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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올레드) TV, 생활가전, 스마트폰 등 주력제품에 인공지능을 탑재하는 것을 비롯해 석유화학, 자동차부품, 화장품 등 사업 분야에서도 고부가 제품을 확대해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LG전자는 55인치 이상 초대형 올레드 TV, 인공지능 브랜드 ‘씽큐(ThinQ)’를 적용한 ‘AI 올레드 TV’를 선보인다. 대형 TV의 수요증가 추세에 맞춰 65인치, 77인치 TV의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한다. 올해 프리미엄 제품 출시 국가도 확대한다. 초프리미엄 가전 브랜드인 ‘LG시그니처’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중동, 중남미 등 신흥시장에 확대해 출시한다. 올해 미국 테네시주에 2억5000만 달러를 투자한 가전 생산 공장을 완공해 가동에 들어간다. LG디스플레이는 올해 대형 올레드와 중소형 플라스틱 올레드(POLED) 사업 경쟁력을 강화한다. 대형 올레드 분야에서는 기존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롤러블과 투명 등 혁신 제품으로 신규 시장을 창출해 나갈 계획이다. 중국 광저우에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8.5세대 대형 올레드 공장을 건설한다. LG화학은 기초소재, 전지 등 고부가 가치 제품 확대, 해외 생산시설 증설 등을 추진한다. 기초소재사업본부는 고기능 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ABS) 및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P), 차세대 고흡수성 수지(SAP), 친환경 합성고무 등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고도화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LG전자가 국내 산업용 로봇 제조업체 로보스타(Robostar) 지분을 취득하며 로봇 사업 투자를 확대한다. 로봇을 미래 성장 산업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LG전자는 7월 중으로 로보스타가 실시하는 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20%를 취득할 예정이라고 29일 공시했다. 주식 수는 보통주 195만 주이며, 투자금액은 약 536억 원이다. 내년 말까지 로보스타의 경영진이 보유한 지분 가운데 일부인 13.4%를 추가로 인수해 지분은 33.4%로 늘어난다. 1999년에 설립된 로보스타는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디스플레이, 반도체, 자동차 등의 생산공정에서 주로 사용되는 ‘스카라로봇’, 디스플레이나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정에서 유리기판, 웨이퍼 등을 옮기는 데 사용되는 ‘원통좌표로봇’ 등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부터 로봇을 미래 먹거리로 정하고 로봇 전문업체, 스타트업 등에 지분 투자를 이어가며 외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로봇 솔루션 및 교육용 로봇을 개발하는 ‘로보티즈’에 약 90억 원을 투자해 지분 10.12%를 획득했다. 지난해 5월에는 웨어러블 로봇 기업 ‘에스지로보틱스’에 3000만 원을 투자해 지분 15%를 얻었다. LG전자 관계자는 “‘지능형 자율공장’ 구축에 로보스타의 산업용 로봇 기술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삼성전자가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을 한 달 앞두고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한다. 사무직과 연구개발(R&D) 직군의 근로자가 주 단위가 아닌 월 단위로 근로시간을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근로 시간 관리를 직원의 재량에 맡기는 ‘재량근로제’도 함께 도입한다. 삼성전자는 7월 1일부터 주 단위로 근로시간을 관리하는 ‘자율출퇴근제’를 월 단위로 확대한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재량근로제’를 도입한다고 29일 밝혔다. 성수기에 제품 생산이 몰리는 에어컨 등의 제조 부문은 3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도 함께 도입한다. 삼성전자는 근로기준법 개정에 대비해 1월부터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했다. 직군별 특성이나 근로자 각자의 업무 진행 상황에 따라 주당 52시간을 넘기는 상황이 발생하자 월로 기한을 넓히기로 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란 한 달 내에 정해진 근로시간에 맞춰 근로자가 출퇴근 시간 및 근로 시간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제도다. 한 달 중 근무일을 22일, 하루 근무 시간을 8시간으로 가정했을 때 한 달 176시간의 근로시간만 지키면 된다. 단 하루에 최소 4시간, 1주일에 최소 20시간을 근무해야 하는 조건은 기존대로 유지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R&D 비중이 높은 정보기술(IT) 및 전자기업들이 차선책으로 택하고 있다. 제품 및 서비스 출시를 앞둔 시점에는 집중적인 근무가 필요해 주당 52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LG전자 역시 2월부터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했다. LG전자는 부서별로 한 달을 한도로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할 기간을 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주 단위로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하길 원하는 부서는 근로시간의 기한을 2주로 정할 수 있다. 넷마블게임즈 역시 지난달부터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했다. 오전 10시∼오후 4시를 제외하고 나머지 업무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재량근로제도 도입한다. 재량근로제는 업무 특성상 직원이 얼마나 일했고 어떻게 일했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 노사 합의로 일정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주 50시간 근로로 노사가 합의하면 사측은 이후 근로자의 근무 및 출퇴근 시간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재량근로제는 신제품이나 신기술 연구개발 업무에만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이에 해당하는 업무에 한해 재량근로제를 적용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과제 및 대상자는 별도의 선정 과정을 거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재량근로제는 회사로 출퇴근을 하는지, 실제로 하루에 얼마나 근무하는지 등을 회사가 전혀 확인하지 않는 제도이기 때문에 적용 범위가 좁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특정 프로젝트별로 적용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고, 한 프로젝트에 재량근로제가 적용되더라도 팀원 전체가 아닌 일부 핵심 인력에게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갤럭시S 시리즈 등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 출시 막바지 단계에서 집중 근무가 필요한 경우 등이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제조 부문은 에어컨 성수기 등 특정 기간에 업무가 몰리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3개월 기한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한다. 다만 재계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한을 3개월이 아닌 1년 단위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계 관계자는 “에어컨 등 가전제품은 성수기와 비수기가 연 단위로 나타나기 때문에 연간 근로시간 운영계획을 짜야 해 연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20초의 광고시간 동안 6초가 깜깜한 검은색 화면이다. ‘지지직’ 소리를 내며 깜빡거리기를 반복하던 TV가 완전히 꺼진 듯 보인다. TV가 고장 난 것으로 착각한 시청자들이 당황하며 리모컨을 찾을 때쯤 검은 화면 위로 흰 글씨가 뜬다. ‘이것이 대부분 시간 동안의 TV 화면이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제 당신의 TV를 조정할 시간이다. 더 이상의 블랙아웃(검은색 화면 상태)은 없다.’ 이 광고는 삼성전자 영국법인이 퀀텀닷디스플레이(QLED) TV의 ‘앰비언트 모드(Ambient Mode)’ 기술을 알리기 위해 제작해 화제가 되고 있다. 앰비언트 모드는 TV가 꺼져 있을 때도 날씨, 뉴스 등 생활정보를 보여주고 사진이나 예술작품 콘텐츠를 띄워 놓을 수 있는 기능이다. 광고를 보며 시청자들은 TV를 그냥 검은 화면으로 두는 게 얼마나 답답하고 비효율적인지 느끼게 된다. 이번 광고는 25일(현지 시간)부터 10일 동안 영국 18개 채널, 221개 방송의 중간광고로 방영된다.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와 리버풀(영국)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전 중간광고로도 방영됐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설거지하는 엄마, 청소기 돌리는 아빠도 어느 위치에서나 생생한 TV 화질을 즐겨야죠.” 23일 경기 평택시 LG전자 제조복합단지 LG디지털파크의 TV 화질 개발실. 