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식

김갑식 부국장

동아일보 지식서비스센터

구독 25

추천

안녕하세요. 김갑식 부국장입니다.

취재분야

2026-02-25~2026-03-27
종교37%
사회일반27%
문학/출판17%
역사7%
문화 일반3%
대통령3%
연극3%
기타3%
  • [김갑식 기자의 뫔길]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기고 간 숙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18일 4박 5일의 방한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긴 울림은 진행형입니다. 교황이 방한 기간 중 내내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고,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모습은 충격이었습니다. 왜 충격일까요? 그런 모습이 우리 종교인들에게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 그런 것 아닌가 합니다. 심지어 종교를 담당하는 기자들조차 한 해 몇 차례를 빼면 고위 성직자들을 만나기 어려우니까요. 평신도와 비신앙인의 경우 TV 화면을 통해 고위 성직자들이 대통령과 식사를 하거나, 중요한 교계 행사에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가끔 보겠죠. 이런 현실에서 세계 가톨릭계 수장인 교황의 낮은 행보는 국내 종교계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교황의 방한은 가톨릭을 포함한 종교계, 특히 고위 성직자들에게 큰 숙제를 남겼습니다. 교황을 향한 환호는 우리 종교인들이 보통 사람들 곁에 있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냉정히 말해, 그 환호도 가톨릭 자체가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는 ‘슈퍼스타의 개인기’를 향한 것이긴 합니다. 지금도 교황청은 여기저기서 ‘물새는 방주’로 비유되고 있으니까요. 바티칸공의회 이후 계속된 개혁에도 불구하고 교황청을 둘러싼 재정 스캔들, 일부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남성 위주의 폐쇄적인 성직자 시스템을 둘러싼 논란 등 각종 현안에 직면한 것이 가톨릭의 현 주소입니다. 교황의 방한을 지켜본 종교인들은 스스로 종교지도자들의 리더십 부재를 무엇보다 큰 아픔이자 그늘로 꼽고 있습니다. 성철 스님이나 한경직 목사, 김수환 추기경처럼 이념과 계층을 뛰어넘어 존경받을 만한 종교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열광적으로 지지받지만, 다른 쪽에서는 비난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1970, 80년대에 비해 세상이 다양해졌다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그만큼 그분들이 보여준 삶과 언행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려 있기 때문입니다. 비천한 여종들의 다툼에 “모두 옳다”며 맞장구를 쳤다는 황희 정승의 고사가 떠오릅니다. 이 시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덕목은 황희처럼 큰 귀와 열린 마음 아닐까 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8-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염수정 추기경 “세월호 유족 아픔을 이용해선 안돼”

    26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사진)은 누구도 세월호 유족의 아픔을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월호 리본을 옷깃에 단 염 추기경은 이날 명동대성당 주교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유족들은 죽음이란 자루 속에 갇혀 어둠 속에 있다. 죽음에 이어 부활, 새 희망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유족의 아픔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추기경은 ‘이용하는 세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알아서 생각하시라”면서도 “정의는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들 돕는다면서 실상은 내가 정의를 이루고 만들겠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염 추기경은 앞서 22일 광화문광장에서 유족을 찾았을 때 전달받은 편지도 소개했다. 유족들은 이 편지에서 “정치권의 정쟁이나 가족들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 아닌, 건전한 사회적 논의가 대한민국에 진정한 안전과 평화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믿으며 가족들을 도와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했다. 염 추기경은 ‘유민 아빠’ 김영오 씨도 만나려고 했으나 김 씨의 입원으로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염 추기경은 “유족들도 어느 선에서는 양보도 해야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8-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교황 “한국 방문 의미는 기억-희망-증언”

    프란치스코 교황은 20일(현지 시간) 바티칸 교황청 바오로6세 홀에서 열린 일반 신자와의 만남에서 “한국 국민들에게 평화와 번영의 선물 주시길 기도한다”고 방한 소감을 밝혔다. 교황은 이날 “형제인 한국의 주교들과 대통령, 공직자들과 저의 방문을 위해 도움을 준 모든 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교황은 한국 방문의 의미를 ‘기억, 희망, 증언’의 세 단어로 요약했다. 교황은 “한국 국민은 열심히 일하고 규율과 질서를 지키는 사람들이고 선조에게 받은 힘을 지속해 가는 사람들”이라며 “전쟁과 분단의 결과로 고통 받는 한국의 모든 자녀들이 형제애와 화해의 여정을 이룰 수 있도록 다 함께 기도하자”고 말했다. 한편 문구업체 모나미가 교황 방한을 기념해 특별 제작한 헌정 펜 ‘153피셔맨(Fisherman)’이 바티칸 박물관에 전시된다. 이 볼펜은 ‘베드로가 예수님이 지시한 곳에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성경 구절을 토대로 물고기를 낚는 어부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모나미 관계자는 “11일 이 펜을 전달할 때 방한준비위원회 측으로부터 박물관에 전시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교황이 받은 선물을 박물관에 전시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헌정 펜은 100일 가까운 수작업 공법을 통해 제작됐다. 볼펜의 몸체는 순은이며 백금 도금으로 마감처리를 해 보석과 같은 색채와 강도를 가지고 있다. 또 교황이 방한 중에 탔던 기아자동차 쏘울의 판매량이 부쩍 늘고 있다. 21일 기아차에 따르면 14일 교황 방문을 앞둔 시점부터 교황이 출국한 다음 날까지 이 차량의 하루 평균 계약대수는 32.5대로 지난달의 20대보다 62.5% 증가했다. 특히 여름휴가로 비수기였던 1∼8일 영업일수 6일간 하루 평균 18.3대가 계약된 것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셈이다. 올해 쏘울의 월평균 판매량은 391대지만 이미 이달 19일 기준으로 305대가 계약돼 월평균 판매량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김갑식 dunanworld@donga.com  김성모·정세진 기자}

    • 2014-08-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부고]천도교 박의섭 종법사

    천도교 박의섭 종법사(사진)가 20일 오후 5시경 환원(還元·‘별세’라는 뜻의 천도교 용어)했다. 향년 98세. 천도교 4번째 대도주(大道主·현재 교령)인 박인호(朴寅浩)의 손자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종무위원과 경리관장, 천도교 유지재단 이사 등을 지냈고 1986년 덕산포 도정 등으로 활동하다 2005년 종법사로 추대됐다. 유족으로는 아들 기성(전 산업은행 국제부장) 기현 씨(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딸 기영 기숙 씨가 있다. 발인은 22일 오전 10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실 02-3410-6914}

