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부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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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5-11-08~202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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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日 모두 인정할 건 인정해야”

    “일본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은 근대사 콤플렉스로 일본 문화를 무시합니다. 양국 모두 서로가 동아시아 역사에서 당당한 지분을 가진 문화적 주주 국가라는 걸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출간 20주년을 맞은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64)가 번외 격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 편’(창비)을 펴냈다. 규슈와 아스카·나라 편 등 2권을 먼저 선보인 유 교수는 교토와 오사카 문화유산을 정리해 총 4권의 일본 답사기를 내놓을 예정이다. 24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유 교수는 “지난해 규슈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온천 관광을 다니더라. 일본 역사유적을 소개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붓을 들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이 우경화되는 걸 보고 ‘할 말은 좀 해야겠다’는 욕심도 생겼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인정할 건 좀 인정하자는 게 책의 요지”라고 설명했다. 일본인은 한반도의 문화 전파를 너무 깎아내리고, 한국인은 일본 문화는 모조리 한국 덕분에 이뤄졌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일본 학자들은 한국에서 건너간 문화를 ‘한반도를 거쳐서 온 대륙 문화’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면 아버지 용돈은 ‘아버지를 거친 회삿돈’인가요. 이와 별개로 일본은 외부문물을 받아들여 주체적 문화를 세웠습니다. 그들의 독자성도 적절하게 평가해야죠. 중국 영향을 받았으니 한국 문화는 고유성이 떨어진다고 하면 말이 됩니까.” 일본 문화에서 배울 점도 많다며 ‘조선 도공(도예가)’을 실례로 들기도 했다. 유 교수는 “한국은 임진왜란 때 조선 도공들이 끌려가 노예 학대라도 받은 것처럼 묘사한다”며 “오히려 도공들은 한반도에서 천민 대우를 받았고 일본에선 예술가나 귀족으로 예우 받았다”고 말했다. 일본이 도자기로 세계를 제패한 배경에는 이런 ‘장인 존중 문화’가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일본 답사기를 펴내며 꼭 한 곳을 추천한다면 어딜까. 유 교수는 주저 없이 ‘아스카’를 꼽았다. “남도를 답사하며 강진 해남을 빼놓을 수 없듯 일본에선 고대문화의 발상지인 아스카를 꼭 봐야 합니다. 20여 년 전부터 그곳을 자전거로 돌면서 일본 답사기를 쓴다면 꼭 이곳부터 쓰리라 결심했어요.” 지난해 답사기 7권 제주 편을 선보인 유 교수는 8권 남한강 편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지금까지 모두 330만 권가량 팔렸으며, 예약판매를 실시한 일본 편도 선주문으로 1만 권이 나갔다. 유 교수는 “올해 정년퇴임인데 남한강 이후엔 가야와 독도를 포함한 섬 편으로 답사기를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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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넥타이 풀고 쉬었다 가시라

    유명 스타가 잔뜩 나오고 돈을 쏟아 부었는데 건질 게 없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있다. 반면 빤한 예산을 들였지만 엄지를 치켜들게 하는 독립영화도 존재한다. 전시회가 영화라면 24일 시작하는 국립민속박물관의 특별전 ‘쉼’은 분명 후자에 속할 만하다. 기획전시실Ⅰ에서 열리는 ‘쉼’은 제목 그대로 무덥고 꿉꿉한 여름에 일상을 벗어난 여유로움을 주제로 한 기획전이다. 입구부터 실크스크린과 영상을 결합해 표현한 우리네 할아버지들의 ‘탁족(濯足)’이 ‘관람은 됐고 넥타이 풀고 쉬었다 가시라’고 말하는 듯하다. 안내를 맡은 김희수 학예연구사는 “전통적 여가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다양한 실험을 모았다”고 말했다. 1부 ‘푸른 그늘 실바람에 새소리 들레어라’는 전통 유물과 첨단기술을 자연스레 결합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벽 쪽에는 금강산도나 관동팔경도를 시원스레 펼쳐놓고 그 앞엔 옛사람들이 유람 때 챙기는 소품들을 진열했다. 중앙에 있는 스크린에서는 앞에 설치된 노를 저으면 수묵화로 그린 금강산 풍경이 배를 몰고 지나가듯 움직였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그림 속 말 탄 선비가 고개를 넘는 인터페이스 프로그램도 유쾌했다. 널찍한 평상에 앉으면 물과 벌레 소리가 온몸을 감싸는 2부 ‘홑적삼에 부채 들고 정자관 내려놓고 있자니’는 계곡에서 수박을 쪼개먹는 청량감이 가득하다. 눈앞엔 푸르른 보리밭이 펼쳐지고 조상들이 여름철 애용했던 모시적삼과 등토시(등나무로 만든 토시)를 선보였다. 뒤로는 여름철 양반가 규방을 재현해 조상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3부 ‘한여름 밤 꿈, 속세를 벗어나니’는 전시 주제가 가장 여실하게 표현된 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누우면 천장에 밤하늘 별빛이나 처마 끝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배치해 스르륵 낮잠이라도 들 것만 같다. 푹신한 의자에 앉으면 보이는 대형스크린에는 한반도 명승지를 담은 풍경들이 상영된다. 천진기 민속박물관장은 “문 닫고 에어컨 트는 현대식 ‘막힌’ 쉼터가 아니라 낙낙한 공간을 마련해 바람의 흐름을 만끽하는 전통적 ‘열린’ 피서의 분위기를 전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9월 23일까지. 무료. 02-3704-3114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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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인들이 철통경계… 대문 활짝 열어 놓고 삽니다”

