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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산맥의 아름다운 풍광과 현지 생활을 담은 이훈구 동아일보 사진기자의 ‘히말라야 유랑’ 전시회가 30일부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 나우에서 열린다. ‘히말라야 유랑’은 이 기자가 X-히말라야 패러글라이딩 원정대와 함께 2011년 8월부터 6개월 동안 네팔 등지에 머물며 찍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파키스탄의 험준한 카라코람 히말라야부터 인도와 네팔을 잇는 히말라야 산맥의 길기트와 훈자 마을 등 직선거리로 2400km에 이르는 긴 여정을 사진으로 담았다. 장엄하면서도 척박한 자연은 물론이고 고산지대에 사는 다양한 종족들의 삶도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이 기자는 “낯선 이방인에게 귀한 성찰과 배움의 시간을 내준 히말라야와 현지인들에 대한 고마움을 앵글에 담았다”고 말했다. 함께 히말라야에 갔던 산악인 박정헌 씨는 “이 기자의 작품은 단순히 동행취재기가 아니라 수행자의 시선으로 한 인간이 바라본 아름다운 인고의 시간이 깃든 결정체”라고 말했다. 사진전은 2월 8일까지 열리며, 전시 작품을 담은 동명의 사진집 ‘히말라야 유랑’(사진예술사)도 출간된다. 02-725-2930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요즘 먹을거리는 정말 핫한 이슈다. 한쪽에선 지구 황폐화로 식량난을 걱정하고, 다른 한쪽에선 참살이(웰빙)를 부르짖으며 질 높은 재료를 찾아 헤맨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외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전자변형농산물(GMO)과 복제 쇠고기는 과연 제2의 녹색혁명일까, 또 다른 재앙의 시작일까. 과학기자로 상당한 내공을 쌓은 저자가 현실로 닥친 GMO의 명과 암을 혹독하게 파헤쳤다. 한국인의 식탁이 수입농축산물로 가득한 지금, 세계 식품시장의 흐름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솔직히 식상하다. 한 광고가 유행시킨 이 한마디는 언제부턴가 대단한 금언처럼 받아들여진다. 물론 좋은 말이다. 나이나 체면에 얽매이지 않는 어르신들, 멋지다. 하지만 반대로 ‘아해(?)’들이 나이를 무시할 때도 그런 입장을 고수할 자신이 있나. 지난해 대선에서 50대 선거 돌풍의 근원은 ‘젊은 세대를 향한 항변’이 아니었던가. 유리할 때만 “나이는 상관없다”고 떠들 거라면, 그건 정의가 아니라 궤변이다. 연장선 위에서 책 ‘어모털리티’도 일단 조지고 보자. 모털리티(mortality)는 영원히 살 수 없단 뜻이다. 원래 이모털리티(immortality·불멸)란 반대말도 있다. 그걸 굳이 부정의 접두사 ‘a’를 붙였다. ‘나이와 죽음을 의식하지 않는 현상’이란 뜻의 신조어란다. 장난하나…. 괜스레 용어 하나 만들어 장사하는 치들 널렸다. 더 나가 볼까. ‘어모털족(族)’의 등장으로 세상이 바뀌었단 논리도 맘에 안 든다. 나이에 얽매이지 않는 여성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맞춰 결혼과 출산을 미룬다. 남성은 젊음에 집착해 어린 여성과 화려한 패션을 추구한다. 죽음의 공포를 지우려 은퇴를 미루고 일에 열중한다. 어릴 적 취향을 지속해 세대 간 소비성향의 간극이 무너진다. 그래, 앞뒤는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그게 다 어모털리티 탓인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도 발정 난 노인네는 딸 같은 처자를 탐했다. 여성 선구자들은 어느 시대건 통념을 걷어찼다. 그럼 선덕여왕이나 클레오파트라도 어모털족이라 불러야 하나. 하지만 이 대목에서 어모털리티는 의외의 괴력을 발휘한다. 이 책은 흔해빠진 선언서 나부랭이와는 결이 다르다. 언어의 장벽에 갇혀 현실을 비틀고 곡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진 않는다. 영미 시사주간지 ‘타임’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기자로 경력을 쌓은 저자는 현장 취재라는 특기를 살려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실상을 적확하게 되짚는다. 책은 결코 우리 모두 어모털리티족이 되자고 부르짖는 게 아니다. 이미 21세기의 시대적 가치는 재편되고 있다. 이 조류에 응하건 응하지 않건 우리는 현 상황을 냉철히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책에 등장하는 ‘세네제닉스(Cenegenics)’가 좋은 사례다. 미국에 있는 ‘세계 최대의 노화관리 의료기관’이란 이곳은 영양 관리와 운동을 바탕으로 ‘호르몬 최적화’를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호르몬 최적화란 신체에 맞는 호르몬의 균형점을 찾아 중장년층 고객도 젊은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배에 굵은 식스 팩이 드러난 70대 할아버지, 육상선수처럼 군살 없는 60대 여성을 모델로 내세운 세네제닉스는 현재 엄청난 속도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젊음 유지에 사활을 건 어모털족 자체가 아니다. 몸매를 개조하려고 한 달에 몇천 달러씩 쏟아 부을 수 있는 계층이 형성된 소비산업구조, 나이 든 사람이 외양 가꾸기에 열광하는 걸 주책으로 여기지 않는 사회적 공감대, 나아가 과학과 종교까지도 이런 취향에 맞춰져 가는 ‘변화의 현재진행형’이 관건이다. 이 책이 어정쩡한 트렌드 보고서에 머무르지 않고 썩 괜찮은 사회 분석서로 다가오는 것도 이런 맥락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어모털리티의 매력뿐만 아니라 문제점도 균형감 있게 담아낸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다만 이런 현상이 어디로 흘러갈지 전망이 뚜렷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원문을 보진 못했지만 번역 어투가 군데군데 거칠어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읽은 뒤 진심으로 어모털족이 ‘이기심을 계몽해 개인의 행복과 공동의 선의 상호 의존을 인식하는’ 이들이 되길 응원하게 됐다. 우린 모두 나이가 드니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요. 재밌어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쌀쌀한 날씨에도 박물관 내부는 꽤나 시끌벅적했다. ‘차분한’ 박물관 풍경은 확실히 아니었다. 두셋씩 짝을 이룬 관람객들은 이러쿵저러쿵 수다스러웠다. 연인으로 보이는 20대 남녀는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다룬 전시품 앞에서 한참 실랑이를 벌였다. “빨갱이란 말에 비하의 뜻이 담겼나”를 놓고 싸우다 팔짱마저 풀더니 토라진 여자친구를 달래 금세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영화 ‘고래사냥’ 간판 앞에서 고등학교 때 몰래 봤다며 낄낄거리는 중년 양복쟁이들도 보였다. 