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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흘렀습니다.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려 정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 닷새간 수도 키이우를 찾았습니다. 이곳에 발을 닿은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매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제 눈에 보이는 장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큰 울림을 줬습니다. 키이우는 제게 이 모든 걸 꼭 널리 알려달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동아일보와 채널A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취재 후기로 소개합니다.▶1부 보기11일(현지 시간) 토요일 오전 9시가 안 된 이른 아침. 키이우 도심에 있는 재활병원은 붐볐다. 군복 입은 건장한 군인들이 목발이나 휠체어에 기대 드나들고 있었다. 이들 속에서 두 다리를 잃은 아르템 씨가 나타나자 이곳이 전쟁터란 사실이 확 와 닿았다.아르템 씨는 지난해 9월 남부 격전지인 헤르손에서 7명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순찰하던 중 지뢰가 터지면서 부상을 입었다. 3명은 숨졌지만 그는 다행히 손에 무전기를 지니고 있던 덕에 구조를 요청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헤르손에서 북서쪽에 있는 미콜라이프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곳 상황도 여의치 않아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로 이송돼 대수술을 받았다. 그는 비록 두 다리를 잃었지만 수술을 잘 해준 당시 의사에게 재차 고맙다고 했다. 재활을 위해 수도 키이우로 옮겨온 그는 여전히 다시 싸우겠단 의지가 강했다. 전장에서 러시아군들의 만행을 직접 지켜봤기 때문이다. 마을 도로에선 폭격을 맞은 차량과 쓰러진 시신들을 보곤 했다. 그는 “푸틴은 러시아란 국가가 우리를 죽이도록 만든 짐승”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언제 전쟁이 끝날 것 같으냐”는 질문에 “푸틴이 죽을 때까지”라며 격한 분노를 드러냈다.이곳에서 만난 의사 안드리 팔라마르추크 씨도 “재활센터에 오는 군인 90%가량이 ‘전장으로 돌아가겠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두 다리를 잃고, 정신적인 충격과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다시 싸우겠다는 그들의 결의에 숙연해졌다.아르템 씨는 거동이 힘든 상황인데도 너무나 긍정적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을 보여주면서 “나는 꼭 이렇게 극복할 것”이라고 했다. 용감한 전사들을 두렵게 하는 건 무엇일까. 적군도 아니고 자신의 죽음도 아니었다. 이들은 가족과 친구의 죽음이 두렵다고 했다. 아르템 씨도 아들과 딸, 홀로 가정을 지키는 아내와의 이별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가족이 우리에겐 가장 소중한 만큼 가장 아프다. 두 다리를 다친 20대 군인 올레크 씨도 “난 죽는 게 두렵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가 죽을까 봐 두려울 뿐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절친한 친구는 새해 첫날 동부 최전선에서 폭탄에 사망했다. 그 부대 팀원들이 순찰을 당했다가 단 한 명만 살아 돌아왔다고 했다. 친구의 죽음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망설여졌다. 슬픔 가득한 이 젊은 군인에게 아픈 이야기를 더 물어봐야 할지. 가끔 질문이 날카롭게 마음을 벨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런 질문을 하게 돼 미안해요. 전쟁의 참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여쭙습니다. (…) 혹시 하늘에 있는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올레크 씨는 울음을 꾹 억누르면서 말했다. “친구야, 슬프지만 어쩌겠니. 이게 인생인가보다.”이 한마디에 응축된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전쟁 초기 한 달 넘게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키이우 북서쪽 부차도 찾았다. 부차로 가는 길목엔 폭격에 무너진 건물과 녹슨 탱크들이 폐허로 남아 있었다. 불에 타올라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대형 건물 단지 근처에 있는 한 피란민 임시 거주지에 닿았다.인터뷰를 위해 들어선 아이들 놀이방엔 유니세프 등에서 지원한 장난감만 쌓여 있었다. 러시아군의 폭탄에 남편을 잃은 류보프 악세노바 씨는 “단전과 혹한으로 어린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떠났다”고 했다. 가건물로 조립된 거주지는 전력 부족으로 절반 이상이 어둑어둑했다. 악세노바 씨는 동부 격전지인 도네츠크 지역에서 온 피란민. 농사를 짓던 남편이 미사일 폭격에 목숨을 잃고 집이 불에 탔다. 망연자실한 채 두 아이와 함께 짐을 싸 작년 여름 이곳까지 오게 됐다. 10대인 딸은 직접 미사일 파편이 날아가는 장면을 본 터라 지금도 그 미사일이 날아들까 공포에 떤다고 했다. 악세노바 씨는 집도, 농사할 땅도 잃은 채 두 아이와 함께 부차로 왔지만 생계를 이을 길이 막막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힘든 건 남편의 빈 자리. 악세노바 씨는 “아이들과 남편이 유난히 더 끈끈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힘들어 한다”고 했다. 악세노바 씨는 전쟁으로 조국이 동서로 분단돼 도네츠크 지역에 남아 있는 친정 가족들과 생이별하게 될까 봐 두렵다고도 했다. 전화 연결이 안 될 때마다 불안하다.이 임시 거주지 여기저기에서 매일 같이 ‘아들이 죽었다’ ‘친구가 죽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호텔로 돌아와 만난 한국어 통역사도 “좀 전에 친한 친구 남편이 동부 최전선에서 사망했단 소식을 들었다”며 울먹였다. 가족, 절친의 죽음은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 우리가 멀리서 접하는 전쟁 속보의 사망자 숫자가 늘 때마다 이들의 삶은 매번 이렇게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키이우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묘지에서 아직 싱싱한 생화가 걸린 무덤을 만났다. 이곳에 묻힌 이가 전장의 군인이었는지는 불분명했다. 하지만 아직 군인 묘지가 마련되지 않아 우크라이나 곳곳의 묘지에 전사한 군인들의 무덤이 자리 잡는다고 한다. 망자는 이 곳에 묻힌 지 얼마 안 된 듯했다. ‘전쟁 탓에 이렇게 생명이 저물어 가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관련기사 보기[단독]젤렌스카 “우크라만의 전쟁이라 여겨질까 가장 두렵다“‘전쟁 지휘’ 임시 대통령궁, 미로 구조에 3단계 검문 ‘철통 보안’[단독]우크라 젤렌스카 여사 인터뷰 전문… “우크라만의 전쟁이라 여겨질까 가장 두렵다”[단독]우크라 젤렌스카 여사 “매번 새로운 공포…아이들 보며 긴 전쟁 견뎌”[특파원칼럼/조은아]우크라이나 아이들에게 노트북을“전쟁 겪으니 어려움에 단련돼”… 전쟁 중 창업하는 우크라 청년들[글로벌 현장을 가다]키이우=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흘렀습니다.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려 정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 닷새간 수도 키이우를 찾았습니다. 이곳에 발을 닿은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매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제 눈에 보이는 장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큰 울림을 줬습니다. 키이우는 제게 이 모든 걸 꼭 널리 알려달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동아일보와 채널A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취재 후기로 소개합니다.2023년 2월 10일 밤 9시 15분(현지 시간). 폴란드 국경도시 프셰미실에서 출발한 열차가 9시간 넘게 달린 끝에 무겁게 멈춰 섰다. 꼭 열차가 내 가슴 위로 멈춰서는 듯한 갑갑한 이 기분. 종점에 왔다. 우크라이나 키이우.현대로템이 만들어 한국 고속철도(KTX)와 닮은 열차에 친숙함을 느끼며 달렸는데 열차를 벗어나니 정말 낯선 세계가 나타났다. 탄약 연기가 가득 메운 듯 매캐한 냄새. 전쟁의 냄새. 군복 입은 남성들이 많았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분.정전이 된 듯 불을 찾아보기 힘든 키이우역 플랫폼. 열차에서 내려 어둠 속을 디뎠다. 열차 행선지가 뜬 안내판에 들어온 조명으로 나갈 길을 겨우 가늠했다.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 없어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일일이 계단을 오르고 내렸다. 지나던 남성들이 줄줄이 달라붙었다. 가방을 들어주겠단 얘기였다. 전혀 호의로 느껴지진 않아 단호한 ‘노(No)’로 응대했다. 뽀얀 피부에 열 살 정도 될 법한 남자아이가 “하이(Hi)”라고 말을 걸었다. 영어를 연습해보고 싶단 의지로 똘똘 뭉쳤는데 마침 외국인이 나타나 반갑다는 듯. “기자인가요(Are you a journalist)?”옆에 있던 소년의 누나가 물었다. 내가 어찌 알았냐고 물으니 “사진을 많이 찍고 있어서”라고 답했다. 하긴 이곳에선 나 같은 기자가 아니면 사진을 찍을 이가 없다. 이곳은 전쟁 국가의 수도가 아닌가.다들 차가운 표정으로 열차마냥 무겁게 몸을 이끌고 나갔다. 나도 겨우 플랫폼을 빠져나가 역사 안으로 들어섰다. 역사는 비교적 조명이 들어와 있었지만 흐릿했다. 딱 봐도 전력 사정이 안 좋음을 알 수 있었다. 러시아군이 에너지 시설을 집중 포격해 전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역사를 나오니 네온사인이 곳곳에 보여 오히려 놀랐다. 우리 팀을 안내하는 현지인 가이드 말로는 키이우는 전력 사정이 그나마 낫다고 했다. 호텔로 향하는 길은 어둑했다. 영화 배트맨의 고담시티를 만난 느낌이었다. 하지만 종종 불 켜진 건물들도 눈에 띄었다. 거리는 매우 한산했다. 밤 11시부터 통금이라 다들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듯했다.“에에엥!” 호텔에 들어서 체크인할 무렵 날카로운 공습경보가 울렸다. 호텔 직원은 비상시 방공호의 위치를 알려주고, 호텔 주변 지하철역을 일러줬다. 지하철역은 이곳에서 시민들이 길 가다 공습경보 때 대피하는 방공호다. 가이드가 “오늘 키이우 인근 지역까지 미사일 공격으로 도심 상점들이 문을 닫고 한바탕 시끄러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놀란 우리에게 위안 아닌 위안을 해줬다. “러시아가 공습을 한 번 하면 다음을 준비하는 데 열흘 정도 걸린대요. 오늘 큰 공습이 있었으니 그래도 열흘은 조용할 겁니다.”키이우를 자주 오가는 사람들은 그다지 위험하진 않다고 위로했지만 아무도 모른다. 미사일이, 아니면 그 파편이라도 언제 어디로 날아올지. 주우크라이나 한국 대사관에선 “극초음속 미사일이 발사될 땐 공습경보가 울리기 전에 미사일이 날아와 경보조차 소용이 없다”고 했다. 더구나 얼마 전 국내 언론사 직원이 숙박했던 도심의 4성급 호텔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그 직원은 체크아웃을 한 뒤였지만 일본의 한 기자가 남아 있다가 부상을 당했다. 호텔 방에 들어오니 집에 있는 어린 두 아이 생각이 많이 났다. 첫째는 엄마가 폴란드에 있는 줄 안다. 아이는 낌새가 이상했는지 떠나기 며칠 전부터 ‘엄마 어디가’라고 자꾸 물었다. 불안해할 것 같아서 “폴란드 출장을 간다”고 말해뒀다. “폴란드 과자 많이 사 와”라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떠나오며 마음이 참 심란했다.그런 마음을 끌고 드디어 여기까지 왔는데 경보가 첫날 밤부터 반겨주니 온몸이 긴장됐다. 호텔 방에 짐을 풀자마자 체크아웃하는 날 우크라이나를 벗어날 기차부터 예약했다. 호텔 유리창을 보니 키이우를 이미 다녀온 기자들 조언이 생각났다. ‘혹여나 미사일 공격을 받으면 창가가 위험하니 피하라’는 말이었다. 피곤하지만 깊이 잠들 수 없는 첫 밤, 창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몸을 뉘었다.▶관련기사 보기[단독]젤렌스카 “우크라만의 전쟁이라 여겨질까 가장 두렵다"‘전쟁 지휘’ 임시 대통령궁, 미로 구조에 3단계 검문 ‘철통 보안’[단독]우크라 젤렌스카 여사 인터뷰 전문… “우크라만의 전쟁이라 여겨질까 가장 두렵다”[단독]우크라 젤렌스카 여사 “매번 새로운 공포…아이들 보며 긴 전쟁 견뎌”[특파원칼럼/조은아]우크라이나 아이들에게 노트북을“전쟁 겪으니 어려움에 단련돼”… 전쟁 중 창업하는 우크라 청년들[글로벌 현장을 가다]키이우=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하루 앞둔 23일(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대 핵전력 증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겠다”며 이틀 만에 또 핵 위협을 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이틀 전 양국의 핵 군축 합의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의 참여 중단을 선언한 것을 두고 “큰 실수”라고 경고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조국 수호의 날’인 이날 기념 연설에서 “3대 핵전력(Nuclear Triad) 증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3대 핵전력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뜻한다. 그는 또 “사르마트를 올해 배치하는 등 첨단 무기를 갖춰 나가겠다”고 밝혔다. 사르마트는 핵 탄두를 여러 개 탑재할 수 있는 세계 최대 ICBM으로, 연내에 배치하겠다는 방침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차세대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과 해상 기반 극초음속 미사일 ‘지르콘’ 또한 대량 생산하겠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21일 국정연설에서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전격 선언했다. 이틀 만인 이날 3대 핵전력 증강까지 거론하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핵 위협을 연계시킬 뜻을 분명히 했다. 22일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지르콘’을 장착한 러시아군 호위함 ‘고르시코프’가 이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했다. 이날부터 27일까지 진행되는 남아공, 러시아, 중국 3개국의 해군 연합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사거리가 900km인 지르콘은 음속의 5배 속도여서 현존하는 미사일방어체계로는 요격이 어렵다. 고르시코프는 지난달 말 대서양에서 지르콘을 시험 발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 ABC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뉴스타트 참여 중단에 관한 질문을 받고 “큰 실수이며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핵 전력) 태세나 그들이 하는 것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푸틴)가 핵무기나 비슷한 무기를 사용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하루 앞둔 23일(현지 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대 핵전력 증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겠다”며 이틀 만에 핵 위협을 또 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이틀 전 양국의 핵 군축 합의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의 참여 중단을 선언한 것을 두고 “큰 실수”라고 경고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조국 수호의 날’인 이날 기념 연설에서 “3대 핵전력(Nuclear Triad) 증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3대 핵전력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뜻한다. 