    새벽부터 내린 비는 멈출 기색이 없었다. 칡넝쿨처럼 산허리를 싸고도는 희멀건 구름. 뿌연 물안개는 잘금잘금 내려앉다 동구 밖에서 흩어졌다. 짙게 푸른 벼줄기 따라 물살은 콸콸 고랑을 휘젓고…. 바람에 고개 꺾은 오동나무 너머 뻘건 슬레이트 지붕들이 기대섰다. 쌉쌀한 두엄 냄새가 아득한 순간, 세찬 빗방울이 회초리 치듯 타다닥 뺨을 때렸다. 그렇다. 여긴 뻔한 감상에나 젖을 시골자락이 아니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민통선)에 있는 통칭 ‘민북마을’(‘민통선보다 북쪽에 있는 마을’의 준말). 전쟁의 핏빛 상흔이 아린 ‘재건촌’ 이길리였다. 12일 행정구역으로 강원 철원군 동송읍에 속한 이길리 마을을 찾으며 처음 놀란 건 두 가지였다. 민통선이 이리 가까웠나. 폭우로 교통정체를 겪고도 차로 2시간쯤 걸렸다. 게다가 뭐 이리 익숙한 정경인가. 입구에서 군 초소 검문이 없었다면 삼남 지방 어디라 해도 믿었으리라.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까요.” 마중 나왔던 우승하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39)가 허허롭게 웃어 보였다. 우 학예사는 민속 조사차 1월부터 상주하고 있다. “처음엔 다른 강원 마을과 뭐가 다른가 걱정했죠. 하지만 살아보면 압니다.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흘렀지만 흉터는 지워진 게 아닙니다. 세월에 아물어 잘 보이지 않을 뿐이죠.” 그의 말대로 이길리는 전쟁과 떼어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1945년 광복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마을은 ‘이념의 혼돈’에 휩싸였다. 북한에 편입된 철원은 광복 한 달 뒤 소련군이 주둔했다. 평양 지도위원이 내려와 붉은 깃발을 휘둘렀고, 순박했던 총각은 완장을 차고 눈알을 부라렸다. 그때 교사였던 김영배 씨(88)는 “당시 김일성이 철원 금화를 핵심 요지로 여겼다더라. 당이 ‘열성부락’이네 뭐네 공 많이 들였다”고 말했다. 좌우로 갈린 주민의 충돌도 벌어졌다. 어디론가 끌려가 사라지고, 목숨 걸고 38선을 넘는 이들도 속출했다. 6·25전쟁이 터졌을 땐 오히려 잠잠했다. 어차피 북한 땅이었으니. 전쟁의 공포가 엄습한 건 1·4후퇴 이후였다. 피란 떠난 마을은 포화로 모조리 파괴됐다. 중부전선에서 가장 치열했던 ‘철의 삼각지’였으니…. 어르신들은 “마을도 망가졌지만 산신제 같은 풍속도 잊혀져 버렸다”고 한숨지었다. 1953년 7월 27일 드디어 정전협정이 맺어졌다. 다행히 이길리는 남한 영토가 됐다. 하지만 그게 주민들의 귀향을 보장하진 않았다. 민간인 통제로 묶여 버린 땅. 마을을 지척에 두고도 멀뚱하니 시름시름 바라만 봤다. 출입이 허락된 건 3년 뒤였다. 농사라도 짓자는 읍소가 조건부 제한통행으로 되돌아왔다. 낮에 3명 이상 자전거 이동, 지정된 빨간 모자 쓴 남성만. 1962년에야 농번기 임시 거주가 허락됐다. 아침저녁 군 점호를 받았고, 사람이 숨을 만한 옥수수는 심지 못했다. A 씨(84)는 “1965년 북한에서 장마로 떠내려 온 소를 ‘자유 찾아 탈출했다’며 크게 선전하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1971년 마을이 재건촌이 되면서 20년 만에 주민의 귀향이 허용됐다. 북한 측 선전촌에 대응하려는 정치적 목적의 결정이었다. 김명찬 마을이장(58)은 “군사정부 때까지 점호가 유지되고, 1990년대도 지뢰폭발사고가 벌어지는 등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세월 따라 우리도 천천히 적응해 갔다”고 말했다. 그렇게 60년을 버틴 이길리는 거주 만족도가 매우 높은 마을이 됐다. 여전히 야간통행금지나 건물 신·증축 허가 등 불편이 남았지만 무엇보다 치안이 훌륭하다. 76가구 주민 170여 명은 모든 문을 열어두고 열쇠도 없이 다닌단다. 군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권위를 벗고 이젠 작은 일도 상의해 온다. 대민지원도 원활하다. 김일남 씨(52)는 “민북마을을 해제한다고 하면 마을사람 모두 데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나 주민들은 ‘너무도’ 안보에 둔감했다. 5∼6년 전까지도 대남방송이 쩌렁쩌렁했다는데 최근 남북경색에 꿈쩍도 하질 않았다. 정치나 전쟁은 아예 신경도 쓰질 않았다. 한 마을주민은 “북에서 미사일 쏘면 서울로 날아가겠지. 우린 군인이 ‘철통같이’ 지켜주잖아”라며 심드렁했다. 왠지 모를 위화감이 콧잔등을 윙윙거렸다. 낯부끄러운 전시행정도 거슬렸다. 명색이 민북마을인데 방공호 시설이 지난해 들어섰다. 2011년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였다. 내부에 들어가니 겉만 멀끔했지 바닥은 습기로 물이 흥건했다. 덮고 잘 담요 하나 없었다. 방독면은 2001년 제조돼 유효기간(5년)을 넘긴 지 오래. 새마을지도자인 김종화 씨(42)는 “특별지원은 바라지도 않는다. 진짜 마을에 필요한 게 뭔지 살펴 달라”고 당부했다. 해질 녘, 짐을 꾸리는데 마을회관 옥상에 재두루미 모형이 보였다. 지난해 시작한 ‘두루미 축제’ 상징물이다. 정전 60년은 민통선을 천혜의 자연보고로 만들었다. 주민들은 이제 마을이 안보체험소가 아닌 생태관광지가 되길 바란다. 멀리 한탄강에 몰아치는 빗방울은 더욱 거세졌다. 지금은 뭐가 떠내려가고 있을까. 철원=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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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토종 ‘제주 黑牛’ 천연기념물 지정

    문화재청이 22일 한국 토종 가축인 제주 흑우(黑牛·사진)를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했다. 문화재청은 “조선왕조실록 등을 보면 제주 흑우는 엄격하게 사육 관리되며 국가적 제사나 왕실에 바쳐졌을 정도로 역사·문화적 가치가 크다”며 “현재 제주도 축산진흥원에서 사육되는 개체수가 130마리 정도라 국가적으로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제주 흑우는 일반 한우와 달리 체구가 작지만 체질이 강건하고 지구력이 좋다. 인간이 키우는 가축 가운데 천연기념물이 된 것은 △진도 진도개 △경산 삽살개 △연산 화악리 오계 △제주 제주마 △경주개 동경이에 이어 여섯 번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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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욱 “이겨도, 져도 부르는 ‘목포의 눈물’ 속엔 광주의 恨 담겼죠”

