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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감비아의 의회가 ‘여성 할례 금지 법안’을 폐지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할례가 고유문화와 종교적 활동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법안 최종 통과 시 감비아는 세계 최초로 할례 금지를 철회한 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유엔 등은 15세 이하 여성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의료 목적과 상관없이 성기 전체 혹은 일부를 절제하는 여성 할례를 전면 근절하는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할례를 겪은 여성이 8년 전 조사 당시 2억 명보다 약 3000만 명 증가한 것으로 파악되는 등 세계 곳곳에선 여전히 할례가 자행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인권단체들은 고유문화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악습이자 여성 폭력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여성 할례 금지는 종교·문화 침해”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감비아 의회는 18일(현지 시각) 2015년 제정된 ‘여성 할례 금지법’을 폐지하는 법안에 전체의원 58명 중 47명이 참석, 42명이 찬성하면서 해당 위원회에 상정하기로 했다. 본회의 투표를 통해 법안은 최종 폐지될 가능성이 커졌다.폐지 법안을 제출한 알마메 기바 의원은 “법안은 종교적 충성심, 문화적 규범을 지키는 것을 추구한다. 할례 금지는 문화·종교 실천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인 감비아에선 여성 할례가 종교적 미덕으로 여겨지는 등 폐지 찬성 여론도 큰 편이다. 이날 의회에선 “난 (딸의) 아버지라 법안에 찬성할 수 없다”며 일부 의원들은 반대 의견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특히 지난해 할례 금지 법안에 따라 시술자 3명에게 벌금이 부과됐는데 한 이슬람교 지도자(이맘)가 “여성 할례는 종교적 의무”라고 주장하며 할례 금지법 폐지 운동에 불이 붙었다. 앞서 2015년 감비아 의회는 여성 할례 시 벌금 및 징역형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실상 제대로 된 단속은 없었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감비아의 15~49세 여성의 76%가 할례를 받았다. 세네갈 다카르에 소재한 국제앰네스티의 선임연구원 미셸 에켄은 “여성 할례 금지 조치를 철회한다면 여성 권리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인구 폭발에 공동체 의존성 심화여성 할례는 성욕을 억제하고,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종교적, 문화적 이유로 정당화돼왔다. 하지만 의료 목적과 상관없이 비위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다수인 데다 추후 합병증은 물론 심하면 숨지는 사례도 발생해 각국 정부는 여성 할례를 불법이자 악습으로 규정하고 있다.그럼에도 할례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문화적, 관습적, 종교적 이유로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이달 초 유니세프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할례를 겪은 인구 전체 2억3000만 명 중 아프리카에서만 약 1억4400만 명이 파악됐다. 또 인도·동남아시아 등에서 8000만 명, 중동 지역에서 600만 명 이상 여성이 할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암암리에 관습처럼 행해지는 탓에 실제 사례는 추정치를 더 웃돌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유럽, 북미, 남미로 넘어간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여성 할례가 자행되는 사례가 파악되면서 여성 할례는 세계적 문제가 됐다”고 월드비전이 지적했다.유니세프에 따르면 15~49세 여성의 99%가 할례를 받는 소말리아를 비롯해 기니, 지부티, 말리, 이집트 등 여성 할례 경험자가 많은 국가는 공통적으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여성 할례를 뿌리 뽑으려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되는 반면 해당 지역의 인구는 빠르게 급증하면서 할례 경험자의 수치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니세프에서 여성 할례의 동향을 조사하는 클라우디아 카파 연구원은 “지금까지 이룬 진전은 할례 관습이 강력하게 남아 있는 국가에서 태어나는 소녀의 증가세에 비하면 너무 느리다”고 지적했다.아울러 수년 간 팬데믹을 비롯해 지속된 세계적 전쟁,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만연한 무력 분쟁과 식량난, 가뭄 등으로 인해 국민들이 정부보다는 소규모 공동체에 더 의존하는 점도 할례가 줄어들지 않는 원인으로 꼽힌다. 유엔 등은 “전염병, 기후 변화, 무력 분쟁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2030년까지 성 평등을 달성하고 여성 할례를 근절한다는 계획을 후퇴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미국에 입국할 땐 서양 브랜드 옷을 꼭 챙겨 입으세요. 