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4월 1일부터 카페 내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이 다시 금지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후 방역을 위해 한시적으로 허용했던 일회용품 사용을 다시 제한하는 것이다. 환경부는 5일 ‘일회용품 사용규제 제외 대상’을 개정해 6일 고시한다고 밝혔다. 카페 매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은 2018년 8월부터 제한됐다. 하지만 2020년 초 코로나19 발생 후 각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으로 식품접객업종 내 일회용품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에 대해 일반 식당에서는 다회용 수저와 그릇을 계속 사용하는 것과 달리 카페에선 일회용 컵을 쓰도록 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었다. 11월 24일부터는 일회용품 규제 대상이 확대된다. 식당과 카페 등에서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젓는 막대 사용이 금지된다. 현재 3000m² 이상 대규모 매장과 165m² 이상 슈퍼마켓에서만 사용이 금지된 비닐봉투는 편의점 등 종합소매업 매장과 제과점에서도 쓸 수 없다. 대규모 매장의 우산 비닐과 체육시설의 플라스틱 응원용품 사용도 금지된다. 홍동곤 환경부 자원순환국장은 “2020년 전국 공공선별장의 플라스틱류 처리량이 전년 대비 19% 늘었다”며 “이번 조치는 코로나19 확산 후 급격히 늘어난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해 전국 초미세먼지(PM2.5) 평균 농도가 역대 최저치를 나타냈다. 국내 초미세먼지 배출량이 줄어든 데다 중국 대기질이 개선된 결과로 분석된다. 환경부는 지난해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가 18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 분의 1g)를 기록했다고 5일 밝혔다. 이 수치는 관측을 시작한 2015년 26μg 이후 가장 낮다. 국내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는 2019년 23μg, 2020년 19μg 등 하향 추세다. 지난해 초미세먼지 ‘좋음(15μg 이하)’ 일수는 183일로 2020년 153일 대비 30일(19.6%) 늘었다. 반면 ‘나쁨(36μg 이상)’ 일수는 지난해 23일로 2019년 대비 11.5% 줄었다. 초미세먼지가 줄어든 것은 국내 오염물질 배출 규제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굴뚝자동측정기기 부착 사업장(826곳)의 초미세먼지 배출량이 3만873t으로 5%가량 줄었다.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4기가 가동을 멈췄다. 배출가스 5등급인 노후차량 수 역시 2020년 12월 168만 대에서 지난해 12월 131만 대로 22% 감소했다. 국외 상황과 기상 조건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중국 339개 지역의 지난해 1~11월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는 29μg로 전년 동기 대비 2μg(6.5%) 줄었다. 특히 지난해 8~10월에는 동풍이 자주 불어 깨끗한 공기 유입가 한반도에 들어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제조업 가동률과 고속도로 통행량은 2020년 상반기(1~6월) 저점을 찍은 뒤 회복하는 추세다. 박륜민 환경부 대기환경정책과장은 “지난해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으로 대기 오염물질 배출이 줄어들었지만 올해는 공장 가동률과 국민 이동량이 2019년 수준으로 늘었다”며 “미세먼지 저감 정책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통상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데는 약 15g의 원두가 필요하다. 이 중 우리가 섭취하는 양은 전체의 0.2%(0.3g)에 불과하다. 나머지 99.8%에 이르는 14.7g의 원두가 그대로 커피 찌꺼기(커피박)로 버려지는 셈이다. 커피박은 커피 추출 과정에서 수분이 더해져 통상 원두 상태일 때보다 무게가 1.5배로 늘어난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에서 발생한 커피박은 약 35만 t에 이른다. 이들 커피박은 대부분 소각 혹은 매립된다.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커피찌꺼기 1만 t당 폐기물 처리 비용은 약 10억 원. 종량제봉투 가격과 매립비용만 따진 것이다. 만약 연간 발생하는 커피박 35만 t을 모두 재활용하지 못하고 폐기한다면 매년 350억 원의 비용이 든다. 여기에 이를 소각할 때 나오는 탄소(1t당 약 338kg)와 온실가스 등도 환경 측면에선 큰 부담이다.○ 농촌에선 악취제거제, 도시에선 벤치로 이 때문에 최근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커피박의 재자원화 방안을 찾고 있다. 2018년 5월 동식물성 잔재물의 수집과 운반,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법적 근거는 마련됐다. 하지만 여전히 재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물량이 대부분이다. 허가 받은 차량만 커피박을 수거할 수 있어 대량 보관과 운반이 쉽지 않다. 여기에 커피박이 재활용 자원이라는 국민 인식도 부족하다. 당국이 아직 커피박 중 어느 정도가 재활용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커피박 재자원화에 먼저 눈을 뜬 건 민간 영역이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사회적 기업 포이엔이 그런 회사 중 하나다. 이들은 늘어나는 커피박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다 2017년 이를 활용한 혼합 비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커피박이 영양분이 많은 유기물이라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포이엔은 커피박을 원료로 쓴 바이오 플라스틱 제품도 생산한다. 호숫가 등에서 흔히 보는 나무 무늬 난간이 이런 재질이다. 합성수지와 배합할 때 썼던 톱밥을 커피박으로 대체했다. 최근에는 국내 자동차 업계와 내장재 공급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호철 포이엔 대표는 “1인용 의자 하나에 커피 찌꺼기 2.3kg이 들어가는데 이는 약 2.6kg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나무와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 환경에 기여하는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커피박 재활용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커피전문점이 모아 놓은 커피박을 자치구별로 수거해 재활용업체에 공급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달 환경부와 인천시, 경북도 등은 도시에서 수거한 커피박을 축산농가에 공급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커피박은 가축 분뇨의 악취를 90%가량 없애는 효과가 있다.○ 커피박 발열량, 나무껍질의 2배 커피박은 바이오 에너지로서의 가치도 높다. 목재나 볏짚 등 다른 바이오 에너지 원료에 비해 탄소 함량이 많아 발열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커피박의 1kg당 발열량은 5649Cal로 나무껍질(2828Cal)의 거의 2배다. 발전용 바이오 에너지로 많이 활용되는 목재 펠렛(압축 조각)의 발열량 4300Cal보다도 많다. 커피 섭취량이 많은 유럽 등에선 커피박을 바이오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오래전부터 연구해 왔다.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과 스위스다. 영국의 바이오 에너지 기업 바이오빈은 한 해 런던에서 배출되는 커피박 20만 t 가운데 5만 t을 수거해 에너지원으로 만든다. 바이오 디젤, 에탄올, 펠렛 등 형태도 다양하다. 커피 25잔을 만들 때 나오는 커피박으로 커피숯 하나를 만들 수 있다. 런던시를 중심으로 커피박을 수거하는 스타트업, 에너지 생산을 연구하는 대학 등이 친환경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커피 제조업체 네슬레는 본사가 있는 스위스에서 커피박을 펠렛 형태로 만들어 에너지원으로 쓴다. 그룹 안에 원료 수거, 에너지 기술 연구 및 생산 조직을 따로 뒀다. 친환경 정책을 적극 추진해 온 정부의 역할도 컸다. 스위스 정부는 우체국 조직을 이용해 커피박을 수거하는 등 커피박 재활용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폐기물 매립에 높은 매립세를 부과해 기업이나 개인이 자원 재활용 방안을 고민하도록 유도한다. 국내의 커피박 재활용 시스템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커피박이 자원순환기본법상 순환자원으로 분류되지 않아 사용처가 제한적이다. 만약 순환자원으로 인정되면 다른 원자재처럼 운반과 보관이 수월해진다. 정부도 커피박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오종훈 환경부 생활폐기물과장은 “커피박은 영양분과 수분 함유량이 많아 대량 운반하거나 보관할 때 병충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재활용에 나서는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눈이 온다는 소식에 설레는 이들도 많겠지만 출근길이 걱정인 직장인들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폭설이 싫은 건 기상청도 마찬가지다. 부정확한 예보 탓에 ‘양치기 소년’이 되기 일쑤여서다. 예보관들은 각종 기상 예측 중 가장 어려운 게 적설량 예측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강수 여부를 판단하기 까다롭고, 비나 눈 가운데 어떤 형태로 쏟아질지 예측이 어려워서다. 지표 상태에 따라서도 적설량이 달라진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강원지역을 덮쳤던 폭설이 좋은 예다. 당초 기상청은 12월 24, 25일 강원 영동지역에 최대 20cm의 눈이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25일에는 “최대 30cm 안팎”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실제 적설량은 속초 55.9cm, 주문진 42.7cm 등 예측을 크게 웃돈 곳이 많았다. 왜 눈 예보를 제대로 하는 게 어려운 걸까. 기상청에 그 이유를 물어봤다. ① 겨울 대기 관측이 더 어렵다=여름 기온이 30도일 때 지상의 건조한 공기 1kg에는 최대 30g의 수증기가 담긴다. 겨울에는 담을 수 있는 수증기량이 크게 줄어든다. 영하 15도에선 같은 30분의 1 수준인 1g에 불과하다. 이 기준을 초과하는 수증기가 생기면 비나 눈의 형태로 내리게 된다. 여름에는 공기 중 수증기량이 몇 g씩 늘거나 줄어도 30g을 넘기 전까진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겨울철엔 단 0.1g의 수증기량 변화로도 눈이 오고 안 오고가 결정된다. 그 변화가 워낙 미세해 관측이 어렵고, 강수 예측도 어렵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②눈일까? 비일까?=떨어지는 형태가 눈일지, 비일지 예측이 어려울 때도 많다. 대기 상층과 하층의 기온 구조에 따라 눈이 비가 될 수도, 비가 눈이 될 수도 있는데 분석이 그만큼 세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지상 부근의 기온이 영상이면 눈이 내리다가도 녹아서 비가 된다. 그런데 영상 기온 층의 고도가 낮거나, 영상 층의 기온이 0도 부근이면 눈이 녹지 않고 쌓일 때도 있다. ③녹을까? 쌓일까?=지상 기온이 영하라면 눈은 대개 쌓인다. 그러나 낮에 지표면이 가열된 상태에선 내린 눈이 금방 녹아버린다. 지상 기온이 영상이더라도 내린 눈이 덜 녹은 상태에서 눈이 더 오면 쌓일 때도 있다. 실제로 지상 기온이 2도일 때 눈이 쌓이기도 한다. 적설량을 예보할 때 이 모든 변수를 감안할 수 없기 때문에 오차가 생긴다. ④같은 강수량에도 적설량은 다르다=적설량을 예측할 때 ‘수상당량비’라는 개념을 쓴다. mm 단위로 관측되는 강수량이 몇 cm의 눈으로 쌓일지 계산하는 방법이다. 물이 눈으로 바뀌는 비율로, 보통 10배 정도다. 강수량 1mm로 예측된 눈구름에서 1cm의 눈이 내린다는 의미다. 하지만 구름 형태 등 대기 조건에 따라 실제 적설량은 천차만별이다. 강수량 0.5mm일 때 3cm의 적설량을, 5mm 강수량에서 1cm 이하의 적설량을 기록한 적도 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눈이 온다는 소식에 설레는 이들도 많겠지만 출근길이 걱정인 직장인들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폭설이 싫은 건 기상청도 마찬가지다. 부정확한 예보 탓에 뜻하지 않게 ‘양치기 소년’이 되기 일쑤여서다. 예보관들은 각종 기상 예측 중 가장 어려운 게 적설량 예측이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강원 지역을 덮쳤던 폭설이 좋은 예다. 당초 기상청은 12월 24, 25일 강원 영동지역에 최대 20cm의 눈이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25일에는 “최대 30cm 안팎”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 적설량은 속초 55.9cm, 주문진 42.7cm 등에 달했다. 눈 예보가 어려운 이유를 기상청을 통해 알아봤다.① 겨울 대기 관측이 더 어려워여름 기온이 30도일 때 지상의 건조한 공기 1kg에는 최대 30g의 수증기가 담긴다. 하지만 겨울에는 대기가 담을 수 있는 수증기의 양이 크게 줄어든다. 영하 15도가 되면 공기 1kg에 1g의 수증기만 담긴다. 여름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수증기가 기준을 초과해 대기에 담기면 비나 눈의 형태로 내린다. 여름에는 공기 중 수증기의 양이 몇 g씩 갑자기 늘어도, 30g을 넘기 전까지는 쉽게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겨울철엔 단 0.1g의 수증기량 변화로도 강설 여부가 바뀐다. 그 차이가 워낙 미세해 겨울철 강설 예측이 여름철 강수 예측보다 훨씬 어렵다.