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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상임위원회 파행→예산안 단독 처리→정국 냉각’이란 예산국회의 구태가 이번에도 되살아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6일 새정치민주연합의 ‘국회 상임위 일정 전면 중단’ 선언으로 순항할 것 같았던 국회 일정이 암초를 만난 탓이다.○ 새정치연합 “여당의 합의 번복에 불만”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26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투명하지 않고 애매한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지원) 예산 합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런 상황이라면 여야 합의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란 생각이 든다”며 상임위 일정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2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간사와 황우여 교육부총리가 합의한 사항을 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뒤집었고, 25일 여야 원내수석부대표 간 합의사항에 대해 교문위 새누리당 의원들이 “금액은 합의하지 않았다”고 맞섰다며 합의 파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이 소식이 전해지자 야당 내부에선 강경론이 득세했다고 한다. 우 원내대표 측 인사는 “여야 합의를 중시하는 우 원내대표가 강수를 든 것은 그만큼 새누리당에 대한 실망이 크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묶여 협상의 운신 폭이 좁은데, 그마저 합의를 이뤄도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협상단 당내 비판 의식해 강경 선회한 듯 하지만 당내에선 새누리당과의 협상에 밀리고 협상단에 대한 실무진의 반발이 커지자 강경 노선을 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 협상 과정에서 당내 반발에 직면하자 강경 노선으로 선회한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25일 문병호 전략홍보본부장이 주재한 고위 전략회의에선 우 원내대표와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 백재현 정책위의장 등 예산안 협상단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원내지도부의 한 의원은 “협상을 하면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새누리당이 일방적으로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은 당초 여야 협상을 통해 누리과정 예산 문제가 해결되면 상임위를 재가동할 생각이었다. 27일 양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오찬 회동을 갖기로 하는 등 대화 창구를 열어놓은 것도 상임위 파행을 조속히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새정치연합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는 “누리과정 예산에 부대조건을 달지 않는 선에서 합의를 시도하겠다”고 밝혔다. 변수는 예산 부수법안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이날 담뱃세 인상이 담긴 지방세법을 예산 부수법안으로 지정하면서 상임위 일정 중단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새누리당 “야당 태도 이해 안 가” 새누리당은 상임위 일정 중단을 ‘낡은 볼모정치’로 규정짓고 맹비난했다.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는 “합의문까지 발표하며 정리된 사안인데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비판했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는 엄연히 법과 절차란 게 있다”며 “법대로 하겠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원내지도부는 이날 오후 상임위 수석전문위원들을 불러 예산 수정동의안 준비에 착수했다.손영일 scud2007@donga.com·고성호 기자}

“공증을 받아서 할 수도 없고….” 당의 혁신을 이끈다는 목표로 출범한 새누리당 보수특별혁신위원회의 핵심 의원은 보수 혁신위 활동에 대해 이같이 탄식했다. 그는 “혁신을 외치면서 계속 보여주기 식 혁신만 하고 있다”며 “(혁신의) 합의를 깼는데도, 답답한 것이,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정치권의 ‘말뿐인 혁신’에 대한 자조인 셈이다.○ 돌아서면 잊는 약속 지난달 30일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2 대 1 이하로 조정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온 뒤 국회에서는 선거구 개편안을 결정할 기구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 등 독립적인 외부 기구에 개편 문제를 맡겨야 한다” “조정 대상 지역구가 아닌 여야 국회의원들이 참여해 논의하자” “여당과 야당,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기구를 결성하자” 등 다양한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미 2012년 국민들에게 약속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공약 자료집에서 ‘선거구 획정의 자의성을 방지하기 위해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출마 당사자가 아닌 100% 외부 인사로 구성한다’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통합당)도 2012년 총선 공약 자료집에서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독립기구화하여, 국회는 획정위가 제출한 선거구 획정안에 대해 가부(可否)만을 표결하도록 함’이라고 했다. 여야 모두 국회의원들을 배제하고 독립된 외부 기구에 선거구 획정을 맡기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선거구제 논란이 본격화되자 여야는 모두 자신들이 한 약속은 까맣게 잊은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선거구획정위원회 외부 설치에 대해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은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했고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 또한 “논의할 점이 많다”고 했다.○ 스스로 한 약속도 모른 척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도외시하는 것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6·4지방선거 전, 논란이 뜨거웠던 ‘기초공천제 폐지’는 사실 여야가 모두 국민들에게 “폐지하겠다”고 약속한 내용이다. 여당은 2012년 대선 당시 “기초자치단체의 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야당 또한 대선 공약으로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2014년 1월, 새누리당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와 관련해 “정당의 역할과 기능을 제한할 경우 헌법에 위배된다”며 슬그머니 물러섰다. 여당의 결정에 “대선 공약 파기”라며 강하게 반발했던 새정치연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철수 당시 공동대표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기초공천 폐지를 주장했지만 의원들의 거센 반발로 무위에 그쳤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겠다며 경쟁적으로 내세웠던 공약도 마찬가지다. 국회 윤리특위는 국회의원의 국회법 위반, 품위 손상 등을 심사하고 징계하는 곳이다. 여야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국회 윤리특위와 관련해 각각 “100% 외부 인사로 충원”(새누리당), “50%를 외부 인사로 구성”(새정치연합)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2014년 현재 국회 윤리특위 위원 15명은 모두 현역 국회의원이다. 이에 대해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공약이라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인 만큼 실현 가능성, 후속 대책 등을 면밀히 생각하고 발표해야 하는데 여야 모두 ‘일단 이기고 보자’는 생각에 큰 고민 없이 공약을 남발한다”며 “국회에 들어와 보니 국민들이 정치에 가지는 불신과 반감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다시 또 ‘혁신’ 꺼내 든 정치권 이미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해버린 여야는 최근 혁신 구호를 다시 꺼내 들었다. 새누리당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보수혁신위원회를, 새정치연합은 원혜영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정치혁신실천위원회를 설치했다. 여야가 혁신위를 통해 경쟁적으로 혁신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벌써부터 당내 반발이 나오는 등 기득권의 저항이 거세다. 새누리당 보수혁신위는 9월 출범 이후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 △국회의원 세비 동결 △체포동의안 기명 표결 및 회기 중 영장실질심사 자진 출석 등의 의제를 논의했다. 보수혁신위는 11일 의원총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보고했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은 ‘인기영합적’ ‘과잉 금지’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하게 반발했다. 새정치연합 정치혁신위도 △관례적으로 야당이 행사했던 국회 도서관장 추천권 폐지 △당 윤리위원회 강화 △비례대표 후보 상향식 선출 △전당대회 특정 후보 공개 지지 금지 등의 혁신안을 당 비상대책위원회에 보고하고 의결했다. 그러나 당장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후보 지지 금지 등의 규정이 실효성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진짜로 혁신하려면 비대화된 중앙당, 특정인에게 집중된 의사결정 구조 등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개혁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툭하면 여야합의 뒤집고 국민 무시 ▼19대 국회 20여건 합의했지만 지도부 흔들기 탓 제때 처리못해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국회의 고질적 병폐는 합의를 안 지키는 것이다. 