    이게 야구소설일까? 장편소설 ‘야구란 무엇인가’(문학동네) 얘기다. 야구선수나 야구팀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제목에 낚였다 싶다가도, 홈을 출발해 다음 베이스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야구팬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야구소설이 아니라고 하기도 뭣하다. 그래서 이 소설을 쓴 작가 김경욱에게 직접 물었다. “고향이 광주라서 어려서부터 (광주가 연고지인) 해태 타이거즈의 팬이었어요. 그런데 아세요? 타이거즈 팬은 경기 막판에 늘 ‘목포의 눈물’을 응원곡으로 불러요. 지는 경기는 물론이고 이기고 있는 경기에서도요. 나중에 알았죠. 그 노래가 타이거즈에 투영된 광주의 한(恨)이란 사실을요.” 소설 속 주인공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으로 내려온 ‘염소’의 손에 남동생을 잃은 인물이다.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는 타이거즈 경기 중계를 보는 것을 위안으로 삼다 일찌감치 화병으로 세상을 떴고, 주인공의 아내는 아들 진구를 낳아놓고 집을 나갔다. 대신 진구를 키워주던 어머니마저 심장병으로 급사하자 주인공은 이 모든 고통의 원흉인 염소를 제거할 계획으로 집을 나선다. 염소를 찌를 칼과 복수가 끝나면 자신의 목숨을 끊을 때 쓸 청산가리를 주머니에 넣은 채로. 그런데 복수의 여정이 순탄해 뵈질 않는다. 어디 한 곳 맡길 데 없는 아들 진구가 동행이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도 법정 최고속도를 지키며 운전하는, 천생 법 없이도 살 사람인 데다 타이거즈 팬이면서도 자신이 경기를 보면 질까봐 TV 중계도 8회까지밖에 못 보는 인물이다. “복수할 일념에 사로잡혀 있지만 사내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에요. 염소를 쫓으면서도 늘 자기가 쫓기는 기분으로 살고 있죠. 사내는 피해자면서도 스스로가 죄인이라도 된 듯 자책하며 살아온 평범한 광주 시민을 상징합니다.” 9회까지 진행되는 야구 경기처럼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에서, 광주(홈)를 출발해 전주(1루)와 군산(2루)을 거친 부자(父子)는 마침내 서울(3루)에서 염소와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현재 염소의 상황은 분노보다 연민이나 동정이 어울리는 모습이다. “소설을 쓰는 내내 계속 생각했어요. 복수를 마치면 사내의 분노가 풀릴지, 사내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가벼워질지에 대해서요. 그에겐 자기가 없으면 아무도 돌봐줄 이 없는 아들이 있잖아요.” 하지만 작가는 이런 설정을 용서나 화해로 섣부르게 해석하는 것은 거부했다. “가해자의 진심에서 우러난 사과 없이 용서나 화해가 가능할까요? 광주에 큰 빚을 지고 있는 민주화의 열매를 누리며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도 광주의 진실을 잊지 않고 기억할 책임이 있지 않을까요? 그게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이 소설의 9번째 장, 애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 3루까지 온 이 부자의 다음 행선지는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이 진즉부터 암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야구란 결국 “무사히, 살아서 집(홈)에 돌아가는” 것이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 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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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나랑 죽이 맞는 신을 찾아… 지구촌 ‘종교 쇼핑’

    세상에 복잡한 게 한둘이 아니지만, 종교는 그중에도 참 민감한 주제다. 신의 존재를 믿느냐는 본질적 문제부터 어떤 교리를 따르는지, 타 종교는 인정하는지 여러 갈래로 의견이 나뉜다. 굳이 형이상학적일 필요도 없다. 종교로 인해 눈앞에서 숱한 현실적 갈등이 벌어진다. 크게는 잦은 테러와 인명 살상, 가깝게는 종교가 연애나 결혼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까지…. 차라리 서로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모른 척 덮어두는 게 나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생각이 좀 다른 모양이다. 그럴수록 세상에 널린 많은 종교를 경험해봐야 한다고 믿었다. 출발은 매우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 우연히 응급실에 실려 간 날, 한 간호사가 그에게 넌지시 묻는다. “아직 당신의 신을 만나지 못했나요?” 뭐야, 신을 만나면 특진 혜택이라도 주나? 별 뜻 없이 던졌을 수도 있는 그 말이 두고두고 파문을 일으킨다. 좋다. 그렇다면 신을 만나러 가보자. 이름하야 ‘종교 쇼핑’에 나선다. 물론 쇼핑이라는 말에 반감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굳이 그런 태도를 취한 것은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서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종교 얘기만 나오면 왜 그리 이마에 온통 주름을 잡고 심각해져야 하는 건가. 좀 편하게 관광하듯 둘러보자. 나랑 죽이 맞는 신은 지구 반대편까지 가야 조우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저자는 배낭을 둘러메고 세상의 종교를 여행한다. 전작 ‘행복의 지도’에서 이미 보여줬듯이 저자는 유쾌한 글쓰기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NPR(공영라디오방송) 기자 출신인 그는 맛깔 나게 ‘글의 성찬’을 차리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정작 본인은 우울증에 시달린다지만, 그래서인지 시니컬한 농담에 일가견이 있다. 위카(마녀처럼 주술을 믿는 종교)에서 다양한 신들이 인간의 노력과 상황에 맞춰 힘을 써준다는 생각을 ‘연동식 퇴직연금의 종교적 변종’이라고 부르거나 이슬람 신비주의 분파인 수피즘 전도사의 화려한 몸짓에서 명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을 떠올리는 장면은 이런 유형의 책에 일가견이 있는 빌 브라이슨을 연상시킨다. 브라이슨을 떠올리게 하는 또 하나의 매력은 저자가 결코 책상머리에 뭉개고 앉아 글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종교를 탐구하기로 마음먹으면 일단 떠난다. 도교를 배우러 중국에 가고, 불교가 궁금하면 네팔을 찾는다. 관련 서적을 한 보따리씩 바리바리 짊어지고 다니지만, 가장 중시하는 것은 현장 체험이다. 우리 눈엔 사이비로 보이는 UFO신봉교인 ‘라엘 교’(미국에선 정식으로 인정받았다!)도 그들의 종교행사에 뛰어 들어가 직접 겪어 본다. 그 속에서 아무리 자기와 맞지 않고,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저자는 장점을 찾아내려 애쓴다.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지만 불교의 자비가 가진 미덕이나 ‘삶은 고통’이라는 세계관에는 공감할 수 있다. “분명히 확신할 수 있는 게 뭔지 확실히 모른다”는 뜻에서 자신을 ‘혼란주의자’라고 부르는 저자는 확신하지 않으니 섣부른 예단도 하질 않는다. 오죽하면 마녀를 자처하는 이와도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고, 샤먼(무당)에게서도 배울 점을 발견하겠는가. 그건 저자의 열린 자세가 발휘하는 소중한 미덕이다. 이렇게 장점이 많기에 이 책의 결론은 적잖은 아쉬움이 남는다. 본인은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고 강변하지만, 유대인인 저자가 결국 마음이 기운 쪽은 ‘중세 유대교 신비주의’의 분파인 카빌라였다. 유대교가 나름 매력적인 구석이 많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종교를 체험하며 보여주던 날카로운 통찰력이 모태신앙 앞에서 둔탁해진 것만은 틀림없다. 게다가 불교나 도교 같은 동양종교엔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아이 쇼핑’에 머무는 느낌도 준다. 하지만 저자가 애용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무척 재밌다. 글을 읽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한다. 잠자리에서 책을 펼쳤다가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하며 깜짝 놀라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벌써부터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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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국사 석가탑 기단속에 높이 4.6cm ‘미니 불상’