    • 2014-08-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갑식 기자의 뫔길]교황의 행보가 ‘할리우드 액션’일까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과 천주교 주교단과의 만남이 있던 서울 광진구 주교회의. A3 용지 크기의 방명록에 남긴 교황의 ‘깨알서명’이 화제가 됐습니다. 한 직원이 동전과 자를 옆에 놓고 사진을 찍었는데 2cm 남짓, 100원짜리 동전 지름과 비슷한 길이였죠. 또 다른 직원은 “연예인이나 유명인과 달리 번쩍하는 후광, ‘아우라’가 안 느껴졌다”며 “낯선 사람이 아니라 이 건물에서 오래 함께 있던 분 같았다”고 전합니다. #꽃동네에서 교황을 만난 청주교구 이현로 신부의 경험도 있습니다. “교황께서 장애인들을 계속 축복하며 포옹했는데, 마지막에는 교황께서 아이들을 안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푹 안기는 느낌이었죠.” 18일 출국한 교황이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다가서 손을 잡고,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화제를 넘어 충격이 됐습니다. 궁금증이 생깁니다. 불경하게 들리겠지만 교황의 행보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의미의 ‘할리우드 액션’일까요? 축구에서는 이럴 경우 심판을 속여 페널티킥을 얻으려는 것으로 판단되면 옐로카드를 받을 수도 있죠. 교황의 20년 지기로 최근 만난 아르헨티나 문한림 주교의 증언입니다. “교황은 이전 추기경 시절과 달라진 게 없어요. 20대부터 빈민가를 찾은 교황은 항상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불가사의한 것은 그 바쁜 시간에도 틈을 내 전화를 걸거나 직접 쓴 편지로 답한다는 겁니다.” 단 하나, 달라진 점도 있답니다. 그것은 웃음입니다. 문 주교는 “추기경 시절 저렇게 환하게 웃는 걸 본 적이 없다”며 “은퇴하려고 양로원 방까지 정해놓고 콘클라베 갔는데 갑자기 ‘오너(하느님)가 회사 대신 맡아라’, 이러니 안 웃을 수 있겠나. 새 직분이 준 새로운 축복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할리우드 액션 여부는 교황이 그동안 삶에서 보여준 선의와 오랜 시간의 진정성이 있기에 무죄 아닐까요? 혹자는 가타부타 없이 경청해 “서로 내 편”으로 느끼도록 하는 교황의 행보를 가톨릭의 오랜 노하우로 분석하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우리 사회는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거나 목표를 얻기 위한 할리우드 액션이 넘쳐납니다. 한마디로 수(手)가 뻔히 보여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고개를 젓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고수(高手)의 출현을 기다립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8-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큰 가르침, 잊지 않을게요” 교황, 4박5일간 소통-화합의 깊은 울림 남기고 한국 떠나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하라.” 4박 5일간의 짧지만 긴 여운과 깊은 울림을 남긴 ‘프란치스코 마법’. 18일 출국한 교황이 우리 사회에 던진 일관된 메시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용서였다. 교황은 이날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강론에서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정직한 기도를 바칠 수 있겠느냐”며 화해와 용서를 강조했다. 교황은 방한 첫날인 14일 비공개로 진행한 개인미사에서도 “용서 받고 싶은 그 마음으로 상대를 용서해야 한다”고 강론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명동대성당을 찾아 제대(祭臺) 왼쪽에 마련된 주교단 좌석에 앉아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했다. 이날 미사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7명을 비롯해 새터민, 납북자, 해군기지와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을 벌여온 제주 강정마을과 경남 밀양시 주민들, 용산 참사 피해자, 쌍용 해고노동자, 장애인, 중고교생 등 1000여 명이 초청됐다. 시민 1500여 명도 교황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빗길에 성당을 찾았다. 교황은 미사를 위해 제대에 올라가기 전 중앙 맨 앞좌석에서 멈춰 서 휠체어에 앉아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축복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88)가 교황에게 나비 배지를 선물하자 통역을 맡은 정제천 신부가 교황의 제의(祭衣)에 달아줬다. 교황은 강론 후반부에 “모든 한국인이 같은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더욱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기도하자”며 우리 사회 내부와 남북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노력을 다시금 강조했다. 미사가 끝난 뒤 박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위한 메시지를 전해 주신 데 대해 감사하다”고 인사하자 교황은 “한반도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기도할 것을 약속드린다”며 박 대통령에게 기념메달과 묵주를 선물했다. 교황은 이날 오후 1시경 서울공항에서 대한항공 편으로 출국했다. 교황은 한반도 상공에서의 메시지와 트위터를 통해 못다 한 한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표시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교황은 서울공항 서쪽 72km 상공에서 대한항공 조종사를 통해 인천지역 관제소로 전달된 메시지에서 “이제 한국을 떠나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맡기며 박 대통령과 사랑하는 한국 국민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다시 한 번 기도드리며, 여러분 모두에게 신의 축복을 기원한다”고 했다. 교황은 오후 5시경 공식 트위터를 통해 한국어와 영어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화해의 은총을 받아 이웃과 나누시기 바랍니다”라는 글을 남겼다.김갑식 dunanworld@donga.com·이재명 기자}

    • 2014-08-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우린 형제… 함께 가자” 종교의 벽 넘어선 화합