박유 TV화질팀 책임연구원은 “어떤 각도에서 TV를 봐도 정면에서 보는 것 같은 화질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개발실은 프리미엄 TV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LG전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의 화질을 측정하고 연구하는 곳이다. 이날도 ‘화질 자동 측정 시스템’을 이용한 OLED TV 화질 테스트가 한창이었다. 이 기기는 40인치대부터 120인치까지의 초대형 디스플레이 화질을 테스트한다. 상하좌우, 대각선까지 총 720도로 디스플레이를 회전시키며 측면에서도 디스플레이의 밝기, 명암비, 시야각, 색재현 등 1000개 이상의 화질 특성이 목표 수치 안에 들어오는지 확인한다. 초대형 디스플레이 화질을 측정하는 기기는 높이 2m가 넘는다. 수치가 기준 안에 들어오더라도 다른 제품 평균보다 낮으면 불량으로 간주해 제품화하지 않는다. 철저한 테스트를 거치는 덕에 OLED TV는 60도 측면에서 보더라도 색상의 변화가 없다. OLED TV는 특히 검은색과 같은 무채색 표현이 뛰어나다. 그래서 연구원들은 흰색부터 검은색까지의 무채색을 측정할 때에는 테스트실에 스마트폰도 들고 가지 않는다. 아주 적은 양의 빛이 새어 나가도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 OLED TV에 적용된 인공지능(AI) 화질엔진 ‘알파9’은 OLED TV의 화질을 한 차원 더 높였다. 알파9은 스스로 화면에서 깨진 부분 등 ‘노이즈’를 찾아 제거하고, 최적의 명암비, 채도, 색상 등을 설정한다. 다른 모든 사양은 동일한 조건에서 화질 칩만 해외 경쟁사와 LG전자의 OLED TV를 비교해 봤다. LG전자 TV는 나무 재질의 벽면에 보이는 촘촘한 나뭇결이 모두 표현된 반면 경쟁사 제품은 흐릿하게만 표현됐다. 이번에는 음질을 테스트하는 음질 개발실을 찾았다. ‘소리가 없다’는 뜻의 무향실(無響室)에 들어갔다. 이곳은 천장, 벽, 바닥 등에서 발생하는 소리의 반사를 없애고 순수하게 TV에서 나오는 소리만 측정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공간이다. 무향실은 고성능 흡음재가 사방을 감싸고 있다. 외부 진동을 억제하기 위해 바닥으로부터 1m 높이에 철망을 깔고 그 위에서 제품의 음향 주파수를 테스트한다. 국가별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에 주파수의 세팅도 다르게 설계한다. 예를 들어 인도는 주변 소음이 많기 때문에 소음 환경에서 잘 들리도록 음량을 키우는 등 주파수를 조정한다. 가정 환경과 비슷하게 조성된 청음실에서는 실제 TV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를 2차적으로 테스트한다. 소리는 공간의 구조에 따라 반사, 흡음 등으로 왜곡돼 들리기 때문에 어느 공간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음질이 달라진다. LG전자는 TV가 스스로 주변 공간을 인식하고 소리 왜곡을 분석해 보정하는 ‘공간 인식 사운드’ 기술을 개발해 2016년 제품부터 적용하고 있다. 이 기술을 개발한 박종하 TV음질팀 책임연구원은 “소비자들은 어느 곳에 TV를 놓아야 최적의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공간 인식 사운드 기술을 통해 실내 어느 공간에 TV를 놓더라도 생생한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평택=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20일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취재를 위해 사흘간 식장을 지키면서 놀랐던 대목은 비공개 가족장이라 조문을 할 수 없는데도 LG 일반 직원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진 점이었다. 한 직원은 “평소 직접 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일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존경했다. 애도를 표하기 위해 빈소를 찾았다”고 했다. 서울 시민이라고만 밝힌 한 남성은 빈소의 LG 관계자들에게 “고인은 의인상을 만들어 의로운 시민들을 챙기신 분이다. 일반 시민도 조문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검은 정장 차림으로 한 시간 넘게 자리를 뜨지 못한 중년 여성도 있었다. 10여 년 전 작은 회사를 차린 것을 계기로 고인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크고 작은 행사에서 몇 차례 마주쳤는데, 늘 먼저 다가와 “회사 잘되고 있지? 잘돼야지”라며 말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고인 주변에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많겠어요. 그런데 나 같은 사람까지 챙겨주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잘돼야지’라는 짧은 한마디가 큰 힘이 됐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재벌이나 총수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오너 일가의 갑질이나 폭언, 폭설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갑질 피해의 대상은 모두 가까운 거리에서 이들과 함께 일했던 직원이나 기사들이었다. ‘을’을 향한 부와 권력의 남용에 많은 사람은 감정을 이입하며 공분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조차 재벌 갑질은 단골 소재가 됐다. 가상 시나리오와 현실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들이 상승 작용을 하며 국민의 분노 게이지를 높이고 있다. 많은 기업인이 한국 사회에 팽배한 ‘묻지 마식 반기업 정서’가 경영 활동에도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기업인들의 하소연은 하소연대로 맞는 측면이 있다. 극히 일부의 일탈을 모든 기업인에게 덧씌워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구본무 회장 못지않게, 또는 남모르게 선행을 하는 기업인도 숱하게 많다. 다만 구 회장이 타계한 후 쏟아진 각종 휴먼 스토리에 국민이 감동하는 모습은 ‘반기업 정서’도 결국 기업인 하기 나름이라는 평범한 교훈을 역설한다. 고인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예의를 갖추되 모든 사람을 진심을 갖고 대했던 분’으로 기억한다. 단골식당을 찾으면 종업원에게 1만 원, 2만 원이라도 쥐여줬고, 함부로 반말을 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LG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많은 사람이 슬퍼하는 이유는 거창한 데 있지 않다. 가장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서부터 시작된 평판과 존경 때문이다. 많은 기업인이 고인의 생전 행보를 깊이 음미해 보면 좋겠다. 한국 사회에 모처럼 훈훈한 미담을 안기고 떠난 고인이 부디 영면하길 바란다. 김재희 산업1부 기자 jetti@donga.com}
LG이노텍은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과 함께 사람 없이도 닭을 키울 수 있는 ‘인공지능 스마트팜 기술’ 개발에 나선다고 22일 밝혔다. 양측은 21일 전북 완주군의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양계 스마트팜 기술개발 공동연구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닭의 발육 상태를 실시간으로 감지, 분석해 축사의 온도·습도를 자동 제어하고 방역까지 관리하는 인공지능(AI) 스마트팜 기술이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LG이노텍과 국립축산과학원은 가금류 빅데이터를 활용한 딥러닝 기술과 카메라 센싱 기술 등을 활용해 스마트팜 기술을 개발한다. 이 기술이 개발되면 카메라와 각종 센서가 수만 마리 닭의 상태와 날씨 등 환경 변화를 자동 분석할 수 있다. AI 기술로 양계장 온도와 습도도 자동 제어한다. 닭의 발육 상태를 분석해 출하 시점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국립축산과학원은 닭의 성장단계별 행동 분석 연구 및 관련 표준 개발을 담당한다. LG이노텍은 카메라 및 온·습도 센서 등으로 구성된 계측 시스템 등을 바탕으로 질병이 의심되는 증상을 식별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한다. LG이노텍은 2020년까지 양계 농가 현장에 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LG이노텍 관계자는 “스마트팜에서 관리하는 닭이 감염 증상을 보이면 즉시 양계 농가에 닭의 상태와 위치를 알려줘 빠른 방역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재계의 큰 별’ 구본무 LG 회장이 영면했다. 20일 타계한 구 회장의 발인이 22일 오전 8시 30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구 회장의 외아들(양자)인 구광모 LG전자 ID(Information Display) 사업부장(40·상무)을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등 유족과 지인들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고인의 유해는 이날 발인 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을 잠시 들렀다가 서울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이후 화장한 뒤 수목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장지는 경기 광주시 곤지암 인근이다. 고인이 생전에 애정을 쏟았던 곤지암 소재 생태수목원인 ‘화담숲’은 일반인도 드나들 수 있어 가족들만 접근할 수 있도록 따로 조성해 둔 다른 공간에 고인의 유해가 모셔졌다. 국내 대기업 총수의 장례가 수목장으로 치러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목장은 화장한 뼛가루를 나무뿌리에 묻는 자연 친화적 장례 방식이다. 