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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예술의전당이 다음 달 5∼10일 세계적인 지휘자 자난드레아 노세다,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등이 참여하는 제5회 국제음악제(포스터)를 연다. 이번 음악제는 역대 최대 규모로 총 11회의 초청 공연과 5팀의 공모 연주가 계획됐다. 교향악, 실내악, 바로크, 현대음악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개막 공연은 로렌스 르네스가 지휘하는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갈라 연주가 장식한다. 2014년 파블로 카살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문태국을 비롯해 영국 런던심포니 종신 단원인 임채문(더블베이스), 독일 뮌헨 필하모닉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트럼펫) 등이 참여한다. 6일에는 미국 카네기홀에 상주하는 미국의 내셔널 유스 오케스트라가, 7일에는 피아니스트 다비드 살몽과 마뉘엘 비에야르 듀오가 연주를 선보인다. 8일에는 첼리스트 스티븐 이셜리스가 쇼스타코비치와 라흐마니노프 등 첼로 소나타를 연주한다. 9일에는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얀 리시에츠키가 전주곡만으로 구성된 독특한 리사이틀을 선보인다. 폐막일인 10일에는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등을 협연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어느 날 아빠 머리털은 빗질을 참을 수 없었어. 매일매일 아빠 머리에만 붙어 있는 게 지겨웠거든.”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충분히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려는 찰나, 놀랍게도 아빠 머리카락은 ‘툭, 투둑’ 뛰어내려 도망가기 시작한다. 졸지에 대머리가 되고 만 아빠. 머리카락을 찾아 온 집을 쫓아다니더니 잔디밭, 시내, 레스토랑, 동물원까지 최선을 다해 쫓아간다. 하지만 머리카락들은 언제나 더 빠르다. 쏜살같이 새로운 곳을 향해 달아나던 이들은 결국 하수구 아래로 흘러들어간다. 아빠가 더 이상 쫓아갈 수 없는 망망대해로 나가 버린 것. 머리카락 찾기를 포기한 아빠에게 이들은 이따금 엽서를 통해 안부를 전해온다. 미국과 남극, 모로코와 싱가포르에서의 즐거운 하루를 담은 사진들을. 머리에 붙어 있는 게 싫증 난 머리카락들의 일탈이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예측 불허로 유쾌하게 전개된다. 생각해보면 바람에 나부끼고 음악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은 언제나 자유에 대한 갈망을 상징했던 것도 같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머리카락을 한 번도 그런 관점으로 봤던 적이 없지만 말이다. 글밥이 적어 초등학교 저학년이 읽기 좋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의 미국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는 기본적으로 뮤지컬 영화다.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세상의 악한 기운을 노래로 물리친다는 서사가 주축이라 다양한 사운드트랙이 나온다. 덕분에 애니메이션의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영화음악들도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애니메이션 속 노래는 비트나 멜로디 측면에서 기존 K팝의 특징을 잘 살렸다. 극 중 악마들조차 흥얼거리며 “중독성 있다”고 인정할 정도다. 가장 인기 있는 곡은 빌보드 싱글차트 4위를 기록한 ‘골든(Golden)’. 결점을 감추는 데 급급했던 주인공이 고음을 내지르며 ‘더 이상 두려움 속에 숨지 않겠다’고 노래하는 모습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의 ‘렛 잇 고(Let It Go)’를 연상시킨다. ‘골든’은 이 곡이 기록했던 빌보드 최고 순위(5위)를 이미 뛰어넘었다.그런데 ‘골든’을 이처럼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는 또 다른 킬링 포인트는 의외의 곳에 있다. 바로 한 줄씩 감칠맛 나게 섞인 한국어 가사다. 이 작품은 K팝과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하지만, 미국 제작진이 만든 미국 애니메이션이다. 당연히 모든 게 영어로 제작됐는데, 가사에서 갑자기 한 줄씩 한국어가 툭툭 나온다. “Up, up, up with our voices 영원히 깨질 수 없는 Gonna be, gonna be golden”식이다.맥락상 그 대목에서 한국어가 나와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무심히 섞인 한국어 한 구절이 전체 곡과 신비스러운 조화를 이루며 입에 착 감긴다. 특히 한국인들이 이 대목에서 전율을 느끼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만 해도 한국 대중문화에서 영어가 ‘정확히 그런 효과’를 내기 위해 사용돼 왔기 때문이다.2010년대만 해도 국내에선 대중가요 가사에 쓰인 영어나 외래어의 영향, 효과나 문제점에 관한 대중문화 연구가 많았다. 이 무렵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대중가요 50% 이상이 영어를 섞어 썼다. 주로 곡 분위기 전환, 후크나 후렴구의 운율을 위해서였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메시지를 은어처럼 전달하는 용도로도 활용됐다.요컨대, 대중가요 가사에서 영어는 대부분 차별화의 방편이었다. 더 그럴듯한 곡을 만들기 위해, 더 정통성 있어 보이기 위해 가사 곳곳에 때로는 무분별할 정도로 섞어 썼다. 문화사대주의나 우리말 파괴라는 지적이 심심찮게 나왔던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 완전히 반대 상황이 온 것이다.헌트릭스의 다른 히트곡 ‘하우 이츠 던(How It‘s Done)’이나 이들과 대결하는 저승사자 보이밴드인 사자보이스의 ‘소다 팝(Soda Pop)’ 등도 마찬가지다. “불을 비춰” “지금 당장 날 봐” 같은 한국어 구절이 K팝의 정통성과 힙함을 살려내는 장치로 쓰인다. 애니메이션 대사에선 “가자 가자” “후배” 같은 한국말을 그대로 쓰며 ‘찐’한국 느낌을 과시한다. 이쯤 되면 세계가 열광하는 ‘K콘텐츠다움’을 완성하는 마지막 터치는 한국어가 된 게 아닌가 싶다. 공고한 언어 패권마저 흔들 수 있는 문화의 힘이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박선희 문화부 차장 teller@donga.com}
