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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국보 제274호는 영구 결번으로 남아 있다. 국보 제273호(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에서 제275호(도기 기마인물형 뿔잔)로 바로 건너뛴다는 얘기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당초 국보 제274호는 ‘귀함별황자총통(龜艦別黃字銃筒)’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에 장착된 화포로 인정돼 문화재위원회가 1992년 9월 국보로 지정했지만, 4년 뒤 지정 해제했다. 위조품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짜 국보 해프닝은 이렇다. 》해군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은 1992년 8월 18일 경남 통영군 한산면 앞바다에서 귀함별황자총통을 인양했다고 발표했다. 불과 이틀 뒤 문화재위원회 최영희 위원과 이강칠 전문위원이 “화포 형태와 명문(銘文)으로 보아 16세기 말 제작된 진품”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어 다음 날 문화재위원회가 이를 국보로 지정하기로 의결했다. 인양된 지 불과 사흘 만에 국보 지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진실은 엉뚱한 곳에서 밝혀졌다. 해군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과 유착된 수산업자 비리를 검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당시 발굴단장인 황동환 해군 대령이 골동품상과 짜고 위조품을 미리 바다에 빠뜨린 사실이 드러났다. 인양 당시 귀함별황자총통 표면의 글씨가 똑똑히 읽힐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은 게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충무공의 혼이 깃든 무기를 발견했다는 열기에 묻히고 말았다. 심지어 조선시대 총통에서 나올 수 없는 아연 성분이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검출됐지만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은 이 사실을 덮었다. 2008년에는 국내 유일의 군사용 쇠북으로 인정돼 보물 제864호로 지정된 금고(金鼓)가 가짜로 판명이 났다. 쇠북에 새겨진 명문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점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유형문화재의 국가문화재 지정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부실 검증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의해 가짜로 판명이 난 이른바 ‘증도가자’ 검증이 대표적이다. 증도가자가 처음 공개된 2010년부터 활자와 번각본(금속활자로 찍은 책을 목판 위에 놓고 똑같이 다시 새긴 것)의 서체가 서로 다르고 출처도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충분한 검증 없이 올해 국가문화재 지정 절차에 착수한 끝에 국과수 발표 이후 전면적인 재검증에 나선 상태다. 문화재계에서는 유형문화재 검증에서 핵심 단서로 꼽히는 출처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관행을 가장 큰 문제점의 하나로 꼽고 있다. 3년 전 보물 제758-2호로 지정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공인박물관 소장본)의 장물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미술 수집가인 서성철 양지고미술관 관장은 “보물 제758-2호는 박모 씨가 1988년 도난을 당한 장물”이라는 취지의 민원을 올 3월 문화재청에 제기했다. 문화재청에 사진과 내용증명서까지 보냈지만 8개월이 넘도록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문화재청은 본보 취재가 시작된 직후인 이달 19일에야 직원들을 서 관장에게 보내 관련 자료를 받아갔다. 서 관장을 만난 문화재청 직원은 “박 씨가 생전에 쓴 논문에 증도가 사진을 게재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장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설사 보물 제758-2호가 장물로 최종 결론이 나더라도 국가 보물에서 해제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상 국가문화재 지정 해제 사유에 도난품 관련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문화재 지정 단계에서도 소유자가 출처나 소장 경위를 입증할 책임이 없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우리나라 문화재 제도는 출처가 불투명해도 유물 자체의 가치가 높으면 국가 문화재 지정이 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가문화재 지정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단 2명의 문화재 위원 감정 의견에 따라 국보로 둔갑한 귀함별황자총통 사례에서 보듯 폐쇄적인 문화재 감정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문화재 등록예고 기간에 사진과 감정자료 등을 적극적으로 외부에 공개해 여러 전문가들이 다각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sukim@donga.com}
문화재청은 15년 만에 실시하는 무용 분야 인간문화재 선정과 관련해 올 2월 선정 기준과 방식을 새롭게 정했다. 문화재청은 2013년 3월과 6월 태평무와 살풀이춤 인간문화재 선정 계획을 밝혔으나 2년 가까이 지난 올 초에야 기준을 만든 것. 새 기준과 방식의 주요 특징은 개방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과거엔 전수교육조교 중에서 문화재청이 조사를 거쳐 지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수교육조교뿐 아니라 이수자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승무 살풀이의 이매방류(流), 태평무의 강선영류 등 인간문화재의 유파(流派)에 따라 선정하는 대신 유파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에 인간문화재 신청서를 낸 사람은 태평무 4명, 승무 7명, 살풀이 14명 등 25명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이 선정한 심사위원들은 항목에 따라 점수를 매겨 후보자를 선정한다. 심사 항목은 크게 △전승 능력(75점) △전승 환경(20점) △전수 활동 기여도(5점)로 나눠 100점 만점으로 평가된다. 세부적으론 춤 부문별 실기 능력 정도와 리더십, 교수 능력, 평판, 건강 상태, 전승 의지 등을 정성평가로 한다. 이와 함께 최근 10년간 인간문화재 공개 행사에 참여한 실적과 전승 활동 실적, 관련 분야 수상 실적 등이 정량평가로 이뤄진다. 심사위원이 선정한 후보자를 토대로 문화재위원회는 인간문화재 예고 여부를 검토한다. 30일 이상 관보 공고를 실시하고 이 과정에서 이의 제기가 없으면 심의위원회에서 그대로 확정한다. 이의 제기가 있으면 문화재위원회 소위원회가 다시 심의를 해 최종 결정한다.김정은 kimje@donga.com·김상운 기자 }

