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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사고로 소방관 3명이 순직한 경기 평택시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의 건설감리업체와 시공사가 관리 부실로 과거에도 당국의 벌점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건설 현장에서 최근 인명 사고가 잇따르면서 부실한 감리 및 시공 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3일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평택 냉동창고 사업 건설감리를 맡았던 H사무소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3차례에 걸쳐 각각 3점씩, 총 9점의 부실 벌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12월에는 경기 군포시의 한 산업단지 신축 공사장에서 품질관리자가 현장에 상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점을 받았다. 2019년 5월 경기 용인시의 대형 가구업체 매장 시공 당시 지하 벽체에서 철근 노출이 발생했지만 구조물 검사를 실시하지 않았으며, 보수계획도 수립하지 않아 벌점이 부과됐다. 이 사무소는 벌점 9점을 받은 상태에서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평택 냉동창고 신축 공사 건설감리 계약을 했다. 계약 11개월 후인 2020년 12월에는 해당 현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해 5명의 사상자가 났다. 시공사였던 C건설 역시 2018년 10월 경기 구리시 오피스텔 신축공사 때 타설(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부어 넣는 작업) 작업 후 벽체에 발생한 철근 노출과 콘크리트 균열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가 벌점을 받았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화재 사고로 소방관 3명이 순직한 경기 평택시 냉동창고 신축공사장의 건설감리업체와 시공사가 관리 부실로 과거에도 당국의 벌점을 여러 차례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건설 현장에서 최근 인명 사고가 잇따르면서 부실한 감리 및 시공 관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3일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이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평택 냉동창고 사업 건설감리를 맡았던 H 사무소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3차례에 걸쳐 각각 3점씩, 총 9점의 부실 벌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12월에는 경기 군포시의 한 산업단지 신축공사장에서 품질관리자가 현장에 상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점을 받았다. 2019년 5월 경기 용인시의 대형 가구업체 매장 시공 당시 지하 벽체에서 철근 노출이 발생했지만 구조물 검사를 실시하지 않았으며, 보수계획도 수립하지 않아 벌점이 부과됐다. 이 사무소는 벌점 9점을 받은 상태에서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평택 냉동창고 신축 공사 건설감리계약을 했다. 계약 11개월 후인 2020년 12월에는 해당 현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해 5명의 사상자가 났다. 시공사였던 C 건설 역시 2018년 10월 경기 구리시 오피스텔 신축공사 때 타설(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부어넣는 작업) 작업 후 벽체에 발생한 철근 노출과 콘크리트 균열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가 벌점을 받았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붕괴 사고로 근로자 6명이 실종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의 시공사 HDC현대산업개발이 공사 기간 각종 규정을 위반해 관할 구청으로부터 27건의 행정처분을 받은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공사 기간 중 인근 주민들이 제기한 민원도 300여 건에 달해 이번 사고가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산업개발은 2019년 5월 화정아이파크 공사를 시작한 후 지난해 11월까지 광주 서구청으로부터 14건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조치이행명령, 개선명령 등의 행정처분을 받은 것도 13건이나 됐다. 과태료 처분 사유로는 ‘특정 공사 작업시간 미준수’, ‘싣기 및 내리기 작업 중 살수(물뿌리기) 미흡’, ‘생활소음규제 기준 초과’ 등이다. 과태료 14건의 총액은 2260만 원이다. 하지만 구청 행정처분 이후에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해 발생했다. 2020년 2월 작업시간 미준수 사유로 과태료 처분을 처음 받은 이후 같은 이유로 4차례나 추가 적발돼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2020년 12월 처음 행정처분을 받은 ‘공사장 생활소음규제 기준 미이행’도 총 9차례 적발되며 과태료 부과와 행정처분을 받았다. 공사 현장 인근 주민과 상인들의 민원도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구청에 이 현장과 관련해 접수된 민원은 총 324건으로 대부분 공사장 소음과 비산 먼지 발생과 관련한 민원이었다. 현장 인근 상인 홍모 씨(54)는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들로 매일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수차례 민원을 제기해도 달라지는 게 없이 묵살당했다”고 토로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붕괴 사고로 근로자 6명이 실종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의 시공사 HDC현대산업개발이 공사 기간 각종 규정을 위반해 관할 구청으로부터 27건의 행정처분을 받은 것으로 12일 확인됐다. 공사 기간 중 인근 주민들이 제기한 민원도 300여 건에 달해 이번 사고가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산업개발은 2019년 5월 화정아이파크 공사를 시작한 후 지난해 11월까지 광주 서구청으로부터 14건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조치이행명령, 개선명령 등의 행정처분을 받은 것도 13건나 됐다. 과태료 처분 사유로는 ‘특정 공사 작업시간 미준수’, ‘싣기 및 내리기 작업 중 살수(물뿌리기) 미흡’, ‘생활소음규제 기준 초과’ 등이다. 과태료 14건의 총액은 2260만 원이다. 하지만 구청 행정처분 이후에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해 발생했다. 2020년 2월 작업시간 미준수 사유로 첫 과태료 처분을 받은 이후 같은 이유로 4차례나 추가 적발돼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2020년 12월 처음 행정처분을 받은 ‘공사장 생활소음규제 기준 미이행’도 총 9차례 적발되며 과태료 부과와 행정처분을 받았다. 공사 현장 인근 주민과 상인들의 민원도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구청에 이 현장과 관련해 접수된 민원은 총 324건으로 대부분 공사장 소음과 비산 먼지 발생과 관련한 민원이었다. 현장 인근 상인 홍모 씨(54)는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사고들로 매일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수차례 민원을 제기해도 달라지는 게 없이 묵살 당했다”고 토로했다.}