    해체 복원 작업을 벌이고 있는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국보 제21호) 기단(基壇) 안에서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이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7일 삼층석탑 상층 기단을 해체하기 위해 내부에 있는 적심석(積心石·돌무지에 심처럼 박아 쌓은 돌)을 수습하다가 불상을 발견했다”고 19일 밝혔다. 일반적으로 탑신(塔身) 안에 모시는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부처의 사리와 이를 봉안하는 용기 및 기구)에서는 불상이 함께 나오기도 하지만 기단에서 발견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발견된 불상은 높이 4.6cm에 대좌(臺座) 지름 2.3cm인 소형 입상. 둥그스름한 얼굴에 육계(머리 위 튀어나온 부분)가 우뚝하고, 등 뒤에 광배(光背·머리나 등 뒤 광명을 표현한 것)를 꽂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돌출돼 있다. 법의(法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덮는 형식인 통견식(通肩式)이다. 아쉽게도 상호(相好·부처의 얼굴)와 양손을 포함해 전체적으로 상당히 훼손됐으며, 도금은 거의 벗겨지고 흔적만 미세하게 남았다. 불상이 발견된 지 이틀밖에 되질 않아 향후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8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습 현장에 함께했던 문화재위원인 최성은 덕성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불상의 옷 주름 양식이나 대좌 조각 형식, 전체적인 신체 비례 등을 따져볼 때 8세기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며 “삼층석탑을 조성하던 742년(경덕왕 1년)에 함께 넣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석탑 기단에 불상을 넣은 이유는 뭘까. 신라 석탑들은 탑 밑 땅에 귀걸이나 팔찌 같은 유물이 묻혀 있는 경우가 많지만, 기단에서 불상이 나오는 사례는 드물다. 최 교수는 “불상은 건물 기단에 넣어두는 진단구(鎭壇具) 성격이 아닐까 한다”고 했다. 진단구란 건물을 새로 지을 때 나쁜 기운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넣어두는 물건을 말한다. 석가탑은 2010년 석재 균열 등을 이유로 보수 복원이 결정된 뒤 지난해 9월 해체 작업이 시작됐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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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정 교수 “선사시대 돼지, 식용 아닌 제례 목적”

    한반도에서 처음 인간이 돼지를 기른 이유는 잡아먹으려는 게 아니라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고고학에서 가축 사육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목 내지 농사와 함께 인류의 삶이 채집경제에서 생산경제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경우 가축 사육은 농경과 함께 이뤄졌을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짙다. 작물을 재배하듯 동물을 길러 식용으로 쓰거나 농업의 보조 또는 대안으로 사육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한반도 가축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한국고고학회가 펴낸 ‘농업의 고고학’(사회평론)에 실린 이준정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48)의 논문 ‘한반도 선사·고대 동물 사육의 역사와 그 의미’는 조금 색다른 주장을 펼친다. 그간 동물고고학에 천착해온 이 교수는 한반도의 가축 사육이 기존 학계의 시각과는 달리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고 봤다. 이 땅에서 발견된 동물 무덤이나 출토 뼈를 살펴본 결과, 우리 조상들이 처음 가축을 기른 것은 생계나 경제적 요인보다 제례적인 목적이 더 컸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한반도는 물론 세계 역사에서 가장 먼저 가축화한 동물인 개는 특히 이런 상황을 잘 대변한다. 보편적으로 인류는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개를 기른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한반도도 2008년 인천 옹진군 연평도의 까치산 패총에서 찾은 개 유존체(遺存體·동물 유골의 잔해)를 탄소연대 측정한 결과, 신석기 전기인 기원전 4460∼기원전 4310년경부터 개를 기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까치산 패총은 도살된 흔적이 없는 ‘의도적 매장’이어서 더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한반도에서 지금까지 출토된 개 관련 유적 60여 곳을 살펴보면, 잡아먹은 뒤 폐기물로 처리한 사례는 9곳 정도밖에 안 된다. 또 대부분 철기나 삼국시대의 유적이다. 반면 신석기나 청동기시대에 발견되는 유적은 개 무덤이거나 사람 묘에 함께 순장한 것이 다수다. 이 교수는 “한반도 신석기 인류는 개를 애완이나 경비, 사냥 보조용으로 쓰며 특별한 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만 놓고 보면 한국의 보신탕 문화에 반감을 가진 서구지역에서 오히려 식용 흔적이 더 많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개보다는 다소 늦지만 돼지도 한반도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정착한 가축이다. 중국에서 신석기 사육종 돼지 유존체가 다량 출토돼 한반도도 비슷한 시기에 유입됐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돼지 유적 17곳은 모두 초기 철기시대 이후의 것들이다. 돼지 하면 식용부터 떠오르지만, 돼지 역시 한반도에서는 다른 목적이 더 컸다. 대표적인 사례인 강원 춘천시 천전리·율문리 유적을 보면 해외에서는 보기 드문 양상이 뚜렷이 드러난다. 별개로 만들어진 유구에 배치된 토기 안에서 돼지 두개골만 들어 있는 유적이 나왔다. 충남 아산시 갈매리 유적에선 생후 1∼2년 된 비교적 어린 돼지 유존체 10개가 함께 출토됐는데 역시 머리 부위를 따로 모아뒀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지금도 익숙한 우리네 고사(告祀)를 떠올려보면 금방 답을 알 수 있다. 돼지 머리로만 따로 제사를 지낸 것이다. 이 교수는 “그 시절 부족 혹은 마을의 돼지를 이용한 제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며 “머리는 조상이나 신께 바치고 나머지는 부족민이 모여 ‘공식(共食·communal eating)’을 하며 결속을 강화하는 중요한 매개체였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당시 한반도에서 동물성 영양분은 주로 어디서 공급받았을까. 사실 산지가 발달하고 자연초지가 드문 한반도에서 가축의 대량 사육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교수는 농업 경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철기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먹거리’를 위한 가축 사육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인간이 농사를 지어 먹고 남은 잉여생산물로 가축 사육에 필요한 사료를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가축 사육 초창기엔 야생동물을 사냥해 식량원으로 활용하는 게 사육에 드는 비용과 노력보다 훨씬 수월했다”며 “가축 사육은 제사나 애완 등 특별한 목적을 위해 소규모로 이뤄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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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 1000년의 꿈을 찍다

    오세윤 사진작가(50). 일반인에겐 생소할 수도 있지만, 문화재계에서 오 작가는 ‘모르면 간첩’이다. 문화재청이나 국립박물관이 내놓는 도록이나 연구서적에 실린 사진 아래엔 ‘촬영 오세윤’이라고 숱하게 붙어 있다. 특히 문화재의 보고인 경주지역 유물사진 가운데 시중에 공개된 사진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거의 대부분 그가 찍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렇게 30년 가까이 한 우물만 파온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의 첫 개인전이 17일부터 서울 종로구 통의동 사진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렸다. 대학 시절(동국대 경주캠퍼스)부터 경주에 정착한 이력답게 전시회는 ‘신라를 찾아서’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오 작가는 “당시 경주 문화재를 기록한 사진 다수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찍은 것이었다는 사실에 충격받아 이 일에 뛰어들었다”며 “그간의 작업을 한 번 정리하자는 뜻으로, 거창한 것은 아니다”라며 쑥스러워했다. 전시작들은 오 작가가 얼마나 경주 곳곳을 누비며 애정을 갖고 셔터를 눌렀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다. 2008∼2009년 경주 쪽샘지구 유물 출토 과정을 담은 사진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에서 이제 막 형태를 드러내는 현장을 포착한 장면은 정적이지만 생동감이 넘친다. 당시 1500여 년 만에 발굴돼 화제를 모았던 말 갑옷 출토 사진도 눈길을 끈다. 그가 가장 어려운 작업으로 꼽았던 석굴암이나 토우 사진은 마치 직접 미술품을 손으로 만지는 듯한 촉감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문화재와 풍경이 어우러진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지난해 경주 보문동 진평왕릉 인근에서 찍었다는 폐사지의 연꽃무늬 당간지주(절에 세우는 깃대를 지지하는 받침돌)는 해질녘 노을에 묻힌 천년고도의 쓸쓸함이 묻어난다. 어스름하게 등선만 보이는 황남대총이나 하얗게 눈 덮인 계림 사진도 놓치기 아깝다. 오 작가는 “오랜 시간 정성 들여 찾다 보면 유물이 ‘지금 찍어 달라’며 말을 걸어오는 때가 있다”며 “그 찰나의 희열을 허락해준 문화재에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21일까지. 무료. 02-720-2010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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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미라와 이집트 미라, 어떻게 다른가

