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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여성 조교(朝僑·해외 거주 북한 국적자)가 북한 여권을 제시하고 경유지인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것과 관련해 법무부는 25일 “북한 주민이 국내에 입국하고자 할 경우 대공 혐의 등 관계 기관의 정밀한 조사를 거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항공기 탑승 전 단계’에서 북한 여권 소지자에 대해 ‘사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음에도 이번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법무부 등에 따르면 북한 여권 소지자가 제3국에서 한국을 경유하거나 목적지로 하는 항공편에 탑승하는 경우 ‘탑승자 사전확인 제도’를 통해 해당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법무부가 출발지 외국공항 항공사로부터 탑승객 정보를 넘겨받아 테러나 범죄 등 위험이 있는 외국인의 국내 입국을 사전에 차단하는 제도다. 테러를 막기 위해 2015년 도입된 제도지만 조교나 총련계 재일교포 등 북한 여권으로 오는 항공기 탑승자들에 대한 ‘사전 검증’용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북한 여권 소지자의 최종 목적지가 한국일 경우 법무부가 국가정보원에 통보해 대공 혐의점이나 범죄 혐의 등을 확인하지만 경유지로 할 경우에는 따로 통보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0일 입국한 이모 씨(64)처럼 한국을 경유하는 탑승객으로 비행기표를 발권한 뒤 환승하지 않고 입국을 시도하는 경우 사전 검증 절차가 작동되지 않는 실정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번 입국 조교에 대해서는 법무부로부터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씨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20여 년 전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로 밀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입국 증명서가 없어 제3국으로의 출국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씨는 유엔난민기구를 통해 난민 인증을 받았고, 조교 신분을 이용해 북한 여권도 구했다. 경유지를 통한 난민 피신 경험이 있던 현지 변호사가 이 씨에게 출국 방법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가 북한 여권을 제시하고 한국에 입국했지만 북한 여권을 가지고 다시 해외로 출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출입국관리법상 북한 여권은 유효한 여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무부의 국적 판정 절차는 통상 6개월 이상이 걸려 판정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다시 해외로 나갈 수 없는 ‘경계인’ 위치에 놓였다.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북한 여권 소지자인 60대 여성이 사전 허가 없이 인천국제공항을 통과해 국내로 입국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4일 법무부와 경찰 등에 따르면 최근까지 러시아에서 거주하던 북한 조교(朝僑·해외 거주 북한 국적자) 이모 씨(64)가 지난달 30일 오전 8시경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러시아에서 라오스행 비행기를 타고 가다 경유지인 인천공항에 내린 뒤 입국 심사장에서 북한 여권을 제시하며 탈북자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출입국 심사를 받은 뒤 약 5시간이 지나 공항을 빠져나왔다. 이 씨는 이튿날 오후 2시 서울의 한 경찰서를 찾아가 “어제 입국한 탈북자다. 정착지원금을 받고 싶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 여권과 러시아 난민증을 증거로 내밀었다. 탈북자가 입국 다음 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군사분계선이나 해상을 통해 들어와 곧장 서울로 온 것도 아니었다. 이 씨는 ‘북한 여권’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도대체 이 여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국을 경유지로 허가 없이 입국 하지만 국정원이 신원을 확인한 결과 탈북자가 아니라 북한 국적으로 러시아에서 난민 자격으로 거주해 온 ‘조교’로 확인됐다. 해외에 사는 중국 교포를 화교(華僑)라고 하듯 해외에 거주하는 자국민을 북한은 조교라고 부른다. 국정원 관계자는 “이 씨가 탈북자에 해당하지 않아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에 통보하고 신병을 인수하지 않았다”면서 “최근 조교가 탈북자로 위장해 입국한 사례가 많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헌법상 북한 지역은 대한민국의 영토로 분류되고 북한 국적자도 대한민국 국민이 된다”며 “대공이나 범죄 혐의가 없다면 내국인이 입국을 원할 경우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씨가 만약 처음부터 한국을 목적지로 밝히고 입국을 시도했다면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씨가 한국에 입국하려면 사전에 방문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씨는 북한 여권으로 사전 비자발급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라오스를 목적지로 택하고, 중간 기착지인 인천공항에 내리는 방법으로 입국에 성공했다. 당국은 이 씨가 러시아에서 만난 선교사를 통해 이 같은 방식을 조언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조사 결과 이 씨의 북한 여권은 진본으로 판명됐다. 다만 러시아 난민증은 원본이 없어 진위를 확인하지 못했다. ● 탈북자로 위장하는 ‘조교’ 이 씨의 아버지는 북한 출신으로 중국에서 생활했다. 이 씨도 중국에서 나고 자랐고 북한에 직접적인 연고는 없다. 성인이 되면서 북한 국적을 선택했고 북한 국적자로서 한국에 들어왔지만 ‘탈북자’는 아니다. 북한이탈주민보호법은 북한에 주소와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고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만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한다. 이 씨는 조선족(중국동포)으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중국동포는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 한정한다. 탈북자도 조선족도 아닌 ‘경계인(境界人)’인 셈이었다. 이후 러시아로 건너간 이 씨는 난민 지위를 받고 오랜 기간 생활했고, 갱신 기간이 만료돼 추방될 처지에 놓였다. 대공 용의점이 없어 입국엔 성공했지만 이 씨는 아직 온전한 대한민국 국민은 아니다. 이 씨는 법무부에 국적 판정을 신청해 한국 국적을 취득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최근 들어 이 씨처럼 탈북자 혜택을 노린 조교가 밀입국 아닌 밀입국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출입국 관리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한편 조교들에 대한 법적 대우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중 국경을 50차례 넘게 답사한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은 “현행 북한이탈주민보호법은 중국과 러시아, 일본에서 태어나 부모에 의해 북한 국적을 취득한 사람에 대한 보호를 제외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수용의 폭을 확대하는 등 관련 논의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혁 hack@donga.com·신동진·황성호 기자}

