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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처럼 꾸민 공연장은 99개의 객석이 무대를 에워싸며 ‘ㄷ’자로 배치돼 배우의 숨소리가 그대로 전해진다. 귓전을 세게 때리는 총소리는 마치 전쟁터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이석준 박훈 오종혁 등이 출연하는 연극 ‘벙커 트릴로지’다. 이 작품은 현재 서울 종로구의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데 유료 객석 점유율이 평균 80%에 이른다. 어수선한 정국에, 경기 침체까지 이어지며 공연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관객들의 발길이 몰려드는 공연이 주목받고 있다. ‘벙커…’는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아서 왕의 전설을 녹인 ‘모르가나’, 희랍극 아가멤논을 변주한 ‘아가멤논’, 셰익스피어 비극을 모티브로 다룬 ‘맥베스’ 등 독립된 3개의 에피소드를 각각 70분간 공연한다. 전쟁의 참상과 광기를 담은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돼 몰입도를 높인다. 제작사인 아이엠컬처의 김민경 실장은 “재관람카드를 만들어 할인해주는데, 출연하는 배우별로 9번 본 경우도 많고 54번이나 본 관객도 있다”라고 말했다.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을 지키기 위한 희생과 복수를 다룬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명동예술극장)은 티켓 대부분이 판매된 상황이다. 2015년 동아연극상 대상 수상작으로 재공연을 기다렸던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부모의 사랑과 신의 같은 보편적 가치를 선 굵게 그려내 중장년층 남성 관객이 많은 편이다”라고 했다. 연극 ‘하녀들’(30스튜디오)과 ‘갈매기’(게릴라극장)는 관객들의 요청으로 다음 달 앙코르 공연에 들어간다.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출연하는 ‘하녀들’은 6∼22일 공연됐는데, 보조석까지 합쳐 72석이 꽉 차며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이에 2월 3일부터 19일까지 다시 공연하기로 했다. 2월 5일까지 공연되는 ‘갈매기’ 역시 젊고 감각적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인기가 이어져 2월 9일부터 26일까지 연장 공연을 하기로 했다. 18일 막을 올린 창작 뮤지컬 ‘영웅’(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이번이 8번째 공연으로 반응이 예상보다 뜨겁다. 뮤지컬은 현장에서 표를 사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촛불집회가 있었던 21일에는 현장 판매가 이어지면서 매진됐고, 이후에도 구매 문의가 계속됐다. 설 연휴에도 좌석 대부분이 찼다.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는 “자녀를 데리고 오는 부모들이 많고, 촛불집회 후 함께 오는 중장년층도 상당수여서 커튼콜 때 발광다이오드(LED) 촛불을 흔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연계에서는 완성도 높은 작품에 대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장은 “꾸준히 공연을 보려는 이들은 존재하지만 제작 여건이 악화되면서 이들을 만족시킬 만한 작품이 줄고 있다”며 “작품성이 뛰어나거나 티켓 파워를 지닌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에 관객이 몰리면서 이런 작품이 도드라져 보인다”라고 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상식을 지키며 사는 삶이 과연 가능할까. 연극 ‘도토리’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지적장애를 지닌 일렬이와 삼렬이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 출소한다. 이들이 감옥에서 세뇌 당하듯 새긴 문구는 ‘남의 물건은 절대로 손대지 않겠다’는 것. 일렬이는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멧돼지 먹이인 도토리를 가져가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인다. 삼렬이는 호박잎을 따 식당에 대준다. 극단 목화를 창단한 오태석 씨가 극본을 쓰고 연출한 ‘도토리’는 토속적인 정취 속에 흥이 묻어나오는 오 씨 특유의 색깔이 선명한 작품이다. 지난해 초연됐고, 이번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호박밭 주인이 덤으로 호박을 아무리 안겨줘도 절대 받지 않는 삼렬이, 도토리에 손대지 말라고 거듭 당부하며 멧돼지를 위하는 일렬이의 고지식할 정도로 일관된 행동은 선한 웃음을 자아낸다. 두 사람을 둘러싸고 형사, 검사의 딸 경자, 경자 엄마 등이 벌이는 소동은 한바탕 신명나는 굿판을 보는 듯하다. 이야기의 전개는 압축되거나 생략돼 어찌 돌아가는 영문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을 때도 종종 있다. 출연 비중으로 보자면 일렬이와 삼렬이를 딱히 주인공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해되면 되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냥 즐기면 된다. 자유로운 몸놀림 속에 직접 만든 소품을 들고 춤추듯 움직이는 배우들의 몸짓은 흥겹다. 도토리가 멧돼지의 똥을 거름 삼아 참나무로 자라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은 해학적이다. 오묘하고도 도도한 자연의 섭리를 이렇게도 유쾌하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다.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는 ‘상식’을 지키는 존재가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이라는 설정은 이런 상식을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세상임을 역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따뜻함이 스며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일렬이와 삼렬이를 도우려는 형사, 검사 아빠가 지은 죄를 대신 사죄하려는 경자, 딸과 함께 티베트로 가 삼보일배를 하며 죄를 씻으려는 경자 엄마의 행동이 그렇다. 물론 이들의 행동은 비현실적이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한데 따지고 보면 세상살이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도 그 중심에는 자연이, 그리고 사람이 있음을 넌지시 일러준다. 송영광, 정지영, 김봉현, 이병용 등 출연.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월 5일까지. 2만∼4만 원. 02-745-3967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주말과 겹쳐 다소 짧게 여겨지는 설 연휴(27∼30일)다. 집에만 머무르기보다 공연장을 찾아 조금은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게다가 설 연휴를 겨냥해 할인을 해주는 공연이 적지 않아 부담은 덜고 추억도 쌓을 수 있다. 평소 보고 싶었던 작품이 있다면 설 연휴를 적극 활용해 보자. 유쾌하게 또는 묵직하게 연극 ‘꽃의 비밀’은 네 명의 여성들이 보험금을 타기 위해 각자의 남편으로 변장하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작품이다. 주부들이 겪는 각종 에피소드가 펼쳐지며 웃음을 유발한다. 배종옥 소유진 이선주 구혜령 등이 출연해 망가지는 아줌마로 열연한다. 남녀 모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극본과 연출을 이야기꾼 장진이 맡아 ‘장진식 코미디’를 맛볼 수 있다. 30일까지 회차별로 30장을 한정해 20% 할인해 준다. 