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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과 한미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 논의가 동북아시아에서 ‘스타워즈’라는 신(新) 냉전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7일 북한 로켓 발사가 동북아에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경쟁과 긴장을 증폭시켜 ‘스타워즈’라는 새로운 시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디펜던트는 “북한이 ‘위성’ 발사 성공을 발표한 직후 불과 몇 시간 만에 미국과 한국이 사드 논의 시작을 발표했다”며 “사드가 배치되면 주변 지역에 스타워즈 경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인디펜던트는 중국이 이런 상황을 자초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은 그동안 미국의 사드배치 주장에도 중국을 의식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중국이 최근 북한의 잇따른 도발행위를 묵인하는 태도를 보이자 입장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관리와 안보 전문가들을 인용해 “북한의 로켓 발사로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MD 체계를 빠르게 증강할 수 있다”며 “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도를 더 높이는 것은 물론 러시아의 우려를 더 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핵우산 뒤에 숨으려는 북한 정권의 편집증과 벼랑 끝 전술이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에 군비경쟁과 핵 확산 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디언은 이날 사설에서 “1990년대 초반 드러난 북한의 은밀한 핵 프로그램은 이제 핵 확산 뿐만 아니라 전쟁억지 차원의 문제로 비화했다”고 논평했다. 가디언은 “북한이 군비증강을 추구할수록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 역시 거기에 응답할 수밖에 없으며, 미국도 동맹국들을 충분히 안심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려 분투하고 있다”고 한미간의 사드도입 논의를 언급했다.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에서도 처음으로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신부가 나왔다. 콜롬비아에서는 지카 바이러스가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희귀 질환인 길랭바레 증후군 사망자가 처음으로 확인돼 지구촌의 지카 바이러스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페인 보건부는 4일(현지 시간) 카탈루냐 주 북동부의 의료 시설에 있는 한 임신부(41)가 콜롬비아 여행 후 귀국해 지카 바이러스 감염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임신부는 임신 13∼14주로 지카 바이러스 창궐 지역을 방문했다가 증상이 나타났다. 현재 스페인의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는 임신부를 포함해 9명이다. 이들은 모두 해외여행 후 감염됐다. 콜롬비아에서는 지카 바이러스와 연관된 길랭바레 증후군 환자 3명이 사망했다. 이 병은 신경계가 공격을 받아 마비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콜롬비아에서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 수는 최소 2만500명, 길랭바레 증후군 환자는 약 100명으로 집계됐다. 브라질에서는 최근 수혈에 의한 감염 사례가 2건 보고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수혈에 의한 감염 사례가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지카 바이러스 확산 지역을 여행한 사람들에게 헌혈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일 ‘국제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포하고 세계 각국에 방역 대책 마련을 호소했지만 지카 바이러스의 확산 추세는 멈추지 않고 지카와의 ‘전선(戰線)’이 확장되는 추세다. ○ 전 세계로 확산, 수혈, 성관계로도 감염 지난달 말부터 영국과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과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에서 속속 감염자가 확인되면서 지카 바이러스 발생국은 30여 개국으로 늘어났다. 지카 확산의 진원지인 브라질의 누적 감염자 수는 이미 15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10월 이후 브라질에서 확인된 소두증(小頭症) 신생아도 404명이나 된다. 스페인의 보건전문가 프레데리크 바르투메우스 박사는 “스페인에 서식하는 흰줄숲모기가 바이러스를 옮기기 시작할 경우 스페인에서도 수만 명이 감염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학자들이 제기했던 수혈 혹은 성관계를 통한 감염 가능성도 실제 사례로 속속 확인되고 있다.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카운티 보건당국은 2일 베네수엘라를 다녀온 사람과 성관계를 한 환자가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브라질은 4일 상파울루 근교 캄피나스 시에서 수혈에 의한 감염자 2명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영국은 중남미 지역에 다녀온 이들에 대해 귀국 후 28일간, 캐나다는 21일간 헌혈을 금지하도록 했다. 미국 적십자사도 2일 성명을 통해 “지카 창궐 지역을 다녀온 사람은 최소 28일간 기다렸다가 헌혈해 달라”고 당부했다.○ 일반인도 길랭바레 증후군 비상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의 80% 이상은 가벼운 발열 증세 이후 대부분 치유된다. 그러나 지카가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위험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길랭바레 증후군 때문이다. 4일 콜롬비아에서 이 질환으로 사망한 3명을 검사한 결과 모두 지카 바이러스 양성 판정이 나왔다. 지카 바이러스와 길랭바레 증후군의 연관성은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브라질 동북부, 콜롬비아 등 지카가 확산된 지역에 이 증후군 환자도 늘어 경고의 목소리가 높았다. 길랭바레 증후군은 말초신경, 척수, 뇌신경 등을 파괴해 근육을 약화 혹은 마비시키는 급성 희귀 질환이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중남미 경제는 위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정부는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예정대로 치른다고 4일 재차 확인했지만 올림픽 특수(特需)를 누리기는 힘들어 보인다. 미국 CNN머니는 지카 바이러스로 중남미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며 특히 바베이도스, 자메이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의 관광 산업이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했다. WHO는 미주 지역의 방역 작업에만 850만 달러(약 100억 원)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황인찬 기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여성의원들이 남성의원과 함께 회의실에 마주 앉아 의정을 논의할 수 없다는 ‘남녀의원부동석(男女議員不同席)’ 규정을 만들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12월13일 치러진 사우디 지방선거에서는 1932년 건국 이후 최초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돼 2016명의 지방의회 의원 중 38명의 여성의원이 선출됐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방행정부는 최근 남성 의원과 여성 의원이 함께 회의를 할 경우에는 같은 공간에 모이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4일 보도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남녀 의원은 별도의 회의실을 사용해야 하며, 화상 회의를 통해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다. 