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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아파트, 도시로 열다’가 서울 중구 문화역 서울284에서 12일 열렸다. 이 세미나는 11일부터 17일까지 이어지는 ‘2021 대한민국건축문화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다. 발표자로 나선 이정형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와 이은경 이엠에이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아파트 단지 내 공유 공간 활성화를 통한 공동체 회복을 주장했다. 이 교수는 “대규모 아파트가 ‘단지’를 형성하면서 주변의 기성시가지와 단절돼 폐쇄적인 공간이 된다. 이런 식의 아파트 단지 개발은 지역주민이 다니던 길을 사라지게 한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방음벽으로 둘러싸여 단절된 가로경관, 열린 커뮤니티시설 부재를 단지 설계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 대표는 공공임대주택, 협동주택을 사례로 들며 “발코니 등 접점공간과 참여형 커뮤니티 같은 주체적 공간이 많은 주거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패널로 참석한 우의정 메타건축 대표는 “과거 지형, 터, 길은 원주민들의 기억과 삶을 반영하기 때문에 최대한 보존해야 한다. 물리적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긴 쉽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변형하면 도시에 불균형이 생긴다”고 말했다. 올해 대한민국건축문화제는 ‘아파트, 도시를 걷다’를 주제로 정해 건축문화제로는 처음 아파트에 주목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형태인 아파트가 만들고 있는 도시의 현실을 읽고, 국내외 건축가를 통해 바라본 아파트와 도시의 미래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행사에는 올 한 해 진행된 주요 건축상 수상 경향을 토대로 한국 건축의 현주소를 가늠할 수 있는 전시도 포함됐다. ‘대한민국건축대전 국제일반공모전’, ‘젊은 건축가전’ 등 7개의 주제전은 건축가와 작가들이 협업해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발전시킬 방안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아파트의 미래’에 대해 11일 강연했다. 최두호 토문건축 대표는 ‘아파트를 말하다’를 주제로 17일 강연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961년 박수근은 일본에서 열린 국제자유미술전에 ‘나무’를 출품했다. 그런데 작품을 도둑맞았다고 연락이 왔다. 부인 김복순은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지만 박수근은 만류한다. “돈은 없고 그림은 탐이 나서 가져갔을 텐데, 작품이 도난당한다는 것은 영광”이라며. 그리고 이듬해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자유미술전을 위해 ‘나무와 두 여인’을 다시 제작한다. 이 일화는 박수근의 성품을 잘 보여준다. 자신이 가난했기에 남의 가난을 알았던 화가. 답답할 정도로 선한 화가. 한데 그는 마냥 불운하고 여린 화가였을까. 11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막한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박수근(1914∼1965)의 삶을 따라가며 그의 진면목을 살펴본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후 처음 선보이는 박수근 개인전으로,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과 유족 연구자 소장자의 협조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이기도 하다.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모두 163점으로 역대 최다인 데다 이 가운데 유화 7점과 삽화 12점은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 박수근의 초기작과 수집품이 포함된 전시 1부는 그의 주체적인 면면을 보여준다. 박수근은 부친의 사업 실패로 보통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12세 무렵 책에서 본 밀레의 ‘만종’에 감동한 박수근은 직접 ‘밀레 화집’을 만들었다.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서양화가의 화집도 수집했다. ‘철쭉’(1933년), ‘겨울 풍경’(1934년) 등 초기작을 보면 인상주의 화풍을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생계를 위해 삽화나 표지화도 그렸다. 펜화, 판화, 프로타주(물감을 화면에 비벼 문지르는 채색법) 등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도 그를 대변하는 단순성, 흑백 대비와 같은 회화 양식을 다듬어갔다. 결실을 맺은 건 1953년부터 1963년까지다. 박수근이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살던 10년간이다. 1940년 평양에서 결혼한 박수근은 6·25전쟁이 터지자 남한으로 내려왔고, 2년 뒤인 1952년에야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미군 영내매점(PX)에서 초상화가로 일하며 돈을 모아 1953년 창신동 집을 마련한다. 195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집’(1953년)으로 특선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주요 전람회에 참여하며 주목받는다. 이 기간을 아우르는 전시 2부와 3부에서는 그의 대표작을 감상할 수 있다. ‘집’, ‘길가에서’(1954년), ‘쉬고 있는 여인’(1959년), ‘소와 유동’(1962년), ‘악’(1963년), ‘할아버지와 손자’(1964년)는 전람회 출품작이라 크기가 큰 데다 구도가 매우 안정적이다.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노인들의 대화’(1962년) ‘소녀’(1950년대 후반)는 그가 창신동 집 앞에서 볼 법한 풍경을 유추할 수 있다. 이 무렵 한국에 체류하던 외국인들도 박수근에게 관심을 보였다. ‘노인들의 대화’는 당시 미국 미시간대 교수인 조지프 리가 1962년 대학원생들과 함께 방한했을 때 구입한 것이다. 외국인에게 인기를 얻은 그는 미국 개인전을 추진했지만 급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돼 1965년 타계한다. 4부에 전시된 후기작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회백색뿐 아니라 1950년대 중반부터 파스텔 톤을 과감히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박수근의 그림에는 4∼22겹의 물감이 겹쳐져 있어 자세히 보면 그림 안에 굴곡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내년 3월 1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961년 박수근은 일본에서 열린 ‘국제자유미술전’에 ‘나무’를 출품했다. 그런데 작품을 누군가 훔쳐가 없어졌다고 연락이 왔다. 부인 김복순은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지만 박수근은 이를 만류한다. “그림을 가져간 사람이 돈은 없고 작품은 탐이 나서 가져갔을 텐데, 작품이 도둑을 당한다는 것은 영광”이라고 말하며. 그리고 이듬해 한국에서 다시 열린 국제자유미술전을 위해 ‘나무와 두 여인’을 다시 제작한다. 이 일화는 박수근의 성품을 잘 보여준다. 자신이 가난했기에 남의 가난을 알았던 화가. 답답할 정도로 선한 화가. 이런 수식어를 떼어놓고 박수근을 생각할 순 없다. 하지만 그가 마냥 불운하고 여린 화가였을까. 11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막한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은 박수근의 삶을 따라가며 그의 진면목을 살펴본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이래 처음 선보이는 박수근 개인전으로, 양구군립 박수근미술관과 유족, 연구자, 소장자의 협조로 만들어진 대규모 회고전이기도 하다.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163점이 출품돼 역대 최다인데다 이중 유화 7점과 삽화 12점은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박수근의 초기작과 수집품이 포함된 전시 1부는 그의 주체적인 면면을 보여준다. 박수근은 밀레를 동경했다. 12살 무렵 책에서 본 밀레의 ‘만종’에 감동한 박수근은 직접 ‘밀레 화집’을 만들었다. 박수근은 부친의 사업 실패로 보통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때 참고자료가 됐던 건 관광엽서였다. 