② 알쏭달쏭 눈일까? 비일까? 지상에 눈이 올지 비가 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때도 많다. 대기 상층과 하층의 기온 구조에 따라 눈이 비가 될 수도, 비가 눈이 될 수도 있다. 대개 지상 부근 기온이 영상이면 눈이 내리다가도 녹아서 비로 바뀐다. 하지만 대기 온도가 영상으로 오르는 지점이 지상 가까이에 형성되면 그대로 눈으로 내린다. 이를 판가름해야 정확한 예보를 할 수 있다.③ 눈이 쌓이는지도 변수 많아 지상 기온이 영하라면 눈은 대개 쌓인다. 하지만 낮에 지표면이 가열된 상태에서는 내린 눈이 금방 녹아버린다. 설령 지상 기온이 영상이더라도 눈이 덜 녹은 상태에서 또 눈이 내리면 쌓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지상 기온이 2도인데 눈이 쌓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변수를 모두 감안하기 어려워 적설량 예보에서 오차가 많이 발생한다.④ 강수량 같아도 적설량이 다르다 적설량을 예측할 때는 1mm의 강수량이 몇 cm의 적설로 나타날지를 보여 주는 비율인 ‘수상당량비’ 개념을 사용한다. 통상 강수량 1mm로 예측된 눈구름은 1cm의 눈이 내리는 걸로 본다. 하지만 구름 형태 등에 따라 실제 적설량이 천차만별이다. 강수량 0.5mm인데 적설량이 3cm를 넘거나, 5mm 강수량에서 1cm 이하 적설량을 기록하기도 한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향후 탄소중립 사회 전환의 기준이 될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원자력 발전이 제외됐다. 반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은 탄소중립 이행 과도기인 2035년까지 포함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K-택소노미 지침서를 30일 공개했다. K-택소노미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등 6대 환경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경제 활동을 분류한 것이다. 정부는 친환경을 규정한 K-택소노미를 통해 투자자 신뢰를 확보하고 녹색금융 시장을 활성화하는 등 산업계의 친환경 사업 전환을 유도할 계획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이 지침에 원자력 발전이 빠졌다는 점이다. 유럽연합(EU)은 다음 달 발표하는 택소노미에 원전의 포함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청정에너지 기준에 원전 포함을 검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결정이 국산 원전의 해외 수주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송종순 조선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탈원전만을 고집하면서 냉철한 논의를 거치지 못한 채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환경부 측은 “추후 개정 과정에서 원자력이 포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화석연료인 LNG는 이번 지침에 포함됐다. 환경부는 탄소중립 전환을 위해 LNG 생산이 과도기적으로 필요하다고 보고 2030∼2035년까지 한시적으로 포함시키기로 했다. K-택소노미는 64개 녹색부문과 탄소중립 전환에 필요한 5개 전환부문 등 총 69개 경제활동을 녹색경제활동으로 규정했다. 2년 동안 준비한 이번 최종안은 1년 시범운영 후 2, 3년 주기로 개정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K-택소노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원자력을 여기에 포함할지는 앞으로 국제사회 동향과 국내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개정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세밑 한파로 31일 중부지방의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안팎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30일부터 31일 오전까지 충남과 전북, 전남 북부 지방에서는 최대 10㎝의 눈이 내릴 전망이다. 오후부터 날이 개면서 일부 서쪽 지방을 제외하고는 새해 첫 날 해맞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30일 기상청에 따르면 31일 중부와 남부 내륙지방의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진다. 전국 아침 최저 기온은 영하 15도~영하 1도로 예보됐다. 서울 영하 11도, 춘천 영하 14도, 속초 영하 10도 등이다. 낮에도 중부지방은 영하권에 머물 전망이다. 강한 바람의 영향으로 서울의 체감온도는 영하 17도~영하 8도로 예상된다. 예상 적설량은 전북과 전남 북부 3~8㎝, 충남 1~5㎝다. 그 밖의 지역은 5㎝ 미만의 눈이 예보됐다. 수도권은 경기 남부 0.1㎝ 미만으로 눈발이 날릴 것으로 보인다. 울릉도와 독도에는 5~20㎝의 눈이 내릴 전망이다. 31일 오후부터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 특히 동쪽 지역에는 구름이 없거나 낮은 구름만 있어 해넘이와 해돋이를 보는 게 가능할 것으로 예보됐다. 다만 북한산 지리산 등 국립공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입산이 금지됐다. 새해 첫 날은 아침 기온이 영하 16도까지 떨어진다. 이날 최저 기온은 영하 16도~영하 2도, 최고 기온은 1~8도로 예상된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아버지는 어두운 그림자 같았어요.’ ‘나는 그 모든 폭력을 야간 공연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가족이 무너질 때까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지난해 출간된 책 ‘세상이 지켜주지 못한 아이들’(수잔 L . 나티엘) 속 소제목들이다. 책은 양극성 장애(조울증)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이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 12명을 인터뷰했다. 이 아이들은 부모가 앓는 병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이 아이들에게 사회의 더 많은 지지와 개입이 필요하다고 책은 주장한다.○정신건강 취약가정 자녀 360명 지원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이 내년부터 시작하는 ‘정신건강문제 취약가정 자녀 지원사업’도 이 책과 같은 취지다. 부모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자녀와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지원시설 ‘아이존’과 협약을 맺고 먼저 3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앞서 월드비전은 2017년 사각지대 아동 및 청소년 지원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7∼9월 현장 조사를 거쳐 정신건강 취약 가정을 지원 1순위로 정했다. 김순이 월드비전 국내사업본부장은 “국내에는 정신건강 취약 가정을 위한 법적, 제도적 지원이 거의 없다”며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 속에 이런 가정의 자녀들은 보호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사업은 두 가지로 이뤄진다. 서울시내 아이존 8곳에서 각각 보호자 20명, 아동 20명 등 320명을 추천받아 ‘가족관계 증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아동에겐 의지할 수 있는 가족과 어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부모에겐 양육 자신감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이다. 월드비전은 각각의 아이존에 1000만 원을 지원한다. 이현희 영등포 아이존 시설장은 “아동이 불안감, 우울감을 겪지 않도록 부모 역할 교육과 상담을 비롯한 전문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업이나 생계의 어려움을 덜 수 있도록 일종의 장학금도 지원한다. 한국정신재활시설협회 산하기관과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에서 100명씩을 추천 받아 모두 200명에게 ‘꿈 지원금’을 제공한다. 1인당 연간 150만 원을 받게 된다. 김 본부장은 “국내 모든 정신건강 취약 가정 자녀에 대한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 정신질환, 자녀 대물림 막아야”최정원 국립정신건강센터 소아청소년정신과 장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장애가 있는 부모를 둔 자녀의 정신질환 유병률은 세계적으로 15∼23%다. 특히 부모가 중증정신장애가 있을 때 자녀의 약 50%는 정신장애를, 32%는 중증정신장애를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에서는 1970년대부터 정신건강 취약 가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미국은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270만 명의 중증정신장애 환자가 1280만 명의 18세 이하 자녀와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호주는 엄마나 아빠 가운데 한 명 이상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 비율이 21∼23%(2005년)로 조사됐다. 캐나다는 아동의 15.6%(2008년)가 정신질환이 있는 부모와 함께 산다는 통계도 있다. 부모 정신질환이 자녀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나라들은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호주는 1999년 정부 지원으로 정신질환 환자의 자녀를 지원하는 단체 ‘COPMI’를 만들었다. 캐나다 정신장애인가족협회는 아동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부모 질환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 자료를 만들어 자녀의 정신적 혼란을 최소화한다. 국내에선 이런 지원 사업이 드물다. 2000년대 중반 정신건강 관련 기관과 기업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으로 멘토링 사업 등을 진행했지만 예산과 인력의 한계로 대부분 중단됐다. 정신건강 취약 가정 아이들이 사실상 방치돼 있다는 의미다. 2017년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 제출된 논문에 따르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된 부모의 자녀 중 25%가 정신건강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조명환 월드비전 회장은 “우리 사회의 가장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데 이번 사업의 의미가 있다”며 “정신건강상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제도적 지원 장치의 마련이 함께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환자분, 요즘 숨이 차거나 어지럽지는 않으세요?”(서용성 명지병원 버추얼케어센터장) “잘 모르겠네요.”(환자 A 씨) “아드님, 어머니 발이 부었는지 볼 수 있게 카메라를 내려주세요. 이제 손으로 발을 한번 눌러 보세요.”(서 센터장) 서 센터장은 2년째 A 씨를 진료실에서 만나지 못했다. A 씨는 90대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병원 방문을 꺼린다. 약이 떨어지면 아들이 처방을 받아 갔다. 심부전증을 앓고 있는 A 씨는 심장에 스텐트를 넣은 상태다. 집에서 측정할 수 있는 혈압, 맥박은 아들이 서 센터장에게 전달할 수 있지만 직접 문진을 못 하니 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지난해 명지병원 버추얼케어센터가 문을 열면서 환자와 훨씬 수월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됐다. A 씨 아들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어머니를 화상에 띄우면 서 센터장이 문진하고 처방한다. 처방전은 A 씨 집 앞 약국으로 보낸다. 서 센터장은 “보호자를 통해서 듣는 것보다 환자에게 직접 물었을 때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 대면 진료의 공백을 메우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센터는 기존 외래 환자 외에도 재외국민, 코로나19 재택치료 환자 등을 비대면으로 진료한다.○ 코로나19 이후 원격진료 328만 건 국내에서는 격·오지(隔·奧地) 군부대, 원양 선박, 재택의료시범사업 등에 한해서만 의사가 환자를 비대면으로 진료해 왔다. 이 같은 원격의료의 빗장을 연 건 코로나19다. 지난해 2월 전화상담과 처방이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그해 12월 ‘심각 단계 이상의 감염병 위기 경보가 발령됐을 때 비대면 진단, 상담, 처방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달 6일 현재 누적 상담은 328만3790건, 청구된 진료비는 약 511억 원이다. 이 숫자들을 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원격의료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쪽은 “전체 처방 건수의 1%도 안 된다”며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의료계도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올 8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진 77.1%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사라진 이후 전화 상담과 처방을 현행처럼 유지하는 것에 반대했다. 같은 조사에서 비대면 진료 경험이 있는 의료진의 59.8%는 ‘현재의 비대면 진료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환자 안전성 확보에 대한 의료적 판단이 어려워서’(83.5%)였다. 