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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실시되는 대선·총선을 앞두고 터키에서 잇달아 한국의 경제발전 모델과 한류를 비하하는 칼럼들이 현지 신문에 실려 논란이 되고 있다.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유세 과정에서 한국을 터키가 가야 할 발전 모델로 언급하자 친정부 언론이 이를 반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국 때리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터키 유력 일간지 예니샤파크의 필진 파루크 악소이는 지난달 31일 칼럼을 통해 “서구화를 원하면서도 이를 드러내는 데 눈치를 보는 이들이 ‘한국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다”며 “한국(모델)이라는 말은 미국을 기쁘게 하는 것이고 아무런 의문과 생각도 품지 않고 나라를 미국의 문화에 바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정의개발당(AKP)의 의중을 대변하는 친정부 성향의 매체다. 그는 같은 칼럼에서 한국의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을 사례를 들며 인종차별적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악소이는 “째진 눈의 아시아인을 통해 팝송을 들려주면서 사람들에게 이것을 보수적(자신의 것을 보존한다는 의미)이라 여기게 만드는 것이 바로 서양의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터키 일간지 아이든르크도 칼럼에서 한국을 ‘미국의 점령지’라고 왜곡했다. 이 칼럼은 “수도 서울의 중심에는 미군기지 본부가 있다”며 “한국은 미국의 점령 아래 있는 나라”라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의 프로젝트 국가’, ‘아시아에서 미국의 전진기지’ 등의 표현으로 한국의 위상을 깎아내렸다. 이 같은 터키 친정부 매체들의 한국 폄하는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대선 후보 무하렘 인제가 최근 한국을 터키의 발전 모델로 계속 언급하면서 촉발됐다. 인제 후보는 지난달 25일 CNN튀르크 인터뷰에서 “1980년대 1인당 국민소득이 터키와 비슷한 2000달러 수준이었던 한국은 교육을 통해 기술 인력을 대거 배출했고 그 결과 국민소득이 3만 달러까지 불어났다”며 “우리도 교육 투자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흘 뒤 서부 대도시 이즈미르 유세에서도 ‘터키가 베네수엘라처럼 되려는가, 한국처럼 되려는가’라고 반문한 뒤 “석유 부국인 베네수엘라는 화장실 휴지조차 사기 어렵게 된 반면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로 발전했다”며 한국을 칭찬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이것이 시온주의자들과 싸워왔던 내 딸의 무기입니다. 그리고 주머니 안에 있던 붕대 2개가 내 딸의 탄약이었습니다.” 라잔 나자르(21)의 어머니 사브린은 피로 물든 딸의 조끼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사는 나자르는 이스라엘 군경과 충돌 과정에서 부상한 시위대를 치료해 온 의료봉사자였다. 사브린은 “내 딸은 3월 30일 시작된 ‘위대한 귀환 행진’ 이후 매주 금요일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분리장벽 근처에서 사람들을 치료했다. 모든 사람이 장벽을 떠난 뒤에서야 하얀 제복이 피로 물든 채 집으로 돌아왔다”며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을 안타까워했다. 나자르는 1일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의 분리장벽 부근에서 이스라엘군이 쏜 총탄을 맞아 숨졌다. 나자르가 총격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한 친척은 머리에 최루탄을 맞은 노인을 치료하다가 나자르가 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당시 흰 가운을 입고 있어 의료진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가자지구 보건 당국은 나자르가 부상자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의료진과 함께 손을 든 채 장벽 쪽으로 접근하다가 피격됐다고 밝혀 최후 순간에 대해선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 당국은 이스라엘군이 손을 들고 장벽에 접근하는 흰 제복 차림의 구급대원들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영상은 나자르가 총격을 당하기 수 분 전에 촬영된 것이다. 그의 사촌 이브라힘은 “평소 나자르에게 (장벽에)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얘기했지만, 그녀는 죽음이 두렵지 않고 (다친) 젊은 남성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며 슬퍼했다. 나자르는 병원에서 응급구조대원으로 2년간 훈련받은 뒤 현장에 투입돼 시위 중 다친 여성과 어린이들의 치료를 도왔다. 나자르는 지난달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우리의 목표는 생명을 구하고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동시에 ‘무기 없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일 치러진 나자르의 장례식에 팔레스타인 주민 수천 명이 참석했다. 가자지구 보건 당국은 나자르를 3월 30일 이후 119번째 팔레스타인 사망자로 기록했다. 사브린은 “이스라엘군은 내 딸이 구급대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며 “저격수의 표적이 돼 가슴에 총탄을 맞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니콜라이 믈라데노프 유엔 중동특사는 이날 트위터에 “의료진은 표적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무력 사용을 자제할 필요가 있고 하마스도 장벽에서의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도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의료봉사자 사망 사건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의료진에 대한 보호를 촉구했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통해 나자르의 사망 사건을 조사할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하마스가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민간인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책임을 돌렸다. 한편 팔레스타인은 ‘6일 전쟁’(3차 중동전쟁) 51주년을 맞는 5일 대규모 시위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팔레스타인과 아랍 국가들에 3차 중동전쟁은 동예루살렘 등을 빼앗긴 치욕스러운 날이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아들이 군 제대하고 장기 여행을 떠났거든요. 두 달 전에 이집트 다합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도무지 한국에 들어올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아들 생사를 확인하러 왔다가 저도 다합의 매력에 푹 빠져서 귀국 일정을 연기해버렸지 뭐예요, 하하!” 이집트 시나이반도 남동쪽의 작은 어촌마을 다합에서 만난 권승율 씨(55)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내의 부탁을 받고 여행 중인 아들을 데리러 이곳에 왔다는 그는 요즘 아들과 함께 프리다이빙(스킨다이빙)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다이빙은 공기통 없이 맨몸으로 잠수하는 스포츠다. 노란색 티셔츠에 투명한 테두리의 선글라스로 멋을 낸, 50대 중반의 권 씨는 다합에 모여든 전 세계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집트 하면 대부분 고대 피라미드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세계를 누비는 젊은 배낭여행자들에게 다합은 피라미드보다 더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힌다. 다합은 수도 카이로에서 차로 약 8시간 떨어져 있다. 비행기를 이용해 샤름엘셰이크 국제공항에 도착하더라도 차로 한 시간가량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22일 찾아간 다합은 이집트의 여느 도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모세가 야훼에게서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산의 황량한 능선이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고, 그 앞으로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고 출애굽(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로 해방돼 나온 일)을 했다는 홍해다. 돌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눈을 사로잡았지만 거리의 자유로움이 더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이슬람 성월(聖月)인 라마단(5월 17일∼6월 14일) 기간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무슬림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이집트는 전체 인구의 90%가 무슬림이기 때문에 라마단의 낮 시간에는 거리가 텅 빌 정도로 한산하다. 하지만 전 세계 여행자들로 붐비는 다합의 거리는 달랐다. 히잡을 쓴 여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즐기거나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이 많았다. 다합에 살면서 7년째 스쿠버다이빙 강사로 일하고 있는 김미영 씨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오가는 장기 여행자들이 주로 이곳을 찾는다. 다합은 배낭여행자들의 허브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다합을 다녀간 여행자들은 이곳을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와 파키스탄의 ‘훈자마을’과 함께 ‘세계 3대 블랙홀’로 꼽는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곳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에서 온 말리카 자델 씨는 “모든 것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 다합의 분위기가 좋아서 1년 반을 여기서 보냈다. 여기서는 태양과 바람, 산과 바다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다합은 홍해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홍해는 깊은 수심과 다채로운 지형을 갖고 있고 산호가 잘 보존돼 있어 스킨스쿠버를 즐기기에 좋다. 특히 다합에서는 해변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바로 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게 매력이다. 김 씨는 “보트가 필요 없기 때문에 해변에서 쉬다가 언제든 원할 때 다이빙을 할 수 있다”며 “자유로움을 사랑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최고의 장소”라고 귀띔했다. 직접 공기통을 메고 바다로 들어가 봤다. 