초등학생 아들 손을 잡은 아주머니는 찰흙인형으로 만든 ‘콩나물시루’ 교실을 설명하다 잠시 말이 끊겼다.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아이가 한마디 툭 던졌다. “엄마, 엄마도 저런 치마 입고 학교 다녔어?” 26일 개관 한 달을 맞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편향성이 심하다’ ‘번듯한 전시품이 없다’는 전문가 지적이 쏟아졌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시민들의 반응은 뜨겁다. 일일 평균 약 3500명이 다녀가 25일 현재 누적 관람객 수가 9만 명을 훌쩍 넘었다. 이번 주말엔 1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5년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국립중앙박물관(총면적 13만7480m²)의 첫 달 방문객이 67만 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규모가 10분의 1도 안 되는 이 박물관(총면적 1만734m²)의 흥행몰이는 고무적이다. 실제로 22, 23일 두 차례 들러본 박물관의 인기는 상당했다. 학생 단체관람이나 외국인 패키지 여행객은 눈에 띄지도 않았다. ‘어르신들이나 좋아할 곳’이란 예상도 어긋났다. 10, 20대가 적지 않았고 아이와 함께 한 가족단위 시민도 많았다. 딸과 함께 온 40대 여성은 “박물관 유물은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은데 여기 있는 것들은 ‘우리의 얘기’라서 할 말이 많아 좋다”고 말했다. 박물관에서 시민들이 반기는 코너는 경제발전이나 산업화 전시가 아니었다. 석유풍로나 극장 간판, 버스를 부여잡고 엉덩이를 내민 채 버티는 입체적인 차장 그림 앞에 사람들이 몰렸다. 캐나다 배낭여행객인 제이미 씨는 “유물만 쭉 이어지는 적막한(desolate) 전시관이 아니라 다이내믹한 스토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시덕 박물관 전시운영과장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박물관이 ‘회상의 공간’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자평했다. 아쉬운 대목도 상당했다.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두루뭉수리로 뭉쳐 있고 정보가 빈약했다.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 열사 전시실의 경우 옛 ‘미싱 공장’을 재현한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당시의 처절한 상처는 배어나질 않았다. 한 30대 남성은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이 나름의 성공을 거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어두웠던 과거까지 미화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박물관 측은 “다양한 시민들의 반응을 청취해 지속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카프카의 조국, 체코의 보헤미안 예술을 만나다.’ 국내 처음으로 체코 프라하국립미술관의 명화들을 전시하는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 체코프라하국립미술관 소장품전’ 개막식이 25일 오후 열렸다. 이날 개막식에는 알레나 하나코바 체코 문화부 장관, 야로슬라프 올샤 주한 체코 대사,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 최맹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을 비롯해 각계 인사들이 300명 가깝게 참석했다. 이 전시를 소개하기 위해 체코에서 온 하나코바 장관은 “이번에 전시되는 회화 107점은 체코 근대미술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국보급 작품들”이라며 “한국인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체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장관도 “체코 미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며 “서유럽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대가들의 작품을 한국에서 만나니 반갑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은 시인과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이신자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등 문화계 인사들도 참석했다. 국립현대미술관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배우 이정재 씨는 “13년 전 광고촬영을 갔다 처음으로 외국 미술작품을 샀던 곳이 프라하”라며 “개인적 추억이 깃든 체코 회화들을 한국에서 만나니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이 행사에는 주한 외국대사들이 대거 개막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토마시 코즈워프스키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 대사와 제롬 파스키에 프랑스 대사, 콘스탄틴 브누코프 러시아 대사, 요제프 뮐르너 오스트리아 대사, 투비아 이스라엘리 이스라엘 대사, 끼띠퐁 나 라농 태국 대사 등이 전시 작품들을 둘러봤다. 최 부사장은 인사말에서 “도시 전체가 미술관인 프라하에서 온 작품들이 유럽 미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가져다줄 것으로 믿는다”며 “한국과 체코의 문화 교류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동아일보사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전시회는 4월 21일까지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조만간 전시 홈페이지(www.praha2013.co.kr)에 교육 문화행사 일정이 소개된다. 온라인으로 사전 참여 신청도 가능하다. 5000∼1만2000원. 02-6273-4242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동북아시아를 호령했던 고구려인의 혼을 보여 주는 국립고구려박물관(가칭) 건립이 추진된다. 국내 첫 국립어린이박물관(가칭)도 대구에 문을 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7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이 같은 내용의 ‘박물관 발전 구상’을 보고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르면 2020년 개관을 목표로 추진되는 고구려박물관 건립 예정지는 서울 광진구와 경기 구리시의 아차산 고구려 유적 인근이다. 