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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연극상의 새 심사위원이 위촉됐다. 동아일보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사옥에서 3일 심사위원 위촉장 전달식을 열었다. 심사위원은 윤광진 용인대 연극학과 교수(63), 허순자 서울예술대 연극과 교수(63), 박근형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출과 교수(54·극단 골목길 연출가), 최용훈 청운대 뮤지컬학과 교수(54·극단 작은신화 대표), 이경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학과 겸임교수(54), 김태훈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51), 임일진 인천대 공연예술학과 교수(49) 등 7명으로 구성됐다. 심사위원장은 윤 교수가 맡았다. 윤 심사위원장은 “연극계가 갈수록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동아연극상의 권위에 걸맞게 우리나라 연극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며 신선하고 역동적인 에너지와 변화 등을 놓치지 않고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에 대해서는 3년 임기제를 도입했으며 연임 가능하다. 간사제도도 신설해 황승경 국제예술기획 대표(41)가 간사를 맡았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혜영의, 이혜영에 의한, 이혜영을 위한’ 작품이었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메디아’는 이 씨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그는 사랑을 위해 조국까지 버렸지만 남편 이아손(하동준)이 크레온 왕(박완규)의 딸과 결혼하기로 하자 광기 어린 분노에 휩싸인 메디아를 연기하며 특유의 센 에너지를 뜨겁게 분출한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암사자 같다. 고통, 절망으로 점철된 상황에서도 이아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여린 내면을 드러내는가 하면 고혹적인 자태로 유혹한다. 그럼에도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침착하려 애쓰며 처참한 복수를 계획한 후 하나씩 차례로 실행할 때는 지독할 정도로 차갑다. 두 아들을 죽이기 전 고뇌하는 모정을 절절하게 토해내는 등 극한의 감정들을 자유자재로 뿜어내며 원숙한 연기력을 입증해 보였다. 메디아의 감정을 대변하거나 때로 동정하고 비난하는 코러스는 극의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메디아와 두 아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공주와 결혼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역정을 내는 이아손의 행동은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하지만 극은 메디아가 두 아들을 죽이며 정점을 향해 치닫는 순간 힘없이 무너지며 서둘러 끝을 맺는다. 치를 떠는 이아손을 향해 메디아가 죽기 전 외친 한마디 “속상해?”는 극을 떠받치기에는 너무 가볍다. 남명렬(아이게우스 역) 등 관록 있는 남자 배우들의 비중이 작아 이 씨에게 지나치게 기댄 구성도 아쉽다. 4월 2일까지, 2만∼5만 원, 1644-2003. ★★★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진도 씻김굿, 동해안 별신굿, 제주도 무혼굿이 녹아든 연극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연희단거리패는 굿을 소재로 만든 연극인 ‘씻금’ ‘오구’ ‘초혼’을 차례로 공연하는 ‘굿과 연극’ 기획전을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30스튜디오에서 3월 1일부터 시작한다. 대본 구성과 연출은 모두 이윤택 연출가가 맡았다. ‘씻금’(3월 1∼12일)은 ‘씻김’의 진도 사투리다. 주인공 순례의 죽음을 시작으로 그의 가족사가 펼쳐지며 진도 앞바다에 빠져 죽은 여러 넋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광복 이후 소용돌이, 외환위기를 거쳐 세월호 사건까지 한국 근현대사와 개인사가 연결된다. 삶과 죽음, 개인과 역사가 제의를 통해 만나고 화해한다. 육자배기, 흥그레 타령, 진도 아리랑 등 남도소리 미학을 맛볼 수 있다. 진도 씻김굿의 마지막 당골(남도 지역 세습무)인 고 채정례 선생이 음악 부분을 직접 지도했고 김미숙이 출연한다. ‘오구’(3월 16일∼4월 2일)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재산 싸움을 벌이는 자식들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죽음의 두려움과 슬픔을 해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풍어를 기원하는 동해안 별신굿(정식 명칭은 동해안 풍어제)이 등장한다. 강부자가 팔순 노모로 출연하기도 했다. 1989년 초연 당시 20대의 나이에 노모를 연기했던 남미정이 이번 무대에 선다. 제주도민들이 근현대에 겪은 수난을 그린 ‘초혼’(4월 20일∼5월 7일)에는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의 넋을 건져내 위로하고 저승으로 보내는 제주도 무혼굿이 나온다. 3대에 걸쳐 벌어진 한 집안의 수난사를 통해 일제에 대한 해녀들의 저항 운동, 제주도4·3사건 등의 역사가 펼쳐진다. 원한을 품은 이들이 한을 풀고 용서하는 과정을 그렸다. 김소희 김미숙 윤정섭 등이 극을 이끈다. 이 연출가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로 우리 문화 예술의 원형인 굿이 혹세무민의 수단으로 오해받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시리즈를 기획했다”며 “굿이 얼마나 다양한 스타일로 동시대의 현실을 반영하는지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각 3만 원. 02-766-9831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우아, 정말 좋으시겠어요!” 꽤 오래전, 해외 봉사 취재에서 만난 약사와 통성명을 하다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었다. 전문 분야가 확실한 데다 자기 소유의 약국을 갖고 있으니 매우 탄탄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말이었다. 