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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의 시대다. 각종 정보들이 디지털을 통해 실시간으로 쌓여 분석할 데이터 양은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 모두가 앞다퉈 빅데이터를 이용한 사업과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빅데이터가 이끄는 미래가 궁금하다면 이것의 현황과 한계를 짚은 신간 2권을 읽어볼 만하다. 신간 ‘데이터 과학자의 일’은 국내 데이터 과학자 11명이 함께 쓴 책이다. 저자들은 각종 산업현장에서 어떻게 데이터가 활용되고 있는지를 쉽게 풀어 알려준다. 이 중 스포츠 업계에서는 빅데이터가 이미 본격적으로 실무에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머니볼’(2011년)에서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만년 하위 팀이 선수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상위권으로 도약한다. 코치들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선수를 영입하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선수들의 출루율, 장타율, 연봉 등을 자세히 분석한 후 트레이드에 나선 것. 축구나 농구 등 다른 구기종목에서도 빅데이터 분석은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요즘 게임회사는 데이터의 보물창고로 불린다. 이용자들의 활동이 디지털 환경에서 이뤄지기에 빅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쌓이기 때문이다. 게임회사는 데이터를 마케팅 전략뿐 아니라 불법행위 단속에도 활용한다. 게임 속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패턴을 분석해 계정 도용이나 아이템 현금거래 사례를 적발할 수 있다. 예컨대 일부 게임 캐릭터들이 게임 속 특정 장소에서 자주 접촉하는 흐름이 포착되면 불법행위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데이터가 항상 우리에게 진실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영국 왕립통계학회장을 지낸 데이비드 핸드 임피리얼칼리지런던 수학과 명예교수는 신간 ‘다크 데이터’에서 우리가 놓치는 데이터(다크 데이터)로 인해 사회현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현실적으로 모든 데이터를 수집할 수 없기에 통계학적 오류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것. 예컨대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동부 해안을 강타했을 때 재난 전문가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분석해 어느 지역의 긴급구조가 시급한지 알아내고자 했다. 샌디가 이동하는 지역의 주민들이 트위터에 “도와 달라”는 글을 잇달아 올린 데서 착안한 것이다. 약 2000만 건의 트위터 게시 글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은 구조 요청을 보낸 지역은 부유층이 많이 사는 뉴욕 맨해튼이었다. 이 지역에 스마트폰 소유자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맨해튼보다 재난 정도가 심각했지만 스마트폰 소유자가 적어 트위터 게시 글도 적게 올라왔다. 구조 정보를 SNS 데이터에만 의존했다면 정부 대응은 실패했을 것이라는 저자의 비판이 아찔하게 느껴진다. 금융권에서는 은행들이 기존 대출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신규 대출자의 상환 가능성을 예상한다. 하지만 은행이 수집할 수 있는 대출자들의 개인정보는 제한적이다. 신규 대출자의 소득이나 자산 정보 등에 빠져 있는 다크 데이터로 인해 금융기관이 돈을 떼일 수도 있다는 것. “다크 데이터는 어디에나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데이터에 도사린 불완전성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결국 기술을 어떻게 쓰는지는 인간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30대 중반의 남성 작가 ‘나’는 어느 날 ‘1004’ 아이디의 누군가로부터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받는다. “오랜만이야”로 시작하는 메시지에는 지방 D시의 호수에서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담겼다. 나는 ‘그 시절’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살았지만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걸 깨닫고 혼란에 빠진다. 나는 10년 넘게 접속하지 않은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열고 거기 쓰인 옛 일기를 읽는다. 오랫동안 봉인해놓은 기억이 떠오르면서 나는 서서히 과거로 돌아간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웠던 D시에서의 불안한 10대로…. 8일 자신의 첫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문학동네)를 펴낸 박상영 작가(33·사진)는 13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신작은 10대들이 서로 사랑하고 상처 주는 일을 반복하며 성장하고 방황하는 이야기”라며 “약하기에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공격하는 10대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8년 단편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문학동네), 2019년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창비)에서 주로 성인들의 연애를 그렸다. 신작에선 남들과 다른 성 정체성을 자각한 10대 퀴어들의 사랑을 다뤘다. “누구든 공감할 수 있도록 보편적 10대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어요. 어떤 세대가 읽든 심리적 허들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죠. 물론 신작을 퀴어 소설로 해석하건, 성장 혹은 연애소설로 읽건 그건 독자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2000년대 청소년들이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풍경을 세밀히 그려내며 독자를 타임머신에 태운다. 주인공은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던 가수 넬과 자우림의 음악을 휴대용 CD플레이어로 듣고, 이마의 상처를 이유로 해리포터 시리즈의 ‘해리’로 불린다. 그는 “대중문화는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예술”이라며 “소설에 고전문학이 아닌 대중문화를 녹이면 작품의 수명이 짧아진다는 주장도 있지만 풍속화(風俗畵)처럼 2000년대 대중문화를 박제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슬픈 상황에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등장인물의 언행을 통해 독자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드는 필력은 신작에서도 여전하다. 작품에는 학군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인 아파트별로 계급이 나뉘고, 대입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학원 외고 준비반에 다니며 빈번한 학교폭력에 신음하는 10대들의 팍팍한 삶이 녹아 있다. 그는 “내가 10대 때 겪은 삶을 되살리다 보니 당시 사회문제도 자연스럽게 반영됐다”며 “경제·문화적으로 과잉의 시대였던 2000년대에 시작된 현상이 현재까지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제목에 대해 “3차원의 복잡한 현실보다는 단순한 1차원의 세계에 살고 싶은 10대들의 마음을 담았다”며 “수학에서 1차원인 직선이 점과 점을 연결하는 것처럼 사랑이 등장인물들을 잇는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고 덧붙였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단장님이 신경을 좀 써주실 수 있겠습니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 시신에 손을 대려는 사람이 없어서요.” 지난해 2월 25일 강봉희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장(68)은 대구시로부터 특별한 요청을 받았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이 팬데믹 확산세가 거셌던 당시 장례사들은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수습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강 단장은 봉사단 동료들에게 전화를 돌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모두가 안 하겠다면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설득했다. 