우리나라가 내년 3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할 후보로 조선왕실 어보(御寶·사진)와 어책(御冊),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25일 최종 선정됐다. 앞서 문화재청은 올 7, 8월 국민공모를 통해 13건의 기록물을 추천받아 세계기록유산 한국위원회의 사전 심사를 거쳤다. 어보와 어책은 왕과 왕비 등을 책봉하거나 시호(諡號)를 내릴 때 만드는 의례용 인장(印章)과 책을 말한다. 국채보상운동은 을사늑약 이후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을 갚기 위해 1907년에 벌인 국민모금 활동이다. 당시 이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기록한 신문, 잡지 등의 자료가 후보로 선정됐다. 최근 일본이 강제징용 산업시설인 하시마(端島·별칭 군함도) 탄광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 데 대한 대응으로 거론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기록물’은 이날 문화재위 심의 대상에도 오르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강제징용 피해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당시 1차 사료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추후 자료를 보강해 내년에 다시 심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이 항일 성격을 띠고 있어 강제징용 기록물까지 등재 후보로 올리기에는 외교적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후덕한 얼굴 위로 각이 진 네모난 모자가 서로 닮았다. 중국인들의 옛 복식으로 알려진 농관(籠冠)을 쓴 인물상이다. 하나는 중국 북위시대 영녕사(永寧寺), 나머지는 부여 정림사(定林寺) 터에서 나왔다. 영녕사는 6세기 초엽, 정림사는 6세기 중엽 이후 각각 건립됐다. 백제 사비시대의 왕실 사찰이 북위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국립부여박물관은 중국 뤄양(洛陽)박물관과 ‘백제 정림사와 북위 영녕사’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 전시는 백제 사비도성 중심에 자리 잡아 왕실 사찰로 추정되는 정림사의 위상을 조명하고, 중국 북위시대 영녕사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뒀다. 뤄양박물관은 인물상을 비롯해 총 46점을 제공했다. 일제강점기 정림사 터를 조사한 후지사와 가즈오(藤澤一夫)의 발굴일지가 처음 공개된다. 내년 1월 24일까지. 041-830-8478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고 해로운 영어 단어가 뭔 줄 아나? 바로 ‘굿잡(good job·그 정도면 잘했어)’이야.”(플레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재즈 밴드 지휘자이자 교사인 플레처는 드러머 앤드루 니먼을 끊임없이 다그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위플래쉬’에서 플레처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괴물로 묘사된다. 그는 인정사정없이 무자비하게 제자를 몰아치는 사이코패스인 동시에 아버지마저 주목하지 않은 평범한 청년의 음악적 잠재력을 알아본 실력자이기도 하다. 그다지 잘살지 못하는 편부모 가정 출신인 앤드루가 믿을 ‘백’이라곤 오직 자신의 실력뿐이다. 플레처는 앤드루가 가진 능력에만 집중했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능력주의’ 신봉자였음이 틀림없다. 누구든 노력하면 각자의 능력만큼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능력주의는 항상 선(善)인가. 그리고 현실에서 과연 실현 가능한가. 저자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모두 “아니요”라고 답한다. 철저한 능력주의가 자칫 플레처로 상징되는 적자생존의 살벌한 사회구조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능력주의는 처음에는 나무랄 데 없는 시스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잔인하고 무자비한 제도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고 말한다.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모로부터 상속받는 일체의 유·무형 자산을 금하지 않는다면 지구상에서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는다. 오로지 능력만으로 평가받기 위해선 각자의 출발점이 똑같아야 하는데, 정치학자 애덤 스위프트의 지적처럼 ‘국영 보육원’을 강제하지 않는 한 진정한 기회균등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가 능력주의 사회라는 믿음 역시 완전한 착각이요, 현실 왜곡이라는 게 저자의 우울한 결론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기원전 10만 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기 구석기시대 유적이 경북 예천군에서 발견됐다. 영남지역에서 가장 많은 5개 구석기 시대 유적층이 한꺼번에 나와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문화재청과 발굴 기관인 동국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예천군 삼강리에서 전기와 중기 구석기시대 유적층 5곳이 최근 발굴됐다. 해당 유적은 낙동강과 접한 퇴적층으로 몸돌(석기를 만드는 돌)과 격지, 찍개, 망치돌 등 석기 160여 점이 출토됐다. 이 가운데 전기 구석기에 해당하는 유적층에서 안산암(安山巖) 등 화산암으로 만든 석기가 발견돼 눈길을 끈다. 삼강리 일대는 화산암이 나올 수 없는 지질 구조다. 연구팀은 경기, 충청 지역에서 거주하며 화산암 석기를 만들던 집단이 수로를 타고 이곳까지 내려온 것으로 보고 있다. 화산암 석기는 전기와 중기 구석기 유적에서 주로 발굴된다. 