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조선 말기 프랑스로 건너간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직지)을 국내에서도 볼 길이 열릴까. 12일(현지 시간)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를 통해 50년 만에 직지를 일반에 공개한 프랑스국립도서관의 로랑스 앙젤 관장은 11일 직지의 한국 전시 가능성에 대해 “현재로서는 말씀드릴 게 없다”며 확답을 피했다. 다만 직지를 고해상도로 디지털화해 대중과 공유해 왔다고 덧붙였다. 직지는 프랑스가 병인양요 때 약탈했다가 2011년 영구대여 형식으로 사실상 한국에 반환한 ‘외규장각 의궤’와 달리 약탈 문화재가 아니다. 고문헌 수집가로 조선 말기 주한 대리공사를 지낸 프랑스인 콜랭 드 플랑시(1853∼1922)가 구매해 가져간 유물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1970년 채택된 유네스코 협약은 전쟁과 식민 지배 등을 통해 약탈되거나 도난된 문화재를 원소장처에 돌려주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직지는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직지의 국내 첫 전시를 추진했으나 끝내 무산됐다. 당시 프랑스국립도서관은 직지 대여 조건으로 한국이 해외 소재 한국 문화재를 들여가 전시할 때 압류나 몰수를 금하는 ‘한시적 압류 면제법’(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정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는 한국 절도범들이 일본 관음사에서 훔쳐온 금동불의 소유권을 충남 서산 부석사에 넘기라는 1심 판결이 2017년 나온 여파로 해외 주요 박물관들이 한국 문화재의 대여를 기피하던 상황이었다. 법무부는 이 법안이 사법부의 압류 면제 결정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국회에 심사 보류를 요청했고, 결국 법안은 폐기됐다.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외 소재 문화재가 약 23만 점에 달하는 우리 상황을 고려하면 ‘한시적 압류 면제법’ 제정으로 얻을 실익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법안의 존재만으로 국외 소재 한국 문화재를 대여 전시할 수 있는 협상력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이전 법안의 한계를 보완해 새로 입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 법안이 제정되면 약탈·도난 문화재를 점유국 소유로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불법 반출 문화재나 소유권 분쟁 중인 문화재는 압류 면제에서 제외하면 된다는 반론도 있다. 직지의 한국 전시를 위해서는 양국 기관의 교류가 우선이라는 의견이 많다. 김지현 건국대 세계문화유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법 제정도 필요하지만 직지 대여 전시 논의가 진전되기 위해서는 양국 기관의 우호적 교류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11일 프랑스국립도서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프랑스국립도서관 소장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학술조사와 연구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프랑스국립도서관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등 한국 문화유산 2000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이제 한국 문화가 프랑스에서 모두 다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프랑스국립도서관(BnF)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를 실물로 50년 만에 공개한 11일(현지 시간) BnF 전시장에서 만난 피에르 드비즈목 프랑스연구소 직원은 “난 이미 직지가 구텐베르크 성경에 앞선 가장 오래된 활자임을 알고 있지만 이를 모르는 유럽인들이 많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BnF가 12일부터 7월 16일까지 직지를 공개하는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특별전에 하루 앞서 진행한 언론 및 VIP 초청 전시에서 대학 교수, 연구원 등 100여 명은 오후 6시 반이 넘은 시각에도 폭우를 뚫고 와 긴 줄을 서며 기대감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BnF가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직지 하권을 일반 대중에 공개한 것은 1973년 ‘동양의 보물’ 전시회 이후 처음이다. 관람객들은 주로 유럽인들에게 익숙한 구텐베르크 성경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보다 앞선 동양의 직지에 대한 이해도도 꽤 높았다. 전시장 입장을 기다리던 레미 지메네즈 투르대 교수는 “예전에 인쇄역사 관련 책을 읽으면서 직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본이라고 익히 알고 있는데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직지가 어떤 모습일지 매우 궁금하다. 직지는 (인쇄사에서) 중요한 국면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이날 한국의 문화재청과 이번 특별전 지원 및 학술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로랑스 앙젤 BnF 관장은 “인쇄술 발달의 역사는 ‘유럽’이 아닌 ‘극동’에서 시작된 점을 어떻게 강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직지가 1952년 BnF 품에 들어온 이후부터 보편적인 유산을 보존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인쇄를 통해 모든 지식이 전파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매우 중요해요.” 1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프랑스국립도서관(BnF)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장 앞에서 줄을 서고 있던 다니엘 골리넬리 씨는 인류 지식 전파의 시발점이 된 인쇄술의 기원을 접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인쇄매체가 디지털 콘텐츠에 밀려 힘을 잃고 있는 시대에 오히려 인쇄물의 영향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교육자들은 젊은 세대가 이번 전시를 통해 인쇄술과 인쇄물의 중요성을 널리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마리 클레르 토맹 프랑스16세기문학연구회 회장은 “학교에서 프랑스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치고 있어서 인쇄술에 관심이 많다”면서 “내 학생들이 전시를 보도록 초청하고 싶다”고 했다. 레미 지메네즈 프랑스 투르대 교수도 “난 청년들이 여전히 인쇄된 책을 많이 읽을 것이라고 본다”며 인쇄매체의 미래를 낙관했다.● “직지에 인쇄술의 시행착오와 실험 드러나” 이번 전시에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은 인쇄술의 발명과 역사를 짚는 첫머리를 장식했다. 관람객들도 한국의 직지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직지는 고려 말 승려 백운 화상(1298~1374)이 고승들의 어록을 가려 엮은 책이다. 1377년(고려 우왕 3년) 충북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됐다. 유럽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구텐베르크 성경(1455년)보다 무려 78년을 앞선다. 원래 상·하 2권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현재 하권만 BnF에 남았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50년 만에 수장고 밖에 나온 직지 하권은 전시장 정중앙에 유리관으로 덮인 채 관람객을 맞았다. 조금이라도 손대면 으스러질 듯 얇고 낡은 직지는 전반적으로 얼룩덜룩하고 누렇게 변색돼 세월의 흔적을 보여줬다. 활자들은 대부분 선명했으나 어떤 활자는 너무 검게 변색되고 일부는 거품이 낀 채 인쇄된 듯 흐렸다. 인쇄가 잘 안 돼 붓으로 다시 쓰거나 금속이 아닌 나무 활자로 찍힌 부분도 있었다. 한문 옆에 한자로 우리말을 표기하는 구결(口訣)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카롤린 브랭 BnF 큐레이터는 “인쇄기술의 시행착오, 실험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흥미로운 부분이라 이 장을 펼쳐 전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4만5000권 동양고서 중 특별 관리” 직지는 1950년 BnF에 기증된 뒤 서고에 잠들어 있다가 1972년 이 도서관 사서였던 박병선 박사(1928~2011)가 재발견했다. 한국 취재진이 직지를 향해 조명을 켠 채 촬영하자 BnF 관계자들은 “조명을 줄여달라” “직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경고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만큼 희귀한 유물인 직지는 특별 관리를 받고 있었다. BnF는 직지를 펼칠 때 가해지는 압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시할 때 유리관 뒷부분을 열어뒀다. 동양 고문서 부서를 총괄하는 로랑 에리셰 BnF 책임관은 “BnF에는 100개가 넘는 언어로 쓰인 고서를 수십만 권 보관하고 있다. 