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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마주하여 인간이 상심하는 것도 주제넘은 일인지 모른다. … 슬퍼하기를 멈추고 거역하기 어려운 거대한 힘에 순응하는 것이 상책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겸허한 태도로 거대한 힘에 순응하는 데도 각별한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 삶이 이다지도 지난하단 걸 미리 알았더라면, 그리 애쓰지 않았을지도. 불현듯 찾아오는 햇살의 따스함만 바라보기엔 아픔이 너무 두껍고 묵직하다. 더구나 지금처럼 국민적 상실감이 휘몰아칠 때면 옷깃을 여미기도 버겁다. ‘인생의 허무를…’은 이럴 때 처방용 조제약 같은 책이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다양한 집필을 통해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한 저자는 이번 에세이집에서 허무(虛無)를 들여다봤다. 덧없고 덧없는 세상살이에 축처진 어깨를 우린 정말 어떻게 다독여야 할까. 다소 맥없어 보일지라도 결론은 ‘내려놓기’이다. 뻔한, 욕심을 버려라가 아니다. 희망도 선의도 의미도 찾지 말라고 조언한다. 희망 없이도, 선의에 기대지 않아도, 의미를 얻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허무는 인간 영혼의 피 냄새 같은 것”이니 “영혼이 있는 한 허무는 아무리 씻어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함께 공명하되 치우치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지키는 게 필요하다. 전공이 동아시아 사상사 연구인 저자는 진작부터 “허무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책을 내리라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동아일보에 연재하는 칼럼 ‘김영민의 본다는 것은’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주제를 고민해 왔다. 그래서인지 에세이집에 실린 글들은 각자의 방향대로 흘러가면서도 하나의 바다로 모여드는 기분이 든다. “인생을 즐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좋아하는 대상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환멸을 피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좋아하는 대상에 파묻히지 말아야 한다.” 균형을 잡는 건 언제나 어렵다. 안타깝고 부아 치밀 땐 더 그렇다. 갈기갈기 마음 찢긴 이에게 “시간을 조용히 흘려보낼 수 있는 상태”란 말은 쉽사리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 우린 또 보듬어야 한다. 이 시간을, 이 세월을. 잊지는 말되 조금씩 아물어 가길.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기를” 바라면서. 그래야 숨을 쉴 수가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서핑할 줄 알아요? 서핑할 줄 알겠네.” 주인공인 ‘나’에게 이런 말들은 이제 대수롭지도 않다. 미국 하와이에서 나고 자랐으니 당연한 반응일지도. 하지만 난 서핑을 해본 적 없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랬다. 서울에서 글로벌 기업을 다니는 내게 어느 날 변호사가 연락했다. 큰이모가 세상을 떠나며 강원 양양에 있는 작은 아파트를 유산으로 남겼단다. 팔아치울 생각으로 간 아파트 앞엔 넓디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그곳은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서핑의 성지였다. ‘서핑하는 정신’은 묘한 소설이다. 왠지 예상 가능한 흐름 속에서 기시감이 잔뜩 묻어나는데, 막상 읽으면 생경한 그림이 펼쳐진다. 제대로 된 총격신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데 여기저기 을씨년스러운 살풍경이 꼬리를 무는 스릴러 소설. 딱히 거창하게 분위기를 잡진 않는데 왠지 처연하고 아련하다. 일단 나라는 인물이 주는 먹먹함부터 독특하다.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홀로 사는 여성이라면 있을 법한 ‘비련의 여주인공’ 냄새는 없다. 그렇다고 캔디처럼 생기가 넘치지도, 똑순이처럼 야무지지도 않다. 지하철에서 쓱 지나쳐 가면 기억에도 남지 않을, 거울에 비친 우리네 모습처럼. 하지만 그 내면엔 어딘가로 외치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아파요”라고. 세계에서 제일 서핑하기 좋은 섬에서도 서핑하지 않았던 나는, 겨울철 검은 서핑슈트를 입어야 하는 동해안에서 서핑을 배우기 시작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짓일지 모르지만 뭔 상관인가. 어쩌면 내겐, 꼭 서핑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자기를 다독일 뭔가를 만난다면 타인이 어떻게 볼지는 딱히 중요치 않으니. 그럼 이제, 우리도 우리만의 서핑보드를 찾아야 할 때다. 거기에 바다가 있는 한. “파도는 한 번 더 밀려올 것이고, 이제 내가 타야 할 타이밍이었다. 파도가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다. 희미하지만 저 물결은 파도였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콜 집권 16년 후 나라는 마비됐다. 여당은 피를 철철 흘리며 스캔들로 휘청거렸고 경제와 노동시장, 사회보장 시스템은 깊은 위기에 빠졌다. 당시 독일은 ‘유럽의 병자’였다. 