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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0명의 윤석열’을 누가 감당할까.”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직후인 지난달 두 차례 단행된 이른바 ‘검찰 대학살 인사’에 대해 전직 검찰 고위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등 ‘살아있는 권력’ 수사를 지휘하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참모진과 수사팀 검사를 지방으로 좌천시켜 ‘제2의 윤석열’이 100명 정도 생긴 것 아니냐는 것이다. 윤 총장 1명도 현 정부가 감당하기 버거워하는데, 윤 총장처럼 타협하지 않는 검사 여러 명을 훗날 어떤 권력이 상대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섞여 있는 탄식이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번 인사가 권력 수사에 대한 방해 아니냐는 비판에 “사표를 내는 분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본다”며 큰 반발이 아니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좌천된 인사 중 일부는 지방으로 내려가면서 ‘위리안치(圍籬安置)’를 언급했다고 한다. 집 주변을 둘러싼 가시 울타리에 갇혀 지내야 하는 위리안치는 조선시대 당쟁으로 유배된 유학자에게 내려진 형벌 중 가장 강도가 높은 것이었다. 가혹한 처사라는 억울함에도 좌천된 검사는 왜 사표를 내지 않고, 검찰에 남아 있을까. 한 검찰 간부는 ‘윤석열 학습효과’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 수사를 놓고 정권에 맞서다가 지방으로 좌천됐던 윤 총장은 옷을 벗지 않고 끝까지 검사로 남았다. 결국 정권 교체 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해 적폐청산 드라이브의 최일선에 섰고, 검찰총장에도 발탁됐다. 권력에 치받다가 수모를 당하면 사표를 던지는 것으로 저항하던 선배 검사들과 달리 ‘제3의 길’을 연 것이다. 검찰개혁을 지상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검사(檢事)주의자’ 윤 총장을 요직에 발탁한 것은 동료 검사들에게 가장 큰 충격이었다. 윤 총장의 원칙 수사를 이겨낼 수 있다는 정권의 자신감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검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윤 총장은 취임 직후 “무슨 여한이 있겠냐. 직분에 최선을 다하자”고 했다. 조국 사태 등 권력층이 민감해하는 수사를 할 때 여권이 검찰을 비판하자 윤 총장은 “그간 정치권을 편들어 오면서 일한 적이 없다”며 후배들을 다독였다고 한다. 국정농단 사건 등을 떠올리며 “검찰이 정권을 감싸고돌면 정권이 진짜 민심과 멀어질 수 있다”며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그런데도 추 장관은 취임 이후 검찰 내부의 상실감은 무시하고, 강공 일변도로 밀어붙이고 있다. 윤 총장의 의견을 듣지 않고 검찰 인사를 단행했고, 전·현직 청와대 관계자에 대한 기소를 만류한 데 이어 공소장 공개까지 가로막았다. 21일에는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의 판단 주체를 분리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7년 만에 장관 주재 전국 검사장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 불참하는 윤 총장은 “수사와 기소는 한 덩어리”라며 이미 후배 검사장들을 향해 반대 메시지를 던졌다. 선거를 앞두고 장관과 검찰이 또 한번 충돌할 수 있다. 지난달 10일 대검에서 열린 검찰 신년동우회에서 한 전직 고위 간부는 “‘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버드나무는 백번 꺾여도 새 가지가 난다)’라는 말이 있다”며 후배 검사들을 위로했다. “진짜 검사가 되라”는 조언을 주변으로부터 받고 있는 좌천 검사들은 결기를 더 키운다고 한다. 이런 시점에 검찰 사무의 최고 책임자인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꺾고 또 꺾기만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여당 내부에서도 “시시비비를 떠나 권력에 맞서는 것 자체에 박수 치는 것이 보통 사람의 정서임을 왜 모르는가”라며 추 장관에게 더 낮아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A=내부에서 대표적으로 복지부동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도 중요 부서로 배치, B=승진을 시도하였다가 내부의 인사 라인 반대로 무산, C=정책 대응 실패에도 아무런 문책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례….’ 2016년 3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 내 파벌로 인한 난맥을 점검하라”고 지시한 직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이 문체부 국·과장급 공무원들에 대해 수집한 세평(世評) 결과다.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1심 재판 때 그 내용이 공개됐는데, 1심 재판부는 세평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다른 공무원에 비해 빠른 승진을 시도했다거나, 복지부동이라는 주관적인 평가에 기초하고 있고, 정책 실패라는 사유 또한 정식으로 판명된 것이 아니었다.’ 헌법상 국민 전체의 봉사자인 공무원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는 청와대 인사 검증 자료가 얼마나 부실하고, 편파적일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검찰 중간 간부 인사는 청와대의 인사 검증 관행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23일 단행된 검찰 중간 간부 승진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 행정관들이 차장검사 승진 대상자에게 전화로 물었다는 질문 내용을 보면 실소가 나온다. 기존에는 차장검사는 법무부 담당이었는데, 이번에는 검찰을 잘 모르는 경찰 출신 행정관이 질문자로 나섰다. “검사 경력만 20년이 넘는데, 돈이 참 없으시다. 안타깝네요.” 20년 가까운 경력의 중견 검사에게 전화상으로 약 5분간 이 정도 수준의 질문을 한 뒤에 승진 여부를 가렸다는 것 자체는 코미디 같은 일이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사건 등에 참여한 검사에게는 “어떤 역할을 했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국정 철학에 대한 이해도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부적절한 것이다. 검사에게는 사실상 모범 답안이 뻔히 보이지만 소신에 반해 답변하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상 검증”이라는 지적에 청와대는 “내부 확인 결과 발견하지 못했다”고만 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질문의 수준이 아니라 청와대의 검찰 장악에 대한 과욕이다. 청와대는 관행적으로 검사장 승진 대상자에 한해 직접 인사 검증을 했는데, 이번에는 차장검사 승진 대상자까지 범위를 느닷없이 넓혔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라고 했지만 청와대가 일개 부처 개혁위의 말을 즉각 받아들인 게 석연찮다. 신속한 검증을 위해 청와대는 경찰에 하청을 줬고, 180명 이상의 검사 세평 기초 자료를 동시 수집한 경찰에선 “체감상 업무가 5배 정도 늘어난 것 같다”는 불만이 나왔다. 검사에 대한 청와대의 직접 검증이 늘면서 국세청 등 타 부처 인사 검증이 연쇄적으로 늦어졌다는 말까지 들린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부처에 위임하는 최근 추세와도 역행하는데, 청와대는 왜 그랬을까. 한 검사는 “청와대가 검찰의 중립성에 비수를 꽂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검사는 “검찰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고 한 것이다. 누가 인사를 하는지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실무 수사 라인까지 직접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청와대가 감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4년 전 문체부 공무원의 좌천 인사처럼 최근 검찰 인사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형사사법 절차대로 진행하다 보면 훗날 검사의 세평 결과가 공개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편파’ 세평 작성을 지시한 청와대 관계자는 그때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참에 청와대의 직접 인사 검증 대상과 범위, 절차, 검증에 참여할 유관기관을 공개적인 법령으로 정하면 어떨까. 그 과정을 점검해서 문책하는 조항까지 넣어야 불행한 인사 퇴행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사회부장 정원수 needjung@donga.com}

이른바 ‘1·8 대학살’ 검찰 고위 간부 인사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58)이다. 윤석열 검찰총장(60)의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인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에 이어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모든 검사가 단 한 곳만이라도 가길 꿈꾸는 ‘빅3 요직’을 모두 거친 검사는 1998년 박순용 전 검찰총장에 이어 22년 만이다. 야당에선 “1년 이내에 세 자리를 모두 역임한 것은 71년 검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특혜 인사”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 청와대의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하던 2004∼2005년 그 밑에서 특별감찰반장으로 근무했다거나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라는 것 외엔 이 지검장에 대해 알려진 게 별로 없다. 검사들은 대체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만 기억하고 있거나 “알 기회가 없었다”고 답한다.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없어 부득이 같이 근무했던 전·현직 검사들과 지인들에게 물었다. “저녁 자리를 하지 않고, 하루에 한 끼만 먹는 것으로 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벽 1, 2시까지 수사하고 늦게 귀가한 검사에게 아침 일찍 나와 공부하자고 한다. 주말에도 그렇게 하니 검사들이 좋아하겠나.” “젊었을 때 골프를 싱글까지 쳤는데, 목표를 달성한 뒤에 바로 끊었다고 하더라.” 밤늦게 술을 마시거나 또 그런 자리에서 권력층 인사를 만나 부당거래를 할 것 같은 영화 속 고정관념의 검사들과 너무 다른 모습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근본부터 검찰을 바꾸려는 문재인 정부와는 궁합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서초동의 기류는 기대감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현실이다. 상식 밖의 고집을 끝까지 피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우려다. 이 지검장의 한 지인은 “자기 생각에 꽂히면 밀어붙여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지인도 “좋게 말하면 원칙주의자인데, 교조적인 측면이 있다. 별명이 ‘탈레반’”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0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으로 근무하면서 개미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주식워런트증권(ELW) 부당거래 혐의로 12개 증권사 대표와 초단타 매매자인 스캘퍼를 기소한 일을 꼽는다. 1, 2, 3심에서 모두 무죄가 난 배경에 이 지검장의 고집을 기억하는 검사들이 아직 있다. 