로 활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호텔은 도쿄 시내에 있는 올림픽 선수촌과 2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8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체육회는 이곳에 한국산 식자재를 공급하고 진천선수촌 조리사들을 파견할 계획이다. 이는 방사능 오염 식자재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동안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원전 사고로 방사능 피해를 본 후쿠시마현 일대에서 생산된 쌀과 농수산물 일부를 선수촌 급식에 사용하겠다고 해 참가국들의 반발을 샀다. 체육회 관계자는 “우리 선수들은 선수촌 식당을 이용하되 필요할 경우 우리 식재료로 만든 도시락과 식사 등을 지원받게 될 것”이라며 “일본으로 들여갈 식자재, 또 일본 현지에서 구매할 한국산 식자재 종류와 양 등은 일본 당국과 통관 협의를 거친 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단의 사기 진작을 위한 포상 지원책도 마련했다. 체육회는 메달리스트 포상금으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당시 32억 원보다 13억 원 늘어난 45억 원을 확보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 후 금·은·동메달 포상 금액을 확정할 계획이다. 리우 올림픽 당시 금메달리스트는 6300만 원,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선수는 각각 3500만 원, 2500만 원을 받았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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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양한 프로그램, 전문의가 건강 관리… “실버 삶이 즐거워요”

    서울 성북구 종암동 ‘노블레스타워’.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인 이곳에는 모든 엘리베이터에 의자 2개가 놓여 있다. 고령 입주자들이 편히 앉을 수 있게 놓아둔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보이스피싱 대응법이 적힌 벽보가 붙어 있다. 백마씨앤엘㈜이 2008년 준공한 노블레스타워 곳곳에는 이처럼 사소한 것부터 작은 배려가 엿보인다. 백마씨앤엘은 12일 실버타운 업계에서는 최초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증하는 소비자중심경영(CCM) 인증을 받았다. CCM 인증은 기업의 주된 활동을 소비자 중심으로 구성하면서 관련 경영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지를 한국소비자원이 평가하고 공정위가 인증하는 국가공인 제도다.○ 자식들에게 먼저 소개하는 황혼 독립 공간 “대부분 먼저 자식들에게 적극 이곳을 소개하고 입주를 하셨어요.” 서상수 백마씨앤엘 신사업개발팀 과장은 실버타운을 찾는 트렌드가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령 입주자들이 노인 주거시설로 분류되는 실버타운 입주를 먼저 결정해 자식들에게 알린다는 것. 운영사 입장에선 입주자들의 편의, 건강관리, 여가 수준을 계속 업그레이드, 리모델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서 과장은 “입주자들의 가족이나 자녀들에게도 입주 전에 타워에 와서 모든 서비스를 미리 체험해 보라고 권한다”며 “경험해 본 후에는 상당히 만족스러워한다”고 말했다. 300여 명이 사는 239가구는 걸리거나 미끄러져서 다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문지방을 없애고 욕조에도 안전봉을 설치했다. 거실과 화장실 벽에는 긴급 호출 버튼이 붙어 있다. 계절별 맞춤 식단이 짜인 식당과 골프연습장, 피트니스센터, 탁구장, 당구장, 수영장, 찜질방, 온천사우나 등 없는 게 없다. 시설마다 전문가들이 배치돼 있다. 전원형 폭포와 연못도 있고, 건물 밖에 있는 둘레길을 걸을 수도 있다. 본관 1층에 자리한 병원은 내과 전문의와 간호사를 상주시키고 ‘노블레스타워 부속의원’으로 명칭을 붙여 입주자들이 믿음을 갖고 방문하도록 했다. 인근 경희의료원과 고려대 안암병원과도 협력 관계를 맺고 전문 치료와 회복에 신경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수면제 및 안정제 사용 빈도가 높은 고령 입주자들의 낙상 사고 위험 대비 차원에서 관리 직원들의 감독과 홍보 횟수를 늘렸다. ○ “우리는 잘 놀고 있다” ‘아들, 딸들아. 행복하게만 잘 살아주렴. 엄마, 아빠는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잘 놀고 있다.’ 타워 곳곳에서는 한문희 백마씨앤엘 대표(61)가 직접 입주자들의 마음을 대변해 쓴 시나 글을 여럿 볼 수 있다. 그중 본관 한쪽에 붙은 글의 마지막 문구, 자식들에게 전한 솔직한 당부가 매우 인상적이다. 1993년 백마건설을 설립한 한 대표는 2011년 고려대 대학원(지리학)에서 ‘고령화에 따른 실버타운의 개발과 발전 방안’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실버타운 박사 1호’로 불린다. 한국형 실버타운을 정착시키는 게 꿈인 그는 실제 입주자들이 여전히 건강한 사회 일원으로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부대시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해 내놓고 있다. 부모를 이곳에 실제 모셔보고 얻은 노하우를 밑천 삼아 나이가 들어 입주해도 재미나게 살 만한 프로그램 인프라를 계속 발굴하고 싶다고 했다. 입주자 송송자 씨(75)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서비스가 너무 많아 사는 재미가 난다. 삶의 질과 만족도가 높아졌다. 다른 입주자들을 보면서 앞으로의 내 삶도 설계하게 됐다”고 치켜세웠다. 주간 프로그램 계획 안내표를 보니 상당히 알차다. 주별로 안내하는 프로그램에 각각 확실한 목표가 수식어로 달려 있다. 요가 수업인데 ‘폼 나는 실버 요가’다. 탁구 교실인데 ‘탁구 달인’을 목표로 내밀었다. 월∼금요일 매일 아침 하는 아침체조와 걷기 운동과는 별도로 운동 프로그램은 요추부 안정화와 어깨 부위 운동, 고령체조 등 부위별로 집중했다. 얼마 전엔 한 대표의 아이디어로 입주자들이 충남 공주 단풍 나들이, 순천·여수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2020년에는 해외여행도 계획 중이다. 식당은 시끌벅적했다. 간호사들이 식당 내를 돌아다니며 입주자들에게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통해 현재 건강 상태나 원하는 여가 활동 등에 대한 정보가 모아지고 서비스나 프로그램 등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식사를 거르거나 식당에 나오지 않은 입주자들은 기록했다가 바로 가구를 방문해 어떤 일이 있는지 확인한다. 지역 주민이나 젊은 세대들과의 소통 기회도 잦다. 타워 수영장은 인근 고려대와 국민대 학생들이나 지역 어린이 수영반 학생들에게도 개방해서인지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입주자들과 어울린다. 타워의 프로그램에도 대학의 사회복지학 전공 학생들이 수시로 참관해 격 없는 대화를 나눈다. 입주자 신순자 씨(85)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통 기회가 많아지니 스스로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며 뿌듯해했다.○ 더 나이 많은 입주자의 건강관리 비법도 배운다 40년간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은퇴한 뒤 이곳에 입주한 김상호 씨(72)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취미 생활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러던 그가 이곳에 와서 가곡 교실 프로그램에 푹 빠졌다. 그는 실버타운의 큰 장점으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입주자들을 보고 각성할 수 있다는 것을 꼽았다. 김 씨는 “장수하는 어르신들의 생활, 건강관리 패턴과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지하철까지 빠르게 걸어가시는 분들을 보면 ‘나도 아직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도전의식이 생긴다”고 했다. ‘노블레스타워’ 입주자 300여 명 중 약 70명이 90대 이상. 김 씨의 말대로 이들의 존재감이 60∼80대 입주자에겐 인생 후반부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또 다른 동기 부여가 되고도 있다. 한 대표는 “직원들이 늘 입주자 자녀와 인터넷 및 ‘입주자 소식 SMS 서비스’로 소통하고 있고 명절에 초대도 한다”며 “자신들도 부모 연세가 될 때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도심형 실버타운이 고령화 시대에 던진 가장 큰 기대 효과가 아닐까 하는 것이 그의 분석. 노년의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실버타운의 한 모습이다. 백마씨앤엘은 실버타운과 요양원 입주 경계에 있는 노년층을 위한 ‘1인 타운’을 세울 부지를 추가로 확보했고 2020년 착공을 앞두고 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1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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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od&Dining]세상에 없던 예술적인 맛!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아웃백)가 외식업계의 지속적 불황 속에서도 올해 매출 2500억 원 달성을 눈앞에 두면서 2013년 이후 사상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보인다. 1997년 한국에 진출해 22년간 대중에게 본토 스테이크 맛을 알린 아웃백은 최근 ‘아웃백 토마호크 스테이크’로 대표되는 프리미엄 스테이크 시장까지 개척하면서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아웃백은 2016년부터 브랜드 체질 개선에 초점을 두고 까다로워진 소비자를 위해 프리미엄 스테이크의 개발에 전력을 다했다. 2014년 가장 먼저 선보인 ‘블랙 라벨 스테이크’는 5년 만에 누적 판매 400만 개를 돌파하며,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스테이크라는 기록을 세웠다. 최근에는 수석 요리사가 시즌별로 내놓는 ‘블랙 라벨 스테이크 셰프 에디션’으로 사랑받고 있다. 2017년 7월 한국 진출 20주년 기념으로 선보인 ‘아웃백 토마호크 스테이크’는 아웃백의 20년 노하우를 담은 집약체다. 이 스테이크는 3cm가 넘는 두꺼운 고기와 뼈를 함께 조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아웃백은 적절한 맛을 찾기 위해 1년간 연구개발에 매달렸다. 출시 이후 외식업계에 뼈 있는 스테이크(bone-in)가 유행하기도 했다. 실제로 토마호크 스테이크 출시 이후 해당 부위 수입량이 200% 증가했으며, 출시 2년 만에 50만 개 판매를 돌파했다. 이어 ‘팬슈머’(팬과 소비자의 합성어) 고객들의 평가를 통해 서비스와 사이드 메뉴를 업그레이드했다. 토마호크 스테이크와 블랙 라벨 스테이크는 스테이크 본고장인 미국과 미식의 나라인 홍콩으로도 역수출하고 있다. 아웃백은 맛뿐 아니라 스테이크를 즐기는 경험을 연출함으로써 팬슈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토마호크 스테이크는 ‘세상에 없던 예술적인 스테이크’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스테이크가 조리되는 과정을 다양한 예술 분야와 결합시켜 보여주는 광고를 통해 한 차원 높은 음식 광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도 세계적인 케이팝 안무가 리아 킴과 함께 스테이크가 탭댄스, 재즈와 만나는 광고를 기획했다. 