푸른 바닷속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해안 절벽을 따라 영롱한 빛깔의 산호가 만개했고, 알록달록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그 주위에서 헤엄쳤다. 홍해를 탐험하는 동안은 시간의 흐름도 멈춘 것 같았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안나 미첸코 씨는 “그 깊이와 아름다움을 보게 되면 누구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다합의 외곽에 위치한 거대한 ‘블루홀’은 다이버들의 성지로 불린다. 블루홀은 바다에 생긴 동공(洞空·싱크홀)으로 지형이 급격하게 깊어지는 탓에 주변보다 짙은 푸른색을 띤다. 다합 블루홀의 깊이는 130m에 이른다. 능숙한 프리다이버들은 수심 70m까지 잠수해 ‘아치’라고 불리는 터널을 보고 올라오기도 한다. 러시아 출신 프리다이버 안드레이 세칼로프 씨는 “블루홀 속으로 몸을 맡길 때마다 무의식과도 같이 크고 깊은 바다에 경외심을 느낀다. 바다를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다합의 블루홀은 프리다이버에게 더 깊이 내려가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그래서 다이버들의 천국인 동시에 무덤이기도 하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최근 10년간 150명이 넘는 다이버가 다합의 블루홀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다이버들을 기리기 위해 근처 해변가에 비석들이 세워져 있었다. 한 비석에 새겨진 ‘영원히 다이빙을 즐겨라(Enjoy your dive forever)’라는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합을 찾는 여행자의 십중팔구는 다이빙 삼매경에 빠진다. 다합에선 전 세계 어느 곳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다이빙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스쿠버다이빙의 경우 400달러(약 43만 원)와 일주일 정도를 투자하면 초보자들의 입문 과정인 ‘오픈워터’에 이어 강사 없이 독립적으로 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어드밴스트’ 자격을 딸 수 있다. 다합에서 세 달째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있다는 박태진 씨는 “동남아보다 싸다고 해서 여기에 눌러앉았다”며 “마스터 자격증까지 따고 돌아갈 생각”이라고 했다. 다합의 값싼 물가는 장기 여행자들에겐 커다란 매력이다. 대만에서 회사를 퇴직하고 세계 여행 중이라는 리앙 씨는 “(하루) 12∼20달러 정도면 괜찮은 호텔을 구할 수 있고 단돈 몇 달러로 먹고 마시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다합에서 값싼 숙소를 찾는다면 50이집트파운드(약 3000원)에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장기 여행객들은 월세로 3000이집트파운드(약 18만 원) 정도면 전기료와 상수도 요금, 와이파이 사용료 등이 포함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추가 생활비를 고려할 때 우리 돈 40만 원 정도면 ‘한 달 살기’가 가능한 셈이다. 다합에 머무는 장기 여행자 중에는 한국인도 많다. 인구 1만5000명 규모의 작은 마을이지만 100여 명의 한국 여행객이 늘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다합에 도착했다는 이희천, 손정혜 씨는 29세 동갑내기 커플로 1년 동안 세계를 여행 중이라고 했다. 이들은 “오랜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러 왔다”며 “다합에는 한국인이 많아 편하게 쉴 수 있다 들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다합을 찾는 한국 여행자들의 안전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2014년 2월 다합에서 약 140km 떨어진 시나이반도 타바에서 한국 관광객이 탄 버스가 폭탄테러를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교부는 다합을 포함한 시나이반도 대부분을 특별여행경보지역으로 지정해 ‘즉시 대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다만 여행 금지 국가 및 지역으로는 지정되지 않아 여행자들의 방문을 막거나 처벌할 법적 근거는 없다. 주이집트 한국대사관 김현수 영사는 “시나이반도의 치안이 불안정한 데다 다합은 외국인 밀집 지역이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타깃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다합=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아들이 군 제대하고 장기 여행을 떠났거든요. 두 달 전에 이집트 다합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도무지 한국에 들어올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아들 생사를 확인하러 왔다가 저도 다합의 매력에 푹 빠져서 귀국 일정을 연기해버렸지 뭐예요, 하하!” 이집트 시나이반도 남동쪽의 작은 어촌마을 다합에서 만난 권승율 씨(55)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내의 부탁을 받고 여행 중인 아들을 데리러 이곳에 왔다는 그는 요즘 아들과 함께 프리다이빙(스킨다이빙)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다이빙은 공기통 없이 맨몸으로 잠수하는 스포츠다. 노란색 티셔츠에 투명한 테두리의 선글라스로 멋을 낸, 50대 중반의 권 씨는 다합에 모여든 전 세계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집트 하면 대부분 고대 피라미드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세계를 누비는 젊은 배낭여행자들에게 다합은 피라미드보다 더 가보고 싶은 곳으로 꼽힌다. 다합은 수도 카이로에서 차로 약 8시간 떨어져 있다. 비행기를 이용해 샤름 엘 셰이크 국제공항에 도착하더라도 차로 한 시간가량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22일 찾아간 다합은 이집트의 여느 도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모세가 야훼에게서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산의 황량한 능선이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고, 그 앞으로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고 출애굽(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로 해방돼 나온 일)을 했다는 홍해다. 돌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눈을 사로잡았지만 거리의 자유로움이 더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이슬람 성월(聖月)인 라마단(5월17일~6월14일) 기간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무슬림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이집트는 전체 인구의 90%가 무슬림이기 때문에 라마단의 낮 시간에는 거리가 텅 빌 정도로 한산하다. 하지만 전 세계 여행자들로 붐비는 다합의 거리는 달랐다. 히잡을 쓴 여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을 즐기거나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이 많았다. 다합에 살면서 7년째 스쿠버다이빙 강사로 일하고 있는 김미영 씨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오가는 장기여행자들이 주로 이곳을 찾는다. 다합은 배낭여행자들의 허브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다합을 다녀간 여행자들은 이곳을 태국 방콕의 ‘카오산로드’와 파키스탄의 ‘훈자마을’과 함께 ‘세계 3대 블랙홀’로 꼽는다.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곳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에서 온 말리카 자델 씨는 “모든 것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 다합의 분위기가 좋아서 1년 반을 여기서 보냈다. 여기서는 태양과 바람, 산과 바다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다합은 홍해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홍해는 깊은 수심과 다채로운 지형을 갖고 있고 산호가 잘 보존돼 있어 스킨스쿠버를 즐기기에 좋다. 특히 다합에서는 해변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바로 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게 매력이다. 김 씨는 “보트가 필요 없기 때문에 해변에서 쉬다가 언제든 원할 때 다이빙을 할 수 있다”며 “자유로움을 사랑하는 여행자들에게는 최고의 장소”라고 귀띔했다. 직접 공기통을 메고 바다로 들어가 봤다. 푸른 바닷속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해안 절벽을 따라 영롱한 빛깔의 산호가 만개했고, 알록달록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그 주위에서 헤엄쳤다. 홍해를 탐험하는 동안은 시간의 흐름도 멈춘 것 같았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안나 미첸코 씨는 “그 깊이와 아름다움을 보게 되면 누구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다합의 외곽에 위치한 거대한 ‘블루홀’은 다이버들의 성지로 불린다. 블루홀은 바다에 생긴 동공(洞空·싱크홀)으로 지형이 급격하게 깊어지는 탓에 주변보다 짙은 푸른색을 띤다. 다합 블루홀의 깊이는 130m에 이른다. 능숙한 프리다이버들은 수심 70m까지 잠수해 ‘아치’라고 불리는 터널을 보고 올라오기도 한다. 러시아 출신 프리다이버 안드레이 세칼로프 씨는 “블루홀 속으로 몸을 맡길 때마다 무의식과도 같이 크고 깊은 바다에 경외심을 느낀다. 바다를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다합의 블루홀은 프리다이버에게 더 깊이 내려가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그래서 다이버들의 천국인 동시에 무덤이기도 하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최근 10년간 150명이 넘는 다이버들이 다합의 블루홀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다이버들을 기리기 위해 근처 해변가에 비석들이 세워져 있었다. 한 비석에 새겨진 ‘영원히 다이빙을 즐겨라(Enjoy your dive forever)’라는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합을 찾는 여행자의 십중팔구는 다이빙 삼매경에 빠진다. 다합에선 전 세계 어느 곳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다이빙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스쿠버다이빙의 경우 미국 달러로 400달러(약 43만 원)와 일주일 정도를 투자하면 초보자들의 입문과정인 ‘오픈워터’에 이어 강사 없이 독립적으로 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어드밴스드’ 자격을 딸 수 있다. 다합에서 세 달째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고 있다는 박태진 씨는 “동남아보다 싸다고 해서 여기에 눌러 앉았다”며 “마스터 자격증까지 따고 돌아갈 생각”이라고 했다. 다합의 값싼 물가는 장기 여행자들에겐 커다란 매력이다. 