평소 환경 보호에 관심이 많고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를 바꾸는 데 힘썼던 고인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화장과 수목장에 대한 의사를 자주 드러냈다. “매장 문화가 지속되다가는 한국의 모든 산이 다 묘지로 뒤덮인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전 LG 고위 관계자는 “회장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화장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셨다”며 “숲과 새, 물고기 등 자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특히 수목장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셨다. 자연을 사랑하신 만큼 자연으로 돌아가길 바라신 마음이 반영된 것 같다”고 했다. 이날 발인에서는 구 회장의 맏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가 영정을 들었다. 구 회장을 수행했던 6명의 전 비서진 등 LG 임직원들이 관을 운구했다. 관 뒤로는 구 상무가 두 손을 모은 채 비통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구 상무 뒤로 구 회장의 동생들인 구본능 회장, 구본준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을 비롯해 구자열 LS 회장, 구자균 LS산전 회장, 구자용 LS네트웍스 회장 등 유족들이 고인의 가는 길을 지켰다. 친지와 지인들은 눈물로 구 회장을 보냈다. “마지막 회장님 가시는 뒷모습을 바라보시고 예의를 갖추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에 모두 5초간 운구차를 향해 고개를 깊게 숙이고 목례했다. 맏사위인 윤 대표, 아들 구 상무 등이 운구차에 올라 장지인 곤지암까지 고인을 모셨다. 떠나는 장의차를 향해 구본능 회장은 눈시울을 붉힌 채 다시 한번 고개를 깊게 숙이며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작게 말했다. 구 회장의 친지 및 가까웠던 지인 100여 명이 뒤를 따랐다. 하현회 LG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등 LG 계열사 부회장단 6명이 참석했다. ‘나로 인해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진행했지만 고인을 잊지 못하는 정·재계 인사들이 발인까지 함께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 재계 인사는 물론이고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 등 정계 인사도 모습을 나타냈다. 고인과 매년 여행을 다닐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던 허영만 화백도 구 회장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장의차가 장례식장 입구를 빠져나간 지 10여 분이 흐르도록 친지와 지인들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정치권에서도 고인에 대한 추모가 이어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구 회장은 중간 값의 술을 즐겨 드셨다. 너무 싼 술을 마시면 위선 같고, 너무 비싼 술을 마시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이유”라면서 그의 소탈함을 회상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는 페이스북에 “2009년 (노무현) 대통령님이 서거하신 뒤 봉하마을을 지키고 있을 때 구 회장께서 약밤나무 묘목을 보냈다”며 “북한에서 어렵게 구한 묘목을 당신 농장에서 키우셨다고 한다”고 기억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이 구 회장에게 “자그마한 밤이 참 맛있다”며 북측 약밤을 먹어볼 것을 권했던 일화를 기억해 묘목까지 보냈다는 것이다. 구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재계 총수로는 가장 먼저 분향소를 찾기도 했다. 서울 강서구가 지역구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22일 구 회장이 추진해 지난달 완공한 마곡 LG사이언스파크를 언급하며 “61만 여 강서구민과 함께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황량하고 척박한 ‘마곡’이 미국의 실리콘밸리도 부럽지 않을 융복합연구단지로 우뚝 섰다. 위기 때마다 회장님의 뚝심과 신념이 없었다면 오늘의 LG사이언스파크는 결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희 jetti@donga.com·홍정수 기자}
“소탈했던 고인의 생전 궤적과 차분하게 고인을 애도하려는 유족의 뜻에 따라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오니 너른 양해를 바랍니다.” 20일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입구에 이 같은 안내문이 붙었다. LG는 구 회장의 장례를 ‘비공개 가족장’ 형태의 3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LG 측은 “구 회장이 자신으로 인해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지 않다며 장례도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러줄 것을 유지로 남겼다”고 전했다.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아직 생존해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93세로 거동이 불편한 부친 구 명예회장은 충남 천안 자택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구 회장의 별세 직후 동생인 구본준 LG그룹 부회장과 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 등 가족이 병원에 모여 장례 절차 등을 논의했다. 가족은 이날 낮까지 장례식장으로 배달된 일부 조화는 반송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고인의 별세를 애도하는 조문 행렬은 오후 내내 이어졌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내는 한편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이 빈소를 찾았다. 장 실장은 “정말 존경받는 훌륭한 재계 큰 별이 가셔서 안타깝다”는 문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시작으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과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최병민 깨끗한나라 회장 등 재계 인사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도 조문했다. 온라인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특히 고인이 조용한 장례를 당부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정도경영을 실천한 분” “요즘같이 재벌기업이 시끄러운 때일수록 LG의 청렴함이 두드러진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재계도 ‘큰 별’을 잃은 데 대해 깊은 애도를 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고인은 ‘노사(勞使)’를 넘어선 ‘노경(勞經)’이란 신(新)노사문화를 바탕으로 ‘정도경영’을 추구했다”고 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구 회장은 미래를 위한 도전정신으로 전자·화학·통신 산업을 육성했다”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중소기업인들로부터 존경받아 온 분”이라고 밝혔다.김재희 jetti@donga.com·김지현 기자}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줄 아는 승부사였다. 고인은 선대부터 이어온 ‘인화의 LG’를 ‘1등 LG’로 그룹 DNA를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 회장은 취임 직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경영에서는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며 “신규 사업은 시작하면 반드시 1등으로 올려놓겠다”고 말했다. 취임 당시 30조 원 규모(1994년 말)였던 LG그룹 매출은 이후 GS, LS 등을 계열분리하고도 다섯 배 이상인 160조 원 규모(2017년 말)로 성장했다. 해외 매출은 취임 당시 10조 원에서 열 배 이상인 110조 원대로 급증했다. 비결은 고인의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다. 그는 2차전지, 디스플레이 등에 대한 과감하고 꾸준한 투자로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를 회사의 세 축으로 세웠다.○ 2차전지 세계 1위 만들려 20년 투자 고인은 1992년 영국 원자력연구원(AEA)에 출장 갔다가 2차전지를 접한 뒤 투자를 결정했다. 20여 년간 세계 1위에 오를 때까지 끈질기게 연구개발(R&D)을 밀어붙였다. 2005년 2000억 원 가까운 적자를 내며 상황이 악화되자 임원들은 사업을 접을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구 회장은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공할 날이 온다”며 “전지 사업 R&D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해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라고 독려했다. 현재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은 중대형 분야 세계 1위, 자동차 배터리 분야 세계 4위다. 