25일 취임하는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59·사법연수원 23기)과 호흡을 맞출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 진용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3년차 사정(司正) 드라이브를 이끌 ‘윤석열호 검찰’의 핵심 요직에 윤 신임 총장의 연수원 동기들이 대거 포진할 것으로 전해졌다. 문무일 검찰총장(58·18기)보다 연수원 5기수 후배인 윤 신임 총장의 연수원 동기들이 사실상 ‘집단 지도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23일 법무부와 검찰 등에 따르면 윤 신임 총장의 후임 서울중앙지검장에는 배성범 광주지검장(57·23기)이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 검사장은 윤 신임 총장의 사법연수원 동기지만 대학은 1년 후배다. 서울중앙지검장은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사정 작업을 현장에서 이끌 최일선 사령탑이다. 전임자인 윤 신임 총장이 지휘한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과 정보 경찰의 선거 개입 사건 등의 공소 유지를 맡아야 한다. 배 검사장은 2014∼2015년 국무총리실 소속 부패척결추진단의 부단장을 맡았다. 그 뒤 대검찰청 강력부장과 창원지검장 등을 지냈다. 검찰 인사 등을 총괄하는 법무부 핵심 요직인 검찰국장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인 이성윤 대검 반부패강력부장(57·23기)이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검사장은 차기 법무부 장관으로 옮길 가능성이 높은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함께 검찰 개혁 등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검의 2인자이자 검찰총장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대검 차장에는 강남일 법무부 기획조정실장(50·23기)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강 검사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과 서울고검 차장 등을 지냈다. 배, 강 검사장은 각각 마산고와 진주 대아고를 졸업한 경남 출신이다. 검찰총장의 연수원 동기들이 검찰과 법무부 요직을 차지한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정상명 검찰총장 재직 이후 두 번째다. 당시 정 총장은 취임 직후 첫 인사에서 안대희 서울고검장,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 임승관 대검 차장 등 사법연수원 7기 동기를 검찰 내 요직에 기용한 적이 있다. 윤 신임 총장의 연수원 3년 선배인 김오수 법무부 차관(56·20기)은 유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 차관이 검찰총장보다 연수원 기수가 빠른 것도 기수와 서열을 중시하는 기존 검찰 인사에서는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파견된 경력이 있는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55·25기)과 조남관 대검 과학수사부장(54·24기)은 일선 지검장으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 윤, 조 검사장은 그동안 차기 서울중앙지검장 후보군으로 꼽혀 왔다. 법무부는 윤 신임 총장의 취임식이 열리는 25일 이후 인사위원회를 열어 이르면 이번 주말 검사장급 이상 고위 간부 인사를 발표할 계획이다. 차장검사와 부장검사 등 후속 인사는 이르면 다음달 초 공개될 예정이다.신동진 shine@donga.com·황성호·김동혁 기자}

25일 출범하는 윤석열호 검찰의 수사 방향을 예견할 단서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가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이라고 소개했고, 수사 참고 서적으로 애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독하려는 검사들이 늘고 있다. 23일 복수의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신임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자유민주주의 근간으로 ‘공정경쟁의 기반 확보’를 강조하며 이에 반하는 행위에 대해 엄정 수사를 강조했다.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이나 선거에 개입한 정보경찰 사건 등은 국가기관에 의해 공정경쟁이 훼손된 사건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프리드먼은 “정부의 역할은 자유시장의 ‘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신임 총장은 이를 수사 논리로 차용했다. 서울중앙지검 간부들에게도 “검찰의 역할은 경제 영역뿐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시장에서 공정 경쟁의 틀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해왔다고 한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신임 총장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장 시절 수사 시사점 등을 이 책에서 구했다고 사석에서 얘기해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윤석열호의 사정 칼끝이 ‘공정경쟁 파괴범’을 겨눌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공안 수사의 주안점도 체제 위협 세력 등에 대한 ‘방어적 민주주의’를 넘어 ‘공정한 정치경쟁의 틀 확보’로 옮겨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검찰청 공안부장과 서울중앙지검 2차장도 이른바 ‘특수통’ 검사가 기용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검찰이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62)에 대해 재청구한 구속영장이 20일 다시 기각됐다. 김 대표 등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범죄 주요 성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 증거수집이 되어 있는 점, 주거 및 가족관계 등에 비추어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김 대표와 함께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던 삼성바이오 최고재무책임자(CFO) 김모 전무(54), 재경팀장 심모 전무(51)의 영장도 모두 기각됐다. 검찰이 김 대표 등에게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가담 혐의를 적용해 처음으로 청구한 영장이 기각되면서 삼성그룹 윗선 수사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검찰은 19일 김 대표 등에 대한 영장심사에서 2015년 삼성바이오가 삼성에피스(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한 것처럼 회계처리 기준을 바꿔 장부상 회사 가치를 4조5000억 원 늘린 것은 분식회계라고 주장했다. 반면 김 대표 등은 “적법한 회계처리였으며, 분식회계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며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 김 대표의 변호인은 영장심사 뒤 “김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이라며 “회계 처리는 기본적으로 CFO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영장기각 직후 서울중앙지검은 “구속영장 기각을 이해하기 어렵다. 