    “삶이라는 것은 길이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18일 오전 9시 서울 명동대성당 문화관에서 불교와 개신교 등 국내 종교 지도자 12명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다.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앞서 진행된 이 만남은 15분 안팎으로 짧았지만 울림은 컸다. 무엇보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종교인들에 대한 교황의 동료 의식과 이해가 눈길을 끌었다. 교황은 이들과 차례로 인사를 하면서 선물을 받은 뒤 스페인어로 짧은 즉흥 연설을 남겼다. 교황은 “형제 여러분, 우리는 형제들이다.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걸어가도록 하자”라고 말한 뒤 마지막으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말은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자들과의 첫 만남에서 던져 화제가 된 말이기도 하다. 이 만남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 남궁성 원불교 교정원장, 박남수 천도교 교령, 서정기 성균관 관장,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정교회 한국대교구장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대주교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대부분 한 시간 넘게 진행된 가톨릭 미사 내내 자리를 지켜 종교 간 화합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8-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참어른’ 얼마만인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 대한민국의 중심인 이곳은 최근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정치사회적 열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 됐다. 광화문, 그 앞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식’을 집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다시 그 앞에는 긴 칼을 찬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서 있다. 이날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아바타’(1362만 명)의 국내 최고 흥행 기록을 5년 만에 넘어섰다. ‘명량’은 1500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5000만 인구 가운데 세 명 중 한 명꼴로 이 영화를 보는 셈이다. 대한민국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한다.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를 대표하는 교황이 소형차 쏘울을 타는 모습에 반해 나흘 만에 팬 카페가 20개 넘게 생겼다. 16일 시복식은 ‘프란치스코 마법’의 절정이었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처음으로 남녀노소, 빈부, 이념과 종교를 뛰어넘어 ‘하나 된 하루’였다. 노란 리본을 단 유족 400여 명을 포함한 80만 명(교황방한위원회 집계)이 한자리에서 교황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다. 바티칸공식수행취재단 기자들은 한국인의 열광적인 반응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프랑스 르피가로의 바티칸 출입기자인 게누아 장마리 씨는 “지난해 교황의 브라질 세계청년대회는 젊은 가톨릭 신자 중심이었고, 예루살렘에서는 무거운 정치적 긴장이 느껴졌다”며 “한국에서는 신자가 아닌 일반인에게까지 교황이 뜨거운 인기를 얻어 놀랍다”고 했다.▼ 프란치스코-이순신 리더십 공통점은 ‘진정성’ ▼‘프란치스코 열풍’과 ‘이순신 신드롬’의 원인은 뭘까. 최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두드러진 ‘리더십에 대한 열망’이 우선 꼽힌다. 미국 보스턴글로브의 존 앨런 기자는 “한국인은 빠른 경제성장의 그늘을 치유해줄 따뜻한 리더십을 기대하고 있다. 국내 정치인들로부터 받지 못했던 ‘보살핌’의 느낌을 교황에게서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화사회학을 전공한 서우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사회가 불안하거나 위기를 느낄 때 사람들은 안전한 곳으로 이끌 강한 리더십을 원한다”며 “세월호 참사나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같은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는데 책임지는 정치인은 없었고 관료는 무능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교황과 장군의 리더십에는 차이가 있다. ‘명량’의 이순신이 죽음을 불사하는 무한책임의 리더십이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을 낮춘 소통과 화해의 리더십이다. 리더십 전문가인 정동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통점은 두 리더의 진정성”이라며 “이순신은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해 나라를 구했고 교황 역시 낮은 곳으로 임한다는 철학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벤트성이 아닌 실천이 감동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2014-08-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무개차 등장에 “비바, 파파” 연호… 교황 8번 멈춰 축복

    15일 오전 10시 20분경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개차를 타고 대전월드컵경기장 안으로 들어서자 5만 명이 넘는 참가자들은 “비바, 파파(교황 만세)!”를 연호하며 환영했다. 교황이 집전하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위해 대전 충청 지역은 물론이고 멀리 제주에서까지 온 신도들이었다. 교황은 무개차를 타고 경기장 트랙을 천천히 돌며 평신도들과 한층 가까이 다가서려는 모습을 보였고, 신도들은 ‘당신과 함께 예수님을 따릅니다!’라는 글귀와 교황의 얼굴이 그려진 흰 손수건을 일제히 흔들었다. 한 신도가 자신의 아이를 교황에게 내어 보이자 교황은 무개차를 잠시 세운 뒤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춰 주었다. 교황은 이날 경기장에 들어서면서 아이를 포함해 신자들에게 축복을 주기 위해 8번이나 멈춰섰다. 교황이 10시 35분부터 15분가량 경기장 1층 제의실에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는 동안 행사장엔 침묵이 흘렀다. 신도들은 교황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줄 알았다가 뒤늦게 세월호 관계자를 만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뒤 “역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많은 분”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10시 50분경 성가 ‘서로 사랑하십시오’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미사가 시작됐다. 교황은 이탈리아어로 한 강론에서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성모승천대축일은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1월 1일), 예수 부활 대축일(매년 날짜가 바뀜), 예수성탄대축일(12월 25일)과 함께 가톨릭교회의 4대 의무 축일이다. 교황의 이날 강론은 성모 승천의 의미와 그리스도인의 자유, 젊은 세대를 위한 희망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 교황은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에게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단순히 죄에서 벗어나는 일보다는 더 크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고 했다. 그 자유의 의미는 사회의 모든 영역의 정신적 쇄신을 낳는 것이다. 교황은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빈다”고 했다.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과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할 것도 강조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년들을 위한 관심을 촉구해 온 교황은 절망에 빠진 젊은 세대를 도울 해법으로 복음이 제시하는 희망을 꼽았다. 그러면서 그는 “젊은이들이 외적으로 부유해도 내적으로 쓰라린 고통과 허무를 겪는 사회 속에서 성장해 절망을 겪고 있다”면서 “이런 젊은이들이 기쁨과 확신을 찾고, 결코 희망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를 마친 뒤 퇴장하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보자 다가가 머리에 손을 얹고 강복한 뒤 행사장을 떠났다. 교황은 대전가톨릭대 구내식당에서 아시아 17개국 청년대표 20명과 오찬을 가졌다.대전=이기진 doyoce@donga.com / 김갑식 기자}

    • 2014-08-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빈자의 성자’ 분단의 땅에

    ‘빈자(貧者)의 성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전 10시 반 서울공항으로 입국한다. 교황의 한국 방문은 역대 세 번째로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이후 25년 만의 일이다. 교황은 현지 시간 13일 오후 4시(한국 시간 오후 11시)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알이탈리아 항공 AZ 4000 특별 전세기편으로 왼손에 검은 가방을 직접 들고 탑승했다. 이탈리아 국기와 교황 문장이 장식된 비행기에는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 등 약 30명의 공식 수행단을 포함해 100여 명이 탑승했다. 현지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공항에는 교황의 출국을 알리는 안내가 없어 이용객 대부분은 출국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공항 측은 X선으로 가방을 검색하는 평상시와 달리 손으로 일일이 가방을 열고 내용물을 살폈다. 기자단과 수행원에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이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오르면서 전세기는 한국으로 향했다. 교황청은 출발에 앞서 기내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전세기가 영공을 통과하는 중국과 몽골, 러시아 등 10개국에 대해 인사말을 전했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영공을 통과하는데 중국에 신의 가호와 평화가 있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이날 비행기에는 동아일보를 비롯해 CNN, ABC, AP, 르피가로, 보스턴글로브 등 70명 안팎의 각국 취재진도 탑승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아시아 방문길을 동행 취재한다. 교황의 전세기엔 일등석 없이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만 있다. 78세의 교황은 다른 공식수행단과 똑같이 비즈니스석 첫 줄에 앉아 11시간 반 동안 비행한다. 교황은 4박 5일간의 방한 기간 동안 20여 개 행사에 참석하게 된다.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는 “한국에서 세월호 사건 생존자 및 유가족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 많은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아픔을 위로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주교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이날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교황 방한 메인프레스센터 축복식 강론에서 “교황 방한은 한국 교회와 사회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교황의 방한을 환영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14일 오전 서울공항으로 나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영접한다. 1984년과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때도 전두환,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3부 요인이 공항까지 나가 영접했다.로마=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김갑식·이재명 기자}