빨래하는 여성, 담뱃대를 문 노인 등이 그려진 엽서는 이후 박수근 그림의 주요 소재가 된다. ‘가장 한국적인 화가’라고 알려졌으나 박수근은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서양화가들의 화집을 수집했다. ‘철쭉’(1933년) ‘겨울 풍경’(1934년) 등 초기작을 보면 인상주의 화풍을 시도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생계를 이어가야했던 그는 삽화나 표지화 작업도 했다. 펜화, 판화, 프로타주(물감을 화면에 비벼 문지르는 채색법) 등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 그를 대표하는 단순성, 흑백 대비와 같은 회화 양식을 점차 다듬어갔다. 결실을 맺은 건 1953년부터 1963년까지다. 박수근이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서 살던 10년간이다. 1940년 평양에서 결혼을 한 박수근은 6·25전쟁이 터지자 남한으로 내려왔고, 2년 뒤인 1952년에야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생계를 위해 미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일하며 돈을 모아 1953년 창신동 집을 구한다. 1953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집’(1953년)이 특선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알린 그는 주요 전람회에 참여하며 차츰 주목받는다. 이 기간을 아우르는 전시 2부와 3부에서는 그의 대표작을 감상할 수 있다. ‘집’(1953년) ‘길가에서’(1954년) ‘쉬고 있는 여인’(1959년), ‘소와 유동’(1962년), ‘악’(1963년), ‘할아버지와 손자’(1964년)는 전람회 출품작이어서 크기가 큰 데다 구도가 매우 안정적이다.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노인들의 대화’(1962년) ‘소녀’(1950년대 후반)는 그가 창신동 집 앞에서 볼 법한 풍경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 무렵 한국에 체류하던 외국인들도 박수근에게 관심을 보였다. ‘노인들의 대화’는 당시 미국 미시간대 교수인 조지프 리가 1962년 대학원생들과 함께 방한했을 때 구입한 것이다. 외국인에게 인기를 얻은 그는 미국 개인전을 추진했지만 급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돼 1965년 타계한다. 4부 후기작까지 찬찬히 살피다보면 박수근이 쓴 색상도 볼 수 있다. 그는 1950년대 중반부터 파스텔톤의 색감을 과감히 사용하기도 한다. 김예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박수근의 그림에는 4~22겹의 물감이 겹쳐져있어 자세히 보면 그림 안에 굴곡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51년의 짧은 생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박수근은 온 힘을 다해 작품을 그렸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내년 3월 1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내 그림에서 소리가 느껴지나요?” 대구 수성구 대구미술관에서 5일 만난 강요배 작가(69)는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의 개인전 ‘강요배: 카네이션-마음이 몸이 될 때’가 열리고 있는 미술관 도처에는 바람이 가득했다. 그림 안에는 바람이 불었고, 그로 인해 파도가, 때론 비가 내렸다. 한바탕 수라장이 지나간 고요한 모습을 담을 때도 있었다. 강요배는 자연을 그린다. 한때 인물그림, 걸개그림, 역사주제화 등을 다뤘지만 1992년 서울에서 고향 제주로 귀향한 뒤에는 대개 풍경과 풍광을 화폭에 담아 왔다. 그가 제주의 그림에 담고자 한 건 자연에 겹겹이 쌓여온 시간성과 역사성이었다. 그렇기에 구체적이고 세밀한 재현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에 와닿은 풍경을 추상적으로 풀어내 왔다. 대구 출신 서양화가 이인성(1912∼1950)을 기리며 대구시가 제정한 ‘이인성 미술상’의 지난해 수상자인 그는 수상자전인 이번 전시에서도 대자연과 역사를 소재로 한 대형 회화, 영상, 설치 등 40여 점을 내놨다. 1년간 전시를 준비하면서 마련한 대작이자 대표작 ‘수풍교향’(2021년)은 가로 16m로, 파도와 숲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화폭을 가득 채운다. 작가는 제주시 한림읍에 있는 작업실 앞 개천의 소리를 담아 영상작품 ‘소리풍경’을 만들고 회화 작품 옆에 전시했다. “영상 없이도 제 그림이 바람, 음악, 리듬을 다 담았어야 하는데 말이에요”하면서.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장면을 그린 ‘우레비’(2017년) 앞에 서면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맞는 듯하다. ‘‘장미’의 아침놀’(2021년)은 하늘을 덮은 어둠이 걷히면서 밝은 빛이 번지는 풍경을 그렸다. 아침놀의 쨍한 붉은색을 통해 자연의 숭고함을 표현했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기에 한 번에 볼 수 없잖아요. 그걸 공간 속에서 봐야 합니다. 시간 없는 풍경, 자연은 없어요.” 그의 말은 자연이 캔버스 안에 갇히지 않고, 역사의 면면을 담은 채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강요배의 이름을 알린 건 역사화다. 그는 1989년 현기영의 제주 해녀를 다룬 소설 ‘바람 타는 섬’ 삽화를 그리면서 제주를 공부했고, 이후 4·3사건 연작을 전시했다.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민중을 담은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작가는 미군정기인 1946년 식량 배급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대구 10·1 사건, 1950년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보도연맹 회원들을 처형한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을 모티브로 한 신작을 선보였다. ‘어느 가을날’(2021년)은 배고픈 어린아이를 업고 거리로 나온 10·1사건 속 여인들을 그렸다. 이는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1934년)을 오마주한 작품이기도 하다. 강요배는 특정 사조에 속하길 거부했다. 그는 “다들 역사화가, 민중화가라며 시대의 감옥 속에 날 가두려 한다. 나는 예술가일 뿐이다. 캔버스에 그리는 건 내 자아를 흔적처럼 남기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약 50년 동안의 화업을 돌이키며 “이제 윤곽선 정도는 알아냈다”고 했다. “미술관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작품 세계를 펼쳐보니 흐리지만 나의 한계, 그러면서도 ‘나는 이런 존재구나’ 하는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했습니다. 거친 윤곽선 정도는 찾아냈으니 이제 고원에서 야산으로 하산하듯 조심조심 내려오면 될 것 같습니다.” 전시는 내년 1월 9일까지. 무료.대구=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내 그림에서 소리가 느껴지나요?” 대구 수성구 대구미술관에서 5일 만난 강요배 작가(69)는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의 개인전 ‘강요배: 카네이션-마음이 몸이 될 때’가 열리고 있는 미술관 도처에는 바람이 가득했다. 그림 안에는 바람이 불었고, 그로 인해 때론 파도가, 또 때론 비가 내렸다. 한바탕 수라장이 지나간 고요의 모습을 띨 때도 있었다. 강요배는 자연을 그린다. 인물그림, 걸개그림, 역사주제화 등 여러 주제를 다뤄왔지만, 1992년 서울에서 자신의 고향 제주로 귀향한 뒤에는 대개 풍경과 풍광을 화폭에 담아왔다. 그가 제주의 그림에 담고자 한 건 자연에 겹겹이 쌓여온 시간성과 역사성이었다. 그렇기에 구체적이고 세밀한 재현이 아니라 작가의 마음에 와 닿은 풍경을 추상적으로 풀어내왔다. 대구 출신 서양화가 이인성(1912~1950)을 기리며 대구시가 제정한 ‘이인성 미술상’의 지난해 수상자인 그는 수상자전인 이번 전시에서도 대자연과 역사를 소재로 한 대형 회화, 영상, 설치 등 40여 점을 내놨다. 1년간 전시를 준비하면서 마련한 대작이자 대표작 ‘수풍교향’(2021년)은 가로 16m로, 전시 공간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다. 작가는 제주 한림읍에 있는 작업실 앞 개천의 소리를 담아 영상작품 ‘소리풍경’을 만들고 회화 작품 옆에 전시했다. “영상 없이도 제 그림이 바람, 음악, 리듬을 다 담았어야 하는데 말이에요”하면서. “시간은 공간 속에 숨겨있어요.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기에 한 번에 볼 수 없잖아요. 그걸 공간 속에서 봐야 합니다. 시간 없는 풍경, 자연은 없어요.” 