문화부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응하고 남북한 통일시대를 대비하려면 고구려 문화재를 전담해 연구하고 전시할 박물관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부는 지난해부터 고구려박물관 건립 타당성 조사를 벌여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올해 상반기 구체적인 설립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한 관계자는 “신라(국립경주박물관)와 백제(국립부여박물관, 국립청주박물관)를 대표하는 박물관에 이어 고구려박물관이 세워지면 삼국시대의 세 축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어린이를 위한 역사 문화 교육의 중심이 될 국립어린이박물관도 생긴다. 경기 용인시에 도립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이 있지만 국립 단위로 추진되는 것은 처음이다. 문화부는 현재 대구에 있는 경북도청이 올해 말 경북 안동시와 예천군으로 이전하면 기존 청사 건물을 활용할 계획이다. 어린이박물관은 전시를 위한 공간보다는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체험학습에 중점을 둔 미래 지향적 종합문화교육관으로 만들 예정이다. 지역 선정 문제로 논란이 컸던 국립자연사박물관도 세종시 건립이 거의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이 행정수도 워싱턴에 있듯이 ‘한국의 스미스소니언’도 신행정수도인 세종시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관련 부처들의 판단이다. 특히 문화재청 산하에 자연유산연구소를 신설해 자연사박물관과의 연계 작업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경기 화성시 등은 자연사박물관 유치를 희망하며 세종시 선정을 반대해 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은 관람객 호응이 높은 인기 전시실인 대형 불상 전시실과 반가사유상실, 신라 금관실 등을 새롭게 단장해 22일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했다. 이번 단장의 핵심은 ‘유물에 대한 관람객의 친밀도 향상과 집중력 제고’. 불상 전시실의 경우 예전엔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이었다. 주로 야외에 있었던 석불들이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날씨에 따라 햇빛 편차가 컸고, 유물 자체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암막스크린과 금속패널 등 배경 벽을 설치해 자연광을 최대한 차단했다. 그 대신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입체적으로 배치하고 전시실 바닥과 천장의 색감을 단일한 톤으로 통일해 유물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다. 실제로 전시실에 배치된 경주 감산사 미륵보살과 아미타불(국보 제81, 82호)을 관람하니 석조 불상의 질감까지 세세하게 느껴졌다. 국보 제78호와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번갈아 전시하는 반가사유상실, 황남대총 금관과 금 허리띠(국보 제191, 192호)를 전시한 신라 금관실도 개선 이후 안정감이 살아났다. 이곳도 전시실 색감을 통일하고 조명을 LED로 교체했다. 유물과 보호유리의 간격을 줄인 점도 관람 편의를 도왔다. 신소연 학예연구사는 “더욱 극적인 감상 기회를 얻음으로써 유물과 관람객의 일체감을 높이는 게 이번 개선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번 개편은 기획 단계부터 김 관장이 적극 나서 세세한 대목까지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지난해 영국 런던 올림픽 당시 대영박물관에서 화제를 모았던 ‘원반 던지는 사람’ 기획전을 꾸몄던 해외 전시디자이너를 초빙해 컨설팅을 받기도 했다. 김 관장은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의 또 다른 인기 전시실인 청자실도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경남 진주시 초장지구에서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최대 규모인 원형 무덤(사진)이 발굴됐다. 동서문물연구원(원장 김형곤)은 22일 “초장지구 일대에서 기원전 10세기 전후로 추정되는 지름 약 26.8m, 높이 약 1.4m의 원형 고인돌(지석묘)을 찾았다”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원형 무덤 가운데 최대 규모로 마산 진동 유적(사적 제472호)에서 발견된 비슷한 형태의 원형 무덤보다 지름이 10m 이상 크다. 연구원 측은 “남해안 일대에서 원형 무덤이 간혹 발견되긴 했으나 이렇게 큰 것은 처음”이라며 “지름만 놓고 보면 중급 신라왕릉과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진주 초장지구 9만9000m² 일대는 지금까지 무덤 22기를 비롯해 주거지 52개, 고상(高床·땅 위로 세운) 건물지 25개 등 유구(遺構) 300여 기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인천엔 지금 성냥공장이 없다. 1960, 70년대 전국에 산재했던 성냥공장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현재 유일하게 남은 곳은 경북 의성의 성광성냥공업사. 채널A와 함께 현장을 다녀왔다. 경영난에 하루를 버티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국내 유일한 기타 제조공장과 기계식 엿 공장마저 문을 닫은 지금, 사라져 가는 ‘6070문화’의 안타까운 뒷모습을 스케치했다.}

《 을씨년스러웠다. 17일 경북 의성의 성광성냥공업사. 국내 유일의 성냥공장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안내판도 하나 없었다. 의성읍 끝자락에서 잔뜩 깔린 얼음판을 한참 종종걸음 쳐 겨우 발견한 문패는 낡아서 읽기조차 힘들었다. 정갈하게 단장한 의성향교(경북 유형문화재 제150호)와 마주선 탓인지 건물은 더 허름해보였다. 잔잔히 번지는 기계 소리가 없었다면 인기척을 의심할 정도였다. 》“왜 안 그렇겠니껴. 한때 200명이 넘던 공장인데 이젠 직원이 일곱 명이니더. 윤전기도 주문 없으면 몇날 며칠 세워두는 기라. 그랄 땐, 텅 빈 절간이 따로 없어. 사장님이 어햐든둥(어떻게든) 임금 맞춰줄라 애는 쓰는데…. 우리도 영 죄송시러버가꼬.”찐득한 유황냄새 속에 분주히 손을 놀리던 김 씨 아주머니는 말 한마디마다 굵은 한숨을 뱉었다. “이름은 뭐할라꼬, 기냥 공장 잘 되게 마이 도와주이소”라며 성냥 정리하느라 고개도 돌리질 않았다. 옆 아주머니가 거들었다. “30년 가까이 일했는데 이래싸이(이렇게 되니) 속 시끄러바서 안 그러나.”1954년 설립된 성광성냥공업사는 이제 한국에서 단 하나 남은 성냥공장이다. 외설적 가사로 유명한 구전가요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에 등장하던 인천 성냥공장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리랑 성냥’ ‘유엔 팔각’도 이미 문을 닫았다.