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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미술품 중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2019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 원에 낙찰된 수화 김환기의 두 폭짜리 점화 ‘우주 5-IV-71 #200’(1971년)이다. 해외 작가와 비교해 보자.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은 경매 최고가가 2000억 원에 달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는 5000억 원 낙찰로 세계 최고가를 기록했다. 한국은 피카소가 태어난 스페인보다 경제대국이며, 다빈치의 나라 이탈리아와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갖고 있다. 문화는 경제의 거울이라고들 하는데, 이런 차이는 왜 발생하는 걸까. 이는 세계 미술계 구조의 영향이 크다. 비서구 국가들에 근대화는 곧 서구화였다. 자국의 전통미술은 낡은 것으로 치부됐다. 자연스레 비서구 국가들의 미술사는 상당 부분 서구 미술사조를 순차적으로 도입한 역사로 기술됐다. 이러한 문화의 일원화 현상은 시장으로도 이어진다. 오늘날 세계 미술계에서 서구의 주요 미술관과 큐레이터들은 일종의 인증기관을 담당하고 메이저 갤러리와 경매회사는 작품을 유통시킨다. 서구 미술계는 시장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어 작가의 예술성, 갤러리의 작품 관리, 컬렉터의 기반이 모두 안정적인 구조다. 반면 주변국의 미술시장은 지역의 미술 생태계 자체가 아직 불안정하다. 세계화로 인해 서구 유명 작가들의 수억 원대 작품에 더해 수천만 원대의 판화까지 가세하면서 비서구 미술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으로 구매력과 화랑의 규모 등 한국 미술시장의 기초체력은 향상됐다. 그럼에도 한국 미술품, 특히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잘 팔리지 않는다. 한국 미술의 성장성을 보고 서구 메이저 화랑들이 국내에 지점을 냈지만 한국 작가 발굴이 아닌 소속 작가 작품 판매가 우선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미술품 경매가가 뉴스가 되는 이때, 책은 자본주의와 함께 걸어온 미술의 역사를 톺아보며 한국 미술의 질적 성장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짚는다. 경제학과 미술사를 모두 공부한 저자는 우리 미술사를 한국의 독자적인 성취의 역사로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전시장 문을 열면 흰 덩어리 2개가 붙어서 빙글빙글 돈다. 한 행성의 3D 버전 같기도 한데, 군데군데 숫자 팻말이 있다. 뒤에 놓인 세 개의 나무 막대는 서로 닿을 듯 닿지 않으며 사방으로 허우적댄다. 작품 ‘모르는 마을’(2021년)이다. 답답함이 몰려오는 이 전시 ‘Maybe it‘s like that’. 제목마저 갑갑하다. ‘모르는 마을’을 만들게 된 계기는 아이였다. 서울 종로구 OCI미술관에서 만난 양정욱 작가(39)는 최근 아이가 태어났다며 입을 뗐다. “돌도 안 된 아이에게 뭔가를 설명하려 해도 명쾌하게 해설할 수 없고, 알아듣지도 못하죠. 그런데 이게 전시의 목적인 것 같아요. 우리가 새로운 작품을 보는 건 기존 언어로 정의되지 않는 무언가를 보고 각자 다른 생각을 하기 위해서니까요.” 이를 듣고 나면 ‘모르는 마을’의 흰 덩어리는 자세히 설명하길 포기하고 핵심만 짚어준 상황으로, 막대기는 절묘하게 엇갈리는 생각들로 각각 보인다. 기존에 작품마다 문장형 제목을 붙이고 나무를 주 재료로 써왔던 그는 이번엔 제목을 짧게 정하고 나무 사용도 최소화했다. 양 작가는 “10년 가까이 활동하다 보니 대중이 좋아하는 걸 안다고 생각했다. 한데 아이가 태어나자 내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첫 아이라 키우는 과정에서 수시로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이 생겼고, 그게 활력이 됐다. 그 느낌을 작업에 소환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 전시장에는 보물찾기 같은 작품도 있다. ‘일시적인 약도’는 2층 전시장 난간에 나무 조각, 실, 철사 등으로 지도를 표현한 것으로, 얼핏 보면 쓰레기를 흩어 놓은 것 같다. 이 작품은 양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됐다. 두 사람이 벤치에 앉아 막대로 땅에 그림을 그려가며 목적지를 설명한다. 작가가 인근을 한 바퀴 돌고 왔더니 둘은 사라졌다. 사정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그 그림은 쓸모없는 것이지만, 작가는 설명의 흔적임을 안다. ‘일시적인 약도’의 재료도 작업을 하고 남은 것들이다. 일상의 이야기를 다루는 그는 항상 ‘나는 충분히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나?’ 되뇐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배도 고파 보고, 버스도 타는 등 보통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뒹굴어야 작품이 보인다고 한다. “제가 다루는 주제는 누구나 한 번은 보거나 접하게 될 수 있어요. 그게 예술이 해야 하는 일 같아요. 누군가는 한 번 겪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요.” 12월 18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여성 작가 3인의 예술 활동.’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IMA Picks 2021’의 주제는 얼핏 진부해 보이지만 의미가 있다. 미술계에서 여전히 여성 서사의 역사는 짧기 때문이다. 세계 유명 미술관들은 여성 화가 발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는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첫 회고전을 열었고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은 2017년 더 많은 여성 예술가를 조명하겠다고 밝혔다. ‘IMA Picks 2021’은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미술관은 지금 주목할 작가로 세 여성 작가 윤석남(82) 홍승혜(62·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학과 교수) 이은새(34)를 꼽았다. 윤율리 일민미술관 선임큐레이터는 “세 작가는 회화에 기반을 두면서도 전통 회화가 지닌 평면성에 도전장을 내미는 작업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시작한 IMA Picks는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작가 3명을 조명하는 전시다. 격년으로 열릴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열리지 못하고 올해 개최됐다. 이은새는 형체가 일그러진 회화를 선보인다. 기존에 작가는 술에 취한 여성 등 여러 모습의 여성을 그렸다. 그러나 그는 ‘나 역시 여성을 이미지의 소재로 재생산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에 이번 전시에서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재현하지 않은 추상화를 선보였다. 그가 처음으로 철판 조각에 작업을 한 작품 ‘리핑’ 시리즈(2021년)는 잘려진 쇠의 테두리와 평면 위에 그어진 금이 모두 회화적 선처럼 보인다. 철판의 두툼한 옆면에는 유화 물감을 칠했다. ‘미니’는 은색 바탕에 흰색으로 곡선을 그렸고 철판 옆면은 노란색, 파란색으로 채색했다. 작가가 “극단적 그리기”라 표현한 이 시리즈는 조각임에도 회화처럼 보인다. 홍승혜의 작품은 회화라는 걸 떠올리기 어려울 수 있다. 서정적인 유화를 그리던 그는 1997년 백지 평면 작업에 답답함을 느꼈다. 눈을 돌린 건 컴퓨터의 픽셀이었다. 기하학적 도형으로 표현한 설치 작품 ‘공중무도회’(2021년)는 2차원 평면과 3차원 공간을 넘나들며 유희를 선사한다. 작품의 공간성에 대한 고민은 그의 퍼포먼스 작품 ‘연습’(2021년)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매주 토요일 오후 1∼5시, 퍼포머 5명은 시작 시간은 물론이고 러닝 타임도 정하지 않고 전시장 중앙에 놓인 무대와 전시 공간을 돌아다닌다. 무대 안과 밖의 경계를 지운 것. 첫 퍼포먼스이기에 제목 또한 ‘연습’이다. 