    • 2014-08-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분열 딛고 일치와 희망의 계기 되길”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사흘 앞둔 11일 국내 주요 종단 지도자들은 일제히 방한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다. 6대 종교 지도자들은 18일 오전 9시 45분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시작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앞서 교황과 15분간 짧은 만남을 갖고 미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축하메시지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교황님의 한국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평화의 메시지와 기도가 한반도는 물론이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김영주 총무는 “교황께서는 지역 분쟁, 종교 분쟁 등 지구촌 여러 분쟁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면서 새로운 희망의 길을 보여줬다”며 “이번 방한이 남북 간 화해의 문이 활짝 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원불교 남궁성 교정원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이웃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이 확대되고, 분열과 절망이 있는 곳에 일치와 희망을 전하는 시간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천도교 박남수 교령은 “대한민국은 3·1운동 당시부터 민족 자주와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전통 위에 수립된 나라”라며 “교황님 방문에 즈음해 이 땅에 생명 살림과 모심의 마음과 기운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서정기 성균관장은 “1994년 교황청에서는 전통제사가 우상 숭배가 아닌 조상 추모 의식임을 공인해 주었다. 유림의 수장인 성균관장으로서 교황님과 교황청에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은 “분단의 고통은 1000만 이산가족뿐만 아니라 7000만 민족의 고통이다. 우리 민족 가슴마다 화해의 물결이 싹트게 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8-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개신교 예장, 통합-합동 55년만에 연합기도회

    국내 개신교 최대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예장) 통합과 합동 교단 목회자 및 평신도 지도자 1만5000여 명이 55년 만에 한자리에 모여 ‘한국교회 치유와 회복을 위한 연합기도회’를 개최했다. 이 기도회는 두 교단의 전직 총회장들인 증경총회장단 주최로 10일 오후 서울 사랑의교회에서 열렸다. 양 교단이 연합 행사를 가진 것은 1959년 제44회 장로교 총회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문제로 분열된 이후 처음이다. 이날 기도회는 경과보고와 기도, 특별찬송, 감사의 말씀, 축도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양 교단의 화해와 협력이 이뤄져야 하고, 민족의 통일을 위한 공동의 협력과 기도, 사이비종교와 이단을 단호히 배격하는 데 앞장서자고 다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8-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교황 되고 더 밝고 거침없는 행보… 10년은 더 젊어지신 듯”

    “교황 되시더니 10년은 더 젊어졌어요. 밝고 거침없고, 마치 청년으로 돌아간 것 같아요.” 8일 서울 옥수동 성당에서 만난 문한림 주교(59)의 말이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에서 신부로 활동하다 올 2월 교황에 의해 산마르틴 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됐다. 해외 교구의 첫 한국인 주교이자 누구보다 현 교황을 잘 아는 한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젊어졌다? 무슨 말이죠? “원래 교황 선출 투표만 하고 돌아오겠다고 하고 바티칸으로 갔죠. 은퇴 가까웠으니까 양로원 방도 정해놓고. 그런데 교황이 됐으니 성직자로는 ‘덤으로 사는 새 삶’을 얻은 셈이죠. 하느님께서 일 더 하라고 큰 기회를 주니 젊어질 수밖에 없죠. 요즘 교황께선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얘기, 하고 싶은 일 맘껏 하는 것처럼 보여요. 아르헨티나 있을 때도 자상하고 유머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은 본 적이 없어요.” ―정말요? “오죽하면 아르헨티나 언론에서 교황 되기 전과 후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실었어요. 과거에는 표현도 절제하고 자신을 밖으로 내세우지 않아 웃는 교황을 보기 힘들었어요. 요즘 교황께서도 새 사명이 즐거운 데다 일거수일투족이 매스컴에 모두 드러나 더 밝게 느껴지는 듯합니다.” ―한국에 특별한 애정을 표시한 적 있나요? “특별한 얘기를 하신 적은 없어요. 추기경 서임식에서 염수정 추기경에게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했다는 걸 듣고서 깜짝 놀랐죠. 감정을 그렇게 드러내는 분이 아닌데…. 다른 성직자와 달리 이분은 교황 된 뒤 더 자유롭고, 거침없어졌어요.” ―최근 (현 교황과 전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와 독일의 월드컵 결승전도 화제였습니다. “(웃음) 두 교황이 자국의 승리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으로 패러디한 사진이 인기였어요.” ―교황을 가톨릭교회 쇄신에 나선 ‘가톨릭계의 메시’로 부르면 이상한가요? “메시?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니, 세계적으로 보면 메시 이상이죠. 메시는 축구 팬들만 좋아하지만 교황은 남녀노소와 종교에 관계없이 좋아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왜 교황에게 열광할까요? “교황께서는 사람들 아래로 내려와 편안하고 자상하고 쉽게 대화합니다. 남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감싸주는, 넓은 가슴을 지닌 아버지 닮은 리더십 때문이죠.” ―교황과 세월호 유족 등 다양한 만남이 예정돼 있습니다. 너무 많은 그룹들이 교황께 몰리는 게 아닌가요? “어쩔 수 없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왔다고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겠어요? 돈과 권력, 총 같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 또는 인간적 카리스마에 사람들이 끌리는 것 같습니다.” ―교황께선 교회 쇄신에 성공할까요? “교회 쇄신은 한 사람이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바티칸 2차 공의회도 요한 23세 때 시작해 바오로 6세 때 끝났고, 그 실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할은 새로운 변화의 주춧돌을 놓는 거죠. 어쨌든 교황의 성격상 베네딕도 16세처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언젠가 자진 사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황의 아시아 첫 방문국이 한국입니다.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한국은 공부와 일, 신앙 모두 적극적인 나라입니다. 신앙 면에서 열정적으로 믿다 순교하고요. 순교 성인이 100명 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드물어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교회가 갖고 있는 이런 역동성과 열정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주교 되신 뒤 첫 귀국이신데, 금의환향이네요. “그런가요. 주교회의와 동창 신부들의 초청이 있어 방한 기간에 맞춰 왔어요. 30일 아버님 생신도 보고 가려고요.” ―방한 중 교황을 만날 계획이 있습니까? “아르헨티나 속담 중에 해는 멀리서 보면 좋지만, 가까이 가면 타 죽는다는 게 있어요. 전 근처에 안 갈 거예요.(웃음)”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8-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토요판 커버스토리]교황 14∼18일 방한… 세계는 왜 프란치스코에 열광하는가