서울 종로구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3만3000∼5만5000원. 1544-1555 ‘인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을 무대에 옮긴 작품이다. 핵폭탄으로 지구가 사라지고 유일하게 생존한 남녀가 인류가 존속해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팽팽한 논쟁을 벌인다. 논리적이지만 고지식한 남자와 에너지 넘치고 감성적인 여자의 충돌이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28∼30일 공연을 가족·친구 할인(20%·3명 이상)으로 예매하면 모자를 증정한다. 고명환 오용 안유진 김나미 등이 출연한다.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3만4000∼4만9000원, 1577-3363 제1차 세계대전 참호를 배경으로 고전과 신화를 전쟁 상황에 맞춰 각색한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된 ‘벙커 트릴로지’도 주목할 만하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을 변주한 ‘모르가나’는 전쟁의 참담한 실상과 엇갈린 감정을 그린다. 희랍극 ‘아가멤논’을 모티브로 전쟁의 고독과 광기를 드러내고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죄의식을 비춘다. 이석준 박훈 오종혁 신성민 등이 무대에 선다.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 3만 원. 02-541-2929풍성한 사람이야기 라인업 뮤지컬 ‘아이다’는 30일까지 열리는 공연에 대해 30% 할인해준다.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의 암네리스 공주, 두 여인의 사랑을 받지만 아이다를 선택해 함께 비극을 맞는 라다메스 장군의 이야기를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로 그려냈다. 900개의 고정 조명과 800여 벌의 의상이 눈을 황홀하게 만든다. 록, 가스펠,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세련되게 풀어낸 것도 강점이다. 토니상 음악상과 그래미상 베스트 뮤지컬 앨범상을 수상했다. 윤공주 장은아 김우형 민우혁 아이비 이정화 등이 출연한다. 서울 샤롯데씨어터, 6만∼14만 원. 02-577-1987 뮤지컬 ‘보디가드’ 역시 30일까지 열리는 공연 티켓을 3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케빈 코스트너와 휘트니 휴스턴이 출연했던 동명의 영화를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최고의 여가수 레이첼에게 의문의 협박 편지가 날아들자 그의 매니저는 전직 대통령 경호원이었던 프랭크에게 레이첼의 경호를 맡긴다. 레이첼은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지키며 모든 것을 통제하는 프랭크에게 불만을 느끼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지켜주는 모습에 점점 이끌린다. 풍성한 볼거리와 함께 ‘I will always love you’ ‘I have nothing’ 등 익숙한 노래의 선율을 즐길 수 있다. 정선아 양파 손승연 박성웅 이종혁 등이 출연한다. 서울 LG아트센터, 6만∼14만 원. 1544-1555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은 무대가 그립다면 뮤지컬 ‘빨래’를 추천한다. 서점에서 일하는 나영, 꿈을 찾아 한국에 온 몽골 청년 솔롱고는 고단한 서울살이에 지쳐가지만 차츰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부조리하고 팍팍한 현실에 맞서다 상처를 입을 때도 있지만 묵묵히 견디고 내일을 꿈꾸는 평범한 이들의 모습은 포근한 위안을 준다. 2005년 초연된 후 지금까지 공연되고 있는 저력 있는 작품이다. 29일까지 열리는 공연을 예매하면 20%(동반 3명) 할인해 준다. 강연정 강지혜 이준혁 노희찬 등 출연. 서울 종로구 동양예술극장 1관, 5만 원. 02-928-3362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유명하지도 않은 ‘신영숙’이라는 맛집을 찾아주는 단골손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최근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신영숙의 말이다. 개성 있는 소감은 수상자를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배우는 스태프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를 얹을 뿐입니다”라는 황정민의 ‘숟가락’론이 아직도 회자되듯. 23일 제53회 동아연극상 시상식에서 연기상 수상자인 김문희는 ‘베서니’의 크리스탈 역에 대해 “크리스탈처럼 ‘정신줄’을 놓으면 노숙자로 전락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 속에 내가 아주 작아져 있을 때 했던 작품”이라며 “계속 연기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신인연출상 수상자 이경성(‘그녀를 말해요’)은 “삶과 연극 사이에 더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지도록 몸과 마음을 다잡겠다”고 했다. 상은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벅찬 감정을 자기만의 언어로 풀어냈을 때, 듣는 이의 마음은 촉촉하고 따스해진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초점 없이 처연한 눈빛, 고통을 안으로 삭이기만 하는 모습. 위안부 할머니를 둘러싼 차가운 현실을 그린 연극 ‘하나코’에서 한분이 할머니 역을 맡은 예수정 씨(62)의 연기는 보는 이를 더 아프게 만든다. 2015년 초연돼 극찬을 받은 ‘하나코’가 다음 달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공간아울에서 막이 오른다. 위안부 생활을 함께 하다 헤어진 동생을 찾기 위해 캄보디아로 떠나는 한분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로도 제작된 ‘해무’를 비롯해 ‘가족의 왈츠’ 등을 쓴 김민정 극작가가 집필했다. 예 씨와 캄보디아에 사는 렌 할머니 역을 맡은 전국향 씨(54)를 20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예 씨는 “연출을 맡은 한태숙 선생님이 렌 할머니 역을 누구와 하고 싶은지 묻기에 곧바로 국향이를 추천했다”고 말했다. 연극 ‘과부들’을 함께 했는데 전 씨의 연기력과 친화력이 인상 깊었다는 이유에서다. 전 씨는 수줍은 표정으로 “초연 배우 전원이 다시 모일 정도로 작품에 대한 마음이 애틋하다”고 말했다. 전 씨는 렌 할머니 연기를 위해 캄보디아인에게 캄보디아어를 배우고 대사를 녹음해 듣고 또 들었다. 이번 공연에는 2015년 12월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도 반영했다. 예 씨는 “초연을 하던 중 합의가 체결됐지만 공연을 그대로 진행해야 했다”며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연기를 하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헤아려 보려 애쓰고 있다. “70년 동안 그늘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았기에 모든 게 안으로 녹아들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감정을 꾹꾹 눌러 응축하려고 해요.”(예 씨) 전 씨는 간신히 떠올린 우리말 단어를 외마디 비명처럼 토해내고, 좀처럼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렌 할머니의 안타까움을 절절하게 표현한다. “렌 할머니는 우리말과 기억을 잊은 게 아니라 지웠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살 수 있었을 테니까요.”(전 씨) ‘하나코’는 각자 처한 입장에 따른 셈법으로 위안부 할머니에게 다가가는 냉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비춘다. 