작가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용기는 스스로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할 때 생긴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여성인 자신의 존재를 회화로 탐구하는 윤석남은 삶의 의미를 되묻다 마흔이 넘어 미술에 입문했다. 서양화를 그리다 조선 화가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을 접한 뒤 한국화에 기반한 여성 초상화를 그렸다. ‘소리 없이 외치다’(1992∼2009년)처럼 캔버스가 아닌 나무틀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전시장 초입에는 ‘식탁’(1987년) 같은 초기작 서양화와 ‘고카츠 레이코 초상’(2021년)이 나란히 놓여 있다. 초상의 주인공은 윤 작가의 활동에 도움을 준 일본인 큐레이터다. 1982년 첫 개인전에 출품한 어머니의 초상부터 2000년대 이후의 미공개 드로잉 등을 볼 수 있다. 각기 다른 세대의 작가들이지만 전시장 밖을 나갈 때쯤이면 이들의 나이는 중요치 않아진다. “젊은 작가들과 함께 전시할 수 있어 ‘잘 늙어왔구나’ 생각한다. 그림이란 것은 내가 모르는 너와 내가 통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는 윤석남의 말처럼. 내년 2월 6일까지. 5000∼7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방탄소년단(BTS·사진)이 히트곡 ‘버터’로 미국 유명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의 ‘올해의 음반’ 수상자로 선정됐다. 21일 소속사 빅히트뮤직에 따르면 BTS는 버라이어티가 19일(현지 시간) 발표한 ‘2021 히트메이커’ 중 올해의 음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히트메이커는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노래를 제작한 가수와 작곡가, 제작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버라이어티는 “멤버 RM을 비롯해 작사, 작곡에 참여한 이들이 완벽한 히트작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BTS가 히트메이커에 선정된 건 두 번째. 앞서 2019년 ‘올해의 그룹’에 뽑혀 한국 가수 중 처음으로 히트메이커를 수상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올 3월부터 10월까지 미국 휘트니미술관 웹사이트에는 특별한 작품이 전시됐다. 하루 중 일출과 일몰에 맞춰 가상의 황금 거울이 나왔다. 거울 속에선 비디오가 재생됐다. 작가가 사는 곳이라고 했는데, 가상의 3차원(3D) 아파트였다. 작가의 이름은 ‘라터보 아베돈’. 출생지는 온라인. 즉 아바타다. 혹자는 아베돈이 작가의 ‘부캐’(제2의 캐릭터)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10여 년간 아베돈을 운용해 오고 있는 인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모른다. 아베돈은 서울 강남구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전 ‘프로필을 설정하세요’에 영상 작품 ‘그 누구도 아닌 나’(2019년)를 출품했는데, 서지은 큐레이터는 “국제전을 준비하면 작가 여권 등 서류가 오가게 되는데 작가가 미술관 측에도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아베돈은 아바타가 곧 정체성이라 주장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가상 아바타로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가입이 얼마나 힘든지 등을 보여주며 가상 정체성의 권리를 논한다. 그에게 정체성이란 더 이상 현실의 경험과 신체에만 근거하는 게 아니다. 아베돈뿐 아니다. 온라인 상시 접속이 가능한 시대에 많은 이들은 각각의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하고 편집한다. 이런 면에서 국내외 작가 9명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프로필을 설정하세요’는 온·오프라인 존재의 가치가 공존하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중국관에서 주목받은 작가 루양도 마찬가지다. 그는 ‘도쿠’라는 아바타로 환생했다. 도쿠는 작가의 신체를 3D 스캔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성별은 없다. 작가는 인도네시아 전통 무용수의 표정이나 일본 현대무용가의 몸짓 등을 섞어 다양한 사람들의 정체성을 하나로 합치기도 했다. 이런 도쿠의 탄생 과정을 담은 영상 작품 ‘도쿠쇼 도쿠시 헬로 월드’(2021년)는 온라인 세계 속 정체성의 무한함을 보여준다. 전시는 급속도로 변화하는 온라인 환경 내 우려되는 지점도 함께 조명한다. 안가영의 ‘KIN거운 생활: 온라인’(2020∼2021년)은 가상공간 속 무차별적 복제 문제나 기술 낙오자 등 사각지대를 보여준다. 작가는 성인 포르노물 배우로 오용된 아바타, 무단 복제당한 아바타, 게임 속 신체에 부적응한 아바타가 연대하는 역할극을 만들었다. 몰리 소다는 자신의 브이로그, 메이크업 영상, 스트리밍 영상, 사진을 모아놓은 작품 ‘미 앤드 마이 걸스’(2021년)를 통해 자신의 사적 모습을 관객과 공유하고, 온라인을 부유하는 자기 정체성은 과연 ‘오롯한 나’인지 질문한다. 전시는 27일까지. 3000∼4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세미나 ‘아파트, 도시로 열다’가 서울 중구 문화역 서울284에서 12일 열렸다. 이 세미나는 11일부터 17일까지 이어지는 ‘2021 대한민국건축문화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다. 발표자로 나선 이정형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와 이은경 이엠에이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아파트 단지 내 공유 공간 활성화를 통한 공동체 회복을 주장했다. 이 교수는 “대규모 아파트가 ‘단지’를 형성하면서 주변의 기성시가지와 단절돼 폐쇄적인 공간이 된다. 이런 식의 아파트 단지 개발은 지역주민이 다니던 길을 사라지게 한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방음벽으로 둘러싸여 단절된 가로경관, 열린 커뮤니티시설 부재를 단지 설계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 대표는 공공임대주택, 협동주택을 사례로 들며 “발코니 등 접점공간과 참여형 커뮤니티 같은 주체적 공간이 많은 주거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패널로 참석한 우의정 메타건축 대표는 “과거 지형, 터, 길은 원주민들의 기억과 삶을 반영하기 때문에 최대한 보존해야 한다. 물리적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긴 쉽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변형하면 도시에 불균형이 생긴다”고 말했다. 올해 대한민국건축문화제는 ‘아파트, 도시를 걷다’를 주제로 정해 건축문화제로는 처음 아파트에 주목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형태인 아파트가 만들고 있는 도시의 현실을 읽고, 국내외 건축가를 통해 바라본 아파트와 도시의 미래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행사에는 올 한 해 진행된 주요 건축상 수상 경향을 토대로 한국 건축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는 전시도 포함됐다. ‘대한민국건축대전 국제일반공모전’, ‘젊은 건축가전’ 등 7개의 주제전은 건축가와 작가들이 협업해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발전시킬 방안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아파트의 미래’에 대해 11일 강연했다. 최두호 토문건축 대표는 ‘아파트를 말하다’를 주제로 17일 강연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961년 박수근은 일본에서 열린 국제자유미술전에 ‘나무’를 출품했다. 그런데 작품을 도둑맞았다고 연락이 왔다. 부인 김복순은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지만 박수근은 만류한다. “돈은 없고 그림은 탐이 나서 가져갔을 텐데, 작품이 도난당한다는 것은 영광”이라며. 그리고 이듬해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자유미술전을 위해 ‘나무와 두 여인’을 다시 제작한다. 이 일화는 박수근의 성품을 잘 보여준다. 자신이 가난했기에 남의 가난을 알았던 화가. 답답할 정도로 선한 화가. 한데 그는 마냥 불운하고 여린 화가였을까. 