소지품에 중국공산당 표시가 있으면 빼는 게 좋습니다.” 한때 미국 대학에 입학하는 해외 학생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중국인 유학생들이 미중 갈등의 여파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중국 학생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라는 게 중국 측 입장이지만, 중국이 내부적으로 미국 유학을 단속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14일 “미 대학에 학비와 인재를 공급하는 핵심 원천이던 중국 학생들이 미 유학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중국 최대 지식공유 온라인 플랫폼 즈후(知乎)엔 입국 심사에 어려움을 겪은 학생들의 경험담이 적지 않다. 학생들은 “변호사 연락처를 미리 준비하라” 등의 팁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자국 학생들을 불합리하게 차별한다고 본다. 2020년 5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기술 유출을 이유로 중국인 유학생 및 연구자 입국을 제한했는데, 아직도 당시의 정책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달 왕샤오훙(王小洪) 중국 공안부장(장관)은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미 국토안보장관과 만나 “이유 없이 중국 학생들을 괴롭히는 걸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유학생 감소는 중국 정부가 의도한 결과란 해석도 나왔다. 중국 유학 컨설팅 업체의 한 관계자는 AP통신에 “미국 내 총기 사고를 과장하는 등 미국을 쇠퇴하는 국가로 묘사해 유학을 주저하게 만든다”고 전했다. 미 국무부 관계자도 “최근 미 정부 지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됐던 중국 학생들 절반 이상이 유학 취소를 강요당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 중국 학생은 팬데믹 이전보다 20% 이상 줄어들었다. 양국의 정치적 냉전이 미래 협력의 교두보까지 무너뜨린다는 우려도 나온다. WP는 “유학 등 학술적 교류는 두 나라가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라며 “인력 교류가 줄어드는 건 장차 모두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지적했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미국에 입국할 땐 서양 브랜드 옷을 꼭 챙겨입으세요. 소지품에 공산당 표시가 있으면 빼는 게 좋습니다.”한때 미국 대학에 입학하는 해외 학생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중국 유학생들이 미중 갈등의 여파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중국 학생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라는 게 중국 측 입장이지만, 중국이 내부적으로 미국 유학을 단속해 학생 수가 줄었다는 시각도 있다.미 워싱턴포스트(WP)는 14일 “미 대학에 학비와 인재를 공급하는 핵심 원천이던 중국 학생들이 미 유학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WP에 따르면 중국 최대 지식공유 온란인플랫폼 즈후(知乎)엔 입국심사에 어려움을 겪은 학생들의 경험담들이 적지 않다. 학생들은 “변호사 연락처를 미리 준비하라” 등의 팁을 서로 공유하며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중국은 미국이 자국 학생들을 불합리하게 차별한다고 본다. 2020년 5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기술 유출을 이유로 중국 유학생 및 연구자 입국을 제한했는데, 아직도 당시의 정책 기조가 유지되고 있단 주장이다. 지난달 왕샤오훙 중국 공안부장은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과 만나 “이유 없이 중국 학생들을 괴롭히는 걸 중단하라”고 요구했다.반면 유학생 감소는 중국 정부가 의도한 결과란 해석도 나왔다. 중 유학컨설팅업체의 한 관계자는 AP통신과 만나 “중국 교육당국은 최근 영어를 중요시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미국 내 사건사고를 과장하는 등 미국을 쇠퇴하는 국가로 묘사해 유학을 주저하게 만든다”고 전했다. 미 국무부 관계자도 “최근 미 정부 지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선발됐던 중국 학생들 절반 이상이 유학 취소를 강요당했다”고 말했다.이로 인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 중국 학생은 팬데믹 이전보다 20% 이상 줄어들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중국 유학생은 2019년 해외 유학생의 34.6%(약 37만3000명)로 가장 많았으나, 2022년은 약 29만 명에 그쳤다.양국의 정치적 냉전이 미래 협력의 교두보까지 무너뜨린다는 우려도 나온다. WP는 “유학 등 학술적인 교류는 두 나라가 서로를 배우고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라며 “인력 교류가 줄어드는 건 장차 모두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지적했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젊은 한국 예술가들을 미국 현지에서 소개하는 ‘영 코리안 아티스트 시리즈 2024’ 공연이 29일(현지 시간)부터 뉴욕에서 열린다. 