캄보디아로 함께 취재를 떠난 언론사 PD는 할머니들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계속 카메라를 들이댄다. 여성학자 역시 일본에서 증언하기 싫다는 한분이 할머니에게 약속된 일정임을 강조한다. “위안부 문제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저를 비롯해 다들 죄인이죠. 평생 그늘에서 고통받으신 그분들을, 연극을 통해서라도 양지로 모셔오고 싶어요.”(예 씨) 예 씨는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 회장 어머니 역을 맡았던 고 정애란 씨의 딸이고, 탤런트 한진희 씨의 처제다. 예 씨의 딸은 연극 연출가의 길을 걷고 있다. “시어머니가 ‘야야, 그게 돈을 주나 명예를 주나. 니 그거 왜 하노’ 하세요.(웃음) 작품을 할 때마다 인생에 대해 배우고, 밥도 먹고 사니 얼마나 좋아요.”(예 씨) 전 씨는 최근 남편인 배우 신현종 씨와 함께 제1회 임홍식 배우상을 받았다. 2015년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공연하다 숨진 임 씨를 기려 만든 상이다. 전 씨는 “마음이 무거웠다”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이어 그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돼 한편으로는 따뜻함을 느끼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나코’는 올해 하반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이들은 “몸이 힘들어도 좋으니 더 많은 나라를 다니며 ‘하나코’를 공연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2월 19일까지. 3만 원. 02-589-1066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여성 혼자 아이를 키우기가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지를 보여주는 ‘베서니’를 하는 동안 이를 변화시킬 방법을 찾으려 애썼던 그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강량원 연출가(극단 동 대표)는 23일 서울 종로구 동숭길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열린 제53회 동아연극상 시상식에서 ‘베서니’로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베서니’는 주인공 크리스탈 역을 맡은 김문희가 연기상을 수상해 3관왕에 올랐다. 김 씨는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살아있는 연극을 하는 선후배처럼 힘 있게 연기하겠다”고 말했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로 작품상을 공동 수상한 박근형 연출가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예술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모든…’은 군대를 배경으로 폐쇄적 국가 시스템을 비판했다. ‘괴벨스극장’의 괴벨스 역, ‘국물 있사옵니다’의 김상범 역으로 연기상을 받은 박완규는 “연극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배우가 되겠다”고 밝혔다. 박상봉은 ‘모든…’과 ‘불역쾌재’로 시청각디자인상을 받았다. 유인촌신인연기상은 문숙경(‘위대한 놀이’의 쌍둥이 역)과 손상규(‘겨울이야기’의 레온테스 역, ‘마이 아이즈 웬트 다크’의 니콜라이 역)가 수상했다. 이경성 연출가는 ‘그녀를 말해요’로 신인연출상을 받았다. 구자혜 극작가 겸 연출가는 ‘Commercial, Definitely―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으로 새개념연극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방옥 동국대 교수는 “지난해부터 불거진 검열 사태에 대해 연극계는 적극적으로 저항했으며 특히 젊은 세대의 약진은 신선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주간은 축사에서 “혹독한 상황에서도 틀을 깨는 연극 정신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 분들에게 동아연극상이 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구자흥 한일연극교류협의회장, 최치림 동아연극상 운영위원장, 협찬사인 KT 류준형 경영홍보담당 상무, 주철환 서울문화재단 대표, 고선웅 연출가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릴랙스(편안하게)∼, 스테이 톨(키가 커 보이게)∼.”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의 최종 오디션이 열린 20일 서울 중구 뮤지컬하우스. 빌리 후보에 오른 남자 어린이 7명이 영국 안무가 데이미언 잭슨의 지시에 맞춰 발레 동작을 선보였다. 빌리의 친구 마이클 역에 지원한 최종 후보 9명은 “파이브, 식스, 세븐, 에이트!”를 외친 후 시원한 탭댄스를 선보였다. 빌리와 마이클 역을 찾는 마지막 과정인 ‘쇼 앤드 텔(Show and Tell)’은 후보들의 부모도 참관하는 이 작품의 전통. 영국 사이먼 폴라드 연출가는 “소년들은 이 시간을 즐기고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이만큼 해낸 것을 축하하는 자리로 봐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2005년 런던에서 초연된 ‘빌리…’는 동명의 영화를 무대에 옮긴 작품으로, 탄탄한 구성과 매혹적인 음악으로 10개의 토니상, 5개의 올리비에 상을 받았다. 1980년대 광부들이 대파업을 벌이던 시기, 영국의 한 탄광촌에 살던 빌리가 우연히 접한 발레에 빠져들어 발레리노의 꿈을 이루는 여정을 그렸다. ‘빌리…’는 올해 12월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다. 국내에서는 2010년 초연됐다. 빌리 역을 맡으려면 8∼12세에 키 150cm 이하의 남자 어린이여야 한다. 변성기가 오지 않고 탭댄스와 발레, 애크러배틱 등 여러 장르의 춤에 재능이 필요하다. 노래 실력은 기본이다. 이처럼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기적 같은 소년’ 빌리가 되기 위해 아이들은 두 차례의 오디션을 통과한 후 8개월 동안 매주 6일간 훈련을 받았다. 폴라드 연출가는 “기술적으로 이미 기량을 갖춘 아이보다는 열정과 개성이 있고, 악바리 정신이 있는지를 본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춤에 대한 열망을 담은 “뜨거워진 내 마음, 더 이상 숨길 수 없죠, 내 마음. 저 새들처럼 날아오르는 짜릿한 느낌”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훌쩍 성장한 아이들의 모습에 몇몇 부모는 눈물을 흘리며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태권도만 했던 성지환 군(11)은 “난생처음 춤을 배웠다. 정말 재미있고 할수록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발레를 한 이승민 군(13)은 “나도 빌리처럼 로열 발레단에 가고 싶다!”고 외쳤다. 빌리처럼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용을 시작한 전민철 군(13)은 “빌리의 마음을 잘 알기에 기회를 꼭 잡고 싶다”고 말했다. 빌리와 친구 마이클 역으로 이날 각각 4명을 선발했다. 아이들이 부르는 빌리와 마이클의 노래가 맑게 울려 퍼졌다. “문제없어. 너를 표현해봐. 진정한 너를 찾아.” 뜨겁고 커다란 박수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연극 ‘인간’은 지극히 베르나르 베르베르적인 작품이다. 그가 쓴 유일한 희곡이기도 하다. 핵폭탄이 터져 지구가 사라지고 겨우 살아남은 인간은 화장품 회사 연구원 라울과 서커스단 호랑이 조련사 사만타. 다른 은하계에서 외계 생물체가 기르는 ‘애완 인간’이 돼 버린 이들은 인류가 존속돼야 하는지를 놓고 팽팽한 논쟁을 벌인다. 베르베르 특유의 기발한 시각과 상상력이 유감없이 발휘돼 연극을 보는 내내 그의 체취를 진하게 느끼게 만든다. 