그렇게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의 대구 지역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수습이 시작됐다. 7일 에세이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사이드웨이)를 펴낸 그는 11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해 2월부터 지금까지 장례지도사들이 기피한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31구를 수습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감염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는 큰돈을 준다고 해도 시신을 맡으려는 사설 장례업체가 별로 없었다. 15만 원이던 운구차 비용은 위험수당이 붙어 50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는 “대구에 있는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은 장례 과정에서 실비 이외 수익을 얻지 않고 기부금과 회비로만 운영되는 봉사단체”라며 “2004년부터 대구 무연고자, 기초생활수급자 시신을 염습하는 봉사를 해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수습은 일반 장례 절차와는 조금 다르다. 시체를 씻기고 수의를 입히는 염습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시신을 커다란 비닐로 밀봉한 후 의료용 팩에 넣는다. 또 입관 절차를 거쳐 사망 후 24시간 내에 화장해야 한다. 가끔 그는 봉사단 예산으로 수의를 사기도 한다. ‘입히지는 못해도 덮어 드리자’는 마음으로 고인을 밀봉한 시신 팩 위에 수의를 덮는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이들이 조금이나마 덜 외롭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수습하면 국가로부터 전파 방지 조치 비용으로 시신 한 구당 300만 원 이하의 실비만 지급받는다”고 했다. 백신 접종률이 올라간 최근에는 시신 수습이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사설 장례업체들이 코로나19 시신을 받으면서 강 단장의 일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별 수익이 되지 않는 무연고자나 기초생활수급자 시신 수습은 여전히 그의 몫. 9일에도 그는 이 같은 시신을 수습했다고 한다. 돈도 못 버는 일을 왜 하느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20여 년 전 방광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가 겨우 살아났어요. 2002년 병원에서 매일 창밖을 보던 제 눈에 병원 장례식장이 보였죠. 그때 만약 내가 살아서 병실 밖을 걸어 나가면 장례식장으로 오는 시신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고인이 코로나19 확진자이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저는 이분들을 위해 계속 봉사할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단장님이 신경 좀 써주실 수 있겠습니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생겨나는데 시신에 손을 대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난해 2월 25일 강봉희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장(68)은 대구시청으로부터 이런 요청을 받았다. 코로나19 감염 공포가 감돌자 두려움 때문에 어떤 장례지도사도 시신 수습에 나서지 않았던 것. 강 단장은 봉사단 동료들에게 전화를 돌려 “누군가는 해야 한다. 모두가 안하겠다면 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설득했다. 그렇게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의 대구와 대구 근교 지역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수습이 시작됐다. 7일 에세이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사이드웨이)를 펴낸 강 단장은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2월부터 지금까지 다른 장례지도사가 떠맡기 싫어하는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31구를 수습했다”고 했다. 지난해 감염공포가 심했을 때 아무리 돈을 주더라도 시체를 수습하려는 사설 장례업체가 없었다. 15만 원이던 운구차 비용에 위험수당이 붙어 50만 원으로 껑충 뛸 정도였다. “대구에 위치한 장례지도사협의회봉사단은 시신 수습 과정에서 수익을 얻지 않고 기부금과 회원 회비로만 운영되는 봉사단체입니다. 저는 2004년부터 대구의 무연고자, 기초생활수급자를 염습하며 봉사했는데 시청 요청으로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수습도 하게 됐죠.” 코로나19 사망자는 시체를 씻기고 수의를 입히는 염습을 하지 않는다. 대신 시신을 먼저 커다란 비닐로 밀봉하고, 이를 다시 의료용 시신팩에 넣는다. 입관 절차를 거쳐 사망 24시간 내에 화장한다. 가끔 그는 사비로 수의를 사기도 한다. ‘입히지는 못해도 덮어 드리자’는 마음으로 고인을 밀봉한 시신팩 위에 수의를 덮어드리기 위해서다. 봉사단 예산으로 수의 값을 내지만 가뜩이나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시신들이 조금이나마 덜 외롭길 바라는 마음이란다. 그는 “코로나19 사망자를 수습하면 국가에서 전파방지 조치비용으로 300만 원 이하의 실비를 받는다”며 “시신을 수습하는 데 드는 실비를 국가에 청구해 받지만, 이익은 내지 않고 가끔씩 봉사단 기부금으로 수의 값을 내기도 한다”고 했다. 최근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을 수습하는 일이 크게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졌다. 사설 장례업체가 시신 수습에 나서면서 그가 할 일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돈벌이가 되지 않는 무연고자, 기초생활수급자 코로나19 사망자 시신 수습은 강 단장이 나선다. 통화 이틀 전인 9일에도 그는 시신을 수습하고 왔단다. 돈도 못 버는 일을 왜 하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20여년 전 방광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겨우 살아났어요. 2002년 병원에서 매일 창밖을 보던 제 눈에 병원 장례식장이 보였죠. 그 때 만약 제가 살아서 병실 밖을 걸어 나간다면 장례식장으로 오는 시신을 위해 봉사를 해보고 싶다고 결심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코로나19 확진자이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저는 죽은 자들을 위해 계속 봉사할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저희 매장에서는 노벨 문학상 관련 행사는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10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7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아프리카 탄자니아 난민 출신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73·사진)와 관련된 행사가 있냐고 묻자 서점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국내 출간된 구르나의 책이 없어 판촉 행사를 열지 못하고 있는 것. 이 직원은 “구르나의 작품을 찾는 고객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수상자의 작품을 구입하려는 독자들이 몰려 출판계에선 각종 판촉 행사가 벌어진다. 하지만 구르나가 펴낸 10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단편소설 중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없어 올해엔 행사가 사라졌다. 온라인 서점에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에 1994년 오른 장편소설 ‘파라다이스(Paradise)’, 2001년 부커상 1차 후보에 이름을 올린 장편소설 ‘바닷가에서(By the sea)’ 등 구르나의 원서가 판매되고 있을 뿐이다. 온라인 서점은 과거 노벨 문학상 수상자 도서를 판매하는 이벤트를 열고 있지만 열기는 뜨겁지 않다. 지난해 수상자인 미국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78) 역시 시집이 국내에 번역 출간된 바 없었다. 