화상 회의를 하더라도 남성 의원은 여성 의원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으며 얼굴을 볼 수는 없다. 사우디의 여성 참정권 인정은 지난해 1월 타계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전 국왕의 결정에 따라 이뤄졌다. 압둘라 전 국왕은 ‘아랍의 봄’ 이후인 2011년 9월 국왕 최고 정책자문기구인 ‘슈라위원회’ 연례 연설에서 “2015년부터 여성이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하거나 투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제 군주제인 사우디는 국회의원선거가 없어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하거나 투표하는 것이 정치 참여를 할 수 있는 주요 경로다. 지방의회는 지방정부의 활동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선관위는 여성 후보자들이 남성 옆에 서서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을 금지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니캅(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 전통의상)’으로 가린 여성 후보자들은 여성 유권자에게는 직접 연설할 수 있지만 남성들이 있으면 칸막이 뒤에서 연설해야 했다. 텔레비전 방송으로 유세할 때도 남성 대변인을 통해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대신 소셜 미디어를 통한 선거 운동은 허용됐다. 사우디 정부가 새로 만든 ‘남녀의원부동석’ 규정에 대해 ‘슈라위원회’의 위원인 투라야 알아라예드는 “새로운 규정은 압둘라 국왕이 만든 선례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압둘라 국왕은 2013년에 여성을 처음으로 슈라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으며, 여성과 남성이 같이 앉아 회의하는 것을 허용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작년 11월13일 130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리 테러를 지휘한 인물로 알려진 압델하미드 아바우드(28)가 이슬람 극단주의자 90명과 함께 파리에 침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파리 테러 당시 아바우드의 소재를 경찰에 제보했던 여성은 4일(현지시간) 현지 라디오 RMC와의 인터뷰에서 아바우드가 자신이 다국적 극단주의자 90명과 함께 파리에 도착했다고 말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파리에 있다고 주장했다. 소냐는 “아바우드는 오렌지색 트레이닝복 안에 자폭조끼를 입고 웃고 다녀서 테러리스트처럼 보이지 않았다”며 “심지어 테러 직후에도 마치 ‘쇼핑에서 싼 값에 물건을 산 듯’ 기분 좋아 했으며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냐에 따르면 아바우드는 “신분증도 없이 90명의 유럽인, 아랍인과 함께 시리아에서 프랑스로 왔다”고 말했으며 일행의 국적은 시리아 이라크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이 포함됐다고 소개했다. 아바우드는 “난민위기로 IS 테러범과 모든 다국적 전사들이 유럽으로 매우 쉽게 들어올 수 있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아바우드는 지난해 11월 18일 파리 근교 생드니 검거작전 중 사살된 두 명 중 한 명으로, 파리 경찰에 의해 테러 주모자 총책으로 지목됐었다. 소냐라는 가명을 쓰는 이 여성은 아바우드의 사촌 여동생 아스나 아이트불라첸의 친구로 테러 직후인 작년 11월 15일 파리 주변 도로에서 아바우드를 만나 그가 파리 인근 생드니 아파트 은신처로 이동하는 과정에 동행했다. 소냐는 아바우드가 파리 부근 상업지구인 ‘라데팡스’의 쇼핑센터와 경찰서, 어린이집을 상대로 추가 테러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보복이 두렵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국 명문 케임브리지대의 레셰크 보리시에비치 부총장은 3일(현지 시간) “국제사회가 빈곤과 굶주림, 인종 학살, 기후 변화 등의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모든 국가의 안전을 위해 힘써온 반 총장의 공로에 감사를 표한다”며 학위 수여 배경을 밝혔다. 이어 “유엔 사무총장의 임무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며 “폭력보다는 외교를 통한 분쟁 해결을 한결같이 촉구해온 반 총장의 접근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이날 연설에서 “시리아에서의 굶주림, 난민에 대한 세계인의 차가운 시선, 이슬람국가(IS)와 보코하람 같은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공격과 여성 노예화 등 ‘21세기 대(大)위기’를 막기 위한 열쇠는 ‘인권의 보편성’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또 “내 인권뿐 아니라 남의 인권까지 보편적으로 보호해주고, 특히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 대해 동정심과 연대를 표출하는 글로벌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케임브리지대 명예박사 학위는 1493년부터 각 분야에서 공로를 세운 인물에게 수여돼 왔는데 1년에 8명을 넘지 않는다.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역대 인물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테레사 수녀,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이 있다. 한국인 중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1년에 받았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종자와 농약 등 농화학 분야 세계 1위인 스위스 대기업 신젠타를 집어 삼키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전쟁에서 중국 국영기업이 세계 최대 유전자변형작물(GMO) 기업 몬산토를 꺾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 스위스의 종자(種子) 대기업인 신젠타를 중국 국유 화학기업인 켐차이나가 인수한다고 보도했다. 인수 금액은 430억 달러(약 52조4000억 원)로 지금까지 중국의 해외기업 인수합병(M&A) 규모로는 최대다. 지난해 미국 경쟁회사인 몬산토가 제시한 460억 달러(약 55조9800억 원)보다는 30억 달러 적지만 인수 대금을 대부분 현금으로 주겠다는 중국의 통 큰 제안에 계약이 성사된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켐차이나는 이미 은행에서 250억 달러(약 30조5000억 원) 규모의 단기 대출을 받아둔 상태다. 글로벌 M&A시장에서 ‘차이나머니’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사례다. 스위스 바젤에 본사를 둔 신젠타는 북미지역 종자 및 작물보호제(농약) 시장의 메이저 기업이다. 2000년 제약사 노바티스와 제네카 농화학 부문이 합병해 설립된 신젠타는 그동안 몬산토 바스프(BASF) 등으로부터 여러 차례 매수 의사를 타진받았다. 계약이 최종 타결되면 켐차이나는 세계 최대 농약제조사가 된다. WSJ는 “바이오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인정받는 농약과 종자시장에서 1등이 되려면 신젠타를 인수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보도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산층의 곡물 소비 증가와 농지 축소로 식량 부족에 허덕이자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아 왔다.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중국이 수입한 종자 규모는 6300t으로 전년 동기보다 2.9배나 늘었다. 