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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24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규탄하는 성명 초안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회람되기 시작했다. 미국이 초안을 만들어 배포했고 이에 대한 각국의 의견을 묻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외교부는 26일 “안보리 이사국 간 협의가 진행 중이며 정부도 우방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건은 중국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다. 중국은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대한다’는 내용도 성명에 포함시키자고 요구해 논의를 무산시켰다. 미국은 또 ‘북한인권개선 전략 보고서’를 조만간 완성해 미 의회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직접 제재하는 근거가 됐던 북한인권 보고서의 후속으로 북한 노동자를 벌목공 등으로 고용해 김정은 정권의 외화벌이를 돕거나 탈북자를 북한으로 송환한 나라들에 대한 미 정부의 제재 방안 등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정은은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인 2018년 9월 9일까지 SLBM 발사관을 2, 3개 갖춘 신형 잠수함을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도쿄신문이 26일 보도했다. 김정은은 6월 22일 무수단 미사일 발사 직후 연회에서 이같이 지시하면서 만약 성공하면 군수공업부장인 이만건 당 부위원장의 동상을 세워준다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도쿄=서영아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한국과 일본의 민간 대화채널 ‘한일포럼’이 고(故)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1948∼2016) 전 아사히신문 주필에게 ‘제1회 한일포럼상’을 수여했다. 와카미야 전 주필은 한일포럼이 설립된 1993년부터 일본 측 간사를 맡는 등 한일 간 교류 협력에 공헌한 공로로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25일 도쿄에서 열린 시상식에는 고인의 부인 리에코 여사와 세 아들이 참석했다. 한일포럼은 양국 민간 차원의 대화와 교류 확대를 위해 매년 양국을 오가며 열리고 있다. 제24회를 맞은 올해 주제는 ‘새로운 한일관계 구축’으로 50여 명의 양국 전문가가 24∼26일 도쿄에서 활발한 논의를 펼쳤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24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양자회담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결정의 철회를 요구했다. 왕 부장은 이날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우리는 사드 문제를 거론했고,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서 결연히 반대 의사를 견지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 장관은 사드 한국 배치가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이며, 북핵 위협이라는 근본 원인이 사라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외교부는 회담 후 배포한 보도 자료에서 “양국은 사드 배치 문제에 관한 양측의 기본 입장을 교환하고, 이와 관련된 소통을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며 “윤 장관이 특정 사안으로 양국 관계 발전의 대국(大局·큰 국면)이 저해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왕 부장도 이날 양자회담에서 사드 배치 반대라는 중국의 방침을 한국 측에 분명하게 전달하면서도 협상을 통한 해결 가능성을 언급했다. 왕 부장은 기자들에게 “우리는 사드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한중 우호협력 관계에 전면적인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 한중이 협상을 진행해 쌍방이 타당한 해결 방안을 찾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8일 한미 양국이 사드 한국 배치를 공식 발표한 이후 한중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된 상황에서 만난 양국 외교 수장(首長)이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한편 한중일 외교장관들은 올해 일본이 개최할 차례인 한중일 정상회의의 연내 개최를 성사시키기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윤 장관은 이날 오후 한국의 도쿄특파원 간담회에서 “3국 의견을 잘 조율하면 4분기(10∼12월) 적절한 시점에 정상회담이 실현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3국 외교장관들은 또 다음 달 중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성공과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해서도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조숭호 기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4일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대해 “안전 보장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자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손상하는 용서하기 어려운 폭거”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아베 총리는 특히 북한의 SLBM이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을 80km 정도 침범한 해상에 떨어진 것과 관련해 “잠수함에서 발사된 북한 미사일이 우리나라의 방공식별구역에 떨어진 것은 처음”이라며 “이는 명백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으로 북한에 단호하게 항의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날 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일본대사관 채널을 통해 북한에 엄중히 항의했다고 외무성 관계자가 전했다. 3일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이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처음으로 떨어진 데 이어 24일 북한의 SLBM이 JADIZ 안에 떨어지자 일본 정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방위성 등 관련 부처 각료들이 참석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긴급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도 기자들에게 “우리나라 안전 보장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우려했다. 미 국방부는 북한의 SLBM 발사를 도발로 규정하고 강하게 규탄했다. 게리 로스 국방부 대변인은 “북한의 위협에 맞서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방어는 굳건하다”며 “미국의 우려를 유엔에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 외교장관은 이날 열린 3국 외교장관 회의에서 북한의 SLBM 발사가 ‘용인할 수 없는 도발’이라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북핵 불용, 북한의 추가 도발 억지, 안보리 결의의 충실한 이행 등에 대해 공동 인식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도 “중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반대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유엔 안보리 결의에 반(反)하는 행동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왕 부장이 공개적으로 북한을 거명하고 반대 입장을 밝히는 것은 흔치 않다고 외교부 고위 당국자가 전했다.