원격의료 도입을 찬성하는 쪽은 300만 건이라는 숫자가 원격의료 정착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비대면 진료의 편리함을 이미 맛봤으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긴 어렵다는 얘기다. 올 1월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진흥원 보고서에서 국민 66.1%가 의사와 환자 원격진료에 찬성했다. 29.4%는 의견을 유보했고, ‘반대’는 4.5%에 그쳤다. 관련 산업도 커지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 누적 이용자는 서비스 출시 약 1년 만에 70만 명을 넘었다. 주부 장모 씨(38)는 “장염 증세가 있어 비대면 진료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했다”며 “전화 상담 후 약도 집으로 배달돼 병원에 가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대세인 건 알지만, 끌려가지는 않겠다” 원격의료 도입 반대 측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은 발달하고 비대면 진료 수요도 커지는데 원격의료 도입을 무작정 막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원격의료를 현 의료체계에 그대로 이식하는 것은 반대다. 이세라 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원격의료 도입에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의사들이 플랫폼 사업자의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원격의료 얘기를 꺼내기 힘들었던 의협 안에서도 “공론화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올 5월 의협 대의원회의에 원격의료가 안건으로 올랐고, 7월에는 서울시의사회 산하에 국내 현실에 맞는 원격의료 제도를 논의하기 위해 원격의료연구회를 만들었다. 정부 주도의 원격의료 도입에 마냥 끌려 다니지만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김성근 원격의료연구회장(여의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은 “대다수 의사도 결국 원격의료는 실현될 것으로 본다. 다만 60% 이상은 ‘나는 안 하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환자의 편의성, 산업적 육성 필요성만 앞세운 원격의료 도입 논의에 맞서 의료계가 원하는 원격의료 방안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의료계 설득할 ‘당근’ 필요 코로나19 재택 치료 환자가 3만 명에 육박하면서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은 더 부각되고 있다. 원격의료 경험이 더 일찍 쌓였더라면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재택치료가 더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는 것. 정세영 분당서울대병원 디지털헬스케어 연구사업부 교수는 “팬데믹처럼 비대면 진료가 필요한 상황은 언제든 또 닥칠 수 있다. 원격의료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선 원격의료 도입의 열쇠는 의료진에게 얼마나 보상을 해주느냐에 달렸다고 입을 모은다. 원격의료는 환자의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효과가 있다. 플랫폼 사업자는 그 과정을 중계하고 데이터를 축적해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계 손익계산은 좀 더 복잡하다. 오히려 손해라는 인식이 강하다. 가장 큰 문제는 낮은 수가(酬價)다. 의원급 기준 외래환자 진찰료는 초진 1만6140원, 재진 1만1540원이다. 전화 상담은 여기에 30%를 가산해 준다. 그런데 원격의료는 대면 진료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준비 과정이 복잡하고 제 시간에 진료가 시작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다. 따라서 같은 시간에 볼 수 있는 환자는 더 적다. 서 센터장은 “외래 환자 10명을 볼 시간에 비대면 진료는 환자 2, 3명이 가능하다. 현재 수가로는 참여 유인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원격의료 때문에 대형 병원 쏠림 구조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해소해야 한다.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 2건도 의료계 반발을 고려해 참여 병원을 의원급으로 한정했다. 다만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법안에서는 병원급 기관 진료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예외 조항을 뒀다. 하지만 참여 기관을 의원급으로 한정한 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개원의(開院醫) 반대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의원급에서 시작할 순 있어도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은 환자 요구가 커지면 대상 확대는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차라리 의사 1인당 비대면 진료 횟수를 제한하거나, 의료기관 규모마다 차등화하는 것이 환자 쏠림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사고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가 불명확할 수 있다는 점도 또 다른 장벽이다. 김 교수는 “고혈압 환자를 비대면으로 진료하면서 혹시 진행 중인 합병증을 놓치지는 않나 하는 두려움을 늘 갖게 된다”며 “면책 사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0년 원격의료 시범사업 이후 들어선 모든 정부는 원격의료를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의료계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저(低)수가 틀에 가두지 말라. 의료체계 개선도 함께 논의하자’는 의료계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원격의료 혜택이 의료 사각지대 환자들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인프라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서 센터장은 “홀몸노인 등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가 비대면 진료를 받으려면 관련 기기와 인력을 어떻게 지원할지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대 변화에 맞서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료계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영보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원격의료 도입은 (안 하겠다고) 버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가능한 영역부터 도입해 보고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강하고 투명한 데다 분해도 잘됩니다. 곧 플라스틱을 대체할 날이 올 겁니다.” 첨단 신소재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에이엔폴리 노상철 대표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노 대표는 포스텍 환경공학과 연구교수로 재직하던 2017년 창업에 도전했다. 쌀 가공 후 버려지는 왕겨, 커피 찌꺼기 등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를 활용해 나노셀룰로오스를 개발했다. 기존 플라스틱보다 강하고 독성도 없어 포장재나 화장품, 의료용 생체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 창업 후 대학 연구소나 기업 등에서 수요가 꽤 있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첨단 소재 산업이 발달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소재 생산 기업들이 신소재의 쓰임새를 보여줘야 했다. 소재 개발에 그치지 않고 관련 제품 생산 기술도 갖춰야 상용화 단계로 이어지는 것이다. 소재 기반 산업의 성장이 더딘 이유이기도 했다. 올해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관한 ‘대스타 해결사 플랫폼’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이 사업은 제품 개발 과정에서 대기업이 마주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다. 올해 첫 과제로 정보통신기술(ICT)·소프트웨어, 바이오헬스, 소재·제조 분야에서 7개 대기업이 12개 과제를 제시했다. 참가를 신청한 131개 스타트업 중 30개 기업이 1차 선발됐다. 이 중 우수 기업으로 뽑힌 18개 스타트업은 제품을 상용화할 기회와 함께 1억 원의 개발 지원금을 받는다. 에이엔폴리는 신세계푸드가 제시한 고기능, 친환경 밀키트 포장재 개발 과제에서 우수 기업으로 뽑혔다.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생분해까지 되는 소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노 대표는 “나노셀룰로오스를 개발하는 많은 기업이 나무에서 원료를 얻는다. 우리는 커피 찌거기와 폐의류 등 신세계그룹에서 나오는 폐자원을 활용해 진짜 친환경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강원대 교수로 재직 중인 백종섭 비네이처바이오랩 대표도 교원 창업에 나선 경우다. 백 대표는 학부 때부터 천연 물질과 약의 체내 흡수를 높이는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이번에 롯데중앙연구소가 제시한 과제는 음료에 들어가는 천연 물질의 용해도와 체내흡수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백 대표가 특허를 낸 기술과 딱 맞아떨어지는 과제였다. 백 대표는 “천연 물질이 아무리 몸에 좋아도 체내흡수율이 떨어지면 효과가 반감된다”며 “식품 및 화장품 회사들에 꼭 필요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창업한 지 갓 1년 된 비네이처바이오랩은 이미 10여 곳의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대스타 해결사 플랫폼에 선정된 기업들은 투자자 연결 등 다양한 지원을 받는다. 민경은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창업혁신팀 매니저는 “대스타 해결사 플랫폼은 대기업과 협업 기회를 만들기 쉽지 않은 스타트업에 자신의 콘텐츠와 기술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내년에는 사업을 확대해 더 많은 스타트업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제대로 버려지는 투명 페트병은 30% 정도예요.” 2일 오전 경기 안산시 와동의 한 자원순환센터에서 만난 희망일자리 근로자 최창운 씨(61)가 생수 페트병에 붙은 라벨을 제거하며 말했다. 수거함 옆의 비닐봉지에는 유색 플라스틱 병과 불투명한 배달음식 그릇 등이 가득 쌓여 있었다. 최 씨가 수거함에서 꺼낸 것들이다. 이렇게 잘못 분리배출된 플라스틱이 전체의 40%가량이다. 제대로 버려진 페트병도 절반 이상은 라벨을 떼어 내거나 이물질을 없애는 등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 가끔 담뱃재나 쓰레기를 넣은 페트병도 나온다. 안산시는 올 10월부터 단독주택 투명 페트병 분리수거 시범 사업을 운영 중이다. 일주일에 100L 들이 비닐봉지 8∼10개 분량의 투명 페트병이 모인다. 주민들이 아직 정확한 배출 요령에 익숙지 않은 탓에 다른 재활용 쓰레기보다 손이 많이 간다. 수거함 하나를 다시 분리하는 데 20∼30분씩 걸린다. 최 씨는 “처음 분리배출을 시작했을 때보단 세척해서 내놓거나 라벨을 떼어 버리는 주민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25일부터 단독주택도 분리배출 지난해 12월 25일 시작한 공동주택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 제도가 곧 시행 1년을 맞는다. 이달 25일부터는 단독주택, 연립주택, 빌라 등 모든 주택으로 확대된다. 생수 음료 등을 담았던 투명 페트병은 따로 모아 버려야 한다. 주로 음료수 용기에 쓰이는 페트는 플라스틱 중 가장 재활용 가치가 높다. 페트병을 압축한 뒤 잘게 부순 ‘플레이크(Flake)’는 쓸모가 많다. 가장 질이 좋은 재생원료는 페트병이나 화장품 용기 등으로 재탄생한다. 아모레퍼시픽은 2L 생수병 3개를 900mL 보디워시 통으로 재활용한다. 패션업계도 플레이크에서 뽑아낸 재생섬유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주로 기능성 의류나 가방을 만드는 데 쓴다. 투명 페트병을 분리배출하면 재생원료의 품질도 높일 수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700t이었던 고품질 재생원료 생산량은 올 9월 2600t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분리배출된 투명 페트병이 461t에서 1244t으로 늘어난 영향이 컸다. 지난해 6만6700t 규모였던 폐페트병 수입량은 올해 3만 t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선 투명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경기 성남시는 지난해부터 단독주택가에 16곳의 자원순환가게를 운영 중이다. 재활용품을 가져오면 지역상품권으로 변환할 수 있는 포인트를 준다. 투명 페트병 1개를 가져오면 10포인트를 준다. 수거되는 재활용품 중 투명 페트병이 30%가량 된다. ○이물질 씻고, 라벨은 떼고 재활용률을 높이려면 잘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간장통처럼 투명하지만 페트 재질이 아닌 경우도 있다. 용기 표면 재활용 표시 안에 ‘페트’라고 적혀 있는지 확인하고 버려야 한다. 이물질과 라벨 제거도 중요하다. 수거와 선별 과정에서 이물질을 제거하지만 완벽하게 걸러내지는 못한다. 