경찰의 긴박한 임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형사 책임을 감면하는 내용의 경찰관 직무집행법(경직법) 개정안이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됐다. 지난해 12월 8일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개정안은 인권 침해 우려로 계류됐다가 책임 감면 범위를 수정한 끝에 통과됐다. 경찰은 법안 통과를 환영하고 있지만 내부에선 공권력 오·남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경직법 개정안은 경찰관이 임무 수행 중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형사책임을 경감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살인과 폭행, 강간 등 강력범죄나 가정폭력, 아동학대가 행해지려고 하거나 행해지고 있어 타인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해 발생의 우려가 명백하고 긴급한 상황’으로 면책 상황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개정안은 법원 판결 시 판사가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경우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하도록 했다. 이에 따르면 술에 취해 경찰을 공격하려던 남성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발생한 경찰의 폭행은 상당 부분 면책 받을 가능성이 크다. 또 흉기로 시민을 위협하는 피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테이저건 등 무기 사용을 한 경우 역시 형사 책임 감면 사유가 될 수 있다.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인천 남동구에서 발생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을 계기로 논의가 촉발됐다. 범인을 신속하게 제압하지 못한 경찰관의 안일한 대응이 문제로 떠올랐으며, 경찰관이 현장에서 형사 소송 등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한계도 지적됐다. 경찰은 이번 경직법 개정안 통과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개정안에 대해 “경찰의 적극적 조치를 위한 최소한의 법적인 뒷받침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청 인권위원회 관계자는 “면책규정으로 일선 경찰의 물리력 사용 오·남용을 부추길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여기를 지나는 행인들이 몇 년째 땅이 꺼진 곳을 종종걸음으로 지나가거나 뛰어넘어 다녔어요. 갑자기 땅이 푹 꺼질까 봐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지난해 12월 31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동에 있는 한 건물의 지하 3층 기둥 일부가 굉음과 함께 파손됐다. 건물 앞 아스팔트 도로에서도 직경 5m, 깊이 0.5m가량의 지반 침하가 관측됐다. 이 도로 바로 옆 건물 1층에서 5년 넘게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해 온 안모 씨(57)에 따르면 이 도로에서 지반 침하 현상이 처음 관측된 건 4, 5년 전이다. 안 씨는 “당시 상수도관이 터져 공사한 뒤로 지반 침하가 있었는데, 최근 한 달 새 더 크게 내려앉았다”고 말했다.‘도심 속 지뢰’로 불리는 ‘싱크홀’(땅 꺼짐 현상)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 고양시에서는 지하철 3호선 주변을 따라 최근 7년 동안 지반 침하 사고가 9차례 발생했다. 백석동과 마두동 일대에서 발생한 사고만 도로 균열을 포함해 8차례다.》 2019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공사 현장에서 싱크홀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1명이 숨졌고, 앞선 2014년에는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주변에서 싱크홀이 잇따라 발생해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땅 꺼짐 사고가 되풀이되는 지역 주민들은 발밑이 불안하다. 근본적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이유다.○ “과도한 개발과 지하수 유출이 문제” 마두동 건물 기둥 파손과 도로 지반 침하의 직접적 원인은 아직 조사 중이다. 건물 앞 지반 침하가 건물 기둥 파손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초기 진단 결과만 나왔다. “건물의 붕괴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진단 결과도 나왔지만 입주자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10일 현재 이 건물은 입주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건물사용제한 명령이 내려져 있다. 건물 내 학원과 병원, 상점 등 78곳은 안전진단 검사가 끝날 때까지 길게는 한 달 이상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건물에 입주한 한 상인은 “삼풍백화점처럼 무너질까 봐 두렵다. 다시 입주해 장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했다. 전문가들은 일산 일대의 일부 지역 지반이 원래 약한 것이 잇따른 지반 침하 사고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심 개발 과정에서 지하수가 다량 빠져나가면서 지하에 빈 공간이 생겼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석환 대진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한강 하류에 있는 고양시 일대는 지반이 약한 곳이 곳곳에 있고, 지하수 수위도 높다는 특징이 있는데 지하철이 건설되고 빌딩이 들어서면서 지하수 수위가 낮아진 것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020년 여름 큰비로 지하수가 차 있다가 빠져나가며 물길이 생겼고, 물길이 골을 만들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 5개 신도시의 지반을 조사했던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석좌교수도 “일산은 강과 가까운 데다 진흙과 미세모래 지반 지역도 곳곳에 있어 흙이 지하수와 함께 쓸려 나갈 위험이 비교적 높다”고 지적했다. 지반 침하 사고가 일어났다고 해서 인근 지역이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지반이 약하다고 일대 전체가 싱크홀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면서 “(건설·건축 시) 기초공사를 확실히 했거나 위험이 예상될 때 보강한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도 “일산 전체 지반이 취약한 건 아니다”라며 “건물 균열이나 도로 침하를 파악하고 문제가 되는 지역의 건물 기초를 보강하면 된다”고 말했다.○ “지하 공간 통합지도 구축해야” 결국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는 지반이 약한 곳을 미리 파악하고, 위험이 감지되면 단단히 보강해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고양시는 최근 마두동 건물 기둥 파손 사고가 벌어지자 연약 지반 위에 조성된 도로에 대한 전수조사와 복구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왕복 8차로 이상 도로를 시작으로 이면도로와 보도 등을 포함한 110km 구간에 지표투과레이더(GPR) 장비를 투입해 땅속에 공간이 생겼는지를 확인할 예정이다. 고양시는 앞서 지반 침하 사고가 이어지자 결함이 발견된 하수관을 정비해 왔다. 국토교통부도 2014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에서 싱크홀이 잇따르자 본격적으로 싱크홀에 주목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600억여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지하 안전 관리에 관한 특별법’ 등 제도를 정비했다. 하지만 싱크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싱크홀 예방 시스템 구축에 투입된 정부 예산 647억 원 중 지반 함몰 발생 및 피해 저감을 위한 기술, 지하 공간 탐사, 지하 안전 관리 시스템 구축 및 운영 등에 200억 원 이상이 들었다. 가장 많은 예산이 쓰인 건 총 401억 원이 들어간 ‘지하 공간 통합지도’ 구축 사업이다. 싱크홀 발생 취약 구역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지도다. 