도쿄=서영아 sya@donga.com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일본의 거대 유통업체 ‘이온’의 의류판매 과장인 마에노 리에 씨(37)는 매주 월요일엔 집에서 일한다. 이와테(巖手) 현 이치노세키(一關) 시에서 자녀 셋을 키우며 간호가 필요한 아버지도 근처에서 모시는 그에게 일주일에 하루의 재택근무는 여간 요긴한 게 아니다. 월요일엔 집에서 보고서를 쓰고 e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근무하는 것이다. 짬짬이 아버지를 돌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 그는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재택근무 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다면 일을 그만둬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에서도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재택근무 혁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대표 주자인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해 3대 메가 은행도 재택근무제를 도입한다. 도요타자동차는 입사 5년 차 이상 사무직과 기술직 사원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이달부터 근로방식 다양화 실험에 들어간다. 컴퓨터를 활용하는 사무직의 경우 업무는 온라인으로 처리하고 일주일에 한 번 2시간만 출근하면 된다. 회사는 정보 보안을 위해 단말기에 기록이 남지 않는 클라우드 기반 컴퓨터를 지급하기로 했다. 새 제도를 통해 업무 경험이 풍부한 중견 직원이 육아나 부모 간병 등을 이유로 회사를 떠나는 것을 막는 게 가장 큰 목표다. 8월 15일 현재 근무시간과 관리시스템을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끝냈고 노동조합과 업무 조건에 대한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 측은 제도가 궤도에 오르면 상시 수백 명이 참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온’의 도호쿠(東北) 지역 계열사인 이온슈퍼센터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직원들이 대거 회사를 떠나자 각 점포의 과장, 부점장은 물론이고 점장까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이 지역은 전국에서 인구 감소율이 가장 높았고, 직원이 육아나 간병을 위해 일을 그만두면 당장 점포 운영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일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온슈퍼센터는 점장 등 관리직에게 한 달에 최대 5일간 재택근무를 인정해준다. 약 300명의 대상 인원 중 30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점장, 과장 등의 상세한 업무 내용 일람표를 작성해 누가 빠져도 아래 직원이 메울 수 있게 했다. 상사의 직무 내용을 자세히 파악한 종업원들의 성장이 빨라졌고, 승진에 소극적이던 우수 여성 인력이 관리직에 도전하는 등 예기치 못한 효과도 얻었다. 은행권에서는 미쓰비시도쿄UFJ은행과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올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데 이어 미즈호은행도 연내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근로자는 일과 가정을 함께 지키고 기업은 좋은 인재를 확보해 생산성을 올리는 ‘윈윈 실험’이 한창인 셈이다. 일본 정부는 8월 개각에서 ‘일하는 방식 담당’ 장관을 신설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몰려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근로자가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가 일반화돼 있다. 벤처기업들은 직원들이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 속에 창의력과 집중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구글은 탄력근무제에 더해 근무시간의 20%를 하고 싶은 일에 쓰는 ‘20% 프로젝트’를 도입해 지메일, 구글어스와 같은 히트작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실리콘밸리의 근무시간 유연화 정책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창업 붐을 타고 몰려들었던 벤처기업의 젊은 개발자들이 이제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중장년이 됐고,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업체인 CB인사이츠가 지난해 말 4040명의 실리콘밸리 창업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63%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실리콘밸리의 여성 근로자 비율은 20, 30%로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낮지만 이들을 중심으로 유급휴가 및 유연근무제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탄력근무제는 미국 전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여론조사기관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미국 노동자 가운데 37%가 자신의 노동 계약에 탄력근무 조항이 포함됐다고 답했다. 1995년 조사에는 단 9%만 이에 답했지만 20년 만에 4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구인구직 업체인 플렉스잡스의 브리 레이놀즈 선임 분석가는 “탄력근무제는 근로자가 가정에 더 충실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스트레스도 줄여 준다”며 “불필요한 사내 정치에 소모하는 시간도 막을 수 있어 생산성이 증가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황인찬 기자}

‘전쟁 및 군대보유 금지’를 담은 일본 헌법 9조는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郞) 당시 일본 총리가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국군총사령부(GHQ) 사령관에게 제안한 것임을 뒷받침하는 사료가 발견됐다고 도쿄신문이 12일 보도했다. 새로 발견된 사료는 1958년 맥아더 전 사령관과 다카야나기 겐조(高柳賢三) 전 헌법조사회 회장 사이에 오간 편지다. 다카야나기 전 회장은 그해 12월 10일 맥아더 전 사령관에게 “새 헌법 초안을 만들 때 전쟁과 무력 보유를 금지하는 문안을 넣은 것은 시데하라 전 총리인가, 귀하인가”라는 질의를 보냈다. 이에 맥아더 전 사령관은 닷새 뒤 답장에서 “(시데하라 전 총리의 제안을 받고서) 놀랐다. 총리에게 마음으로부터 찬성이라고 말하자 총리는 명백하게 안도하는 표정을 보여 나를 감동시켰다”고 적었다. 이 편지는 호리오 데루히사(堀尾輝久) 도쿄대 명예교수가 일본 국회도서관이 보관 중인 자료에서 찾아낸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 개헌파들은 현행 헌법이 연합국사령부 치하에서 1주일 만에 강요에 의해 만들어졌으므로 자신들의 손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신문은 이번 편지가 이 같은 주장을 반박하는 자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한일 외교수장이 12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사업 방안을 의료나 복지 등에만 한정하는 방향으로 사실상 합의했다. 