11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막한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박수근(1914∼1965)의 삶을 따라가며 그의 진면목을 살펴본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후 처음 선보이는 박수근 개인전으로,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과 유족 연구자 소장자의 협조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이기도 하다.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모두 163점으로 역대 최다인 데다 이 가운데 유화 7점과 삽화 12점은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 박수근의 초기작과 수집품이 포함된 전시 1부는 그의 주체적인 면면을 보여준다. 박수근은 부친의 사업 실패로 보통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12세 무렵 책에서 본 밀레의 ‘만종’에 감동한 박수근은 직접 ‘밀레 화집’을 만들었다.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서양화가의 화집도 수집했다. ‘철쭉’(1933년), ‘겨울 풍경’(1934년) 등 초기작을 보면 인상주의 화풍을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생계를 위해 삽화나 표지화도 그렸다. 펜화, 판화, 프로타주(물감을 화면에 비벼 문지르는 채색법) 등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도 그를 대변하는 단순성, 흑백 대비와 같은 회화 양식을 다듬어갔다. 결실을 맺은 건 1953년부터 1963년까지다. 박수근이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살던 10년간이다. 1940년 평양에서 결혼한 박수근은 6·25전쟁이 터지자 남한으로 내려왔고, 2년 뒤인 1952년에야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미군 영내매점(PX)에서 초상화가로 일하며 돈을 모아 1953년 창신동 집을 마련한다. 195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집’(1953년)으로 특선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주요 전람회에 참여하며 주목받는다. 이 기간을 아우르는 전시 2부와 3부에서는 그의 대표작을 감상할 수 있다. ‘집’, ‘길가에서’(1954년), ‘쉬고 있는 여인’(1959년), ‘소와 유동’(1962년), ‘악’(1963년), ‘할아버지와 손자’(1964년)는 전람회 출품작이라 크기가 큰 데다 구도가 매우 안정적이다.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노인들의 대화’(1962년) ‘소녀’(1950년대 후반)는 그가 창신동 집 앞에서 볼 법한 풍경을 유추할 수 있다. 이 무렵 한국에 체류하던 외국인들도 박수근에게 관심을 보였다. ‘노인들의 대화’는 당시 미국 미시간대 교수인 조지프 리가 1962년 대학원생들과 함께 방한했을 때 구입한 것이다. 외국인에게 인기를 얻은 그는 미국 개인전을 추진했지만 급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돼 1965년 타계한다. 4부에 전시된 후기작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회백색뿐 아니라 1950년대 중반부터 파스텔 톤을 과감히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박수근의 그림에는 4∼22겹의 물감이 겹쳐져 있어 자세히 보면 그림 안에 굴곡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내년 3월 1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961년 박수근은 일본에서 열린 ‘국제자유미술전’에 ‘나무’를 출품했다. 그런데 작품을 누군가 훔쳐가 없어졌다고 연락이 왔다. 부인 김복순은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지만 박수근은 이를 만류한다. “그림을 가져간 사람이 돈은 없고 작품은 탐이 나서 가져갔을 텐데, 작품이 도둑을 당한다는 것은 영광”이라고 말하며. 그리고 이듬해 한국에서 다시 열린 국제자유미술전을 위해 ‘나무와 두 여인’을 다시 제작한다. 이 일화는 박수근의 성품을 잘 보여준다. 자신이 가난했기에 남의 가난을 알았던 화가. 답답할 정도로 선한 화가. 이런 수식어를 떼어놓고 박수근을 생각할 순 없다. 하지만 그가 마냥 불운하고 여린 화가였을까. 11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막한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박수근의 삶을 따라가며 그의 진면목을 살펴본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처음 선보이는 박수근 개인전으로,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과 유족, 연구자, 소장자의 협조로 만들어진 대규모 회고전이기도 하다.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163점이 출품돼 역대 최다인데다 이중 유화 7점과 삽화 12점은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박수근의 초기작과 수집품이 포함된 전시 1부는 그의 주체적인 면면을 보여준다. 박수근은 밀레를 동경했다. 12살 무렵 책에서 본 밀레의 ‘만종’에 감동한 박수근은 직접 ‘밀레 화집’을 만들었다. 박수근은 부친의 사업 실패로 보통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때 참고자료가 됐던 건 관광엽서였다. 빨래하는 여성, 담뱃대를 문 노인 등이 그려진 엽서는 이후 박수근 그림의 주요 소재가 된다. ‘가장 한국적인 화가’라고 알려졌으나 박수근은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서양화가들의 화집을 수집했다. ‘철쭉’(1933년) ‘겨울 풍경’(1934년) 등 초기작을 보면 인상주의 화풍을 시도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생계를 이어가야했던 그는 삽화나 표지화 작업도 했다. 펜화, 판화, 프로타주(물감을 화면에 비벼 문지르는 채색법) 등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 그를 대표하는 단순성, 흑백 대비와 같은 회화 양식을 점차 다듬어갔다. 결실을 맺은 건 1953년부터 1963년까지다. 박수근이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살던 10년간이다. 1940년 평양에서 결혼을 한 박수근은 6·25전쟁이 터지자 남한으로 내려왔고, 2년 뒤인 1952년에야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생계를 위해 미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하며 돈을 모아 1953년 창신동 집을 구한다. 195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집’(1953년)이 특선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린 그는 주요 전람회에 참여하며 차츰 주목받는다. 이 기간을 아우르는 전시 2부와 3부에서는 그의 대표작을 감상할 수 있다. ‘집’(1953년) ‘길가에서’(1954년) ‘쉬고 있는 여인’(1959년), ‘소와 유동’(1962년), ‘악’(1963년), ‘할아버지와 손자’(1964년)는 전람회 출품작이어서 크기가 큰 데다 구도가 매우 안정적이다.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노인들의 대화’(1962년) ‘소녀’(1950년대 후반)는 그가 창신동 집 앞에서 볼 법한 풍경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 무렵 한국에 체류하던 외국인들도 박수근에게 관심을 보였다. ‘노인들의 대화’는 당시 미국 미시간대 교수인 조지프 리가 1962년 대학원생들과 함께 방한했을 때 구입한 것이다. 외국인에게 인기를 얻은 그는 미국 개인전을 추진했지만 급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돼 1965년 타계한다. 4부 후기작까지 찬찬히 살피다보면 박수근이 쓴 색상도 볼 수 있다.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파스텔톤의 색감을 과감히 사용하기도 한다.