이 지검장이 수사팀 검사에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거나, 윤 총장의 의견을 반대할 경우 충돌 소지가 있다. 이 지검장이 2008년 민원인에게 흉기로 직접 피습당하고, 2012년엔 후배 검사가 성추문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한직을 떠돌아 자기 상실감이 크다는 것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그 상실감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수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때는 민감한 수사를 하는 일선 지검에 법률 검토를 요구하면서 시간을 끌게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법무부 검찰국장 때에는 특별사면이나 검찰 인사를 맡아 현 정부의 기조를 뒤집는 결과를 내놨다. 서울중앙지검장 취임사에서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를 강조했지만 정작 후배 검사들은 “예전에는 집요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강의하더니…”라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대다수 검사들은 요즘 두려운 마음으로 이 지검장의 거침없는 영전을 지켜보고 있다. 요직을 맡은 검사가 권력에 굴종하거나, 그 반대로 권력을 치받은 대가를 치르는 두 장면을 주로 지켜봤기 때문이다. 권력이 검찰의 힘을 제도적으로 뺏고, 정권을 향한 수사까지 원천봉쇄하려고 하는 이때 이 지검장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인사의 결말이 궁금하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법정에서 말하겠다.”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1, 12월 서울중앙지검의 특별조사실에서 3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라고 한다. 검사가 자녀의 입시 비리 등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도 조 전 장관은 두 가지 답변 중 하나를 반복하면서 추가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8월 27일 조 전 장관 관련 첫 강제 수사 이후 126일 만인 지난해 마지막 날 검찰은 A4용지 56쪽 분량의 조 전 장관 공소장을 국회를 통해 공개했다. 청와대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고 폄하했지만 공소장을 읽어 보면 조 전 장관 혐의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특히 조 전 장관 아들이 삼수 끝에 국내 유명 대학원에 연거푸 합격하는 과정이 가장 눈길이 갔다. 조 전 장관이 문재인 정부의 초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2017년 5월경 조 전 장관의 아들은 국내 대학원 시험에 한 달 간격으로 두 번 불합격한다. 입영 문제를 해결하고,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해서는 같은 해 하반기로 예정된 2018학년도 전기 대학원 시험에는 꼭 붙어야 했다. 조 전 장관 부부는 이때부터 아들의 가짜 스펙을 수집한다. 2017년 10월 11일 조 전 장관은 대학 4년 후배인 최강욱 변호사에게 부탁해 아들의 가짜 로펌 인턴활동 확인서를 받았다. 지도변호사 이름 위에는 조 전 장관 아들이 ‘2017년 1∼10월 매주 2회 16시간 동안 변호사 업무와 법조 직역에 관해 배우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문서 정리 및 영문 번역 등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음을 확인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가족 상속 사건을 변호할 정도로 가까웠던 최 변호사가 약 1년 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조 전 장관 밑에서 근무한 게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 같은 달 16일에는 조 전 장관이 재직하던 서울대 공익인권법연구센터에서 아들이 고교 시절인 2013년 7∼8월 인턴활동을 했다는 가짜 인턴활동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그 다음 달 3일엔 아들이 2015∼201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다니면서 받은 장학금을 수령액보다 2만7000달러 이상 부풀리고 장학증명서까지 위조했다. 가짜 스펙 자료를 제출한 끝에 조 전 장관 아들은 2017년 10월과 11월 대학원 두 곳에 합격했다. 한 대학원 입시전형에선 온라인 접수 마감까지 가짜 경력을 기재하지 못하자 가짜 경력을 기재한 용지를 덧대는 편법을 동원했는데, 대학원은 문제 삼지 않았다. 조 전 장관의 아들은 2018년 3월 대학원 한 곳에 입학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같은 해 5월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권력적폐 청산을 생활적폐 청산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적폐청산이 문 정부의 집권 초기 국정 100대 과제 중 제1 과제였는데, 9대 생활적폐 중 첫 번째가 하필 학사비리였다. 청와대 재직 중에 아들의 대학원 입학을 위해 학사비리를 저지른 조 전 장관이 학사비리 척결의 최선두에 섰다는 것 자체가 부조리극의 한 장면 같다. 그런데도 조 전 장관 측은 기소 직후 “상상에 기초한 정치적 기소”라고 비판했다. 검찰 사무의 최고책임자였던 조 전 장관이 검찰 사무의 핵심인 수사와 기소를 부정한 것이다. 조 전 장관의 바람대로 29일부터 ‘법정의 시간’이 온다. 조 전 장관은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포토라인 폐지 등 개정된 인권 규칙의 첫 수혜자로 특혜를 받았다. 그런데도 피해자처럼 행동한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부디 법정에서는 침묵을 깨뜨리고 가짜 스펙 수집의 자초지종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길 바란다. 오랜 법언대로 ‘법정에선 특혜가 인정되지 않는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선거는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핵심으로서 국민이 직접 대표자를 선출하여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므로 선거에서의 공정성은 민주국가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거에서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헌법적 요청으로서, 공직선거법 제9조는 그 취지를 구체화하여 자유선거 원칙과 선거에서의 정당의 기회 균등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공무원에 대하여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나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비박계 인사를 배제하고, 친박계 인사를 공천하기 위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로 여론조사를 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판결문의 일부다. 서초동에서 요즘 이 판결문이 화제라고 한다. 지난해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낙선시키고, 송철호 울산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검찰이 수사하면서 이 판결문이 자주 거론된다고 한다. 특히 수사 지휘권자가 윤석열 검찰총장으로 같고, 수사 대상만 정반대의 정치세력이라는 점에서 더 시선을 끌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국정원의 댓글 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가 좌천됐던 윤 총장은 공정선거에 대한 강한 소신을 갖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5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된 윤 총장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 중이던 박 전 대통령을 지난해 2월 총선 개입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총선이 끝난 지 2년 정도 지났지만 공무원의 직무나 직위를 이용한 선거법 위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법정에서 검찰은 “국민의 봉사자라는 대통령의 정체성을 잊고 제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국정원을 사금고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했고, 1, 2, 3심에서 모두 유죄 판단을 받았다. 윤 총장은 올 상반기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정보 경찰을 통해 2016년 총선에 개입한 의혹을 또 수사했다. 총선 전 친박계를 위한 판세 분석 등 맞춤형 정보를 정보 경찰로부터 제공받은 청와대 관계자 등이 재판을 받고 있다. 권력이 정보 경찰을 싱크탱크처럼 활용하는 낡은 관행을 끊은 것이다. 당시 야당이 “적폐청산 수사의 연장선”이라고 검찰을 공격하자 윤 총장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선거가 제일 중요하다. 권력은 선거를 안 통할 수가 없지 않나. 야당은 할 수 없지만 여당은 은밀한 반칙행위로 권력을 연장하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수사는 현 정부에 부담을 주는 것이다. 이 정부의 손발을 묶는 것일 수 있다.” 오히려 여당에 불리한 수사라는 것이다. 그런 윤 총장이 다시 선거 수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라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는 지난달 울산지검에 사건을 맡겨두지 않고, 서울중앙지검으로 재배당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연말에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이 통과되고, 새 장관이 들어서면 수사팀이 전격 교체될 수 있다. 내년 총선이 궤도에 오르기 전에 수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도 변수다. 조국 사태 때 서초동 아스팔트 위 시위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은 선출된 권력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출된 권력의 힘은 공정경쟁을 통해 뽑혔다는 전제 위에서 나온다. 여당이 박근혜 정부처럼 국가기관을 선거에 이용했다는 의혹을 씻기 위해서라도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면, 먼저 의혹을 끝까지 밝혀 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건 아닐까.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검찰 개혁의 제일이 인사 개혁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공무원 조직이 인사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인사를 개혁하면 행동 패턴이 바뀐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인 박상기 전 장관이 지난해 11월 사석에서 검찰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얘기다. 얼마 뒤 ‘검사 인사 규정’이 대통령령으로 격상돼 제정되더니 국무회의까지 통과해 같은 해 12월 18일부터 시행 중이다. 