뱃사람들이 습기에 강하다며 좋아했던 ‘향로 목각’. 신라청동향로 위에 불이 활활 타는 모습을 상표에 담은 ‘향로’ 성냥만이 유일한 국내 제품이다. 나머지 시중에 파는 성냥은 대부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수입된다. 창립 당시 평사원으로 출발해 지금껏 회사를 지킨 손진국 대표(78)에겐 예나 지금이나 ‘우리 손으로 만든다’는 자부심 하나로 세월을 버텨왔다.“월남한 사장님하고 서넛이 골방에서 창업했을 때도 그게 뿌듯했어. 그 귀한 성냥을 우리가 직접 만들었노라. 1950년대엔 성냥 한 곽이 쌀 한 가마니 값이었거든. 그걸 국산화하면서 대중화시킨 거라. 1960, 70년대 호황으로 전국을 누빌 때도 마찬가지야. 우리 성냥으로 서민들이 ‘곤로(풍로의 일본어투)’에 불 지피는 걸 떠올리며 신이 났지. 지금은…, 책임감이랄까. 우리밖에 없잖아. 여기 접으면 한국 성냥은 사라지니까. 공장 돌릴수록 적자인데, 돈 따졌으면 벌써 접었지.”하지만 그 사명감도 갈수록 바래지고 있다. 정부나 문화단체가 수십 차례 다녀가며 ‘근대 문화재’라고 치켜 올렸지만 별 다른 도움이 없다. 몇 년의 간청 끝에 지난해 ‘사회적 예비기업’으로 선정해 종업원 임금을 일부 보전해준 게 전부다. 손 대표는 “겨우 숨통은 트였지만 허덕이는 건 매한가지”라며 “일부 기계를 방글라데시 등에 팔았는데도 (적자) 감당이 안 된다”고 말했다.이 땅에서 1960, 70년대를 이끌던 ‘메이드 인 코리아’가 홀대를 받는 건 성냥공장만이 아니다. 당시 생활현장을 근대문화로 선정해 보존에 힘쓰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 따르면 강원 정선에 있던 국내 유일한 1960년대 기계식 엿 제조공장인 ‘사북 엿 제이소’도 지난해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계라도 건져볼까 수소문했지만 찾을 길이 없다.20세기 청춘의 표상이던 기타 공장도 맥이 끊겼다. ‘세고비아’ 같은 대표브랜드는 이미 중국 등 해외로 공장을 옮겨갔고, 마지막 남았던 ‘스윙기타’도 지난해 12월 생산을 중단했다. 천진기 민속박물관장은 “좋건 싫건 우리의 한 시대를 일으키고 지탱했던 ‘아버지 세대의 문화’가 푸대접받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현재 성광성냥은 연로한 손 대표를 도와 아들인 손학익 상무가 전반적인 업무를 보고 있다. 그가 7년 전 서울의 직장을 그만두고 낙향한 이유도 아버지 때문이었다. 손 상무는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건 아버지가 평생을 성냥에 바친 덕인데 그냥 무너지는 꼴을 볼 순 없었다”며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문화체험관을 운영해보고 싶은데 진척이 잘 안 된다”고 토로했다.오후 4시 무렵, 겨울철 시골은 해가 일찍도 떨어졌다. 뉘엿뉘엿 땅거미가 성냥공장을 덮자 흠칫 한기가 몰려들었다. 또다시 이곳을 찾을 때도 기계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깔끔하니 치워진 향교의 처마 위에서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구슬피 울었다.의성=정양환 기자 ray@donga.com▼ 日 성냥산업, 상품 다양화-해외수출로 부활… 정부도 근대문화 집중 지원 ▼이웃나라 일본은 근대문화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강한 나라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협력기관들이 똘똘 뭉쳐 근대화 시절 산업들을 전통으로 유지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대표적인 경우가 일본의 성냥산업이다. 1920년대 개항과 함께 지금의 고베(神戶) 시와 효고(兵庫) 현에서는 성냥산업이 붐을 맞았다. 당시 성냥은 비누나 석유램프처럼 일본 근대화를 상징하는 품목이었다. 1950년대 이후에도 이곳에 있는 수백 개의 성냥공장이 만들어낸 성냥이 전국으로 팔리며 인기를 끌었다.일본의 성냥 산업도 1970년대 이후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휴대용 라이터의 등장과 도시가스의 전국적 공급은 특히 치명적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성냥 산업을 사양길에 접어들도록 버려두지 않았다. 민관이 힘을 모아 ‘일본성냥협회’를 만들어 성냥회사들의 경영을 전력으로 도왔다. 단순히 보존과 유지에 그치지 않고 사업다각화를 꾀해 안정화를 이뤄냈다.1923년 효고 현에 설립된 ‘니토샤(日東社)’는 이런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에 힘입어 현재 종업원 수 300명에 육박하는 건실한 중견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활로를 뚫은 덕분이다. 최근엔 ISO9001(품질경영시스템) 인증까지 받았다. 지자체와 협력해 어린이 문화체험공간을 만드는 등 지방 문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정양환·백연상 기자 ray@donga.com}

“막 내려가려고 기차역으로 가던 참인데…. 허, 이것도 연(緣)이 이어질라 그러나 봅니다.” 16일 오전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한국화가 이호신 씨(56)는 달변 속에도 말끝마다 ‘인연’을 되뇌었다. 짧은 서울 일정을 마치고 경남 산청의 자택으로 향하던 그를 붙잡아 앉혔으니 행운이야 기자에게 따른 셈. 하지만 덜렁 단출한 가방 하나 멘 이 화백은 자신이 걸친 잿빛 개량한복을 가리키며 “운이 아니라 연”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이 옷도 우연히 친분 쌓은 지인이 선물한 거요. 뭔가 이뤄지려면 꼭 인연이 작용한다니까. 이번에 낸 화첩도 연이 끊기면 안 되는 거거든. 창고가 불타 500질 겨우 남긴 것도 안타깝지만 그 탓이에요. 절도 백날 가야 소용없어. 기운과 닿아야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건 사람 맘대로 되는 게 아냐.” 그래서일까. 이 화백이 이달 초 펴낸 ‘가람진경’과 ‘지리산진경’(다빈치)엔 왠지 모를 아련함이 서려 있다. 지리산진경에서 최근 댐 건설 문제로 논란이 큰 용유담을 마주하면 그 짙은 푸름 앞에 인간의 욕심이 덧없다. 가람진경 첫머리에 실린, 2005년 산불에 타 사라져버린 양양 낙산사의 옛 전경은 뭉클함을 넘어 숙연하다. 왠지 이 화백이 짚은 인연이란 놈이 그리 정겹지만은 않다. “그거야 보기 나름입니다. 그래도 낙산사가 세상 뜨기 전, 붓을 들도록 기회를 줬으니 얼마나 고마워요. 용유담도 요새 말 많던데, 혹시 압니까. 그림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돼 아름다운 자연문화재를 지키는 데 일조할지…. 연은 좋고 나쁨이 없거든. 사람이 문제지.” 그런 이 화백에게도 참으로 애달팠던 연이 있었다. 남원 실상사다. 평지에 자리한 사찰이라 구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20년 넘게 드나들었는데 갈수록 생경해졌다. 영 ‘사의(寫意)’가 잡히질 않았다. “사의란 게 뭐냐. 