차순철 동국문화재연구원 책임조사원은 “상주 신상리와 안동 마애리 등 인근 구석기 유적은 출토된 유물이 적어 당시 생활상을 복원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반면 삼강리 유적은 다양한 문화층과 유물이 나와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한국의 독립은 스스로 쟁취한 것인가 무임승차한 것인가. 이와 관련해 당시 한민족이 연합국 승리에 편승한 것이 아니라 이들과 더불어 적극적인 항일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광복을 얻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은 17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과 연합국의 관계’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동양학연구원과 광복회가 공동으로 주관하고 본보가 후원했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의 독립운동과 미국’ 발표문에서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한국 독립투사들의 활약상을 재조명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한국 독립에 철저히 무관심했던 미국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태도를 바꾼다. 일본인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한국인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해외의 독립운동가들은 미국의 항일 비밀공작 활동에 적극 참여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미국 정보기구인 OSS와 한반도 침투작전을 추진했다. 또 재미교포 사회는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시공채를 대거 매입하는 방식으로 도왔다. 특히 미국에서 성장한 한인 청년 800여 명이 미군에 입대해 일본군과 싸웠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의 독립은 연합국과 더불어 국내외에서 치열한 독립투쟁을 벌였기에 가능했다”며 “한반도의 독립이 연합국에 의해 거저 주어졌다는 역사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2차 세계대전 직후 한국의 독립은 스스로 쟁취한 것인가 무임승차한 것인가. 이와 관련해 당시 한민족이 연합국 승리에 편승한 것이 아니라 이들과 더불어 적극적인 항일전쟁을 벌였기 때문에 광복을 얻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은 17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과 연합국의 관계’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동양학연구원과 광복회가 공동으로 주관하고 본보가 후원했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의 독립운동과 미국’ 발표문에서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한국 독립투사들의 활약상을 재조명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한국 독립에 철저히 무관심했던 미국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태도를 바꾼다. 일본인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한국인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해외의 독립운동가들은 미국의 항일 비밀공작 활동에 적극 참여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미국 정보기구인 OSS와 한반도 침투작전을 추진했다. 또 재미교포 사회는 어려운 경제여건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시공채를 대거 매입하는 방식으로 도왔다. 특히 미국에서 성장한 한인 청년 800여명이 미군에 입대해 일본군과 싸웠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의 독립은 연합국과 더불어 국내외에서 치열한 독립투쟁을 벌였기에 가능했다”며 “한반도의 해방이 연합국에 의해 거저 주어졌다는 역사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몇 년 전 국회 취재를 담당했을 때 일이다.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을 돌면서 인사하기에 앞서 선배 기자의 조언을 구했다. 그는 “의원과 보좌관, 비서관에게만 인사하지 말고 전화받는 일이 주 업무인 여비서나 운전기사와도 안면을 트라”고 했다. 얼핏 중요한 보직이 아니라 간과하기 쉽지만, 이들이 민감한 정보를 의외로 많이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국회의원들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을 때 결정적인 첩보는 운전기사나 비서들의 입에서 종종 나온다. 의원의 지근거리에서 온갖 것을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일부 의원들은 친인척을 비서와 운전기사에 고용하기도 한다. 미국도 권력자의 내밀한 얘기는 주변사람으로부터 나오는가 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의 백악관 담당기자 출신인 저자는 백악관 근무자 100여 명을 인터뷰해 존 케네디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미국 대통령 10명의 사생활을 깊이 파고들었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언론 보도만으로 알 수 없는 대통령의 사적인 모습이 행간 곳곳에 녹아있다. 역대 대통령의 사생활에서 가장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아있는 빌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이 가장 극명한 사례일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클린턴의 외도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아침 청소를 하기 위해 클린턴 부부의 방에 들어간 가사도우미가 피가 흥건하게 묻은 침대를 발견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찢어진 머리에서 나온 피였다. 그는 “한밤중에 일어나다 욕실 문에 부딪쳐 다쳤다”고 말했지만, 당시 근무자는 “영부인이 던진 책에 대통령이 머리를 맞았다”고 증언했다. 사실 이 무렵 클린턴 대통령은 힐러리와 감히 한 침대를 쓰지 못하고 몇 달간 서재에서 혼자 잤다고 한다. 미국 백악관에는 집사, 요리사, 플로리스트, 가사도우미, 도어맨 등 총 96명의 정규직과 250명의 시간제 근무자가 일하고 있다. 별도로 백악관 정원을 관리하는 20여 명의 국립공원 직원들이 따로 배치돼 있다. 이들은 모두 미국 연방정부 소속이다. 세계 최고 권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인 만큼 책임도 막중하다. 