박 전 장관은 “검사 인사를 먼저 하고 원칙을 나중에 세우는 이전 정부의 ‘선(先)인사 후(後)원칙’의 시대를 벗어난 것”이라며 의미 부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총 21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규정의 제1조는 ‘검사 인사의 기본 원칙과 절차를 정함으로써 인사 관리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기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인사의 대원칙을 처음 세운 것이다. 검사들도 인사의 예측 가능성이 생겼다며 환영했다. 특히 제12조의 필수보직기간을 반겼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공무원 임용령’에 따르면 필수보직기간은 공무원이 다른 직위로 전보되기 전까지 현 직위에서 근무해야 하는 최소 기간이다. 지방검찰청의 차장, 부장검사의 필수보직기간은 1년, 평검사는 2년이다. 요즘 검사들에게 이 규정이 다시 회자된다고 한다. 규정대로라면 서울중앙지검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수사를 지휘 중인 3차장과 반부패수사2부장은 내년 8월까지 근무 기간이 보장되어 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下命) 수사 의혹을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의 2차장과 공공수사2부장,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의 형사6부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직제 개편을 하면 예외적으로 필수보직기간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 검찰에서는 김오수 법무부 차관이 지난달 8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알리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41개 직접 수사 부서의 폐지를 건의한 것을 의심하고 있다. 민감한 수사를 담당하는 차장과 부장, 평검사 인사를 앞당기기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것. 김 차관은 “누가 그런 가짜뉴스를 퍼뜨리냐”면서 황당해했지만 검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그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닌 검사장급 이상의 고위 간부다. 현 정권 입장에선 눈엣가시 같은 대검찰청의 수사지휘 라인 참모, 서울중앙지검장 등은 법무부 장관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언제든 인사할 수 있다. 법무부에서 검사 인사를 오랫동안 담당했던 전직 검사장은 “인사 요인이 전혀 없다. 만약 내년 1월에 인사를 한다면 그건 정치적 이유”라고 했다. 6개월 전에 이미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염두에 두고 60여 명의 고위 간부를 용퇴시키는 파격적 인사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기습적인 인사는 임기 2년이 보장된 윤 총장을 강제 퇴진시키기 어렵게 되자 그에게 불신임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런 의도라면 청와대를 향한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한 인사라는 측면에서 위법 논란이 제기될 수도 있다. 추미애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첫 출근길에서 윤 총장을 향해 “헌법과 법률에 위임받은 권한을 상호 간에 존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라고 했다. 추 후보자는 내년 총선 전까지 인사가 없다고 선언해야 한다. 그것이 청와대를 향한 검찰 수사에 개입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고, 이 정부의 검찰 인사 대원칙을 지키는 길이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서울 서초구 대법원청사 11층 대법원장실 옆에는 113m² 크기의 방에 원탁과 의자 13개가 놓여 있다. 매달 셋째 주 목요일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등 전원합의체 구성원 13명이 전체회의를 여는 곳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13년 8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방송한 채널 사업자를 징계·경고한 결정에 대한 불복 소송도 이곳에서 논의됐다. 2015년 8월 11일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은 올 1월 전합에 회부돼 7월까지 5차례 전합 심리가 열렸다. 마지막 회의에서는 관례대로 지난해 12월 임명된 최후임 김상환 대법관부터 대법원장까지 서열의 역순으로 투표했다. 8번째 김재형 대법관이 결정취소 의견을 밝히면서 결정취소 쪽이 6 대 2로 결정유지 의견을 압도했다. 과반에 1표가 모자랐는데, 이기택 박상옥 권순일 조희대 등 선임 대법관들이 결정유지에 힘을 보태면서 6 대 6 동률이 됐다. 김 대법원장의 마지막 선택만 남았다. 이럴 경우 전합 재판장인 대법원장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게 불문율이다. 사회를 양분할 수 있는 첨예한 사건을 대법원장이 한쪽 편을 들면서 결정하면 대법원장이 여론의 직접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법부 신뢰와도 직결된다. 더구나 1, 2심 하급심의 일치된 결론을 상급심이 정반대로 뒤집을 때는 더 신중해야 한다. 1, 2심은 ‘백년전쟁’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하고,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방통위의 조치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김 대법원장은 자신이 임명 제청한 대법관 4명 등과 뜻을 같이하면서 상대적으로 젊은 대법관 쪽에 섰다.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7년 9월부터 이달까지 2년 2개월 동안 대법원의 전합 선고 판결문 46건을 전수 입수해 분석해보니, 이른바 ‘김명수 코트’의 7 대 6 판결로는 유일하다. 김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부담을 떠안고 선고한 첫 판결이기도 하다. 당초 지난달 예정되어 있던 선고는 판결문 작성이 늦어지면서 사건 접수 1563일 만인 21일 선고됐다. A4 81쪽 분량의 판결문에는 격렬했던 전합 토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매체별, 채널별, 프로그램 특성별로 완화된 심사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다수의견을 반대의견은 “법치행정에 반한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정면 비판했다. 여기에 다수의견의 보충의견은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을 전적으로 오해하고 그 전제에서 비판한 것이어서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반대의견의 보충의견은 다시 “(다수의견을) 수긍할 수 있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과 분열을 촉발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대법원장이라도 전합에서는 그야말로 13분의 1에 불과하다”면서 소수의견을 직접 내겠다고 했다. 전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시국선언 등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며 7 대 6으로 보수 성향 판결을 주도했다. ‘김명수 코트’는 적어도 스스로 극복하려고 했던 ‘양승태 코트’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사분오열되어 있는데,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전직 대통령 2명과 관련된 선고를 7 대 6, 그것도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터를 자처하면서까지 이 시점에 굳이 해야 했을까. ‘김명수 코트’의 구성이 내년 3월까지 바뀌지 않는데, 김 대법원장이 서둘러 선고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판사들에게 나오고 있다. 취임 2년을 넘기면서 김 대법원장에게 13분의 1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는 법원 내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김 대법원장이 이들의 진심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지금은 말할 단계가 아닙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전직 직원 A 씨는 올해 상반기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해 이렇게 말하며 사실상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당시 A 씨는 유재수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청와대 감찰 무마 고발 사건을 조사받기 위해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처음 출석했다. 2017년 10월 당시 특감반원 A 씨는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던 유 부시장이 업체와 유착 관계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지난해 12월 야당이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A 씨의 보고서가 공개됐다. 여기엔 ‘관련된 업체에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골프 접대 등 각종 스폰서 관계를 유지… 자신의 처에게 선물할 골프채를 사줄 것을 요구… 공항이나 국회 이용 시 업체로부터 차량과 기사를 제공받고… 자녀 유학비와 항공권 등 금품 수수’ 등이 적혀 있었다. 사실이라면 감찰만으로 부족해 보일 만큼 내용이 심각하지만 이후 처분 과정이 의혹을 키웠다. 행정부 소속 고위공직자 감찰 권한이 있는 특감반이 즉각 유 부시장 감찰에 나섰다. 특감반에서 세 차례 조사받은 유 부시장은 75일 동안 병가를 낸다. 복귀 뒤에도 금융위는 유 부시장을 추가 감찰하지 않고, 보직만 해임한다. “청와대가 품위 유지와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고 통보했지만 금융위의 자체 감찰을 실시할 필요성이 높지 않았고, 중복 감찰을 금지하는 관련법을 따랐다”는 것이 금융위가 국회에서 밝힌 이유다. 금융위가 품위 위반 내용을 파악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이유로는 부족한 설명이다. 더 납득이 가지 않는 건 금융위가 감독기관인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유 부시장을 추천한 것이다. 지난해 3월 유 부시장은 국회로 자리를 옮겼고, 같은 해 7월엔 부산시 부시장으로 이동했다. 같은 해 12월 31일 조국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국회에 출석해 “유 부시장의 비위첩보 근거가 약하다고 보았다. 비위첩보와 관련 없는 사적인 문제가 나와 금융위에 통지했다”고만 했다. 나머지는 함구했다. 행정고시 출신인 유 부시장에 대해 “공무원처럼 일하지 않았다. 능력이 뛰어났다”고 호평하는 동료들이 있다. 하지만 특감반 보고서 작성과 감찰, 감찰 중단, ‘영전 인사’는 2006년 청와대 1부속실 행정관 등으로 근무한 유 부시장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고 의심하는 시각이 많다. 문재인 정부의 권력 실세와 가깝다는 배경이 아니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특혜라는 것이다. 검찰 행보 역시 처음엔 미덥지 않았다. 검찰 고발 사건은 처음에 서울동부지검에 배당했지만 다른 지검에 재배당할지를 놓고 상당 기간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없었던 일로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수사 속도가 늦춰진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된 올 7월 이후 첫 검찰 인사에서는 서울동부지검의 수사지휘라인 인사에 권력층이 특히 신경을 썼다는 뒷말이 나왔다. 