그는 또 “사르마트를 올해 처음 배치하는 등 첨단 무기를 갖춰나가겠다”고 밝혔다. 사르마트는 핵 탄두를 여러 개 탑재할 수 있는 세계 최대 ICBM로, 연내에 배치하겠다는 방침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차세대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과 해상 기반 극초음속 미사일 ‘지르콘’ 또한 대량 생산하겠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21일 국정연설에서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전격 선언했다. 이틀 만인 이날 3대 핵전력 증강까지 거론하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핵 위협을 연계시킬 뜻을 분명히 했다. 22일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지르콘’을 장착한 러시아군 호위함 ‘고르쉬코프’가 이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했다. 이날부터 27일까지 진행되는 남아공, 러시아, 중국 3개국의 해군 연합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사거리가 900㎞인 지르콘은 음속의 5배 속도여서 현존하는 미사일 방어 체계로 요격이 어렵다. 고르쉬코프는 지난달 말 대서양에서 지르콘을 시험 발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미 ABC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뉴스타트 참여 중단에 관한 질문을 받고 “큰 실수이며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핵 전력) 태세나 그들이 하는 것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푸틴)가 핵무기나 비슷한 무기를 사용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우린 강하고, 두렵지 않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14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도심 카페에서 만난 청년 이반 카라울라노우 씨(34)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카페를 창업하게 된 이유에 대해 기자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카페 정문에는 큼직한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그의 카페 이름은 ‘카락테르니키’. 우크라이나어로 ‘특징’이란 의미다. 다른 카페와 차별화된 특징을 담자는 의지가 반영됐다. 이 카페의 특이한 점은 지금은 러시아군에 점령당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베르댠스크를 주제로 했다는 것이다. 베르댠스크는 이 카페 직원 20여 명이 떠나온 고향이다. 카페 곳곳에 베르댠스크의 풍경을 찍은 사진과 전통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이들은 베르댠스크를 상징하는 깃발로 디자인한 설탕 과자, 전통주, 전통 음식을 팔고 있었다.》 피란민들, 고향 테마로 카페 열어 카라울라노우 씨는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뒤 비교적 안전한 키이우로 옮겨왔지만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같은 고향 출신 지인들을 만나 ‘그리운 고향을 알리고 추억하는 카페를 만들자’며 의기투합하게 됐다. 애초엔 고향에서의 경험을 살려 ‘튀르키예식 후카(물담배) 바’를 운영할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을 가급적 많이 고용할 수 있는 카페가 더 낫다고 판단이 섰다. 지난해 8월 23일은 ‘우크라이나 국기의 날’이자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독립기념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날 ‘러시아의 핵 공격이 있을 수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카라울라노우 씨는 “러시아의 핵 공격 예고는 우리가 카페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신호 같았다”며 “카페 개업을 한창 준비 중이었는데 이날 전격 개업했다”고 했다. 러시아의 위협이 고조될수록 오히려 가게 문을 열어 항전 의지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직원들도 개업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키이우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카페 창업 취지를 설명하며 투자를 받았다. 손재주가 좋은 카라울라노우 씨는 테이블과 의자를 직접 만들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직접 가게를 수리했다. 카페에 걸어놓을 그림을 가져오고 인테리어 소품을 구해 오는 직원들도 있었다. 카페 곳곳에는 러시아에 대한 항전 의지를 새겨 넣었다. 카페 2층 벽 전면에는 대형 창 두 개가 ‘X’ 모양으로 걸려 있었다. 이 문자는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는 “‘X’는 우크라이나어 문자 가운데 15세기부터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오는 문자”라고 설명했다. “이 창은 우리 고향 베르댠스크가 있는 자포리자주의 호르티차섬에서 가져왔어요. 우리 민족의 영웅인 ‘코자크’가 호르티차섬에서 외세에 맞서 쓰던 무기죠. 그 시대의 정신을 가져오고 싶었어요.” 우크라이나 전사 집단인 코자크(카자크)는 15, 16세기 러시아 등 외세에 맞서 독립을 위해 투쟁한 영웅 집단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코자크에게서 항전 의지와 민족정신을 찾는다. 우크라이나 국가 말미에 ‘형제들이여, 우리는 우리가 코자크의 국가임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표현이 담길 정도다.“망하면 돈 잃지 목숨 잃진 않아” 카라울라노우 씨는 오히려 전쟁을 겪으면서 더 단단해졌다고 했다. 전쟁 전에 장사할 때는 애로사항이라면 파이프 파열, 단수 등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어려움의 차원이 달라졌다고 했다. “이제 우린 식자재를 사러 갈 때 공습경보가 울릴지, 식자재 도매점이 단전이나 격전 지역은 아닌지 따져보고 목숨을 걸고 갑니다. 이제 금융위기 같은 것도 두렵지 않아요. 장사해서 망하면 돈을 잃지, 목숨을 잃진 않잖아요?” 그는 전쟁 후 우크라이나 경제가 더 단단해져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우크라이나인의 기상도 세계에 널리 알려져 투자자나 소비자들이 더 주목할 것이라고 봤다. 우크라이나의 젊은 청년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도 확 달라졌다고 했다. 삶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껴 자신이 진실로 원하는 것에 집중하게 됐다는 얘기다. “전쟁 속에서 죽음의 위협을 느끼다 보니 우리는 종(種)이 달라졌어요. 이젠 돈을 생각하며 내키지 않는 일을 하지 않아요.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하려 합니다.”“창업 공간이자 연대의 공간” 12일 키이우에서 남쪽으로 승용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비타치우의 한 베이커리 겸 식당에는 점심시간이 지난 시각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이곳 사장인 이리나 소브코 씨는 손님으로 북적이는 베이커리에서 음식을 나르는 틈틈이 손님들과 얼싸안고 안부를 묻느라 바빴다. 손님 대부분이 이웃이나 친구 같았다. 카페 중앙에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 있고, ‘조국을 위해 싸우는 군인에게 빵을 보내자’란 취지의 기부금 이벤트가 마련돼 있었다. 테이블 곳곳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크레용과 종이가 놓여 있었다. 베이커리 한편에는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색으로 그린 우크라이나의 풍경, 전쟁 모습 등이 걸려 있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틀 뒤인 지난해 2월 26일, 그는 베이커리 개업 일정을 앞당겨 이곳에 문을 열었다. 침공으로 갑자기 식량을 구하기 어려워진 주민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베이커리 주방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각자 밀가루, 설탕, 계란 등 식재료를 주섬주섬 들고 와 함께 밀가루 반죽을 만들고 빵을 구워냈다. 이렇게 베이커리는 동네에서 연대의 상징이 됐다.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지역 손님들도 찾아오고 있다. 소브코 씨는 “우린 가진 게 별로 없었지만 함께 빵을 구우며 희망을 봤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국내총생산(GDP)은 전년에 비해 30.4% 줄고 실업률은 30%까지 치솟았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청년들은 지금이 암울한 만큼 오히려 미래를 더 낙관하고 있다. 전후 우크라이나 성장 가능성을 내다보며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기회를 선점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키이우시 교통 담당 부서에서 일하다가 ‘주차 공유 서비스’ 창업을 준비 중인 세르게이 마이젤 씨는 5년 뒤쯤이면 전쟁이 끝나고 안정을 찾아 도심 주차 수요가 늘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는 “자체적으로 조사해 보니 사람들이 주차 장소를 찾는 데 쓰는 시간이 평균 15분이었다.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지 않도록 주차 공유 애플리케이션을 내놓을 계획”이라며 “4개월 뒤에는 사업을 런던 파리 뉴욕 등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서비스를 ‘우버택시’에 버금가는 ‘우버파킹’ 격으로 키운다는 포부를 나타냈다. 청년들은 기자에게 전쟁이 끝나면 꼭 다시 우크라이나를 찾아올 것을 권했다. 이곳저곳에서 사업 기회가 생기고 관광객은 늘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꼭 취재해 달라고 부탁했다.―키이우·비타치우(우크라이나)에서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해리포터’ 시리즈의 저자 J K 롤링(58·사진)이 가정폭력을 휘둘렀던 전 남편이 해리포터 1권 원고를 볼모로 잡고 떠나지 못하게 통제하는 바람에 원고를 매일 몇 장씩 몰래 복사해야 했다는 뒷이야기를 털어놨다. 롤링은 ‘J K 롤링의 마녀재판’이라는 팟케스트에서 1993년 전 남편 호르케 아란치스와 이혼하고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원고를 완성한 과정을 이 같이 소개했다고 더타임스가 21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롤링은 “그가 날 떠나지 못하도록 태우거나 가져가거나 하는 식으로 원고를 볼모로 삼을 것이란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롤링은 1992년 아란치스와 결혼한 뒤 이듬해 딸 제시카를 낳았지만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이혼했다. 싱글맘이 된 그는 복지수당으로 생계를 꾸리며 원고를 완성했다. 그는 2001년 영국 마취과 의사 닐 머리와 재혼해 1남 1녀를 더 낳았다. 롤링은 “전 남편은 매우 폭력적이었고 통제가 심했다. 내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가방을 뒤졌고 나는 현관 열쇠도 갖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전 남편은 해리포터 원고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어느 순간 원고를 숨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롤링은 “내가 원고보다 더 열심히 챙긴 건 딸 뿐이었다”고도 했다. “성별은 변하지 않는 것” 등의 발언으로 트랜스젠더 혐오 논란에 휩싸이지 않았다면 사랑받는 동화작가로 기억됐을 것이란 의견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명성을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고 영국 인디펜던트지가 전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사흘 앞둔 21일(현지 시간) ‘맞불 연설’에 나섰다. 미국 주도의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러시아·중국 중심의 권위주의 진영 간 대결이 더욱 격화되는 모습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낮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국정연설을 통해 “서방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확장하고, 그 우산으로 우리를 덮으려 한다”며 “전쟁에 책임 있는 것은 그들이며 우리는 전쟁을 멈추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러 간 핵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을 종료하겠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같은 날 저녁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연설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 전쟁은 (지역 분쟁이 아니라) 민주주의 파괴자들과 지지자들의 경쟁”이라고 규정했다고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아무리 오래 걸려도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7시간 차를 두고 이어진 두 정상의 연설에 대해 “극명하게 다른 세계관이 화면 분할이라는 드문 순간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났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냉전 전사(cold warrior)’의 대리전이 됐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전세계가 우크라 편”… 푸틴 “러 패배시키는건 불가능” 美-러 정상 ‘맞불 연설’ 푸틴 “러 핵전력 현대화” 또 핵위협바이든, 서방의 우크라 지지 강조젤렌스키 “中, 러 지원땐 3차대전”美, 바이든 키이우 방문 러에 통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사흘 앞둔 21일(현지 시간) 수도 모스크바 의회 국정연설에서 전쟁 개전 및 확전을 서방 탓으로 돌렸다. 이어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가 올봄 대공세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전력을 지원하는 서방 국가를 압박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같은 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최전방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맞불 연설’을 통해 서방 진영에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침략자들과의 물러설 수 없는 결전”을 강조했다. 