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박수근의 그림에는 4~22겹의 물감이 겹쳐져있어 자세히 보면 그림 안에 굴곡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51년의 짧은 생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박수근은 온 힘을 다해 작품을 그렸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내년 3월 1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내 그림에서 소리가 느껴지나요?” 대구 수성구 대구미술관에서 5일 만난 강요배 작가(69)는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의 개인전 ‘강요배: 카네이션-마음이 몸이 될 때’가 열리고 있는 미술관 도처에는 바람이 가득했다. 그림 안에는 바람이 불었고, 그로 인해 파도가, 때론 비가 내렸다. 한바탕 수라장이 지나간 고요한 모습을 담을 때도 있었다. 강요배는 자연을 그린다. 한때 인물그림, 걸개그림, 역사주제화 등을 다뤘지만 1992년 서울에서 고향 제주로 귀향한 뒤에는 대개 풍경과 풍광을 화폭에 담아 왔다. 그가 제주의 그림에 담고자 한 건 자연에 겹겹이 쌓여온 시간성과 역사성이었다. 그렇기에 구체적이고 세밀한 재현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에 와닿은 풍경을 추상적으로 풀어내 왔다. 대구 출신 서양화가 이인성(1912∼1950)을 기리며 대구시가 제정한 ‘이인성 미술상’의 지난해 수상자인 그는 수상자전인 이번 전시에서도 대자연과 역사를 소재로 한 대형 회화, 영상, 설치 등 40여 점을 내놨다. 1년간 전시를 준비하면서 마련한 대작이자 대표작 ‘수풍교향’(2021년)은 가로 16m로, 파도와 숲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화폭을 가득 채운다. 작가는 제주시 한림읍에 있는 작업실 앞 개천의 소리를 담아 영상작품 ‘소리풍경’을 만들고 회화 작품 옆에 전시했다. “영상 없이도 제 그림이 바람, 음악, 리듬을 다 담았어야 하는데 말이에요”하면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장면을 그린 ‘우레비’(2017년) 앞에 서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맞는 듯하다. ‘‘장미’의 아침놀’(2021년)은 하늘을 덮은 어둠이 걷히면서 밝은 빛이 번지는 풍경을 그렸다. 아침놀의 쨍한 붉은색을 통해 자연의 숭고함을 표현했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기에 한 번에 볼 수 없잖아요. 그걸 공간 속에서 봐야 합니다. 시간 없는 풍경, 자연은 없어요.” 그의 말은 자연이 캔버스 안에 갇히지 않고, 역사의 면면을 담은 채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강요배의 이름을 알린 건 역사화다. 그는 1989년 현기영의 제주 해녀를 다룬 소설 ‘바람 타는 섬’ 삽화를 그리면서 제주를 공부했고, 이후 4·3사건 연작을 전시했다.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민중을 담은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작가는 미군정기인 1946년 식량 배급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대구 10·1 사건, 1950년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보도연맹 회원들을 처형한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을 모티브로 한 신작을 선보였다. ‘어느 가을날’(2021년)은 배고픈 어린아이를 업고 거리로 나온 10·1사건 속 여인들을 그렸다. 이는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1934년)을 오마주한 작품이기도 하다. 강요배는 특정 사조에 속하길 거부했다. 그는 “다들 역사화가, 민중화가라며 시대의 감옥 속에 날 가두려 한다. 나는 예술가일 뿐이다. 캔버스에 그리는 건 내 자아를 흔적처럼 남기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약 50년 동안의 화업을 돌이키며 “이제 윤곽선 정도는 알아냈다”고 했다. “미술관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작품 세계를 펼쳐보니 흐리지만 나의 한계, 그러면서도 ‘나는 이런 존재구나’ 하는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했습니다. 거친 윤곽선 정도는 찾아냈으니 이제 고원에서 야산으로 하산하듯 조심조심 내려오면 될 것 같습니다.” 전시는 내년 1월 9일까지. 무료.대구=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내 그림에서 소리가 느껴지나요?” 대구 수성구 대구미술관에서 5일 만난 강요배 작가(69)는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의 개인전 ‘강요배: 카네이션-마음이 몸이 될 때’가 열리고 있는 미술관 도처에는 바람이 가득했다. 그림 안에는 바람이 불었고, 그로 인해 때론 파도가, 또 때론 비가 내렸다. 한바탕 수라장이 지나간 고요의 모습을 띨 때도 있었다. 강요배는 자연을 그린다. 인물그림, 걸개그림, 역사주제화 등 여러 주제를 다뤄왔지만, 1992년 서울에서 자신의 고향 제주로 귀향한 뒤에는 대개 풍경과 풍광을 화폭에 담아왔다. 그가 제주의 그림에 담고자 한 건 자연에 겹겹이 쌓여온 시간성과 역사성이었다. 그렇기에 구체적이고 세밀한 재현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에 와 닿은 풍경을 추상적으로 풀어내왔다. 대구 출신 서양화가 이인성(1912~1950)을 기리며 대구시가 제정한 ‘이인성 미술상’의 지난해 수상자인 그는 수상자전인 이번 전시에서도 대자연과 역사를 소재로 한 대형 회화, 영상, 설치 등 40여 점을 내놨다. 1년간 전시를 준비하면서 마련한 대작이자 대표작 ‘수풍교향’(2021년)은 가로 16m로, 전시 공간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다. 작가는 제주 한림읍에 있는 작업실 앞 개천의 소리를 담아 영상작품 ‘소리풍경’을 만들고 회화 작품 옆에 전시했다. “영상 없이도 제 그림이 바람, 음악, 리듬을 다 담았어야 하는데 말이에요”하면서. “시간은 공간 속에 숨겨있어요.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기에 한 번에 볼 수 없잖아요. 그걸 공간 속에서 봐야 합니다. 시간 없는 풍경, 자연은 없어요.” 강 작가의 말은 자연이 캔버스 안에 갇히지 않고, 역사의 면면을 담은 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사실 강요배의 이름을 알린 건 자연을 그려오기 전 내놓은 역사화다. 그는 1989년 현기영의 제주 해녀를 다룬 소설 ‘바람 타는 섬’ 삽화를 그리면서 제주를 공부했고, 이후 4·3사건 연작을 전시했다.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은 민중을 담은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작가는 미군정기인 1946년 식량 배급을 요구하며 대구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대구 10·1 사건, 1950년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보도연맹 회원들을 처형한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을 모티브로 한 신작을 마련했다. 예컨대 ‘어느 가을날’(2021년)은 배가 곯아 당장이라도 죽겠다 싶어 어린 아이를 업고 거리로 나온 10·1 사건 속 여인들을 그렸다. 이는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1934년)을 오마주한 작품이기도 하다. 강요배와 역사는 뗄 수 없어 보이나, 작가는 특정 사조에 속하길 거부했다. 그는 “다들 역사화가, 민중화가라며 시대의 감옥 속에 날 가두려 한다. 나는 예술가일 뿐이다. 캔버스에 그리는 건 내 자아를 흔적처럼 남기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약 50년 동안의 화업을 돌이키며 “이제 윤곽선 정도는 알아냈다”고 했다. “미술관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작품 세계를 펼쳐보니 흐리지만 나의 한계, 그러면서도 ‘나는 이런 존재구나’하는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했습니다. 거친 윤곽선 정도는 찾아냈으니 이제 고원에서 야산으로 하산하듯 조심조심 내려오면 될 것 같습니다.”전시는 내년 1월 9일까지. 무료.대구=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2016년 4월 일본 오사카시 공원 한쪽에 2층짜리 목조건물이 들어섰다. 이름은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 여느 성인 호스피스와는 조금 다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과 악기, 그림책이 가득한 레저시설 같다. 