외환위기 시절인 1999년 김대중 정부가 ‘빅딜’을 추진하며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 넘기려 하자 “대승적 차원에서 모든 것을 버리겠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사업만큼은 넘길 수 없다”고 버텼다. 사업을 지켜낸 구 회장은 네덜란드 필립스로부터 16억 달러를 유치해 LG필립스LCD(현재 LG디스플레이)라는 사명으로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구 회장의 결단으로 탄생한 LG디스플레이는 세계 액정표시장치(LCD) 시장 선두에 올랐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으로 LCD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구 회장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빠르게 옮겨 갔다. 1990년대 말 데이콤 인수전에서도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통신사업은 ‘21세기 황금알’로 불리며 국내 굴지 기업들이 각축전을 벌였다. 데이콤 최대주주였던 삼성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데이콤을 인수하며 LG는 정보통신 수직 계열화에 성공한 국내 최대의 정보통신 그룹이 됐다. 2010년에는 LG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 등 통신3사를 합병해 LG유플러스를 출범시켰다. LG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는 자동차 전장 사업의 기초도 구 회장이 닦았다. LG전자는 2013년 LG CNS 자회사인 ‘V-ENS’를 인수해 전장 사업을 담당하는 VC사업본부를 신설했다. 당시 구 회장은 이우종 V-ENS 대표를 VC사업본부장으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VC사업본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부사장이 아닌 사장 직책을 주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LG와 LG전자는 LG 계열사 인수합병(M&A) 금액 중 가장 큰 1조4440억 원에 오스트리아 헤드램프 업체 ZKW를 인수하는 등 사업 규모를 키워 나가고 있다. 뼈아픈 기억도 있다. 빅딜 과정에서 반도체 사업을 접은 일이다. LG는 2007년 60주년 사사를 편찬하며 반도체 빅딜 당시 상황에 대해 ‘인위적 반도체 빅딜은 한계 사업 정리, 핵심 역량 집중이라는 당초 취지와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그 평가는 후일 역사의 몫으로 남게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인재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찾아가라” 구 회장은 평소 입버릇처럼 ‘인재 육성’을 강조했다. 2011년 9월 LG인재개발대회에서 그는 “좋은 인재를 뽑으려면 유비가 삼고초려 하듯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찾아가서라도 데려와야 한다. 좋은 인재가 있다면 나라도 직접 찾아가겠다”고 했다. 2013년 1월 LG새해인사 모임에서도 “국적이나 학력, 성별에 관계없이 필요한 인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먼저 찾아가라”고 당부했다. 구 회장은 취임한 해 직접 만든 국내 대학생 해외탐방 프로그램 ‘LG 글로벌 챌린저’ 발대식과 시상식에 2016년까지 22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건강이 악화돼 수술을 받았던 지난해 말에야 처음으로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국내외 석·박사급 이공계 인재들을 모아놓고 계열사 최고경영자와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이 직접 사업을 설명하는 ‘LG 테크노 콘퍼런스’도 구 회장이 2012년 만들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두 차례씩 열리는 이 행사에 구 회장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이 행사를 통해 만난 인재만 3000명이 넘는다. 구 회장이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LG 테크노 콘퍼런스 행사는 2017년 2월. 구 회장은 만찬 후 참석자 400여 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여러분처럼 우수한 인재들과 세계 시장을 선도해 나가려 한다. LG그룹은 여러분과 같은 인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자산으로 여긴다. LG그룹의 인재가 돼 R&D 시너지를 내어주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김재희 jetti@donga.com·서동일 기자}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정도(正道)를 걸어온 기업인이다. 1995년 그룹 회장직에 오른 뒤 23년간 한결같이 이를 지켜왔다. 인화의 LG에 1등 DNA를 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어디까지나 정도 경영의 틀 안에서였다. 1995년 2월 22일, 취임식 직후 구 회장은 기업 슬로건으로 ‘정도경영’을 제시했다. 경영진은 ‘정도’라는 단어에 우려를 표했다.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일도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구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1등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1등 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다”며 반대를 물리쳤다. 2009년 구 회장의 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 결혼식 주례를 본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전 KB금융 회장)은 고인에 대해 “LG그룹을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고 기억했다. 그럼에도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이 주요 대기업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받았던 ‘차떼기 사건’에서는 LG그룹도 자유롭지 못했다. “당시 구 회장은 ‘정도경영을 떠들던 내가 창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다’며 ‘정도경영, 사랑해요, LG’ TV 광고를 바로 내리라고 지시했고, 그해 말 언론인 모임 송년 행사에도 볼 낯이 없다며 참석하지 않았을 정도로 양심적인 분이었다.”(정상국 LG상남언론재단 감사) 고인은 일을 맡길 때는 단기적 성과가 좋지 않아도 끝까지 믿어주는 스타일이었다. “사람을 한 번 믿었으면 일일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어려울 때 사람을 함부로 내치지도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영 환경이 최악으로 치닫던 2008년, 실적 악화에 시달리는 계열사를 중심으로 임직원 구조조정 얘기가 돌았다. 하지만 구 회장은 “어려울 때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된다”며 경영진을 다독였다. 평소 차 안에서 신문을 보다 의로운 행동이 소개된 기사를 보면 비서진에 전화해 위로금을 전달하라고 당부하는 등 기업인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려 애썼다. LG복지재단이 ‘LG의인상’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LG연암문화재단이 총공사비 620억 원을 들여 2000년 세운 ‘LG아트센터’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고인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생전 소탈한 모습으로도 유명했다.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 뒤편 삼계탕집, 마포구 평양냉면집이나 간장게장집 등 몇몇 단골 음식점에 비서 없이 홀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 식당에 가면 종업원에게 직접 1만, 2만 원이라도 손에 살짝 쥐여줬고, 반말로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도 없었다. 2003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삼계탕집 ‘토속촌’으로 초청했을 때, 구 회장은 대통령 바로 왼편에 앉아 국물도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워 참석자들의 눈길을 모았다. 고인은 새, 물고기 도감을 만들 정도로 전문가였다. 100∼150m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새 이름도 척척 맞혔다. 평소 “200종류 정도는 날아가는 모습만으로도 이름을 맞힐 수 있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꼭대기층 집무실에 새 관찰용 망원경을 설치해 밤섬을 보곤 했는데, 한번은 밤섬에서 새 알을 무작위로 채취해 가는 사람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일도 있었다. 최근까지는 경기 광주시 곤지암리조트 화담숲 수목원을 가꾸는 데도 정성을 쏟았다. 지인 자녀 결혼식 등 경조사가 있을 때면 수수한 옷차림으로 조용히 다녀가기로 유명했다. 동아일보 90주년 기념행사에도 수행원 없이 혼자 행사장을 찾았다. 행사가 끝나면 직접 운전사를 불렀고, 행사장이 복잡하면 500m 넘는 거리도 걸어 다녔다. 와인 애호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술은 위스키를 즐겼다. 큰 무대에 오르는 것은 꺼렸지만 담소를 나누는 작은 모임은 즐겼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뜻의 ‘화담(和談)’이란 호를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화목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해 이 호를 고인도, 주변 사람도 마음에 들어 했다. 