동양 고서만 약 4만5000권인데, 직지는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소개했다. 직지는 잠금장치가 설치된 곳에 특별 보관되며 보관 중엔 흠이 생기지 않도록 기온 등이 통제된다. 문화재청 산하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김정희 이사장은 “우린 직지를 학교에서 다들 배웠지만 실제로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며 “BnF와 협업하고 좋은 신뢰를 쌓는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볼 소중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지난주 방중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이례적으로 베이징과 광저우에서 두 차례 회동하는 등 사흘간 ‘극진한 대접’을 받고 돌아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사진)이 “유럽은 미중 갈등에 휘말리지 말고 미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중 갈등이 산업, 안보 등 전방위로 첨예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은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 독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9일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거듭 강조했다. 유럽이 ‘제3의 초강대국’이 되기 위해 자율적으로 힘을 키워야 한다는 마크롱 대통령 지론(持論)으로, 프랑스가 그 주도권을 잡겠다는 취지로 보인다고 폴리티코는 해석했다. 그는 “유럽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우리 일도 아닌데 (미중 갈등으로 인한) 위기에 휘말려 전략적 자율성을 갖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과 중국에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패닉(공황상태)에 빠진 우리(유럽)에게 역설적인 것은 ‘우리는 미국의 추종자’라고 믿는 것”이라며 “유럽인은 ‘대만 관련 (위기) 고조가 우리에게 이익인가’란 질문에 답해야 하는데 답은 ‘아니요’다”라고 말했다. 이어 “두 초강대국 사이 긴장이 고조되면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시간이나 자원이 없을 것이며 우린 속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이 무기와 에너지 분야에서 미국 의존도가 높아졌다며 유럽 방위산업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국제경제에서 ‘치외법권’을 누리는 미국 달러에 대한 의존도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동맹국 감청 정보가 담긴 미국 정보기관 기밀문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이스라엘 프랑스 같은 미 우방국들은 “출처가 불분명하다”며 문건 내용을 부인했다. 전황이 노출된 우크라이나는 군사 계획을 변경하고 정보 유출 단속에 나섰다. 9일 카타르 국영 알자지라방송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날 성명을 내고 유출된 기밀문건 가운데 정보기관 모사드가 정부 ‘사법부 무력화’ 조치에 대한 반대 시위를 종용했다는 내용에 “거짓되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앞서 외신은 유출 문건 중 ‘최고 기밀’ 문서에 “올 2월 모사드 고위 지도자들이 이스라엘 정부를 비난하는 행동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등 정부의 사법 조정 입법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신호정보(SIGINT·시긴트)로 파악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시긴트는 통화나 전자 메시지를 도·감청해 수집한 정보를 말한다. 프랑스도 ‘프랑스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견됐다’는 문건 내용을 반박했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국방장관은 일간 르몽드에 “우크라이나 작전에 연관된 프랑스군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 유출 문건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프랑스와 미국 영국 라트비아의 특수작전 요원 100명 미만 파견대가 우크라이나에서 활동 중임을 시사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다른 문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감청된 정황이 나타난 우크라이나는 군사 계획을 바꾸고 정보 유출 단속에 나섰다고 미 CNN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CNN은 젤렌스키 대통령 측근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놀라운 일은 아니라면서도 문건 유출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기밀정보 공유 동맹체 ‘파이브 아이스(다섯 개의 눈·Five eyes)’를 구성한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이번 기밀 유출로 자국 정보원 노출 같은 정보자산에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국가 당국자는 CNN에 “우리가 수집한 정보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유출) 문서들을 자세히 분석 중”이라며 “미국이 며칠 내로 문건 유출로 인한 피해 분석 결과를 공유할 것으로 보이지만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한국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의 대화를 감청한 정황이 담긴 문건 유출에 “한국이 한미 관계에서 불평등한 지위에 있는 탓”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관영 환추시보는 10일 사설 ‘한국은 감시·통제 당하는 느낌을 즐길 리 없다’에서 “한국은 미국 첩보·감시 활동의 중대 피해 지역”이라며 “한국 자주성과 권리를 미국이 뼛속 깊이 불신하고 존중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썼다. 그러면서 ‘나쁜 사람 앞잡이가 돼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의 ‘위호작창(爲虎作倀)’이란 표현을 썼다. 한국은 미국에 동조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사설은 또 이번 사태를 “파이브 아이스의 악몽”이라고 한 미국 당국자의 말을 인용하며 “비밀 누설은 미 동맹체제에 대한 신뢰의 균열을 더욱 확대했다”고 분석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삐삐삐….” 10일 경기 파주시의 알코올 전용 감지 센서 장비 생산업체 센텍코리아.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가 부착된 차량에 올라 장치에 숨을 불어넣자 요란한 경고음이 귓가를 때렸다. 차량 밖에서도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동 버튼을 눌렀지만 엔진은 요지부동이었다. 음주 측정기에 ‘FAIL(실패)’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떴다. 500cc 맥주 두 잔을 마시고 체험용 차량에 올랐던 기자는 실제 음주운전이 적발된 것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이 같은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는 국내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 등 교통 선진국에선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음주운전 범죄 전력이 있거나 안전운전이 각별히 요구되는 통학버스 및 화물차 등 운전자에게 장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식이다.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면 시동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음주운전 재발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따르면 미국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3명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2020년 한 해에만 음주운전 사고로 1만1654명이 사망했다. 45분마다 1명꼴로 사망자가 생기는 셈이다. 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국 36개 주에서 법률로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 전역에 35만 개 이상의 시동잠금장치가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0년 전(13만3000개)의 약 3배로 늘어난 것이다. 1986년 미국 최초로 시동잠금장치를 도입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17년 음주운전자 차량에 시동잠금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뉴욕주에선 혈중알코올농도 0.08%를 넘기면 사고 유무와 상관없이 최소 1년 동안 시동잠금장치를 설치하도록 했다. 미 권력 서열 3위였던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의 남편 폴 펠로시도 지난해 5월 음주운전이 적발돼 법원으로부터 벌금 1700달러(약 220만 원)와 함께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설치 명령을 받았다. 