추가 수사 후 구속영장 재청구 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검찰이 김 대표에 대해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수사와 관련한 증거 인멸을 지시한 혐의(증거인멸교사)로 청구한 첫 번째 구속영장은 올 5월25일 기각됐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조은석 법무연수원장(54·사법연수원 19기)이 19일 사의를 표명했다. 다음주 윤석열 차기 검찰총장 취임을 앞두고 사퇴의사를 밝힌 검사장급 이상 간부는 11명으로 늘었다. 조 원장은 이날 오전 검찰 내부망에 사직 인사 글을 올려 “검찰은 저의 꿈이자 삶이었다. 비록 검찰을 떠나지만 제 마음의 고향은 언제나 검찰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검찰의 여건과 사회적 환경은 녹록치 않지만 국민이 검찰에 요구하는 범죄대응의 책무와 사명은 변함없이 무겁고 확고하다”며 후배 검사들에 대한 당부도 덧붙였다. 광주 광덕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나온 조 원장은 1993년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 대검찰청 대변인, 대검 형사부장, 서울고검장 등을 지냈고 지난해부터 법무연수원장을 맡아왔다. 지난달 17일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 지명 이후 사의를 밝힌 검사장급 이상 간부는 조 원장과 봉욱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54·19기), 박정식 전 서울고검장(58·20기), 이금로 수원고검장(54·20기), 김호철 대구고검장(52·20기),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56·21기), 윤웅걸 전주지검장(53·21기), 김기동 부산지검장(54·21기), 이동열 서울서부지검장(53·22기), 권익환 서울남부지검장(52·22기) 등이다. 이밖에 개방직인 정병하 대검 감찰본부장(59·18기)과 김한수 서울고검 검사(53·24기)도 사의를 밝혔다. 윤 차기 총장보다 선배 기수로 검찰에 남아 있는 간부는 황철규 부산고검장(19기), 김오수 법무부 차관(20기), 노승권 사법연수원 부원장·박균택 광주고검장·한찬식 동부지검장(이상 21기), 김영대 서울북부지검장·김우현 인천지검장·박윤해 대구지검장·양부남 의정부지검장·차경환 수원지검장·이영주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이상 22기) 등 11명이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첩보의) 소스는 확실합니까?”(북한 관련 단체 대표 L 씨) “병원 내부 직원 협조자가 제보.”(정보기관 출신 첩보원 H 씨) 2014년 11월 주한 일본대사관 무관 등을 상대로 ‘정보 장사’를 하던 탈북자 출신 L 씨는 북측 핵심 인사의 숙청과 사망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흑룡’(암호명) H 씨에게 텔레그램 메신저로 SOS를 쳤다. 국군정보사령부 공작팀장 출신인 H 씨는 군복을 벗은 지 10년이 넘었지만 늘 ‘고급 정보’를 쥐고 있었다. 정보사에 그를 돕는 내부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흑룡은 2002년 정보사를 퇴역한 뒤 북-중 접경지역에서 중국산 고추 수입업자로 위장해 제2의 첩보 인생을 시작했다. ‘서울○○물산’이란 상사를 차렸지만 실제로는 국가정보원 등과 협력하는 프리랜서 정보원으로 활약했다. 2010년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에 대한 북한의 암살 시도를 막는 데 중요한 첩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동아일보가 비공개 판결문을 확인해 보도한 이른바 ‘흑룡 기밀유출 사건’은 마치 한 편의 첩보영화를 방불케 한다. 외교관 신분인 일본 무관들이 은밀하게 국내 군사기밀을 수집하는 방식이 밝혀졌다. 우리 측 첩보원이던 흑룡의 이중 스파이 행적을 통해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한중일 3국의 치열한 물밑 첩보전 양상도 드러났다.(·, 참조) 첩보원의 암호명이 공개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암호명이 노출되면 그가 생산한 정보 루트가 모두 드러날 수 있어 첩보 인생에 있어서는 사실상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사업가로 위장한 첩보원이 상대국 정보기관에 포섭돼 우리 군 기밀을 넘겼다는 점에서 ‘흑금성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2003∼2005년 현역 육군 소장으로부터 입수한 작전계획5027 등을 북한에 넘겨준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흑금성’(암호명) 박채서 씨는 6년을 복역했다. 중국과 일본에 군사기밀을 넘긴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로 수감된 흑룡 H 씨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이달 24일 항소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계약서엔 첩보 등급별 대가 차등 지급 18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검사 양중진)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6∼2017년 중국에 파견된 정보사 요원의 명단 유출 사건을 내사하던 중 흑룡이 중국에 포섭된 정황을 파악했다. 한국인 사업가가 유독 군사정보에 눈독을 들이는 점을 수상하게 여기던 중국 정보당국에 정체가 발각됐다. 흑룡은 2016년 말경 중국 현지 정보당국에 체포된 뒤 ‘이중 스파이’로 변신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정보사 내통자를 통해 어학연수생 신분으로 파견된 우리 측 ‘블랙 요원’(신분을 감추고 활동하는 정보관) 명단을 빼내 중국에 넘겼다. 기밀 유출을 파악한 국정원은 감청과 잠복을 통해 흑룡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그와 접선한 공작원을 색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3년간 흑룡을 추적 감시하는 과정에서 베일에 싸여 있던 외교관들의 이중 플레이가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 올라왔다. 검찰은 일본 무관이 2015∼2017년 흑룡을 정기적으로 접선하며 총 54건의 군사기밀을 전달받은 내용을 확보했다. 일본은 흑룡이 건넨 정보가 우방국의 군사기밀임을 알면서도 서슴지 않고 빼갔다. 또 다른 정보원에게는 아예 “비밀자료를 SS, S급으로 나눠 대가를 차등 지급한다”는 비밀 거래 계약을 하기도 했다. 일본에 흘러간 비밀 중에는 ‘北, F국과 핵·미사일 기술 관련 교류 실태’ ‘G국 국방부의 최근 북한무기 구매 동향’ ‘A국 공군부대 현황’ 등 노출될 경우 외교 마찰과 첩보원이 노출되는 민감한 정보가 다수 포함됐다. 일본은 최근 한일 관계 경색의 기폭제가 됐던 대북제재 품목에 대한 정보 수집에도 열을 올렸다. 흑룡은 이를 넘겨주는 대가로 1920만 원을 챙겼다. 서로 협력하던 첩보원들끼리 속이고 동료의 정보를 몰래 파는 행태도 감지됐다. 북한 호위사령부 출신 탈북자 L 씨는 흑룡이 빼낸 정보를 대신 타이핑해주면서 저장한 파일을 자기 정보인 것처럼 일본 무관에게 팔았다.○ 흑룡, 중국산 고추 수업업자로 신분 위장 흑룡이 중국에 포섭된 이후 국내 첩보 활동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위장업체를 이용한 정황도 드러났다. 수사당국은 흑룡이 한글 문서로 세탁한 군사기밀을 전달받은 이메일 주소가 ‘오리엔탈○○’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오리엔탈○○은 국내에서 20여 년간 북한 전문가로 활동했던 D 씨가 2015년 설립한 중국산 농산물 수입업체다. 흑룡의 아들이 이 회사 이사였다. 검찰은 흑룡이 2017년 D 씨를 만나 일본 무관에게 누설하려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물가동향 등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고 털어놓은 사실을 확인했다. 기자가 등기부등본에 나온 해당 업체 주소지를 찾아가 보니 주거용 오피스텔에 간판도 없이 문이 닫혀 있었다. D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H 씨의 권유로 중국산 고추 사업을 해보려다가 잘 안 됐다. H 씨가 오리엔탈○○ 사장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실은 알았지만 만나서 뭘 했는지는 몰랐다”고 했다. 