그때 동독 출신의 한 여성 정치인이 나타나 서독에 전환점이 됐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68). 16년 동안 총리로 재임하며 독일은 물론 서구 사회를 이끈 지도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더’란 찬사가 잘 어울렸던 그는 지난해 스스로 총리직을 내려놓으며 한 시대를 매조지었다. 책의 부제처럼 ‘독일을 바꾼 16년의 기록’이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독일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볼 때, 메르켈은 여타 정치인과는 너무나 결이 다르다. 화려한 연설도 강력한 리더십도 없지만, 굳건한 인내와 누구라도 타협할 수 있는 융통성을 바탕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어떤 정책을 다룰 때면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끊임없이 경청하고 반영하는 자세는 특히나 돋보였다. 운도 따르긴 했다. 상상해 보라. 만약 남북이 통일된 뒤 무명의 북한 여성 과학자가 남한 주도 사회에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당시 독일 정치계는 동독 출신 여성이란 비주류 신인을 ‘마스코트’ 삼고자 메르켈을 과감히 등용했다. 단지 그들은 몰랐을 뿐이다. 메르켈은 토사구팽 될 이가 아니었다. 온화한 미소 뒤로 숱한 정적을 제거하는 결단력, 정치적 토대가 없는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 우위를 잡는 영민함까지 갖췄다. 물론 저자는 호평에만 머물진 않는다. 너무 심사숙고해 결정은 언제나 뒤늦은 편이었다. 원칙이 없는 듯 상황 따라 입장을 자주 바꿨다. “직선제였다면 재선도 불가능했을 것”이란 지적처럼 비전을 보여주는 카리스마도 부족했다. 하지만 우린 안다. 섣부른 선택과 꽉 막힌 옹고집과 현란한 언변이 그간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또 다른 앙겔라 메르켈이 세상에 계속 나와 줘야 하는 이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참으로 ‘슴슴한’ 수필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창한 사건은 없다. ‘곰삭은 동네에서 집을 구하고, 잔잔히 살면서 이런저런 인연을 맺는다.’ 이걸로 내용은 웬만큼 설명된다. 물론 가족이던 반려견 ‘봉봉’이 세상을 떠난 건 큰일이었으나…. 담백하다 못해 밍밍하다고 해도 될 정도다. 한데 그런 맛에 반해 평양냉면을 찾는 이가 어디 한둘이랴. 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현대문학) 등을 통해 켜켜이 팬층을 쌓아온 작가는 에세이 역시 노포 맛집처럼 찐득한 문장으로 휘감는다. 가끔 얼기설기 엉키는 느낌도 없진 않으나, 그게 또 희한하게 중독성 있다. 뭣보다 글들이 사부작사부작 흘러가는데, 어느새 책을 놓지 못하고 젖어든다. “근래 만난 가장 아름다운 책”(안희연 시인)인진 모르겠으나, 사소한 것에서도 그 질감과 무게를 찾아내는 안목이 놀랍다. 하긴, 살구 파는 좌판을 펼쳐놓고 “못생겨도 달다”는 어르신 앞에 쭈그리고 앉아 “오, 알아요. 알고말고요”라 응해주는 이라면 뭐든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다. 뜬금없지만, 책장을 넘기며 문득문득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사과파이를 만들려면, 먼저 우주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가. 마을 어귀에 핀 이름 모를 잡초들에도 하나의 삶과 공존과 세상이 깃들어 있는 것을. 시간이 멈춰 서진 않겠지만, 정든 동네 오래오래 머물길. 올겨울 난방비는 무탈하게 지나가길.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제목만 봐도 어느 분야인지, 뭘 얘기할지 대충 느낌이 온다. 그만큼 이제 진화생물학은 일반 독자에게도 친숙한 과학 분야. 리처드 도킨스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81)의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등 워낙 성공한 대중과학서가 많기도 했다. 도킨스가 “매우 잘 쓰인, 읽기 쉬운 필독서”라 추천사까지 달았으니 게임 끝. 실제로도 문장이 편안하고 논지도 일목요연하다. 영국 런던대 생물학과 교수인 저자는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지명도를 쌓은 여성 행동생태학자.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오지에서 다양한 생명체를 연구해온 경력도 훌륭하다. 얼핏 이기적 유전자와 협력의 유전자는 상반된 개념처럼 들리지만, 쉽게 생각하면 된다. 알다시피 도킨스가 유전자를 이기적이라 부른 건 유전자는 진화 과정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유지하고 남기려는 목적성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협력도 마찬가지다. “협력하지 않았다면, 지구에는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 저자는 단언한다. 유전자가 살아남으려면 서로 힘을 모아야 했단 뜻이다. 실제로 인간은 “끈끈하게 이어진 가족을 이루고 협력하며 번식”했다. 정당한 협력을 위해 “사기꾼을 벌하고 평판에 신경 쓰며” 후대에게 이를 가르쳤다. 다른 생명체도 협력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책에는 벌거숭이두더지쥐와 청줄청소놀래기 같은 생판 처음 듣는 동물들이 다수 등장하는데 이들도 협력을 통해 생존하고 진화해왔다. ‘협력의 유전자’는 인간 입장에선 흐뭇한 책이다. 