빈번한 여야의 합의 파기는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여야는 19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된 2012년 5월 30일 이후 20여 건의 합의 문서를 작성했지만 약속은 좀처럼 지켜지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는 ‘국정감사 분리 실시’ 무산이었다. 당초 여야는 6월 원내대표 합의를 통해 8월 26일부터 9월 4일까지 1차 국감을 실시하고, 10월 1일부터 열흘간 2차 국감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국감을 10월에 몰아서 하다 보니 내실 있는 국감이 이뤄지지 않고 내년도 예산안을 충실하게 심사할 시간도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모처럼 여야가 의기투합을 한 것. 하지만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정국 대치가 장기화하면서 국정감사 분리 실시를 위한 ‘국정감사 및 조사법’을 개정하지 못하면서 분리국감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국감은 더 부실하게 진행됐고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기초연금법 처리도 3개월이나 늦어졌다. 여야 원내대표는 “기초연금 관련 법안을 2월 국회에서 합의 처리하도록 노력한다”고 합의했지만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5월 2일에서야 가까스로 처리됐다. 가장 황당한 사례는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학생 대학입학지원 특례법’ 처리 불발이다. 이 법안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수업 공백과 불안정한 심리 상태 등으로 정상적인 입시 준비가 어려웠던 단원고 학생들을 위한 조치로 여야는 8월 13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법안 통과 시기를 놓쳤고 결국 처리가 무산됐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 및 피해 지역에 대한 배상과 보상 및 지원에 대한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당초 여야 원내대표는 8월 19일 합의문에서 ‘배상·보상 문제는 9월부터 논의를 시작한다’고 명시했지만 공수표가 됐다. 결국 여야 원내대표는 두 달 뒤인 10월 31일에야 ‘논의를 즉시 실시한다’고 다시 합의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초선 의원은 “의원들이 기본적으로 당 지도부를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않고 있다”면서 “여야 협상안에 대해 무조건 목소리만 높이고 지도부 흔들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세대 이종수 행정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보수 또는 진보의 의견을 수렴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야가 합의를 하더라도 매번 번복되는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법치주의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김상률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사진)의 과거 ‘북핵 옹호’ 저술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새누리당 하태경 김종훈 이노근 의원은 25일 공동논평을 내고 “(김 수석은) 구차한 변명을 걷어치우고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김 수석은 2005년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시절 책 ‘차이를 넘어서’에서 ‘북한의 핵무기 소유는 생존권과 자립을 위해 약소국이 당연히 추구할 수밖에 없는 비장의 무기’라고 썼다. 하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약소국이라고 핵무기를 추구한다는 논리는 거의 통진당(통합진보당)에서나 펼칠 수 있는 논리”라며 “김 수석이 있을 곳은 청와대가 아닌 통진당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수석이 ‘미국이 테러와 대량살상무기, 북핵을 위협 요소로 규정한 것은 자국 중심의 발상’이라고 쓴 것에 대해선 “김 수석이 반미(反美)주의자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임명 전에 책 내용에 대해 검증을 했고 본인의 소명을 받았다. 더 문제 삼을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김 수석도 “당시 일부 학계의 이론을 소개한 것일 뿐이며 표현상 오해가 있었던 점을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저서의 일부 내용이 ‘북한 핵 개발은 자위용’이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과 유사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돌았다.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서로 인사조차 하지 않는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요즘 야당 의원들과 마주칠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19대 국회가 개원한 지 2년 7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국회 의원회관이나 본관에서 만난 야당 의원들이 모르는 척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도 나는 목례라도 하려고 하는데 야당 의원들은 아예 눈인사조차 안 한다”며 “이것이 지금 국회의 현실 아니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지금 국회에서는 서로를 인정하고 협의하려는 노력보다는 상대방을 짓밟고 이기려는 문화가 팽배해 있다. ‘덧셈의 정치’가 아닌 ‘뺄셈의 정치’다. 의원들에게 개선 방안을 물어봤다.○ 진영 논리만 있고 시대정신은 없다 “여야를 떠나 대부분의 의원에게 정치를 하는 가치와 방향성이 없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25일 이같이 잘라 말했다. 그는 “지역구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지역과 국가의 발전을 어떻게 함께 이룰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오로지 지역만 생각한다”며 “국가의 발전, 한국 사회가 가야 할 방향성 등에 대한 고민과 가치관이 없다”고 말했다. 국가와 국익보다는 자신의 지역구와 진영(陣營)의 논리에 빠져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 여야 의원들이 꼽은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3선 의원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진영에 대해 적개심, 증오심을 갖고 적으로 규정하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며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는 문화보다는 자기 진영의 극단적인 지지층을 의식한 선명성 경쟁이 진영 논리를 더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야의 견해차는 관점이 다른 것이지 정의와 불의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합리적인 토론과 정치적인 조율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당의 존재 이유는 정권 창출이다. 하지만 각 정당들이 보여주는 무한정쟁의 이면에는 ‘전부 아니면 없다’는 극단적 사고방식이 도사리고 있다. 여당의 한 전직 의원은 “지금의 정치는 대권 승리, 총선 승리라는 권력 쟁취에만 몰입돼 있다”며 “오로지 권력 쟁취에만 몰두하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불복 논란과 진영 논리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대정신, 사회공동체의 개선 등에는 관심이 없는 ‘무지(無知)의 정치’가 벌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끊이지 않는 구태, ‘계파’ 진영의 정치 뒷면에는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계파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 “의원총회 등을 보면 저 의원이 우리 당 의원이 맞나 싶다. 당을 위해 뭉치고 의견을 모은다는 생각은 아예 처음부터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계파를 위해 말하고 움직이는 것 같다.” 새정치연합의 한 재선 의원은 계파 정치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다. 친이(친이명박)계, 친박(친박근혜)계, 친노(친노무현)계, 486계…. 국회에서는 끊임없이 계파가 생겨나고 계파 간의 반목과 분열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새누리당에서는 2008년과 2012년 총선에서 친이계와 친박계가 번갈아가며 상대방을 겨냥한 이른바 ‘공천 대학살’을 벌였다. 현 여권은 연이어 정권 창출에 성공했지만 각 정권 주도세력의 감정은 더 나빠졌다. 그래서 “친이계와 친박계는 불구대천의 원수와 가깝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게 나온다. 새정치연합에서도 주요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계파 간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다. 7·30 재·보궐선거 당시 서울 동작을 공천권을 놓고 빚어진 파열음은 계파 갈등의 일단에 불과했다.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특정 계파에 찍히거나, 당론을 배제했다는 이유로 다음번 공천을 못 받게 되는 명분을 주기 싫으니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것이고, 나 역시 부끄럽지만 마찬가지”라며 “오픈 프라이머리 등 철저히 상향식 공천이 되면 현재 계파 중심의 국회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계파 정치도 인물 중심에서 노선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친박, 비박의 구도를 깨고 노선 중심의 정파로 바뀌어야 정당이 유기적인 조직체가 될 수 있다”며 “그러나 중진은 물론이고 초선 의원들도 이 같은 계파 정치 청산에 무관심한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자리 하나가 나면 그 자리에 가려고 (계파에) 줄을 서는 의원이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왜 강경 발언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나” 계파 정치의 심화로 유발되는 또 다른 문제점은 강경파의 득세다.