흑룡은 정보사 후배에게 군사기밀을 빼낼 때도 D 씨와 국정원 산하기관 연구원에게 줄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정보를 빼낸 것으로 알려졌다. 군이 보안 통제를 위해 만든 군사기밀 전용단말기도 내부자 공조로 손쉽게 뚫렸다. 흑룡은 정보사 후배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로 군사기밀 단말기 화면을 찍게 한 뒤 이를 수기로 옮겨 적고 휴대전화는 없애는 치밀함을 보였다. 중국에서 어학연수생으로 신분을 속인 채 활동하던 정보사 요원들도 우리 편인 줄 알았던 흑룡의 배신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첩보 전장에서 대사관 무관처럼 신분을 밝히고 활동하는 요원(화이트)들은 스파이 활동이 드러나도 면책특권에 따라 주재국의 처벌을 받지 않고 추방되는 데 그친다. 반면 신분을 감춘 요원(블랙)들은 곧장 제거 대상에 오른다. 다행히 국정원이 사전에 신분 노출 정황을 포착해 해당 요원들을 재빨리 귀국시킴으로써 참극은 막았지만 이들이 수년간 쌓아온 중국 내 휴민트(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정보수집)의 기반이 무너졌다. ○ “첩보전의 구멍은 국익의 치명상” 첩보전의 최전선에 있는 현장 요원들은 상대 정보기관의 공작 표적 1순위다. 흑금성은 1997년 이른바 북풍 사건에 휘말려 신분이 노출된 뒤 북한 노동당 작전부에 포섭됐다. 흑룡도 오랜 첩보활동의 꼬리가 잡혀 중국 정보기관에 포섭당했다. 군 퇴직 후 민간인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사각지대에 놓였기 때문이다. 흑룡 사건의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판결문에서 “해외에 파견된 정보관과 현지 대상자(정보를 주는 사람)가 주재국에 포섭돼 이중 스파이가 될 위험성이 있다”고 밝혔다. 정착한 한국과 가족이 남아 있는 북한과의 경계에 사는 탈북자 역시 생계를 위해 정보 장사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 이 경우 북한에 남은 가족과 인맥이 휴민트가 된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L 씨 측 증인으로 나온 북한 고위층 출신의 탈북자는 판사 앞에서 휴대전화 두 대를 꺼내 보이며 “이 중 하나로는 지금 당장 북한에 있는 지인과 통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L 씨가 일본에 판 ‘장마당 물가’ 등 기밀의 출처가 흑룡이 아닌 자신이라는 얘기였다. 흑룡이 처음 L 씨에게 접근한 것도 유력 탈북자의 북한 내 학력 위조를 고발한 L 씨의 정보력 때문이었다. 다행히 국정원과 검찰이 흑룡의 이중 스파이 전모를 밝혀냈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냉전시대의 ‘간첩’ 개념에 머물러 있는 현행 법체계에 허점이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국가기밀을 해외로 빼돌리더라도 간첩죄를 적용해 형사처벌하긴 어렵다.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한 행위만 간첩행위로 본다. 국가보안법상 간첩행위는 반국가단체, 즉 북한에만 적용된다.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이 아닌 모든 ‘외국’으로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경우 우방국인 한국에 군사기밀을 넘기더라도 간첩 혐의를 적용해 처벌한다. 산업 스파이도 ‘경제 간첩’으로 보고 엄하게 처벌한다. 우리 첩보원이 상대국에 포섭돼 수년간 이중 스파이로 활동하고 2, 3급 군사기밀이 군 내부에서 유출돼 외국으로 넘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재발돼선 안 된다. 정보당국의 대응능력을 더욱 높이고 부실한 법체계도 손봐야 한다. 첩보전에서 빈틈을 보이면 그로 인한 후폭풍은 국익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동진 사회부 기자 shine@donga.com}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 회사 김태한 대표(62)를 상대로 16일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송경호)는 김 대표를 비롯해 김동중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심모 상무를 상대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김 대표를 상대로 분식회계 가담 혐의를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을 앞두고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기준을 부당하게 변경해 장부상 회사 가치를 4조5000억 원가량 늘렸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앞서 5월 검찰이 김 대표를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는 증거인멸 교사 혐의만 적용했다. 당시 법원은 “김 대표의 증거인멸 교사 혐의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또 김 대표 등에게 수십억 원 상당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도 적용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이후 이사회의 승인 없이 별도의 항목을 만드는 방식으로 회삿돈을 가로챘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김동혁 hack@donga.com·신동진 기자}

주한 일본대사관 무관에게 군사기밀을 팔아넘긴 혐의로 지난해 재판에 넘겨진 국군정보사령부 간부가 수년 전 중국 당국에 포섭돼 ‘이중 스파이’로 활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정보원 등은 H 씨의 이중 스파이 활동을 추적 감시하는 과정에서 그와 군사기밀을 거래하던 일본 무관들의 조직적인 첩보 수집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검찰 등에 따르면 H 씨는 2002년 정보사를 퇴역한 뒤에도 북-중 접경지역에서 ‘흑룡’이란 암호명의 첩보원으로 활동했다. 2010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암살미수 사건의 중요 정보를 수집해 제공하는 등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 등과 협력관계를 이어왔다. 1984년부터 18년 동안 정보사에 근무한 H 씨는 국가안보에 기여한 공로로 퇴직 후 보국훈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정보기관에 신분이 탄로 나면서 H 씨의 첩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H 씨는 중국산 고추를 파는 ‘오리엔탈 ○○’라는 위장업체를 만들어 사업자로 신분을 세탁했다. 하지만 10여 년간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중국 당국에 꼬리가 밟혔다. H 씨는 한국에 돌아가 기밀을 빼내는 조건으로 중국 측에 포섭됐다. 정보사 후배를 통해 6차례에 걸쳐 빼낸 중국 파견 정보관 명단(2급 군사비밀)을 중국 정보기관에 넘겼다. H 씨와 정보사 후배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올해 1월 1심에서 각각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국정원은 H 씨의 통화 내용을 감청한 끝에 그가 접선하던 또 다른 외국 정보요원을 파악했다. 주한 일본대사관에 파견된 자위대 영관급 장교(무관) A 씨였다. 그는 2015∼2017년 북한 및 주변국 군사정보 등 기밀 54건을 넘겨받는 대가로 H 씨에게 1920만 원을 건넸다.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지난해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돼 본국으로 조기 귀국 조치됐다. 3년간 일본 무관과 H 씨의 접선 내용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탈북민 출신 북한 관련 단체 대표 L 씨의 ‘정보 장사’ 단서도 포착됐다. 북한 호위사령부 출신으로 한국에 정착한 뒤 북한 정세분석보고서를 내던 L 씨는 첩보업계 선배인 H 씨를 ‘선생님’으로 부르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컴퓨터 사용이 서툰 H 씨는 자신이 빼낸 군사기밀을 일본 무관에게 넘기기 위해 L 씨에게 타이핑해 한글 파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L 씨는 저장한 파일을 자신이 정보를 팔던 또 다른 일본 무관 B 씨에게 돈을 받고 넘겼다. 똑같은 기밀이 복수의 경로로 입수된 사실을 일본 측이 H 씨에게 통보하는 내용이 감시망에 걸려들었다. 400만 원을 받고 군사기밀 20건을 넘긴 혐의로 기소된 L 씨는 비공개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넘긴 ‘장마당 물가’ 등이 북한 현지 주민을 통해 얻은 정보라고 항변했다. L 씨는 또 검찰 수사 과정에서 자신에게 일본 무관을 소개해준 사람이 기무사 요원이며 한국의 동맹국인 일본에 북한 정보를 넘기는 것은 죄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김정훈 hun@donga.com·김예지·신동진 기자}