신(新)냉전의 양축인 두 정상이 약 1000km 떨어진 유럽 도시에서 서로를 향해 날 선 발언을 쏟아낸 것은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의 대립에서 자신들의 승리를 굳히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푸틴, 탈냉전 상징 ‘뉴스타트’ 파기푸틴 대통령은 이날 2시간에 가까운 의회 국정연설에서 “러시아를 전장에서 패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전날 우크라이나를 찾아 “푸틴의 정복 전쟁은 실패했다”고 말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맞대응으로 해석된다. 그는 매년 초 국정연설을 통해 정국 운영 방침을 밝혔지만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이유로 국정연설을 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정연설에서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을 배치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멀리 밀어낼 것”이라며 “러시아의 핵전력은 현대화됐고 국가 방위를 위한 준비가 돼 있다”며 또다시 핵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미국 프랑스 영국이 핵무기를 모두 러시아에 겨냥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그는 이어 2011년 발효된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감축 조약인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하며 “미국이 먼저 핵무기를 시험하면 러시아도 핵무기를 시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뉴스타트는 미국과 러시아가 실전 배치한 핵탄두 수를 각 1550기 이하로 줄이고, 상호 핵시설을 사찰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러시아가 뉴스타트를 거부하면서 탈(脫)냉전을 상징했던 양국의 핵 군축 합의가 모두 무효화됐다. 20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그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을 포함해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합병 후 결성된 ‘부쿠레슈티 나인’ 지도자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우크라이나에서는 “민주주의는 건재하다. 세계가 우크라이나와 함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각각 1942년생과 1952년생인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사실상 직접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계속 부딪혀 온 냉혈 70대 지도자(푸틴 대통령)와 막 80이 넘은 지도자(바이든 대통령)가 직접 전쟁을 벌이기 직전까지 이르렀다”고 해석했다.● 美, 바이든 키이우 방문 전 러에 통보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일 독일 유력 일간지 ‘디벨트’ 인터뷰에서 “중국이 러시아에 살상 무기를 지원한다면 제3차 세계대전이 발생할 수 있다”며 미국의 추가 지원을 압박했다. 중국의 러시아 지원 가능성을 감안할 때 미국이 반드시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이 남긴 각종 후일담도 화제다. 미 언론은 현직 대통령이 미군이나 동맹국 군대가 상황을 통제하지 않는 ‘전쟁 지역(War Zone)’을 방문하는 점은 지극히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방문 이틀 전인 17일 직접 우크라이나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보안을 우려해 그가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 대신 국내 이동에 사용하는 ‘에어포스 투’를 탔다고도 했다. 백악관이 대통령과 동행한 취재기자 2명에게 보낸 일정 안내 이메일의 제목 또한 ‘골프 대회 지침’이었다. 백악관은 러시아와의 충돌을 우려해 대통령의 출발 몇 시간 전 러시아 측에 이를 사전 공지했다고 밝혔다. 다만 “러시아의 반응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언급해 러시아의 격한 반발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사흘 앞둔 21일(현지 시간) 수도 모스크바에서 국정 연설을 갖고 전쟁 개전 및 확전의 책임이 모두 서방에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외무부 또한 린 트레이시 러시아주재 미국 대사를 초치해 “서방 병력과 장비를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특히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맺은 핵무기 통제조약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하며 “미국이 핵실험을 하면 똑같이 할 것”이라고 했다. 올봄 대공세를 앞두고 전쟁 장기화에 지친 자국 여론을 무마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 또한 압박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같은 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최전방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의 ‘맞불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침략자들과의 물러설 수 없는 결전”을 강조했다. 신(新)냉전의 양축인 두 정상이 약 1000km 떨어진 유럽 도시에서 서로를 향해 날 선 발언을 쏟아낸 것은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의 대립에서 자신들의 승리를 굳히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푸틴, 탈냉전 상징 ‘뉴스타트’ 파기 푸틴 대통령은 이날 약 2시간의 연설에서 “러시아를 전장에서 패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전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찾아 “푸틴의 정복 전쟁은 실패했다”고 일침을 날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맞대응으로 해석된다. 그는 매년 초 국정연설을 통해 정국 운영 방침을 밝혔지만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이유로 연설을 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을 배치한다면 그것을 멀리 밀어낼 것”이라며 거듭 핵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미국 프랑스 영국의 핵무기가 모두 러시아를 겨냥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2011년 발효된 뉴스타트에 대한 참여 중단도 선언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실전 배치한 핵탄두 수를 각 1550기 이하로 줄이고 상호 핵시설을 사찰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러시아의 뉴스타트 거부로 탈(脫)냉전을 상징했던 양국의 핵 군축 합의가 모두 무효화됐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복귀를 원하면 프랑스와 영국의 핵무기고를 어떻게 할지부터 답하라고도 했다.그는 이날 불리한 전세를 뒤집거나 전쟁 종료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진 못했다. 서방 제재에도 경제가 잘 버티고 있다며 “돈의 흐름이 마르지 않았다”고도 했다. 외부보다 국내 여론을 신경 썼다는 분석이 제기된다.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트레이시 대사를 초치했다고 밝혔다. 또 트레이시 대사에게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무기, 미국 시민을 포함한 인력까지 모두 러시아 공격의 합법적 목표물”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발트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 사건에 대한 공정한 조사도 주문했다. 최근 미 탐사보도 전문기자 세이무어 허쉬는 미국이 러시아를 방해하기 위해 노르트스트림에 고의적으로 폭발물을 설치했고 노르웨이와 함께 터트렸다고 주장했다.20일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그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을 포함해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합병 후 결성된 ‘부쿠레슈티 나인’ 지도자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9개국은 옛 소련의 압제에 시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각각 1942년생과 1952년생인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사실상 직접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계속 부딪혀 온 냉혈 70대 지도자(푸틴 대통령)와 막 80이 넘은 지도자(바이든 대통령)가 직접 전쟁을 벌이기 직전까지 이르렀다”고 해석했다.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1일 러시아가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한 것을 두고 “매우 유감스럽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美, 바이든 키이우 방문 전 러에 통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일 독일 유력 일간지 ‘디벨트’ 인터뷰에서 “중국이 러시아에 살상 무기를 지원한다면 제3차 세계대전이 발생할 수 있다”며 미국의 추가 지원을 압박했다. 중국의 러시아 지원 가능성을 감안할 때 미국이 반드시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이 남긴 각종 후일담도 화제다. 미 언론은 현직 대통령이 미군이나 동맹국 군대가 상황을 통제하지 않는 ‘전쟁 지역(War Zone)’을 방문하는 점은 지극히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17일 직접 우크라이나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보안을 우려해 그가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 대신 국내 이동에 사용하는 ‘에어포스 투’를 탔다고도 했다. 백악관이 대통령과 동행한 취재기자 2명에게 보낸 일정 안내 이메일의 제목 또한 ‘골프 대회 지침’이었다. 백악관은 러시아와의 충돌을 우려해 대통령의 출발 몇 시간 전 러시아 측에 이를 사전 공지했다고 밝혔다. 다만 “러시아의 반응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언급해 격한 반발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김수현기자 newsoo@donga.com}

24일 러시아 침공 1년을 맞는 우크라이나의 지역언론 오데사저널이 동아일보와 채널A가 함께 볼로도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45)를 인터뷰한 기사를 인용해 소개했다. 오데사저널은 19일(현지 시간) ‘하루 만에 끝나는 전쟁일지라도 전쟁은 항상 길다’는 젤렌스카 여사의 인터뷰 발언을 제목으로 내건 기사에서 “젤렌스카 여사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 감사함을 전하며 국제사회의 계속적인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오데사저널은 동아일보·채널A 인터뷰 가운데 주로 “현대의 전쟁은 검투사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을 관람하는 무대가 아니다”, “오늘날의 전쟁은 언제든지 무대로부터 튀어나올 수 있다” 등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무심함을 우려하거나, 전쟁의 확전 가능성을 경고하는 발언들을 소개했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 모습을 촬영한 사진도 여러 건도 기사와 함께 게재했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열흘가량 앞둔 13일 아시아 언론으로서는 처음으로 젤렌스카 여사를 수도 키이우 임시 대통령궁 내 대통령집무실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해 한글과 함께 영문으로도 보도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우크라이나 전쟁 1년을 취재하러 찾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열 살배기 딸을 키우는 여성을 만났다. 그는 몇 달 전 갑자기 울린 공습경보에 부리나케 아이 학교 앞으로 달려갔다. 스마트폰 학부모 단체 채팅방에는 아이들이 학교 지침에 따라 교내 대피소로 대피했다는 공지가 떴다. 딸을 데리고 나오고 싶었지만 공습경보가 종료될 때까지 학교 앞에서 마음을 졸여야 했다. 갑자기 ‘교내 대피소에 (공중 살포) 지뢰가 떨어졌다’는 가짜뉴스가 퍼져 아이들은 다른 피난처로 자리를 옮겼다. 발만 동동 구르던 그는 극도의 공포에 떨었다. 이날 이후 ‘학교는 더 이상 보낼 곳이 아니다’는 생각에 집에서 원격수업만 시키고 있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군의 포격과 미사일 공격에 교실을 잃은 아이가 늘고 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전쟁으로 학교 등 교육시설 수천 곳이 파손돼 우크라이나 어린이 약 500만 명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어린이 약 190만 명이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온라인 수업은 참혹한 현실 속 아이들에게 힘든 일상을 이겨내는 희망을 주고 있다고 한다. 현지에서 만난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 수업에서 위안을 찾는다”고 입을 모았다. 키이우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도 좀처럼 보기 힘든 외국인 기자를 붙잡고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기회, 새로운 세계를 탐색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문제는 아이들 희망의 끈인 온라인 수업마저 노트북이 부족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13일(현지 시간) 기자와 직접 만나 원격수업을 하는 아이와 교사를 위해 한국이 노트북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지인들에게 들어보니 노트북 부족은 심각했다. 러시아군이 미사일 공격이나 포격을 가한 지역의 집들은 가구는 물론이고 노트북이나 PC 등이 불에 탔다. 남은 교사는 고령의 여성이 많은데, 급여가 적어 노트북 살 여유가 없다고 한다. 물론 한국 정부와 기업은 이미 우크라이나에 노트북을 전달해 왔다. 다만 여전히 노트북이 부족한 상황이니 정보기술(IT) 강국으로서 신제품뿐 아니라 중고 노트북을 기부받아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등 좀 더 적극적으로 도우면 어떨까. 