인구 증가와 식량 부족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종자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중국의 해외기업 M&A 규모는 2008년 540억 달러를 기록한 이후 해마다 10∼15% 이상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중국 최대 M&A 계약은 켐차이나 컨소시엄이 세계 5위 타이어업체인 이탈리아 피렐리를 85억5000만 달러(약 10조8300억 원)에 인수한 것이다. ‘큰손’ 중국의 행보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1월 중국 최대 백색가전 회사인 하이얼이 미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를 54억 달러(약 6조5502억 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한 달간 글로벌 M&A에 투입된 차이나머니는 220억 달러(약 26조7000억 원)에 이른다고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이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중국 정부가 ‘저가 대량생산’의 이미지를 버리고 고부가가치 산업구조로 바꾸기 위해 첨단 기술을 갖춘 외국 기업에 대해 적극적인 M&A를 장려하고 있다”며 “위안화 약세로 M&A 시기를 늦추면 더 비싸게 살 수밖에 없어 서두른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세계보건기구(WHO)가 1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카 바이러스와 소두증(小頭症) 확산 사태에 대해 ‘국제 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WHO의 비상사태 선포는 2009년 신종플루(H1N1), 2014년 5월 소아마비, 2014년 8월 에볼라 바이러스 유행에 이어 네 번째다. 마거릿 챈 WHO 사무총장은 이날 외부 전문가 18명으로 구성된 긴급위원회 화상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긴급위원회는 최근 브라질 등에서 보고된 소두증과 그 밖의 신경장애 사례가 이례적인 일로 다른 지역의 공중보건에 위협이 된다고 권고했다”며 “국제적인 신속한 공동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비상사태를 선포하지만 다른 국가로의 여행이나 무역을 제한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비상이 걸렸다. 보건복지부는 2일 “해외 발병지에서 감염된 환자가 국내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방역 태세를 갖춰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장은 브리핑에서 “모기가 활동을 시작하는 5월 이후 국내에서 첫 감염자가 나오고, 추가적인 전파가 이뤄질 경우 감염병 위기 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격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은 지카 바이러스 유행 지역을 2주 이내에 방문하고, 37.5도 이상의 발열 또는 발진과 함께 근육통 두통 결막염 등 증상을 동반한 경우 유전자 검사를 신속히 진행하기로 했다. 또한 남미 지역에서 들어오는 항공기의 경우 소독을 강화하고, 비행기 내외의 모기를 채집해 바이러스 유무를 체크하는 등 공항 방제를 철저히 하기로 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유근형 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카 바이러스 비상사태 선포 검토에 들어간 가운데 이를 제일선에서 막아야 할 국내 방역의 핵심 자리가 비어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역 최전선의 수장인 인천공항검역소장은 두 달째 공석이고, 1월 차관급으로 격상된 질병관리본부장은 계속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인천검역소장 인선을 땜질식으로 진행한 것이 방역 공백을 악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인천검역소장(고위공무원단급)은 1월 4일 김원종 전 소장이 퇴직한 뒤 공석이다. 감사원의 메르스 징계 여파로 고위공무원 4명이 사실상 대기발령 상태라 소장 후보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 상황에서 소장을 임명하려면 다른 업무를 맡고 있는 복지부 국장을 빼내 발령을 내거나, 부이사관급 공무원을 승진시켜야 한다. 그러나 복지부 관계자는 “대기발령자들이 고위공무원단 정원(TO)을 차지하다 보니 승진 발령을 낼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급한 대로 부이사관급 공무원을 인천검역소만 전담하는 소장 직무대리로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는 서기관급 사무과장이 소장역을 대행하고 있다. 2010년 이후 인천검역소장을 지낸 6명 중 1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은 단 1명뿐이다. 복지부 안팎에서는 인천검역소장직이 ‘잠깐 머무르는 곳’ 또는 ‘좌천성 인사 자리’라는 인식까지 남아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땜질식 돌려 막는 인사를 하면서 소장 자리가 자주 비는데 검역소 직원들의 업무 긴장도가 유지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중남미, 태국 등에서 감염된 관광객과 그들의 수하물에 매개체인 이집트숲모기가 붙어 들어오면서 국내에 지카 바이러스가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남미에서 하루 평균 100명, 2차 확산지인 태국에서는 7000여 명이 국내로 들어오고 있다. 한편 WHO는 1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지카 바이러스 대책 긴급위원회를 소집해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할지와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적 방역조치 권고 방안을 논의했다. WHO가 비상사태를 선언한 것은 2014년 에볼라를 포함해 총 3차례뿐이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파리=전승훈 특파원}

강력한 노동개혁에 힘입어 경쟁력을 회복한 스페인이 지난해 3.2%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유럽 금융위기가 닥친 2007년 이후 최고치다. 스페인 국립통계연구소(NIE)는 지난달 29일 “2015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2%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의 경제 규모 ‘빅5’ 국가 중 유일하게 3%대 성장을 이룬 것이다. 2013년 구제금융을 졸업한 스페인은 2014년 1.4% 성장으로 반전한 이후 10개 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성장은 민간소비 확대, 산업투자 증가, 관광산업 활황에 힘입은 것이다. 스페인은 중도우파 국민당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2011년 집권한 이후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를 깨고 유연성 있는 노동시장을 만드는 개혁을 펼쳤다. 2012년에는 기업이 ‘3분기 연속 전년 대비 매출 감소’를 나타낼 때는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경영이 어려운 기업은 노조와의 합의 없이도 임금과 근로시간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지난해 스페인의 시간당 인건비는 21.3유로(약 2만7903원)로 유로존 19개국 평균 29.2유로의 73%에 그쳤다. 지난해 말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가 내놓은 ‘유럽 경제예측 보고서’는 “스페인의 노동시장 개혁이 노동비용을 크게 줄였고 유로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노동시장이 유연해지자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몰려왔다. 포드 르노 닛산 세아트 오펠 등 5개 자동차 회사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스페인에 투자한 금액은 총 42억 유로(약 5조5020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신규 일자리가 52만5100개나 늘어나면서 실업자 수는 전년보다 68만 명이 감소했다. 2013년 초 614만 명이던 실업자 수는 지난해 말 480만 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실업률은 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하지만 스페인도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집권 중도우파 국민당이 다수를 확보하지 못해 정국이 불안하다. 한 달이 넘도록 여당도, 야당도 새 정부를 구성하지 못해 총선을 다시 치러야 할 상황이다. 