대만에서 회사를 퇴직하고 세계 여행 중이라는 리앙 씨는 “(하루) 12~20달러 정도면 괜찮은 호텔을 구할 수 있고 단 돈 몇 달러로 먹고 마시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다합에서 값 싼 숙소를 찾는다면 50이집트파운드(약 3000원)에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장기여행객들은 월세로 3000이집트파운드(약 18만 원) 정도면 전기세와 물세, 와이파이 사용료 등이 포함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추가 생활비를 고려할 때 우리 돈 40만 원 정도면 ‘한 달 살기’가 가능한 셈이다. 다합에 머무는 장기 여행자 중에는 한국인들도 많다. 인구 1만5000명 규모의 작은 마을이지만 100여 명의 한국 여행객들이 늘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다합에 도착했다는 이희천, 손정혜 씨는 29세 동갑내기 커플로 1년 동안 세계를 여행 중이라고 했다. 이들은 “오랜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러 왔다”며 “다합에는 한국인들이 많아 편하게 쉴 수 있다고 들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다합을 찾는 한국 여행자들의 안전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2014년 2월 다합에서 약 140km 떨어진 시나이반도 타바에서 한국 관광객이 탄 버스가 폭탄테러를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교부는 다합을 포함한 시나이반도 대부분을 특별여행경보지역으로 지정해 ‘즉시대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다만 여행금지국가 및 지역으로는 지정되지 않아 여행자들의 방문을 막거나 처벌할 법적 근거는 없다. 주이집트 한국대사관 김현수 영사는 “시나이반도의 치안이 불안정한 데다 다합은 외국인 밀집 지역이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타깃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합=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요즘 이집트의 밤거리는 특히 아름답다. 이슬람의 성월인 라마단 기간(5월 17일∼6월 14일)에 집집마다 알록달록한 종이 등불인 ‘파누스’를 밝히기 때문이다. 파누스는 이슬람이 무지의 세계에 빛을 가져다줬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카이로 마디에 자리한 기자의 집 현관에도 붉은빛 파누스가 불을 밝혔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의 9번째 달로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가 천사 지브릴(가브리엘)에게서 알라의 말씀인 꾸란을 전수받은 달이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이는 이슬람의 5대 의무인 △신앙고백 △기도 △자선 △단식 △메카 순례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열사(熱沙)의 땅에서 한 달이나 금식을 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지난주 카이로의 최고 기온은 섭씨 44도에 달했다. 물조차 마시지 못하는 무슬림들의 가게나 회사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일반 기업들은 대부분 오후 2시면 일과를 마치고, 일부 상점은 야간에만 문을 연다. 인구의 90%인 무슬림들이 무더위에 기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바깥 활동을 삼가기 때문에 낮 시간 이곳 거리는 한산하다. 인구 1950만 명이 밀집한 카이로 시내의 극심한 교통 체증도 사라진다. 조용히 잠들었던 도시는 해가 저물면 깨어난다. 무슬림들은 해가 지면 식구들과 함께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이프타르’ 음식을 먹는다. 이프타르는 금식을 끝내고 먹는 첫 번째 식사로, 라마단 기간 친척과 가까운 이웃을 초대해 함께 즐긴다. 라마단 기간에 금식을 하는 이유는 가난한 이들의 굶주림을 헤아리기 위해서다. 낮에 금식해 비축한 음식을 밤에 이웃과 함께 나누라는 뜻도 담겨 있다.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에 스스로 인내심을 시험하고 신앙을 키운다. 매일 밤 이슬람 사원 주변에서는 이프타르 음식을 나눠준다. 음식은 보통 마을의 유지가 기부한 돈으로 마련하는데 그 양이 상당히 푸짐하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음식을 준비하는 이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이다. 무슬림 여성들은 금식을 하면서 이프타르와 일출 전 마지막 식사 ‘수후르’까지 준비하느라 더 큰 희생을 강요당한다. 라마단은 자비와 평화, 축복의 달이지만 테러에 대한 불안감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해 5월 16일 라마단을 하루 앞두고 이집트 남부 미니아 지역에서 콥트 기독교 신자들이 탑승한 버스가 무장 괴한들의 총격을 받아 최소 29명이 사망했다. 이후 중동 지역은 물론이고 유럽과 서아시아 등에서 잔혹한 테러가 끊이질 않았다. 실제로 테러는 라마단 기간에 더 빈번하게 발생했다. 미국 메릴랜드대의 글로벌테러리즘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06∼2015년 라마단 기간 하루 평균 발생한 테러 공격 건수와 사망한 사람의 수는 각각 15.4건, 39.4명으로 라마단 이외 기간 평균(14.6건, 33.8명)보다 많았다. 이집트 내에서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이슬람국가(IS) 선전 매체가 암호화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조만간 카이로의 성 조지 교회를 공격할 것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집트 주재 한국대사관도 교민과 방문객에게 라마단 기간 신변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미국과 유럽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라마단 기간 중 지하드(성전)는 신의 허락을 받은 행위”라며 IS를 추종하는 ‘외로운 늑대’(자생적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부추긴다. 특히 최근 미국이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한 행보가 테러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분노와 적대감이 라마단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해 라마단은 그 어떤 테러 소식 없이 평화로이 지나가길 소망한다.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사는 청년 파시 하르브(22·사진)는 20일 밤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그는 최근 결혼식장 웨이터로 일했다. 하르브는 일당 14달러를 받으러 가던 길에 절망과 화염에 휩싸였다. 하르브가 분신하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촬영돼 퍼지면서 그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다. 그는 곧 첫아이의 아빠가 될 예정이었다. 하르브의 어머니 마즈다는 “출산을 앞둔 아내를 위해 진료를 받게 해주긴커녕 기저귀와 우유도 사줄 수 없는 남자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신체의 절반 이상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그는 3일 만에 힘겹던 생을 마감했다. 무슬림에게 자살은 이슬람 경전 꾸란에 반하는 죄악이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가자지구에서 지난해 수십 건의 자살이 보고됐다. 가혹한 경제 상황으로 청년들이 느끼는 무력감이 반영된 것이다. 가자지구는 이달 텔아비브에 있던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으로 촉발된 팔레스타인의 전국적인 시위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한 곳이다. 미국대사관 개관식이 열린 14일에만 60명이 숨지고 2700명 넘게 다쳤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3월 30일부터 시작된 ‘위대한 귀환 행진’ 이후 가자지구에서만 100명 이상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 주민들을 총알받이로 세우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가자지구 주민들이 당면한 절망적인 상황이 그들을 죽음의 행진으로 내몰고 있다고 분석한다.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인권최고대표는 18일 유엔인권이사회 특별회의에서 “가자지구에 사는 190만 명의 주민은 장벽에 갇힌 채 더 많은 제약과 더 큰 가난을 겪고 있다”며 “이스라엘에 의해 봉쇄된 지 1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고용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고, 전력난과 부족한 보건 서비스, 건강을 위협하는 하수처리 시설로 인해 삶의 기반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2006년 총선에서 승리한 뒤 이듬해 가자지구에서 파타 정파를 밀어내고 실권을 장악하자 강력한 봉쇄정책을 시작했다. 이집트가 통제하는 라파 검문소 역시 하마스가 터널을 통해 이집트 시나이 지역의 극단주의 무장단체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2013년 봉쇄되면서 가자지구는 완전히 고립됐다. 오랜 봉쇄로 인해 가자지구의 경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세계은행(WB)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가자지구의 경제성장률은 0.5%에 그쳤다. 1994년 2659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올해 1826달러로 떨어졌다. 유럽평의회 의회협의체(PACE)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는 “가자지구 인구의 43%가 실업자로 청년층 실업률은 60%에 달한다. 또한 전체 인구의 80%가 인도주의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붕 없는 감옥’에 갇힌 청년들의 꿈은 공허하다. 가자지구 인구의 66%가 25세 미만이다. 팔레스타인 정치분석가 마젠 사피는 “우리 젊은이들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회도 희망도 찾을 수 없다”며 이스라엘의 봉쇄를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않는 국제사회와 아랍 국가들도 팔레스타인을 비극적인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와 하마스 역시 자국민에 대해 공동책임을 지지 않으면 우리는 더 많은 국민의 자살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미국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탈퇴한 데 이어 이란의 체제 변화를 겨냥한 ‘플랜B’를 공개했다. 새 합의를 위해 제시한 요구사항을 이란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역대 최강의 제재’를 가하겠다고 압박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이란은 “미국이 결정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미국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1일 보수 성향의 미국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에서 ‘이란 핵합의 탈퇴 이후 전략’을 주제로 연설했다. 