우크라이나에서 스마트폰 및 애플리케이션(앱) 개발 기술을 전수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전쟁이 길어지며 우울감을 느끼거나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같이 정신건강에 위험 신호가 생긴 사람이 많아지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정신건강 자가 진단용 앱 개발에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의료 분야에서도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은 클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사상자가 많아지면서 최전선이 아닌 키이우 병원들마저 찾아온 환자를 돌려보낼 지경이다. 전시 의료용품 지원에 이어 전후 재건 과정에서 의료 기술을 전수할 필요도 있다. 6·25전쟁 직후 한국은 미국의 전문 기술을 전수받는 ‘미네소타 프로젝트’ 수혜를 받았다. 당시 미 국제개발처(USAID)가 지원한 1000만 달러를 토대로 농학과 공학 분야에서 뛰어난 미네소타대를 중심으로 서울대 복구와 농과 및 공과대학 발전을 도왔다. 전후 우방국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IT 강국 한국’은 어려웠을 것이다. 올해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이다. 정부와 대학이 70년 전 우리를 떠올리며 우크라이나판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가동하길 기대해 본다.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뚱뚱한(fat)은 거대한(enormous)으로, 남자(men)는 사람(people)으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등으로 유명한 영국 아동문학작가 로알드 달(1916∼1990) 작품 속 표현들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맞게 수정돼 재출간됐다고 17일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 출판사 ‘퍼핀’ ‘로알드 달 스토리컴퍼니’는 2020년부터 전문가들과 그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검토해 신체, 정신건강, 젠더, 인종 등과 관련된 수백 가지 표현을 수정했다. 신체 표현이 대표적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수정본에서 오거스터스 그루프는 ‘뚱뚱한’ 대신 ‘거대한’ 사람으로 표현됐다. 소인족 움파룸파는 ‘아주 작은(tiny)’ 대신 ‘작은(small)’으로 바뀌었다. ‘남자’이던 움파룸파 성별도 중성적인 ‘사람’으로 변경됐다. 마틸다에서 주인공 마틸다는 남성 작가 러디어스 키플링 소설을 즐겨 읽는 것으로 묘사됐지만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 책을 읽는 것으로 수정됐다.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주인공 미스터 폭스의 아들은 딸로 바뀌었다. 문제적 표현은 아예 삭제됐다. ‘더 트위츠(멍청씨 부부 이야기)’에서 인신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중 턱’ ‘미친’이란 표현은 없어졌다. 인종차별을 떠올린다는 색상이라며 ‘검은’ ‘하얀’도 사라졌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땐 문장이 추가됐다. ‘더 위치스(마녀를 잡아라)’에서 마녀가 가발 아래 대머리를 숨기고 있다는 대목 다음에 “여자들이 가발을 쓰는 이유는 이것 말고도 많고,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란 문장이 들어갔다. 로알드 달은 최근 반유대주의와 여성 혐오, 인종차별 비난을 받았다. 2020년 미국 할리우드 영화 ‘더 위치스’에서 마녀 역을 맡은 앤 해서웨이가 손가락이 없는 것으로 나오자 장애인 비하 논란이 일었다. 유족은 반유대주의 성향이 담긴 작가의 글에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작품 수정을 두고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달의 전기 작가 매슈 데니슨은 달이 신중하게 어휘를 선택했다며 “정치적 분위기로 촉발된 그의 소설 변경은 어린이가 아닌 성인이 주도했다”고 말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앞두고 미국이 “러시아는 반(反)인도적 범죄를 책임져야 한다”며 신속한 러시아 전범 처벌과 추가 제재를 시사했다. 러시아는 “미국이 대러 제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러시아를 악마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 사상자가 2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이 나오는 가운데 러시아,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 올해 평화협상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전쟁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비관론이 우세해지고 있다.● 美 “러, 반인도적 범죄 책임져야”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은 18일 독일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벌인 러시아의 행위에 대한 증거를 검토했다”면서 “미국은 공식적으로 러시아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해리스 부통령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민간인 살인과 고문, 강간, 추방 등 끔찍하고 광범위한 공격을 해왔다. 어린이를 포함한 수십만 명을 러시아로 강제 추방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범죄를 저지른 모든 이와 그들의 상관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우크라이나 사법 절차와 국제 (전쟁범죄) 수사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엔은 1996년 조직적 살인과 인종 말살, 고문, 강제 인구 이동 등을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했다. 미국이 러시아를 이 같은 ‘반인도적 범죄 행위자’로 규정하면서 러시아의 전쟁범죄 처벌을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미 CNBC방송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조만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해 러시아 전범 처벌을 위한 특별재판소 설치를 논의할 것이라고 이달 초 보도했다.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을 비롯해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정황이 속속 드러났지만 구체적인 처벌 시도는 거의 없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러시아를 지원하는 북한과 중국, 이란에도 강하게 경고했다. 월리 아데예모 미 재무부 부장관도 이날 미국외교협회(CFR) 연설에서 러시아와 지원 국가에 대한 추가 제재를 시사했다. 그는 “러시아 경제는 (서방) 제재로 (경제가 불안한) 이란과 비슷한 모습”이라며 “불법 침공이 멈출 때까지 더 많은 일(제재)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반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대사는 19일 텔레그램을 통해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러 제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러시아에 반인도적 범죄 혐의를 씌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언제든 전쟁 종식 가능” 주장도영국 국방부는 전쟁 1년간 러시아 정규군과 용병단 바그너그룹 등의 사상자가 17만5000∼20만 명(전사자 4만∼6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17일 분석했다. 그럼에도 올해 평화협상을 통한 종전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경제분석조직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19일 발간한 ‘우크라이나 전쟁 백서’에서 “평화협상은 성사되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어느 쪽도 양보해야 하는 종전안에 동의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에 따르면 러시아 정보기관 연방보안국(FSB) 요원 출신인 군사평론가 이고리 기르킨은 “우리는 특별군사작전 목표를 공식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 목표 달성을 선언하고 전쟁을 끝내는 일도 간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나쁜 일은 겪을 수 있는 만큼 다 겪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매번 전쟁의 새로운 공포를 알게 되네요.” 지난해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열흘가량 앞둔 13일(현지 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45)는 수도 키이우의 ‘임시 대통령궁’ 내부 대통령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채널A 공동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전쟁을 견뎌내고 있는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젤렌스카 여사는 하르키우시 버스정류장에서 죽은 아들의 손을 4시간 동안 잡고 있던 아버지, 부차 집 마당에 묻힌 어머니 묘지를 지키는 아들, 드니프로시의 파괴된 주택 속에서 청각장애인이라 ‘살려 달라’는 말을 제대로 외치지 못하다 뒤늦게 구조된 여성을 소개하며 “매주, 매일이 비극이다. 우린 계속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그중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세계가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만의 전쟁이다’라고 생각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길어지는 전쟁의 종식을 위해 국제사회의 지원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대화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또 “6·25전쟁 후 한국의 재건 경험은 우크라이나에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며 “한국이 전쟁 이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룬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도 했다. 러시아 침공의 부당함을 호소할 각종 국내외 행사로 피곤한 기색도 엿보였지만 젤렌스카 여사는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 열정적으로 응했다. 그는 “지금 내가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면서 “나는 나의 일을 최대한 정성스럽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코미디언 출신 남편 힘들어해, 내가 웃겨 주려 노력” “매일 비극, 우린 그냥 살고 싶을뿐아이들 미래 생각하며 전쟁 견뎌국제사회의 군사적 도움 절실전후 복구 성공한 韓과 협력 원해”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이날 낮 키이우의 ‘임시 대통령궁’ 대통령 집무실 앞에 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나타났다. 베이지색 정장을 입고 나타난 그는 기자의 푸른색 정장 차림을 보고는 “우리 우크라이나 국기 색깔과 같다”고 말했다. 처음 접해 보는 한국어 통역 인터뷰에 “한국어는 매우 부드럽게 들린다”며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다. 여사의 성인 ‘젤렌스카’는 남편의 성인 ‘젤렌스키’에 여성형 어미 ‘에이(a)’를 덧붙인 형태다. 젤렌스카 여사는 전생 참상을 알리며 각국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해 지난해 영국 공영 BBC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에 올랐다. 현재 19세 딸과 10세 아들을 두고 있다. ―전쟁이 길어지고 있는데 힘들진 않은가. 긴 전쟁을 어떻게 견디고 있나. “어떤 전쟁을 ‘짧은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전쟁이 매주, 매일 비극이다. 우리 모두 피곤하고 힘들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살고 싶을 뿐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긴 전쟁에 대한) 피로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힘든 순간을 견딘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하나.“전쟁 전에 독서를 많이 좋아했다. 하지만 독서는 잡생각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정말 좋다. 아이들이 ‘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걸 들을 때도 그렇다. 아이들의 발랄함과 천진함은 굉장히 큰 선물이다.”―젤렌스키 대통령이 힘들 때 어떤 말을 해주나. “가끔 남편을 웃게 하면 남편이 힘을 받는다. 내가 요즘 (코미디언 출신) 남편을 웃기려고 한다. 보통 가족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격려의 말도 한다. ‘힘내’ ‘우리 다 이겨낼 수 있어’란 말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길어지는데 가장 두려운 점은 무엇인가. “세계가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만의 전쟁이다’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이 전쟁은 우리에게만 위험한 게 아니다. 우크라이나가 지면 러시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우리가 부탁하는 만큼 (국제사회가) 도움을 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가.“다른 사람들은 몇 번이나 내게 ‘대통령 부인이 군사적 도움을 부탁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냐’라고 물었다. 우리를 보호하고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내가 나서야 한다. 군사적 도움은 제일 필요한 일이다. 두 번째로 이제 인프라 복원이 절실하다. ‘사람’이 우선이다. 무너진 건물과 학교, 유치원, 병원을 다시 지어야 한다. 세계가 도와줄 수 있다.” ―전쟁 중에 아이들을 키우며 무엇을 중시하고, 어떤 말을 많이 하나.“아이들에게 솔직해야 한다. 우리는 예전처럼 완전한 꿈을 꿀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은 확실히 예전대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 ‘확실함’을 전달해야만 한다. ‘어른들이 너희를 지킬 거야. 그러니 너희들은 안심하고 걱정하지 마’라고.” ―이번 전쟁이 더 길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숨을 쉬면서) 전쟁은 언제나 긴 법이다. 우리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는 우방국의 지원에 달려 있다. 한국전쟁을 보더라도, 다른 나라의 용감무쌍한 파견 군인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끝날 수 있었다.” ―전쟁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은….“(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단 한순간도 그 사람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를 죽이러 온 상대는 그 어떤 누구도 직접 마주하기 싫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으로서 푸틴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뿐이다. 