전문가들은 이 지도를 더욱 세밀하게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만든 지도는 연약한 지반에 대한 정보가 주를 이루는데 싱크홀의 원인이 되는 지하 시설물 노후도, 지하수 수위 등 정보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후한 상·하수도관 교체 시급 실제 국토부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싱크홀 1431건 가운데 ‘상하수도관 손상 또는 노후화’로 인해 발생한 사고가 782건으로 전체의 54.7%에 이른다. 한데 지난해 말 기준 노후도가 확인되지 않은 전국의 상·하수도관이 총 4만5627km에 이른다. 설치된 지 40년 이상인 상·하수도관이 8424km, 30∼40년인 것이 2만6350km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석환 교수는 “지하 공간 통합지도에는 지반의 특성과 지하수위 변동 등 기초 조사는 물론이고 상하수도관로 노후도 등의 정보까지 담아야 한다”며 “위험한 지하 공간을 파악하고 신규 공사 시 참고할 수 있는 데이터를 더 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봉직 한국교통대 건설환경도시교통공학부 교수도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 대도시에 지역별 지질학적 특성을 조사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면서 “한국도 이같이 지역별 지질학적 특성을 정리해 두면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 시설물 공사 시 현장의 관리·감독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하 공사 후 다짐(되메우기) 불량, 굴착공사 부실, 폐자재·폐관 방치 등도 싱크홀의 주요 원인이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굴착 깊이가 10m 이상인 공사나 터널 공사 때는 착공 전후 지하안전영향조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시공사가 공사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 절차를 소홀히 하는지 잘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지자체가 관련 인력을 늘리고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기정 한국지하안전협회 회장은 “노후 상하수도관을 보수하고 교체할 필요성이 작지 않지만 지자체의 인력과 예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5년마다 이뤄져야 하는 지하시설물 조사도 사실상 서울 부산 등 주요 도시에서만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경찰의 긴박한 임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형사 책임을 감면하는 내용의 경찰관 직무집행법(경직법) 개정안이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됐다. 지난해 12월 8일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된 개정안은 인권 침해 우려로 계류됐다가 책임 감면 범위를 수정한 끝에 통과됐다. 경찰은 법안 통과를 환영하고 있지만, 내부에선 공권력 오·남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경직법 개정안은 경찰관이 임무 수행 중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형사책임을 경감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살인과 폭행, 강간 등 강력범죄나 가정폭력, 아동학대가 행해지려고 하거나 행해지고 있어 타인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해 발생의 우려가 명백하고 긴급한 상황’으로 면책 상황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개정안은 법원 판결 시 판사가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경우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하도록 했다. 이에 따르면 술에 취해 경찰을 공격하려던 남성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발생한 경찰의 폭행은 상당 부분 면책 받을 가능성이 크다. 또 흉기로 시민을 위협하는 피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테이저건 등 무기 사용을 한 경우 역시 형사 책임 감면 사유가 될 수 있다.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인천 남동구에서 발생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을 계기로 논의가 촉발됐다. 범인을 신속하게 제압하지 못한 경찰관의 안일한 대응이 문제로 떠올랐으며, 경찰관이 현장에서 형사 소송 등을 우려해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한계도 지적됐다. 경찰은 이번 경직법 개정안 통과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개정안에 대해 “경찰의 적극적 조치를 위한 최소한의 법적인 뒷받침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시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경찰이 공권력을 적극 행사해 피해를 막고, 소송 위험을 해소하는 데 개정안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청 인권위원회 관계자는 “면책규정으로 일선 경찰의 물리력 사용 오남용을 부추길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화마(火魔)는 사랑하는 이들의 백년가약마저 갈라놓았다. 6일 경기 평택시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 진화 중 순직한 박수동 소방장(32)은 다음 달 결혼을 앞둔 참이었다. 함께 순직한 조우찬 소방교(26)도 같은 소방관 여자친구와 곧 가족 간 상견례를 앞두고 있었다. 단란한 가정을 꾸릴 희망에 들떠 있던 두 예비 신랑이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났다. 7일 평택제일장례식장 빈소에서 만난 박 소방장의 숙부 박천군 씨(58)는 “지난주 통화할 때 ‘요즘 작은아빠를 향한 사랑이 식은 것 같다’고 농담하니, ‘여자친구가 생겨서요’라며 웃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박 소방장의 여자친구는 이날도 서 있기도 힘든 몸을 가까스로 추슬러 가며 이틀째 빈소를 지켰다. 빈소에서 만난 그는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은 뒤 한마디씩 말했다. “수많은 사고가 있었는데도 여태… 이번 일을 계기로 또 다른 아픔이 이어지지 않도록 (소방) 시스템이나 장비가 개선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구조팀 막내였던 조 소방교는 지난해 5월 소방관이 된 뒤 같은 소방서 동료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조 소방교의 10년 친구 김정빈 씨(27)는 빈소에서 “여자친구와 2주 뒤 상견례한다고 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 소방교는 지난해 소방관 1명이 순직한 쿠팡 물류창고 화재에도 출동했다. 김 씨는 “우찬이가 다녀와서 무척 힘들어했다”고 했다. 두 순직 소방관 모두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을 천직으로 알았다. 박 소방장은 어려서부터의 꿈이 소방관이었다. 그의 외삼촌 정석 씨는 “(박 소방장이) 소방관 일에 자부심이 넘쳤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조 소방교의 친구 김 씨는 “우찬이가 ‘우리나라 불은 내가 다 꺼버릴 것’이라고 포부를 얘기하곤 했다”고 전했다. 이번 화재 진화 중 순직한 이형석 소방경(51)은 90대 노모를 모셨다. 속이 깊었고,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위험한 현장 출동 얘기는 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빈소에서 한참을 흐느끼던 이 소방경의 둘째 형은 “힘든 일은 속으로 삭이던 동생이었다”며 먼 곳을 바라봤다. 