집에서 깨끗이 씻어서 배출하면 재생원료의 품질을 더 높일 수 있다. 경기도의 한 선별업체 관계자는 “이물질이 담긴 페트병을 압축해 섬유를 만들면 실이 잘 끊겨 활용도가 높은 장(長)섬유를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페트 재질이 아닌 뚜껑은 원칙상으로는 분리해서 버려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닫아서 버리기를 권장한다. 수거 과정에서 병 안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뚜껑은 파쇄와 세척 등 재활용 과정에서 분리할 수 있다. 단독주택의 분리배출 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개선할 점도 많다. 집 앞에 내놓는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할 때 투명 페트병 수거함이 따로 설치된 차량이 흔치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다른 재활용품과 섞이면 수거 후 다시 선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박순임 안산시청 자원순환과 재활용팀장은 “단독주택은 아파트보다 분리배출 환경이 열악하다”며 “수거 시스템을 개선해 주민들의 신뢰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요일별로 수거 품목을 다르게 하거나 차량 내 별도 칸막이를 둬 이런 문제점을 개선할 방침이다. 투명 페트병 보관 시설을 마련한 선별 업체에는 인센티브를 준다. 내년도 공공 선별장 확충에 208억 원, 선별장 시설 현대화에 49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오종훈 환경부 생활폐기물과장은 “내년부터 투명 페트병 별도 선별 시설 설치 유무와 선별량에 따라 민간 선별장의 지원금이 최대 14배까지 차등화된다”고 말했다.안산=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부모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리던 자살 유족, 남편의 사업 실패와 교통사고로 빚더미에 올라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던 자살 고위험군, 12년 동안 70만 명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전파한 군 최초 자살예방교관.’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이라곤 믿기 어렵지만 권순정 공군본부 자살예방교관(48)의 삶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끄러지면 다시 오르고 무너질 뻔한 순간마다 악착같이 버텼다. 어느 날 걸려온 전화 속 “괜찮느냐”는 한마디에서 희망이 싹텄다. 살아갈 힘이 생겼고, 그 힘을 같은 위기를 겪는 장병들과 나누기로 했다. 권 교관은 1년 중 약 200일을 전국을 순회한다. 지난해 교육 횟수가 4000회가 넘어가자 세는 것도 포기했다. 하루 3차례 교육도 마다하지 않는다. 군뿐만 아니라 경찰, 공공기관, 기업에서도 교육 요청이 들어온다. 왜 그렇게 무리하느냐고 묻자 “장병들의 자살 위험 신호를 놓칠까봐 거절을 못한다”고 했다. 회의 차 잠시 서울에 온 권 교관을 2일 종로구 동아일보에서 만났다. ● 자살 우려자에게 쏟아진 구조 요청 2009년 권 교관은 매일 생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3년 전 부도를 맞은 남편이 같은 해 교통사고까지 당하면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가해자가 보험에 들지 않은 탓에 자비로 3년 동안 병원비를 냈다. 월세방에는 압류 딱지가 붙었고 부대까지 빚쟁이들이 찾아왔다. 딸이 들을까봐 방 안에서 숨죽여 눈물을 훔치던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다. “단장입니다.” 당시 공군 제20전투비행단장이던 정재부 예비역 공군 준장이었다. “요즘 힘들어 보여 걱정이 돼 전화했습니다. 출근하면 차라도 한 잔 해요.” 전화를 끊고 펑펑 울었다. 권 교관은 1999년 항공 장비를 고치는 군무원으로 군에 들어왔다. 장교도, 사병도 아닌 그는 최고 상관인 단장과 말 한 마디 나눈 적 없었다. 권 교관은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고 그 날을 회상했다. 그 무렵 권 교관은 매일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공군 소모임 게시판과 자살예방 홈페이지에 신문에서 찾은 좋은 글을 올리고, 본인 얘기도 썼다. 권 교관은 “살아 있다는 신호”라고 했다. 글을 본 이들의 구조 요청도 쏟아졌다. 한 장교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와 자살을 고민 중이라 털어놓기도 했고, “죽고 싶다”는 장병들의 상담 메일도 쌓여갔다. 어떻게 응대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부대의 권유로 국방부의 자살예방교육을 받았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의 90% 이상은 위험 신호를 보낸다는 강사의 말이 권 교관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순간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일, 꼭 해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무엇보다도 살고 싶어졌어요.” ● 장병들이 건넨 쪽지 “살려 주세요”자살예방교관이 된 권 교관은 2011년 공군부대로 소속을 옮겼다. 교육 대상이 넓어지면서 일과와 휴식의 구분도 없어졌다. 주말이나 새벽에도 장병들의 상담 전화와 문자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교육 때마다 연락처를 알려준다. 밤늦게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는 권 교관을 보며 남편은 “맨날 24시간 당직이냐”며 웃곤 한다. 권 교관이 짧은 문자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데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자살예방교육을 막 시작한 무렵 한 장병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매일 아침 글 잘 읽고 있어요. 우리 부대에도 한 번 와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권 교관은 지금도 그 때 ‘너 지금 자살 생각하니’라고 묻지 않은 걸 후회한다. 그 장병은 한 달쯤 지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권 교관은 “누군가 부를 때 바로 달려갈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내가 더 공부하고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두 시간 남짓한 교육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교육 중 동료의 손을 꼭 잡는 장병도 있다. 지금처럼 군에서 외부 통화가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교육이 끝나면 몇몇 사병들은 초조한 얼굴로 권 교관에게 와 쪽지를 건네곤 했다. 부모님에게서 ‘자살 위험 신호’를 봤다며 권 교관에게 대신 연락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권 교관의 휴대전화에는 아직도 이들이 준 쪽지와 편지가 저장돼 있다. “아버지가 예전에 죽고 싶다는 얘길 많이 했어요. 위험 신호인 걸 이제야 알았어요.” “어머니가 많이 힘든 것 같아요. 저 대신 좀 물어봐 주세요.” 몇 년 전 한 신병이 건넨 쪽지를 권 교관은 잊지 못한다. “아빠 많이 힘드시죠? 이젠 제가 지켜드릴게요. 수료식까지 꼭 기다려 주세요.” 권 교관은 돌아오는 길에 신병이 남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다는 권 교관의 말에 아버지는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권 교관은 “아버지가 실제로 자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들 덕분에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 “군에선 자살 피폭 범위가 더 넓다”자살예방만큼 중요한 게 남은 이들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다. 권 교관은 누구보다도 그 아픔을 잘 안다. 부모님은 권 교관이 10대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정사로 힘들었던 2008년에는 동료를 자살로 떠나보내기도 했다. 운동을 좋아하고 늘 밝았던 동료였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며 평소와 다른 인사를 남긴 다음 날,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아직도 권 교관의 마음 한 구석에 짙게 남아 있다. 많은 자살 유족들도 이 때문에 힘들어한다. 지난해 국내 자살사망자는 1만3195명. 사망자에게 가족 4명, 친한 지인 2명이 있다면 자살유족은 약 8만 명에 이른다. 집단생활을 하는 군에서는 휴유증이 더 크다. 권 교관은 “같은 처지의 동료의 죽음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부대 전체가 자살유족, 자살생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살유족에게는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30여 년 전 권 교관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권 교관은 “자살유족의 70%는 외부에 가족의 사망 원인을 말하지 못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들도 제대로 위로를 받아야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권순정을 만든 ‘임세원’권 교관은 지난달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대한신경정신재단이 수여하는 제 1회 임세원상을 수상했다. 2018년 12월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기리기 위해 만든 상이다. 임 교수는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한 주역이다. 이 프로그램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교육했고, 개정 과정에도 참여한 권 교관에게 수상의 의미는 남다르다. 일반인 대상 프로그램을 군에 적용시키는 데 임 교수와 동료들은 아무 대가도 없이 참여했다. 군에서 발생한 사고를 분석해 장병들이 처한 위험 요인을 찾고, 육해공군 등 각 군 특성에 맞는 교육 과정을 만들었다. 권 교관은 “교수님들 자녀도 군에 와서 모두 이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갈 테고, 그러면 60만 명의 생명 지킴이를 양성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모든 교수님들이 적극 도와주셨다”고 했다. 20여 년 전 찢어진 비행복과 낙하산을 고치던 공군 군무원은 이제 군 최고의 ‘마음 수선공’이 됐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보다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은 낮아졌지만 마음 건강 적신호는 더 짙어졌다는 게 권 교관의 생각이다. 권 교관은 “수년 씩 취업 준비를 하느라 스스로 고립되거나 SNS에서 다른 이의 행복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젊은층이 많다”며 “자살예방을 위해선 사회적 유대감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힘들어서 죽는 게 아니라 힘들 때 위로받지 못해서, 세상에 내 편 하나 없다는 생각에 죽는 것 같아요. 답은 교육에 있어요. 학교에서 성 인지 교육이 일반화 된 것처럼 자살예방교육이 의무화 된다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를 마칠 무렵 권 교관은 주위의 자살 위험 신호를 잘 관찰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위험 신호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언어적 신호는 죽음에 대한 직접적 표현이나 절망감을 자주 드러내는 경우다. ‘난 모두에게 짐만 될 뿐이야’ ‘내가 없어지는 게 훨씬 낫겠어“ 등의 말이 들리면 즉각 개입해야 한다. 행동적 신호는 과도한 음주나 대인 기피, 자해 흔적, 자살 수단 마련 등의 행태로 나타난다. 아끼던 물건을 나눠 주며 주변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상황적 신호는 실직·낙방·이별 또는 만성 질환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을 잘 살펴야 한다.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중앙심리부검센터를 통해 2015~2019년 자살사망자 566명과 유족 683명을 조사한 결과 사망자의 93.5%가 위험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주위에서 이를 알아챈 경우는 22.5%에 그쳤다. 가장 흔한 위험 신호는 죄책감, 무기력감, 과민함 등의 감정상태 변화(321명·복수 응답)였다. 290명은 수면 상태가 달라졌다. 자살이나 살인 등 죽음에 관한 언급(247명), 식사 상태 변화(246명) 등이 흔한 신호였다. 가족의 자살 이후 유족이 같은 선택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살 사망자의 45.8%는 가족 중 자살을 시도하거나 사망한 구성원이 있었다. 자살유족의 62.6%는 중증 이상의 우울감을 보였다. 71.2%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유족에 대한 비난을 우려해 가족의 자살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못한 대상이 있다고 답했다.박성민기자 min@donga.com}