우리에게서 떨어져라.”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길 바라나.“우리를 잊지 말고 계속 응원해 주면 좋겠다. 한국은 큰 나라라서 도움이 절실하다. 군사적 지원에 대한 (한국 측의) 대화를 기다리겠다. 또 몇 개월 전 내가 설립한 재단을 통해 한국이 교육 시스템을 지원할 수 있다. 아이들이 안전 문제 때문에 온라인으로 공부하는데, 노트북이 필요하다.” ―한국의 전후 재건 과정이 참고가 될까.“한국은 전후 복구에 성공했다.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뤘고 인적 자원도 회복했다. 이 같은 경험은 (우크라이나에) 굉장한 의미가 있다. 한국이 협력을 제안해 준다면 우리는 그 제안을 너무나 행복하게 받겠다.” ▶dongA.com에서 인터뷰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키이우=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임시 대통령궁’은 철저하게 숨겨져 있었다.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 용병들이 암살을 시도하는 등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가족은 신변 위협을 받아 왔다. 동아일보·채널A 취재팀은 13일(현지 시간) 젤렌스키 대통령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를 인터뷰하려면 약속 시간 약 3시간 전에 모처로 오라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의 ‘지침’을 받았다. 모처에서 차량으로 10여 분을 이동해 임시 대통령궁 앞 초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대통령궁 입구까지 3단계 검문을 통과할 때마다 자동소총을 들고 방탄조끼를 입은 군인들이 취재팀을 감시했다. 궁 정문으로 보이는 대문은 나무판과 모래주머니 등이 가로막고 있고 그 옆 작은 문으로만 사람이 드나들었다. 궁 안 곳곳에도 무장 군인들이 배치돼 있었고 창문은 모두 가려져 있었다. 실내도 군데군데 액자만 걸려 있을 뿐 가구나 집기는 보이지 않았다. 참호처럼 쌓아 놓은 모래주머니가 여기저기 보였다. 인터뷰 장소인 대통령 집무실까지 미로 같은 통로를 거쳐야 했다. 오래된 건물들이 서로 연결된 것 같았다. 통로는 조명이 꺼져 있어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발걸음을 내딛기조차 어려웠다. 띄엄띄엄 설치된 바닥 조명이 양쪽 벽을 향해 희미한 빛을 쏴주는 정도였다. 대통령실 비서진은 취재팀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휴대전화 조명을 켜서 앞길을 비춰줬다. 낡아 보이는 대통령궁 안팎과 달리 대통령 집무실 인테리어는 최신식이었다. 정중앙 벽에 ‘대통령 사무실’이라고 쓰인 네온사인이 걸려 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는 넓은 테이블과 화상회의용인 듯한 대형 스크린이 인상적이었다. 우크라이나 국내외 언론 인터뷰 및 브리핑을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었다.키이우=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온갖 나쁜 일은 겪을 수 있는 만큼 다 겪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매번 전쟁의 새로운 공포를 알게 되네요.” 지난해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열흘가량 앞둔 13일(현지 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수도 키이우의 ‘임시 대통령궁’ 내부 대통령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채널A 공동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전쟁을 견뎌내고 있는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젤렌스카 여사는 하르키우시 버스정류장에서 죽은 아들의 손을 4시간 동안 잡고 있던 아버지, 부차 집 마당에 묻힌 어머니 묘지를 지키는 아들, 드니프로시의 파괴된 주택 속에서 청각장애인이라 ‘살려 달라’는 말을 제대로 외치지 못하다 뒤늦게 구조된 여성을 소개하며 “매주, 매일이 비극이다. 우린 계속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그중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세계가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만의 전쟁이다’라고 생각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길어지는 전쟁의 종식을 위해 국제사회의 지원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대화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또 “6·25전쟁 후 한국의 재건 경험은 우크라이나에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며 “한국이 전쟁 이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룬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도 했다. 러시아 침공의 부당함을 호소할 각종 국내외 행사로 피곤한 기색도 엿보였지만 젤렌스카 여사는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 열정적으로 응했다. 그는 “지금 내가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면서 “나는 나의 일을 최대한 정성스럽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쟁이 길어지고 있는데 힘들진 않는가. 긴 전쟁을 어떻게 견디고 있나. “재미있는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하다. 이 전쟁은 2014년부터 시작됐다. 그 때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합병했다. 2022년 2월 24일에 시작된 전쟁은 ‘하이브리드의 가면’을 벗었다. 전 세계는 러시아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됐다. 이번 전쟁은 너무 길어진다. 그런데 어떤 전쟁을 ‘짧은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전쟁이 매주, 매일 비극이다. 우리 모두 피곤하고 힘들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살기 위해선 긴 전쟁이) 피곤하다고 불평할 수 없다. 우리는 그냥 살고 싶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요즘 (긴 전쟁에 대한) 피로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전쟁 이후에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나. 힘든 순간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궁금하다.“불행하게도 러시아가 우릴 침략한 지 이미 오래됐다. 가끔은 ‘온갖 나쁜 일을 겪을 수 있는 만큼 다 겪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매번 이 전쟁의 새로운 두려움을 알게 된다. (내가 겪은 일들의) 두려움의 정도를 얘기하는 건 불가능하고, 비윤리적이다. 어떤 일이 제일 두려운 순간이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하르키우 시의 버스정류장에서 죽은 아들의 손을 4시간 동안 잡고 있는 아버지. 아버지는 그 정류장에서 아들의 손을 4시간 동안 안 잡을 수가 없었다. 부차에 집 앞 마당에 묻힌 어머니 묘지 옆에 서 있던 아들. 아니면 귀가 먹어 ‘살려 달라’고 외칠 수 없던 한 여성이 공격으로 파괴된 드니프로시의 주택 속에서 24시간 만에 구조됐던 이야기. 그 때 이 여성의 아기와 남편은 숨졌다. 이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긴장하고 있다. 계속 또 다른 두려움을 기다리고 있다. 이는 극복하기가 힘들다. 사실 우리 모두 이 전쟁의 공포와 스트레스와 싸운다. 그래서 지금 우크라이나에 정신건강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메시지 중 하나는 ‘너 어때’란 메시지다. 우리나라 말에는 안부를 묻는 ‘너 어때’란 질문이 있다. 이는 굉장히 단순한 안부 인사이지만 현재 안타깝게도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난 괜찮아’ ‘난 좋아’라고 거의 대답하지 못한다. 우린 보통 ‘견뎌내고 있다’라고 답한다. 그렇지만 이런 상태로 오래 견딜 수 없다. 이런 긴장 상태가 계속되면 건강에 아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간혹 10년 후에 건강에 적신호가 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지금 당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나쁜 결과를 미리 예측해야 한다. 심리적인 면에서도 말이다. 우리 프로그램이 정신의 적(敵)을 이기는 효과적인 메커니즘, 효과적인 무기가 되기를 바란다. (힘든 순간을 견뎌낼 방법으로) 개인적인 팁을 알려드리자면 잔꾀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을 활동적으로 하면 (심리적으로) 덜 영향을 받는 데 도움이 된다. 너무 슬플 땐 운동도 도움이 된다. 내가 이러하듯, 우크라이나 사람 대부분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 우리에게 (미래를 살아갈) 가능성을 주고, (심리적 불안으로부터) 구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전쟁 전에 독서를 많이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안타깝게도 독서는 잡생각을 없애는 데 그렇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정말 좋다. 아이들이 ‘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걸 들을 때도 그렇다. 아이들의 발랄함과 천진함은 현재 우리에게 굉장히 큰 선물이다.”―원래 대중연설을 안 좋아하셨다고 들었는데 지금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다. 이렇게 변하시기까지 어떤 노력을 했나.“사실 내가 이것저것 가리는 게 많은 성향이다. 특히 창문이 닫히고 윙윙거리는 소리조차 싫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개인적인 호불호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안전지대’를 잃어버렸다. 지금 내가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난 내 일을 최대한 정성스럽게 하고 싶다. 내가 (이것저것) 어려워했던 건 지난 과거의 일이다. 지금은 개인적인 안락함과 스트레스 받을 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잘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이로운 길로 인도될 것이다.”―남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힘드실 때 어떤 말을 해주나. 반대로 여사님이 힘드실 때 대통령이 어떤 말씀을 해주시는지도 궁금하다.“너무 흥미로운 질문이다. 우리가 즐겁고 (상황들이) 쉬웠을 때는 내가 이런 질문에 서로 어떤 말로 응원하는지 답하는 게 훨씬 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순간이 거의 없다. 이 시간을 계속 버티고 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저는 남편과 오랜 친구이자 동반자로서 계속 서로 응원을 한다. 남편의 지지와 응원이 항상 진심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가 그렇게 느낄 수 있게 노력한다. 우리 남편을 응원하려고 최선을 다 한다. 우리는 (힘들 때를 넘길) 특별한 방법이나 비결이 없는 것 같다. 다만 가끔 우리 남편을 웃게 하면 남편이 힘을 받는다. 내가 요즘 (코미디언 출신) 남편을 웃기려고 한다. 보통 가족으로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반적인 격려의 메시지도 한다. ‘힘내’ ‘우리 다 이겨낼 수 있어’란 말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가끔 중요한 미팅이나 연설을 준비할 때 남편이 도와준다. 내가 전달해야 할 메시지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그런 도움 덕분에 자신감도 생기고, 어려움이 사라져 대중연설을 하기가 쉬워졌다.”―‘할 수 있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고 했는데, 기자가 키이우에 와서 우크라이나 분들을 만나보면 항전의지가 굉장히 강하다. 항전의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다른 방법이 없다면, 그 어디로도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을 때 어딘가에서 용기가 샘솟는 것 같다. 우리는 정말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는 것들을 지키고 있다. 우리 집, 가족, 아이들 말이다. 이렇게 개개인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로 우크라이나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서로 보호하려는 일반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 이런 (일반적인) 마음으로 하나가 된다.”―요즘 전쟁이 길어지는데 가장 두려운 점은 무엇인가.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려 하나.“가장 위험한 것은 세계가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만의 전쟁이다’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에게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른 나라도 보호한다. 우리 (전쟁) 덕분에 (다른 나라에) 연쇄적인 반응이 아직은 없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지면 러시아 점령군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쉬운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보면 무섭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 우린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내가 이미 말한 대로 우리는 하나가 됐다. 우리는 (전쟁에서 이기겠다는) 아주 높은 동기를 갖고 있는데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가 부탁하는 만큼 (국제사회가) 도움을 주면 좋겠다.”―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가.“너무 좋은 질문이다. 이 주제는 이미 내게 수없이 많은 물음이 있었던, 논의할 가치가 있는 주제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몇 번이나 저한테 ‘대통령부인이 군사적 도움을 부탁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냐’라고 물었다. 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알고 있다. 우리를 보호하고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부탁할 수 있다면 내가 부탁해야 한다. 군사적 도움은 제일 필요한 일이다. 침공을 당할 땐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안 되면 죽거나 포기해야 한다는 두 옵션은 우리에게 맞지 않다. 두 번째로 이제 인적 인프라 복원이 매우 필요하다. ‘사람’이 첫째다. 인프라 재건을 도와야 한다. 시민들이 살던 무너진 건물들을 새로 지어야만 한다. 우리의 학교, 유치원, 병원을 다시 지어야만 한다. 이것들을 세계가 도와줄 수 있다. 인도적 지원이 항상 필요하다. 왜냐하면 전쟁은 단순히 전장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전쟁은 경제위기, 인류적 재앙, 민주적 문제를 모두 야기한다. 