필요해서, 혹은 호기심 때문에 인간이 다른 생명체에게 저질렀던 짓이 부메랑이 돼 고스란히 돌아올 수 있음을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직설적으로 쏟아내는 대사를 듣다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다른 생명을 난도질할 권리가 있는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블랙버드’ ‘거미 여인의 키스’ 등을 선보였던 문삼화 연출가가 각색도 맡았다. 주제는 무겁지만 연극은 경쾌하고 발랄하게 진행된다. 유머 장치도 촘촘히 배치해 부담 없이 연극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적당하다. 베르베르의 팬이라면 그의 작품을 시각으로 만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고찰을 기대한 이에게는 다소 가볍다는 느낌을 줄 것 같다. 남녀 배우 2명이 한 번도 퇴장하지 않고 숨 고를 틈 없이 90분을 끌고 가기에 배우의 기량이 그대로 드러난다. 대사가 쉼 없이 쏟아지는 데다 둘이 토닥거리고 다투며 가벼운 몸싸움까지 벌인다. 배우에겐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라울 역은 고명환, 오용, 박광현, 전병욱이, 사만타 역은 안유진, 김나미, 스테파니가 맡았다. 기자가 관람했을 때 무대에 선 오용, 안유진은 캐릭터에 무리 없이 잘 녹아들었다. 간결한 무대 장치는 공상 과학 영화에 나올 법한 분위기를 깔끔하게 연출했다. 서울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3월 5일까지, 3만4000∼4만9000원, 1577-3363. ★★★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커튼콜 때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즐겁게 안무를 따라하는 모습을 보며 (연기가)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16일 열린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킹키부츠’의 롤라 역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정성화는 벅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한국뮤지컬어워즈는 한국뮤지컬협회가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했다. 정 씨는 “(더블 캐스팅 된) 강홍석 씨가 흑인 솔 노래를 부르는 걸 보며 ‘다음에 한다 말하고 도망갈까’ 생각도 했다”며 “배우는 죽을 때까지 발전해야 한다는 제리 미첼(킹키부츠 오리지널 연출가)의 말을 평생 가슴에 담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본격적으로 소감을 말하기 전 “킹키부츠가 앙상블상을 받았을 때 너무 기뻐서 배에 힘을 주다 바지 후크가 떨어졌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여우주연상은 ‘스위니 토드’에서 러빗 부인을 연기한 전미도에게 돌아갔다. 전 씨는 “노래를 잘 못해서 뮤지컬 배우라고 말하기가 창피했다. 배우를 계속 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고 울먹였다. 그는 이어 “조승우 씨와 함께 노래하고 싶어 버텼는데, 버티길 잘했다”며 미소 지었다. 박은태는 ‘도리안 그레이’에서 헨리 워튼 역으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여우조연상은 ‘레베카’에서 댄버스 부인으로 열연한 신영숙이 차지했다. 대상은 ‘스위니 토드’가 수상했다. 이 작품을 제작한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한국 작품이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공연될 날을 꿈꾼다”고 말했다. 작품상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돌아갔고, 프로듀서상은 ‘마타하리’의 엄홍현 EMK 대표, ‘시집가는 날’ ‘상록수’를 쓴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박만규 씨는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한편 조승우는 신인상 시상자로 참석했다. 사회를 맡은 배우 이건명의 제안에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넘버 일부를 불렀다. 조 씨는 “들어라 썩을 대로 썩은 세상아, 죄악으로 가득하구나. 들어라 비겁하고 악한 자들아, 너희들 세상은 끝났다”고 노래했다. 이 씨는 “돈키호테라는 인물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라며 의미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데스노트’를 끌고 가는 힘은 탄탄한 기량을 지닌 배우들에게서 나왔다. 이 뮤지컬은 이름을 적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데스노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2015년 국내 초연 후 올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데스노트를 주운 뒤 정의를 실현하는 신이 되길 꿈꾸는 라이토 역의 한지상은 순수함으로 가득했지만 점점 대담하게 사람들을 죽이며 광기로 번득이는 눈빛을 연기한다. 라이토를 추적하는 명탐정 엘 역을 맡은 김준수는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은 듯하다. 사탕을 빨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집요하게 퍼즐을 맞추는 모습도 그렇고,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에 귀 기울이다 보면 엘은 그를 위한 캐릭터 같다. 라이토에게 데스노트를 준 사신(死神) 류크를 연기한 강홍석은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사과라면 사족을 못 쓰는 등 때때로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사신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는 단호함을 자유자재로 연기한다. 파국으로 치닫는 인간들의 게임을 음미하는 냉혹함도 함께 보여준다. 라이토를 사랑하는 톱가수 미사를 지키려 애쓰는 사신 렘 역의 박혜나가 보여주는 안타까움과 절절함을 담은 눈빛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미사 역의 벤은 맑은 음색에 시원한 고음으로 귀를 즐겁게 만든다. 초연과 마찬가지로 뮤지컬로는 드물게 원 캐스팅을 통해 공연의 질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점도 눈에 띈다. 다만 귓가에 맴도는 곡이 없는 점은 아쉽다. 음악보다 이야기가 강한 작품이지만 ‘킬링 넘버’가 하나쯤 있었다면 작품의 생명력이 좀 더 길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6일까지. 6만∼14만 원. 1577-3363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훨씬 완숙돼 가는 것 같아요.” 국립극단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악역 도안고를 맡은 장두이 씨(65)는 12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연습을 마친 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성광(47·정영 역), 이형훈 씨(31·조씨고아 역)도 옆에서 고개를 깊숙이 끄덕였다. 2015년 동아연극상 대상을 받은 ‘조씨고아…’는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18일부터 다시 공연된다. 벌써 5회차가 매진됐고 가장 좋은 좌석인 R석 대부분이 판매됐다. 중국의 4대 비극 중 하나를 고선웅 씨(49)가 각색해 연출한 이 작품은 4년 만의 동아연극상 대상 수상작으로, 연기상(하성광)과 연출상, 시청각디자인상(김혜지)까지 차지했다. 지난해 중국에서도 공연돼 극찬을 받았다. 질투에 사로잡힌 도안고가 조순 가문의 300명을 멸족시키고 마지막 핏줄인 ‘고아’마저 죽이려 한다. 