‘부모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리던 자살 유족, 남편의 사업 실패와 교통사고로 빚더미에 올라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던 자살 고위험군, 12년 동안 70만 명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전파한 군 최초 자살예방교관.’ 한 사람이 걸어온 길이라곤 믿기 어렵지만 권순정 공군본부 자살예방교관(48)의 삶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끄러지면 다시 오르고 무너질 뻔한 순간마다 악착같이 버텼다. 어느 날 걸려온 전화 속 “괜찮냐”는 한마디에서 희망이 싹텄다. 살아갈 힘이 생겼고, 그 힘을 같은 위기를 겪는 장병들과 나누기로 했다. 권 교관은 1년 중 약 180일을 전국을 순회한다. 지난해 교육 횟수가 4000회가 넘어가자 세는 것도 포기했다. 하루 3차례 교육도 마다하지 않는다. 군뿐만 아니라 경찰, 공공기관, 기업에서도 교육 요청이 들어온다. 왜 그렇게 무리하느냐고 묻자 “장병들의 자살 위험 신호를 놓칠까 봐 거절을 못 한다”고 했다. 회의 차 잠시 서울에 온 권 교관을 2일 종로구 동아일보에서 만났다.○자살 우려자에게서 쏟아진 구조 요청 2009년 권 교관은 매일 생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3년 전 부도를 맞은 남편이 같은 해 교통사고까지 당하면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가해자가 보험에 들지 않은 탓에 자비로 3년 동안 병원비를 냈다. 월세방에는 압류 딱지가 붙었고 부대까지 빚쟁이들이 찾아왔다. 딸이 들을까 봐 방 안에서 숨죽여 눈물을 훔치던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다. “단장입니다.” 당시 공군 제20전투비행단장이던 정재부 예비역 공군 준장이었다. “요즘 힘들어 보여 걱정이 돼 전화했습니다. 출근하면 차라도 한 잔 해요.” 전화를 끊고 펑펑 울었다. 권 교관은 1999년 항공 장비를 고치는 군무원으로 군에 들어왔다. 장교도, 병사도 아닌 그는 최고 상관인 단장과 말 한마디 나눈 적 없었다. 권 교관은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그 무렵 권 교관은 매일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공군 소모임 게시판과 자살예방 홈페이지에 신문에서 찾은 좋은 글을 올리고, 본인 얘기도 썼다. 권 교관은 “살아 있다는 신호”라고 했다. 글을 본 이들의 구조 요청도 쏟아졌다. 한 장교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와 자살을 고민 중이라 털어놓기도 했고, “죽고 싶다”는 장병들의 상담 메일도 쌓여갔다. 어떻게 응대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부대의 권유로 국방부의 자살예방교육을 받았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의 90% 이상은 위험 신호를 보낸다는 강사의 말이 권 교관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순간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일, 꼭 해야 하는 일이 생겼어요. 무엇보다도 살고 싶어졌어요.” ○장병들이 건넨 쪽지 “살려 주세요” 자살예방교관이 된 권 교관은 2011년 공군부대로 소속을 옮겼다. 교육 대상이 넓어지면서 일과와 휴식의 구분도 없어졌다. 주말이나 새벽에도 장병들의 상담 전화와 문자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교육 때마다 연락처를 알려준다. 밤늦게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는 권 교관을 보며 남편은 “맨날 24시간 당직이냐”며 웃곤 한다. 권 교관이 짧은 문자 하나라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데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자살예방교육을 막 시작한 무렵 한 장병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매일 아침 글 잘 읽고 있어요. 우리 부대에도 한 번 와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권 교관은 지금도 그때 ‘너 지금 자살 생각하니’라고 묻지 않은 걸 후회한다. 그 장병은 한 달쯤 지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권 교관은 “누군가 부를 때 바로 달려갈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내가 더 공부하고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두 시간 남짓한 교육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교육 중 동료의 손을 꼭 잡는 장병도 있다. 지금처럼 군에서 외부 통화가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교육이 끝나면 몇몇 장병들은 초조한 얼굴로 권 교관에게 와 쪽지를 건네곤 했다. 부모님에게서 ‘자살 위험 신호’를 봤다며 권 교관에게 대신 연락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몇 년 전 한 신병이 건넨 쪽지를 권 교관은 잊지 못한다. “아빠 많이 힘드시죠? 이젠 제가 지켜드릴게요. 수료식까지 꼭 기다려 주세요.” 권 교관은 돌아오는 길에 신병이 남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다는 권 교관의 말에 아버지는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권 교관은 “아버지가 실제로 자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들 덕분에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고 했다. ○“군에선 자살 피폭 범위가 더 넓다” 자살예방만큼 중요한 게 남은 이들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다. 권 교관은 누구보다도 그 아픔을 잘 안다. 부모님은 권 교관이 10대일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정사로 힘들었던 2008년에는 동료를 자살로 떠나보내기도 했다. 운동을 좋아하고 늘 밝았던 동료였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라며 평소와 다른 인사를 남긴 다음 날,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아직도 권 교관의 마음 한구석에 짙게 남아 있다. 많은 자살 유족들도 이 때문에 힘들어한다. 중앙심리부검센터가 2015∼2019년 자살사망자 566명과 유족 683명을 조사한 결과 사망자의 93.5%가 위험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이를 알아챈 경우는 22.5%에 그쳤다. 집단생활을 하는 군에서는 후유증이 더 크다. 권 교관은 “군 밖에서 자살 유족의 범위가 가족 4명, 지인 2명 정도라면, 군에서는 부대 전체가 자살 유족, 자살 생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살 유족에게는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30여 년 전 권 교관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권 교관은 “자살 유족의 60∼70%는 외부에 가족의 사망 원인을 말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들도 제대로 위로를 받아야 또 다른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권순정을 만든 ‘임세원’ 권 교관은 지난달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대한신경정신재단이 수여하는 제1회 임세원상을 수상했다. 2018년 12월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기리기 위해 만든 상이다. 임 교수는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개발한 주역이다. 이 프로그램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교육했고, 개정 과정에도 참여한 권 교관에게 수상의 의미는 남다르다. 일반인 대상 프로그램을 군에 적용시키는 데 임 교수와 동료들은 아무 대가도 없이 참여했다. 군에서 발생한 사고 사례를 분석하고, 육해공군 등 각 군 특성에 맞는 교육 과정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 권 교관은 “교수님들 자녀도 군에 와서 모두 이 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갈 테고, 그러면 60만 명의 생명 지킴이를 양성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모든 교수님들이 적극 도와주셨다”고 했다. 20여 년 전 비행복과 낙하산을 고치던 공군 군무원은 이제 군 최고의 ‘마음 수선공’이 됐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보다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은 낮아졌지만 마음 건강 적신호는 더 짙어졌다는 게 권 교관의 생각이다. “사람들은 힘들어서 죽는 게 아니라 힘들 때 위로받지 못해서, 세상에 내 편 하나 없다는 생각에 죽는 것 같아요. 답은 교육에 있어요. 학교에서 성 인지 교육이 일반화된 것처럼 자살예방교육이 의무화된다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가수 앨범에 수록되지 않는 곡들은 그대로 버려지는 걸까?’ 온라인으로 나만의 음반을 만드는 플랫폼 ‘레이블리’를 운영하는 권재의 루나르트 대표의 사업 구상은 이런 궁금증에서 시작했다. 미발매 음원의 부가가치를 높여보자는 아이디어였다. 마침 다양한 음원을 필요로 하는 창작자들의 수요도 늘어나는 추세였다. 유튜브와 음원 사이트 등에선 기존 음원을 편집해 만든 창작물이나 앨범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다만 뚜렷한 수익 구조가 없는 게 문제였다.○ 창업지원 프로그램 만나 ‘스케일업’ 루나르트는 미발매 음원을 가진 뮤지션과 음악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를 연결시키는 사업 모델을 지난해 10월 선보였다. 이들에게 음반 수익의 약 3분의 2가 돌아간다. 약 1년 만에 8000여 곡을 소개했고 레이블리를 통해 음반을 만든 레이블은 283곳에 이른다. 음원은 플레이리스트 형태로 들려주는 것뿐 아니라 게임, 영화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 권 대표는 “해외에선 이런 큐레이터 역할이 새로운 창작의 영역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국내에선 뚜렷한 수익 모델이 없었는데 레이블리를 통해 ‘플레이리스트로는 돈을 벌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루나르트는 올해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의 창업도약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창업 3년 초과 7년 이내 콘텐츠 스타트업의 사업 고도화를 돕는 프로젝트다. 업체당 최대 1억5000만 원이 지원된다. 투자 유치와 해외 진출도 컨설팅한다. 권 대표는 “2019년엔 콘진원 창업발전소 프로그램 지원으로 매출이 6배 이상 올랐다”며 “올해도 애플리케이선(앱) 개발 등 레이블리 서비스를 정착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모티콘 제작자와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을 연계하는 스티팝의 조준용 공동대표는 콘진원 지원으로 사업 방향을 재설정한 경우다. 스티팝은 4년 전 해외 메신저 서비스에서 대화를 주고받던 두 고교 동창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한국 메신저처럼 이모티콘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학을 휴학하고 창업에 뛰어든 두 사람은 당초 개별 소비자가 스티팝 앱에서 이모티콘을 내려받아 사용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콘진원 지원으로 참여한 해외 콘퍼런스 등에서 투자자와 수요처를 만난 게 사업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스티팝이 보유한 이모티콘을 자신들이 만든 앱에 넣고 싶어 하는 기업이 적지 않았다. 사업 범위를 기업 간 거래(B2B)로 확장한 스티팝은 현재 5000여 명의 작가가 만든 15만여 개의 이모티콘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구글과 파트너십을 맺는 등 100여 개 앱에서 서비스 중이다. 조 공동대표는 “문화권별 선호도를 충족시킬 수 있는 아티스트를 발굴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콘텐츠 제작, 또 다른 ‘한류’ 그동안 음악 영화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는 많았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혁신 기술이나 기업이 주목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콘진원이 지원하는 스타트업 중에는 새로운 창작 기법이나 아이디어로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기업이 많다. 15년 동안 광고를 만들어 온 전동혁 비디오몬스터 대표는 영상 제작이 대중화되는 흐름을 감지하고 과감히 창업에 도전했다. 보고 즐기는 시청자와, 찍고 편집하는 제작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비디오몬스터는 30초 내외의 짧은 영상을 특별한 편집 기술 없이도 제작할 수 있는 온라인 쇼트폼 영상 제작 서비스다. 올해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6개국에 진출했다. 전 대표는 “그래픽 디자인 탬플릿 서비스를 만들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칸바(Canva)처럼 영상계의 칸바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콘진원이 초기 창업 기업을 육성하는 창업발전소 프로그램은 경쟁률이 12 대 1에 이를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팬데믹 이후엔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위해 지역별로 현지 액셀러레이터와 이어주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박경자 콘진원 기업인재양성본부장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콘텐츠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창업가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10년째 요관암을 앓고 있는 김모 씨(55·여)는 지난달 담당의사에게서 “현재 처방 중인 약을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4년 전부터 쓴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경과가 좋아 딱히 약을 바꿀 이유는 없었다. 