우리 유전자에 이런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니 기분 나쁠 게 없다. 특히 4장에서 협력이 결국 ‘공정’을 낳아 인류가 어느 생명체보다도 큰 발전을 이뤘다는 주장은 뿌듯하기도 하다. 다만 읽을수록 신선함은 다소 떨어진다. 워낙 비슷한 책들이 이미 많이 나온 탓이겠으나…, 이젠 ‘넥스트 스텝’이 궁금하다면 과한 욕심일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엘리트 미디어는 막대한 힘을 잃어버렸지요. 폭스뉴스는 계속해서 잘나가고 있고요.” 2010년 이 말을 할 때, 폭스뉴스 진행자 빌 오라일리(73)는 떵떵거릴 만했다. 당시 그들의 시청률은 경쟁사 CNN과 MSNBC를 합친 것보다 높았다고 한다. 물론 시청률이 프로그램의 질을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폭스뉴스는 품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은 관심도 없었고. 폭스뉴스는 다양한 매체가 그득한 미 방송계에서도 무척 특이한 존재다. ‘미디어 황제’ 루버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91)이 만든 극우 성향의 TV라는 건 웬만큼 알려진 사실. 초기엔 대다수 언론의 비웃음을 샀던 폭스뉴스가 어떻게 이런 역전 만루홈런을 칠 수 있었을까. 답은 뉴욕시립대 미디어문화학과 교수인 저자가 붙인 부제에 그대로 나와 있다. ‘보수를 노동계급의 브랜드로 연출하기.’ 영국 타블로이드 ‘스타’ 등에서 황색저널리즘을 갈고닦은 머독은 일단 화제몰이에 집중했다. 자극적인 사건, 더 자극적인 성적 메시지…. 지금이야 걸작으로 인정받지만 사고뭉치 가장과 아들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이 폭스뉴스에서 나온 건 우연이 아니었다. 당시 미 TV에서 모범적이지 않은 가족을 묘사하는 건 금기에 가까웠다. 노이즈 마케팅 전략의 또 다른 공격 대상은 주류 언론들. 공정과 양심을 내세우는 뉴욕타임스(NYT) 등을 진보의 탈을 쓴 엘리트 기득권자로 묘사했다. 그들은 ‘서민을 위한 방송’을 한다며 대놓고 이죽거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갖고 있고, 대부분의 미디어는 그를 지지합니다. 서민들에겐 서민들이 있을 뿐입니다. 누가 이기나 두고 봅시다.”(2009년 방송에서) 저자가 볼 때 폭스뉴스의 성공은 이런 일련의 ‘정교한 프레이밍’ 전략 덕분이었다. “뉴스 방송이란 공익사업 이미지가 아닌,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에 바탕을 둔 텔레비전 자체를 브랜드”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기존 보수의 구도에서 기업가와 노동자는 가까워지기 힘든 관계다. 하지만 폭스뉴스는 기업가들을 ‘일자리 창출자’라고 부른다. 친부유층 공화당이 노동자의 친구란 인식 전환을 꾀했다. 일부 진행자가 유난히 고졸인 걸 강조한 것도 ‘우리 친구 아이가’ 전술이었다. 미 뉴스에서 공식처럼 쓰던 ‘대중 여러분(general public)’ 대신 시청자를 ‘서민(folk)’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숱한 비난에도 꿋꿋하던 폭스뉴스의 위기는 의외의 틈바구니에서 터져 나왔다. 잘나가던 제작자와 진행자들이 성 스캔들에 휘말리며 스스로 무너졌다. 또한 더 ‘막가파’가 등장하며 질질 끌려다닌다. 바로 폭스뉴스가 처음엔 대선 후보 ‘깜’도 안 된다고 여겼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이 책은 놀라운 통찰력이 가득하다. 미 언론계의 이면을 여지없이 까발린다. 세계 곳곳에서 좌우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상황에 대입해 봐도 좋은 해설서가 되어 준다. 다만 원문 탓인지 번역 탓인지 모르겠으나, 10년 전 대학 전공서적 같은 문장들이 집중을 가로막는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흥미로운데 한참 무슨 말인지 고민해야 했다. 폭스뉴스와 비교하며 식자층의 어리석음을 비판한 책이 ‘엘리트’스러운 글이란 건 좀 그렇지 않나.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올해 마주한 책들 가운데 ‘제목’이 제일 부담스럽다. 모르는 이가 말을 걸어도 불편한데, 되레 얘길 건네 보라니. 지금껏 애한테도 그렇게 안 가르쳤다. 책을 읽고 주억거리고, 백번 옳은 말이라 공감한들 실천하진 못하리란 확신이 온몸을 파고든다. 이만한 거부감은 저자도 대충 예상했을 터. 미국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낯선 이와의 대화는 단순히 살아가는 방편이 아니라 살아남는 전략”이라며 살살 꼬드긴다. 인류는 원래 이방인을 환대하고 소통하고 관계 맺으며 진화해 왔다며. 아, 진짜… 조상까지 거론하니 안 넘어갈 수 없다. 물론 다들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묻은 지하철 풍경이 익숙한 현대사회에서 생판 남에게 말 건다는 건 웬만한 각오론 하기 어렵다. 자칫 치한이나 정신이상자로 오해받을까 겁도 난다. 한데 눈을 마주치고 사소한 공통점을 찾아내 대화를 성사시키면, ‘A Whole New World’(완전히 새로운 세상·영화 ‘알라딘’ 주제곡)가 펼쳐진단다. 실은 다들 누군가 말 걸어주길 내심 바란다고 저자는 믿는다. 출판사에선 싫어하겠으나, 이 책은 바쁘면 1, 2부 건너뛰고 3부만 봐도 ‘앙꼬’는 맛볼 수 있다. 문장은 윤기가 넘치나 앞쪽은 다소 ‘공자 왈 맹자 왈’이라 “그래서 뭐(So What)” 싶다. 하지만 3부에선 낯선 이에게 말을 걸었던 경험담을 야무지게 풀어낸다. 본격적으로 대화의 ‘스킬’을 공유하는데 매우 참조할 만하다. 낄낄거리다가도 무릎을 딱 치게 만드는 재주가 보통 아니다. 미리 예고했듯, 책에 감화돼도 곧장 행동으로 옮기긴 마뜩잖다. 그리 쉬우면 세상이 왜 이 모양일까. 하지만 다 읽고 나면 버스나 길가에서 무심히 지나치던 이들을 문득 돌아보게 된다. 