이 소방경과 8년간 함께 근무한 서정수 소방교는 “정말 항상 밝고 긍정적인 분이셨다”며 눈물을 흘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빈소를 찾은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투철한 책임감과 용기로 화마와 맞서다 순직하신 세 분 소방관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순직한 세 소방관의 영결식은 8일 오전 9시 30분 평택 이충문화체육센터에서 경기도청장으로 엄수된다.유족들 “구할 사람 없는 상황, 왜 진입시켰나” 소방 “작업자 남아있다고 해 진입”… 경찰, 시공-감리사 압수수색 경기 평택시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의 화재 진화 중 순직한 소방관 3명의 유족들은 “소방당국의 현장 진입 결정이 무리했다”며 7일 사고 경위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순직한 이형석 소방경의 형은 이날 오전 평택 제일장례식장 빈소에서 “(창고 안에) 구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위험한 곳에 왜 진입하도록 했는지 당국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순직한 박수동 소방장의 작은아버지 박천군 씨는 “사고 당시 소방관의 위치를 알았을 텐데 구조가 왜 늦어졌는지 의문”이라며 분통해했다. ‘소방을 사랑하는 공무원노동조합’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반복되는 무리한 진압 명령으로 우리는 다시 동료를 잃었다”며 “화재 진압 매뉴얼을 개정하고 대비책을 강구하라”고 주장했다. 소방당국은 “현장에 탈출한 작업자 5명 외에 추가로 작업자가 3명 더 남아 있다는 말을 듣고 수색에 나섰던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순직 소방관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에서는 열과 질식으로 인한 사망으로 보인다는 구두소견이 나왔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이번 화재와 관련해 7일 냉동창고 신축 시공사와 감리회사 등을 압수수색했다.평택=송진호 기자 jino@donga.com평택=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겨울에 무리한 야간작업을 하다 불이 났을 것으로 의심됩니다. 안타까운 소방관 순직이 반복되고 있는데 소방당국의 대응도 아쉽습니다.” 7일 오후 경기 평택시에서 만난 경광숙 전 소방관은 냉동창고 신축 공사 화재 현장 주변을 기자와 함께 3시간가량 둘러보는 동안 탄식을 멈추지 않았다. 소방관으로 35년 동안 일한 경 전 소방관은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때 서울 도봉소방서 구조대장으로 수십 명의 생명을 구한 안전 전문가다.○ 무리한 야간작업 강행경 전 소방관은 공기를 단축하기 위한 무리한 야간작업이 화재의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화재 발생 신고 시간은 5일 오후 11시 46분. 당시 현장 1층에서 작업자 5명이 바닥 타설과 미장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기온이 낮으면 표면 수분이 건조되지 않기 때문에 바닥공사는 영상 5도 이하에서는 가급적 하지 않는다”며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작업했으니 영하였을 텐데 양생을 위한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화기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동한 소방당국은 큰불을 잡은 후 경보를 해제했는데, 이후 송탄소방서 구조팀 소속 소방관 5명이 인명 수색을 하기 위해 투입됐다가 갑자기 불길이 재확산돼 그중 3명이 참변을 당했다. 경 전 소방관은 건물 외벽이 샌드위치 패널로 돼 있고 현장에 보온재 등이 많아 불길이 급격하게 되살아났을 것으로 봤다. 그는 “철판 사이 우레탄이나 스티로폼이 들어간 샌드위치 패널의 경우 겉으로는 진화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후 작은 불씨만 생기면 불길이 폭발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후배 소방관들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반복되는 소방관 순직, 개선 매뉴얼 시급지난해 6월 경기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때 소방관 한 명이 고립돼 숨졌는데 7개월 만에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 것을 두고 소방당국의 대응도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경 전 소방관은 “현장에 있지 않아 함부로 말할 순 없지만 화재 현장에서 한꺼번에 인력을 철수시킬 경우 이번처럼 일부가 고립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잔불이 남은 상황이라면 화재진압팀을 철수시키지 않고 그대로 둔 상태에서 구조팀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전장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구조팀에 퇴로 확보를 위한 라이트라인이 지급됐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라이트라인은 짙은 연기 속에서 출구를 찾을 수 있도록 불빛으로 탈출 경로를 표시해 주는 장비다. ‘소방장비 분류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라이트라인은 화재 진압 기본 장비다. 하지만 소방당국은 사고를 당한 송탄소방서 구조팀이 라이트라인을 지참했느냐는 본보의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않았다. 경 전 소방관은 “경찰과 소방 등이 총력을 기울여 소방관 인명 피해가 커진 이유 등을 분석 중인 걸로 안다”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외부 기관 등이 참여한 철저한 분석을 거쳐 현장 상황에 맞도록 화재 진압 매뉴얼을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번 사고를 두고 예견된 인재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공사 현장에서는 2020년 12월에도 작업자 3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를 조사한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2월 발간한 사고 조사 보고서에서 공사 발주자(사모펀드)의 투자자와 시공사가 사실상 ‘같은 주체’라며 “감리의 위상이 건설사와 대등한 관계에서 견제를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평택=이경진 기자 lkj@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경기 평택시 청북읍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의 화재 진화 중 순직한 소방관 3명의 유족들이 “소방당국의 현장 진입 결정이 무리했다”며 7일 사고 경위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순직한 이형석 소방경의 형은 이날 오전 평택 제일장례식장 빈소에서 “(창고 안에) 구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위험한 곳에 왜 진입하도록 했는지 당국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순직한 박수동 소방장의 작은 아버지 박천군 씨는 “사고 당시 소방관의 위치를 알았을 텐데 구조가 왜 늦어졌는지 의문”이라며 분통해했다. ‘소방을 사랑하는 공무원노동조합’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반복되는 무리한 진압 명령으로 우리는 다시 동료를 잃었다”며 “지휘부는 화재 진압 매뉴얼을 개정하고 대비책을 강구하라”고 했다. 소방당국은 이날 유족 대표 3명과 함께 화재 현장을 찾아 파악된 사고 경위를 설명한 뒤 “다음 주 현장 합동감식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이번 화재와 관련해 7일 냉동창고 신축 시공사와 감리회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백신 2차까지 다 맞았는데 왜 못 들어가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유효기간이 적용된 첫날인 3일 전국 다중이용시설에서는 손님들의 이 같은 항의와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7월 6일 이전 백신 2차 접종을 마치고 180일이 지났지만 3차 접종은 받지 않아 방역패스 유효기간이 만료된 이들이 식당 등에 입장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3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에서는 입장을 거부당한 손님 일행이 출입을 관리하는 종업원에게 언성을 높였다. 