때로는 손수건이나 링을 이용해 마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고인은 마지막까지 회사를 챙겼다. 지난해 4월경 첫 번째 뇌수술을 받은 뒤 화담숲에 머물 때도 사업 관련 보고를 받았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고인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모님이 휴대전화를 빼앗았을 정도로 마지막까지 일을 챙기셨다”고 전했다. 서동일 dong@donga.com·김재희 기자}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타계했다. 향년 73세. LG그룹은 구 회장이 “20일 오전 9시 52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장례식은 가족장 형태로 3일장으로 치러진다. “나로 인해 번거로움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고인의 유지를 받든 것이다. LG그룹은 “생전에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마다했던 고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고 전했다. 평소 고인이 숲을 가꾸는 데 많은 정성을 쏟아온 만큼 수목장으로 치른다. 발인은 22일. 장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고인은 지난해 악성 뇌종양이 발병해 수술을 받았지만 지난달 병세가 악화돼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뒤 치료를 받아왔다. 구 회장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첫째 아들로 1945년에 태어났다. 구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첫째 아들이다. 1995년 아버지에 이어 50세에 LG그룹 회장에 오른 고인은 1998년 LG화학 대표이사 회장, LG전자 대표이사 회장을 맡으며 23년간 핵심 성장사업을 직접 챙겼다. 재계 변화도 이끌었다. 2003년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없애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2003년 LS그룹, 2005년 GS그룹과 잡음 없이 분리한 과정도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식 여사와 구광모 LG전자 ID(인포메이션 디스플레이)사업부장(상무), 구연경 씨, 구연수 씨 등 1남 2녀가 있다. 첫째 사위는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다. 구 상무는 구 회장 친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로, LG그룹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2004년 아들이 없는 구 회장이 양자로 들였다. 구 회장 타계에 따라 LG그룹은 구 상무를 중심으로 한 4세 경영시대를 열게 됐다. ㈜LG는 앞서 17일 긴급이사회를 열고 구 상무를 사내 등기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 구 상무의 이사 선임은 6월 29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 구 상무는 전문 경영인과 함께 그룹 경영을 이끌게 된다.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은 가족 전통에 따라 LG에서 독립할 것으로 알려졌다.서동일 dong@donga.com·김재희 기자}

재계에서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회고할 때 맨 먼저 떠올리는 단어는 ‘정도(正道) 경영’이다. 1995년 그룹 회장에 오른 고인이 23년간 강직하게 지켜온 경영 이념이다. 인화의 LG에 1등 DNA를 심으려 노력했지만 한번도 정도를 벗어나는 결정을 하는 법은 없었다. LG는 2003년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지배구조 논란에 말려든 적이 없었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도 잡음이 없었다. 이렇다 할 총수 일가 스캔들도 없었다. 1947년 창업 1세대인 구인회-허만정 창업주로부터 시작해 57년간 이어진 구 씨와 허 씨 두 집안이 동업 관계를 마무리하고 LG와 GS그룹으로 분리할 때도 잡음이나 분란은 없었다. 고인은 당시 “LG그룹과 GS그룹은 분리되지만 앞으로도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서는 협력 관계를 더욱 두텁게 해 둘 다 초우량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임직원들에 여러 차례 당부했다. 고인을 ‘순리를 따르는 인간 중심의 경영자’, ‘인간적 멋과 향기를 지킨 경영자’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어려운 시기에도 사람을 내보내서는 안 된다는 인화의 리더십과 기업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자세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영 환경이 최악으로 치닫던 2008년, LG실트론 등 일부 계열사 실적 악화로 임직원 구조조정 얘기가 돌았다. 그러자 고인은 “어려울 때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된다”며 오히려 경영진을 격려했다. 2006년 비용 부담으로 모두가 만류했던 ‘LG아트센터’ 건립도 구 회장이 기업이익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LG복지재단이 2015년 ‘LG의인상’을 제정해 사회적 의인(義人)에게 위로금을 전달해 온 것도 구 회장의 뜻이었다. 사회적으로 귀감이 되는 시민을 찾아 포상하면 의로운 행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기업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고인은 2017년 철원 군부대 사격장 주변에서 유탄을 맞고 숨진 이모 상병 유족에게는 사재를 털어 위로금 1억 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2009년 구 회장의 아들 구광모 LG전자 ID(information Display)사업부장(상무) 결혼식 주례를 본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전 KB금융 회장)은 고인을 큰 경영인으로 기억했다. “항상 정도 경영을 강조하신 분이다. 세계 경제의 큰 흐름을 읽고 정도에 따라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LG그룹을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고인은 생전 소탈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유명했다.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 뒤편 삼계탕 집이나 LG트윈타워 내 일식당 등 몇몇 단골 음식점에 비서 없이 홀로 가는 경우도 많았다. 2003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을 서울 효자동 삼계탕집 ‘토속촌’으로 초청했을 때, 구 회장은 대통령 바로 왼편에 앉아 국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어 참석자들의 눈길을 모았다. 술은 위스키 등 독주를 즐겼다. 비싼 고급 와인은 손님을 대접할 때만 내놓았다. 지인 자녀 결혼식 등 경조사가 있을 때면 수수한 옷차림으로 조용히 다녀가기로 유명했다. 새와 물고기에 밝아 새와 물고기 도감을 만들 정도로 전문가였다. 특히 새를 좋아해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 꼭대기층 집무실에 망원경을 설치했다. 새로 인연을 맺은 조류학자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는 “구 회장이 토요일에 집무실로 자주 초대해 망원경으로 새를 함께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면 목각 갈매기, 청둥오리 조각상 등 선물을 꼭 사왔다”며 고인을 기렸다. 고인은 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2011년 구 회장이 사내 행사에서 직원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LG 파이팅’을 수차례 외쳤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LG그룹 각 계열사 및 해외 현지법인 경영 혁신 사례를 발표하는 이 행사에서 구 회장은 무대에 직접 올라가 악기를 두드리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직원들에게 술잔을 건네며 어깨를 두드렸다. 고인은 마지막까지 회사를 챙기려 했다. 지난해 4월경 첫 번째 뇌 수술을 받은 뒤 경기 광주시 곤지암에 머물 때도 LG그룹 각 계열사 사업 관련 보고를 받았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마지막까지 그룹 경영을 챙기셨다. 사모님이 건강이 걱정돼 휴대전화를 빼앗았을 정도다”라고 전했다. 최근까지는 곤지암리조트 옆 화담숲 수목원을 가꾸는 데 정성을 쏟았다. 국내 최대의 이끼정원인 ‘이끼원’을 조성하는 등 구 회장이 정성을 쏟았던 수목원은 미완으로 남았다.서동일 기자 dong@donga.com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구본무 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줄 아는 승부사였다. 온화하고 쾌활한 성품 이면에 ‘인화의 LG’를 ‘1등 LG’로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를 품고 있었다. 구 회장은 1995년 3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사명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꿨다.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였다. 이후 2차전지, 디스플레이 등에 대한 과감하고 꾸준한 투자로 전자와 화학 사업을 글로벌 LG의 두 축으로 공고히 자리매김했다. 