고객과의 소통은 계속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고객들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스테이크 아카데미’가 대표적이다. VIP 고객, SNS 팬 등을 초대해 특별한 스테이크 노하우를 알리고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올해 4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열린 아웃백 스테이크 아카데미에는 고객과 임직원 200여 명과 본사 수석 요리사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차별화된 멤버십 전략도 유지하고 있다. ‘아웃백 부메랑’ 멤버십의 신규 멤버로 등록하면 에피타이저 무료 쿠폰과 생일 쿠폰을 증정하고 제휴 혜택과 별도로 10% 할인 혹은 3% 적립 혜택도 준다. 아웃백 VIP 멤버십은 레드와 블랙 두 단계로 나눠 방문 시마다 음료 한 잔이 무료로 제공된다. 올해 여름에는 VIP 고객들에게 나눠준 ‘아웃백 밀크컵’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아웃백은 팬슈머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다이어리, 우산, 에코백 등 기획 상품도 출시했다. 최근에는 블록을 제작하는 세계적인 완구 브랜드인 옥스포드와 협업해 ‘아웃백 블록 크리스마스 에디션’을 내놓았고, 이 제품은 인기리에 판매됐다. 아웃백 관계자는 “국내 스테이크 분야에서 22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메뉴를 개발하는 등 고객들에게 지속적으로 새로운 스테이크 외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애써 왔다”며 “앞으로도 맛과 비주얼로 즐거움을 주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1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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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즈는 도착지 정하지 않은 여정… 내 삶도 재즈와 닮아”

    “제가 어떤 음악이든 선입견 없이 받아들여요. 그래서 (대중이) 좋아하나 봐요.” 혈혈단신 프랑스에 진출해 세계적인 재즈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한 나윤선(50). 서울 강남구에서 3일 만나자마자 ‘나윤선 재즈’의 정체성을 물었더니 겸손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지난달 28일 프랑스 정부가 주는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장을 수훈했다. 2009년에는 이보다 한 단계 아래 등급인 슈발리에장을 받았다. 한국 보컬리스트 중 두 차례 문화훈장을 받은 이는 그가 유일하다. “지난 10년을 제 입으로 평가할 수는 없죠. 그저 공연 때마다 응원하고 영감을 주는 팬들을 보면서 ‘재즈로 인간적, 문화적 가교 역할을 잘했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노래 한 곡에 여러 갈래로 파생된 팬들의 감동을 공유하고 있다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쪼르르 떨어졌다. 훈장을 받았다고 해서 거창한 목표를 묻는 건 진부했다. 역시 답은 “없어요”.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한 뒤 이듬해 무작정 프랑스로 날아가 하루하루 재즈를 몸으로 배운 여정을 돌아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떻게 하다 보니 프랑스에 갔고, 또 독일과 미국으로 가고…. 우연의 연속이었어요. 재즈 같은 삶이라고 할까요. 오늘 공연, 지금 즉흥적인 순간에 집중하고 싶어요.” 그래서일까. 세계적인 재즈 스타인데 무대 의상도 몇 벌 없다. 메이크업은 혼자 한다. 개인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안 한다. “음악은 강요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제 곡을 들으세요”라는 말도 삼간다고 했다. 그는 “모든 감각을 동원하고 귀를 사방으로 열어 악기 소리를 듣고 순간에 감정을 맡기는 편이다. 그래서 재즈가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대를 압도하는 ‘디바’라고 표현하자 바로 손사래를 쳤다. “재즈는 개인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라며…. 나윤선에게 재즈는 ‘소박한 만남의 음악’이다. 이 신념을 갖고 무대에 섰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목소리가 점점 저음으로 바뀌어 가는 것에 대해서도 오히려 “더 따뜻한 소리를 들려줄 수 있겠다”며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올해 4월 10집 앨범 ‘Immersion’(몰입)을 내고 7개월가량 월드투어에 나섰던 그는 12일부터 전국 투어에 돌입해 국내 팬에게 몰입한다. 국내 팬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작은 고민도 있다. 바로 ‘시선’이다. “아직도 무대에서 관객을 바라보면 긴장을 해요. 그래서 눈을 감고 노래하는 게 편한데 관객들은 눈을 떴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이번 공연이 도착지를 정하지 않은 그의 재즈 여정에 또 한 번 의미 있는 추억이 될 것 같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전생에 비행기나 자동차여서 어디를 가야 마음이 편하다고 하는데 정말 딱 맞는 얘기예요. 지금까지와 같은 재즈 인생이 이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19-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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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년 전, 亞대회 첫 우승 이끈 농구 원로들…“몸싸움 대비해 합기도 훈련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 11월29일은 한국 농구 역사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날이었다. 농구인들도 잘 모르는 날이다. 대부분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한다. 농구 인기가 급상승한 요즘 한 번쯤 되돌아볼 가치가 있는 추억의 시간이다. 50년 전인 1969년 이날은 한국 남자 농구가 처음으로 아시아 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한 날이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ABC)대회 풀리그 마지막날 한국은 당시 아시아 최강이었던 필리핀을 꺾고 8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현장에서 라디오 중계가 됐지만 속보나 경기 내용을 전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아서 신문들은 12월1일자 지면으로 일제히 우승 소식을 지면에 알렸다. 이 대회를 생생히 경험했던 농구계 원로들은 첫 아시아 제패라는 의미를 넘어 농구가 처음으로 국내에 보급된 뒤로 60년 가까이 우물안 개구리였던 남자 농구가 한 단계 도약한 변곡점으로 평가한다. 이 대회 우승 분위기를 타고 한국 남자 농구는 이듬해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따냈고, 또 그해 최초로 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 나서 첫 승의 쾌거를 얻었다. 이인표(76) 전 한국농구연맹(KBL) 경기위원장과 김인건(75) 전 KBL 경기본부장은 신동파(75) 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과 함께 1960년대 남자 농구 대표팀을 이끈 주역으로 첫 아시아 대회 우승의 산증인이다. “요즘 프로농구 경기장에 팬들이 많이 찾아주셔서 너무 뿌듯하다”는 두 전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50년 전 우승의 감격이 서렸던 태국 방콕의 체육관을 방문하려 했었다. 개인 사정으로 계획을 접었지만 대신 50년 전 추억이 현재 프로농구 인기를 끌어올리는데 ‘스토리텔링’으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싶어 함께 기억을 더듬었다. 내용의 현장감과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대담 그대로를 전한다. ● 필리핀 거친 플레이 대비 합기도, 낙법 훈련까지▽김인건= 우승한지 딱 50주년이네. 원래 방콕의 체육관을 가려고 했는데, 다들 바빠서 포기를 했어. 그 때 감독이 박상영 선생님이었고, 김영기(전 KBL 총재) 코치, 김영일 주장이 있었지. 김영일씨는 나중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지. 우리들이 제일 위였지. 바로 아래가 신동파, 조승연, 신현수가 있었고. ▽이인표= 하나 밑이 최종규, 박한 이렇게 됐지. ▽김인건=또 그 아래가 서상철, 유희영, 이자영이었어. 그 때 나는 해병대에 있었을 때야. 50주년이 됐는데 멤버들이 보고 싶네. 지금 총무가 유희영인데 3개월 만에라도 한 번씩 봐야겠어.▽이인표=박 감독 생각이 나네. 1969년 대회 때 방콕 그 더운 날씨에 감독이 직접 물 양동이 들고 다니면서 수건을 적셔 선수들 주고 그랬잖아. ▽김인건=그랬지. 선수는 무거운 것 들면 안 된다고 본인이 매니저 역할까지 했잖아.▽이인표=필리핀 애들 참 거칠었었어. ▽김인건=몸싸움을 엄청 했었어. 그 때는 심판 두 명이었는데 심판이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치고 들어오는 거야. ▽이인표=필리핀 대비한다고 종로 YMCA 체육관에서 태권도, 합기도를 배웠잖아. 운동하다 말고. 하하. ▽김인건=한 달 동안 유도 낙법, 떨어지는 것만 연습했던 게 기억나네. 필리핀하고 마지막 경기할 때 날 막던 선수하고 계속 부딪혔어. 그런데 경기 중에 체육관에 정전이 된 거야. 그 순간 누가 나를 한 번 칠 것 같더라고. 진짜 흰색 유니폼을 입은 필리핀 애가 다가오길래 ‘그래, 한 번 붙자’고 덤볐지. 그러니까 이 친구가 위 유니폼을 벗고 벤치로 도망가더라고. 그 때 불이 들어온 거야. 그걸 본 태국 관중들이 웃고 난리가 났었지. ▽이인표=우리가 세게 덤비니까 나중에는 필리핀 애들이 움찔움찔하면서 도망다니더라고. 필리핀은 우리가 존(지역방어)을 쓰면 정말 꼼짝 못했어. ▽김인건=미국인 코치가 필리핀 경기를 보고 맨투맨만 고집해서는 안 되겠구나 생각한거야. 그래서 매치업존(혼합 수비, 상대의 공격 형태에 따라 맨투맨과 지역방어를 섞는 형태)을 처음으로 시도한 거지. ▽이인표=미 8군에는 대학에서 농구를 제대로 했던 선수들이 많았잖아. 의정부, 동두천, 오산 등을 돌면서 연습 경기를 한 게 도움이 많이 됐어. 공격에서는 자기 수비에 수비 한 명을 더 붙이고 노마크 찬스를 만들어주는 패턴을 많이 연습했지. ▽김인건=대표팀에서 190cm를 넘는 선수가 박한 뿐이었잖아. 상대보다 키가 작으니 조직적인 농구를 할 수밖에 없었지. 김영일이 센터로 스크린 플레이를 기가 막히게 해서 이인표나 신동파 슛 기회가 많이 났지. 신동파가 수비를 잘 안하는데, 하하. 김영일은 본인이 두 자릿수 득점은 못하지만 수비 다 도와주고 도움도 많이 했어.▽이인표=필리핀 경기 때 신동파가 50점이나 넣었어. 하하.● 선진 농구를 이식한 최초의 외국인 대표팀 코치 둘▽ 김인건=1969년에 방콕 ABC대회 우승하고 바로 1970년 방콕에서 아시안게임 금메달 딴 건 지금까지도 대단한 기록인데, 정말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이 과정에 미국인 코치들의 역할이 컸다는 거야.▽ 이인표=1966년부터 1968년 멕시코 올림픽까지 3년을 미국인 코치 두 명이 지도를 했지. 한국 농구가 성장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야. 