    3월 13일 콘클라베(추기경단 선거회의·라틴어로 ‘열쇠로 잠근다’는 뜻)가 열리고 있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 15만 명의 시선은 작은 모자처럼 생긴 연통을 향하고 있었다. 전날 오후 추기경 115명이 성당으로 모여들었다.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시작됐다. 투표를 위한 토론은 관례에 따라 일절 허용되지 않았다. 24시간 동안 성당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두 번 피어올랐다. 새로운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쉽게 피어오를 것으로 예측하는 이는 드물었다. 기다림은 당연한 것이다. 콘클라베는 며칠 또는 수개월, 수년이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오후 7시를 조금 넘기자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흰 연기였다. 연통 주위를 맴돌아 좋은 징조라는 해석을 낳았던 갈매기도 사라졌다. 환호성과 종소리, 스위스 근위대 행진, 광장을 메운 사람들의 합창이 이어졌다. 마침내 베드로 성당의 발코니에 환한 조명이 비쳤다. 중앙에 나타난 장루이 토랑 추기경은 라틴어로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교황이 나셨다)”이라고 외쳤다. 이어 “지극히 탁월하고 공경받으실 분의 이름은 호르헤 마리오입니다”라고 했다. 그의 성(姓)은 “베르고글리오”라는 말이 이어졌다. 군중 사이에서 엄청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호르헤 마리오, 이 이름은 확실히 교황 후보로 거론되던 안젤로나 오질루가 아니었다. 마이크를 쥔 카메라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베네딕토 16세의 자진 사임 이후 한 달 이틀 만에 새 교황이 선출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도 그들 역시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으리라. “빌어먹을, 도대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가 누구야?” 로마만큼은 아니지만 서울도 발칵 뒤집혔다. “뭐야, 밀라노 대교구장 안젤로 스콜라나 상파울루 추기경 오질루 셰레르가 아니네. 가나의 턱슨이나 나이지리아의 아린제도 ‘꽝’이고. 그런데 베르골리오, 베르골료, 베르고글리오, 어느 게 맞아?” 그로부터 515일. 베르고글리오, 이제 프란치스코로 불리는 그를 모르는 사람은 지구상에서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교황청은 물론이고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이른바 ‘프란치스코 스타일’의 원천은 궁금증으로 남아 있다. 씨익 웃기만 해도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그 미소와 삶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14일 방한을 앞두고 5가지 키워드로 그의 삶을 짚어본다.   ▼ 고급차 버리고 빈민가로… 스스로 고난을 선택한 교황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서, 伊이민자 5남매중 장남으로 출생이웃집 동갑내기 다몬테에게… “나와 결혼 않으면 神父가 될거야”대교구장 됐지만 전용차 대신 전철… “거리로 나가 예수 전하라” 강론성인 프란치스코와 교황 프란치스코 흰색 수단(발목까지 내려오는 성직자들의 옷)으로 가려진 ‘프란치스코의 성(城)’을 여는 첫 번째 열쇠는 프란치스코. 그날 토랑 추기경은 새 교황 선출 소식을 알린 뒤 “이분이 자신의 교황명을 선택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라고도 했다. 역대 교황들은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1182∼1226)를 교황명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아니, 피했다. 4세기 이전 인물들을 찾아 작명하는 것이 관례였고, ‘빈자의 성인’ ‘제2의 예수’로 불리는 프란치스코는 교황들에게도 버거운 이름이었다. 베르고글리오가 예수회 출신의 첫 교황임에도 ‘경쟁’ 수도회의 설립자 이름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성 프란치스코는 개혁이라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고 교회의 모든 스펙트럼을 아우르면서 수세기에 걸쳐 일어난 쇄신의 단초를 열었다. 그리하여 그는 동료 형제들을 동지로 얻었고, 숱한 추종자들을 협력자로 얻었다. ‘제2의 예수’라 불렸을 만큼, 성 프란치스코가 일으킨 운동의 여운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증폭되어 갔다. 신임 교황이 이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그는 앞으로 수세기를 지속할 새로운 개혁을 출범하겠다는 엄중한 사명을 선출 소감 일성으로 천명한 셈이다.”(차동엽 신부) 베르고글리오는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티켓을 끊고 개혁의 버스에 오른 것이다. 그의 교황명은 이 버스의 최종 목적지이자 교황청 안팎을 향한 공공연한 선언이다.두 개의 심장,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 개의 국적을 갖고 있다. 모국인 아르헨티나와 아버지의 출신국인 이탈리아,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부여받은 바티칸이다. 이탈리아 법률은 이민자의 자녀들에게도 국적을 인정하고 있다. 그는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이민자인 아버지 마리오 주세페 베르고글리오와 역시 이탈리아 이민자의 딸인 어머니 레지나 마리아 시보리 사이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이민을 결심한 것은 가난과 무솔리니의 파시즘 독재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는 회계원으로 일했지만 가정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머니는 다섯째를 출산한 뒤 하반신 불구가 됐다. 어린 호르헤 베르고글리오는 학교가 끝나면 준비된 재료로 다른 형제들과 요리를 했다. 13세 때 중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수업이 끝나면 세탁공장과 대학병원 실험실에서 일했다. 이 무렵 이웃집 딸인 동갑내기 아말리아 다몬테는 같은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베르고글리오의 여자 친구였다. 이 시기를 빼면 60여 년간 베르고글리오를 보지 못했다는 다몬테는 훗날 여러 인터뷰에서 베르고글리오가 “만약 네가 나와 결혼하지 않으면 신부(神父)가 될 거야”라는 말을 했다고 회상했다. 나중에 추기경이 된 베르고글리오는 예수회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쿨’하게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의 ‘로맨스’를 시인했다. “예, 맞습니다. 제가 함께 춤을 춘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그 후에 신부가 되는 것이 저의 소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르고글리오가(家)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이었다. 가족들은 스페인어뿐 아니라 이탈리아어, 아버지 고향인 북부 피에몬테 방언까지 구사했다. 베르고글리오도 여자 친구와 이탈리아어로 대화했다. 청소년기 베르고글리오의 가슴에는 다른 이민자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라는 또 하나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는 추기경 품을 받기 위해 이탈리아로 갔을 때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여동생 마리아 엘레나와 함께 아버지가 살았던 옛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교황 선출 당시 외신과 교계 분석에 따르면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이탈리아 여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콘클라베에서 크게 우호적으로 작용했다. 28명의 이탈리아 추기경은 이전만은 못하지만 콘클라베에서 여전히 강력한 세력이다. 그들에게 신대륙 출신의 교황은 낯설고 두렵다. 하지만 자국 출신의 교황이 어렵다면 차선책이 필요했다. 베르고글리오와는 이탈리아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니까.“껍질을 벗고 거리로 나가라” “우리는 거리로 나가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때로는 그 일이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우리는 자신의 껍질을 벗고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고 말해야 합니다.”(2000년 3월 강론)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 시절의 강론이다. 그는 ‘거리로 나가라’고 했다. 지난해 발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문 ‘복음의 기쁨’도 논란을 초래했다. 총 288항의 이 권고는 자본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을 비판하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교회의 변화와 공동선을 강조했다. 교황은 역대 어느 교황보다도 분명하게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모두가 복음의 기쁨을 누리자고 권고한다. 프란치스코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는 그가 땅을 딛고 걸어온 그 거리다. ‘거리로 나가라’는 것이 가톨릭 교계 일부에서 아전인수로 주장하는 것처럼 거리 투쟁과 정권 퇴진 주장은 아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지구 거의 반대편 바티칸에 거주하고 있는 78세의 교황은 스페인에서의 예수회 마지막 교육(1970∼1971년)과 1986년 독일 장크트게오르겐 신학교에서 학위를 받기 위해 체류한 1년여를 빼면 조국을 거의 떠나지 않았다. 그가 걸어온 길, 거리를 이해하려면 불가피하게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 시기로 돌아가야 한다. 1976년 쿠데타의 주모자인 총사령관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는 후안 페론의 부인으로 대통령이던 이사벨 페론을 축출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7년간의 독재와 인권 유린이 자행됐다. 당시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는 독재자에게 협력한 그룹과 저항을 위해 해방신학을 선택한 쪽으로 나뉘었다. 일각에서는 예수회 관구장이던 베르고글리오가 비델라 가족을 위해 미사를 올렸고, 잔인한 것으로 알려진 해군사령관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그가 독재자에게 협력했다고 비판했다. 민주화 이후 베르고글리오는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유대교 성직자와 인권운동가, 교회 관계자들이 그가 병이 난 신부를 대신해 비델라 가족을 위한 미사에 참여했고, 독재자에게 교도소에 있는 신부들을 풀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증언했다. 결정적인 증언자는 지금은 신부직을 내려놓고 프란치스코회를 떠난 브라질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두 보프였다. 그는 “많은 사람을 구해냈고 군부에 쫓겨 다니는 사람들을 숨겨 주었다”며 예수회 신부를 옹호했다. 더러운 전쟁 시기 베르고글리오는 가난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의 친구였다. 그렇지만 해방신학에 대해서는 동조하지 않았다. 거리에 선 그가 손에 쥔 것은 총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복음이었으니까. 권위에 눌리지 않는 평범함 콘클라베 이후 기자들을 포함한 ‘교황 추적자’들이 놀란 것은 새 교황이 너무나 평범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메모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시절 그가 전철을 이용하고, 빈민가를 자주 드나들고, 작은 원룸에서 살고, 손수 요리하고, 축구클럽 산로렌소 알마그로의 열광적 팬이라는 내용만 기록했을 것이다. 이게 뭔가?   ▼ 강력한 견제 뚫고 ‘가톨릭 교회 개혁’ 거대한 첫걸음 ▼아르헨 독재-인권유린에 맞서, 끝까지 ‘총’ 대신 ‘복음’을 손에…교황의 낡고 싼 옷차림 보며… 고위 성직자들도 명품 버리기 시작교황청 부패 척결과 교회 일치… 새 교황 프란치스코의 숙제로다시 최근 출간된 ‘안녕하세요, 교황입니다’(더난출판)의 한 대목을 보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민들은 검소하게 검은색의 수단을 입고 도시를 뛰어다니는 그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지만 그가 성대한 환영을 받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젊은 시절 한동안 담배를 심하게 피웠고, 탱고를 사랑했으며, 프리드리히 횔덜린(독일의 시인)과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아르헨티나 소설가), 오스카상을 받은 덴마크 영화 ‘바베트의 만찬’과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했다.” 헷갈린다. 70대의 검소한 아르헨티나 노신사라면 평범하다는 게 맞다. 그러나 추기경이라는 타이틀을 보태면 평범한 것인가, 아닌가? 프란치스코의 성으로 들어가는 숨겨진 열쇠는 알 듯 모를 듯한 이 평범함 자체다. 아마도 프란치스코 자신, 그리고 그와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며 인사하는 소수를 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추기경의 삶에 대해 “절대 평범하지 않다”고 답변할 테니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아르헨티나인은 평생 고수해 온 라이프스타일을 바티칸에 그대로 옮겨놨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교황 관저 대신 여행자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 머물면서 다른 신부들과 저녁을 먹는다. 이름난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명품’ 수단과 구두, 십자가 대신 옛날 자신이 쓰던 것들을 그대로 쓴다. 전용 리무진 대신 걷거나 작은 차를 타고, 걸핏하면 사람들과 스킨십을 나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바티칸에는 파격이다. 아마도 수행원들과 교황청 각료들은 이렇게 투덜거릴 것이다. “도대체 왜 이전대로 하지 않는 거야. 경호를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이제는 바티칸도 깨달았다. 베르고글리오, 이제는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의 이 신부가 평생 쌓아온 성에 들어간 가장 중요한 건축 재료가 평범함이라는 것을. 고위 성직자들은 낡고 싼 옷차림의 교황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명품을 손으로 감추기 시작했다. “십자가 없이 나아가고, 십자가 없이 교회를 세우고, 십자가 없이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속적으로는 사제요, 주교요, 추기경이요, 교황일 수 있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아닙니다.”(2013년 3월 14일 교황으로 봉헌한 첫 미사 강론) 그의 성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십자가, 복음이다. 심지어 십자가를 제대로 지지 않는다면 교황일지언정 주님의 제자는 아니라는 선언이다. 베르고글리오는 오랫동안 삶에 밴 믿음을 실천했다. 교황이 됐다고 해서 바꿀 생각도 전혀 없다. 그의 세계에서는 세속의 교황보다 가난한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가톨릭 교회의 ‘메시’ 궁금증이 생길 수 있지만,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해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베네딕토 16세로 상징되거나 그가 남긴 유산 때문이다. 그의 자진 사임은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거의 600년 만이었다. 당시 교황청에서 이 사임은 9·11테러급의 충격이었다. 지금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목받고 있지만 훗날 가톨릭사에서는 베네딕토 16세의 자진 사임이 더욱 굵은 글씨로 기록될 수도 있다. 2007년 콘클라베에서 베르고글리오는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의 지지를 받은 도전자로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6년 뒤 콘클라베는 처음에는 아르헨티나 추기경을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물이 새고 있는 ‘베드로호’에 승선한 늙은 추기경들의 그래도 쓸 만한 ‘한 수(手)’는 그를 새 선장으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베르고글리오의 교황으로서의 운명은 5가지 새로움으로 시작됐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딴 첫 번째 교황, 신대륙에서 온 첫 교황, 예수회 출신의 첫 교황, 군중과의 첫 만남에서 그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첫 교황, 교황 직무를 시작할 때 전임 교황을 위해 기도를 제안한 첫 교황이다. 새로움은 축복이자 큰 무기다. 하지만 바티칸은 그 역사만큼이나 많은 문제들에 파묻혀 있다. 교황청의 부패와 성직자의 아동 성추행, 교회 일치, 여성 사제…. 인생의 마지막 경기에 나선 노(老)선수는 강력한 수비를 뚫고 결승골을 넣을 수 있을까? 전차군단 독일에 맞선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를 보는 기분이다. 그래도 그의 팬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싶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8-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안중근의사 유묵 ‘敬天’ 천주교 품으로