그러고는 30분 넘게 ‘약사의 애환’에 대해 들어야 했다. 그는 혼자 약국을 운영하느라 화장실을 제때 가기 힘들고 점심도 10분 만에 후다닥 먹기 일쑤라고 했다. 다른 약국과 박카스 가격을 비교하며 “여기는 왜 다른 데보다 비싸게 받느냐”고 항의하는 손님이 적지 않아 애를 먹는다고 했다. 자신을 의료인이 아니라 단순히 약을 ‘건네주는’ 사람으로 취급할 때면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고 토로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세상에 애환 없는 직업은 없다는 사실을 또 한번 실감하게 됐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부모가 자기의 일을 자녀에게 권한다면 그건 좋은 직업이라고. 직접 그 일을 해 본 후 자녀에게도 같은 길을 걸으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 있다면 얼마나 장점이 많은 걸까. 그 기준이 세속적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 연극배우는 고되고 힘든 대표적인 직업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연극을 하다 방송, 영화계로 진출해 스타가 된 이들이 인터뷰나 토크쇼 등에서 돈에 쪼들렸던 연극배우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음이 찡해질 때가 종종 있다. 최근 연극배우들을 만나면서 일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영화 ‘부산행’, 드라마 ‘공항 가는 길’ 등에도 출연한 유명 연극배우 예수정 씨는 “대개 삶을 찬찬히 들여다볼 시간이 없는데, 나는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인생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연극이 나를 학습시키고 삶을 풍부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연희단거리패 대표인 배우 김소희 씨는 “연극 덕분에 고여 있지 않고 늘 깨어 있게 된다”고 했다. 김 씨는 “연극은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몸만 건강하면 계속 연기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우는 말년이 좋은 직업이다”라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조씨 고아, 복수의 씨앗’에 출연한 이형훈 씨도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자극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채우고 다듬어야 할 부분을 찾아내고 이를 완성하기 위해 애쓰게 된단다. 이들이 ‘좋은 직업’으로 꼽은 기준은 성장이었다. 이 일을 계속하면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엿보였다. 돈, 명예, 안정성, 성취감…. 좋은 직업을 꼽는 기준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많은 것을 얻을수록 좋겠지만, 그중에서도 ‘성장’은 정신을 살찌우는 요소다. 연극배우들은 물질적으로는 넉넉하지 않지만 정신이 윤택해지는 일을 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이들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정신적 풍요로움은 객석으로도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

“어머, 케빈 코스트너다! 진짜 멋있었는데….” “엊그제 같은데, 세월 정말 빠르다.” 22일 뮤지컬 ‘보디가드’가 공연 중인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의 객석 2층 로비에서 50대 여성 두 명이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1992년 개봉한 영화 ‘보디가드’의 포스터와 그해 신문 기사들이 전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다방커피와 꿀생강차를 무료로 주는 일일찻집이 열리고 있었다. ‘보디가드’ 제작사인 CJ E&M의 박종환 공연홍보팀장은 “50대 이상 관객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행사를 마련했는데 호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5060 관객을 확보하기 위해 공연계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 30대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들 세대를 적극 공략하고 나선 것이다. 이날 ‘보디가드’를 보러 온 50대 이상 관객들은 다방커피, 생강차를 마시고 옛 신문을 보며 향수에 젖었다. 고교 동창 8명과 함께 온 송재철 씨(65)는 “오랜만에 생강차를 마시니 몸도 마음도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성당 지인 6명과 온 사공애 씨(57)는 “애들 키우느라 눈 돌릴 틈 없이 살았던 때가 떠오른다”며 미소 지었다. 팝의 거장 닐 세다카의 ‘One way ticket’ ‘You mean everything to me’ 등 추억의 노래를 엮어 만든 뮤지컬 ‘오!캐롤’(서울 디큐브아트센터)은 LP판으로 가득 찬 레코드 가게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남경주가 등장하는 영상 광고를 내보내며 향수를 자극한다. 이달 초 1차 공연을 마친 후 28일부터 2차 공연을 시작하는 이 작품은 동창회, 계모임을 하는 관객을 겨냥해 전화로 예매하면 5∼19명은 30%를, 20명 이상은 40%를 각각 할인해 준다. 1차 공연 때는 한정식 프랜차이즈 식당에 공연 안내문을 붙이고 추첨을 통해 관람권을 증정했다. 지난달 막을 내린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은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 등의 입구 18곳에 ‘고 김광석과 그룹 동물원의 실화’라는 안내 문구를 쓴 현수막을 달았다. 홍보 담당자는 “50대 이상에서는 오프라인 마케팅과 입소문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과태료를 낼 각오를 하고 이분들이 자주 다니는 등산로를 공략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관계자는 “2014년에 비해 관객이 3배로 늘었고 객석 대부분을 중장년층이 채웠다”며 “올해 말 공연도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와 신한카드에 따르면 최근 1년간의 공연 관람객을 분석한 결과 상위 5%의 ‘큰손’은 30대 초반 여성(8.1%)에 이어 50대 남성(8%)이 뒤를 이었다. 