가사도우미도 마치 보안요원처럼 대통령 주변의 움직임을 꼼꼼하게 관찰해 이상이 생기면 즉각 보고하도록 훈련받는다. 예컨대 2011년 백악관 총기 발사 사건은 한 가사도우미가 발코니 바닥에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진 걸 발견하면서 보안담당자조차 놓친 사실을 뒤늦게 파악할 수 있었다. 특별한 자기희생도 요구된다. 대통령 가족의 일정에 맞춰 움직이다 보니 초과근무는 다반사다.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암살사건 때에도 그랬다. 당시 집사로 근무한 프레스턴 브루스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4일 내내 퇴근하지 않고 백악관을 지켰다. 자신이 모시던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지시에 즉각 응하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백악관 근무자들의 봉사정신이 미국 민주주의에 기여했다고 높게 평가한다. “그들이 미국의 정책에 영향을 주진 못했을지언정, 그들이 해낸 일은 여러 정계 인사들의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들이 없다면 백악관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영산강이 휘돌아 나가는 너른 들판 한가운데 우뚝 솟은 대형 봉분 4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마치 해자처럼 봉분 주위를 둘러싼 폭 4∼5m, 깊이 1m의 구덩이가 눈길을 끈다. 이른바 주구(周溝)라고 불리는 것으로 백제나 신라, 고구려 무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대 마한 고유의 묘제다. 10일 전남 나주시 복암리 고분군. 4개 고분 가운데 너비 38∼42m, 높이 6m로 가장 큰 규모의 3호분에 오르자 지평선 멀리 월출산까지 보였다. 올해 복암리 3호분 발견 20주년을 맞아 당시 이곳을 발굴한 임영진 전남대 교수와 현장을 찾았다. 임 교수는 먼 산을 바라보며 “1500년 만에 세상에 나온 3호분의 첫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것은 백제 전성기인 4세기 중엽 근초고왕이 전남 일대를 장악했다는 역사학계의 통설이 흔들린 순간이었다.》○ 마한의 숨결 1500년을 뛰어넘다 “어어어, 안에 뭐가 있다!” 1995년 11월 복암리 3호분 이장(移葬) 공사를 지켜보던 임 교수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고분 위에 쌓인 흙더미를 걷어내던 포클레인이 순간 멈췄다. 흙구덩이 사이로 감춰져 있던 돌덩이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 것. 3호분 천장석이었다. 몸을 엎드린 채 돌 틈 사이로 안을 살펴보던 임 교수의 가슴이 펄떡펄떡 뛰기 시작했다. 퇴적토로 가득 들어찬 석실 한 귀퉁이에 옹관(甕棺)의 윗부분이 살짝 드러나 있었던 것. 커다란 항아리로 만드는 옹관은 마한의 독특한 매장법이었다. 임 교수는 이곳이 한 번도 도굴되지 않은 ‘처녀분’임을 직감했다. 당시 복암리 3호분은 인근 마을 문중의 선산(先山)으로 100년 넘게 쓰였다. 전남도 지정 문화재가 된 뒤 발굴이 아닌 복원 정비를 위해 봉분 상단에 매장된 문중 묘를 옮기는 과정에서 3호분이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임 교수는 “복원 공사를 채근하던 지방자치단체를 설득해서 발굴로 전환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며 “고(故) 한병삼 국립중앙박물관장께 직접 현장을 보여드린 뒤에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근초고왕 마한 점령 통설 흔들려 1998년까지 3년간 발굴이 진행된 복암리 3호분에서는 옹관묘 22기와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 11기 등 무려 41기의 매장시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3∼7세기에 걸쳐 수십 개의 무덤이 3층으로 조성돼 ‘아파트형 고분’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특히 1996년에 조사된 ‘96석실’에서는 같은 시기 백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대형 옹관 4기를 비롯해 금동신발, 마구류 등이 쏟아져 나왔다. 이때부터 4세기 중엽 백제 근초고왕에 의해 전남지역이 점령됐다는 사학계의 통설에 의문이 제기됐다. 문헌사학계 다수는 “서기 369년 백제 장군 목라근자(木羅斤資)가 심미다례(沈彌多禮) 등 영산강 일대 국가들을 정복했다”는 내용의 일본서기 신공기 49년조에 근거해 4세기 중엽부터 백제가 나주 일대의 마한 소국들을 지배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마한이 중국에 사신을 보냈다는 중국 진서 기록이 290년까지만 확인된 것도 근거로 든다. 이에 따라 백제 금동신발이 출토된 복암리 고분 석실은 백제에서 파견된 관리가 묻힌 것으로 봤다. 그러나 96석실에서 나온 옹관과 석실 구조가 백제가 아닌 이 지역 고유의 양식이라는 사실이 조사 결과 밝혀졌다. 게다가 문헌사학계가 주장하는 백제 정복시기(4세기 중엽) 이후인 5세기 내내 영산강 일대 무덤의 규모가 계속 커지고 있는 현상도 간과할 수 없다. 예컨대 백제 무령왕릉의 봉분 지름이 약 20m인 반면 복암리 고분은 30∼40m에 달한다. 임 교수는 “문헌사학계 다수설에 따르면 신하의 무덤이 왕릉보다 더 크게 지어진 셈”이라며 “요즘도 직급에 따라 관용차의 배기량이 달라지듯 고대사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발굴된 인근 정촌 고분에서도 백제와 다른 양식의 석실이 발견됐다. 백제가 지배한 지역으로 간주하기 힘든 고고학 증거가 잇달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문헌사학계에서도 4∼5세기 백제의 마한 지배는 수도에서 거주하는 지방 유력자들을 통해 백제왕이 다스리는 ‘간접 지배’ 형태였을 것이라는 학설이 대두되고 있다. 적어도 이 시기 백제의 직접 지배설은 점차 힘을 잃고 있는 셈이다.나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5년 동안 계속돼 온 증도가자(證道歌字)의 진위(眞僞) 논란을 끝내기 위해 문화재청이 국가지정문화재 신청이 접수된 102개 금속활자에 대해 이르면 이달 말 전면적인 재검증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달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그동안 증도가자 및 고려활자로 분류된 청주 고인쇄박물관 소장 금속활자 7개가 전부 가짜임을 밝혀낸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2일 “증도가자와 고려활자라고 주장해온 김종춘 다보성고미술 대표가 소장한 101개 활자에 대한 재조사를 6일 요청해 동의를 받았다”며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는 활자 한 개에 대해서도 같은 요청을 전달했으며 이르면 이달 내로 102개 활자의 진위를 가리는 재검증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 활자들을 모두 대전에 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로 보내 분석을 맡길 예정이다. 