그림을 그리는 뼈대입니다. ‘뜻을 그린다’ 정도로 풀면 되겠네요. 인물이나 풍경을 그냥 화폭에 옮겨놓는 건 화가가 아니죠? 예를 들어 사찰 문화재를 그릴 땐 창건한 이의 마음이나 절을 감싼 자연의 속내를 짚어야 해요. 실상사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근데 2010년인가…, 입구 돌장승이 딱 말을 건네는 거예요. ‘이젠 밥값 해야지’라고. 그러곤 한달음에 풀었지, 거참.” 130여 점에 전국 사찰 83개를 담았으니 이제 ‘절 그림’은 매조지가 된 걸까. 이 화백은 “뭔 소리냐”며 눈을 부라렸다. 고창 선운사, 영천 은혜사, 강화 전등사, 해남 대흥사…. 아직 연이 닿지 못한 곳이 수두룩하단다. 평생 길을 벗 삼아 발품을 팔았는데, 그 팔자가 어디 가겠냐며 껄껄거렸다. “경남 산청에 대원사란 절이 있습니다.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됐는데, 6·25전쟁 때 전소했어요. 근데 광복 후 그 터를 폭력배들이 끼고 앉아버린 거라. 그걸 법일이란 스님이 법력으로 내쫓고 다시 소담한 사찰로 세웠어요. 문화재적 가치는 좀 떨어질지언정 절이 품은 스토리가 깊죠? 이름만 퍼진 대사찰은 싫네요. 그런 연이 풍기는 자락으로 다닐랍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국졸로 시집와 평생 부산 부전시장에서 철물점을 꾸린 엄마. 호호백발 60세에 중학교를 들어가더니 지금도 방송통신대를 다니며 향학열을 불태운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혼자 컴퓨터까지 배워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다면? 이 책은 엄마의 담담한 글이 빼곡한 비밀 일기장과, 일기장을 우연히 발견한 딸이 그에 화답하듯 쓴 글을 함께 묶었다. 부제처럼 ‘숲 속 오솔길에서 (만난) 열네 살 소녀’의 감성을 지닌 어머니와 딸의 ‘우정’, 그 소박하되 정갈한 마음이 시골 밥상마냥 훈훈한 온기를 전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결혼식 구경은 재밌다. 요즘 뻔한 예식이 많아 지겹긴 해도, 수줍은 신부나 얼어붙은 신랑의 표정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하물며 왕가의 결혼은 세계적 관심거리다. 유럽 왕자나 공주의 화려하고 장중한 혼례엔 찬탄과 시샘이 별처럼 쏟아진다. 한반도 ‘로열패밀리’의 결혼도 이에 못지않았으리라. ‘왕실의 혼례식 풍경’은 조선시대 왕과 세자, 세손의 가례(嘉禮·왕실의 혼례)에 큼지막한 돋보기를 들이댄 책이다. 가례도감의궤나 국조오례의 등을 샅샅이 뒤져 결혼이 진행되는 절차나 과정을 빠짐없이 전달한다. 조선 궁중의 웨딩마치는 그림이나 문서 자료가 상당해 당시 분위기나 전후 사정을 꽤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왕실의…’는 무엇보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를 비롯해 여러 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조선의 가례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게 만든다. 중국 주나라 때부터 이어진 동북아시아 혼례 의식이 한반도에서 어떻게 정착 발전하는지, 같은 조선시대라도 시기나 지위에 따라 규모나 절차가 어떻게 다른지를 일러준다. 복식사(史)에 정통한 이은주 안동대 교수가 주 집필한 결혼 당사자와 하객들의 복장이나 머리 모양 얘기도 눈길을 끈다. 특히 이 책은 가례도감의궤에 왕조의 혼례 행렬도가 실린 사례들에 초점을 맞췄다. 현존 사료 가운데 가장 시기가 이른 소현세자와 세자빈의 혼례부터 마지막 왕 순종이 대한제국 황태자 시절 치른 결혼식까지 연대기순으로 꼼꼼하게 분석했다. 평소 검소함이 몸에 배어 지나침을 경계했던 영조의 가례와 세도정치기에 들어서 왕권이 약해지자 오히려 화려한 꾸미기를 지향하는 철종의 혼례를 대비해 가며 살펴볼 기회도 제공한다. 사료에 근거한 학술서이긴 해도 구석구석 숨겨진 뒷얘기도 적지 않다. 사치에 질색했던 영조가 1704년 숙종의 제4왕자로서 정성왕후와 맺어진 혼인은 “법도를 넘어 비용이 만금(萬金)을 헤아릴 정도였다”(숙종실록)고 한다. 아마도 이때의 기억이 영조가 이후 허례허식을 지양하는 계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정성왕후가 세상을 떠난 뒤 3년 상을 치른 영조는 1759년 66세에 신하들의 간청을 못 이겨 15세 꽃다운 처녀 정순왕후를 아내로 맞이한다. 영조는 원래 성정도 그러했지만 계면쩍었던지, 연상(宴床·잔칫상)이나 준화(樽花·국가 행사에 쓰던 조화) 등을 죄다 치우라고 명했다. 영조가 승하한 뒤 정순왕후가 끝없이 권력욕을 불태웠던 건 그런 결핍의 나비효과는 아니었을까. 행간(行間)에 잠깐씩 멈춰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는 맛이 있다. 다만 글이 살짝 딱딱하다. 한자 많은 거야 어쩔 수 없더라도, 몇몇 장(章)은 문장이 너무 길고 고풍스럽다. 학술대회에 발표한 논문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교수님들, 배움 짧은 우리네 처지도 좀 헤아려 주세요.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해 말 특집호에 황당한 기사 하나를 실었다. 2012년을 결산하며 “올해는 킴(Kim)들이 지배”했노라 단언했다. 여기서 킴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미 여배우 킴 카다시안을 일컫는다. 한 명은 북한의 새 지도자가 됐고, 다른 이는 미국 미디어를 통치했단다. 타임이 보기에 이들은 공통점이 많다. 배우자가 가수 출신이고, 둘 다 ‘섹시 아이콘’으로 뽑혔다. 물론 김 위원장은 한 매체의 조소였다. 중국 언론은 정색 보도했지만. 유명한 부친(로버트 카다시안은 OJ 심슨의 변호사)과 무기 선호 취향, 지난해 미사일 혹은 패션 브랜드 ‘론칭 파티’를 선보였단 면도 닮았다. 게다가 놀라지 마시라. 김 위원장의 트위터가 유일하게 팔로하는 인물이 카다시안이다. 이쯤 되면, ‘여제 킴’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질 터. 타임의 경쟁지 뉴스위크도 도대체 왜 그리 미국인들이 난리인지 의문이 들었나 보다. 최신호에 “킴이 미국을 접수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다”란 기사를 내놓았다. 1980년생인 이 연예인은 사실 배우라 부르기도 난감하다. 데뷔 10년이 넘었는데, 개봉예정작을 포함해 달랑 영화 4편에 출연했다. 대부분 그해 ‘최악의 연기’로 꼽혔다. 뭇매를 비껴간 작품은 2003년 불법 유출된 섹스비디오뿐이다. 대중은 그녀를 피해자라 안쓰러워했지만, 뒤에 조용히 유통제작사와 합의해 500만 달러(약 53억 원)를 챙겼다. 이렇게 눈도장을 찍은 그의 사교계 정복은 2007년 리얼리티 TV쇼 ‘키핑 업 위드 더 카다시안(Keeping Up with the Kardashians)’부터 본궤도에 오른다. 카다시안가(家) 들여다보기쯤으로 해석되는 이 방송은 뉴스위크 표현대로 참 “당황스럽다(baffled)”. 요즘 말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던 카다시안과 자매들은 상류층 인사마냥 굴며 실제 연애와 결혼, 불륜 등 말초적 내용을 세세히 공개해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심지어 최고급 애완견을 고르는 ‘별것 없는’ 에피소드가 유튜브 조회수 50만 건을 넘었을 정도다. 