다만 글릭의 시가 실린 류시화 시인의 시선집 ‘시로 납치하다’(더숲)와 ‘마음챙김의 시’(수오서재), 조이스 박 작가의 시선집 ‘내가 사랑한 시옷들’(포르체)이 있어 판촉 행사는 가능했지만 올해는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 글릭의 시집이 노벨 문학상 수상 1년이 지난 뒤인 현재까지 번역 출간되지 않은 만큼 구르나의 작품이 가까운 시일 내에 번역 출간될 가능성도 낮다. 진영균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과장은 “수상자 책의 국내 출간이 늦어지면 노벨 문학상 특수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56·사진)의 어린이 소설 ‘크리스마스 피그’(문학수첩)가 12일 한국 영국 미국 등 20개국에서 동시에 출간된다. 새 소설은 크리스마스이브, 소년 잭이 소중하게 여기는 돼지 모양의 장난감 ‘디피’와 이별하면서 시작된다. 잭이 가족과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할 소품을 사러 외출한 사이 디피가 사라진 것. 태어난 직후부터 디피와 함께 시간을 보낸 잭은 큰 충격과 슬픔에 휩싸인다. 잭이 이날 침대에 누워 잠들려 할 때 이상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조명을 켜고 보니 방 안에 놓여 있던 여러 장난감이 서로 말을 나누고 있었다. 장난감들이 1년 중 크리스마스이브에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잭은 장난감들과 함께 디피를 찾으러 모험을 떠난다. 롤링은 9일(현지 시간) 영국 더타임스 일요판인 선데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새 소설을 2012년부터 구상했다고 밝혔다. 롤링은 그의 어린 아들이 어디든 들고 다니던 돼지 인형이 있었는데, 이 인형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다 글을 썼다고 한다. 롤링은 “아들이 돼지 인형을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려 잠자기 전에 찾으러 다니기도 했다”며 “나는 돼지 인형이 영원히 없어질까 봐 두려워 똑같은 모양의 인형을 사 두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7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선정됐다. 특별히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수상자는 스웨덴 스톡홀름 아카데미 강당에서 노벨상 수상 소감 연설 겸 강연을 하는 것이 전통이다. 수상자가 자신의 인생과 작품 세계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자리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 애호가들의 눈길이 쏠린다. 이 책은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67)의 수상 소감 연설을 번역한 책이다. 일본계 영국 작가인 그의 성장 배경, 글을 쓰기로 결심한 후 삶의 경로 등 그의 문학적 바탕을 엿볼 수 있는 단서들이 담겨 있다. “위대한 정서적 힘을 지닌 소설들을 통해 세계가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환상에 불과한 의식의 심연을 밝혀내 왔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이 연설집을 읽으며 느꼈던 건 승승장구했다고 보였던 그가 실상 꽤 불안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다. 젊은 시절 그는 항상 가난했다. 그는 1979년 영국 동부 지역에 위치한 이스트앵글리아대의 문예창작학 석사 과정에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문학에 투신하기 시작했다. 그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 대학에서 16km 떨어져 있던 작은 방에 세 들어 살았다. 하루 2차례만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방은 난방이 되지 않아 매일 살이 에일 듯한 차가운 공기가 새어 들어왔다. 추운 밤에 작은 탁자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삶이 이어졌지만 그는 행복했다. 그에겐 문학적 야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꾸준한 노력 덕인지 그는 조금씩 문학계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는 1989년 펴낸 장편소설 ‘남아있는 나날’(민음사)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을 받았다. 2005년 펴낸 장편소설 ‘나를 보내지 마’(민음사) 역시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영문 소설’로 선정됐다. 그는 정말 순수하게 문학에 투신했다. 자신의 책이 얼마나 팔릴지, 자신이 문학을 함으로써 얼마나 큰 영예를 얻을지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과) 느낌을 나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쓴다는 자부심으로 글쓰기를 계속한 것이다. 최근 만난 한 출판평론가에게 “요즘 젊은 한국 작가들은 상금이 큰 문학상을 받기 위해 작품을 쓰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슈가 되는 소재를 선택해 빠르게 작품을 써내거나 자신은 정작 관심이 없음에도 일부러 사회적 의미가 담긴 작품을 펴내는 일부 작가들을 겨냥한 지적이다. 물론 살아남기 위해 어떤 글이든 쓰는 작가들의 행동을 비난할 순 없다. 하지만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펼치려는 야망이 있는 작가들이 점점 사라지는 현상은 슬픈 일이다. 한국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대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문학에 순수하게 투신하려는 작가를 키우는 일 아닐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아프리카 탄자니아 난민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 중인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73·사진)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7일 “식민주의에 대한 단호하고 연민어린 통찰이 수상 배경이 됐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노벨 문학상을 탄자니아 출신 작가가 받은 건 처음으로 아프리카 출신 작가로는 역대 다섯 번째다. 흑인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는 35년 만이다. 1948년 동아프리카 연안 잔지바르섬에서 태어난 구르나는 1968년 난민 자격으로 영국에 갔다. 이후 영어로 소설을 쓰면서 영국 켄트대 교수로 탈식민주의 담론을 연구했다. 동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파라다이스(Paradise)’는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에 1994년 올랐다. 장편소설 ‘바닷가에서(By the sea)’는 2001년 부커상 1차 후보에 올랐다. 한림원은 “난민의 혼란이라는 주제는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이어진다”며 “그는 모국어로 스와힐리어를 썼지만 20세에 영어를 써야 하는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영어는 그의 문학적 도구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10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단편소설을 발표했으며 이 중 국내에 번역 출간된 것은 없다. 한림원이 아프리카 출신 작가를 수상자로 선택한 건 최근 유럽과 미국 출신 작가들이 잇달아 수상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 극단주의 부상에 따른 세계적 혼란상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왕은철 전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구르나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아랍계 아프리카인들의 디아스포라 경험을 다루고 있다”며 “세계 곳곳에서 이슬람문화와 다른 문화권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한림원이 아프리카 출신 무슬림 작가에게 눈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수상자 발표 당시 자신의 집 주방에 있던 구르나는 “(노벨상 수상 소식이) 장난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1000만 크로나(약 13억5600만 원)의 상금을 받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6년 전 서울을 떠나 농촌으로 터전을 옮겼다. 아침이면 멀리 산과 들이 보이는 집에서 햇살을 받으며 일어난다. 