그들도 나처럼, 우린 모두 외로운 섬인 것을. 언젠간 꼭, 낯선 이에게 말을 걸어보리라. 일단 우황청심환부터 한 알 먹고.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에두를 필요 없다. 사회학이라… 교과서도 아니고. 제목만 봐선 흠칫 움츠러든다. 반면 그래도 게임이라니 살짝 안심. 표지에 보기만 해도 신나는 컨트롤러도 떡하니 실려 있고. 과연 이 책, 딱딱할까 말랑할까. 결론부터 말하자. 이 책, 무척 흥미로운 내용을 ‘있는 힘껏’ 건조하게 썼다. 메시지는 간명하다. 요즘 게임은 대부분 온라인 네트워크로 이어져 있다. 당연히 이용자들은 게임 속에서 관계 맺고 소통하고 거래도 한다. 현실 사회랑 닮은 구석이 무진장이다. 그럼 게임월드를 연구하면 사람 사는 세상도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한번 제대로 들여다볼 때가 됐다. 뭐 이런 얘기다. 꽤나 설득력 있다. 사실 사회과학에선 연구가 난망한 주제들이 많다. 저자도 얘기했지만, 질병이나 폭력 등의 상관관계 같은 걸 어디서 함부로 실험하겠나. 하지만 비현실세계인 게임에선 이런저런 테스트도 가능하고, 뭣보다 명확한 데이터가 풍부하게 남는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이런 분야를 살펴봐 줄 최고의 카드다. 전산학 보안학을 전공했고 유명 게임회사에서 데이터 분석 및 엔지니어링을 맡고 있으니 ‘게임 끝’이다. 실제로 책을 펴보면, 관련된 다양한 연구와 사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배울 게 넘쳐난다. 사회과학자들이 이렇게 게임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다만 게임이 현실을 반영하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다음은 뭘까 싶긴 하다. 두 세상이 비슷하다 이상의 뭔가가 부족하다. 게임에서 획기적인 사회 통찰을 찾아내긴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이해는 가지만 아무래도 ‘친(親)게임회사’적 멘트들이 적지 않다. 진지한 내용이긴 해도 좀 더 가볍게 정리했더라면 더 반가웠겠다. 물론 그런 아쉬움이 이 책의 매력을 반감시키진 않는다. 마약범죄 조직과 유사한 게임재화 불법 거래를 잡아내는 데 네트워크 연구가 효과적이라거나 게임 이용자끼리 선한 마음을 퍼뜨리는 호혜행위 전파 등은 매우 인상적이다. 현실보다 더 실재 같은 가상세계를 다룬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2018년) 세상이 언제 올진 몰라도, 게임은 이미 우리와 떼놓을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지 않나. 이제 게임한다고 뭐라 그러지도 못하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미리 ‘스포(스포일러)’한다. 이 책은 “빌어먹을, 일기예보는 왜 이리 안 맞아”가 궁금한 이들에겐 어떤 속 시원한 답도 주진 않는다. 더 나아가자면 “안 맞는 게 당연한데 뭐 어쩌라고”라며 배를 쭉 내민다. 그런데 그 힘찬 ‘배 놀림’, 매력 있다. 미국 프리랜서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인류가 본격적으로 날씨 예측을 시도한 약 150년 전부터 슈퍼컴퓨터와 인공위성이 보편화된 현재까지의 역사를 두루 살폈다. 솔직히 ‘두루’보다 ‘입맛에 맞게’지만, 과학·기술과 맞물린 변화 포인트를 제대로 짚어낸다. 각지에서 전보를 받아 지도에 표시해 가며 기상을 추정하던 시대가 19세기 말인 걸 감안하면, 언제 어디서건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알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놀라운가. “날씨 살피기는 정말로 시시한 활동이다. 가스레인지를 틀거나 화장실 변기의 물을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날씨를 살필 때 우리 마음의 눈은 공간과 시간을 폭넓게 오간다. 마치 위성이 지구 위로 솟아올라서 지구를 내려다보며 미래의 날씨까지 내다보는 것처럼.” 말만 그렇지 시시하지도 않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쏠쏠하다. 예를 들면, ‘토양습도’나 ‘밀도고도’(뭔지 몰라도 된다)를 측정하는 인공위성에 왜 뜬금없이 미 국방부가 재원을 댔을까. 실은 오사마 빈라덴(1957∼2011)의 은신처 습격 작전 때 밀도고도를 잘못 계산해 헬리콥터가 불시착한 적이 있다. 원래 우주과학도 군비 경쟁 덕을 톡톡히 보지 않았나. 일기예보의 정확성은 상대적이다. 우리는 수많은 적중은 잊고 틀린 날만 되새긴다. 평가기준도 사람과 상황마다 다르다. 결혼식 당일과 ‘방콕’한 날의 날씨가 어찌 똑같이 다가오겠나. 하지만 여전히 인류는 더 정확한 날씨 예측과 해석을 위해 ‘뜨겁게’ 달려가고 있다는 걸 저자는 강조한다. ‘날씨 기계’는 배울 게 많은 책이다. 꽤나 성가신 과학용어들이 걸림돌이지만 빼곡한 현장취재와 위트 섞인 문장이 이를 상쇄한다. 날씨라는 주제로 이렇게 현란한 드리블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다만 뉴요커 같은 잡지에서 마주쳤던 ‘미국식 먹물 농담’이 많은 건 부담스럽다. 알아듣는 척하고 싶은데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럴 땐 “오늘 날씨 어때” 하며 하늘만 쳐다볼 뿐.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할머니는 소인이 찍힌 한 장의 우표 같은 느낌이었다. 아주 작고, 평면적이고, 어느 날 삶의 쓰임새를 다해 이제는 극도로 조용하게 우표 책에 꽂혀 계신 분.” 어디 할머니만 그럴까. 자식들은 다 그렇다. 부모님의 젊은 날도 가늠이 안 된다. 아니, 별로 상상해 보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어른이었고, 나이 들어 있었다. 