음주운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다 보니 예방 효과도 뛰어나다. 미국은 시동잠금장치를 엄격히 요구하면서 음주운전 사망자가 약 19% 감소했다. 음주운전 적발 후 시동잠금장치를 설치한 미국 캔자스주의 50대 남성 마이클(가명) 씨는 “술을 한 잔이라도 마시면 시동을 걸 수 없는 셈”이라며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때마다 내가 했던 선택이 얼마나 끔찍했던 일인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교통사고 사망자 4명 중 1명이 음주운전 관련 사망자인 유럽연합(EU)도 시동잠금장치 도입에 적극적이다. 유럽교통안전위원회(ETSC)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리투아니아, 폴란드, 스웨덴 등에선 음주운전 유죄 판결을 받으면 운전 금지와 시동잠금장치 설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특히 EU는 지난해 7월부터 출시되는 모든 차량에 시동잠금장치를 표준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안토니오 아베노소 ETSC 사무총장은 “심리 상담, 모니터링 및 피드백과 결합하면 시동잠금장치는 생명을 구하고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동맹국 감청 정보가 담긴 미국 정보기관 기밀문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이스라엘 프랑스 같은 미 우방국들은 “출처가 불분명하다”며 문건 내용을 부인했다. 전황이 노출된 우크라이나는 군사 계획을 변경하고 정보 유출 단속에 나섰다. 9일 카타르 국영 알자지라방송에 따르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날 성명을 내고 유출된 기밀문건 가운데 정보기관 모사드가 정부 ‘사법부 무력화’ 조치에 대한 반대 시위를 종용했다는 내용에 “거짓되고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앞서 외신들은 유출 문건 중 ‘최고 기밀’ 문서에 올 2월 모사드 고위 지도자들이 “이스라엘 정부를 비난하는 행동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등 정부의 사법 조정 입법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신호정보(SIGINT·시긴트)로 파악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시긴트는 통화나 전자 메시지를 도·감청해 수집한 정보를 말한다. 프랑스도 ‘프랑스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견됐다’는 문건 내용을 반박했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국방장관은 일간 르몽드에 “우크라이나 작전에 연관된 프랑스군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 유출 문건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프랑스와 미국 영국 라트비아의 특수작전 요원 100명 미만 파견대가 우크라이나에서 활동 중임을 시사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다른 문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감청된 정황이 나타난 우크라이나는 군사 계획을 바꾸고 정보 유출 단속에 나섰다고 미 CNN방송이 이날 보도했다. CNN은 젤렌스키 대통령 측근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놀라운 일은 아니라면서도 문건 유출에 깊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기밀정보 공유 동맹체 ‘파이브 아이즈(다섯 개의 눈·Five eyes)’를 구성한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이번 기밀 유출로 자국 정보원 노출 같은 정보자산에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국가 당국자는 CNN에 “우리가 수집한 정보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유출) 문서들을 자세히 분석 중”이라며 “미국이 며칠 내로 문건 유출로 인한 피해 분석 결과를 공유할 것으로 보이지만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한국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들의 대화를 감청한 정황이 담긴 문건 유출에 “한국이 한미 관계에서 불평등한 지위에 있는 탓”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관영 환추시보는 10일 사설 ‘한국은 감시·통제 당하는 느낌을 즐길 리 없다’에서 “한국은 미국 첩보·감시 활동의 중대 피해 지역”이라며 “한국 자주성과 권리를 미국이 뼛속 깊이 불신하고 존중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썼다. 그러면서 ‘나쁜 사람 앞잡이가 돼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의 ‘위호작창**’이란 성어를 썼다. 한국은 미국에 동조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사설은 또 이번 사태를 “파이브 아이즈의 악몽”이라고 한 미국 당국자의 말을 인용하며 “비밀 누설은 미 동맹체제에 대한 신뢰의 균열을 더욱 확대했다”고 분석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기존의 ‘금융 강국’들은 요즘도 금융산업 규제 완화를 쉬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다. 규제 강도를 낮춰서 금융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으로 디지털 전환에도 적극 대응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영국 정부는 30년 만의 대대적인 금융 규제 완화 방침을 밝혔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는 금융업의 부활을 위한 조치다. 제러미 헌트 영국 재무부 장관은 “EU 규제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브렉시트 자유’를 토대로 금융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영국 정부는 우선 고연봉을 받는 은행 임직원 급여의 상한을 폐지해 실력 있는 금융 전문가들을 유치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보험회사는 주택, 풍력 발전소 등 장기적인 투자처에 투자할 수 있게 허용한다. 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금융안정성 규제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은행의 소매 금융과 고위험 투자 부문을 분리하도록 규정한 이 규제가 금융회사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아시아권의 대표적인 금융 중심지로 꼽히는 싱가포르는 은행들도 비은행 사업에 진출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금융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 2017년 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싱가포르에서는 은행의 소비재 중개 디지털 플랫폼 사업, 소비재 및 서비스 온라인 판매 등이 새롭게 허용됐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의 경우 외부 사업자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DBS 마켓 플레이스’라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은행이 주택, 여행, 자동차, 교육 등 다양한 영역의 서비스를 중개해 주는 사업에 나선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 차량 구매와 내 차 팔기, 보험, 대출, 유지보수 등의 종합 서비스를 한곳에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싱가포르 대화은행(UOB) 역시 자회사 ‘UOB 트래블’을 활용해 은행 및 카드 고객을 대상으로 여행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은 “영국이나 싱가포르는 금융 산업이 그 나라의 핵심 산업이라 규제 완화를 끊임없이 추진 중”이라며 “금융 선진국들 역시 규제를 풀면서 금융의 디지털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 후 처음으로 이웃 폴란드를 방문해 안제이 두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같은 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수도 모스크바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을 만났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전쟁 장기화에 따른 교착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핵심 우방의 지원이 더 절실해졌으며 두 회담 모두 이 연장선상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두다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머리를 맞댔고, 푸틴 대통령과 루카셴코 대통령은 포옹을 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와 함께 폴란드를 찾아 수도 바르샤바 대통령궁에서 두다 대통령을 만났다. 