연속적으로 대한농구협회에서 정식으로 임명한 외국인 코치가 대표팀을 맡아 지도한 효과가 컸어. ▽김인건=주한 미군이었지. 마크 혼이 1년을 하고, 그 뒤로 가스 폴이라는 코치가 2년을 맡았어. 마크 혼은 우리 또래였지?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가 나온 데이비슨 대학에서 농구를 했었어. 가스 폴은 독일계 미국인인데 얼마 전에도 한국에 왔었어. 정말 그 두 사람이 대표팀을 맡으면서 미국의 농구 기본기를 익혔지. 스위치(수비자끼리 수비 상대를 바꾸는 동작) 같은 것을 처음 배웠잖아. ▽이인표=딱 두 시간만 훈련을 하는데, 진을 빼놓잖아.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는 훈련 시간이야. ▽김인건=3년 동안 지겹게 패스트 브레이크(속공) 연습을 많이 한 기억이 나네. 미국 대학 농구를 그대로 배운 거지. 얼마나 재밌게 농구를 했어. 이게 1969년의 열매를 맺은 거야. 다음 해에 아시안게임도 금메달을 따고. 그 때 3년이 한국 남자 농구의 토대가 됐다고 봐야지. ● 상상도 못했던 미국 전지 훈련▽이인표=미국 전지 훈련도 얘기를 해야지. 정말 1960년대에 미국으로 전지 훈련을 간다는 게 상상이 돼?▽김인건=용산에 가면 그 당시 트랜드 짐이라고 체육관이 있었는데 대표팀이 거기서 연습을 많이 했지. 마크 혼 코치가 있었을 때는. 그러다 1968년 1월이지,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이 났을 때야. 기스 폴 코치가 마련한거지. 밴쿠버, 샌디에이고,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LA, 하와이를 거쳐 귀국했는데 한 달 넘게 전지 훈련을 했어. 아마 이 얘기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야. 경기를 18번 정도 했어. ▽이인표=멤버 절반은 일본에서 밤에 군용기를 타고 갔잖아. 나머지는 월남에서 들어오는 여객기로 가고. ▽김인건=우리는 여객기를 타고 갔잖아. 군용기에선 음식 서비스할 사람도 없어서 힘들었다고 들었어.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내렸고, 군용기에 탄 멤버들은 시애틀에서 내렸잖아. 바로 다음 날 밴쿠베에서 경기가 있어서 부랴부랴 우리는 시애틀 비행기를 타고 합류해서 어렵게 밴쿠버로 갔지. 다들 피곤해서 대학 팀(브리티시 콜롬비아 인 밴쿠버로 기억)하고 아마 3번 다 졌지? 경기를 뛰는데도 하품이 나더라고. 하하. ▽이인표=샌프란시스코에서 경기할 때는 군인 숙소에서 잠을 자서 새벽 4시에 기상해 밥을 먹었잖아. 그런데 돈이 넉넉하지 않으니 가스 폴 코치가 될 수 있으면 아침밥을 안 먹이려고 깨우질 않더라. 하하. 아점을 먹었지. 밴쿠버에서는 교수들 집으로 가서 홈스테이를 했던 기억이 나네. ▽김인건=어느 대학하고 경기할 땐 입장식도 하고 아주 폼나게 뛰었지? ▽이인표=경기 전에 가스 폴 코치가 한국말로 그러는거야. ‘사람 많아, 돈 많아’라고. 대학하고 조율을 해서 입장 수익의 반을 받는다고 들었어. 그런데 경기장에 2000명이나 들어오니까 기분이 좋은 거야. 내일을 맛있는 거 먹을 수 있다고. 하여튼 미국에서 잘 먹었어. 아이스크림을 양손에 잡고 먹었잖아. ▽김인건=그 박스에 싸여진 소프트아이스크림, 입에서 살살 녹았지. ▽이인표=유희영이 미국에서 살쪘잖아.▽김인건=미국 다녀오고 10kg 이상 쪘었어. 유희영 별명이 원래 ‘와르바시(젓가락의 일본말)’였잖아. 하하. 미국 다녀오고 몸싸움도 좋아지고 했어. ▽이인표=전지훈련에서 그래도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 풀 코트 압박 수비 연습을 얼마나 시켰는지 몰라.▽김인건=풀 코트 뿐 아니라 존 프레스(지역방어 형태의 압박수비), 4분의 3프레스 같은 수비 훈련을 무지하게 했지. 공을 가진 상대를 가급적 사이드라인으로 몰던가, 순간 더블 팀을 한다던가 식의 2차 수비 연습도 많이 했어. 그러면서 런 앤 점프(수비자가 자기가 맡은 상대를 놔두고 기습적으로 볼을 가진 선수에게 도움 수비를 들어가 지연시킨 뒤 다시 제자리로 오는 동작) 수비를 자신있게 할 수 있게 된거야. 나중에 1970년 처음으로 세계선수권에 나가서도 잘 써 먹었지. ▽이인표=당시에는 수교도 안 된 유고에서 세계대회를 했어. 그 때 대표팀 단장이 중앙정보부에서 나왔는데, 여권이 2~3개 되더라. ▽김인건=정말 감격스러워. 잘했지. 예선 같은 조가 4팀인데, 캐나다를 이기고, 브라질은 거의 이겼는데 마지막에 심판 휘슬 때문에 졌지. 한국이 결승리그에 올라가면 대회 흥행이 안 된다고 그랬잖아. 현장에서. 마지막에 이탈리아는 상대가 너무 분석을 하고 나와서 크게 졌지. 1970년 5월 유고에서 벌어진 제6회 세계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은 예선에서 캐나다를 꺾었지만 브라질과 이탈리아에 패해 8~13위가 겨루는 순위결정전으로 밀려났다. 결정전에서 한국은 파나마, 쿠바에 패했지만 캐나다를 다시 꺾고, 이집트와 호주에 승리하면서 최종 10위로 대회를 마쳤다. ▽이인표=1962년부터 함께 국가대표로 뛰면서 뿌듯한 일들이 많네. 나중에 지도자 생활할 때 밑바탕이 됐어. 농구 인기가 요즘 다시 살아나서 기뻐. ▽김인건=우리가 도움이 될만한 것을 찾아봐야지. 자주 만나서 경기장에도 자주 가자고.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이인표 ::1943년 서울 출생성동공고-건국대-한국산업은행남자 국가대표(1962~1971)남자 국가대표 코치(1973)남자 국가대표 감독(1994~1995)삼성전자 농구단 단장(1990~1997)삼성 썬더스 프로농구단 단장(1997~1999)한국농구연맹(KBL) 이사(1997~2004)코리아텐더 프로농구단 초대 단장(1999~2001)KBL 경기위원장(2001~2004):: 김인건 ::1944년 서울 출생경복고-연세대-해병대-한국은행 남자 국가대표(1962~1971)실업 삼성전자 농구단 감독(1977~1996)남자 국가대표 감독(1981, 1986~1987, 1990~1993)진로농구단 단장(1996~1997)SBS프로농구단 감독(1999~2002)태릉선수촌장(2002~2005, 2008~2010)대한농구협회 부회장(2005~2008)}

    • 20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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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od&Dining]국내산 6년근 홍삼에 10가지 약재 더해

    환절기에는 일교차가 심해 우리 몸의 균형이 깨지기 쉽고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각별한 건강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간편하게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기능식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대표적으로 홍삼이 있다. 홍삼은 6년근 인삼을 수증기로 쪄서 말리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사포닌, 홍삼다당체, 아미노당, 미네랄 등이 조화를 이뤄 면역력 증진과 피로해소, 기억력과 혈행 개선, 항산화 등에 도움을 준다.홍삼은 본연의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는 뿌리삼, 간편하게 홍삼의 진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농축액, 다양한 부원료와 함께 홍삼을 섭취할 수 있는 액상 파우치 등의 제품군으로 구분된다. 그중에서도 액상 파우치 제품은 홍삼을 보다 친근하게 접할 수 있어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정관장의 대표 액상 파우치 제품인 ‘홍삼톤 골드’와 ‘홍삼톤’은 엄격한 기준으로 선별한 홍삼과 전통소재 부원료를 선인들의 지혜와 정관장의 정성으로 만든 건강관리 제품이다. 전통적인 액상형 파우치 형태로 1993년 첫선을 보인 이후 2억 포 이상 팔렸다.최근 정관장은 고객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홍삼톤 골드’와 ‘홍삼톤’을 리뉴얼 출시했다. ‘홍삼톤 골드’는 깊고 진한 6년근 홍삼에 까다롭게 관리하고 선별한 10가지 전통소재를 더한 제품이다. 부원료인 3가지 귀한 버섯(흰들버섯, 표고버섯, 노루궁뎅이버섯)을 기존 대비 2배 증량했다. ‘홍삼톤’ 또한 6년근 홍삼에 10가지 전통소재인 작약, 당귀, 황기 등을 더한 제품으로 기존 ‘홍삼톤 마일드’에서 제품명을 변경했다. 또 부원료로 영지버섯을 추가하여 리뉴얼했다. 패키지도 고급화했다. 선물용으로 많이 구매하는 고객의 니즈를 반영하여, 패키지 색상을 적금색으로 변경했다.‘홍삼톤 골드’는 1년에 30만 개 이상씩 판매된다. 명절에는 선물 수요가 급증해 약 4만 세트가 판매되고 있다. ‘홍삼톤’은 부드러운 맛으로 홍삼을 처음 접하는 고객들이 거부감 없이 섭취할 수 있다.야외 활동이 잦고 목 사용이 많은 소비자가 즐겨찾는 액상 파우치 제품인 ‘홍삼톤 청’도 6년근 홍삼농축액을 주원료로 도꼬마리, 맥문동, 유백피, 도라지 등을 더한 제품이다. 허브추출물이 함유돼 섭취 후 목에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KGC인삼공사의 정관장 홍삼은 최고 품질의 홍삼을 생산하기 위해 인삼을 심을 흙부터 검사한다. 100% 계약 경작을 통해 6년 근 국내산 홍삼의 순수성을 보장한다. 원료 관리 단계부터 290가지가 넘는 항목의 안전성 검사를 실시해 소비자가 안심하고 섭취할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한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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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od&Dining]오비맥주 “무분별한 음주 사고 안 돼요”

    오비맥주는 사회공헌브랜드 ‘OB 좋은세상’을 선보이며 음주운전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다양한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오비맥주는 범국민적 음주예방 캠페인을 위해 2016년 도로교통공단과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이후 ‘음주운전 예방 유공자 시상식’, ‘음주운전 안 하기’ 캠페인 등을 개최해 왔다. 오비맥주는 7월 25일부터 8월 21일까지 ‘음주운전 타파 차량 스티커 공모전’을 열고 전문가의 심사를 거쳐 11개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수상작은 14일까지 지하철 9호선 주요 5개 역에서 순회 전시됐다. 9월에는 글로벌 본사 AB인베브가 지정한 ‘글로벌 건전음주의 날(Global Beer Responsible Day·GBRD)’을 맞아 전사적인 캠페인을 펼쳤다. 오비맥주 임직원들은 음주운전 타파 차량 스티커를 자가용, 영업차량, 택시 등에 부착하며 실천을 다짐했다. 캠페인 당일에는 오비맥주 고동우 대표,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윤석범 회장, 모두의 주차장 김동현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음주운전 타파 차량 스티커 배포식’을 열었다. 배포식을 기점으로 전국 27개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차량 스티커가 무료로 배포됐다. 전국모범운전자연합회 회원 차량에도 스티커를 단계적으로 부착했으며, 모두의 주차장 앱 배너를 통해 음주운전 타파 캠페인을 소개하고 스티커 무료 배포처를 안내했다. 서울 강남운전면허시험장에서는 ‘새내기 운전자 대상 음주운전 타파 캠페인’을 개최했다. 새내기 운전자에게는 ‘음주운전 안 하기’ 서약을 받았으며, 운전면허 신규 취득자들도 음주운전 근절 서약 카드에 이름을 적고 실천을 약속했다. 음주운전 타파 차량 스티커는 신규 운전면허증 발급 창구에서 면허증과 함께 배부됐다. 매년 음주운전 예방을 위해 노력하는 경찰관 등에게 표창과 시상금도 전달하고 있다. 대중들에게 친숙한 매개체인 연극을 통해 청소년 음주 예방 메시지를 담은 ‘패밀리토크’ 공연, 입시 수험생들의 음주를 막기 위한 ‘수험생 음주 예방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무분별한 음주 사고를 위해서는 위험성을 인지하는 것부터가 시작. 