하지만 애초에 가짜 활자를 진짜라고 잘못 판정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또다시 검증을 맡는 데 대해 벌써부터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말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증도가자 연구 용역보고서를 통해 “고인쇄박물관 활자 7개와 김종춘 대표의 활자 101개는 모두 증도가자와 고려활자”라는 결론을 내린 최종 책임 기관이다.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국과수가 가짜 활자임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3차원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이를 사용하지 않는 등 부실 검증을 한 사실도 최근 밝혀졌다. 한 문화재계 관계자는 “가짜인 청주 고인쇄박물관 활자 7개를 모두 진짜라고 했던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재검증을 맡기는 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 아니냐”며 ”연구소가 과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CT 등 주요 검증은 산하기관인 국립문화재연구소와 대덕 연구단지의 장비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CT 장비와 성분 분석, 진직도(직선도) 조사, 서체 비교 등 다양한 검증 데이터를 갖고 있는 국과수에는 서체 비교만 의뢰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문화재청이 고질적인 부처 이기주의에 빠져 효율적인 검증 방식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재청은 가장 확실한 검증 방식으로 꼽히는 ‘파괴 분석’(활자 일부를 떼어내 분석하는 방식)을 실시할지에 대해서는 “파괴 분석을 시행할 계획은 아직 없지만 논란 종식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증도가자 ::고려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인쇄한 금속활자다. 증도가자 실물이 확인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1377년)보다 최소 138년 앞서는 금속활자 유물이 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9세기 말 한양도성의 모습은 어땠을까. 격동의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한양도성을 다각도로 재조명한 전시회가 열렸다. 서울역사박물관 산하 한양도성박물관은 ‘도성일관(都城一觀)’ 특별전을 개최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방한한 외국인들의 사진과 여행기, 일제강점기 신문, 여행 안내서, 영화 등을 통해 당시 한양도성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1부 ‘변화를 거듭하는 한양도성’에서는 1928년 동아일보에 실린 ‘구문팔자타령(九門八字打鈴)’을 바탕으로 한양도성의 변화상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전시했다. 2부 ‘낯선 이들의 방문’에서는 1890년대 서양 선교사와 여행가, 외교관, 학자 등이 한양도성을 보고 기록한 여행기, 사진, 그림 등을 선보인다. 3부 ‘관광 명소가 된 한양도성’은 일제강점기 한양도성을 소개한 관광 안내 팸플릿과 안내서, 엽서 등을 통해 관광지로 전락한 한양도성의 위상을 보여 준다. 마지막 4부 ‘대중문화로 만나는 한양도성’에서는 ‘황성의 적’(1931년)과 ‘남대문 타령’(1933년), ‘오대강 타령’(1933년), ‘서울노래’(1934년) 등 근대 대중가요에 등장하는 한양도성의 모습을 조명한다. 내년 2월 14일까지. 02-724-0243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부리부리한 눈과 커다란 주먹코, 날카로운 송곳니…. 여기에 붉은 낯빛까지 더해져 강한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오래 쳐다보면 전혀 색다른 모습이 서서히 떠오른다. 마치 씨익 웃는 것 같은 표정의 입술과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외곽선이 친근하고도 해학적인 느낌마저 준다. 9일 서울 종로구 유금와당박물관에 전시된 ‘귀면문마루끝기와’는 액운을 막으려는 벽사((벽,피)邪)의 의미에서 귀신의 얼굴 모양을 새긴 고구려 기와다. 완만한 방형 형태의 이 기와는 지붕마루에 얹혀지기 때문에 아랫부분이 둥글게 파여 있다. 특히 이 귀면문마루끝기와는 높이가 39.3cm에 달해 신라나 백제 것에 비해 큰 편이다. 일본인 이우치 이사오(1911∼1992)의 수집품 중 하나였다. 일본인 의사였던 이우치 이사오는 삼국시대∼근현대 한국 전통기와와 벽돌 5000여 점을 한 일본인 수집가로부터 1964년 사들였다. 그는 이 중 2000여 점을 선별해 1987년 도록(조선와전도보)을 간행하는 한편 1987년 기와 1082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이어 2005년 유창종 유금와당박물관장이 1296점의 기와를 추가로 매입했다. 한국기와학회 초대 회장이자 기와 연구 권위자인 김성구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고구려가 큰 기와를 사용한 것은 그만큼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목조건축 기술이 발달했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이우치 이사오 컬렉션’의 국내 환수 과정과 학술적 가치를 재조명한 단행본을 9일 발간했다. 이와 더불어 유금와당박물관은 ‘돌아온 와전 이우치 컬렉션’ 특별전을 내년 7월 16일까지 개최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국립대구박물관은 경북지역 10개 문화재 발굴 조사기관과 함께 ‘흙에서 찾은 영원한 삶 2015’ 특별전을 열고 있다. 경북 의성군 대리리와 경주시 재매정(財買井) 유적에서 발굴된 금동관모와 토우 등 각종 유물 40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 중 전시 포스터에 등장하는 재매정 신라 인물상이 눈길을 끈다. 재매정은 경주시 교동에 있는 우물로 김유신 장군의 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다란 고깔을 닮은 모자를 쓰고 있는 재매정 인물상은 근처 단석산 바위에 새겨진 부조와 흡사하다. 대구박물관 관계자는 “두 인물상은 신라시대 왕경인의 실제 복식을 고증할 수 있는 사료로 가치가 높다”고 설명했다. 