세계적인 소프라노 황수미가 직접 선정한 곡에 설명과 공연을 곁들인 ‘황수미의 사운드 트랙’을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선보인다. 9월 18일과 10월 16일, 11월 20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롯데문화재단이 2016년 개관 때부터 이어온 마티네(연극, 음악회 등의 낮 공연)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황수미는 2014년 세계 3대 음악 콩쿠르 중 하나인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악가. 이 무대를 통해 그는 기획자, 진행자, 성악가 역할을 동시에 소화한다. 첫 공연은 ‘서정 가득하고 기품이 넘치는 가곡’을 주제로 한국 가곡 윤학준의 ‘마중’ ‘별’과 로베르트 슈만의 ‘헌정’, 클라라 슈만의 ‘나는 어두운 꿈속에 서 있었네’ 등을 들려준다. 테너 김우경과 피아니스트 안종도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두 번째 공연에선 오페라를 다룬다. ‘오페라―이야기와 감동이 살아 숨쉬는 무대’를 주제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시 판 투테’를 선보인다. 황수미는 “갈라콘서트로 여러 작품의 다양한 아리아를 들려드릴 수 있겠지만 한 편을 재밌게 각색해서 짜임새 있는 공연으로 선사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프라노 이한나, 메조소프라노 정세라, 테너 김효종, 바리톤 이동환, 베이스 김대영과 피아니스트 방은현이 참여한다. 마지막 공연은 ‘시네마’를 주제로 뮤지컬 ‘벤허’의 ‘기도’ ‘운명’, 뮤지컬 ‘팬텀’의 ‘내 고향’을 뮤지컬 배우 카이와 함께 부른다. 황수미는 “세 차례의 마티네 콘서트를 통해 클래식의 확장성을 실험해 보고 싶었다”며 “마티네 관객층은 클래식 입문자가 많기 때문에 너무 심오한 현대 음악이나 어려운 후기 낭만주의 음악 쪽은 피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를 보면서 해설도 하고 공연도 해야 해서 큰 도전”이라면서도 “성악가로서 지평을 넓히고 다른 출연자들과 음악적 교감을 나누면서 무대를 만들어 나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고 했다. 2만1000∼4만5000원.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미국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9월 24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정경화 & 케빈 케너 듀오 리사이틀’(사진)을 개최한다. 이번 공연은 11월 예정된 미주 투어를 기념해 마련됐다. 서울을 비롯해 평택 남부문화예술회관(9월 13일)과 고양 고양아람누리(9월 21일), 통영 통영국제음악당(9월 26일)에서 열린다. 4만∼15만 원. 두 연주가는 드뷔시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g단조’, 슈베르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C장조’, 쇤베르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프랑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A장조’ 등을 협연할 예정이다. 정경화는 1967년 미 카네기홀에서 열린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한국 클래식을 알린 선구자다.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 활동을 잠시 중단했지만, 2010년 복귀한 뒤 세계 곳곳에서 공연을 갖고 있다. 케너는 1990년 쇼팽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 폴로네이즈상 수상자. 정경화와는 오랫동안 음악적 동반자로 교류해 온 피아니스트다. 북미 투어는 매사추세츠 우스터 메카닉스홀(11월 2일)을 시작으로 뉴저지 프린스턴 매카터 극장(11월 5일), 뉴욕 카네기홀(11월 7일), 캐나다 토론토 코너홀(11월 9일) 등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다. 특히 세계적 연주자로 발돋움하는 데뷔 무대였던 카네기홀은 2017년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 이후 8년 만에 다시 찾는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커다란 초록 손을 가진 아이 레노어가 있다. 남들과 다른 초록색 손이 부끄럽고 싫다. ‘학교 친구들 중 아무도 초록 손이 달린 애는 없는데.’ 손을 가리기 위해 손에 목도리를 둘둘 감고 다닌다. 그러던 중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 레노어. 처음 가는 학교에서 초록색 손이 들통나 망신을 당할까 봐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너무 답답해’라는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가만 보니, 초록색 손이 말하고 있다. 초록 손은 레노어에게 자기 이야기를 좀 들어보라고 한다. 옛날 옛날 조그만 분홍 혹을 단 멋쟁이 초록 손이 태어났다. 초록 손의 이름은 척. 그런데 척에겐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이 조그만 분홍 혹은 왜 달려 있을까. 커다란 손들 중에 분홍 혹이 달린 애는 아무도 없는데.’ 심지어 이 분홍 혹은 목도리로 척을 덮고 숨까지 막히게 한다. 척의 ‘분홍 혹’은 다름 아닌 레노어. 이어지는 척의 이야기에 레노어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지만, 곧 뭔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주제를 다룬 책은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익숙한 전개를 ‘관점의 이동’을 통해 뒤집으면서 예상치 못한 웃음을 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우리 국토에서 자라는 3000종이 넘는 식물의 생육 시기별 사진과 정확한 이름, 용처 등을 집대성한 식물백과사전이 나왔다. ‘잡초박사’ ‘야생종자 전문가’로 불리는 강병화 고려대 명예교수(78)가 제자인 김태완 한경대 교수 등 5명의 공저자와 함께 e북으로 출간한 ‘주변잡초와 외래식물’(상·중·하), ‘자원식물과 외래식물’(1∼3권), ‘자원식물 생태사진’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3196종 식물의 23만 장에 이르는 생육 단계별 사진을 정확한 학명과 영어명, 국명, 약효와 생태적 특성 등과 함께 집약했다. 모두 7500페이지가 넘는 역작이다.강 교수는 1980년대부터 한 달에 보름 이상 논밭과 산야를 돌며 식물 특성을 조사하고 종자를 수집하는 데 열정을 바쳤다. 40년에 걸쳐 모은 종자만 2300종 7000점, 생태사진은 1만2688종 77만 장이다. 국내 자원 식물 종자의 90% 이상에 해당하는 수집 종자는 2012년 은퇴 당시 고려대에 모두 기증했다. 