강 작가의 말은 자연이 캔버스 안에 갇히지 않고, 역사의 면면을 담은 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사실 강요배의 이름을 알린 건 자연을 그려오기 전 내놓은 역사화다. 그는 1989년 현기영의 제주 해녀를 다룬 소설 ‘바람 타는 섬’ 삽화를 그리면서 제주를 공부했고, 이후 4·3사건 연작을 전시했다.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겪은 민중을 담은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도 이어진다. 작가는 미군정기인 1946년 식량 배급을 요구하며 대구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대구 10·1 사건, 1950년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보도연맹 회원들을 처형한 경산 코발트 광산 학살사건을 모티브로 한 신작을 마련했다. 예컨대 ‘어느 가을날’(2021년)은 배가 곯아 당장이라도 죽겠다 싶어 어린 아이를 업고 거리로 나온 10·1 사건 속 여인들을 그렸다. 이는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1934년)을 오마주한 작품이기도 하다. 강요배와 역사는 뗄 수 없어 보이나, 작가는 특정 사조에 속하길 거부했다. 그는 “다들 역사화가, 민중화가라며 시대의 감옥 속에 날 가두려 한다. 나는 예술가일 뿐이다. 캔버스에 그리는 건 내 자아를 흔적처럼 남기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약 50년 동안의 화업을 돌이키며 “이제 윤곽선 정도는 알아냈다”고 했다. “미술관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작품 세계를 펼쳐보니 흐리지만 나의 한계, 그러면서도 ‘나는 이런 존재구나’하는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했습니다. 거친 윤곽선 정도는 찾아냈으니 이제 고원에서 야산으로 하산하듯 조심조심 내려오면 될 것 같습니다.”전시는 내년 1월 9일까지. 무료.대구=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2016년 4월 일본 오사카시 공원 한쪽에 2층짜리 목조건물이 들어섰다. 이름은 ‘쓰루미 어린이 호스피스’. 여느 성인 호스피스와는 조금 다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과 악기, 그림책이 가득한 레저시설 같다. 너무 일찍 환자가 되어버린 아이들을 위해 건립한 일본 최초의 어린이 호스피스. 이곳에는 소아암과 난치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호스피스를 짓기까지 분투한 사람들을 만나 기록했다. 그중에서도 이 호스피스를 설립한 백혈병 전문의 하라 준이치와 신생아의료 최전선에 있던 다타라 료헤이라는 두 의사를 중심으로 서술했다. 이들이 의료현장에서 본 건 필사적으로 치료에 저항하는 아이와 지친 부모들이었다. 한 부모는 “아들이 원망에 찬 눈으로 ‘엄마는 병원 편이지? 배신자!’라고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며 속상해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완치가 아닌 ‘남은 시간을 충실히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이들은 수녀, 간호사, 어린 환자 및 가족 등과 함께 ‘어린이 호스피스 프로젝트’ 단체를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정치인, 기업가의 도움을 받아 호스피스를 설립했다. 책에 나오는 이들은 단순히 시설 하나를 완성하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의료현장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병원 놀이 전문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병원에서 놀이를 통해 아이들을 만난다. 수술을 앞둔 아이와 탐험하듯 수술실을 함께 다니면서 미리 두려움을 덜어주는 식이다. 아이들에게 이들과의 만남은 성장의 거름이 됐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개관 3년째에 호스피스 입주자 사키와 나눈 대화를 전했다. 사키는 병동의 보육교사를 보며 똑같이 되고 싶다고 했다. 사키에게 호스피스에서의 투병 생활은 단순히 버티는 것을 넘어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이 됐던 것이다. 책은 병원의 좁은 침대가 아닌 호스피스에서 만남과 이별, 슬픔과 즐거움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짧더라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나날이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지지직거리는 TV. 오류가 난 듯 여러 개의 가로선이 이미지를 뭉갠다. 그 속으로 마스크를 쓴 채 몸을 맞부딪치며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민재영 작가(53)의 그림들은 방금 막 꺼낸 기억 속 한순간 같다. 옛날 같기도, 지금 같기도 한 이들 그림의 탄생은 “나는 전통의 재료로 지금의 풍경을 그린다”는 그의 한마디로 정리된다. 동양화를 전공한 민 작가는 1990년대부터 수묵과 아크릴을 섞는 등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을 뭉뚱그리는 시도를 했다. 그러다 2003년부터 선을 가로로 겹쳐 그리는 ‘가로선의 중첩’이라는 자신만의 표현법을 만들었다.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민재영: 생활의 발견’은 그의 회화, 드로잉 등 65점을 통해 20년가량의 작업 변천을 한곳에서 보여준다. 작업의 시작은 바닥에 한지를 놓고 일정 간격으로 수묵 가로획을 긋는 것이다. 그 다음 모델을 섭외해 찍은 연출 사진이나 신문에 보도된 사진을 보고 목탄으로 밑그림을 그린다. 짧은 가로선으로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을 계속 중첩시킨다. 마지막에는 먹으로 음영을 준다. 번짐과 흐릿함의 표현법을 구상해낸 이유에 대해 그는 “구체적이고 선명한 환기보다는 기억 속 이미지처럼 잔상이 남는 게 좋다”고 했다. 그가 다루는 소재는 대개 도심 속 일상을 살아가는 군상이다. 많은 작품이 군상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으로 그려졌다. 정수리나 등같이 스스로 볼 수 없는 부분은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생활 속 이미지를 그리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일상에서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는 생활상 기록의 정수를 보여준 박수근,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국의 세실리 브라운, 그림에서 서사가 느껴지는 독일의 다니엘 리히터다. 그가 그리는 작품의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다. 민 작가는 “표현의 영역을 더 넓혀가고 싶다”고 했다. 28일까지. 2000∼5000원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첼리스트 한재민(15·사진)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28일(현지 시간) 열린 제75회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첼로 부문 3위를 차지했다. 로즈마리위게닌 특별상도 함께 수상했다.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의 첼로 부문에서 한국인이 입상한 건 1971년 정명화가 1위를 한 후 50년 만이다. 올해 콩쿠르의 본선 진출자 중 최연소를 기록한 한재민은 스위스 로망드 관현악단과 엘가 첼로 협주곡 e단조를 연주했다. 1위는 일본의 우에노 미치아키(26), 2위는 캐나다의 브라이언 챙(24)이 각각 차지했다. 한재민은 3등 수상으로 상금 8000프랑(약 1024만 원)을 받았다. 부상으로 2년간 해외 콘서트 투어를 하고 제네바 프로무지카사와 2년간 매니지먼트 계약을 하는 기회를 갖는다. 한재민은 “콩쿠르에 참여하며 음악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 기대되는 연주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5월 루마니아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금호영재 출신인 한재민은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영재로 입학했다.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수상한 한국인으로는 작곡가 조광호(2013년), 피아니스트 문지영(2014년), 작곡가 최재혁(2018년), 퍼커셔니스트 박혜지(2019년)가 있다. 1939년 창설된 제네바 국제콩쿠르는 피아노, 플루트, 클라리넷, 첼로 등 8개 부문이 매년 번갈아 가며, 작곡 부문은 2년마다 각각 개최된다. 