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전문성이나 정책으로 존재감을 보이려 하지 않고 무조건 목소리를 크게 해서 존재감을 보이려는 의원들이 있다”며 “그들의 목적은 그런 존재감을 계파에 보여줘 다시 공천을 받으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의원의 본질적인 역할에 대한 인식과 준비 부족 역시 강경파 득세의 또 다른 원인이라는 진단도 있었다. 야당의 한 비례대표 의원은 “국회 밖에서는 갈등을 부추기거나 목소리를 크게 내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국회의원은 그래서는 안 된다. 갈등을 조정하고 의견을 수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야당의 한 재선 의원도 “국회의원에게 중요한 것은 의원들, 국민들, 지역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능력”이라며 “일부 의원은 소통 능력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소통 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강경파에 대해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이라는 극단적인 비판도 제기됐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사람들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들이다”라며 “여야를 떠나 목소리를 높이고, 극단으로 가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선거 때만 되면 잊지 않고 나오는 ‘폭로 정치’는 진영 논리와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합쳐진 결과물이다. 2012년 대선 당시에도 여야는 상대 후보자들에 대한 주식매매 부당이익 의혹, 고가 전세 논란 등 온갖 의혹 폭로를 주고받았다. 이에 대해 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상대방을 무조건 흔들어야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상대방 비난에 몰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책임한 폭로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각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이와 더불어 ‘선거 승리=권력 독점’이라는 지금의 정치구조를 바꾸는 것도 강경파 득세와 폭로 정치를 막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 위에 국회의원’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버젓이 담배를 물고 있다. 금연구역인데 그러고 있는 거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부터 이렇게 법을 무시하고 있으니 법이 제대로 지켜지겠나….” 국회 본회의를 마치고 나온 한 야당 초선 의원은 이같이 탄식했다. 법을 만드는 역할을 하면서 정작 그 법을 무시하는 의원들의 모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장 출신의 한 야당 초선 의원은 “국회에 와서 가장 황당했던 점이 의원들이 법을 안 지킨다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에서 법이 무서운 줄 모르는 집단을 꼽으라면 바로 국회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입법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는 “지자체에서는 법과 규정을 어기면 곧바로 감사와 징계가 따르기 때문에 일을 할 때 관련법과 규정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찾아가며 한다”며 “그런데 막상 법을 만든다는 의원들이 정기국회 일정, 예산안 처리 일정을 너무나 쉽게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 의원 역시 “‘법을 만들면 법을 지켜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국회에서는 우습게 생각한다”며 “여야 모두 혁신을 외치고 있는데 ‘합의를 파기해도 괜찮다’ ‘국회 일정을 무시해도 괜찮다’ 등 국회에 만연한 집단적 면피 정신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혁신이다”라고 지적했다.한상준 alwaysj@donga.com·고성호 기자}

정의화 국회의장이 24일 국회 상임위원장단, 여야 원내지도부와 연쇄 회동을 갖고 2015년도 예산안과 그에 따른 부수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담뱃세 인상을 위한 개별소비세법 개정안, 지방세법, 국민건강증진법, 조세특례제한법, 소득세법 개정안 등 10여 개가 우선 지정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 같은 예산 부수법안은 예산 집행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래서 예산안과 함께 예산 부수법안 처리가 수레의 두 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예산 부수법안 지정은 국회법에 따른 국회의장의 권한이다. 현재 정부와 여야가 세입 예산 부수법안으로 발의한 법안은 60여 개다. 정 의장은 26일 예산 부수법안을 지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지정된 법안들은 30일까지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내년도 예산안과 함께 다음 달 1일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돼 처리된다. 여야의 시각차는 첨예하게 맞서 있다. 새누리당은 “세입과 세출 예산 법안 모두를 포함시켜야 한다”며 주장하고 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입 예산 법안만 포함시켜야 하며 기본적으로 여야 합의로 처리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정 의장은 이날 여야 원내지도부 등을 만난 자리에서 “예산안 법정 처리기한인 12월 2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에게 “66년 헌정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도록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꼭 합의가 잘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 원내대표도 “헌법과 국회법을 지킨다는 것은 대단히 소중한 가치다. 그 전통을 세웠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앞서 정 의장과 회동한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예산안은 어떤 경우라도 합의 처리가 옳은 길이고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 원내대표는 회동 직후 기자들과 만나 “예산안이 합의 처리되지 않고 일방 처리되면 여러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며, 합의 처리로 12월 9일까지 되면 법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합의 얘기는 하지 않고 무조건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 여당의 태도는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새정치연합은 예산 부수법안의 핵심 쟁점인 담뱃값 인상 관련 법안에도 반대했다. 우 원내대표는 “담뱃세에는 지방세가 들어있기 때문에 (예산 부수법안으로 지정할 경우)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얘기를 (정 의장에게) 했다”고 전했다.고성호 sungho@donga.com·손영일 기자}

“현재 우리는 1류(流) 정치인이 아니다.” 국민의 뜻에 의해 여의도에 입성한 선량(選良)들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흘러나오는 말이다.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2012년 5월 30일 이후 2년 6개월간 헌법기관으로서 정치생활을 했지만 어느새 정치 탁류(濁流)에 휩쓸려 허덕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얘기다. 세월호 참사 이후 6개월 넘게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평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사코 국민의 뜻에 역주행하는 국회의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민의의 전당은 우리에게는 사치라는 체념도 나온다. ‘답답한 정치를 제대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동아일보는 여야 국회의원 20여 명을 심층 인터뷰 했다. 각계의 1류가 선순환할 수 있는 정치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지혜를 물었다.○ 그들은 ‘선량’인가…‘악화가 양화 구축’ 비판론 19대 국회는 수치로만 보면 확실히 물갈이됐다. 18대 현역 의원 62%가 교체됐고, 초선 의원은 전체 의석수(300명)의 절반에 육박한 148명에 달했다. 7·30 재·보궐선거를 통해 충원된 초선까지 합치면 156명이다. 문제는 새 피가 수혈됐어도 국회가 할 일은 하는 생산적 국회로 변했다는 평가는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쟁’으로 상징되는 기존 정치 질서가 여전히 국회를 지배하면서 ‘타협과 대화’의 정치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회를 해산하라’는 여론까지 비등하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공천 당시 정치를 잘할 수 있는 양질의 인사들보다는 당선 가능성만 따져 스펙 좋은 인물들을 주로 발탁시켰다는 지적이다. 2012년 초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을 맡았던 한 인사는 24일 “2월 1일부터 한 달 반 동안 공천을 신청한 1000여 명을 평가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솔직히 시간에 쫓겼다”고 털어놨다. 그는 “정치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도 총선에서 떨어질 것 같아 공천을 못 받는 경우가 있고, 정치를 잘할지는 모르겠지만 스펙이 좋고 전문성이 있어 공천을 한 경우가 있다”고 했다.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도 비슷하게 진단했다. 