이어 40대 초반 여성(7.8%)과 50대 여성(7.5%) 순이었다. 김현진 예술경영지원센터 정보분석팀장은 “5060세대는 시간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문화생활을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공연을 관람하는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1회 결제 금액도 젊은층보다 많기 때문에 5060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어머, 케빈 코스트너다! 진짜 멋있었는데….” “엊그제 같은데, 세월 정말 빠르다.” 22일 뮤지컬 ‘보디가드’가 공연 중인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의 객석 2층 로비에서 50대 여성 두 명이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1992년 개봉한 영화 ‘보디가드’의 포스터와 그 해 신문기사들이 전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다방커피와 꿀생강차를 무료로 주는 일일찻집이 열리고 있었다. ‘보디가드’ 제작사인 CJ E&M의 박종환 공연홍보팀장은 “50대 이상 관객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행사를 마련했는데 호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5060 관객을 확보하기 위해 공연계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 30대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들 세대를 적극 공략하고 나선 것이다. 이 날 ‘보디가드’를 보러온 50대 이상 관객들은 다방커피, 생강차를 마시고 옛 신문을 보며 향수에 젖었다. 고교 동창 8명과 함께 온 송재철 씨(65)는 “오랜만에 생강차를 마시니 몸도 마음도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성당 지인 6명과 온 사공애 씨(57)는 “애들 키우느라 눈 돌릴 틈 없이 살았던 때가 떠오른다”며 미소 지었다. 팝의 거장 닐 세다카의 ‘One way ticket’, ‘You mean everything to me’ 등 추억의 노래를 엮어 만든 뮤지컬 ‘오!캐롤’(서울 디큐브아트센터)은 LP판으로 가득 찬 레코드 가게를 배경으로 주인공인 남경주가 등장하는 영상 광고를 내보내며 향수를 자극한다. 이달 초 1차 공연을 마친 후 28일부터 2차 공연을 시작하는 이 작품은 동창회, 계모임을 하는 관객을 겨냥해 전화로 예매하면 5~19명은 30%를, 20명 이상은 40%를 각각 할인해준다. 1차 공연 때는 한정식 프랜차이즈 식당에 공연 안내문을 붙이고 추첨을 통해 관람권을 증정했다. 지난달 막을 내린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은 북한산, 관악산, 청계산 등의 입구 18곳에 ‘고 김광석과 그룹 동물원의 실화’라는 안내 문구를 쓴 현수막을 달았다. 홍보담당자는 “50대 이상에서는 오프라인 마케팅과 입소문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과태료를 낼 각오를 하고 이분들이 자주 다니는 등산로를 공략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관계자는 “2014년에 비해 관객이 3배로 늘었고 객석 대부분을 중장년층이 채웠다”며 “올해 연말 공연도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예술경영센터와 신한카드에 따르면 최근 1년간의 공연 관람객을 분석한 결과 상위 5%의 ‘큰 손’은 30대 초반 여성(8.1%)에 이어 50대 남성(8%)이 뒤를 이었다. 이어 40대 초반 여성(7.8%)과 50대 여성(7.5%) 순이었다. 김현진 예술경영지원센터 정보분석팀장은 “5060세대는 시간은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문화생활을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공연을 관람하는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1회 결제금액도 젊은층보다 많기 때문에 5060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삶의 출구가 막힌 이들에게 희망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현재 공연 중인 연극 ‘밑바닥에서’는 막심 고리키 원작으로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벅찬 부랑자들에게 어느 날 다가온 희망과 그에 따른 지독한 파장을 격정적이면서도 처연하게 그렸다. 시궁창을 떠올리게 만드는 싸구려 여인숙에는 바닥까지 내려간 인생들이 모여 있다. 한때 지식인이었던 사기꾼, 도둑, 아픈 아내를 둔 일거리 없는 수리공, 몰락한 귀족…. 어느 날 이들 앞에 노인 루카가 나타난다. 루카는 상처와 소망을 숨기고 살아가던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조금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고 다독인다. 미심쩍은 눈길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차츰 그의 말을 마음에 새기며 꿈꾸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기 시작한다. 그즈음 루카는 사라진다. 이후 전보다 더한 지옥이 펼쳐진다. 꿈을 향해 나아가려던 사람들은 그곳에 공기처럼 존재하던 탐욕과 이기심 앞에 처참하게 짓밟힌다. 아귀다툼을 벌이고, 악다구니하며 울부짖는 이들은 묻는다. 비빌 언덕은 고사하고 마음 편히 기댈 어깨 하나 없는 이들에게 던져진 루카의 말은 빛이었을까, 치명적인 독(毒)이었을까. 배우들은 농익은 연기로 바닥 인생을 실감나게 그리며 관객을 수시로 들었다 놓는다. 희망의 역설과 존재의 이유를 곱씹어 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정상훈 강성진 김아영 김수로 등 출연. 3월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드림아트센터 2관 더블케이씨어터, 3만5000∼4만 원, 02-2088-0923. ★★★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박명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박 위원장과 문예위 임직원들은 23일 사과문을 내고 “부당한 간섭을 막아냈어야 하지만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관으로서 힘이 없었고 용기가 부족했다”며 “문예진흥기금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지원 배제 사태로 상처 받은 예술가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문예위는 특검 수사에 임했고 감사원 감사도 진행 중이라 사과가 늦어졌다며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서는 책임지겠다고 덧붙였다. 