기존 수사팀은 A 씨를 처음 조사한 뒤 유 부시장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지 않았다. 해외 송금 유학비 명세 등을 추적하다 보면 단서가 나올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올 9월경 새 수사팀은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자료를 입수하고, 계좌추적 영장으로 자금 흐름을 추적했다. A 씨는 최근 다시 검찰 조사를 받았고, 이후 검찰이 금융위와 유착 업체 5, 6곳을 압수수색하면서 수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조국 사태는 개인의 위선과 가족의 일탈 범죄라고 볼 수도 있다. 반면 유 부시장의 감찰 무마 사건은 여러 명이 연루된 공권력의 불법 남용 의혹 사건이다. 검찰 지휘부가 사명감을 갖고 1년간 베일에 싸여 있는 이 사건의 실체를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국회의원 자녀들도 몽땅 조사해 보시지요. … 우리 국회의원들 100% 전수 조사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이찬열 국회 교육위원장) “교육부가 국회의원 자녀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국회에서 개인정보 공개를 동의해 주셔야만 할 수 있습니다.”(유은혜 교육부 장관 겸 국회의원) 이른바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2일 국회 교육위원회의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끼리 주고받은 말이다. 20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대 국회의원 자녀의 대학 입학전형 조사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입시 전문가와 법조인 등 13명으로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한 뒤 그 아래 30명 이내의 조사단을 두고 최대 1년 6개월 동안 입시 비리를 파헤치겠다는 것이다. 다른 정당도 세부적인 조사 주체와 대상이 다른 유사 법안을 제출했다. 정의당은 2008년 이후 국회의원,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차관급 이상 등 전·현직 수천 명 이상을 조사할 것을 제안했다. 자유한국당은 청와대 비서관급까지 검증하는 법안을 냈다. 청년층의 반응은 싸늘하다. 대입만 왜 조사 대상이냐가 첫 문제 제기였다. 법학전문대학원의 사회지도층 부정입학 의혹을 제기해온 한 단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는 의학전문대학원과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에 걸쳐 있다. 대학원을 포함해서 발의해 주기를 요청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6개월도 남지 않은 국회의원 총선거 전 조사 결과가 나오기 힘든 법안을 제출한 것 자체가 생색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2000년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이후 혹독한 검증을 거치는 장관 후보자와 달리 국회의원은 검증의 사각지대였다. 국회의원은 출마자 신분일 때 △재산 △병역 △최근 5년간 소득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납부 및 체납 실적 △금고 이상의 전과기록 △직업 △학력 △경력 등이 공개된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자를 검증하면 편파 시비에 휩싸일 수 있어 검증의 강도가 약할 수밖에 없다. 장관 후보자와 비교하면 기간도 짧고, 허점도 많다. 유권자는 제한된 정보만으로 투표를 하지만 국회의원은 당선만 되면 “검증이 끝났다”는 이유로 장관직에 무혈입성하고, 더 높은 선출직을 노린다. 국회의원의 검증 수준을 지금보다 훨씬 높게 끌어올려야 한다. 당장 시급한 건 요즘 젊은층이 가장 예민하고, 분노하는 자녀의 입시와 취직 관련 정보부터 검증하는 것이다. 3당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의 절차대로 자녀의 대학이나 대학원 입시와 논문, 제출 서류의 신빙성을 검증해달라는 동의서를 쓰게 하고, 교육부가 대학과 대학원의 협조를 얻어 자료를 중립기관에 제출하면 거기서 검증한 뒤 그 결과를 공개하면 된다. 자녀의 취직 정보도 같은 절차를 거치면 된다. 국회의원으로서는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과거 세금 체납과 병역 사항이 갑자기 공개됐을 당시 정부와 국회 차원의 논의를 살펴보면 결코 과한 조치가 아니다. 반대 여론에도 “(당사자가) 사회적 처신이 곤란해지는 데서 느낄 간접적인 심리적 압박감까지 고려했다” “법적 근거는 약하거나 없어도 다 우리 사회에서 용인되고 공감을 받고 있다”며 공개 방침이 정해졌다. 부작용이 없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사회가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다만 발의된 법안과는 달리 20대 국회의원은 조사 대상에서 뺐으면 한다. 그 대신 21대 국회의원 후보자부터 더 강화된 기준을 적용받도록 해야 법의 통과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공정 척도에서 좀 더 경쟁력이 있는 후보자가 다음 국회에 더 많이 입성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대적 가치에 귀를 막고, 눈을 가리는 국회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감이라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같은 식구끼리 백날 152명이 한들, 1만5000명이 한들… 경찰에 대한 신뢰를 뚝 떨어뜨렸습니다.” 14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의 국정감사. 검찰 개혁을 놓고 딴소리를 하던 여야 의원이 한목소리로 경찰을 성토했다. 올 3월 14일 민갑룡 경찰청장이 국회에서 “경찰의 명운이 걸렸다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약속했던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사건 수사 때문이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5개월 넘게 수사하고도 경찰이 내부에 온정적이었다는 비판은 이 사건의 진실 일부분에 불과하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약한 경찰의 한계가 본질에 더 가깝다. 버닝썬 사건의 핵심 수사 대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7월부터 1년 동안 대통령민정수석실에서 파견 근무했던 윤규근 총경(49·수감 중)이다. 경찰청 정보국에서 ‘청와대 보고용 특별보고서’ 등을 만들던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민정수석실에 처음 발탁됐고, 그 인연으로 문 정부 때 두 번째 청와대 근무 기회까지 얻었다. 윤 총경의 구속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현 청와대에 근무한 인사가 개인 비리로 구속된 첫 사례다. 윤 총경은 경찰이 아니라 왜 검찰에서 구속됐을까. 경찰은 버닝썬과 관련해 14곳을 압수수색했지만 하필 윤 총경에 대한 자택이나 사무실 등은 압수수색하지 못했다. 윤 총경의 재산신고 명세에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제조업체 옛 큐브스 등 3, 4개 주식 종목 보유까지 파악했지만 올 3, 4월 큐브스의 정모 전 대표(45·수감 중)를 세 차례나 조사하면서도 둘 사이의 유착 관계는 추궁조차 못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반면 검찰은 올 6월 경찰의 수사 기록을 넘겨받고 약 한 달 뒤부터 큐브스의 경기 파주시 본사와 서울사무소, 윤 총경의 자택 등을 연이어 압수수색했고, 여기서 윤 총경이 공짜로 받은 비상장 주식에 대한 파일을 찾아냈다. 잠적했던 정 전 대표까지 체포한 검찰은 윤 총경이 공짜 주식을 정 전 대표가 2016년 경찰에 고발된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뒤 윤 총경을 구속 수감했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건 경찰이 올 3월 윤 총경이 임의 제출한 휴대전화에서 보안성이 높은 텔레그램 메시지 내용을 파악하고도 모른 척한 이유다. 민 청장은 버닝썬 발언을 하던 날 국회에서 “별장 동영상 속 인물이 김학의 전 차관이라는 것은 육안으로 봐도 확실하다”면서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윤 총경은 민 청장의 이 발언 기사 링크를 대통령민정수석실 관계자에게 보내며 “이 정도면 됐나요?”라고 물었다. 이 관계자는 “검찰과 대립하는 구도를 진작에 만들었어야 하는데”라고 답했다. 자신이 연루된 버닝썬 사건을 덮기 위해 윤 총경이 청와대까지 끌어들여 김 전 차관 사건을 키우려고 했던 정황인데, 경찰은 그냥 넘긴다. 민 청장의 국회 발언 하루 전 윤 총경은 같은 달 26일 자신과 민 청장 등이 청와대 비서관과 만나는 저녁 약속을 잡는다. 비록 약속이 취소되긴 했지만 윤 총경의 이런 위세에 경찰 수사팀이 눌렸던 것은 아닐까 짐작될 정도로 경찰 수사가 부실하다고 한다. 비대한 검찰 권한을 쪼개는 검찰 개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그 첫 수혜는 경찰이 받게 된다. 하지만 권력에 굽실했던 경찰이 제2, 3의 윤 총경 사건을 양산할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선다. 검찰이 경찰 지휘부와 청와대의 윤 총경 부실 수사 관여 여부를 낱낱이 밝히되, 정치권도 검찰 개혁 이후 경찰 수사의 중립성을 보장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여야 충돌 끝에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직후인 올 5월 초 한 변호사단체의 임원을 만났다. 그는 전날 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실세 중진 의원과 통음했다고 했다. “검찰 개혁이 그렇게 시급한가”라는 변호사의 질문에 여당 의원은 검찰의 과거 수사 사례들을 열거하며 검찰 개혁이 꼭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이 의원이 가장 먼저 예로 든 검찰 수사의 실패 사례는 박근혜 정부 집권 2, 3년 차 때 벌어진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이었다. “그때 검찰이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국정농단 사건을 막을 수 있었는데, 검찰이 정치적으로 수사했다. 정치 검사의 대표적 사례”라는 취지로 혹평했다고 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2017년 5월 11일 조 장관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된 당일 청와대에서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시 민정수석실과 검찰이 사건을 덮는 바람에 국정농단 사태를 막지 못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2014, 2015년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할 말이 많다. 당시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와 갈등을 빚어가면서 수사했다”며 억울해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국민의 기대에는 못 미쳤을 수는 있지만 수사팀을 비판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정의를 외면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적어도 정의를 외면한 수사는 아니라는 반박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정윤회 문건 사건 수사팀 검사들을 정치 검사로 낙인찍어 한직으로 내몰았다. 대다수는 모멸감에 사표를 냈다. 요즘 조 장관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내부에선 다른 이유로 정윤회 문건 사건이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8월 27일 조 장관 관련 첫 압수수색 이후 주변에 과거 검찰이 수사한 다른 사건과 함께 정윤회 문건 사건을 언급했다고 검찰 관계자가 전했다. 