이들은 “우린 화이자 백신을 2차까지 맞았다. 증명서까지 갖고 있는데 왜 밥을 못 먹게 하느냐”고 항의했다. 알고 보니 외국 국적자 4명 일행으로 미국에서 지난해 5월까지 2차 접종만 마친 상태였다. 이 식당 종업원 A 씨는 “유효기간 정책을 아예 모르는 분이 적지 않다”라고 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도 방역패스 만료자와 함께 온 일행이 입장을 거절당했다. 이 식당 종업원 차진아 씨(50)는 “QR코드를 확인 단말기에 찍어 보고 나서야 본인이 만료자인 걸 아는 분도 있었다”고 했다. 꾸준히 피트니스센터에 다녔다는 직장인 B 씨는 “건강상 우려되는 점이 있어 3차 접종을 받지 않았는데 오늘부터 출입이 금지됐다”며 아쉬워했다. 백신 접종이 가능한 병원에는 이날 오전부터 평소보다 긴 줄이 이어졌다. 유효기간 만료로 일상에 제약이 생길 것을 우려한 3차 접종 대상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룬 곳이 적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의 한 병원 관계자는 “오늘 예약 없이 잔여 백신을 맞으러 온 사람이 평소의 2배나 됐다”고 밝혔다. 서울 중랑구의 한 병원 관계자도 “오늘 백신을 맞은 42명 중 40명이 유효기간 만료를 앞둔 백신 3차 접종자였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은 일이 적잖게 늘었다. 인파가 몰리는 시간대에는 방역패스 확인을 안내하다가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일식당 종업원 이희윤 씨(25)는 “평소에는 단말기에서 ‘접종 완료 후 14일이 경과되었습니다’라는 소리만 확인하면 됐는데 오늘부터는 유효기간 정책까지 설명하려니 접객에 2배 정도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피트니스센터 관리자는 “최근 방역패스 만료를 앞두고 회원 탈퇴와 환불을 요청한 고객이 2명 있었다”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

“백신 2차까지 다 맞았는데 왜 못 들어가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 유효기간이 적용된 첫날인 3일 전국의 다중이용시설에서는 손님들의 이 같은 항의와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7월 6일 이전 백신 2차 접종을 마치고 180일이 지났지만 3차 접종은 하지 않아 방역패스의 유효기간이 만료된 이들이 식당 등에 입장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방역패스 유효기간 만료자들은 현재 전국에 약 45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에서는 입장을 거부당한 손님 일행이 출입을 관리하는 종업원에게 언성을 높였다. 이들은 “우린 화이자 백신을 2차까지 맞았다, 증명서까지 갖고 있는데 왜 밥을 못 먹느냐”고 항의했다. 그러나 일행 중 외국인 1명이 미국에서 지난해 5월 2차 접종까지만 한 상태였다. 이 식당 종업원 A씨는 “유효기간 정책을 아예 모르는 분이 적지 않다”면서 “죄송한 마음으로 손님을 돌려보내고 있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도 방역패스 만료자와 함께 온 일행이 입장을 거절당했다. 이 식당 종업원 차진아 씨(50)는 “QR코드 확인 단말기에 찍어보고 나서야 본인이 만료자인 걸 아는 분이 많다”고 했다. 직장인 박재형 씨(34)는 “접종 유효기간이 지난 걸 뒤늦게 알아, 오늘 혼자 밥을 먹어야 했다”고 했다. 꾸준히 피트니스센터에 다닌다는 직장인 B씨는 “건강상 우려되는 점이 있어 3차 접종을 하기는 어려운데, 오늘부터 센터 출입이 금지됐다”고 말했다. 백신접종이 가능한 병원에는 이날 오전부터 평소보다 긴 줄이 이어졌다. 유효기간 만료로 일상에 제약이 생길 것을 우려한 3차 접종 대상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병원 관계자는 “오늘 예약 없이 잔여백신을 맞으러 온 사람이 평소의 2배 정도 많았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의 한 병원 관계자도 “오늘 백신을 맞힌 42명 중 40명이 유효기간 만료를 앞둔 백신 3차 접종자였다”라고 밝혔다. 자영업자들은 일이 적지 않게 늘었다. 인파가 몰리는 시간대에는 QR코드 단말기 옆에서 방역패스 확인을 안내하다가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서울 종로구의 한 일식당 종업원 이희윤 씨(25)는 “평소에는 단말기에서 ‘접종 완료 14일 지났습니다’라는 소리만 확인하면 됐는데, 오늘부터는 유효기간 정책까지 설명하려니 접객에 2배 정도 시간이 더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피트니스센터 관리자는 “최근 방역패스 만료를 앞두고 회원 탈퇴와 환불을 요청한 고객이 2명 있었다”고 말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어디서든 책을 불태우는 자들은 결국 인간도 불태울 것이다.” 19세기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남긴 이 말은 깊은 함의를 갖는다. 책을 태우는 행위가 가진 폭력성과 잔혹함은 물론이고 인간 못지않게 책이 갖고 있는 존엄성에 대해서도 언급한 말이다. 책을 태우는 일이 그렇게 엄청난 사건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나, 역사 속에서 책을 불태운 행위는 오늘날까지도 꽤나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다. 책과 기록이 불타 없어진다는 건 당대 사람들이 축적한 모든 물질적, 정신적 자산이 사라지는 충격을 가져다주는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있었으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카이사르의 침입으로 파괴됐다. 유럽의 종교혁명 때는 혁명을 주도한 신교도들이 구교의 흔적을 지우고자 대학 도서관을 공격해 불태웠다. 1814년 미국을 침공한 영국군은 미국 의회도서관부터 불태웠다. 1992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에는 세르비아 민병대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가·대학 도서관을 포격하는 동시에 도서관의 불을 끄려 하거나 책을 구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달려드는 이들을 철저히 막았다. 최근에도 중국의 반체제 지식인 아이웨이웨이가 공개한 신작 영상 ‘책은 스스로 불탄다’에서 자신의 회고록을 태우며, 인권이 탄압받는 현실을 비판했다. 책을 태우는 일은 지금도 꾸준히 발생하며, 사회에 큰 메시지를 던지는 사건이다.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옥스퍼드대 보들리도서관의 관장인 저자는 이 사건들을 돌아보며 인류사에서 책과 도서관이 지닌 의미를 정리했다. 전자책이 등장하고, 모든 지식을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는 시대에 기록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겠지만, 저자는 현재를 ‘책의 위기’ 시대로 진단한다. 디지털 홍수가 책과 도서관이 사라질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데다 온라인 데이터에 대한 보존, 관리의 필요성이 간과되고 있기 때문. 저자가 “우리가 향유하는 지식과 문화는 결코 쉽게 전해지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중력을 거스르는 몸짓, 러닝머신 위를 구르고 뛰노는 춤, 마치 묘기를 보는 듯 갖가지 생활 소품을 활용한 고난도 동작까지…. 무용수들은 인간의 신체로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 인체와 사물의 접점을 창의적으로 해석한 현대무용단 멜랑콜리댄스컴퍼니가 내년 1월 7,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신작 ‘모빌리티’를 선보인다. 2022 문화예술위원회 신작 발굴 프로그램인 ‘창작산실’ 선정작이다. 안무는 무용단 소속 안무가 정철인(32·사진)이 맡았다. 