문예위는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심사위원 선정방식을 개선하고 옴부즈맨 제도를 신설했다”며 “복원해야 할 사업들을 다시 세우고 예산 확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문화예술계의 의견을 수렴해 자율성을 확립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매년 2000억 원 가량의 문예진흥기금을 집행하는 문예위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나무 계단과 단상, 사다리로 이뤄진 간결한 무대는 손필드 저택, 로우드 자선학교, 숲길 등으로 끝없이 변화한다. 사각 프레임과 등불을 손에 든 배우들은 활짝 열린 창문과 어스름한 저택을 순식간에 표현해낸다. 제인 에어가 외숙모에게 학대받고, 자선학교를 다니며 손필드 저택에서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지는 그 모든 과정이 광활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듯하다. 19일 서울 중구 장충단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영상 화면으로 만난 영국 국립극장(NT)의 ‘제인 에어’는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연출이 결합해 한 편의 대서사시를 눈부시게 그려 냈다. 영국 국립극장에서 화제가 된 연극을 촬영해 각국 공연장이나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NT Live 프로그램이었다. 영화 ‘미스터 홈즈’, ‘패딩턴’에 출연한 매들린 워럴은 제인 에어 역을 맡아 탄탄한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를 내는 것을 시작으로 자존심 강한 소녀, 인내와 따뜻한 마음으로 아이를 가르치는 가정교사, 신분의 차이에도 주눅 들지 않고 사랑을 표현하는 당찬 여성을 매력적으로 그려 낸다. 여러 역할을 매끄럽게 소화하는 배우들의 다채로운 연기는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중간중간 등장해 제인의 심정과 상황을 노래하는 배우의 청아한 음색은 가슴 깊은 곳을 파고든다. 무대 위에 자리 잡은 피아노, 드럼, 베이스의 재즈 연주는 극의 흐름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몰입도를 높인다. 인터미션을 제외하고 3시간 10분에 이르는 공연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아주 오래전 읽었던 ‘제인 에어’를 다시 펼쳐보고 싶어졌다. 24, 25일 1만5000원. 02-2280-4114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야합∼!” 쩌렁쩌렁한 기합 소리와 함께 매트 위에서 유도복을 입은 남자 배우 두 명이 두 팔로 공격하다 뒤엉켰다. 서정주 액션 감독이 “너무 빨라! 대사 하듯이 동작 하나하나가 완전히 몸에 박혀야 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쪽에서는 권투 장갑을 끼고 “퍼퍼벅” 소리를 내며 복싱 미트를 날렵하게 치는가 하면 배드민턴 라켓으로 셔틀콕을 내리치는 동작을 끝없이 반복하는 이도 있었다. 15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동숭길에 자리한 연극 ‘유도소년’ 연습실은 체육관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헉, 헉” 소리가 들렸다. 복싱 선수 민욱 역을 맡은 이현욱(32)의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다음 달 4일 막이 오르는 ‘유도소년’은 전북체고 유도선수 박경찬이 1997년 전국체전에 참가하는 과정을 풋풋하고 뜨겁게 그린 작품이다. 2014년 초연됐고 이듬해 재공연됐다. 화제 속에 티켓은 매진됐고 당시 박해수, 박훈이 열연해 호평을 받았다. 세 번째인 이번 공연에는 유도 선수 태구 역을 맡은 신창주를 제외하고 모두 새 멤버다. 연습 시작 전 배우들은 두 달 동안 유도, 복싱, 배드민턴 등 역할에 맞춰 개인 레슨을 받았다. ‘유도소년’은 전북체고 유도 선수였던 박경찬 작가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재준 연출가와 함께 썼다. 이날 박 작가는 “하체부터 들어올려야 해”라며 배우들의 동작을 일일이 바로잡아 주고 있었다. 이 연출가는 “운동하는 장면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며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연기 연습을 한 후 오후 7시부터 10시 넘어서까지 액션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출가의 책상에는 ‘유도의 입문’ 책이 놓여 있었다. 배우들은 줄넘기 500개는 단숨에 할 정도란다. 초연, 재연 때 전기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비롯해 유도 국가대표 출신들이 관람했는데 “진짜 선수들 같아서 놀랐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배우들의 손목과 발목에는 온통 근육 테이프와 붕대가 감겨 있었다. 복싱 선수 민욱 역을 맡은 신성민(32)은 “다른 작품에 비해 2, 3배 이상 힘들다. ‘유도소년’은 35세가 넘으면 하기 어렵다고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인지 실감하고 있다”며 웃었다. 경찬 역을 맡은 박정복(34)은 “밥은 하루 한 끼만 먹고 에너지바와 단백질 보충제를 먹으며 몸을 만들고 있다. 땀 흘린 걸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현욱은 “5kg이 빠졌는데 더 빼야 한다. 치기 어렸던 학창 시절과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이 생각나, 고되지만 재미있어서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연습이 시작됐다. 