    안중근(토마스) 의사가 남긴 글씨인 유묵(遺墨) ‘경천(敬天)’ 기증식이 4일 서울 중구 천주교서울대교구 교구청 별관에서 열렸다. 박삼중 스님이 일본에서 들여온 이 유묵은 3월 경매업체 서울옥션에 경매가 7억 원에 나왔으나 유찰됐다가 9일 경매에서 서울 잠원동 성당이 5억9000만 원에 낙찰을 받아 교구에 기증했다. 이 비용은 잠원동 성당 신자들이 뜻을 모아 마련했다. 잠원동 성당의 주임 신부는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의 동생인 염수의 신부다. 이날 기증식에서 염 추기경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안 의사의 유묵을 교회에 모시게 돼 감격스럽고 은혜롭게 생각한다”며 “안 의사의 숭고한 삶과 뜻이 교황 방한과 순교자 시복식과 맞물려 더 잘 조명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톨릭교회사 연구의 권위자인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경천은 안 의사가 마지막 쓴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중 하나”라며 “가톨릭 신앙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박삼중 스님은 “안 의사 덕분에 뜻깊은 이 자리에 있게 됐다”며 “1994년 일본인이 경천을 소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유묵을 한국으로 갖고 오기 위해 일본을 300여 차례나 오갔다”고 말했다. 경천은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듬해인 1910년 3월 뤼순 형무소에서 사형 집행을 앞두고 일본인 부탁을 받아 쓴 붓글씨다. 경천 옆에는 ‘大韓國人 安重根’(대한국인 안중근)이란 글씨와 함께 손도장이 찍혀 있다. 서울대교구는 이 작품을 7일부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천주교 유물전시회 ‘서소문·동소문 별곡’전에서 공개한 뒤 2017년 완공 예정인 서소문 순교성지 교회사박물관에 전시할 계획이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8-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안중근 의사 손도장 찍힌 유묵 ‘경천’ 7일부터 볼 수 있다