주류업계 선도 기업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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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통 마스터’ 된 현주엽의 ‘무색’ 농구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먹성과 집요한 꾀로 선수들을 압박하는 ‘갑(甲)질’ 감독 캐릭터로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며 주춤해진 농구에 대한 관심을 지핀 ‘레전드’ 현주엽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 감독(44). 시즌 개막 경기 직전인 1일과 2일 창원에서 만나 이틀 동안 세 끼나 다름없는 두 끼를 함께 먹은 현 감독에게 원없이 ‘아무말대잔치’하듯 농구 얘기를 묻고 들었다. 프로그램 마지막 촬영을 하고 “이제 농구 얘기만 하고 싶다”는 현 감독. 자연스럽게 감독 3년 차를 맞이하는 심정과 새 시즌 준비와 고민, 그의 농구 인생으로 화제를 돌렸다. “특대(大) 짜리 맞죠?” 식당에서 대(大)자 메뉴를 주문하고도 식당 사장님 앞에서 더 큰 사이즈 메뉴가 아니냐고 농담을 던지는 현 감독. 정작 시즌을 목전에 두고 먹는 양이 줄었다. 알고 보니 평소에도 아침은 생략, 약속이 없으면 점심도 거른다고 한다. 음식 앞에서 진지한 ‘현주엽’이 너무 낯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모습이 또 다른 ‘현주엽’ 감독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현 감독과 나눈 솔직한 얘기를 개막전 직후 소개하고 싶었지만 팀의 5연패 소식에 보름 가까이 보류했다. 연패 분위기에서 현 감독의 생각이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였다. 다행히 16일과 19일 연패를 끊고 2연승을 하면서 타이밍을 잡을 수 있었다. ● ‘현주엽 농구’는 색깔이 없다? 시즌을 앞두고 팀의 대들보였던 김종규가 DB로 이적하고 정희재, 김동량 등 새로운 선수들이 팀에 합류했다. 감독 입장에선 조성민, 강병현 등 고참 선수와 가드 김시래를 중심으로 완전히 팀 전력을 원점에서 재편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시즌을 준비했다.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올 시즌에는 종규가 아닌 시래가 해줘야 된다”고 했던 현 감독의 속사정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 복잡하다. 굉장히 힘들겠다는 고리타분한 질문 대신 다른 표현으로 돌려 물었다. 분명 본인이 원했던 농구를 펼치기가 쉽지 않을테니…. -‘현주엽 농구’가 이식되고 있나.“현주엽 농구는 색깔이 없다. 색깔을 찾아가는 농구다. 내 농구가 확실히 무엇이라고 얘기하는 건 쉽지 않다. 그동안 LG만의 농구 색깔이 있고, LG의 현 선수 구성상 잘 할 수 있는 농구가 있다. 여기서 ‘현주엽 농구’를 추구한다? 그러면 나나 선수가 모두 불행해질 것 같다. 유재학, 전창진, 추일승, 유도훈, 또 문경은 감독님 등은 오랜 시간을 거쳐 자기 색깔을 냈다. 지도자 경험이 많지 않은 나에게 ‘현주엽 농구 색깔이 뭐냐’라고 묻는다면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해야 될 것 같다. 현재 우리 팀 구성에서 가장 효율적 농구가 무엇인지 찾는 것이 지금 내 농구다.”-선수들은 ‘현주엽 농구’가 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일단 감독이 쉽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다(웃음). 이전 김진 감독께서는 전체적으로 자율 농구를 했다. 난 공격에서는 자율성을 주는 편이다. 단지 자신 있게 슛을 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지적을 세게 한다. 공격은 자율과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가장 효율적으로 득점할 수 있는 작전 몇 개를 섞는다. 대신 수비는 간섭을 많이 한다. 능력보다는 의지와 집중력의 문제니까. 10개를 넣고 10개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신조다. 우리 전력상 공격 대 공격으로 치고 받아서는 이길 수 없다. 수비에서는 현주엽만의 ‘색깔 보태기’가 계속 이뤄지는 중이다.” -작전, 패턴의 다양성, 또 성공률에 대한 고민이 늘 컸다. “민감한 얘기인데…. 예를 들어 공격만 보더라도 1대1 농구가 강하면 한 가지 패턴에서 5~6개 패턴이 자연스럽게 파생이 된다. 지금은 한국 농구의 흐름이 그렇지 못하다. 2대2 ‘픽앤롤’이나 ‘픽앤팝’이 대세인데 지도자들이 나서서 일일이 파생 패턴을 붙여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팀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김종규가 이적하면서 팀 전체가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을 버리고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구조가 됐다. “전원 대기다. 이전에 10분 뛰던 선수들이 20분 이상 뛰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시래를 통해 전술의 다양성을 가지려 하는데, 시래가 많이 힘들거다.”-어떻게든 숙제를 풀어야 하는 게 지도자다. “이상적인 LG농구와 현실의 LG농구는 분명 다르다. 현실에서 짜내는 데까지 짜내는 게 내가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단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른다고 하면 6강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시즌 270경기 전체를 비디오로 보면서 분석한 것에다 유럽 농구를 챙겨보면서 참고한 것들을 토대로 전략을 그렸다. 유럽 농구는 탄탄한 1대1 기본기를 토대로 짜임새가 갖춰져 있다. 스페인 농구를 즐겨보는데 참고할 게 많다. 특히 공격에서 스크린을 통해 공과 패스, 돌파가 이뤄지는 반대편 코너 등에서 기회를 만드는 세부 패턴을 만드는데 상당한 도움을 받고 있다.” ● 예능 출연으로 선수들과 심리적 거리 좁혀… “악플? 나 하나 욕먹는 건 상관없어”-방송에서 선수들과 티격태격하면서 거리감이 많이 좁혀진 듯 하다. “선수들과 대화 시간이 많아졌다. 거리가 좁혀진 것 같다. 보통 감독들은 언제나 선수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간다고 하는데 문턱을 낮추기가 쉽지 않다. 감독실 방문을 활짝 열어놨다고 해도 선수들이 잘 안 온다. 방송을 계기로 한 명 한 명 불러 얘기를 많이 하게 됐다. 서로 속마음을 나누게 되더라. 선수들 입장에선 불편할 수 있는데, 막상 얘기를 해보면 자기도 속이 시원하다고 한다. 나는 전술, 패턴에 관해서 선수들에게 이런 저런 좋은 점, 불편한 점 등을 듣고 잘 맞는 것들은 시즌 중간에라도 끼워 넣는 편이다. 얘기할 시간이 많아지니 선수들 컨디션을 파악한다던가 전략을 수정하고 걸러내는 일들도 한층 쉬어졌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 출연 제안을 거절하다 선수들과 함께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택했다는데. “지난해부터 계속 예능 섭외가 있었는데 내 것을 다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그러다 주변에서 ‘농구가 다 죽는다. 살려야 되지 않겠느냐’ ‘큰 뜻에서 희생하자’는 얘기가 있었다. 구단에서도 ‘우리가 앞장서야 하지 않겠나’는 분위기가 있어서 출연 결정을 했는데 다행히 선수들도 좋아하고, 또 인기도 올라가고 그러면서 팬들의 관심도 커지고… 정말 좋다. 나 하나 욕먹는 건 괜찮다.”-프로그램이 방송될 때마다 관련 기사 등에 달린 불편한 댓글도 상당 수다. 현 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문제 제기도 많다. “댓글은 안 본다. 하하.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것 같다. 비난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아는데, 관심이라고 여긴다.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무플’보다 낫다. 방송을 하면서 선수들을 향해 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더 신경이 쓰였다. 예전에는 경기장 밖에서 우리 선수들에게 팬들이 사인을 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제는 아니다. 하다못해 구단 통역도 사인을 해주게 됐다. 더 좋게 봐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 -어쨌든 리더십의 핵심으로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게 아닌가. “감독으로 첫 부임하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했던 로드맵이 소통이었다. 내 지도가 불편하고 그래서 대화가 안 되는 선수가 분명 있을 수 있다고 보고 가장 신경을 쓰기로 다짐을 했었다. 나도 현역 때 여러 지도자를 경험해봤는데 말을 편하게 했던 감독님 체제에서 경기에 더 집중하고 기록도 잘 나왔다. 지도자는 작은 것도 배려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현역 시절부터 알았다. 예를 들어 오늘 경기에 한 선수를 선발로 쓸지, 아니면 경기 중간에 넣을지에 대해서도 선수마다 느끼는 색깔이 있다. 그게 불만일 수 있다. 코치를 통한 소통으로는 알아 차리는데는 한계가 있다. 갑자기 지도자가 됐다고 해서 선수들과 소통을 완벽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안했다. 계속 쌓아가는 중이다.”-자신이 스타 출신 감독이라는 점을 평소에 의식하나. “그런 거 없다. 현역 때는 팬들의 사랑을 받고, 유명해져서 내가 스타려니 생각을 했다. 지금은 선수들이 연봉도 많이 받지만 팬들의 애정은 선수가 돈을 받는 만큼의 정도는 아니다.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 점에서 지도자인 나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농구가 다시 사랑 받는 스포츠가 되고, 정말 경기장에서 앰프 소리가 아닌 거대한 함성 소리를 들으며 행복해하고 싶다. 선수는 아니지만 내 스스로 지금 이 자리에 머물러 무작정 팬들을 기다리고만 있으면 안 된다는 신념이 생겼다.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다.” ● 20년 전 남도에서 농구에 눈을 뜨다 중·고교, 대학, 프로를 통틀어 화려했던 현역 시절, 그리고 은퇴 후 공백기, 이어 해설위원과 잠깐의 방송 출연을 거쳐 코치 경험 없이 곧바로 감독으로 농구 코트에 다시 발을 들여 놓은지 세 시즌째. 지도자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남들이 보기에도 농구 인생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 같지만 현 감독. 보통의 선수들처럼 농구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게 한 ‘변곡점’이 그에게도 있었을까? 농구 인생이 순탄했느냐는 물음에 “선수로 뛸 때는 부상 빼고 후회 없이 했다”던 현 감독. 그런데 대뜸 20년 전 얘기를 꺼냈다. -20년 전? “늘 농구가 자신이 있었는데 (청주)SK에서 (광주, 나중에 여수로 연고지 이전) 골드뱅크로 이적하면서 농구가 더 늘었다. 그 때 농구의 눈을 떴다고 해야될까. 그 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잘하면 됐는데 이 ‘집’으로 갔더니 이것 저것 해야될 게 많았다.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그 집에서 살 수 있었다. 농구하면서 처음으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을 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내 농구가 달라졌다.” 현 감독은 프로농구 1999-2000시즌 도중 SK에서 골드뱅크로 전격 트레이드가 됐다. 