만 29세 이하 연주자가 참여할 수 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멕시코에서는 ‘죽은 자들의 날’이라는 명절이 있다. 매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망자의 영혼을 기리는 행사인데, 퍼레이드 형식으로 즐겁게 이뤄진다. 멕시코인들은 죽음의 가치를 인정하고 삶의 또 다른 부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2018년 국내 개봉한 애니메이션 ‘코코’에 잘 반영돼 있다. 멕시코 이외의 나라들에 이 문화가 낯설게 다가오는 건 죽음이란 것이 불편하고 두려운 존재로 각인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일상적으로 겪는 이에겐 죽음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해부학적 지식을 활용해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는 법의인류학자인 저자는 “내가 죽음과 맺은 관계는 편안한 우정”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죽음의 여러 모습을 담담하게 풀어내며 죽음을 향해 느끼는 혐오를 잠시 잊어보자고 제안한다. 저자가 기억하는 최초의 죽음은 대개 그렇듯 조부모였다. 저자의 할아버지는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숨졌다. 장례식 날 저자는 “할아버지가 잘 계시는지 확인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조문실로 향한다. 저자는 그 앞에 잠시 멈춰 할아버지가 살았던 순간을 떠올리고 기억을 간직한다. 그러곤 할아버지의 피부색을 살피고 시계의 태엽을 감아드리고 어깨를 두드리는 것으로 임무를 완수한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가 신뢰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준 순간부터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대학시절에는 해부학 수업을 들으며 죽은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느꼈다. 신체 기증자를 위해 해마다 열리는 장례식과 감사 예배는 죽음의 또 다른 가치를 생각하게 했다. 법의인류학자가 되어서는 법정에서 시신이 절단된 방식, 횟수를 증언하면서도 유족의 고통을 고려해 말을 고민했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한 저자는 죽음을 둘러싼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자신의 죽음을 직접 준비할 권리, 신원 미상의 시신에 대해 국가 등이 끝까지 신원을 확인해줄 의무 등이 필요하단 말이다. 죽음을 공포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죽음이 남긴 이야기를 따라가며 죽음을 느껴보길 권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대구에서 태어난 서세옥(1929∼2020)은 광복 후 서울로 왔다. 그때 성북동 소나무들을 보고 ‘꼭 성북동에 집을 갖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후 성북구 월곡동, 돈암동 등지에서 거주했던 그는 1970년대 초, 성북동 언덕에 25평(약 82.6m²)짜리 집을 짓곤 ‘손으로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집’이란 의미로 ‘무송재’라 이름을 붙였다. 성북과 서세옥은 서로의 수식어였다. 그는 이곳에서 작품을 만들고 정원을 거닐며 사색하는 조선시대 선비 화가의 삶을 꿈꿨다. 한국 문인화의 마지막 세대로 불렸던 그는 별세 전까지 이곳에서 활발히 작업했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사람 혹은 군상을 그린 대표작 ‘인간’ 시리즈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작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환경이 있다. 지역 미술관들이 예술가의 공간에 대한 흔적을 짚은 전시를 열고 있다. 서울 성북구 성북구립미술관은 12월 5일까지 ‘화가의 사람, 사람들’ 전시에서 서세옥과 그를 중심으로 한 성북의 근현대 작가들 작품 25점을 조명하고 있다. 전남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은 11월 6일까지 ‘한국 서예의 거장 소전 손재형’을 열고 전남 진도 출신인 손재형의 서예 입문기부터 완숙기까지를 보여주는 40점을 선보이고 있다. ‘화가의 사람, 사람들’에서는 서세옥이 성북동에 살며 교류하고 영향을 받은 김용준 김환기 장승업 등 7명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스승 김용진의 수묵화, 서세옥을 아우라 칭했던 변관식의 산수가 그려진 선면도 등 서세옥 컬렉션 12점도 포함됐다. 김경민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사는 “서세옥 컬렉션은 작가가 자신의 예술 세계에 자양분이 된 작품을 모은 것이라 후배나 친구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작품이 많다”고 했다. 지난해 유족으로부터 3342점을 기증받은 성북구립미술관은 서세옥 기획전을 이어갈 예정이다. 서세옥의 선배이자 20세기 서예와 문인화를 이끈 소전 손재형(1903∼1981)은 할아버지 손병익과 진도로 귀향 온 학자 정만조에게 한학과 서예를 배웠다. 함께 서당을 다닌 이는 한국 서화계를 대표하는 의재 허백련과 남농 허건이었다. 이태우 전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은 “소전은 18세 때 상경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예에 두각을 보였다. 그 기반엔 자연스레 서예를 접한 진도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정희의 세한도를 가져온 자’, ‘박정희 대통령의 서예 스승’으로 손재형을 설명하던 문구를 잠시 잊고 서예가로서 그를 재평가할 수 있다. 당시 서예계를 주도하던 김돈희, 오세창의 서풍을 익히던 ‘전통 계승의 시기’, 광복 후 ‘소전체 정립 시기’, 60세 이후 ‘원숙한 기량의 시기’를 감상할 수 있다. 사군자, 수묵 산수화 등 여러 문인화도 전시돼 있다. 함께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고귀한 시간, 위대한 선물’에서는 신안 출신인 김환기의 ‘무제’, 고흥 출신인 천경자의 ‘화혼’, ‘만선’, 화순 출신인 오지호의 ‘풍경’ 등 전남에 뿌리를 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 측은 현대문학 가운데 김환기가 장정한 60권을 모두 구매해 일부를 선보이고 있다. 천경자, 오지호, 조선대 교수를 지낸 임직순이 그린 각종 책의 표지화와 삽화도 전시한다.광양=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대구에서 태어난 서세옥(1929~2020)은 광복 후 서울로 왔다. 그때 성북동 소나무들을 보고 ‘꼭 성북동에 집을 갖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후 성북구 월곡동, 돈암동 등지에서 거주했던 그는 1970년대 초, 성북동 언덕에 25평(82.6㎡)짜리 집을 짓곤 ‘손으로 소나무를 어루만지는 집’이란 의미로 ‘무송재’라 이름을 붙였다. 성북과 서세옥은 서로의 수식어였다. 그는 이곳에서 작품을 만들고 정원을 거닐며 사색하는 조선시대 선비 화가의 삶을 꿈꿨다. 한국 문인화의 마지막 세대로 불렸던 그는 별세 전까지 이곳에서 활발히 작업했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사람 혹은 군상을 그린 대표작 ‘인간’ 시리즈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작가에게는 영감을 주는 환경이 있다. 지역 미술관들이 예술가의 공간에 대한 흔적을 짚은 전시를 열고 있다. 서울 성북구 성북구립미술관은 12월 5일까지 ‘화가의 사람, 사람들’전시에서 서세옥과 그를 중심으로 한 성북의 근현대 작가들 작품 25점을 조명하고 있다. 전남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은 11월 6일까지 ‘한국 서예의 거장 소전 손재형’을 열고 전남 진도 출신인 손재형의 서예 입문기부터 완숙기까지를 보여주는 40점을 선보이고 있다. ‘화가의 사람, 사람들’에서는 서세옥이 성북동에 살며 교류하고 영향을 받은 김용준 김환기 장승업 등 7명의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스승 김용진의 수묵화, 서세옥을 아우라 칭했던 변관식의 산수가 그려진 선면도 등 서세옥 컬렉션 12점도 포함됐다. 김경민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사는 “서세옥 컬렉션은 작가가 자신의 예술 세계에 자양분이 된 작품을 모은 것이라 후배나 친구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작품이 많다”고 했다. 지난해 유족으로부터 3342점을 기증받은 성북구립미술관은 서세옥 기획전을 이어갈 예정이다. 서세옥의 선배이자 20세기 서예와 문인화를 이끈 소전 손재형(1903~1981)은 할아버지 손병익과 진도로 귀향 온 학자 정만조에게 한학과 서예를 배웠다. 함께 서당을 다닌 이는 한국 서화계를 대표하는 의재 허백련과 남농 허건이었다. 