그는 ‘비행’ ‘0g’ ‘초인(위버멘쉬)’ 등 전작에서 리듬감, 무게감을 변주하며 다양한 메시지를 안무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용계가 주목하는 젊은 안무가 중 한 명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에서 만난 그는 “인간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활동 범위가 넓은 동물”이라며 “우리 삶 속에도 수많은 이동수단이 있는데 ‘모빌리티’에선 이를 인간 신체의 연장선으로 해석해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갖가지 소품, 기계를 활용해 몸의 언어를 구사해 왔다. 이번에는 ‘이동’ ‘움직임’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스케이트보드가 등장한다. 무용수들이 이를 의족처럼 활용해 걷기도 하고 굴러가는 보드 위에 몸을 잠시 싣기도 한다. 그는 “사실 이동 하면 자동차가 떠올랐지만 무대 위에서 쓸 수 없어 스케이트보드를 택해 ‘확장된 다리’처럼 활용했다”고 했다. 이어 “바이러스도 인간의 이동에 의해 확산한다. 팬데믹 이후에는 모빌리티의 개념도 변하고 확장할 것이라 본다”며 기획 의도를 부연했다. 몸을 잘 쓰는 안무가라고 해서 신체 단련에만 집중할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는 작품을 준비할 때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자료를 검토하고 조사하며 심혈을 기울인다. 춤에 철학을 담기 위한 그 나름의 노력이다. 정 안무가는 “‘모빌리티’에는 결국 인간이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담긴다고 생각한다”며 “자주 접하는 자동차의 후방카메라는 물론 드론에 달린 카메라도 우리 눈을 대신하는 신체 일부가 될 수 있다. 이 오브제들을 어떻게 무용으로 표현할지 늘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2016년 직접 무용단을 창단한 그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여러 안무작을 흥행시켰다. 그는 “과거 수많은 경연에선 ‘1등을 해야겠다’는 욕심이 작품에 묻어났다”며 “지금은 좀 더 편안한 맘으로 관객이 작품에서 희열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지난해 팬데믹으로 여러 공연이 무산되자 빠르게 시야를 돌려 무용수들과 ‘댄스필름’ 제작에도 공을 들였다. 현대무용을 다소 어렵게 느끼는 관객에게 먼저 다가가려는 손짓이자 스스로 새로운 무대를 찾아내려는 시도였다. 그는 “무대든 댄스필름이든 어떤 새로운 움직임을 발견하고 찾아냈을 때 모든 게 달라 보이기 시작하고 짜릿하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안무를 뽑아내는 유쾌한 실험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2만∼5만 원, 8세 이상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중력을 거스르는 몸짓, 러닝머신 위를 구르고 뛰노는 춤, 마치 묘기를 보는 듯 갖가지 생활 소품을 활용한 고난도 동작까지. 이들은 인간의 신체로 도대체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 신체의 움직임에 천착해 인체와 사물의 접점을 창의적으로 해석한 현대무용단 멜랑콜리댄스컴퍼니가 다음달 7,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신작 ‘모빌리티’를 선보인다. 2022 문화예술위원회의 신작 발굴 프로그램인 ‘창작산실’에 선정된 작품이다. 작품의 안무를 맡은 건 무용단의 정철인 안무가(32). 그는 ‘비행’ ‘0g’ ‘초인(위버멘쉬)’ 등 안무작에서 삶의 속도, 리듬감, 무게감을 변주하며 다채로운 메시지를 몸에 녹여내 무용계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인근에서 만난 그는 “인간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활동 범위가 넓은 동물이다. 우리 삶 속에도 수많은 이동수단이 있는데 ‘모빌리티’에선 이를 인간 신체의 연장선으로 해석해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갖가지 소품, 기계를 활용해 몸의 언어를 구사해왔다. 이번에는 ‘이동’ ‘움직임’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스케이트보드가 등장한다. 무용수들이 이를 의족처럼 활용해 걷기도 하고 굴러가는 보드 위에 몸을 잠시 싣기도 한다. 정 안무가는 “사실 이동하면 자동차가 떠올랐지만 무대 위에서 쓸 수 없어 스케이트보드를 택해 ‘확장된 다리’처럼 활용했다”고 했다. 이어 “바이러스도 인간의 이동에 의해 확산한다. 팬데믹 이후에는 모빌리티의 개념도 변하고 확장할 것이라 본다”며 기획 의도를 부연했다. 2016년 직접 무용단을 창단한 그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선보인 여러 안무작들이 호평 받았다. 그는 “수많은 경연에서 ‘1등을 해야겠다’는 욕심이 작품에 가득 묻어났다. 지금은 좀 더 편안한 맘으로 관객이 작품에서 희열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지난해 팬데믹으로 여러 공연이 무산되자 빠르게 시야를 돌려 무용수들과 ‘댄스필름’ 제작에도 공을 들였다. 그는 “무대든 댄스필름이든 어떤 새로운 움직임을 발견하고 찾아냈을 때 모든 게 달라보이기 시작하고 짜릿하다. 앞으로도 새로운 안무를 뽑아내는 유쾌한 실험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김기윤기자 pep@donga.com}

2004년 7월 24일은 한국 뮤지컬의 새 막이 열린 날로 평가된다. 뮤지컬의 대중화를 이끈 작품이자 최고 흥행작 중 하나인 ‘지킬앤하이드’의 국내 초연 개막일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지킬 역의 배우 류정한(50)은 김소현, 최정원과 호흡을 맞추며 새로운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같은 배역을 번갈아 연기한 조승우를 비롯해 김아선, 소냐 등이 꾸민 무대는 연일 평단과 관객의 호평이 이어졌고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 기록을 남겼다. 17년 전 첫 무대를 떠올리며 “한마디로 밑천이 없던 때다. 별생각 없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만 신경 썼다”던 류정한이 한층 더 섬뜩한 모습의 ‘류지킬’로 다시 나타났다. 탁월한 가창력과 치밀한 연기는 그의 무기. 지킬 역할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소화하며 ‘지킬 장인’으로 불리는 그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지킬앤하이드’로 관객과 만난다. 그는 “지킬 공연 300회를 채우고 싶다”며 “애정과 욕심이 가득 담긴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정한은 “작품이 너무 힘들어 매번 그만두겠다고 입버릇처럼 여러 번 말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지킬’을 완성하고 싶다는 욕심도 동시에 생기더라. 이런 욕심은 모든 배우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또 “무대에서 몸은 힘들어 죽을 것 같아도 정신은 도리어 맑아지는 묘한 희열을 주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1997년 초연한 이 작품은 국내 누적 공연 횟수 1400회, 누적 관람객 150만 명에 달하는 대표적 스테디셀러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지금 이 순간’이 작품 속 ‘킬링 넘버’다. 인간 내면의 선악과 양면성을 내세운 원작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각색했다. 선한 의사 지킬은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다고 믿는 인물. 자신의 몸에 약물을 투여해 실험체로 삼고, 두 개의 자아인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며 갈등한다. 극중 대결 장면에서 시시각각 180도 돌변하는 1인 2역 연기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객석을 향해 손을 뻗는 류정한은 “결국 ‘당신도 우리도 모두 선과 악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 게 극의 핵심”이라고 했다. 류정한은 좀처럼 언론 인터뷰에 나서지 않기로 유명한 배우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에서 만난 그는 지킬을 다시 맡은 소회 말고도 하고픈 얘기가 많아 보였다. 