그 가치만 수백억 원에 이른다. 방대한 양의 생태사진은 정년 뒤 13년에 걸쳐 정리한 끝에 책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강 교수는 “모두가 아름답고 푸른 식물환경은 원하면서도 정작 생활 주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관심이 없다”며 “어릴 때부터 농작물과 야생·자생식물을 정확히 알고 배워야 자연을 아끼게 된다. 거기에서부터 우리 국토를 아름답게 지켜내는 게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방대한 식물 해설서를 집대성한 계기가 궁금하다. “나태주 시인 시 중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란 시(‘풀꽃’)가 있다. 어떤 식물이 있는지 알고, 자꾸 관심 있게 봐야 사랑하게 된다. 무분별한 국토 개발, 기후와 농업환경 변화로 농작물과 잡초 종류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고 생태환경도 파괴되고 있다. 늦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 사람들이 생육 시기별 자생식물을 식별할 줄 알고,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배우며 주변 생태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그 시작이다.” ―곳곳에 수목원이나 생태원이 다양하게 산재해 있다. “국공립이나 사립 수목원, 각 지방의 습지 생태원 등에 아름다운 꽃식물이 많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수목원인 봉화 백두대간 수목원, 세계에서 입장료가 가장 비싼 수목원인 군위 사유원도 다 우리나라에 있다. 그런데 정작 식물에 대해선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단 한 군데도 식물 생태사진을 전시하거나 정확한 이름과 특성을 찾아볼 수 있는 자료를 갖춘 식물원과 도서관이 없다. 지금은 희망이 없다. 전 국토가 꽃밭이다. 다들 아름다운 꽃만 본다.” ―꽃밭이 많은 게 그리 문제가 되나. “꽃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하지만 대량으로 꽃식물을 재배하는 것은 1년에 절반만 녹색으로 토양을 피복시키기 때문에 환경에 나쁜 영향을 준다. 농작물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으니 지방자치단체에서 생활 주변과 농지에 대량으로 꽃식물을 심고 아름답게 꾸며서 관광객을 유치한다. 이렇게 조성하고 있는 넓은 꽃밭과 꽃식물은 우리 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있다. 비용 때문에 종자의 90% 이상이 외국, 특히 중국에서 들어온다는 점도 문제다. 보기엔 예뻐도 생태계와 종 다양성은 계속 망가진다. 주변에서 자라는 소박한 우리 자생식물을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 쇠퇴한 농촌의 휴경지를 식물 다양성을 살리는 습지와 숲으로 가꿔야 한다.” ―기후 변화 등으로 생태계 위해식물이 느는 것도 문제라고 들었다. “생활이 윤택해지면서 조경과 관상용 외국 식물 종류가 급증하며 외래 식물이 많아지고 있다. 하천 변과 산 가장자리에서는 생태계 위해식물인 ‘가시박’ ‘환삼덩굴’ ‘칡’ 등 덩굴식물류가 급증하는데 소관 부서가 달라 조절이 잘 안 된다. 도로변에는 ‘단풍잎돼지풀’이 확산되며 주변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방치하면 곤충, 동물 서식처가 변하고 결국 생물다양성 감소와 생활환경 위협으로 이어진다.” ―식물 이름을 정확히 알고 구별하는 것이 이런 상황에 어떤 도움이 되나. “식물에 관심이 있어야 이름과 이용성을 알게 되고,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게 된다. 예를 들어 ‘냉이’는 장소나 시기에 따라 모양이 달라 식물분류 전문가조차 구별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들나물 채취하는 할머니들은 경험으로 구별한다. 생육 중의 어린 식물을 구별하는 것은 결국 관심과 경험에 의한 관찰력이다. 식용, 약용, 향료나 염료용 등으로 유용하게 활용하는 식물을 자원식물이라고 하는데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 용도가 끝이 없다. 잡초학을 전공했지만 늘 하는 말이 ‘세상에 쓸모없는 식물은 없다’는 것이다. 잘 알아야 잘 이용할 수 있다. 뽕나무만 해도 110개의 증상과 효과가 조사돼 있다. 식물 연구는 이용가치가 무궁무진하다.” ―현재 우리 식물 이름은 얼마나 부정확하게 불리고 있나. “수목원과 생태원의 규모는 커도 표찰이 부정확하다. 전국 나물시장과 약초시장에서 팔리는 들나물, 산야초 등도 표준국명과 다르게 유통되고 있다. 만병통치약으로 소개돼 전문가 처방 없이 복용하고 오용하는 문제가 뒤따른다. 남북한 각 지역에서도 식물을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남북에서 같은 명칭의 비율이 34%에 불과하다. 남한에서라도 지방명이 아니라 국가표준식물명으로 불리도록 수목원과 도서관, 학교에서 노력해야 한다. 이름부터 정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 ―해외에선 식물을 어떻게 관리하나. “유럽은 전통적으로 식물원 표본 관리가 잘돼 있다. 식물원을 주로 대학의 생물학과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표찰에 식물학명이 정확히 기재돼 관람객들이 식물을 배우는 데 불편함이 없다. 반면 우리는 수목원이 생긴 지 3년만 지나면 담당 공무원이 이미 바뀌어서 표찰이 달라지고 관리도 안 된다. 넓은 면적에 볼거리는 많지만, 지속적인 예산 지원이나 전문가의 관리가 부족해 세월이 가면 결국 풀밭이 된다.” ―40년간 현장을 누비다 보면 일화가 많았을 것 같다. “현장 조사는 자연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숙명이다. 독일 유학 때부터 유전자원 보존의 필요성을 느껴 생태사진을 찍고 종자 수집을 했다. 차를 타고 산과 들에서 조사하기 때문에 사건 사고가 많았다. 오대산에선 진드기에 물려 3개월을 고생하고, 점봉산에선 말벌에 쏘여 얼굴이 부은 채 운전하기도 했다. 상주 팔음산에선 낭떠러지로 굴렀으나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 살았다. 진드기, 벌레, 뱀, 벌에 노출되고 응급실도 자주 가는 위험한 일이다. 종자를 확보하고 보존해야 우리 자생식물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들이 해야 한다. 뒤를 이어받은 제자들의 안전이 걱정인데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 안타깝다.” ―책이 방대해 출간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두껍고 크니 서점에서 판매하기 어렵고 출판 비용이 너무 비싸져서 책으로 낼 수 없었다. 