    ‘한반도 미라는 이집트 미라와 어떻게 다를까.’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중앙과학관이 16일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 상설전시관에서 특별전 ‘과학, 미라를 만나다’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회는 문화재연구소와 중앙과학관이 문화재를 고고학과 과학의 영역에서 함께 연구한 성과를 관람객들에게 소개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한반도 미라는 대부분 조선시대 회곽묘(灰槨墓·내부가 회벽인 묘)에서 발견되는 미라가 주를 이룬다. 묘 안팎으로 공기가 통하지 않아 시신이 썩지 않는 ‘공기 차단 미라’로 한반도와 유럽 늪지대에서 종종 발견되는 형식이다. 이집트는 절대적 권력을 가졌던 지도자의 형체를 보존하기 위해 방부액체로 시신을 썩지 않게 만든 ‘인공 미라’다. ‘건조 미라’와 ‘냉동 미라’도 있다. 남미 안데스 산맥 서쪽 아타카마 사막이나 몽골 남부 고비 사막에서 발견되는 건조 미라는 수분이 급속도로 말라 시신을 썩게 하는 미생물조차 살 수 없어 미라가 된다. 냉동 미라는 알프스 산맥이나 페루 등 추운 지역에서 발견된다. 특별전에는 2001년 경기 양주에서 출토된 소년 미라 ‘단웅이’와 2002년 경기 파주 파평 윤씨 묘역에서 세계 최초로 발견된 모자(母子) 미라 등에 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코너도 있다.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과 충북대 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무덤 출토 복식(服飾)과 한반도 미라에서 주로 발견되는 기생충 알도 볼 수 있다. 문화재연구소는 “미라는 옛 조상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연구 자료이자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전시품”이라고 설명했다. 12월 31일까지. 무료. 042-601-7894∼6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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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학]면벽수행하다 뭔가 봤다면… ‘죄수 시네마’입니다

    미국 컬럼비아대 신경정신과 교수인 저자는 환자 돌보고 책 쓰는 일 말곤 하는 게 없나 싶게 많은 책을 생산한다. ‘화성의 인류학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책만 헤아려도 12권이나 된다. 아직도 더 들려줄 얘기가 남았을까. ‘환각’은 이 질문에 “물론!”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책이다. 저자가 줄기차게 써온 책들이 전하려는 바는 의외로 간명하다. 이해하기 힘든 여러 정신적 증상들을 쉽게 ‘미쳤다’ ‘정신병자다’ 같은 말로 재단하지 말라는 거다. 일반인은 받아들이기 힘들지 몰라도 의학적으로 따져보면 다 이유가 있다. 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저자는 그 오해와 무지로 인한 간극을 해소함으로써 독자들이 좀더 신경학적인 고통(혹은 체험)을 당하는 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길 부탁한다. 환각 역시 마찬가지다. 눈앞에 헛것을 본다고 일단 비정상으로 보는 선입견부터 없애야 한다고 얘기한다. 예를 들어보자. 수도승이 홀로 면벽수도(面壁修道)를 하거나 수감자가 독방에 오래 갇혀 있으면 기묘한 무늬나 사람 비슷한 형체를 보는 경우가 잦다. 종교나 문화계에선 달리 해석하겠지만, 의학적으로는 이를 ‘죄수의 시네마’라고 한다. 왜 이런 환각이 보이는 걸까. 이는 인간이 동일한 외부환경에 장기간 노출되면 ‘감각 박탈’이 이뤄져 뇌의 인지능력에 혼선이 오는 것이다. 실제로 엇비슷한 풍경을 지속적으로 보는 철인3종경기 선수들도 레이스를 벌어다 종종 겪는 일이다. 그들이 다 비정상일까. 오히려 뇌를 비롯한 신체가 평정을 되찾기 위해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봐야 한다. 확실히 올리버 색스는 ‘기본’은 하는 저자다. 풍부한 사례와 유려한 문장력으로 책에 감칠맛을 낼 줄 안다. 과학책 저자들이 다들 이렇게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만 국내에 소개된 시기를 기준으로, 2010년 이전에 나온 ‘색맹의 섬’ 같은 전작들에 비해 최근 책들은 살짝 ‘꼰대’ 냄새가 난다. 적절한 균형감이 돋보이던 관찰자적 시선이 매력이었는데, 요즘은 살짝 가르치려 든다고나 할까. 세월 탓이겠으나 ‘앉아서’ 쓴 느낌도 지울 수 없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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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중증장애아 키우는 아버지… 절망서 길어 올린 삶의 의미

    워커는 저자의 아들이다. 여느 부자관계가 그렇듯 태어날 때부터 워커는 저자에게 ‘특별한’ 자식이다. 하지만 그 특별함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워커는 중증장애아였다. 의학적 진단명은 ‘심장·얼굴·피부증후군(CFC)’. 유전자 돌연변이로 생기는 이 병은 지금까지 세계에서 수백 명만 확인됐을 정도로 희귀하다고 한다. 환자마다 증상이 다양하나 심장과 얼굴 기형, 피부 질환, 지적장애, 그리고 시시각각 온몸을 덮치는 통증에 시달린다. ‘달나라 소년’은 그런 워커를 13년 동안 가족과 함께 키우고 돌본 아비의 체험과 심정을 담은 책이다.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앤드메일 기자인 저자는 2007년부터 이 신문에 동명의 칼럼(The Boy in the Moon)을 연재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사실 이 책의 서평 쓰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 단순히 ‘감동적’이란 말로는 표현이 잘 안 된다. 이런 분야의 식견이 부족하다 보니 자칫 저자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누를 끼칠까 두려움마저 앞선다. 이 부자의 고통을 어찌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저자는 때론 심하다 싶을 만치 냉정하고 차분한 태도로 글을 써내려간다. 물론 그래서 더 울컥하는 대목도 많다. 하지만 이 책의 목적은 독자를 한바탕 울음바다로 몰아넣는 데 있지 않다. “워커를 키우는 건 물음표를 키우는 일과 같았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성찰함으로써, 저기 멀리 달나라에 사는 아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함께 세상을 헤쳐 나가려는 진정성이 가득하다. 왜 이런 과정이 지난하지 않았을까. 특히나 워커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때리는 자기학대 증세마저 지녔다. 잠들기 직전까지 잠깐만 방심해도 온몸에 멍을 만든다. 저자와 아내는 물론이고 워커의 누나 헤일리마저 워커가 일으키는 소용돌이에 휩쓸려 허덕인다. 하지만 때로 찾아오는 보석 같은 경이로움이 그들을 어루만지기에 삶은 계속된다. “어느 날 저녁, 너무 지쳤던 나는 워커를 팔에 안은 채로 계단에서 굴렀다. 그때 온몸을 관통한 생각은 워커였다. 순간적으로 팔을 둘러 내 몸을 썰매로 만든 상태에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워커는 깔깔대며 웃었다. 재미있었나 보다. 워커가 즐겁다면 그걸로 나도 좋았다. 아들은 나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지만 때로는 거기서 나오는 길이 되어 주기도 했다.” 저자는 아들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처음엔 내 자식이니 사랑하고 보호하는 데만 치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와 교감을 통해 ‘경탄과 감사’를 경험하고 나면, 그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깨닫는다. 워커를 꼭 껴안은 저자는 이렇게 되뇐다. ‘나는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한 워커와 가장 가까이에 있다. 그 사이에 공간은, 간극이나 공백은, 기대나 실망은, 실패나 성공은 이제 없다.’ 사랑한다면 그들처럼 안아주길.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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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경복궁 자선당 자취, 제자리 찾는다