    안중근(토마스) 의사가 남긴 글씨인 유묵(遺墨) '경천(敬天)' 기증식이 4일 서울 중구 천주교서울대교구 교구청 별관에서 열렸다. 박삼중 스님이 일본에서 들여온 이 유묵은 3월 경매업체 서울옥션에 경매가 7억에 나왔으나 유찰됐다 9일 경매에서 서울 잠원동 성당이 5억 9000만 원에 낙찰을 받아 교구에 기증했다. 이 비용은 잠원동 성당 신자들이 뜻을 모아 마련했다. 잠원동 성당의 주임 신부는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의 동생인 염수의 신부다. 이날 기증식에서 염 추기경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안 의사의 유묵을 교회에 모시게 돼 감격스럽고 은혜롭게 생각한다"며 "안 의사의 숭고한 삶과 뜻이 교황 방한과 순교자 시복식과 맞물려 더 잘 조명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톨릭교회사 연구의 권위자인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는 "경천은 안 의사가 마지막 쓴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의 하나"라며 "가톨릭 신앙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박삼중 스님은 "안 의사 덕분에 뜻 깊은 이 자리에 있게 됐다"며 "1994년 일본인이 경천을 소장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유묵을 한국으로 갖고 오기 위해 일본을 300여 차례나 오갔다"고 말했다. 경천은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듬해인 1910년 3월 뤼순 형무소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일본인 부탁을 받아 쓴 붓글씨다. 경천 옆에는 '大韓國人 安重根'(대한국인 안중근)이란 글씨와 함께 손도장이 찍혀 있다. 서울대교구는 이 작품을 7일부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천주교 유물전시회 '서소문·동소문 별곡'전에서 공개한 뒤 2017년 완공 예정인 서소문 순교성지 교회사박물관에 전시할 계획이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8-04
    • 좋아요
    • 코멘트
  • [김갑식 기자의 뫔길]동학농민혁명 120주년 동학의 오늘