식물원, 수목원, 학교 등에서 교육용으로 활용하고 필요한 이들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도록 e북으로 냈다. 야외 조사를 통해 어린 식물부터 종자성숙기, 채종한 종자까지 생태사진을 지속적으로 촬영했기 때문에 식물의 생육 시기별 생태사진이 모두 담겨 있다. 학생들은 교과서 식물을 배울 수 있고, 일반 국민들은 약초, 먹거리 식물과 꽃식물, 습지식물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이렇게 관찰하고 배우면 사랑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돼 있다.” ―농과대학에 진학했던 1960년대와 현재의 생태환경을 비교해보면…. “먹거리 해결이 급선무이던 시절 식량 증진에 기여하려고 농과대학에 가 잡초 방제를 연구했다. 하지만 기술 발달로 농업 생산력이 향상되고 배고픔이 해결됐다. 세상의 변화가 빨라서 유학 직후 강의한 것이 작물과 잡초였다가 퇴임 전에는 자원식물이었다. 농촌이 쇠퇴하며 학생들은 작물재배 강의를 기피했고 전공학과 명칭과 강의 내용도 바뀌었다. 식물 생태의 위협도 현실화됐다. 2005년과 2010년, 2021년 양재천변을 조사한 결과 자생하는 초본식물이 429종에서 318종, 100여 종으로 단순화됨을 관찰했다. 생물다양성 소실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느낀다.” ―생태환경 보호를 위해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생태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의식이 모두에게 있어야 한다. 각 초종의 이름을 아는 것을 기본으로, 생육 시기 및 개화기, 발생 장소에 따른 모양과 생태를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전시도 하고 교육도 해야 하는데 예산이 많이 드는 일이라 공무원들은 위에서 시키지 않으면 하질 않는다. 지자체 장들은 표에만 관심 있지 자연환경엔 관심이 없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들 한다. 나이 들면 고향 풍경을 그리워하게 되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설레게 된다. 늦기 전에 국토의 자연환경을 살리기 위해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강병화 고려대 명예교수△ 1973년 고려대 농과대학△ 1983년 독일 호엔하임대 농학박사△ 1985∼2012년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교수△ 2009∼2011년 고려대 환경생태연구소(소장)△ 2010∼2012년 고려대 야생자원식물종자은행 운영책임자△ 2012년∼현재 고려대 생명과학대학 명예교수△ 2012년∼현재 사단법인 야생자원식물소재연구회 이사박선희 문화부 차장 teller@donga.com}
내 기억 속 가장 완벽했던 휴가 중 하나는 서해안 3성급 리조트의 알록달록한 워터파크에서 보낸 며칠이었다. 극성수기 만실에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수많은 리조트 틈새에서 운 좋게 건졌는데, 막상 가보니 왜 이 성수기에 여기만 이토록 ‘합리적인’ 가격의 방이 남아 있었던 건지 뒤늦게 수긍이 가는 상황이었다. 객실 청소도 안 돼 있었고 체크인 시간은 자꾸 미뤄졌다. 그래도 거기서 보낸 며칠은 정말 좋았다. 그 작은 워터파크 비치베드에 누워서 내도록 보르헤스를 읽었기 때문이다. 당시 보르헤스 책은 절판 상태였다. 휴가 전에 절판된 책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을 많이 뒤졌다. 문인들 모임에서 보르헤스 찬양을 엿들은 뒤였다. 도대체 어떤 작가길래 다들 한목소리로 극찬하나 궁금했다. 어렵게 절판 책을 구했는데 배송에도 시간이 한참 걸려 애를 태웠다. 여름휴가를 떠나기 직전, 극적으로 갱지 박스에 담긴 낡은 전집 5권이 묶여 배송됐다. 기뻤다. 완벽한 여름휴가를 위한 모든 채비를 마침내 마친 기분이었다. 하지만 체크인을 했을 때야 잘못된 리조트를 선택했단 걸 깨달은 것처럼, 책을 펼치자마자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보르헤스는 휴가지에서 느긋하게 읽다 말다 할 수 있는 작가가 절대 아니었다. 그런 목적이라면 다른 책을 골랐어야 했다. 그의 소설은 내겐 너무 난해했다. 책만 펼치면 잠이 쏟아져서 읽는 즉시 골아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아직도 내가 읽은 ‘기억의 천재 푸네스’가 꿈인지 책 내용인지 정확하지 않다. 미로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라틴아메리카 환상문학이 낮잠하고 섞인 바람에 정말 환상 그 자체가 됐다. 그런데, 오히려 그래서 그 책은 ‘다른 의미’로 휴가지에 적합했다. 휴가가 진정한 쉼과 멈춤을 위한 거라면, 보르헤스는 책장을 펼칠 때마다 내게 완벽한 쉼을 선물했다. 가슴팍에 책을 올려두고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변할 때까지 곤히 잠들어 있던 늦은 오후. 깨어나는 순간조차 마치 하루 종일 책을 읽은 것만 같은 착각에 숙면 효과까지 더해져 더없이 개운하고 뿌듯했던 그 며칠을 끝내고 다시 북적이는 도심으로 나왔을 때, 나는 어떤 의미에서 회복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 원래도 책을 좋아했지만, 일상에서 쌓인 모든 피로와 독소를 단잠 덕에 다 푼 ‘완벽한 힐링 휴가’를 보낸 뒤 다시금 깨닫게 됐다. 책은 모험과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 뒤 회복과 배움, 보람을 얹어 되돌려 놓는 책무를 절대로 배반하지 않는다. 심지어 독자가 그걸 베고 졸고 있는 그 순간까지도 말이다. 어떤 휴가지는 그때 읽었던 책과 함께 기억된다. 발리에서의 모옌, 두브로브니크에서의 김영하, 강화도에서의 아모스 오즈. 하지만 또한 책이 있으면 그곳이 그 어디이건 사실은 아무 상관이 없어지기도 한다. 서해안 저렴한 리조트에서 보르헤스와 함께 ‘내가 책이자, 책이 곧 내가 되는’ 환상의 세계를 자다 깨다 탐험했던 것처럼. 그 경험이 이국적 여행지가 줬던 낯선 두근거림만큼이나 오래도록 소중하게 기억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 휴가철이 돌아왔다. 이 소중한 휴가를 같은 돈 쓰며 훨씬 값지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각자 삶의 테마에 맞는 책을 얹는 것이다. 그것이 모험, 탐구, 쉼, 회복, 도피 그 무엇이든 적절한 책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 짭짜래한 바닷바람.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따끈한 모래 알갱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하늘. 책을 펼치면, 우리는 벌써 거기 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세계 최초로 진행된 해와의 단독 인터뷰. 하지만 46억 살, 지구 에너지의 근원인 해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방송 중 쓰러지고 만다. 