    어떤 운명이 이다지도 기구할까. 세자를 모시던 빛나던 시절은 나라를 뺏기며 사라졌다. 설움도 멈추기 전에 온몸이 해체돼 대한해협 건너 타향으로 끌려갔다. 그것도 모자라 지진과 화재를 겪으며 몸뚱이는 와르르 무너지고…. 80년 만에 어렵사리 고국 땅을 밟았지만 뒷방 객식구 대접. 그렇게 또 약 20년, 드디어 제자리를 찾을 서광이 비치고 있다. 경복궁의 동궁 ‘자선당(資善堂)’ 얘기다. 일제강점기 경복궁 수난사의 상징이던 자선당 유구(遺構·옛 건축물 흔적)를 원위치로 옮기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근 100년 만이다. 환수 문화재의 걸맞은 지위를 되찾아 줘야 한다는 뜻에서 문화재청은 물론 문화재위원회와 학계도 긍정적이어서 자선당 유구의 제자리 찾기 사업에 순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어진 성품을 기른다’는 뜻을 지닌 자선당은 원래 세종 9년(1427년) 당시 세자이던 문종과 세자빈의 침전으로 건립됐다. 근정전 동쪽에 있어 동궁(東宮)이란 별칭을 흔히 썼고, 세자도 동궁마마로 불렸다.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한 차례 불타는 고초를 겪었다가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으나 1915년 일제가 일본으로 반출했다. 당시 조선 통치 5주년을 맞아 조선물산공진회를 열었는데, 경복궁 곳곳을 헐어 자재를 민간에 팔아넘기는 만행을 저지른 것. 이때 일본 사업가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가 동궁 부재를 사들여 도쿄로 가져가 재조립한 뒤 사설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10년도 안 돼 1923년 간토(關東) 대지진이 발생하며 기단(基壇·건축 터에 쌓은 단)과 주춧돌만 남고 모두 타 버렸다. 그렇게 자선당은 잊혀질 뻔했지만 김정동 목원대 건축과 교수(65)가 1993년 도쿄 오쿠라 호텔 정원에서 그 유구를 찾아냈다. 오랜 협상 끝에 오쿠라 호텔은 삼성문화재단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1995년 유구석 288개를 반환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99년 자선당을 복원할 당시 환수된 유구는 건축 자재로 쓰이지 못했다. 화재와 방치로 손상이 너무 컸던 탓이다. 결국 경복궁 북쪽 구석 건청궁 옆에 쓸쓸히 놓여졌다. 최근 이를 원위치로 돌리는 것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환수를 이끌었던 김 교수는 “동궁처럼 건축물 유구를 환수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라며 “복원된 자선당 인근으로 옮겨 경복궁을 찾는 국내외 관람객이 잊혀진 역사를 배우는 교육 현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도 적극 찬성한다. 박영근 문화재활용국장은 “자선당이 상징성이 큰 만큼 기본 복원 방향에 동의한다”며 “절차적인 문제가 남아 있지만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남은 과제는 비용 문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구 이전은 1억 원 안팎이 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화재청으로선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한 문화재계 인사는 “자선당 유구 환수 때 상당 비용을 댔던 삼성문화재단이 다시 나서면 모양새가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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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용기타]아이 앞에서 짜증 솟는 당신, 이 책이 필요합니다

    솔직히 우리네 부모님들은 핏줄이 당겨서 손자를 원하려니 했다. 제 앞가림하기도 벅찬데…. 그런데 아이가 생기니 알겠다. 세상이 ‘달라지는’ 것을. 달라진 건 분명한데 지금도 헷갈린다. 잘하고 있는 건가. 좋은 엄마, 근사한 아빠이고 싶은데, 불끈불끈 짜증이 치솟는다. 아, 아직 부모 될 자격이 없었나 보다. ‘왜 엄마는…’은 그럴 때 펴보라고 나온 책이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다들 그러고 산다고 토닥거린다. 저자는 미국에선 꽤 유명 인사다. 블로그 ‘불량한 엄마’를 운영하는 전업주부인데, 속만 끓이던 육아의 고충을 진솔하게 담아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세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느꼈던 ‘불량한 속내’가 여과 없이 실려 있다. 아이를 키워본 이라면 이 책은 무조건 재밌다. 남성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많다. 도대체 세상엔 ‘육아 전문가’가 왜 이리도 넘쳐나는지. 막상 조언이 소용없어도 책임도 안지면서. ‘천사 같은 아이’도 틀린 말이다. 천사에 근접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아이다. 그것도 대부분 잘 때. 더 솔직해지자. 신생아는 결코 예쁘지 않다. 생김새는 쭈글쭈글한 고구마에 가깝다. 그럼에도 저자가 아이를 셋이나 키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그 ‘가끔’ 찾아오는 행복이 너무나 소중하다. 잠든 아이의 발가락을 만지작거리거나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품에 안기는 순간을 세상 무엇과 바꾼단 말인가. 왜 엄마는 내게 아이를 낳으라고 했냐고? 낳아 보면 금방 안다. 로또도 이런 로또가 없으니까. 공감은 여성이 더하겠지만, 오히려 책은 남성이 읽으면 얻는 게 크다. 아이 낳고 아내가 왜 그리도 남편에게 실망하는 순간이 잦은지 이해할 수 있다. 미혼이거나 아직 아이가 없어도 권하고 싶다. 숨겨둔 부모의 일기장을 펴보는 기분이랄까. 민망하긴 해도 코끝이 찡해진다. 우린 모두 누군가의 아기였으니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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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띤 ‘출판 한류’ 현장… 日 왕자 부부 ‘土地’ 일어판에 관심