뉴욕한국문화원과 CJ문화재단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뉴욕한국문화원 극장에서 올해 영 코리안 아티스트 공연을 진행한다”고 13일 밝혔다. 2022년부터 시작된 해당 프로그램은 주로 뉴욕을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인 신예 예술가를 지원하고자 만들어졌다. 첫날 29일엔 가야금에 서양 악기를 접목한 실험적 음악으로 주목받고 있는 ‘김도연 밴드’가 무대를 선보인다. 다음 날엔 올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유니사(UNISA)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재즈피아노 부문 1등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류다빈 씨가 이끄는 ‘류다빈 밴드’의 공연이 열린다. 다음 달 6일 한국 단편영화들을 선보이는 ‘스토리업 쇼츠 인 뉴욕’ 행사도 개최된다. 유종석 감독의 2022년 청룡영화상 단편영화상 수상작인 ‘새벽 두 시에 불을 붙여’와 2021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단편 작품상을 받은 이준섭 감독의 ‘칠흑’ 등 단편영화 6편을 상영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뉴욕한국문화원 홈페이지 등에서 예약이 가능하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일본 유명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山本理顕·79·사진)이 5일(현지 시간)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경기 성남시 ‘판교 하우징’ 주택단지, 서울 세곡동 아파트 등의 건립에 관여해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 상을 주관하는 미국 하이엇재단은 올해 수상자인 야마모토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유대감을 높여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 건축가 겸 사회 운동가”라고 평했다. 그는 급속한 현대화로 가족이 해체되는 상황을 이웃의 소통을 중시하는 건축으로 타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판교 하우징 역시 투명 현관 설치로 사생활 침해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 해당 주택단지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1945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야마모토는 제2차 세계대전 뒤 귀국해 요코하마에서 자랐다. 니혼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도쿄예술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히로시마 니시 소방서와 도쿄 훗사시청, 요코스카 미술관 등이 대표적 작품이다. 1979년 제정된 프리커츠상은 지금까지 안도 다다오, 반 시게루 등 9명의 일본 건축가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은 아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일본 유명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山本理顕·79·사진)이 5일(현지 시간)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경기 성남시 ‘판교 하우징’ 주택단지, 서울 세곡동 아파트 등의 건립에 관여해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이 상을 주관하는 미국 하이엇재단은 올해 수상자인 야마모토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유대감을 높여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한 건축가 겸 사회 운동가”라고 평했다. 그는 급속한 현대화로 가족이 해체되는 상황을 이웃의 소통을 중시하는 건축으로 타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판교 하우징 역시 투명 현관 설치로 사생활 침해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 해당 주택단지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평가받는다.1945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야마모토는 제2차 세계대전 뒤 귀국해 요코하마에서 자랐다. 니혼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도쿄예술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히로시마 니시 소방서와 도쿄 훗사시청, 요코스카 미술관 등이 대표적 작품이다.1979년 제정된 프리커츠상은 지금까지 안도 다다오, 반 시게루 등 9명의 일본 건축가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은 아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프랑스가 세계 최초로 헌법에 ‘낙태할 자유’를 명시했다. 올 11월 대선을 앞두고 낙태권이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떠오른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로 논쟁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상·하원은 4일(현지 시간) 합동회의를 열어 여성의 낙태할 자유를 명시한 헌법 개정안을 찬성 780표, 반대 72표로 가결시켰다.