너무 일찍 환자가 되어버린 아이들을 위해 건립한 일본 최초의 어린이 호스피스. 이곳에는 소아암과 난치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호스피스를 짓기까지 분투한 사람들을 만나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이 호스피스를 설립한 백혈병 전문의 하라 준이치와 신생아의료 최전선에 있던 다타라 료헤이라는 두 의사를 중심으로 서술했다. 이들이 의료현장에서 본 건 필사적으로 치료에 저항하는 아이와 지친 부모들이었다. 한 부모는 “아들이 원망에 찬 눈으로 ‘엄마는 병원 편이지? 배신자!’라고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며 속상해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완치가 아닌 ‘남은 시간을 충실히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이들은 수녀, 간호사, 어린 환자 및 가족 등과 함께 ‘어린이 호스피스 프로젝트’ 단체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정치인, 기업가의 도움을 받아 호스피스를 설립했다. 책에 나오는 이들은 단순히 시설 하나를 완성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의료현장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병원 놀이 전문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병원에서 놀이를 통해 아이들을 만난다. 수술을 앞둔 아이와 탐험하듯 수술실을 함께 다니면서 미리 두려움을 덜어주는 식이다. 아이들에게 이들과의 만남은 성장의 거름이 됐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개관 3년째에 호스피스 입주자 사키와 나눈 대화를 전했다. 사키는 병동의 보육교사를 보며 똑같이 되고 싶다고 했다. 사키에게 호스피스에서의 투병 생활은 단순히 버티는 것을 넘어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이 됐던 것이다. 책은 병원의 좁은 침대가 아닌 호스피스에서 만남과 이별, 슬픔과 즐거움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짧더라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나날이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지지직거리는 TV. 오류가 난 듯 여러 개의 가로선이 이미지를 뭉갠다. 그 속으로 마스크를 쓴 채 몸을 맞부딪치며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민재영 작가(53)의 그림들은 방금 막 꺼낸 기억 속 한순간 같다. 옛날 같기도, 지금 같기도 한 이들 그림의 탄생은 “나는 전통의 재료로 지금의 풍경을 그린다”는 그의 한마디로 정리된다. 동양화를 전공한 민 작가는 1990년대부터 수묵과 아크릴을 섞는 등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을 뭉뚱그리는 시도를 했다. 그러다 2003년부터 선을 가로로 겹쳐 그리는 ‘가로선의 중첩’이라는 자신만의 표현법을 만들었다.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민재영: 생활의 발견’은 그의 회화, 드로잉 등 65점을 통해 20년가량의 작업 변천을 한곳에서 보여준다. 작업의 시작은 바닥에 한지를 놓고 일정 간격으로 수묵 가로획을 긋는 것이다. 그 다음 모델을 섭외해 찍은 연출 사진이나 신문에 보도된 사진을 보고 목탄으로 밑그림을 그린다. 짧은 가로선으로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을 계속 중첩시킨다. 마지막에는 먹으로 음영을 준다. 번짐과 흐릿함의 표현법을 구상해낸 이유에 대해 그는 “구체적이고 선명한 환기보다는 기억 속 이미지처럼 잔상이 남는 게 좋다”고 했다. 그가 다루는 소재는 대개 도심 속 일상을 살아가는 군상이다. 많은 작품이 군상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으로 그려졌다. 정수리나 등같이 스스로 볼 수 없는 부분은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생활 속 이미지를 그리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일상에서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는 생활상 기록의 정수를 보여준 박수근,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국의 세실리 브라운, 그림에서 서사가 느껴지는 독일의 다니엘 리히터다. 그가 그리는 작품의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다. 민 작가는 “표현의 영역을 더 넓혀가고 싶다”고 했다. 28일까지. 2000∼5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첼리스트 한재민(15·사진)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28일(현지 시간) 열린 제75회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첼로 부문 3위를 차지했다. 로즈마리위게닌 특별상도 함께 수상했다.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의 첼로 부문에서 한국인이 입상한 건 1971년 정명화가 1위를 한 후 50년 만이다. 올해 콩쿠르의 본선 진출자 중 최연소를 기록한 한재민은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과 엘가 첼로 협주곡 e단조를 연주했다. 1위는 일본의 우에노 미치아키(26), 2위는 캐나다의 브라이언 챙(24)이 각각 차지했다. 한재민은 3등 수상으로 상금 8000프랑(약 1024만 원)을 받았다. 부상으로 2년간 해외 콘서트 투어를 하고 제네바 프로무지카사와 2년간 매니지먼트 계약을 하는 기회를 갖는다. 한재민은 “콩쿠르에 참여하며 음악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 기대되는 연주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5월 루마니아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금호영재 출신인 한재민은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영재로 입학했다.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수상한 한국인으로는 작곡가 조광호(2013년), 피아니스트 문지영(2014년), 작곡가 최재혁(2018년), 퍼커셔니스트 박혜지(2019년)가 있다. 1939년 창설된 제네바 국제콩쿠르는 피아노, 플루트, 클라리넷, 첼로 등 8개 부문이 매년 번갈아 가며, 작곡 부문은 2년마다 각각 개최된다. 만 29세 이하 연주자가 참여할 수 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멕시코에서는 ‘죽은 자들의 날’이라는 명절이 있다. 매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망자의 영혼을 기리는 행사인데, 퍼레이드 형식으로 즐겁게 이뤄진다. 멕시코인들은 죽음의 가치를 인정하고 삶의 또 다른 부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2018년 국내 개봉한 애니메이션 ‘코코’에 잘 반영돼 있다. 멕시코 이외의 나라들에 이 문화가 낯설게 다가오는 건 죽음이란 것이 불편하고 두려운 존재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일상적으로 겪는 이에겐 죽음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해부학적 지식을 활용해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는 법의인류학자인 저자는 “내가 죽음과 맺은 관계는 편안한 우정”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죽음의 여러 모습을 담담하게 풀어내며 죽음을 향해 느끼는 혐오를 잠시 잊어보자고 제안한다. 저자가 기억하는 최초의 죽음은 대개 그렇듯 조부모였다. 저자의 할아버지는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숨졌다. 장례식 날 저자는 “할아버지가 잘 계시는지 확인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조문실로 향한다. 저자는 그 앞에 잠시 멈춰 할아버지가 살았던 순간을 떠올리고 기억을 간직한다. 그러곤 할아버지의 피부색을 살피고 시계의 태엽을 감아드리고 어깨를 두드리는 것으로 임무를 완수한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가 신뢰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준 순간부터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대학시절에는 해부학 수업을 들으며 죽은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느꼈다. 