라지 바디아니 ‘IHS글로벌인사이트’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스페인의 정치 불안이 길어지거나 좌파가 집권해 노동법을 다시 예전으로 돌린다면 경제회복도 멈추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페인 경제가 잘나가는 반면 유로존 2위의 경제대국인 프랑스의 경제 상황은 좀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프랑스는 지난해 1.1% 성장에 그쳤고 실업률은 10.6%로 1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실업자는 359만 명으로 전년보다 2.6%(약 9만 명) 증가했다. ‘유로뉴스’는 “프랑스 경제가 기어가는 반면 스페인 경제는 날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오랜 역사적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경제 교류에 앞서 인문 사회 교류를 통해 자존심을 세워준다면 좋을 것이다.” 37년 만에 서방의 경제 제재에서 해제된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만난 김승호 주이란 대사(54·사진)는 양국 간 교류 확대를 위해 무비자 방문과 운전면허 상호인정 협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 세계 정부와 기업들이 몰려오고 있는데 한국이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예전 수준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란 특수를 노리는 한국 기업의 전략으로 ‘회복’과 ‘다변화’를 강조했다. 제재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대(對)이란 수출 규모는 170억 달러(약 20조5000억 원)였는데 지난해 수출은 60억 달러로 크게 줄었다. 김 대사는 예전의 교역 수준을 회복하는 동시에 교역 분야를 ‘석유 가스 석유화학 토목건설’ 등 4가지 분야에서 보건의료 자동차 가전 화장품 등 소비재로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란에 돈 벌러 온다, 더 좋은 시장이 있으면 금방 가버린다’는 이미지를 줘선 안 된다. 이란은 한국이 생산라인을 세워 이란의 노동력을 이용해 제3국 수출까지 내다보는 지속 가능한 관계를 원한다.” 김 대사는 양국 간 경제 체제의 차이도 주의해야 할 대목이라고 했다. 이란은 자유시장 경제 체제가 아니므로 사업을 하려면 공적 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세, 노동, 회계 분야의 법규나 적용이 불투명하거나 일관성이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란은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오랜 경제 제재 탓에 한국인에겐 심리적으로 가까운 나라가 아니다. 김 대사는 “이란에 사막만 있는 게 아니다. 테헤란 도심에 있는 산에는 6월까지 스키를 탈 수 있는 스키장이 있다”며 “중동 국가니까 불안정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안전하고 친절한 나라”라고 말했다. “서로 간의 오해를 풀고 이해를 깊게 하려면 관광 교류가 중요하다. 이란의 이스파한이나 시라즈 같은 곳에는 페르시아 왕국의 유적지가 잘 보존돼 있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꽃보다 할배’ 같은 여행 프로그램을 이란에서 제작하면 어떨까.”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다음 달 26일 실시되는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선거를 앞두고 이란 헌법수호위원회가 후보 등록자 801명 중 약 80%를 사전 후보 심사 과정에서 걸러냈다고 이란 국영 IRNA통신이 26일 보도했다. 탈락자 중엔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의 지도자이자 첫 최고지도자인 루홀라 호메이니(1900∼1989)의 손자 하산 호메이니(43·사진)도 포함됐다. 그는 할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일찍 차세대 리더로 거론돼 왔으며 이란의 젊은층에서 인기가 많다.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의장, 하산 로하니 대통령 등 중도온건 개혁세력으로부터 지지를 받아 왔다. 그러나 보수파의 거두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가문의 이름을 훼손해선 안 된다”며 하산의 정치활동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앞서 헌법수호위는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총선 후보 등록자 1만2000여 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58%를 탈락시켰다. 두 선거에 출마 의사를 밝혔다 탈락한 후보들이 대체로 중도 또는 개혁 성향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16일 서방의 대(對)이란 경제제재 해제 이후 힘을 잃은 보수파가 ‘반격’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대로 선거가 치러지면 보수파가 두 기관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지도자운영회의는 직접 선출된 위원 88명으로 구성되는데 이란 최고지도자를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한국에서 제작된 해외 수출용 최신형 무기인 ‘K2카빈(K2C·사진)’ 소총이 이라크 암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라크와 시리아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트위터 계정 ‘그린 레몬’은 최근 한국산 K2C 소총이 암시장에 매물로 나왔다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K2C 소총과 비닐 포장이 뜯기지 않은 탄창과 손잡이 등이 함께 찍혔다. K2C 소총은 우리 군의 주력 개인 화기인 K2 소총을 개량한 제품으로 수출용으로 개발됐다. 아프리카와 남미, 중동 등 일부 지역에 수출되고 있다. 한국군에는 일부 해외파병 특수부대에만 보급됐다. K2C는 명중률이 높으면서 고장이 적고 가벼워 시가전과 대(對)테러전에 유용하다. 특히 조준경, 레이저 표적지시기 등을 소총에 장착할 수 있다. 사진의 K2C 소총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무장단체가 이라크 정부군의 무기고나 무기 수송 차량을 탈취해 손에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지난해 6월 이라크 북부 살라후딘 주 바이지 시 남부에서 벌어진 교전 장면을 홍보하는 사진에서 IS 조직원이 K2C 소총을 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 국방부는 “인터넷에 유포되는 사진 속 소총이 국산 모델이 맞다”며 “제작 회사가 이라크군에 수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란을 37년간이나 옥죄던 서방의 경제 제재가 이달 16일 해제된 이후 대부분의 이란인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란 대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젊은이들의 진솔한 얘기들을 듣기 위해 24일 국립테헤란대를 찾았다.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테헤란대는 2009년 대통령선거 부정 의혹으로 촉발된 대규모 민주화 시위의 진원지다. 이란을 이끌어갈 인재들을 양성하는 곳이지만 2009년 시위 때처럼 정권에 반기(反旗)를 들 수도 있어 지금도 사복을 입은 정보요원들이 캠퍼스 안에서 학생들을 감시한다. 그래서인지 기자가 학생들에게 다가가자 인터뷰를 피하는 눈치였다. ‘감시망의 사각지대’인 카페 안에서 만난 학생들의 발언은 대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테헤란대 공대에 다닌다는 한 학생(20)은 “정부가 핵개발을 포기한 것은 2009년 ‘녹색혁명’ 시위에서 보여줬던 시민들의 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최근 이란에서는 8년에 한 번씩 정권이 바뀌고 있다”며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내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이란에서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후계자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사망하면 개혁파와 보수파 간 갈등으로 이라크나 시리아 같은 혼란이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인문학 전공의 한 대학생(21)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사망 이후 이란의 기득권층은 하메네이를 내세웠고, 하메네이가 죽은 뒤 또 다른 사람을 내세울 것”이라며 “북한 권력층이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 김정은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아마디네자드 정권이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혁명수비대, 바시지 민병대와 같은 정권 수호 조직에 많은 이권을 넘겼다”며 “이란에 ‘마피아’가 없는 이유는 정부가 가장 큰 마피아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서방의 경제 제재가 풀렸지만 테헤란 시내 곳곳에는 ‘Down with USA(미국을 타도하자)’라는 섬뜩한 구호가 적힌 대형 현수막들이 내걸렸다. 