    3일 오전 10시 반경 일본 도쿄 빅사이트 전시관. 제20회 도쿄국제도서전이 열리던 박람회장 한쪽이 일순간 술렁거렸다. 올해 주제국(주빈국)인 한국관 부스에 아키히토(明仁·79) 일왕의 둘째 아들인 아키시노노미야(秋篠宮·48) 왕자와 기코(紀子·47) 왕자비가 등장한 것. 왕자 부부는 조선통신사 행렬도 영인본과 박경리 소설 ‘토지’의 일본어판에 관심을 보이며 20여 분간 둘러보다 자리를 떴다. 일본 측 도서전 관계자는 “왕자 부부가 도서전을 자주 방문했지만 주빈국 부스를 따로 찾은 것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도쿄도서전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1994년 시작한 도쿄도서전은 ‘제2의 출판대국’이란 위상답게 해마다 세계 40여 개국에서 출판사 1100여 곳이 참여하는 일본 최대 책 박람회다. 지금까지 프랑스 스페인 등 서구 국가들만 주빈국으로 선정해 왔다. 아시아 국가가 주빈국으로 초청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출판 수출입에서 8 대 2 정도로 약세를 면치 못하는 한국에 이번 초청은 ‘쾌거’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이어 지난해 중국 베이징과 올해 도쿄, 내년 영국 런던 국제도서전 주빈국으로 연달아 초청되며 한류의 또 다른 표출이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너무 들뜰 필요는 없지만 이번 도서전이 양국의 출판 불균형이 줄어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순백의 이미지를 살려 현장에 차려진 한국관은 상당히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윤형두) 주관으로 국내 출판사와 관련 업체 27개 사가 참여해 다양한 전시를 선보였다. ‘책으로 잇는 한일의 마음과 미래’라는 주제 아래 조선통신사부터 시작된 양국의 문화 교류를 조명한 ‘필담창화 일만리(筆談唱和一萬里)’와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안내하는 ‘한국의 세계기록유산’ 등 특별전시를 마련했다. 특히 소설 ‘엄마를 부탁해’, 인문서적 ‘아프니까 청춘이다’같이 일본어로 번역된 한국 출판물을 소개한 ‘한일 출판교류전’은 일본 관람객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신기하긴 해도 생소하다는 반응이 컸다. 직장인 우에하라 요시코 씨(27)는 “한국 드라마나 가요는 인기가 높은데 책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일본 출판평론가 다테노 아키라(館野晳·78) 씨도 “황석영 신경숙 작가는 많이 알려진 편이나 여전히 빈약한 상황”이라며 “김애란 한강 등 실력 있는 신진 작가들을 더 활발하게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전시장 옆 세미나실에서 열린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76)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72) 미국 컬럼비아대 객원교수의 대담도 방청객 100여 명이 몰리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동아시아의 보편성’이란 주제로 의견을 교환한 두 지성은 “유교문화 바탕에 깔린 평화를 추구하는 정신, 민심을 천심으로 여기고 국가의 근간으로 삼았던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최근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영유권 분쟁으로 경색된 한중일 관계에 대해 “서구 열강과 정치적 논리에 휩쓸리지 말고 문화사상적 교류를 통해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가라타니 교수는 “최근 일본을 이해하려면 서구나 중국이 아니라 한국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한국을 배우기 위해 한국 드라마도 열심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도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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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정양환]여왕의 거실

    어른들 들으면 실소할 말 좀 하련다. 아이 키우기, 참 힘들다. 겨우 17개월 키워놓고 이러긴 부끄럽지만, 애는 정말 지가 알아서 크는 게 아니었다! 애가 수은전지 삼킨 줄 알고 응급실로 들고 뛰었을 땐 정신이 혼미했다. 이번 주말, 생후 처음으로 이틀 연속 오전 8시 넘어 일어나니 얼마나 고마운지. 평소 6시면 꼬집고 치대고 난리다. 요즘 꼬마를 재우곤 MBC 드라마 ‘여왕의 교실’을 본다. 고현정은 물론이고 아역배우 연기가 장난 아니다. 근데 가끔은 살짝 무섭다. 애들이 정말 저럴까. 반 친구를 괴롭히며 저렇게 즐거워하다니. 드라마대로라면 열세 살짜리 세상은 이미 어른과 똑같은, 아니 더한 약육강식 전쟁터였다. 주인공은 초등학생이지만, 왠지 눈길은 학부모에게 더 갔다. 아이들이 저리 행동하는 건 어른 책임이 상당할 터. 실제로 드라마 속 부모는 자녀와 제대로 소통하는 이가 드물었다. 먹고살기 바쁘거나 자기 생각에 갇혀 있을 뿐. 무신경과 집착만이 넘쳐난다. TV 앞에서야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누가 저런 결과를 낳지 않는다고 자신할까. 솔직히 예전엔 길에서 생떼 쓰는 애를 보면 혀를 찼다. 지금은? 지난달 비행기에서 울고불고하는 아기를 보며 마음이 짠했다. 부모가 뭔 죄가 있나. 이 모순은 참 극복하기 어렵다. 하지만 따져보면 결국 책임은 부모가 져야 한다. 아이 버릇은 가정에서 든 거니까. 최근 연달아 출간된 책 ‘프랑스 아이처럼’(북하이브)과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아름다운사람들)는 이런 고민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프랑스는 ‘우리처럼’ 애를 키우지 않는단다. 꽤 알토란같은 정보가 담긴 이 책들이 전하려는 충고는 간명하다. 명확한 룰과 규칙을 갖고 아이를 키우라는 거다. 애는 태어나자마자 하루 4∼5회 정해진 시간에만 분유를 먹이고, 한두 달만 지나면 혼자 알아서 자는 습관을 들인다. 어릴 때부터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걸 깨우쳐야 예절은 물론 독립심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진짜 가능할까 싶지만, 프랑스인들은 실제로 이런다. 사실 프랑스 육아법은 미국에서 먼저 화제가 됐다. 아이 주위를 맴돌며 모든 걸 다 해주는 ‘헬리콥터 맘’은 원래 그네들 신조어 아닌가. 그들도 최근 그게 결코 아이의 창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있단다. 얼핏 들으면 이 육아법, 한국에선 신기할 게 없다. 오냐오냐 키우다 버릇 나빠진다고 숱하게 들어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가 더 미국식 교육논리에 젖어 있다. 자기 집에서 예의 없는 아이가 밖에선들 잘 할까. 무조건적 강요가 아닌, 합리적 권위는 자녀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거실의 왕 혹은 여왕은 부모여야 한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 201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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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리바바의 보물창고 엿보듯