이후 시리즈는 지난해 7편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의 파급력은 갈수록 커져 얼마 전 출간한 어쭙잖은 소설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역시 미국은 메릴린 먼로, 패리스 힐턴처럼 멍청한 미녀에게 열광한다”는 한 영국 평론가의 비아냥거림은 잠시 접어두자. 미 대중매체가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대서특필하는 현 상황을 그런 단순한 논리로 설명하긴 어렵다. 오히려 뉴스위크의 ‘웰시 판타지(Wealthy Fantasy)’가 더 설득력 있다. 변변찮은 인물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모습을 보며 자기도 그런 행운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분석이 있다. 맞건 틀리건,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네들의 리얼리티 방송은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저줏거리가 되진 않는다. 쇼는 쇼고, 오락은 오락이니까.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다. 최근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에 가상부부로 출연하는 여배우는 일상에서 누군가를 만났다고 온갖 비난에 시달렸다. 진정성이 없었단 논리다. 지난주 방송에선 눈물까지 뚝뚝 흘렸다. 그런 상황을 한 연기자의 책임으로 모는 방송 관계자들, 20대 여성에게 도를 넘어선 악담을 퍼붓는 일부 시청자들. 그들의 진정성은 도대체 뭔지 궁금하다.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중국 지린(吉林) 성의 광개토대왕비 인근에서 세 번째 고구려비가 발견됐다고 중국 정부가 최근 발표했다. 국내 학계에서는 발표가 사실일 경우 광개토대왕비나 충주고구려비(중원 고구려비·국보 제205호)보다 이른 시기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중국 국가문물국(문화재청에 해당)은 4일 ‘중국문물보’에 “지린 성 지안(集安) 시의 마셴(麻線) 향 마셴 촌에서 고구려 비석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29일 한 주민이 발견한 것을 검토한 결과 고구려 비석이 분명하다는 내용이다. 이는 여호규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16일 한국고대사학회 홈페이지에 게재하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발견된 비석은 높이 173cm, 너비 60.5∼66.5cm로 위아래 부분이 부서진 상태다. 정면 글자는 한자 예서체로 10행 218자가 새겨졌는데, 현재 판독이 가능한 글자는 140자다. “시조 추모왕(주몽)이 나라를 창건하니라(始祖鄒牟王之創基也)” “하백의 손자(河伯之孫)” “(추모가) 나를 일으켜 후대로 전해졌다” 등의 구절은 광개토대왕비에 새겨진 내용과 비슷하다. 국내 학계에서는 특히 “연호(煙戶·일반적으로 인가·人家를 의미)를 배치해 사시(四時)로 제사에 대비하게 하고”와 “부유한 자들이 수묘인(守墓人·묘지관리인)들을 함부로 사고팔 수 없다”는 구절에 주목하고 있다. 왕명을 전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광개토대왕비에는 “광개토대왕이 조선왕(선왕)을 위해 묘에 비를 세우고 그 연호를 새겨 섞이지 않도록 했다”는 구절이 있다. 서영수 단국대 교수는 “광개토대왕비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아들 장수왕이 세운 것이라고 봤을 때 ‘왕의 지시’가 담긴 이 비석은 광개토대왕 통치 시절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베이징=이헌진 특파원 ray@donga.com}
중국 정부가 4일 공개한 비석은 지금까지 발견된 고구려 비석 2기보다 앞선 시기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국내 학계의 평가다. 중국 국가문물국은 지난해 7월 발견된 비석을 약 6개월에 걸쳐 연구했으며 고구려 비석이라고 결론을 내린 데 대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중국문물보에 따르면 첫 발견자는 지안(集安) 시 마셴(麻線) 촌 주민 마사오빈(馬紹彬) 씨다. 지난해 7월 29일 마 씨는 마을 근처 강 속에서 ‘네모나고 긴 돌’을 자세히 살피다 글씨가 보여 정부에 신고했다. 국가문물국은 즉시 조사팀을 파견해 검토한 결과 고구려 시대 역사를 기록한 비석이라고 결론 내렸다. 비석은 납작하고 직사각형이며, 위쪽은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진다. 두께는 12.5∼21cm에 무게는 464.5kg이다. 앞뒤를 평평하게 만든 뒤 글씨를 새겼는데, 뒤쪽은 누군가 훼손한 듯 마모가 심해 글자를 알아볼 수 없다. 앞쪽은 상대적으로 글자가 뚜렷하나 상단은 마모가 상당해 읽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한자 예서체인 정면 글자는 음각으로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새겨져 있다. 중국 학계는 광개토대왕비처럼 추모왕(주몽)이나 하백(주몽의 외손자)을 언급한 부분을 고구려 비석으로 판단하는 근거로 삼았다. 또 발견 지점이 고구려 왕릉인 천추묘(千秋墓)에서 동남쪽으로 456m 떨어진 곳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지린 성 문물감정위원회 상무위원인 왕즈민(王志敏) 퉁화(通化) 시 문물보호연구소장은 “비석의 재질이 지린 성 장수왕릉(장군총)의 석재와 매우 유사하다”고 말했다. 국내 학계는 “연호를 배치해서 사시(四時)로 제사에 대비케 하고”와 “부유한 자들이 수묘인들을 함부로 사고팔 수 없다”를 당대 왕이 선대 왕릉의 관리를 명하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 즉, 광개토대왕비가 장수왕이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며 세운 비석이라면 이번 비석은 그 선대인 광개토대왕이 이를 지시하고 있는 내용이라는 분석이다. 서영수 단국대 교수는 “새로 발견된 비석을 직접 보질 않아 단정 짓긴 어려우나 문맥상 광개토대왕비를 앞선 것 같다”며 “4∼6세기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충주고구려비보다도 먼저 제작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석비 감정에 참가했던 퉁화 시 사범학원 고구려연구원 겅톄화(耿鐵華)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석비에는 고구려 왕릉 묘지기들의 매매 문제, 20명 묘지기 우두머리의 이름이 새겨졌다”며 “고구려가 묘지기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광개토대왕이 선왕을 위해 세운 비로 보인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베이징=이헌진 특파원 ray@donga.com}