반미 벽화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30세 미만의 젊은 세대의 생각은 경제·사회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엄격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집에서 만든 ‘수제(手製) 맥주’를 마시고, 테크노 음악을 들으면서 비밀리에 파티를 즐긴다. 한 학생은 “요즘 이란 젊은이들은 1960, 70년대 미국처럼 젊은 세대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통제된 사회 덕분에 테러 걱정이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였다. 이란에서는 경찰 외에 이슬람 정권 친위부대인 ‘혁명수비대’(12만 명)와 ‘바시지 민병대’(150만 명) 등 다양한 종류의 비밀 요원들이 곳곳에서 사복을 입고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중동 국가로서는 드물게 이란에서 대형 자살폭탄 테러나 총기 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다. 히잡을 쓴 여성들이 오전 1, 2시까지 시내를 돌아다닌다.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발을 못 붙이는 유일한 국가가 이란이다. 정권 유지와 테러 방지 등 다목적 성격을 띤 ‘완벽한’ 치안은 서방 경제 제재 해제 이후 이란으로 몰려드는 외국 기업인이나 관광객들에겐 매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사회’엔 명암(明暗)이 있다. 젊은이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막을 뿐만 아니라 외신기자들이 자유롭게 취재하는 것을 방해한다. 외국 언론사 기자들이 ‘취재비자’를 받으려면 한 달 넘게 걸린다. 이란은 요즘 외국 기업인은 비자 없이 와도 공항에서 30일짜리 ‘방문비자’를 신속하게 내준다. 하지만 외신기자에겐 2시간 넘게 꼬치꼬치 캐묻기 일쑤다. 방문비자를 내줄 때도 “절대 취재나 보도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최근 취재비자를 받고 이란에 입국한 한 언론사 기자는 주민 인터뷰를 위해 골목길에 캠코더 삼각대를 펼쳤다가 잠복근무 중이던 혁명수비대 요원에게 체포돼 3시간 동안 취조를 받은 끝에 반성문을 쓴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기자도 테헤란 거리를 다닐 때 휴대전화 카메라만 이용해 표 나지 않게 촬영해야 했다.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1일 밤(현지 시간)에 찾아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한국 식당에선 이란의 한류 팬들이 모여 케이팝(K-pop) 그룹 ‘빅뱅’ 멤버의 생일 파티를 열고 있었다. 이들은 케이크에 촛불을 켜놓고, 스마트폰으로 재생되는 ‘빅뱅’의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함께 찍은 사진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중학교 3학년생인 데니즈 양(15)은 “빅뱅, 엑소 같은 케이팝 가수가 너무 좋아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한국에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신정일치(神政一致) 국가 이란에서 만난 현지 젊은이들은 의외로 한국 문화에 익숙한 듯했다. 중국 동남아 등으로 퍼져나간 한류가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 이란 땅에도 상륙한 것이다. 서방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 해제로 한국 기업들의 현지 진출이 늘어날 것을 염두에 두고 테헤란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도 200명이 넘었다. 이란에서 경영학석사 과정을 졸업한 베즈버이 샤거에크 씨(25)는 지난해 세종학당에서 개최한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을 했다. 그는 “아버지가 다니던 자동차회사가 한국의 자동차부품 회사와 협력해서 어릴 적부터 한국어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두 달간 인턴 생활을 한 뒤 요즘은 이란에서 네이버 SNS ‘라인’의 현지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다. 이란에서 불고 있는 한류 바람은 특히 한국 드라마의 힘이 컸다. 송일국 주연의 ‘주몽’과 이영애가 나온 ‘대장금’은 시청률이 85∼90%가 넘는 등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후 ‘해신’ ‘바람의 나라’ ‘상도’ ‘이산’ ‘해를 품은 달’ 등의 한국 사극들이 이란 TV를 통해 소개됐고, 현재는 공효진 이선균 주연의 ‘파스타’가 방영 중이다. 한국의 사극 드라마는 신체 노출이 적은 데다 페르시아 왕조 역사를 갖고 있는 이란인들에게 정서적으로 통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이란의 국영 IRIB TV에서 방영될 수 있었다. 샤거에크 씨는 “유럽의 드라마를 봤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한국 사극을 보면서 두 나라가 비슷한 정서적 공감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요즘 이란 젊은이들은 한국에서 방영 중인 최신 드라마를 인터넷으로 내려받아 본다. 고교 1학년 예가나 양(15)은 “슈퍼주니어의 멤버인 시원이 출연했던 ‘그녀는 예뻤다’와 ‘응답하라 1988’을 재밌게 봤다”며 “웹사이트에 실시간으로 누군가가 페르시아어 자막까지 친절하게 붙여서 올려준다”고 말했다. 이란 국립 테헤란대에는 중국어와 일본어 학과는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어 학과가 없다. 그러나 교양과목으로 개설된 한국어 강좌에는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몰려든다. 한류 팬부터 한국 기업에 취직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까지 매 학기 수백 명이 수강신청을 하고 있다. 주이란 한국대사관의 오성호 문화홍보관은 “테헤란대에 한국어학과가 개설되면 이란과의 교역 확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가 이끈 한류 문화 외에 ‘가전(家電) 한류’도 거센 편이다. 어느새 한국 가전제품의 시장점유율이 70%를 넘어 독보적 지위를 점하고 있다. 앞선 기술력과 높은 품질에 더해 현지 주민들의 특성을 세심하게 고려한 점이 맞아떨어졌다. 동부대우전자는 자신의 물건에 손대는 것을 싫어하는 중동인의 특성에 착안해 1998년 자물쇠 냉장고를 선보여 150만 대 넘게 팔았다. 2014년에는 얇고 부드러운 히잡(머리를 가리는 스카프)이 망가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세탁해 주는 ‘이슬라믹 린스’ 기능을 추가한 히잡 세탁기를 내놨다. LG전자는 지난해 이란인들이 전통 요리인 ‘채소 스튜’ ‘닭고기 찜’ 등을 자동 메뉴로 조리할 수 있는 ‘페르시아 솔라돔’ 오븐레인지를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또 2013년에 나온 에어컨 ‘타이탄 빅2’는 섭씨 60도 이상의 혹서에도 견딜 수 있는 ‘열대 컴프레서(공기압축기)’를 장착해 호평을 받았다. 김승호 주이란 한국대사는 “이란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은 이란의 문화적 배경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페르시아 문명의 자존심이 강한 이란인들은 오랜 전통과 현대적 테크놀로지가 합쳐진 한국 문화와의 교류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3일 오전 이란 수도 테헤란 북부에 있는 국제박람회장. 요즘 이곳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기계, 가전, 디자인 등 각종 산업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기자가 찾은 이날도 5개의 전시장에서 가구·인테리어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란 경제의 앞날을 낙관하는 외국 기업인들이 경쟁적으로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란 기업인뿐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 중국 등에서 온 기업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독일의 산업용 플라스틱(PVC) 제조회사 레놀리트사(社)의 마크 맥도나 중동담당 세일즈 디렉터는 “오랜 제재를 겪은 이란에서 요즘 주택 ‘리모델링’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의 산업용 포장기계 생산회사 ‘자린파르스’의 모흐센 알리모하마디 부회장은 “이란 소비자들은 그동안 어쩔 수 없이 값싼 물건을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새로 들어오는 유럽의 질 좋은 제품에 열광하고 있다”며 “한국산, 중국산 제품도 특A급이 아니면 유럽산과 경쟁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KOTRA가 테헤란에 문을 연 코리아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난 한국 기업인들은 이란 경제 제재 해제는 한국 기업에 기회인 동시에 위기라고 입을 모았다. 