맑은 공기를 실컷 마시며 느긋하게 산책하고, 가끔 근처 텃밭에서 한 끼 먹을 채소를 따온다. 하지만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리는 귀농(歸農)은 아니다. 다양한 일을 하며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버는 귀촌(歸村)의 삶이다. 도시에서보다 덜 쓰니 덜 벌고도 살 만하다. 지난달 에세이 ‘귀촌하는 법’(유유)을 펴낸 이보현 씨(42) 이야기다.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농사를 짓지 않아도, 여자 혼자서도 귀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귀농에 비해 귀촌은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아 도전해볼 만하다는 것. “사는 곳이 달라지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지 않나요.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지 않고 대신 강과 하늘을 더 자주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충분히 떠나볼 만하다고 생각했죠.” 전남 나주 출신인 그는 1997년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한 뒤 2011년까지 서울살이를 했다. 출판사 등에서 일하며 빌라와 원룸에 거주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다고 소리치고, 심신이 지칠 때까지 야근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앞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새벽까지 잠 못 이루기 일쑤였다. 결국 2015년 전북 완주군 협동조합에 취업하면서 완주에 정착해 지금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는 “어느 순간 서울에서의 삶은 내게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연고 없는 농촌에 여성 홀로 정착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지 못했다. 다행히 다른 귀촌인과 알고 지내며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 읍내 아파트를 구해 생활에 큰 불편을 겪지 않았다. 그는 협동조합을 1년 정도 다닌 뒤 그만두고 지역주민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맡거나 카페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렇게 번 돈이 한 달에 100만∼150만 원. 40m² 아파트 월세 10만 원 등 여러 생활비를 합쳐도 수입을 넘지 않는다. 그는 “카페에 가는 대신 직접 커피를 내리고, 외식하는 대신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요리해 먹으면서 생활비를 줄였다”며 “넉넉하지는 않지만 혼자 살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귀촌 팁을 알려 달라고 하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곳에서는 새 친구를 사귀는 일이 가장 중요하죠. 귀촌인들이 많이 오는 요가, 독서, 노래 모임에 자주 출석하고 용기를 내 사람들과 어울리는 노력을 해야 해요. 내가 마음 편히 자주 다닐 수 있는 단골 가게가 있어도 좋죠. 느슨하게라도 누군가와 연결돼 있어야 새로운 삶도 가능합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7일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그동안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았던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의 대표작이 연달아 번역 출판됐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시 관련 책 판매량이 늘어나는 특수를 노리고 수상자 발표 시기에 맞춰 작품을 출간한 것. 문학동네는 프랑스 여성 소설가 마리즈 콩데(84)의 에세이 ‘울고 웃는 마음’을 지난달 24일 펴냈다. 이 에세이엔 식민지 흑인 여성으로서 차별 대우를 받아온 그의 자전적 삶이 담겨 있다. 콩데는 중남미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과들루프 출신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내부 ‘#미투(MeToo·나도 당했다)’ 문제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내지 못한 2018년 스웨덴 문화계 인사들은 그에게 대안 노벨문학상인 뉴아카데미상을 수여했다. 문학동네는 또 연말부터 장편소설 ‘이반과 이바나의 경이롭고 슬픈 운명’, 에세이 ‘민낯의 삶’ ‘음식과 기적’ 등 콩데의 작품을 연달아 출간할 계획이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콩데의 작품은 2019년 출간된 장편소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은행나무)가 유일했다. 송지선 문학동네 해외문학5팀 편집자는 “뉴아카데미상 수상 후 콩데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올라간 상황”이라며 “노벨문학상 수상 시 판매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해 작품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출판사 난다는 지난달 30일 캐나다 여성 시인 앤 카슨(71)의 시집 ‘짧은 이야기들’과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을 함께 출간했다. 어린 시절 그리스어에 매료돼 문학에 발을 들인 카슨은 고전학자로 활동한다. 이 시집들은 고전에서 영감을 얻거나 신화 속 등장인물을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는 그의 작품 세계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2001년 여성 최초로 T S 엘리엇상을 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얻은 인물. 에세이와 단편소설집이 국내에 출간된 바 있지만 시집의 국내 번역 출판은 처음이다. 김민정 난다 대표는 “그동안 읽기 어려운 작가로 인식됐던 카슨을 소개하기 위해 국내 독자들 눈높이에 맞춰 쉬운 번역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유명 도박사이트 나이서오즈에 따르면 카슨과 콩데는 각각 노벨문학상 후보 3, 6위에 올라 있다. 해마다 유력 후보로 꼽히는 일본 남성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72)는 후보 1위지만 일본계 영국 남성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67)가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만큼 올해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케냐 여성 소설가 응구기 와 시옹오(84)가 2위, 러시아 여성 소설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78)가 4위, 캐나다 여성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82)가 5위다. 지난해 미국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78)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만큼 올해 수상자로는 시인보단 소설가에게 무게가 실리고 있다. 2019년 폴란드 여성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59)와 오스트리아 남성 소설가 페터 한트케(79) 등 유럽 출신이 수상해 제3세계 출신 수상자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종 문제가 커지는 만큼 유색인종 작가 선정 가능성도 있다. 2018년 성추행 논란을 일으킨 한국 남성 시인 고은(88)의 수상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대형출판사 해외문학팀 관계자는 “2016년 미국 가수 밥 딜런(80) 수상 이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 출판사들은 한국 독자들에게 친숙한 작가가 선정돼야 노벨문학상 특수가 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7일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그동안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았던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들의 대표작이 번역 출판됐다. 노벨문학상 수상 특수를 노리고 시기에 맞춰 출간되고 있는 것. 문학동네는 2018년 대안문학상 수상 작가인 흑인 프랑스 여성 소설가 마리즈 콩데의 에세이 ‘울고 웃는 마음’을 지난달 24일 출간했다. 이 에세이엔 프랑스령 과들루프에서 태어나 피식민자 흑인 여성으로서 차별 대우를 받은 그의 자전적 삶이 담겨있다. 