전 세계에 있는 개개인 모두가 그들 고유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분야가 있다고 확신한다.”―어머니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쭙겠습니다. 전쟁 중에 아이들을 키우시면서 어떤 점을 가장 중시하시는지, 또 아이들에게 어떤 말씀을 많이 하시는지 궁금합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특히 힘든 시기에 아이들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있어 끔찍할 수 있는 것들이더라도 말이다. 아이들이 직접 타인이나 대중매체로부터 알기 전에 가족이 알려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실 아이들은 지금 끝없는 정보의 바다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아이들은 종종 부모나 우리들보다도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동영상처럼) 삶을 잠시 일시 정지할 수 없다는 맥락에서 아이들을 이해시키려고 한다. 우리는 삶에 쉼표를 찍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어떤 것을 계획할 수도 없다. 우리는 예전처럼 완전한 꿈을 꿀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들은 확실히 예전에 우리가 했던 것대로 돌아올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다. 그런 ‘확실함’을 아이들에게 전달해야만 한다. 학습을 게을리 할 수는 없다. 모든 학생, 우리 모두의 아이들은 한 명, 한 명이 우리의 미래다. 아이들은 우리나라의 발전과 성장, 더 나은 미래에 기여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그래서 종종 아이들이 묻는 어려운 질문에 이렇게 답하곤 한다. ‘어른들이 너희를 지킬 거야. 어른들은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단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안심하고 걱정하지 마. 가능한 계속 공부하고 학업을 이어가’라고 말합니다.”―전쟁이 길어지면서 전쟁에 무심해지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누군가가 당신의 고통에 무관심해진 것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프다. 난 달리 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전쟁은 고통이다. 평화로운 시민을 향한 살인이고 고통이다. 어떻게 이러한 것들에 무관심할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을 갈라놓는 큰 차이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의 전쟁은 검투사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을 관람하는 무대가 아니다. 오늘날의 전쟁은 언제든지 무대로부터 튀어나올 수 있다. 그 누구도 전쟁이 어떤 순간에 다른 지역에서 다른 나라에서 발생해서 그들의 시민을 위협할지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가 전쟁에 무관심한 것을 지켜보는 것은 가슴이 아프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오늘 저는 당신과 만났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제가 지속적으로 대중들 앞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설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들의 동정심과 공감을 잃지 않게끔 말이다.”―이번 전쟁이 끝없이 계속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한 숨 쉬면서) 전쟁은 언제나 긴 법이다. 심지어 하루 동안 지속됐던 전쟁이더라도 말이다. 이미 대규모 침략 전쟁이 발발한 첫 주에 우리는 아이들을 잃었다. 대피소에 있던 아이들이 사망했다. 우리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는 바로 다른 이들과 동맹국의 지원, 우리와 방향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도움에 달려 있다고 본다. 한국에서 1950년도에 발발했던 전쟁을 예시로 들어 보겠다. 한국이 한국을 침략한 적을 몰아내는 데 도움을 줬던, 다른 나라의 용감무쌍한 파견군인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기억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끝없이 진행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전쟁을 끝내고 싶다. 우리는 매일 매일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만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예전에 전쟁에서 여성들의 영웅적인 행동을 기억하겠다고 하셨는데, 여성들의 활약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제 생각에 현재 우크라이나에 있는 모든 여성이 전부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크라이나 군대가 여군을 의무적으로 모집하지 않고 있음에도 지금 3만1000명이 넘는 여군이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여군들의 아이들은 해외로 탈출하였거나 아니면 아직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다. 매일 매일이 도전이고 인고의 시간이다. 그래서 저는 그들 개개인에게 모두, 그리고 우리들 각각 모두에게 매일같이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오늘 마침 누군가를 만나고 왔다. 프랑스로 자신의 딸과 손자들을 피신시키려고 프랑스에 갔었던 지인이고 최근에 프랑스에서 우크라이나로 돌아왔다. 그녀가 최근에 돌아와서 저에게 했던 이야기 중에 말씀드린다. 주위 사람들이 다시 (프랑스로) 돌아올 거냐고, 우크라이나에는 오래 머물 건지 등에 대해 많이 물었다고 한다. 그녀는 아니라고, 우크라이나에 남기 위해서 프랑스를 떠날 거라고 말했다. 그곳(우크라이나)에는 누군가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나에게는 일이 있고, 나는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고 싶어. 그리고 그게 나는 마음이 더 편해’라고 했다. 바로 그 여성을 만났는데 정말 편안해 보였다. 이게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의학 종사자들, 교육 종사자들은 대부분이 거의 여성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여성들은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을 계속 하고 있다. 계속해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심지어는 도저히 인간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없을 상황에서도 말이다. 우리의 에너지 발전소들은 끊임없이 러시아로부터 미사일 공격을 받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매우 많은 여성들이 일하고 있다.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 그들은 매일 일터로 나간다. 그러므로 타인을 구하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모든 여성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는 모든 여성들, 또한 자신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피난간 우크라이나의 여성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는 제게 특히 영감을 주고, 개인적으로도 이로 인해 숨을 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우리의 여성들과 함께 우리 아이들을 위해 맞서 싸울 것이다.―전쟁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저는 단 한순간도 그 사람을 마주치길 원하지 않는다. 나를 죽이러 온 상대를 그 어떤 누구도 직접 마주하기 싫을 것이다. 내가 어떤 말을 그 사람에게 할 수 있을지 상상조차 못하겠다.―우크라이나 국민을 대신 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우크라이나 국민으로서 푸틴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뿐이다. 우리에게서 떨어져라. 우리를 그만 괴롭히라는 것이다. 이 메시지 외엔 그 어떤 메시지도 남기고 싶지 않다. 그리고 푸틴이나 러시아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도 소용이 없다. 그들(러시아)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시지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쪽 사람들은 우리 의견이나 세계의 의견에 대한 관심이 없다. 그러니 세계를 상대로 이런 일을 저질렀다.”―한국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길 바라십니까.“우선 외면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를 잊지 말고 계속 응원해주시면 좋겠다. 한국은 큰 나라라서 한국의 도움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인터뷰에서 군사적 지원에 대해 얘기했다. 한국은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협상을 기다리겠다. 저는 또한 우크라이나의 재건에 대해 아까 얘기했다. 우리나라 재건과 복구를 위해 우크라이나 지역을 다른 여러 국가들이 나눠 (재건을) 도와주기로 약속한 예시가 있다. 우리는 반드시 무너진 것들을 복구해낼 것이다. 파괴된 곳이 너무 많아서 남의 도움 없이 복원할 수 없다. 그리고 인도적 도움도 물론이다. 예를 들면 몇 개월 전 내 재단이 최근 설립됐다. 이를 통해 한국이 우크라이나 교육 시스템을 도울 수 있다. 학업을 이어가는 우리 학생들에게 한국 노트북을 공급한다거나 하는 방법이다. 지금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위험지역에서 원격으로 수업을 받고 있다. 그래서 교사들은 노트북이 필요하다. 한국은 고도의 첨단기술을 가진 선진국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러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도움은 전방위적으로 끝없이 필요하다. 전쟁 때문에 모든 게 피해를 입었다. 이걸 다 복원해야 한다.”―우크라이나가 전후 재건 과정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이 재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기술이 가장 우선일 것 같다. 난 우리가 이 분야에서 확실히 협업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특히 정신건강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서 개개인이 사용할 스마트폰의 자가 지원 애플리케이션이 필요하다. 즉 스마트폰과 앱이 필요한 거다. 이게 기술적 측면 (도움)이다. 우린 병원을 재건해야만 한다. 병원에는 새로운 설비들이 많이 필요하다. 이는 한국에 기대할 수 있는 큰 가능성 중 하나다. 사람을 살리는 건 그 사람의 건강, 특히 정신건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여러 나라 전문가를 찾고 있고,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이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매우 고대하고 있다. 사실 우크라이나가 필요한 지원에 대해서 끊임없이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도움이 필요한 분야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 (한국과) 접점도 많다. (답변을 자처하며)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정의 구현’이다. 우크라이나는 국제전범재판소를 만들기를 부탁한다. 모든 전쟁범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자기 손으로 범죄를 저지른 군인들도, 명령을 내린 사람들도 처벌해야 한다. 이 분야에는 전 세계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건 꼭 국제군사재판소여야 한다. 국제적으로 전쟁범죄자들은 다시 우크라이나에서 한 일과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게 해야 한다.”―한국은 전후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습니다. 전후 재건 과정에서 이런 경험을 참고하실 계획인가요.“당연하죠. 한국 전쟁 후 재건 경험은 (우크라이나에) 굉장한 의미가 있고 상당히 소중하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 한국이 우리에게 협력을 제안해준다면 우리는 그 제안을 너무나 행복하게 받겠다. 이는 상당히 큰 의미를 가져다주고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은 전후 복구에 성공했다.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뤘고 인적자원도 회복했다. 우리에게 이게 지금 굉장히 중요하다.”―우크라이나의 비밀병기란 별명을 얻었다.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활동을 다르게 하실지 궁금하다.“아주 흥미롭다. 난 전혀 비밀스럽게 활동하고 있지 않다. 공개적인 곳에서 솔직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솔직함 속에서 어떠한 힘이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런 에너지는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진심을 느껴서 힘을 얻는 것 같다. 난 국제외교의 전선에서 내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 모두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멈출 수 없다. 우리 모두는 각자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다. 실제로 열전이 벌어지는 군사전선도 있지만 문화전선, 국제외교전선 등이 있다. 우리 일은 우크라이나를 위해 하는 일이다. 나도 내 활동으로 우리나라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전쟁은 비극이긴 하지만 전쟁을 통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어떤 교훈을 얻고 있나.“언제나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게 우리의 주요 원칙이다. 지금 이 전쟁 중에도 그렇다. 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모두를, 나라를 지키는 일이고 한 사람이 회생하는 건 나라가 살아나는 일이란 것.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개인의 가치란 것은 나이, 직업, 사는 곳 상관없이 언제나 사람 그 자체에 있다. 이는 정말로 우리와 우리의 역사에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는 계속 단단해지고 있다. 전쟁하기 전에도 단단했지만 지금 더 단단해졌다. 러시아 침략에 대한 분명한 것들을 밝혀내고, 우리의 단합이 우리나라를 재건하고 앞으로 닥쳐올 상황들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강한 항전의지를 보이는 국민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반복해서 말하자면 가장 값진 것은 인고의 상황을 스스로 버텨내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항상 우크라이나 사람이라서 자랑스러웠다. 