대(對)이란 경제 제재로 서방 기업들이 철수한 사이 한국 회사들이 가전과 자동차 등에서 독점 지위를 누려 왔는데 제재 해제로 미국 유럽 등 글로벌 기업들과 ‘무한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LG전자는 이란 가전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이란의 수입 상대국 순위에서도 한국은 중국과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3위다. 김승욱 KOTRA 테헤란무역관장(50)은 “1970년대 중동 붐 당시처럼 이번에도 한국 기업들이 (이란에 대한) 선도적 투자로 글로벌 경쟁에서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오랜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2차산업이 경제의 35%를 차지할 정도로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다. 천연자원도 풍부해 석유(매장량 세계 4위)와 가스(1위)뿐만 아니라 아연과 철광석 매장량도 세계 10위권이다. 국립 테헤란대에서 만난 포아드 이자디 교수(국제관계학)는 “이란은 8000만 명의 인구 대국이면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인접국에 살고 있는 3억 명 소비시장의 물류 중심지”라며 “한국이 기술 합작 투자를 통해 이란을 중동의 생산과 유통 기지로 만드는 장기적 프로젝트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 역시 이란 경제에 이해관계가 깊다. 중국은 이란의 첫 번째 교역 파트너로 2014년 양국의 교역 규모는 520억 달러(약 62조3480억 원)에 이른다. 중국은 또 서방의 제재 기간 동안 테헤란 지하철 공사를 맡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16일 서방의 대이란 제재가 해제된 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 이란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에너지, 사회간접자본 분야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약속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23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만난 자리에서 “양국의 오랜 역사적 교류로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양 실크로드 프로젝트) 건설에서 ‘천연(天然)의 동반자’”라고 말했다. 이에 하메네이는 “일대일로는 시의 적절한 것으로 이란은 중요 국가가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란과 중국이 밀월 관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이란 기업인들의 눈길이 곱지만은 않다. 중국이 자국의 자재와 노동력, 값싼 물건을 통째로 들여와 이란의 자체 제조업 시장과 청년 일자리 기반을 붕괴시켰기 때문이다. 테헤란대 공대 1학년 후세인 씨(19)는 “경제 제재 해제로 서방 기업들의 상품들이 몰려와 이란 기업이 다 죽는다면 청년 일자리는 오히려 더 나빠질 것”이라며 “한국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합작 투자로 이란의 제조업과 ‘윈윈’하는 전략을 펴 달라”고 주문했다. 이란에는 30세 미만 인구가 인구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젊은 노동력이 풍부하다. 청년들의 대학 진학률은 70%가 넘고, 높은 기술력을 갖춘 해외 유학파도 많다. 대졸 월 초임이 평균 500∼600달러로 인건비도 싼 편이다. 이 때문에 일부 한국 기업 중에는 “중국이나 베트남에 몰려 있는 생산 공장 일부를 이란으로 옮겨 중동 공략을 위한 전략생산 기지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득수 LG전자 이란지사장은 “제재 해제 후 수요 증가에 대비해 카즈빈 등에 있는 생산 공장 시설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현지 전문가들은 경제 제재 후 가장 큰 수혜를 보게 될 나라로 중국과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를 꼽았다. 김승호 주이란 대사는 “이란에 대한 리스크가 모두 사라지길 기다린다면 이미 늦을 것”이라며 “2006년부터 중단된 한-이란경제공동위원회(장관급 회담)를 2월에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1일(현지 시간) 저녁 이란 수도 테헤란 중심부 발리아스르 거리. 이란의 ‘샹젤리제’로 불리는 이곳의 멜라트 공원 부근은 주말(이란은 목요일과 금요일) 밤을 즐기려는 젊은이들로 북적댔다.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는 젊은 여성들은 대체로 다채로운 색깔의 최신 유행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려고 쓰는 스카프)을 머리 뒤에 간신히 걸친 채 머리카락의 대부분을 내놓은 채였다. 한 젊은 여성에게 “요즘엔 히잡 단속이 심하지 않으냐”고 묻자 그녀는 “잡혀가도 한두 시간이면 풀려 나온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옆에 있던 남자 친구 아미르 씨(26)는 “색깔 히잡이 아니라 보라, 노랑, 분홍 빛깔로 머리를 염색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며 “이슬람 국가지만 이란 여성들은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이란의 젊은 여성들은 스키도 승마도 자유롭게 즐길 뿐 아니라 밤에 고속도로에서 남자들과 카레이싱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기자가 이란을 처음 방문했던 1990년대 후반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당시는 여성들이 히잡을 쓰고 앞머리를 내놓거나, 귀를 보이기만 해도 종교경찰이 심하게 단속했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젊은 남녀가 한자리에 앉아 있으면 종교경찰이 다가와 “결혼한 사이인가”라고 묻고 아니면 풍속사범으로 잡아가곤 했다. 시내의 쇼핑몰과 공원, 물담배(한 번 물을 거친 담배 연기를 들이마심)를 피우는 카페와 식당에도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유명 서구 브랜드가 직접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이란 식으로 개조한 ‘짝퉁’ 영업점이 많았다. 테헤란의 최대 쇼핑몰인 ‘하이퍼스타’는 6년 전에 프랑스 할인점 카르푸가 한국 매장을 철수한 뒤 이란으로 인력과 시설을 옮겨와 지은 쇼핑몰이다. 치킨 전문 패스트푸드점인 미국 ‘KFC’의 짝퉁인 ‘SFC’ 매장도 인기였다. SFC에서 만난 마시 씨(24·여·디지털광고 디자인 회사)는 “앞으로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한국에서 많은 투자가 들어오면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도 많아질 것”이라며 “맥도널드, KFC, 스타벅스 등 서구의 ‘오리지널’ 브랜드도 직접 들어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타렉 씨(37·무역업)는 “아프가니스탄은 이란보다 10배나 못살았는데 전쟁으로 미국이 들어온 뒤 이란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인근 재래시장에서 만난 보수적인 사람들은 미국 문화가 침투하고 개방 바람이 거세질까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수염을 기르고 히잡을 깊게 눌러쓴 부인과 쇼핑몰에 나온 알리 씨(60)는 “핵무기 개발을 포기해 미국과 자존심을 건 싸움에서 졌다”며 “경제 제재가 해제돼도 우리의 종교와 정치 체제를 위협하는 미국인들과 미국 문화는 절대 들어와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란인들의 종교와 체제를 수호하는 강경보수파 ‘혁명수비대’와 ‘바시즈 민병대’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쟁이 한창이었다. 