쪽빛은 푸르다. 그래서 이중적이다. 푸르기에 상큼하고, 푸르기에 아련하다. 옛 시절, 새색시는 첫날밤 쪽빛 이불을 다리며 볼을 붉혔다. 구중궁궐 대왕대비는 홀로 된 한숨을 씹으며 쪽빛 치마를 지었다. 남색(藍色)이란 말론 차마 형언할 길 없는 우리네 마음. 쪽빛은 삶의 꽃망울과 뒤안길을 보듬어 아우른다. 이병찬 선생(81)이 쪽빛에 사로잡혔던 세월도 그 탓이리라. 염색연구 30여 년. 그 첫 연정은 지금도 시리도록 은은하게 맴돈다. 쉰이 가깝던 1978년, 일본인 친구가 자랑스레 꺼내든 기모노의 색감은 영 잊혀지질 않는다. “분했어요. 어쩌면 저리 고울까. 당시 우리 땅에선 식물염색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거든요. 분명 저보다 훨씬 나았을 텐데. 그런데 웬걸. 질시는 금세 각오로 넘어갔어요. 오냐, 좋다. 내가 찾아내마. 조선 색을, 한반도의 빛을. 그때 떠오른 게 푸르디푸른 빛이었어요.” 허나 굳센 다짐을 현실은 받쳐주지 않았다. 배우려 해도 가르치는 데가 없었다. 결국 일본으로 건너가 6개월 염색 기초를 익혔다. 귀국 후 곧장 문헌을 밤낮으로 훑고 전문가들을 구슬렸다. 그렇게 찾아낸 게 청대(靑黛), 마디풀과 쪽이었다. 고생이야 말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천운이 따랐을까. 식물학자인 고(故) 이창복 서울대 교수와 만났다. ‘규합총서’에 나오는 둥근 잎사귀를 가진 쪽을 얻은 행운도 고인 덕분이었다. 평생 은인의 독려에 힘입어 쪽을 기르고 주저앉길 3년여. 쪽 앙금을 석회와 당구레(쪽 염색 때 젓는 나무막대)질한 뒤 가라앉혀 발효시키는 전통기법을 기어이 찾아냈다. “주위 분들이 도와준 덕이죠. 여인네가 홀로 버텨내니 장해보였나 봐요. 아직도 그 첫 쪽빛이 어른거립니다. 만족스러워서? 아니에요. 이제 시작이구나. 우리 것을 복원할 수 있겠다. 쪽빛도 더 개선하고, 감물 진달래 가래나무 연지꽃…. 산천에 흐드러진 색깔을 되찾자. 가슴 저 편에 새싹이 돋았어요.” 너무 염색만 파고든 홑실이었을까. 외로움과 절망이 수시로 밀려왔다. 10년이 넘도록 예술계에선 그의 작품을 홀대했다. 왜색이 짙다, 정통성이 아쉽다. 나무는 서 있을 뿐이건만, 바람이 잦아졌다. 문헌을 뒤져가며 염색도구까지 직접 만들며 분투했는데…. 가산도 거의 탕진한 1980년 후반, 처음으로 포기를 떠올렸다. 이제 그만 접자. 한 시절 여한 없으니 그걸로 됐지 않나. 입술을 깨물던 차,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대통령상(1990년)이란 낭보가 들려왔다. “상 받아 안 관뒀다 그러면 너무 애기 같지요? 근데 고마웠어요. 알아주는 날이 오는구나. 덜컥 맘이 다잡아졌어요. 상이 좋아서가 아니에요. 염색한테 괜스레 미안했어요. 니들 덕에 칭찬받았는데. 어찌 그리 매정하려 했을까. 다독이며 결심했어요. 내 인생은 염색이구나. 삶을 매조지할 터는 여기구나.” 선생은 요즘 몸이 편치 않다. “이런 얘긴 남우세스럽다”고 당부했지만, 맹장에 문제가 생겨 복막염으로 번졌다. 여든 하나. 거동도 조심스러운데 곧 수술까지 앞뒀다. 괜히 인터뷰를 요청했나 죄송스러워하자 “응대가 수월찮아 오히려 미안하다”며 다독였다. 짓궂게 평생 독신으로 지낸 연유를 물어도 “친구도 많고 주위에 좋은 분이 넘쳐 낙낙하게 보냈다”며 걸걸하게 웃어넘겼다. 염색에 묻혀 강산 바뀌는 걸 세 차례나 품은 공력. 그래도 혹 아쉬움이 남진 않았을까. “없어요. 정말 없어요. 한때 마음을 콕콕 찔렀던 가시들도 시간 가니 무뎌졌어요. 다만 지치 색을 좀더 대량 공급할 방도를 구하지 못한 건 영 가슴을 맴도네요. 보라색과는 또 다른, 그 짙은 푸른빛은 지치 뿌리에서만 얻을 수 있거든요. 너무 희귀하고 비싸요. 후학들을 위해서라도 꼭 찾아야 하는데…. 퇴원하면 또 연구해야죠.” 4월 국립민속박물관에선 이 선생의 특별전이 열린다. 칠보 노리개와 능화문 서첩, 한지 부채와 두루주머니…. 숨을 고르고 향취에 스며보자. 영롱하되 넘치지 않는다. 단아하면서도 화사하다. 그 멋과 맛을 누구라서 낮춰 볼까. 천진기 민속박물관장은 “이 땅에서 자란 식물로 빚은, 우리 산천이 선사한 색의 감동은 끝이 없다”며 “두절되고 쇠퇴됐던 전통 염색을 홀로 다시 세운 그 정성을 마주할 기회”라고 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 판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조선 초기 간행 목판인쇄본이 15일 공개됐다. 이 판본은 고고학자였던 고(故) 손보기 교수(사진)가 소장하던 것을 유족이 연세대 측에 기증한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국보급일 것으로 추정된다. 연세대박물관에 따르면 손 교수가 소장했던 삼국유사는 5권(卷) 2책(冊) 가운데 앞부분(1∼2권)에 해당하는 ‘왕력편(王曆篇)’과 ‘기이편(紀異篇)’ 2권 1책이다. 왕력편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역대 왕족 족보에 해당하며, 기이편은 삼국시대의 기이한 이야기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삼국유사는 ‘흥법(興法·불교가 전래되고 흥성하는 과정)’ ‘의해(義解·고승들의 뛰어난 행적)’ 등을 다룬 3∼5권 1책의 조선 초기 인쇄본(국보 306호·개인소장)과 1512년 조선 중종 시대에 경주에서 간행돼 5권 2책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중종 임신본(壬申本·국보 306-2호)이다. 김도형 연세대 박물관장은 “이번 기증본은 중종 임신본보다 앞선 국보 306호와 시기가 비슷한 조선 초기 인쇄본”이라며 “국보 306호에는 없는 왕력편과 기이편이 거의 낙장 없이 완벽한 상태여서 국보급”이라고 말했다. 특히 손 교수 소장본 가운데 왕력편은 족보처럼 왕족의 인명을 담고 있어 글자 하나하나가 역사적 연구 자료로 효용가치가 높다. 예를 들어 중종 임신본에는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의 시호가 문정(文貞)이라고 돼 있지만, 이번 소장본에는 문진(文眞)으로 쓰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관장은 “하나하나 확인해주기는 어려우나 몇몇 대목에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며 “조만간 연구결과를 모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영대 인하대 사학과 교수는 “고서는 세월이 흐를수록 오자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측면에서 왕력편과 같은 인명은 시기가 빠른 판본일수록 더 정확할 것”이라며 “이번에 공개된 소장본은 학문적으로는 물론이고 금전적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2010년 별세한 손 교수는 1922년 생으로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해 평생 고고학 및 고인쇄학 연구에 매진한 학자다. 특히 1990년 사적 제334호로 지정된 충남 공주 석장리 유적의 발굴을 주도해 명성을 떨쳤다. 석장리 유적은 연대측정 결과 2만5000∼3만 년 전의 구석기시대 집터임이 확인돼 한반도에도 구석기시대에 사람이 살았음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손 교수가 삼국유사 2권 1책의 조선 초기 인쇄본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으나 생전에 공개하지 않아 전모를 알기 힘들었다. 