정부는 다음 주 ‘화해·치유재단’ 2차 이사회를 열고 본격적인 사업 방향과 자금 집행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12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과 전화통화를 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후속 조치와 대북 공조 등 양국 현안을 협의했다. 윤 장관이 기시다 외상과 통화한 것은 9일 한일 국장급 협의에 이은 2차 협의 성격이다. 기시다 외상은 이날 윤 장관과의 통화 뒤 기자들과 가진 회견에서 “국내 절차를 밟아 즉각 10억 엔을 출연할 것”이라며 “의료와 간병사업 등에 사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일본이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할 10억 엔(약 107억 원)의 용처와 시기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날 양국 장관이 이 돈을 의료나 복지 등에만 사용하기로 합의한 것은 일본 보수층에서 배상금 성격을 희석하기 위해 나오는 “한일 유학생 장학사업 등에도 써야 한다”는 주장을 배격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 국내 여론을 의식해 이런 상세한 내막은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기시다 외상은 “자금을 출연하면 일본 정부의 책임은 다한 게 된다”며 “(한국 측에) 소녀상 문제의 적절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으며 향후 한일 합의의 착실한 실시를 계속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혀 소녀상 문제를 계속 제기할 뜻임을 시사했다. 최근 일본은 중국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갈등 고조, 강경 우익 인사의 입각과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등으로 우경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날 한일 외교수장의 의견 교환으로 위안부 합의 이행은 8분 능선을 넘었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언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재단은 이르면 17일 2차 이사회를 열고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10억 엔 수혜 대상은 당초 알려진 것보다 많은 245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현 재단 이사장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238명과 대일항쟁위원회에서 피해자로 인정한 7명을 합쳐 245명을 대상으로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조숭호 shcho@donga.com / 도쿄=서영아 특파원}
15일 종전기념일(패전일)의 거취가 주목돼 온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신임 일본 방위상이 올해는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지 않게 됐다. 방위성은 12일 이나다 방위상이 13~16일 일정으로 현지에 파견된 자위대 시찰을 위해 아프리카 북동부 지부티를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지부티는 소말리아 아덴만 해적에 대처하는 자위대의 활동 거점이다. 앞서 중국 정부는 종전기념일을 앞두고 일본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게 해달라는 뜻을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고 아사히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중국은 특히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의 이름을 거론하며 우려를 표명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극우 성향으로 알려진 이나다 방위상은 행정개혁담당상으로 재직 중이던 2013년 4월 28일(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일), 8월 15일(패전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으며 이후 자민당 정조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참배를 반복했다. 중국 정부는 그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주요 인사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 사후에 항의해 왔으나 패전일을 앞두고 미리 우려를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신문은 중국이 다음 달 초 항저우(杭州)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자국 여론이 필요 이상으로 자극받는 상황을 피하고자 일본 정부에 미리 참배 자제를 요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각료라 해도 개인 자격으로 참배하는 것은 ‘신교(信敎)의 자유’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모두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등 우파 정치인들은 매년 종전기념일과 봄·가을 대제(제사)에 참배를 계속해 물의를 빚어 왔다. 이마무라 마사히로(今村雅弘) 신임 부흥상은 11일 이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아베 총리는 올해 종전기념일에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대신 공물료를 낼 방침이라고 지지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12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이후에는 주요 절기에 참배 대신 공물을 보내거나 공물료를 내 왔다. 이는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한국과 중국 등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일본이 이웃 국가들과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을 바라는 미국 정부도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 정권 이후 일본이 벌인 주요 전쟁 사망자를 신격화해 제사를 지내는 일본 최대 규모의 신사로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들의 위패가 보관돼 있어 군국주의를 조장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3일 개각 때 입각한 이마무라 마사히로(今村雅弘) 일본 부흥상이 11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했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개각 이후 처음 맞는 일본 종전기념일(8월 15일)에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여부에 관심이 쏠린 가운데 나흘 전인 이날 슬그머니 참배한 것이다. 이마무라 부흥상은 참배 동기에 대해 “대신(장관)이 돼서 보고를 겸해 새삼 참배했다”며 “우리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전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본전 앞에서 사이센(賽錢·참배하며 내는 돈)을 내고 일반 참가자들이 하는 방식으로 참배했다. NHK는 이마무라 부흥상이 1996년 중의원에 처음 당선된 이후 매년 두 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고 전했다. 일본의 일부 정치인은 매년 8월 15일과 봄·가을 제사 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해에도 현직 각료를 포함해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 66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번 개각으로 각료 19명 중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포함한 11명이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이다. 