그는 “석수장이가 눈깜작이부터 배운다는 속담이 있듯이 의원들이 당 실력자의 눈 밖에 나지 않는 방법 등 3류 정치의 처세술부터 배우고 있다”면서 “요즘 초선 의원들을 보면 점점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최고의 선량이 국회에 안 들어오는 이유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수준 낮은 정치 문화 등을 이유로 꼽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류 인사들이 정치를 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정치가 진흙탕이어서 결국 똑같은 사람이 되고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경험적으로 봐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력 부족’ 다수 지적…차기 총선에 관심 집중 의원들 스스로 우리 국회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라는 질문에 많은 의원은 ‘정치력 부족’을 핵심 키워드로 내놓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초선 의원은 “자신의 주장은 잘하는데 상대방을 설득시키지는 못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치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소명의식’과 양보와 타협을 하는 ‘균형 감각’인데 일부 의원은 이 부분에 취약하다”며 “명예와 자리 욕심으로 국회의원을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 여당 의원은 아예 “의원들이 직위를 즐기거나 이용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영남권 재선인 그는 “공직자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권력의 사유화인데 의원이라는 직위를 개인적 이익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직무유기 상태에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일갈했다. 야당 핵심 당직자도 “출세와 명예를 위해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왜 정치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목적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고 못마땅해했다. 의원 대다수가 사실상 2016년 총선 체제로 들어가면서 중앙정치인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는 “의원들이 자신의 열정을 다음 선거를 위해 쏟아붓고 있다”며 “결국 의정생활을 제대로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정치인으로서 ‘깜냥’(능력)이 안 되는 의원들이 있다”고 했다. 중도 성향의 한 야당 초선 의원도 “능력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계파 몫으로 공천 받으려고 목소리만 크게 내는 강경파 의원들이 있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호남권의 야당 재선 의원은 “경험은 부족하지만 계파에 잘 보여서 (19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은 경우가 있다”고 분석했다. 원내 핵심 당직을 맡고 있는 여당 의원도 “의원들이 중앙정치를 해야 하는데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적으로 지역 주민 민원들만 해결하고 앉아 있다”면서 “자기 선거에 악영향을 줄 만한 일에는 아예 끼어들지도 않는다”고 했다. 의원들을 평가하는 구체적 수치까지도 언급됐다. 여당 초선 의원은 “새누리당 현역 의원 158명 가운데 30∼40%는 정치인으로서 옷이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정치인으로서 미흡하고 정무적 감각도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치인이 의사표현을 안 하면 공무원과 같은 것이다. 정치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여당 초선 의원도 “현역 의원 중 70% 이상이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사회에 대한 가치 등이 없는 것 같다”면서 “지역구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꾸 극단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턴’ 정치인…결국 예비 정치훈련 필요 ‘인턴 정치인’ 등의 적나라한 표현도 나왔다. 여당의 4선 중진 의원은 “선거 때마다 대폭 물갈이를 해도 달라진 게 없고 오히려 더 악화됐다. 의원 생활 4년을 하다 이제 정치를 해야 하는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다시 바뀌면서 결국 ‘인턴 국회’가 돼버린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현상은 국회의 경쟁력 저하로 나타난다. 새누리당의 한 최고위원은 “계속 물갈이 형태로 공천이 가다 보니까 행정부에 놀아나는 경우가 있다”면서 “행정부의 한 수 아래로 되면서 정책과 관련해 사실상 컨트롤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론은 정치인 훈련의 강화라는 지적이 많다. 야당 원내대표를 지낸 한 중진 의원은 “국정에는 연습이 없듯이 정치에도 연습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정당은 (정치인 양성학교인) 일본의 마쓰시타(松下)정경숙처럼 정치인을 배출하는 아카데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적어도 1년 전에 출마 결심을 하고 정당에서 홍보와 정책 분야에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소통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야당 재선 의원은 “오히려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소통 능력”이라며 “의원들이나 상대 당, 국민과 소통을 해야 국가를 위해 진짜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성호 sungho@donga.com·한상준 기자}

“자괴감이 든다!”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초선 의원은 “여야가 대립 각을 세우면 당론이라는 이유로 개인이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없어져 버린다”며 이렇게 토로했다. 새누리당 초선 의원의 반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본회의 표결 과정에서 내 소신이 당론에 밀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당내 거물급 의원이 법안을 발의할 때도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찍어준다”고 털어놨다. 국회의원은 개인이 독립적인 헌법기관이지만 현실 정치에선 자율성이 크게 제약된다. 제왕적 당 총재는 사라졌지만 유력 대권주자 등을 중심으로 당내에는 엄격한 서열과 상하관계가 엄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초선 의원들은 계파 수장이나 실권자의 의중을 살펴야 하기 때문에 소신 있는 의정활동을 펼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정치 경험이 적은 초선 의원들에 대한 정치 교육이 이뤄지지도 않는다. 오리엔테이션도 받지 못하는 초선 국회의원들은 사실상 우리의 의회정치 시스템에서 사각지대에 방치된 존재라는 지적도 나온다.○ ‘좌충우돌’ 156명 초선… 교육은 ‘전무’ 초선인 새정치연합 김관영 의원은 2012년 6월 제출한 청년고용촉진특별법이 지난해 4월 국회를 통과한 뒤 곤욕을 치렀다. 한시적으로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이 매년 신규 채용할 때 청년을 정원의 3% 이상 고용하도록 의무화한 것인데 청년의 기준을 ‘15세 이상 29세 이하’로 규정했다가 30대 구직자들의 거센 반발을 부른 것이다. 당시 김 의원의 홈페이지에는 항의 글이 쏟아졌고, 정부는 법 시행령을 개정해 15∼34세로 조정했다. 김 의원도 “30대가 취업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이 없도록 청년의 범위를 ‘15세 이상 39세 이하’로 확대해야 한다”며 지난해 6월 개정안을 다시 국회에 제출해야 했다. 김 의원은 “청년고용을 높인다는 좋은 취지에서 법안을 냈지만 30세 이상 취업 준비생들이 불이익을 본다는 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국회 상임위에서도 시행착오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의원들은 2년마다 국회 상임위를 바꾸는데 초선 의원들의 경우 상임위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열정만 갖고 일하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정치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야당 초선 의원은 “율사 또는 회계사 출신이라고 모두 다 입법과 예·결산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며 “선배 의원들이 입법과 예산 심사 및 결산, 지역구 관리 등을 ‘케이스 스터디’ 형식으로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초선-중진 서로 ‘무관심’ 매번 국회가 그렇지만 19대에서도 초선과 중진 의원들 관계는 살갑지 않아 보인다. 새누리당 재선 의원은 “초선과 중진은 서로 무관심한 관계”라며 “특히 중진 의원들은 초선을 액세서리(장식품)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초선들의 불만은 생각보다 크다. 여당의 한 비례대표 의원은 “국회는 지금 민주주의보다 유교주의가 지배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여당의 다른 초선 의원도 “중진은 기본적으로 초선을 너무 무시하고, 발톱의 때만큼도 안 보는 것 같다”면서 “중진이 술자리와 밥자리에 불러도 기분 나빠서 가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구 초선인 여당의 핵심 당직자는 “선수(選數)는 존중의 대상이지 집착할 대상은 아니다. 중진은 군기 잡는 내무반장이 아니라 솔선수범하는 선임병 역할을 하면 된다”고 했다. 야당 초선 의원도 “중진은 시의회 등에 자기 사람을 다 심어놨기 때문에 적당히 지역구 관리만 하고 있다”면서 “의정활동에 열정을 쏟지 않고 적당히 팔짱을 끼고 있다”고 비판했다.○ 초선을 보는 불편한 시선 초선을 바라보는 중진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여당 4선의 중진 의원은 “19대 국회에 전문가들이 들어왔다고 하는데 대부분 ‘범생이’”라며 “학자, 공무원 출신 등 말을 잘 듣는 유형으로 전략 공천한 결과”라고 했다. 여당의 다른 중진 의원도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실질적인 당 총재로서 정치적으로 시끄럽지 않고 성실한 사람들을 등용한 것”이라고 했다. 여야 재선 의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여당 의원은 “소위 말 잘 듣는 거수기 노릇을 할 수 있는 성향을 선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인 다른 의원도 “얌전하고 학자 같은 사람을 많이 뽑아놨다. 전문성은 강화됐지만 정치력은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야당 재선 의원도 “순발력과 상황파악 능력도 중요한데 초선들은 정무적 감각이 없다”며 “정치는 정책과 정무가 필요한데 정책에 집중돼 있다”고 평가했다. 자기반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국회는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능력이 부족해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여당 의원도 “면허증을 딸 때도 공부가 필요한 것처럼 정치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면서 “좋은 대학 나오고 자기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잘했다고 해서 정치인으로서 베스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고성호 sungho@donga.com·한상준 기자}