우리 국민들, 내 곁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심지어 전쟁이 발생한 첫 주에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전쟁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지켜봤는데 내겐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반대로 ‘너희는 우릴 무너뜨리길 원하지? 하지만 우리는 절대 부서지지 않아.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함께이거든’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비록 작은 행동이지만 이런 생각이 가장 힘들었던 침공 첫째 주에 우리를 버틸 수 있게 해줬다.”―한국 국민들 모두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진심으로 기도하겠다.“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지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키이우=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온갖 나쁜 일은 겪을 수 있는 만큼 다 겪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매번 전쟁의 새로운 공포를 알게 되네요.” 지난해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열흘가량 앞둔 13일(현지 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수도 키이우의 ‘임시 대통령궁’ 내부 대통령 집무실에서 동아일보와 채널A 공동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전쟁을 견뎌내고 있는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젤렌스카 여사는 하르키우시 버스정류장에서 죽은 아들의 손을 4시간 동안 잡고 있던 아버지, 부차 집 마당에 묻힌 어머니 묘지를 지키는 아들, 드니프로시의 파괴된 주택 속에서 청각장애인이라 ‘살려 달라’는 말을 제대로 외치지 못하다 뒤늦게 구조된 여성을 소개하며 “매주, 매일이 비극이다. 우린 계속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그중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세계가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만의 전쟁이다’라고 생각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길어지는 전쟁의 종식을 위해 국제사회의 지원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대화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또 “6·25전쟁 후 한국의 재건 경험은 우크라이나에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며 “한국이 전쟁 이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룬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도 했다. 러시아 침공의 부당함을 호소할 각종 국내외 행사로 피곤한 기색도 엿보였지만 젤렌스카 여사는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 열정적으로 응했다. 그는 “지금 내가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면서 “나는 나의 일을 최대한 정성스럽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이날 낮 키이우의 ‘임시 대통령궁’ 대통령 집무실 앞에 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나타났다. 베이지색 정장을 입고 나타난 그는 기자의 푸른색 정장 차림을 보고는 “우리 우크라이나 국기 색깔과 같다”라고 말했다. 처음 접해보는 한국어 통역 인터뷰에 “한국어는 매우 부드럽게 들린다”며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다. 여사의 성인 ‘젤렌스카’는 남편의 성인 ‘젤렌스키’에 여성형 어미 ‘에이(a)’를 덧붙인 형태다. 젤렌스카 여사는 1978년 남편 젤렌스키 대통령과 같은 우크라이나 크리비리흐에서 태어났다. 2003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현재 19세 딸과 10세 아들을 두고 있다. ―전쟁이 길어지고 있는데 힘들진 않는가. 긴 전쟁을 어떻게 견디고 있나. “어떤 전쟁을 ‘짧은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전쟁이 매주, 매일 비극이다. 우리 모두 피곤하고 힘들다. 그런데 우리는 그냥 살고 싶을 뿐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요즘 (긴 전쟁에 대한) 피로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힘든 순간을 견딘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하나.“전쟁 전에 독서를 많이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안타깝게도 독서는 잡생각을 없애는 데 그렇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정말 좋다. 아이들이 ‘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걸 들을 때도 그렇다. 아이들의 발랄함과 천진함은 현재 우리에게 굉장히 큰 선물이다.” ―남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힘들 때 어떤 말을 해주나. “가끔 우리 남편을 웃게 하면 남편이 힘을 받는다. 내가 요즘 (코미디언 출신) 남편을 웃기려고 한다. 보통 가족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격려의 말도 한다. ‘힘내’ ‘우리 다 이겨낼 수 있어’란 말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길어지는데 가장 두려운 점은 무엇인가. “가장 위험한 것은 세계가 ‘이 전쟁이 우크라이나만의 전쟁이다’라고 생각하는 일이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에게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가 지면 러시아 점령군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린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우리가 부탁하는 만큼 (국제사회가) 도움을 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가.“너무 좋은 질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몇 번이나 저한테 ‘대통령 부인이 군사적 도움을 부탁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냐’라고 물었다. 우리를 보호하고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내가 부탁해야 한다. 군사적 도움은 제일 필요한 일이다. 침공을 당할 땐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두 번째로 이제 인적 인프라 복원이 매우 필요하다. ‘사람’이 우선이다. 시민들이 살던 무너진 건물과 학교, 유치원, 병원을 다시 지어야 한다. 세계가 도와줄 수 있다.” ―전쟁 중에 아이들을 키우며 무엇을 중시하고, 어떤 말을 많이 하나.“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전처럼 완전한 꿈을 꿀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들은 확실히 예전에 우리가 했던 대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 ‘확실함’을 아이들에게 전달해야만 한다. 아이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곤 한다. ‘어른들이 너희를 지킬 거야. 그러니 너희들은 안심하고 걱정하지마. 가능한 계속 공부해’라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쟁에 무심해지는 사람이 늘고 있다.“누군가가 당신의 고통에 무관심해지는 걸 보면 가슴 아프다. 안타깝게도 현대의 전쟁은 검투사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을 관람하는 무대가 아니다. 전쟁이 어떤 순간에 다른 나라에서 발생해서 그들의 시민을 위협할지 모른다.” ―이번 전쟁이 끝없이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숨을 쉬면서) 전쟁은 언제나 긴 법이다. 우리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는 우방국의 지원, 우리와 방향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도움에 달려 있다. 한국에서 1950년에 발발한 전쟁(6·25전쟁)을 보더라도, 한국을 침략한 적을 몰아내는 데 도움을 줬던, 다른 나라의 용감무쌍한 파견 군인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끝없이 진행되지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은.“(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단 한순간도 그 사람을 마주치길 원하지 않는다. 나를 죽이러 온 상대를 그 어떤 누구도 직접 마주하기 싫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으로서 푸틴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뿐이다. 우리에게서 떨어져라.” ―한국이 우크라이나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길 바라나.“우리를 잊지 말고 계속 응원해주시면 좋겠다. 한국은 큰 나라라서 도움이 너무나도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앞선 인터뷰에서 군사적 지원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는 (한국 측의) 대화를 기다리겠다. 또 몇 개월 전 내가 설립한 재단을 통해 한국이 우크라이나 교육 시스템을 도울 수 있다. 아이들이 안전 문제로 온라인으로 공부하는데, 노트북이 필요하다.” ―한국의 전후 재건 과정이 우크라이나에게 참고가 될까.“한국은 전후 복구에 성공했다.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뤘고 인적자원도 회복했다. 이 같은 경험은 (우크라이나에) 굉장한 의미가 있고 상당히 소중하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 한국이 협력을 제안해준다면 우리는 그 제안을 너무나 행복하게 받겠다.” ◇올레나 젤렌스카는 누구△1978년 우크라이나 크리비리흐 출생△2000년 크리비리기술대 도시건설관리 전공△2003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 결혼. 1남 1녀 △2003년 TV 예능 제작사 ‘크바르탈95’ 작가로 활동△2019년 젤렌스키, 대통령 당선키이우=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11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북쪽으로 약 3시간 떨어진 체르니히우의 한 밀 농장. 씨를 뿌려야 하는 시기를 앞두고 있지만 농장 곳곳에는 총알 자국, 폭탄 잔해 등 공습의 흔적이 선명했다. 47년 경력의 농부 미콜라 테레셴코 씨는 “전쟁 전에는 밀 3000t을 창고에 쌓아두곤 했다. 지난해 3월 말 러시아군이 폭탄과 지뢰를 농장에 떨어뜨린 뒤 수확량이 3분의 1로 줄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비옥한 흑토를 보유한 우크라이나는 밀, 보리, 옥수수 등을 대량 생산해 ‘세계의 빵 공장’으로 불린다. 러시아는 지난 1년간 우크라이나 평야에 폭탄과 지뢰를 대거 투하했다. 곡물의 핵심 수출길인 흑해 항구도 봉쇄해 의도적으로 ‘식량 무기화’를 꾀했다. 로이터통신은 올해 우크라이나 곡물 생산량이 전쟁 전인 2021년보다 40.7%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이로 인한 ‘애그플레이션’ 또한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농업’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곡물 등 농산물 값 인상이 주도하는 물가 상승을 뜻한다. 애그플레이션은 경제 구조가 낙후된 개발도상국에 더 큰 타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 세계 식량 안보와 개도국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짓밟힌 곡창지대… “러시아가 대기근 일으킬까 두려워” 우크라 농장-시장 가보니 비료-연료-물류대란에 직격탄… “곡물 생산비용 감당 못해 최악”식량난에 곡물가게-빵집 폐업… “빵 있는 한 삶은 이어진다” 희망도 12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베사라비안 전통시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30년째 식료품점을 운영했다는 나디야 브라우스 씨는 “전쟁이 길어지며 오랫동안 영업했던 상당수 곡물 가게와 빵집이 폐업했다. 곡물 가격이 비싸지자 사람들이 전통시장보다 싼 가격에 곡물을 파는 대형 슈퍼마켓 체인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 그의 가게 옆 곡물 가게의 셔터는 굳게 내려져 있었다. 인근 빵집 또한 간판만 남긴 채 텅 비어 있었다. 비옥한 곡창지대가 파괴되며 급등한 곡물 가격이 키이우 서민의 삶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힌 것이다. 테레셴코 씨 역시 “곡물을 생산해도 운송 수단을 구하기 힘들 뿐 아니라 물류 가격도 비싸다”고 했다. 그는 “도무지 오른 생산 비용을 감당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농부 인생 최악의 시기”라고 토로했다.●러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비료 생산도 난항전쟁 후 비료 생산이 어려워진 것 또한 식량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세계 최대 비료 생산국인 러시아가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비료 수출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비료를 만들려고 해도 핵심 원료인 질소를 구하기 어려운 상태다. 질소는 천연가스에서 추출하는데 많은 나라는 그간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통해 질소를 추출해왔다. 베사라비안 시장에서 장을 보던 유리 크레민스키 씨 역시 “연료비 등 다른 물가가 곡물 가격을 더 끌어올리고 있다”고 했다. 전쟁 후 1년간 비료와 연료 부족, 물류 대란이 기존의 식량난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은 이미 우크라이나를 넘어 전 세계인의 밥상과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지난해에만 굶주림에 시달리는 인구가 3억450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지난달 추산했다. 전 세계 인구의 4%가 넘는 것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또한 올해 세계 곡물 생산량이 전년에 비해 1.7%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곡물 생산이 줄면 ‘애그플레이션’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침공 후 5개월간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길을 차단했다. 전 세계적인 비난 여론이 고조되자 같은 해 7월 흑해를 같이 접한 튀르키예의 중재로 일부 수출을 허용하는 ‘흑해 곡물 협정’을 맺었다. 이후 한 차례 유효 기간을 연장해 올 3월까지의 수출을 겨우 보장받았다. 그러나 협정을 다시 연장하지 못하면 곡물 수출길이 다시 막힌다. 이는 사실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마음에 달린 상황이다. 