특히 극우 성향의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상은 2013년 각료 재직 중에도 참배한 전력이 있어 이번 종전기념일에 또다시 참배할지 주목된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동거녀와 공모해 동거녀의 딸(당시 11세)을 살해한 혐의로 20년간 옥살이를 한 재일한국인 박용호 씨(50)가 마침내 누명을 벗었다. 오사카(大阪)지방재판소는 10일 박 씨와 옛 동거녀 아오키 게이코 씨(靑木惠子·52)에 대한 재심에서 앞서 확정된 무기징역형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니시노 고이치(西野吾一) 재판장은 “화재는 자연 발화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당시 화재를 방화에 의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목을 조르는 등 공포심을 안겨주는 과도한 수사로 박씨가 허위 자백을 하게 된 것으로 의심된다”며 유죄 판결의 근거였던 두 사람의 자백은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판결에 대해 상소를 포기할 방침이다. 박 씨는 1995년 7월 아오키 씨와 공모해 집 차고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목욕 중이던 아오키 씨의 딸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생명보험금 1500만 엔(약 1억6200만 원)을 노렸다는 의심을 받았고 2006년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박 씨가 수사 단계에서 “차고에 가솔린 약 7.3L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고 자백한 것이 결정적 증거로 채택됐다. 박 씨 등은 그러나 2009년 “강압 수사로 자백을 강요당했으며 불을 지르지 않았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재현 실험 결과 박 씨의 최초 자백대로 방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연발화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자 오사카고등재판소가 지난해 10월 박 씨 등에 대한 석방과 재심 결정을 내렸다. 박 씨는 이날 무죄가 선고된 뒤 “21년간의 속박에서 해방됐다”며 “앞으로의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오키 씨는 국가 등을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 방위성이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도입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NHK가 10일 보도했다. NHK는 방위성이 북한 미사일 대응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 배치가 결정된 미국의 사드를 일본에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현재 일본에는 사드 레이더가 2곳에서 가동되고 있으나 요격 미사일은 배치돼 있지 않다. 지난 3일 북한이 쏜 노동미사일이 약 1000㎞를 날아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떨어진 것이 사드 배치 도입 검토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지 못해 해상배치형 요격미사일(SM3)을 탑재한 이지스함을 동해로 출동시키지 못했다. 방위성은 또 지대공 요격 미사일인 패트리엇(PAC-3)의 추가 구입 시기를 당초 일정보다 앞당기기 위해 PAC-3 추가 구입비용과 이를 경비하는 육상자위대의 장비 비용을 올해 2차 추경예산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NHK는 보도했다.도쿄=서영아특파원 sya@donga.com}

8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생전 퇴위 의향 표명으로 일본은 국가의 근간에 대한 전례 없는 논의를 시작하게 됐다. 본격 논의가 시작되면 왕실전범 개정 등 법 정비 문제부터 일본의 왕실과 국가의 관계까지 전후 70여 년간 쌓여 온 다양한 주제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일왕의 위상은 시대에 따라 변천해 왔다. 근대로 넘어가는 메이지(明治) 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패전에 이르는 60여 년 동안 일왕은 ‘살아 있는 신(現人神)’으로 추앙받으며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이 기간 일본은 정세 판단을 그르쳐 침략전쟁으로 치달았고 결국 패전국이 됐다. ‘덴노(天皇·천황)’라는 칭호가 정착된 것은 7세기 덴무(天武·재위 673∼686년) 일왕 때부터다. 덴무는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일왕의 지위를 절대화했다. 헤이안(平安) 시대(794∼1192)까지 일왕은 정치와 제사의 정점에 있다가 1192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가마쿠라(鎌倉) 막부를 열면서 권력에서 멀어졌다. 이후 일왕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전까지 교토(京都)에 머무는 실권 없는 군주였다. 260여 년을 이어간 도쿠가와(德川) 막부(1603∼1867) 말기, 막부를 대체할 권력의 구심점이 필요했던 전국의 유신론자들이 ‘존왕양이’(왕을 숭상하고 오랑캐를 물리침)를 내세우면서 메이지 유신이 단행됐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기초해 1889년 공포된 메이지 헌법(대일본제국헌법)은 제1조에서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고 규정하고 제4조에서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한다’고 밝혔다. 이 헌법 아래에서 쇼와(昭和·히로히토·재위 1926∼1989년) 일왕이 ‘대원수’로서 육·해군을 통수하며 태평양전쟁을 치렀다. 쇼와 일왕은 패전 후 연합군 통치기인 1946년 1월 1일 자신이 ‘신’이 아님을 천명하는, 이른바 ‘인간 선언’을 했다. 그해 11월 3일 공포된 현행 헌법은 일왕을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헌법 제1조)으로 규정했다. 일왕은 헌법이 정한 국사 행위(외국의 대사 접수, 각종 의식 주재 등) 말고는 국정에 관여할 수 없게 됐다. 쇼와 일왕은 몇 차례 퇴위를 언급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패전 직후에는 전쟁 책임을 지고 퇴위할 의향을 내비쳤으나 연합국군총사령부(GHQ)는 ‘천황제’를 유지하는 게 점령 정책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일본 정계도 쇼와 일왕의 전쟁 책임을 면제받고 ‘천황제’를 보존하기 위해 전쟁 포기를 명시한 현행 평화헌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아키히토는 현행 헌법 아래에서 처음 즉위한 일왕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왕실전범에 규정이 없는 생전 퇴위를 하려는 것은 일왕에게 권력이 집중됐던 메이지 시대 이후의 왕실 잔재를 청산하고 현대에 어울리는 왕실의 모습을 구현하려는 생각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 정부는 9월 전문가 회의를 열어 광범위한 의견 수렴부터 시작할 방침이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인 왕세자 나루히토(德仁·56)는 개혁적이고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아키히토(明仁)와 마찬가지로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인기와 존경을 받고 있다. 