여야가 예산안 처리에 필수적인 부수법안 지정을 놓고 본격적인 입법 전쟁에 돌입한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24일 오전 여야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잇달아 만나 예산 부수법안 지정을 논의할 예정이다. 국회법 ‘85조의 3’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세입 예산안 부수법안을 지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국회의장이 지정한 법안들은 11월 30일까지 해당 상임위에서 처리되지 않으면 12월 1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돼 처리된다. 정부와 여야가 세입 부수법안으로 기재해 발의한 법안은 62개다. 쟁점은 정부가 추진하는 담뱃값 인상과 관련한 법안들이다. 새누리당은 개별소비세 과세 대상에 담뱃값을 추가하는 개별소비세법과 담배소비세 등을 인상하는 지방세법, 담배에 부과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을 인상하는 국민건강증진법을 세입 관련 예산부수 법안으로 지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박대출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담뱃세 인상을 위한 세법 개정안을 포함한 예산 부수법안 심사를 이번 주 안에 모두 완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출 관련 법안들도 예산 부수법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원칙적으로 세입예산 관련 법안들만 가능한데 개인적으로 세출 예산 관련 법안들도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법인세 인상 없이는 담뱃값 인상 관련 법안들의 자동 부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다. ‘부자 감세 철회, 서민 증세 반대’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새정치연합은 “담뱃값 인상은 사실상 서민 증세, 지난 정부의 법인세 하향 조정은 부자 감세”라고 보고 있다. 백재현 정책위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담뱃값 인상과 관련해서는 법인세 세율 정상화가 원칙이고 전제”라며 “특히 저소득층이 많이 피우는 담배 가격을 올린다는 것은 서민 증세만 하겠다는 것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25%였던 법인세율을 22%로 낮췄는데 이를 25%로 되돌려야 담뱃값 인상 관련 법안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야당 내에선 ‘빅딜’설도 나돈다. 먼저 국세인 개별소비세를 최소화하고 그만큼 지방세인 담배소비세를 높이면 여당과 논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를 염두에 둔 조치다. 또 일각에선 법인세 인하가 어렵다면 지난 정부가 대기업에 해준 ‘비과세 특별감면조치’ 해제를 통해 담뱃값 인상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고성호 sungho@donga.com·민동용 기자}
새누리당이 내년도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을 국비로 충당하지 않는 대신 ‘우회적’ 방법으로 지원하는 절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누리과정 대신 일선 교육청의 다른 사업 관련 예산 지원을 올려주면 해당 지원금으로 누리과정 예산 부족분을 충당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및 예산 당국과 우회적 지원 방안을 상의할 예정”이라며 “누리과정 총예산 가운데 일부를 우회적으로 지원하고 나머지는 (각 시도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한 뒤 중앙정부가 이자를 부담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도 누리과정 소요 예산은 올해보다 5475억 원이 늘어난 3조9641억 원. 각 시도교육청은 중앙정부가 내려보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세수 부족으로 올해보다 1조4000억 원 줄어들게 되자 “예산 편성을 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야 간사가 20일 ‘5600억 원 국고 지원+나머지 지방채 발행’에 합의했지만 새누리당 지도부는 추인을 거부한 바 있다. 새누리당은 일단 다음 달에 예산안을 처리한 뒤 곧바로 누리과정, 무상급식 등 무상복지 예산 편성의 책임 주체를 재조정하는 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당 고위 관계자는 “여당과 야당, 정부가 함께 모여 법리 검토를 포함해 심도 있게 논의하겠다”고 말했다.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우리가 역사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다음 정부를, 우리 미래 세대를 위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지도부를 만나 공무원연금 개혁의 연내 처리를 이같이 당부했다. 예산안, 민생법안과 관련해서는 “골든타임이다. (시기를) 놓치면 효과가 떨어진다”며 법정기일 내 처리도 강조했다. 이어 한중 등 자유무역협정(FTA) 통과도 촉구했다. 박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에 주문한 3대 포인트다. 이날 회동은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거둔 다자회의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국회에 협조를 요청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여당 지도부는 예산안의 기한 내 처리를 약속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따로 만난 것은 9월 16일 이후 두 달여 만이다. 다만 야당 지도부는 참석하지 않았다. 청와대에선 “박 대통령으로서는 해외순방 성과에 대한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을 부탁하고 싶었겠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호응하지 않아 김이 샜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날 회동에는 청와대에서는 박 대통령과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정무수석이, 새누리당에서는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주호영 정책위의장이 참석했다.○ 박 대통령 “정치권의 협력과 지원 필요” 이날 회동은 오후 2시 55분부터 1시간 5분간 청와대 백악실에서 진행됐다. 박 대통령은 면담 시간의 절반가량을 해외 순방 결과 설명에 할애했다. 박 대통령은 “한중, 한-뉴질랜드 FTA 협상을 타결했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주요 20개국(G20) 국가들의 성장전략 중에 1등으로 선정되는 성과도 거뒀다”며 “순방 결과를 극대화해서 국민의 삶이 더욱 행복해질 수 있도록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의 협력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에 계류돼 있는 FTA 비준동의안도 빨리 통과시키고 예산안과 민생법안, 공무원연금 개혁 등의 과제들도 적기에 처리가 된다면 경제적으로 재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당이 힘을 모아서 많이 노력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한-호주 FTA는 올해 발효되지 않으면 일본보다 관세 철폐가 늦어질 뿐만 아니라 수출 손실액도 연간 4억6000만 달러(약 5129억 원)가 될 정도라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며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이어 “중국도 호주하고 FTA가 실질적으로 타결이 됐다. 협상은 우리가 제일 먼저 타결을 보고도 잘못하면 경제적 실리를 다 빼앗길 수가 있다”고 했다.○ 김 대표 “좀더 열심히 해서 결실 맺도록 노력” 김무성 당 대표는 “대통령께서 해외 순방하면서 큰 업적을 갖고 돌아왔는데 당에서 제대로 뒷받침을 못한 것 같아서 송구스러운 마음이 있다”면서 “다음부터는 좀 더 열심히 해서 (순방 성과의) 결실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FTA 비준 동의 등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고 있고 공무원연금 개혁 등도 지지부진한 상황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는 뜻을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완구 원내대표도 “민생경제 관련 법안들과 예산은 법정기일(12월 2일)까지 꼭 지키겠다. (예산안 심사 완료가) 안 되면 정부안 또는 수정동의안으로 가겠다”고 밝혔다. 비공개로 전환된 뒤에는 공무원연금 개혁안 등에 대한 얘기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공무원노조들과 연쇄 회동해 실무협의체 구성에 합의한 당의 노력을 설명했다. 김 대표는 회동 뒤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상대가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화기애애했지만 맥 빠진 분위기 회담 분위기는 대체로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회동 초반 박 대통령이 FTA 협상 타결을 언급하며 “우리나라 경제영토가 세계 73%에 달할 정도”라고 하자 김 대표가 이를 받아 “73.5% 아닙니까”라고 해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박 대통령도 미소를 보이며 “정확히 아시네요”라고 했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과 야당이 주장하는 ‘사자방(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산비리)’ 국정조사 등과 관련해선 특별한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 직후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독대도 없었다.