그는 “팬데믹을 겪으며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무대들을 돌아봤다. 다시 관객과 만나는 것만으로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내년이면 데뷔 25주년을 맞는 뮤지컬 대선배로서의 책임감, 고민도 가득했다. 그는 “드라마, 영화와 달리 공연은 언제 멈출지 모르는 불안 속에 흘러간다. 위험을 무릅쓰고 ‘공연 보러 오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상황도 참 어렵다”고 털어놨다.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는 1997년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로 데뷔했다. 이후 ‘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해 거의 모든 국내 흥행작의 초연을 맡은 입지전적의 경력을 쌓았다. 류정한은 “운이 좋았다. 뮤지컬이 자리 잡는 초창기라 수혜를 받았다. 제 목소리, 발성, 연기가 싫을 때도 있었지만 무대에서 오래 버틴 게 큰 미덕”이라고 했다. 그가 버틴 세월만큼 그를 보고 꿈을 키운 후배도 많다. 현재 뮤지컬 작품에서 주연으로 활동하는 카이, 전동석은 물론 함께 ‘지킬앤하이드’에 출연 중인 신성록, 홍광호 등 후배들은 그의 팬클럽을 자처하며 요즘에도 “자리를 잘 지켜주는 형이 고맙다”고 고백한다고. 얼마 전부터는 무대에서 오래 버텨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그는 “네 살인 딸이 공연장에서 제 무대를 보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60세까지 노래하고 싶다”며 웃었다. 내년 5월 8일까지, 7만∼15만 원, 14세 이상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2004년 7월 24일은 한국 뮤지컬의 새 막이 열린 날이다. 뮤지컬의 대중화를 이끈 작품이자 역대 최고 흥행작 중 하나인 ‘지킬앤하이드’의 한국 첫 공연일. 국내 첫 스릴러 뮤지컬을 표방한 이 작품에서 ‘지킬’ 역의 배우 류정한(50)은 김소현, 최정원과 호흡을 맞추며 새로운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같은 배역의 조승우를 비롯해 김아선, 소냐 등 출연진이 꾸린 무대는 뮤지컬이 한국에서 자리 잡기 전인 당시에도 큰 흥행 기록을 썼다. 17년 전 첫 무대를 떠올리며 “한 마디로 밑천이 없던 때다. 별 생각없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만 신경 썼다”던 류정한이 한층 더 섬뜩한 모습의 ‘류지킬’로 다시 나타났다. 탁월한 가창력과 치밀한 연기는 그의 무기. 지킬 역할을 국내서 가장 많이 소화하며 ‘지킬 장인’으로 불리는 그가 내년 5월 8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지킬앤하이드’의 관객과 만난다. 지킬 역할만 300회를 채우고 싶다는 그의 애정도, 욕심도 가득 담긴 작품이다.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정한은 “작품이 너무 힘들어 시즌이 끝나면 그만두겠다고 입버릇처럼 이미 여러 번 말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기했던 ‘지킬’을 완성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이런 욕심은 모든 배우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돌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또 “무대 위에서 몸은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정신은 도리어 맑아지는 이상한 희열을 주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1997년 초연한 작품은 국내 누적 공연 횟수 1400회, 누적 관람객 150만 명에 달하는 대표적 스테디셀러다. 뮤지컬에 관심 없는 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넘버 ‘지금 이 순간(This is the Moment)’을 남겼다.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의 대결을 전면에 내세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원작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를 각색했다. 선한 의사 ‘지킬’은 인간의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다고 믿는 인물. 스스로에게 약물을 투여해 실험체로 삼으며 두 개의 자아인 지킬과 하이드를 오가며 갈등한다. 특히 극중 ‘대결(The Confrontation)’ 장면에서 시시각각 두 자아를 오가며 180도 돌변하는 1인 2역 연기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때 객석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손을 쭉 뻗는 류정한은 “결국 ‘당신도 우리도 모두 ’선과 악‘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 게 극의 핵심”이라고 했다. 사실 류정한은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라 인터뷰에 서툴다”지만 좀처럼 언론 인터뷰에 나서지 않기로 유명하다. 지킬로 복귀한 개인적 소회를 털어놓는 것 말고도 뭔가 하고픈 얘기가 더 많아보였다. “천재지변에 가까운 팬데믹을 겪으니 불안하고 우울한 생각이 들었어요. 무대에 서지 못할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그동안 제가 공연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온 것 같아요. 다시 무대에 서는 것 자체로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또 닥친다면 공연예술인들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내년이면 데뷔 25주년을 맞는 뮤지컬 대선배로서의 책임감, 고민도 가득했다. 그는 “드라마·영화는 돌파구를 찾아 성장하고 있는데 공연은 언제 다시 멈출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며 “위험을 무릅쓰고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이 고마우면서도 ‘공연 보러 와 달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 참 이기적이면서도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공연계가 희망은 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없다”고 덧붙였다.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는 1997년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토니’ 역할로 데뷔했다. 영어 이름을 지금까지 ‘토니’로 쓴다. 이후 ‘오페라의 유령’의 ‘라울’ 역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거의 모든 흥행 작품의 초연을 맡은 입지전적의 경력을 쌓아갔다. 류정한은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제 목소리가 싫을 때도 많았고 연기도, 발성도 몰랐다. 그저 뮤지컬 초창기라 큰 수혜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잘 버텼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든다”며 웃었다. 그가 어떻게든 버텨온 세월동안 그를 바라보며 꿈을 키운 이들도 있었다. 현재 뮤지컬 무대서 주연급으로 활동하는 신성록, 카이, 전동석 등 배우는 공공연히 “류정한 선배가 롤모델”이라고 말하는 후배들이다. 최근 함께 ‘지킬앤하이드’에 출연 중인 신성록, 홍광호도 “한결같이 자리를 잘 지키는 형이 참 고맙다”며 말을 건넸다고. 류정한은 “제가 밥을 잘 사줘서 그런 것 같다”며 “저 역시 남경주, 최정원 선배들이 굳건히 무대에 서는 걸 본다. 뮤지컬에 헌신한 그들의 삶에 감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그의 차기작은 언제나 모든 공연 팬들의 관심사다. 2017년, 2019년 뮤지컬 ‘시라노’의 프로듀서로 한 차례 변신하더니 내년엔 연극배우로 변신한다. 