그는 이란에 12가지 요구사항을 담은 새로운 합의를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2가지 요구사항에는 △우라늄 농축 중단 및 플루토늄 재처리 금지 △핵시설에 대한 완전한 접근 허용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 테러단체 지원 금지 △시리아에서 모든 군사력 철수 등이 포함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12가지 목록이 길게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단지 이란의 광범위한 악행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란이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으면 “전례 없는 재정적 압박을 이란 정권에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최대의 압박’ 전략을 이란에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 누구라도, 특히 이란의 지도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그가 가진 비전의 진정성을 의심한다면 북한과의 외교를 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눈은 이란 정권의 본질을 꿰뚫고 있지만, 우리의 귀는 열려 있다”며 이란이 변한다면 모든 제재를 해제하고 외교관계를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수전 디마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폼페이오가 발표한 이란 ‘플랜B’ 전략은 평양에 대한 최대의 압박을 테헤란에도 적용하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끈 건 경제 제재와 군사 압박보다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진보에 따른 것이었으며, 이란과 새 합의를 위해 동맹국과 파트너의 협조를 얻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플랜B 전략은 궁극적으로 이란의 체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이란 전문가 수전 멀로니는 “이것은 암묵적인 레짐 체인지(체제 교체) 전략”이라며 “그것 말고는 (폼페이오의) 연설을 해석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란은 미국의 제안을 곧바로 거부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의 언급 직후 “이란과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려는 당신(폼페이오)은 도대체 어떤 자인가”라면서 “(12가지 조건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맞받았다. 로하니 대통령은 “각 나라는 독립적인 만큼 미국이 세계를 위해 결정하는 것을 세계는 수용하지 않는다. 그런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했다. 이란 외교부도 “폼페이오의 무례한 발언은 이란 내정에 노골적으로 간섭하는 주권 침해행위”라고 반발했다. 한편 이란 핵합의 유지를 주장해온 유럽연합(EU)도 미국의 새 제안을 일축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성명을 통해 “폼페이오 장관의 연설은 우리가 이란 핵합의에서 탈퇴해도 유리한 위치에서 이란의 행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며 “이란 핵합의의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이 14일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또 다른 국면에 진입했다. ‘분노의 날’을 선포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이 쌓은 분리장벽으로 향했고,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아리에 카코위츠 히브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와 워싱턴 타흐리르중동정책연구소의 티머시 칼다스 연구원은 이번 사태로 3차 인티파다가 촉발될 수도 있다고 본다. 아르헨티나 출신 이민자인 카코위츠 교수는 이-팔 평화협상을 연구하는 전문가다. 칼다스 연구원은 이집트 카이로를 거점으로 아랍-이스라엘 갈등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두 전문가에게 이번 사태의 함의와 향후 전망을 들어봤다. ―미국대사관이 이스라엘 건국절에 맞춰 예루살렘에 문을 열었다. ▽카코위츠=상징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번 결정이 ‘궁극적인 평화협정’을 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획에는 중대한 타격을 줄 것이다. ▽칼다스=미국은 더 이상 이-팔 분쟁에서 정직한 중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점령을 이어가라는 신호를 준 것이기도 하다. ―중동 정세에 어떤 변화가 올까. ▽카코위츠=며칠간 더 지켜볼 일이다. 이란과 얽힌 두 가지 이슈(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 이스라엘과 이란의 시리아 충돌)로 인해 파급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칼다스=중동 국가의 많은 무슬림들이 분노하고 팔레스타인이 직면한 절망감은 더 커질 것이다.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어떻게 대응할까. ▽카코위츠=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하마스 모두 미국의 결정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2009년 9월 2차 인티파다의 원인 역시 예루살렘 문제였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칼다스=당면한 자국 문제를 해결하기에 바쁜 아랍 국가들은 과거에 비해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이 많지 않다. 이들의 지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분명치 않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터키 등은 어떻게 움직일까. ▽카코위츠=예루살렘 문제는 이란이나 터키 내부의 반미 반이스라엘 감정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 하지만 이란의 위협 속에 미국과 공통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사우디는 크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칼다스=사우디는 대이란 공조를 위해 이스라엘과 관계를 회복하려는 모양새다. 터키 역시 이스라엘과 경제적 협력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이란은 핵합의 등 다른 이슈와도 맞물려 있어 섣불리 행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예루살렘=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14일(현지 시간) 차를 타고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0km 남짓 떨어진 칼란디아 검문소로 향하던 중이었다. 이스라엘 사복 경찰이 탄 차량 3대가 갑자기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자동소총을 어깨에 멘 경찰은 운전 중이던 팔레스타인인 기사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더니 끌어내 자신들의 차에 태웠다. 이스라엘 경찰은 어리둥절해하는 기자에게 “팔레스타인인 기사에게 물어볼 게 있다. 충고하는데 이 사람이 모는 차에는 타지 않는 것이 좋다. 다른 택시를 잡아타라”고 말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던 기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20분가량을 걸어 어렵사리 다른 택시를 타고 칼란디아 검문소를 통과하자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검문소 바로 앞에선 이스라엘 군경과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대치 중이었다. 팔레스타인 시위대는 폐타이어를 불태우며 격렬히 저항했다. 시위가 격해질 때마다 이스라엘군은 최루탄 수십 발을 쏘아 올렸다. 비처럼 쏟아지는 하얀 최루탄 가루에 고통스러워하는 시위대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커다란 총성도 간간이 울렸다. 시위대 일부는 고무총탄에 맞고 쓰러졌다. 그럴 때마다 구급차가 바삐 움직였다. 시위를 지켜보던 팔레스타인 청년 사느드 라즈비 씨는 “젊은이들이 그들(이스라엘군)에게 돌을 던진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같이 큰 아랍 국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하소연했다. 칼란디아 거리 곳곳의 건물 외벽에는 시위 도중 목숨을 잃은 주민들을 추모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칼란디아 시위 현장과 가까운 곳에는 2015년 차를 타고 검문소로 돌진했다가 이스라엘군의 총탄에 맞아 숨진 위삼 나세르 아부 웰라의 집이 있었다. 당시 그의 나이 20세였다. 아부 웰라의 사진이 담긴 간판이 그의 집 외벽에 붙어 있었다. 아부 웰라의 사촌 가말은 “당시 그는 이스라엘군이 쏜 총탄 66발을 맞고 죽었다. 그 이후로 이스라엘군은 테러리스트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집에 찾아와 우리를 겁박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가자지구에서는 최악의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14일 최소 60명이 숨지고 2700명 넘게 다쳤다. 이스라엘 일간 예루살렘포스트는 이날 발생한 사상자는 2014년 하마스와 이스라엘군이 격돌한 ‘가자 전쟁’ 이후 하루 기준 최대 규모였다고 보도했다. 사망자 중에는 생후 8개월 된 아기도 포함됐다. 유럽과 중동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실탄 사용과 과잉 진압을 한목소리로 비판했지만 미국은 이스라엘을 옹호했다. 라즈 샤 백악관 부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하마스에 있다”며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쿠웨이트의 요청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4일 긴급 소집돼 중재안을 논의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하는 성명을 채택하려 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실탄을 사용한 진압을 당장 멈추라”고 촉구했다. 15일 날이 밝자 가자지구에서는 생후 8개월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라일라 알 간두르 양의 장례식이 열렸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덮은 간두르 양의 시체를 따라 수백 명이 거리를 행진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내 딸을 옆에 두게 해주세요. 딸은 이 세상을 떠나기에 아직 너무 어려요”라며 울부짖었다. 간두르 양은 전날 시위 현장에서 이스라엘군이 쏘아 올린 최루탄 가스를 마시고 죽었다. 이스라엘군이 대량의 최루탄을 터뜨리자 급히 텐트 안으로 피신했지만 아이는 영원히 울음을 그쳤다. 이날 오후 1시 30분경, 서안지구에서 ‘나크바 데이(대재앙의 날)’를 기리는 의미의 사이렌이 70초 동안 울려 퍼졌다.