더 자세한 경위를 알 수는 없지만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집권 3년 차에 터진 여권을 향한 수사를 머뭇거리면 검찰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나중에 왜 살아 있는 권력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을 받는 것은 물론 청와대에 경고를 충분히 보내지 않았다는 원망까지 검찰이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 역사를 보면 미 군정기의 경찰이, 권위주의 정권 때 정보기관이, 민주화 이후 검찰이 개혁 대상이 된 이유는 명확하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사회적 약자에겐 가혹했기 때문이다. 정윤회 문건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윤 총장처럼 두려움 없이 수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검찰 개혁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했던 여당은 갑자기 거꾸로 가고 있다. 윤 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검찰총장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용기”라고 답했다. 취임식에서는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은 특정 세력이 아닌 국민을 위해서 쓰여야 한다”며 국민을 24번이나 언급했다. 임명 직후엔 후배 검사들에게 “여러분들이 (권력을) 제대로 수사하면 내가 2년 임기를 못 채울지 모른다. 개의치 말라”고 했다고 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윤 총장의 수사가 막힌다면 문 정부의 검찰 개혁 동력은 그대로 사라질 것이다. 이미 수사팀 내부에서는 이런 냉소가 퍼지고 있다.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정권을 잡고 유지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던 것 아니냐. 진정한 검찰 개혁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검찰을 바로 세우는 진짜 개혁의 방향을 고민할 때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7월경 서울 서초동의 대검찰청 8층 검찰총장 집무실. 한 대검 참모가 송광수 당시 검찰총장에게 보고를 하러 가자 송 총장이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고 한다.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검찰 인사를 하면서 총장과의 상의 절차를 아예 생략했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검찰 개혁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법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당시 검찰청법 34조는 ‘검사의 임명과 보직 인사는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행한다’고 되어 있었다. 검사 인사를 앞두고 관행적으로 장관이 총장과 상의하던 문화를 깨버리고, 검찰 입장에서는 상식 밖의, 법무부 입장에선 법 자구대로, 기습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이 인사는 서초동과 과천 간 갈등으로 그치지 않았다. 여의도로 넘어가 국회의 검찰청법 개정 논의에 영향을 줬다. 이듬해 봄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16대 국회의원들은 검찰 개혁을 위한 법 개정에 머리를 맞댔다. 2000년부터 국회의원 4명이 대표 발의한 4건의 개정안, 정부가 제출한 2건의 개정안 등 6건의 법률안을 놓고 난상토론 끝에 하나의 대안이 마련됐다. A4용지 17장 분량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명의의 대안을 읽어보면 이런 검찰 개혁 법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파격적이다. 무엇보다 검사의 직무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검찰총장을 제외한 모든 검사의 직급을 일원화했다.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 규정을 삭제하고,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대한 검사의 이의제기권이 처음 생겼다. 인사 규정도 바뀌었다. 검찰인사위원회가 자문기구에서 심의기구로 격상됐고, 법무부 장관은 검사의 보직과 관련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관련 법안은 그해 12월 30일 오후 5시경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재석 의원 191명의 만장일치 찬성이었다. 2004년 1월 20일부터 현재까지 이 조항은 시행 중이다. 관행적인 검찰 인사 문화가 법률로 명문화되면서 인사권을 제한받게 된 장관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마침 그날 밤 청와대에서 장차관급 인사의 송년 만찬이 있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인사권을 총장과 나누게 된 강 장관이 법 개정에 관여한 검찰 간부를 독사가 개구리 보듯 쏘아봤다”고 기억할 정도로 장관에겐 언짢은 일이었다. ‘누구도 함부로 되돌릴 수 없는 검찰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9일 임명된 조국 법무부 장관은 취임사부터 ‘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적절한 인사권 행사’를 강조했다. 그 뒤에도 인사권 행사를 마치 장관만의 고유 권한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16일에는 “(가족 관련) 수사를 일선에서 담당하는 검사들의 경우 헌법 정신과 법령을 어기지 않는 한 인사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취임식 당일 검찰 인사를 담당하는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은 조 장관 가족 수사의 지휘 라인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하는 제안을 했다가 윤 총장에게 거절당했다. 검찰 인사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려고 세부적인 검사인사 규정을 대통령령으로 정한 게 지난해 12월인데, 장관이 예측 가능성을 어렵게 하는 인사 발언을 자주 하니 일선 검사들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검사들은 조 장관 메시지를 거꾸로 읽으면서 가족 관련 수사 라인이 추후 인사로 응징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장관만의 검찰 인사권은 없다. 장관이 검사 인사에 앞서 총장 의견을 듣도록 한 건 수사 외압 행사를 막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더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장관이 먼저 인사의 대원칙을 허물어서는 안 된다. 15년 넘게 시행돼 온 만장일치 법의 정신을 조 장관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 길에서 벗어나는 건 개혁이 아니라 퇴행이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박사님께 삼가 졸저를 올립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54)는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던 2016년 1월 14일 형사법 학계의 대선배인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79)에게 자신의 저서인 ‘절제의 형법학’을 건넸다. 책 앞쪽 간지에 조 후보자는 이 같은 문구를 검은 펜으로 꾹꾹 눌러쓰고, 서명과 낙인을 남겼다. 지난달 2일 정 전 장관의 서울 중구 개인서재에서 이 책을 우연히 보게 됐다. 당시 차기 법무부 장관 하마평을 궁금해하던 정 전 장관에게 ‘조 교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자 “되는 게 확실합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 전 장관은 “한국 형사법학계 교수들은 대부분 독일에서 공부했는데, 조 교수는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다. 꾸준히 논문을 내면 학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조 후보자의 미국 유학 시절인 1994년부터 인연을 이어온 정 전 장관이 후배 학자에게 닥칠 불행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주일 뒤인 지난달 9일 문재인 대통령은 조 교수를 재임 중 두 번째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딸의 고교 시절 의학 논문 제1저자 등재 등 ‘황제스펙’을 활용한 부정입학 의혹, 가족의 수상한 사모펀드 투자, 사학재단 사기 소송 의혹 등이 잇따라 불거졌다. 조 후보자는 본인 말대로 ‘만신창이’가 됐다. 여론을 돌려세우기 위해 펀드와 재단의 기부를 약속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대한민국 최고 수사부서인 서울중앙지검의 특별수사부 검사들은 조 후보자 관련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지난달 27일부터 30곳 이상을 압수수색했다. 조 후보자는 2000년 미국식 인사청문회 제도를 국내에 도입한 후 국회의 인사청문회 전에 검찰의 강제 수사를 받은 첫 사례가 됐다. 드물긴 했지만 미국에서도 공직자 검증 도중 수사기관이 나서는 경우가 있었다. 가깝게는 지난해 9월 브렛 캐버노 당시 연방대법관 후보자가 대표적이다. 상원의 인사청문회 도중 캐버노 후보자로부터 30여 년 전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상원은 사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 미 연방수사국(FBI)에 수사를 요청했고, FBI 수사가 끝난 뒤에야 캐버노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조 후보자는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관직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했다. “나는 지금 압수수색을 당하지 않았다” “장관이 되면 가족 수사를 보고하지 말라고 하겠다” 등 가족과 달리 자신은 수사와 무관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정부조직법상 법무부 장관은 국가의 중추 수사기관인 검찰 사무를 관장하는 자리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고, 정치세력과의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오기만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미 수사팀 내부에서는 “검찰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했다는 모습을 보여줄 때다” “단순한 사건을 청와대와 여당이 게이트로 키웠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조 후보자가 이대로 장관직에 올라, 장관은 장관의 길을 가고, 검찰은 검찰의 길을 간다면, 임기 반환점을 돌지 않은 정권과 검찰이 정면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도 미국처럼 해야 한다. 미국법을 공부한 조 후보자가 미국식 해법을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조 후보자는 또 철저한 수사를 통해서만 검증 공세를 벗어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믿고,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 후보자의 임명을 보류해야 한다. 그렇다고 검찰을 무한정 기다릴 수 없으니 추석을 1차 시한으로 정하면 어떨까 싶다. 