종양 크기도 2.5cm에서 더 자라지 않았다. 김 씨는 내성이 생겨 약효가 없어진 줄 알고 덜컥 겁이 났다. 그런데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병원 측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신포괄수가제 적용 변경 안내’ 지침 때문이라고 했다. 내년부터 2군 항암제 등의 급여 기준이 강화돼 건강보험 지원이 중단된다는 내용이었다. 김 씨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지침 그대로 적용된다면 치료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었다. 그는 2년 전부터 건강보험 지원을 받아 회당 약 600만 원인 약값의 5%만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3주에 한 번씩 투약하는 키트루다가 비급여로 처방되면 연간 1억 원 넘게 든다. 그동안 치른 약값 수억 원을 대느라 아파트까지 처분했던 김 씨 사정을 알고 병원 측이 키트루다를 계속 투약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던 것이다. 보건당국은 김 씨 같은 처지에 놓인 암환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일단 한 발짝 물러났다. 보건복지부는 이달 9일 “기존 환자는 지원을 계속할 계획”이라며 절충안을 내놨다. 그러나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내년 1월 이후 암 진단을 받거나 해당 항암제를 처방받는 환자들은 약값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돈 없는 환자는 치료를 포기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신포괄수가제가 뭐길래… 이 같은 혼란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보려면 신(新)포괄수가제를 살펴봐야 한다. 신포괄수가제는 환자 입원료, 검사비, 약제비 등은 포괄수가로 정해진 만큼만 지불하고, 의사의 수술과 시술 등은 ‘행위별 수가’로 지불하는 제도다. 현재 567개 질병군을 대상으로 98개 의료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다. 2009년 시행된 신포괄수가제는 처음에는 국립중앙의료원을 비롯한 국·공립병원만 참여했다. 그러다 2018년 민간 의료기관으로 확대되고, 2019년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 질환)까지 신포괄수가가 적용되면서 ‘빈틈’이 생겼다. 신포괄수가제 참여 의료기관에서 급여 대상이 아닌 약제에도 본인부담률 5%를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의료기관은 더 많은 환자를 유치하려고 이를 적극 홍보하기도 했다. 폐암 투병 중인 이모 씨(54)는 “다니던 종합병원에서 신포괄수가 적용 병원에 가보라는 권유를 받고 올 8월부터 (약값 5%만 내고) 항암제 옵디보를 투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신포괄수가 참여 병원과 고가(高價) 항암제 처방 환자가 늘어나자 고가 약제를 포괄수가 안에 묶어두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2019년 2군 면역항암제 등을 ‘전액 비포괄’로 전환했다. 전액 비포괄은 행위별 수가제의 급여 기준을 따른다는 의미다. 급여 범위의 약 처방이면 환자는 비용의 5% 또는 일부만 부담하고, 급여 범위 밖이면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 가령 키트루다를 비소세포폐암 2차 항암제로 처방하면 약값의 5%만 부담하지만, 급여 대상이 아닌 암에 쓰면 전액을 내야 한다.○환자 “줬다 뺏나”, 정부 “원칙대로” 복지부와 심평원은 “혜택을 축소하는 게 아니라 현장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원칙대로라면 급여 대상이 아닌 환자들이 세부 지침 미비와 현장 혼선으로 혜택을 봤으니 다시 정상화시킨다는 의미다. 암 환자들 사이의 형평성을 맞춘다는 뜻도 있다. 같은 질환도 신포괄수가 적용 병원인지, 입원했는지, 얼마나 오래 입원했는지 등에 따라 진료비 본인 부담이 천차만별이어서다. 심평원 관계자는 “제도의 허점을 노리고 불필요한 입원 치료를 받아 고가의 면역항암제를 처방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암 환자들은 제도의 허점을 만든 것도, 본인부담률이 제대로 적용되는지 모니터링을 게을리한 책임도 심평원에 있다고 주장한다. 논란이 인 뒤 ‘신포괄수가제 항암제 제외 대책회의’를 만든 강지영 씨(42·여)는 “환자들이 신포괄수가 적용 병원으로 몰리는 것은 당연했다”며 “예상보다 고가 항암제 투약 환자가 많아져 재정에 부담이 되니 갑자기 혜택을 없앴다”고 지적했다. 신은숙 심평원 포괄수가개발부장은 “신포괄수가제 자체가 아직 시범사업으로 운영되고 있어 불합리한 점은 계속 개선하고 있다”며 “최적 모형을 찾아가는 단계”라고 말했다.○신약 급여 확대 딜레마 이 논란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고가 신약 급여화를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보인다. 환자 요구만큼 고가 항암제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할 수 있다면 논란은 불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한정된 건보 재정을 고려해 급여 우선순위를 따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항암제 급여 혜택이 꾸준히 늘었다고 설명한다. 심평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항암제 급여 기준 확대로 환자 8만3845명이 2597억 원의 혜택을 봤다. 항암제 건강보험 청구액은 2017년 1조1719억 원에서 지난해 1조9131억 원으로 3년 만에 63.2% 증가했다. 하지만 말기 암 환자들의 체감은 다르다. 해외에선 효과가 인정돼 더 싸게 쓸 수 있는 약제가 한국에선 급여화가 지체돼 수억 원을 내야 할 때도 있다. 형편이 어려운 환자는 치료를 포기하거나, 뒤늦게 치료를 받게 된다. 키트루다가 대표적이다. 안진석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키트루다는 폐암 2차 치료제로 사용할 때만 급여 지원이 된다. 1차 치료부터 써야 5년 이상 장기 생존율이 더 높아지는 등 효과가 크지만 급여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키트루다는 현재 1차 치료 급여 적용을 논의 중이다. 올 7월 4년 만에 암질환심의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추가 심의 등을 거쳐야 한다.○“5% 룰 깨고, 급여 항목 조정해야” 정부와 의료계, 환자단체는 암환자들이 더 쉽고 빠르게 신약에 접근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대안 마련은 쉽지 않다. 의료계는 본인부담률을 조정하자고 제안한다. 본인부담률을 ‘5%’ 틀에 가두지 말고 20%, 30% 등 유연하게 적용하되 대상 약제나 환자 범위를 늘리자는 얘기다. 강진형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초고가 신약이 쏟아지는데 현재 급여 기준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며 “건보 재정을 고려하면 5%라는 획일적 기준을 버릴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자단체 등에선 “항암제 보장성에 우선순위를 두는 건 부적절하다”며 반대한다. 정부도 “암 보장성이 후퇴했다”는 비판을 의식해 적극적으로 고려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도입한 ‘암 기금’처럼 별도 재정을 마련하자는 주장도 있다. 강 교수는 “영국도 재정 위기를 겪으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지속가능한 운영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애련 심평원 약제관리실장은 “암 환자의 치료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특정 질환을 선정하고 그에 따른 재원을 조성하려면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위험분담제 확대를 우선 고려하고 있다. 약의 효능이나 사용량 등에 따라 약값 일부를 제약회사가 환급해주는 제도다. 하지만 급여화 등 다른 방안보다 환자 부담이 대체로 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소득에 따라 환급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정훈 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교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목표를 앞세우면서 의학적으로 덜 시급한 항목도 급여화된 것이 많다”며 “(항암제 급여 확대를 위해선) 보험 재정에 구멍이 없는지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음악계에선 ‘랜선 공연’ ‘방구석 콘서트’가 부쩍 늘었다. 관객을 직접 만나기 어려운 음악인들의 자구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비주류 예술인에겐 이런 기회도 흔치 않다. 좋은 장비를 갖춘 스튜디오를 구하려면 비싼 ‘디지털 대관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음반기획 및 제작사 ‘오디오가이’ 최정훈 대표는 음악인들의 이런 어려움에 주목했다. 10년간 노하우를 쌓아 온 3차원(3D) 입체음향 기술을 비대면 공연에 접목하기로 했다. 집에서도 공연장에 온 것처럼 실감나는 무대를 만들었다. 이달 12일부터 3주 동안 매주 금요일 ‘어느 날, 내게 찾아 ON 콘서트’를 열고 있다. 최 대표는 “비대면 시대에 온라인 유료공연이 정착되려면 고품질의 프리미엄 콘텐츠 개발이 중요하다”며 “비주류, 인디 뮤지션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디오가이는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공모한 ‘창업발전소―콘텐츠 소셜벤처 트랙’에 선정됐다. 콘텐츠를 기반으로 사회적 문제 해결에 나선 3년 차 이하 기업에 5000만 원을 지원하고 투자 유치 등 전문가 컨설팅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7개 기업을 뽑는 데 142개 기업이 지원해 경쟁률 20 대 1을 넘겼다. 선정된 스타트업들이 가진 콘텐츠는 다양하다. ‘해녀의 부엌’은 제주도의 버려진 어촌창고를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제주도 출신 김하원 대표는 수산자원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다 도서관이 들어서고 다양한 기념품까지 만들어 파는 외국의 수산시장에서 영감을 얻었다. 식사를 하면서 해녀들의 삶을 담은 공연을 즐기는 아이템이 떠오른 것이다. 김 대표는 “영상과 안무, 조명을 조합해 해녀들의 물질을 실감나게 느끼는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청각장애 환자 등을 돕는 헬스케어 콘텐츠도 눈길을 끌었다. 민정상 이모티브 대표는 자동차 회사에서 10년 동안 인지 모델링 업무를 했다. 운전자에게 들어온 정보가 행동이나 말로 표현되는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작업이다. 민 대표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ADHD 환자를 위한 콘텐츠를 개발하고자 창업을 결심했다. ADHD가 의심되거나 진단받은 환자가 게임에 접속하면 인지 구조가 모델링돼 사용자 맞춤형 게임 환경이 만들어진다. 내년 상반기에 선보이는 게 목표다. 박경자 콘진원 기업인재양성본부장은 “최근 사회적 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소셜벤처가 늘었지만 예술, 문화, 스포츠 분야는 그리 많지 않다”며 “예술가 지원, 배리어 프리(장애 친화적) 콘텐츠를 고민하는 기업들을 꾸준히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앉아서 손님이 오기만 기다리는 전통시장의 시대는 끝났다. ‘총알배송’ ‘새벽배송’ 시대에 전통시장도 달라지고 있다. 전통시장이 낯설었던 젊은층도 이제 안방서 전통시장을 즐긴다. ‘비대면’ 시대에 온라인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는 전통시장의 변화를 소개한다.》11일 오후 서울 강동구 암사종합시장. ‘허브닭강정’ 이필남 사장(52)은 발이 땅에 붙어 있을 틈이 없었다. 직접 닭강정을 사가는 고객을 응대하는 틈틈이 온라인 주문 물량을 포장해 공동 배송센터로 보내야 한다. 가게에서 150m가량 떨어진 ‘동네시장 장보기’ 공동배송센터 바구니에는 1부터 100까지 번호가 적혀 있다. 고객별 주문 번호다. 바구니의 3분의 1가량에는 각종 반찬과 과일 등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센터에 모인 상품은 낮 12시, 오후 2시 반, 5시에 출고된다. 각 가정에서는 대개 2시간 이내에 물건을 받을 수 있다. ○강동구 넘어 성남까지 ‘온라인 날개’1978년 문을 연 암사시장은 최근 상권을 강동구뿐 아니라 인접 구, 경기 성남시와 구리시 일대까지 넓혔다. 온라인 주문이 활성화되면서 젊은 고객층의 유입도 늘었다. 이런 변화가 시작된 건 국내 전통시장 최초로 2019년 1월 네이버 ‘동네시장 장보기’ 서비스를 시작한 뒤부터다. ‘암사시장’을 검색해 들어가면 품목별로 상품을 골라 담을 수 있다. 16일 현재 3만8676명이 ‘찜하기’를 눌렀다. 가게 60여 곳이 이 서비스를 통해 올리는 매출은 월평균 1억 원. 최근엔 ‘빈손 장보기’ ‘놀러와요 시장’ 등 유사한 플랫폼도 입점해 장보기가 더 편리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넘기는 데도 온라인 장보기의 역할이 컸다. 고객들이 북적이는 시장 방문을 꺼리게 되자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전부터 온라인 판로를 개척해 둔 덕분에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됐다. 2019년 하반기 1223건이었던 동네시장 장보기 주문 건수는 2020년 상반기 4424건, 하반기 8193건으로 급증했다. 올 상반기 9808건으로 하반기 1만 건 돌파가 예상된다. 허브닭강정은 암사시장 동네시장 장보기 주문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온라인 ‘핫플레이스’이다. 