    ‘이슬람 왕실 보물의 유혹에 취해보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이 쿠웨이트 왕실 보물들을 소개하는 ‘이슬람의 보물-알사바 왕실 컬렉션’ 특별전이 2일 시작됐다. 알사바 컬렉션이란 쿠웨이트 왕족인 셰이카 후사 사바 알살렘 알사바 공주 부부가 1970년대부터 수집한 진귀한 보물 3만여 점을 일컫는다. 이 컬렉션은 1983년부터 국가에 영구 대여돼 쿠웨이트국립박물관의 ‘다르 알아타르 알이슬라미야(이슬람미술관)’에서 관리한다. 한국 특별전에서는 이 가운데서 엄선한 367점을 소개한다.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 모두 9부로 꾸민 이번 전시에서는 8∼18세기 1000년 세월을 아우르는 다양한 유물을 감상할 수 있다. 전반부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이슬람 미술의 기원(8∼10세기) △다양한 전통(11∼13세기) △성숙기(14∼15세기) △전성기(16∼18세기) 4부로 구성했다. 8세기 중반 요르단 건축 장식물부터 13세기 이란의 도기 주전자, 14세기 이집트산으로 추정되는 은입사 황동 대야가 전시된다. 전성기 유품에서는 ‘신드바드’라도 타고 다녔을 법한 이슬람 양탄자가 인상적이다. 페르시아 전통이 살아있는 이란 사파비 왕조의 18세기 정원 카펫은 세련된 문양을 자랑해 당시 장인들의 놀라운 기술 수준을 가늠케 한다. 후반부는 주제나 소재에 따라 5가지로 엮었다. ‘예술로 승화한 문자, 서예’는 나무로 만든 꾸란 보관함 같은 이슬람 미술품에 표현된 글씨에 주목했고, ‘식물무늬의 장식화, 아라베스크’는 서예와 함께 이슬람의 대표적 장식 소재인 아라베스크(아라비아 무늬)에 초점을 맞췄다. 마찬가지로 ‘무한한 반복의 표현, 기하학 무늬’와 ‘이슬람 미술의 형상 표현’도 아름다운 무늬를 담은 미술작품과 생활용품을 모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화려한 궁전문화, 보석공예’다.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것은 대부분 16∼18세기 무굴제국(인도의 이슬람 왕조) 때 만들어진 작품들로, 당시 화려한 귀족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장신구와 보석이 많다. 특히 18세기 후반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 금으로 만든 길이 39cm의 목걸이는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넘친다. 박물관은 “국내 처음으로 이슬람 미술 전반을 소개하는 전시로 이슬람 문명의 총체적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10월 20일까지. 4000∼1만2000원. 02-2077-9000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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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中日 동의보감 한자리에… 당대 의료한류 진면목 선보여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발간된 동의보감(東醫寶鑑)을 한자리에서 보게 됐다. 국립중앙도서관(관장 임원선)이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맞아 1일부터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도서관 고전운영실에서 특별전 ‘전통의약을 생활 속으로’를 개최한다. 구암 허준(龜巖 許浚·1539∼1615)이 지은 동의보감 25권 25책은 1613년 발간된 뒤 중국과 일본에서도 지속적으로 주목받았다. 일본의 경우 1724년 당시 일본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가 ‘의학의 표준을 얻기 위해’ 막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동의보감을 펴냈다. 중국은 이보다 다소 늦은 1766년 처음으로 발간했다. 중국판본 서문에는 “천하의 보물을 마땅히 천하와 더불어 나누고자” 책을 출간한다고 적혀 있다. 중국에서는 이후 30종이 넘는 다양한 판본의 동의보감이 간행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1724년 일본판, 1766년 중국판을 모두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전시의 백미는 보물 제1085-1호로 지정된 동의보감 초판본. 허준이 1610년 편찬한 뒤 1613년 내의원에서 목활자로 간행한 것으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에서 제공한 동의보감 영문판(2008년)과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2009년) 등 관련 자료도 선보인다. 10월 31일까지. 02-590-0678, www.nl.go.kr/nl/antique/list.jsp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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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다빈치-모차르트가 축구선수를 했다면…

    누구나 마감일이 코앞에 닥쳤거나 중대한 위기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평상시와는 달리,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며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해 재빠르고 탁월하게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을 한번쯤은 하게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마감일이 지나가거나 위기가 해결되고 나면 이러한 힘과 높은 창의성은 대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전작 ‘권력의 법칙’ ‘전쟁의 기술’을 통해 권력의 본질과 경쟁의 전략을 탐구해 현대적으로 적용하는 데 주력해 왔던 저자는 바로 그 사라져 버리는 힘에 주목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특정 순간에 잠시 경험하는 그 힘을, 역사적으로 ‘천재’에 해당하는 거장들은 자유자재로 끌어내 탁월함을 발휘한다는 점에 포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마스터리(mastery·마스터+미스터리)’라고 명명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찰스 다윈, 토머스 에디슨 같은 역사적 위인들뿐만 아니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와 건축가, 로봇공학자, 예술가도 상황은 엇비슷했다. ‘마스터리의 법칙’은 바로 그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거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책이다. 사람들은 흔히 다빈치 같은 이들의 업적을 설명할 때 “타고난 천재니까”라고 결론짓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천재는 결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만 천재로 간주되는 사람은 자신의 기질에 맞는 ‘인생의 과업’을 찾아낸다. 또 이상적인 수련 방식에 따라 고마운 ‘스승’ 밑에서 오랜 시간 엄청난 집중력으로 과업을 수행한 결과 ‘귀신같다’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성과를 내게 됐을 뿐이다. 음악의 천재로 알려진 모차르트도 마찬가지다. 그가 진정으로 독창적인 중요한 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작곡을 시작한 지 10년이 훨씬 넘어서였다는 것이 고전음악 비평가의 의견이다. 책에서는 그런 과정들을 평이한 문체로 쉽게 설명하면서도, 거장으로 가는 각각의 단계를 여러 가지 사례와 예증을 통해 성실하게 뒷받침해 놓았다. 작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구성원에게는 어떤 의미에서건 ‘거장’ 혹은 ‘마스터’가 되는 것이 중요해졌다. 평범한 빵이 아니라 ‘거장의 숨결이 스며든 빵’이어야 비싸더라도 팔리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남과 다른 창조적 발상으로 대량생산 시대의 상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야만 소비자와 고객의 마음을 훔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기에 ‘마스터리의 법칙’에 더 주목해야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도, 모든 평범한 사람 역시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과정에서 선결되어야 할 키포인트는 바로 ‘인생의 과업을 찾는 것’이다. 축구선수에 맞는 활동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책상 앞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는 일을 택한다면 잘될 턱이 없다. 음악보다는 회화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엄마의 좌절된 꿈 때문에 죽어라 피아노를 치게 한다면 그 아이가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될 리 만무하다. 저자는 인생의 과업을 찾기 위해 ‘근원적 기질로 돌아가라’고 조언한다. 어린 시절부터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는 것에 곤란을 겪었던 마사 그레이엄은 몸을 통해 표현하는 춤을 만난 뒤 ‘물 만난 물고기’가 됐다. 마스터리의 길은 바로 그때부터 펼쳐지기 시작한다. 희망적인 것은, 과업을 찾는 일은 현재의 나이와 무관하다는 점이다. 언제든 내 안에 늘 잠복해 있는 기질과 제대로 만나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았던 고 박완서 선생의 등단 시기도 40대였다!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흙 속, 저 땅 밑에서는 분명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 인생의 과업과 연결된 끈을 놓지 마라. 그 끈을 놓지 않는다면 무의식적으로라도 삶에서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마스터리가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오랜 시간 당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일해 왔는가. 그렇다면 이제 활짝 만개할 일만 남았다. 우리 모두는 마스터리의 법칙 속에서 살고 있다.유영만 한양대 교수·지식생태학자}

    • 201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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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자 다이제스트]고구려 고분벽화에 담긴 당시의 생활상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로 오랜 명성을 쌓아왔고 지금은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저자가 우리나라 고분벽화에 대한 그간의 연구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옛 무덤 안에 그려진 벽화를 뜻하는 고분벽화는 회화사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장례문화 같은 당대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연구 가치가 크다는 게 저자의 설명.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시대 벽화부터 일반인에겐 낯선 고려와 조선시대 고분벽화까지 두루 살폈다. 특히 고구려 고분벽화가 일본에 미친 영향을 꼼꼼히 짚은 대목이 눈길을 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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