예루살렘=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도로 한가운데 쌓아놓은 폐타이어에 불이 붙자 시꺼먼 연기가 삽시간에 치솟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가 반대편에 대치 중이던 이스라엘 군경의 시야를 완전히 가렸고, 그 뒤에 숨은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돌팔매를 시작했다. 화염병도 검은 연기를 뚫고 날아갔다. 시위대의 한 청년은 기자에게 “내가 이스라엘군을 향해 던지는 돌이 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돌팔매질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기념일인 14일 오후 4시(현지 시간) 예루살렘 외곽 칼란디아 검문소(체크포인트) 앞에서 이스라엘 군경과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격렬하게 충돌했다.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한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의 공식 개관식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였다. 이날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 약 4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시위에 동참했다. 예루살렘 인근 칼란디아 검문소에는 팔레스타인 주민 수백 명이 몰려와 항의 행진을 벌였다. 복면을 쓴 10, 20대가 대부분이었다. 열 살 남짓한 어린이들도 시위대에 포함돼 있었지만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고무총탄을 발사했다.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이날 하루에만 생후 8개월 된 아기를 포함해 팔레스타인인 최소 60명이 죽고 2700여 명이 다쳤다. 이스라엘 건국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추방된 치욕을 잊지 말자는 ‘나크바 데이(대재앙의 날)’인 15일 숨진 이들의 장례식이 열리면서 추가 충돌 우려가 계속 커지고 있다. 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주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이 14일 오후 4시(현지 시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시위가 대규모 유혈 사태로 번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시위대에 실탄을 발포하면서 이날 오후 5시 현재 최소 43명의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숨지고 16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는 2014년 7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집중 폭격한 이후 1일 사망자 수치로는 최대치다. 사망자 가운데는 미성년자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분노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목숨을 내걸고 시위에 합세하면서 1987년과 2000년에 이어 ‘제3차 인티파다(이스라엘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민중봉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은 대규모 유혈사태 후에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지를 전투기로 공습하며 강경 진압 의지를 천명했다. ‘예루살렘의 날’ 51주년이던 전날까지만 해도 기자가 둘러본 예루살렘 시청 광장은 유대교 전통 모자 키파를 쓰고 있는 유대인 남성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예루살렘의 날은 이스라엘이 1967년 아랍 국가들과의 ‘6일 전쟁’(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동(東)예루살렘을 강제 병합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루살렘 거리를 행진한 수만 명의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상가 앞에서 “아랍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떠나라” “아랍인들에게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쳤다. 반면 가자지구를 비롯해 라말라 등 요르단강 서안 주요 도시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예루살렘 검문소를 향해 반(反)이스라엘 행진을 시작했다. 이스라엘군은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가자지구 북쪽 분리장벽을 돌파하기 위해 타이어를 태워 연기를 일으키며 접근하자 발포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과 인접한 가자지구 북부에서는 3월 30일부터 매주 금요일 ‘위대한 귀환 행진’ 시위가 이어졌다. 14일 이전까지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팔레스타인 시위대 42명이 숨졌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14일 아침에도 “이스라엘엔 커다란 날이다. 축하한다”란 트윗을 남겼다.예루살렘=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주성하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 중동의 화약고에 불씨를 던진 것일까. 미국이 이스라엘의 70주년 건국기념일인 14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던 자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개관한 조치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해묵은 갈등을 폭발시킬지에 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로 불리는 예루살렘은 14일부터 팽팽한 전운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전날까지 예루살렘은 유대인 축제의 장이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예루살렘에는 4만5000명의 시위대가 시청 앞을 시작으로 유대교 최고 성지인 ‘통곡의 벽’ 방향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행진에 참가한 유대인 3분의 2 이상은 10대였다. 이스라엘 전역의 유대인 전통 교육기관 ‘예시바’는 학생들을 예루살렘의 날 행사에 참가시키기 위해 이날 휴교했다. 학생들을 태운 버스 수백 대가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이들은 예루살렘 올드시티(옛 시가지)의 팔레스타인 지구로 이어지는 다마스쿠스 게이트를 통과하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운영하는 상점가 앞을 한동안 점거한 채 히브리어로 노래를 불렀다.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들은 유대인들이 행진하는 동안 바리케이드를 치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접근을 막았다. 팔레스타인 지구의 상인 마르완 기넴 씨는 “유대인들이 ‘올드시티에 아랍인들이 없어야 한다’고 외치며 행진하는데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들은 유대인 보호를 위해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4일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예루살렘 미국대사관 개관식이 열렸다. 대사관 건물에 걸린 푸른 가리개가 내려진 뒤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이스라엘은 항상 끝이 없는 자유의 힘을 보여준다. 이 땅은 중동에서 유일하게 유대인, 이슬람인, 기독교인 등 믿음을 지닌 모든 사람이 각자의 신념에 따라 자유롭게 숭배하면서 함께하는 곳이다”라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예루살렘의 미 대사관 개관식에 앞서 녹화된 영상에서 “오늘 우리는 공식적으로 예루살렘의 미 대사관을 개관한다. 축하한다. 여기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대인들이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는 동안 가자지구를 비롯해 라말라 등 요르단강 서안 주요 도시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예루살렘 검문소를 향해 반(反)이스라엘 행진을 시작했다. 이에 이스라엘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하면서 4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이번 사건은 이슬람 금식 성월(聖月)인 라마단 기간(5월 15일∼6월 14일)을 앞두고 벌어진 것이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유혈 사태가 ‘3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이 아닌 미국과 싸워야 하는 애매한 형국이어서 투쟁 동력이 약화됐으며,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오랜 내분으로 조직적 항쟁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2010년 12월 한 청년의 분신이 중동에 ‘아랍의 봄’ 혁명을 일으켰듯이 이스라엘의 강경 대응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응축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경우 저항의 강도가 예전과 크게 달라져 3차 인티파다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예루살렘=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주성하 기자}

《 텔아비브에 있던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이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기념일인 14일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으로 옮겨 개관한다. 이스라엘 측은 “예루살렘은 원래부터 우리의 수도였다”며 축하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은 이날을 ‘분노의 날’로 선언하고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한반도 대결 구도를 대화로 돌려놓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공약을 이행한다는 이유로 중동에 전운을 몰고 오고 있다. 》 히브리어로 ‘평화의 도시’로 불리는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이 도시가 52차례 공격을 받았고, 23차례 포위됐으며, 2차례 완전히 파괴됐다고 말한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점령과 탈환이 44차례나 반복됐다고 하니 사실 이 땅의 역사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미국대사관 이전 개관식을 하루 앞둔 13일 예루살렘에 다시 짙은 전운(戰雲)이 드리웠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70주년 건국기념일인 14일 텔아비브에 있던 자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개관키로 했다.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하고 대사관 이전 계획을 밝힌 지 불과 5개월 만이다.○ 예루살렘으로 옮겨진 미국대사관 미국은 예루살렘에 대사관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 예루살렘 올드시티(구시가지)에서 4km 남짓 떨어진 아르노나 지역에 위치한 미국영사관을 대사관으로 개조했다. 