중·고교 1년 선배인 ‘국보급 센터’ 서장훈과 같은 팀에서 뛰면서 상대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던시절, 그것도 12월25일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날 트레이드로 인해 엉겹결에 짐을 싸서 숙소를 나와야 했다. 트레이드가 되기 직전까지 15경기에서 평균 19.6 득점에 6.2도움으로 서장훈과 함께 팀의 주포 역할을 하고 있었던 상황. 어떻게 보면 그의 농구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던 기억, 자존심이 상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시기를 인생 ‘터닝포인트’로 새기고 있었다. -본인에게 스스로 현주엽의 가치가 떨어진 게 아니냐는 물음을 던졌을 법 한데. 결과적으로 반전의 계기가 됐다. “그 전 시즌에 비해 평균 득점 수치가 약간 떨어지긴 했다. 그런데 개별 기록보다 정말 농구를 잘한다는 선수의 존재감은 어디에서 나올까,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했다. 허재형이 농구 센스가 뛰어나고, 득점은 장훈이형이 잘하고, 3점 슛은 경은이형이 좋은데, 그렇다면? 이라는 물음표가 생겼다. 기록을 잘 내는 것과 전체적으로 모든 농구를 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경기장에 나갔다. 나무만 보다가 숲을 보게 됐다. 코트 전체에서 벌어지는 농구의 흐름을 그 때 알았다.” 이적 후 현 감독 그 시즌 27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37분 이상을 뛰며 23.7득점에 6.0리바운드, 7.6도움을 기록하는 등 내외곽을 휘젓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맹활약했다. 기록이나 순도 면에서 프로 9시즌을 뛰는 동안 가장 빛났던 시기다. -느낀 게 많았겠다.“농구를 잘했는데, 그 때 농구를 배웠던 것 같다. 배우는 건 끊임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잘했다고 느낄 때 실제 잘한 것이 아니더라. 최고가 됐을때도 마찬가지로 최고가 아니었다. 내가 어느 수준에서 잘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스스로에게 가장 독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장훈이형은 농구 인생 동반자-서장훈이라는 라이벌 같은 존재가 있었기에 더 그런 것 아닌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자극이 되긴 했지….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서로 잘했으면 했다. 내가 먼저 은퇴하고 나서 장훈이형 뛰는 것을 보고 ‘저 형이 정말 멋있게 뛰고 명예롭게 은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농구 인생에서 장훈이형은 나의 동반자다.”-같이 중, 고교 시절을 보낸 추억이 많겠다.“고교 무대를 같이 평정한 때도 있었지만 서로 농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내가 중학교 1학년, 장훈이형이 2학년 때 기억이 난다. 우리 둘은 연습에 끼어들 실력이 되지 않아 구경만하고 공만 닦고 주우러 다니고 했다. 바보 중에서도 상(上)바보들이었다. 하하.”-고려대 재학 시절 1994~1995 농구대잔치에서 종료 부저와 함께 연세대 서장훈에게 결승골을 허용했을 때 정말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내가 막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공을 못 잡게 했어야 했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 슛을 던져 넣는 장훈이형이 정말 ‘난 놈’, ‘난사람’으로 느껴지더라.”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남자농구 중국과의 결승전은 ‘with 서장훈’의 결정판 아닌가? “내가 연장으로 가는 동점골을 넣었고, 장훈이형이 연장에서 기선을 제압하는 3점 슛을 터트렸다. 그 당시는 같이 뛰면 작전이 필요 없었다. 잘 아니까. 연장에서 꼭 이겨 금메달을 따고 싶었다. 내가 연장에서만 6점을 넣었는데 당시 (김)승현이에게 ‘나 전반에 쉬었다가 나와 체력 괜찮으니 패스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승현이가 ‘네’라고 하더니 패스를 잘 줬다. 하하.”-마지막으로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감독으로 부임할 때 가졌던 구상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래도 목표를 향해 가야되는 입장이다. “좋은 전력을 꾸려 우승에 도전하고 싶은 건 10개 구단 지도자가 다 같은 마음일 것 같다.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선수가 코트에 있을 때 가장 즐겁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선수들이 즐거우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코트에 오래 있으려면 부상을 안 당해야 한다. 몸이 힘들면 마음도 힘들다. 선수들이 부상 없이 코트에서 열정적으로 뛰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다. 먹고 싶다는 건 다 사줄 수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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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식보다는 지력이 가치 있어… 인격적 성장 쌓을 수 있는 교육 필요

    창의적인 미래 인재 양성을 국가 발전의 제1 어젠다(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활발하게 펴고 있는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60·사진). 그는 요즘 자신을 “나만의 고유한 ‘비린내’가 사라질까 걱정하는 사람”으로 표현하곤 한다. 대학교수로 오래된 틀 안에서 갇혔던 지난날을 성찰하는 태도다. 최 교수는 “몇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은 대학 교육 시스템에서 내 자신이 고갈되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며 “학생들에게 ‘우리’가 아닌 ‘나’로 제대로 살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그저 시스템의 ‘관리인’으로 살았다. 물속을 휘젓는 물고기가 아닌 마치 시장 좌판에 누워 있는 생선처럼 말이다”라고 자책했다. 자신이 가르친 대로 자신도 살고 싶어 현실 참여를 결심했다는 최 교수. 그래서 2024년이 교수 정년이지만 과감하게 7년이나 앞서서 18년간 재직했던 학교를 떠났다. 최 교수를 지난달 25일 만나 한국 사회와 교육이 가야할 방향에 대해 들었다. 교수 재직 시절에 설립한 인문·과학·예술 전문학교인 건명원(建明苑)에 대한 얘기를 먼저 안 할 수 없다. 2015년부터 4년 가까이 원장을 지내면서 창의적 인재 교육의 산파 역할을 했는데. “우리 사회가 미래를 얘기하면서 인재 교육을 너무 소홀히 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물음표가 있었다. 시간이 아니라 인재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종속적이 아닌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따라가는 게 아니라 선도할 수 있는 사람이 배출돼야 한다. 창의력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것이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는데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건명원을 설립하게 됐다. 지금 교육 체제에서는 표준화된 인재를 다수 기를 수 있어도 창의적 인재 발굴에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창의 전사(戰士)라고도 하는데….”창의 전사? “창의적 인재를 말한다. 결국 자유로운 독립적 주체다. 핵심은 자신이 ‘우리’ 가운데 한 명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온전한 ‘자기’로 되어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학교를 성장시키는 과정인데 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4년 동안 기초를 닦아 놨는데 내가 조금 더 실천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건명원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분석하고 평가하는데 머무르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역사가 되려는 도전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가르치기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으면 반쪽 교육밖에 안 되겠다 싶어서 나오게 됐다. 가르치고자 하는 대로 사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다.” 건명원에서 지향하는 창의 교육의 핵심은 무엇인가. “인문학, 과학, 예술이 지향하는 ‘높이’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 취지다. 우리는 아직 인문학적 높이가 아닌 사회과학적 높이에서 살고 있다. 과학적 높이가 아니라 기술적 높이에 살고 있다. 또 예술적 높이가 아니라 예능적 높이에서 사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지금 말하는 인문학, 과학, 예술의 높이는 훨씬 더 추상적이거나 지적이면서 지배적인 높이다. 선도력이 구현되는 높이다.” 높이? “시선이다. 예를 들어 과거 동양이 서양에 굴복당한 이유는 추상적인 높이, 시선에서 삶을 지배하는 장치를 갖지 못해서였다. 서양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핵심은 전체적으로 삶을 어떻게 철학화, 과학화하느냐에 달렸었다. 아편전쟁 이전까지는 전 세계가 기술의 시대였다. 그런데 과학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동양이 과학적 높이에서 실행되는 생산력을 서양만큼 따라가지 못했다. 인문학적, 과학적, 예술적 높이에서 시선이 확보되지 않으면 선도력을 갖춘 전략 국가로 올라설 수 없다. 우리는 바로 (전략 국가) 밑에 있는 국가다. 한국은 기술적 높이에서 뭔가를 따라하는 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서 전략 국가 높이로 올라서느냐, 아니냐가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이것이 현재 국가 최고의 어젠다가 돼야 한다. 적폐 청산 등에 역량을 소모할 때가 아니다. ‘높이’를 이해하면서 4차 산업으로 명명되는 문명의 도도한 변화 흐름에 올라타는 게 중요하다.”민주화라는 어젠다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얘기인가. “해방 이후 정부수립(건국)-산업화-민주화라는 적절한 어젠다를 시대에 따라 설정하고 그것들을 완수하면서 양적, 질적 기적을 이뤘던 한국이다. 불행하게도 언제부턴가 국가적 높이에서 구현하려는 어젠다가 사라졌다. 진영만 남았다. 민주화 시대의 문제 의식이나 사고 방식은 새로운 어젠다에 의해 도태되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 발전이다. 결국 창의성 있는 독립적 인재들을 통한 선진화가 다음 어젠다가 돼야 한다고 본다. 선진화는 일등이 아니라 일류를 꿈꾸는 사회의 모습이다.” 8월 발기인 자격으로 사단법인 ‘새말 새몸짓’을 출범시켰다. “나는 우리 정치와 교육이 극심한 한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상상력이나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태도는 사라졌고, 모두 기능에 빠졌다. ‘수능 성적을 몇 %로 정할 것인지’, ‘자사고를 없애냐 마냐’하는 문제가 죽은 교육을 정말 살릴 수 있다고 믿는가. 