바히드 아마디 씨(25)는 “이란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느냐”며 “혁명수비대 등의 확실한 통제 덕분에 이란이 안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요세프 이룬파리 씨(32)는 “전임 대통령이 아마디네자드 정권 시절 혁명수비대에 국가의 이권 사업을 대거 넘겨 ‘이란판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라는 말이 생겼다”며 “요즘 혁명수비대는 히잡 단속보다 돈벌이에 더 관심이 많다”고 비아냥댔다. 현지 TV들은 22일 이란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다. 그랜드 바자르에서 신발 수입 사업을 하는 유수프 씨(60)는 “중국은 서방의 경제 제재하에서도 유일하게 이란의 원유를 사줬다”며 “미국의 제재하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해준 은인 국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화폐 가치 하락으로 물가가 치솟자 정부는 중국의 싼 물건을 대량 수입해 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며 “이제 젊은이들은 싸구려 ‘짝퉁’보다는 질 좋은 ‘오리지널’을 원한다”고 말했다. 중동 3개국 방문 마지막 일정으로 이날 테헤란에 도착한 시 주석은 전날 관영 ‘이란보’에 ‘중국과 이란의 아름다운 미래를 함께 건설하자’는 기고문을 싣고 “양국은 과거 서로 낙타 방울 소리가 들리고 배의 노가 서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이웃으로 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했다”고 밝혔다. 또 이란이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정책 추진에 중요 파트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전날 이집트 카이로의 아랍연맹 연설에서 중국이 앞으로 중동 평화와 안정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21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 최대 시장인 그랜드바자르. 수천 년 역사의 그랜드바자르는 중동 최대 시장 중 하나로 이란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카펫, 귀금속, 향신료, 견과류, 의류 등 거의 모든 물품을 취급하는 가게들로 빼곡하다. 시장 통로를 모두 이으면 10km를 웃돈다. 이곳에서 만난 테헤란 시민들은 37년 만에 서방 국가의 경제 제재가 풀리자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의류 상인 하산 씨(45)는 “경제 제재가 해소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비와 투자 심리에는 큰 영향을 끼친다”며 “그동안 돈을 꽤나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젠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분야에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앞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란을 많이 찾게 되면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중국과 이란이 합작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는 알리 소브하니 씨(36)는 이날 기자와 만나 “중국과 한국은 서방의 경제 제재 당시에도 건설, 전자업체 등이 사무실을 유지하면서 이란과 경제 교류를 해왔다”며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이 이란의 인프라 건설에 많은 투자를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큰 게 사실이지만 이란 당국은 제재 해제를 계기로 외부 세력이 이란에 침투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한 외교소식통은 “이란이 서방과 핵 협상을 타결한 이후 분위기가 좋아져 외국인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이란 당국이 이를 신경 쓰고 있다”고 전했다. 아직 이란에서는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의 다국적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 그동안 서방 국가에서 금융 제재를 받아왔기 때문에 비자, 마스터 등의 국제 신용카드는 현지에서 통용되지 않았다. 현지에서 물건을 구입하려면 미국 달러, 유로화 등을 가져가 현지 은행, 환전소 등에서 이란 리알화로 바꿔야 한다. 유가 하락의 여파로 리알화는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7월 핵협상이 타결됐을 때만 해도 달러당 3만3000리알 안팎이었던 리알화의 가치는 21일 현재 달러당 3만6000리알로 떨어졌다. 물가도 핵협상 타결 이후 경제 제재가 풀리면서 상당히 떨어졌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경제 제재가 가해진 2013년의 경우 물가상승률이 40%를 넘기도 했지만 지금은 질레트 면도날 1상자의 가격은 4년 전과 비교할 때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랜드바자르의 한 수공예품 가게 판매원은 “이란인들은 우리 제품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다르다. 그들은 우리 제품에 관심이 많다. 경제 제재가 풀렸으니 가게 매출이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의 국내 소비시장은 양극화 현상이 매우 뚜렷하다. 국민 대부분은 소득의 70%를 식비와 주거 임차료에 사용한다. 소비품은 대체로 저가인 중국산과 대만산, 터키산을 선호한다. 그러나 중산층 이상은 LG, 애플 등 고급 전자제품이나 승용차를 구입하려고 한다. 테헤란 거리에는 낡은 중고 자동차들이 매연을 뿜고 다녔으나 한국의 현대자동차도 많이 보였다. 부유층은 서방 국가의 상류층 이상이다. 명품 브랜드와 최고급 제품을 선호한다. 테헤란 거리에서도 벤츠, BMW 등의 자동차가 간혹 눈에 띈다. 그 대신 대다수 제품의 공급량이 크게 부족한 탓에 시장 자체는 공급자가 좌우하는 구조다. 현지 기업들은 물량을 상당 부분 확보해도 한꺼번에 유통하기보다 시장 현황을 보면서 유통 물량과 가격을 조절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국산품을 장려하기 위해 생산량이 적어도 자국 제품이 있으면 높은 관세, 수입제한 조치 등을 실시하고 있다. ‘테헤란의 청담동’이라고 할 만한 북부 부촌에 자리한 ‘팔라디움몰’은 명품가게, 고급 음식점, 수영장, 피트니스클럽 등이 입주한 고급 쇼핑몰이다. 몽블랑, 스와로브스키, 훌라, 나이키 등 해외 유명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지난해 7월만 해도 팔라디움몰에는 빈 공간이 꽤 많았으나 현재는 거의 모든 공간이 채워졌다. 가잘레 파티 씨(35)는 “팔라디움몰은 유럽의 여느 쇼핑몰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수입품에 관세를 높게 매겨 외국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명품 가게는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은 서구식 옷차림을 한 여성으로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머리를 가리려고 쓰는 스카프)을 머리 뒷부분에 살짝 걸친 채 스마트폰을 들고 쇼핑을 하고 있었다. 1979년 2월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전만 해도 이란 여성들은 서구식 옷차림을 하고 히잡을 쓰지 않았다. 패션의 자유를 누려서 가슴과 허벅지의 일부를 드러낸 옷을 입기도 했다. 과거 이란 왕정은 여성을 덴마크 대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에르위나 알라스 씨(27·여)는 “경제 제재가 풀리면서 이란 경제가 상당 부분 회복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여성에게도 과거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팔라디움몰 밖으로 나가자 고가 시계인 오메가의 광고 간판도 보였다. 인근에선 명품 전문 쇼핑몰이 2곳이나 건물을 짓고 있었다. 이 가운데 한 쇼핑몰에선 완공 전임에도 불구하고 지하에서 식료품 판매점이 운영되고 있었다. 가게 직원은 “유럽 고급 식재료와 가공식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란 경제의 미래는 결국 유가가 결정하는 게 아닐까요.” 21일 오전(현지 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30km 떨어진 이맘호메이니국제공항. 비행기에서 막 내린 압둘 씨(40)는 기자가 미국의 제재가 풀린 후 이란이 어떻게 될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입국장을 빠져나오자 환영 피켓을 들고 외국인투자가들을 기다리는 이란인들이 수십 명이나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7월 서방국가들과 이란의 핵협상 타결 이후 테헤란을 찾는 글로벌 기업인들이 부쩍 늘었다. 