문학동네는 연말부터 장편소설 ‘이반과 이바나의 경이롭고 슬픈 운명’, 에세이 ‘민낯의 삶’ ‘음식과 기적’을 연달아 출간할 계획이다.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콩데의 작품은 2019년 출간된 장편소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은행나무)가 유일했지만 작품들이 많아지는 셈이다. 송지선 문학동네 해외문학 5팀 편집자는 “이 작품들이 그동안 소개되지 않았던 것은 국내에서 판매량이 적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된다면 판매량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해 준비했다”고 말했다. 출판사 난다는 지난달 30일 캐나다 여성 시인 앤 카슨의 시집 ‘짧은 이야기들’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을 연달아 출간했다. 그동안 한겨레출판사에서 에세이 ‘남편의 아름다움’, 소설집 ‘빨강의 자서전’이 출간됐지만 대표 시집이 소개되지 않은 점을 고려했다. 김민정 난다 대표는 “그동안 어려운 작품으로 인식됐던 앤 카슨을 소개하기 위해 국내 독자들 눈높이에 맞춰 쉬운 번역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는 지난해 미국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이 수상한 만큼 시인보단 소설가 수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2018년 폴란드 여성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와 오스트리아 남성 소설가 페터 한트케 등 유럽 출신이 수상한 만큼 제3세계 출신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종주의 문제가 커지는 만큼 흑인 작가 선정 가능성도 있다. 여성주의 물결이 강한 만큼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한국 시인 고은의 수상 가능성은 낮다는 분위기다. 유명 도박사이트 나이서오즈에 따르면 노벨문학상 후보 순위는 1위 무라카미 하루키(일본) 2위 응구기 와 시옹오(케냐) 3위 앤 카슨(캐나다) 4위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러시아) 5위 마가렛 애트우드(캐나다) 6위 마리즈 콩데(프랑스) 등의 순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2016년 미국 가수 밥 딜런 수상 이후 한림원 선택을 점칠 수 없다. 국내 출판사 편집자들 사이에선 마가렛 애트우드, 밀란 쿤데라 등 국내 독자층이 넓은 작가 선정 시 노벨문학상 특수가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알록달록하고 동화적인 공간에서 처절하고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더 충격적이지 않나요.”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채경선 미술감독(사진)은 1일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극 중 목숨을 걸고 게임에 참가한 456명의 끔찍한 상황과 대비되는 형형색색의 세트장은 화제가 됐다. 그는 “오징어게임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 세트장을 만드느라 1년 4개월간 고생한 걸 모두 보상받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오징어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과 영화 ‘도가니’(2011년)에서 처음 만난 뒤 ‘수상한 그녀’(2014년), ‘남한산성’(2017년)에서 합을 맞춰와 작업이 수월했다”고 덧붙였다. 인간의 목숨이 걸린 게임을 다루는 장르인 데스게임을 연출할 땐 보통 무채색을 많이 쓴다. 고통에 가득 찬 등장인물의 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은 유채색 배경과 소품을 사용해 반전의 묘미를 노렸다. 게임이 벌어지는 공간은 청명한 하늘색이고, 참가자들을 죽이는 병정들은 분홍색 옷을 입었다. 그는 “데스게임을 주도하는 병정이 귀여운 분홍색 옷을 입으면 기괴함이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며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동화에서 쓰일 법한 색을 많이 사용했다”고 했다.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등장하는 영희 로봇도 노란색 주황색으로 된 밝은 옷을 입고 있다. 그는 “1970, 80년대 교과서 표지에 나왔던 ‘철수와 영희’ 캐릭터의 영희를 본떠 만들었다”며 “영희 로봇의 앞머리는 제 딸의 앞머리와 똑같다”고 했다. 그는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가 입고,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에서 판매될 정도로 화제가 된 참가자들의 초록색 트레이닝복에 대해선 “1970, 80년대에 입던 트레이닝복을 참고했다. 그 시대 트레이닝복은 초록색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다가 참가자들이 목숨을 걸고 구슬치기를 하는 장면에서 울었다. 구슬치기가 벌어지는 옛 골목 세트장은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표절 논란에 대해선 “미술작품, 그림책,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다른 데스게임 작품을 참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최근 논란이 된 화천대유자산관리는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설립됐다. 이 소규모 회사가 92만 m² 부지에 5903채의 대단지 아파트를 짓는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건 금융 덕분이었다. 화천대유는 3년간 약 6300억 원의 자금을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통해 조달했다. 금융권 자금이 극소수 투자자들의 천문학적 수익 창출에 쓰인 셈이다. 영국 경제 저널리스트이자 조세 분석가인 저자에 따르면 금융회사들은 수익률이 높은 투자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자금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입하는 사모펀드다. 민간 주도로 진행되는 개발사업도 투자 대상이다. 이 같은 투자를 통해 금융권은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금융회사는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부를 창출하는 본연의 사회적 역할은 등한히 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첨단 자동차 산업처럼 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제조업이나 신사업 연구개발 투자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하다는 것. 그 결과 자금을 융통하지 못한 산업군이 몰락해 사회성장은 둔화된다. 이른바 ‘금융의 저주’다. 저자는 구체적인 사례와 수치들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예를 들어 2002년 영국 런던에 설립된 경찰훈련센터 건물을 세운 건 미국 대형은행과 영국 자산운용사 등 10여 개 금융사가 합작해 만든 민간 투자사다. 건물 건축비용은 약 1700만 파운드(약 270억 원). 만약 영국 정부가 25년 상환 조건으로 5% 이율의 채권을 발행해 건물을 지으면 3700만 파운드(약 589억 원)에 운영비 등을 더한 금액을 부담하면 된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임차비용과 민간 수익분 등을 포함해 25년간 민간 투자사에 총 1억1200만 파운드(약 1784억 원)를 지불하는 계약을 맺었다. 정부로선 적지 않은 손해를 떠안은 셈이다. 이 같은 국가 사회적 손실의 원인은 금융의 비대화다. 금융에 대한 법적규제 장치가 허술해지면서 금융권의 투기가 활성화됐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업무를 구분하기 위해 1933년 제정한 글래스스티걸법은 금융규제 완화 흐름과 더불어 1999년 폐지됐다. 무역 등 실질적 가치가 오가는 금융투자를 제외하고 국가 간 금융투기를 엄격히 제한한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도 세계화 흐름과 함께 무력화되고 있다. 그 결과 사회적 피해는 막심하다. 1990∼2023년 미국 금융권이 미국 경제에 야기한 피해액은 최대 22조7000억 달러(약 2경6899조5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비대해진 금융부문을 이대로 두면 1995∼2015년 영국 경제에 끼치는 피해 비용이 4조5000억 파운드(약 7168조2300억 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소개한다. 가구당 17만 파운드(약 2억7000만 원)에 이르는 비용이다. 저자는 대안으로 국가경제에서 금융의 역할을 축소할 것을 제안한다. 