지난해 말 미국 워싱턴을 방문할 때는 러시아의 위협을 우려해 순방 일정에 대해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지만 이번에는 일정을 공개했고 부인까지 대동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두다 대통령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이미 ‘미그-29기’ 8대를 전달했다”며 앞으로 6대를 더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전차를 지원할 때도 폴란드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폴란드의) 지도력이 ‘전투기 연합’에서도 발휘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폴란드의 ‘미그-29’ 지원이 전투기 지원을 주저하는 미국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푸틴 대통령은 같은 날 크렘린궁에서 루카셴코 대통령과 회동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양국의 공동 작업 결과로 모든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특히 경제 분야의 협력 결과가 기쁘다”고 말했다. 루카셴코 대통령 또한 러시아의 침공 후 서방 주요국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모두에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개의치 않겠다는 뜻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붕괴를 바라거나 예상한 이들이 있지만 전혀 무너지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할 것”이라고 했다. 두 나라가 1990년대부터 ‘연합 국가’를 추진해 왔다는 점을 거론하며 “양국 통합을 위한 28개 프로그램이 약 80% 달성됐다”고 자신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린 트레이시 러시아 주재 미국대사 등 세계 17개국 대사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자리에서 2014년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권이 붕괴하고 친서방 정권이 집권한 ‘유로마이단’ 혁명 당시 미국이 이를 지원한 것이 현 위기를 촉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미국의 지원이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으로 이어졌다”고 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6일 수도 베이징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 및 만찬을 갖고 경제 협력, 우크라이나 전쟁 대처 방안 등을 논의했다. 시 주석은 7일에도 ‘중국의 개혁개방 1번지’로 꼽히는 남부 광둥성 광저우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기로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3연임을 확정한 시 주석이 자국 영토에서 만나는 첫 해외 정상이다. 같은 달 말 ‘보아오포럼’ 참석차 중국을 찾은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 등은 시 주석이 아닌 리창(李强) 총리를 접견했다. 특히 시 주석이 베이징 이외 지역에서 타국 정상을 만나는 일은 그야말로 이례적이다. 미국과의 패권 갈등으로 서방의 지지가 절실한 시 주석이 ‘특급 의전’을 제공하며 프랑스의 협조를 구하려 한다는 평이 나온다. 정년 연장이 골자인 연금개혁법을 강행하며 자국 내에서 거센 반발에 부닥친 마크롱 대통령 또한 중국과의 경제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習 “다자주의” vs 마크롱 “러에 이성 찾아줘야” 6일 관영 중국중앙(CC)TV 등에 따르면 시 주석과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회담을 가졌다. 대회당 밖 양국 국기가 늘어선 붉은 카펫 위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맞은 시 주석은 “중국과 프랑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전통을 가진 대국”이라며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할 책임이 있다”고 미국을 겨냥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시 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어하는 데 동참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 안정에 타격을 입혔다. 시 주석이 러시아에 이성을 되찾아주고 모든 사람을 평화협상 테이블로 데려올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은 중국과의 경제 협력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중국과 프랑스를 분리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이번 방문에 에어버스, 알스톰,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등 자국 대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50여 명을 대동했다. 두 정상은 회담 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까지 합한 3자 회담 및 국빈 만찬을 가졌다. BBC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중국의 역할을 두고 마크롱 대통령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번갈아 가며 ‘굿캅(좋은 경찰)’, ‘배드캅(나쁜 경찰)’ 역할을 맡아 시 주석을 압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中서 가장 인구 많고 부유한 광둥성서 회동 시 주석이 광저우에서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기로 한 것 또한 큰 관심을 모은다. 시 주석은 2018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후베이성 우한에서 만났다. 같은 해 푸틴 대통령과 톈진에서 아이스하키 경기도 관람했다. 이를 제외하면 베이징 밖에서 외국 정상을 만난 적이 거의 없다. 광저우 외에도 선전, 둥관 등이 있는 광둥성은 중국 31개 성 중 인구가 가장 많고 가장 부유하다. 지난해 경제 규모가 12조9118억 위안(약 2350조 원)으로 한국 국내총생산(GDP·1965조 원)을 능가한다.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習仲勳)은 과거 이곳에서 공산당 서기와 성장을 지냈고 시 주석 역시 잠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지난해 기준 프랑스는 EU 국가 중 독일, 네덜란드에 이어 세 번째로 중국과 교역이 많다. 특히 광둥성은 중국의 대프랑스 교역의 약 20%를 담당한다. 마크롱 대통령의 방중에 동행한 에어버스, 알스톰 등 프랑스 주요 기업 또한 광둥성을 중심으로 중국 사업을 벌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곳에서 프랑스에 투자하려는 중국 기업가, 중산대 재학생 1000명 등도 만나기로 했다. 다만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외치는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의 행보가 EU 전체의 대중국 및 우크라이나 정책에 혼란만 가져왔다고 지적했다.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뱅스터들아, (너희) 자산을 팔아라!” 스위스 1위 은행 UBS에 전격 인수되며 167년 역사를 접은 크레디트스위스(CS)은행의 4일 마지막 주주총회에서 울분에 찬 투자자들이 이 같은 비난을 쏟아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뱅스터는 은행가(bankers)와 폭력배(gangsters)의 합성어로 모리배 은행가를 뜻한다.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방만 경영으로 은행을 살리지 못해 투자자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힌 CS 경영진을 가리킨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스위스 취리히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5시간여 동안 진행된 주총에서 1750여 명 주주는 “사기를 당했다” “임직원은 감옥에 가라”고 분노를 토했다. 이들은 CS 주식이 22.48주당 UBS 주식 1주로 전환돼 주식 가치가 크게 떨어진 점에 가장 분노했다. CS 주식은 올 2월 중순 주당 2.78스위스프랑(약 2900원)에서 지난달 19일 인수 발표 당시 약 76스위스센트(약 1100원)로 급락했다. 주주들은 최근 몇 년간 각종 투자 실패 및 스캔들을 일으킨 CS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과 문화를 실패의 주요인으로 꼽았다. CS 대주주인 뱅상 코프만 에토스재단 최고경영자(CEO)는 “CS는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스캔들을 일으켜 명성을 완전히 실추시켰다”고 말했다. 일정 소득 없이 연금으로 사는 주주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한 주주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CS 주식에 노후를 의탁해온) 연금 수급자의 삶이 연기처럼 사라지게 됐다”며 “더 이상 남은 돈이 없어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주주들은 이날 경영진 임금을 일괄적으로 최대 3400만 스위스프랑(약 492억 원)을 지급하는 안건에 48.2%만 찬성해 부결시켰다. 