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10배 이상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의 낙태권 보장은 영국이나 독일 등 주변 국가는 물론 2022년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폐기한 미국에도 새로운 불씨가 될 전망이다. 아녜스 칼라마르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헌법에 낙태할 자유를 명시한 것은 여성 권리의 최고봉”이라며 “다른 국가에서도 낙태할 수 있는 길을 더욱 강력하게 보호할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연방대법원은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에서 개인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14조에 따라 낙태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2022년 보수 성향 대법관이 우위를 점하며 이를 폐기한 뒤 찬반 논란이 거세다. 유럽에선 많은 국가들이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 등을 근거로 낙태를 전면 또는 조건부 허용하는 추세다. 한국은 2019년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입법 공백’ 상태다.“내 몸은 나의 선택” 佛 낙태권 보장… 교황청 “생명 앗을 권리 없어”‘낙태 자유’ 헌법 첫 명시, 논쟁 재점화佛 극우 르펜도 찬성… 압도적 가결“낙태권 확대 여권 신장 운동 활기”伊 등은 ‘불가피한 경우’로 제한… 美대선서 ‘낙태권’ 이슈 첨예해질듯 프랑스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낙태할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했다. “내 몸은 나의 선택”이란 여성의 신체 자치권(body autonomy)이 영구적으로 보장받게 된 것이다. 4일(현지 시간) 헌법 개정을 위한 프랑스 상·하원 투표 결과 찬성표가 반대표의 10배 이상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성이지만 극우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도 찬성표를 던졌다. 세계 곳곳의 낙태권 찬반 논란은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교황청은 프랑스 의회의 표결 직전에 “생명을 앗아갈 권리는 없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성명을 냈다. 유럽 역시 대다수가 낙태를 합법화하고 있지만, 제한을 두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선 보수, 진보 진영이 낙태권 후퇴 움직임을 놓고 공방을 벌이며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佛, 당파적 분열 넘어 낙태권 가결” 프랑스 상·하원이 이날 가결시킨 헌법 개정안 제34조에는 ‘여성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을 법으로 정한다’는 조항이 새로 추가됐다. 사실 프랑스는 1975년부터 낙태가 합법화돼 현재 임신 14주까지 여성의 선택으로 가능하다. 이번 개헌으로 당장 가시적 변화가 있진 않겠지만 낙태권을 헌법에 명문화한 상징성은 무척 크다.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표결에 앞서 “우리는 ‘당신의 몸이 당신에게 속해 있고 당신 대신에 통제할 권리가 그 누구에게도 없다’는 메시지를 모든 여성에게 보내고 있다”며 의원들에게 찬성표를 던질 것을 촉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가결 직후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프랑스의 자부심, 전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적었다. 프랑스 최초로 양원 합동회의를 주재한 야엘 브론피베 하원의장도 X에 “이제 프랑스에서 낙태는 영원히 권리가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X에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프랑스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낙태권 헌법 명문화는 미국의 낙태권 후퇴 흐름과 무관치 않다. 2022년 6월 미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허용한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을 폐기하자, 이런 분위기가 유럽으로 번질 것을 우려하며 헌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교황, 표결 직전 “생명 빼앗을 권리 없어” 전 세계에서 낙태권 찬반 논란이 다시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개헌 투표에 앞서 파리 시내와 베르사유궁 인근에선 개헌 찬반 시위가 각각 열리기도 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교황청도 개헌 표결 직전 성명을 통해 “보편적 인권의 시대에 인간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며 “모든 정부와 모든 종교 전통이 생명 보호가 절대적인 우선순위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주교회는 성명에서 “가톨릭 교인으로서 우리는 임신부터 죽음까지 생명에 봉사해야 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아이를 지키기로 선택한 이들을 지지해야 한다”며 낙태 금지를 위한 단식과 기도를 촉구했다. 