고성호 sungho@donga.com·강경석 기자}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등의 예산 편성을 놓고 파행을 겪고 있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쟁점 사업과 무관한 예산에 대해서도 무더기로 ‘보류’ 결정을 내린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 문제로 파행이 이어지면서 8일째 상임위 본연의 임무인 예산안 심사는 손을 놓아 버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누리과정 문제를 상임위 차원에서 처리하지 못하자 여야 원내지도부에 협상권을 넘긴 상태에서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타 예산사업에 대해서도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에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동아일보가 단독 입수한 교문위 예산결산심사소위 심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 소관 111개 예산사업 중 34개(30.6%)가 보류됐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누리과정 △초등 돌봄 사업 △고교 무상교육 △초중교 무상급식 사업을 제외하고도 30개 사업이 여야의 신경전 때문에 제동이 걸려 있는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사업의 경우도 49건 중 11건(22.4%)이 보류됐다. 예산소위는 증액이 요구된 114건에 대해선 아예 심사를 안 했고, 감액 및 증·감액 사업 등 49건에 대해서만 겨우 심사를 진행했다. 국회가 정부요청 예산사업에 대해 엄정한 잣대를 가지고 꼼꼼히 따지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교문위의 경우 보류 건수가 눈덩이처럼 늘어나면서 제때에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는 대학 실험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1500억 원 규모의 ‘국립대학 실험실습실 안전환경 기반조성’을 신규 사업으로 편성했지만 예산소위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안전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필수적인 예산이라는 정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연구실 안전환경 구축 지원사업과 중복되며 준비 역시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 대학실험실-국립대병원 지원 등 무더기 보류 ▼[담합과 반칙의 예산심사]예산심사 직무유기대학의 대입전형 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고교 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610억 원)에 대해서도 야당의 300억 원 삭감 의견과 여당의 증액 의견이 팽팽히 맞서며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국립대병원 지원예산 487억 원에 대한 결정도 미뤄지고 있다. 야당은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 전북대병원, 충남대병원에 대해선 “국고 지원을 받을 만큼 시급한 사업이 아니다”라며 삭감 의견을 냈다. 해외 영어시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국가가 영어능력평가시험을 지원하는 내용의 ‘영어능력평가시험 개발’ 사업도 심사가 완료되지 못했다. 정부는 18억4000만 원을 편성했지만 야당 의원들은 “응시 인원과 활용도가 모두 저조한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교문위의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사업도 사정은 비슷했다. ‘관광산업 융자지원’ 사업의 경우 예산 4800억 원을 2400억 원으로 깎자는 의견이 나왔다. 한 야당 의원이 “예산을 절반 삭감해 융자사업을 우선순위에 따라 정비하고 점차 확대하는 방향이 필요하다”며 “직접지원 방식보다는 이자지원 방식으로 전환해 관광기금의 활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여당의 반대로 ‘보류’ 결정이 내려졌지만 야당 측은 “지원 방식의 공정성 확보를 포함한 개선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0억 원 규모의 ‘창조관광기업 펀드 조성’ 사업도 야당 측은 “기존의 융자사업(4800억 원)에 펀드까지 조성하는 것은 재원의 유용한 활용으로 볼 수 없다”며 전액 삭감을 주장하고 있다.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종로구 혜화동 공관에서 했던 각종 행사와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서울시선관위 관계자는 1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달 초에 관련 제보가 접수돼 확인조사 차원에서 서울시에 시장공관 사용 명세 등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며 “이번 주에 자료가 넘어오면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핵심은 공관행사가 직무상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공직선거법 제113조는 서울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의 장 등은 기부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112조는 조례 또는 법령에 의해 금품을 제공할 경우는 ‘직무상 행위’로서 기부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연말 국회에는 처리해야 할 굵직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이른바 ‘4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비리) 국정조사, 예산, 개헌 등 폭발력이 강한 사안들이다. 문제는 사안별 여야의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있다는 것. 정치적 거래라는 비난을 의식한 여야가 공식적으로 부인하지만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빅딜설’도 끊이지 않는다. 일단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공을 들이고 있는 공무원연금 및 공기업, 규제 개혁 관련 법안에 대한 연내 처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공무원연금에 대해서는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새정치연합은 4자방 국정조사 관철이 최우선 과제다. 새누리당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워하는 아킬레스건이기도 하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 사업으로 국정조사를 받아줄 경우 친이(친이명박)계 반발에 따른 내홍에 휩싸일 우려가 크다. 새누리당은 방산비리 문제는 국가기밀 누출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해외 자원외교는 부실 투자 의혹이 제기되면서 협상 대상으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친박(친박근혜) 핵심’인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명박 정부 시절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내 연관이 돼 있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연말정국 해법 마련을 위한 여야 논의가 진전을 보이지 못할 경우 전격적으로 거래가 시도될 수 있다는 것. 이 전 대통령 측은 “정치적 빅딜은 안 된다”며 발끈했다. 한 측근은 14일 “자원빈국인 한국이 자원 확보 노력을 하는 것은 국가적 과제이며, 성과도 단기간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며 “결론도 나지 않았는데 정치공세로 국정조사를 하면 상대 국가와도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4대강은 감사원에서 두 차례나 감사를 했으며, 경부고속도로처럼 역사가 평가를 할 것”이라고 했다.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대한민국 부모들 다 기절합니다!” 국회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 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13일 오전 국회 본관 4층 회의장. 특위 소속 위원인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마련한 혁신추진안 보고에 나선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강하게 질타했다. 보고서 내용은 본보 13일자 A 1·3면에 보도됐다. 신 의원은 “현역 복무 부적격자 입대 원천 차단제도를 강화한다고 하는데 돈(예산)이 하나도 없다”며 “그야말로 졸속이고 되지도 않을 것을 그냥 써 놓은 것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 등을 계기로 8월 출범한 민관군 혁신위가 내놓은 5개 분야 25개 과제의 혁신추진안에 대한 우려는 여야 가릴 것이 없었다. 주로 ‘군 사법제도 개선’과 ‘부대 잡무 민간용역 전환으로 임무 전념 여건 향상’ 등이 도마에 올랐다. 군 법무관을 지낸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은 “군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데 혁신안에는 개혁 내용이 없다”며 “사법 권한을 아예 민간에 이양한다는 각오로 군 사법시스템을 대폭 개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관련 법안들이 상정되고 논의되면 의견을 내겠다. 국민이 갖는 우려를 불식하는 제도 개선 방안이 나오리라 본다”고 답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군의 특수성을 너무 강조하지 말라”며 “(그러니까) 사건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혁신안 각론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백군기 의원은 부대 잡무를 민간용역으로 넘기는 방안에 대해 “군대 가서 (전투 준비에 필요한 진지공사 등을 위해) 삽을 잡아보지 않으면 언제 잡아보느냐”며 “병사들이 해야 할 것은 해야 하며, 민간용역의 역할을 확실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은 ‘인간존엄 중심의 신세대 장병 인성 함양’ 방안에 대해서도 “병사들의 인성만 바꾼다고 해결이 되느냐”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장군의 인성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간사인 황영철 의원은 직격탄을 날렸다. 