기자가 찾아가 보니 미국대사관(US Embassy)이라고 적힌 안내 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 그리고 ‘트럼프는 이스라엘을 위대하게 만든다’ ‘트럼프는 시온(유대 땅)의 친구’ 등의 표어가 적힌 플래카드가 대사관 정문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 나부꼈다. 대사관 앞에는 경비원 5, 6명이 삼엄한 눈초리로 경계 중이었다. 기자가 대사관 건물을 촬영하려 하자 제지했다. 건물 뒤편에 마련된 부지에는 대형 천막과 함께 수백 개의 의자가 마련돼 있었다. 미국대사관의 이전 개관식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과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등 800명이 참석한다. 대사관 경비원은 “보안을 위해 13일 저녁부터 개관식이 열리는 14일까지 주변 도로가 통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나아가리. 시온과 예루살렘의 땅으로.” 이날 미국대사관을 둘러본 몇몇 이스라엘 시민들은 기쁨에 겨워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과 함께 국가로 지정된 ‘하티크바’를 목청껏 불렀다. 남편과 함께 온 데비 라비크 씨는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사랑하고 그를 우리에게 보내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예루살렘을 찾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유대인 버코비치 조나단 씨는 “성경에는 예루살렘이 600번 이상 언급되지만 이슬람 성전인 꾸란에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며 “항상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해 절하는 무슬림들의 수도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메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노의 날’ 준비하는 팔레스타인 반면 예루살렘 올드시티의 팔레스타인인 밀집 구역은 ‘폭풍 전 고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여느 때처럼 가족과 함께 장을 보기 위해 다마스쿠스 게이트를 오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이드 다르위시 씨는 “우리 아랍 사람들에게 미국대사관 이전은 ‘이 땅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다”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헤브론에서 왔다는 사헤르 후삼 자베르 씨는 “동·서 예루살렘에 상관없이 예루살렘은 아랍 땅이다. 하지만 이 땅을 밟기 위해 나는 매달 허가증을 갱신해야 한다”며 분노했다. 이메르 아와르 씨는 “예루살렘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미국은 팔레스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리의 미래가 슬플 뿐”이라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예루살렘 안에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좀처럼 목소리를 낼 수 없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수도 예루살렘’ 선언 이후 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특히 가자지구 분리장벽에서는 올해 3월 30일 이후 7주째 유혈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미국대사관 개관식 당일을 ‘분노의 날’로 선언하고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를 예고하고 나섰다. 이슬람 금식 성월(聖月)인 라마단 기간(5월 15일∼6월 14일)을 앞두고 예루살렘의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예루살렘의 다마스쿠스 게이트에서 25년간 장사를 해온 마젠 살라이만 씨는 “라마단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해 시위에 참여할 것”이라며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은 확실하다. 테러를 포함해 모든 게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3차 인티파다 가능성은 낮아” 성지(聖地) 예루살렘을 직접적으로 자극한 미국대사관 이전으로 3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까. 과거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에 반대해온 아리엘 샤론 전 이스라엘 총리가 2000년 9월 군 병력을 대동하고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아끄사 사원을 방문하면서 2차 인티파다가 촉발됐다. 팔레스타인은 그의 성지 방문을 의도적인 도발로 보고 분노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마음대로 예루살렘의 지위를 결정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노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번 사건이 전 팔레스타인 무장봉기로 이어지기에는 분노의 동력이 약하다”며 “팔레스타인으로서는 지난해 12월 ‘수도 예루살렘’ 선언으로 이미 힘이 빠진 데다 이스라엘이 아닌 미국과 싸워야 하는 애매한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인티파다가 발발한다고 해도 그 파급효과는 과거에 비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이전처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지 못할 것”이라며 “당장 이란과의 역내 헤게모니 싸움이 중요한 사우디에 예루살렘 이슈는 뒷전인 상황이고, 터키 역시 조기 총선이 가장 다급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오랜 내분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한 아랍 국가들의 피로감을 높이고 있다. 다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경우 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인 교수는 “2010년 12월 한 청년의 분신이 아랍을 뒤집어 놓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가 느닷없이 찾아온 ‘아랍의 봄’에 모두가 경악했다”며 “분노의 확산성은 누구도 예측하기 쉽지 않기에 응축된 불만이 순간적으로 솟구치면 저항이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예루살렘=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예루살렘을 다시 찾았다.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이라고 선언한 직후에도 예루살렘에 왔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텔아비브에 있는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당초 백악관은 미국대사관 이전이 3, 4년 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전문가는 백악관의 전망이 “매우 낙관적”이라면서 5∼10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미국 국무부는 올해 2월 “이스라엘 건국 70주년에 맞춰 새 미국대사관이 예루살렘에 문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미국대사관이 제때 이전할 수 있도록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스라엘 국가계획위원회는 3월 미국대사관이 들어설 예루살렘 아르노나 지역의 건설 규제를 면제하기로 했다. 최소 3년이 걸린다던 미국대사관 이전 계획이 불과 5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놀랍게도 이스라엘은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일찌감치 예상하고 있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올해 1월부터 “미국대사관이 앞으로 1년 내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이라며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미국대사관 이전이 훨씬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게 나의 확고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그 현장을 취재하러 기자는 예루살렘에 다시 왔다. 이번 예루살렘 방문에서 아르노나에서 본 미국대사관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 미국대사관 이전 개관식을 앞두고 극명하게 갈렸던 예루살렘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얼굴 표정이다. 건국 70주년 기념일에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선물’까지 받게 된 유대인들은 인터뷰를 요청할 때마다 함박웃음을 지었다. 반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하나같이 긴 한숨부터 내쉬며 미국대사관 이전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이스라엘은 1947년 유엔 분할안에 따라 영국령 팔레스타인이 유대 지역과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분리되자 이듬해 5월 14일 독립을 선언했다. 이스라엘은 독립 선언 바로 다음 날 시작된, 이집트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요르단 등 아랍 5개국 연합군의 총공격(1차 중동전쟁)을 막아냈다.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의 건국은 대재앙이었다. 이스라엘 군대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 원주민들에게 ‘죽거나 혹은 떠나거나’를 강요했다. 당시 140만 명의 주민 가운데 약 80만 명이 유대인에게 고향 땅을 빼앗긴 채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으로 떠나야 했다. 일부는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 주변 아랍 국가로 향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분노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 높이 8m, 길이 700km에 달하는 콘크리트 ‘분리장벽’을 쌓았다. 팔레스타인 자치구의 주민들은 이스라엘 당국의 허가증 없이는 체크포인트(검문소)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3차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동예루살렘을 강제 병합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의 성지(聖地)를 팔레스타인과 결코 나눠 가질 생각이 없다. 유엔은 예루살렘을 어느 국가의 소유가 아닌 국제사회 관할 지역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1980년 예루살렘을 ‘분리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규정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건국절 바로 다음 날을 ‘나크바 데이(대재앙의 날)’로 삼아 그때의 치욕을 70년간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장벽에 가로막혀 예루살렘에 올 수도 없다. 