각국이 금융권을 감시하는 기구를 설립하고 관련법을 만들어야 하며 금융사의 해외 조세도피를 근절하기 위한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금융의 비대화로 인한 경제위기를 다시 맞지 않으려면 자본 통제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금융의 저주를 푸는 열쇠는 결국 합리적 금융규제와 더불어 경제주체들의 끊임없는 감시, 민주적 통제가 아닐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알록달록하고 동화적인 공간에서 처절하고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더 충격적이지 않나요.”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채경선 미술감독은 1일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극 중 목숨을 걸고 게임에 참가한 456명의 끔찍한 상황과 대비되는 형형색색의 세트장은 화제가 됐다. 그는 “오징어게임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 세트장을 만드느라 1년 4개월 간 고생한 걸 모두 보상받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오징어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과 영화 ‘도가니’(2011년)에서 처음 만난 뒤 ‘수상한 그녀’(2014년) ‘남한산성’(2017년)에서 합을 맞춰와 작업이 수월했다”고 덧붙였다. 인간의 목숨이 걸린 게임을 다루는 장르인 데스게임을 연출할 땐 보통 무채색을 많이 쓴다. 고통에 가득 찬 등장인물의 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은 유채색 배경과 소품을 사용해 반전의 묘미를 노렸다. 게임이 벌어지는 공간은 청명한 하늘색이고, 참가자들을 죽이는 병정들은 분홍색 옷을 입었다. 그는 “데스게임을 주도하는 병정이 귀여운 분홍색 옷을 입으면 기괴함이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며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동화에서 쓰일법한 색을 많이 사용했다”고 했다. 첫 번째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등장하는 영희 로봇도 노란색, 주황색으로 된 밝은 옷을 입고 있다. 그는 “1970, 80년대 교과서 표지에 나왔던 ‘철수와 영희’ 캐릭터의 영희를 본 따 만들었다”며 “영희 로봇의 앞머리는 제 딸의 앞머리와 똑같다”고 했다. 그는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가 입고, 온라인 쇼핑몰 이베이에서 판매될 정도로 화제가 된 참가자들의 초록색 트레이닝복에 대해선 “1970, 80년대에 입던 트레이닝복을 참고했다. 그 시대 트레이닝복은 초록색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다 참가자들이 목숨을 걸고 구슬치기를 하는 장면에서 울었다. 구슬치기가 벌어지는 옛 골목 세트장은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표절 논란에 대해선 “미술작품, 그림책,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다른 데스게임 작품을 참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호재기자 hoho@donga.com}

“처음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땐 너무 재밌었는데 글 쓰는 게 일이 되니 재미가 없습니다. 매주 1만5000자씩 과제를 내는 게 고역이네요.” 최근 웹소설 전문학원 스토리튠즈 수강생 80여 명이 모인 익명 채팅방에 한 수강생이 올린 글이다. 자칭 웹소설 마니아로 대박을 꿈꾸며 웹소설 강의를 듣기 시작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는 것. 다른 수강생들도 “작가로 데뷔하면 매일 5000자씩 써야 하는데 걱정이 앞선다” “취미가 일이 되니 흥미가 사라졌다”며 하소연했다. 총 12회의 웹소설 강의가 진행될수록 지쳐가는 수강생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수강생들은 매주 과제를 내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꼈다. 이 때문에 강의 내내 강사들은 “노력하지 못하면 작가로 살아남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웹소설 작가들은 보통 하루 5000자 안팎의 웹소설 한 편을 올린다. 한 달간 쓸 경우 15만 자에 달한다. 웬만한 순문학 단편소설 분량과 맞먹는다. 웹소설은 1년간 약 200회 연재된다. 초심자가 해내기는 만만치 않은 작업량이다. 작가들은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몇 개월 동안 쓴 작품을 스스로 접기도 한다. 중간에 체력이 떨어져 연재를 포기하는 일도 있다. 빠르게 변하는 웹소설 트렌드를 따라잡는 일도 만만치 않다. 요즘 유행하는 작품을 계속 읽지 않으면 흐름에 뒤처지기 때문이다. 강사들은 “수강생들이 최근 유명 작품을 읽지도 않고 글부터 쓰려고 한다”며 쓴소리를 했다. 데뷔 후 유명 작가로 살아남는 건 훨씬 어렵다. 웹소설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는 이미 4000개 이상의 작품들이 나와 있다. 이 중 500개 작품이 연재되고 있다. 인기가 높아진 만큼 경쟁도 치열한 셈이다. 웹소설 작가의 일상도 꿈만 같지는 않다. 구상, 집필, 퇴고에 하루 10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 이로 인해 목, 허리 디스크에 시달리는 이도 많다. 한 웹소설 작가는 “웹소설 시장은 요식업과 비슷하다”며 “누구나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은 낮지만 데뷔하고 살아남으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웹소설 작가로 성공하려면 성실함과 노력이 필수라고 말한다. 김휘열 한국영상대 웹소설과 교수는 “웹소설은 다른 문학 분야와 달리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분량을 써야 하기에 ‘투잡’을 뛰다 전업 작가로 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며 “취미나 도전에 의의를 두지 않고 수익을 얻겠다면 단단히 각오를 하고 뛰어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웹소설의 경쟁자는 웹툰, 유튜브 등 스낵 컬처입니다.” 최근 웹소설 전문학원 스토리튠즈의 심화반 수업에서 현직 웹소설 작가인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웹소설이 출퇴근길이나 점심시간 등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즐기는 콘텐츠인 만큼 스낵 컬처의 특성을 살려야 한다는 것. 웹소설은 보통 회당 5000자로 구성돼 읽는 데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 때문에 강사는 웹소설을 쓸 때는 호흡이 짧은 단문을 쓰고, 대화 장면을 자주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마블 영화 ‘아이언맨’이나 일본 만화 ‘원피스’를 사례로 들며 “캐릭터의 외모를 통해 시각적 특징을 부각하라”고 조언했다.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콘텐츠를 찾아다니는 독자들을 놓치지 않으려면 문장을 읽는 즉시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장면이 그려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간편하고 빠르게 소비하는 스낵 컬처는 통쾌한 서사를 통해 독자에게 만족감을 줘야 한다. 이른바 ‘사이다’ 서사다. 현실에서 비정규직 말단 직원인 주인공이 가상세계에선 세상을 구하는 영웅으로 각종 괴물과 싸우는 웹소설 ‘전지적 독자시점’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이 누적 조회수 3억6000만 회를 넘긴 데 이어 영상화가 추진 중인 것도 서사 덕분이다. 반면 순문학처럼 주인공이 끊임없이 고민하는 답답한 ‘고구마’ 전개가 펼쳐지면 십중팔구 실패한다. 강사는 “대리 만족을 주기 위해 주인공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 또 주인공은 고난을 겪되 결국엔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사는 각 회 막바지에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며 다음 회를 예고하는 에피소드를 남기는 ‘떡밥’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매일 새로운 회가 올라오는 웹소설에서 다음 회가 궁금해진 독자는 지갑을 열기 쉽다. 특히 등장인물이 죽음의 순간에 가까워지거나 로맨스가 시작될 때 회차를 끝내는 것도 기존 웹소설이 많이 쓰는 방식이다. 이는 업계에서 ‘절단 신공’이라고 불린다. 