우릴 세상에 있게 해준 분들인데도, 그저 당연히 거기 있어 왔다 여긴다. 하지만 언젠가, 그리고 거의 ‘문득’ 깨닫는다. 특히 자식 낳아 기르다 보면. 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2013년) ‘설이’(2019년) 등에서 고아하고 세밀한 문장을 보여준 작가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딸을 키우며 겪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할머니를 떠올린다. 작가의 할머니는 우리네 어르신들과 똑 닮았으되 또 다르다. 일제강점기부터 최근까지 험난한 세상사를 버텨내며 “내 속은 아무도 몰러” 하고 삭혀 내셨다. 말수가 적지만 몇 마디로 모든 상황을 보듬어 주셨고, 기다림과 믿음이 뭔지 표정만 갖고 일깨워 주셨다. 그렇다고 뭐 그리 거창하지도 않다. 할머니는 할머니일 뿐이기에 소중하고 위대하다. 등단 20년 만에 처음 썼다는 에세이는 솔직히 부럽기 짝이 없다. 우리 곁을 떠난 사랑하는 이에게 이런 글을 선물할 수 있다면, 당신께선 얼마나 기뻐하실는지. “죽으면 끝이여”라 생각하셨어도, 왠지 특유의 과하지 않은 미소를 싱긋 머금어 주시지 않을까. 게다가 이 책은 ‘자녀교육 지침서’로도 큰 울림을 지녔다. 할머니의 가르침을 어렵사리 딸에게 이어가려는 깨달음에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진다. 쑥스러웠을 시행착오를 털어놓는 게 간단치 않았을 텐데 공감을 나누고픈 작가의 마음 씀씀이도 고맙다. 처음 잡았을 때도 술술 잘 넘어가지만, 곁에 뒀다가 두고두고 곱씹어 보아도 좋겠다. ‘꿀짱아’(딸 별칭)가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긴 한데, “장혀” 한마디 얻은 것으로도 읽을 가치는 차고 넘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그들이 빚은 작품에선 잘 익은 가을 술 냄새가 났다. 이젠 밤이면 살짝 선선한 기운도 감도는 늦여름. 미술 갤러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노장들의 진득한 성찬을 차려냈다. 23일 섬유공예가 송번수 작가(79)를 시작으로, 24일 추상조각가 엄태정 작가(84)와 25일 실험미술가 이건용 작가(80)의 개인전이 막을 올렸다. 성향이 다른 작가들이나 전시는 공통분모가 상당하다. 일단 작품 수가 조촐하다. 대략 20점 안팎. 하지만 전시장이 그득한 듯 하나하나 묵직하다. 초기작은 곰삭은 맛이 우러났고, 최신작은 켜켜이 쌓인 공력이 옹골찼다. 오랜 길을 걸었으되 군더더기 없는 간명함도 닮았다. 갖은 감상은 관객 몫으로 남겨둔 채 노장들은 묵묵히 결과를 내놓았다. 꽃이나 나무 가시를 주 소재로 삼아 ‘가시화가’로도 불리는 송번수 작가의 작품은 그래서 빛이 났다. 1970년대 프랑스 파리 유학 전후부터 모티브로 삼은 가시는 신작도 마찬가지. 허나 작가는 그저 “작은 가시는 고난과 시련, 큰 가시는 도전과 성취”라 일러줄 뿐. 꽃을 떼어낸 이유도, 가시 그림자를 그리는 까닭도 “콤퍼지션(composition·구성)”이라고만 했다. 송 작가가 여러 작품 제목에 ‘possibility(가능성)’를 붙이는 것도 이런 열린 해석을 기대하기 때문일까. 눈에 띄는 건 2022년 작 ‘Possibility-Constellation 022-Ⅱ’. 제목대로 성좌(constellation)에다 시그니처인 가시를 별처럼 박아 넣었다. 해설이 더 걸작이다. 심오한 우주를 화폭에 담고선 “외딴 작업실이라 별이 밝아 보여서”란다. 서울 용산구 ‘갤러리바톤’에서 열린 이번 전시 문패는 ‘Know Yourself’. 송 작가는 “누구나 남 탓하기 쉽지만 세상만사는 자신이 문제”라며 “소크라테스 명제는 여전히 모두의 숙제”라 했다. 다음 달 24일까지. 엄태정 작가의 개인전 ‘은빛 날개의 꿈과 기쁨’은 한발 더 나아간다. 대부분 금속 소재인 작품들은 건물을 세울 때부터 있어 왔던 듯 자리를 지키고 섰다. 전시가 열리는 종로구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는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1971년 지은 옛 ‘공간’ 사옥. 엄 작가는 고인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선생의 정신이 깃든 장소”라며 기뻐했다. 건물 바깥에 선보인 ‘기 No.3’는 같은 1971년에 만들었다 도난당했으나 지난해 새로 제작했다. 한국 추상조각의 1세대 주자로 꼽히는 그의 작품 역시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쇠는 그저 쇠일 뿐.” 작가는 금속의 “본질적 물성(物性)”을 찾으려 했더니 그런 형태로 창조됐단다. “예술은 낯선 자(者)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을 마주하는 작업”이라니, 구도(求道)의 기운이 배어난다. 전시회 측은 이를 “고요하고 시(詩)적”이라 하나, 골짜기 계곡물처럼 활기차고 정겹기도 했다. 특히 표제작 ‘은빛 날개의…’는 1.5t이 넘어 다부진데도, 윙윙거리는 에어컨이 산바람이라도 되는 듯 경쾌함이 물씬했다. 내년 2월 26일까지. 종로구 ‘리안갤러리 서울’이 선사한 ‘Reborn’(재탄생)의 주인공 이건용 작가는 묵을수록 놀라운 특급 와인 같다. 1960년대 등단 때부터 “행위예술을 선도해왔다”는 평을 받은 그는 1976년 처음 선보인 연작 ‘보디스케이프(bodyscape)’를 이번 출품작에도 이어갔다. “신체적 ‘제약(制約)’을 이용해 선을 긋는다”는 뜻으로 당시엔 독재정권에 던지는 저항 메시지가 컸다. 작가는 이제 또 다른 제약에 주목한다. “생명에 조화로웠던 세상이 인간의 통제로 부조화해졌다”며 생태적 혼란을 성찰했다. 캠퍼스 위에서 북극곰이나 쓰레기 더미가 그의 선긋기에 얽히고설켜 한숨을 삼키고 있다. 최근 팬데믹을 겪으며 “환경과 관련해 반성했다”는 작가는 요즘 종이박스를 재활용해 작업한다고 한다. 10월 29일까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저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싶습니다.”