정작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먹고살기에 바빠 시위에 참여하진 못할 것 같다”고 읊조렸다. 고향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그 땅을 빼앗은 이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지난 70년간 매년 바로 옆에서 지켜봐 왔다. 그 느낌과 기분은 어떤 것일까. 짐작하기조차 쉽지 않았다.―예루살렘에서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를 선언한 지 이틀 만에 미국 정부가 이란에 단독 제재를 가했다. 이 같은 조치는 미국이 대(對)이란 경제제재 재개를 발표한 뒤 처음 나온 것으로 이란으로 유입되는 달러 자금줄을 끊기 위한 첫 번째 단계로 풀이된다. 미국 재무부는 10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미국과 아랍에미리트(UAE)는 수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최정예 부대인 쿠드스군에 조달해온 대규모 환전 네트워크를 붕괴시키기 위한 공동 조치를 취했다”며 이와 연계된 기관 3곳과 6명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고 발표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이란 정부와 중앙은행은 UAE 금융기관에 대한 접근권을 남용해 자금을 조달하고 자금 사용 용도를 숨겨 지역의 친이란 단체를 무장시키는 등 쿠드스군의 악성 활동을 지원해 왔다”고 비난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를 선언한 뒤 중동 지역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는 핵 개발 강화를 시사했고, 이란의 숙적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이 핵 능력을 갖는다면 우리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합의 탈퇴 선언 후 시리아에서는 이란과 이스라엘이 1973년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 충돌을 벌여 확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이란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재개하면 매우 혹독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날 백악관 각료회의 자리에서 “이란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핵 프로그램을 시작하지 않기를 충고한다. 그들에게 매우 강력히 충고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이란 핵합의는 일방적이며 재앙적이고 끔찍한 협상으로, 체결되지 말았어야 했다”며 합의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이란의 최고지도자와 강경파들은 핵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란의 준관영 매체 파르스뉴스에 따르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9일 교육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어젯밤 트럼프 대통령의 터무니없고 천박한 성명을 들었다. 거기에는 10가지도 넘는 거짓말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하메네이는 “나는 (핵합의 당사국인) 유럽연합(EU) 3개국(영국 프랑스 독일)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이란 정부는 이들에게 보증을 요구해야 한다. 확실한 보장이 없다면 핵합의를 유지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앞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란은 미국 없이 핵합의에 남을 것”이라면서도 “필요하다면 어떤 제약도 없이 산업용 우라늄 농축을 재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1년 남짓한 시간이면 이란이 충분히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델 알 주베이르 사우디 외교장관은 9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만일 이란이 핵능력을 획득한다면 우리도 똑같이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를 겨냥해 발사한 탄도미사일을 두고 “이란이 만들고 후티 반군에 전달한 것”이라며 “이런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탄도미사일에 대한 유엔 결의를 위반하는 것이다. 이란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난했다. 시리아에서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10일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고원의 이스라엘 초소가 이란군 혁명수비대로부터 20여 발의 로켓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공격은 전날 이스라엘군이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군사기지를 공습한 데 대한 보복이다. 이스라엘 영문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란의 로켓 공격과 이스라엘의 반격이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시리아에서 최대 규모의 충돌이라고 전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이란과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탈퇴한다고 공식 선언하자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정치적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도박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란 핵합의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무시할 수 없는 유럽과 이란을 동시에 최대한 압박해 미국에 유리한 재협상 국면을 만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후의 패’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이란의 신정 체제 전복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내부에서도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재임 시절 이란 핵합의를 주도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이번 결정은 매우 잘못 인도된 것이며 심각한 실수”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란 핵합의는 작동하고 있다”며 “이는 유럽 동맹국과 독립적인 전문가, 현재의 미 국방부도 공유하는 견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수전 라이스도 뉴욕타임스(NYT) 칼럼을 통해 “(이란 핵합의 파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한 가장 멍청한 결정”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협정 당사국들도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고 합의를 지켜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국 프랑스 독일 3개국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이란 핵합의를 지키기 위해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프랑스 독일 영국은 미국의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며 “우리는 (이란의) 핵 활동과 탄도미사일 활동, 예멘과 이라크 등 중동에서의 안전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프레임에 대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시절부터 이란과 맺은 핵합의를 “내가 본 최악의 협정”이라고 비판해왔다. 트럼프가 2017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그의 생각은 대(對)이란 강경책으로 현실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이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독자 제재를 시작으로 차근차근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이란 핵합의 검토법(INARA)에 따른 이란의 핵합의 준수 여부를 ‘불인증’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중대한 결함이 수정되지 않을 경우 핵합의에서 탈퇴하겠다”며 대이란 제재 유예를 조건부 연장했다. 긴장 수위를 점차 높이면서 이란과 핵합의 당사국들이 재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국면을 조성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적 이익’이 결국 이란과 유럽을 움직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연합(EU)은 이란 핵합의에 따라 가장 큰 경제적 수혜를 누리는 국가다. 프랑스 석유업체 토탈과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 등은 대이란 경제제재가 해제된 이후 이란과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대이란 제재가 재개될 경우 EU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산디프 고팔란 호주 디킨대 법학교수는 미 의회 전문매체 더힐에 기고한 글에서 “EU가 이란 핵합의를 지지하는 주된 동기는 합리적인 자기이익”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내부 불만이 쌓여 체제 변화에 대한 부담이 커진 지금이 재협상을 압박할 가장 좋은 타이밍으로 보고 있다. 이란 경제는 2016년 1월 미국이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외국 금융기관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해제하면서 겨우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들어 이란 핵합의 파기 가능성을 시시하면서 이란 리알화 가치가 급락했다. 이란 정부는 지난달 단일환율 도입을 결정했지만 물가는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향후 미국이 이란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재개할 경우 이란 국민은 민생고를 참지 못하고 다시 거리로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 이란에서는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이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미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이란 핵합의 파기를 통해 이란 이슬람 정권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과 정부 내 매파의 속셈이라고 분석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의 운명을 좌우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단이 임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8일 오후 2시(한국 시간 9일 오전 3시) 이란 핵 합의 파기 여부를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 합의가 “내가 본 최악의 협정”이라며 재협상을 요구해 왔지만 이란은 끝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란 핵 합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7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 6개국과 이란 사이에 체결된 협정이다. 