천관사지에서 나온 동물 모양 토우와 갑산리사지에서 출토된 소형 금동불상, 전불(塼佛·점토에 새긴 불상을 불에 구운 것), 우물 제사에 사용된 재매정 말머리뼈 등은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구석기∼삼국시대에 쓰인 토기와 두레박 등 생활도구를 조명하는 ‘생활에 애쓰다’와 신라∼조선시대 무덤을 통해 당시 매장 의례를 살펴본 ‘안식을 꿈꾸다’로 나뉘어 있다. 내년 2월 14일까지. 053-760-8542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자유로워져라. 그러면 고객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메시지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쯤 되지 않을까. 비즈니스 철학을 담은 책에서 거창하게 자유를 논하다니. 나치가 강제수용소 정문에 내건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 표어를 연상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에게 자유는 직원들의 노동력을 극대화하려는 값싼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 자유는 성장일로의 회사를 분사(分社)할 정도로 매우 실질적이고 다급한 목표다. 저자는 “직원들이 관리를 받는 편안함에 젖지 않고 적극적으로 기획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비즈니스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단언한다. 저자가 1983년 설립한 쓰타야 서점은 일본 출판계에서는 전설로 통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최근 10년간 1만여 개의 서점이 폐업할 정도로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 출판계에서 쓰타야 서점은 유일하게 1400개의 매장을 거느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매장 안에 있을 때에는 카페에서 풍기는 커피의 향취를 즐길 수 있고, 문을 나서면 나무숲의 향긋한 내음을 맡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창업 당시부터 단순한 돈벌이 차원을 뛰어넘어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겠다는 저자의 독특한 경영철학이 낳은 결과다. 이 지점에서 새로운 ‘사용자 경험(UX·User Experience)’을 제시해 정보기술(IT) 업계를 선도한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저자는 잡스만큼이나 사고가 열린 실험적인 경영자이기도 하다. 사가 현에 있는 다케오 시립도서관의 운영을 맡아 대박을 터뜨린 것이나 영화, 음반 등 엔터테인먼트 부문까지 연계해 종합 문화사업을 추구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끊임없는 변화와 실험에 나서고 있지만, 고객 지향은 지난 32년간 변함없는 그의 철칙이다. “해답은 항상 고객에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원은 지시를 내리는 상사가 아니라 고객을 바라봐야 한다. 고객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가져온 해답은 결국 독선적인 의견일 뿐이기 때문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최몽룡 교수는 원로 중의 원로이고 거물인데도 못 견딜 정도로 회유와 외압이 들어오는데, 중진급이나 소장급이 그러면 버티겠어요?”(강규형 명지대 교수) “누가 이 뜨거운 감자를 먹고 이가 안 빠질지 나도 궁금합니다. 김정배 위원장 전화도 일부러 안 받았어요.”(50대 A 교수)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진 구성이 예상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진보 성향은 물론이고 보수 중도 성향 학자들까지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섣불리 참여했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며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 것. 여기에 일부 보수 성향 학자는 “내가 보수인데 되레 국정 교과서가 오해를 받는 게 싫다”며 참여를 고사하고 있다. 일부 교수 중에는 집필진 참여 제의를 받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참여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로 교수는 “집필 제안을 한 사람들에게 내가 집필진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고, 조언을 구한다면 의견을 낼 수는 있다고 말했다”며 “교과서 문제가 정치적인 이슈가 돼 버렸고, 내가 교수인데 학생들이 시위하는 상황에서 참여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원로 교수도 “집필진 제의를 받았지만 아직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고, 참여한다고 해도 학회원들의 저항이 만만찮을 것 같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했다. 5일 본보 취재에 응한 학자들은 “역사학계 교수 대부분이 국정 교과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공개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나서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70대 B 교수는 “근현대사 전공 교수들은 대부분 안 하려고 할 것”이라며 “누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이걸 하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 “지금은 너무 정치적 문제로 번져 명망 있는 학자가 위험과 모함을 무릅쓰고 나서기는 굉장히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정 교과서 편찬을 맡은 국사편찬위원회는 4∼9일 집필진 공모 지원을 받을 계획이지만 5일까지 지원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편 관계자는 “반대 여론이 거세지만 교과서 제작에 참여하려는 전문가들도 있다”고 말했다. 