가쿠슈인(學習院)대에서 사학을 전공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 머턴대에서 템스 강 수운(水運)에 대해 공부했다. 1989년 할아버지 쇼와 일왕이 사망한 뒤 아버지가 왕으로 즉위하면서 왕세자가 됐다. 1993년 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 전직 외교관인 오와다 마사코(小和田雅子·53)와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일본인들의 인기를 누렸던 부부는 결혼 후 수년간 아기 소식이 없어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2001년에야 아이코(愛子·15) 공주를 낳았지만 아들 출산 압박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마사코 왕세자빈은 우울증의 일종인 ‘적응장애’ 진단을 받고 2003년 말부터 왕실 공무를 제대로 보지 못해 일본인들의 걱정을 사고 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아버지처럼 평화주의에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 55번째 생일을 맞은 지난해 기자회견에서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일본이 걸어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나루히토 왕세자의 왕위 계승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현재 왕위 계승 서열은 나루히토의 남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 왕자가 2순위, 아키시노노미야의 아들인 히사히토(悠仁·10) 왕손이 3순위다. 하지만 국민들 사이에서는 아이코 공주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달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일본인 80%가 여성 일왕 허용을 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비올라 연주로 2004년과 2007년에 정명훈을 비롯한 유명 연주자들과 협연하기도 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생전 퇴위 의향을 담은 대국민 메시지를 8일 오후 발표했다. 일왕의 생전 퇴위는 1817년 고카쿠(光格) 일왕 이후 약 200년 만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날 궁내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10분가량의 동영상에서 “차츰 진행되는 신체의 쇠약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처럼 몸과 마음을 다해 상징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생전에 물러나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그는 “상징 천황의 책무가 늘 끊기는 일 없이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것만을 생각한다”고 말해 자신이 일왕으로서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기 전에 퇴위하는 것이 좋다는 뜻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천황이 국민을 향해 발언한 것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어떤 것이 가능한지 확실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20여 초간 준비된 말을 하면서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곧바로 자리를 떠 속내가 불편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왕실전범 논의가 본격화되면 아베 총리가 노리는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가기 위한 개헌 논의는 제대로 진행되기가 어렵다. 일본 국민들은 아키히토 일왕의 결단을 반기는 분위기다. 이날 각 TV가 인터뷰한 시민들의 반응도 “그간 너무 고생 많으셨다”거나 “어려운 곳에서 늘 국민과 함께 하셨다. 감사를 전하고 싶다”며 눈물짓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생전 퇴위 과정은 간단치 않다. 우선 일본 왕실의 법도를 규정한 현행 ‘왕실전범(典範)’에는 생전 퇴위 규정이 없다. 전범을 개정하거나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 헌법상 일왕은 정치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생전 퇴위를 위한 준비 작업의 부담은 고스란히 아베 정권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왕실전범을 개정하려면 길게는 2∼3년이 걸려 아키히토 일왕에 한해 특별법을 만들어 생전 퇴위를 인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여성 일왕 허용 문제도 함께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총리를 따르는 개헌 세력들은 일왕의 생전 퇴위 논의가 개헌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개헌파가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에서 개헌 발의에 필요한 정족수(각각 3분의 2)를 확보해 시기를 저울질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내에서는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위를 포함한 왕위 계승 문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왕실제도의 기본법인 왕실전범에는 일왕의 양위를 규정한 절차가 없어 조기 퇴위를 하려면 관련 법 정비가 필요하다. 전범 개정 작업이 시작되면 개헌 논의는 상당 기간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아키히토 일왕이 평화헌법 개헌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목표로 한 개헌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가 상당히 부담스럽게 됐다. “호헌파인 아키히토 일왕의 노림수가 개헌 저지에 있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도 적잖이 들린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날 대국민 메시지에서도 “헌법의 정신에 따라”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특히 헌법을 고쳐 일왕의 지위를 ‘일본의 상징’에서 ‘국가원수(國家元首)’로 격상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일본회의 등 보수단체는 내부적으로 맹렬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일왕의 ‘국가원수’화는 집권 자민당이 2012년에 내놓은 헌법 개정안 초안에도 들어 있다. 일본 보수의 또 다른 뿌리인 신사(神社)계는 여성 일왕에 대해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생전 퇴위가 시행되면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일왕 자리를 이어받게 된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 덴노(天皇)계는 백제에서 건너간 도래인과 관련이 깊다는 설이 적지 않다. 아키히토(明仁) 일왕도 이를 의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2001년 12월 생일 기념 기자회견 때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라고 말해 일본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아키히토 일왕은 즉위 이래 미치코(美智子) 왕비와 함께 일본 국내는 물론이고 중국 사이판 필리핀 팔라우 등 과거 일본이 저지른 전쟁으로 피해를 본 나라를 찾아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의 여정’을 이어 왔다. 2005년 사이판에서는 한국인 전몰자 위령비인 한국평화기념탑도 참배했다. 한국과 관련된 문화 행사도 꼬박꼬박 챙겼다. 2007년에는 도쿄의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사망한 이수현 씨를 소재로 만든 영화를 관람했다. 지난달 4일에는 도쿄에서 열린 ‘미소 짓는 부처―두 개의 반가사유상’ 특별전을 관람했고, 31일에는 미치코 왕비가 암을 극복한 한국인 성악가 배재철의 공연장을 찾았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에 대해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하라”라고 말해 일본 열도가 뒤집어진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왕비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생전 퇴위 의향을 담은 대국민 메시지를 8일 오후 발표했다. 