이란이 핵개발을 포기하고 6개국은 대이란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게 골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핵 합의 일몰 조항의 기간이 너무 짧아 “이란이 다시 핵을 개발할 수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과 테러단체 지원 등에 대한 제한 규정이 합의안에 담기지 않은 점도 문제로 삼고 있다. ○ 핵 합의 파기에 무게 실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이란 문제에 대해 생각이 달랐다”는 이유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잇달아 경질했다. 매파로 알려진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대사를 후임으로 각각 임명하면서 강경한 대이란 정책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은 일찌감치 ‘핵 합의 파기’ 쪽으로 기울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는 7일 자신의 트위터에 “그(존 케리)는 애초에 이런 난장판을 벌여 놓은 사람이다!”라고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을 비난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그는 이란과의 핵 합의 과정에서 산파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최근 두 달 새 두 차례나 이란 외교부 장관을 만나는 등 핵합의 당사국 주요 인사들과 비선 접촉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한 유럽 외교관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대이란 제재 유예를 연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사실상 핵 합의를 철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미국을 국빈 방문해 중재안을 제시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사정 때문에 이 합의를 끝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미국 없는 핵합의 유지될까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7일 미국이 핵 합의에서 탈퇴하더라도 나머지 서명국과 합의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이란 국영통신 IRNA에 따르면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이 없는 협상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이란은 핵 합의를 유지할 것”이라며 “미국이 없는 편이 이란에는 더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탈퇴할 경우 핵 합의가 제대로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핵 합의를 파기한 미국이 절차에 따라 유예 중인 대이란 제재를 180일 이내에 재개하면 당장 유럽 기업들은 이란과의 거래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핵 합의 당사국인 독일과 프랑스 외교장관은 7일 독일 베를린에서 회담을 갖고 “우리는 ‘실패(철회)로 긴장이 고조되고 2013년 전으로 퇴보하는 것이 두렵다”며 이란 핵 합의에서 떠나지 말 것을 미국에 촉구했다. 워싱턴을 방문 중인 보리스 존슨 영국 외교장관도 전날 뉴욕타임스(NYT) 칼럼을 통해 “분명히 약점이 있지만 고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제약을 없애 이득을 보는 건 이란뿐”이라고 설득에 나섰다.○ 커지는 이란 핵개발 위험 문제는 미국이 즉각적인 대이란 제재를 강행하는 시나리오다. 핵 합의 이후 경제적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평가하고 있는 이란은 미국의 제재로 또다시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히면 핵 개발로 돌아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란이 핵 개발을 재개하면 이미 핵을 보유한 이스라엘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중동 지역에서 핵개발 경쟁이 확산할 우려가 커진다. 실제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이란력으로 새해를 맞은 3월 20일 올해를 국산품 장려의 해로 선언했다. 이는 미국의 핵 합의 파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이란의 저항경제 체제를 재정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최근 실업률 등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으로 이란 내부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등 압박을 느끼고 있는 이란 정부가 마지못해 재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카이로=박민우 minwoo@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다음 달 24일 터키에서 치러질 대통령 조기 선거에서 메랄 악셰네르 좋은당(IP) 대표(61·사진)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직 대통령(64)의 ‘술탄(황제) 등극’을 저지할 유일한 대항마로 주목받고 있다. 2003년 총리로 취임한 뒤 2014년 직선제 대통령이 된 에르도안이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면 5년 중임제에 따라 2028년까지 장기 집권할 수도 있다. 영국 더타임스는 6일 “터키의 세련된 ‘암컷 늑대’ 메랄 악셰네르가 억압을 끝낼 것을 약속하며 에르도안에게 대항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악셰네르 대표는 “어떤 압력도 시대의 변화를 막을 수 없다”며 “현 정부는 국민을 겁줘 굴종시키고, 우리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데 모든 권력을 사용하고 있다”고 에르도안 정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악셰네르 대표는 지난해까지 우파 야당 민족주의행동당(MHP) 소속이었다. 그러나 MHP 지도부가 에르도안 대통령이 발의한 대통령제 강화 개헌안에 협력하자 탈당해 IP를 창당했다. 터키 내무장관을 지낸 카리스마 넘치는 악셰네르 대표는 궁지에 몰린 야당의 마지막 희망이다. 1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 악셰네르 후보의 지지율은 24.6%로 정의개발당(AKP) 후보로 나선 에르도안 대통령(41.1%) 다음으로 높았다. 특히 에르도안 대통령의 득표가 과반에 못 미쳐 결선투표로 이어지면 악셰네르 후보가 에르도안을 1%포인트 차로 앞설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은 에르도안 후보를 상대로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다. 최근 IP, 행복당(SP), 민주당(DP) 등 야권 연대를 구성하기로 합의한 CHP는 결선 투표에서 악셰네르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태세다.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의 소네르 차압타이 연구원은 “악셰네르 후보가 우파들로부터 많은 표를 끌어올 것”이라며 “또 그녀는 민족주의자적인 선의를 가지고 있고, 보수적이면서 실천적인 무슬림이지만 히잡을 쓰지 않는다. 그것은 중도좌파 진영의 표를 얻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악셰네르 후보 역시 자신이 우익 민족주의자들과 중도 진영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스 이민자의 손녀인 악셰네르 대표는 “IP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고 말하지만 그가 쿠르드족에 차별적인 MHP 출신이라는 점은 약점으로 작용한다. 그가 내무장관을 지냈던 1996, 1997년은 쿠르드족에 대한 인권 유린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번 선거는 지난해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개헌 이후 치러지는 첫 대선으로 총선도 함께 열린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시리아 반군 측 민간 구조대 ‘하얀헬멧’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재정 지원이 중단되면서 이들의 구호 활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 CBS방송은 4일 하얀헬멧이 최근 몇 주간 미 국무부의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해 재정난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얀헬멧의 라에드 살레흐 대표는 CBS 인터뷰에서 “올해 3월 (미 국무부와의) 회의는 매우 긍정적이었고 지원 중단에 대한 암시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하얀헬멧 예산의 3분의 1을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 정부가 3월 말 시리아 재건을 위해 약속한 2억 달러 규모의 예산 집행을 동결하면서 하얀헬멧에 대한 지원도 끊겼다. 시리아 내 폭발물 제거, 전기와 수도 공급, 학교 재건 등 미국이 지원한 재건 사업 역시 곧 중단될 예정이다. 미 국무부는 하얀헬멧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하얀헬멧은 지원 중단 장기화를 걱정하고 있다. 살레흐 대표는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 중단에 대한 공식 통보는 받지 않았다”며 “만약 이것이 장기적이거나 영구적인 중단이라면 현재 우리의 구호능력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부상자들을 구해내 용기와 희생정신의 상징이 된 하얀헬멧의 공식 명칭은 ‘시리아 민간방위대’다. 약 3922명의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이 단체는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이후 7만 명 이상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220명 이상의 대원이 현장에서 숨졌다. 하얀헬멧은 2016년 이후 노벨 평화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들의 활약상을 기록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하얀헬멧’은 2016년 오스카상(최우수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을 수상했다. 하얀헬멧은 지난달 7일 시리아 동(東)구타 두마 지역에서 발생한 화학무기 공격 의혹을 초기에 보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하얀헬멧은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 대원들”이라고 주장하며 미국과 영국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을 들어 “서방의 앞잡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