국편은 25명을 공모로 뽑는 등 총 36명 안팎의 집필진을 구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 학계 분위기로 봐서는 공모로 명망 있는 집필진 25명을 모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역사학계의 한 원로 교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스스로 집필하겠다고 지원하는 학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며 “좋은 집필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편이 더욱 적극적으로 초빙에 나서야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대표 집필자로 참여하기로 한 2명의 원로 학자만으로는 균형 잡힌 집필진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4일 고대사와 상고사 대표 집필자로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77)와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70)가 참여하겠다고 나섰지만 모두 70대 원로 학자라는 점에서 ‘노장청과 좌우를 아우르는 집필진’보다는 구성되더라도 원로 중심이 아니겠느냐는 것. 또 지나치게 좌우 극단의 이념적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학자들도 교과서 집필진으로는 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집필자 구인난에 시달리다 자칫 극우로 평가받는 집필진으로 구성될 경우 역풍이 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집필진 구성 못지않게 편찬 기준을 완성하는 것도 중요한 사안이다. 대한민국의 건국 시점이나 북한에 대한 기술 등 민감한 쟁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국편은 9월 공청회를 열어 역사과 편찬 기준 시안을 내놓았다. 국편은 이를 보완하고 교육부의 심의를 거쳐 11월 말에 편찬 기준을 확정한 후 공개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3일 국정화 확정 방침을 발표하면서 편향 사례로 들었던 쟁점들이 집필기준에 어떻게 반영될지가 관심사다. 김정배 위원장은 4일 기자회견에서 “황 총리가 언급한 부분들이 편찬 기준에 다 들어갈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9월 발표된 시안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관련해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행 헌법과 같은 원칙이다. 그러나 황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일부 교과서가 1948년에 남한은 정부 수립, 북한은 국가 수립이라고 기술한 것이 대표적인 좌편향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는 해석에 따라 뉴라이트 등 일부 우파 학자가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정해야 한다는 이른바 ‘건국절 논란’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편이 편찬 기준 시안과 달리 확정안에서는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규정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유덕영 firedy@donga.com·김상운 기자}

일본이 한반도 침략을 본격화하기 직전 메이지시대에 작성한 한반도 지도에 단군묘(檀君墓)와 기자전(箕子殿)을 표기한 사실이 밝혀졌다. 단군을 일본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동생으로 간주한 당시 정한론(征韓論)자들의 침략 논리가 지도에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박준형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최근 발표한 ‘메이지시기 조선지도에 표기된 단군묘와 기자전’ 논문에서 “1876년 발간된 조선전도(朝鮮全圖)를 비롯해 조선여지전도(朝鮮輿地全圖·1875년), 신찬 조선여지전도(新撰 朝鮮輿地全圖·1882년), 조선여지도(朝鮮輿地圖·1894년), 실지답사 만한대지도(實地踏査 滿韓大地圖·1904년)의 5개 일본 지도에 단군묘와 기자전이 모두 표기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지도들에는 평안도 강동현 부근에 단군묘가, 평양 옆에 기자전이 각각 표시돼 있다. 이 가운데 조선전도는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해인 1876년 일본 육군 참모국이 제작한 군사지도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지도는 가로 97cm, 세로 134cm 크기(축척 100만분의 1)로 한강 입구와 대동강, 부산포, 영흥만의 세부 지도와 함께 구체적인 수심까지 적시해 한반도 침략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지도임을 알 수 있다. 일본 육군 참모국은 1871년부터 조선에 대한 기밀을 수집했는데, 일본 해군성 수로국은 한반도 해안을 몰래 정탐하며 수심을 측량했다. 일본군은 해군의 측량 자료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 조선 왕조의 관찬 지리지, 서양의 해로도 등을 참조해 이 지도를 만들었다. 당시 일본은 1875년 9월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군함을 동원해 1876년 2월 불평등 조약으로 꼽히는 강화도조약을 조선과 맺었다. 일본이 민감한 군사지도에 굳이 단군묘와 기자전을 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박 학예사는 에도시대와 메이지 초기에 걸쳐 단군을 조상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동생 ‘스사노오노미코토(素殘嗚尊)’라고 강변한 정한론자들의 거짓된 신화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는 “이 신화는 일선동조론, 임나일본부설과 더불어 한반도 침략의 역사적 명분을 제공했다”며 “단군묘와 기자전을 표시한 군사지도는 일본이 이미 메이지시대부터 한반도 침략 논리를 준비한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신석기시대 주거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농경 흔적이 발견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인천 중구 운서동과 강원 양양군 현남면 지경리에서 출토된 토기에서 조와 기장 등 곡물이 눌려 있는 흔적(압흔)을 발견했다”며 “특히 운서동 곡물은 신석기 주거지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인 기원전 4000∼기원전 3600년경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2일 밝혔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곡물 흔적은 기원전 5500∼기원전 5000년대로 추정되는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나왔다. 