일왕의 생전 퇴위는 1817년 고카쿠(光格) 일왕 이후 약 200년 만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날 궁내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10여 분 가량의 동영상에서 “차츰 진행되는 신체의 쇠약을 생각할 때 지금까지처럼 몸과 마음을 다해 상징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생전에 물러나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그는 “상징 천황의 책무가 늘 끊기는 일 없이 안정적으로 이어지는 것만을 생각한다”고 말해 자신이 일왕으로서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기 전에 퇴위하는 것이 좋다는 뜻을 표명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 내에서는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위를 포함한 왕위 계승 문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일본 왕실제도의 기본법인 ‘황실전범(典範)’에는 일왕의 양위를 규정한 절차가 없어 조기 퇴위를 하려면 관련 법 정비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천황이 국민을 향해 발언한 것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어떤 것이 가능한지 확실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20여초 만에 준비된 말만 한 뒤 곧바로 자리를 떠 속내가 불편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왕실전범 논의가 본격화되면 아베 총리의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를 노리는 개헌 논의는 제대로 진행되기가 어렵게 된다.도쿄=서영아특파원 sya@donga.com}
일본 정부가 11월 아프리카 남수단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파견되는 육상자위대에 무기 사용을 확대하는 새 임무를 수행하게 한다는 방침을 굳혔다고 요미우리신문이 7일 보도했다. 이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면 일본 정부가 지난해 9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확대해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든 안보관련법이 실제 임무에 적용되는 첫 사례가 된다. 11월 남수단에 새로 파견되는 육상자위대 부대에 적용되는 법률은 ‘PKO협력법’으로 ‘출동 경호’와 ‘숙영지 공동 경호’ 임무가 추가로 주어진다. 이에 따라 이 부대는 주둔지에서 떨어진 지역에서 유엔 직원, 민간인, 타국 군 병사 등이 무장집단 등의 습격을 받았을 때 현장으로 이동해 이들을 구하는 이른바 출동 경호를 할 수 있게 된다. 또 숙영지에서 타국 군과 공동으로 경비 업무도 할 수 있게 된다. 임무 추가에 따라 무기 사용 범위도 기존보다 확대된다. 일본 정부는 3월 안보관련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안보관련법이 쟁점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새 임무 실시를 위한 훈련을 미뤄 왔다. 그러다 남수단이 내전 상황으로 치닫자 7월 11일 현지에 체류 중이던 대사관 관계자 등 자국민을 철수시키기 위해 항공자위대 수송기 3대를 급파했다. 당시 이들을 공항까지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 현지 육상자위대가 무장 경호를 해야 하느냐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었지만 민간인들은 자위대 수송기가 도착하기 전에 민간 전용기로 현지를 탈출했다. 육상자위대의 한 간부는 신문에 “육상자위대 부대가 새 임무를 실시하려면 적어도 6개월은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강경 우익 성향인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57·사진) 일본 방위상이 5일 일본의 핵무기 보유가 원천적으로 금지된 게 아니라고 말했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중일전쟁의 침략성을 부인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민감한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이나다 방위상은 5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핵무기 보유 문제에 관한 질문에 답하면서 “헌법상 (자신을 지키기 위한) 필요최소한도(의 실력)가 어떤 무엇인가에 한정이 없다”고 말했다. 핵무기 보유가 일본 헌법에 따라 애초에 금지된 것이 아니라는 말로 해석할 여지를 남긴 것이다. 그는 과거에 일본이 장래에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나다 방위상은 다만 “현시점에서 핵을 보유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검토할 필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나다 방위상의 발언은 일본 정가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다른 국가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까지 떨어질 정도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술이 날로 발전하는데도 중국은 북핵과 미사일에 팔짱을 끼고 있다. 이런 주변 상황은 일본 우익들의 자체 핵 보유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일본은 발전(發電) 목적으로 핵연료 플루토늄을 다량으로 보유해 작심하면 6000여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 여기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미군 주둔 비용을 올릴 목적으로 일본과 한국에 대해 미군 철수를 주장하면서 자체 방어를 주문하고 있다. 이나다 방위상의 발언 다음 날인 6일은 히로시마(廣島) 원폭투하 71주년 기념일이었다. 안팎에서 논란이 예상되자 아베 총리가 직접 진화에 나섰다. 아베 총리는 이날 히로시마 평화기념일 행사에 참석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유일한 전쟁 피폭국으로서 비핵 3원칙을 견지할 생각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 이나다 방위상의 발언은 정부의 방침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나다 방위상은 4일 취임 기자회견에서는 난징(南京) 대학살 때 일본군 장교들이 누가 먼저 100명의 목을 베는지 경쟁했다는 과거 보도에 관한 질문에 “그런 일이 실제로 없었다고 생각해 소송에 관여했다”며 과거 변호사 시절 활동에 관해 언급했다. 이튿날에는 같은 질문에 “변호사 시절의 활동이다. 방위상으로서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언급을 회피했지만 중국에서는 이미 반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그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방위를 위해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며 “앞으로 대화의 장을 만들어 나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며칠 후 일본의 8·15 패전기념일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어떻게 할지도 관심거리다. 이나다 방위상은 정계 입문 후 현직 각료 시절을 포함해 매년 이날에는 빠짐없이 신사에 참배해왔다. 한편 6일 단행된 차관급 인사에서는 와카미야 겐지(若宮健嗣) 방위 부대신이 유임됐다. 이는 안보 분야 경험이 부족한 이나다 방위상을 보좌하고 산적한 방위 정책의 안정을 꾀하기 위한 것이라고 일본 언론은 분석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중국과 일본의 영유권 분쟁 지역인 동중국해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인근에 연 3일째 중국 선박이 무더기로 접근하면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영유권 분쟁 지역에 중국의 관영 및 민간 선박이 잇따라 출몰하는 것은 자국의 영해라는 점을 주장하는 동시에 일본이 개입한 남중국해 문제를 뒤흔들겠다는 중국의 의도가 깔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교도통신은 7일 오전 10시경 일본 정부가 자국 영해로 규정한 센카쿠 열도 인근 수역에 중국 해경국 선박 2척이 진입했다고 보도했다. 