교육의 영역에서 상상력이나 모험심은 완전히 바닥났다. 나라 전체가 ‘헌 말, 헌 몸짓’에 갇혀서 하던 시늉만 하고 있다. 말이라는 것은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이다, 문법, 이론, 세계관 등이다. 몸짓은 태도다. 관계하는 방식만 가져서는 안 되고 삶에서 보여주는 태도까지 갖추어야 한다. 시선을 인문, 과학, 예술적 높이로 한 단계 올리려면 새로운 말과 몸짓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을 대하는 총체적인 방식과 태도가 전면적으로 새로워지지 않고는 국가적 비효율이 쌓이는 것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교육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여러 다양한 입시 제도가 있지만 취지대로 수행이 안 된다. 운영하는 사람들이나 학생들의 인격적인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은 도덕이 무너졌다. 민주화 단계까진 나름 효율적이었던 현재 교육 시스템으로는 도덕적 자각 능력을 갖춘 창의 인재 양성을 기대할 수 없다. 독립적 주체를 기르는 일인데 결국 대답보다는 질문을 잘하는 인재다. 대답은 기능이고, 질문은 인격이다. 질문이 없다는 말은 인격적으로 준비가 안 됐다는 뜻이다. 새롭고 위대한 것은 대답이 아닌 질문의 결과다. 선도력의 차원에서는 결국 인격이 문제다. 자신이 과거 한 말과 지금의 태도가 달라도 괜찮다고 하는 것, 상대방을 공격할 때 판단 기준과 자기를 변호할 때 적용하는 판단 기준이 다른 이중적 태도가 너무 팽배해 있다. 현재 국가 교육 시스템 내에서 이런 병폐가 나타나고 있는데, 인격적 모범을 간과하는 시스템으로는 의미가 없다. 단순히 제도를 바꾸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지식을 배우고 소유하는 과정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겠다. “국가를 작동시키는 두 톱니바퀴는 교육과 정치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교육과 정치가 악순환의 고리로 고착돼 나타난 부패다. 부패가 문제인 이유는 사회 발전 방향과 속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 이 정도의 부패 대다수는 고학력자들의 부패다. 독립적 사고력을 배운 것이 아니라 사고력의 결과, 즉 지식만 배워서다. 지식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공적, 윤리적 태도를 익히지 못했다는 얘기다.”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소유하는 데만 급급했다는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퍼스트 무버’가 나오지 않는 이유로 지적하는 것인가. “모든 지식은 문제를 해결한 결과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발견했더라도 지식은 공적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자체가 윤리적 행위라는 것이다. 지식 생산자들은 문제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공적, 윤리적 훈련을 자연스럽게 한다. 지식 생산인과 지식 소유인의 개념을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결과로 얻어진 지식을 단순히 수입해서 보면 그것은 지식 소유인이지 생산인이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는 지식 수입국이다. 지식 교육의 핵심은 시대가 아파하는 병, 문제들에 대해 같이 아파할 수 있는 것이다.”학생들의 생활 패턴을 봐도 남이 생산해낸 지식을 소유하게만 만드는 구조다. “운동 시간을 빼앗아 영어, 수학 문제를 풀게 하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지식보다는 지력(智力)이 가치가 있다. 창의성이나 상상력 등인데 이건 몸으로 길러진다. 현재 학생들은 지력을 키울 여유가 없다. 운동이 고도의 지력 활동임을 알아야 한다. 보통 지덕체(智德體)라고 하는데 체덕지(體德智)가 맞다.” 결국 인격(人格)을 쌓는 교육이 미래 세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결론인가. “인격의 근본적인 속성은 무엇인가를 궁금해한다는 것이다. 궁금해 해야 대화도 이뤄지고 협치도 이뤄진다. 인격적 성장이 이뤄진 사람들은 궁금증과 호기심이 많다. 그래서 질문을 잘한다. 그러나 인격적 성장이 안 돼 있으면 오래된 신념만 집행하려고 한다. 진영의 논리에 갇힌 것은 인격적 미성숙을 의미한다. 새 시대를 원하면 이제 사람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쁨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맘껏 기뻐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 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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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탕수육 안에 동해 문어가 ‘쏙’… “쫄깃한 식감이 재미있대요”

    강원 동해시 발한동에 위치한 ‘동쪽바다중앙시장’. 이름만 들어도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활어와 해산물이 넘쳐날 것 같다. 실제로도 그렇다. 평일 유동 인구는 많지 않지만 주말에는 인근 묵호항, 망상해변, 일출의 명소인 추암촉대바위 등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70여 년의 전통을 지켜 가면서도 고객 편의를 위해 노후화된 화장실 등을 신축하고, 주차장 공간을 확보했다. 시장 정문 초입에 ‘거동탕수육’ 매장을 오픈한 김지훈 대표(35)는 요식업 창업의 꿈을 이곳 동해에서 펼쳤다. 대형마트 매장에서 8년 가까이 근무하며 점장 자리에까지 올랐던 김 대표는 2016년 어린 시절 꿈꿨던 요리사가 되기 위해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준비 없이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었다. 이미 그는 스무 살 때 푸드트럭을 구매해 토스트 장사를 했다가 ‘망한’ 경험을 ‘밑천’으로 갖고 있었다. 게다가 대형마트에서 근무해 봤기 때문에 고객 서비스는 어떻게 해야 하고, 재료 유통과 구입 및 관리, 신선도 유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충분한 노하우를 체득했다. 김 대표는 “처음 푸드트럭을 할 때는 손님들에게 ‘어서 오세요’라는 말도 못 했다. 아무 준비 없이 장사를 하면서 겪은 낭패가 하나둘이 아니다. 장사는 역시 기본부터 제대로 익히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심정으로 그는 창업을 하기 전 꽤 오래 시장 조사를 했다. 전국의 야시장과 축제 때마다 길거리에 오픈한 푸드트럭의 음식은 죄다 맛을 보고 분석했다. 짬 날 때마다 닭볶음탕 같은 거창한 메뉴를 ‘테이크 아웃’ 제품으로 만들어보는 연습도 자주 했다. 그러다가 탕수육이 김 대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전국 축제나 야시장에 탕수육 메뉴는 없더라고요. 그러면 뭔가 차별화된 탕수육을 만들어보자고 고민하던 차에 그해 동해에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청년몰 운영 사업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됐죠.” 동해시에 가 본 것이 묘수가 됐다. 동해시는 국내산과 외국산이 모이는 문어 집결지다. 자연스럽게 ‘거동탕수육’의 대표 메뉴인 ‘문어탕수육’이 나오게 됐다. 김 대표는 문어에 돼지 등심을 전분으로 버무려 튀겨낸 신메뉴로 2016년 10월 점포를 오픈했다. 오픈하면서 방송에서도 화제가 됐지만 장사 초기 어려움도 있었다. 20kg짜리 큰 문어를 매일 일정한 크기로 썰어내는 데 익숙하지 않았고, 정육업체에 문어 크기에 등심 크기를 맞춰 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힘들었다. 또 문어 가격이 비싼데도 불구하고 ‘테이크 아웃’ 탕수육 메뉴를 고객에게 저렴하게 제공하겠다는 생각에 가격을 4900원대로 정하다 보니 매출 이익에서 상당한 손해를 봤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맞은 장사 3년째. 현재는 문어탕수육의 맛은 물론이고 매출 관리에서 차츰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될 정도로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이 꽉 차고 쫄깃하게 알맹이가 씹히는 독특한 탕수육의 면모를 찾았다. 대형 백화점에도 일시 팝업스토어로 입점하기도 했다. 포털사이트나 앱 등에서의 온라인 주문도 크게 늘어났다. 올해 성수기에는 월평균 1500만 원 가까이 매출을 올렸다. 무엇보다 주변 유통업자들과 친분을 쌓고, 거래처를 확보하면서 안정적으로 맞춤 재료를 공급받게 된 것이 기쁘다. “등심이 3이면 문어는 1의 비율로 튀겨요. 지인의 도움으로 경북 안동의 한 정육점에서 문어 크기에 맞춰 자른 신선한 등심을 1주일에 3번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고객들에게 더 풍성한 탕수육을 만들어 제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죠.” 이제 호기심으로 문어탕수육을 찾았던 고객들이 계속 찾는 메뉴, 나아가 이곳이 ‘동해바다전통시장’의 ‘시그니처’ 명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 대표에게 동해는 인생 2막을 열어준 땅이다. 동해에서 결혼해 아이를 얻었고, 지금은 양가 부모님과 매형 등 온 가족이 ‘동해 패밀리’가 됐다. 그래서 더 안주할 수는 없다. 문어탕수육의 품질을 계속 높이는 데 집중할 생각이다. “어린 시절 망한 경험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절대 자만하진 않겠습니다.” 진심 어린 각오를 듣고 나니 탕수육을 만들다가 양쪽 팔에 수없이 기름이 튀어 생긴 화상 흉터가 유난히 더 선명해 보였다. ▼ ‘탕수육 혁명’ 경쟁력 원천… 스토리 입히면 금상첨화 ▼이정희 중앙대 교수 ○ 칭찬해요① 다양한 고객층을 위한 메뉴=탕수육은 고객층으로부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 온 중식당의 대표 음식이다. 튀김 음식을 좋아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탕수육의 수요는 더 커질 것이고,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음식 메뉴다. ② 차별화된 마케팅=일반 탕수육은 돼지고기가 주재료인데, 거동탕수육은 동해에 위치한 음식점의 특성을 반영했다. 문어와 돼지고기를 써서 기존 탕수육과 차별화를 꾀했다는 것이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③ 돋보이는 상인 정신=소비자가 원하는 메뉴의 차별화와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도전과 혁신 정신이 잘 엿보인다. 푸드트럭과 대형마트 점장으로 음식 사업에 대한 간접 체험을 했고 또한 창업 실패 경험도 있어서 마음의 준비가 잘되어 있다는 게 김 대표의 경쟁력이다. ○ 아쉬워요 ① 부족한 인력=메뉴가 인기를 얻으면서 김 대표가 할 일이 많아졌다. 이것저것 관여해야 할 게 많은데 이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백화점 입점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판로가 확대되고 대외 활동 요청이 많아졌다. 