악셀 레만 CS 이사회 의장은 주총에서 “선택지는 인수합병이나 파산 두 가지뿐이었는데 우리가 파산했다면 주주들이 말 그대로 모든 걸 잃고, 고객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안게 되며, 글로벌 금융 시장에는 심각한 결과를 낳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됐을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신뢰를 저버리고 실망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1948년 옛 소련과 우호조약을 체결한 후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중립국 위치를 지켰던 핀란드가 75년 만에 이를 버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했다. 핀란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3개월이 흐른 지난해 5월 나토 가입을 신청했고 약 1년 만에 뜻을 이뤘다. 핀란드와 약 1300km의 국경을 맞댄 러시아는 거세게 반발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3일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내일(4일) 나토 본부에 처음 핀란드 국기가 게양될 것”이라며 “핀란드는 더 안전해지고 우리 동맹 또한 더 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핀란드는 1949년 설립된 나토의 31번째 가입국이 됐다. 나토 회원이 되려면 기존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기존 30개 회원국 중 튀르키예가 지난달 30일 마지막으로 핀란드의 비준안을 가결했다. 핀란드의 나토 가입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나토 회원국의 국경 길이 또한 기존보다 약 2배로 늘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핀란드 외에도 스웨덴, 스위스 등 중립국을 표방했던 유럽 각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완연하게 서방 쪽으로 기울고 있다. 스웨덴은 핀란드와 함께 나토 가입을 신청했고 스위스 또한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러시아 제재 등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다만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튀르키예는 자국의 소수민족 쿠르드족을 스웨덴이 배후에서 지원한다는 이유로, 극우 정권이 장기 집권 중인 헝가리는 스웨덴이 인권 탄압 등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각각 가입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알렉산드르 그루시코 러시아 외교차관은 “(핀란드와 국경을 맞댄) 서부 및 서북부 방향으로 군사적 잠재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정면 대응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또한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다 2일 폭사한 군사 블로거 블라들렌 타타르스키에게 훈장을 수여하며 민심 다잡기에 나섰다. 나토는 4, 5일 양일간 열리는 회원국 외교장관 회의에 2년 연속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4개국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동참하라는 요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한국 정부가 5년 만에 공동제안국으로 복귀해 초안 협의에 참여한 북한인권결의안이 4일(현지 시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합의로 채택됐다. 2003년 처음 채택된 뒤 올해로 21년 연속 채택이다. 이번 결의안에는 북한에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재검토를 촉구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북한은 2020년부터 한국 등 외부에서 제작된 콘텐츠를 ‘반동사상문화’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 이사회는 “온·오프라인에서 사상·양심·종교·신념의 자유와 의견·표현·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러한 권리를 억압하는 법과 관행을 재검토할 것”을 북한에 요구했다. 결의안에는 또 외국인 고문, 즉결 처형, 자의적 구금, 납치 등을 우려하는 기존 조항에 “유족들과 관계기관에 (피해자의) 생사와 소재를 포함한 모든 관련 정보를 공개할 것을 북한에 촉구한다”는 문구도 담겼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유엔총회에 제출된 북한인권결의안에도 4년 만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하는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것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이후 5년 만이다. 외교부는 결의안 채택에 환영하며 “북한은 인권 증진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유엔 인권메커니즘과의 협력을 확대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한대성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대사는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면서 “정치적 음모를 담은 문서”라고 반발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2일(현지 시간) 핀란드 총선에서 중도우파 국민연합당이 승리했다. 2019년 12월 당시 34세에 집권해 세계 최연소 국가 수반으로 주목받았던 산나 마린 총리(38)의 집권 사회민주당은 극우 핀란드인당에도 뒤진 원내 3당에 머물며 재집권에 실패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에 따른 고물가와 경기 침체, 국가부채 및 사회복지 비용 급증 등으로 불안해진 표심이 안정을 주장한 우파로 쏠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핀란드인당은 2015년 의회 입성 8년 만에 원내 2당 자리에 올라 헝가리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네덜란드 등 유럽 곳곳에서 불고 있는 극우 정당 바람을 이어갔다.● ‘최연소 수반’ 마린 실각 AP통신 등에 따르면 핀란드 총선 결과 국민연합당은 득표율 20.8%로 48석을 획득했고 이어 핀란드인당 46석(득표율 20.1%), 사회민주당 43석(19.9%) 순이었다. 국민연합당은 침체된 경제 회복과 안정을 강조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여파 등으로 불안에 빠진 유권자를 끌어들였다. 다만 전체 200개 의석 중 과반을 얻지 못한 국민연합당 페테리 오르포 대표(54)는 “연립정부를 꾸리기 위한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스퀘이크(Youthquake·젊은 지도자가 이끄는 변화) 기수’로 떠올랐던 마린 총리는 전쟁 발발 후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목소리를 냈다. 안보 우려를 씻기 위해 중립국 지위를 내던지고 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2021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위반하고 클럽에서 즐기는 모습이 목격됐고 지난해에는 총리 관저에서 지인 및 연예인들과 춤을 추는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마린 총리는 자신의 지역구에서는 전국 2위 다득표 당선자가 됐지만 총리 자리를 내놓게 됐다. 나토 가입을 추진하다 총리에서 물러나면서 ‘나토의 저주’란 얘기가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3일 나토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취재진에 “핀란드가 4일 나토에 가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핀란드인당 약진, 계속되는 유럽 극우 바람 2015년 총선에서 첫 의석을 얻은 뒤 8년 만에 집권당 턱밑까지 올라선 핀란드인당은 지난해 여름부터 경제 불안을 등에 업고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반(反)이민 정책을 내세우며 핀란드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목표로 한다. 국민연합당이 구성하는 연정에 참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핀란드 총선 결과는 최근 이탈리아와 스웨덴 선거처럼 우파로의 변화(a shift to the right)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유럽 정계에서 극우 바람은 거세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9월 총선에서 극우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승리해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베니토 무솔리니 이후 100년 만에 극우 성향 총리가 됐다. 