지난해 상반기 772건이었던 온라인 주문은 올 상반기 2456건으로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온라인 주문 매출만 월평균 200만 원가량이다. 이 사장은 “시장 주변에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상점이 들어와 타격이 있었지만, 온라인 단골 고객들 덕분에 매출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기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보다 수수료가 30%가량 낮아 상인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웃었다. ○ 온·오프라인 고객층 달라 고객감소 우려 씻어 온라인 배달 서비스를 상인들이 처음부터 반겼던 것은 아니다. 입점 초기 참여 상점은 10여 곳에 불과했다. ‘온라인에 익숙해져 고객들이 안 오면 어떡하느냐’는 반대도 많았다. 대면 서비스에 익숙한 상인들에겐 시장의 활기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 하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 소비자는 크게 겹치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유입되는 고객은 기존에 배달앱이나 대형마트를 주로 이용하던 젊은층이 많았다. 반찬가게 ‘순수한찬’ 김영주 대표(45)도 이런 수요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 고객을 늘렸다. 기존에 매장을 찾던 중장년 주부 고객들이 며칠씩 먹을 반찬을 푸짐하게 사간다면, 온라인의 젊은 고객들은 하루 저녁 먹을 반찬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김 대표는 “1인 가구가 저녁 한 끼를 든든히 먹을 수 있게 반찬 3종 세트 등을 마련했는데 고객 반응이 좋았다”며 웃었다. 현재는 온라인 주문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커졌다. 암사시장 130여 개 상점 중 절반가량이 온라인 주문을 받는다. 참여하지 않는 가게는 품목 가격 변동이 심해 매일 온라인 가격 조정이 어려운 경우, 혼자 가게를 운영해 배송센터 전달이 어려운 영세 업체 등이다. 전통시장이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족발가게를 운영하는 최병조 상인회장은 “과거 전통시장 지원이 시설 개선 등에 집중됐지만 이를 통해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대형마트, 유통업체 등과 경쟁하려면 온라인 판로 개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2025년까지 전국 전통시장 500곳 온라인 장보기 시스템 도입”중기부-소진공, 상권분석 등 지원… “시장 특성 맞춰 온라인 역량 강화”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린 지난해부터 ‘전통시장 온라인 진출 지원 사업’을 통해 전통시장의 판로 개척을 돕고 있다. 온라인 배송에 익숙하지 않은 상인들의 비대면 거래를 늘리고 잠재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시장이나 상점을 민간 전문가와 1 대 1로 연결해 상권 분석과 상품 개발을 돕는다. 소진공에 따르면 지난해 42곳, 올해 57곳 등 모두 99개 전통시장이 온라인 공간에 매장을 열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7월까지 사업 지원을 받은 이들 시장의 총매출은 10억3600만 원이다. 2025년까지 전국 500개 시장에 온라인 장보기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목표다. 수십 년 동안 동네 단골손님 위주로 영업해 온 전통시장 상인들에게 온라인 배송 진출은 가게 하나를 더 여는 것과 마찬가지다. 온라인 판로가 지속 가능하려면 철저한 상권 분석과 온라인 배송에 맞는 상품 개발, 포장 방식 개선이 필수다. 시장에 직접 가지 않고 물건을 골라야 하는 만큼 상품 사진 촬영 등 작은 것 하나에도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컨설팅을 통해 이런 과정의 시행착오를 줄인다. 온라인 배송의 장점은 상권이 넓어진다는 데 있다. 입소문을 타면 전국적 인지도를 얻을 수도 있다. 지방 전통시장들은 지역 특산물을 싼 가격에 구입하고 싶어 하는 수도권 주민들을 잠재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전국 배송’ 컨설팅은 전국 배송에 적합한 상품을 발굴하고 온·오프라인 홍보 전략도 컨설팅 해준다. 조봉환 소진공 이사장은 “코로나19 이후 전통시장의 디지털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며 “시장 특성에 맞게 온라인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해 전통시장의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앉아서 손님이 오기만 기다리는 전통시장의 시대는 끝났다. ‘총알배송’ ‘새벽배송’ 시대에 전통시장도 달라지고 있다. 전통시장이 낯설었던 젊은층도 이제 안방서 전통시장을 즐긴다. ‘비대면’ 시대에 온라인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는 전통시장의 변화를 소개한다. 11일 오후 서울 강동구 암사종합시장. ‘허브닭강정’ 이필남 사장(52)은 발이 땅에 붙어 있을 틈이 없었다. 직접 닭강정을 사가는 고객을 응대하는 틈틈이 온라인 주문 물량을 포장해 공동 배송센터로 보내야 한다. 가게에서 150m가량 떨어진 ‘동네시장 장보기’ 공동배송센터 바구니에는 1부터 100까지 번호가 적혀 있다. 고객별 주문 번호다. 바구니의 3분의 1가량은 각종 반찬과 과일 등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센터에 모인 상품은 낮 12시, 오후 2시 반, 5시 반에 출고된다. 각 가정에서는 대개 2시간 이내에 물건을 받을 수 있다. ● 강동구 넘어 성남까지 ‘온라인 날개’ 달다 1978년 문을 연 암사시장은 최근 상권을 강동구 뿐 아니라 인접 구, 경기 성남시와 구리시 일대까지 넓혔다. 온라인 주문이 활성화되면서 젊은 고객층의 유입도 늘었다. 이런 변화가 시작된 건 국내 전통시장 최초로 2018년 말 네이버 ‘동네시장 장보기’ 서비스를 시작한 뒤부터다. ‘암사시장’을 검색해 들어가면 품목별로 상품을 골라 담을 수 있다. 16일 현재 3만8676명이 ‘찜하기’를 눌렀다. 시장 상인들이 이 서비스를 통해 올리는 매출은 월평균 1억 원. 최근엔 ‘빈손 장보기’ ‘놀러와요 시장’ 등 유사한 플랫폼도 입점해 장보기가 더 편리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넘기는 데도 온라인 장보기의 역할이 컸다. 고객들이 북적이는 시장 방문을 꺼리게 되자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전부터 온라인 판로를 개척해 둔 덕분에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됐다. 2019년 하반기 1223건이었던 동네시장 장보기 주문 건수는 2020년 상반기 4424건, 하반기 8193건으로 급증했다. 올 상반기 9808건으로 하반기 1만 건 돌파가 예상된다. 허브닭강정은 암사시장 동네시장 장보기 주문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온라인 ‘핫스팟’이다. 지난해 상반기 772건이었던 온라인 주문은 올 상반기 2456건으로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온라인 주문 매출만 월평균 200만 원가량이다. 이 사장은 “시장 주변에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상점이 들어와 타격이 있었지만, 온라인 단골 고객들 덕분에 매출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기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보다 수수료가 30%가량 낮아 상인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웃었다. ● 손님 감소 우려했지만 온·오프라인 고객층 달라 온라인 배달 서비스를 상인들이 처음부터 반겼던 것은 아니다. 입점 초기 참여 상점은 10여 곳에 불과했다. ‘온라인에 익숙해져 고객들이 안 오면 어떡하느냐’는 반대도 많았다. 대면 서비스에 익숙한 상인들에겐 시장의 활기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 하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 소비자는 크게 겹치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유입되는 고객은 기존에 배달앱이나 대형마트를 주로 이용하던 젊은층이 많았다. 반찬가게 ‘순수한찬’ 김영주 대표(45)도 이런 수요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 고객을 늘렸다. 기존에 매장을 찾던 중장년 주부 고객들이 며칠씩 먹을 반찬을 푸짐하게 사간다면, 온라인의 젊은 고객들은 하룻저녁 먹을 반찬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김 대표는 “1인 가구가 저녁 한 끼를 든든히 먹을 수 있게 반찬 3종 세트 등을 마련했는데 고객 반응이 좋았다”며 웃었다. 현재는 온라인 주문이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커졌다. 암사시장 130여개 상점 중 절반가량이 온라인 주문을 받는다. 참여하지 않는 가게는 품목 가격 변동이 심해 매일 온라인 가격 조정이 어려운 경우, 혼자 가게를 운영해 배송센터 전달이 어려운 영세 업체 등이다. 전통시장이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족발가게를 운영하는 최병조 상인회장은 “과거 전통시장 지원이 시설 개선 등에 집중됐지만 이를 통해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대형마트, 유통업체 등과 경쟁하려면 온라인 판로 개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1만3195명. 지난해 국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수다. 전년 대비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은 4.4% 줄었다. ‘코로나 블루(우울감)’라는 악조건 속에서 언뜻 선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안도할 수만은 없다. 고립감, 취업난 등에 시달리는 젊은층의 정신건강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10대와 20대 자살률은 각각 9.4%, 12.8% 급증했다. 10대 남성(18.8%), 20대 여성(16.5%)의 증가율이 특히 컸다. 전문가들은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른다. 사회 구조적 문제, 물리적·정신적 폭력 등 외적 요인이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들을 살리는 힘 역시 외부에서 온다. 이상 징후를 감지한 가족이나 친구의 따뜻한 말 한마디, 적절한 개입이 극단적 선택을 막는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심리부검센터에 따르면 자살사망자의 92%는 주위에 ‘위험 신호’를 보냈다. 올 8월 말 출시된 모바일 게임 ‘30일’엔 이 모든 메시지가 담겼다. 게임은 출시 두 달 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 1만 건을 넘었다. ‘대박’은 아니지만 ‘자살 예방’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감안하면 꽤 괜찮은 성적표다. 공식 팬 카페 가입자가 거의 2000명에 이를 만큼 마니아층도 생겼다. 심심풀이로 시작했다가 울면서 끝냈다는 후기가 많다. 제작자는 대학생 연합 게임 동아리 ‘브릿지’에서 만난 20대 청년 8명이다. 이혜린 대표(27)가 던진 아이디어에 팀원들이 살을 붙였다. 게임을 매개로 사회 문제를 다룬다는 접근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2019년 3월 팀을 꾸린 뒤 완성작을 내놓기까지 2년 5개월이 걸렸다. 9일 서울 마포구 작업실에서 이혜린 ‘더브릭스’ 대표와 기획자 김지윤 씨(26), 프로그래머 권은령 씨(23)를 만났다. 팀명은 “살면서 맞닥뜨리는 벽의 벽돌(brick) 하나라도 부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는 의미다.(※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읽어도 사용자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져 게임을 즐기는 데엔 지장이 없습니다.) ● 나는 왜 설아의 죽음을 막지 못했나게임은 ‘최설아’라는 20대 여성의 사망진단서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 사망 장소는 허름한 3층짜리 고시원이다. 설아는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공시생이다. 참가자는 고시원 총무인 ‘박유나’가 돼 설아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 설아의 사망 30일 전에서 시작해 매일 새로운 미션이 주어진다. 이때 유나와 주변인들의 말과 행동에 따라 설아의 심리상태는 안정을 찾을 수도, 악화될 수도 있다. 전자일 땐 사망진단서가 조금씩 소각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후자의 경우엔 설아의 사망으로 게임이 종료된다. 게임은 현실을 빼다 박은 것처럼 사실적이다. 팀원들은 고시원 두 곳을 탐방하고 주위의 공시생 등 우울감에 시달리는 청년 등을 인터뷰해 사실감을 높였다. 이 대표 등 팀원 2명의 고시원 거주 경험도 도움이 됐다. 이 대표는 “극히 개인적인 공간처럼 보이는 고시원 안에도 의미 있는 관심과 마주침이 있다. 당시 총무님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팀원들은 게임이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살예방 교육을 수료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에게 자문도 했다. 김 씨는 “민감한 대사를 수정하는 데 몇 달씩 걸린 적도 있다”고 했다. 설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다. 섣부른 위로가 상처를 더 헤집기도 하고, 별거 아닌 사건에 크게 흔들린다. 설아를 살리려면 참가자들의 세심한 관찰력과 신중한 언행이 필수다. 가령 감기에 걸린 설아를 걱정하며 1층 가판대에서 약을 사서 가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상태 메시지 변경을 확인하고 한 번 더 안부를 묻는 식이다. 