업무 분담을 위한 인력 확충이 요구된다. ② 스토리를 강화하는 마케팅 노력 강화 필요=동쪽바다중앙시장에 위치한 거동탕수육은 동해바다, 전통시장, 문어탕수육을 주요 소재로 해서 앞으로 동해를 찾는 관광객이 꼭 맛봐야 하는 음식으로 스토리를 더 발굴해 간다면 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전통시장 전용 모바일상품권도 있어요” ▼5000원부터 10만원까지 5종, QR코드 결제… 10% 할인 혜택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최근 국내외적으로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확산됨에 따라 고객 편의에 맞춘 전통시장 전용 ‘온누리 모바일상품권’을 새롭게 출시했다. 기존 종이 온누리 상품권은 지정된 금융기관(시중 14곳 은행) 영업시간에 맞춰 방문해 구매해야 한다. 모바일 상품권은 영업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지정된 참여기관(은행·결제사) 결제 앱을 통해 개인 계좌 출금 방식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상품권은 5000원, 1만 원, 3만 원, 5만 원, 10만 원으로 원하는 권종을 선택해 구매할 수 있다. 개인 구매 시 10% 할인된 금액으로 저렴하게 구매가 가능하다. 전통시장 및 상점가에서 온누리 모바일상품권을 이용하면 할인, 소득공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스마트폰 결제 앱을 실행하고 상품권을 선택한 후 가맹 점포에 비치된 QR코드 결제판에 대기만 하면 쉽게 결제가 가능하다. 앞으로는 개인 간 ‘선물하기’ 기능도 추가될 예정이다. 한편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는 온누리 모바일상품권 운영 안정화를 위해 가맹 홍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일단 고객의 사용처 확대를 위해 주요 시장 300여 곳에 우선 가맹을 유도하고 점진적으로 전국 전통시장 및 상점가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가맹신청 및 사용 관련 문의는 제로페이 콜센터, 중소기업통합콜센터. 동해=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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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 종횡무진 활약으로 제2 전성기… 전국민 웃기는 ‘농구 대통령’

    “예능 샛별이라고 해주시는데 ‘그거슨(그것은) 아니지’, 하하. 아직은 ‘농구 대통령’이 더 나은 것 같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별명이니까….” 최근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넉살과 끼를 발산하며 ‘예능인’으로 변신한 허재 전 남자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54). 현역 시절 못지않은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는 그를 23일 만났다. 그는 전날 긴 시간 야외 촬영으로 몸살 기운을 호소하며 식은땀까지 흘렸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채용한 매니저도 다른 스케줄 협의 때문에 자리를 비워 혼자 택시를 타고 힘겹게 약속 장소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가 시작되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80도 달라진 생활과 방송 재미, 농구에 대한 애정을 털어놨다. ○ “서장훈이 대(大)고참이라면 나는 말단 직원” ―‘예능인’ 허재에 서서히 적응이 된다. “두 달 반 정도를 촬영장에서 보냈다. 이제 아내도 내 방송을 챙기고 둘째 아들 (허)훈이도 매니저 역할을 한다. 프로그램 모니터도 하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왜 이런 상황에서는 가만히 있냐’며 온갖 지적을 한다. (소속팀이 있어서) 연봉 받을 때는 마음이 편했는데…. 출연료 받으면서도 편하게 일하려고 한다.” ―각 방송사의 ‘러브콜’이 대단하다. ‘예능 대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후배 (서)장훈이도 챙겨야 하고 (현)주엽이 방송도 도와줘야 하고. 하여간 많은 인연 때문에 여기저기 나가고 있다. 대세라는데 예능에선 장훈이가 대(大)고참이고 난 말단 직원이지. 머리도 좋고 말도 잘하고 진행도 할 줄 알고…. 웃는 모습이 정해인(배우) 닮았다는 팬들도 있는데, ‘그거슨’ 아니지. 닮지는 않은 것 같고 웃을 때 귀엽게 봐주시는 것 같다.” ―감독 시절 다혈질적 모습과는 다른 표정,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호감을 보내는 팬들이 많아졌다. “허재는 이중적인 인간이 아니지. 하하. 코트 승부의 세계에서는 승패에 몰두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욕을 하고 화를 낼 때가 많았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는 미소나 ‘허당끼’는 코트 밖에서 지인들하고 소주 한잔할 때 모습이다. 둘 다 허재다. 감독 시절에도 웃을 때가 많았는데 카메라가 안 잡아주더라. 코치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감독이 되면서 잘해보고 싶은 마음에 선수들에게 화를 많이 냈는데 지금 생각하니 잘못한 것 같다. 박빙 상황에서 조금 더 칭찬으로 다가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현역 시절에는 다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방송에서 축구를 하면서 부상이 잦다. “팬들이나 시청자들에게 미안한 부분이다. 은퇴하고 감독으로 지내면서 몸을 잘 만들어 놓을걸 하는 후회가 든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내 몸을 관리하고 돌아볼 시간을 벌었다. 방송 녹화 전날에는 무조건 술을 안 마신다.” ○ 중국 기자에게 ‘사이다’ 욕, 지금도 후회 안 해 허 전 감독의 인기에는 자연스럽게 내던진 어록도 한몫한다. 방송을 통해 한 ‘그거슨 아니지’는 전국구 유행어가 됐다. 프로농구 KCC 감독 시절의 ‘이게 블락이야’라는 호통과 대표팀 감독 시절 엉뚱한 질문을 한 중국 기자에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라고 날린 ‘사이다’ 멘트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고 있다. ―웬만한 개그맨보다 유행어가 많다. “기쁘다. ‘블락’은 정확하게 블로킹인데 급하니까 나도 모르게 나왔다. 어떤 팬들이 영상을 처음에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나도 재밌어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중국 기자에게 말한 건 지금도 후회는 안 한다. 경기 내용 관련 질문을 해야 되는데 ‘우리 선수들이 중국 국가가 나올 때 움직였다’는, 전혀 상황에 맞지 않은 질문을 해서 대답하기가 싫었다. 인터뷰를 더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농구 인기 하락, 농구인 모두가 반성해야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농구 코트로 돌아가고픈 ‘뼛속까지’ 농구인이다. 한국 농구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인공으로서 최근 프로 농구의 인기 하락, 국제 경쟁력 저하에 대한 걱정과 책임감도 분명 있다. ―한국 농구가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잖다. “농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고 농구인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팬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는 스타가 자꾸 등장해야 한다. 남자 농구만 봐도 10년 주기로 슈퍼스타가 나오고 그 중간 시기 공백을 메워주는 수준급 선수들이 배출되면서 경쟁력이 유지됐다. 신동파에서 이충희, 김현준, 그 다음 나로 왔고. 내가 죽을 만하니까 문경은, 이상민, 서장훈, 현주엽, 전희철 등이 나왔다. 이렇게 계속 ‘이어달리기’가 됐는데 지금은 아니다.” ―결국은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의 목적의식이 중요한 게 아닌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경기에 들어갈 때 어떻게 플레이를 하겠다는 계산이 서야 하고 사전에 이미지트레이닝을 해야 한다. 지금 선수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나에게 수비가 누가 붙을 것인지, 수비수가 이렇게 막으면 나는 어떻게 공격 전개를 하고 드리블과 슛 타이밍은 언제 가져갈 건지 계산을 하고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맞춤 연습을 반복해야 실전에서 빠른 상황 판단과 좋은 경기력이 나온다는 거다.” ―기본기의 중요성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예상 실전 상황을 이미지트레이닝으로 구상하면 기본적인 슛 훈련도 절대 제자리에 서서 할 수 없게 된다. (안)정환이한테 들으니 축구에서도 서서 슛을 하는 찬스는 전혀 안 난다고 하더라. 수없이 움직이다 숨이 차고 수비가 붙어 있을 때 자신의 본래 킥 실력이 나온다고 했다. 나도 예를 들어 밋 아웃, 팝 아웃 무브(패스를 받기 전에 스텝과 페이크 모션 등으로 수비수를 떨어뜨리는 동작)를 확실하게 해주고 다음 크로스 방향이나 L자 형태로 움직여 패스를 받고 바로 슛을 던지는 식의 연습을 수없이 했다. 한 지점에서만 하루 300∼400번 가까이 했다. 지겨울 정도로 했다. 40분 경기하면서 서서 자유롭게 슛을 던질 수 있는 오픈 찬스는 3번 이상 안 온다. 잘하는 선수는 더 기회가 없다. 그래서 움직이면서 패스를 받고 슛을 하는 반복된 연습이 중요하다.” ○ 허재의 불타는 승부욕 롤모델은 신선우 ―동기부여가 된 선배들이 있었나. “(이)충희 형이나 (김)현준이 형을 대표팀에서 유심히 보면서 슛을 던질 때 보폭, 스텝, 자세 등을 따라하고 익혔다. 팔 자세는 완전 오리지널 슛 폼이라 흉내 내기 어려웠다. 롤모델이라고 하면 신선우 선배(전 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다. 나랑 포지션은 달랐지만 아주 터프하고도 영리한 플레이를 했다. 승부욕도 강했고…, 그걸 배웠다.” ―‘내가 농구로 최고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감은 언제 왔나. “용산고 1학년 올라가면서 웬만한 기본기를 다 내 것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대학에서 체력이 늘었고 나보다 슛이 좋은 선배들을 많이 보면서 중앙대 2학년 때 소위 농구 선수로 ‘세팅’이 끝났던 것 같다. 그때부터 어떤 경기든 겁나지 않았다. 서울 올림픽(1988년)에서 세계 최강급이라던 유고슬라비아하고 경기(92-104 패, 23득점 가로채기 7개)를 하는데 주눅이 안 들고 오히려 더 자신감이 생기더라. 내가 스크린을 활용해 오른손으로 원 드리블하고 슛을 하거나 드리블로 뚫는 동작에는 수비수가 잘 쫓아오지 못했다. 내 플레이에 확신이 있었다.” 어디 가서 농구 인생을 제쳐두고 예능 출연 얘기를 먼저 하는 것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는 허 전 감독. 그가 자주 쓰는 말투대로 ‘하여간’ 방송이 됐든, 농구가 됐든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연 농구 아카데미 일로도 분주하다. 발달장애인 농구 교실부터 농구 재능기부, 유소년 유망주 발굴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밀려드는 스케줄과 업무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 것 같지만 인연이 닿는 사람들의 부탁은 절대 거절 못 하고 들어준다. 그런 바쁜 와중에도 28일 54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기자를 ‘의리파’ 형님은 그냥 보내주지 않았다. “이건 아니지, 소주 한잔하러 가야지.”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19-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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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장훈이 대고참이라면 나는…” 예능 샛별된 농구대통령, 허재는 허재다