각각 조회수 5억 회, 7000만 회를 기록한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과 ‘재혼황후’ 등 웹소설의 드라마 제작이 추진 중인 것도 이런 방식에 힘입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웹소설의 지식재산권(IP)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융희 청강문화산업대 웹소설 창작 전공 교수는 “스마트폰에 특화된 웹소설은 길이가 짧으면서도 독자를 어떻게 빠르게 사로잡을지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진 분야”라며 “최근 웹소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IP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고교생 웹소설 공모전을 연 이기호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교수(학과장)는 “웹소설은 문학적 표현보다 다음 회를 읽게 만드는 서사 구조에 힘을 실었다”며 “연재에 중점을 두면서 발달한 장점이 영상화에서도 강점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한때 문청(文靑)이던 대기업 부장, 어릴 적부터 작가를 꿈꾸던 주부, 웹소설을 즐겨보는 고등학생….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웹소설에 뛰어들고 있다. 웹소설 시장 규모가 지난해 6000억 원으로 성장하고, 인기를 얻은 작가는 연간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이르는 수익을 거두고 있기 때문. 본보는 이 시장의 뜨거운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문학·출판 담당 기자가 직접 웹소설 창작 강의를 12회에 걸쳐 들어봤다. 웹소설에 도전하는 이들과 작가 데뷔 과정 등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현직 작가와의 1 : 1 첨삭 수업을 거쳐 웹소설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서 작가로 데뷔할 수 있습니다.” 6월 29일 웹소설 전문 학원 스토리튠즈의 웹소설 창작 강의 입문반 첫 수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이뤄진 강의에서 현직 웹소설 작가인 강사 샤이니크(필명)가 이렇게 말하자 채팅창엔 질문이 쏟아졌다. “어떻게 해야 장학생이 될 수 있냐” “정말 데뷔할 수 있냐” 등 희망에 가득 찬 물음이었다. 이날 수강생은 50여 명. 웹소설 작가의 수입이 웬만한 직장인보다 낫다는 말에 웹소설 강의가 성황을 이룬 것이다. 강사는 “강의를 열심히 듣고 꾸준히 쓰면 누구든 데뷔할 수 있다. 작가로 성공할 수 있는 이정표를 세워드리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웹소설은 종이책, 전자책과 달리 온라인 플랫폼에서 우선적으로 유통되는 소설을 의미한다. 주로 카카오, 네이버가 운영하는 대형 플랫폼을 통해 볼 수 있다. 독자가 100∼200원을 소액결제하면 읽는 데 5분 정도 걸리는 웹소설 1편을 볼 수 있다. 이날 강사는 “웹소설은 타깃 독자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웹소설은 독자의 성별에 따라 작품의 장르가 명확히 갈리기 때문.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지, 주인공이 무술을 펼치는 무협 웹소설은 남성이 주로 읽는다. 반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현대·사극 로맨스 웹소설은 여성 독자가 타깃이다. 강사는 “주인공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소설 초반이나 제목에 드러나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누적 조회수 3000만 회를 넘기고 영상화가 추진 중인 유명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은 재벌가 막내아들이 경영자가 되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웹소설 ‘탑 매니지먼트’가 2018년 동명의 웹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흥행한 것도 초보 매니저가 성장해 나가는 서사를 명확히 드러낸 덕이다. 강사는 시간을 과거로 이동하는 ‘회귀’, 다른 존재에 영혼을 옮기는 ‘빙의’,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나는 ‘환생’ 등 웹소설에서 자주 사용되는 장치를 적절히 활용해 소설적 재미를 높이라고도 했다. 기초적인 글쓰기 실력만 있으면 웹소설 작가 데뷔 가능성은 순문학계보다 높다. 2시간 30분씩 4회가 진행된 입문반 강의만 듣고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승희 씨(36·여)는 “신춘문예나 문예지 공모전처럼 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순문학계와 달리 웹소설 작가는 꾸준히 준비하면 데뷔가 가능한 것 같다”고 했다. 수강생은 연령도, 직업도 다양하다. 장두호 씨(18)는 “자격증이 없어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나 쓸 수 있는 점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미성년자지만 글쓰기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마음에 도전했다”고 했다. 최진영 씨(31)는 “3년 전 순문학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수입이 사실상 없었다. 반면 웹소설 작가는 밥벌이가 가능하다”며 “시인으로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웹소설을 쓰며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대학 시절 문청이던 대기업 부장, 어릴 적부터 작가를 꿈꾸던 주부, 웹소설을 즐겨보는 고등학생…. 일반인들이 웹소설에 뛰어들고 있다. 웹소설 시장 규모가 지난해 6000억 원으로 성장하고, 유명 작가는 연 1억 원의 수익을 거두고 있기 때문. 본보는 웹소설 시장의 뜨거운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문학·출판 담당 기자가 직접 웹소설 창작 강의를 12차례 수강해봤다. 이곳엔 정말 대박의 기운이 서려 있을까. 웹소설에 도전하는 이들과 작가 데뷔 과정 등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현직 작가와의 1:1 첨삭 수업을 거쳐 웹소설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서 작가로 데뷔할 수 있습니다.” 6월 29일 웹소설 전문 학원 스토리튠즈의 웹소설 창작 강의 입문반 첫 수업에서 현직 웹소설 작가인 강사 샤이니크(필명)가 이렇게 말하자 채팅창엔 질문이 쏟아졌다. “어떻게 해야 장학생이 될 수 있냐” “정말 데뷔할 수 있냐” 등 희망에 가득 찬 물음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진행된 강의였지만 이날 참석한 수강생은 50여 명에 달했다. 웹소설 작가의 수입이 웬만한 직장인보다 낫다는 말에 웹소설 강의가 바글거린 것. 강사는 “강의를 열심히 듣고 꾸준히 쓰면 누구든 데뷔할 수 있다. 작가로 성공할 수 있는 이정표를 세워드리겠다”고 자신했다. 웹소설은 종이책, 전자책과 달리 온라인 플랫폼에서 우선적으로 유통되는 소설을 의미한다. 주로 카카오, 네이버가 운영하는 대형 플랫폼을 통해 볼 수 있다. 독자가 100~200원을 소액결제하면 읽는데 5분 정도 걸리는 웹소설 1편을 볼 수 있다. 이날 강사는 “웹소설은 타깃 독자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웹소설은 독자의 성별에 따라 작품의 장르가 명확히 갈리기 때문.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지, 주인공이 무술을 펼치는 무협 웹소설은 남성이 주로 읽는다. 반면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는 현대·사극 로맨스 웹소설은 여성 독자가 타깃이다. 강사는 “주인공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소설 초반이나 제목에 드러나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누적 조회수 3000만 회를 넘기고 영상화가 추진 중인 유명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은 재벌가 막내아들이 경영자가 되는 이야기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웹소설 ‘탑 매니지먼트’가 2018년 동명의 웹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흥행한 것도 초보 매니저가 성장해나가는 서사를 독자에게 명확히 드러낸 덕이다. 강사는 시간을 과거로 이동하는 ‘회귀’, 다른 존재에 영혼을 옮기는 ‘빙의’,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나는 ‘환생’ 등 웹소설에서 자주 사용되는 장치를 적절히 활용해 소설적 재미를 높이라고도 했다. 기초적인 글쓰기 실력만 있으면 웹소설 작가 데뷔 가능성은 순문학계보다 높다. 2시간 30분씩 4회가 진행된 입문반 강의만 듣고 장학생으로 선발된 이승희 씨(36·여)는 “웹소설 강의가 창작 비법을 족집게처럼 짚어줘 빠른 데뷔에 도움이 됐다”며 “신춘문예나 문예지 공모전처럼 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순문학계와 달리 웹소설 작가는 꾸준히 준비하면 데뷔가 가능한 것 같다”고 했다. 