결국 해와 함께 온 별이 대타로 나선다. 하는 일을 간단히 소개해 달라는 앵커의 질문에 별은 옛날 옛적부터 별들이 해온 일을 소개한다. 별은 길 잃은 사람들의 나침반이었고, 달력이 없던 시대에 농사할 시기를 알려주는 길잡이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실 별이 했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소중한 이들의 안부를 묻는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곁을 떠난 이들을 향해 ‘하늘의 별이 되었다’라고들 했으니까. 문제는, 언젠가부터 밤이 대낮처럼 밝아지고 미세먼지까지 더해지면서 별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당연히 밤하늘의 별을 보며 그리운 이들을 떠올리는 순간도 사라졌다. 별은 뉴스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모처럼 별이 선명한 밤이 되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얼마간이라도 별을 봐달라고. 그러면 걱정이 잠잠해지고, 허전했던 마음도 사라질 거라고. 사실 그게 별들이 가장 잘하는 일이라고. 밤하늘 반짝이는 별을 찾고, 그리운 이들의 안부를 물어보는 짧지만 소중한 멈춤의 시간. 잊고 있던 여유와 낭만의 소중함을 인터뷰 형식을 빌려 재밌게 그려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마치 시공간을 새로 그려내는 사람처럼 무대 위에서 윤찬이가 만드는 마법 같은 순간을 참 좋아해요.”(손민수)“선생님과 연주할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축복이에요.”(임윤찬) 한국을 대표하는 두 피아니스트이자 사제지간인 손민수와 임윤찬이 한 무대에 올라 피아노 듀오 리사이틀을 펼친다. 1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과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30 손민수 & 임윤찬’이 열린다. 듀오 리사이틀은 두 대의 피아노로 하나의 하모니를 만드는 공연이다. 서면 인터뷰에 응한 두 사람은 “서로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만나 하나가 되는 음악”(손민수) “피아노가 노래하게 만드는 듀오”(임윤찬)를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손민수와 임윤찬의 본격적인 듀오 공연으로, 두 사람의 오랜 인연 덕에 더 눈길을 끈다. 손민수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임윤찬을 가르친 스승이다. 2017년 영재원 오디션 때부터 제자의 천재성을 알아챘다고 한다. 임윤찬은 2022년 미국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뒤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됐다. 손민수는 2023년부터 미 뉴잉글랜드음악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데, 임윤찬도 같은 해 스승을 따라 해당 음악원으로 유학을 갔다. 제자 임윤찬에 대해 손민수는 “진정한 자유로움을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준비하고 몰입하고 헌신하는 여정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며 “무대 밖에선 늘 제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잊고 있던 본질을 일깨워주는 존재”라고 했다. 임윤찬은 스승에 대해 “인생, 음악 모든 면에서 절대적이고도 전반적인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번 공연에서 브람스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라흐마니노프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교향적 무곡’, 작곡가 이하느리가 편곡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모음곡을 선보인다. 손민수는 “좋은 음악과 좋은 연주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눴고 서로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만나 하나의 흐름을 만들 수 있는 음악을 찾아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은 그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긴 인생의 총결산 같은 곡입니다. 윤찬이와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육성이 담긴 즉흥 연주 녹음을 함께 듣고 감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눠왔어요. 슈트라우스 ‘장미의 기사’ 역시 곡의 감동을 어린 시절 윤찬이와 나눴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음악들이죠.” 임윤찬은 이하느리가 편곡한 ‘장미의 기사’ 모음곡에 대해서 “하느리는 신이 선택한 음악가”라며 “하느리 자체가 좋은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에 피아노만의 매력을 최대한 살려 편곡했다”고 평가했다. 두 예술가는 한예종 영재원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사제가 함께 오르는 듀오 리사이틀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듀오 리사이틀은 서로의 해석, 숨결, 소리의 밸런스를 유연하게 느끼고 반응해야 해요. 혼자만의 시간이 익숙한 피아니스트들에게 낯설지만 소중한 여정입니다.”(손민수)“어떤 연주를 하고 싶다기보단 그냥 함께 노래하고 싶어요. 다른 두 명의 인격체가 만나, 많은 시간 고민하고 사투해서 얻어낸 음악 그 자체로 이 연주는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임윤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차세대 클래식 스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공연이 국내 관객들을 찾아온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송민규(32)와 최근 가장 주목받는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25)는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예술의전당X서울시립교향악단: 송민규 & 박수예 ON FIRE’를 개최한다. 예술의전당과 서울시향이 공동 기획한 무대다. 송민규는 지난해 이탈리아의 ‘구이도 칸텔리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올 6월 서울시향 부지휘자로 임명됐다. 