국군정보사령부 전 간부와 북한 관련 단체 대표가 빼돌린 북한 관련 군사기밀 74건이 주한 일본대사관에 파견된 자위대의 영관급 장교(무관) 2명에게 넘어간 사실이 15일 밝혀졌다. 검찰은 지난해 정보사 전 간부 등을 기소하면서 국가정보원 등과 협의해 일본 무관 1명은 빈협약에 따라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외교적 기피인물)’에 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외교부를 통해 일본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당국은 이를 수용해 해당 무관을 조기 귀국 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담 정도가 낮은 또 다른 무관은 한국 측 항의를 받고 지난달 출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에 따르면 귀국 조치된 일본 무관 등은 2013∼2017년 전 정보사 간부 H 씨와 탈북자 출신의 북한 관련 단체 대표 L 씨에게서 각각 54건과 20건씩 총 74건의 정보사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 일본 무관들은 이들에게 문건 제공 대가로 2320만 원을 지급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일본 무관에게 들어간 3급 기밀 문건의 제목은 ‘함남 평남 지역 미사일 무기 저장시설 위치 및 저장량’ ‘북한의 해외 미사일 기술자 채용’ ‘북한의 SLBM 잠수함 개발’ ‘대북제재 품목의 밀반입 동향’ 등이다. 올 1월 H 씨와 L 씨는 1심에서 각각 징역 4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며, 재판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판결문을 비공개했다. 항소심 선고는 이달 24일이다. 신동진 shine@donga.com·장관석 기자}

2017년 2월 국군정보사령부의 전직 공작팀장 H 씨는 알고 지내던 탈북민 출신 북한 관련 단체 대표 L 씨에게 자필로 쓴 문서를 건네며 타이핑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흘 전 H 씨가 정보사 후배를 통해 빼낸 ‘3급 군사비밀’ 문건을 직접 손으로 옮긴 자료였다. L 씨는 이 자료를 ‘거래서’라는 제목의 한글 파일로 만든 뒤 H 씨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다음 날 H 씨는 서울 종로구의 한 일식당에서 주한 일본대사관에 파견돼 근무 중이던 일본 자위대의 영관급 장교(무관)를 만나 두 번 ‘세탁’된 기밀 자료를 전달했다. 이 사실을 몰랐던 L 씨는 얼마 뒤 동일한 자료를 또 다른 일본대사관 무관에게 100만 원을 받고 넘겼다. 북한의 미사일 시설 위치 등의 대북 첩보와 북한 정권 내부 동향 등 민감한 우리 군 기밀 자료가 복수의 누설자를 통해 일본 측에 넘어간 것이다.○ 민감한 대북 첩보 일본에 통째 유출 15일 동아일보가 확인한 판결문에 따르면 H, L 씨가 일본에 유출한 74건의 기밀 자료에는 북한뿐 아니라 주변국의 군사, 외교, 경제 등 정보가 다수 포함돼 있다. 모두 정보사가 수집한 3급 군사비밀이다. 누설될 경우 정보의 출처와 수집 방법이 특정돼 외교 마찰이나 국가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일본대사관 무관들의 국내 군사기밀 수집 행위는 북한이 4, 5차 핵실험을 강행했던 2016년 이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돼 귀국 조치된 일본 무관 A 씨는 2015년 초부터 2017년까지 H 씨에게 접근해 군사기밀 54건을 넘겨받은 대가로 1920만 원을 건넸다. H 씨는 일본 무관에게 건넨 자료가 정보사의 군사기밀이라는 사실을 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누설된 군사기밀의 대부분은 북한 정권과 군 동향에 관한 것이었다. ‘북한 군수공업부의 해외 군사기술 입수 추진’ ‘북한 군단 통화일람표’ 등 북한군 전력에 관한 자료뿐 아니라 ‘북한의 소형 핵탄두 개발 관련 내용’ ‘북한 무수단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지속 이유’ 등 수집 정보를 기반으로 우리 군 정보 당국의 시각이 담긴 분석 자료도 있었다. 특히 ‘제3국 정보기관에서 분석한 A국 군대 현대화 동향’ ‘A국에서 분석한 북의 수중발사탄도미사일(ULBM) 개발 및 활용 가능성’ ‘G국 국방부의 최근 북한 무기 구매 동향’ 등 우리 군이 파악하고 있는 해외 정보기관의 첩보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우리 군의 정보력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민감한 정보였다. ‘고순도 텅스텐 및 알루미늄 합금 밀반입 동향’ ‘A국의 북한에 대한 유류 공급 동향’ 등 북한의 대북제재 품목 밀반입 현황에 대한 자료도 일본에 넘겨졌다.○ 동료 생사 달린 첩보원 명단 600만 원에 넘겨 군사기밀은 ‘상품’처럼 취급됐다. H 씨는 정보사 후배에게 “용돈 벌이나 하자”며 설득해 2, 3급 군사기밀 100여 건을 빼냈다. 군사기밀 조회 단말기(DITS)에서 확인 가능한 군사기밀을 개인 휴대전화로 촬영해 넘기는 방식이었다. H 씨 후배가 빼낸 자료 중에는 해외에서 신분을 속이고 정보를 수집하는 일명 ‘블랙’ 요원들의 명단과 활동 지역 정보도 있었다. 다행히 국내 정보 당국이 정보 유출 사실을 파악해 요원들을 신속히 피신시켰지만 하마터면 신변이 위태로울 뻔했다. H 씨는 동료의 생사가 달린 이 자료를 중국 정보기관에 넘겼고 후배에게 대가로 670만 원을 지급했다. L 씨는 H 씨를 통해 전달받은 군사기밀들을 자신이 대표로 있는 북한 관련 단체가 발행하는 ‘정세 분석 보고서’ 형태로 재가공해 일본에 팔았다. 일본 측은 L 씨와 ‘제공한 비밀자료를 SS, S급으로 나눠 평가해 그 대가를 차등 지급한다’는 내용의 비밀정보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신동진 shine@donga.com·김정훈 기자}
한보그룹 정태수 전 회장의 4남 정한근 전 부회장(54·수감 중)이 에콰도르 현지에서 회사 지분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을 준비한 사실이 12일 확인됐다. 한보그룹 일가의 해외 은닉 재산을 추적 중인 검찰은 이 회사의 지분이 환수 대상이라고 판단하고 추적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예세민)는 정 씨가 현지 변호인을 선임해 에콰도르 정부를 상대로 “과거 정부가 가져간 자원 개발 관련 회사 지분을 돌려 달라”며 소송을 준비한 사실을 파악했다. 정 씨의 변호인은 소송에서 미국의 한 회사가 에콰도르 과거 정부에 빼앗겼던 지분을 되찾은 판례를 근거로 지분 반환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정 씨가 에콰도르에서 운영한 회사의 내역과 각 회사의 자본금, 매출액 등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정 씨는 지난달 국내로 송환되기 전까지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서 유전개발업체 C사를 운영하다가 청산한 사실도 드러났다. C사는 조세 피난처로 유명한 케이맨제도에 본사가 있는 것으로 나와 검찰은 정 씨가 서류상 회사를 통해 회삿돈을 다른 나라로 빼돌렸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정 씨는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EAGC)의 회삿돈 322억 원을 횡령한 뒤 스위스은행의 차명계좌를 통해 빼돌린 혐의(횡령 및 국외재산도피)로 검찰 조사를 받던 1998년 해외로 도피했다. 검찰은 정 씨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대표적인 부촌인 오렌지카운티의 뉴포트비치에 수백만 달러를 들여 매입한 고급 주택의 자금 출처 등을 조사하고 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정 씨는 최근 검찰의 소환 조사 요구에 세 차례 불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혁 hack@donga.com·신동진 기자}