구 회장은 1992년 영국에 출장 갔다가 2차전지를 접한 뒤 투자를 결정했다. 20여 년간 세계 1위에 오를 때까지 끈질기게 연구개발(R&D)을 밀어붙였다. 2005년 2000억 원 가까운 적자를 내며 상황이 악화되자 임원들은 사업을 접을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구 회장은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공할 날이 온다”며 “전지 사업 R&D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해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라고 독려했다. 현재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은 중대형 분야 세계 1위, 자동차 배터리 분야 세계 4위를 달리고 있다. LG화학에서 분리시킨 LG생활건강은 지난해 화장품 1위 자리에 올랐다. 외환위기 시절인 1999년 김대중 정부가 ‘빅딜’을 추진하며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 넘기려 하자 “대승적 차원에서 모든 것을 버리겠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사업만큼은 넘길 수 없다”고 버텼다. 사업을 지켜낸 구 회장은 네덜란드 필립스로부터 16억 달러를 유치해 LG필립스LCD(현재 LG디스플레이)라는 사명으로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구 회장의 결단으로 탄생한 LG디스플레이는 세계 액정표시장치(LCD) 시장 선두에 올랐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으로 LCD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구 회장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빠르게 옮겨 갔다. 구 회장은 2012년 10월 열린 업적보고회에서 “글로벌 시장선도 기업은 경기침체기에도 수익성이 탄탄하다”며 OLED TV를 시장선도 최우선 제품으로 지목했다. LG디스플레이로부터 패널을 공급받은 LG전자는 2013년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인 ‘CES’에서 OLED TV를 선보인 이후, 최초로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며 OLED 진영을 선도하고 있다. 1990년대 말 데이콤 인수전에서도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통신사업은 ‘21세기 황금알’로 불리며 국내 굴지 기업들이 각축전을 벌였다. 데이콤 최대주주였던 삼성은 지분 추가 확보에 나서며 LG를 위협했다. 삼성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데이콤을 인수하며 LG는 정보통신 수직 계열화에 성공한 국내 최대의 정보통신 그룹이 됐다. 2010년에는 LG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 등 통신3사를 합병해 LG유플러스를 출범시켰다. LG유플러스의 전신인 LG텔레콤은 2006년 주파수를 반납하며 3G를 포기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LG유플러스는 차세대 롱텀에볼루션(LTE)을 선점하며 정면승부를 택했다. 2011년 LG유플러스는 3개 이동통신사 중 처음으로 LTE 상용화에 성공했고, 2012년 3월 세계 최초로 LTE 전국망 구축을 완료했다. 당시 구 회장은 “단기 경영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네트워크 구축 초기 단계에서부터 과감히 투자해라”고 지시했다. LG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삼고 있는 자동차 전장 사업의 기초도 구 회장이 닦았다. LG전자는 2013년 LG CNS 자회사인 ‘V-ENS’를 인수해 전장 사업을 담당하는 VC사업본부를 신설했다. 당시 구 회장은 이우종 V-ENS 대표를 VC사업본부장으로 영입하는 과정에서 “VC사업본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며 부사장이 아닌 사장 직책을 주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LG와 LG전자는 LG 계열사 인수합병(M&A) 금액 중 가장 큰 1조4440억 원에 오스트리아 헤드램프 업체 ZKW를 인수하는 등 전장 사업 규모를 키워나가고 있다. 구 회장에게 뼈아픈 기억도 있다. 빅딜 과정에서 반도체 사업을 접은 일이다. LG는 2007년 60주년 사사를 편찬하며 반도체 빅딜 당시 상황에 대해 ‘인위적 반도체 빅딜은 한계 사업 정리, 핵심 역량 집중이라는 당초 취지와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그 평가는 후일 역사의 몫으로 남게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003년 불거진 ‘LG카드 대란’도 아쉬움을 남겼다. 가전, TV 등 프리미엄 제품군을 중심으로 수익성을 높여나가고 있는 LG전자에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C사업본부’의 지속되는 적자 역시 쉽사리 풀지 못하는 숙제였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좋은 인재를 뽑으려면 유비가 삼고초려 하는 것처럼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찾아가서라도 데려와야 한다. 좋은 인재가 있다면 나라도 직접 찾아가겠다.” (2011년 9월 LG인재개발대회) “즐겁게 일하는 사람은 당해낼 수 없다. 국적이나 학력, 성별에 관계없이 LG그룹 사업에 필요한 인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먼저 찾아가야 한다.” (2013년 1월 LG새해인사모임)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평소 입버릇처럼 ‘인재 육성’을 강조해왔다. 젊은 인재들의 창의적인 생각과 도전의식을 중요하게 여겼고, 평소 대학생 및 신입사원 등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직접 참석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즐겼다. “도전정신을 가진 친구들을 보면 아낌없이 지원해주고 싶다”며 젊은 인재 확보에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 구 회장이 취임한 해에 직접 만들어 지금까지 전통을 이어 오고 있는 국내 대학생 해외탐방 프로그램 ‘LG 글로벌 챌린저’가 대표적 사례다. 구 회장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LG 글로벌 챌린저 발대식과 시상식 행사에는 1995년부터 2016년까지 22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뇌종양으로 건강이 악화돼 두 차례 수술을 받았던 2017년 말 처음으로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LG그룹 관계자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많은 기업이 대학생 해외탐방 프로그램을 없앴지만 LG는 규모도 줄이지 않았다. 2014년에는 외국인 유학생에게까지 기회를 열어줬다”고 소개했다. 구 회장은 국내외 석·박사급 이공계 인재들을 발굴하기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였다. 석·박사급 인재들을 모아놓고 LG그룹 최고경영자(CEO), 사업본부장,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이 직접 기술혁신 현황과 신성장사업을 설명하는 ‘LG 테크노 콘퍼런스’도 2012년 창설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두 차례씩 열리는 이 행사에 구 회장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이 행사를 통해 만난 인재만 3000여 명이 넘는다. 구 회장이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LG 테크노 콘퍼런스 행사는 2017년 2월. 구 회장은 만찬 후 참석자 400여 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여러분처럼 우수한 인재들과 세계 시장을 선도해나가려 한다. LG그룹은 여러분과 같은 인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자산으로 여긴다. LG그룹 인재가 돼 연구개발(R&D) 시너지를 내어주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병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LG그룹은 구 회장이 “20일 오전 9시52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LG그룹은 장례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원했던 고인의 유지와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하며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가족 외의 조문과 조화는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다. 애도의 뜻은 마음으로 전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유족 측은 밝혔다. 고인은 지난해 악성 뇌종양이 발병해 수술을 받았다. 그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 대외 활동도 자제해 왔다. 구 회장은 지난 달 병세가 악화돼 서울대 병원에 입원한 뒤 치료를 받아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첫째 아들로 1945년 태어났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첫째 아들이다. 연세대 재학 중 미국 유학을 떠나 애시랜드 대학,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1974년 돌아온 구 회장은 1975년 ㈜럭키 근무를 시작으로 1984년 금성사 상무, 1985년 럭키금성그룹 기획실 전무, 1989년 럭키금성그룹 부회장을 지냈다. 1995년 구자경 회장에 이어 50세에 LG그룹 회장에 오른 고인은 럭키금성에서 LG로 그룹 명칭을 과감하게 바꾼 결정을 시작으로 LG그룹을 23년 간 이끌었다. 1998년 LG화학 대표이사 회장, LG전자 대표이사 회장을 맡으며 핵심 성장사업을 직접 챙겼다. 1998년 정부가 주도한 빅딜로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현 SK하이닉스)에 떼어 줬지만 이후 통신, 디스플레이, 2차전지 사업 등을 공격적으로 확장시켰다. 