선반 위에 널브러진 약통, 시든 화분 등도 설아의 심리 상태를 알려주는 힌트다. 이 대표는 “(자살 고위험군에게) 반려식물이 죽었을 때의 상실감은 사람의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조언을 듣고 반영했다”고 말했다. 고백하건대 기자는 설아를 세 번이나 지키지 못했다. 팬들이 블로그 등에 올린 엔딩 소개 글을 보고서야 해피엔딩을 맞았다. ● ‘번아웃’ ‘죄책감’, 유나 이야기설아를 살리는 것이 게임의 전부는 아니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그려지는 유나 역시 ‘번아웃(burnout·소진)’의 위험을 안고 있다. 유나는 총무 일도, 시험 준비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몰아붙이다 과로로 쓰러진다. 설아를 신경 쓸수록 유나의 에너지가 깎이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는 ‘타인에게 쏟는 관심만큼 자신의 심리 상태도 함께 돌봐야 한다’는 메시지다. 유나는 대입, 취업 등 10년 넘게 치열한 경쟁을 버텨온 한국의 젊은층에게 특히 와 닿는 캐릭터다. 취업 후에도 끊임없는 자기개발로 자기 가치를 높여야 되고, 열심히 일해도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감당할 수 없어 무력감에 빠지는 경우도 흔하다. 유나의 존재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의 유족 문제와도 겹쳐진다. 이들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린다. 삼성서울병원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 놓인 유족은 일반인보다 18.3배 더 우울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대표는 “설아의 죽음을 최대한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그 책임이 유나에게 있다고 느껴지지 않도록 고민했다”고 말했다. 당초 사망진단서가 점차 구체적으로 완성되도록 기획했다가, 소멸되게 바꾼 것도 참가자들의 이런 감정선을 고려해서다. ● 자살예방, ‘보고, 듣고, 말하기’ 유나가 설아의 정신적 버팀목 역할이라면, 옆방의 수아는 자살예방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장치다. 생명을 지키려면 따뜻한 위로만큼이나 과감하고 적절한 개입도 필요하다. 간호사로 설정된 수아는 설아의 자살 징후를 느끼고 방 안에 쌓인 약통을 치우도록 한다. 내원과 상담을 적극 권하는 것도 수아의 역할이다. 4주 차에 설아 방에서 약통을 발견한 유나에게 선택지가 놓인다. 약을 어디에 쓰려는지 궁금해하거나(간접적 개입), 더 이상 캐묻지 않는 경우, 자살 계획이나 생각을 하는지 직접적으로 묻는 경우 등 3가지다. 이때 자살 생각을 묻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상대의 의중을 명확하게 물어야 고위험군을 발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제작진은 게임 곳곳에 자살 예방 정보를 심어 놓았다. 자살 위험 징후를 판단하는 예시 문항도 참고할 만하다.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건 언어적 신호다. ‘나 같은 건 없는 게 차라리 나아’ ‘나는 모두에게 짐만 될 뿐이야’ 등과 같은 말이 들리면 즉각 개입이 필요하다. 행동 신호는 알코올 중독, 대인 기피, 자해 흔적, 자살 수단 마련, 소중히 여기던 물건을 나눠주는 행동 등이다. 상황 신호는 건강이 악화되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 때다. ● 꿈을 잃은 세대에게 바치는 위로 제작진은 고시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통해 20대가 당면한 문제를 두루 살핀다. 주거 바우처 확대 뉴스와 스프링클러 설치 에피소드에선 청년 주거 문제를, 공무원 시험에 수년째 매달리는 주인공들을 통해선 부족한 일자리 현실을 얘기한다. 설아가 겪는 스토킹은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이슈다. 김 씨는 “스토킹은 꼭 남녀 관계가 아니더라도 ‘잘못된 관심’이 한 인간을 이렇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두 주인공인 유나와 설아는 20대 여성이 당면한 위기를 보여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에 참여한 응급의료기관 66곳에 실려 온 자살 시도자 2만2572명 중 20.4%(4607명)가 20대 여성이었다. 전체 자살시도자가 1년 새 4.7% 늘었는데, 20대 여성은 33.5% 급증했다. 우울증을 포함한 기분장애로 진료받은 20대 여성은 2016년 4만3749명에서 지난해 10만6752명으로 144% 증가했다. ‘30일’은 몰입할수록 게임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드라마 시리즈를 정주행하는 느낌을 준다. 입체적인 캐릭터와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주는 울림이 크기 때문이다. 대사를 곱씹는 팬들도 많다. 팬카페에는 게임에선 보기 힘든 활짝 웃는 설아의 얼굴 등 다양한 팬 아트도 올라온다. 삶의 무게를 버거워하는 설아를 위로하는 편지를 남기는 팬들도 많다. 이들은 설아가 곧 나일 수도, 혹은 가까운 친구나 가족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세 명의 팀원에게 각각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나 대사를 꼽아달라고 요청했다. 그중 하나는 30일째, 유나가 설아에게 하는 말이다. “완벽한 타인이라는 존재는 없는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만 있다면 누구도 혼자일 수는 없다는,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1만3195명. 지난해 국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수다. 전년 대비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은 4.4% 줄었다. ‘코로나 블루(우울감)’라는 악조건 속에서 언뜻 선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안도할 수만은 없다. 고립감, 취업난 등에 시달리는 젊은층의 정신건강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10대와 20대 자살률은 각각 9.4%, 12.8% 급증했다. 10대 남성(18.8%), 20대 여성(16.5%)의 증가율이 특히 컸다. 전문가들은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른다. 사회 구조적 문제, 물리적·정신적 폭력 등 외적 요인이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들을 살리는 힘 역시 외부에서 온다. 이상 징후를 감지한 가족이나 친구의 따뜻한 말 한마디, 적절한 개입이 극단적 선택을 막는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심리부검센터에 따르면 자살사망자의 92%는 주위에 ‘위험 신호’를 보냈다. 올 8월 말 출시된 모바일 게임 ‘30일’엔 이 모든 메시지가 담겼다. 게임은 출시 두 달 만에 누적 다운로드 수 1만 건을 넘었다. ‘대박’은 아니지만 ‘자살 예방’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감안하면 꽤 괜찮은 성적표다. 공식 팬 카페 가입자가 거의 2000명에 이를 만큼 마니아층도 생겼다. 심심풀이로 시작했다가 울면서 끝냈다는 후기가 많다. 제작자는 대학생 연합 게임 동아리 ‘브릿지’에서 만난 20대 청년 8명이다. 2019년 3월 팀을 꾸린 뒤 완성작을 내놓기까지 2년 5개월이 걸렸다. 9일 서울 마포구 작업실에서 제작사 ‘더브릭스’의 이혜린 대표(27)와 기획자 김지윤 씨(26), 프로그래머 권은령 씨(23)를 만났다. 팀명은 “살면서 맞닥뜨리는 벽의 벽돌(brick) 하나라도 부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는 의미다.(※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읽어도 사용자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져 게임을 즐기는 데엔 지장이 없습니다.) ○나는 왜 설아의 죽음을 막지 못했나 게임은 ‘최설아’라는 20대 여성의 사망진단서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 사망 장소는 허름한 3층짜리 고시원이다. 설아는 3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공시생이다. 참가자는 고시원 총무인 ‘박유나’가 돼 설아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 설아의 사망 30일 전에서 시작해 매일 새로운 미션이 주어진다. 이때 유나와 주변인들의 말과 행동에 따라 설아의 심리상태는 안정을 찾을 수도, 악화될 수도 있다. 전자일 땐 사망진단서가 조금씩 소각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후자의 경우엔 설아의 사망으로 게임이 종료된다. 게임은 현실을 빼다 박은 것처럼 사실적이다. 팀원들은 고시원을 취재하고 주위의 공시생 등 우울감에 시달리는 청년 등을 인터뷰해 사실감을 높였다. 이 대표 등 팀원 2명의 고시원 거주 경험도 도움이 됐다. 이 대표는 “극히 개인적인 공간처럼 보이는 고시원 안에도 의미 있는 관심과 마주침이 있다. 당시 총무님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팀원들은 게임이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살예방 교육을 수료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에게 자문도 했다. 김 씨는 “민감한 대사를 수정하는 데 몇 달씩 걸린 적도 있다”고 했다. 설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다. 섣부른 위로가 상처를 더 헤집기도 하고, 별거 아닌 사건에 크게 흔들린다. 설아를 살리려면 참가자들의 세심한 관찰력과 신중한 언행이 필수다. 가령 감기에 걸린 설아를 걱정하며 1층 가판대에서 약을 사서 가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상태 메시지 변경을 확인하고 한 번 더 안부를 묻는 식이다. 선반 위에 널브러진 약통, 시든 화분 등도 설아의 심리 상태를 알려주는 힌트다. 이 대표는 “(자살 고위험군에게) 반려식물이 죽었을 때의 상실감은 사람의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조언을 듣고 반영했다”고 말했다. 고백하건대 기자는 설아를 세 번이나 지키지 못했다. 팬들이 블로그 등에 올린 엔딩 소개 글을 보고서야 해피엔딩을 맞았다.○‘번아웃’ ‘죄책감’, 유나 이야기 설아를 살리는 것이 게임의 전부는 아니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그려지는 유나 역시 ‘번아웃(burnout·소진)’의 위험을 안고 있다. 유나는 총무 일도, 시험 준비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몰아붙이다 과로로 쓰러진다. 설아를 신경 쓸수록 유나의 에너지가 깎이는 순간들이 있는데, 이는 ‘보호자들의 심리 상태도 함께 돌봐야 한다’는 메시지다. 자신의 정신건강을 챙기는 데 서툰 일반인들의 상당수는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유나의 존재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의 유족 문제와도 겹쳐진다. 이들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린다. 삼성서울병원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 놓인 유족은 일반인보다 18.3배 더 우울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대표는 “설아의 죽음을 최대한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그 책임이 유나에게 있다고 느껴지지 않도록 고민했다”고 말했다. 당초 사망진단서가 점차 구체적으로 완성되도록 기획했다가, 소멸되게 바꾼 것도 참가자들의 이런 감정선을 고려해서다. 유나가 설아의 정신적 버팀목 역할이라면, 옆방의 수아는 자살예방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장치다. 생명을 지키려면 따뜻한 위로만큼이나 과감하고 적절한 개입도 필요하다. 간호사로 설정된 수아는 설아의 자살 징후를 느끼고 방 안에 쌓인 약통을 치우도록 한다. 내원과 상담을 적극 권하는 것도 수아의 역할이다. 4주 차에 설아 방에서 약통을 발견한 유나에게 선택지가 놓인다. 약을 어디에 쓰려는지 궁금해하거나(간접적 개입), 더 이상 캐묻지 않는 경우, 자살 계획이나 생각을 하는지 직접적으로 묻는 경우 등 3가지다. 이때 자살 생각을 묻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상대의 의중을 명확하게 물어야 고위험군을 발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 꿈을 잃은 세대에 바치는 위로 제작진은 고시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통해 20대가 당면한 문제를 두루 살핀다. 주거 바우처 확대 뉴스와 스프링클러 설치 에피소드에선 청년 주거 문제를, 공무원 시험에 수년째 매달리는 주인공들을 통해선 부족한 일자리 현실을 얘기한다. 설아가 겪는 스토킹은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이슈다. 김 씨는 “스토킹은 꼭 남녀 관계가 아니더라도 ‘잘못된 관심’이 한 인간을 이렇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30일’은 몰입할수록 게임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드라마 시리즈를 정주행하는 느낌을 준다. 입체적인 캐릭터와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주는 울림이 크기 때문이다. 대사를 곱씹는 팬들도 많다. 팬카페에는 게임에선 보기 힘든 활짝 웃는 설아의 얼굴 등 다양한 팬 아트도 올라온다. 삶의 무게를 버거워하는 설아를 위로하는 편지를 남기는 팬들도 많다. 마지막으로 세 명의 팀원에게 각각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나 대사를 꼽아달라고 요청했다. 그중 하나는 30일째, 유나가 설아에게 하는 말이다. “완벽한 타인이라는 존재는 없는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작은 관심만 있다면 누구도 혼자일 수는 없다는,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