이금로 수원고검장(54·사법연수원 20기)이 10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 고검장은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59ㆍ23기)의 사법연수원 3년 선배다. 이 고검장은 이날 오후 검찰 내부망에 사직 인사 글을 올려 “검사로서 검찰 게시판에 처음 올리는 글이 사직 인사가 됐다”면서 “검찰이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늘 고민해 진정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검찰로 거듭나서 국민의 사랑을 받기 원한다”고 말했다. 이 고검장은 논어에 나오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국민의 믿음이 없으면 서지 못한다)’을 인용하며 검찰의 신뢰 회복을 강조했다. 그는 “급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검찰 역시 그 흐름을 도외시 하면 안 된다. 세상이 시속 100km로 달릴 때 검찰이 70km로 달린다해도 뒤쳐지게 된다”고 했다. 청주 신흥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나온 이 고검장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인천지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뒤 문재인 정부 첫 법무부 차관과 올해 개청한 수원고검의 초대 고검장으로 임명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관련 파이시티 비리 수사를 지휘했고 진경준 전 검사장의 ‘비상장 넥슨 주식 취득 의혹 사건’ 수사팀 특임검사를 지냈다. 이 고검장은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파이시티나 특임검사 수사같은 큰 사건보다도 억울하게 누명 쓴 피의자 대신 진범을 잡아 구속하고 퇴근길에 만난 음주운전 뺑소니범을 추격해 검거한 일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지난달 17일 윤 후보자 지명 이후 사의를 밝힌 검사장급 이상 간부는 이 고검장을 포함해 봉욱 대검 차장(54·19기), 송인택 울산지검장(56·21기), 김호철 대구고검장(52·20기), 박정식 서울고검장(58·20기), 정병하 대검 감찰본부장(59·18기) 등 6명이다.김동혁 기자 hack@donga.com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59·사법연수원 23기)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55·25기)의 친형인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이 경찰 수사를 받을 당시 변호사를 소개했다는 의혹에 대해 말을 바꿔 논란이 일고 있다. 윤 후보자는 9일 “윤 전 서장 사건 수사에 관여하지도, 변호사를 소개하지도 않았다”는 입장문을 냈다.○ “윤 후보자 아닌 윤 국장이 변호사 소개” 윤 후보자는 8일 오전 국회 인사청문회 때 윤 전 서장이 경찰 수사를 받던 2012년 변호사를 소개해줬냐는 의원의 질의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윤 후보자는 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윤 국장과 함께 근무하는 등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관련 질의를 수차례 했지만 윤 후보자는 “윤 전 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한 적도, 수사 과정에 관여한 사실도 없다”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가 길어지면서 9일 새벽 윤 후보자가 2012년 주간동아와의 통화에서 “내가 윤 전 서장에게 중수부에 근무했던 이남석 변호사(52·29기)를 소개해줬다”고 말하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야당 의원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따지자 윤 후보자는 “제가 그렇게 말을 하긴 한 모양이다” “변호사 선임이 안 됐기에 소개를 해준 것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변호사법상 금지된 수사기관 종사자의 변호사 ‘소개’는 선임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위법이 아니라는 취지의 해명이었다. 인사청문회가 정회한 사이 윤 후보자는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대화에서 “윤 국장이 이 변호사를 소개한 건데, 좀 보호하려고 저렇게 말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국장과 이 변호사는 9일 오전 공개 해명을 했다. 윤 국장은 “이 변호사는 내가 중수부 과장 할 때 수사팀 직속 부하였다. 소개는 내가 한 것이고 윤 후보자는 관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도 “2012년 윤 국장이 ‘윤 전 서장이 경찰 수사로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 수사 배경이 좀 의심스럽다’며 윤 서장을 소개해줬다. 사건을 선임한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윤 후보자 측은 9일 오후 5시경 A4 1장 분량의 입장문을 내 “청문회 종료 직전 제한된 시간 안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혼선을 빚었다”고 밝혔다. 윤 후보자 측은 또 “윤 국장의 형이 경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서 윤 국장에게 불필요한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기자에게 전화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설명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국민들에게 혼선을 드려 송구하고, 이번 기회를 성찰의 기회로 삼겠다”고도 했다. ○ 형사처벌 어렵고, 공소시효도 완성 검찰 내부에서는 윤 후보자가 윤 국장을 보호하려고 했던 배경으로 2012년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이 이철규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을 수사한 사건을 든다. 당시 대검 중수과장이었던 윤 국장이 이 청장을 수뢰 혐의로 구속 기소하자 한 달 뒤 경찰은 윤 전 서장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 등이 검찰에서 여러 차례 기각되자 검경 갈등이 불거졌다. 당시 윤 후보자가 윤 국장을 보호하기 위해 언론 인터뷰에 나섰다가 사실과 다른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만약 윤 후보자 측의 해명과 달리 실제 변호사를 소개해줬더라도 법적인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법에는 검사는 ‘직무상 관련 있는 사건’(37조)이나 ‘자신이 근무하는 기관에서 취급한 사건’(36조)에 대해 변호사를 소개 또는 알선해야만 처벌할 수 있다. 윤 전 서장 사건은 윤 후보자와 직무상 관련이 없고, 자신이 근무하는 기관 사건도 아니었다. 공소시효도 이미 완성된 상태다. 국회 인사청문회법에는 후보자의 위증을 처벌하는 조항이 없어 위증으로도 처벌하기 어렵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윤 후보자와 윤 국장, 이 변호사가 뒤늦게 말을 맞춘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신동진 shine@donga.com·김동혁·김정훈 기자}