그러나 발견된 곡물 분량이 극히 적은 데다 생활 유적이 아니어서 본격적인 농경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는 무리라는 설명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유구에서 농경도구까지 나왔기 때문에 당시에 농사를 지은 게 틀림없다”고 설명했다. 발굴 조사에서 씨앗 자체가 확인되지는 않았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지난달 31일 충남 부여군 한국전통문화대에서 열린 한국문화재보존과학회 주최의 추계학술발표회장은 증도가자(證道歌字)와 관련한 발표로 뜨거웠다. 이날 대회장에 마련된 100여 개 좌석은 일찌감치 채워졌다. 강태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연구사(사진)는 ‘금속활자의 법과학적 분석 방법 고찰’이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청주 고인쇄박물관이 소장한 증도가자와 고려활자 7점은 모두 위조한 것”이라며 “남권희 경북대 교수의 연구 용역보고서에서 증도가자와 고려활자로 분류된 김종춘 다보성고미술 대표의 활자 101점도 과학적인 정밀 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 발표에서 △3차원(3D)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균일한 이중(二重)의 단면이 포착된 것 △충(充) 활자 표면과 내부의 구리, 주석 성분비가 서로 다른 점 △수(受) 활자 앞면에 먹을 덧씌운 흔적이 발견된 점 등을 위조의 증거로 들었다. 강 연구사는 또 “문화재에 대한 진위 검증이 인문학적 측면으로만 치우친 경향이 있어 오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문화재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남 교수는 학회 현장에서 반박 자료를 배포한 뒤 질문을 통해 “국과수 발표 자료는 금속활자의 주조 방법과 서지학적인 정보 부족으로 인한 잘못된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고대 청동 유물의 부식 상태를 보면 다른 금속과 달리 내부에서부터 부식되는 경향이 있다”며 “표면과 내부의 밀도 차이로 CT 사진에서 활자의 단면이 이중으로 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대회에는 김웅용 신한대 교수(교양학부)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4세 때 지능지수(IQ) 210을 기록해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미 항공우주국(NASA) 선임연구원을 지냈으며 물리학과 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객관적으로 볼 때 국과수가 훨씬 과학적이고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물리학자로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이는 금속활자 제조 시기의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 없고 특히 먹의 탄소연대를 직지심체요절(1377년)보다 138년 이상 앞섰다며 특정한 시기로 못 박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였다. 김 교수는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은 측정 환경에 따라 오차 범위가 최소 100년 이상 벌어질 수 있다”며 “큰 시기 구분은 몰라도 먹 분석을 통해 활자 연대를 13세기 후반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했다.부여=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7일 문화재청에서 열린 ‘고려금속활자 지정조사단’ 회의에서 한 전문가가 제시한 의견이다. 금속활자를 다루면서 내부 구조를 파악하려면 CT를 해보는 게 기본이기 때문이다. 실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증도가자는 가짜”라는 검증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증거 역시 3차원(3D) CT 사진이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국과수의 CT 결과를 알고도 회의에서 이를 숨겼고 CT를 찍어보자는 전문가의 요청도 묵살했다. 문화재청은 28일자 본보의 “문화재청, ‘증도가자는 가짜’ 통보 묵살” 기사에 대한 해명자료를 이날 오후 배포했다. 문화재청은 해명자료에서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과학적 장비와 이를 활용할 전문적 능력이 부족하다는 본보의 지적에 대해 “CT 등 관련 장비와 함께 이를 운용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당연한 의문 하나가 생긴다. 문화재청 주장대로라면 애초에 위조 활자를 진품이라고 판정한 경북대 산학협력단(연구책임자 남권희 교수)에 검증을 의뢰할 필요가 없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충분한 검증 능력을 갖췄다면 굳이 경북대에 외부 용역을 줘 세금 2억 원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 교수는 2010년 9월 김종춘 다보성고미술 대표와 함께 김 대표 소장의 활자에 대해 “증도가자가 맞다”는 기자회견을 연 당사자다. 남 교수 연구팀이 내놓은 377쪽의 용역 보고서에는 논란이 된 활자에 대해 CT를 시도한 흔적조차 없다. 심지어 문화재청 주장과 달리 정작 연구소의 관계자는 “직원이 대부분 인문학 전공자들로 구성돼 과학적인 검증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국과수가 6명의 적은 인원으로 증도가자가 가짜임을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과학적인 검증 기법뿐만 아니라 석연치 않은 고미술 업계의 이해관계에서도 독립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가짜 증도가자’ 사태를 계기로 국가 문화재 지정 시 출처를 확실히 파악하지 않는 관행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종춘 대표는 “대구에 사는 고미술 수집가로부터 증도가자를 구입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출처나 유통경로는 오리무중이다. 아무리 사유재산이라지만 한 나라의 혼이 담긴 국가지정 문화재가 되려면 출처부터 투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증도가자가 가짜라는 국과수의 결과를 듣고서도 ‘구체적인 자료로 제공받지 않아 공식 회의에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기에 앞서 문화재청은 부실한 검증으로 논란을 키운 것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하지 않을까.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