유럽 국가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낙태를 폭넓게 허용하지만 가톨릭교도가 많은 국가들에서는 ‘불가피한 경우’로만 제한하는 곳이 많다. 영국은 낙태에 가장 허용적인 국가로 꼽힌다. 의사 2명의 승인을 받으면 임신 24주까지 낙태가 가능하고, 임신부 생명이 위험할 때 등엔 그 이후라도 허용된다. 하지만 낙태를 선택한 여성은 기소될 위험이 있어 낙태권 보장이 여전히 정치적 쟁점이다. 프랑스24는 “영국에선 최근 18개월간 여성 6명이 낙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고 전했다. 노동당은 기소 중지를 위한 관련법 개정안을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가톨릭 국가인 이탈리아는 1978년부터 임신 12주까지 임신부 건강이나 생명이 위험할 때 낙태가 허용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부 의료인들이 협조적이지 않아 여성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원정 낙태’를 하고 있다. 보수 우위의 미 연방대법원은 2022년 6월 임신 약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다. 올 11월 대선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은 낙태권에 찬성하며 이를 쟁점화하고 있다. 공화당 유력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낙태권 폐기 판결을 지지하면서도 여성 표심을 겨냥해 절충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서방 군대의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을 거론해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은 가운데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사진)가 전쟁 기밀을 누설해 또 다른 파문을 불러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3년째로 접어들며 서방의 피로감이 커진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서 온 유럽 쌍두마차 간 균열을 보여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숄츠 총리는 지난달 29일 독일 동부 드레스덴에서 열린 행사에서 우크라이나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왜 자체 개발한 장거리공대지유도탄 ‘타우루스’를 지원할 수 없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숄츠 총리는 이 과정에서 타우루스의 목표물이 잘못 설정될 경우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도 도달해 민간인 피해가 급증할 수 있다며 “영국과 프랑스가 표적 조절을 위해 하는 일을 독일은 할 수 없다. 타우루스 체계를 다뤄 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고 했다. 이 발언은 영국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장거리 미사일 ‘스톰섀도’의 운용을 위해 자국군을 우크라이나 전장에 직접 배치했다고 해석될 여지를 준다. 영국과 프랑스는 그간 러시아의 반발을 우려해 “해당 미사일은 지원했지만 운용은 우크라이나군이 한다”며 직접 개입을 부인했다. 발언이 알려진 후 영국은 거세게 반발했다. 영국 국방부는 “스톰섀도의 운용과 표적 설정은 우크라이나 공군의 일”이라고 했다. 토비아스 엘우드 전 하원 국방위원장은 “독일이 타우루스 지원 논란에서 주의를 돌리기 위해 동맹국의 기밀 정보를 노골적으로 누설했다”고 비판했다. 벤 월러스 전 국방장관은 “유럽 안보에 관해 숄츠 총리가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자리에 있음을 보여 준다”고 꼬집었다. NYT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개입하면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한 시점에 서방의 균열상이 노출됐다며 전쟁의 장기화, 미국의 지원 감소 등에 막혀 우크라이나군이 밀리는 사이 서방의 단일대오 또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1일 독일이 타우루스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해 러시아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는 독일군 고위 간부의 녹취가 러시아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러시아는 4일 알렉산더 람스도르프 주러 독일대사를 초치하며 연일 독일을 몰아붙이고 있다.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지난해 4월 1일 오전 4시경 부산 중구의 한 교차로. 신호등에 녹색 신호가 들어오자 택시 한 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택시가 교차로에 들어서는 순간, 경찰차 한 대가 택시를 들이받았다. 당시 경찰차는 적색 신호에 교차로를 지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는 “사고 당시 경찰차는 사이렌을 울리고 있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교통사고의 법적 책임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 ‘한문철TV’가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소개하면서 경찰의 과실 여부가 논란이 됐다. 