신체 기증자를 위해 해마다 열리는 장례식과 감사 예배는 죽음의 또 다른 가치를 생각하게 했다. 법의인류학자가 되어서는 법정에서 시신이 절단된 방식, 횟수를 증언하면서도 유족의 고통을 고려해 말을 고민했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한 저자는 죽음을 둘러싼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자신의 죽음을 직접 준비할 권리, 신원 미상의 시신에 대해 국가 등이 끝까지 신원을 확인해줄 의무 등이 필요하단 말이다. 죽음을 공포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죽음이 남긴 이야기를 따라가며 죽음을 느껴보길 권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대구에서 태어난 서세옥(1929∼2020)은 광복 후 서울로 왔다. 그때 성북동 소나무들을 보고 ‘꼭 성북동에 집을 갖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후 성북구 월곡동, 돈암동 등지에서 거주했던 그는 1970년대 초, 성북동 언덕에 25평(약 82.6m²)짜리 집을 짓곤 ‘손으로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집’이란 의미로 ‘무송재’라 이름을 붙였다. 성북과 서세옥은 서로의 수식어였다. 그는 이곳에서 작품을 만들고 정원을 거닐며 사색하는 조선시대 선비 화가의 삶을 꿈꿨다. 한국 문인화의 마지막 세대로 불렸던 그는 별세 전까지 이곳에서 활발히 작업했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사람 혹은 군상을 그린 대표작 ‘인간’ 시리즈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작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환경이 있다. 지역 미술관들이 예술가의 공간에 대한 흔적을 짚은 전시를 열고 있다. 서울 성북구 성북구립미술관은 12월 5일까지 ‘화가의 사람, 사람들’ 전시에서 서세옥과 그를 중심으로 한 성북의 근현대 작가들 작품 25점을 조명하고 있다. 전남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은 11월 6일까지 ‘한국 서예의 거장 소전 손재형’을 열고 전남 진도 출신인 손재형의 서예 입문기부터 완숙기까지를 보여주는 40점을 선보이고 있다. ‘화가의 사람, 사람들’에서는 서세옥이 성북동에 살며 교류하고 영향을 받은 김용준 김환기 장승업 등 7명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스승 김용진의 수묵화, 서세옥을 아우라 칭했던 변관식의 산수가 그려진 선면도 등 서세옥 컬렉션 12점도 포함됐다. 김경민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사는 “서세옥 컬렉션은 작가가 자신의 예술 세계에 자양분이 된 작품을 모은 것이라 후배나 친구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작품이 많다”고 했다. 지난해 유족으로부터 3342점을 기증받은 성북구립미술관은 서세옥 기획전을 이어갈 예정이다. 서세옥의 선배이자 20세기 서예와 문인화를 이끈 소전 손재형(1903∼1981)은 할아버지 손병익과 진도로 귀향 온 학자 정만조에게 한학과 서예를 배웠다. 함께 서당을 다닌 이는 한국 서화계를 대표하는 의재 허백련과 남농 허건이었다. 이태우 전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은 “소전은 18세 때 상경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예에 두각을 보였다. 그 기반엔 자연스레 서예를 접한 진도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정희의 세한도를 가져온 자’, ‘박정희 대통령의 서예 스승’으로 손재형을 설명하던 문구를 잠시 잊고 서예가로서 그를 재평가할 수 있다. 당시 서예계를 주도하던 김돈희, 오세창의 서풍을 익히던 ‘전통 계승의 시기’, 광복 후 ‘소전체 정립 시기’, 60세 이후 ‘원숙한 기량의 시기’를 감상할 수 있다. 사군자, 수묵 산수화 등 여러 문인화도 전시돼 있다. 함께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고귀한 시간, 위대한 선물’에서는 신안 출신인 김환기의 ‘무제’, 고흥 출신인 천경자의 ‘화혼’, ‘만선’, 화순 출신인 오지호의 ‘풍경’ 등 전남에 뿌리를 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 측은 현대문학 가운데 김환기가 장정한 60권을 모두 구매해 일부를 선보이고 있다. 천경자, 오지호, 조선대 교수를 지낸 임직순이 그린 각종 책의 표지화와 삽화도 전시한다.광양=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대구에서 태어난 서세옥(1929~2020)은 광복 후 서울로 왔다. 그때 성북동 소나무들을 보고 ‘꼭 성북동에 집을 갖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후 성북구 월곡동, 돈암동 등지에서 거주했던 그는 1970년대 초, 성북동 언덕에 25평(82.6㎡)짜리 집을 짓곤 ‘손으로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집’이란 의미로 ‘무송재’라 이름을 붙였다. 성북과 서세옥은 서로의 수식어였다. 그는 이곳에서 작품을 만들고 정원을 거닐며 사색하는 조선시대 선비 화가의 삶을 꿈꿨다. 한국 문인화의 마지막 세대로 불렸던 그는 별세 전까지 이곳에서 활발히 작업했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사람 혹은 군상을 그린 대표작 ‘인간’ 시리즈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작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환경이 있다. 지역 미술관들이 예술가의 공간에 대한 흔적을 짚은 전시를 열고 있다. 서울 성북구 성북구립미술관은 12월 5일까지 ‘화가의 사람, 사람들’전시에서 서세옥과 그를 중심으로 한 성북의 근현대 작가들 작품 25점을 조명하고 있다. 전남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은 11월 6일까지 ‘한국 서예의 거장 소전 손재형’을 열고 전남 진도 출신인 손재형의 서예 입문기부터 완숙기까지를 보여주는 40점을 선보이고 있다. ‘화가의 사람, 사람들’에서는 서세옥이 성북동에 살며 교류하고 영향을 받은 김용준 김환기 장승업 등 7명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스승 김용진의 수묵화, 서세옥을 아우라 칭했던 변관식의 산수가 그려진 선면도 등 서세옥 컬렉션 12점도 포함됐다. 김경민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사는 “서세옥 컬렉션은 작가가 자신의 예술 세계에 자양분이 된 작품을 모은 것이라 후배나 친구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작품이 많다”고 했다. 지난해 유족으로부터 3342점을 기증받은 성북구립미술관은 서세옥 기획전을 이어갈 예정이다. 서세옥의 선배이자 20세기 서예와 문인화를 이끈 소전 손재형(1903~1981)은 할아버지 손병익과 진도로 귀향 온 학자 정만조에게 한학과 서예를 배웠다. 함께 서당을 다닌 이는 한국 서화계를 대표하는 의재 허백련과 남농 허건이었다. 이태우 전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은 “소전은 18살 때 상경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예에 두각을 보였다. 그 기반엔 자연스레 서예를 접한 진도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정희의 세한도를 가져온 자’, ‘박정희 대통령의 서예 스승’으로 손재형을 설명하던 문구를 잠시 잊고 서예가로서 그를 재평가할 수 있다. 당시 서예계를 주도하던 김돈희, 오세창의 서풍을 익히던 ‘전통 계승의 시기’, 광복 후 ‘소전체 정립 시기’, 60세 이후 ‘원숙한 기량의 시기’를 감상할 수 있다. 사군자, 수묵 산수화 등 여러 문인화도 전시돼있다. 함께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고귀한 시간, 위대한 선물’에서는 19점을 만날 수 있는데, 전남 출신 작가들의 아카이브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미술관 측은 신안 출신인 김환기의 현대문학 장정 60권을 모두 구매해 일부를 선보이고 있다. 고흥 출신의 천경자, 화순 출신인 오지호, 조선대 교수를 지낸 임직순이 그린 표지화와 삽화를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뒤져 모두 9권을 구했다.