이태우 전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은 “소전은 18살 때 상경하면서 본격적으로 서예에 두각을 보였다. 그 기반엔 자연스레 서예를 접한 진도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정희의 세한도를 가져온 자’, ‘박정희 대통령의 서예 스승’으로 손재형을 설명하던 문구를 잠시 잊고 서예가로서 그를 재평가할 수 있다. 당시 서예계를 주도하던 김돈희, 오세창의 서풍을 익히던 ‘전통 계승의 시기’, 광복 후 ‘소전체 정립 시기’, 60세 이후 ‘원숙한 기량의 시기’를 감상할 수 있다. 사군자, 수묵 산수화 등 여러 문인화도 전시돼있다. 함께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고귀한 시간, 위대한 선물’에서는 19점을 만날 수 있는데, 전남 출신 작가들의 아카이브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미술관 측은 신안 출신인 김환기의 현대문학 장정 60권을 모두 구매해 일부를 선보이고 있다. 고흥 출신의 천경자, 화순 출신인 오지호, 조선대 교수를 지낸 임직순이 그린 표지화와 삽화를 구하기 위해 헌책방을 뒤져 모두 9권을 구했다.광양=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제가 왜 종이를, 나무를 파낼까요? 고민해봤더니 저는 사랑하는 무언가가 낡아 버려지는 걸 두려워하더라고요. ‘아 나는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으려고 계속해서 새기는 중이구나’ 깨달았어요.” 이지은 작가(47)는 자신이 조각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소멸을 두려워하는 태도’는 그의 집착에서 시작됐다. “아쉬운 마음이 생기면 굳이 제 손으로 칠하고 새기면서 대상을 체화시키고 싶었어요. 참선하듯, 기도하듯 간절히 남기고 싶은 거죠.” 소멸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지은의 작업 활동은 끝내 ‘태도’가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지은의 작품은 들이는 시간에 비해 생산성이 낮다. 예컨대 작품 ‘쓸모없는 사전’(2020년)이 그렇다. 작가는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는 백과사전에 집중했다. 사전마저 버리면 과거를 기억할 고리가 끊기겠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는 어릴 적 선물 받은 30권짜리 백과사전 중 제1권의 11쪽부터 640쪽까지 있는 모든 문항을 각각 다른 색으로 칠했다. “버리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은 꼬박 1년이 걸려 완성됐다. 이후 색칠한 문단 모양을 모티브로 해 육면체의 각 면을 깎아 9개 목조작품 ‘생각 허물기’를 만들었고, 그 목조작품의 모든 면을 종이에 대고 색칠해 54점의 프로타주 작품 ‘매만지고 문지르기’를 탄생시켰다. 주변에서는 작가를 걱정했다. ‘왜 칠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때마다 작가는 “나도 모르겠어. 칠하고 싶고, 다 칠해야만 왜 칠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답했다. 1권을 마무리 짓고 난 뒤에는 ‘그저 즐거웠다. 그럼 충분하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남은 29권을 보고는 “나는 돈을 포기했나 보다. 앞으로 29년간 갖고 놀 장난감 하나 생겨 기쁘다는 생각이 든다”며 장난스레 웃었지만, 별 볼일 없는 현상을 관심 있게 보려 하는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중노동 같아 보이는 작업 활동 속에서 작가 또한 의미를 찾아나간다. ‘너’라는 한 글자를 81개의 서체로 종이에 새겨낸 작품 ‘너 안에 내가’(2021년)가 그랬다. “보통은 마음에 드는 서체만 계속 쓴다. 다수가 싫어 해도 단 한 명을 위해 남아 있는 어떤 폰트도 있다. 작업을 위해 싫어하는 폰트로도 조각해봤는데, 문득 ‘내가 싫어하는 부분도 결국 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이지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하찮고 무의미하게 평가되던 것들의 가치를 되묻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이지은의 예술관 그 자체다. “누구나 다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된장찌개를 먹고 ‘와, 예술이다’ 하는 것처럼 누군가 심혈을 기울이고 시행착오를 겪어내면서도 정성을 비췄을 때 그 안에 예술이 있는 거죠. 그렇다 보니 관객이 제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반추하며 ‘이것도 예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전시는 31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제가 왜 종이를, 나무를 파낼까요? 고민해봤더니 저는 사랑하는 무언가가 낡아 버려지는 걸 두려워하더라고요. ‘아 나는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으려고 계속해서 새기는 중이구나’ 깨달았어요.” 이지은 작가(47)는 자신이 조각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소멸을 두려워하는 태도’는 그의 집착에서 시작됐다. “아쉬운 마음이 생기면 굳이 제 손으로 칠하고 새기면서 대상을 체화시키고 싶었어요. 참선하듯, 기도하듯 간절히 남기고 싶은 거죠.” 소멸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지은의 작업 활동은 끝내 ‘태도’가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지은의 작품은 들이는 시간에 비해 생산성이 낮다. 예컨대 작품 ‘쓸모없는 사전’(2020년)이 그렇다. 작가는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는 백과사전에 집중했다. 사전마저 버리면 과거를 기억할 고리가 끊기겠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는 어릴 적 선물 받은 30권짜리 백과사전 중 제1권의 11쪽부터 640쪽까지 있는 모든 문항을 각각 다른 색으로 칠했다. “버리면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은 꼬박 1년이 걸려 완성됐다. 이후 색칠한 문단 모양을 모티브로 해 육면체의 각 면을 깎아 9개 목조작품 ‘생각 허물기’를 만들었고, 그 목조작품의 모든 면을 종이에 대고 색칠해 54점의 프로타주 작품 ‘매만지고 문지르기’를 탄생시켰다. 주변에서는 모두 작가를 걱정했다. ‘왜 칠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때마다 작가는 “나도 모르겠어. 칠하고 싶고, 다 칠해야만 왜 칠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답했다. 1권을 마무리 짓고 난 뒤에는 “그저 즐거웠다. 그럼 충분하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남은 29권을 보고는 “나는 돈을 포기했나보다. 앞으로 29년간 갖고 놀 장난감 하나 생겨 기쁘다는 생각이 든다”며 장난스레 웃었지만, 별 볼일 없는 현상을 관심 있게 보려하는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중노동 같아 보이는 작업 활동 속에서 작가 또한 의미를 찾아나간다. ‘너’라는 한 글자를 81개의 서체로 종이에 새겨낸 작품 ‘너 안에 내가 있다’가 그랬다. “보통은 마음에 드는 서체만 계속 쓴다. 다수가 싫어해도 단 한 명을 위해 남아있는 어떤 폰트도 있다. 작업을 위해 싫어하는 폰트로도 조각해봤는데, 문득 ‘내가 싫어하는 부분도 결국 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이지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하찮고 무의미하게 평가되던 것들의 가치를 되묻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이지은의 예술관 그 자체다. “누구나 다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된장찌개를 먹고 ‘와, 예술이다’하는 것처럼 누군가 심혈을 기울이고 시행착오를 겪어내면서도 정성을 비췄을 때 그 안에 예술이 있는 거죠. 그렇다보니 관객이 제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반추하며 ‘이것도 예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전시는 31일까지. 무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올해 5월, 전시 제목을 의논하던 한국인 큐레이터에게 프랑스 작가는 ‘4분의 4’를 제안했다. “지금 나는 생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면서. 큐레이터는 “한국에서는 4가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아 기피한다”고 했다. 