전문가들은 “경찰차의 경우 긴급상황 시 적색 신호에도 이동할 수 있지만, 다른 차량의 진행을 방해하면 안 된다”, “사이렌도 울리고 있지 않은 상황에선 경찰 과실도 있다”고 지적했다.● 매년 100건 넘게 발생하는 경찰차 사고 경찰차 관련 교통사고가 202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495건으로 집계되는 등 매년 100건 넘게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교통사고는 감소하고 있는데, 경찰차 교통사고는 증가 추세여서 “안전운전에 대한 경찰의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순찰차 등 경찰차 교통사고 건수는 2020년 122건에서 2022년 143건으로 17.2% 늘어났다. 지난해에도 8월 말까지 94건의 경찰차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 기간 경찰차 교통사고의 원인은 ‘안전운전 불이행’이 279건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2022년은 절반 이상의 사고가 안전운전 불이행으로 발생했다. 경찰차가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거나 운전자 준수사항을 위반하며 벌어진 사고도 33건이나 됐다. 2022년 10월 전북 군산시 선양동의 한 사거리에선 경찰차가 불법 유턴을 하다 시내버스와 충돌해 승객 11명이 다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차도 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가 종종 있다”고 했다. 2022년 4월 경기 화성시의 한 4차로 도로에서 황색 신호에 교차로를 통과하던 3.5t 트럭 1대가 경찰차와 출동했다. 당시 1차로에 차량이 줄지어 정체돼 있는 상황에서 트럭이 교차로에 진입했는데, 다른 교차로에서 경찰이 진입하며 사고가 난 것. ‘경찰차가 시야를 확보하며 들어갔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 “경찰 안전교육 강화해야” 국내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줄어드는 추세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20년 20만9654건이던 교통사고 건수는 2021년 20만3130건, 2022년 19만6836건으로 감소했다. 교통법규 준수 의식이 높아지면서 일반 차량 교통사고는 감소하고 있는데 경찰차 교통사고는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 내부에선 교통사고가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업무 특성상 긴급한 출동이 많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사고가 많다는 것. 경찰 관계자는 “특히 코로나19 엔데믹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면서 차량 통행량이 늘어났다”며 “이로 인해 출동 건수도 많아지면서 경찰차 사고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통 전문가들은 “경찰들이 공무 집행을 이유로 안전운전을 소흘히 하는 측면도 분명 있다”고 지적했다. 문현철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의 경우 업무 특성상 빠르게 이동하다 보니 불가피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도 “가까운 거리도 차량으로 순찰하려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경찰차 운행이 늘어나 자연스럽게 사고로 이어진 건 아닌지도 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음주운전 차량 등을 경찰관 개인이 무리하게 잡으려다 과속 등으로 발생하는 교통사고가 많다”며 “무리한 추격보단 경찰 간 공조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한편, 경찰 임용 과정에서도 안전운전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안전교육을 더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장하얀 기자 jwhite@donga.com}

“몸무게 70kg이면 (약은) 20g이 치사량입니다. 폐쇄회로(CC)TV 없는 곳에 ‘물건’ 넣어둘 테니 찾아가시면 됩니다.” 13일 ‘안락사약’ 브로커라고 스스로 소개한 A 씨는 보안 메신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말한 ‘물건’은 스위스와 네덜란드 등 해외에서 안락사에 사용되는 B 성분 의약품을 뜻한다. 국내에서 이 약은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 의료 현장에서도 진정제와 마취제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개인 간 거래는 엄격히 금지돼 있다. 하지만 A 씨는 비트코인으로 40만 원을 송금하면 이 안락사약을 ‘전문배송팀’이 집 근처까지 가져다줄 수 있다며 기자를 유혹했다.● 안락사약, 국내서 최소 10명 사용 전 세계적으로 안락사 허용 논쟁이 거센 가운데, 국내에서도 보안 메신저나 해외 사이트를 통해 안락사약이 불법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불법 약물 거래는 엄단해야 하지만, 우리 사회가 난치병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완화의료에 무관심한 채로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마저 금기시하는 사이 환자들이 음지로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17년부터 지난해 9월 말까지 부검한 사망자 가운데 스위스 등에서 안락사에 사용되는 B 성분이 검출된 사례는 총 10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8명이 20, 30대였다. 