고인은 선대부터 이어온 ‘인화의 LG’를 ‘1등 LG’로 그룹 DNA를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 회장은 취임 직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경영에서는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며 “신규 사업은 시작하면 반드시 1등으로 올려놓겠다”고 말했다. 고인이 이끈 23년 동안 LG그룹의 외형은 빠르게 성장했다. 1995년 약 30조 원이던 그룹 매출은 GS, LS, LIG그룹을 계열분리하고도 지난해 160조 원대로 5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전기차 배터리 등 화학 사업과 생활가전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톱의 자리에 올라 해외 매출이 약 10조 원에서 110조 원으로 늘어났다. 고인은 취임 이후 재계의 변화도 이끌었다. 2003년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없애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2003년 LS그룹, 2005년 GS그룹과 잡음 없이 분리한 과정도 재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식 여사와 구광모 LG전자 ID(인포메이션 디스플레이) 사업부장(상무)과 구연경 씨, 구연수 씨 등 1남 2녀가 있다. 1녀 사위는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다. 한편 ㈜LG는 17일 아침 이사회를 열고 구광모 상무를 사내 등기이사로 선임키로 의결했다. 구 상무는 6명의 부회장단 등 전문 경영인과 함께 그룹 경영을 이끌게 된다. 구 상무는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대리로 입사한 이후 미국 뉴저지법인 차장, HE사업본부 부장, ㈜시너지팀 상무를 거쳤다. 구 상무의 이사 선임은 6월 29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결정된다.서동일 기자 dong@donga.com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부문 사장(대표)이 인공지능(AI) 엔지니어 1000명 이상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17일 서울 성동구 에스팩토리에서 열린 ‘삼성 홈IoT&빅스비 미디어데이’에서 “아직 세계적으로 AI 인력이 많지 않은데 이 분야의 좋은 인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000명 이상의 엔지니어를 확보해야 앞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AI 분야 기술 발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완제품 부문의 선행연구를 담당하는 ‘삼성 리서치’ 센터장을 맡고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 리서치 산하에 ‘AI 센터’를 두고 AI 선행연구 기능을 대폭 강화해왔다. 현재 삼성전자가 확보한 AI 인력은 수백 명 수준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현재 삼성전자가 AI 기술을 가진 여러 회사에 대한 인수합병(M&A)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구체적으로 어느 회사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상당히 많은 회사를 검토 중”이라며 “삼성전자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AI 기술이 제한적인 만큼 국내외 좋은 기술을 가진 회사를 적극적으로 M&A하겠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이날 행사에서 자사 지능형 어시스턴트인 ‘빅스비’와 연계한 ‘삼성 홈IoT’를 선보이고 AI 로드맵과 비전을 공개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을 비롯해 2018년형 TV·냉장고·에어컨·세탁기 등 주요 가전제품에 빅스비를 적용한 데 이어 향후 오븐과 로봇청소기 등 더 다양한 제품군으로 확대해 2020년까지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AI를 탑재하기로 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소프트웨어로 승부하는 구글이나 아마존과 달리 삼성전자는 매년 5억 대의 전자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세계 1위 제조업체라는 점을 앞세워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하반기(7∼12월)에는 삼성 제품뿐만 아니라 전구, 센서 등까지 연동하고 제어할 ‘스마트싱스 허브’를 국내 시장에 도입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만 약 1400만 대 제품에 AI 기능이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자기 전 목소리만으로 전등을 끄고 싶다는 소비자들이 많다”며 “전구나 커튼, 가스 센서 등까지 관리하는 허브가 꼭 필요한 만큼 열린 생태계 형태로 제3자 업체들과 공동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삼성전자는 패밀리허브·무풍에어컨·플렉스워시·스마트TV 등 빅스비를 적용해 한 단계 진화한 주요 제품들을 공개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대폭 강화된 음성인식 기능으로 가족 구성원별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패밀리허브 냉장고는 음성 명령만으로 냉장고 안의 음식 리스트를 관리했다. 또 가족 구성원의 목소리를 따로 인식해 개별 일정을 안내했다. 음성 명령에 맞춰 집안의 여러 제품이 일괄적으로 제어되는 서비스도 눈길을 끌었다. 이용자가 “하이 빅스비 나 집에 왔어”라고 말하자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조명이 켜지고 작동 중이던 로봇은 충전용 거치대로 돌아가는 장면을 시연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LG가 구광모 LG전자 상무(40)를 등기이사로 선임하기로 한 것은 선대 회장부터 이어져 온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와병 중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이끈 구본준 ㈜LG 부회장은 계열분리 등 별도 경영에 나서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LG그룹 측은 “현재 구 회장이 서울 한 병원에 입원 중이라 앞으로 이사회 내 역할 수행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가족 등 주요 주주들이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일원이 이사회에 추가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논의를 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LG의 새 경영체제는 구 상무를 중심으로 LG의 각 주요 계열사를 맡는 부회장 6명 등 전문경영인이 책임경영으로 보완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LG 사내이사 선임을 시작으로 구 상무의 승진, 역할 확대 등이 속도를 낼 것”이라며 “㈜LG를 비롯해 LG그룹 계열사 모두 전문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 체제를 유지하되 구 상무를 그룹 경영 최고 자리에 올려놓는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 상무가 경험을 더 쌓을 동안 구 부회장이 LG그룹을 총괄하면서 ‘징검다리’ 역할을 맡을 것이란 전망도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다. 구 상무는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그룹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아들이 없는 구 회장에게 2004년 양자로 입적됐다. LG그룹은 고 구인회 창업회장에 이어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93)이 70세까지 그룹 경영을 맡았다. 이후 장남인 구 회장에게 경영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 대리로 입사한 구 상무는 LG전자 HE사업본부·HA사업본부, ㈜LG 시너지팀 등을 거쳤다. 특히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4년 동안 ㈜LG 시너지팀, 경영전략팀 등에서 구 부회장과 하현회 부회장 밑에서 강도 높은 경영 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LG 시너지팀은 LG그룹 각 계열사의 사업 방향 및 연구개발(R&D), 시너지 방안을 총괄하는 부서다. 이곳에서 LG그룹의 지속 성장에 필요한 기술, 시장 흐름에 집중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기획하고 계열사 간 협업 방안을 찾는 업무를 맡아왔다. 이때까지 구 상무의 행보는 쉽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올 초 LG전자에서 디스플레이 사업 핵심인 사이니지 사업을 담당하는 ID사업부를 이끌면서 본격적인 대외 행보에 나섰다. 올해 2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사이니지 전시회 ‘ISE 2018’에 참석해 국제무대 데뷔전을 치렀다. 구 상무는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을 입학한 뒤 LG에 입사하기 전 시기에 현지 스타트업에서 잠시 일한 적도 있다. LG그룹 내에서 구 상무는 일하는 방식 면에서 철저한 실행을 중시하는 편으로 알려졌다. LG전자 관계자는 “구 상무는 고객과 시장 등 사업의 본질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선제적으로 시장을 만들고 앞서가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는 데 힘을 쏟는다”고 평가했다. 구 상무는 평소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야구 관람을 즐기는 등 소탈한 모습도 자주 보여 왔다. 구 상무는 현재 구 회장(11.28%), 구 부회장(7.72%)에 이어 6.24%를 소유한 ㈜LG 3대 주주다. 구 상무 어머니 김영식 씨의 ㈜LG 지분은 4.20%, 친아버지인 구본능 회장도 ㈜LG 지분 3.45%를 갖고 있다. 이 지분을 상속받으면 구 상무는 ㈜LG 최대주주에 어렵지 않게 올라설 수 있다. 다만 세금 부담이 크다는 점은 문제다. 증여나 상속 규모가 30억 원 이상일 경우 과세율은 50%에 달한다. 이날 종가 기준 ㈜LG 시가총액은 13조5975억 원으로 구 회장의 지분을 넘겨받는 데만 7000억 원 이상의 상속세를 낼 가능성이 있다. 서동일 dong@donga.com·김재희 기자}