정영은 고아를 지키려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키고, 핏빛 복수를 향해 질주한다. 경쾌하고 빠르게 휘몰아치는 이야기 속에 운명의 잔인함과 삶의 허무함이 진하게 녹아 있다. 연극 ‘푸르른 날에’ ‘칼로 막베스’, 창극 ‘변강쇠 점찍고 옹녀’ 등을 통해 입증된 고 연출가 특유의 유머 코드도 반짝인다. 하 씨는 “신의를 지키기 위해 혈육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하는 고뇌 속에 몸부림치는 정영을 더욱 정영답게 표현하고 싶다. 더 멀리 더 깊게 보려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장 씨는 “도안고가 잔혹할수록 정영의 캐릭터가 살아나기에 그렇게 무섭다는 ‘중2’ 딸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며 집에서도 악역을 자처하고 있다”며 웃었다. 이 씨는 도안고의 양아들이 돼 마냥 해맑게 지내다, 진실을 알게 된 후 혼란과 고통을 느끼며 복수를 감행하는 고아의 감정 변화를 빠르게 표현했다. 이 씨는 “1막은 등장인물이 많고 이야기도 격정적으로 흘러가는 데 비해 2막은 정영과 고아의 에너지로 채워야 해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공연계에서 ‘뇌가 섹시한 남자’로 불리는 고 연출가는 연습 때 책상 위에 각티슈를 준비해 놓고 몇 번이나 눈물을 닦아내며 보완 사항을 지시했다. 하 씨는 “연습할 때마다 (고 씨가) 매일 운다”고 귀띔했다. 장 씨는 “눈물마저 섹시하다”며 농담처럼 말했다. 이들에게 ‘조씨고아…’는 영광과 아픔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이다. 초연 때 임홍식 씨(공손저구 역)가 연기를 마치고 들어온 후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올해 연습을 시작하기 전 초연 당시 촬영한 공연 영상을 함께 봤는데, 공교롭게도 임 씨가 떠난 날이었다. “숙연한 마음으로 영상을 봤어요. 배우들이 입버릇처럼 말하잖아요. 무대에서 죽고 싶다고요. 그걸 직접 보니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몰아쳤어요. 시간과 삶에 대한 리듬이 낯설게 다가왔다고나 할까요….”(장두이 씨) 이들은 임 씨가 ‘행복한 배우’였기를 기도했다. 이 작품은 끈끈하고 강력한 팀워크를 자랑한다. 중국 공연 때 통관 문제로 의상과 소품이 공연 당일 도착해 모두가 피를 말리는 와중에도 무사히 공연을 해 냈다. 이들의 에너지는 무대 위에서 고스란히 발산돼 관객에게 뜨겁게 전해진다. 하 씨는 “연극이 생물이라면 ‘조씨고아…’는 생명력이 무척 길 거라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 씨는 “중국에 또 가고 싶다. 내친김에 토니상까지 가져오자”며 익살스럽게 말했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2월 12일까지. 2만∼5만 원. 1644-2003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에서 쉴레(1890∼1918)는 자신을 뒷바라지해줄 수 있는 집안의 아가씨와 결혼하기로 한다. 그러고는 동거하는 여인 발리에게 말한다. 곁에 있어 달라고, 당신이 필요하다고. 절망한 발리는 그를 떠나지만 제1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쉴레를 혹여 만날까 기대하며 간호병에 자원했다 성홍열로 숨진다. 쉴레의 작품들이 탄생한 과정이 하나하나 펼쳐지자 문득 오스트리아 빈에서 본 그림이 떠올랐다. 그때는 28세로 요절한 그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거친 듯한 특유의 선으로 이뤄진 에로틱한 그림들을 한참 동안 들여다봤다. 영화를 보며 새삼스레 다시 확인한 건 예술가들의 숙명적 이기심이다. 영감을 주는 ‘에너지’(특히 사람)를 모조리 빨아들인 후 토해내야 하는 작업이 예술이기에.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예술가들의 작업은 계속된다. 피카소, 고갱도 그랬다. 한편으론 궁금하다. 쉴레의 그림에 남아 영원의 생명을 얻게 된 여성들은 행복했을까.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섬세한 감정선과 내밀한 호흡, 강렬하게 뿜어내는 에너지. 존재만으로도 무대를 꽉 채우는 배우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47)다. 눈송이가 나풀나풀 그림처럼 내려앉던 13일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30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그가 ‘마담’ 역을 맡은 연극 ‘하녀들’이 공연 중인 이곳은 연희단거리패가 지난해 창단 30주년을 맞아 만든 극장이다. 연세대 국문학과를 나온 그는 대학 때 연극 동아리를 통해 무대를 만났다. “글을 쓰고 싶었는데 꿈꾸는 것만큼 글재주가 없더라고요. 한데 연기를 하니까 내 몸짓과 대사에 따라 관객이 울고 웃는 거예요. 진짜 재미있었어요.” 이윤택 연출가가 배우를 훈련하기 위해 1994년 만든 우리극연구소 1기로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연기 인생이 시작됐다. 연기를 할수록 연극은 심연에 뭔가가 있다는 걸 느꼈단다. “꼭 해 볼 만한 일이다”는 확신이 왔다. 그런데 3기생을 가르치면서 극심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가르친 대로 연기하는지 스스로를 검열하게 돼 엄청난 압박감에 짓눌렸던 것. “배우로서 영혼이 증발된 것 같았어요. 기쁨을 줬던 연기가 구속으로 여겨지자 더 이상 연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모든 걸 잃었다며 절망하던 그에게 선배들은 말했다. 가르치는 것과 연기하는 것에 대해 미숙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고민을 거듭하다 깨달았어요. 완벽함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구나. 부족하더라도 연기하고 가르치는 과정, 그 자체가 다 의미 있는 행위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죠.” 연극계에서 그는 ‘보석 같은 배우’로 불린다. 열혈 팬이 많고, 팬 카페도 있다. 그는 “30대까지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마흔을 넘기면서 가진 능력 이상으로 과분한 평가를 받고 있다”며 수줍어했다. 2015년부터는 연출가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그가 연출한 ‘갈매기’는 과감한 생략과 압축, 강조를 통해 주제를 또렷이 부각시켜 젊고 감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현재 서울 종로구 게릴라극장에서 다시 공연되고 있다. “연출을 해보니 내 시야가 참 좁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더 철저하고, 더 집요하게 해야겠다고 느꼈죠. 음악, 미장센 등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어요.” 연기하고, 연출하고, 극단 대표로 서울과 밀양연극촌을 오가며 크고 작은 살림을 다 챙기는 그의 일정은 눈 돌릴 틈 없이 빡빡하다. 원로 연극인도 극진히 모신다. 그는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 피곤해도 금방 회복된다”며 웃었다. 연극은 그를 늘 깨어 있게 만든다고 했다. “같은 작품이라도 배우와 관객의 호흡, 공기의 흐름 등 똑같은 날은 절대 없어요. 연극은 나와 다른 세계, 나와 다른 이들을 매일매일 새롭게 연결해 줘요.” 이런 느낌을 받으며 하루하루 사는 게 좋은 삶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연극에 격(格)이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저런 극단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는 말도 듣고 싶고요. 공연을 본 관객에게서 ‘좋았다’는 말을 듣는 연출가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아, 희망 사항이 너무 많은가요?”