(르브론 제임스) 우리도 안다. 미국프로농구(NBA) 슈퍼스타 ‘킹 르브론’. 그 정도 거만은 떨어도 된다. 코비 브라이언트(1978∼2020)가 걸리긴 해도, 마이클 조던 말고 NBA에서 황제나 왕이란 칭호가 어울릴 이가 또 있을까. 잘나면 나이 불문 형인 세상. ‘형 하고 싶은 대로 해.’ 걸쩍지근하긴 하다. 이미 고교생 때 1000만 달러짜리 수표를 제시받아 놓고 뭐가 부족해서. 그건 책을 보면 안다. 그는 진짜 ‘나라’를 갖고 싶은 거다. 코트 위에서만 왕이 아니라, 구름 위로 솟구치는 여의주처럼 한없는 지폐다발 제국을. 미 스포츠채널 농구전문기자인 저자는 ‘연줄’이 기가 막히다. 르브론과 고향 친구라 어릴 때부터 친분을 쌓고 지근거리에서 취재해 왔다. 현지에선 르브론의 ‘스피커’로도 불린다는데, 관련 책도 여러 권 써 많이 팔렸다. 인생은 르브론보다 브라이언처럼. 그런 저자가 이 책에선 킹 르브론이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지 해부한다. 흔히 스포츠·연예계 스타를 ‘1인 기업’이라고 부르는데, 웬만한 대기업 뺨치는 르브론의 사업 과정을 꼼꼼히 들여다봤다. 저자는 이런 대성공이 르브론의 “통찰력” 덕이라고 봤다. 개인적 농구 실력이야 당연히 월등하지만 동료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재주도 뛰어난 킹. 사업을 일구는 안목도 탁월하다. 한마디로 첨부터 자기가 ‘돈 되는’ 걸 알았고, 더 돈이 되게 키울 줄 알았다. 실패가 없진 않았다. 재능 있는 선수들을 모아 대형 에이전시를 세우려 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하긴 분명 르브론 다음일 텐데 누가 가겠나. 투자한 다큐멘터리도 성적은 신통찮았다. 팀 이적 발표를 ‘상품화’한 TV쇼는 어쭙잖은 표현력이 산통을 깨놓았다. “저의 재능을 사우스비치로 가져갑니다”란 말은 지금도 놀림거리다. 허나 역경은 그를 멈추지 못했다. 오히려 더 채찍질했다. 자신에게 맞는 사업을 발굴하려 끈기 있게 배우고 기다리고 투자했다. 남들은 고향 친구들과 일하는 걸 비웃었지만 르브론은 친구들이 그런 능력을 갖추도록 함께 노력했다. 자선사업조차 전략적으로 해내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워런 버핏이 달리 “내가 저 나이 때 그만큼 사업에 현명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겠나. 올 6월 미 경제매체 포브스는 르브론의 자산이 12억 달러(약 1조5888억 원)가 넘는다고 했다. 운동선수가 현역으로 뛰며 10억 달러가 넘은 건 역대 최초라 한다. 하지만 저자가 볼 땐 아직 멀었다. 르브론 주식회사는 멈추지 않는다. “계속해서 틀을 깨고 싶다”는 일성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재밌는 책이지만 입안이 텁텁할 때도 있다. 솔직히 르브론 덕 많이 본 저자의 얘기라 살짝 편향적이다. 넘보기 힘든 ‘(운동) 능력’을 지닌 이의 성공담이라 따라 할 수도 없고. 다만 하나는 명확하다. 분명 세상은 ‘능력=돈’이다. 하지만 현금지급기에 돈이 가득하다고 그저 누르면 나올 거라 착각하면 곤란하다. 르브론의 말처럼 사업은 “전쟁터”다. 만만히 봤다간 가진 영토도 빼앗긴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싸울 준비가 돼 있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 저도 죽게 되면 야스쿠니에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있었지요. 역시 그런 교육을 받았으니까, 자연히 그렇게 생각되는 거 아닙니까? 역시… 그게 군인이라면 정말 ‘반드시 죽는다’라는 그런 게 이미 있었으니까요. 살아서 돌아온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어요.”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를 고통에 빠뜨렸던 일본 제국주의. 그들은 자국 이익을 위해 이웃 나라 국민을 무참히도 괴롭혔다. 하지만 제국의 영광이란 기치 아래 평범한 일본인도 행복했을까. 아니, 행복하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진실이었을까. 이 책은 현재 일본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저자가 썼던 논문을 재구성했다. 저자는 일제 당시 군인으로 복무하거나 근로봉사에 동원됐던 생존 일본인 3인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 구술을 받으며, 저자는 우리를 괴롭힌 악질 전범자가 아니라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또 다른 희생자들을 마주한다. 집에도 알리지 않고 자원입대한 기시 우이치 씨. 당시 일제는 아들이 입대하면 온 가족이 기뻐했다고 선전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어머니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고, 아버지는 “살아 돌아오라”며 입을 닫았다. 그렇게 들어간 군대는 첫날부터 상상과 달랐다. 구타가 끊기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그리고 다들 자연스레 알게 됐다. 일본은 전쟁을 이길 수 없고,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란 걸. “이제 언제 어느 때 죽을지 모르니까 (…) 기지를 나올 때 모두 전날 밤에 한잔해요. 이별의 술잔이네요. 그런 식으로 가는 거지만, 역시 죽는다는 것을 아니까요. 그건 가엾은 것이라고요.” 책은 역사서답지 않게 술술 읽힌다. 생존자들 얘기에 얽힌 배경 설명도 친절한 편.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찾으려 한 저자의 노력도 상당히 수긍이 간다. 다만 내용이 다소 기시감이 없진 않다. 