    31일 오전 천도교의 지인을 통해 자료 하나를 받았습니다. 남과 북의 천도교인이 지난달 30일 개성에서 실무회담을 갖고, 9월 18일을 즈음해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남북공동사업을 북측 지역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입니다. 10월 11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기념식 및 문화제에도 북측 천도교인과 동학(東學)농민군 후손을 초청하기로 했답니다. 지인에 따르면 두 날짜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9월 18일(1894년)은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이 전국 동학 조직에 봉기를 의미하는, 총 기포령(起包令)을 내린 날입니다. 이날을 양력으로 바꾸면 10월 11일이 됩니다. 1860년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은 천주교로 상징되는 서학(西學)에 맞서 동쪽 나라인 우리나라의 도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붙인 명칭으로 1905년 천도교로 개칭하게 됩니다. 동학이 이끈 동학농민혁명의 희생자는 30만∼40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학이란 단어는 서학으로 불린 가톨릭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연결됩니다. 현재 천도교 신자는 10만 명 안팎으로 추산됩니다. 반면 가톨릭은 500만 명이 넘는 신자로 국내 3대 종단의 하나가 됐습니다. 일제강점기까지 천도교는 최대 종단이었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확인이 어렵지만 “1926년 동아일보가 당시 인구 2000만 중 200만 명이 천도교인으로 최대 종교였다고 보도했다”는 게 천도교의 설명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이 펴낸 ‘조계종사 근현대편’은 1929년 불교와 개신교 신자 수를 각각 16만9000여 명과 30만6000여 명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도교의 급격한 쇠퇴는 종교사에서도 드문 사례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종교학자들은 동학과 천도교로 이어지는 일제의 집중적인 탄압을 가장 큰 이유로 꼽습니다. 광복 이후 개신교가 근대화의 상징이 된 반면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천도교 내부의 문제도 지적됩니다. 종단 최고지도자인 교령 최덕신이 1976년, 오익제가 1997년 월북해 격랑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동학이 세상에 나온 지 150여 년, 세상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됐습니다. 천도교는 과거 그 어느 종교보다도 나랏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남과 북의 만남을 계기로 새로운 천도교를 기대합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8-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하용조 목사 3주기… 온누리 교회, 2일 추모예배

    서울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 3주기 추모예배가 2일 오전 10시 반 경기 용인시 선교훈련센터인 Acts29비전빌리지에서 열린다. 이 예배는 이재훈 온누리교회 담임목사의 사회로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의 설교, 미네노 다쓰히로 요도바시교회 목사와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의 추모사, 가족대표의 인사, 오카와 쓰쿠미치 야마토갈보리채플 목사의 축도 순으로 진행된다. 고인은 생전에 왕성한 평신도 사역운동과 문서선교를 이끌어 ‘불꽃의 목회자’로 불렸다. 2010년 소천한 사랑의교회 옥한흠 원로목사,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원로목사,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와 개신교계 복음주의 계열의 네 수레바퀴로 꼽혔다. 예배 후에는 하용조기념관 착공식이 이어진다. 이남식 계원예술대 총장의 진행 보고, 기념관 설계자 애론 탄과 예배당(채플) 설계자 김준성 건국대 교수의 설명, 기념관 모형 발표 등이 예정돼 있다. 기념관은 Acts29비전빌리지 내에 들어서며 총 4032m²(약 1220평) 규모로 단층 1동으로 설계돼 있다. 기념관과 예배당, 기도실 등이 마련될 예정이다. 이재훈 목사는 “개인 기념관 성격보다는 온누리교회를 포함한 한국 교회를 위한 공간”이라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8-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천주쟁이 낙인 찍히고도… 조상들, 결코 신앙 놓지 않아”

    30일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의 천주교 마재성지. 이곳은 한국 가톨릭 초기 순교자인 정약종과 그의 형제들이 살았던 생가터에 들어서 있다. 이 가문의 후손인 정규혁(88) 호영(54) 씨에게 8월 16일은 뜻깊은 날이다. 이들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미사에 후손 대표단으로 참석한다. 특히 이번 시복식에서 둘째아들 철상과 함께 복자로 선포되는 정약종은 1984년 시성된 부인 유조이, 큰아들 하상, 딸 정혜까지 일가족 5명이 모두 순교했다. 규혁 씨는 정약종의 방계 4대손, 호영 씨는 정약용의 직계 장손이다. 아버지가 옛 경기도 광주 목사로 부임하면서 이곳에 자리 잡은 나주 정씨 집안은 천주교와 깊은 인연을 맺는다. 4형제 가운데 맏이 약현만 빼고 약전과 약종, 약용은 모두 가톨릭 신앙을 갖게 됐다. 이 형제들은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읽고 감명 받아 천주교 신앙을 고백했다고 한다. 정씨 집안의 신앙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마재성지를 30년 동안 지켜온 규혁 씨는 “조상들은 ‘천주쟁이’라는 낙인이 찍히고도 결코 신앙을 놓지 않았다”며 “어머니나 할머니들은 한겨울에도 매일 새벽 얼음을 깨고 찬물로 몸을 정결하게 한 뒤 아침기도를 올렸다”고 말했다. 호영 씨는 “시복식과 교황 방한이 신앙을 떠나 개인과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7-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갑식 기자의 뫔길]신앙인의 체온

    사람들이 느끼는 종교별 체감온도는 어느 정도일까요? 최근 미국 여론조사회사 퓨리서치센터는 성인 3217명을 대상으로 화씨 0∼100도까지 표시된 ‘체감온도계’로 종교별 신앙인의 체온을 재 달라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 체온이 가장 높았던 그룹은 유대교인으로 화씨 63도(섭씨 17.2도·이하 섭씨로 표기)로 나타났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인의 체온은 각각 16.7도와 16.1도였습니다. 반면 이슬람교인에 대한 체감온도는 4.4도로 매우 낮았습니다. 불교인(11.7도)과 힌두교인(10도)은 물론이고 무신론자(5도)보다도 낮은 수치입니다. 9·11테러와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온 이슬람 세계에 대한 미국인들의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무종교 그룹의 응답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들은 개신교인의 체온을 영하 2.2도라고 표시한 반면 불교(20.6도), 유대교(16.1도), 힌두교인(14.4도) 등에 대해서는 후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국내에선 불교계의 고산문화재단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9일 발표한 ‘한국인의 종교인식과 불교인상(이미지)에 대한 국민여론조사’가 눈길을 끕니다. 응답자들은 가장 신뢰하는 종교로 가톨릭(31.8%) 불교(31.6%), 개신교(21.6%) 순으로 꼽았습니다. 종교가 없는 그룹만 살펴보면 불교(37.4%), 가톨릭(30.8%), 개신교(5.5%) 순이었습니다. 체감온도나 신뢰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들 조사가 과학적, 객관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특정 종교에 대한 대체적인 분위기는 엿볼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의 이슬람교인에 대한 체감온도가 무신론자보다 낮게 나온 것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이슬람 지역에서 조사했다면 개신교에 대한 반응이 비슷하겠지요. 또 하나, 한국과 미국 모두 무종교 그룹의 경우 다른 종교에 비해 개신교에 거리감을 많이 느낀다는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 무신론자와의 대화에서 “나는 다른 사람을 개종시킬 마음이 없습니다. 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라고 했죠. 종교를 뛰어넘어 서로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열쇠는 열려 있는 마음의 문 아닐까 합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4-07-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