광양=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제가 왜 종이를, 나무를 파낼까요? 고민해봤더니 저는 사랑하는 무언가가 낡아 버려지는 걸 두려워하더라고요. ‘아 나는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으려고 계속해서 새기는 중이구나’ 깨달았어요.” 이지은 작가(47)는 자신이 조각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소멸을 두려워하는 태도’는 그의 집착에서 시작됐다. “아쉬운 마음이 생기면 굳이 제 손으로 칠하고 새기면서 대상을 체화시키고 싶었어요. 참선하듯, 기도하듯 간절히 남기고 싶은 거죠.” 소멸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지은의 작업 활동은 끝내 ‘태도’가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지은의 작품은 들이는 시간에 비해 생산성이 낮다. 예컨대 작품 ‘쓸모없는 사전’(2020년)이 그렇다. 작가는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는 백과사전에 집중했다. 사전마저 버리면 과거를 기억할 고리가 끊기겠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는 어릴 적 선물 받은 30권짜리 백과사전 중 제1권의 11쪽부터 640쪽까지 있는 모든 문항을 각각 다른 색으로 칠했다. “버리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은 꼬박 1년이 걸려 완성됐다. 이후 색칠한 문단 모양을 모티브로 해 육면체의 각 면을 깎아 9개 목조작품 ‘생각 허물기’를 만들었고, 그 목조작품의 모든 면을 종이에 대고 색칠해 54점의 프로타주 작품 ‘매만지고 문지르기’를 탄생시켰다. 주변에서는 작가를 걱정했다. ‘왜 칠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때마다 작가는 “나도 모르겠어. 칠하고 싶고, 다 칠해야만 왜 칠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답했다. 1권을 마무리 짓고 난 뒤에는 ‘그저 즐거웠다. 그럼 충분하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남은 29권을 보고는 “나는 돈을 포기했나 보다. 앞으로 29년간 갖고 놀 장난감 하나 생겨 기쁘다는 생각이 든다”며 장난스레 웃었지만, 별 볼일 없는 현상을 관심 있게 보려 하는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중노동 같아 보이는 작업 활동 속에서 작가 또한 의미를 찾아나간다. ‘너’라는 한 글자를 81개의 서체로 종이에 새겨낸 작품 ‘너 안에 내가’(2021년)가 그랬다. “보통은 마음에 드는 서체만 계속 쓴다. 다수가 싫어 해도 단 한 명을 위해 남아 있는 어떤 폰트도 있다. 작업을 위해 싫어하는 폰트로도 조각해봤는데, 문득 ‘내가 싫어하는 부분도 결국 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이지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하찮고 무의미하게 평가되던 것들의 가치를 되묻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이지은의 예술관 그 자체다. “누구나 다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된장찌개를 먹고 ‘와, 예술이다’ 하는 것처럼 누군가 심혈을 기울이고 시행착오를 겪어내면서도 정성을 비췄을 때 그 안에 예술이 있는 거죠. 그렇다 보니 관객이 제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반추하며 ‘이것도 예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전시는 31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제가 왜 종이를, 나무를 파낼까요? 고민해봤더니 저는 사랑하는 무언가가 낡아 버려지는 걸 두려워하더라고요. ‘아 나는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으려고 계속해서 새기는 중이구나’ 깨달았어요.” 이지은 작가(47)는 자신이 조각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소멸을 두려워하는 태도’는 그의 집착에서 시작됐다. “아쉬운 마음이 생기면 굳이 제 손으로 칠하고 새기면서 대상을 체화시키고 싶었어요. 참선하듯, 기도하듯 간절히 남기고 싶은 거죠.” 소멸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지은의 작업 활동은 끝내 ‘태도’가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지은의 작품은 들이는 시간에 비해 생산성이 낮다. 예컨대 작품 ‘쓸모없는 사전’(2020년)이 그렇다. 작가는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는 백과사전에 집중했다. 사전마저 버리면 과거를 기억할 고리가 끊기겠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는 어릴 적 선물 받은 30권짜리 백과사전 중 제1권의 11쪽부터 640쪽까지 있는 모든 문항을 각각 다른 색으로 칠했다. “버리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은 꼬박 1년이 걸려 완성됐다. 이후 색칠한 문단 모양을 모티브로 해 육면체의 각 면을 깎아 9개 목조작품 ‘생각 허물기’를 만들었고, 그 목조작품의 모든 면을 종이에 대고 색칠해 54점의 프로타주 작품 ‘매만지고 문지르기’를 탄생시켰다. 주변에서는 모두 작가를 걱정했다. ‘왜 칠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때마다 작가는 “나도 모르겠어. 칠하고 싶고, 다 칠해야만 왜 칠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답했다. 1권을 마무리 짓고 난 뒤에는 “그저 즐거웠다. 그럼 충분하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남은 29권을 보고는 “나는 돈을 포기했나보다. 앞으로 29년간 갖고 놀 장난감 하나 생겨 기쁘다는 생각이 든다”며 장난스레 웃었지만, 별 볼일 없는 현상을 관심 있게 보려하는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중노동 같아 보이는 작업 활동 속에서 작가 또한 의미를 찾아나간다. ‘너’라는 한 글자를 81개의 서체로 종이에 새겨낸 작품 ‘너 안에 내가 있다’가 그랬다. “보통은 마음에 드는 서체만 계속 쓴다. 다수가 싫어해도 단 한 명을 위해 남아있는 어떤 폰트도 있다. 작업을 위해 싫어하는 폰트로도 조각해봤는데, 문득 ‘내가 싫어하는 부분도 결국 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이지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하찮고 무의미하게 평가되던 것들의 가치를 되묻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이지은의 예술관 그 자체다. “누구나 다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된장찌개를 먹고 ‘와, 예술이다’하는 것처럼 누군가 심혈을 기울이고 시행착오를 겪어내면서도 정성을 비췄을 때 그 안에 예술이 있는 거죠. 그렇다보니 관객이 제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반추하며 ‘이것도 예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전시는 31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올해 5월, 전시 제목을 의논하던 한국인 큐레이터에게 프랑스 작가는 ‘4분의 4’를 제안했다. “지금 나는 생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면서. 큐레이터는 “한국에서는 4가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아 기피한다”고 했다. 작가는 되레 더 흥미로워했다. 두 달이 지난 7월, 작가는 갑작스레 눈을 감았다. 프랑스 대표 현대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1944∼2021)다. 그의 첫 유고전을 담당한 양은진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는 “그때는 장난인 줄 알고 웃어넘겼는데 볼탕스키는 어렴풋이 죽음을 인지했던 것 같다”고 했다. 볼탕스키의 세계 첫 유고전이 된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의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는 이렇게 마련됐다. 제목으로 4분의 4(4/4)를 생각했던 작가는 슬래시(/)보다 점(.)이 좋다는 해맑은 이유로 최종 제목을 4.4로 정했다. 전시하려던 작품도 총 44점이었다. 