전 세계 식량위기가 다시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소벨 콜먼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차장은 미 뉴욕타임스(NYT)에 “이 전쟁의 결과는 매우 파괴적”이라며 “푸틴이 수백만 명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했다.●대기근 공포 속 “빵이 있으면 삶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통치하던 1932∼1933년 스탈린 정권의 잘못된 경제 정책으로 대기근을 겪었다. ‘홀로도모르’로 불리는 이 사태로 수백만 명 넘게 숨졌다. 이로 인한 반러 감정은 아직도 우크라이나 곳곳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이날 키이우에서 남쪽으로 1시간 떨어진 비타치우를 찾았을 때도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빵가게를 운영하는 이리나 소브코 씨는 “러시아가 1930년대 대기근 때처럼 인위적인 기근을 일으킬까 두렵다”고 털어놨다. 다만 그는 “할머니께서 늘 ‘빵이 있는 한 삶은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어려운 환경이어도 계속 농사를 열심히 지을 것”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그의 남편은 러시아의 공격을 우려해 한때 소브코 씨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우크라이나를 떠나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고향을 떠날 수 없었다며 “굴하지 않고 밀을 기르고 빵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키이우·체르니히우·비타치우=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전쟁이 길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정말 힘드네요.” 11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도심의 한 재활센터. 물리치료를 받던 군인 올레크 씨는 “러시아군이 침공 초기 두 달 정도는 국제 전쟁협약을 지키는 듯했지만 이젠 마을 전체를 초토화하는 전략과 함께 ‘인(燐) 폭탄’까지 쓰는 잔인함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악마의 무기’라고 불리는 ‘인 폭탄’은 피부에 닿으면 살을 태운다. 제네바협약 또한 민간인 지역에서 사용을 금하고 있다. 그는 최전선 격전지인 동부 돈바스 내 루한스크에 배치됐다가 지뢰 파편이 대퇴 경부에 박히는 부상을 입었지만 “우린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을 맞으며 출구 없는 ‘출혈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전장으로 전 세계가 미국 등 서방 민주주의 진영 대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등 권위주의 진영으로 양분돼 일종의 ‘대리 세계전쟁(a proxy world war)’을 벌이는 양상이다. 양 진영 간 기싸움은 팽팽하다. 미 정치매체 더힐은 “이번 전쟁은 초기부터 두 나라의 국지전 이상이었다”면서 “많은 측면에서 (6·25전쟁 당시) 남북한을 둘러싼 (강대국의) 대리전과도 닮아 있다”고 분석했다. 미 백악관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전쟁 1년을 앞둔 20∼22일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를 방문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또한 21일 모스크바에서 국정연설을 한다고 타스통신 등이 전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상흔은 깊어지고 있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지난달 15일까지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최소 7000명 숨졌다. 하루 평균 22명꼴로 사망하고, 35명꼴로 다친 격이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 또한 양국 군인이 최소 20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했다. 이날 오전 9시가 안 된 시간에도 키이우 재활센터는 만원(滿員)이었다. 두 다리를 모두 잃은 채 휠체어를 타거나 수술을 받아 목발에 몸을 의지한 군인이 가득했다. 의사 안드리 팔라마르추크 씨는 “병원으로 실려 간 군인들이 자리가 없어 재활센터로 실려 오는데 의료진도 의료기기도 매우 부족하다”고 했다. 전쟁 초기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키이우 북서쪽 소도시 부차의 피란민 임시 거주지에는 대부분 50∼60대 이상 노령층만 남았다. 아이들이 전쟁의 공포를 이기며 피신해 있던 놀이방에도 먼지 쌓인 장난감만 있었다. 러시아군의 폭탄에 남편을 잃은 류보프 악세노바 씨는 “단전과 혹한으로 어린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떠났다”고 했다.우크라 국민들 “백년전쟁 안두려워… 결국 우리가 이긴다” 우크라 현장을 가다 폐허된 도시 전체가 ‘전쟁박물관’… 의족 낀 군인 “끝까지 싸울 것”대공습 불안 속에도 항전 의지… 일부선 “어떻게든 전쟁 멈춰야” “우크라이나여, 침착하게 싸우자!” 11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북서쪽 소도시 부차로 향하는 길목에서 한 초소에 걸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옆으로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세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쟁에 동요하지 말고 반드시 러시아군에 승리하자는 우크라이나인들의 결의가 담긴 듯했다. 부차는 지난해 2월 24일 침공 직후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러시아의 민간인 집단학살이 일어난 곳이다. 비극의 현장이라는 점을 보여주듯 부차 일대의 상황은 키이우 도심보다 훨씬 나빴다. 곳곳에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무너지고 불에 탄 민간인 주택, 주유소, 대형 쇼핑센터 등이 녹슨 채 흉물로 남아 있었다. 흡사 거대한 ‘전쟁 박물관’ 같았다. 하지만 키이우와 부차 현지에서 만난 우크라이나인은 대부분 강한 항전 의지를 보였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한국 등 세계 각국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며 생면부지의 기자에게도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다만 일부는 길어지는 전쟁에 지친 표정 또한 역력했다.●두 다리 잃은 군인 “푸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우크라이나인 대부분은 전쟁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며 러시아에 대한 항전 의지를 내비쳤다. 키이우의 재활센터에서 만난 군인 아르템 씨는 최전선인 남동부 헤르손에서 지뢰 파편에 두 다리를 잃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숨질 때까지 전쟁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며 “푸틴은 우리를 살인하도록 러시아라는 국가를 조작한 짐승”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아르템 씨는 재활훈련 도중 의족을 잘못 사용해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반드시 회복해 러시아와 다시 싸우겠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민간인 가옥의 가전제품을 훔쳐가며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만 우크라이나인은 가족과 조국을 위해 싸운다”고 했다. 재활센터 의사 안드리 팔라마르추크 씨는 “전장에서 심한 부상을 당해 이곳에 온 군인들도 거의 대부분 치료한 뒤 다시 싸우러 돌아가겠다고 말한다”고 했다. 부차의 피란민 임시 거주지에서 만난 유리 나자렌코 씨도 “이 전쟁이 ‘백년전쟁’이 된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 결국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나마 파손이 덜한 키이우 도심에도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삼성전자가 입주했던 대형 빌딩도 포격으로 유리창과 외벽이 뜯겨 나갔다. 조심스레 일상을 되찾으려는 모습도 보였다. 해외 유명 브랜드를 제외한 현지 상점들은 속속 문을 열고 있었다. 한 여성 시민은 “전쟁 후 영업을 중단했다가 문을 여는 가게가 늘고 있다. 일부 나이트클럽에는 주말에도 사람이 붐빈다”고 말했다.●“무너진 집 언제 재건될지 기약 없어”다만 침공 1년을 맞는 러시아가 올봄 대반격을 예고하면서 두려워하는 분위기도 감지됐다. 영어 교사인 올렉산드라 베이라시 씨는 “독일, 이탈리아 등으로 피란 간 친구들이 숨죽여 러시아의 대공습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키이우가 큰일 없이 봄을 넘기면 집으로 돌아오겠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추가 인명 피해에 대한 걱정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상당했다. 키이우 재활센터에서 만난 군인 올레크 씨는 올 1월 1일 가장 가까운 유년 시절 친구를 잃었다고 했다. 지뢰 파편에 부상을 당해 큰 수술을 거친 그는 “내가 죽는 건 두렵지 않지만 가족과 친구가 죽을까 봐 두렵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의사 팔라마르추크 씨는 “일이 끝나면 슬픈 마음에 매우 힘들다”고 토로했다. 심하게 다친 군인들을 치료하기 위해 애써 침착하려 하지만 평정심을 지키기 힘들다는 얘기였다. 도미츠크에서 부차로 피란 온 류보우 악세노바 씨도 “이 건물에서 매일 누군가를 잃었다는 말들이 나온다”며 “국가가 어떻게든 전쟁을 멈추도록 갖은 수단을 다 써야 한다”고 호소했다. 일부 시민은 정부가 국민들의 기대만큼 재건 사업에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나자렌코 씨는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집이 불에 타버려 피란민 거주지로 왔다. 그는 “정부가 아파트의 창문만 달아줬고, 내부는 모든 게 파괴된 상태 그대로”라며 “언제 집이 수리될지 알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키이우·부차=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비용 부담 등을 고려해 이 정도에서 휴전하자.” “지금 그만두면 러시아가 다른 나라도 넘볼 것이다.” 발발 1년을 앞둔 우크라이나 전쟁은 언제 끝날 것인가뿐만 아니라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가 모두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명확한 승자와 패자가 없는 채로 종결될 경우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양측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서만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10일 미 뉴욕타임스(NYT)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까지 돈바스 완전 점령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돈바스에서의 교착이 장기화하자 더 이상의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즉각 휴전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완강하다. 2014년 강제로 빼앗긴 남부 크림반도까지 탈환해야 전쟁이 끝난다고 맞선다. 당시 서방이 사실상 방관하며 이번 침공으로 이어진 만큼 섣부른 휴전으로 재침공의 빌미를 줄 수 없다는 논리다. 특히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발트3국에서는 자신이 다음 차례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크림반도 탈환 가능성은 반반이다.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국방부 군사정보국장은 지난달 말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러시아가 돈바스 내 점령지를 늘리려는 지금이 크림반도 탈환의 적기”라며 올여름 수복 가능성을 내다봤다. 반면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지난달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러시아를 몰아내긴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양측에 전쟁 종식의 유인이 적으면서 전쟁이 향후 3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11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의 사병(私兵)’으로 불리는 민간 군사회사 바그너그룹의 창업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돈바스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 최대 2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돈바스를 넘어 더 많은 영토를 점령하려면 3년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1년간 우크라이나에 천문학적 돈을 투입한 서방 일각에서는 추가 비용 부담은 무리라는 현실론이 적지 않다. 우크라이나를 한국과 북한처럼 분단하는 ‘한반도 모델’도 거론된다. 올렉시 아레스토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6일 현지 매체에 “서방 또한 우크라이나를 한반도처럼 분할해 전쟁을 끝내는 방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에 이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키이우 현지에서 만난 시민 세르게이 쿠툴루펜코 씨는 “분단을 원하진 않지만 평화를 보장받을 수만 있다면 분단도 고려해 볼 것”이라며 “동부를 되찾더라도 옛 소련을 그리워하는 친러 주민을 몰아내기도 어렵다”는 현실론을 폈다.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키이우=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미국이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시행규정을 3월 확정하기로 한 가운데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핵심광물 클럽(critical minerals club)’ 창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EU가 IRA 규정을 우회해 보조금을 받을 방법을 찾으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미국을 방문한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장관과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은 7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등과 면담한 뒤 이같이 밝혔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EU는 IRA의 보조금을 받는 핵심광물에 EU 회원국의 광물을 포함시키기 위해 핵심광물 클럽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IRA는 미국 및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생산된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한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EU는 미국과 FTA를 맺지 않아 이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번 회담의 성과로 핵심광물 클럽이 만들어지면 광물 분야에 있어서 FTA와 같은 효력을 낼 것으로 보인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