시곗바늘은 밤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박정복은 목 조르기를 당하면서도 “내가 끝났다고 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랑께!”라는 대사를 외쳤다. 이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한겨울밤 연습실의 공기는 한층 더 후끈해졌다. 3월 4일∼5월 14일 서울 수현재씨어터. 4만4000원. 02-744-4331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처럼 되기를 소망하는 사내가 있다. 가정과 조직을 지키는 방법은 폭력이라 굳게 믿고 실천하지만 그럴수록 가족과 부하들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3월 26일까지 공연하는 연극 ‘남자충동’은 전남 목포시를 배경으로 주먹이 최고라 여기는 ‘수컷의 삶’을 차지게 풍자한 작품이다. 조광화 연출가의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1997년 초연돼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주인공 이장정 역의 류승범은 단순하고 우악스러우면서도 천진한 면이 있는 캐릭터를 실감나게 소화한다. 그가 연극무대에 선 것은 ‘비언소’ 이후 14년 만이다. 장정 역에는 박해수가 더블 캐스팅돼 선 굵은 또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다. 전라도 사투리를 천연덕스럽게 구사하는 류승범은 노름으로 집을 저당 잡힌 아버지, 징글징글한 삶에 이혼하고 떠나버린 어머니 대신 존경받는 가장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장정의 심정을 객석으로 고스란히 전달한다. 자신을 피하는 가족과 부하들을 보며 잠깐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더 센 주먹이 필요하다고 비장하게 다짐하는 모습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자폐아 여동생 달래에게 한없이 약해지는 그는 정이 뚝뚝 묻어나는 오라비 그 자체다. 때론 아이 같고 때론 ‘양아치’ 같은 표정을 자유자재로 짓는 류승범은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하다. 그가 내뿜는 거칠고 펄떡이는 에너지는 극을 ‘웃프게’ 만드는 단단한 중심축이다. 장정의 부하들이 다리를 건들거리는 춤을 추며 남자라면 무릇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통념에 부합하기 위해 주먹을 휘두른 경험을 하나씩 토해내는 대목은 주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아버지 역의 김뢰하, 어머니 역의 황영희 등 관록 있는 배우들도 무대를 꽉 채운다. 달래 역의 송상은이 들려주는 놀라울 정도로 맑고 고운 음색은 비정하고 탁한 폭력의 세계와 선명하게 대비된다. 라이브로 연주하는 베이스기타의 묵직하고 끈적끈적한 음색은 감정선을 배가시킨다. ★★★★(★5개 만점). 서울 종로구 대학로 TOM 1관. 4만∼6만 원. 1544-1555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야합~!” 쩌렁쩌렁한 기합 소리와 함께 매트 위에서 유도복을 입은 남자 배우 두 명이 두 팔로 공격하다 뒤엉켰다. 서정주 액션 감독이 “너무 빨라! 대사 하듯이 동작 하나하나가 완전히 몸에 박혀야 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쪽에서는 권투 장갑을 끼고 “퍼퍼벅” 소리를 내며 복싱 미트를 날렵하게 치는가 하면 배드민턴 라켓으로 셔틀콕을 내리치는 동작을 끝없이 반복하는 이도 있었다. 15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동숭길에 자리한 연극 ‘유도소년’ 연습실은 체육관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헉, 헉” 소리가 들렸다. 복싱 선수 민욱 역을 맡은 이현욱의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다음달 4일 막이 오르는 ‘유도소년’은 전북체고 유도선수 박경찬이 1997년 전국체전에 참가하는 과정을 풋풋하고 뜨겁게 그린 작품이다. 2014년 초연됐고 이듬해 재공연됐다. 화제 속에 티켓은 매진됐고 당시 박해수, 박훈이 열연해 호평을 받았다. 세 번째인 이번 공연에는 유도 선수 태구 역을 맡은 신창주를 제외하고 모두 새 멤버다. 연습 시작 전 배우들은 두 달 동안 유도, 복싱, 배드민턴 등 역할에 맞춰 개인 레슨을 받았다. ‘유도소년’은 전북체고 유도선수였던 박경찬 작가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재준 연출가와 함께 썼다. 이날 박 작가는 “하체부터 들어올려야 해”라며 배우들의 동작을 일일이 바로 잡아주고 있었다. 이 연출가는 “운동하는 장면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며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연기 연습을 한 후 오후 7시부터 10시 넘어까지 액션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출가의 책상에는 ‘유도의 입문’ 책이 놓여져 있었다. 배우들은 줄넘기 500개는 단숨에 할 정도란다. 초연, 재연 때 전기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비롯해 유도 국가대표 출신들이 관람했는데 “진짜 선수들 같아서 놀랐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배우들의 손목과 발목에는 온통 근육 테이프와 붕대가 감겨 있었다. 복싱 선수 민욱 역을 맡은 신성민(32)은 “다른 작품에 비해 2, 3배 이상 힘들다. ‘유도소년’은 35세가 넘으면 하기 어렵다고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인지 실감하고 있다”며 웃었다. 경찬 역을 맡은 박정복(34)은 “밥은 하루 한 끼만 먹고 에너지바와 단백질 보충제를 먹으며 몸을 만들고 있다. 땀 흘린 걸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현욱(32)은 “5㎏이 빠졌는데 더 빼야 한다. 치기 어렸던 학창 시절과 아날로그 시대의 추억이 생각나, 고되지만 재미있어서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짧은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연습이 시작됐다. 시계 바늘은 밤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박정복은 목 조르기를 당하면서도 “내가 끝났다고 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랑께!”라는 대사를 외쳤다. 