이번 무대는 부지휘자 임명 이후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이는 첫 무대이다. 협연자로 나서는 박수예는 5월 핀란드에서 개최된 ‘제13회 잔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자다. 한국인으로선 2022년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이다. 박수예는 17세에 파가니니 전곡 음반을 세계 최연소로 발매했고, 2021년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에서 ‘올해의 음반’으로 앨범이 추천되는 등 최근 가장 주목받는 젊은 연주자로 꼽힌다. 공연은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으로 막을 올린다.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전통 민담과 괴기한 상상력이 결합한 극적인 세계를 서곡 하나에 압축해 담아냈다. 이어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G단조 Op.26’이 연주되고, 멘델스존의 교향곡 제3번 A단조 Op.56 ‘스코틀랜드’로 마무리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황폐해져버린 숲. 더 이상 생물들이 살 수 없는 이곳에서 벌레들은 너나 없이 짐을 싸서 떠나기 시작한다. 아주 아주 작은, 가장 작은 벌레 ‘치코’만 빼고 말이다. 깨알처럼 작아 한참 들여다봐야 찾을 수 있는 치코는 혼자서 숲의 먼지를 쓸고 닦기 시작한다. 이곳을 버리고 그냥 떠날 수 없어서다. 물론 치코의 그런 노력을 다른 벌레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폴짝폴짝 뛰어가다가 치코가 정리한 땅을 다시 어지럽히기도 하고, 짓밟기도 한다. 그때마다 울고 싶어지는 치코. 유일하게 치코를 응원하는 건 보토 할아버지다. 황폐한 숲에서 지켜낸 씨앗을 치코가 가꾼 흙에 심어 함께 키워간다. 과연 이 둘은 황폐해진 숲을 다시 꽃과 나무, 풀로 만개한 멋진 곳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치코는 스페인어로 ‘작다’, 보토는 ‘희망’이란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작지만 소중한 희망이 있다면, 그곳에 새로운 생명과 미래가 움틀 수 있음을 작디작은 벌레 이야기를 통해 재미있게 그려냈다. 특히 흰 바탕에 아주 작은 검은 점만으로 가득 채운 배경과 그림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사는 거대한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의 힘을 글과 그림이 같은 온도로 따뜻하게 전해준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라벨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기연주회 “라벨, ‘라 발스’”(포스터)를 선보인다.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베토벤과 라벨의 대표작을 통해 두 작곡가가 새롭게 개척했던 음악적 미학을 조명한다. 공연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로 포문을 연다. 오케스트라 서주 뒤 협연자가 등장하는 방식을 깨고 피아노 독주를 도입부터 등장시킨 곡이다. 협연자로는 영국 피아니스트 폴 루이스가 오른다. 2010년 BBC 프롬스에서 베토벤 협주곡 전곡(1∼5번)을 연주한 최초의 피아니스트다. 라벨 탄생 150주년을 맞아 그의 음악 세계도 집중 조명한다.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2번은 여명이 밝아 오는 자연의 경이를 서정적으로 펼쳐낸 작품. 반면 ‘라 발스’는 우아함 속에 스며든 불협과 뒤틀림을 통해 전쟁 이후 유럽 사회에 드리운 혼란과 불안을 암시한다. 대비를 이루는 두 작품을 통해 라벨 특유의 상상력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계획이다. 다비트 라일란트 예술감독은 “격동의 시대를 지나며 변화와 혁신으로 자신만의 음악 언어를 확립해 간 베토벤과 라벨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예술가들의 통찰을 따라가는 여정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라벨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기연주회 ‘라벨, 라발스’를 선보인다.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베토벤과 라벨의 대표작을 통해 두 작곡가가 새롭게 개척했던 음악적 미학을 조명한다.공연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로 포문을 연다. 오케스트라 서주 뒤 협연자가 등장하는 방식을 깨고 피아노 독주를 도입부터 등장시킨 곡이다. 협연자로는 영국 피아니스트 폴 루이스가 오른다. 2010년 BBC 프롬스에서 베토벤 협주곡 전곡(1~5번)을 연주한 최초의 피아니스트다.라벨 탄생 150주년을 맞아 그의 음악 세계도 집중 조명한다.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2번은 여명이 밝아오는 자연의 경이를 서정적으로 펼쳐낸 작품. 반면 ‘라 발스’는 우아함 속에 스며든 불협과 뒤틀림을 통해 전쟁 이후 유럽 사회에 드리운 혼란과 불안을 암시한다. 대비를 이루는 두 작품을 통해 라벨 특유의 상상력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계획이다.다비트 라일란트 예술감독은 “격동의 시대를 지나며 변화와 혁신으로 자신만의 음악 언어를 확립해 간 베토벤과 라벨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예술가들의 통찰을 따라가는 여정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02-523-8947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그리스가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진두 지휘하는 ‘클래식 레볼루션 2025’가 8월 28일부터 9월 3일까지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그리스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로, 탁월한 음악적 통찰과 연주로 잘 알려진 카바코스는 올해 롯데콘서트홀의 새로운 예술감독으로 취임했다. 여름철 클래식 대표 축제로 손꼽히는 클래식 레볼루션의 올해 주제는 ‘스펙트럼’. 부제는 ‘바흐에서 쇼스타코비치까지’다. 바흐는 대위법의 정수와 신학적 이상을 바탕으로 한 음악적 질서를, 쇼스타코비치는 정치적 탄압 속에서 예술의 윤리와 인간성을 음악으로 대변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클래식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작곡가의 실내악과 오케스트라를 하나의 스펙트럼 안에서 다양하게 선보일 계획이다. 