작가는 되레 더 흥미로워했다. 두 달이 지난 7월, 작가는 갑작스레 눈을 감았다. 프랑스 대표 현대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1944∼2021)다. 그의 첫 유고전을 담당한 양은진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는 “그때는 장난인 줄 알고 웃어넘겼는데 볼탕스키는 어렴풋이 죽음을 인지했던 것 같다”고 했다. 볼탕스키의 세계 첫 유고전이 된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의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는 이렇게 마련됐다. 제목으로 4분의 4(4/4)를 생각했던 작가는 슬래시(/)보다 점(.)이 좋다는 해맑은 이유로 최종 제목을 4.4로 정했다. 전시하려던 작품도 총 44점이었다. 날개 달린 천사 조각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설치 작품 ‘천사’(1984년)는 작가가 직접 들고 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사망으로 이번 전시에는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43점이 진열됐다. 작가는 별세 직전까지 1년간 작품 선정, 공간 디자인까지 모두 맡았다. 양 큐레이터는 “1점은 작가님의 영혼이 채워 주는 걸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볼탕스키는 평생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프랑스가 나치에서 해방된 직후 유년기를 보낸 그는 유대인에게 가해지는 위협을 겪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경험했다. 작가가 두려움에 저항한 방식은 ‘기억’이었다. 그는 기록되지 않은 사람을 주목했다. 제단이나 종교적 구조물 위에 얼굴 사진을 걸어 놓은 ‘기념비’(1986년), 반투명 커튼에 영정사진처럼 93명의 얼굴을 각각 인쇄한 ‘인간’(2011년)은 홀로코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사용된 사진은 수용소 희생자의 것이 아니라 신문 부고에 나왔거나 학급 학생들이 단체로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통해 사적인 기억과 역사를 이어 놓은 것이다. 그는 설치 작품의 크기를 매번 전시 장소에 맞춰 정했다. 이번 전시장의 한쪽 벽면 가득 옷이 늘어져 있는 ‘저장소: 카나다’(1988년)는 한국의 중고 옷 1t으로 제작했다. 익명의 옷가지들은 사라진 생명이 ‘살았던’ 시절을 상기시킨다. 개성도 추억도 없는, 죽음 자체를 대변하는 700kg가량의 검은 옷더미 ‘탄광’(2015년)과 165일의 전시 기간 동안 매일 하나씩 꺼지며 흘러가는 시간을 가시화할 ‘황혼’(2015년)도 마찬가지다. 탄광에 사용한 재료도 한국의 중고 옷이다. 전시장에 맞춰 제작한 설치 작품은 매 전시가 끝난 후 폐기한다. 그는 “오브제는 파괴되더라도 오브제가 있었다는 희미한 기억만 있으면 된다”고 말해 왔다. 작품은 물질적 실체는 유한하지만 구전으로 계승되는 신화처럼 대를 이어가며 남는다. 일본 데시마섬에서 진행되고 있는 ‘심장소리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그는 2008년부터 각국 사람들의 심장박동 소리를 수집해 왔다. 지금도 섬에 오는 사람들의 심장박동 소리를 모으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야기에 끌려서라도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 작품을 이어가길 바란 것이다. 볼탕스키는 장난기가 많았다. 양 큐레이터는 “볼탕스키는 어떤 전시건 개막 이틀 전에 ‘전면 취소하자’며 큐레이터들을 당황시켰다고 한다. ‘이 지역에 유명한 스시집이 있던데 거길 못 가서’ 같은 이유를 들었다”고 했다. 그와 10년 넘게 작업해 온 프로덕션 팀원 2명은 이번 전시로 내한한 내내 울었다고 한다. 그의 부재가 컸던 것이다. “죽음이란 떠나기 위해 공항에 가는 것”이라던 볼탕스키. 전시에서는 생전 녹음된 그의 심장 박동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두운 공간을 메우고 있는 그 소리에서, 누군가의 헌옷더미 속에서, 과거 인물의 흐릿한 사진 속에서 관객은 현재 자신의 모습과 가까이 머물고 있는 죽음의 의미를 생각할 것이다. 내년 3월 27일까지. 무료.부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올해 5월, 전시 제목을 의논하던 한국인 큐레이터에게 프랑스 작가는 ‘4분의 4’를 제안했다. “지금 나는 생의 마지막 단계에 와있다”면서 말이다. 큐레이터는 “한국에서는 숫자 4가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아 기피한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되레 더 흥미로워했다. 두 달이 지난 올해 7월, 작가는 갑작스레 눈을 감았다. 프랑스 대표 현대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1944~2021)의 첫 유고전을 담당한 양은진 큐레이터는 “그때는 장난인 줄 알고 웃어 넘겼는데 볼탕스키는 어렴풋이 죽음을 인지했던 것 같다”고 했다.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세계 첫 유고전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4.4’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전시하려던 작품 또한 총 44점이었다. 날개 달린 천사 조각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설치 작품 ‘천사’(1984년)는 작가가 직접 들고 올 예정이었다. 작가의 사망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43점이 진열됐다. 작가는 별세 직전까지 1년간 작품 선정, 공간 디자인까지 모두 맡았다. 양 큐레이터는 “1점은 작가님 영혼이 채워주는 걸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볼탕스키는 일평생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에서 해방된 직후 유년기를 보냈다. 유대인에게 가해지는 위협을 겪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와 소외를 경험했다. 작가가 그 두려움에 저항한 방식은 ‘기억’이었다. 잊히는 것을 겁나 한 작가는 기록되지 않은 사람을 주목했다. 제단이나 종교적 형태 구조물 위에 얼굴 사진을 걸어놓은 작품 ‘기념비’(1986년), 반투명 커튼에 영정사진처럼 93명 얼굴을 각각 인쇄해 놓은 작품 ‘인간’(2011년) 등은 홀로코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사용된 사진은 실제 수용소 희생자가 아닌 신문 부고나 단체 학급 사진 등이다. 사진을 통해 사적인 기억과 역사를 이어놓은 것이다. 5개 공간으로 나누어 작품을 배열한 이번 전시는 대형 공간에 작품을 쏟아내는 작가의 이전 전시 방식에 비해 웅장함은 부족하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장소에 맞게 가변크기로 제작됐다는 점은 주목해볼 만하다. 전시장 한쪽 벽면 가득 옷이 늘어져있는 설치 작품 ‘저장소: 카나다’(1988년)는 프로덕션 팀 ‘에바스튜디오’의 자문 하에 한국의 중고 옷 1t을 공수해 재제작했다. 익명의 옷가지들은 사라진 생명이 ‘살았던’ 시절을 상기시킨다. 개성도 추억도 없는, 죽음 자체를 대변하는 700kg가량의 검은 옷더미 ‘탄광’(2015년)과 165일의 전시 동안 매일 하나씩 꺼지며 흘러가는 시간을 가시화한 ‘황혼’(2015년) 등도 마찬가지다. 재제작 작품은 매 전시가 끝난 후 폐기된다. 흔적을 중시하는 그가 작품의 자취를 손수 지운다는 것이 의문일 수 있다. 그는 “오브제는 파괴되더라도 오브제가 있었다는 희미한 기억만 있으면 된다”고 말해왔다. 작품은 물질적으로 한계가 있지만, 구전으로 계승되는 것은 신화처럼 대를 이어가며 남는다. 일본 테시마 섬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의 ‘심장소리 아카이브’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그는 2008년부터 전 세계인의 심장박동 소리를 수집했다. 설화나 소설 같은 이야기에 끌려서라도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 작품이 기억되고 이어지길 바란 것이다. 삶과 죽음을 다루지만 인간 볼탕스키는 “미술가는 삶을 유희하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왔던 것처럼 재치있었다. 양은진 큐레이터는 “볼탕스키는 어떤 전시건 전시 이틀 전에 전면 취소하자며 큐레이터들을 당황시켰다고 한다. 이유는 ‘이 지역에 유명한 스시집이 있던데 그걸 못 먹어서’ 따위다”라고 했다. 이 때문인지 그와 10년 넘게 일해 온 프로덕션 팀원 2명은 이번 전시로 내한한 내내 울었다고 한다. 볼탕스키가 전시장 어디쯤에 앉아있고, 어떤 대사를 할지 가장 잘 알았던 사이였기에 그의 부재가 컸던 것이다. 