(웃음)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고등학교 졸업 후 아들은 아버지와 대화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한국의 아버지와 아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런 두 사람이 세계일주를 떠났다. 무려 200일 동안 40개국을. ‘대략 난감, ‘꼰대’ 아버지와 지구 한바퀴’(북레시피)를 최근 펴낸 정준일(59), 정재인(29) 부자(父子)의 이야기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10일 두 사람을 만났다. 2015년 3월 학군단(ROTC) 포병장교로 전역을 3개월 앞둔 재인 씨는 “세계여행을 같이 가자”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현대중공업에서 32년간 근무한 준일 씨는 아들이 취직하기 전이 아니면 세계여행을 할 수 없다고 여겨 명예퇴직 했다. “세계여행을 꿈꿨는데 어느 날 신문에서 ‘나이 들어 다리가 떨리면 아무데도 못 간다. 그러니 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는 여행작가의 글을 보고 전율했어요.”(준일 씨) 재인 씨는 처음에 거절하려 했다. “학창시절, 교복바지 폭을 줄이자 가위로 잘라버렸고, 게임을 많이 한다고 망치로 휴대전화를 때려 부술 정도로 아버지는 무서웠어요. 그런 아버지와 7개월을 단둘이 보내는 건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그러던 중 재인 씨는 아버지를 갑자기 잃은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 2015년 7월, 영국을 시작으로 여정이 이어졌다. 테니스가 유일한 취미인 아버지가 영국에서 윔블던 테니스대회 경기를 관람하며 아이처럼 웃는 모습에 재인 씨는 마음이 찡해졌다. 준일 씨는 낯선 나라에서도 길을 척척 찾아 앞장서는 아들을 보며 뿌듯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여 갔다. “재인이가 지도를 볼 때 돕고 싶은 마음에 몇 마디를 하니까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며 귀찮아하는 거예요.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너무 서운하더라고요.”(준일 씨) “일정 챙기고 입장권 등을 사느라 새벽 2, 3시에 잔 적이 많아요. 너무 피곤한데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씻으라고 잔소리하니까 짜증이 솟구쳤어요.”(재인 씨) 결국 여행 중반 무렵, 둘은 쌓인 감정을 털어놓았다. 준일 씨는 아들에게 간섭하지 않기로 했고 재인 씨는 더 자세히 설명했다.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다. “아버지가 청력이 안 좋으신데, 소음이 심한 작업 현장에서 일하셔서 그런 거였더라고요. 마음이 아팠어요. 네팔의 히말라야에서 일출을 보고 눈물 흘리시는 아버지를 보며 당황했지만, 살면서 아버지도 울고 싶을 때가 많았을 거란 생각이 그때야 비로소 들었어요.”(재인 씨) 준일 씨는 매일 아침, 하루 일정을 브리핑해주고 멋스러운 스카프와 셔츠를 내밀며 옷을 챙겨주는 아들의 다정함에 감탄했다. 책은 아들 편, 아버지 편으로 나눠 썼다. 같은 여행지를 각자의 시각에서 보고 느낀 점을 읽는 재미가 색다르다. 이들은 여행기를 다음 스토리펀딩에 올려 홀몸노인을 위한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친구들에게 국내든 어디든 아들과 여행가라고 ‘강추’하고 있어요. 생전 전화 안 하던 재인이가 요즘은 자주 전화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요. 여행의 마법이죠.”(준일 씨) “아버지에게 먼저 다가가라고 말하고 싶어요. 단, 여행을 같이 간다면 무조건 많이 참으세요. 하하.”(재인 씨)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천막으로 만든 극장에는 한겨울의 냉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양옆 도로를 오가는 자동차 소리 때문에 대화를 하려면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현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예술인들에게 각종 불이익을 준 데 항의하는 의미로, 연극인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운 ‘광장극장 블랙텐트’는 그랬다. 개막식이 열린 10일, 무대 위에 마련된 작은 고사상에는 누런색 돼지저금통과 시루떡, 사과 세 알, 북어 한 마리, 막걸리 두 잔이 올려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16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주 연극이 상연된다. 다음 주에는 극단 고래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그린 ‘빨간시’를, 그 다음 주에는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에서 옷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투영한 ‘그와 그녀의 옷장’을 무대에 올린다.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은 검열하는 이들의 언어가 지닌 폭력성을 들여다보는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을 31일부터 상연한다. 최대 150명이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무료이며,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내면 된다. 연극인들은 박근혜 정부가 퇴진할 때까지 공연을 계속할 예정이란다. 방음장치와 냉난방시설은 공연장이 갖춰야 할 필수 요소인데 괜찮을까. 극단 고래의 이해성 연출가는 “자동차 소음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고, 온풍기 두 대를 마련할 예정이다”라며 공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블랙텐트는 4대 국정기조 가운데 하나로 ‘문화 융성’을 내세운 현 정부와 문화계가 파국으로 치달았음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정부는 2014년부터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정해 영화, 뮤지컬, 연극, 전시회 등의 티켓을 할인해주는 정책을 시행했다. 박 대통령은 국산 애니메이션 영화 ‘넛잡: 땅콩도둑들’, 뮤지컬 ‘김종욱 찾기’ 등을 관람했다. 대통령이 그 나름대로 문화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것이라 생각한다. ‘문화가 있는 날’의 실질적인 효과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도 적지 않았지만 문화계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많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이렇게 되고 말았다. 블랙텐트에 온풍기를 들여놓고 관객들의 온기를 더하더라도 공연을 하기에는 만만찮은 여건임이 분명해 보인다. 갈수록 더 추워진다는데, 배우와 스태프, 그리고 관객들은 이를 감내할 수 있을까. 몸이 상하면 배우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진다. 목이 상하면 회복하는데도 적잖은 시간이 든다. 초기에는 의지로 버텨낼 수 있어도 장기간 계속되면 건강에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칼바람이 부는 이 겨울날, 숱한 공공극장과 소극장들을 두고 예술인들이 거리로 나서야 하는 현실은 ‘문화 융성’의 아이러니다.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예술인들이 예술 활동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길 기다린다.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