카바코스는 “음악은 시간과 감정을 초월한 언어”라며 “바흐의 구조와 쇼스타코비치의 고뇌처럼 다른 시대의 음악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실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축제에서 카바코스는 예술감독의 역할을 넘어 직접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롯데콘서트홀에 따르면 카바코스는 예술감독 직을 수락한 뒤 세계 유명 연주자들에게 무대에 함께 서 줄 것을 요청했다. 8월 29일에는 고음악 해석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아폴론 앙상블과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을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말로페예프,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등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교류해 온 아티스트들과도 협연한다. 8월 31일 카바코스와 양인모의 동반무대는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더블 콘체르토’란 애칭으로 불리는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단조, BWV 1043’을 함께 연주한다. 두 사람은 모두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와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 등 국내 대표 관현악단의 무대도 만나 볼 수 있다. 서울시향은 8월 28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6번을, KBS교향악단은 9월 3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5번을 연주한다. 실내악 공연은 4만∼9만 원, 오케스트라 공연은 5만∼12만 원.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텅 빈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선 아이. 아무것도 없다. 텅 빈, 고요한 운동장. 심심한 자리. 아마도 이곳에 막 이사 온 듯한 아이는 마을 곳곳을 돌아다녀본다. 가장자리에 머무는 아이의 눈길,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길 가장자리에 핀 꽃,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파도가 들이치는 해변 가장자리, 방 가장자리 이불 위에 누워 떠나온 그곳의 친구가 준 편지를 꺼내 읽어보는 그리운 시간. 며칠이 지나고 아이는 다시 학교를 찾는다. 여전히 심심한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다가온다. 딱 봐도 잘 통할 것 같은 새로운 친구다. 학교 가장자리가 갑자기 가장 설레고 두근거리는 자리로 변한다. 마음의 가장자리를 맴돌던 이들이 서로의 가장자리로 다가서는 용기를 내는 것. 아마도 그게 우정이 시작되는 순간일지도.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것들에 머무는 시선, 가장자리를 맴돌기만 하는 수줍은 마음, 서로의 가장자리를 채워주는 만남의 순간을 ‘가장자리’란 문구를 반복해 읊으며 따뜻하게 그려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1000명, 2000명의 관객을 놀라게 하는 연주를 하는 것보다 한두 명을 변화시키는 연주를 하는 게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3월 프랑스 롱티보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세현(18)은 실력만큼 의젓했다.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진 우승 뒤 첫 간담회에서 그는 “한 분 한 분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연주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들려줬다. 김세현은 롱티보 콩쿠르에서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우승과 청중상, 평론가상, 파리특별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며 세계 클래식계에서 주목받는 신예로 떠올랐다. 1943년 창설된 롱티보 콩쿠르는 만 16세부터 33세까지 젊은 음악가들을 대상으로 한다. 피아니스트 임동혁도 2001년 같은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주목받았다. 김세현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큰 상과 과분한 관심을 받아 감사하다”며 “우승 이후 연주 기회가 많이 주어져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막중한 책임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김세현은 이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5월엔 ‘유럽 전승 기념일’ 평화음악회에 초청 받아 파리 개선문에서 쇼팽의 녹턴을 연주했다. 다음 달 14일 프랑스 혁명기념일엔 에펠탑 앞 마르스 광장 ‘파리 콘서트’ 무대에서 솔로 연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같은 달 23일에는 유럽 최대 피아노 축제 중 하나인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그는 “에펠탑 앞에서 펼칠 솔로 연주가 기대된다. 라 로크 페스티벌 역시 워낙 큰 무대라 설렌다”고 했다. 2018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한 김세현은 예원학교 등을 거친 뒤 현재 미국 하버드대 영문학 학사와 뉴잉글랜드 음악원 복수 학위 프로그램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예술가의 상상과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생명력을 갖게끔 고민한다는 점에서 문학과 음악의 본질은 같다고 생각한다”며 “인문학을 공부하는 게 피아노 연주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데뷔 음반은 클래식 레이블인 워너클래식에서 준비하고 있다. 내년 봄 발매될 예정이다. 김세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꾸밈없이 현재 하고 있는 음악을 들려 드릴 것”이라고 다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1000명, 2000명의 관객을 놀라게 하는 연주를 하는 것보다 한두 명을 변화시키는 연주를 하는게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프랑스 롱 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세현(18)은 2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 분 한 분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연주를 하고 싶다”며 이렇게 밝혔다. 