멜로니 총리는 자국 연안으로 향하는 난민 선박 수용을 거부해 EU 다른 국가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극우 스웨덴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득표율 20%를 넘기며 73석을 차지해 원내 2당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프랑스 대선에서 41.5%를 얻어 극우 대선 후보 최초로 40%대 지지를 얻었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은 최근 연금 개혁 강행으로 민심을 잃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지지율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핀란드와 같은 날인 2일 총선을 치른 불가리아에서도 극우 부흥당이 약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극우 강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400일 넘게 계속되면서 에너지 위기와 고금리, 고물가로 서민 생활이 빠듯해지고 있는데도 집권당들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윤리공공정책센터(EPPC) 헨리 올슨 선임 연구원은 지난달 30일 워싱턴포스트(WP) 칼럼에서 프랑스, 네덜란드 정부의 비타협적 정책을 거론하며 “포퓰리즘 시대를 헤쳐가려면 실제적이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독일 동부 작센주 드레스덴의 반도체 산업단지 ‘실리콘 작소니’ 외곽. 독일 최대 반도체 기업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의 반도체 생산시설 앞 공터는 흙을 파내고 싣는 굴착기와 트럭 등 중장비들의 굉음으로 가득했다. 이 회사의 디아나 카세러 홍보 매니저는 “300mm 웨이퍼(반도체 기판) 클린룸이 2026년 가을부터 가동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가 핵심산업인 전기차용 반도체 생산기지여선지 공터를 철조망이 둘러싸고 곳곳에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설치돼 있는 등 삼엄한 경계 장면도 눈에 들어왔다. 글로벌 첨단 반도체 공급망 주도권을 놓고 미국 한국 대만 일본 중국의 각축전이 치열한 가운데 유럽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3개 중 1개를 생산하는 실리콘 작소니에서도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이곳에 입주한 기업 2500여 곳은 시너지를 통해 연매출 약 23조 원을 올린다. 공사 현장에는 3년 뒤 축구장 3개 넓이(2만 ㎡) 규모의 클린룸이 추가로 들어선다. 기존 생산시설(약 4만 ㎡)이 1.5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차량용 반도체 글로벌 1위인 인피니언은 클린룸 증설에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50억 유로(약 7조 원)를 투입하고 있다. 보쉬도 올해 생산시설 증설에 1억 유로(약 1400억 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아르민 레이스 작센경제개발공사 정보통신기술(ICT) 책임자는 “유럽연합(EU)이 회원국 투자 기업에 대규모 지원금을 주는 ‘유럽반도체법’ 시행 방침을 밝힌 후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문의가 늘었다”고 했다. ‘지구에서 가장 혁신적인 1제곱마일’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미국 보스턴 매사추세츠공대(MIT) 옆 켄들스퀘어의 바이오텍 클러스터에는 최근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10대 바이오 제약사 중 9곳이 이곳에 연구개발(R&D) 센터를 두고 있다. 한미약품, LG화학 등 국내 기업들도 보스턴에 거점을 마련하는 추세다. 이처럼 기술 선진국들은 매년 수십조 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첨단산업단지가 글로벌 기술 전쟁의 전진 기지가 될 것이란 확신을 갖고 저마다 첨단산업 생태계 조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다.글로벌 반도체 4社, ‘실리콘 작소니’ 모여 정보 공유…‘적과의 동침’ 로봇 수십대, 웨이퍼 싣고 날라… 클린룸엔 관리직원 2, 3명뿐정부지원 업고 공정 100% 자동화, 신생 스타트업엔 ‘3중 지원금’입주 2500곳 연매출 23조원《최근 전 세계 기술 선진국 사이에선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첨단기술을 둘러싼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 역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첨단산업 생태계 조성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달 국가첨단산업단지 후보지 15곳을 선정한 데 이어 상반기(1∼6월) 중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지정할 계획이다. 글로벌 기술 전쟁의 전진 기지인 첨단산단을 둘러싼 국내외의 치열한 각축전 현장을 돌아봤다.》 ‘위이이잉∼.’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 반도체 산업단지 ‘실리콘 작소니’.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 공장 클린룸에선 지하철이 출발할 때 나는 듯한 소리가 간헐적으로 울렸다. 유아용 전동차 크기 로봇 수십 대가 총연장 약 13km인 천장 레일에 매달려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였다. 각 로봇은 300mm 웨이퍼(반도체 기판) 25장씩을 넣은 플라스틱 용기들을 싣고 달리다가 예정된 구간에 닿으면 승객을 내려주듯 웨이퍼 용기를 분리시켰다. 클린룸에선 방진복을 입고 기계를 관리하는 직원 두세 명만 가끔 눈에 띄었다. 라이크 브레트슈나이더 인피니언 부회장은 “공정이 100% 자동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 반도체 거인 4개사 ‘적과의 동침’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최근 전기차와 인공지능(AI) 장비 등에 쓰이는 300mm 웨이퍼 생산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실리콘 작소니 입주 기업들은 자동화를 무기로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독일 정부 ‘인더스트리 4.0’ 정책에 따라 일찍부터 자동화 수준을 높인 결과다. 또 유럽을 대표하는 첨단산단인 실리콘 작소니에는 반도체 기업과 관계사, 고객사 등이 모여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인피니언을 비롯해 글로벌파운드리, 보쉬, 엑스팹 등 글로벌 반도체 대기업 4개사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슈테판 울리히 실리콘 작소니 프로젝트 매니저는 “반도체 강자인 네 기업이 한꺼번에 입주한 산단은 보기 드물다”며 “이런 강점을 토대로 유럽 반도체 산업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반도체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다가 2016년 드레스덴에 나노테크디지털을 세운 정유엽 대표는 “한국에선 삼성과 LG가 협업하기 힘들지만 여기선 경쟁사 구매 담당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 좋은 거래처를 공유한다”고 했다. 글로벌 메이커들이 협업하는 배경을 이해하려면 실리콘 작소니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실리콘 작소니는 기본적으로 민간 회사들의 협의체다. 2000년 15개 업체가 자발적으로 협의체를 구성하고 회비를 걷어 투자 유치 행사를 열거나 정보를 교류한 것이 모태가 됐다. 서로 시너지를 내는 방법을 익히면서 23년 만에 급성장해 현재 고용 인원만 7만 명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2500곳이 입주해 연매출이 23조 원에 이른다.● 지방정부, 인건비 5년간 절반 지원 지방정부는 민간 협의체를 측면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다. 작센주에 처음 투자하는 기업은 고용 인원, 급여 상한 등의 요건을 갖출 경우 인건비 절반을 약 5년간 지원 받거나 설비 투자비용의 25∼30%를 지원받을 수 있다. 작센주는 또 공장 신설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기업 애로 사항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브레트슈나이더 인피니언 부회장은 “에너지와 물이 탄탄하게 공급돼야 생산이 안정화된다. 그런데 지방정부가 (에너지와 물) 관련 기업들이 이 지역에 투자하도록 유도해줬다”고 말했다. 신생 스타트업의 경우 작센주는 물론이고 독일 연방정부, 유럽연합(EU)으로부터 ‘3중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스핀클라우드시스템스는 지난달 초 EU 지원금 250만 유로(약 35억 원)를 받았다. 독일 연방정부 2개 부처도 지난해 각각 25만 유로(약 3억5000만 원), 50만 유로(약 7억 원)를 지원했다. 숙련된 인력이 산단 입주 기업들과 긴밀한 교류 속에 배출된다는 점도 강점이다. 산단에 있는 ‘드레스덴 칩 아카데미’는 입주 기업의 공동 교육 플랫폼이다. 기업이 교육비를 내면 아카데미가 해당 업체 직원들을 교육해 준다. 정식 입사 전에도 대학에서 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이곳에서 실무를 배울 수 있다. 김홍균 주독일 한국대사는 “실리콘 작소니 인근 라이프치히에 자동차 기업이 모여 있어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풍부하고 프라운호퍼연구소나 드레스덴공대가 기업과 협력하는 점 등도 국내에서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드레스덴=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보스턴=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올 1월 시작된 프랑스 주요 노동조합의 연금 개혁 반대 총파업이 이번 주로 11번째를 맞는다. 올해 달력을 이미 석 장 넘겼는데 파리에서는 파업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을 정도다. 