볼탕스키는 예술가로서의 모습만 기억할 수 있도록 팀원에게 죽음에 가까워졌을 즈음 자신의 공간에 출입을 금했다고 한다. “죽음이란 떠나기 위해 공항에 가는 것”이라던 볼탕스키는 이제 우리 곁에 없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생전 녹음된 그의 심장 박동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두운 공간을 메우고 있는 그의 심장소리에서, 누군가의 헌옷더미 속에서, 과거 인물의 흐릿한 사진 속에서 관객은 현재 자신의 모습과 가까이 머물고 있는 죽음의 존재를 반추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내년 3월 27일까지. 무료.부산=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3일부터 닷새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가 역대 최고 매출, 최다 방문객을 기록했다. 5일간 판매액은 650억 원, 관람객은 8만8723명이었다. 이는 2019년에 비해 판매액(310억 원)은 두 배 이상으로, 관람객은 7%가량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행사가 열리지 못했다. 매출의 절반가량인 350억 원은 개막 첫날인 VVIP 입장 당일 이뤄졌다. 이날에만 5000여 명이 방문했으며 방탄소년단의 RM과 뷔, 전지현, 이병헌 이민정 부부, 소지섭 등 연예인도 다수 참석했다. 올해는 VVIP 제도를 신설해 약 3000명(동반 1인 가능)에게 작품을 우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기존 갤러리와 인연이 없는 젊은 컬렉터를 흡수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화랑협회는 “2019년부터 MZ세대가 미술시장에 관심을 보인다는 걸 감지했다. 갤러리들 또한 MZ세대의 취향에 맞게 덜 무겁고 밝은 작품을 많이 내세운 것 같다”고 밝혔다. 여러 화랑 대표들도 “매년 오던 기존 컬렉터가 아닌 처음 보는 30, 40대 컬렉터가 많았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작품을 투자 대상으로만 대하는 현상을 경계하는 시선도 있었다. 10년 넘게 갤러리를 운영해 온 한 대표는 “순수미술이라기보다는 인테리어용 작품을 사거나 이우환 박서보처럼 기존 시장에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의 미래 가치를 묻는 고객이 많았다. 자신만의 기준 없이 ‘우선 사고 보자’는 분위기라면 언젠가는 거품이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굵직한 글로벌 화랑들의 참가도 눈에 띄었다. 국내 원로 작가의 작품이 화랑마다 반복해서 나왔던 이전과 달리 작품이 다양해졌다는 평도 많았다. 올해 행사를 통해 서울의 아트페어에 처음 참여한 독일 베를린의 ‘페레스 프로젝트’와 미국 뉴욕의 ‘글래드스톤’ ‘투팜스’는 서울 분점을 개관하겠다고 밝혔다. 키아프는 내년부터 3대 글로벌 아트페어인 ‘프리즈’와 함께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캔버스에 뛰노는 캐릭터들이 시선을 한순간에 사로잡는다. 캐릭터로 각자의 세계를 캔버스에 펼치는 국내외 작가들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편하고 즐겁게 감상하며 다채로운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 낙서의 미학, 조지 모턴 클라크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영국 작가 조지 모턴 클라크(39)는 “손맛이 좋다”는 이유로 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추상화로 재해석한다. 미키마우스, 톰과 제리, 도라에몽, 호빵맨…. 일그러졌지만 익숙한 동서양 대중문화 속 캐릭터가 캔버스에 담겼다. 경기 양평군 구하우스미술관에서 다음 달 28일까지 열리는 ‘Myths, Heroes & Mad Scientists’ 전시에서 신작 24점과 설치작품 1점을 볼 수 있다. 추상화가로 자신을 정의하는 작가는 “캐릭터는 추상화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그릇이다. 추상화 형식을 더해 캐릭터 이면의 의미에 집중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설치작품 ‘The Favored Refugees’는 난민 문제를 은유한다. 회화 작품에서 움직이던 캐릭터들이 튜브를 타고 해변에서 놀고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오브제들은 뒤엉키고 부서져 있다. 1만5000원.○ 캐릭터와 소통한다, 김명진 재기발랄한 캐릭터들, 이를 돋보이게 하는 산수화 같은 흑백 공간은 작가의 이력을 대변한다. 김명진(43)은 대구예술대 동양화과를 다니다가 1998년 자퇴했다. 그 후 15년간 동화책 일러스트, 타투이스트, 페인트공으로 일했다. 2013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관 전시를 한 후 그림에서 손을 떼려 했으나 서울 종로구 갤러리가이아와 인연이 돼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다음 달 1일까지 열리는 전시 ‘Edgewalker’에서는 신작 13점을 포함해 회화 20점을 선보인다. 그가 연구해 만든 6개의 캐릭터는 소시지나 젤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캐릭터에 나를 투영하기보다는 캐릭터를 보면 반갑다”는 그는 작업할 때 작품 속으로 들어가 대화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캐릭터에게 ‘그 신발 비싸지 않아?’라며 물어보는 식이다. 그는 “어릴 때 말도 안 통하는 사물과 대화하면서 스케치북을 넘어 벽, 바닥에도 낙서하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고 했다. 무료.○ 한국적 팝아티스트 한상윤 일본에서 풍자화를 전공한 한상윤(36)은 2009년부터 12년째 돼지 캐릭터를 그리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현대인의 물질적 욕망을 비판하기 위해 그렸지만, 지금은 관객이 풍자로 인한 웃음이 아닌 행복한 웃음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나마갤러리에서 26일까지 열리는 전시 ‘PIG POP―Doni&Dona’에서는 파블로 피카소, 미켈란젤로, 자크루이 다비드의 명화를 오마주한 작품 3점을 포함해 회화 33점을 볼 수 있다. 작품 속 돼지들은 스타벅스 로고가 있는 컵, 코카콜라 병을 들고 포즈를 취한다. 어렵게 느껴지던 명화를 편하게 전환시킨 것이다. 고가 브랜드의 가방을 들거나 옷을 입은 돼지는 사치스러운 현대인을 떠올리게 한다. 팝 아티스트로 불리는 그는 “만화 캐릭터를 쓰면 ‘팝아트’라고 하는 경향이 있지만 팝아트는 시대성을 담아야 한다. 절대 ‘쉬운 미술’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황토 등을 혼합한 분채, 광물을 갈아 만든 석채 같은 한국적 재료로, 한국 돼지를 통해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한국적 팝아트’를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10월 26일까지. 무료. 양평=김태언 기자beborn@donga.com}

캔버스에 뛰노는 캐릭터들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한순간에 사로잡는다. 미키마우스, 도라에몽, 호빵맨 등 일그러진 동서양의 대중문화 캐릭터가 영국 작가 조지 몰튼 클락의 캔버스에 모습을 비춘다. 김명진은 이름 모를 행성에서 행복하게 부유하는 빨간색 젤리맨, 살구색 소시지맨 등 6개의 캐릭터들을 탄생시켰다. 한상윤은 2009년부터 12년째 돼지 캐릭터를 그리며 시대상을 반영한다.●낙서의 미학, 조지 몰튼 클락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조지 몰튼 클락(39)은 “손맛이 좋다”는 이유로 페인팅의 길을 걸었다. 그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추상화로 재해석한다. 정제되지 않은 선은 ‘낙서의 미학’으로 표현되곤 한다. 대략적인 스케치는 하지만, 순간의 느낌에 따라 캔버스에 옮겨온다. 전시 4개월을 앞두고는 2점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을 모두 폐기하고 새로 그렸다. 추상화가로 자신을 정의하는 작가는 “캐릭터는 추상화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그릇이다. 점차 캐릭터 형태를 더 추상화해 캐릭터 이면의 의미에 집중하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작가가 3일간 한국에 머물며 작업한 설치작품 ‘The Favored Refugees’도 난민 문제를 은유한다. 회화 작품에서 움직이던 캐릭터들이 튜브를 타고 해변에서 놀고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오브제들은 뒤엉키고 부서져 서로 섞여있다.●캐릭터와 소통한다, 김명진재기발랄한 캐릭터들, 그를 돋보이게 하는 산수화 같은 흑백 공간과 낙서 같은 배경작업은 작가의 이력을 대변한다. 김명진(43)은 1998년 대구예술대 동양화과를 다니다 자퇴했다. 그 후 15년의 공백 기간 동안 동화책 일러스트, 타투이스트, 페인트공으로 일했다. 2013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관 전시를 한 후 손을 떼려했으나 갤러리가이아와 인연이 돼 현재까지 활동 중이다. 