이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한겨울밤 연습실의 공기는 한층 더 후끈해졌다. 3월 4일~5월 14일, 서울 수현재씨어터, 4만4000원, 02-744-4331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재벌가 아들인 명문대생 태석이 클럽에서 만난 여성과 호텔에 투숙했다 몸싸움이 벌어지고, 여성이 숨진다. 대놓고 돈을 밝히고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속물 변호사가 태석의 변호를 맡아 검사와 팽팽한 게임을 펼친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기시감이 너무 많이 든다. 돈으로 죄를 덮으려는 재벌가 아들의 이야기는 영화, 드라마로 숱하게 변주됐으니. 현재 공연 중인 연극 ‘베헤모스’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뜻밖의 단서를 통해 반전이 일어나며 이야기를 한 번 더 비튼다. 그 때문에 극의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몰입도가 점점 더 높아진다. 그리고 태석, 변호사, 검사 등 인물들의 내면을 파고들며 상처, 욕망, 증오 등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베헤모스는 성경에 나오는 괴물이다. 2014년 KBS에서 단막극으로 방송된 ‘괴물’을 원작으로 만들었다. 100분간 진행되는 연극은 돈과 명예 앞에서 적극적으로, 혹은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괴물이 되어 버린 인간 군상을 보여 주며 되묻는다. 당신은 이들과 얼마나 다르냐고. 만약 다르다면 어디까지 버텨 낼 수 있느냐고. 작품은 관객에게 끝내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라고 일갈한다. 씁쓸하지만 그래서 여운이 더 오래 남는다. 크지 않은 무대는 호텔방, 취조실, 검사 사무실, 재벌 회장실 등으로 나눠 짜임새 있게 구성했다. 영상물도 적절히 활용해 극의 전개 속도와 긴장감을 높였다. 배우들은 집중력 있는 연기로 극을 힘 있게 끌고 간다. 정원조, 김도현, 최대훈, 김찬호 등 출연. 4월 2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4만4000∼5만5000원. 02-739-8288 ★★★ (★ 5개 만점)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영국 국립극장의 화제작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국립극장은 NT Live(National Theatre Live) ‘제인 에어’(사진)와 ‘프랑켄슈타인’을 19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중구 해오름극장에서 번갈아 상영한다. NT Live는 영국 국립극장이 화제가 된 연극을 촬영해 각국 공연장과 영화관에서 생중계하거나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국립극장이 2014년 국내에 처음 도입해 ‘워 호스’ ‘리어왕’ ‘햄릿’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 7편을 소개했다. 이번에 처음 상영하는 ‘제인 에어’는 영화 ‘미스터 홈즈’ ‘패딩턴’ 등에 출연한 배우 매들린 워럴이 제인 에어 역을 맡아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성상을 연기한다. 무대는 사다리와 철조물로 구성됐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연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리 밀러가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피조물을 번갈아 연기한 ‘프랑켄슈타인’은 앙코르 공연된다. 두 배우의 폭발적 연기로 화제가 된 작품으로, 2015년 국내에 상영됐을 때 객석 점유율 100%를 기록했다. 영화 ‘트레인스포팅’ ‘더 비치’ 등의 감독인 대니 보일이 연출했다. 1만5000원. 02-2280-4114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혼밥’ ‘혼술’에 이어 ‘혼공’이란 말도 등장했다. 혼자 공연 보는 걸 말한다. 기자도 ‘혼공’족이다. 공연을 담당하기 훨씬 전부터 그랬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공연을 봤다. 한데 보고 싶은 작품이 늘어나면서 서로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혼자 보니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배우가 나오는 공연을 보기 수월했다. 더 집중해서 볼 수 있고, 공연장을 나오면서 찬찬히 여운을 음미하는 맛도 있었다. 다만, ‘혼공’은 수다 떨듯 편하게 감상을 나누는 즐거움을 누리기는 어렵다. 가끔 마련되는 ‘관객과의 대화’는 그래서 늘 흥미롭다. 10일 연극 ‘갈매기’(게릴라극장) 공연이 끝난 뒤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여배우인) 아르까디나의 현재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요?”, “(남자 주인공을 연모하는) 마샤 역을 한 배우가 아르까디나 역을 맡으면 어떨까요?” 등 기자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백인백색의 소감. 혼자도 좋고, 함께해도 재미있다. 공연의 세계는 그렇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존경받는 가장, 고거이 내 꿈이여!” 16일 막이 오르는 ‘남자충동’(서울 대학로 TOM 1관)의 주인공 이장정은 외친다. 전남 목포시를 배경으로, 조직폭력배를 이끄는 장정을 통해 힘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뒤틀린 욕망을 풍자했다. 조광화 씨가 극본을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1997년 초연돼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을 받으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장정 역에는 류승범, 박해수가 더블 캐스팅됐다. 보고 또 보는 이른바 ‘회전문’ 관객을 만들어낸 남성 2인극 뮤지컬인 ‘쓰릴 미’(서울 강남구 백암아트홀)는 올해 10주년을 맞아 김무열, 최재웅, 강필석, 이율 등 초연 멤버가 합류해 14일부터 공연을 시작한다. 