전쟁을 겪은 여성의 시각도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참 아름다운 책이다. 겉보기에 그렇단 얘기는 아니다. 수수한 표지가 맘에 들긴 해도, 펼쳐야 절경이 펼쳐진다. 빼곡히 자리한 식물 사진도 근사하지만, 글이 너무너무 좋다. 솔직히 기대는 크지 않았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보전복원실에서 식물을 연구하는 박사님의 ‘과학에세이’인지라 선입견이 좀 컸다. 아우, 어려운 용어들에 뺨 맞다가 기절하듯 잠이 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근래에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책이 얼마 만인가. 살짝 부풀려서, 저자가 존경한다는 세계적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1933∼2015)의 글을 처음 접한 기분마저 들었다. 일단 과학자라는 분이 우리말을 너무 예쁘게 쓴다. “눈을 치우다 말고, 남도 날씨 소식에 귀가 왕팽나무 겨울눈처럼 쫑긋 선다.” “(몇 해를 강원도 마을에서 보내면서) 산나물을 알아보는 나의 눈높이는 그들이 사는 위도만큼이나 조금 높아진 것 같다.” 단어 하나를 고르고 문장 하나를 다듬는 솜씨가, 깊은 산간에 숨은 희귀종 식물 고르듯 세밀하고 적확하다. 그렇다고 자칫 감상적이지도 않다. 국내외 식물에 얽힌 얘기를 유려하게 풀어낸다. 이름도 처음 들어본 ‘낙지다리’와 ‘쇠무릎’(실제로 비슷하게 생겼다)이란 식물이 이리도 친숙하게 다가올 줄이야. 서양 클래식 음악이나 동양 고전 서적과 식물에 얽힌 배경들도 흥미진진. 이 책을 읽으며 딱 하나 든 걱정은, 이리 잘 쓰면 다음 책 쓸 때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는 어쭙잖은 오지랖이었다. 저자를 통해 과학자란 사람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됐다. 죄송하게도 살짝 외골수 이미지가 없지 않은데, 어쩌면 그들은 아주 깊고 오랜 연애에 빠진 이들이 아닐까. “사랑하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내가 동력을 얻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식물을 바라보는 것이다”란 말이 두고두고 와닿는다. 그들의 사랑에 오래도록 행운이 깃들길.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행운이 사고처럼 다가와 누군가를 마취시키면 불행이 여기 있다고 선언하며 닥쳤다. 행운이 수고했지, 애썼어, 라고 짧은 위로를 건네고 나면 불행이 그럼 이건 어때, 라며 단계와 강도를 높여 삶이라는 벽을 넘으려는 자들을 깊은 골짜기 아래로 떨어뜨렸다.” 길을 잃어버린 삶. 어디서 마주쳐도 기억에 남지 않을, 50대 김성곤은 목숨을 끊기로 결심했다. 연이은 사업 실패, 부인과의 별거, 그리고 냉담한 딸아이의 눈빛. 무슨 낙이 있겠나. 섣부르게 위로조차 건네기 힘들다. 하지만 그 끝자락에서 어처구니없게 죽음을 피한 김성곤. 이 배 나온 중년은 ‘아주 사소한 변화’에서 삶을 다시 이어가기로 마음먹는다. 일단 어깨와 허리부터 꼿꼿이 펴기로. 2017년 첫 장편소설 ‘아몬드’가 올해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하며 문단의 슈퍼 셀럽으로 등극한 손원평 작가. 그가 이번엔 이 땅에서 저평가되는 50대 아저씨들에게 위로를 건넸다. 지난한 역경이 어깨를 짓눌러도 낙담하고 고개 숙이지 말라고. 아니, 무릎이 꺾였다면 다시 한번 찬찬히 일어나 보자고. 자세 좀 바꾼다고 솔직히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지는 김성곤과 주변의 긍정적 변화를 작가는 흥미롭게 엮어낸다. 다소 찐하게 우연에 우연이 겹치긴 하는데, 원래 인생 그런 거지 하고 끄덕일 정도는 된다. 중반부까지 꽤나 친절했던 이야기의 이음새가 갈수록 헐렁해지는 느낌도 없지 않으나…. 뭐, 그것도 우리네 풍파에서 수긍 안 될 범주는 아니다. 다만 김성곤 못지않게 허리에 ‘튜브’를 낀 아저씨로서 살짝 볼멘소리는 해야겠다. 이 응원, 진짜 중년 남성들을 위한 건지 갸우뚱거려진다. 김성곤은 분명 나잇살깨나 먹은 외모와 배경을 지녔지만, 사고방식이나 행동거지는 청년에 더 가까워 보인다. 철이 없거나 어른스럽지 않다는 게 아니다. 푹 삭은 묵은 때가 끼질 않은 캐릭터라고나 할까. 물론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작가 말대로 김성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뭔가를 시도하는 초능력”을 지닌 이일지도. 하긴, 아이언맨도 굳이 따지면 동년배 아니겠나.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삼육대는 김일목 제15대 총장(60·사진)의 온라인 취임식을 16일 개최했다. 삼육대는 2일 열릴 예정이던 취임식을 취소하고 온라인 취임사로 대체했다. 김 총장은 취임사에서 ‘SU-Glory, 사람을 참되게 세상을 환하게’라는 핵심가치를 제시하며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참된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5대 핵심과제로 △기독교 대학의 사명구현과 세계일꾼 양성 △3주기 평가 대비를 위한 대학운영 혁신 △교원의 연구와 교육 향상 및 교직원 역량 강화 △글로벌 공동체 협력체계 수립 △대학 발전기금 조성을 통한 재정 건전성 확보 등을 선정했다. 김 총장은 삼육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삼육대 대학원과 미국 앤드류스대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2000년부터 삼육대에서 재직하며, 교목처장 신학과장 생활교육관장 신학숙관장 등을 역임했다. 임기는 4년.정양환기자 ray@donga.com}