국과수에 의뢰되지 않은 사례까지 감안하면 실제 B 성분 사용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B 성분 약물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해외 한국어 사이트까지 등장할 정도로 관련 수요는 적지 않다. 13일 한 해외 안락사약 판매 사이트에서는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다”며 “평화롭고 고통 없는 죽음을 제공한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2022년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2월 10일부터 한 달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안락사약’ 관련 키워드가 1543건 올라왔다. 해외에서 안락사약을 들여오려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C 씨는 2016년 해외 사이트를 통해 안락샤약을 밀수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경찰 조사에서 “안 아프게 죽을 방법을 찾다가 (약을) 해외에서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진술했다.● “고통 끝낼 환자 권리도 고려해 달라” 안락사를 희망하는 이들 중에는 난치병이나 중증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부터 안락사약을 구매하려고 알아보고 있다는 60대 D 씨는 “12년 전부터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불법인지 알면서도 고통을 끝낼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2020년 정체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돼 하반신이 마비된 이명식 씨(62)는 “매일 면도칼에 베이는 듯한 고통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이걸 멈출 환자의 권리도 우리 사회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안락사약 등 생명을 단축하는 약물을 팔거나 처방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불법이다. 형법상 자살 방조에 해당해 최고 징역 10년에 처할 수 있다. 사기만 해도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국내에서도 임종을 앞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스스로 중단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는 했다. 같은 법에 따라 말기 환자의 통증을 경감시키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도 제도화됐다. 문제는 여전히 그 대상이 암 환자 등으로 좁고 정부 지원이 부실하다는 점이다. 중앙호스피스센터에 따르면 이달 5일 기준 국내 호스피스 치료 병상은 1711개로 집계됐다. 2022년 암 사망자 8만3378명에 비해 턱없이 적다. 특히 요양병원에선 연명의료가 일상적으로 이뤄지지만, 그중 90% 이상이 윤리위원회를 두지 않고 있어 연명의료 중단을 승인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안락사를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국내 환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안락사를 돕는 스위스의 비영리단체 ‘디그니타스’에 가입한 한국인은 2022년 말 기준 117명으로 2019년 58명에 비해 3년 새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해 9월 디그니타스에 가입한 김모 씨(39)는 “뇌출혈을 겪은 이후 고통을 참기 어려워져 안락사가 가능한 나라로 떠나는 방안마저 고민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헌재, 안락사 관련법 6년 만에 정식 심판 안락사를 허용하는 해외 국가는 늘어나고 있다.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에선 이달 5일 드리스 판 아흐트 전 총리(93)가 아내와 동반 안락사를 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의사 조력 사망 제도가 11개 주(州)에서 법제화돼 있다. 반면 국내에서 안락사 관련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지적 속에 사실상 수년째 멈춰 있다. 2022년 6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희망하면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스스로 삶을 마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조력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정부 부처와 윤리계 등의 반대 속에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헌법재판소는 적극적 안락사 허용 여부를 정식 심판에 올려 결정하기로 했다. 국내에서 의사 조력 안락사를 허용해 달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청구를 정식 심판하기로 지난달 16일 결정한 것. 