또 일본 정부가 설정한 접속수역(12∼24해리 구간)에도 중국 해경국 선박 7척이 들어왔다. 앞서 6일에도 해경국 선박 7척과 중국 어선 약 230척이 떼를 지어 접속수역에 들어왔으며 5일에도 중국 해경국 선박 2척과 중국 어선 6척이 일본 정부가 영해로 규정한 수역에 접근했다. 중국 정부 소속의 선박과 어선이 동시에 같은 지역에 들어온 것은 이례적인 일이며 특히 230척이나 되는 중국 어선이 한꺼번에 일본 영해 주변에 등장한 것도 전례가 없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일본 정부는 중국 해경 선박의 센카쿠 열도 접근은 영해 침범이라며 매번 중국에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하지만 댜오위다오를 고유의 영토로 여기는 중국은 “당신네 선박이 우리나라 관할 해역을 침입한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중국 선박의 센카쿠 열도 접근이 잇따르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6일 총리관저에서 관계자들과 대책을 협의했다. 일본 정부는 우발적 충돌로 번질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요미우리신문은 중국이 동중국해 가스전에 설치한 시설물에 레이더를 설치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복수의 일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7일 보도했다. 중국이 가스전에 설치한 16개의 구조물 가운데 일본 정부가 ‘제12기’라고 부르는 시설물에 레이더와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것이 확인됐으며 방위성이 사진 분석 등을 통해 수상 레이더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주로 좁은 범위에서 수상 수색에 사용되는 레이더로 항공기 접근 등을 확인하는 능력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 외무성 간부는 신문에 “해상시설을 군사 거점으로 활용하는 첫걸음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중국의 움직임을 동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보고 경계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최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배척하는 판결을 내린 것을 일본이 지지한 것에 대해 중국이 반발해 센카쿠 열도 인근에 반복적으로 선박을 보낸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과 일본은 각기 동중국해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현재는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나 미국 대선전처럼 앞으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지향하며 민주주의가 한계에 부닥치는 사례가 여기저기서 나올 것입니다.” 일본 도쿄(東京)의 사무실에서 최근 만난 세계적 경영사상가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73)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 총장은 앉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많은 나라에서 포퓰리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민주주의는 유권자에 대한 교육을 전제로 하는데 교육 없이 투표만 하면 가장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선거에서 이기게 된다”고 말했다. 오마에 총장은 “나는 저널리즘의 쇠퇴가 최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멋대로 하려는 정부, 정치인을 엄격하게 검증하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을 봐도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말하는 것에는 진실성이 전혀 없는데 그걸 제대로 보도하지 않습니다. 뉴욕타임스 등에서 트럼프를 비판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됩니다. 그가 얼마나 거짓말쟁이인지 낱낱이 밝혀야 합니다. 트럼프는 이민을 막자고 하는데 지금까지 본인의 배우자 3명 중 2명이 이민자 아닌가. 적당히 좀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민주당 경선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공립대 등록금 면제 등 재원 마련 대책이 없는 무책임한 공약을 내놨습니다.” 미국 대선에 대해 일본이나 한국 등 주변국 최대의 관심은 민주 공화 양당 모두 보호무역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전문가인 그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세계 자유무역 체제의 미래로 이어졌다. ―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끝났다고 본다. 트럼프는 당선되면 TPP를 탈퇴하겠다고 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다시 협상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협정 내용을 뜯어보면 재협상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회원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들이 서명해야 발효가 되는데, 이는 미국(60%)과 일본(18%)이 모두 동의하지 않으면 발효될 수 없다는 뜻이다. 미국만 반대해도 안 된다. 일본은 미국이 하지 않으면 먼저 나서지 않을 것이다.” ― 미국이 앞장서 보호무역을 주창하면 일본도 피해가 크지 않을까. “40년 이상 비즈니스 세계에 있으면서 언제나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을 봤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라고 해도 반드시 피해 나갈 길이 있다. 미일 무역전쟁 때 미국은 TV, 자동차, 철강 등 각종 상품의 관세율을 높이고 수량 제한(쿼터)을 정해 수출량을 줄이도록 압박했다. 플라자 합의 등으로 엔화 강세를 유도하면서 한때 달러당 360엔이던 환율이 80엔으로 떨어졌다. 달러로 받는 무역 대금이 4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그래도 현지 생산과 혁신으로 살아남았다.” ― 한국의 경우 무역 의존도가 높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걱정하는 건 당연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그걸 극복하면서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나라에서도 사업을 한다는 결기를 가진 경영자만이 글로벌 기업을 만들 수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1980년대 초 9000달러에 팔던 자동차 ‘코롤라’의 가격을 1980년대 말에는 3만5000달러로 올렸다. 그래도 혁신을 더해 판매량을 유지했다. 현지 생산도 확대해 지금은 세계 51곳의 공장 물량을 조정하며 환율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00원 내려간다고 큰일 났다고 할 정도라면 글로벌 기업이 되기 어렵다. 한국 기업은 아직 거점을 한국에 두고 부품을 중국에서 만들어 부산에서 수출하는 모델이 많다. 이는 글로벌화의 첫 단계에 불과하다. 다음 단계로 가려면 40대 시절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같은 기업가가 50명은 있어야 한다.” 