그 뒤에 임명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그것이 임명 강행이라는 엄청난 모험이 가져올 후폭풍을 줄이는 길이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KTX울산(통도사)역에서 내려 자동차를 타고 30분쯤 남쪽으로 가면 경남 양산시 매곡동이 나온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언덕에 담벼락이 유난히 높은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私邸)가 있다. 이곳은 문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 성장기를 보낸 부산과는 좀 떨어져 있다. 부친 산소가 있다는 게 문 대통령과 양산의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청와대’ 근무를 끝낸 2008년 3월경 낯선 이곳에 자리 잡았다. 2017년 5월 대통령 취임 12일 만에 문 대통령은 첫 휴가를 여기서 보냈고, 그 뒤로도 자주 찾았다. 알려진 것만 하더라도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순방 직후, 성탄절 연휴에 사저를 찾았다. 올해는 설 연휴에 이어 지난 주말에도 머물렀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당시 “퇴임 뒤 양산으로 귀향해 여생을 보내겠다”고 했다. 만약 그 약속이 지켜지면 불과 50∼60km 떨어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와 함께 전직 대통령 사저가 같은 광역단체에 하나 더 생기게 된다. 전직 대통령 2명이 임기 뒤 고향에 정착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경남의 자산이라고 볼 수 있다. 퇴임 대통령 사저라고 하면 적어도 여의도 정치권에선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에서 대통령 집권 4년 차 때는 대통령 퇴임 후 사저가 정치권을 늘 시끄럽게 하는 소재였다. 전직 대통령의 거처는 국가경호시설이어서 청와대가 국가정보원 등과 협의를 하지만 국회에서는 다른 전직 대통령과 비교해서 경호시설 등을 마련하는 비용을 놓고 티격태격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터를 매입하는 데 관여한 당시 경호처장은 특별검사 수사를 받고 형사 처벌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삼성동 주택을 팔고, 내곡동 사저를 짓는 과정이 순조롭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는 방법을 미리 생각했으면 한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 상위권으로 자주 거론되는 정치인의 주택 보유 현황을 살펴봤다. 역대 대통령과 달리 단독 주택을 소유한 정치인은 거의 없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오랜 아파트 거주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아파트를 팔아 지금은 무주택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요즘도 경기 성남시 분당의 아파트에서 출퇴근한다. 40, 50대 이하는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진짜 아파트 세대’가 더 많다. 훗날 아파트 주민이 대통령이 된다면 퇴임 뒤 사저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경호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단독 주택과 비교해 아파트 경호는 허점이 너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전직 대통령이 산다는 이유로 아파트 전체 동을 매입하는 건 비용 부담이 너무 크고, 매입 성사 여부도 불투명하다. 아파트로 복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최근 오거돈 부산시장을 만나 “퇴임 대통령 사저를 유치하는 게 어떠냐”고 하자 “부산은 너무 좁고, 땅값이 비싸다”고 답했다. 맞는 말이다. 대도시는 전직 대통령의 사저를 유치하는 데 있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전국의 지자체가 경쟁해서 전직 대통령 사저를 유치하면 어떨까. 반드시 고향이나 성장했던 곳이 전직 대통령의 거처일 필요는 없다. 서울 생활이 좋다면 여주나 강화도는 어떤가. 홍천이나 청주 등도 수도권 근접거리다. 과거 유학자처럼 지리산, 소백산 자락 명당에 터 잡고 인생 후반부를 보내도 좋을 것 같다. 제주도와 같은 섬이나 목포, 포항, 강릉 같은 해안가도 경쟁력이 있다. 전직 대통령이 지방에 직접 살면서 국가균형발전의 중요성을 체험하고, 현직 정치인에게 그 중요성을 설파한다면 그보다 나은 지방분권대책이 있을까 싶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우리 공동체가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항구적인 기본법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 특별법으로 이름 붙이셨나요.” 성수대교가 무너진 지 만 2개월이 안 된 1994년 12월 중순 국회. 한 국회의원은 정부가 제안한 ‘시설물 관리 특별법’ 제정에 반대했다. 정부 측은 “타 법에도 미흡하지만 안전관리가 다소 있고, 그것을 통틀어서 하나의 법안으로 관리하기 위해 이름을 붙였다”며 특별법 통과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법제처의 법령 제정 기준에 따르면 당시 이 의원이 허점을 제대로 짚었다. 특별법은 기본법에 대한 예외적 사항을 규정하는 경우에만 사용하고, 그에 상응하는 기본법이 없는 경우에는 특별법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기둥은 세우지 않고, 지붕 먼저 지은 집처럼 안전 관련 첫 주요 법안은 특별법의 이름으로 허겁지겁 국회를 통과했다. 이듬해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발생했다. 한 달 뒤 정부가 재난관리법 제정을 추진하자 국회의원이 다시 반발했다. “재난관리법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조급성, 한건주의, 외형 위주 과시행정에 대한 반성 차원의 일부인데 이것도 빨리빨리 되고 있어서 안 되겠습니다. 법안을 유보해야 합니다.” 다양한 해외 사례를 연구하자는 주장은 묻히고, 이 법안도 정부안에 가깝게 국회 문턱을 넘었다. 2004년 뒤늦게 재난관리법이 재난안전기본법이라는 이름으로 전면 개조된 것만 보더라도 완성도가 떨어진 법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제처의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안전이라는 키워드로 시행 중인 관련 법령과 하위 법규를 검색해봤다. 법령은 213건, 행정규칙은 967건, 자치법규는 3599건 등 모두 4779건이다. 숫자로는 ‘안전 그물망’이 촘촘할 것 같지만 최근 발생한 광주 C클럽 붕괴와 서울 양천구 목동의 배수터널 사고 등 생활 속 안전사고에 무기력하기만 했다.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안전헌법’의 원포인트 개정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하위 법령을 한꺼번에 재정비할 수 있고, 안전 예산을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국회의장 직속의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모든 인간은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갖는다’는 명시적인 안전권을 헌법에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유럽의 인권 선진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유럽인권규약의 6조를 우리 헌법에도 적용할 것을 당시 개정위원들이 합의한 것이다. 정권 교체 뒤인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은 이 조항에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추가해 국회에 개헌안을 제출했다. 안전 헌법에 관한 국민적 합의와 여야 간 공감대는 이미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국회만 믿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등 최고 법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행히 1987년 헌법은 10조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 외에 34조6항에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처음 도입했다. “헌법이란 법관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라는 법언(法諺)이 있을 정도로 헌법 해석권은 법관의 고유 권한이다. “안전사고가 반복되는 건 기소되더라도 미온적 처벌을 받기 때문”이라는 사고 피해자 측의 비판이 언제까지 반복되어야 하는가. 현행 헌법은 불완전하지만 안전권으로 확대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지난해 대법원은 형사재판이 아닌 행정소송에서 국가재정법 등의 성인지(性認知) 예산에 착안해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판결 기준을 제시했고, 이는 하급심을, 그리고 세상을 바꾸고 있다. 안전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판단을 기대한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정성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장(79·사법시험 2회)은 노무현 정부 시절 부패방지위원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형사법학회의 후배 법학교수 박상기 법무부 장관(67)과 조국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4)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정책을 이끌고 있다. 2일 서울 중구에 있는 정 전 위원장의 개인 서재인 ‘청눌재(淸訥齋)’ 탁자 위에는 그의 고희 기념 논문집이 놓여있었다. 간행사는 박 장관이 썼고, 조 전 수석은 ‘검사의 수사지휘권 행사의 범위와 한계’라는 헌정 논문을 기고했다. 미국 유학 시절 정 전 위원장을 처음 만난 조 전 수석은 2016년 1월 저서 ‘절제의 형법학’을 친필 서명과 함께 정 전 위원장에게 보냈다. ―장관으로서의 박 장관을 평가한다면…. “학자로서 균형감도 있었지만 법무장관으로서 실무에서 고전했다. 검찰과 업무협력 관계인 형사정책연구원장(2007∼2010년)을 거쳤는데도 검사 출신이 아니어서 총장을 휘어잡고 검찰을 승복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검사 출신인 내가 장관할 때도 (법무부 참모들이) ‘한 번 더 생각해 보시죠’라고 하던데 교수 출신 장관의 영(令)이 설 리가 있나.” ―조 전 수석이 후임 장관으로 거론된다. “(장관이) 되는 게 확실합니까? 검사는 텃세가 심하고, 독특한 생리와 기질이 있다. 교수 출신인 조 전 수석이 검찰 개혁 문제에서 검찰을 지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신임 장관은 검찰 권력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대통령 요구를 반영해야 하는 부담과 책임이 큰 반면 윤석열 검찰총장은 법치주의 감시자로서 강단 있는 행보를 보일 수 있다. 자칫 법무부는 안 보이고 총장만 부각될 수 있다. 고생길이 훤한데, 굳이 장관은 안 했으면 한다. 한국의 형사법학자들은 대부분 독일에서 공부했는데, 조 전 수석은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다. 꾸준히 논문을 내면 학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2013, 2017년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장을 두 번 맡았다. 윤 총장에게 당부할 얘기가 있다면…. “적폐청산 수사에서 능력을 발휘했지만 지금부터가 문제다. 수사만 잘하면 되는 서울중앙지검장과 달리 총장이 되면 장관, 법조계와의 관계가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대통령에 의해 특별한 선택을 받고 임명장을 받았다. 임명권자의 뜻에 충실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불식시켜야 한다. 총장의 직무 수행이 자칫 대통령의 뜻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검찰 개혁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지금처럼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있고 청와대를 통해야 한다면 검찰 독립은 요원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성패도 인사권에 달렸다. 