보수야당은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변호사 소개 여부를 놓고 위증 논란이 불거진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를 “부격적 인사”로 규정하고 사퇴를 촉구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9일 윤 후보자에 대해 “인사청문회는 국민이 우롱당한 거짓말 잔치였다”면서 “청문보고서 채택은 커녕 거짓말로 국민을 속인 것에 책임져야 하며 후보직에서 즉각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한국당 소속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고 큰 빙산의 비리사건 단초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라며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도 “버티면 버틸수록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청와대와 여당은 “사퇴불가” 방침을 정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원내대변인은 “본인이 오해 있었던 점에 대해 사과를 했다”며 야당의 주장을 일축했고, 청와대 관계자는 “판단은 국회에서 할 것이며 특별한 입장은 없다”고 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윤 후보자 지명에 별 지장은 없다는 게 청와대 내부 기류”라고 전했다. 윤 후보자는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의 형에게 이남석 변호사를 소개해 준 적이 없다”는 청문회 발언과 다른 내용의 녹음 파일이 공개된 것에 대해 “7년 전 일을 설명하다 보니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변호사 선임이 안됐기에 소개를 해준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은 9일 “내가 이남석 변호사에게 부탁했다”고 말했고, 이 변호사도 “윤 국장이 소개해줬지만 말 상대를 해줬을 뿐, 형사변론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박정식 서울고검장(58·사법연수원 20기)이 8일 사의를 표명했다. 박 고검장은 이날 국회 인사청문회를 열린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59·23기)의 사법연수원 3년 선배로 검찰 직제상 윤 후보자가 맡아온 서울중앙지검장보다 서열이 앞선다. 박 고검장은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A2용지 2장의 사직인사 글에서 “일기일회라는 말처럼 검찰 가족과의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겠다. 조직을 떠나더라도 우리 검찰이 현재의 어려운 과제들을 슬기롭게 극복해 국민을 위한 검찰로 더욱 발전하고 성장하기를 바라겠다”고 전했다. 박 고검장은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수사권 조정 등 검찰이 직면한 어려운 상황 속에 속마음을 길게 쓰면 괜한 말이 나올까봐 짧게 썼다”면서 후배 검사들에게 외부 평가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는 맹자의 ‘불우지예 구전지훼(예견하지 못한 명예도 있고 완전함을 추구하다 당하는 비방도 있다)’를 인용하며 “너무 기죽을 필요 없다. 검찰이 사명감을 가지고 묵묵히 제 길을 가다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외풍에 흔들림없는 평상심을 강조했다. 이어 위계가 엄격한 검찰 조직을 견실하게 하는 문화로 자신의 화를 남에게 옮기지 말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뜻의 논어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 경북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 고검장은 1991년 서울지검 남부지청(현 서울남부지검) 검사로 임관했다. 1995년 대구 지하철 도시가스 폭발사고 당시 박 고검장은 대구지검 특수부, 초임이던 윤 후보자는 형사부 소속으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이후 박 고검장은 대검찰청 중수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서울중앙지검 3차장, 대검찰청 반부패부장 등 특별수사 요직을 두루 거쳤다. 퇴임식은 18일경 진행될 예정이다.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가 마무리되면 그동안 거취 표명을 미뤄왔던 윤 후보자의 선배 기수(19~22기)들의 용퇴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지난 달 17일 윤 후보자가 지명된 이후 사의를 밝힌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는 봉욱 대검 차장검사(54·19기)와 김호철 대구고검장(52·20기), 송인택 울산지검장(56·21기) 등을 포함해 모두 4명이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국가 전체적으로 부정부패 대응 능력의 총량이 지금보다 약화돼선 안 된다.” 8일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앞둔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59·사법연수원 23기·사진)는 5일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서를 통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윤 후보자가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돼 논의 중인 검찰 개혁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A4용지 1410쪽 분량의 답변서에서 “국가적 중대사건의 경우 등 검찰 직접 수사가 필요한 영역이 있다”면서 “부정부패 대응 능력이 현재보다 약화되지 않는다면, 다른 기관에서 특별 수사를 담당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윤 후보자는 “최종 결정은 국민과 국회의 권한이고, 공직자로서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형사 사법절차는 시행착오를 겪어 보고 고쳐도 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닌 점 등을 고려해 설계되도록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의 핵심 권한인 영장 청구권을 경찰에 부여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윤 후보자는 “강제 수사를 위한 영장 청구는 기소에 준하는 처분이므로 검사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고 답했다. 경찰의 1차 수사 종결권에 대해서도 “국민 권익과 직결된 형사 사법 시스템은 한 치의 시행착오도 있어서는 안 된다”며 우회적으로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2013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던 발언에 대해 윤 후보자는 “충성의 대상은 국가와 국민일 뿐이고 특정 개인의 이해나 의사에 따라 공직을 수행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부연 설명했다. 또 “법에 따라 일했을 뿐 항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른바 항명 파동으로 고검 검사로 좌천됐을 때 그만두지 않은 이유에 대해 윤 후보자는 “후배 검사들에게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버팀목이 되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윤 후보자는 ‘우리나라의 주적이 어디인가’라는 자유한국당 김도읍 의원의 질의에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북한이라고 생각한다”는 소신 발언을 했다. 