손명세 연세대 보건대학원장과 손경세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 등의 유족은 오랜 논의 끝에 손 교수가 관장을 맡았던 연세대박물관에 기증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국 보스턴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 반환 논란이 결국 법정에 서게 됐다.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사무총장 혜문 스님)는 11일 문화재청을 상대로 라마탑형 사리구 관련 결정처분 취소 및 위자료 청구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문화재제자리찾기 측은 소장에서 “미술관으로부터 사리구를 제외한 사리는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나 문화재청이 거부 의사를 표명해 수포로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사리와 사리구를 한꺼번에 받는 게 어렵다면 우선 사리라도 받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리 환수를 반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문화재청 국외문화재팀은 “물론 처음엔 라마탑형 사리구와 사리의 일체 반환을 요구했던 것은 맞지만 문화재제자리찾기 측이 미술관에서 사리 반환을 확답했다고 알려와 그렇게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1년 정병국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기자회견에서 “사리구는 어려워도 사리는 조만간 돌려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문화계에선 보스턴미술관의 ‘이중 플레이’에 문화재청과 시민단체 사이에 오해가 생겼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전문가는 “국외문화재를 돌려받고픈 심정은 정부나 시민단체나 한마음”이라며 “외국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어 반환을 미루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높이 22.5cm)는 13세기 고려시대에 제작돼 양주 회암사나 개성 화장사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일본 도굴꾼이 미국으로 밀반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리구에는 부처 진신사리와 고승의 사리가 함께 모셔져 있다. 라마탑은 티베트 양식의 불탑을 일컫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리랑에 이어 유네스코에 등재될 한국의 문화유산은 김치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유네스코 제7차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아리랑이 인류문화유산으로 확정되자 다음 등재 후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 대표음식 김치의 등재를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지자 ‘국가적 자존심’까지 거론되며 많은 눈길이 쏠렸다. 하지만 이는 반쯤 맞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문화재청이 등재를 신청한 것은 ‘김치’가 아니라 ‘김장문화’다. 김치와 김장문화는 무엇이 다른가. 문화재청이 이달 수정 보완해 제출한 신청서를 중심으로 그 차이점을 짚어봤다.○ 요리가 아닌 문화가 등재 대상 김치의 문화적 가치가 높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엔 ‘요리’가 등재된 전례가 없다. 지난해 프랑스 요리 선정이 화제를 모았지만 정확하게는 ‘프랑스식 식사’가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음식예절과 조리법 등 요리를 둘러싼 문화를 인류가 지켜야 할 유산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문화재청이 이번 신청서 작성의 주 책임을 요리연구가가 아닌 문화인류학자인 박상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에게 의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신청서는 자연친화적 재료로 발효건강음식을 만드는 전통방식인 김장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김장의 완성품인 김치가 한국 문화에서 지니는 위상도 강조했다. 한국인은 김치만 있어도 밥을 먹고, 진수성찬을 차려도 김치가 빠지면 서운하다. 세계 음식문화사에서 이런 독특한 위치를 지닌 요리는 드물다. 요리로 국한하면 상업적 이용의 소지가 생긴다는 점도 고려했다. 박영근 문화재청 문화재활용국장은 “유네스코가 가장 질색하는 게 인류문화유산의 정치적 상업적 연계”라며 “김장문화 자체는 김치처럼 상품화될 여지가 적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라고 말했다.○ 문화유산의 현대적 정체성이 관건 유네스코는 지난해 아리랑의 선정 이유에 대해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 지속적으로 재창조되고, 공동체 정체성의 징표이자 사회적 단결을 제고한다”고 밝혔다. 즉 문화유산이 현대에 얼마나 잘 녹아들고 긍정적 영향을 끼쳤는지를 중요하게 본다는 얘기다. 김장문화는 이런 기준에 딱 들어맞는다. 지금도 기상청이 ‘지역별 김장 날짜’를 따로 발표한다. 가전업체는 해마다 신기술을 적용한 ‘김치냉장고’를 선보인다. 박 교수는 “한국 도시문화에서 김장문화는 여전히 생활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며 “조선 궁중요리가 아쉽게 등재되지 못한 것은 이런 면이 다소 약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동체 정신도 빼놓을 수 없다. 김장문화엔 가족과 이웃이 모여 품앗이하던 전통이 살아 있다. ‘사내가 부엌만 기웃거려도 흉’이라던 조선시대에도 김장은 남정네마저 팔을 걷고 나서는 ‘성역할 완화제(gender mitigator)’ 역할을 했다. 나눔과 배려의 정신은 21세기에도 겨울이면 불우이웃을 위해 김장을 담그는 문화로 이어졌다.○ 고유하되 배타적이진 않아야 김치가 예부터 우리 민족이 즐긴 고유의 먹거리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역사보다는 김장의 개방적 성향을 강조했다. 해외에서 흘러들어온 배추나 고춧가루 등을 흡수해 더 수준 높은 음식문화로 발전시킨 ‘열린 문화’란 얘기다. 유네스코가 주창하는 ‘경계 없는 인류문화유산’이라는 지향점과도 잘 어울린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김장문화의 문화다원화적 요소는 유네스코 정신에 잘 부합한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