공수처장 인사를 대통령 뜻대로 한다면 검찰권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고 악용될 수 있다.” ―검찰 인사 독립을 위해 필요한 대안은…. “재조와 재야 법조인, 건전한 비판 의식을 가진 시민들과 시민대표가 참여해야 한다. 다만 이들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 고민하고, 외국 사례 등을 모아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검사는 인권의 파수꾼이자 법치의 수호자다. 수사는 전적으로 경찰에 맡기고 검사는 공소유지만 하게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보안, 지능적 부패사범, 전국적 조직망을 가진 마약 수사 등 경찰의 유착 위험이 있는 사건은 검찰이 견제해야 한다.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식의 이분법적 접근이 아닌 범죄 사안별로 수사지휘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 ―패스트트랙 고발 사건에 대한 수사 방향에 관심이 높다. “국회 안에서의 몸싸움 자체가 타기(唾棄)할 만한 작태다.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검찰에 넘겨 불필요하게 사법적으로 해결하려 해놓고 수사에는 불출석하며 협조하지 않는 것은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나타낸다.” ―최근 검찰 인사에서 공안통 검사의 퇴조가 뚜렷했다. “(인사는) 항상 절제와 균형의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공안과 노동사건을 많이 맡아 검찰에 대한 선입견 또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공안의 의미가 변하긴 했지만 국가적 특수성도 있고 여전히 남아 있어야 하는 부분이다.” 김영삼 정부 초기 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에 오른 ‘엘리트 검사’였던 정 전 위원장은 1993년 초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때 ‘상속받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검찰을 떠났다. 2004년 국민대 총장직을 마친 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 만찬에 그를 초대했다. 노 전 대통령이 판사 생활을 마치고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했을 당시 정 전 위원장이 부산지검에 근무했는데 이 시기에는 서로 일면식이 없었다. “배석자 없는 독대였다. 노 전 대통령이 (사법시험 15년 선배인) 나를 초면에 ‘정 선배’라고 부르며 ‘물려받은 재산 때문에 옷 벗은 건 말이 안 되죠’라고 했다. 내심 고마웠다. ‘원망할 생각 없다’고 답하고 검찰의 수사권 지휘 문제, 반부패 업무 등을 얘기했다. 대통령이 아무 격식 없이 슬리퍼를 신고 문 밖까지 나와서 ‘안녕히 가시라’고 배웅을 하는데, 그날 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열흘 뒤 부패방지위원장으로 발령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감사원, 국세청 등 주요 사정기관들이 모두 참여하는 반부패기관협의회를 정 전 위원장이 주재하게 하는 등 반부패 업무를 전담시켰다. “부패방지위원장으로 갔을 때 이미 공수처 법안이 만들어져 있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반대가 워낙 심해 무산됐지만 사실 공수처를 추진하기 위해 검찰, 학계에서 반감이 적었던 나를 데려간 것이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을 보좌하던 문 대통령이 이제 다시 추진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때 처음 알았나. “부패방지위원회가 청렴위원회로 이름을 바꿔 청렴위원장을 맡고 있을 때 문 대통령은 대통령시민사회수석과 민정수석을 거쳐 비서실장이 됐다. 문 당시 실장이 법무부 장관직을 제의하더라. 후배들이 할 시기라며 고사했다. 한 달 뒤 다시 만나서 ‘후배를 밀어낸 게 아니라 전임이 사표를 써 공석이니 맡아 달라’고 요청하는데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을 비교하면…. “다르다. 두 사람의 관계가 특수하다.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문 대통령을 높게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주장을 빨리 드러내 대통령으로서는 고전한 부분이 있지만 인간적인 매력이 있던 사람이다. 문 대통령은 만날 때 허름한 식당 같은 데 가고 굉장히 소박하고, 담백한 분이었다. 사담을 안 했고, 정직하고 점잖은 분이었다.” 정 전 위원장은 2017년 퇴임을 앞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맡아 올 4월까지 사법부에 몸담았다. 정 전 위원장은 앞서 동아일보 칼럼을 통해 ‘법원의 세속화’를 경고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때부터 고위 법관이 방송위원회와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등의 수장으로 뽑혀갔다. 우수한 법관이 반드시 우수한 행정가라고 할 수 없다. 행정부로서의 득실도 문제지만 사법부의 오염도 걱정됐다. 특히 사법부가 형사소송법 등 법원에 유리한 법 개정을 법무부를 거치지 않고, 의원입법 형식으로 하도록 교섭했다. 곪았던 문제들이 터진 것이다.” ―사법행정권 남용의 재발을 막을 대책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는 것이 헌법의 명문규정(제101조 1항)이지만 사법행정권의 과도한 확대는 자칫 사법의 정치화를 낳을 수 있다. 지난해 9월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문 대통령이 사법부의 각성을 촉구한 것도 대통령은 선의였고, 옳은 말이지만 국민의 눈에는 (행정부의 수반이) 사법권에 대해 용훼(容喙·간섭)하는 일로 비칠 수 있다.” ―최근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직권남용으로 추상적 위험만 있으면 처벌 대상이 된다는 게 기존 판례 태도인데, 적용 사례가 많지 않다. (수사 기관이) 추상적 위험이 없는 것도 있다고 간주하고 기소할 수 있으니 우려스러운 것이다.” 검사와 대학총장, 법무부 장관,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두루 거친 그는 “행복한, 분에 넘치는 경험을 많이 했다”면서 자신의 모토라며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소개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다(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m free.)’ ●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은△경북고-서울대 법대△1969년∼1993년 4월 검사로 재직. 대검 중앙수사1·2과장, 대검 중수부장 역임△1999년 12월∼2000년 12월 한국형사법학회장△2000년 2월∼2004년 2월 국민대 총장△2004년 8월∼2007년 8월 부패방지위원장△2007년 9월∼2008년 2월 법무부 장관△2017년 4월∼2019년 3월 대법원 양형위원장인터뷰=정원수 사회부장 / 정리=신동진 shine@donga.com·김동혁 기자}

2013Da61381[Damages, etc.] 만약 그 판결문을 영어로 번역했다면 첫 장 맨 위의 사건번호와 사건유형은 이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2013다61381은 2013년에 6만1381번째로 한국 대법원에 접수된 민사사건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 접수 6년 만인 지난해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로 뒤늦게 판결이 확정됐다. 일본 측 주장대로라면 대법원 선고 직후 공개된 A4 49쪽 분량의 이 판결문은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작한 주요 단초 중 하나다. 그런데 대법원 홈페이지를 아무리 찾아봐도 이 사건의 영문 판결문은 없었다. 대법원 법원도서관은 대법원 판결문 중 해외에 소개할 만한 가치가 높은 것을 엄선해 영어로 번역해 왔다. 영문 판결문은 통상 선고일로부터 2, 3개월 뒤 대법원 홈페이지 등에 게시된다. 2000년 이후 영어로 번역된 대법원 판결문은 모두 1198건이다. 매년 60여 건, 월평균 5건 정도다. 한 법조인은 “최근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관심을 갖는 외국 법률 전문가들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영문 판결문 검색 조회수가 1000회를 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대체로 500회에 가까울 만큼 조회수가 많다. 특히 강제징용 확정 판결이 있었던 지난해에는 예년보다 다소 많은 판결문 84건이 영문으로 번역됐다. 월 7건꼴이다. 지난해 10월에만 9건의 영문 판결문이 게시됐는데, 여기에는 강제징용 확정 판결 당일 선고된 다른 판결문 3건이 포함돼 있다. 해외에서 생소할 수 있는 명예훼손이나 국민체육진흥법 관련 사건도 번역돼 영문 판결문으로 등록됐다. 강제징용 확정 판결 이틀 뒤인 지난해 11월 1일 선고된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도 영문으로 소개됐다. 강제징용 판결은 이들 판결과 비교해 번역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았던 걸까. 대법원에 그 이유를 묻자 구체적인 경위는 설명하지 않고 “번역 여부가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고만 했다. 강제징용 판결문에는 한국 헌법이나 민법, 민사소송법뿐만 아니라 조약에 관한 빈 협약, 최신 국제법 이론 등이 곳곳에 언급되어 있다. 앞서 번역된 다른 사건들보다 국제법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이다. 더 납득이 가지 않는 건 2012년 5월 대법원 소부(小部)가 처음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것은 영문으로 번역되어 있다는 점이다. 2012년과 2018년 판결은 선고 결과는 비슷하지만 그 논리 구조가 다르다. 더구나 소부는 대법관 4명이 만장일치로 판결하지만 전합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 13명이 법률지식을 총동원해 갑론을박 끝에 결론을 내린다. 강제징용 전합 판결은 다수의견이 11명, 소수의견이 2명으로 나뉘었다. 다수의견은 다시 7명의 다수의견과 1명의 별개의견, 3명의 또 다른 별개의견으로 갈렸다. 국가마다 법체계가 달라 판결문 번역은 가장 전문적인 분야로 꼽힌다. 최근 외국 주재 한국 외교관들에게 상대국들이 “한일 양국 간 법적 쟁점이 뭐냐”고 자주 묻는다고 한다. 그들에게 구구절절 말로 설명하지 말고, 강제징용 대법원 전합의 영문 판결문을 건네는 것이 외교의 시작 아닐까. 강제징용 영문 판결문이 없는 것이 혹시라도 대법원 판결에 흠결이 있어서, 또는 외국 전문가로부터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어서라는 오해를 불러올까 걱정된다. 이제라도 법원도서관이 그 판결문을 공들여 영문으로 번역해야 한다. 전 세계가 대법원의 법 논리와 판결 이유를 읽고, 국제사회에서 냉정하게 평가받아야 더 큰 분쟁에도 대비할 수 있다.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우린 끝까지 간다.” 지난해 8월 문무일 검찰총장은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의 보고를 받으면서 장기 해외도피 사범의 국내 송환에 속도를 내라며 이같이 지시했다. 그 직후 검찰의 이른바 ‘핀셋형 추적 명단’ 1, 2위에 한보그룹 정태수 전 회장과 그의 4남 정한근 전 부회장 부자의 이름이 올랐다. 천문학적인 세금 체납과 1997년 외환위기를 부른 한보 사태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 주된 이유였다. 정태수 씨가 2007년, 정한근 씨가 1998년 해외로 도피했지만 추적 성과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다. 