날개 달린 천사 조각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설치 작품 ‘천사’(1984년)는 작가가 직접 들고 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사망으로 이번 전시에는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43점이 진열됐다. 작가는 별세 직전까지 1년간 작품 선정, 공간 디자인까지 모두 맡았다. 양 큐레이터는 “1점은 작가님의 영혼이 채워 주는 걸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볼탕스키는 평생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랑스가 나치에서 해방된 직후 유년기를 보낸 그는 유대인에게 가해지는 위협을 겪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경험했다. 작가가 두려움에 저항한 방식은 ‘기억’이었다. 그는 기록되지 않은 사람을 주목했다. 제단이나 종교적 구조물 위에 얼굴 사진을 걸어 놓은 ‘기념비’(1986년), 반투명 커튼에 영정사진처럼 93명의 얼굴을 각각 인쇄한 ‘인간’(2011년)은 홀로코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사용된 사진은 수용소 희생자의 것이 아니라 신문 부고에 나왔거나 학급 학생들이 단체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통해 사적인 기억과 역사를 이어 놓은 것이다. 그는 설치 작품의 크기를 매번 전시 장소에 맞춰 정했다. 이번 전시장의 한쪽 벽면 가득 옷이 늘어져 있는 ‘저장소: 카나다’(1988년)는 한국의 중고 옷 1t으로 제작했다. 익명의 옷가지들은 사라진 생명이 ‘살았던’ 시절을 상기시킨다. 개성도 추억도 없는, 죽음 자체를 대변하는 700kg가량의 검은 옷더미 ‘탄광’(2015년)과 165일의 전시 기간 동안 매일 하나씩 꺼지며 흘러가는 시간을 가시화할 ‘황혼’(2015년)도 마찬가지다. 탄광에 사용한 재료도 한국의 중고 옷이다. 전시장에 맞춰 제작한 설치 작품은 매 전시가 끝난 후 폐기한다. 그는 “오브제는 파괴되더라도 오브제가 있었다는 희미한 기억만 있으면 된다”고 말해 왔다. 작품은 물질적 실체는 유한하지만 구전으로 계승되는 신화처럼 대를 이어가며 남는다. 일본 데시마섬에서 진행되고 있는 ‘심장소리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그는 2008년부터 각국 사람들의 심장박동 소리를 수집해 왔다. 지금도 섬에 오는 사람들의 심장박동 소리를 모으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야기에 끌려서라도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 작품을 이어가길 바란 것이다. 볼탕스키는 장난기가 많았다. 양 큐레이터는 “볼탕스키는 어떤 전시건 개막 이틀 전에 ‘전면 취소하자’며 큐레이터들을 당황시켰다고 한다. ‘이 지역에 유명한 스시집이 있던데 거길 못 가서’ 같은 이유를 들었다”고 했다. 그와 10년 넘게 작업해 온 프로덕션 팀원 2명은 이번 전시로 내한한 내내 울었다고 한다. 그의 부재가 컸던 것이다. “죽음이란 떠나기 위해 공항에 가는 것”이라던 볼탕스키. 전시에서는 생전 녹음된 그의 심장 박동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두운 공간을 메우고 있는 그 소리에서, 누군가의 헌옷더미 속에서, 과거 인물의 흐릿한 사진 속에서 관객은 현재 자신의 모습과 가까이 머물고 있는 죽음의 의미를 생각할 것이다. 내년 3월 27일까지. 무료.부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올해 5월, 전시 제목을 의논하던 한국인 큐레이터에게 프랑스 작가는 ‘4분의 4’를 제안했다. “지금 나는 생의 마지막 단계에 와있다”면서 말이다. 큐레이터는 “한국에서는 숫자 4가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아 기피한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되레 더 흥미로워했다. 두 달이 지난 올해 7월, 작가는 갑작스레 눈을 감았다. 프랑스 대표 현대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1944~2021)의 첫 유고전을 담당한 양은진 큐레이터는 “그때는 장난인 줄 알고 웃어 넘겼는데 볼탕스키는 어렴풋이 죽음을 인지했던 것 같다”고 했다.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세계 첫 유고전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전시하려던 작품 또한 총 44점이었다. 날개 달린 천사 조각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설치 작품 ‘천사’(1984년)는 작가가 직접 들고 올 예정이었다. 작가의 사망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43점이 진열됐다. 작가는 별세 직전까지 1년간 작품 선정, 공간 디자인까지 모두 맡았다. 양 큐레이터는 “1점은 작가님 영혼이 채워주는 걸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볼탕스키는 일평생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에서 해방된 직후 유년기를 보냈다. 유대인에게 가해지는 위협을 겪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와 소외를 경험했다. 작가가 그 두려움에 저항한 방식은 ‘기억’이었다. 잊히는 것을 겁나 한 작가는 기록되지 않은 사람을 주목했다. 제단이나 종교적 형태 구조물 위에 얼굴 사진을 걸어놓은 작품 ‘기념비’(1986년), 반투명 커튼에 영정사진처럼 93명 얼굴을 각각 인쇄해 놓은 작품 ‘인간’(2011년) 등은 홀로코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사용된 사진은 실제 수용소 희생자가 아닌 신문 부고나 단체 학급 사진 등이다. 사진을 통해 사적인 기억과 역사를 이어놓은 것이다. 5개 공간으로 나누어 작품을 배열한 이번 전시는 대형 공간에 작품을 쏟아내는 작가의 이전 전시 방식에 비해 웅장함은 부족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장소에 맞게 가변크기로 제작됐다는 점은 주목해볼 만하다. 전시장 한쪽 벽면 가득 옷이 늘어져있는 설치 작품 ‘저장소: 카나다’(1988년)는 프로덕션 팀 ‘에바스튜디오’의 자문 하에 한국의 중고 옷 1t을 공수해 재제작했다. 익명의 옷가지들은 사라진 생명이 ‘살았던’ 시절을 상기시킨다. 개성도 추억도 없는, 죽음 자체를 대변하는 700kg가량의 검은 옷더미 ‘탄광’(2015년)과 165일의 전시 동안 매일 하나씩 꺼지며 흘러가는 시간을 가시화한 ‘황혼’(2015년) 등도 마찬가지다. 재제작 작품은 매 전시가 끝난 후 폐기된다. 흔적을 중시하는 그가 작품의 자취를 손수 지운다는 것이 의문일 수 있다. 그는 “오브제는 파괴되더라도 오브제가 있었다는 희미한 기억만 있으면 된다”고 말해왔다. 작품은 물질적으로 한계가 있지만, 구전으로 계승되는 것은 신화처럼 대를 이어가며 남는다. 일본 테시마 섬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의 ‘심장소리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그는 2008년부터 전 세계인의 심장박동 소리를 수집했다. 설화나 소설 같은 이야기에 끌려서라도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 작품이 기억되고 이어지길 바란 것이다. 삶과 죽음을 다루지만 인간 볼탕스키는 “미술가는 삶을 유희하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왔던 것처럼 재치있었다. 양은진 큐레이터는 “볼탕스키는 어떤 전시건 전시 이틀 전에 전면 취소하자며 큐레이터들을 당황시켰다고 한다. 이유는 ‘이 지역에 유명한 스시집이 있던데 그걸 못 먹어서’ 따위다”라고 했다. 이 때문인지 그와 10년 넘게 일해 온 프로덕션 팀원 2명은 이번 전시로 내한한 내내 울었다고 한다. 볼탕스키가 전시장 어디쯤에 앉아있고, 어떤 대사를 할지 가장 잘 알았던 사이였기에 그의 부재가 컸던 것이다. 볼탕스키는 예술가로서의 모습만 기억할 수 있도록 팀원에게 죽음에 가까워졌을 즈음 자신의 공간에 출입을 금했다고 한다. “죽음이란 떠나기 위해 공항에 가는 것”이라던 볼탕스키는 이제 우리 곁에 없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생전 녹음된 그의 심장 박동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두운 공간을 메우고 있는 그의 심장소리에서, 누군가의 헌옷더미 속에서, 과거 인물의 흐릿한 사진 속에서 관객은 현재 자신의 모습과 가까이 머물고 있는 죽음의 존재를 반추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내년 3월 27일까지. 무료.부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