‘30대 여성’이 여전히 공연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터파크는 지난해 공연 티켓 판매량과 관객층을 분석한 결과 전체 공연 예매자(151만 2876명)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69%로 나타났다고 10일 밝혔다. 이는 2015년(66.7%)보다 소폭 상승한 수치다. 연령별로는 30대가 36.7%로 가장 높았고 20대(32.7%), 40대(18.1%), 10대(6.2%)가 뒤를 이었다. 10대 관객은 남성이 여성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지만 연령이 높아질수록 격차는 줄어들어 60대 이상은 남성 관객수가 여성 관객수와 거의 비슷했다. 클래식 장르에서만 60대 관객은 남성이 여성보다 조금 더 많았다. 뮤지컬에서는 ‘팬텀’이 판매 1위를 기록했고 ‘마타하리’ ‘노트르담 드 파리’가 2, 3위를 차지했다. 연극은 ‘라이어 1탄’이 1위에 올랐고 ‘옥탑방 고양이’ ‘작업의 정석’이 뒤를 이었다. 클래식은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오페라 ‘카르멘’의 관객이 가장 많았다. 무용·전통예술에서는 유니버설발레단(UBC)의 ‘호두까기 인형’이 1위였다. 지난해 판매된 티켓 판매대금은 4271억 원으로 전년보다 2% 증가했다. 장르별로는 뮤지컬(1993억 원)이 4% 늘었고 연극(261억 원)도 3.5% 상승했다. 콘서트(1809억 원)는 전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반면 클래식·오페라는 10%, 무용·전통예술은 5.4% 감소했다. 인터파크 측은 “서울시향의 정명훈 예술감독이 사퇴하면서 매년 하반기에 판매하는 다음 해 서울시향 시즌 패키지 판매가 줄어든 게 클래식 티켓 판매 감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정부는 연간 지원 예산이 300억 원에 불과한 출판계에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들이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특정 출판사를 거명하며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 등에게 지원 삭감을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특검은 이날 오전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을 소환해 삼성전자가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와 딸 정유라 씨(21)의 승마 훈련에 거액을 지원한 배경을 조사했다. ○ “박 대통령이 출판사 콕 집어 지원 삭감 지시” 특검은 박 대통령이 2015년 초 김상률 당시 대통령교육문화수석비서관에게 “(문화체육관광부가) ‘창작과 비평’(창비) ‘문학동네’ 등의 좌파 문예지만 지원하고, 건전 문예지에는 지원을 안 한다. 건전 세력이 불만이 많다”며 지원 정책 수정을 지시했다는 청와대와 문체부 관계자들의 진술을 확보했다. 또 박 대통령의 지시 이후 문체부가 창비, 문학동네 등 해당 출판사에 대한 지원을 대폭 줄이고 이들이 출간하는 도서 지원을 축소한 정황도 포착했다. 출판계에서는 박 대통령이 이 출판사들을 문제 삼은 이유가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의 책을 출간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문학동네는 2014년 10월 소설가 김애란 김연수 박민규 등과 사회과학자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촉구한 ‘눈먼 자들의 국가’를 출간했다. 창비는 2015년 1월 ‘금요일엔 돌아오렴: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을 펴냈다. 결국 정부 예산으로 우수도서 한 종류당 1000만 원어치씩을 구입해주는 ‘세종도서’ 선정에서 두 출판사는 피해를 봤다. 2013년 31종이 선정됐던 창비는 2014년 18종, 2015년 5종으로 급감했다. 문학동네도 2014년 25종이 선정됐지만 2015년에는 5종으로 줄었다. 출판계에서는 당시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한 두 출판사의 도서들이 선정되지 않은 것은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문체부는 출판사에 대한 지원금과 지원 사업을 축소했다. 박 대통령이 거론했던 ‘우수 문예지 발간지원 사업’ 대상과 규모가 2014년 문예지 55종 10억 원에서,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이듬해 14종 3억 원으로 줄었다. 이어 지난해엔 아예 지원 사업 자체가 폐지됐다. 문체부 관계자는 특검에서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라고는 해도 대표적 문예지인 창비와 문학동네를 지원 대상에서 빼는 것은 쉽지 않았다”며 “어쩔 수 없이 문예지 지원 사업 전체를 손댄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 축소 결과 박 대통령에게 보고” 특검에 소환된 문체부 관계자들은 “두 출판사에 대해 지원을 축소한 뒤 그 결과를 김상률 수석과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박 대통령에게 차례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청와대가 두 출판사에 대한 불이익 지시를 한 뒤 그 결과까지 꼼꼼하게 챙긴 것이다. 특검은 9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을 주도한 혐의(직권남용)로 김 전 수석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차관, 신동철 전 대통령정무비서관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장관과 정 전 차관에게는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를 본 적 없다”고 위증한 혐의도 적용했다. 특검 관계자는 “고위 공무원들의 리스트 작성 행위가 국민의 사상 및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영장 청구 배경을 설명했다. ○ 최순실 모녀의 승마 훈련 지원 경위 추궁 이날 참고인 신분으로 특검에 출석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최 부회장과 장 사장은 기자들에게 별다른 말 없이 조사실로 향했다. 특검은 두 사람을 상대로 삼성이 최순실 씨 모녀를 지원하게 된 경위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삼성은 지난해 9월 최 씨의 독일 회사인 ‘코레스포츠’와 승마 유망주 육성 지원 명목으로 220억 원대 컨설팅 계약을 맺은 뒤 70억여 원을 지급했다. 특검은 최 씨 모녀에 대한 삼성의 지원과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게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검은 조만간 삼성 이재용 부회장도 소환 조사할 계획이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손효림·권기범 기자}
제53회 동아연극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된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 참여팀이 이 상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참여팀은 6일 “동아연극상이 특별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한 것이 우리의 페스티벌에 대한 지지와 인정의 표현이라는 점에 감사를 표한다”며 “그러나 ‘검열각하’는 어떤 권위나 제도에 속하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는 데 의견을 모아 상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참여팀은 “동아연극상은 연극계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했고 앞으로도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동아연극상 심사위원회는 “참여팀이 동아연극상의 역할을 높이 평가함과 동시에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하는 입장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새해 목표로 자주 꼽히는 ‘단골손님들’이 있다. 