황 의원은 “업무보고는 아쉽게도 기존에 해온 사업에 예산만을 덧붙여온 노력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그러니까) 말로는 병영문화를 혁신하겠다고 하는데 실질적 혁신은 하지 않고 예산 따는 데 급급하다는 비판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간사인 정성호 의원도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국회 특위를 활용해 국방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병영문화 개선책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결국 한 장관은 “지적을 뼈아프게 듣고 있다.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한편 국방부가 병영 혁신을 위해 요구한 예산(911억1000만 원)은 국방위에서 120억여 원이 삭감된 789억7600만 원으로 통과됐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증액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방위에서 전액 삭감된 ‘장병 리더십 및 인성교육 강화’ 및 ‘국방행동과학연구소 설립’ 방안의 경우 내년도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성호 sungho@donga.com·손영일 기자}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는 병영폭력과 관련해 구타 등 가혹행위를 포함한 반(反)인권 범죄는 앞으로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등 군 검찰 지침을 대폭 손질하는 내용의 대책을 마련했다. 동아일보는 육군 22사단 총기난사 사건 등을 계기로 8월에 출범한 병영혁신위가 국회 ‘군 인권개선 및 병영문화혁신 특별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12일 단독 입수했다. 보고서는 영내에서 병사들 사이에 폭행이 발생했을 때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도록 군 형법을 개정하자는 의견을 담았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 국회 특위는 13일 전체회의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보고를 받은 뒤 관련 내용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한 장관이 공동위원장인 병영혁신위는 12월 전체회의를 통해 병영혁신을 위한 권고안을 만들고 국방부는 이 안을 토대로 혁신안을 확정한다. 보고서에는 사회와 소통하는 열린 병영을 만들기 위해 군복무 가산점제 부활을 추진한다는 대목이 포함돼 논란이 예상된다. 우수 군 복무자에 한정해 추진한다는 것이지만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제에 위헌 판결을 내렸던 만큼 여성계 반발이 예상된다. 일반전방소초(GOP) 근무자와 우수 분대장 등이 취업할 경우 복무성과에 따라 1∼2%의 가산점을 부여하겠다는 구상. 병영혁신위는 병영폭력 근절 방안으로 장병권리보호법 제정을 제안했다. 군 인권과 관련해 군인복무기본법을 만드는 등 장병들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와 의료진료권 등을 법안에 명시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A급(특별관리대상), B급(중점관리대상), C급(기본관리대상)으로 분류하던 ‘보호관심병사 관리 제도’를 ‘장병 병영생활 도움 제도’로 명칭을 변경하고 ‘치료, 상담, 배려’ 그룹으로 나누기로 했다. 기존 등급 제도가 ‘문제 병사’ 낙인찍기로 악용됐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조치다. 복무 기간이 끝난 병장에게 분대장 또는 반장 직위를 부여해 2∼6개월간 매달 80만∼100만 원을 지급하는 모범병사 연장 복무 지원 내용도 담았다. 병영혁신위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해 5개 분야 25개 세부 항목을 마련했지만 구타 가혹행위 등 고질적인 병영적폐 근절을 위한 근본 대책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 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등을 계기로 8월 출범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내놓은 병영혁신안은 총 25개의 세부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장병 인권 보장을 위한 방안은 6개 항목으로 가장 많지만 병영 폭력을 근절할 획기적인 조치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나오고 있다. 》 ○ 폐지하지 못한 ‘지휘관 감경권’ 병영혁신위는 병영폭력과 부조리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들을 내놨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병영혁신위는 보고서에서 혁신 방향과 관련해 ‘군내 인권 보장 강조에 따른 지휘권과 기강 약화 우려 불식’도 주요 구상안으로 꼽았다. 이 때문에 군 지휘권 보장 등 군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군 사법제도의 경우 ‘개혁’이 아닌 현행 문제점을 보완하는 수준에 그쳤다. 군사법원이 정한 형량을 지휘관이 임의로 낮출 수 있도록 한 ‘지휘관 감경권’과 일반 장교를 재판관으로 임명하는 ‘심판관 제도’는 폐지가 아니라 개선하기로 병영혁신위는 의견을 모았다. 현재 사단급 부대까지 설치된 군사법원을 분리해 국방부 직속으로 둬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도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인권 옴부즈맨 제도는 대통령, 국무총리실, 국방부 장관 직속으로 도입을 검토하되 군 지휘권과 군사보안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병영혁신위 관계자는 “과도한 권한이 부여되는 옴부즈맨 제도는 군 본연의 임무에 지장을 줄 수 있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군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1∼2% 취업 가산점 부여 논란 우수 군 복무자에게 취업 가산점을 주는 방안도 마련됐다. 일반전방소초(GOP) 부대에 근무하거나 우수 분대장으로 선발된 병사에 대해 복무 성적에 따라 취업 시 총점의 1∼2%의 가산점을 부여하겠다는 것. 1999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으로 폐지된 군 가산점제의 ‘부분 부활’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군은 병사들이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 발생한 기회 손실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군 가산점제 부활을 적극 추진해왔다. 지난해 국회 국방위원회는 제대군인 취업 시 가산점제를 부여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내 의견 조율이 힘들고, 여성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혀 불발됐다. 군 관계자는 “취지와 명분은 좋지만 여성가족부조차 군 가산점의 위헌 소지로 난색을 보이고, 사회적 합의도 쉽지 않아 제도 시행에 난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모범병사에게 분대장 직위와 월급(80만∼100만 원)을 주고 2∼6개월 복무 연장을 유도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은 인성과 능력이 검증된 우수 병사를 본보기로 삼아 병영 부조리를 막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는 근본 처방이 아닌 일시적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병 복무기간 단축 이후 월급(136만∼196만 원)을 받고 군 복무를 연장하는 유급지원병 제도를 본뜬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아울러 ‘보호관심병사 관리제도’를 ‘장병병영생활 도움제도’로 명칭을 바꾸고, 분류 기준도 ‘A, B, C등급’에서 ‘치료, 상담, 배려 그룹’으로 변경한 것도 실질적 대책보다는 포장만 바꾼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 폭행하면 무조건 ‘구속’ 군인복무규율의 주요 내용을 법률로 격상시키는 제안이 눈에 띈다. 장병들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을 권리와 의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 등을 아예 ‘군인복무기본법’으로 명문화하자는 내용이다. 병영혁신위는 아울러 반(反)인권 행위자에 대해선 구속수사 원칙 등을 내세워 병영폭력을 없애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부대 내에서 장병들이 폭행하다가 적발되면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해자는 형사 입건돼 처벌받는다. 장병의 행동과 심리를 연구하는 별도의 기관 설립은 새로운 요소다. 자살하거나 폭력을 저지르는 장병들의 행동과 심리상태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해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새누리당 소속 4선 국회의원인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63)이 연말이나 내년 초 예상되는 개각에서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여의도에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권 내부에선 이 장관이 내년 5월 원내대표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장관은 올 6월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에서 유임된 뒤에도 사고 수습이 마무리되는 대로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는 뜻을 수차례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은 올해 초 원내대표 출마를 검토했지만 해수부 장관에 발탁돼 원내대표의 꿈을 접었다. 2013년 원내대표 경선에서 ‘원조 친박(친박근혜)’을 내세운 3선의 최경환 의원에게 석패한 경험도 있다. 2012년 19대 국회 첫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탈락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관 취임 후 두 달 만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트레이드마크격인 흰 수염을 기른 채 실종자 수색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유가족들의 마음을 돌려놓는 데도 성공했다. 