김세현은 지난 3월 프랑스 롱 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과 청중상, 평론가상, 파리특별상을 받으며 주목받는 신예 연주자로 떠올랐다. 한국인 음악가가 이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2022년 이혁이 공동 1위에 오른 뒤 3년 만이다. 롱 티보 우승에 대해서 김세현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큰 상과 과분한 관심을 받아 감사하다”며 “우승 이후 연주 기회가 많이 주어진 덕분에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고 막중한 책임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대회에 출전한 건 파리란 도시에서 받은 인상 때문이었단다. 그는 “대회에 나가기 전 파리에 간 적이 있는데 어둑어둑한 밤 빛이 깔린 센 강변을 걷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다“며 ”파리라는 도시에 끌려 참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김세현은 롱 티보 국제콩쿠르 우승 후 각국에서 연주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5월 8일에는 ‘유럽 전승 기념일’ 평화음악회에 초청 받아 파리 개선문에서 쇼팽의 녹턴을 연주했다. 다음 달 14일 프랑스 혁명기념일에는 파리 에펠탑 앞 마르스 광장에서 열리는 ‘파리 콘서트’ 무대에서 솔로 연주를 선보인다. 같은 달 23일에는 유럽 최대 규모의 피아노 축제 중 하나인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 포레, 라벨, 바흐, 리스트의 곡들로 리사이틀을 갖는다. 김세현은 “에펠탑 앞에서 펼치는 솔로 연주가 기대된다. 라 로크 페스티벌 역시 워낙 큰 무대라 설렌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미국 하버드대학교 영문학 학사와 뉴잉글랜드 음악원 복수 학위 프로그램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예술가의 상상과 아이디어를 현실세계에서 생명력을 갖게끔 고민하다는 점에서 문학과 음악의 본질은 같다고 생각한다”며 “ 인문학을 공부하는 게 피아노 연주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클래식 레이블인 워너클래식에서 데뷔 음반을 준비 중으로, 내년 봄 발매될 예정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꾸밈없이 지금 제가 현재 하는 음악을 들려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뉴욕 필하모닉은 관악기의 경우 35년 동안 계시던 분이 은퇴하면서 처음으로 자리가 난 거였어요. 그 무렵 자리가 난 것도 신기했고, 당시 학생이던 제가 몇백 명이 지원한 오디션을 세 차례 통과해서 들어왔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2012년 한국인 최초로 뉴욕 필하모닉 관악기 정단원이 됐던 플루티스트 손유빈(40·사진)은 내한 공연을 앞두고 가진 최근 인터뷰에서 “오디션 과정이 ‘내가 어떻게 그걸 뚫고 들어왔을까’ 싶을 정도로 어려웠다”며 “아직도 가끔 내가 이 대단한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고 했다. 1842년 창단된 뉴욕 필하모닉은 26일 인천 연수구 아트센터인천, 2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11년 만에 내한공연을 연다. 그 역시 단원으로서 함께 한국을 찾는다. 서울에서 태어난 손유빈은 미국 커티스음악원과 예일대 음대, 맨해튼 음대를 거쳐 2012년 뉴욕 필하모닉에 합류했다. 1960년대 히트곡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를 만든 고 손석우 작곡가의 손녀이기도 하다. 뉴욕 필하모닉 소속으로 내한 공연을 가지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손 씨는 “11년 전 입단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첫 한국 공연을 했고 그때가 마지막이었다”며 “정신 없이 참여했던 당시와는 달리 이젠 중견 멤버로 한국 공연에 참여하게 돼 더 자랑스럽고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 멤버들의 기대도 아주 커요. 한국에 처음 오는 멤버들도 있는데, 특히 젊은 멤버들은 이미 맛집도 알아보고 가족들이 동반하는 경우도 많아요. ‘왜 한국을 이제야 가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예요.” 이번 내한 공연은 핀란드 출신 지휘자인 에사페카 살로넨이 게스트 지휘자로 참여한다. 손 씨는 “1년에 180회 이상 공연을 하기 때문에 만나는 지휘자, 솔리스트도 다양한데 살로넨과 함께한 연주는 전체 오케스트라 생활에서 손꼽을 만큼 전율이 흐르는 순간이었다”며 “관객들도 충분히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상상 사무국’에서 일하는 스파키 요원. 세상 사람들이 하는 모든 반짝이는 생각, 아이디어는 모두 상상 사무국으로 보내진다. 상상 사무국에는 여러 부서가 있는데, 각 부서로 분류된 이 생각들을 배송하는 것이 바로 스파키의 임무다. 모든 부서를 신나게 돌아다니는 스파키지만, 딱 한 곳 멀리서 지켜만 보고 절대 가지 않는 장소가 있다. 드래건 브렌다가 지키고 있는 ‘꼭꼭 숨어라 이야기 동굴’이다.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이야기들이 쌓인 곳이다. 그런데 어느 날 위험한 일이 발생한다. 바로 그 동굴이 폭발할 위기에 놓이게 된 것. 너무 많은 비밀 이야기가 쌓인 탓이다. 브렌다의 요청에 용기를 내 동굴에 가득 쌓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 스파키는 놀라게 된다. 거기서 썩히기엔 너무 아름답고 기발한 상상이 많아서다. 심지어 스파키 자신이 아무도 몰래 매일 쓰고 있던 시도 거기 쌓여 있다. 스파키는 좋은 생각이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지기 위해 모두가 더 용감해져야 함을 깨닫는다. 부끄러움과 망설임 때문에 진짜 꿈이나 바람을 숨긴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수 있는 책. 좋은 생각과 상상의 가능성, 그것을 세상에 펼칠 용기의 중요성을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려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