올해 국내 영화관 관객이 사상 처음으로 2억2000만 명을 넘어섰다. 2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2월 28일까지 누적 관객 수는 약 2억2463만 명이다. 이대로라면 31일까지 2억5000만 명도 넘길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역대 최대 관객 수는 2017년 기록한 약 2억1987만 명이었다. 올해 관객 수가 급증한 것은 ‘천만 영화’가 5편이나 나온 덕분이다. 약 1626만 명이 관람한 ‘극한직업’을 비롯해 ‘어벤져스: 엔드게임’ ‘기생충’ ‘알라딘’ ‘겨울왕국2’가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하지만 5편을 비롯한 흥행 상위 10편이 전체 관객의 45%나 차지하며 영화시장도 양극화 현상이 심각해지는 부정적인 측면도 두드러졌다. 한편 올해 일본 영화의 관객 수는 약 217만 명을 기록했다. 한일관계 경색에 영향을 받아 지난해 약 306만 명보다 크게 줄어든 수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만만하게 봤다간 큰코다친다. 뻔한 표현 쓰고 싶지 않지만, 이 ‘만화’에 이만큼 적확한 조언도 없을 듯하다. 밋밋하다 못해 메마른 그림체와 컷, 졸려도 할 말 없을 무(無) 대사의 연속, 또 반대로 문득문득 읽기 힘든 깨알 같은 글씨까지. 이 심심하고 불편함이 가득한 작품은, 살짝 넋 놓고 있다간 누구보다 강력한 스매싱으로 뺨따귀를 후려친다. 그것도 여러 차례. 제목으로도 등장한 여성 사브리나는 작품에 그리 오래 출연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초반에 잠깐 등장한 뒤 사라진다. 끝까지 구체적 정황이나 영문을 모를 범죄자에게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이들. 남자친구와 여동생과 주위 사람들은 그 여파를 안팎으로 겪으며 ‘살아간다’. 작가의 시선은 바로 여기에 맞춰져 있다. 황망한 살인사건은 당연하게도 가족에게 큰 상처다. 세상 역시 충격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파장은 예상치 못한 불협화음을 생산한다.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의 도구가 무한정 늘어난 21세기지만, 실은 갈수록 개인이란 섬에 갇히며 소통의 방식을 잃어가는 사람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회는, 어떤 도움도 없이 문제의 해결을 각자의 짐으로 떠안겨 버린다. 뭣보다 작품 속 주인공에 가까운 ‘캘빈’은 의미심장한 존재다. 망자의 남자친구의 옛 친구일 뿐인 그는, 딱히 이 사건에 영향을 받을 관계도 아니다. 하지만 어정쩡한 거리에서 소용돌이에 휩쓸린 캘빈은 어쩌면 우리네 모습을 가장 제대로 비추고 있는 캐릭터일지 모른다. 상실은 크든 작든 누구에게나 일어나니까. 그리고 그건 어떤 식이든 영혼을 갉아먹는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사진)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란 성탄 메시지를 23일 발표했다. 염 추기경은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으면 내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반목과 대립을 반복하는 세태는 우리 사회를 위태롭게 만든다”면서 “이런 마음은 다른 사람을 그 자체로 소중히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염 추기경은 특히 정치지도자들에게 “사회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끈기 있는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며 “상처받고 힘없는 이들의 대변자가 돼 주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꽤나 ‘이과’스러운 책이다. 문과 출신은 지레 겁먹으란 소린 아니다. 오히려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다만 단서 하나, 숫자 하나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내용에 살짝 겁이 날지도. 하지만 잘만 붙들면 그 끝에 호박고구마가 넝쿨째 달려 올라온다. 이렇게 신나는 과학책, 만나기 쉽지 않다. 영국 생물인류학자이자 해부학자인 저자는 인류사를 ‘길들임의 역사’라 명명한다. 대단할 것도 없다. 가축이나 곡식 얘기다. 야생 동식물을 길들여 이만큼 ‘등 따시고’ 배불렀던 거 누가 모르나. 한데 ‘걔들 입장’은 어떨까. 아낌없이 퍼주는 희생? 저자는 고개를 젓는다. 길들임은 상호작용이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그들을 길들였듯, 우리 역시 그들에게 길들여졌다고. 인류의 가장 오랜 가축인 개를 살펴보자. 늑대에서 진화한 개는 당연히 여러모로 인간에게 이로운 동물이었다. 하지만 늑대 역시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약 3만 년 전 인류의 수렵채집 시절 늑대는 다가왔다. 추운 겨울 배를 곯던 그들에게 인간이 남긴 음식은 삶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됐다. ‘친구’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책은 이 밖에도 밀과 옥수수, 사과, 닭과 소도 다뤘다. 특히 마지막 장 ‘인류’는 백미다. 인류가 인류를 스스로 어떻게 길들였는지 흥미롭게 설명한다. 앞서 얘기했지만, 이 책은 재밌다. 과학에 젬병이라도 무탈하게 다가갈 수 있다. 살짝 ‘덕후’긴 해도 차분하니 누구에게나 설명 잘하는 친구를 만난 듯하다. 솔직히 “인류 역사에 새바람을 일으킬 책”(영 일간지 가디언) 정도인진 모르겠지만, 답답했던 방 안을 환기시키는 시원한 공기를 선사하는 건 틀림없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