희열을 위해 잔인한 범죄를 벌인 미국 명문대 출신 두 친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박용호 총괄프로듀서는 “10년간의 경험과 색채가 응축돼 밀도가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공연계 비수기로 꼽히는 2, 3월에 다양한 빛깔의 남성미를 앞세운 작품들이 줄줄이 무대에 오르고 있다. 2014년 초연돼 주목받은 후 2015년 매진 기록을 세우며 ‘흥행 깡패’로 불리는 연극 ‘유도소년’(대학로 수현재씨어터)도 다음 달 4일부터 관객을 만난다. 고교생 유도선수 경찬이 1997년 전국체전에 출전하기 위해 상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진한 땀 냄새를 물씬 풍긴다. 다음 달 5일 막이 오르는 연극 ‘나쁜 자석’(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은 네 남성의 성장과 우정, 고통과 그 사이에서 싹튼 사랑을 다뤘다. 1950년대와 2010년대를 넘나들며 남성 간 동성애를 조명한 연극 ‘프라이드’(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도 다음 달 21일 무대에 오른다. ‘프라이드’는 2014년 초연과 2015년 재연 때 관객의 99%가 여성일 정도로 여성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았다. 다시 공연해 달라는 관객들의 요청도 쇄도했다. 남성 2명이 출연하는 창작뮤지컬 ‘라흐마니노프’(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역시 지난해 초연 때 호응을 얻어 추가 공연을 한 데 이어 이달 4일 재공연에 들어갔다. 공연계에서는 기획사들이 주요 관객층인 여성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검증된 작품을 앞세워 침체기를 돌파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한승원 HJ컬쳐 대표는 “하반기에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아 확실한 작품을 상반기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심화되면 창작을 위한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지만, 상황이 개선되면 창작에 활발히 도전해 새로운 명작이 탄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여자, 엄마, 인간 그리고 배우로서 제 인생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연극 ‘메디아’에서 주인공 메디아 역을 맡은 이혜영은 13일 서울 용산구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배우로서 일생일대의 도전”이라고 말했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24일 막이 오르는 이 작품은 메디아가 모든 걸 바쳐 사랑한 남편 이아손이 크레온 왕의 딸과 결혼하기로 하자 복수를 감행하는 내용이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와 함께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로 꼽히는 에우리피데스가 썼다. 이 씨는 “복수를 위해 자식까지 죽이는 이 끔찍한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할지 두려움이 컸지만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사랑, 고통, 복수 등 메디아의 모든 것이 온전히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이아손 역은 하동준, 메디아를 돕는 이웃 나라의 왕 아이게우스 역은 남명렬, 크레온 역은 박완규가 맡았다. 사랑을 나누거나 잔인한 장면이 있어 19세 이상 관람 가능하다. 각색과 연출은 헝가리의 유명 연출가인 알푈디 로베르트 씨가 맡았다. 알푈디 씨는 “‘메디아’는 복수뿐 아니라 사랑과 고통, 책임과 관계를 다룬 이야기”라며 “이는 현대인이 매일 마주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적인 배우를 좋아하는데 이혜영이라는 배우가 딱 그렇다”고 덧붙였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 씨가 생애 처음으로 연극 의상에 참여한 점도 눈길을 끈다. 진 씨는 세계적 패션 컬렉션인 프레타포르테 파리에 1993년 한국인 최초로 참가했고, 1988년 서울올림픽 유니폼을 디자인했다. ‘메디아’ 극본을 15번이나 읽었다는 진 씨는 “메디아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검은색으로 고통과 분노를 표현했고, 그녀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식을 죽일 때는 붉은색 저지 소재로 힘없이 늘어진 드레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2014년 부임했을 때부터 가장 하고 싶었던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김 예술감독은 “배우, 서사, 개념 중심의 연극을 하겠다고 했는데 ‘메디아’는 이 세 가지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말했다. 24일∼4월 2일, 2만∼5만 원. 1644-2003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창작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의 거장이자 천재 피아니스트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러시아)가 창작을 향해 나아가는 고통스러운 여정과 치유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해 초연된 후 올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뛰어난 실력으로 주목받던 라흐마니노프가 교향곡 1번에 대해 혹평을 받은 후 3년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등장인물은 라흐마니노프와 그를 치료하러 온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로, 단 두 명이다. 라흐마니노프는 3년간 칩거하며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다. 달은 그런 라흐마니노프를 한동안 가만히 지켜본다. 시간이 지나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조금씩 다가가고, 내면의 상처가 차츰 수면 위로 떠오른다. 달이 단순히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억눌렀던 아픔과 외로움을 토해내며 서로가 서로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펼쳐진다. 