구광모 LG전자 상무로 경영권 승계가 본격화되면서 구본준 ㈜LG 부회장은 향후 계열 분리 또는 독립할 것으로 보인다. 구 상무의 사내 등기이사 선임으로 장자 승계 원칙이 확인된 만큼 구 부회장이 사실상 구본무 회장의 역할을 대행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형제 및 형제의 자손들은 계열분리를 해왔다. LS그룹, LIG 등이 그 예다. 구인회 LG 창업주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철회 명예회장 자손들은 1999년 LG화재를 그룹에서 독립시키고 LIG그룹을 만들었다. 여섯 형제 중 넷째부터 막내인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형제는 2003년 계열분리해 LS그룹을 세웠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LS, LIG 등의 계열 분리 사례에서 보듯이 장자 승계를 하면서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은 독립을 해서 별도의 경영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LG그룹의 전통이자 원칙”이라고 전했다. LG의 한 관계자는 “구 상무의 등기이사 선임 과정에서 구 부회장을 포함한 가족 등 주요 주주들의 의견을 모으고 동의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룹 내부에선 구 상무와 6명의 부회장 중심의 경영 체제를 조속히 안정화시키면서 구 부회장의 분리가 예상보다 빨리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분리 시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구 부회장의 별도 경영 방안에 대해서는 여러 시나리오가 나온다. 일부 계열사의 지분과 구 부회장이 가진 ㈜LG 지분(7.72%)을 교환하는 방법으로 일부 사업을 떼어내는 방법이 있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이 이 같은 방식으로 독립했다. 일각에선 LG상사와 판토스 등 상사 관련 사업이나 디스플레이 사업 등이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이와 관련한 의사결정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내부에선 사업 분리가 아니라 자본금만 가지고 나오는 방식으로 분리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어떤 회사를 가지고 나갈 것인지 등 정확한 방식은 논의 중이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2, 3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SK그룹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재원 수석부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등 오너 일가 경영인을 포함해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주로 타는 전용기 2대를 운영하고 있다. SK그룹 전용기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아랍에미리트(UAE)를 4차례나 방문했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2월, 3월 한 차례씩이다. 지난해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최태원 회장을 독대한 뒤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UAE를 방문했던 시점(지난해 12월 초), 문재인 대통령이 UAE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왕세제와 정상회담을 가진 시기(올해 3월 25일)와 겹친다. SK그룹 최고경영진이 UAE 핵심 인사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고, 양국 관계에서도 민간 교류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당시 재계 관측과 무관치 않아 보이는 행보다. 다만 SK그룹 측은 “SK 경영진의 방문은 임 실장 및 한-UAE 정상회담과 무관한 일이다. 모두 현지 정부기관 및 기업과 사업 협력 방안을 찾기 위한 방문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15일 본보가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전용기의 1년(2017년 5월∼2018년 5월) 입출국 기록을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각 그룹의 글로벌 경영 동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SK는 2대, 현대차와 LG는 각각 전용기 1대를 운영 중이다. 전용기의 동선은 각 그룹의 사업 네트워크와 공들이는 신흥 시장을 잘 보여준다. 3개 그룹 전용기의 연간 운항 횟수를 모두 더하면 총 70회다. 국가별로는 미국(38회) 방문이 가장 많았고, 중국(14회), 인도(8회), 말레이시아·싱가포르(각 6회) 순이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 운항이 총 21회로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SK그룹 전용기 2대는 1년 동안 총 35차례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했는데 중국의 각 도시를 9차례, 동남아시아(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를 11차례 방문했다. 최 회장은 올 4월 보아오포럼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는 등 중국 네트워크에 공을 들이고 있다. 동남아에선 올해 2월 지역본부 설립 추진 계획도 밝혔다. 2월 말레이시아에서 그룹 경영진과 함께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기도 했다. 최 회장은 글로벌 네트워크 관리를 위해 중국 상하이포럼, 스위스 다보스포럼 등도 전용기를 이용해 참석했다.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만찬에 참석한 뒤에는 아일랜드를 거쳐 UAE 아부다비로 향했다. 이후 2박 3일간 UAE에 머물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을 거쳐 귀국했다. 올해 다보스포럼 참석 직후인 1월 27일 UAE로 향해 역시 2박 3일을 머물다 귀국했다. 전용기가 올해 3월 29일 하와이 호놀룰루, 지난해 7월 19일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한 기록도 나왔다. SK그룹 측은 “상대 기업을 밝힐 수는 없지만 모두 비즈니스 미팅을 위한 출장이었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전용기는 신흥 시장인 인도를 집중적으로 방문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보유 전용기 2대 중 2014년 구매한 전용기 1대만 사용 중이다.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뿐 아니라 주요 경영진의 해외 출장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년간 인도 주요 도시를 총 5차례 찾았다. 인도 시장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 중 잠재력이 가장 큰 곳으로 꼽힌다. 지난해 인도 시장 규모는 약 370만 대를 기록해 독일(347만 대)을 제치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자동차 시장에 올랐다. 이 밖에 지난해 8월과 9월, 올해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등 동남아 시장을 집중적으로 방문했다. 현대차는 1월 말레이시아 차량공유 서비스 기업 그랩(Grab)에 상호 협력을 위한 전략적 투자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핵심 경영진이 이용하는 LG 전용기의 경우 LG전자, LG화학 등 주요 계열사가 미래 먹거리로 삼고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자동차 전자장비 사업과 관련된 곳을 많이 방문했다. LG화학의 전기자동차 배터리 공장이 신축되고 있는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에는 지난해 7월 12∼15일, 9월 5일, 지난달 20일 등 지난 1년간 총 3번 방문했다. 자동차 전장 부품을 LG그룹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으면서 글로벌 모터쇼 현장을 빠짐없이 방문하는 모습도 보였다. LG 전용기는 세계 3대 모터쇼로 꼽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와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모두 참석했다. 서동일 dong@donga.com·김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