다이어트, 금연, 외국어 공부 그리고 독서. 동아일보 ‘책의 향기’팀은 새해를 맞아 책을 많이 읽기로 결심한 이들을 위해 선물하고 싶은 책들을 꼽아봤다. ‘이거다!’ 싶은 책을 발견했다면 좋아하는 이들에게 살포시 내밀어 보길 권한다.》 ▽김상운=역사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폼페이, 사라진 로마 도시의 화려한 일상’(메리 비어드·글항아리·2만8000원)을 주고 싶어. 구체적인 생활상을 복원해 보여주는데, 거리의 돌 징검다리를 만든 건 로마인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도로에 그냥 버렸기 때문이래. ▽손택균=이탈리아에 여행 갈 사람이 봐도 좋겠네. 오래전 폼페이에 갔을 때 뭘 봐야 할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거든. ▽상운=폼페이 가기 전에 보면 정말 좋지. 도판도 풍부해. 지금까지 본 고고학 책 중 제일 재미있었어. ‘댓글부대’(장강명·은행나무·1만2000원)는 촛불집회 참석자에게 선물하면 좋을 것 같아. 인터넷을 통한 정치조작 사례를 현실감 있게 그렸어. ▽조종엽=맞아. 난 직장인을 위해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양경수·오우아·1만5800원)을 골랐어. 교과서나 사보에 나올 것 같은 그림에, 직장인이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배치해 빚어내는 부조화가 ‘웃픈’ 정서를 만들어 내. “정상을 향한 삶보다는 정상적인 삶을 원해”라는 대사는 직장인의 심정을 200% 대변하지. ▽손효림=종엽 씨 가슴도 많이 때렸어? ▽종엽=노 코멘트(웃음). 덧붙이자면 상사에게 선물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 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책 도둑의 최후는 교수형뿐이라네’(쯔안·알마·1만5500원)를 주고 싶어. 자기 책에 붙여 ‘내 것’임을 알리는 ‘장서표’를 다뤘어. 과거 책은 유한계급이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장서표를 많이 만들었대. 판화 예술로서도 가치가 있는 각종 장서표를 보는 재미가 쏠쏠해. ▽상운=대학 다닐 때 도서관 책 뒤에 대출표가 붙어 있었잖아. 거기에 무슨 과 몇 학번이 읽었는지 쓰고 간단한 리뷰를 남기는 사람도 있었지. ▽효림=아, 기억난다! 빌린 책마다 대출표에 특정 과 아무개가 이미 봤다고 써 놓으니까 그 사람이 안 본 책을 먼저 읽으려고 기를 썼던 애들도 있었어. ▽김배중=‘버나드 쇼: 지성의 연대기’(헤스케드 피어슨·뗀데데로·2만5000원)는 유머 감각을 키우고 싶은 사람에게 좋을 듯해. 버나드 쇼는 아버지 사업이 망해도 남의 일 보듯 낄낄 웃는 ‘유체이탈’ 성격이야. 버나드 쇼는 촌철살인이 특기잖아.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말에 발광다이오드(LED) 촛불로 대응하거나, 기막히게 참신한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볼 때면 버나드 쇼의 후예가 아닐까 생각한다니까. ▽효림=해석이 더 멋지다! ▽김지영=버나드 쇼는 인생을 달관하게 만드는 힘을 주지. ▽배중=또 한 권은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심재훈·푸른역사·1만8000원)야. 저자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중국 고대사를 연구했는데, 우리나라가 우리 것만 무조건 최고라고 여기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고교생, 대학생이 보면 좋을 것 같아. ▽종엽=송호정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20세기 동아시아 민족주의의 보편성과 그로 인한 고대사 논쟁의 소모성을 쉽고 흥미롭게 지적했다고 평가했지. ▽택균=나의 선택은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이언 보스트리지·바다출판사·2만5000원).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에서 철학과 역사를 전공한 테너 가수가 겸허한 문장으로 풀어 쓴 책이야. 단어 선택이 탁월하고 글에 어울리는 그림도 잘 배치했어. 슈베르트를 좋아하는 사람, 겨울 나그네 중 ‘보리수’에만 익숙한 사람에게 주고 싶어. 바리톤 올라프 베어의 ‘겨울 나그네’ CD와 함께 포장해 건네면 멋진 선물이 될 것 같아. ▽배중=책 표지도 예쁘다. ▽택균=버려진 강아지의 삶을 그린 만화 ‘흰둥이1, 2’(윤필·창비·각 1만2000원)는 반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어. 원망 대신 염치와 역지사지를 전하는 강아지의 이야기야.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가 언젠가 늙고 병들어 죽어갈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해줘. ▽종엽=새해 선물치고는 좀 슬프지 않아? ▽배중=추운 겨울에 난 따뜻한 느낌이 드는데? ▽효림=고흐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빈센트와 함께 걷다’(류승희·아트북스·1만8000원)를 건네고 싶어. 화가인 저자가 고흐가 태어난 집, 학교, 숨질 때까지 머물렀던 여관과 그림 그린 곳들을 찾아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벨기에의 21개 도시를 다닌 기록이야. 고흐의 그림과 배경이 된 실제 현장 사진을 나란히 배치해서 비교해 보는 재미도 커. 글도 깊이가 있고. ▽택균=겉핥기나 견문 과시에 그치지 않고 풍성한 이야기를 담았네. ▽효림=동감이야. 고흐는 동생 테오와 사이가 좋기만 했던 건 아니고 크게 다투기도 했다고 해. 미처 몰랐던 고흐의 삶을 한층 깊숙이 알게 돼. ▽택균=편집이 깔끔하다. 저자가 스스로 행복해하며 안내하는 느낌이 드네. ▽효림=실제로도 그래. 2015년 세상을 떠난 ‘의학계의 계관시인’ 올리버 색스가 생의 끝자락에 남긴 4개의 에세이를 엮은 ‘고맙습니다’(알마·6500원)도 골라봤어. 제목도 선물하기에 딱 맞지 않아? 인생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담고 있어 삶의 방향을 생각해보는 새해에 읽으면 좋을 듯해. ▽지영=그렇겠다. 난 한국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이들에게 김연수의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문학동네·1만3000원)를 권할 거야. 김천 뉴욕제과 막내아들이 스무 살이 되기 전 기억을 담담하고 따뜻하게 그렸어. 한국 소설도 이렇게 흥미롭다고 말하고 싶어. ▽효림=엄청 재미있나 보다. ▽지영=짜릿한 재미는 아니지만 금방 몰입해서 읽게 돼. 그리고, 다른 분야 책은 많이 읽지만 시는 손이 잘 안 간다는 친구에게는 이원의 시집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문학과지성사·8000원)를 주고 싶어. 현대 문명과 인간이 선 지점을 차갑게 관조하는 작품이야. 시의 매력을 전하기에 안성맞춤이지. 정리=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새해가 일주일 지났다. 올해 남은 날은 350여 일. 긴 시간인 듯하지만 지나고 나면 짧게 느껴지리라. 이탈리아 영화감독이 쓴 소설 ‘100일 동안의 행복’(파우스토 브리치 지음·이승수 옮김·민음사·전 2권·각 1만2000원)의 주인공은 교사 아내와 두 자녀를 둔 마흔 살의 가장으로, 간암에 걸려 살날이 3개월 정도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남은 100일을 카운트다운 한다. 처음에는 치료에 몰두하지만 각종 부작용으로 쇠약해지자 남은 두 달을 즐겁게 살기로 한다. 주제는 무겁지만 이야기는 유쾌하게 전개된다. 우리는 “나중에”라고 말하며 많은 것을 미룬다. 주인공 루치오는 말한다. “나중은 있다. 나중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현재를 즐겨라. 그게 더 낫다.” 남은 날이 얼마인지 모르더라도 그 무엇이 됐든 원하는 걸 해보자.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서!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