옛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선동 사건에 대해 윤 후보자는 “대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 “헌법재판소 결정은 존중돼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이 의원의 내란선동 혐의를 유죄로 확정했고, 헌재는 통진당 해산을 명령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 간첩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냐’는 질의에는 “간첩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있다고 알고 있다. 국가안보 위협 활동은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적 성향을 묻는 질의에 윤 후보자는 “검사로서 법을 집행하는 업무의 특성상 급진적 변화보다는 사회의 점진적 변화를 중시한다는 입장”이라며 사실상 보수에 가깝다고 답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해선 “검사로서 유능하고 책임감이 강한 검사”라고 평가했다. 또 2016∼2017년 촛불집회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윤 후보자는 만약 검찰총장이 되면 사법연수원 19∼22기 선배 검사들이 용퇴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선 “검사들이 공직에서 쌓아온 식견과 경륜이 국민과 검찰에 쓰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자는 검찰총장이 되면 “퇴직 후엔 변호사로서 공익활동을 통해 사회에 봉사하겠다”고 약속했다.신동진 shine@donga.com·이지훈·황성호 기자}
검찰이 2007년 5월 재판 도중 해외로 도피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에콰도르에서 사망한 것으로 4일 최종 결론을 내렸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예세민)는 에콰도르 과야킬 관청에서 발급한 정 전 회장의 사망증명서가 진본이라는 사실을 에콰도르 정부로부터 확인받았다고 밝혔다. 사망증명서는 21년간의 해외도피 생활 끝에 지난달 22일 국내로 송환된 정 전 회장의 4남 정한근 전 한보그룹 부회장(54)이 검찰에 제출한 것이다. 검찰은 정태수 씨의 위조 여권상 신분인 고려인 ‘콘스탄틴 츠카이’의 사망 사실이 에콰도르 출입국관리소와 주민청 내부 시스템에 등록된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검찰은 또 정한근 씨의 노트북에서 정태수 씨의 사망 직전 사진과 입관 모습, 장례식을 촬영한 사진, 1분 분량의 장례식 동영상 등을 확보했다. 정한근 씨는 지난해 12월 1일 정태수 씨가 숨지기 전후로 국내에 거주 중인 정태수 씨의 3남 정보근 씨 등에게 아버지의 위독 소식을 알리는 문자메시지와 임종 직전 모습, 장례 사진 등을 보냈다. 정보근 씨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동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때 재계 서열 14위의 한보그룹을 이끌었던 정태수 씨는 위장 신분으로 에콰도르에서 살아 무연고자로 사망 처리됐다. 장례식장을 지킨 가족도 정한근 씨뿐이었다. 정보근 씨는 국세 체납을 이유로 출국이 금지된 상태다. 사망 다음 달 화장으로 치러진 장례비용 영수증에는 900달러(105만 원)가 들어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검찰은 또 정한근 씨가 에콰도르에서 출국할 때 가져온 수화물에서 정태수 씨가 직접 쓴 150쪽 분량의 자필 유고를 확보했다. 정태수 씨가 해외 도피 직후부터 2015년까지 작성한 것으로 주로 과거 사업하던 시절의 이야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유고에 재산 은닉의 단서가 있는지를 조사 중이다. 검찰은 최근 정한근 씨가 에콰도르에서 가져온 유골함을 유족들에게 넘겼다. 화장된 유골함 속 유해는 유전자 감식이 불가능하다. 정태수 씨가 사망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검찰은 정태수 씨의 체납 세금 2225억 원을 사실상 추징하기 어렵게 됐다. 체납 국세는 자녀가 재산 상속을 포기하면 받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근 씨는 644억 원, 정한근 씨는 293억 원의 세금을 체납한 상태다. 검찰은 정한근 씨가 에콰도르에서 법인을 운영한 정황을 파악하고 은닉 재산을 추적하고 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등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이 다음 달 10일 구속기한 만료로 풀려나 남은 재판은 불구속 상태로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3일 “양 전 대법원장의 추가 기소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올 2월 11일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의 1심 구속 기한은 최장 6개월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기한을 늘리기 위해서는 검찰이 별도 혐의로 추가 기소해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앞서 같은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0·수감 중)은 지난달 13일 구속기간이 만료될 예정이었지만 추가 기소된 혐의로 영장이 발부돼 구속 만료가 6개월 연장됐다. 검찰 관계자는 “구속 연장 등 재판 진행은 전적으로 재판부 소관”이라며 “구속 기간 때문에 수사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은 시작된 지 넉 달이 지났지만 아직 한 차례의 증인신문도 이뤄지지 않는 등 지지부진한 상태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이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에 대해 위법 수집과 원본 동일성을 문제 삼으며 동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검찰이 신청한 증인만 211명에 달해 1심 선고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비무장지대(DMZ)에 유일하게 민간인이 사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 5세대(5G) 이동통신 네트워크가 구축됐다. KT는 27일 경기 파주시 대성동 마을에서 ‘DMZ 대성동 5G 빌리지’ 개소식을 열고 마을 곳곳에 구축한 정보통신기술(ICT) 솔루션을 공개했다. 행사에는 황창규 KT 회장을 비롯해 대성동 마을주민, 대성동초등학교 학생과 교사. 유엔군사령부 장병 등 220여 명이 참석했다. 철조망 없이 400m의 숲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한 대성동 마을은 주민조차 출입증이 없으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유엔사 관할지역이다. 유엔사의 사전 허가 없이는 무선인터넷도 개통이 힘든 이곳에 KT는 2014년 기가 인터넷과 스마트 교육 기기를 갖춘 기가스쿨(대성동초등학교)을 구축하며 지원해 왔다. KT가 이번에 구축한 5G 빌리지는 주민 편의 향상에 초점을 맞췄다. 우선 비상벨과 방송기능을 갖춘 ‘스마트 발광다이오드(LED)’를 마을 전체 46가구에 설치해 긴급 상황 발생 시 리모컨으로 이장에게 상황을 알릴 수 있도록 했다. 마을회관에는 사물인터넷(IoT) 기반 ‘5G IoT 통합관제실’을 구축해 각 가정의 스마트 LED, 공기 질 측정기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어할 수 있는 시설을 갖췄다. 또 주민들의 영농 편의를 돕기 위해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스프링클러를 작동시키고 토양 상태를 확인해 물과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노지 스마트팜’도 구축했다. 이미 기가 인터넷이 지원되는 대성동초등학교에는 인공지능(AI) 코딩교육 과정과 혼합현실(MR) 스포츠 체험공간을 새로 만들었다. 개소식에 참석한 황 회장은 “세계적으로 비무장지대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5G 빌리지가 세계인에게 한반도 통일의 필요성과 대한민국 5G의 우수성을 알리는 거점이 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