아이들 학교는 직원들이 파업 중이어서 전화를 잘 받지 않고 어린이집은 수시로 문을 닫는다. 해외 출장을 가려고 비행기표를 예약해도 항공사 직원 파업 때문에 결항돼 일정이 자주 꼬인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람들도 업무를 중단해 길가에는 쓰레기가 넘쳐 걸어다니기조차 힘들다. 외국인에겐 낯설고 힘겨운 시간이다. 하지만 많은 현지인은 이런 불편에 굴하지 않는 것 같다. 연금을 받게 되는 시점인 법정 정년을 현행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늦추는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파업을 몇백 번이라도 반복하겠다는 저항 의지가 거세다. 저항을 넘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적대감이 하늘을 찌른다.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달 16일(현지 시간) 헌법 49조 3항 특별 규정에 따라 하원 표결을 건너뛰고 연금 개혁안의 의회 처리를 강행하자 많은 파리 시민들은 콩코르드 광장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콩코르드 광장은 보통 파업을 선언한 노조가 시위를 하러 집결하는 레퓌블리크 광장이나 바스티유 광장보다 의미심장하다. 1793년 절대왕정을 상징하던 루이 16세와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의 이슬로 만들어 버린 곳이기 때문이다.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이곳에 모임으로써 마크롱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처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이 위기에 처했다는 방증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그가 잃은 지지율을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대표 마린 르펜이 쓸어 담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총선이 있다면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26%는 RN을 택한 반면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르네상스당이 속한 중도 연합 앙상블은 22%만 선택했다. 많은 프랑스 정치 전문가는 임기가 3년 넘게 남은 마크롱 대통령이 국정 운영 동력을 되찾기 힘들어 보인다고 말한다. 오히려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국정 동력을 더 잃을 수도 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으로 누적된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구가 감소해 경기(景氣)가 침체된 소도시 주민들은 연금 개혁 반대를 명분으로 폭력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다. 프랑스 파업 정국과 사회 혼란은 사회적 합의가 얼마나 힘들면서도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재선에 도전할 때부터 공약을 내놓으며 연금 개혁 의지를 꾸준히 강조했다. 대통령이 연금 개혁 중요성을 거듭 환기한 건 좋았지만 그 필요성에 대해 많은 국민을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올 1월 연금 개혁안을 정식 발표할 때까지 마크롱 대통령이 개혁 방향과 취지를 놓고 국민 이해를 구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발표 이후 마크롱 대통령이 대통령실 엘리제궁에서 여러 노조 대표들과 만났다는 보도는 나왔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자주 만났고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가 얼마나 연금 개혁에 진심이고 애쓰는지 반대파들이 수긍할 여지를 주지 않은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 1위이며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한국이야말로 연금 개혁이 시급하다. 지도자의 결단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대화에 더욱 공들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연금 개혁을 둘러싼 사회적 혼란이 국가적으로 막중한 각종 현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서 개혁은 또 흐지부지될지 모른다.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프랑스보다 막대할 수밖에 없다.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이탈리아 당국이 대화형 인공지능(AI) 챗봇 챗GPT 접속을 일시적으로 차단한다고 밝혔다. 이탈리아는 챗GPT 사용을 금지한 첫 서방 국가가 됐다. 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데이터보호청은 “챗GPT가 이탈리아 개인정보보호 기준과 규정을 충족할 때까지 서비스 접속을 일시적으로 차단할 것”이라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챗GPT가 개인정보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보호청은 챗GPT가 알고리즘 학습을 위해 개인정보를 대량 수집해 저장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20일 내에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챗GPT 세계 연매출의 최대 4%에 이르는 벌금 2000만 유로(약 284억 원)를 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챗GPT는 지난해 말 출시된 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동시에 윤리 문제를 비롯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챗GPT가 알고리즘 학습을 위한 데이터를 어디서 얻고 어떻게 처리하는지 공개하지 않는 것도 논란이다. 다만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트위터에 “우린 어떤 기술을 사용하든 계속 자유를 증진하고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며 (EU 차원에서) 챗GPT 사용을 금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서방과 아시아 주요국 지도자들을 잇따라 만나며 대미 경쟁에서의 우군 확보를 위한 공세적 외교를 펴고 있다. 시 주석이 지난달 20∼2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이후 외교적 보폭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과 경제 협력 등을 지렛대 삼는 형국이다.● 習, 릴레이 정상회담으로 ‘美 견제’ 1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중국판 다보스포럼’ 보아오포럼(3월 28∼31일) 참석을 위해 중국을 찾은 스페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총리와 각각 정상회담을 했다. 시 주석은 지난달 31일 베이징에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가진 회담에서 “중국과 유럽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유럽의 전략적 독립성이 필요하다”면서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는 중국과 유럽은 서로 협력하며 좋은 친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에 가담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에둘러 전한 것으로 해석된다. 같은 날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반도체 등 핵심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미국의 행보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시 주석은 “싱가포르가 중국의 이익과 가장 밀접하게 통합돼 있다”면서 “디커플링(탈동조화)과 (공급)망 단절에 저항해야 하며, 특정 국가가 아시아인의 행복 추구권을 박탈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과 원활한 흐름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중국과 일본 외교장관이 2일 베이징에서 만나 각종 현안을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특히 중국은 미국과 공조를 강화하는 일본을 견제했다.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장은 “미국은 일찍이 집단 따돌림 수단으로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잔혹하게 압박했는데 지금은 중국에 이 수법을 다시 쓰고 있다”면서 ‘위호작창(爲虎作倀)’이라는 성어를 언급했다. ‘나쁜 사람의 앞잡이가 돼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미국에 밀착한 일본을 겨냥한 것이다. 반면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상은 미중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대만해협에서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마크롱 “中, 우크라戰 역할” 당부할 듯 중국은 유럽과의 거리 좁히기를 통해 미국의 압박을 방어하는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EU를 갈라치기 해 미국의 중국 봉쇄 정책을 벗어나려는 의도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사진)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이번 주 중국을 방문해 6일 시 주석과 3자 회동을 할 예정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방중은 2019년 12월 취임 이후 3년 4개월 만에 처음이다. 