당내 여론도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선 의원은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습 과정에서 유가족한테 신망을 얻으면서 정부에 부담을 많이 덜어줬다”며 “결론적으로 정치인으로서 전국적 인지도도 높아졌고, 2013년 원내대표 선거 패배에 대한 동정 심리도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새누리당 소속 4선 국회의원인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63)의 향후 정치적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범정부사고대책본부장인 이 장관은 연말이나 내년 초 예상되는 개각에서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여의도에 복귀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여권 내부에선 이 장관이 내년 5월 원내대표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장관은 올 6월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에서 유임된 뒤에도 사고 수습이 마무리되는 대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뜻을 수차례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은 올해 초 원내대표 출마를 검토했었다. 당시 그는 국회 예산결산특위 위원장과 당 정책위의장 등을 거쳐 당 정책연수소인 여의도연구원장을 맡고 있었지만 해수부 장관 발탁으로 원내대표의 꿈을 접었다. 2013년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석패한 경험도 있다. '원조 친박'(친박근혜)을 내세운 3선의 최경환 의원이 77표를 얻어 8표 차이로 쓴잔을 마신 것. 2012년 19대 국회 첫 원내대표 경선에도 참여했지만 1차 투표에서 26표밖에 얻지 못해 탈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관 취임 후 두 달 만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수습과정에서 지도력을 보이지 못했고 유가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으면서 정치적 생명이 위태로웠던 상황과는 다르다는 것. 트레이드마크격인 흰 수염을 기른 채 실종자 수색작업을 진두지휘했고 유가족들의 마음을 돌려놓는데도 성공했다. 한 재선 의원은 11일 동아일보 통화에서 "수습 과정에서 유가족한테 신망을 얻으면서 정부에 부담을 많이 덜어줬다"며 "결론적으로 정치인으로서 전국적 인지도도 높아졌고, 2013년 원내대표선거 패배에 대한 동정심리도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당내 여론도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판사 출신인 이 장관은 2012년 대선 당시 대선기획단장과 특보단장 등 중책을 맡아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다.고성호 기자 sungho@donga.com}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무상복지 논란과 관련해 “증세를 논의하자”고 운을 뗀 것은 증세 논쟁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서 증세는 여야 모두가 공론화하길 꺼리는 ‘금기어’로 통한다. 액수가 아무리 적어도 세금 올리자는 얘기는 국민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문 위원장은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등 무상복지 논란이 결국은 재원 마련 대책으로 옮겨가는 대목을 건드렸다. 늘어나는 복지 부담을 한정된 재원으로 충당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고민을 내비친 것이다. 그의 발언이 야당의 기존 대응 방식과 다른 것도 특징이다. 보편적 증세 없이 대기업 등을 향한 ‘부자 증세’만으로 충분하다는 기존 태도를 벗어난 것이다. 논의의 빗장을 풀어 공론의 장을 열어보자는 것으로 해석할 만하다. 문 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증세 논의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합의가 어려우면 여야, 직장인, 자영업자 등이 폭넓게 참여하는 기구를 만들어 사회보장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논의와 합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내에선 곤혹스러운 기색도 엿보였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를 향해 “부자 감세부터 철회하라”고 요구해온 당 기조와 배치되기 때문이다. 뒤늦게 백재현 정책위의장이 기자와 만나 “증세는 법인세 인상 관철부터 의미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것이다. 당 정책위는 이미 △대기업 비과세 감면 폐지 △법인세율 정상화 등으로 연평균 9조6000억 원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만큼 “부자 감세 철회만으로도 무상급식 등이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이제 공은 새누리당에 넘어 왔다. 새누리당은 공식적으로는 문 위원장이 제안한 증세 논의에 선을 그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를 강조해왔다. 증세보다는 재정의 효율적 운용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복지 현실에 대한 종합적인 고민을 바탕으로 우선순위 선정과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도 “증세 부분은 워낙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에 즉답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당내 일각에서는 증세의 필요성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증세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기조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무상급식 예산을 포기해서 보육에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해법은 증세 문제로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도 8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선 “우리나라의 낮은 조세부담률을 (높일) 생각을 해볼 때가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여야가 당장 증세에 대한 공감대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여야가 자신들에게 절실한 복지예산만 챙기겠다고 나선다면 내년도 예산안 심의는 파행을 빚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증세 문제는 예산 전쟁을 중재할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손영일 scud2007@donga.com·고성호 기자}
무상복지 논쟁에 침묵하던 청와대가 9일 입을 열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급식 예산 배정 거부로 촉발된 논쟁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누리과정 등 복지 예산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듯하다. 안종범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이날 “누리과정은 무상급식과 달리 법적으로 장치가 마련돼 있어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의 의무”라고 못을 박았다. 일부 지방교육청이 재정 부족을 이유로 박 대통령 대선 공약인 누리과정의 예산을 2, 3개월 치만 편성하려고 하는 데 대해 발끈한 것으로 보인다. 각 지방교육청이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에 따라 정부가 지급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이용해 반드시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안 수석은 야당이 주도했던 무상급식과 선을 그었다. 그는 “무상급식은 법적 근거가 없는 지자체와 교육청의 재량사업”이라며 “의무적으로 예산을 편성할 필요가 없는데도 일부 지자체와 교육청이 과다하게 편성해 집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무상급식 예산이) 2011년 대비 (4년 만에) 5배 정도 늘었다. 의무적으로 편성하지 않아도 되는 사업은 예산을 대폭 늘리고 누리사업에는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겠다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야권을 직접 겨냥한 것은 앞으로 본격적인 여론전을 펴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연말까지 이어질 예산 전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새누리당도 이날 ‘무상급식 때리기’에 나섰다. 누리과정은 기본적으로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한다는 태도이지만 야권의 지방선거 공약인 무상급식은 당장 파기는 아니더라도 재논의는 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장우 원내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에서 “재벌 손자까지 무상급식을 하는 현 제도는 오히려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며 “정작 주민을 위한 시급한 투자마저 가로막을 정도로 지방재정을 피폐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원내대변인은 “결국 무상복지 제도에선 지방재정의 악화를 막을 순 없고, 제도적 모순이 드러난 만큼 국민적 재논의가 절실하다. 합리적 복지제도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재개할 때”라고 했다. 새누리당은 청와대와 공조하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김현숙 원내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누리과정은 유아교육법 등에 의거한 법적 의무사항이지만 무상급식은 대통령 공약도 아니며 법적 근거가 없는 지자체의 재량사업”이라며 “누리과정 예산 편성 거부는 어린이와 학부모들을 내팽개치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고성호 sungho@donga.com / 베이징=이재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