다양한 연령, 직업을 지닌 수강생도 몰려들고 있다. 수강생 장두호 씨(18)는 “자격증이 없어도,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나 쓸 수 있는 점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미성년자지만 글쓰기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마음에 도전했다”고 했다. 수강생 최진영 씨(31)는 “3년 전 순문학 시인으로 등단했지만 수입이 사실상 없었다. 반면 웹소설 작가는 밥벌이가 가능하다”며 “시인으로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자전적 경험을 담은 웹소설을 쓰며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의 한국 상륙이 다가오고 있다. 11월 12일부턴 월 9900원에 디즈니플러스의 다양한 콘텐츠를 스마트폰이나 TV로 볼 수 있다. 디즈니플러스엔 마블 스타워즈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다양한 브랜드가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눈길이 가는 브랜드는 단연 디즈니와 픽사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인어공주, 토이 스토리, 뮬란, 인크레더블, 겨울왕국…. 셀 수 없이 많은 애니메이션을 더 심층적으로 즐길 방법이 없나 생각하다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철학자들이 다양한 애니메이션에 숨겨진 철학적 메시지를 분석한 철학서다. 주로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이 철학자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애들이나 보는 작품이라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명 철학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좋은 콘텐츠로 평가한다. 디즈니 작품에 어른과 아이 모두가 열광하는 데엔 철학적 담론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 “철학적 여정을 시작할 장소로 디즈니가 창조한 경이로운 세상보다 더 완벽하고 좋은 곳은 없을 것”이라는 서문이 인상 깊다. 예를 들어 디즈니 작품에는 가장이 가족 구성원에 대해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가족을 지배·통솔하는 가부장제를 지지했던 영국 사상가 로버트 필머(1588∼1653)와 자녀의 행동 자유를 주장한 영국 철학자 존 로크(1632∼1704)로 대표되는 철학적 논쟁이 녹아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꼽추’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의 부주교는 고아가 된 콰지모도를 거둔다. 부주교는 콰지모도를 평생 종탑에 가두고 종지기로 일하게 하지만 콰지모도는 결국 자유를 찾아 바깥세상을 향해 떠난다. 부주교와 콰지모도 사이의 대립 관계는 마치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와 겪는 갈등과 비슷하다는 분석이다. ‘라이온 킹’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찰하는 실존주의가 녹아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아버지를 잃은 귀여운 아기 사자 심바가 초원을 떠돌며 복수를 위해 살 것인지 삶을 즐기며 살지 고민하는 서사는 영국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희곡 ‘햄릿’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미녀와 야수’엔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기원전 427년∼기원전 347년)의 동굴 이론이 녹아 있다. 마법에 걸린 뒤 성에 갇힌 야수는 현실을 보지 못하고 그림자만 보면서 살아가는 동굴 속 죄수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해석이다. 요즘 출판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OTT를 보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책을 읽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하소연을 듣곤 한다. 한정된 여가 시간에 무엇을 즐길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책과 OTT는 경쟁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다 감동을 받으면 다시 이 책을 열어보고 싶다. 애니메이션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다른 누군가와 애니메이션의 해석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책들이 많아진다면 책과 OTT는 동반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플랫폼 업체들의 과다 수수료 논란이 출판계로도 번지고 있다. 웹소설 수익의 상당수를 카카오와 네이버가 운영하는 웹소설 플랫폼이 가져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작가가 쓴 웹소설은 출판사를 거쳐 다듬어진 뒤 플랫폼을 통해 유통된다. 플랫폼은 전체 수익의 30%를 기본 수수료로 가져간다. 플랫폼들은 작품을 화면 상위에 노출하거나 수시 이벤트에 참가하는 대가로 기타 수수료를 요구하기도 한다. 각종 기타 수수료를 합치면 15%에 달해 플랫폼이 가져가는 총수수료는 최대 45%가 되기도 한다. 독자가 1회 대여요금이 200원인 웹소설을 한 편 결제할 경우 많으면 90원을 플랫폼이 가져가는 셈. 남은 110원은 작가와 출판사가 7 대 3에서 9 대 1까지 다양한 비율로 나눠 가진다. 통상 출판사에는 10∼40원, 작가에게는 70∼120원 정도가 돌아간다. 웹소설 플랫폼 수수료 과다 논란이 벌어진 건 카카오와 네이버가 이 시장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7, 8월 웹소설 이용 경험자 2008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9.9%가 카카오의 웹소설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를 주로 이용한다고 답했다. 31.1%는 네이버웹소설, 네이버시리즈 등 네이버의 웹소설 플랫폼을 이용했다. 카카오, 네이버 양대 업체가 웹소설 시장의 71%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출판사들이 소속된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14일 ‘카카오와 네이버의 출판 생태계 파괴 행위 시정을 촉구한다’는 성명서를 내고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출협 관계자는 “카카오페이지는 독자들에게 웹소설을 공짜로 제공하는 ‘기다리면 무료’라는 마케팅을 펼친다. 이는 결국 출판사와 작가가 무료로 웹소설을 공급하게 만드는 셈”이라고 했다. 플랫폼은 일부 작가에게 1000만∼2000만 원의 선인세를 주고 총수수료를 최대 45%로 높이기도 한다. 웹소설이 많이 팔릴수록 플랫폼의 수익이 커지는 구조다. 웹툰화, 영상화 등 2차 저작권 활용은 해당 플랫폼을 통해 해야 한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들어가기도 한다. 작가에게 불리한 조건이지만 유명 작가도 시장을 장악한 플랫폼에서 배제될까 우려해 이를 받아들인다. 물론 플랫폼 업체가 마니아에 치중됐던 웹소설을 대중에게 확대함으로써 시장 자체를 키우는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2013년 100억 원에 불과했던 웹소설 시장 규모가 지난해 6000억 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될 만큼 껑충 뛴 것은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인 플랫폼의 공이라는 것. 한 소규모 웹소설 플랫폼 관계자는 “시장 확대 없이 골목상권을 침해한 카카오모빌리티와 달리 웹소설은 플랫폼의 합류로 시장이 커진 점이 차이”라고 했다. 한 웹소설 작가는 “작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세가 10%에 불과한 기존 종이 출판계보다 웹소설의 상황은 오히려 나은 편”이라고 했다. 이융희 청강문화산업대 웹소설 창작 전공 교수는 “양적으로 팽창한 웹소설 시장이 해외로 확장해 나가려면 먼저 작가 및 출판사와 수수료를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한 플랫폼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웹소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인 파란미디어의 이문영 편집주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를 통해 인세 논란에 대응한 것처럼 웹소설 시장에 맞는 별도 표준계약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이호재 hoho@donga.com·전채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