정 씨 부자의 은신처를 찾기 위해 검찰은 이들의 과거 수사 기록을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정한근 씨의 친구인 R 씨의 수상한 행적이 새롭게 포착됐다. R 씨는 캐나다에 간 적이 없었지만 누군가 R 씨의 영문 이름 여권으로 캐나다에 입국한 기록이 나왔기 때문이다. 2011년엔 R 씨와 영문 이름이 같은 남성이 대만 여성과 결혼해 미국시민권까지 취득했다. 미 국토안보수사국(HSI)으로부터 검찰은 시민권을 취득할 때 제출한 서류 일체를 전달받았다. 검찰은 이 서류에 찍혀 있는 정체불명의 오른손 검지의 지문을 정한근 씨가 한국에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때 날인한 10개의 손가락 지문과 대조했다. 지난해 11월경 대검의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는 두 지문이 100% 일치한다는 분석 결과를 보고했다. 해외도피 기간 후견인 역할을 한 아들의 지문 탓에 정태수 씨의 흔적이 들통난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 국제 공조로 정한근 씨가 R 씨로 신분을 세탁한 뒤 2010년 7월 에콰도르에 입국한 사실이 추가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때부터 한국과 범죄인인도청구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에콰도르 정부를 상대로 정 씨 부자를 국내로 송환하기 위한 전방위 외교전을 벌였다. 올 4월 대검 국제협력단장이 현지에서 ‘1차 작전’을 시도했다. 정 씨 부자의 은신처인 과야킬에서 대기했지만 에콰도르에서 구금 영장을 발부하지 않아 실패했다. 올 6월 문 총장이 직접 에콰도르에서 정 씨 부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2차 작전’이 짜였다. 하지만 국회에서 검찰개혁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서 문 총장은 해외 출장 중 정 씨 부자가 한때 거주했던 키르기스스탄까지만 방문한 뒤 에콰도르 일정을 취소해야 했다. 지난달 하순 에콰도르 정부가 정한근 씨의 에콰도르 출국 사실을 우리 측에 미리 통보했고, 검찰은 국제 공조 수사 끝에 그를 경유지인 파나마 공항에서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검찰이 정 씨 부자의 은신처에 거의 접근한 지난해 12월 정태수 씨가 만 95세로 사망한 것은 ‘옥에 티’였다. 성공을 위해서는 상대방이 기대하는 금품의 10배, 100배를 안겨줘서라도 기어이 원하는 것을 성취했던 그도 오랜 지병과 나이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정태수 씨의 한보 사태 관련 판결문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한 기업인의 무모한 야망, 비정상적이고 비윤리적인 기업 운영, 권력가에 대한 뇌물의 제공과 반대급부로서의 특혜의 제공, 이런 것들이 모두 결합하고, 상승 작용을 한 결과는 국민의 자존심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는 대재앙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 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관련자에 대한 강력한 응징으로 보상되어야 한다.’ 유골함과 함께 발견된 정태수 씨의 150쪽짜리 자필 유고 어디에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거나 외환위기로 큰 고통을 받은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문구가 없다고 한다. 정 씨 부자가 해외로 빼돌린 것으로 알려진 2000억 원대의 은닉 재산을 검찰이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는 것이야말로 외환위기로 상처받은 국민들을 보상하는 길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지난달 14일 서울중앙지법의 중법정 311호.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관련 재판 개입 의혹 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무토가 고문인 건 알았나”라는 질문에 “아마 몰랐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답했다. ‘무토’는 윤 전 장관이 2013년 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회의 통일분과 위원 자격으로 만나 저녁 식사를 한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미쓰비시중공업 고문이다. 윤 전 장관은 무토 전 주한 일본대사가 강제징용 소송의 피고인 미쓰비시중공업의 고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함께 저녁을 먹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윤 전 장관은 검사가 강제징용 재판 개입과 관련된 3가지 회의에 참석한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시인했다. 하지만 외교부 문건과 직원의 메모를 근거로 윤 전 장관이 회의에서 했다는 말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묻자 “제가 기억이 안 난다”, “언뜻 생각나는 것이 없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윤 전 장관이 참석한 회의 첫 번째는 ‘IOC’다. ‘내부 관계자 회의’라는 의미인 ‘Inner Office Conference’의 약칭이다. 대법원 소부가 2012년 5월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전범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한 직후 윤 전 장관이 고문으로 있던 로펌이 몇 차례 소집한 내부 대책회의다. 윤 전 장관은 미쓰비시중공업 측 변호사 등이 참석한 IOC에서 1965년 이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정부 입장의 추이 등을 설명했다. 두 번째는 소인수회의다. 윤 전 장관은 2013년 12월과 2014년 11월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의 삼청동 공관에서 대법원 판결 확정의 부당함을 법원행정처장에게 직접 브리핑했다. 이 공관 회동을 윤 전 장관은 정상회담의 ‘1 대 1’, ‘2 대 2’ 회동을 의미하는 일본 외교용어 ‘쇼닌즈 가이고(少人(수,삭,촉)(회,괴)合)’에서 따와 소인수회의로 명명했다. 소인수회의에선 대법원 소부 판결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판결을 뒤집는 전략이 논의됐다. 세 번째는 콘클라베다. 가톨릭 교황을 뽑는 비밀 추기경 회의인데 윤 전 장관은 법정에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콘클라베라고 해서 브레인스토밍을 했다”고 말했다. 소인수회의 자료 준비를 위해 외교부 청사에서 윤 전 장관이 주재한 심야 대책회의가 콘클라베였다. 외교부 문건에는 윤 전 장관이 ‘국내적으로 이기고 국제적으로 지면 정권이 날아가는 문제’라고 말했다고 적혀 있다. 검찰은 IOC에서 강제징용 판결의 파장을 처음 인식한 윤 전 장관이 범정부적 차원의 대책 마련을 위해 소인수회의를 제안했고, 이 회의 자료를 콘클라베에서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윤 전 장관은 “실무자와 전직 장관이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다”면서 재판 개입 의혹을 풀 핵심 질문은 피해갔다. 윤 전 장관은 재직 중 의사 결정을 주로 비밀회의에서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법정 증언에서 이 비밀회의를 방패 삼아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다는 비판이 많다. 그가 장관으로서 4년 2개월 재임하는 동안 강제징용 재판이 지연됐다. 그 경위를 소상히 국민들에게 밝히는 게 전직 고위 공직자의 도리다. 정원수 사회부 차장 needjung@donga.com}

16일 전국 법원청사에 배달된 법률 전문지에 로펌의 변호사 영입 광고가 실렸다. 양복 차림에 붉은색 넥타이를 맨 변호사의 명함판 얼굴 사진과 이름 아래 인천지법 부장판사를 지냈다는 경력이 적혀 있었다. 하루 뒤인 17일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 광고의 김영식 변호사(52·사법연수원 30기)를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으로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한 판사는 “얼마 전 김 비서관이 로펌에 간다는 메일을 받았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새 출발을 하나 싶었는데, 청와대 인사 발표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어리둥절하고, 아연실색”이라고 했다. 올 2월 법복을 벗은 김 비서관이 불과 3개월 만에 판사에서 변호사로 ‘경력 세탁’을 한 뒤 청와대에 입성한 게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김 비서관은 1987년 민주화운동을 하다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 86학번 이한열 씨의 동기다. 학생운동을 하다 늦깎이로 1998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법관이 된 김 비서관은 종종 소신 판결을 했다. 2016년 10월 광주지법 근무 당시 항소심 재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를 무죄로 판결했다. 상급법원 판단에 도전한 것이다. 대법원이 ‘병역의 의무가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한다’는 기존 판례를 바꾼 것은 지난해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무죄 선고 당시 그는 “인권 선진국에 진입한 만큼 인권 문제를 고민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사석에선 그를 형으로 부르고 따르는 후배 법관이 많았다. 법원 내에선 ‘행동대장’으로도 불린다. 그는 대통령 탄핵과 조기 정권 교체에 이어 사법 권력이 물갈이되기 시작한 2017년 이후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적극 참여했다. 법관회의에서 그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법원이 자체 조사할 게 아니라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법관회의가 의혹 연루 판사에 대한 법관 탄핵을 요구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역사의 큰 흐름이 바뀌려면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한 그의 발언이 잊히지 않는다”고 하는 판사들이 많다. 청와대에서 법무비서관실은 ‘내부 로펌’ 역할을 한다. 직제상 국정 현안 및 정책에 대한 법령 해석이나 법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주 업무다. 청와대와 사법부의 가교 역할도 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 등 후보군이 여러 명 있는데도 청와대는 지난달 중순부터 김 비서관을 굳이 단수 후보로 정해놓고, 인사 검증을 했다고 한다. 김 비서관이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그 후신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었다는 점 때문에 같은 모임의 판사들조차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두 연구모임 출신이라서 대법원과 헌재의 요직에 중용된다는 비판이 많은데, 앞으로 청와대가 이를 무시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김 비서관의 전임도 국제인권법연구회 핵심 회원이었다. 무엇보다 재판만 생각하며 살아온 평범한 판사들이 이번 인사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사법부가 청와대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 판사가 법복을 벗고 사법부 관련 업무를 맡는 청와대 참모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그가 법관으로서 했던 말의 진정성이, 그의 말을 믿고 다수 의견에 섰던 판사들의 정의감이 송두리째 의심받고 있다. 정원수 사회부 차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