구체적인 회동 안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장기화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 달라고 시 주석에게 촉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열린 한 싱크탱크 행사 연설에서도 “중국의 향후 러시아 정책이 EU와 중국 관계를 좌우할 결정적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 역시 시 주석에게 러시아를 지원할 경우 재앙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할 것으로 보인다. AFP통신은 지난달 31일 익명의 엘리제궁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이 참담한 결정을 내린다면 전 세계적 갈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리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협력하고 우리의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엘리제궁은 중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갈등에 즉각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국가이기 때문에 이번 회담을 중시하고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찰스 3세 영국 국왕(75)이 지난해 즉위 후 첫 해외 순방국인 독일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폭격에 희생된 독일인들에게 헌화했다. 1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찰스 3세 국왕은 지난달 31일 유럽연합(EU) 회원국과의 유대 강화를 위해 국빈 방문한 독일의 북부 항구도시 함부르크 성니콜라이 기념관을 찾았다. 80년 전 영국과 미국 폭격기들의 공습 이후 겨우 모습을 유지한 성니콜라이 교회 예배당 입구와 첨탑 등 유적을 2차대전 기념관으로 꾸민 곳이다. 찰스 3세는 예배당 입구에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헌화한 뒤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했다. 찰스 3세가 바친 붉은색 추모 화환에는 그가 자필로 쓴 ‘영원한 기억’이라는 문구가 달려 있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이탈리아 당국이 대화형 인공지능(AI) 챗봇 챗GPT 접속을 일시적으로 차단한다고 밝혔다. 이탈리아는 챗GPT 사용을 금지한 첫 서방 국가가 됐다. 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데이터보호청은 “챗GPT가 이탈리아 개인정보보호 기준과 규정을 충족할 때까지 서비스 접속을 일시적으로 차단할 것”이라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챗GPT가 개인정보를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보호청은 챗GPT가 알고리즘 학습을 위해 개인정보를 대량 수집해 저장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20일 내에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으면 챗GPT 세계 연매출 최대 4%에 이르는 벌금 2000만 유로(약 284억 원)을 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챗GPT는 지난해 말 출시된 뒤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동시에 윤리 문제를 비롯한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챗GPT가 알고리즘 학습을 위한 데이터를 어디서 얻고 어떻게 처리하는지 공개하지 않는 것도 논란이다. 다만 마가렛 베스타이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트위터에 “우린 어떤 기술을 사용하든 계속 자유를 증진하고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며 (EU 차원에서) 챗GPT 사용을 금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의회 패싱’을 통해 연금개혁안을 밀어붙인 정부에 맞서 총리 불신임을 추진했던 프랑스 야당들이 하루 뒤 정부가 제출한 ‘원자력발전소 건설 법안’에는 상당수 찬성표를 던져 가결시켰다. 연금개혁에 대해서는 “국민적 저항”을 촉구하고, “내각 총사퇴”를 주장하며 여전히 반대하지만 국가에 필요하다고 판단한 정책에는 손을 들어준 것이다. 가치와 이념 차이로 부딪칠 때는 싸우면서도 민생 문제를 챙겨야 할 때는 실용정신을 발휘하는 정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 정부 법안에 던진 찬성표, 반대의 ‘3배’2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하원은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원전 건설 법안을 찬성 402표, 반대 130표로 통과시켰다. 찬성이 3배 이상 많았다. 전날 야당인 자유·무소속·해외영토(LIOT) 그룹과 좌파 연합 뉘프(NUPES)가 하원에 제출한 내각 불신임안이 겨우 9표 차로 부결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원은 총 577석 중 집권당 르네상스를 비롯한 중도 연합 ‘앙상블’이 245석을 차지한 여소야대 구조다. 원전 건설 법안은 프랑스에 원전 6기를 새로 건설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원전 건설 승인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관련 규제를 완화해 건설에 속도를 내겠다는 취지다. 지난달 상원에서 통과됐고 이날 하원 문턱을 넘었다.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표결 직후 트위터에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우리 에너지 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공동 건설 작업의 결과”라고 의회 결정을 환영했다. 하원 표결을 건너뛰는 승부수를 던지면서까지 연금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진 마크롱 대통령으로서는 값진 성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로이터는 “원전 정책은 마크롱 대통령이 몇 주 안에 국정운영 동력을 되찾으려는 개혁 이슈 가운데 하나”라고 전했다. 원전 정책은 집권 르네상스는 물론이고 우파 공화당, 극우 국민연합(RN)도 지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원전 의존도가 약 69%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많은 56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서방 제재에 맞서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무기화해 유럽 에너지난이 심각해지면서 원전이 강력한 대안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원전 강국 프랑스에서마저 대규모 정전이 벌어지는 등 전력 생산량이 3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데다 각종 규제 때문에 신규 원전 건설이 지연되자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마크롱 “헌법 통한 연금개혁 옳아”연금개혁안과 원전 건설 법안을 모두 처리한 마크롱 대통령은 22일 TV 생방송 인터뷰에서 연금개혁 정당성을 역설하며 반대 시위에 대한 대응 방안과 향후 국정 운영에 대해 설명한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21일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에서 지난해 자신의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의원들과 만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 주장하는) 의회 해산이나 개각, 연금개혁 관련 국민투표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의원들에게 “(연금개혁 반대 시위를 벌이는) 군중은 선출된 대표를 통해 자신의 주권을 표출하는 국민들 앞에서는 정당성이 없다”며 연금개혁의 정당성을 강조했다고 일간 르몽드는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석자는 마크롱 대통령이 “새 개혁 의제 설정을 위한 아이디어를 2∼3주 안에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또 “지금이 어려운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분노한 시위대를) 진정시키고 싶지만 급하게 일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에 극우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은 AFP통신 인터뷰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국민의) 뺨을 두 번째 때리기로 했다”고 비난했다. 수도 파리를 중심으로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는 계속 이어졌다.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