    “예능 샛별이라고 해주시는데, ‘그거슨(그것은) 아니지’. 하하. 아직은 ‘농구대통령’이 더 나은 것 같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별명이니까….” 최근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넉살과 끼를 발산하며 ‘예능인’으로 현역 시절 못지 않은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는 허재 전 남자농구대표팀 감독(54). 23일 만난 그는 전날 긴 시간 야외 촬영으로 몸살 기운을 호소하며 식은땀까지 흘렸다. 방송을 시작하고 채용한 매니저도 다른 스케줄 협의 때문에 자리를 비워 혼자 택시를 타고 힘겹게 왔다. 그럼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80도 달라진 생활과 방송 재미, 농구에 대한 애정을 털어놨다. ● “서장훈이 대고참이라면 나는 말단 직원” -‘예능인’ 허재에 서서히 적응이 된다. “두 달 반 정도를 촬영장에서 보냈다. 이제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게 어색하지 않다. 주변사람들이 바빠졌다. 아내도 내 방송을 챙기고 둘째 아들 (허)훈이도 매니저 역할을 한다. 프로그램 모니터도 하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왜 이런 상황에서는 가만히 있냐’며 온갖 지적을 한다. 연봉 받을 때는 마음이 편했는데 출연료 받으면서도 편하게 하려 한다.”-각 방송사의 ‘러브콜’이 대단하다. ‘예능 대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후배 장훈이도 챙겨야 하고, (현)주엽이 방송도 도워줘야 하고, 하여간 많은 인연 때문에 여기저기 나가고 있다. 대세라고 하는데 예능에선 장훈이가 대고참이고 난 말단 직원이지. 머리도 좋고, 말도 잘하고, 진행도 할 줄 알고…. 웃는 모습이 정해인(배우) 닮았다는데 ‘그거슨’ 아니지. 정해인 씨가 잘 생겼다. 닮지는 않은 것 같고 웃을 때 귀엽게 봐주시는 것 같다.”● ‘버럭’도 ‘허당’도 인간 ‘허재’ 모습-감독 시절 다혈질적 모습과는 다른 표정,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호감을 보내는 팬들이 많아졌다.“허재는 이중적인 인간이 아니지. 하하. 코트 승부의 세계에서는 승패에 몰두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욕을 하고 화를 낼 때가 많았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는 미소나 ‘허당끼’ 는 코트 밖에서 지인들하고 소주 한 잔 할 때 모습이다. 둘 다 허재다. 감독 시절엔 웃을 때도 참 많았는데 카메라가 안 잡아주더라. 코치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감독이 되면서 잘해보고픈 마음에 선수들에게 화를 많이냈는데 잘못한 것 같다. 박빙 순간에 일어난 실수에 대해서 조금 더 칭찬으로 다가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본다.” -‘농구대통령’이 축구하는 모습에 난리가 났다. “첫 촬영 때 다리가 아파 골키퍼를 했는데 급하니까 백패스를 손으로 잡았다. 재밌게 봐주셔서 다행이다. 정말 룰이 바뀐 줄 몰랐다. 체육관이 아닌 밖에서 운동을 한다는 자체가 적응이 안 된다. 스텝도 다르고.”-현역 시절에는 다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방송에서는 부상이 잦다. “팬들이나 시청자들에게 미안한 부분이다. 은퇴하고 감독으로 지내면서 몸을 잘 만들어 놓을 걸 후회가 든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내 몸을 관리하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방송 녹화 전날에는 무조건 술을 안 마신다.” ● 중국 기자에게 ‘사이다’ 욕, 지금도 후회 안 해 허 전 감독의 인기에는 자연스럽게 내던진 어록도 한 몫 한다. 방송을 통해 ‘그거슨 아니지’는 전국구 유행어가 됐다. 프로농구 KCC 감독 시절 심판에게 블로킹 반칙을 여부를 거세게 항의하면서 했던 ‘이게 블락이야’ 호통은 ‘불낙전골’ 패러디 열풍을 몰고 왔다. 농구 대표팀 감독으로 2011년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중국에 패한 뒤 기자회견에서 엉뚱한 질문을 한 중국 기자에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XX”라고 속 시원하게 날린 ‘사이다’ 발언도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웬만한 개그맨보다 유행어가 많다. “기쁘다. ‘블락’은 정확하게 블로킹인데 급하니까 나도 모르게 나왔다. 어떤 팬들이 영상을 처음에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나도 재밌어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중국 기자에게 말한 건 지금도 후회는 안 한다. 경기 내용 관련 질문을 해야되는데 ‘우리 선수들이 중국 국가가 나올 때 움직였다’는, 전혀 상황에 맞지 않은 질문을 해서 대답하기가 싫었다. 더 인터뷰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농구 인기 하락, 농구인 모두가 반성해야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농구 코트로 돌아가고픈 ‘뼛속까지’ 농구인이다. “지금 프로 감독들이 잘하고 있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사령탑에 복귀하고픈 작은 욕심이 없지는 않다. 한국 농구의 최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인공. 프로농구 인기 하락, 국제 경쟁력 저하에 대한 걱정과 책임감도 분명 있다. -한국 농구가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잖다.“농구인의 한 사람으로 안타깝지.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고 농구인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팬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는 스타가 자꾸 등장해야 한다. 남자 농구만 봐도 10년 주기로 슈퍼스타가 나오고 그 중간 시기 공백을 메워주는 수준급 선수들이 배출되면서 경쟁력이 유지됐다. 신동파에서 이충희, 김현준, 그 다음 나로 왔고, 내가 죽을 만하니까 문경은, 이상민, 서장훈, 현주엽, 전희철 등이 나왔다. 이렇게 계속 ‘이어달리기’가 됐는데 지금은 아니다. 농구계의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언론도 스타들이 계속 나오도록 도와줘야 한다.” ●철저한 실전 계산과 반복 연습… 농구대통령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결국은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의 목적의식이 중요한 게 아닌가.“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경기에 들어갈 때 어떻게 플레이를 하겠다는 계산이 서야하고 사전 에 이미지트레이닝을 해야 한다. 지금 선수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나에게 수비가 누가 붙을 것인지, 수비수가 이렇게 막으면 나는 어떻게 공격 전개를 하고 드리블과 슛 타이밍은 언제 가져갈 건지, 계산을 하고 머리 속에 떠올리면서 맞춤 연습을 반복해야 실전에서 빠른 상황 판단과 좋은 경기력이 나온다는 거다.” -기본기의 중요성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예상 실전 상황을 이미지트레이닝으로 구상하면 절대 슛 훈련도 제 자리에 서서 할 수 없게 된다. (안)정환이 한테 들으니 축구에서도 서서 슛을 하는 찬스는 전혀 안 난다고 하더라. 수없이 움직이다 숨이 차고 수비가 붙어 있을 때 자신의 본래 킥 실력이 나온다고 했다. 나도 예를 들어 수비수를 밋 아웃, 팝 아웃 무브(패스를 받기 전에 스텝과 페이크 모션 등으로 수비수를 떨어뜨리는 동작)를 확실하게 해주고 다음 크로스 방향이나 L자 형태로 움직여 패스를 받고 바로 슛을 던지는 식의 연습을 수없이 했다. 한 지점에서만 하루 300~400번 가까이 했다. 지겨울 정도로 했다. 40분 경기하면서 서서 자유롭게 슛을 던질 수 있는 오픈 찬스는 3번 이상 안 온다. 잘하는 선수는 더 기회가 없다. 그래서 움직이면서 패스를 받고 슛을 하는 반복된 연습이 중요하다.” -실수한 플레이 복기도 늘 강조했다. “실수를 되짚을 줄 알아야한다. 그래서 감독 때 선수들에게 녹화 비디오 영상을 자주 보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선수들은 10개 슛 쏜 것 중에 2개가 들어갔다면 그것만 돌려본다. 실패한 8개가 왜 안들어갔는 지가 중요한 데 말이지….” ● 허재의 불타는 승부욕 롤모델은 신선우-동기 부여가 된 선배들이 있었나.“어릴 때 대표팀에서, 또 현대나 삼성 선배들하고 1대1을 하면서 ‘수싸움’이 늘었다. (이)충희 형이나 (김)현준이 형을 유심히 보면서 슛을 던질 때 보폭, 스텝, 자세 등을 익혔다. 팔 자세는 완전 오리지널 슛폼이라 따라하기가 어려웠다. 롤모델이라고 하면 신선우 선배(전 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였다. 나랑 포지션은 달랐지만 아주 터프하고도 영리한 플레이를 했잖아. 승부욕도 강했고…, 그걸 배웠다.”-‘내가 농구로 최고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감은 언제왔나.“용산고 1학년 올라가면서 웬만한 기본기를 다 내 것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대학에서 체력이 늘었고, 나보다 슛이 좋은 선배들을 많이 보면서 중앙대 2학년 때 소위 농구 선수로 ‘세팅’이 끝났던 것 같다. 그 때부터 어떤 경기든 겁나지 않았다. 서울올림픽(1988년)에서 세계 최강급이라던 유고하고 경기(92-104패, 23득점 가로채기 7개)를 하는데 주눅이 안 들고 오히려 더 자신감이 들더라. 내가 스크린을 활용해 오른손으로 원 드리블하고 슛을 하거나 드리블로 뚫는 동작에는 수비수가 잘 쫓아오지 못했다. 내 플레이에 확신이 있었다.”-1995년 삼성과의 농구대잔치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막판 연속 17점 득점, 1990년 세계농구선수권대회 이집트 전 62득점 등 엄청난 기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운과 실력이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62점 넣을 때는 수비가 둘이 붙어도 던지면 다 들어가더라고. 앞으로 이 기록은 못 깨질 것 같다. 요즘에는 한 선수를 40분 가까이 뛰게 하지 않으니까. 자랑은 아니고 나에게 너무 감사한 기록들이다.” 어디 가서 농구 인생을 제쳐두고 예능 출연 얘기를 먼저 하는 것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는 허 전 감독. 그가 자주 쓰는 말투대로 ’하여간‘ 방송이 됐던, 농구가 됐던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연 농구아카데미 일로도 분주하다. 발달장애인 농구 교실부터 농구 재능 기부, 유소년 유망주 발굴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밀려드는 스케줄에 ‘만세’를 부를 법 하지만 인연이 닿는 사람들의 부탁도 절대 거절 못하고 들어준다. 그럼에도 28일 맞이할 54번째 생일을 미리 축하하니 ‘의리파’ 형님은 손님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이건 아니지, 소주 한 잔 하러 가자.”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201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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