기자가 탑승한 카타르 도하발 이란행 항공기도 거의 만석이었다. 옆 좌석에 앉았던 네덜란드 사업가 라울 폰 아키첸 씨(47)는 “이란의 해외 동결 자산만 1000억 달러”라며 “이란의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게 되면 인구 8000만 명의 새로운 시장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테헤란의 날씨는 봄날처럼 따뜻했다. 공항의 출구 앞에는 외국에서 온 글로벌 비즈니스맨들을 픽업하러 나온 사람들이 100명 넘게 몰려 있었다. 택시 운전사 알리 레자 씨(58)는 “지난해 핵협상이 타결된 후부터 테헤란 공항에 내리는 비행기가 늘 만석이다”며 “외국인이 이렇게 찾아오는 걸 보면 이번엔 진짜 변화가 생길 듯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공항 앞에 늘어선 노란색 낡은 택시를 골라 탔다. 택시 운전사 알리 씨(37)는 “자동차를 수입할 수 없어서 테헤란에서 운행되는 400만 대 차량 중 절반이 차령 20년을 넘긴 고물차”라며 “경제 제재가 풀려 앞으로는 신형차가 거리를 뒤덮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로엔 기아자동차의 프라이드와 비슷한 차량이 자주 보였다. 기아자동차는 이란에서 프라이드 조립공장을 운영하다 2005년 현지 기업에 시설을 넘기고 철수했다. 이후 현지 이란기업이 프라이드를 ‘사바’라는 모델명으로 생산하고 있다. 이란 자동차의 40%가 사바다. 인구 8000만 명의 이란은 소비품의 5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위해서는 연간 240억 달러 이상의 원료, 완제품 등을 수입해야 한다. 37년 만에 서방 국가의 경제 제재가 풀리면서 이란 현지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이런 기대감이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 교외의 중산층 거주 지역에 살던 컴퓨터 전문가 아베카시스 씨(32)는 익숙한 프랑스 생활을 접고 지난해 말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유대인인 그는 2012년 아들 노아가 태어나기 전에는 프랑스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날 무렵 툴루즈에 있는 유대인 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져 학생과 교사 4명이 숨졌다. 그 후로 유대인 학교 앞에는 무장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다. 그는 “아이가 마음 놓고 학교에 다니고,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50만 명쯤 거주한다. 그런데 이 중 20만 명이 유대인의 이스라엘 이주를 뜻하는 ‘알리야’를 꿈꾼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유대인기구(JA)에 따르면 지난해 알리야를 실행한 서유럽 거주 유대인은 9880명이며 이 중 8000명이 프랑스 거주 유대인이었다. 왜 프랑스에서 이스라엘로 역(逆)엑소더스를 하는 걸까. 우선 지난해 1월 시사풍자 잡지 ‘샤를리 에브도’와 유대인 슈퍼마켓 테러 사건, 11월 파리 테러 사건 등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마르세유에서 터키 쿠르드족 출신 15세 소년이 유대인 학교 교사에게 칼을 휘두르는 등 반(反)유대인 정서도 짙어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유대인 인구 비중은 1% 미만이지만 지난해 발생한 모든 인종주의 증오 공격의 절반 이상이 유대인을 겨냥한 것이었다. 지난해 유튜브에는 반유대인 정서를 생생히 보여주는 영상이 올라왔다. 유대인 뉴스매체 NRG의 기자가 유대인들이 애용하는 ‘키파(모자)’를 쓰고 파리 곳곳을 걷는 영상이었다. 몰래카메라로 찍은 동영상에는 기자에게 “개”라고 부르거나 침을 뱉고, “팔레스타인 만세”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당하거나 위협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프랑스 거주 유대인 비율이 60%라는 여론조사도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를 막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내세우는 엄격한 정교(政敎)분리 원칙도 종교 생활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을 떠나게 하는 요인이다. 반대로 2008년 건국 60주년을 맞은 이스라엘 정부는 귀국 유대인들에게 10년간 해외에서 취득한 모든 자산과 소득에 면세 혜택을 주면서 이들을 환대하고 있다. 알리야를 꿈꾸는 유대인들은 대부분 고학력 중상류층이고 금융과 경제에 영향력을 가진 기업인이 많아 프랑스 정부의 고민이 깊다. 다니엘 벤하임 유대인기구 프랑스지부장은 “유대인 이주자들 중 다수는 비싼 세금과 반유대주의 분위기를 피하려는 중산층과 부유층”이라며 “하위층 유대인들은 프랑스의 관대한 사회복지 혜택 때문에 떠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지난해 테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유대인은 프랑스 공화국의 전위대”라고 강조했지만 유대인의 탈출 행렬을 막지 못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장관도 지난해 9월 이스라엘을 방문해 유대인들에게 프랑스로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당시 간담회에 참석했던 청년 창업자 제레미 브라베 씨(32)는 “프랑스에서 유대인으로 살면서 아무도 내게 볼을 패스하지 않는 축구팀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며 “프랑스는 휴가 때만 갈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 석유 매장량 4위의 자원부국이자 인구 8000만 명의 중동 내 최대 내수시장을 가진 이란이 국제무대에 전격 복귀하게 됐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서방의 고강도 경제 및 금융제재가 시작된 지 37년 만이다. 이슬람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정치 경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 미국 등과의 협력을 강화해 이슬람국가(IS) 퇴치에 기여해 나가는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수니파 걸프국가와는 중동 패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경제에는 새 활로가 뚫릴 것으로 보인다. 저유가, 중국 성장세 둔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던 건설, 정유, 항공 분야의 기업들에 수출길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이란은 가스와 정유 등 원유 관련 시설 개·보수 및 신설에 앞으로 1300억∼1450억 달러(약 157조3000억∼175조4500억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그동안 핵무기 개발 의혹과 관련해 이란에 부과했던 경제·금융제재를 16일(현지 시간) 상당 부분 해제했다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날 이란이 핵합의안(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의 핵프로그램 제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함으로써 서방의 제재 해제 조건을 충족했음을 검증했다고 확인했다. 특히 미국은 이란과 거래하는 비(非)미국 기업 및 개인에 대한 이른바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를 해제했다. 이에 따라 이란은 원유 판매 대금 등 1000억 달러(약 122조 원) 규모의 해외 동결 자산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원유와 각종 상품 교역에 대한 제재에서도 풀려났다. 이란 중앙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도 외국과 자금 거래를 다시 할 수 있게 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란 핵합의 이행은 중대한 이정표”라며 환영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17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에게 축하 서한을 보내 “이란 핵합의 및 제재 해제가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희망의 준거가 될 수 있다”며 협력을 당부했다.파리=전승훈 raphy@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