전문가들은 적극적 안락사에 대한 논의를 신중히 시작하는 한편, 고통이 심한 난치병 환자들이 대안으로 삼을 만한 완화의료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 교수는 안락사약 불법 거래에 대해 “(환자 입장에선) 대안이 없고 (안락사약이) 유일한 선택지라고 판단해 불법 거래까지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박경민 기자 mean@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초중고교 학생들의 정신적 문제나 사회성이 결여된 행동을 발견하기 위한 ‘정서·행동 특성검사’가 형식적으로 운영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 배경으로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을 습격한 중학생 A 군(15)의 사례가 거론된다. A 군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정서·행동 문제를 일으켰지만, 배 의원 사건에 이르기까지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시작된 정서·행동 문제는 조기 발견과 치료 여부에 따라 예후가 확연히 다른 만큼, 학교 내 정신건강 관리 체계를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격 반항하나’ 질문에 학생 스스로 응답… “실효성 의문” A 군의 정서·행동 문제 등을 다뤄 온 상담 전문가 B 씨는 2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A 군은 수년 전 초등학생이었을 때도 위험한 물건을 학교에 가져오거나, 여자 동급생을 따라다니는 등의 행동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다”며 “지난해 여름에도 학교 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해서 주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B 씨는 “학교에서 A 군을 다루기 어려워했고, 학교 차원에서 제대로 된 조치는 뒤따르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A 군이 이른 나이부터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지만 현행 교육 체계 내에서 적절한 개입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초중고교 현장에선 ‘정서·행동 특성검사’가 주기적으로 이뤄지지만, 효과가 적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당 검사는 정서, 행동에 문제를 가진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전문기관과 연계해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제도로, 2007년부터 교육부가 시행해 왔다. 초교 1, 4학년과 중1, 고1에게 의무적으로 실시한다. 이상 징후를 보인 학생은 ‘관심군’으로 선별한다. 문제는 검사 과정 자체가 형식적이라는 점이다. ‘흥분해서 과격하게 반항한다’, ‘나는 솔직하게 답변하고 있지 않다’ 등 65개 검사 문항에 학생 스스로 응답하는 방식인 탓에, 마음만 먹으면 문제가 될 답변을 피할 수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은 부모가 대신 설문한다. 부모가 아이를 세심히 관찰하지 않거나, 학생 문제가 가정폭력 등에서 비롯됐다면 문제를 발견할 수 없는 구조다. 경기 용인시의 상담교사 류모 씨는 “이걸로 과연 고위험군을 발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관심군 선별 이후에 심리상담센터 등 전문기관과 연계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충북 청주시의 한 초등학교 상담교사 유모 씨(48)는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며 (전문기관 연계를) 거절하면 손쓸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2년 초중고 내 정서·행동 ‘관심군’으로 분류된 8만676명 중 2만140명(25.0%)이 전문기관과 연계되지 않았다. ● 학교 2곳당 상담교사 1명꼴 교육부 관계자는 정서·행동 특성검사에 대해 “학생 심리 상태를 개략적으로 파악하는 선별검사”라고 설명했다. 정밀 분석을 위해 개발된 검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경기 의정부시 등에서 6년 넘게 전문상담교사로 일한 김모 씨(45)는 “사회성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받는 학생조차 관심군으로 분류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했다. 학교 내 정서·행동 위기 학생에 대한 관리가 부실한 가운데 관련 청소년 범죄는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정신장애를 가진 미성년자 범죄자 수는 2018년 345명에서 2022년 511명으로 4년 새 48.1% 늘었다. 미성년자 범죄자 1만 명당 비율로 따지면 2018년 52.2명에서 2022년 83.7명으로 60.3% 증가했다. 교육부는 올해 중 정서·행동 특성검사 문항을 개편할 방침이다. 현장에선 검사 문항을 개선하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상담 인프라 확충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기준 전국 초중고교 1만2100곳에 배치된 전문상담교사는 5602명으로, 학교 2곳당 1명꼴이었다. 교사 모임 ‘마음친구’의 최경희 공동대표는 “일선 상담교사는 학교폭력 업무를 병행하느라 정작 상담에 충분한 시간을 쏟기 어렵다”고 말했다.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