차츰 우울증을 극복하며 전작에 비해 작품이 밝아지고 있기도 하다. 2달간 연구해 만들어낸 6개의 캐릭터는 실제 소시지나 젤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작가가 꿈속에서 만나 우유를 나눠준 어린 양도 캐릭터가 됐다. “캐릭터에 나를 투영하기보다는 나는 마냥 캐릭터가 반갑다”는 작가는 작업을 하며 관객의 시선이 아니라 작품 속으로 들어가 대화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작품에 공산품을 그려 넣은 것도 같은 이유다. 관객도 캐릭터에게 ‘그 신발 비싸지 않아?’ 식으로 물어봤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작가는 “어릴 때 말도 안 통하는 사물과 대화하면서 스케치북을 넘어 벽, 바닥에도 낙서하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고 했다.●한국적 팝아티스트 한상윤일본에서 풍자화를 전공한 한상윤(36)은 현대인의 물질적 욕망을 비판하기 위해 돼지를 그렸지만, 지금은 “관객이 풍자로 인한 웃음이 아닌 행복한 웃음을 지으셨으면 한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자크 루이 다비드의 ‘성 베르나르 협곡’을 오마주한 작품 3점도 볼 수 있다. 작품 속 돼지들은 코카콜라를 들고 있다. 해석을 해야 할 것 같은, 어려운 느낌을 주는 명화를 편하게 전환시키는 것이다. 행복한 그림이라지만 그는 여전히 작품에 현대 사회를 보는 작가의 시선을 담는다. 루이비통, 샤넬 등 명품을 들고 있는 돼지는 사치스러운 현대인들의 맵시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팝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이유다. 작가는 “최근 만화 캐릭터를 쓰면 ‘팝아트’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팝아트라는 건 시대성을 담아야 한다. 절대 ‘쉬운 미술’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분채, 석채 등 한국적 재료로, 한국 돼지를 통해 한국 사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한국적 팝아트’를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양평=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어두운 숲에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그의 앞으로 어슴푸레한 빛들이 다가오자 여자는 손을 뻗어 본다. 반딧불 같은 빛은 몇 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정령이다. 그리움이 담겼지만 쓸쓸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포근함에 가깝다. 최근 서울 강남구 예화랑에서 만난 김원숙 작가(68·사진)는 ‘Forest LightsⅠ’(2016년)을 보며 “슬프고 돌이키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운 선물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개인전 ‘In the Garden’을 열며 “내 예술세계는 삶이라는 뜰 안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 앞에서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느낌을 얹게 된다. 그의 회화와 조각 85점은 날렵하지 않다. 부드러운 형태와 현란하지 않은 색채는 어딘가 묘연한 느낌을 준다. 바라보다 보면 캔버스 속 장면이 부르는 옛 기억에 아련해지다가 끝내는 따뜻한 감정이 인다. 한마디로 김원숙의 작품은 편안하다. 인간 김원숙도 마찬가지다. 작가로서의 입지를 고민하기보다는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다. “내게 현대미술은 다소 난해했다”는 김원숙은 자신의 일상과 책에서 얻은 감흥을 직관적으로 그린다. 그는 “그림은 관람객을 주눅 들게 하면 안 된다”며 “예술은 소통이기에 이해하기 어려우면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거창한 비평보다도 ‘나도 저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친구 생일날 저런 그림 오려서 한마디 써주고 싶다’는 날것의 생각들이 자신에겐 더 소중한 피드백이라고 했다. 노스탤지어풍의 그림은 재미 화가로 살아온 작가의 인생을 반영한다. 작가는 1971년 홍익대 미대에 입학했지만 한국 교육 방식에 한계를 느껴 1년 뒤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경제적 지원을 받을 상황이 못 됐던 작가는 장학금을 많이 주던 일리노이주립대에 입학했고 미국에서 화가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이주자로서의 삶도 50년이 되어 간다. 아직도 한글 책을 읽는다는 그는 그림을 통해 망각하고 있던 꿈과 어린 시절을 그려낸다. 이번 전시는 ‘김원숙 예술대학’을 기념하며 열리는 귀국전이기도 하다. 김원숙은 2019년 남편 토머스 클레멘트 씨와 함께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 1200만 달러(약 144억 원)를 기부했다. 학교는 곧바로 작가의 이름을 딴 예술대학 ‘Kim Won Sook College of Fine Art’를 만들어 화답했다. 6·25전쟁이 낳은 혼혈의 고아였던 남편이 의료기기 발명가 겸 사업가로 성공한 뒤 거액의 돈이 생겼는데 그것이 기쁘기보다는 두려워 기부했다고 한다. 김원숙은 50년가량의 화가 인생을 되돌아보며 “성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속적인 기준의 성공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제3의 잣대보다도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자식들 자전거도 사줬으니 이게 성공이 아니면 뭐냐”는 것이다. 그는 40년 전 한국에서 혼혈아 2명을 입양해 키웠다. 현재 51세 아들은 사업을 하고 48세 딸은 초등학교 교사다. 부부는 2015년 약 10억 원을 들여 입양 후 친부모와 자식을 찾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도 했다. 전시는 30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어느 날 버스 사고를 당하고 정신을 잃은 열여덟 살 한수리와 열일곱 살 은류. 낯선 남자의 부름에 눈을 떴는데, 깨어난 곳은 응급실이다. 사람들은 물음에 대답도 않는다. 이윽고 이들은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의 육체를 바라본다. 자신을 영혼 사냥꾼이라고 소개하는 남자는 수리와 류에게 “육체와 영혼이 분리됐다. 사흘 내로 육체를 되찾지 못하면 저승으로 가야 한다”고 말해준다. 영혼이 없는 상태로 깨어난 이들의 육체는 영혼이 빠져나오기 전과 다름없이 생활한다. 수리의 육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스트레칭을 하고 학교에 가서 공부한다. 그런 수리의 영혼은 육체에 서운함을 느끼며 “영혼 없는 육체는 감정도, 원하는 것도 없는 삶일 것”이라 말하지만, 정작 영혼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음을 깨닫는다. 반면 류는 육체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없다. “그냥 날 데려가라”고 말하는 류는 영혼 사냥꾼의 질문에 따라 조금씩 과거의 기억을 되짚으며 스스로 짊어지고 있던 삶의 무게를 되돌아본다. 소설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영혼으로 남은 주인공들을 따라가며 진짜 ‘나’를 되찾으려고 고투하는 과정과 영혼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영혼 없는 리액션’이라는 말에 착안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영혼은 결국 마음인데, 마음 없이 반응할 수 있게 된 사회상을 짚고자 한 것이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과 같은 쉽게 떠올려 볼 법한 질문에 답을 제시한 전작 ‘페인트’(2019년)와도 결을 같이한다. 페인트는 지금까지 3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일본, 중국, 베트남 등 5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출판사 창비가 내놓은 한국형 영어덜트(young adult) 시리즈 ‘소설Y’의 첫 작품이다. 영어덜트 소설은 대개 청소년이 주인공이지만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모든 세대를 겨냥한다. 창비는 국내 콘텐츠 수요가 높아지는 시대에 전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나나에 이어 천선란의 ‘나인’, 박소영의 ‘스노볼 1, 2’가 출간될 예정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