최근 국립정동극장은 연극 시리즈에서 배우 류정한을 주인공으로 한 프로그램 선보이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배우 송승환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 시리즈에 이은 기획공연이다. 김희철 국립정동극장 대표가 평소 연극에도 열망을 보이던 류정한을 설득했다. 류정한은 “제 이름을 내건 ‘명배우 시리즈’라고 해서 바로 거절했지만, 다시 뭔가 꿈꿀 수 있다는 생각에 도전했다. 지킬앤하이드 이후 연극 준비에 ‘올인’할 생각”이라고 단언했다. 후보로 올린 2, 3편의 작품 중 현재 최종 선택을 앞두고 있다. 팬과 관객을 위해 노래하던 그에겐 얼마 전부터 더 오래 무대에서 버티며 노래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그는 “네 살인 딸이 극장에서 제 공연을 보려면 아직도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60세까지 노래해야할 목표가 생겼다”며 웃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사방이 객석으로 둘러싸인 텅 빈 무대. 배우 한 명이 홀연히 나타나 한가운데 서더니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일곱 살 때 기르던 애완견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이야기부터 어머니의 우울증과 자살 시도까지. 인생 변곡점마다 그는 객석으로 다가가 한 관객에게 ‘잠시 이 역할을 맡아주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배우의 요청을 받은 관객 6, 7명은 그의 이야기 속 연인, 선생님, 아버지로 잠시 변신해 기꺼이 인생 여정에 동참한다. 막이 오를 때까지 미완성 상태였던 1인극은 관객의 참여와 함께 비로소 다인극으로 완성된다. 3일 개막해 내년 1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이 연말 훈풍을 일으키고 있다. 소중한 삶의 순간을 목록으로 만들던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 작품이다. 영국의 유명 극작가 덩컨 맥밀런의 원작을 각색했으며 국내에서는 2018년 초연에 이은 재연이다. 우울증으로 삶의 의욕이 없는 엄마를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주인공은 빛나는 삶의 순간을 뭐든 기록한다. 1번 아이스크림, 2번 물싸움, 3번 혼자 몰래 보는 TV, 4번 물방울무늬 양말…. 그는 삶의 위기를 마주할 때마다 잊고 지내던 리스트를 다시 꺼낸다. 가치 있는 순간을 계속 채워 내려갔고, 리스트는 100만 개까지 늘어난다. 물론 리스트만 적는다고 그가 진정한 행복을 찾은 건 아니다. 위기 때마다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청한다. 극에서는 ‘관객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배우가 “진짜 행복이 뭘까요”, “잘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즉석에서 배우가 된 관객은 자신의 인생철학, 행복론을 들려준다. 배우는 이 말을 곱씹으며 대화하고 다시 극을 이어간다. 배우, 제작진이 “관객의 말을 매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적어두고 싶을 정도”라며 관객 참여 부분을 작품의 매력으로 꼽는 이유다. 주인공의 이름은 극이 끝날 때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나’라고만 지칭할 뿐. 나와 상관없는 한 인간의 굴곡진 인생사처럼 들리던 이 작품은 극이 끝날 때쯤이면 어느새 우리 각자의 이야기가 되어 있다. 배우 이형훈 백석광 정새별이 번갈아가며 연기한다. 전석 5만 원, 14세 이상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사방이 객석으로 둘러싸인 텅 빈 무대. 배우 한 명이 홀연히 나타나 한가운데 서더니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일곱 살 때 기르던 애완견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이야기부터 어머니의 우울증과 자살시도까지. 인생 변곡점마다 그는 객석으로 다가가 한 관객에게 ‘잠시 이 역할을 맡아주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배우의 요청을 받은 6, 7명의 관객은 그의 이야기 속 연인, 선생님, 아버지로 잠시 변신해 기꺼이 인생 여정에 동참한다. 막이 오를 때까지 미완성 상태였던 1인극은 관객의 참여와 함께 비로소 다인극으로 완성된다. 3일 개막해 다음달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홍익대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이 연말 훈풍을 일으키고 있다. 소중한 삶의 순간을 목록으로 만들던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 작품이다. 영국의 유명 극작가 던컨 맥밀란의 원작을 각색했으며 국내에서는 2018년 초연에 이은 재연이다. 우울증으로 삶의 의욕이 없는 엄마를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주인공은 빛나는 삶의 순간을 뭐든 기록한다. 1번 아이스크림, 2번 물싸움, 3번 혼자 몰래 보는 TV, 4번 물방울 무늬 양말…. 그는 삶의 위기를 마주할 때마다 잊고 지내던 리스트를 다시 꺼낸다. 가치 있는 순간을 계속 채워 내려갔고, 리스트는 100만 개까지 늘어난다. 물론 리스트만 적는다고 그가 진정한 행복을 찾은 건 아니다. 위기 때마다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청한다. 극에서는 ‘관객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배우가 ‘진짜 행복이 뭘까요’, ‘잘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묻자 즉석에서 배우가 된 관객은 자신의 인생철학, 행복론을 들려준다. 배우는 이 말을 곱씹으며 대화하고 다시 극을 이어간다. 배우, 제작진이 “관객의 말을 매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적어두고 싶을 정도”라며 관객 참여 부분을 작품의 매력으로 꼽는 이유다. 주인공의 이름은 극이 끝날 때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나’라고만 지칭할 뿐. 나와 상관없는 한 인간의 굴곡진 인생사처럼 들리던 이 작품은 극이 끝날 때쯤이면 어느새 우리 각자의 이야기가 되어 있다. 전석 5만 원, 14세 이상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현대 사회에서 이혼이 더는 별일이 아니라지만, 고대 중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책’과 ‘한비자’에 남은 이혼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이혼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 남편의 요구로 이혼하거나 둘째, 부부 중 인륜을 거스른 범죄를 저지른 자가 있으면 관청이 나서 부부를 강제로 이혼시키기도 했다. 셋째, 부부 사이 애정이 식어 자발적으로 하는 이혼이었다. 세 번째 방식의 경우 부부가 합의한 내용의 서류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어 관청에 제출하면 절차는 마무리됐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우리와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고대 중국인의 삶이 21세기 현대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틱톡’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역사 가르치는 왕쌤’이자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저자가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법한 수십 가지 질문과 답을 엮었다. 생활, 음식, 문화, 감정, 사회의 다섯 가지 주제별로 나뉜 내용에는 ‘옛날에도 신분증이 있었을까’,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택배를 보냈을까’ 같은 질문이 빼곡히 담겨 있다. 저자는 사료에 의거해 간단 명쾌하게 답변을 정리했다. 답변이 특히 쉽게 읽히는 이유는 현시대의 상황과 과거의 생활상에서 공통점을 끌어내려 노력했기 때문. 일례로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길을 찾았을까’라는 질문에 저자는 교차로에 세워진 ‘방패 비석’ 또는 ‘지시비’가 오늘날 내비게이션과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