유명한 음악가와 정신의학자가 되고 싶었던 이들의 꿈과 좌절은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건드린다. 배우들은 진폭이 심한 감정의 변화를 매끄럽게 소화했다. 이 작품의 강점은 무엇보다 음악이다. 무대 위에 자리 잡은 피아노와 6개의 현악기가 빚어내는 풍성한 선율은 귀를 즐겁게 만든다. 90분간 진행되는 공연 중간중간 녹아든 라흐마니노프의 명곡은 맹렬하고 뜨겁게 연주돼 클래식 음악 공연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 음악 역시 돋보인다. 뮤지컬이 클래식 음악과 접목해 또 다른 색깔의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 작품이다. 박유덕, 안재영, 김경수, 정동화 출연. 3월 12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3만3000∼6만6000원. 02-588-7708 ★★★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집트인은 나무 관에 석고를 바른 후 채색했어요. 여기 석고 일부가 떨어져 나간 곳에 나무로 된 부분이 보이죠?”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집트 보물전’에서 7일 도슨트(설명자) 안준형 씨의 말에 “색깔이 정말 선명하다!”라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아이다’에 출연하는 윤공주(36) 이정화 씨(29)였다. ‘아이다’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노예로 끌려온 누비아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윤 씨는 아이다 역을, 이 씨는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 역을 각각 맡았다. 윤 씨는 건강과 안전을 위한 부적인 ‘와제트 눈’을 보자 “‘아이다’ 무대에 크게 나오는 문양이다”라며 반겼다. 이 씨는 금박으로 화려하게 만든 남성 미라 가면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며 “정말 정교하고 고급스럽다”고 말했다. 사람과 동물 미라, 목관, 조각품 등 229점의 유물로 구성된 이번 전시회는 사후세계를 중시했던 이집트인의 정신세계를 조명했다. 윤 씨는 “‘아이다’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이집트 유물 전시관에서 진행되는데, 실제 전시장에 오니 설렌다”며 “고대 이집트가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집트 신화에서 이시스가 갖은 고난을 극복한 왕비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암네리스가 아이다와 라다메스를 벌할 때 ‘이시스의 딸로서 선고하노라’고 외친 대사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집트인이 사후세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확인하고 나니, 암네리스가 아이다와 라다메스를 지하 감옥에 함께 매장한 것이 실은 엄청난 자비를 베푼 것임을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 “수천 번 다시 태어나도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한 거잖아요. 그런데 여기, 라다메스는 없을까요?” 윤 씨가 눈을 찡긋거리며 웃었다. 성인 1만3000원, 초등학생 8000원. 4월 9일까지. 1688-9891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북, 징, 목탁 등의 소리가 신명나게 어우러진 가운데 굶주린 여우들이 등장한다. 이들 앞에 나타난 새끼 양 한 마리. 여우들은 양을 잡아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결국 물에 빠진 새끼 양을 구하러 나선다. 배우들은 풋풋한 연기를 선보이며 이솝우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공상집단 뚱딴지의 ‘이솝우화’(12일까지)다. 300여 개의 이솝우화 가운데 11개를 엮어 만들었다. 올해로 5주년을 맞는 ‘산울림 고전극장’에서 공연되는 4개 작품 중 하나다. 올해 주제는 ‘그리스 고전, 연극으로 읽다’이다. 임수진 소극장 산울림 극장장은 “진정성 있게 연극을 만드는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시대별 고전을 되짚어 보고자 시작한 기획”이라고 말했다. 임 극장장은 “관객은 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데, 공연을 본 후 고전을 읽어보고 싶다는 반응이 많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이솝우화’와 함께 극단 작은신화의 ‘카논-안티고네’(15∼26일), 맨씨어터의 ‘아이, 아이, 아이’(3월 1∼12일), 창작집단 LAS(라스)의 ‘헤카베’(3월 15∼26일)가 공연된다. ‘이솝우화’의 각색과 연출을 맡은 황이선 씨는 “삶의 어떤 순간이 희열일까 고민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것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카논…’은 연극 속에서 펼쳐지는 고대 그리스와 연극을 만드는 현재를 통해 ‘안티고네’를 둘러싼 두 개의 세계가 음악극 카논처럼 평행하게 존재하는 모습을 그렸다. 김정민 연출가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잣대가 사람들을 옭아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와 현대 사회가 다를 바가 없었다”며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갈등과 대립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는 트로이 전쟁에서 숨진 아킬레우스의 유품을 차지하기 위해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벌이는 논쟁과 이후 전개되는 광기를 통해 욕망과 파멸을 그렸다. 그리스어로 ‘아이’는 슬픔으로 탄식하며 울부짖는 소리라는 의미다. ‘헤카베’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연합군의 귀향길을 막아버린 사건에 대한 재판을 통해 법과 질서에 의문을 던진다. 이기쁨 연출가는 “‘헤카베’는 보통 자식을 잃은 어미의 복수로 알려졌는데, 헤카베가 겪은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가는 과정을 통해 무엇이 정의인지를 탐색하려 했다”고 말했다. 2만5000원. 02-334-5915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