그는 ‘경제가 성공하면 원화 가치가 높아져 점점 더 괴로워진다’는 ‘중진국의 딜레마’ 얘기를 꺼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정말 무역으로 살아남고 싶다면 원화 가치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성공의 대가이고 이를 극복하려면 혁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국내에서 생산하는 물량만큼의 생산기지를 해외에서 구축할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이 계속 나와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는 쓴소리도 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관련해 오마에 총장은 “선출된 이들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간접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한 나라에서 갑자기 국민투표를 하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며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국민투표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스위스처럼 직접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중요하지 않은 것도 반드시 투표로 정한다. 커뮤니티 안에서 교사를 결정하는 것도 투표로 정한다. 그리고 국민이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한다. 최근 (매월 약 300만 원을 준다는) 기본소득 방안이 부결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영국이 EU 이탈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영국인이 얼마나 간단히 과거를 잊는지 놀랐다. EU가 출범하기 전 영국은 실업률이 17%에 달하는 비참한 상황이었다. 경영자들은 패배주의에 빠져 있었고 미국, 일본과 경쟁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영국은 대단하다. 경제가 번영하고 실업률은 40년 동안 가장 낮은 수준이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가장 좋은 상태다. 그것은 EU에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EU를 이탈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한국에 ‘헬 코리아’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영국이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헬 잉글랜드’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 EU를 떠나겠다는 것이 영국 국민의 선택이었는데…. “많은 영국 국민이 지금 후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이 EU를 떠나면 먼저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선언할 것이다. 2년 전 스코틀랜드 독립투표에서는 아슬아슬하게 ‘잔류’를 선택한 쪽이 더 많았다. 이유 중 하나는 독립 후 EU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EU에 가입하려면 28개 회원국이 모두 찬성해야 하는데 영국은 독립한 스코틀랜드의 가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그게 억지력으로 작용했다. 이번에 영국이 나가 버리면 반대할 나라가 없어지기 때문에 스코틀랜드 독립파가 이길 것이다. 그러면 웨일스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로 통합하려는 이들과 영국에 남으려는 이들이 대립하면서 다시 내전 상태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라도 그레이트브리튼 자체가 붕괴할 가능성이 100%다. 이런 상황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이다.” ― 왜 영국이 EU 이탈을 선택했다고 보나. “EU가 지나치게 세부적인 것까지 결정하려 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오후 9시까지는 들어오라고 하거나, 화장을 그만두라고 하면 듣기 싫은 것과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간섭하니 자유롭게 해 달라, (영국 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 전 대표는 그 점을 강조했다. 또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감정의 문제도 있었다. 영국은 일자리가 많고 영어를 쓰기 때문에 헝가리, 루마니아 등에서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현재 영국의 실업률이 5%인 것을 보면 일자리를 빼앗겼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반면 브렉시트 반대파는 논의 진행 방식이 너무 서툴렀다. 영국 자체가 분열되고 붕괴할 수 있다는 얘기 대신 이민·난민의 손해가 어느 정도라든가, 시티오브런던(런던의 금융 중심지)의 금융회사들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갈 거라든가 하는 얘기뿐이었다.” ― 일본 기업 1380곳이 영국에 진출해 있다. 영국이 유럽 진출의 거점이 된 이유가 있나. “40년 넘게 전략 컨설팅을 하며 일본 기업의 유럽 진출을 조언해 왔다. 당초 일본 기업들은 유럽에는 국가별로 투자를 했다. 그런데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투자는 모두 실패했다. 근로자들의 작업 태도가 좋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정부가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움직이고 회사 경영에 간섭을 했다. 독일은 나뉘어 있을 때는 시장이 작았다. 지금은 실업률이 낮아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해도 모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영국이 EU에 들어간 후 EU 전체라는 거대 시장에 대한 투자를 영국에 집중했다. 영어를 쓰니 사원 교육과 관리가 쉽다는 이점도 있었다. 영국도 처음에는 공장의 불량률이 6, 7%에 달하는 등 여건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근로자들을 일본에 불러 공장 연수를 시키는 등 교육을 해 약 5년 만에 일본 공장과 같은 수준의 품질 관리를 할 수 있게 됐다. 닛산의 영국 공장은 세계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지금은 일본 전자업계가 어렵지만 예전에는 소니, 파나소닉 등도 영국 웨일스에 대규모 공장을 지어 성공을 거뒀다.” 마지막으로 오마에 총장은 EU를 이탈한 영국의 미래에 대해 “지금만큼 좋은 조건을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은 지금 EU에서 좋은 점만 취하고 있어요. EU에 가입해 있지만 통화는 파운드를 사용합니다. 국내총생산(GDP)은 프랑스보다 높지만 분담금은 프랑스보다 적게 냅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미국 쪽으로 접근하면서 응석을 부리지요. 영국은 원래부터 EU와 친한 사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나도 예전에 책에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 해협이 대서양보다 넓다’는 표현을 쓴 적도 있습니다.” ○ 오마에 겐이치 총장은…1943년 일본 후쿠오카 현 출생. 일본 와세다대, 도쿄공업대 원자핵공학 석사를 거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원자력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 입사해 일본지사장,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을 지내며 글로벌 기업 및 역내 주요 국가와 도시의 자문역으로 활동해 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1994년 그를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 등과 함께 세계 5대 ‘경영 구루(사상가)’로 선정했다. 2010년 인터넷으로 경영학 교육을 하는 비즈니스브레이크스루대를 설립해 인재 양성에 힘 쏟고 있다. 도쿄=장원재 peacechaos@donga.com·서영아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